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제네바 UN아동권리위원회 2019년 대한민국 심의 참가 기록 ①

공현 2019. 9. 29. 16:59

 

2018년쯤부터 UN(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에 대한 제5·6차 정기 심의가 진행 중이다.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심의는 대충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진다.

국가(정부)보고서 제출 -> 민간보고서/당사자보고서 등 시민사회에서 보고서(NGO보고서, 대안보고서 등으로도 불림) 제출 -> 사전심의(Pre-Session) -> 쟁점목록(List of Issues) 질의 -> 쟁점목록 국가 답변서 제출 + 민간 추가의견서 제출 -> 본 심의(정부 대표단에 대한 질의 등) -> 아동권리위원회 최종 견해 발표

본래 5년에 한 번씩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정부에서 보고서를 늦게 낸다든지, 유엔 측 일정 문제라든지 그런 이유로 텀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한국은 2000~2003년 제2차, 2011년 제3·4차, 2019년 제5·6차 심의를 받게 되는 식으로, 심사 기간 등이 길어지고 사이 간격도 늘어져서 회차를 병합해서 심의를 진행하게 됐다.

미국처럼 자기들이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라고 큰소리 치면서도 정작 UN아동권리협약도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있고, UN아동권리협약 가입 국가들이라고 해서 협약상 의무인 정기적 보고서 제출과 심의에 성실히 응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한국처럼 심의에 잘 응하는 것만 해도 상대적으론 훌륭하단 소리도 들어 봤다. 그러나 이번에 이래저래 대응하면서 알게 된 건 정부가 보고서를 꽤나 제때 내지 않는다는 것. 단적으로 이번 심의에서도 쟁점목록에 대한 답변을 5월까지 해 달라고 했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8월에야 답변을 냈다. 그런 식이니까 심의가 길게 늘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인권운동 진영 측에서는 지난 2011년 심의 때만 해도 민간 보고서 작성 등에도 거의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운동의 역량이 커져서 + 시민사회단체들 내에서 입지가 생겨서 이번에는 민간 보고서 작성에도 꽤 비중 있게 참여했고, 9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루어지는 본 심의 현장 대응에도 내가 참석하게 됐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본 심의 때 참여하여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들과 사전 미팅을 가지며 한국 상황을 알리고 강조하고 싶은 이슈를 알리기도 하고, 본 심의 현장을 참관하며 현장에서 나온 위원들의 질의나 발언, 한국 정부의 답변 등을 기록하여 언론들에 전달하기도 한다. 

이번에 내가 민간 보고서 작성 등에도 적극 참여했고 또 일주일쯤 시간 내서 스위스를 다녀올 여건에 있었던지라 가게 됐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외국어라고는 영어도 거의 잘하지 못하고! 또한 해외여행이라면 질색을 하며 거의 가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내 해외여행 경력은 아주 어릴 적에 패키지 여행이나 학교 수학여행 등을 간 걸 다 포함해도 중국, 일본, 태국 총 3회밖에 되지 않는다. 뭐 이것도 꽤 호사스러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여하간 외국 여행 경험이 풍부하다곤 할 수 없다.) UN아동권리위 대응 관련 내용 준비만 해도 벅찬데, 나는 스위스 행을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야 했으니... 게다가 스위스에 관광 목적으로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검색해 보면 꽤 찾을 수 있었지만 나처럼 UN 대응을 해야 해서  간 사람들의 경험담 같은 건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블로그에 간단히 대략적인 여정과 제네바에 머무는 팁을 써 둔다. 다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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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편

스위스행이 좀 급하게 정해져서,  거의 출발이 3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항공편을 예약해야 했다.

9월 18~19일이 대한민국에 대한 심의 일정이었고, 17일에 위원들과 사전 미팅 일정 등이 잡힐 예정이었다. 그래서 늦어도 16일에는 도착해야 했다.

알아보니 스위스 제네바까지 가는 교통편 선택지는 두 가지 되는 듯했다.

(1) 취리히 직항을 타고 취리히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제네바로 간다.

(2) 어딘가(이스탄불, 모스크바, 파리, 기타 등등...)를 경유하여 제네바 공항으로 간다.

안 그래도 외국 여행 무서워하는데 취리히 공항에 내려서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탈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가격이 더 저렴했기 때문에, 경유해서 제네바로 가는 비행기 표를 찾아봤다. 가격과 시간 등을 감안해서 정한 건 러시아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가는 것은 15일 오후 1시쯤 인천공항에서 출발, 모스크바공항에서 1시간 30분 정도 간격을 두고 환승하여 제네바 공항에 현지 시각 오후 8시 반(한국 시간 새벽 3시 반)쯤 내리는 걸로. 오는 것은 19일 오후 9시(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4시)쯤 출발, 모스크바공항에서 5시간 30분 정도 간격을 두고 환승하여 인천공항에 한국 시간 20일 오후 10시 반쯤 내리는 것.

비행시간은 총 13-14시간 정도 걸리고 거기에 비행기 환승에 걸리는 시간을 더하면 총 여정 시간이 나온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좀 불안해서 아에로플로트 하나의 항공사로 비행기들을 통일해서 티켓팅을 했다. 총 비용은 97만원 정도 나왔다. (활동하는 단체에서 모금을 하여 공금을 지원받았다.) 나중에 알아 보니 환승 때 수하물이 별 문제없이 비행기에 실리게 하려면 한 항공사로 통일하는 게 더 낫다고 하더라. (서로 다른 항공사 비행기여도 제휴된 항공사면 잘 바꿔 실어 주기도 하지만...)

길디 긴 비행 시간을 견디기 위해 노트북에 게임, 전자책 및 종이책 등을 챙겨 갔다. 잠도 많이 잤고. 기내식은 잘 나왔지만 대부분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생선 중 2개씩 옵션이 있고 선택하는 식이다. 채식을 원한다면 티켓팅하고 체크인할 때 미리 요청할 수 있다던데 그런 걸 미처 몰랐다. ㅠㅠ 그래서 페스코에 가까운 채식을 노력하는 입장에서는 생선 옵션이 없을 때는 그냥 굶거나, 빵만 달라고 해서 먹었다.

인천-모스크바 때 기내식 안내
생선 요리가 메인인 기내식들. 샐러드 등에 곁들여진 고기류는 그냥 조금씩만 먹었다.

 

인천-모스크바-제네바 여정 중 환승 과정에서 소소한 사고가 일어났다. 안 그래도 환승 사이 시간이 1시간 30분 가량으로 길지 않았는데, 인천-모스크바 비행기가 30분 정도 연착해 버린 것이었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환승 과정에도 여권과 티켓 등을 보여주고 보안 검색을 한 번 더 받아야 하며, 게다가 모스크바 공항은 엄청- 대단히- 더럽게 넓다. 그래서 환승 과정에서 정말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려야만 했다. 오후 5시 20분부터 탑승, 50분 출발(러시아 시간)인 비행기였는데, 5시 45분에 간신히 탔다. 헥헥... 모스크바 공항 환승을 할 때는 2시간 이상 간격을 두시길 ...

모스크바 공항은 엄청 넓은데 안에 이런 술집들과 식당들과 면세점 등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제네바 공항에 도착했는데, 수하물로 맡긴 내 트렁크 가방이 오질 않았다. 환승 사이 시간이 너무 짧아서 짐이 미처 안 실렸던 것. 제네바 공항에서 수하물 담당하는 곳에 가서 내 짐이 안 왔다고 하자, 알아보고서 짐이 다음날(16일) 오전에나 온다고 하며, 짐이 오면 숙소로 보내 주겠다고- 숙소 주소를 적어 놓으라고 했다. 헉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영어도 잘 못 했기에, 같이 간 변호사님이 영어로 대신 대화를 해 주셨다.) 짐은 결국 16일에 묵고 있는 숙소에 잘 도착했다.

 

★ 숙소

숙소는 호텔 체인인 ibis에 묵었다.  ibis budget Geneve Aeroport 라고, 제네바 공항에서 버스로 4정류장쯤 떨어져 있었다. 숙소도 당연히 내가 예약한 건 아니고... 아동권리위 심의 대응을 준비해 주신 공익변호사 단체 두루, 국제아동인권센터의 분들이 함께 예약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압도적 감사...)

 

숙소는 CAGI라는 제네바에서 시민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단체인지 기관인지...에서 일부 후원을 해 주었다. 덕분에 내가 묵은 방은 1인실인데 1박에 110스위스프랑(CHF)만 자부담했다. 이것도 꽤 비싸다 생각했지만, 현장에 가서 호텔 앞에 붙어 있는 요금표를 보니 1박에 200CHF 정도는 기본이더라. 무서운 스위스 물가...

15일에서 19일까지 4박 440CHF만 자부담했으나, CAGI의 지원이 없었다면 숙박비가 2배로 나갔을 것이다.

숙소는 한국의 좀 깔끔한 모텔이랑 큰 차이는 없었는데, 몇몇 차이가 있다면, 방 안에 냉장고가 없고, 기본 음료 같은 것도 구비되어 있지 않으며, 커피포트 또는 물 끓이는 전기 냄비 등도 없다.(포트가 없어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식사 부분에서 말하겠다.) 헤어 드라이어도 없다.(헤어 드라이어는 프론트에 말하면 준다.) 그리고 샤워룸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 침대가 2층 침대형으로 위에 1개 더 붙어 있었지만 쓸 일은 없었다.

수건은 갖춰져 있으며 매일 새 걸 준다. 샤워룸엔 비누와 바디워시 겸 샴푸인 게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아 참, 전기는 한국과 전압에는 큰 차이가 없어서 쓸 수 있지만, 꽂는 콘센트의 모양 등이 달라서 꽂을 수가 없다. 따라서 해외여행 용 트래블 어댑터를 준비해 가야 한다. (나는 트래블 어댑터가 트렁크 가방에 들어 있었기에 첫날에는 노트북 충전도 잘 못 했다. 휴대전화는 USB포트로 충전했다.) 숙소 와이파이는 잘 된다.

스위스 숙소 ibis의 전기 콘센트.

숙소가 좋았던 점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아침마다 빵이나 시리얼 등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제네바의 호텔 등은 대부분 제공하는 거라던데, 제네바 트랜스포트 카드를 준다. 이게 있으면 제네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대중교통

말이 나온 김에 대중교통 이야기. 제네바 대중교통은 버스, 트램(노면전차) 등이 있는데, 한 정류장에서 버스나 트램이나 같이 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 구분을 안 하게 되고 대체로 번호로 기억을 하게 되더라... 길을 찾는 데는 주로 구글지도를 이용했지만, 구글지도가 노선번호는 대체로 정확하게 알려줬으나 정류장 위치 등을 잘못 가리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제네바의 트램

제네바에서 교통비는 별도로 들지 않았다. 먼저 공항에서 자판기 같이 생긴 거에서 버튼을 누르면 대중교통 무료 패스를 발급해 준다. 80분인가 90분인가 유효하다고 쓰여 있다. 그걸 갖고 숙소로 가면 숙소에서 앞서 적었다시피 트랜스포트 카드를 준다. 그 카드에 적혀 있는 기간(주로 숙박 날짜와 동일하다) 동안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제네바 한가운데의 레만 호(엄청 커서 처음 보고 바다인 줄 알았다)를 다니는 배도 탈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이러한 카드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정류장 등에 티켓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으니 필요한 표를 구입해서 타야 한다.

제네바 대중교통은 별도로 요금을 내거나 비접촉식카드 등을 찍거나 하지 않는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와서 문 열리면 그냥 타면 된다. 느낌으로는 사실상 무상교통이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실 완전히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불시 점검으로 적절한 트랜스포트 카드나 티켓을 갖고 있는지, 버스/트램에 검사원이 타서 검사를 한다고 한다. 검사했을 때 카드나 티켓을 소지하지 않고 있으면 10만원쯤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스위스 사람들은 정기권 같은 걸 사서 갖고 다닌다고 한다.

UN아동권리위원회 관련 일정은 주로 팔레 윌송Palais Wilson(UN인권고등판무관 사무실이 있다. 과거에는 UN 제네바 본부가 여기에 있었다.)과 팔레 나시옹Palais des Nations(현 UN 제네바 본부)에서 진행되었다. 관련 단체들도 팔레 나시옹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공항-숙소-팔레윌송-팔레나시옹 이렇게 4곳을 줄창 오갔다.

팔레 나시옹은 Nations, 나시옹이라고 하는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여러 버스와 전차 등이 다닌다. 팔레 윌송은 호수 옆에 있는데, 교통이 좀 불편하다. 꼬나방Cornavin 역으로 가서 좀 더 골목으로 들어가는 버스로 환승을 하든지... 꼬나방 역에서 1번 버스를 타고 고티에Gautier라는 정류장에 내리면 팔레 윌송 입구까지 가깝다. 아니면 꼬나방 역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가든지... 호수 옆에 있는데 좀 다니기가 불편하다. 팔레 윌송과 나시옹 사이를 오갈 때는 15번 트램을 자주 탔다. 이래저래 꼬나방 역이 매우 크고 버스/트램 등이 많이 다니므로 환승할 때 자주 들르게 되었다. 

 

★ 언어

큰 의미는 없지만 내가 얼마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나 말하는 의미에서 언어 이야길 하면... 나는 스위스는 스위스어를 쓰는 줄 알았다. 제네바에 가서 버스 안내 방송 등을 들으며 '프랑스어랑 스위스어랑 참 비슷하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냥 프랑스어를 쓰는 것이었다. ㅎㅎ... 

스위스는 지역에 따라 프랑스어, 독일어 등이 쓰이는데, 제네바는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에 속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프랑스어가 많고... UN 본부 직원들도 프랑스어만 할 줄 알고 영어는 잘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 제네바를 오가며 사용할 언어를 준비한다면 프랑스어 공부를 해 가시는 게 좋을 듯.

그러나 기초적인 소통은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어찌저찌 되기는 했다. 우리 일행도 프랑스어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영어로 대체로 소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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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식사, 물가, 그리고 UN 아동권리위원회 대응 과정 등을 설명하겠다.

 

 

②편 https://gonghyun.tistory.com/1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