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바라보기만 해도 잘 자랍니다"

공현 2008. 2. 8. 16:29

"바라보기만 해도 잘 자랍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잉어가 있다. 학교 뒤편과 도서관 앞에 연못도 서너 개 있고 그 안에는 비싸다고 소문 난 잉어가 산다. 손가락만 한 작은 것에서부터 팔뚝보다 큰 녀석까지, 비록 어종은 그리 다양하지 않은 것 같지만 크기는 꽤 다양하다. 이 잉어들을 너구리가 잡아먹고 산다는 소문이라거나, 몇몇 학생들이 잉어를 잡아먹은 일이 있다거나 하는 잉어가 ‘먹히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러나 정작 잉어는 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가? 뭘 먹었기에 그렇게 컸지?
 “잉어가 무얼 먹고 살지?”라니, 당연히 길러지는 잉어니까 사료를 먹고 살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상식적인 발상으로는 어쩐지 2% 부족한 감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연못에 걸려 있는 이 푯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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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보기만 해도 잘 자랍니다. 먹을 것은 사양합니다.”


 처음 이 푯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린 것은 최모 군 등이었다.
 그렇다.
 잉어들은 ‘눈길’을 먹고 자랐던 것이다!
 이럴 수가, 눈길을 먹고 사는 생물이라니. 이건 거의 해리 포터의 “신비한 동물 사전”에도 실릴 수 있는 마법 생물의 급에 속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먹고 사는 존재. 그것은 바꿔 말하면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다. 만약 이런 능력을 다른 모든 생물들이 갖게 된다면 자연계의 약육강식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모두 사라질 것이고, 오직 사랑이 넘치는 평화로운 공동체만이 남게 될 것이다.
 하긴, 다른 존재의 감정이 성장이나 생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예는 다른 경우에도 있다. 예전에 화제가 되었던 계속 소리를 질러서 나무를 죽이고 베어내는 부족의 이야기라거나, 사람이 긍정적인 말을 계속 해준 식물과 부정적인 말을 계속 해준 식물의 생장에는 차이가 난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 그와 같은 경향을 극단적으로 진화시킨 생물이 바로 상산고의 잉어인 것이다. 괜히 비싼 게 아니었군! 여기에 이 잉어들을 둔 깊은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도 저 잉어를 보고 배우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최근에 연못 하나를 더 팔 때 내가 연못 이미 있는데 왜 또 파는 거냐고, 학교가 무슨 이사장 정원이냐고 불평했던 것도 취소다. 하기사, 설마 그 잘나신 이사장님께서 괜한 짓을 하실까.


 사람들도 저 잉어들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그윽한 눈길만으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괜시리 웃음이 나기도 하고…. 서로 먹을 것을 두고 다투고 경쟁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시선에 만족하고 공생하는 사이. 사람에게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고로 나는 오늘도 되뇌인다. “바라보기만 해도 잘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