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 8. 27. 14:09


http://withoutwar.tistory.com/57



 병역거부자인 나는 양심수인가


1.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소식지를 읽다가, 일본대사관에 트럭을 돌진시켜 재물손괴죄 혐의로 구속재판 중이신 분이 양심수 목록에 추가된 것을 발견했다. 그분은 어느 일본사람의 '위안부 소녀상 말뚝테러'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그랬다고 한다. (그 다음번 소식지에선 양심수 목록에 없던걸보니, 아마 재판에서 실형선고를 안받으셨나보다.) 나는 그 소식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이분은 '양심수'가 맞는걸까?" 동시에,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수감이 될 때부터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거리도 같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양심수인가? 양심수란 정확히 무엇인가?"

'양심수'란 단어를 곧이곧대로 풀이해본다면, 대강 마음 속의 '양심'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양심' 때문에"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마음 속의 양심, 신념, 사상, 의견, 신앙 등을 이유로, 즉 어떤 생각이나 믿음을 품고 있다는걸 이유로 수감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을 쓰거나 말하거나 표현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것도 '양심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뭔가 겉으로 표현한게 없이 마음 속의 것을 알아내긴 어려우므로, 대체로 양심수들은 이런 표현의 자유 문제가 연관되어 있곤 하다. 여기에서 좀더 넓혀본다면, 그런 생각이나 믿음에 따라 어떤 행위,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도 어쩌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 상황에서 '양심수' 개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예컨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적표현물 소지'나 '찬양, 고무' 같은 죄명으로 처벌받는 사람들일듯 싶다. '비전향 장기수' 같은 경우도, 처음에 갇힌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 속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려나지 못하고 계속 갇혀있다면 '양심수'에 해당될테고.

그런데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에 따라 한 활동 때문에 수감된 경우를 '양심수'에 포함시키는 것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한 예로, 얼마전 노르웨이에서 자신의 극우적 신념에 따라 사람들을 죽인 사람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 역시 자기 마음 속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고 그 때문에 수감된 것이니까, '양심수'라고 불러야할까? 같은 질문이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신념에 따라 테러를 저지른 사람, 학살이나 전쟁을 저지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적합한 대답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 때문에 처벌받은게 아니라, 살인, 학살, 전쟁 등의 행위 때문에 처벌받은 것이다. 즉,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양심'과 '행위'를 구분하여 다룰 수 있다.

트럭을 일본대사관에 돌진시킨 그분에게도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분의 의견, 신념과 관계없이 오직 그 행위만을 이유로 처벌을 받는다면 말이다. 사실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에서 싣는 '양심수'들의 목록을 보면 이게 '양심수'가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사례들이 간혹 있다. '양심수'라는 개념이 그저 "나(우리)는 그 사람의 수감에 부당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라는 이야기를 포장하는 꾸밈말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양심수'가 아니란 말이 그 사람의 수감이 꼭 정당하다느 뜻도 아닐 것이고. 그러니 '양심수'의 개념은 좀 더 정확하게 쓰여야하고, 또 다른 개념들의 발명도 필요해보인다. 자본친화적 법 적용 때문에 수감된 노동자, 철거민 등을 '계급수'라고 한다거나? (물론, 관련해서 '구속노동자'나 '공안수' 등 여러 용어가 있긴 하다)

그리고 나는, 나와 같은 병역거부자 역시 과연 양심수가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양심, 신념 때문에 갇혀있는 것인가? 국가는 병역거부자들의 양심, 신념, 신앙을 처벌하는 것인가? 내 생각엔(적어도 최근엔) 국가가 병역거부자들을 입대 영장을 받고도 입대하지 않았다는 '행위'만 보고 처벌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병역거부자들의 형량이 1년6월로 줄어든 최근 몇년은 말이다. 탈영이든 항명이든 입영기피이든 다른 '병역법 위반'들도 큰 차이가 나지않는 형벌을 받곤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나는 나를 재판한 사법부든 형을 집행한 국가든 내 생각이나 주장에는 아주 무관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나(우리?)의 신념이나 주장의 내용에 무관심하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양심수'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는가?



2.
'양심수', '양심의 자유' 등이 부각되면, 거기에는 볼테르의 저 유명한 논법이 따라붙곤 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다." 여기서 "동의하지 않는다"란 말의 의미는 상관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리라.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에 관해 형성되어있는 비교적 우호적인 편인 이야기들 중에도 그런 종류의 것이 많다. 병역거부자들은 어차피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굽하지 않고 군인이 되기를 거부할 것이므로, 그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 처벌하기보다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 역시 그 중 하나의 변형 논리이다. 병역거부자들의 신앙, 신념에 동의하진 않지만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나은 길을 찾자는 식의 이야기도 그렇고. (이런 논법의 배경엔 한국의 공고한 군사주의와 병역거부자의 수적 다수가 '종교인'이라는 현실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처럼 사람의 신앙, 신념 등을 국가가 강제로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인권의식은 크게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런 논법이 껄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정치적 병역거부자', '정치적 양심수'에 속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상당수의 정치적 양심수들은 자신이 자유를 침해당해 갇혀있다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탄압당하면서도 생각하고 말하려했던 그 내용 역시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사람들이 '부당한 수감'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수감된 연유, 자신의 주장이나 활동 등에 관심을 가져주길 원할 수도 있다. 수감 사실이 앞에 오고 그들의 '양심'의 내용은 뒤로, 괄호 쳐진 채 판단 밖으로 밀려난다면 그게 꼭 바람직한걸까?

'양심'이라는 개념은 원래 이런 문제를 초래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고유한 '양심'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공유되기도 어렵단 점에서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니 '정치적 양심수'란 말은 이미 모순을 품고있다.

한나 아렌트는 논문 <시민불복종>에서 이런 '양심'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양심은 비정치적"이며, "개인의 자아와 그것의 고결함을 염려"하지, "잘못이 범해지는 세계나 그것이 그 세계의 향후 진로에 대해 갖는 결과에 주목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자기희생적 요소'가 '강렬한 관심'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진지함 그리고 법에 대한 충실함'을 나타내는 최상의 증거라는 점은 대단히 불행한 것이다. 왜냐하면 외골수적인 광신은 보통 미치광이의 표지이며, 어떤 경우라도 그것은 문제의 논점에 대한 합리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위기>,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한길사)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 이야기를 그저 '존중해야할 고유 불변의 양심'이 아니라 대화해볼만한 정치적 관점, 발언으로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그런 생각을 할때면 나는 '양심수'로 분류되기보다는 '평화수감자', 차라리 '정치범'으로 불리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3.
이런 논의는 실은 별로 새로운게 없는 것이라서, 병역거부-평화운동에서는 진작부터 '개인의 인권'과 '반군사주의, 평화'운동아리는 서로 긴장관계가 있는 두 축으로 병역거부운동을 분석해왔다. 한편으로 나는, 병역거부운동과 인권의 언어가 '양심의 자유' 말고 다른 만남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다.

병역거부가 국제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양심의 자유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결국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로 알려진 바이다. 유럽지역, 미국 지역 등에서 '종교적 양심'을 앞세운 병역거부가 먼저 등장했고, 그러한 종교적 전통이 이어지고 확산되면서 비종교적(정치적) 병역거부가 그 기반 위에서 나탄ㅆ던 것이다. 출발부터 종교적 신앙적 성격이 있었으니 '양심의 자유'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었고, 때문에 지금도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의 대표적 의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역사적 맥락 말고도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병역거부가 중요한 인권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이나, 병역거부가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속한다는 해석 등은 모두 병역거부에 대한, 정확히는 군대, 전쟁에 대한 가치판단을 깔고있는 것은 아닐까? 요컨대 사람을 살상하는 군대, 전쟁의 성격상 그것들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에 일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만하다는 공감대가, 병역거부를 인권의 언어로 옹호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양심의 자유'가 '양심'의 내용은 따지지 않는다는 전통적 설명과는 안맞겠지만, 그런 공감대가 없었다면 과연 병역거부가 인권의 대표적 의제이자 본질적 내용으로 입주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졌듯이, 인권은 중립적인 체계가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라는 친근한, 편향적 체계이고 언어이다. 역사 속의 인권 구상들 중에는 상비군 또는 국군의 폐지, 축소를 담고있는 것들도 있지 않았는가? 병역거부자가 '양심수'가 아니라고 해도 병역거부운동이 인권과 만나는 다른 조합들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여하간 병역거부운동 역시 '양심수' 너머에서 계속 나아갈 것이고, 병역거부자들 각자의 말들도 운동을 통해 계속 만들어지고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12. 10. 17.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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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중일 때 써서, 병역거부자 팀 블로그에 실렸던 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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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11. 6. 09:56
한반도인권 뉴스레터
16호 | 2009년 11월 6일
제목 부제목
자유로움의 권리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조항으로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에 있어 자유란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현재의 자유권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권리를 갖는다는 추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다양한 조건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면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권의 내용 각각을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사고하게 되면, 인권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게 된다. 전체 사회의 맥락을 세심하게 읽으면서, 인권의 불가분성, 인권의 상호의존성 등 인권의 성격을 놓치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감수성을 가질 때, 자유권의 실현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남한)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 정작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자유권을 실현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측 정부 모두 자유권의 본래 의미와 원칙들을 무시한 채, 개별 규정이나 특수한 사례들만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권의 개념을 왜곡하게 되며, 이는 결국 남과 북에 살고 있는, 한반도 주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수십 년에 걸친 식민지배와 민족 간의 전쟁, 세계 유일의 분단상황, 최후의 냉전지대 등 매우 특수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가진 한반도에서 자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자유권을 말하기 위한 조건

자유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

북 한과 남한은 상대의 인권상황을 거론하면서, 개별 권리가 지향하는 인권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상대의 인권상황을 거론함으로써 서로의 인권발전에 발전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보다는 그저 비난의 결과로서 양측의 갈등만 고조된다. 이를테면, 논란이 되는 북한의 공개 처형 문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한 탁상공론을 반복하게 만든다. 인권적인 입장에서 사형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한 사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의 문제는 무엇인지 날카롭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와 같은 인권의 원칙이 필요하다. 이미 국제적으로 잠정적 사형폐지국 대열에 들어선 남한에서의 사형재개 요구 문제 역시 이러한 원칙을 바탕에 두고 접근할 때 인권적인 해결 방향이 도출될 수 있다. 사형의 완전폐지와 같이 확고한 원칙이 없는 채로 서로의 상황을 비난하는 것은 인권을 핑계로 한 지엽적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양심수 또는 정치범의 경우에 있어서도, 양심수와 정치범은 단 한 명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인권적 원칙이 될 수 있다. 2008년 국제사면위원회 연례보고서가 남한에 대하여 "최소 8명의 양심수가 여전히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남한 법무부는 “이른바 양심수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소위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유무와 수용소 내부에서의 가혹행위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 역시 양심수와 정치범을 만들어서는 안되며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남북이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상대의 인권문제와 함께 스스로의 인권문제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남 한과 북한은 서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스스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심지어 왜곡,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우리식 인권”이라는 표현으로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문제제기들의 많은 부분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에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의 인권위 등급이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국제적으로 남한의 인권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정책기조나 국정운영의 방향을 수정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북 서로에 대한 문제제기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고 서로의 문제제기가 갈등을 유발하게 될 뿐이다. 스스로의 인권문제를 성찰하는 가운데 상대방과 함께 인권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반도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인권과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인권’의 개념은 굉장히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전해가는 인권의 모습을 사실상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개념이 ‘우리식’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권 영역과 시혜적 성격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권 및 저항권, 발전권, 환경권 등 다양한 인권문제들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에 비해 남한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 형식이 갖추어진 것만 강조할 뿐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용산참사와 같이 그와 관련된 인권 현안은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의 자주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핵무기 개발을 이용하는 북한도, 북한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며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중단하는 남한도, 파편화되지 않은 인권, 인간답게 살기 위한 총체적인 조건으로서의 인권을 고민하여야 한다. 인권의 불가분성 혹은 상호연관성을 고려하지 않는 자유권 타령은 그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비난에 불과하다.

대결구도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남한과 북한정부가 국가안보와 공공질서 등을 근거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는 남북 서로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남한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는 오랫동안 북한의 존재 때문에 정당화되어왔다. 민주화나 인권을 위한 요구는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고문을 하는 방식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었고, 그러한 인권침해는 북한의 존재로 인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비사회주의그루빠검열’ 등을 통해서 인민을 처벌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북한사회가 인권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행위이다. 특히 남북 서로를 빌미로 한 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감시와 사찰은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상호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함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남 북관계에서 인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 향상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하다.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상대의 체제와 이념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한반도 인민의 자유를 신장시킬 수 없다. 비록 북한이 국제인권레짐에 속해있더라도, 판이하게 다른 역사와 사회구조를 가진 서구 자유주의 사회에 적합하게 발전된 인권형식들까지 아무런 고민없이 강요할 수는 없으며, 거꾸로 사회주의 체제가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어떠한 국가도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한 국가가 없는 현실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가진 두 나라가 서로의 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서로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한반도에서 자유권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인권상황을 돌아보고 함께 자유로워져야

군 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정부가 서로의 자유권 상황을 비난할수록 결국 한반도 주민의 자유권은 왜곡되고 축소된다. 이럴 때일수록 자유권이 등장해야만 했던 역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유권은 국가안보, 사회질서, 체제 수호 등을 핑계삼아 국가가 저지르는 인권침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소중한 권리개념이지, 국가들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국가가 ‘너희들의 자유는 여기까지다’라고 제한하기 위한 눈가림수도 아니다. 한반도에서 남북이 상대의 자유의 권리를 얘기하기에 앞서, 자유를 말하기 위해 필요한 인권의 조건들을 반드시 먼저 확인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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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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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8. 28. 15:42

류은숙 씨 글인데,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시대의 느낌 같은 게 느껴진다. 우스운 동일시이지만, 최근에 내가 나보다 이후에 활동을 시작해온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랑 어쩐지 겹쳐지는 기분이 있다.

어쨌건 내가 어떻게 느끼냐와 무관하게,  인권활동가로서의 김대중 전대통령과 한국의 인권 의제에 대해 읽어볼만하다.




[인권문헌읽기] 한국의 인권 의제

국제앰네스티 1998년 2월

류은숙



기나긴 연대의 세월


인권운동은 연대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일대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인권침해로 인한 고난이라면 그 동전의 다른 면은 전 세계적인 인권운동의 연대라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제 앰네스티(AI)의 활동 기록을 살펴봤다.


- AI 사무총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항의 전문을 보냈다. 김대중과 그의 아내 이희호를 포함한 양심수에 대한 석방과 민주적 권리의 회복을 촉구했다.(1976년 3월 10일 AI 보도자료)
-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명동성당 구국선언을 읽었다는 이유로 김대중에게 8년의 중형을 부과한 것에 항의한다.(1976년 8월 31일 AI 보도자료)
- 명동성당 구국선언으로 구속된 김대중은 신경통과 관절염으로 “심각하게 아프다”.(1976년 11월 1일)
3월 7일 김대중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AI 1977년 인권보고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런 기록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인권의제의 해결을 촉구하면서 발표한 한 문건에 다음과 같이 요약돼 있다.

김대중은 1970년대의 대부분을 가택 연금이나 감옥에서 보냈다. AI가 김대중을 양심수로 처음 채택한 게 이 기간이었다. 그는 1976년 3월 유명한 명동성당 구국선언에 서명한 이유로 구속됐고, 1980년 5월 광주 학살 직전에 내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1980년 9월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장남 김홍일과 형 김대현도 동시에 투옥됐고, 아내 이희호는 부분적인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AI와 다른 많은 인권 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 정열적으로 김대중을 위해 캠페인을 했다. 1981년 국제단체들의 광범위한 국제적 항의와 캠페인이 있은 후 사형선고는 감형됐다. 1982년 그는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1985년 2월 그는 또다시 2년간의 미국망명에서 돌아온 날 가택연금을 당했다. 가택 연금과 괴롭힘은 1986년 2월까지 계속됐다.
1993년 런던 방문 중에 김대중은 AI 피에르 싸네 사무총장에게 자신이 쓴 서예 작품을 선물 했는데, 거기 쓰인 네 글자 한자의 의미는 “모든 민족은 한 가족이다”였다.(AI Index: ASA 25/05/98)




단 존스와 김대중

서거 정국에서 한 인권활동가가 떠올랐다. 칠순을 바라보는 영국 앰네스티의 활동가 단 존스(Dan Jones)씨다. 그는 AI 회원으로서 1970년대부터 김대중, 김지하, 서준식․서승 형제 등 한국의 양심수들을 위한 캠페인을 했다. 직업적으로 AI에서 일하게 된 1987년 이후부터는 한국에도 자주 왔고 수많은 양심수 가족들과 인연을 맺고 최루탄 냄새와도 친해 졌으며 광주 망월동 묘지를 아끼는 사람이다. 광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은 일을 생애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긴다. 구명운동을 했던 양심수들이 석방되면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그에게 구명 운동을 펼쳤던 이전 사형수의 대통령 당선이 어떤 의미였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에피소드 하나. 단 존스씨는 인권교육가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인권교육 방법을 훈련한다. 그는 그 여행길에 ‘대통령 김대중 영부인 이희호’라 쓰인 시계를 차고 다녔다. 가운데 봉황이 새겨진 시계였다. 그런데 어느 밀림 속에서 넘어져 시계가 박살났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인권활동을 같이 하며 10여년 넘는 인연을 맺어온 나에게 그런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이미 퇴임한 대통령의 시계가 어디 남아있을까’ 궁리하다가 머리에 퍼뜩 떠오른 것이 호남 출신이 아니면서도 고인의 책이나 연설 비디오 등을 무지 좋아하는 아빠의 소장품들이었다. 아빠의 소장품 가운데서 그 시계를 발견한 나는 멎어있는 시계의 배터리를 갈아 넣어 런던에 보냈다. 작은 물건에 무지 기뻐할 할아버지 활동가를 떠올리며 즐거웠다. 그런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허탈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글의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이런 저런 연락을 취하다 들은 얘기다.

15년 전 나는 한국의 인권활동가인데 인권교육을 배우고 싶으나 돈도 없고 길도 없다는 이메일 한통을 보냈다. 그는 흔쾌히 자기 집에서 9개월간 무전취식을 제공해줬다. 그를 따라 다니면서 인권교육을 귀동냥 하는데 정규시간의 활동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것은 그의 과외활동이었다.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 집회, 이주노동자 동네 모임, 주말시장에서 하루 종일 꼬박 나 홀로 캠페인,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인권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모임 등 AI 정규 활동과 상관없이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을 인권을 위한 연대활동에 바치는 삶이었다. 그의 집에는 나 말고도 전 세계에서 이런 저런 일로 런던을 찾는 인권활동가들을 위해 언제든지 잠자리와 부엌이 무료로 열려있었다. 인권은 연대라는 걸 깨닫고 실천하는 삶, 그것이 인권교육의 핵심이었다.

위 사진: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과 애도를 알리는 소식이 실려있다. (http://www.amnesty.org/)



연대를 호소하는 오늘의 인권의제

서거정국이 끝나고 실천정국이 시작됐다. 10여 년 전의 인권의제를 오늘 다시 풀어 헤쳐 본다. 이 의제들은 1998년 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취임 전에 AI가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10여 개의 요구사항들은 오늘도 한결같은 현안들이다.

언론인, 노동자, 촛불시민의 대량연행․구속 재판을 비롯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한 구속자 등 멀어져갔던 양심수 의제는 다시 현안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조직축소와 무자격자의 위원장 도둑 취임을 겪었고, 국가인권위원장이란 사람이 전 세계적인 캠페인의 대상이 되어온 국가보안법에 대해 망언을 했다. 국가인권위 조직축소로 인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 등을 위한 활동이나 인권교육의 강화는 저만큼 멀어졌다. 이로 인해 세계의 인권향상에 기여할 무대였던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국의 기회를 차버렸을 뿐 아니라 등급의 강등마저 얘기되고 있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명단을 올린 지 얼마 안됐는데 다시 사형제의 도입이 호시탐탐 고개를 든다. 과거 권력기구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침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의 활동들은 산적한 일을 남겨두고 통폐합되거나 중단되게 됐다. 비정규직 시대의 여성 인권의 참담함에 보태진 것은 여성부 축소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계속되는 조치의 ‘절약’이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국장이 있던 날 유가족이 또 경찰에게 폭행당했다. 기무사가 민간인 사찰에 나선 것을 비롯해 공안기구의 노골적인 맨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노동자의 기본권인 결사의 권리와 파업의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보복 속에서 몸과 정신이 신음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단속에 신음하고 있고 한국의 외국인, 국제결혼가정의 구성원들은 각종 차별로부터 안전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다.

오늘날의 인권의제를 퇴행 속에서가 아니라 인권향상을 위한 전진 속에서 마련하는 일, 연대와 보듬음을 통해 그 열쇠를 찾아내는 일이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인권 의제(국제 앰네스티 1998년 2월)

1997년 10월 AI 사무총장은 대선 후보자 모두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편지는 후보자들에게 당선된다면 인권 개혁 프로그램에 헌신할 것을 촉구했다.

AI가 이 서한을 발표한 후, 김대중은 전부는 아니지만 양심수 일부를 석방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는 인권개혁을 위한 다수의 제안들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안기부 개혁, 인권위원회 설립, 여성의 권리 보호를 위한 조치들, 한국의 법과 관행을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도록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AI는 이러한 김 대통령의 제안들을 환영했다.

AI는 1998년 2월 다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아래와 같이 인권개혁을 위한 제안들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양심수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라
AI는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최근 AI는 수백 명의 수인들을 위해 캠페인을 해왔고 이들의 사례는 국가보안법에 따른 인권침해의 유형을 논증하고 있다. AI는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비폭력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현재 구금돼있는 모든 양심수의 석방을 촉구한다.

(…)

안기부를 개혁하라
AI는 새 대통령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과거 이름)를 개혁하겠다고 제안한 것에 고무됐고 이러한 개혁이 정보기관이 기본권 권리를 침해하는 걸 방지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최근 몇 년 간 AI는 안기부가 자행한 고문과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고들을 받아왔다. AI는 1996년 12월 안기부의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보장하거나 막기 위한 추가조치 없이 안기부의 권력을 확대하는 법률이 통과된 것에 우려한다.

과거와 현재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라
AI는 과거와 현재 한국에서 보고된 모든 인권침해에 대한 전반적이고 공정하며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와 과거 정권 하에서 자행된 고문, 정치적 구속과 부당한 재판 사건이 포함된다. AI는 과거와 현재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자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고된 모든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는 인권침해에 대한 불처벌 종식을 추구하는 국제인권기준에 부합돼야 한다. 국제인권기준은 인권침해에 대한 모든 보고는 철저하게 공정하게 조사돼야 하며, 조사결과는 공표돼야 하며, 인권침해의 책임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 증진과 인권 교육을 향상시켜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에 AI는 새 대통령에게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시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의 중요성을 향상시킬 것을 촉구했다.
AI는 새 대통령에게 인권교육을 학교 수업에 통합하고 모든 정부공무원, 법집행 공무원, 군사요원 훈련프로그램에 인권교육의 포함을 보장하도록 촉구했다. 또한 여성과 취약집단에 대한 사회적 및 제도적 차별을 방지하도록 한국사회 도처에서 평등을 증진할 것을 촉구했다.

인권위원회를 설립하라
AI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겠다는 새 대통령의 제안에 고무됐고 국가위원회법이 인권위원회에 대한 국제기준에 부합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새로운 위원회의 임무에는 정보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포함하여 보고된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법률 개혁을 위한 제안, 인권교육활동의 주도가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효과적인 법률구조나 독립적인 사법부의 대체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인권위원회가 효과적이려면 독립적이고 공정해야 하며 한국의 인권옹호자와 대중의 신뢰와 존중을 받아야만 한다.

(…)

사형제를 폐지하라
1997년 12월 30일 23명이 처형된 후에 AI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의 임기 중에는 사형을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그 첫 단계로서 모든 사형 선고를 감형하고 더 이상의 처형 명령이 없도록 보장할 것을 새 대통령에게 촉구한다.

노동조합의 권리를 존중하라
AI는 새 대통령에게 노동 법률을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권리와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제 87호와 제 98호 조약을 비준함으로써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

외국인의 권리와 망명자의 권리를 보호하라
어떤 국적이건 한국에서 망명을 구하는 사람은 인권침해에 직면할 국가로 돌려보내져서는 안 되며, 망명을 구하는 모든 사람은 공정하고 만족스러운 난민 지위 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겐 국제 기준에 부합되도록 그들의 시민적 및 사회적 권리에 대한 합법적인 보호막이 제공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권을 증진하라
유엔의 능동적인 구성원으로서 한국은 국제적으로 인권상황의 향상을 위해 압력을 가할 책임이 있다. AI는 인권증진을 위한 유엔의 활동에 대한 지지를 표현할 것을 새 대통령에게 촉구하며 김대중 정부가 유엔 체제 안에서나 다른 정부와의 쌍무관계 속에서나 적극적인 인권외교에 헌신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선언을 지지하고 증진할 것을 요청한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67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25일 22:22:12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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