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의 놀 권리,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조건, 그리고 게임 셧다운제

공현 2011. 2. 17. 10:10



청소년의 놀 권리,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조건,

그리고 게임 셧다운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놀이로서의 게임

  이제 나도 청소년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민망한 이십대중반, 스물네살이 되긴 했지만, 그나마 청소년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이야기해보자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게임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호들갑을 떠는 어른들이 다소 생뚱맞게 느껴진다. 게임은 청소년들의 삶에서 하나의 문화이자 일상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시절엔 쉬는 시간마다 학교 컴퓨터에 붙어 앉아서 ‘피카츄 배구’를 하며 반 최강자를 가렸었고, 방과 후 친구들과 단골로 놀러가는 곳은 PC방이었다. 순발력이 떨어져서 ‘레인보우식스’나 ‘서든어택’은 못해봤지만 ‘스타크래프트’라면 이런 나도 해봤고, 이른바 MMORPG라면 ‘어둠의 나라’나 ‘마비노기’도 꽤 오랫동안 플레이 했었다. 지금도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긴 회의를 하다가 중간에 20분쯤 쉬는 시간을 가지면 사무실 컴퓨터에서 같이 ‘카트라이더’나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며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그럼 게임의 순기능은 뭔가요?” 나는 솔직히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 컴퓨터 게임이 주된 놀이 문화가 아니었던 시절, 아무도 청소년들이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을 하고 노는 것에 대해서 순간적인 판단력과 관찰력과 추리력, 그리고 체력을 길러주는 운동이라는 식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었다. 아무도 ‘말뚝박기’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비교하는 표를 만들거나 토론하지 않았었다. 꼭 이런 놀이들을 불러들이지 않더라도, 아무도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에게 영화 감상의 순기능을 굳이 따져묻지 않는다. 물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게임과 숨바꼭질과 영화감상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게임의 경우에만 그 “순기능”을 정당화할 것을 요구받는 것은 다소 부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게임을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섭고 해로운 어떤 것으로 미리 전제해놓는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는 취급을 받는 것 같지만, 엄연히 한국이 1991년에 가입한 국제인권규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제31조
1.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2. 당사국은 문화적∙예술적 활동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증진하며, 문화, 예술, 오락 및 여가활동을 위해 적절하고 균등한 기회 제공을 촉진해야 한다.

  즉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청소년들에게 ‘놀 권리’를 하나의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청소년들에 관련된 인권 기준의 경우 이 권리는 문화적 권리나 여가권 등으로 표현된다.) 게임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위한 하나의 놀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놀 권리가 사람이 사랍답게 살기 위한 인권의 일종이라는 것,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에 더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라는 것 역시 인정하자.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며 노는 것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더 바람직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들이 처한 조건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게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온라인게임이 쉽게 대중화되고 ‘과몰입’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들이 관련되어 있다.

  우선 그 첫 번째는 시간적 조건이다. 세계적으로 긴 학습시간과 높은 사교육 비율은 청소년들이 여가시간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중간중간에 20분 30분 정도의 ‘짬’을 제외하면 밤늦게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다수의 청소년들이 집에 와서 바로 컴퓨터를 켜고 짧은 시간만에 할 수 있는 게임을 최선의 놀이로 택하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두 번째는 공간적 조건이다. 여기에서 공간적이라는 것은 청소년들이 놀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OECD 국가 중에 아동복지비 하위권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지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즐기며 놀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청소년수련관도 전체 청소년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학원 간판은 거리를 메우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놀고 즐길 문화를 제공하는 공공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있더라도 시간적 이유나 입시 문제 등등 여러 이유로 청소년들이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세 번째는 경제적 조건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경제력을 가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경제적으로 거의 전적으로 ‘친권자’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노동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제약이 많으며 그 임금음 대단히 낮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놀이를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이기 어렵고 저렴한 비용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온라인이나 게임의 세계로 수요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는 한국에서 콘솔게임이나 패키지게임은 많이 죽고, 일단 처음 시작할 때는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며 돈을 쓰더라도 몇 백원 몇 천원 수준으로 조금씩만 쓰면 되는 온라인게임이 득세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심리적 조건이다. 입시나 장래 진로에 대한 불안 등 한국 사회에서 현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다. 또한 청소년들은 사회적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의미있는 한 주체로서의 삶이 막혀 있다. 실제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많은 것을 억압당할수록, 그리고 사회 활동에 의미있게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할수록, 게임과 같은 가상의 컨텐츠에 몰입하기 쉽다. 얼마 전에도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등과 공격적 행동이나 일탈 행동 사이의 연관관계를 밝힌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스트레스와 게임 몰입 사이의 연관관계 역시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유엔사회권위원회 역시 한국의 청소년들이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과 주의력결핍장애가 증가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권고한 바 있다. 단순히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 전반, 청소년들의 삶의 질 전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 논란이 되는 와중에, 항상 논의의 중심에서 빠져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이다. 사실 앞서 서술한 청소년들이 처해있는 조건의 문제 또한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얼마나 시간적․공간적․경제적․사회적으로 자기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일부 게임 과몰입 등의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청소년들의 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 놀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규제하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적절한 방식일까? 또한 게임과몰입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 맞춘 대응이 아니라 나이(16세)를 기준으로 모든 청소년들에 대한 셧다운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 역시 모든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을 경시한 처사인 건 아닐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논의에서 청소년들의 삶 전반에 대한 상황을 좀 더 이야기해볼 필요를 느끼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