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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2. 11. 04:10
2007년 12월 초에 국민대 교육대학원 어떤 소식지인가에서 청탁해서 썼던 글입니다 @_@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교 육은 인격의 충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존중을 강화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교육은 모든 나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 상호간의 이해, 관용 및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것이어야 하고, 평화의 유지를 위하여 국제연합의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 세계인권선언 제26조 中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과 합치하고 이 협약에 부합하도록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당사국은 아동교육이 다음의 목표를 지향하여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a)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신체적 능력의 최대한의 계발
(b) 인권과 기본적 자유 및 국제연합 헌장에 규정된 원칙에 대한 존중 의 진전
(c) 자신의 부모, 문화적 주체성, 언어 및 가치 그리고 현거주국과 출신국의 국가적 가치 및 이질문명에 대한 존중의 진전
(d) 아동이 인종적.민족적.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의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유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
(e)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의 진전
                                                                              - UN아동권리협약 제28조 및 제29조 中



  우리는 흔히 “교육”이라는 말을 아주 익숙한 말로, 때로는 긍정적인 뉘앙스를 담아서 사용한다. 그러나 교육(敎育)이라는 한자말에서 가르칠 교(敎)는, 매듭(爻) 묶는 법을 아버지가 손에 회초리(殳)를 들고 아들(子) 옆에서 가르쳐 주는 모양을 딴 글자라고 한다. 매를 들어가며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 바로 가르칠 교(敎) 자의 의미인 것이다. 물론 한자의 유래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가르칠 교(敎)의 폭력성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교육’의 의미 속에는, 어쩌면 애초부터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고 있는 그 수많은 인권침해들은, 단지 ‘교육’의 상궤를 벗어난 일부 예외적 폭력이라거나 우발적 사고라고 치부할 수 없다. 두발단속, 교복강제를 비롯한 온갖 복장단속, 학생이나 교사에 의한 학생에 대한 체벌과 ‘기합’ 같은 폭력들,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소지품 검사와 압수, 성(性)적 권리 침해, 참여권 박탈, 열악한 시설과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교육방식, 입시경쟁 등으로 인한 교육권 및 발달권 및 평등권 침해, 온갖 차별 등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나와 함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근대적 교육과 학교의 존재 자체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2006년에 200대 가까운 체벌을 가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교사를 이야기하며,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수백 대씩 체벌했다가 법정까지 간 사례는 예외적인 것이다. 학생인권 침해 사례들을 신고받고 정리하고 대응하는 일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시대’는 훨씬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지금도 수십수백 대씩 체벌을 하고 ‘앉았다일어났다’ 같은 걸 수백 번씩 시키는 일상들이 전국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울산에서도 학생이 두발단속 때문에 체벌을 당해서 머리가 깨져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학교에서의 일상들도 학교가 아닌 공간으로 옮겨와보면 정당화될 수 없는 인권침해인 경우가 많다.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정 위험한 물건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며 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고 해서 극장 직원이 휴대전화를 압수한다면, 얼마나 화가 날 것인가? 회사 실적이 부진하다고 10대만 맞게 엎드려뻗치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항의가 빗발칠 것인가?

  학생에 대한 온갖 인권침해들은, 다만 공론화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종종 학생에 대한 인권침해와 폭력은 교사의 재량이거나 학교장의 재량, 혹은 열성적인 ‘교육’으로 포장된다. 학생은 정치적 주체,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가 100대 넘게 때리면 신고하라.”라는 말처럼, 아니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대까진 교육이지만 3대부터는 폭력이라는 어느 교총 교사의 말처럼, 머리에 바리깡도 안 대는데 무슨 인권침해냐는 말처럼, 피해의 심각성이 가시화되어야만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다. 학생인권침해가 ‘교육’이 아닌 ‘폭력’으로 인지되려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학생의 학생에 대한 폭력과 같은 유형의 인권침해들만이 그토록 사회에서 부각되고 부랴부랴 대책이 수립되는 이유는, 어쩌면 가해자도 학생인 경우가 만만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또, 심각하다고 다 알려지는 것도 아니다. “심각한 정도”에 대한 인식이 지방마다 교육주체마다 사람마다 다른 데다가, 학교의 명예 같은 이야기에 휘둘려 사람들이 문제를 덮으려고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심각한 경우들 중에서도 보도되고 부각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학생인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럼 교육을 하지 말라는 거냐.”라는 식의 비판이 꼭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교권 vs 학생인권’이라거나 ‘교육 vs 인권’ 구도는 폐기되어야 한다. 학생인권 문제는 교육이라는 가치와 인권이라는 가치의 갈등이라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학생인권은,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은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교육이냐 아니면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교육이냐의 교육 패러다임의 차이다. 이렇게 봐야, 교육과 인권의 가치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모호한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새로운 교육을 창조하거나 도입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인권’이 정말로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라면 학생인권을 침해해야만 가능한 교육과 학교라는 것은 사라지거나 바뀌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것처럼 교육의 목적이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존중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면, 지금 학생인권을 침해해가며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은 교육이 아닌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교육과 교사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로 서툴게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건 교사가 학생들을 보호해줘야지, 같은 시혜적인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교사-학부모-학생(-관리자들-공무원들)의 관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예컨대 학생들이 인권을 요구하며 직접 저항에 나섰을 때, 교육자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할 것인가? 억압하는 입장, 달래는 입장, 대변하는 입장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할 테지만 가장 평등한 관계는 연대하고 함께하는 관계일 것이다. 교육은, 항상 평등한 관계 속에서 대화하고 연대하는 활동이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권의 문제는 ‘어떻게’ 교육을 할 것인가, 교육의 방식과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그자체이다.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단어 하나를 더 첨가하고자 한다. “가르친다는 건 다만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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