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2009. 5. 10. 00:38

동양미학사 수업을 듣는데,
양계초가 "되든 안 되든 열심히 한다." "되지 않을 것을 알아도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자세가 외물에 대한 얽매임에서 벗어난 호걸의 자세라나.

그리고 공자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다 뭐 이런 이야기가 논어에 나오고,
불교에서도 반야경에 보면 "보살무주상보시"라고 하여, 보살은 현상(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라 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보너스가 뒤에 따라 붙었다.


수업 들으면서 속으로, 그럼 나는 벌써 성인군자인가 하는 생각을 문득. (笑)


내가 곧잘 이야기해온 게, 희망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뭔가를 할 때 희망이 있냐 없냐를 종종 이야기하지만,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되든 안 되든, 안 될 걸 알더라도, 결과가 어떻든 간에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느끼고 하는 일이 있는데, 그런 것이야말로 내가 살면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란 것.

나는 정말, 특히 운동을 하면서, "희망"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것은, 맘에 안 든다. (특정단체에 대한 악감정에서는 아니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다. 희망이 있어서 운동을 한다는 건 약하다.
우리가 살다보면, 운동을 하다보면 희망을 지지하는 근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되든 안 되든, 희망이 있든 없든, 가능성이 보이든 안 보이든 하는 게 정말로 사는 것이다.
절망하고 절망해서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희망이 있든 없든 걸어가는 것이다.

희망이나 결과에 좌우되지 않고,
내 존재 자체가 지시하는 방향, 욕망, 의지로 움직인다.


그래서 스파이럴:추리의 띠에서는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
"배신도 어둠도 다 알면서도 나아가는 자만이 누구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어."


이런 것에 대해서 어느 녀석은 희망을 내면화한 것 아니냐,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냥 웃어넘기긴 했으나,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희망이 있냐 없냐, 내면화되어 있냐 아니냐, 뭐 그런 것을 넘어선 자세라는 느낌일까.
우리는 곧잘 희망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사실 우리는 희망을 초월해야 한다.

어쨌건 공자나 부처도 지지하는 삶의 자세다. 후훗.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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