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누리 (2005년 8월) 요즘 세상은 참 이상하다. 규모가 크고 현대적인 가게에서는 손님들이 에누리를 잘 하지 않는다. 각종 할인 상품이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거기에서 할인이란 손님과 가게 주인 사이의 흥정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가게 쪽의 일방적인 판매전략이다. 반면 시장이나 길거리에 앉아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는 곧잘 값을 깎는다. 부유한 자들의 물건을 살 때는 값을 깎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물건을 살 때 값을 깎는 셈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中) 사람들은 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