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까칠하고 비좁은 욕조 속에서

공현 2008. 1. 13. 11:45
까칠하고 비좁은 욕조 속에서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 하나요?"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 『데미안』

 
욕조는 작다
나는 크다

욕조는
나를 거부하는 미끄럽고 까칠한 물
로 되어있고
그 안에 나를 우겨넣는다
추억 속에 내 몸을 구겨넣는다
조그만 나를 받아주던 부드러운 물은
몇 년 새에 까칠하게 건조한 물이 되었고
나는 눈이 따가워 바둥거린다

벌거벗고 웅크린 몸
균형이 맞지 않는
자신을 구겨버린 웅크린 예술에
인간의 이름조차 붙여줄 수 없어서
희미하게 "무제"라 써붙이고
나는 눈을 뜨지 못한다

작은 욕조보다는
대중 목욕탕이 어울릴 만큼
늘어난 몸뚱아리
이젠 다리를 구부리고 구겨넣을 수도 없는
여기저기 붉게 얽은 회색 몸뚱아리

네가 욕실 문을 두드리며
너무 오래 욕실을 쓴다고 투덜거리고
종소리 종소리 맞추지 않은 알람시계 소리

나는 커다란 글씨가 수놓아진
부드러운 수건으로 까칠한 물을 닦아내며
내 이름을 고민한다

욕조에 번지는 파문으로
추억은 깨져나가고
나는 내 이름을 고민하며 되도록 천천히
옷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