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6.22 3인 축구의 딜레마(??) (2)
  2. 2008.01.30 자본주의'들'과 진보'들' - 적과 연대
딱딱한꿈2008. 6. 22. 21:04


최근에 『죄수의 딜레마』라는 책(사실 고등학교 때 누가 버린 걸 주워온...)을 읽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문득 떠오른 게 있어요.

남서울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게로게론과 국어문제를 풀면서,
한 초등학생인 듯한 세 분이 축구를 하는 걸 보고 생각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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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다) 3명이 축구를 한다고 해보자.


경기방식은 다음과 같다.


골대는 하나다.
(다)는 골키퍼다.
(가)와 (나)는 공격수, 또는 수비수다.
(가)와 (나) 둘은 서로 경쟁한다. (가)와 (나) 중에 더 많은 골을 넣은 사람이 승리하여 보상을 받는다.
단, 제한시간 안에 (가)와 (나)가 골을 넣은 것을 모두 합쳐서 그 점수가 x 이하이면 (다)만 승리하여 보상을 받는다.
그외의 핸들링이라거나 하는 패널티킥 같은 규칙 등은 모두 기존 축구와 같다. (단 경기장 사이즈 등은 조정될 수 있다.)


x를 예컨대 15라고 해보고, 제한 시간을 1시간이라고 해보자. 보상은 더운 여름에 맞춰서 아이스크림 *_*

(가)와 (나)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한다면,
(가)와 (나)는 서로가 골을 넣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1시간 안에 (가)와 (나)가 합쳐서 15골을 넣지 못하면 (다)만 승리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
(가)와 (나)는 열심히 뛰어다니고도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다 ㅡㅡ;


따라서 모두 합쳐서 15골 이상 넣어야 한다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는 (가)와 (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가)와 (나)가 협력하여 15골을 먼저 넣은 다음에 (가)와 (나)가 경쟁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골키퍼 한 명 농락하긴 의외로 쉽다. 그러나 한 사람이 수비수 한 명과 골키퍼 한 명을 뚫기는 쉽지 않다.)
(단 (가)와 (나)가 협력하는 경우 (다)가 게임 의욕을 잃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_-; 골키퍼 없이 ㄱㄱ?)


그러나 불행히도 15는 홀수다. 따라서 (가)와 (나)가 똑같은 점수를 나눠서 넣을 수 없다. 누군가는 1점 유리하게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가)와 (나)가 협상해서 16골을 서로 방해 없이 협력하여 넣자고 할 수도 있지만, '배신'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사실 15골이 홀수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11골이나 13골 정도만 넣은 후에도 '배신'은 일어날 수도 있다.
즉, 남은 시간이 15골을 초과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면, 1점 2점을 앞서서 경쟁을 시작하기 위한 배신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협력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간은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 예를 들어 15골을 넣기 위한 시간이 4시간이라고 해보자.
15골을 넣기에 너무나 충분한 이 시간은 (가)와 (나)가 굳이 협력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 (다)의 입장에서는 절망적인 게임일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너무 아슬아슬한 시간은 (가)와 (나) 중 어느 한 쪽이 마지막 순간에 배신했을 때, 그 1점이나 2점 차이를 더욱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다.
즉 짧은 시간도 마찬가지로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증가시킨다.




(가) (나) (다) 사이의 사전 조율이나 대화를 통한 협상이 불가능하고, 공을 쫓아 뛰어다니면서 아주 단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사전 조율이나 긴 대화를 통한 협상을 하는 것이 심판의 눈에 띄면 그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가)와 (나) 사이의 협력은 일어나기 어렵거나 장기적이기 어려울 것이다.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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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이런 식으로 설계해놓고 "인간은 역시 이기적이야."라고 하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거지요. -_-;

저는 인간이 연대할 수 있거나 연대할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지, 이런저런 소통불가할 제한을 걸어놓고 "역시 인간은 이기적이군 훗"하는 데는 별 관심 없는...;

차라리 이 게임보다는 죄수의 딜레마가 덜 작위적인데요; 이 게임은 너무 작위적인 티가 나요 -_-;




***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설계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는 데는 흥미가 있긴 한...(퍽!)

****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저 게임을 이해하셨다면,
(가)와 (나)가 위와 같은 조건
- 약간 아슬아슬한 시간, (다)가 이기게 하는 기준 골수는 홀수, 그리고 깊이있는 의사소통은 금지
에서

 협력을 할지 안 할지 덧글로 의견을 달아주세요 ㅎㅎ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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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도 더운데 뛰느니, 그냥 아이스크림 포기..;;

    2008.06.23 16: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혁수

    돈 빌려서 아이스크림 사주고 나도 먹겠다

    2008.06.25 00:3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1. 30. 13:25
  루소는 이러한 다두적인 하나를 구성하기 위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하고 그럴듯한 예에 의존했다. 루소는 두 가지 대립적 이익(세력)이 자신들을 동시에 반대하는 제3의 이익(세력)에 직면했을 때, 이들이 서로 결속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단서를 도출했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실존을 전제했고 국민 공동의 적(敵)이 지닌 통합력에 의존했다.
  ......
  그는 국내 정치에도 타당한 민족 자체 내의 통합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따라서 대외 문제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공동의 적을 어디서 발견하는가가 그의 문제였으며, 그러한 적이 시민들의 가슴 속에, 즉 그의 특수한 의지와 이익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해답이었다. 사람들이 가진 모든 특수의지와 이익들을 합치기만 한다면, 이 숨어 있는 특수한 적이 공동의 적 - 내부에서 민족을 통합하는 - 의 반열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민족 내부의 공동의 적은 모든 시민들의 특수의지의 총합인 것이다. 루소는 아르장송(Marquis d'Argenson)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두 가지 특수 이익의 일치'는 제3의 이익에 대한 반대를 통해 형성된다. (아르장송은) 모든 이익의 일치가 각자의 이익에 대한 반대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덧붙였을지도 모른다.  .....

(한나 아렌트. 홍원표 옮김. 『혁명론』. pp.157-158. 도서출판 한길사.)


  인용한 부분에 언급된 루소의 논의는 민족('Nation', '국민', '국가') 내부에서 어떻게 통합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흔히 고등학생들이 논술을 공부할 때 요약본(Summary)으로 접하게 되는 루소의 '사회계약'이 어떻고 '일반의지'가 어떻고 하는 두루뭉실하고 때로는 수사적인 이야기보다 더 핵심적인 논의, 루소의 일반의지론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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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사회 안에도 저 이야기는 적용된다. 요컨대 다른 종류의 사람들, 다른 종류의 단체들, 다른 종류의 운동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은 공동의 '적'이다. 때로 그것은 나치스(마틴 니묄러의 「그들이 온다」는 대표적인 관련 문헌이다.)나 이라크의 미국군대와 같은 매우 위협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때로 그것은 '미국자본'이거나 '초국적 자본'이거나 '보수주의' 같은 조금 더 포괄적인 것이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이름붙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이다.
  때로는, '적'이 있기에 통합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통합을 위해서 '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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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는 다의어다.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자본을 축적하고 시장의 교환가치가 인간을, 삶을 지배하는 체제. 마르크스의 『Das Kapital』이 상당히 정밀하게 규명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는 고전적인 반열에 있다.

  그러나 현재 운동사회에서 다양한 운동들 사이를 오가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대체 무엇인가? 수없이 많은 "자본주의""들"이 있다. 여성을 억압/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있고, 동성애를 억압하고 섹슈얼리티와 출산력을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있으며, 청소년을 억압/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있으며, 생태를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있고... (후략)
  경제적-물질적 욕망과 필요성을 통해서 착취와 억압, 사회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은 명쾌하고 매력적이며 많은 설명력을 갖고 있다. 그러한 설명 방식을 가진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다룬 모델을 차용하거나 거기에서 힌트를 얻음으로써, 다양한 사회운동 영역들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억압과 착취를 설명하고자 한 것은 타당하며, 역사적인 논거들도 제법 갖고 있다. 현대 사회가 어떻게 그런 구조를 만들게 되었는가, 또는 어떻게 그런 구조를 용인하고 계승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고고학 말이다. (그런 이론의 명쾌함에 매료되더라도 사회 구조의 복잡성은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하지만 다양한 문제들에 관련된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들은, 그 용례를 두고 따져보면 모두 미묘하게 그 기의와 뉘앙스 면에서 차이들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모두 "자본주의"라는 기표를 갖고 있으며 거기에서부터 여러 가지 혼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적'으로 둔 '좌파'나 '진보' 같은 묶음 개념을 만드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그 모든 자본주의'들'을 마르크스의 고전적 '자본주의'(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혼동은, 가끔씩 그 혼동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헷갈리게 만들며, 또 사람들이 모순되는 것 같은 발언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혼동이 모두 '실수'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러한 혼동을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거나 무의식적으로 용인함으로써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좀 더 예민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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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동시에 운동들의 통합이나 연대가, 내부의 특수 이익, 특수 의지들을 '적'으로 삼는 현상을 본다. 이건 중의적으로 풀어볼 수 있다.
  외부에 '적'을 둔 상태에서 통합을 위해 내부의 의지들을 억압하는 것.
  루소의 방식대로 '일반의지' 그 자체가 모든 각자의 특수 의지들을 '적'으로 삼는 것.
  이 둘은 개념적으로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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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의 '적'에 그 근본을 두지 않은 '연대'의 방식을 고민한다. 실제로 운동을 하고 저항을 실천해가는 입장에서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에 '연대'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연대'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런 '연대'가 사라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라져야 한다고 해도 여하간 지금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두 '연대'는, 비록 여기서는 같은 '연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더 대안적인, 더 근본적인 '연대'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그것은 결국 우리가 목표로 하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며, 운동사회 안에서 통용되는 행동 원리에 대한 고민이다. 운동은 저항인 동시에 대안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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