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7. 4. 19. 15:12

이것도 노동이다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영롱.명수민 지음, 교육공동체 벗, 2016) 리뷰



운동 사회 안의 해묵은 이야깃거리로,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화제가 있다. 최근에는 열정노동/열정페이 비판 등이 여론에 대두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노동자지!’ 하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원론적으로는 맞다. 운동의 과정에서 하는 일들도 노동이다. 단체와 계약하여 정해진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더욱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나는 이게 그렇게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자명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재정 상황 상 오랜 기간 상근활동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단체 규모가 커지고 후원금을 모아 상근활동가를 새로 두기로 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회원 중 몇 명이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상근활동가가 그냥 회원이었을 때 통상 참여해 왔던 정기 회의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상근활동가로서 하는 노동인가, 아니면 회원으로서 하는 활동인가? 이런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좀 더 근본적으로는 상근활동가는 왜 돈을 받고 단체 일을 하는데, 그 외의 회원들은 돈을 받지 않고 무급 봉사로 단체의 일을 하는지부터가 고민스럽게 된다.


  조금 다른 길로 빠져 보자면, 노동자의 임금은 양면적인 성격이 있다. ‘(노동시간 또는 그 성과)에 대한 대가라는 측면과 생존과 노동력 재생산 보장이라는 측면이다.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의 노동과 그에 대한 임금은 후자의 측면이 좀 더 강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른 많은 자발적인 무임금 노동/활동/운동들 때문에 일에 대한 대가라는 식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참여가 모두 대가를 지급받아야 하는 임노동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스럽다.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자. 사실 이 질문에서 노동자, 문자 그대로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역사적 환경 속의 임노동자를 뜻한다. 법과 판례를 참고하면, 노동자는 사용자/고용주의 감독·지휘 하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구체적 상황은 단체마다 천차만별이긴 한데, 적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들은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라고 하기 어렵다.


   가령 사용자/고용주가 별도로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따로 감독이나 지휘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 또는 그 이상의 노동을 단체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가는 것은 맞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있거나 자기감독자기착취(꼭 나쁜 의미에서 쓴 말은 아니다.) 식으로 노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 등에 더해서, 이처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면 자영업자에 가까운 건가 하면, 또 정해진 임금을 받지 단체가 활동이 잘 된다고 해서 돈을 더 가져간다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나, 총회 등 단체의 의결 기구에 그 고용이나 활동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노동자에 가깝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영리 기업과 달리 그 활동의 수혜자나 대면하는 대중이 시민사회단체의 수입처가 되는 곳(후원자들이나, 극단적으로는 정부 및 기업 등 기부처나 프로젝트 발주처)과 다르다는 특징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들도 있다. , 피터 드러커 식 개념으로는 본질적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잘 알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예를 들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는 단체마다 상황이 매우 다르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으로 넓혀서 보면 실로 각양각색의 조직 구조와 노동 환경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영역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단지 노동법 준수의 문제나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같은 이야기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다각도에서 바라보기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청년들의 사회적 노동 경험에 대해 2014년에 진행한 연구를 재가공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노동이란 의미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내려는 의지와 실천, 협상을 동반한노동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공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가려는 길은 그러한 현장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청년들이 좋은 노동’(공익적이고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 노동자가 행복한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을 기대하며 사회적 노동에 찾아오고, ‘좋은 노동에 대한 질문을 계속 붙들고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의 의미나 성격이나 좋은 노동의 요건 자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려고 한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의 장점은,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을 노동의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면서도, 그 노동조건의 열악함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살피며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이 영역에 남아서 계속 일하고 있는가묻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에필로그 청년들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가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곧 이 책을 낳은 문제의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하도록 만들었을까?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고 소진시키고 있을까? ‘그럼에도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걸까? 더 좋은 노동과 사회를 향한 어떤 형태의 바람과 기대, 혹은 어떤 열망이 그들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현장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도 다층적이며 복잡하게 경험되고 있을까?” (240)

 

   그래서인지, 이 책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라는 주제를 시종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가령 1장에서는 노동, 활동, 운동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사회적 노동의 양태를 파악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하는 일은, 노동이기도 하고 (사회적) 활동이기도 하며 (정치적)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책 속에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노동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회피한다는 지적도 담겨 있지만, 동시에 활동과 노동을 엄격하게 구분했을 때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회 변동 속에 운동의 개념이 약화되거나 혹은 불명확해지고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읽힌다.


   4모순과 함께 일하기에서는 사회적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가치의 충돌이나 중첩을 보여 준다. 자율성과 타율성, 공동체적 조직 문화와 일의 효율성, 우리 좁히기와 우리 넓히기, 자립과 의존 등 가치 사이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기록한 내용에는, 과연 무엇이 좋은 노동인지, 사회적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당위적 가치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복합적 경험들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리뷰는 사실 이 책의 주제와 관점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작은 운동장 안에 들어와 막상 부딪혀본 세상은 꽃밭이 아니라 또 다른 고난이었다. 선의에 기댄 채 생활의 어려움은 애써 외면해 보려 했으나, 반복되는 삶에 지속적으로 덧대어지는 더께는 결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은 결국, 그들의 선택을 후회한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70년대 산업화의 격랑을 단기간에 거쳐오며, 더 나은 노동을 찾아내는 것에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다. 첫 번째 책인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그 증거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1213&CMPT_CD=C1500_mini)


  이 책은 단지 좋은 노동을 찾아서 온 사회적 노동 현장에도 좋은 노동은 없었다라는 서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원래 연구 보고서에서 출발해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인지 읽기 어려운 부분들이 왕왕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책의 내용에서 사회학자의 개념 등을 많이 인용해 오고 있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는, 서문에서부터 피로 사회등으로 대표되는 ‘OO사회논의가 이어져왔던 점을 거론하고 있는데, 지난 몇 년간 그러한 논의를 따라오며 읽어오지 않았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그러한 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는 부분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축적된 담론이나 개념들을 이미 독자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 자체가 학문적 영역에서 탄생한 글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노동을 위해

 

사회적 노동은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노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 자체가 복합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라고 말하고 그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말을 막고 현상을 유지하자는 소극적인 자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인지, 좀 더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막바지에서 우리에게는 완벽한 출구도 섣부른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243)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될 것임을, 삶을 지속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나는 첫 번째로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에 필요한 변화는 투명성 강화라고 생각한다. 노동 문제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문화를 없애고, 노동 조건과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공개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는 일을 하는 노동자/활동가들에게 진입 과정에서부터 이를 공개하고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며, 2차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이 영역의 현실이 이러함을 열어놓고 문제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기대가 어긋나서 생기는 문제를 줄일 수 있고 개선할 길도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운동 사회’(혹은 사회적 경제 사회/네트워크’)의 문제 인식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개별 단체나 협동조합 등의 수준에서는 자원의 한계가 많고 당장의 선택지도 적은 경우가 많다. 비슷한 여건에 놓여 있거나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위들 사이의 네트워킹과 연대를 통해서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문제나 세대 간 소통, 조직 문화 및 조직 내 민주주의와 같은 문제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로 더 문제를 확대하면, 전 사회적 공동 책임을 논의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노동영역에서의 여러 문제들은 다중적 의미에서 사회적이다. 예컨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청년 세대의 문제나 세대 간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여러 지점들은, 단순히 세대 간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청년 세대가 겪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나 전 사회에서 정치적 변화의 전망이 약화된 문제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노동, 전 사회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공익적인 성격의 일을 하지만 이 때문에 투여되는 노동에 비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은 한정되는 성격이 있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가치 있는 공익적 일이라는 합의가 가능하다면, 이에 대해 좀 더 사회적인 공동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제도적인 지원이나 공간 등 인프라 구축의 형태가 되었든, 좀 더 풀뿌리적인 연대의 형태가 되었든.(‘예술인 지원 제도가 가능하다면 활동가 지원 제도는 왜 불가능한가?)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고 한 생각은, ‘사회적 노동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의 문제와 별개로 볼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경제·교육·주거·문화·복지 등의 문제와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적 노동 영역만을 따로 놓고 이것이 좋은 노동인지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사회적 노동 영역에서의 예시들은 문제점과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모델이자 창구이다. 결국 우리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으며 나 자신에게도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우리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꼭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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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4. 3. 23. 12:54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10점
오찬호 지음/개마고원


'자기계발논리'를 원인이자 핵심으로 지목할 수 있는 걸까?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읽고 난 후 단상 겸 메모


# 우선은 이 작업에 찬사를 보낸다. 2008~2012년, 4년 간 다양한 20대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인식구조에 대해 탐구하는 이런 연구는 분명히 우리 시대상을 기록하는 작업으로서 의미가 크다. 또한 단편적인 분석과 인상비평들이 주를 이루던 '2000년대 대한민국의 20대(또는 청년?)' 논의들 속에서, 이정도의 성실함을 가지고 이야기를 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수 있다.


# 읽다가 든 궁금증 : ‘대학생 아닌 20대’, 또는 ‘전문대학생’들은 어떨까? 그것이 자기계발담론이든 체념이든 분명 공유하는 큰 맥락과 줄기가 있겠지만, 저자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 다른 위치에서 또 다른 결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홍보 문구 등에서 ‘20대’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사소한 아쉬움이 있는데, 사실 이건 이 책의 한계라기보다는 추가 연구, 다른 연구들이 더 많이 보태져야 하는 것이리라.


# 저자가 기본적으로 이런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당사자로서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지금의 20대들은 과거의 20대/대학생/청년들과 다르다! 왜 그렇지? 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약자에 연대하지 않지?” 같은 것들. 그것은 저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하고 문제적인 현상이었을 테지만… 정작 내 입장에서는 ‘그럼 그 옛날에는 대체 어땠는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20대의 관점에서 과거, 90년대의 20대(지금은 40대 정도가 되어있을)들은 대체 어땠던 것인지 그 사회적 조건과 인식 구조를 탐구해보는 작업도 재미있을 것이다. 어쨌건 저자의 그런 인식들 때문에 초반부에는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인식들에 대해 저자가 계속해서 붙이는 자기 변호 같은 것들이 오히려 더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었다.(-_-)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문제의식일 수 있는데, 과연 ‘자기계발논리’가 지금 20대에 고유하고 특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자기계발논리’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 ‘자기책임논리’ 자체는 굉장히 뿌리 깊은,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이데올로기이다. 다만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자기계발논리’가 좀 더 세련되고 전면적으로 나오고 있을 뿐인 것 아닌가. 그리고 저자는 ‘학벌주의’가 과거와 현재의 양상이 다르다고 하는데,(과거에는 ‘패거리문화’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 20대에게는 그것이 능력주의와 촘촘한 차별 기제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과연 얼마만큼 다른지 나는 좀 의문스럽다. 질적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미 과거의 학벌주의 안에 내재해있던 모습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 '능력주의' 문제에 대한 비판은 교육사회학에서 계속해서 나오던 문제이다. 교육체계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에 따른 보상/성과라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연구는 그러한 효과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제목 자체도 그렇고. 그것이 크게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데, 다만 생각보다 그게 노골적이고 강력하게 뿌리 박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 책이 기본적으로 20대의 ‘인식’, 집단적 의식을 탐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보니 ‘자기계발 논리’가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사회학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연구가 좀 더 뒷받침되어야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것 같은 구절들이 몇 개 눈에 띈다. 면접한 여러 20대들의 말들로부터 그 사람들의 심층 심리를 분석하는 여러 부분들이 그러하다. 오히려 책의 마지막인 4장의 부분들이 더 사회학적인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인데... ‘자기계발논리’ 문제에 대해서도 의식 조사 수준을 넘어서 좀 더 여러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논지를 구성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4장에서 왜 지금 경쟁이 불공정하고 능력주의가 왜 허구인가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가져다가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자기계발논리’가 과연 20대의 인식구조에서 핵심적인 문제이자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나는 그 부분에서 동의가 잘 되지 않았다. 자기계발논리도 일종의 현상이고 체제 정당화이자 자기 정당화를 위해 동원된 논리인 것 같다. 20대의 의식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10대 당시 경험, 그리고 조직화라고는 없이 개인화, 원자화되어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 구조와 삶의 경험들, 그런 것들을 좀 더 비중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착된 한국 사회의 모습, 입시경쟁, 부모 문제 등등 그런 이야기들이 없지는 않지만 비중이 좀 적다. ‘자기계발논리’를 중심에 두고 여러 가지 것들을 설명하다보니까 그림에 공백이 생기는 것 같다.



# 며칠 전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인 걸로 추정되는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업에서는 우리가 공부하고 능력을 갖춰서 들어가면 함께할 인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써먹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아는 오빠는 회사에서 일은 일대로 했는데 별 이유도 없이 잘렸다. 나이가 좀 들고 40대만 되어도 자르지 않더라도 막 눈치를 주고 명예퇴직시킨다고 한다. 무슨 왕따도 아니고 그런 것들…. 진짜 말도 안 되는 건데 우리 입장에서 당장 뭘 어쩔 수가 없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가 뭔지를 모르고 있지 않다. 문제들에 순응하게 되는 것도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오히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저 “어쩔 수가 없다”라는 부분일 것이다. 자기계발논리도 결국은 그 ‘개인으로서는 뭘 어쩔 수가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창궐하게 된다. 나는 ‘무력감’의 문제를 좀 더 집중해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력감’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개인’이 어떻게 ‘집단’이자 ‘조직’이 되게 하고, 무력감을 넘어서 최소한 뭔가 작은 거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인가. 그런 여건과 사회적 관계, 조직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실천이 이 단단한 ‘구조’를 바꾸고 넘어서는 길일 것 같다.

http://gonghyun.tistory.com2014-03-23T03:54:59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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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모임'에서 세미나로 같이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리뷰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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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2. 3. 6. 16:30




투명가방끈 콘서트 참가제안서


3월 18일 6시 홍대 클럽 FF

http://cafe.daum.net/wrongedu1



수신 : 경쟁에 쳇바퀴 위에서 죽을때까지 달려야 하는 당신께
발신 : 투명가방끈 콘서트 팀


안녕하세요. 저희는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입니다. 투명가방끈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저희는 대학입시거부/ 대학거부자 그리고 그 움직임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모임입니다.

제안서를 쓰면서 ‘거부’라는 표현이 무겁게 다가가면 어쩔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대학이 상징하는 바는 굉장히 크다는 것과 제도권을 벗어나는 것의 급진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차별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학을 거부 하려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부조리와 잘못 된 편견을 ‘거부’하고 나아가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중 고등학교는 대학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교 혹은 그 이전부터 사회가 원하는 상품이 되어갑니다. 대학은 대기업 혹은 안정된 고수익직종이 되어 사회의 주류계층에 편입하기 위한 취업양성소가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끝없는 줄 세우기로 인해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버립니다. 조기 교육된 경쟁은 심장 속에 깊숙이 박혀 공부보다는 오히려 성적에 따른 우월감 혹은 자기비하를 가르칩니다. 배움의 과정 자체도 폭력적입니다. 토론을 통해 서로의 다양한 주장과 가치관을,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닌 하나의 정해진 답을 외우고 시험지에다 옮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과정자체도 권위주의 적입니다.

매년 수백 명에 이르는 고교생들이 자살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의 힘’과 1%만이 가질 수 있는 ‘성공신화’ 가 아니라 진정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배우도록 선택할 수 있는 환경 그러면서도 경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사회의 안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안티수능페스티벌', '입시폐지대학평준화페스티벌' 등의 문화제가 열려왔고 많은 뮤지션들이 함께 해왔습니다. 이 같은 문화제들 처럼 대중 들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투명가방끈 멤버 중에 음악을 하고 있는/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끼리 콘서트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어느새 당연하게 생각하는 교육과 경쟁의 모순들을 다시 한 번 문제제기하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경쟁을 벗어난 삶, 꼭 승자가 아니더라도 매순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안합니다.당신이 콘서트에 함께 해주실 것을!

고통 받고 있는 청소년/청년들에게 위로를 넘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에 함께 목소리를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학업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 인한 고교생들의 자살. 등록금을 내지 못해 목숨을 끊은, 취직을 하지 못해 세상을 등진 우리의 청춘을 위해서.

잘못된 교육과 환경이 그들의 삶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검은 싸인 펜은 끝없이 OMR CARD 위에 자살자 숫자를 마킹할 것입니다.

함께 만듭시다. 가방끈의 길이를 잴 필요 없는 투명가방끈의 세상을 !



* 콘서트 후원계좌 : 제일은행 577-20-127407 김동혁 (투명가방끈 콘서트)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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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1. 14:31




대학, 정말 다들 가야만 하는 곳일까요?

대학이 더 큰 배움을 위한 고이 아니라 취업준비소가 되고 기업화되고 있는 현실
수백만원의 비싼 대학등록금을받아가며 졸업장, 학력 장사를 하고 있는 대학들의 모습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치열한 입시경쟁
대학을 졸업해도 먹고 살기는 만만치 않은 <88만원세대>의 현실
고졸자에 대한 차별, 출신 대학에 따른 차별이 뿌리 깊은 사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대학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
이런 잘못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선언을 발표하고 운동을 하려 합니다.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대학중심사회를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교육을 사회를 세상을 바꾸는 대학거부선언! 함께해요!

참여자격 : 20대 이상, 대학을 애초 가지 않았거나 다니다가 자퇴한 사람
참여기간 : 2011년 10월 30일까지! (11월 1일 발표 예정)

참여방법
★ 대학거부선언문 초안을 읽어본다.
☆ disuniversity@gmail.com 로 선언에 참가한다는 메일을 첨부한 양식에 맞게 작성해 보낸다.
★ (이미 자퇴를 했거나 아예 대학을 안 갔었다면 그냥 패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다.
☆ 선언문에 대해 고치거나 덧붙이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보탠다.
★ 대학거부/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의 여러 활동들에 열심히 참여한다.

※ 대학거부선언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같이 하는 활동입니다~ http://cafe.daum.net/wrongedu1





20대 대학거부선언 참여
*작성 후 disuniversity@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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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거부방식

대학 중퇴 // 비진학

이   메   일

 

하고 싶은 말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서,
대학에 가더라도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하이킥을 날리고자 하는
20대들의 대학거부선언에 동참합니다.

2011년   월   일





[20대 대학거부선언 초안]

20대 대학거부선언

-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에 숨이 막혔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우리는 많은 것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겪은 차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을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자꾸 재촉하기만 합니다. 너희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그만큼 뭔가 남다른 성과를 내놓아보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해보려 할 때 사회는 그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그저 바라봐주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대학 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들 하는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대학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사회는 차별과 배제의 이빨을 들이댑니다.


  이렇게 이미 한 번 대학을 거부한 후에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그러나 대학에 가 본 우리는 압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세대'의 삶이라는 것을. 또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으려는 우리는 압니다. 그 레이스에 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오자, 패배자, 루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지를.


  우리는 바랍니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모든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든, 대학을 안 갔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열아홉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 "20대의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지금의 사회와 대학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거부와 선언이, 외침과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1일 (예정)


(이후 선언에 참가하는 분들의 이름을 추가해 나갈 예정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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