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09.03.10 00:28



열정세대 - 10점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양철북


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양철북 출판사.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2009년 2월 인쇄/발행.
정가 9800원.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등은
http://blog.peoplepower21.org/CivicEdu/21171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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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만드는 일을 약간 거든 바 있는 『열정세대』를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농성장에 앉아서 다 읽었다.

  참여연대에서 친절하게 우편으로 보내준 『열정세대』를 펼 때, 참여연대 홍성희 씨에게 이 책 만드는 일 때문에 만났을 때 빌렸던 DVD를 아직도 돌려주질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일단 그건 뭐 그렇다 치고(……) (출판기념회나 뭐 그런 게 있으면 그때 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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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제목을 보고 좀 닭살이 돋았다. “열정세대”라.
  “청소년NGO활동 가이드” 이런 딱딱한 제목보다야 낫긴 하지만.

  “열정세대”라는 말이 80년대스럽다거나 구닥다리스럽다거나 뭐 그렇게 느낀 건 아니다.
  오히려 “열정세대”라 그러니까 무슨 최근에 지하철 같은 데서 나오는 젊은이들이여 도전정신을 가져라, 뭐 그런 공익광고 같은 느낌이 든다. 일종의 체제내적인 세련됨이랄까.
( 어쩌면 약간 참여연대 사무실 건물 같은 느낌? -_-; 흠 그거랑은 또 좀 다른가... 어쨌건 책 내용을 보면서도 좀 참여연대가 위치한 정치적 포지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부 글 같은 경우는 초안과 다르게 좀 덜 빡세게(??) 수정한 거란 이야길 언뜻 들었던 듯도. 그게 참여연대가 부담스러워 한 건지 양철북이 부담스러워 한 건진 모르겠으나-)



  그런데 과연 지금의 청소년들이 “열정”을 자기 삶의 중심에 품고 있는 세대이긴 한 걸까?

  아니, 그래, 그 ‘청소년들’이야 어떻든, '이 책에 나와 있는 청소년들'은 “열정”을 가슴 속에 품고 있긴 한 걸까?
  내 룸메이트이자 이 책의 첫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따이루의 경우에, 이 녀석은 과연 그 가슴 속에 “열정”이 넘치고 있나?


(따이루 사진 -_-)

  운동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열정으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대개 운동이라는 게 일종의 운명적인, 아니면 숨쉬는 듯한,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시작하고 계속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일반론적으로, 보편적인 정의라거나, 열정이라거나, 그런 건 사후에 정당화하고 갖다붙이는 것만 같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그렇기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이고 만다.

  애초에 “열정”이라고 하면 뭔가 열혈소년만화스럽거나 장인 정신이나 프로 정신,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꿈’ 같은 말이 등장해야 할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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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머리글에는
  “우리가 만난 십대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싸워서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옳다고 판단하면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라고 붙이고 있지만,

  글쎄 오히려 민주주의를 싸워서 쟁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온 여러 사람들이라고 느꼈는데...;
  이런 식으로 미시적으로, 생활 속에 이미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약간은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라는 부제는 꽤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열정" 쪽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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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08년 촛불집회 정세를 배경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은 촛불집회와 그리 큰 상관이 있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촛불집회에서 주역이었던 십대들을 탐험하고자 한다", 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책 내용은 촛불집회와는 별 상관이 없는 ‘NGO 활동’을 하는 십대들이 더 많지 않나 싶다.
  뭐 그런 것이 지금의 십대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째서 촛불집회가 가능했나 하는 촛불집회의 배경과 십대 내부의 동인을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한 공통점, 단일한 성격을 지닌 집단으로서의 십대(사회적 취급이나 규정이 아니라)라는 게 과연 성립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나로서는 그런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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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촛불집회 관련 챕터에서는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던 건 역시 여기서 인터뷰한 청소년들은 ‘청소년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한 게 아니라 그냥 ‘국민’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했다는 느낌이다.
  촛불집회 안에서 청소년들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은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긴 아마도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의 다수가 그럴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촛불집회의 주역이 십대였다 청소년이었다 라고 말하는 건 미묘한 오류가 있다. 촛불집회의 주역 또는 촛불집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나이가 10~20대 정도의 ‘국민’ 또는 ‘시민’이었다.
  기회가 닿으면 2008년 '촛불집회'에 관한 내 생각들을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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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좀 읽으면서 구성상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한 명씩 관련된 사람들이 부연하는 글 같은 것을 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게 좀 글 청탁할 때 전달이 잘못된 것이거나 구성할 때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다.

  가장 문제가 있는 챕터는 “유쾌, 상쾌, 통쾌한 정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YMCA 창숙님과 참여연대 지현님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보통 이야기를 하거나 소개를 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다른 챕터와 다른데,
  그 대화의 내용에서도 실제 활동에 대한 소개나 이야기는 참여연대 이야기가 더 많고 정작 창숙님의 활동은 많이 이야기되어 있지 않다.
  뒤에 붙은 참여연대 글 같은 경우는 그냥 참여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소개하는 내용에 가깝고, 정작 창숙 님의 정치적 활동이나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 정치적 권리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행복한 학교 만들기”의 경우에는 윤지님 이야기는 아주 좋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희망 박철우님의 글은 그냥 희망 단체 소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희망 활동, 성격 등 소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같이 활동하면서 종종 얼굴 보는데 이렇게 썼다고 해서 화내시진 않겠지 -_-;)

  연주님의 언론 활동에 대해 지식채널e의 김진혁 씨가 쓴 글은, 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연주님에게 조언을 하는 형태로 마무리를 하고 있어서 그래도 음, 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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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챕터들 말고 다른 이야기들은 부연하는 글들과 본문 이야기들 사이에 호응이나 조화가 부자연스럽지 않다. 전반적인 내용도 알차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활동을 알고 싶은 분들, 이런저런 영감이나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
  따이루, ‘품’, 리타님, 리인님, 윤지님, 연주님, 강강수월래 등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읽어볼 만하다.


  단지, 솔직한 내 욕심으로는, 청소년들의 NGO 활동 이야기, 이런 식으로 따로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것뿐. 청소년들의 그런 활동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사회면 좋겠다는 거다.

  “열정세대”라는 제목이 껄끄럽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지금의 청소년들, 십대들을 너무 특별하게 의미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내가 참여한 부분은, 간접적으로는 청소년 언론 활동이나 학생인권 관련 활동에 대해 내용 구성 전반을 놓고 조언을 한 것,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제일 뒤에 실린 이 사진 속 청소년 단체 리스트 초안을 뽑는 작업을 같이 한 것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16 02:57
사용자 삽입 이미지


7월 19일 오후3시

서울시청광장

청소년 대토론회
이명박정부에 대처하는 청소년의 자세


~_~

잘 해야 하는데... 에휴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05 02:22
오답 승리의 희망(오승희) 8호에 실을 글







투덜리즘 : 명박이 치하의 꿈높현시


  청소년들은 아프다. 명박이 정부는 청소년의 삶을 학대하고 있다. 아니다. 명박 이전부터 청소년 학대는 벌어져왔다. 다들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4.15학교자율화’ 조치가 어쩌구 떠들지만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이라는 과목별 ‘우열반’, 0교시,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언어영역 쉽게 내서 1교시 끝나고 자살하는 일 없게 한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입시경쟁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할 동안에, 많은 학교에서 버젓이 강제야자와 강제보충수업이 시행되는 동안에, 정답과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이 계속되는 동안에, ‘노간지’(놈현)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래, 어쩌면 교육/청소년인권문제에서는 노무현도 X놈이었을 뿐이었다. 쥐박이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쥐보다는 좋았다고 칭찬 듣는 게 기뻐할 일은 아닐 듯싶다.
  한 교사는 4.15학교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며 없애버린 규제들 대부분이 ‘전봇대’(명박이가 쓸데없는 규제에 붙인 은유)가 아닌 ‘신호등’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4.15학교자율화 등등 때문에 학교들이 더 학생들을 막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전반적으로 경쟁이 더 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학교자율화’는 ‘학생타율화’요 ‘학생노예화’였다. 그러나 어쨌건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호등’이 고장 난 신호등이었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그 규제들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이 도로 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들은 신호등 몇 개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지난 정권을 욕하고 있을 시간조차 별로 없다. 우리는 돌팔이 명박이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지금까진 삽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입시경쟁 속에 파묻어가더니, 이젠 불도저로 그대로 밀어버리려고 하는 꼴이다. 4.15학교자율화를 하고, 본고사를 허용하고, 중고등학교도 서열화시키고, 기타 등.등.등.

  그리하여, 기어코, 가설라무네, 불도저에 밟히는 게 조낸 아팠던 청소년들이 꿈틀하기에 이르렀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안 그래도 불만이 높았던 청소년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그런데 글쎄, 이 무식한 것들이 더 때리고 밟으려고만 든다. 집회신고했다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고 교육청들이 장학사 대군을 동원했다. 경기상고 교사는 학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했더니 절대폭력권을 발동하여 그 학생을 쥐어 패버렸다.
  게다가 정부는 학생노예화 정책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학교자율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람들의 촛불을, 행동을 그저 ‘광우병&미국산쇠고기’에 관한 이야기로만 한정지으면서 말이다.(재협상도 안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무시당해서, 경쟁당해서, 학대당해서 아프고, 맞아서 아프다. 그러나 아프면 아플수록, 죽기 전까지는 더 꿈틀대고 더 비명을 지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비명소리는 이렇게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학생노예화! 집어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하라!”
“광우병급식&식품 명박이나 처먹어!”


  지금의 상황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꿈높현시다. 꿈높현시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영화 『8마일』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저번 호의 ‘지못미’에 이어 2탄은 ‘꿈높현시’다.
  왜 지금 상황이 꿈높현시냐 하면, 예를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적극적으로 말해보려 했던 사람들도 명박이 때문에 ‘4.15학교자율화’ 막기에도 급급해졌다는 것이다.(지금도 말하고 있지만 묻히고 있다.)
  또한 급식운영에 민주적 참여, 생태적인 식량 생산과 직거래 시스템 등등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되는 거 막기도 막막하다는 것이다.
  또또한 정당가입, 선거운동, 표현의 자유, 학생회, 대의제와 선거연령 등등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온갖 것들을 없앨 것을 꿈꾸고 있지만, 집회장에서 장학사들 쫓아내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를 들면, 나는 ‘4.15학교자율화’는 욕하고 명박이를 싫어하지만 “입시폐지”를 쓴 피켓이나 낙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따라서 지금의 촛불은, 그다지 꿈높현시를 극복시켜줄 것 같진 않다.

  정녕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긴 현실이 시궁창인 건, 쥐가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이 시궁창인 현실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쥐박이부터 퇴치할 수밖에. 끈질기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1.08 13:42
이런 기사들을 써주기 때문에,
일다를 좋아한다 *_*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8010400001&art_menu=12&art_sub=26






“다 성장의 과정 아닌가요?”

   
인권침해 견뎌내는 ‘착한 아이’들

박희정 기자
2008-01-04 00:20:15

“학교에서 머리 길이를 규제하거나 체벌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십대들이 거리에 나와 ‘십대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십대 인권을 보장하라’고 집회를 열었을 때, 이를 취재하던 중에 집회를 지켜보던 한 십대 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잠시 머뭇거리던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다 거쳐야 하는 과정 아닌가요?” 그는 두발규제와 체벌에 대해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인권침해’가 아닌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규정하고 있었다.

순간,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이 십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니, 십대들의 의견을 일축해버리는 어른들의 주장이 아닌가.


사실 십대인권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십대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또 다른 십대는 ‘십대의 집회’에 대해 “지켜보는 사람도 많은데 거리에 나와서 한다는 게 대단해 보인다”면서도, “학생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십대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머리 길이를 규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의견에 대해 “학생은 교복에 깔끔한 모습이 제일 예쁘다”거나 “나도 두발규제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만, 학생이 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자유가 학생신분을 망각할 수준이면 안 된다” 등의 주장을 펴는 십대들도 많다.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십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무시할 없는 수의 십대들이 그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그저 십대들의 ‘다양한 가치관’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십대들로 하여금 한 개인으로서, 주체로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방통행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넌 커서 뭐가 되라’고 말하는 부모와 교사, 어른들은 ‘내가 너에게 어떤 어른(부모, 교사)이 돼주면 좋겠니?’라고 묻지 않는다.

이처럼 일방통행 식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십대들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권리에 대해 배우기 이전에 순응할 것을 요구 받는다. 어른은 무조건 공경해야 하는 대상이고,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다. “말대꾸 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말대꾸 했다고 맞아도, 어른이 때리는 것이니까 맞아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싫은지, 좋은지,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혼자 힘으로 이리 끙, 저리 끙 궁리할 겨를이 없다. 고민을 했다가는 혼이 난다. 가르쳐주는 것을 외우고, 시키는 일을 하고, 그래야 별 탈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한테 “착하다” 소리를 들으면 안심이다.

이 ‘착한 아이들’은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골절상을 입힐 정도로 심각한 폭력을 휘두른 교사에 대해서도 “폭력을 휘두르는 건 잘못이지만 선생님한테 함부로 하는 애들도 많아요” 라며 옹호론을 편다. 두들겨 맞아도, 머리카락이 잘려도, 다 ‘성장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인내하는 ‘착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이 바로 나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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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