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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7. 26. 01:48

영두의 우연한 현실 - 10점
이현 지음/사계절출판사




1.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우연하지 않다



  이현 씨의 청소년 소설 단편집 『영두의 우연한 현실』. 아니 세상에, 현실이 우연하단다. 이렇게 칼 같고 서늘하고 단단한 현실이 ‘우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디 한 번 이 흥미로운 제목의 표제작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대한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소설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책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서 「어떤 실연」에 이어 두 번째로 실려 있다.

  (사실 다 읽고 나서 이 배치 순서에 좀 의구심이 들었다. 「어떤 실연」은 괜찮은 내용이긴 하지만 제일 앞에 실리기엔 ‘끌림’이 좀 부족한 것 같고,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실린 다른 이야기들의 분위기와도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혹시 소재가 비교적 무난하고 덜 부담스럽기 때문에 제일 앞에 넣은 건 아닐까?)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평행우주론이랄까 다중우주론이랄까, 그런 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평행우주론”, “다중우주론” 이런 말만 들으면 굉장히 자연과학적인 이야기일 것 같겠지만, 이 이야기는 지극히 사회적이다. 영두와 영두의 차이는, 영두 아버지의 손가락이 공장에서 프레스기를 돌리다가 손가락이 잘렸느냐 안 잘렸느냐, 하는 0.3cm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손가락이 잘린 세계에서 영두의 아버지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해고당하고 끝내 막노동 공사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영두의 집은 빈곤층이 되고, 영두는 ‘불량아’가 된다. “영두는 인생이, 한 마디로 ‘씨팔’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세계의 영두가 ‘좀 더 넉넉한 뒷바라지’를 받고 “기억력이 비상”해서 열심히 논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생이, 한 마디로 노란 풍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나는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세계의 영두가 반드시 행복하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손가락이 잘린 세계의 영두보다 여유 있고 나은 삶을 살지는 몰라도.)

  그러나 「영두의 우연한 현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현실이 사실은 그리 우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은 마치 두 영두의 차이가 0.3cm 차이, 그 ‘우연하게도’ 손가락이 잘렸냐 안 잘렸냐의 차이에서 온 것처럼 쓰고 있다. 그러나 0.3cm의 우연이 두 영두 사이를 이토록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은 결국 이 사회의 문제이고 일종의 필연이다. 산재보험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 고용보험이라거나 복지 정책은? 안전망이 지극히 취약한 이 사회는 그러한 작은 우연,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손가락이 잘리느냐 안 잘리느냐 했던 건 정말 0.3cm의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0.3cm의 우연을 이토록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만든 것은 결국 필연이 아닌가? 요컨대, 우연은 필연 위에서만 의미 있는 우연이 될 수 있다는 결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막바지에서 영두는 “난 우주라는 게, 엄청 대단한 건 줄만 알았어. 우리가 절대 어찌해 볼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철벽 같은 거 말이야. 그런데 이제 보니까 아니네. 우주라는 거, 매트릭스처럼 그냥 우리를 둘러싼 허상인 거야. 우리는 그 허상에 내몰려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 너와 나의 현실이라는 것도 그래. 우린 그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보려고, 혹은 거기서 벗어나 보려고 아득바득…… 웃기는 일이야.”라고 말한다. 그래, 우주-현실의 단단함을 의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새로운 상상력을 주니까. 주어진 조건 속에 갇혀서 생각하지 않고 조건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삶을 열어주니까. 하지만 우주-현실이 단단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중의 우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편의점 뒷문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우주-현실 속을 ‘아득바득’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은 필연 위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서 아쉬운 것은 그것뿐이다. 우주-현실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영두가, 다시 단단한 자신의 우주-현실의 안으로 자신을 던지는 과정까지는 미처 그리지 못한 것.




2. '오답 승리의 희망'은 진행형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오답 승리의 희망」은 사실 내가 이 책을 얻게 된 이유이자 읽게 된 이유이다. 실제의 오답 승리의 희망 편집진 중 한 명으로서, 오답 승리의 희망을 소재이자 제목으로 삼고 있는 소설을 어찌 안 읽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사계절 출판사에서 공짜로 주기까지 했는데… (사실 이름에 대해서 저작권료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긴 했지만 이현 씨가 1만원 후원을 해주시기도 했고 책도 2권 공짜로 얻었고 책 덕에 홍보도 많이 됐고 해서 그냥 서로 윈윈이다.)


  읽으면서 사실 좀 짠했다. 전단지 하나 돌리고 붙이는 게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해가며 혹시 지문이라도 채취할까봐 장갑까지 끼고서 몰래몰래 하는 일이어야 했던 그 고등학교 때. 그랬는데도 이미 찍혀있던 나는 학생부실로 불려가서 태연자약한 얼굴을 연기하며 누가 한 건지 모른다고, 우와 이런 것도 뿌렸군요, 하는 쇼를 해야 했지. 비록 나는 같이 못했지만, 2006년 3월, 오승희 창간호를 학교 안에 돌리던 나르샤-전북청인모 사람들의 심정도 「오답 승리의 희망」에 나오는 이오구나 곽정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아, 이오구는 좀 심하게 사차원 캐릭터라서 약간…) 물론 지금도 학교들의 상황이 그리 다른 건 아니다.

  「오답 승리의 희망」은, ‘청소년자유언론 오답 승리의 희망’이라는 소재에 2008년을 수놓았던 촛불집회(그리고, ‘촛불소녀’.)라는 배경을 덧붙이면서 새로운 결을 가지고 태어난 이야기다. 이현 씨는 “어느 보수적인(반인권적인) 고등학교 안에서 오답 승리의 희망이 배포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충실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좌절했던 ‘촛불소녀’ 곽정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간다. 그 과정에서 학교 안에서 언론·표현의 자유, 소지품 검사 문제, 강제야자, 입시경쟁, 체벌 등등 온갖 학생인권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스케치된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가벼운 위트로 끝맺는 그 여유와 솜씨에는, 정말 이현 씨도 숙련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답 승리의 희망」에는 다소 위험한 오류가 있다. 2008년의 촛불이 과연 ‘청소년인권’과 연결이 되었을까? “전에 다니던 학교는 소지품검사 거부운동도 하고, 두발자유화 서명운동도 하고 그랬어. 쉬는 시간이면 마우스를 복도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면, 알 만하지?”라는 이오구의 대사를 보면 청소년인권에 대한 의식과 2008년 촛불-반이명박의 의식이 연속선상에서 자연스레 배치되고 있다. 오답 승리의 희망과 촛불집회 참가를 자연스레 연결 짓는 것도 그렇다.

  그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분명히 2008년 촛불집회에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운동’을 시작하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참여의식을 가지게 된 청소년들(말하자면, ‘촛불소녀’든 ‘촛불청소년’이든) 중 대부분은 오히려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는 경우가 많다. “쉬는 시간이면 마우스를 복도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분위기와 “두발자유화 서명운동”을 하고 “소지품검사 거부운동”을 하는 분위기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고 연속선상에 있지 않았다. ‘민주주의’, ‘반MB’, ‘광우병소고기’, ‘국민주권’, ‘굴욕-졸속협상’을 외치던 목소리들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로도, 학교 현장에서의 투쟁으로도 잘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건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다. (나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역량과 조직이 매우 부족한 탓도 있지만, 거시적인 투쟁, 지사적인 투쟁이 가지는 한계, 그리고 2008년 촛불이 내재하고 있던 한계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현 씨가 이 둘을 너무 쉽게 연관지은 것은, 뭐 이현 씨 자신의 소망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촛불에 나온 청소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십대들-‘촛불세대’들을 포장하기 바빴던 어른들의 시선이 답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촛불의 경험으로 ‘깨어있는’ 청소년들은 한층 늘었고 이 청소년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할 거라는… 촛불집회에서 보인 청소년들의 모습은 사회에 적극적·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 “촛불소녀” “촛불세대” 등의 담론에서 과잉된 청소년에 대한 대책 없는 이미지가 좀 느껴졌다고 하면 나의 과민함인가?



  어찌 되었건 「오답 승리의 희망」에서 아직 오답은 승리하지 않았다. 앞으로 곽정과 이오구가 만들어갈 투쟁이 어떤 투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투쟁이 현재진행형임은 확실하다. 곽정이든 이오구든 오승희에 글 좀 투고해주거나 편집진으로 좀 참여해주면 좋겠다.




3.  그밖에, 자세히 다루지 못한 다른 4편에 대해

- 「빨간 신호등」은 청소년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내용 중 하나. 좀 강간-섹스 후에 곧장 제주도로 가서 며칠 간 못 만나고 돌아와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설정이 약간 작위적인 면이 있다. 남성 청소년의 시선에서 이 사건을 그린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치적인 의미랄까 계몽적인 의미랄까, 그런 면에서는 좋지만 이야기상으로는 그렇게 끌리지는 않는다.

- 「로스웰주의보」는 내 마음에 드는 단편이다. 이런 식의 서술 방식도 좋아하고, 이런 식의 상상력도 좋아한다. 식상한 맛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이런 식의 상상력-설정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게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매우 이상한 모습이라는 문제제기에는 좋지만 현실을 약간 은폐하거나 왜곡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이따위로 살아야 하는 건 사실 외계에서 날아온 ‘푸라푸라’ 때문은 아니다.

- 「어떤 실연」. 『우리들의 스캔들』 때도 느꼈지만 이현 씨는 여성 청소년들의 1인칭 시점에서 재미있는 문장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어떤 실연」도 좀 그렇다. 평범한 청소년들의 평범한 갈등과 평범한 사랑과 평범한 실연 이야기… 라고만 말할 순 없지만 뭐 대략 그렇다. 다른 이야기들과 비교하면 좀 밋밋한 맛이 없지 않아 있다.

- 「그가 남긴 것」은 장례식을 소재로 해서 그런가 이청준의 『축제』를 연상시키긴 했지만 맥락은 많이 다르다. 이현 씨 본인의 세대 때문인가, IMF 이후 가족의 모습과 관계라는 것이 이현 씨 소설에서 좀 빈번하게 나오는 모티브 같다. “다음에는 아빠하고 딸 말고 다른 사이로 태어나자, 응? 뭐든 좋으니까, 미워하지 않는, 그런 사이로 태어나자, 응? 친구라도 좋고 연인이라도 좋고……. 아니, 그래. 우리 남으로 태어나. 그냥 지하철에서 우연히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 그런 사이로 태어나. 그러면 나, 아빠 미워하지 않을 거 아니야, 그치?”하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는 따뜻한 공간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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