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2010. 9. 26. 03:08

비어 있는 책꽂이로부터 어떤 친구를 떠올리며


  지금도 내 책꽂이에는 넉넉잡아 50권은 되는 일본 라이트노벨들이 꽂혀 있지만,(현재 사는 서울 집과 대구 부모 집 포함해서...) 과거 내가 모은 라이트노벨은 거의 80-90권 정도에 이르렀었다. 내 라이트노벨 30-40권을 먹고 하늘나라로 튀어버린 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공백이다. 결국 지금 와서 어느 라이트노벨(예를 들면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이라거나...)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 때에도, 혹시 그 책이 그 녀석에게 준 그 30여권들 중에 있었다면, 나는 책장에서 가볍게 그 책을 뽑아 화장실에 가거나 잠이 안 오는 어느 명절 밤을 보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랑 같은 고등학교 만화동아리에 있던, 나보다 1학년 늦게 들어온 남자 녀석이었다. 그 인간은 전교에서 가장 독특한 인간들을 모아놓은 집단 중 하나였던 만화동아리에서도 단연 그 독특함이 수위를 달렸었다. 일단, 오타쿠에 기독교도였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보통 기독교도가 아니라 매-우 독실하고 "내 삶은 하나님에게 바쳤어."라는 닭살돋는달까 엄숙하달까, 그런 말을 진지한 얼굴로 진심을 담아 수차례 말할 수 있는 그런 기독교도였다. 그 녀석은 곧잘, 자기 주체성이나 자유는 없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만 있다고도 말했다. 학교에서 특별 과제 같은 걸로 내준 자유주제 논문을, 로리콤(로리타 컴플렉스) 문화에 대한 연구를 가지고 써내는 독실한 기독교도 오타쿠라니. 이건 뭔가 존재만으로도 세상에 금이 가는 느낌이랄까.

  대체로 독실한 기독교도들과는 상성이 잘 안 맞을 때가 많은 나이건만,(아, 빨갱이-좌파-인권운동가 기독교인들은 예외다.) 그 녀석이랑은 은근히 잘 어울려 다녔던 것 같다. 대화도 많이 했고, 서로 책도 많이 빌려줬고. 같이 다니기도 좀 다녔고. 그렇다고 내가 걔를 좋아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격적으로나 취향적으로나 안 맞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럭저럭 같이 있으면서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까진 아니어도 이런저런 주제로 토론을 한다거나 시간을 때울 정도의 친분은 있었다. 사실 나는 '신앙'에 대한 토론까진 아니어도 신학/철학적 주제에 대한 토론 같은 것을 열어놓고 할 수 있고 나에게 전도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기독교인이라면 그리 싫어하진 않는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 녀석 쪽에서 나를 약-간 좋아하지 않았나 싶긴 하다. 항상 나를 "윤종 군"이라고 부르면서 조금 신기해하는 것 같은 눈초리로 관심을 보내왔고 때로는 좀 따라다니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일단 그 녀석도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 인간이라서 주위에 그 녀석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만화동아리 사람들, 그리고 만화동아리 사람들 중에서도 별로 자기를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는 나랑 어울려 다닌 것 아니었을까.

  그 녀석은 음,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나한테 라이트노벨 몇 종류를 지정해주면서 미국에 가면 이메일로 주소와 보내는 법을 알려줄 테니 보내달라고 했다. 빌렸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돌려주겠다면서. 그렇게 2번인가 3번인가를 국제 소포로 대략 10권, 15권 정도씩을 라이트노벨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물론 착불로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순 없고 또 국제 소포도 낯설어서, 그냥 인심 쓰는 셈 치고 내가 내 돈 내고 보내줬고, 그때마다 그 녀석은 이메일로 고맙다는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나도 그 녀석도 붙임성이 그리 좋진 않고 좀 '차가운' 인간들이었기에 주고받은 연락은 그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최소한의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 메시지로 만화동아리의 다른 사람에게서 그 녀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서 사고로 물에 빠져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그다지 슬퍼하지는 않았고, 또 애도나 추모의 뜻을 표하지도 않았다. 이미 자기 삶은 하나님에게 바쳐져 있으며 하나님에게 속해있다고 하던 녀석이라면, 그렇게 죽었다고 해도 별로 스스로의 죽음을 슬퍼할 것 같진 않아서였다. 물론, 나는 몹쓸 유물론자라서 사후세계나 하나님 같은 건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녀석이 그런 걸 진심으로 믿었고 또 내가 그 녀석의 믿음, 신념, 사상, 이런 것들을 존중한다면 굳이 그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해줄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일부러 죽거나 삶을 포기할 녀석도 아니었지만, 죽어버린 마당에 거기에 미련을 가질 녀석도 아니었다. 나 또한 그 녀석을 다시 못 만나게 된 것이나 그 녀석에게 빌려준 30여권의 라이트노벨들을 돌려받을 길이 묘연해진 것은 매우 아쉬웠지만 말이다.

  나에게 그 녀석이 죽은 소식을 알려준 사람에게서 내가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않았다는 걸 전해 들은 다른 사람(역시 같은 만화 동아리의, 나보다 입학은 늦은 사람이다.)이 나를 비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었다. 내가 비인간적이고 차갑다는 게 대략 그 요지였지만- 글쎄 오히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 건 내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인간이 다른 사람의 죽음에 슬픔이나 괴로움을 느끼는 건, 그 사람을 다신 못 만나고 다신 관계맺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별, 그 사람이 죽고 싶지 않아 했을 텐데 죽었다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에서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 뭐 이런 것들 때문 아닐까. 나는 그 녀석의 죽음 앞에서, 이 중에 이별에서 비롯된 감정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그 녀석을 알던 한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다.


  어쨌건 내 라이트노벨 컬렉션(이라기에도 좀 민망한 수준이지만)에서 비어 있는 30여권은, 본의 아니게 그 녀석을 위해 바쳐진 30여권이다. 분명히 내가 사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다시 읽어보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라이트노벨은 아아 그 녀석에게 보냈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책꽂이의 공백이 그 녀석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 녀석이 죽은 후에 그 가족들이 그 라이트노벨들을 어떤 식으로 처분했을지는 모르겠다. 가족 중에 오타쿠가 없다면 버려지거나 소각되거나 헌책방 같은 곳에 팔렸겠지. 만약에 사후세계라는 게 있다면, 내가 죽고 나면 대출해간 30여권에 대한 연체료는 확실히 물라구. 하림 시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몇 년 전에 부모를 매장하지 않고 시신을 그냥 집에 계속 둔 자식이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유죄판결을 받은 판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이런 문제에 있어 법률수준에서도 무언가 종교적인 걸 (유교)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2010.11.04 13: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인간의 죽은 시체를 취급하는 것이 심리적 문화적으로 인간에 대한 대우와 연결될 수 있으니 시체를 대하는 데 기준을 정하는 것 자체는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적 기준 외에는,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사상이나 태도는 모두 다를 수 있는 건데 말이죠.

      2010.11.06 19:29 신고 [ ADDR : EDIT/ DEL ]
    • 아, 미처 충분히 정보를 적지 않았군요.
      그 자식이 부모를 매장하지 않은 게 부모의 시신과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렇게 증언이 되었던 걸로 압니다. 법정에서요.
      그렇지만 유죄판결이 나왔지요.

      2010.11.06 21:27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 7. 7. 20:14

[페미니즘 인(in) 걸?] 잔혹한 소년만화의 테제

‘소녀’ ‘정규직’ 오타쿠가 본 소년만화 씹어주기

둠코



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들을 보면 거의 사족을 못 쓴다. 흔히들 말하는 ‘오타쿠’ 이다. 어떤 한 분야에 꽤나 심하게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음악 오타쿠, 와인 오타쿠, 이런 식으로도 쓰이지만 그냥 ‘오타쿠’라고 하면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일정 장르의 게임(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던가, 애니,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 같은 것들)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어쨌든 애니메이션에 엄청 빠져서, 하루에 거의 여덟 시간씩 착실히(?) 보는 ‘정규직 오타쿠’ 였다. 지금도 하루에 8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틈만 나면 애니메이션을 본다.

그런데 청소년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러다가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마냥 재미있던 애니메이션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내가 접하는 많은 만화에서, 혹은 주류라 불리는 많은 만화들에서 여성의 캐릭터는 언제나 비중이 적거나 존재감이 옅다. 정확히 말하면 남성들에게 가려져 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기도 했지만 결국 오타쿠짓은 습관이어서 그런지 금단 증상에 져 버리고 말았다.

보통 만화는 크게 소년만화와 소녀만화로 나뉜다. 소년만화는 초, 중, 고등학생 남성층을 주로 겨냥해 만든 것으로 스포츠만화나 전투만화가 주를 이룬다. 슬램덩크, 테니스의 왕자, 우에키의 법칙, 나루토, 원피스, 블리치, 은혼 등이 있다. 반면 소녀만화는 한국에서는 흔히 순정만화라고 불리고 있는데, 초, 중, 고등학생 여성층을 대상으로 애틋한 로맨스를 통해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떠올리면 된다. 대표작으로 캔디 캔디, 나나, 토라도라 등이 있다. 이렇듯 독자층을 구분한 이 단어들도 여성과 남성의 고정화된 성 역할에 따라 나눠 놓은 것이다.


모에(*)!! 만화 속의 여성 찾기

소년만화에서는 크게 두 가지 캐릭터로 여성이 나온다. 첫 번째는 ‘서비스 캐릭터’이다. 이 때 서비스란 여성캐릭터를 이용한 성적 흥분을 남성에게 서비스 한다는 노골적 의미이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만화계에서 서비스 캐릭터라는 말이 쓰인다. 이건 거의 모든 주류 소년만화에 빠지지 않는 요소로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기분 나쁜 캐릭터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부각시키고 많은 경우에 그런 여성 캐릭터가 적게는 두세 명에서 많게는 열 명 가까이 나와서 주 독자층인 남성들의 취향에 따라 ‘고를’수 있게 했다. 독자가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만화에 나오는 여성들이 자신을 따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런 만화로는 『에반게리온』, 『왕도둑 징』(이건 매 화마다 주인공에게 반하는 서로 다른 여자들이 한 번씩 등장하는, 뭔가 본드걸 같은 느낌이긴 한데) 같은 만화들, 많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서비스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있고(이 미.연.시** 같은 경우는 그냥 그 서비스 캐릭터를 즐기는 것 자체가 목표다.) 전투만화 같은 경우에도 여성들이 노출이 많은 복장을 하고 나오게 하거나 가슴, 엉덩이 등을 강조한다. 『절망선생』이라는 만화에는 매번 어떤 일이든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절망하는 선생이 나오는데 그 선생을 좋아하는 열댓 명의 여학생들이 등장한다. 그 여학생들은 제각기 두드러지게 다른 성격을 가지는데 스토커, 귀국자녀, 은둔형 외톨이, 동인녀(***), 초 포지티브 소녀(****), 뭐든 계획적으로 딱 부러지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여자애 등이 나온다. 정작 선생은 그 중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피해 다닌다는 느낌이다. 결국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무도 ‘선택’ 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맘에 드는 여성캐릭터를 고르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노림수가 있다.



두 번째는 ‘서포터 캐릭터’이다. 서포터 캐릭터는 스포츠 만화라던가, 전투만화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여성이 주로 남성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스토리가 진행 될수록 주인공과 여성 캐릭터 사이에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전투만화에서는 여성이 적에게 납치되어 남성인 주인공이 여성을 지켜주는 구도이다. 여성들도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남성인 주인공보다 강하지 않다. 여성이 열심히 싸우기는 하지만 최종 승리는 언제나 남성 주연 캐릭터가 독식한다.

이런 구도에서는 ‘남자다움’ 혹은 ‘사나이들의 세계’ 같은 것이 굉장히 부각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나이들의 세계를 좋아한다. 일본의 유명한 만화 잡지 ‘점프’의 3요소는 승리, 우정 사랑으로 모두 ‘남자의’ 승리, 우정, 사랑이다.



『블리치』, 『나루토』, 『원피스』 같은 전투만화와 『테니스의 왕자』, 『슬램덩크』같은 스포츠만화에서 여성들이 주로 서포터로 나온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애처로운, 보고 있으면 화가 치미는 서포터로 등장하는 만화는 『데스노트』라고 생각한다. 『데스노트』에 나오는 아마네 미사는 데스노트를 손에 넣어 사람을 죽이는 라이토가 세계적 탐정인 ‘L’에게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 ‘L’에게 구속되어서도 입을 열지 않고, 자신에게 두 번째 데스노트를 준 사신(*****)과 거래를 해서 수명을 두 번이나 깎아먹는다. 기본적으로 자신은 바보이니 라이토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고 공언할 정도로 의존적인 캐릭터이다.


『미래일기』 분홍머리 여자애 가사이 유노

서비스나 서포터 등 여성을 부차적인 존재로 다루는 캐릭터 외에 예외적인 경우들도 많이 있다. 세 번째는 전투미소녀 캐릭터이다. 이 경우 남성 주인공보다 여성이 강하다. 남성은 주로 여성에게 보호받는다. 하지만 만화의 골자가 전투라고 해도 전투 능력이 높은 여성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전투는 주로 남자 주인공을 지키기 위한 것이거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남성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는 패턴이다. 결국 정신적으로 남성에게 기대고 있다는 식의 전개로 이어진다. ‘예쁜데다 강하기까지하다’ 는 식의 외모지상주의는 기본으로 깔려있다.

『웨딩피치』, 『세일러 문』, 『카드캡터 체리』, 『울트라매니악』, 『신풍괴도 쟌느』 같은 변신물은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적들과 싸우지만 위기일 때 달려오는 건 남성들이다. 『미래일기』 같은 경우 각자 고유의 능력을 지닌 일기의 소유자들이 서로를 죽여서 승자를 가리는 게임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일기를 이용한 일종의 능력자 배틀물의 형식이다. 남자 주인공은 소심하고 매사에 주눅 들어 있다. 가사이 유노라는 우등생에 역시나 일기의 소유자인 여성이 주인공을 열렬히 좋아해서 위기에 처한 남자주인공을 위해 싸운다. 일기를 파괴해서 상대방을 처치하는 마지막은 남자주인공이 하는 걸 봐서 가사이 유노가 서포터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주인공이 너무나 하는 게 없다. 이 마지막 경우가 가장 질이 나쁘다. 여성이 고정된 역할에서 해방되는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다가 결국은 ‘그래봤자 여자’ 라는 메시지가 읽히니까.




언니들이 필요하다

남성 중심의 애니메이션에서 부차적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여성캐릭터가 있는데, 이른바 ‘언니 캐릭터’ 이다. 『원피스』(물론 원피스 자체는 굉장히 뜨악할 정도로 마초스럽다.)라는 만화에는 언니 캐릭터가 증장한다. 『원피스』 주연급 캐릭터는 9명인데(지금까지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457화 기준으로) 모두 ‘밀집모자 해적단’의 일원이다. 그 중에 여자 캐릭터는 딱 두 명이다. 참 난감한 성비이다. 한 명이 니코 로빈이고, 또 한 명이 나미이다.

위 사진:『원피스』 그림 순서대로 로빈, Dr.리누, 벨메일


니코 로빈, 벨메일, Dr. 리누. 내가 좋아하는 세 언니의 이름이다. 니코 로빈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고고학 연구가 진행되었던 ‘오하라’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로빈은 어린 나이에 고고학 자격을 취득했지만 ‘오하라’의 연구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역사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세계정부’가 섬을 통째로 공격해서 멸망시킨다. 유일한 생존자인 그녀는 여러 암흑의 조직에 몸담고 사는데 그 모든 조직들이 그녀 하나를 생존자로 남기고 괴멸한다. 그녀의 특기는 배신, 거짓말, 암살. 그녀는 모든 것을 내다보고, 꿰뚫고 있다. 조직이나 권력을 이용하고 배신할 줄 아는 ‘악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주인공들 ‘밀짚모자 해적단’을 뒤에서 받치고 있다. 벨 메일은 주인공중 하나인 여자애 나미의 의붓 엄마이다. 그녀는 어릴 적에 해병이 되겠다고 마을을 뛰쳐나가 입대하는데,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나미와 누군지도 모를 나미를 어르고 있던 노지코를 발견한다. 두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에 죽을 각오로 고향에 돌아와서 친딸도 아닌 두 여자애를 강하게 길러낸다. 해적인 아론이 마을에 쳐들어왔을 때도 당당히 맞서 싸우다가 “태어난 시대를 원망해서는 안 돼. 살아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그녀의 자식을 위한 희생은 전통적 ‘모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딸들에게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Dr. 리누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선의인 쵸파의 스승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데리고 있던 인간사슴 쵸파를 맡아서, 자신의 의술을 모두 전수한다. 섬 가장 높은 산의 성에 살며 가끔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러 ‘쳐들어와서는’ 치료를 해 준 후 그 집 재산의 절반을 뜯어간다. “Happy 하냐? 나는 아직도 팔팔한 130대라구!”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아름다움의 비결이 알고 싶나?” 라고 당당히 외치는 여자. 성격이 괄괄하고 똑부러지지만 쵸파가 정든 고향을 망설이지 않고 떠나게 해 주는 사려 깊음도 있다. 자신의 나이나 외모에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다리가 아픈 아이의 팔을 꾹 눌러서 “봐라, 다리 아픈 거 다 잊었지.”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의 넉살과 “내 환자가 침대에서 나갈 때는, 완치 되거나, 죽거나. 두 경우다. 낫지도 않았는데 맘대로 돌아다니면 죽여 버리겠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괴상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다. 다들 어느 정도 롤모델로 삼고 싶은 언니들이다.

위 사진:『은혼』 『가구라』


그것 말고도 『은혼』이라는, 일본의 개화기를 판타지로 바꿔서 그린 만화에도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일본이 서양의 국가가 아닌 우주인들에게 개항했다는 설정. 그래서 우주인들이 (만화 안에서 천인天人이라고 부른다.)사회의 지배층이 된 세계를 그린다. 주인공인 긴토키는 은발의 사무라이이다. 사무라이는 폼도 뭣도 없는, 집세가 5달 정도 밀려있고 당뇨병 위험에 시달리는 뭐든지 해 주는 해결사(결국 돈은 못 버는)이다. 해결사 사무실에 얹혀사는 가구라라는 여자는 우주에서 유명한 전투민족인 야토족 소녀인데 스쿠터 정도는 한 손으로 세울 수 있고 총 맞은 구멍은 좀 있으면 막히는, 엄청난 신체 능력을 지닌 여자애이다. 무기로 총알이 나가는 우산;;을 쓴다. 전기밥솥 째로 밥을 마실 정도로 먹성이 좋고, 엉뚱한 성격이다. 사다하루라는 커다랗고 사람 머리를 덥석 물어버리는 견신犬神을 키운다. 해결사 일행이 범죄사건에 휘말려 경찰에게 심문을 받았는데 조사를 끝내고 풀려나오면서 ‘경찰이 엄청 열 받으니 경찰서 문간에 토해주겠다.’ 는, 만화의 여주인공 이미지가 절대로 아닌 여자애이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조직에 들어가면 짱을 먹자는 게 좌우명이라나. 만화에 나오는 여성 주연급캐릭터는 어느 정도 예쁘고, 도를 넘는 더러운 짓이나 막 되먹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틀을 확 깨버리는 통쾌함이 있다.


우리는 애니메이션 속에 살고 있다

멋진 언니들이 많지만 애니메이션 전체에서 여성의 위치는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소년만화들은 남성들‘만을’ 독자로 지정하고 있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여성 팬 층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게 되어도 마초 세계관을 수긍하고 내면화하기 전에는 편하게 즐길 수가 없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구도가 남성이다 보니 아무리 멋진 여성 캐릭터가 나와 봤자 ‘멋진 조연’일 뿐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멋진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것으로 만화 안의 성 역할 구분 짓기가 해결될 수 없다. 특정 캐릭터 하나가 남녀의 성역할의 구도를 깼다고 한들, 팔아먹기 위해 만들어 낸 수많은 여성캐릭터들에 대한 면죄부 혹은 변명정도 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좋은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애니메이션, 만화가 여성의 인기를 위한 수단 혹은 보조물로 대하지 않는 시각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여성이 ‘남성들의 뒤에서 받쳐주는, 남성들이 보기에 좋은’ 캐릭터로 나오는 걸 좋아하는 독자들이 없어져야 하고, 현실에서 성별에 따른 위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니 참 어려운 일이로세..;ㅅ;

주류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많이 읽히고 팔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가장 전형적인 모습들, 혹은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 중에 가장 부각되는 것이 성역할의 구분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과장되게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이 현실의 복사판이라는 걸 알면 ‘이건 애니메이션이고, 현실이 아니니까 괜찮아’ 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질 것이다. 불편해진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면 언젠가 불편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모에: 패티쉬와 비슷한 개념으로 어떤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 어떤 캐릭터의 특징에 팬덤을 가지는 것. 대개는 아이템이나 성격, 그 사람의 신분, 직업 등이다. 안경모에, 소꿉친구모에와 같이 쓰인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남성 주인공이 등장, 그것이 플레이어가 된다. 주변에 ‘선택’ 할 수 있는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특정 캐릭터와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지를 골라 행동하면서 마지막에는 원하는 여성 캐릭터와 맺어지게 되는 것이 목적이다.

*** 동인녀: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2차 제작물인 동인지를 만들어 내거나 읽는 여성을 지칭. 만화의 주인공들을 엮어서 BL(남성간의 사랑을 그림)로 만드는 종류의 2차 제작이 주를 이룬다. 다른 말로 야오녀 라고도 한다.

**** 초 포지티브 소녀: 절망선생이 모든 것을 부정적을 생각하는 반면, 이 소녀는 도저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것 조차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 사신과의 거래: 데스노트에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죽일 수 있다. 단 본인의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하고 본명을 풀네임으로 적어야 한다. 사신과 거래를 하게 되면 사신의 눈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이 능력이 있으면 사람 얼굴 위에 그 사람의 본명이 보이게 된다. 댓가는 남은 수명의 절반.


덧붙이는 글
둠코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10 호 [기사입력] 2010년 07월 07일 17:13:16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창 유희왕 TCG 할때 대회장이나 미카엘에서 남자들만 득실 거린 것도 관련있을려나..
    생각해보니 카드 일러스트도 거기에 해당될지도

    2010.07.08 00:30 [ ADDR : EDIT/ DEL : REPLY ]
  2. 뭐죠 이 향기는

    2010.07.08 02:13 [ ADDR : EDIT/ DEL : REPLY ]
    • 생각하시는 그 향기인 듯 하군요. ㅎ

      어쨌든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2010.07.08 11:15 [ ADDR : EDIT/ DEL ]
  3. 대단한 글이군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을 여기서 보고 갑니다.
    저도 남자이지만, 우연히 안티페미니즘 주제로 어느 분의 논문을 읽고 기존에 제가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틀이 약간 변형되었습니다. 그런다고 전 그렇게 많이 아는 것도 아니오. 페미니스트도 아닙니다.
    단지 애니메이션오타쿠문화가 남성으로부터 시작되어 거기에 담겨진 캔디이데올로기, 신데렐라컴플렉스, 할렘구조 등에서
    이것은 왠지 아니다라는 기분이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 케이온에서 저는 이 작품이 기존 틀을 깬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수동적이 아닌 능동, 남성들의 머리속에 나오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만든 여성이라(허벅지와 다리. 달릴때 팔이 앞뒤가 아닌 좌우, 신체사이즈 등)
    물론 순정만화로 시작한 세일러문처럼 강력한 여전사라도 남자가 없으면 결국 안되는 인식이
    박힌 어느과학의 초전자포같은 작품이 나온듯이 제법 공감이 큰 글이네요

    2010.07.09 11:59 [ ADDR : EDIT/ DEL : REPLY ]
    • 문화 컨텐츠가 기존 사회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속에서도 어떻게 대안적인 모델을 만들거냐 또는 어떻게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창작할 거냐- 이런 걸 생각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가진 글이라고 생각해요

      2010.08.30 04:31 신고 [ ADDR : EDIT/ DEL ]
    • 이 별거 없는 글에 공현만큼 그럴듯한 해석을 달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라는;;; 저는 단지 제 오타쿠 혼과 운동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감동에 허우적 거리며 썼을 뿐이라는;;;

      2010.09.02 05:56 [ ADDR : EDIT/ DEL ]
  4. 비밀댓글입니다

    2010.08.24 19:29 [ ADDR : EDIT/ DEL : REPLY ]
  5. 테오

    하지만 만화나 라이트노벨에서의 왜곡된 여성상에 대해 논했다간 바로 팬에게 융단폭격맞기가 일쑤죠 ㄱ-
    국내 라이트노벨 중 [미얄의 추천]을 읽다, 남성판타지가 지나치게 담긴 여성상 밖에 안나오고 그나마 주체성있어보이는 여자는 무조건 악역으로 등장한다, 라는 내용으로 비평문을 작성해 블로그에 게제했는데...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무슨 개소리냐, 라노벨의 스토리 진행을 위해 그런 캐릭터가 나온거지 비하하는 시선 때문에 일부러 만든게 아니다! 라고 외치며 맹비난 받았어요. ;ㅁ;
    뭐... 그렇지, 일부러 만든건 아니었겠지, '일부러'는 아니었겠지, 일부러 만들었으면 정말 손도 쓸 수 없을 정도일테니.

    ...좀 현실적인 여성상, 남성상이 나오는 라노벨이 늘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이 글 보고 왠지 공감되서 덧글 달았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ㅎㅁ

    2010.09.15 10:15 [ ADDR : EDIT/ DEL : REPLY ]
  6. 지나가던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소년만화을 이런 눈으로도 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는 글이였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ㅎ

    2011.08.16 21:59 [ ADDR : EDIT/ DEL : REPLY ]
  7. 지나가던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소년만화을 이런 눈으로도 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는 글이였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ㅎ

    2011.08.16 21:59 [ ADDR : EDIT/ DEL : REPLY ]
  8. 여니

    여자로서 만화책좋아하는데...공감많이 되네요
    특히 소년만화에는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진여자가 많이 나오는데
    남자들의로망인가봐요 ㅋ ㅌ늑히 멋진조연으로밖에 있을수없다..그점도.
    하지만 레이브에서는 여주인공 엘리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더라구요..그래서 잘봤어요 ㅋㅋ
    여자들도 원나블같은 소년만화를 정말 즐길수있는데 여자를 위한 디테일이 좀빠져서 슬프네요 ㅎㅎ

    2011.12.09 10:24 [ ADDR : EDIT/ DEL : REPLY ]

딱딱한꿈2009. 5. 18. 14:37




- 글을 쓰는 위치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문제에 관해서 내가 이 글을 쓰는 위치를 밝히자. 별 관심 없는 분은 읽지 않아도 된다.

나는 초등학교 때는 통상의 또래들이 즐기는 매니악하지 않은 만화와 공중파 애니메이션을 즐기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포켓몬스터 팬클럽의 길로 접어들면서 오타쿠에 들어서는 길로 접어들었고,
중학교 때는 투니버스에서 해주는 만화들을 봤고, 어느 여름방학 때 카논, 에어 등 비쥬얼노벨(스토리가 좋았다, 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남성향 게임*임을 부정할 순 없다.)을 접하였고
고등학교 때는 만화동아리에서 그림을 가장 못 그린다는 이유로(-_-) 기장을 맡아서 이런저런 잡무를 처리했고,
마침 발간을 시작한 'NT novel' 덕분에 라노베(라이트노벨)에 빠져들어 부기팝 시리즈와 키노의여행을 특히 사랑했던...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이영도의 소설이라면 가능한 한 다 섭렵했고, 특히 눈마새는 10번이 넘게 완독한-
명실상부히 오타쿠였다. -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할 생각도 없다.

지금 오타쿠가 아니란 건 아니다. -_-
지금도 나는 피로가 쌓이고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을 땐 만화방에 틀어박혀서,
(비록 최신 조류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 써전아이드(3X3Eyes)나 아다치미츠루나, 삘릴리불어봐재규어, 충사나 뭐 그런 걸 탐독한다. 집에 모셔놓은 총몽 9권과 눈마새와 라노베들은 삶의 활력소이고, 최근엔 대항해시대2를 비롯하여 고전게임으로 눈을 돌려보고 있다.
지금도 돈에 여유가 생길 때는 카도노 코우헤이(부기팝 작가)의 소설을 지른다. (이영도 소설도 지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좀 비싸서 눈마새와 폴랩만 좀 끼작거린...)
그러나 내가 고2-고3 즈음에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의식적으로 '정치'를 시작하면서 나의 오덕질은 매우 그 범위를 한정시켜야 했다.
옛날처럼 거기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없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돈 생기면 영세한 청소년인권단체들에 갖다 바쳐야 한다. 특히 내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관리해야 할 재정은 세 개나 된다.-_-) 정치적 올바름과 불편함의 문제도 있다.

사상적 위치를 이야기하면 나는 '청소년인권주의자'(?)이고, 인본주의자이며, 여성주의자이고 싶고, 사회주의/아나키즘을 지지하는 편이다.

정당운동으로 이야기하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차원에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당적이 없고,
투표 때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사회당(셋 중에 그때그때 후보-정책이 맘에 들거나, 다 비슷비슷하다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을 찍을 용의가 있고,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의 교육-청소년 영역과 언제든 필요하다면 협력할 의사가 있으며, 교육-청소년 영역이 아니더라도 차별금지법 사안 등에서는 같이 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뭐, 사회당 덕후위원회(그리고 진보신당 오덕위원회) 자체에 대해 말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활동을 하면서 계속 부딪쳐 왔던 활동가-정치가로서의 공현과 오타쿠로서의 윤종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뭐 "오타쿠의 성지"라고 하는 관악구 주민으로서도


본문은 짧게 쓸 생각이라서, 왠지 이 서론이 더 길 것 같다 -_-




- 오타쿠의 정치는 가능한가?

이른바 '진보정당'에서의 부문위원회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내 기준임.)

1. 여성위원회, 장애위원회처럼 특정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그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그런 활동과 당 전체의 활동을 결합시켜나가는 위원회.
2. 평화통일위원회처럼 특정 정책-이슈 분야에 대해 활동을 하는 위원회.
3. 학생위원회처럼 특정한 사람들을 조직화해서 당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한 위원회.

(3번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학생위원회는 그냥 여성위원회, 장애위원회랑 같은 분류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에서 '진보정당'들의 (대)학생위원회는 학생들의 정치, 학생들에 의한 정치는 하더라도 학생들을 위한 정치의 기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야 '88만원세대'를 비롯하여 20대와 대학생들의 이해관계와 상황에 대한 담론들이 발달하면서 이런 기능들이 강해지고 있다. 3번과 1번의 차이는 '~를 위한' 정치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럼 오덕위원회는 저 세 개 중 뭘까?
1번이면 좋겠지만, 3번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사회당 덕후위원회 건설과정(1)
사회당 덕후위원회 건설과정(2)
(슷캇님의 관련글)

슷캇님은 이에 대해 "오타쿠에 의한 정치"를 통해서 오타쿠에 대한 배제를 극복한다고 말하면서,
"오타쿠에 의한 정치"가 곧 "오타쿠를 위한 정치"의 수단 or 전제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정한 사람들의 정치 주체화는 물론 그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킨다.
그러나 그런 정치 주체화는, 그 사람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만으로 성공하긴 어렵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오타쿠의 정치 주체화'는 '오타쿠인 시민/인민/당원의 정치 활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타쿠'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 세력화가 될 때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회당 덕후위원회 또한 이런 인식 속에서 오타쿠 계층(뭐 집단이라 해도 되고)으로서의 정치 주체화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그 오타쿠 계층으로서의 정치 주체화는 결국 '오타쿠를 위한 정치'가 결합되어야만 가능하다.
즉, '오타쿠의 정치'는 '오타쿠를 위한 정치'와 '오타쿠에 의한 정치'가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그럼, 과연 "오타쿠를 위한 정치"는 대체 무엇인가?  어떤 내용을 가질 수 있는가?
  ---> 이게 내 고민거리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내 생활 중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요소인 '오타쿠로서의 나'(즉 매니악한 문화 소비-향유자로서의 나)는 어떤 정치를 할 수 있는가?

오타쿠는 과연 문화적 소수자인가? 또는 비주류인가?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과연 얼마나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나? "오타쿠"와 "매니아"의 경계선은?

물론, 인디음악/영화 오타쿠라거나, 마이너한 오타쿠라면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스즈미야 하루히 오타쿠는 문화적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가?
세일러문 오타쿠는 문화적 소수자인가? 건담 오타쿠는?
토라도라 오타쿠와 키노의 여행 오타쿠는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가?

사회당 당게를 살펴보면, 슷캇님은 "유인촌 퇴진하라"를 몇번 예시로 사용하고 있는데, 오타쿠들이 왜 유인촌을 퇴진시키라고 주장하는가? 그건 사실 오타쿠로서가 아니라 단지 '문화예술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문화적 다양성을 근거로 오타쿠 정치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는 걸까?(즉, 문화적 다양성은 오타쿠 중에서도 극히 일부 오타쿠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까. 그리고 소비자인 오타쿠보다는 생산-유통 구조 부분에 더 초점이 맞추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임금노동하지 않고 생산에 기여하지 않으며 소비만 하는 인간들을 '무능'하고 '찌질'하고 '음침'하며 어딘가 '비정상'이며 '병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사회 구조에 기인하는 측면이 큰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이는 '건강하지 못한 오타쿠', 즉 히키코모리적인 인상과 결부된 오타쿠의 인상에 가깝다.
오히려 현실에서 오타쿠로 불리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적다.
그럼 이건 '히키코모리'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거나 '니트족'에 대한 낙인으로 생각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고민고민.




나는 덕후위원회나 오덕위원회 등의 '오타쿠위원회'가 단지 정당 활동에 오타쿠들을 조직화해내고 참여시키는 3번 유형의 위원회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오타쿠적 소양을 가진 당원들이 정당 활동에 자신의 소양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기구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근데 그럼 어떻게 갈 수 있을까?



- 오타쿠 문화의 정치적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실 그리 길진 않았지만) 꽤 긴 번민의 밤을 보내고 난 후에야 나는 카깃코/츠킷코** 의 길을 버리고 라노베 지름신을 끊을 수 있었다.(그전까지는 대디페이스 같은 문제적 작품도 꽤 질렀으니;)
그 과정은 수많은 여성주의적 성찰들과 정치적 문제의식에 의한 자기검열 속에서 가능했다.
오타쿠가 소비하는 문화는 기실 많은 부분 '주류문화'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게 숫적으로 '소수의 문화'일지라도 그 문화의 성격은 대안적이라기보다는 지배적인 경향이 강하고, 기존의 사회적 권력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거나 더 강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 특히 여성주의와 평화주의적 맥락에서의 문제제기와 도전은 뻔히 예상되는,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물론 일부 작가는 상당히 작가주의적이고 대안적인 정치 의식을 함의하고 있는 작품을 내놓지만 이는 소수다. 이건 어느 시장이나 대동소이한 듯.)
아무리 한국에서 그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적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문화 시장 속에서는 다수인 경우도 있다. (그럼 그건 다수 문화인가 소수 문화인가 싶은 생각도...)


그렇다면 과연 오타쿠가 '진보정치'(난 '인본주의' 개념을 더 선호하지만 읽는 분들에게 익숙한 표현은 이것일 테지?)를 한다면,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 속에 배어 있는 정치적 지점들의 문제를 어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간단하게, 진보신당 오덕위원회 게시판을 보면 '밀덕은 전쟁에 반대하면 이상한가요?' '밀덕은 전쟁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 좌빨 밀덕의 답변' 같은 류의 글들이 올라와있는데, 그런 게 대표적인 예가 되시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향유하는 여러 작품들 중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아니면 최소한 '진보적 의미가 있는' 것들만을 소비하거나,  자신이 향유하는 것들 속에서 애써 '진보적' 함의를 발견해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운 공존 상태, 또는 정치-윤리가 지배적인 사람을 오타쿠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나는 정치-윤리가 문화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고, 이들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이 자신의 정치-윤리의 기준과 잣대로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지배한다면 그 사람은 정치오타쿠일지언정 다른 오타쿠라고 하긴 어렵지 않을까?)

슷캇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2-2)사회당 덕후위원회는 사회당 내의 부문위원회입니다. 오타쿠가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의해 나타났다는 주장에 저는 동의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오타쿠의 이익은 현재 좌파적 담론에서 충돌할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충돌지점은 여성주의와의 간극이겠지요. 아니메나 게임 오타쿠 문화가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비료를 먹고 자랐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이지요. 이런 부분들이 정말 극단적으로 나가면 문화 자체를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를 버릴 것인가라는 부조리한 선택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현 상황에서의 이러한 간극은 오타쿠의 태생 자체보다는, 반강제적으로 계층이 형성되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유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당 덕후위원회는 여기에 대한 나름의 대답입니다. :D


나는 결국 활동가는 이런 문제 앞에서 자기가 소비하던 문화를 비판하고 반성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 외에는 답이 안 나오거든 -_-;;

근데 그러면 이런 덕후위원회 하고 싶어할 덕후들이 얼마나 될까? ㄷㄷㄷ

오타쿠 내에서의 또 다른 소수 집단이 되진 않을까?



* 카논, 에어, 클라나드 등 Key사의 게임은 약간 초현실적인 요소가 있는 순애물로 유명한데, 장르로는 '비쥬얼노벨'이다. 지금도 이 게임의 기본 스토리 구조와 음악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캐릭터로 자신을 동일시한 플레이어가 다수의 여성캐릭터(성격 외모별로 다양하게 상품화된)를 소비하는 '남성향' 구조임은 부인할 수 없고, 정치적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 일어로 かぎ는 열쇠를 뜻한다. 카깃코는 Key사에서 나온 카논, 에어, 클라나드 등의 게임을 추종하는 무리를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つき 는 달을 뜻하며, 츠킷코는 Type-Moon에서 나온 츠키히메, Fate/Stay Night 등을 추종하는 무리를 뜻한다.
  "열쇠빠", "달빠" 등의 표현도 있지만, "-빠"라는 말이 가지는 여성(-오빠부대)에 대한 비하적 의미 때문에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 솔직히 말해서 기사 보고서 사회당이나 진보신당 가볼까, 하는 혹하는 마음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
  그러나 그런 이유로 정당에 휙 가입하기엔, 청소년인권운동가로서 정체성이 훨씬 강하다는...
여하간에, '오타쿠위원회'가 당내 오타쿠 당원 모임, 당내 오타쿠 동아리가 되지 않고 '오타쿠위원회'가 되기 위한 조건은?





-------------------------------------------------------------------------------------------------------------
(부록)  -- 옛날에 메모했던 건데 부록으로...


『카노콘』, 여성주의, 성적 자유주의, 오타쿠.

활동하는 단체 안에서 한 회원이 보는 라노베 소설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문제의 소설은 『카노콘』.
알 사람은 다 아시겠으나, 상당히 성적 노출의 수위가 높은 라노베이고,
표지와 표지 바로 안에 속지의 일러스트들도 노출도 높은 여캐릭터들 + 야릇한 대사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이런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제기하자, 책을 읽던 회원은 보수주의적인 생각이라고 반박했었다.

요컨대 이 문제는 여성주의와 문화향유의 문제,
그리고 여성주의가 성적 보수주의와 연결된다는, 성적 자유주의의 입장에서의 비난의 전통 등등과도 연결된 사건이었다.



ㄱ. 일단, 나는 어떤 작품이든 간에 그것을 어느 정도 읽든 파악하든 하고 난 후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표지 그림이 아무리 여성주의적 문제가 있더라도, 자본주의-가부장제 시장 속에서 생존 전략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안에 것도 본 후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우디 앨런 영화에 "내 남편의 여자도 좋아"라는 제목을 단 초 낚시성 마케팅은...)

ㄴ. 그런 맥락에서 단지 표지의 노출도가 높다는 것만 가지고서 해당 작품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출도가 높다는 것이나 성적 장면이 소설 중에 묘사된 것만으로 비판하는 것도 부당하다. 여성주의는 성적 장면을 묘사한다는 이유로 포르노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성적 상황을 설정하고 어떻게 그것을 묘사하느냐가 문제다.

ㄷ. 카노콘은 물론 그런 맥락에서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카노콘은 마치 3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주요한 성적인 장면 등에서는 반드시 남성인 코타로의 입장에서 서술/묘사를 진행한다. 코타로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여성들의 느낌에 대해서는 주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관찰'의 대상일 뿐이다. 카노콘 속에서 여성주의적 맥락에서의 긍정적 부분을 찾는다면 기껏해야 '적극적인 여성상' 정도일 텐데, 여기서 적극적 여성들이란 것도 사실은 다분히 남성의 판타지를 실현시키는 도구일 뿐이다.-_-

ㄹ. 나는 카노콘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 소설이라고는 생각하는데, 또 그 당시에 카노콘에 대해 비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반응 속에는 보수주의적 요소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적인 장면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작품을 비판할 수 있는 걸까? '야설'이라는 말을 사용해가며? 또는 표지의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걸 볼 수 있냐고 비판할 수 있는 걸까?

ㅁ. 사람들은 카노콘 같은 노골적인 작품을 보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카노콘보다 성적 노출과 묘사가 적더라도 여-남 관계 설정이나 구도 등의 측면에서는 더 문제가 많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작품들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며, 성적 노출 등의 측면에서 노골적인 작품에만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ㅂ. 나는 여성주의는 궁극적으로는 좀 더 성적 자유주의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개방적으로 논의되고 대화하고 실천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성적 자유주의의 주장은 여성에게 적대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성적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특정 상황에서 여성(그리고 여성주의자)들의 적으로 돌변하는 거지만 ㅠㅠ

ㅅ. 오타쿠 - 그러니까 대개 '그런 문화'의 상당히 적극적 소비자로서, 매니아들의 자기 반성과 성찰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반성과 성찰은 세심한 설명과 논의가 필요하다. '여성주의'의 그 문제의식이란 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니까.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에... 거시기...
    저,
    '유인촌을 공격한다'는 그 당시 그냥 제가 밀던 개그였습니다... 실패했지만

    2009.05.18 15:21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보다 아다치 미치루가 아니라 아다치 미쯔(つ)루임미다-_-)

    2009.05.18 15:59 [ ADDR : EDIT/ DEL : REPLY ]
  3. 링크시켜놓은 카페 괜히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나랑 민경이 어제 말했던 그 사람 이름 발견하고 바로 껐음ㅋㅋㅋ ㅠㅠ

    2009.05.18 20:55 [ ADDR : EDIT/ DEL : REPLY ]
  4. 리잔느

    이것은 유머인가 진지함인가 'ㅅ'... ㅋ

    2009.05.19 06:2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