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나는꿈

너를 보내고 - 사회운동가적 해석 -_-

공현 2008. 8. 25. 16:48
너를 보내고

구름 낀 하늘은 왠지 네가 살고 있는 나라일 것 같아서
창문들마저도 닫지 못하고 하루종일 서성이며 있었지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이 하고파서였을까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난 왜 너 닮은 목소리마저 가슴에 품고도 같이 가자 하지 못했나
 
길 잃은 작은 새 한마리가 하늘 향해 그리움 외칠 때
같이 놀던 어린 나무 한 그루 혼자 남게 되는 게 싫었지
 
해 져가는 넒은 들판 위에서 차가운 바람
불어도 들려오던 노래 내 곁에 없었지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난 왜 너 닮은 목소리마저 가슴에 품고도 같이 가자 하지 못했나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난 왜 너 닮은 목소리마저 가슴에 품고도 같이 가자 하지 못했나





이건 윤도현 씨의 "너를 보내고"를 들으며 한 명의 구체적인 청자/독자 입장에서 떠오른 하나의 해석에 대해 쓴 것이며
공식적인 해석, 아님 내재적 해석이나 표현론적 해석과는 좀 거리가 멀다.



이 노래의 화자는 함께 사회운동을 하던 동지가 마음을 바꾸고 제도정치권으로 투신한 것을 한탄하는 사람이다.
 

구름 낀 하늘은 왠지 네가 살고 있는 나라인 것 같아서

-> "너"는 저 높은 곳,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나 현실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하늘"에 살고 있다. 즉 여기서 하늘은 실제 민중들의 생활과 유리되어 있는 제도정치권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도정치권의 더러움, 부패 등을 표현하는 말로 "구름 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즉, 나는 "구름 낀 하늘"을 보면 네가 지금 몸 담고 있는 제도정치권이 연상되기 때문에 마음이 착잡해져서 서성이게 된다.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이 하고파서였을까

-> 이 부분은 운동하면서 느끼게 되는 좌절, 고통, 생활고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제도정치권으로 발을 돌린 동지를 질책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살면서 부딪치는 작은 문턱들조차 쉽사리 넘지 못하고 변절한 동지에게 내게 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했을까? 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기에 너를 그렇게 붙잡았던 것일까? 이런 감정을 담고 있다.

이 노래가 사랑노래라거나 추모곡이라는 해석은, 이렇게 "너"를 비난/비판하는 듯한 구절이 있는 것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난 왜 너 닮은 목소리마저 가슴에 품고도 같이 가자 하지 못했나

-> 여기서 "산"은 운동을 하면서 넘는 여러 탄압이나 고비, 투쟁들을 의미한다. "먼 산"이라 함은 이것이 기억 속에 있는 시간적으로 거리가 있는 과거의 것임을 나타내준다.
너와 함께 뚫고 나오고 치러냈던 그 과거의 여러 투쟁들과 고비들 속에 너의 모습을 남겨두면서, 그러면서도 지금은 멀리 있을 뿐인 너를 남겨두고 돌아서서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나".

"너 닮은 목소리"라 함은, 노래의 화자와 "너"의 사회적 위치(만일 화자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계급")가 비슷한 것, 또는 둘이 사상적으로 비슷한 것을 의미한다.
즉 이 구절은 나는 너와 사상적으로 비슷한 경향을 갖고 있었고, 출신 계급도 비슷했는데, 왜 너를 적극 설득해서 함께 운동을 하도록 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것이다.

또는, 나 또한 너처럼 제도정치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내심 있었는데 왜 너랑 같이 운동판을 떠나지 못했나, 라는 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석하면 앞뒤 맥락과 잘 맞지 않게 된다.



길 잃은 작은 새 한마리가 하늘 향해 그리움 외칠 때
같이 놀던 어린 나무 한 그루 혼자 남게 되는 게 싫었지
 
-> 2절의 "길 잃은 작은 새"는 1절의 "너"를 의미한다.
"너"는 어느 순간부터 운동의 방향과 의미를 잃고 방황을 하고 있었으며, 그런 상황에서 도피처이자 유혹의 공간인 "하늘"(제도정치권)을 향해서 러브콜("그리움")을 때리기에 이른다.
그 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새"와 함께 "들판"(운동판)에서 "놀던"(운동을 하던) "어린 나무"(=화자)는 동지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되는 것이 싫었다. 여기서 "나무"가 어리다고 표현되는 이유는, 운동이 몰락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사회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철없는" 일, "어린" 일로 치부되곤 했기 때문이다.
"작은 새" "어린 나무" 등의 이미지로 "너"와 나를 대체하는 것은 "너", 그리고 화자가 작고 어린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는 다의적인 메타포다. 이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느낀 무력감, 사회운동에 대한 비난과 조소, 그리고 그런 것을 스스로 좀 더 긍정적인 의미로 전환하려고 하는 화자의 노력을 모두 담고 있다.



해 져가는 넒은 들판 위에서 차가운 바람
불어도 들려오던 노래 내 곁에 없었지

-> "해 져가는 넓은 들판"이라 함은, 마치 사회운동이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90년대를 연상시킨다. 굳이 그때가 아니어도 좋다. 그 이전에는 정부의 강력한 탄압이, 그리고 2000년대에는 공고화된 기존 운동 세력들의 몰락이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은 위기를 맞이하는 운동판에 불어오는 위기감, 탄압, 인력 부족 등을 의미한다.
"들려오던 노래" 투쟁 현장에서, 술자리에서 부르곤 했던 민가들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걸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있다고 하면 다들 알아들으려나? 여기서 "들려오던 노래"는 특히 내가 아니라 "너", 다른 동지가 부르던 민가를 의미한다. 너, 또는 다른 동지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들판에 남아있는 "어린 나무"인 나에게는 더 이상 아무 노래도 들리지 않는다.


* 다시 먼 산 언저리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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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썼던 해석인데 어제 문득 그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이 나서 올려보아요 랄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