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 해당되는 글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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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11.17 [논평] 청소년단체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의 활동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입장에 대해
  3. 2011.07.18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 (2)
  4. 2011.06.09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5. 2011.03.13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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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09.09.12 학생의 성폭력에서 교권 말고 다른 게 읽히거든? -_-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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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9. 4. 14:47

똥 같은 소리라도 말할 자유는 있다!


모두가 입 다무는 학교가 아니라 모두가 입을 여는 학교를 만들자.


- 평택 박모 교사의 '종북척결' 활동 사건 등에 대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입장. -

 


평택의 박모 교사가  “종북척결” 등의 주장과 활동을 인터넷 게시판, SNS 등에서 공개적으로 펼치고, 학생들이 “종북척결, 종북검사구속, 촛불총장구속” 같은 문구의 피켓을 든 인증샷을 올리는 등의 행동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 교사와 학생들이 정치 활동을 한 것이므로 징계 또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교육청이 조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 우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청소년,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입장이고, 그와 관련해서 교사 등의 정치 활동의 자유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사의 정치 활동의 자유 역시 ‘미성숙한 학생들이 정치적 의견에 노출되면 안 된다’는 식의 핑계로 금지당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따라서, 우리는 박모 교사의 견해가 아주 문제가 많고 비판받을 만하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박모 교사에 대해 정치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자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다.

 

평택의 박모 교사의 언행에는 우리가 보기에도 문제점이 한두서너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 여럿을 함부로 “종북빨갱이”라 이름 붙이며 국가정보원이 “잡아 반 죽여서 보안법으로 처형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하는 등, 도저히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바람직한 시민이라고 할 수 없는 반인권적․반민주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SNS계정에 게시된 만화에선 “얘들아, 정의를 위해서 쓰는 주먹은 폭력이 아니다! 국가의 적과 싸우지 않는 자는 이 나라에서 살 자격이 없는 국민이다! 잊지 마라!! 특히! 남자는 비겁하게 살면 안됀다! 그건 남자가 아니다!”와 같은 문구가 있는데, 이는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 폭력에 대한 부당한 옹호, 가부장적 성역할 의식 등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디서부터 비판을 해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시국선언에 참여한 청소년들도 뭘 알겠느냐. 알고서 했다면 인정을 해줘야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몰려나간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이 아닌 어른들이 생각을 뒤집어씌운 것이다.”라고 밝히는 등,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꼰대성을 드러냈다. 자신과 같이 “종북척결” 등의 문구를 들고 사진을 찍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과 다른 의견의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뭘 알겠느냐.”라고 하는 편리한 이중잣대는 비웃어주고 싶을 만큼 비겁하다. 또한 그가 자신의 활동을 “대한민국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라고 하고 안보교육, 정체성 교육, 국가관 확립, 애국활동 등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 때, 그는 자신의 활동이 정치 활동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은연중에 자신의 의견을 절대적인 가치로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참으로 위험한 사고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반인권적․반민주적인 데다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도 부정적이고 자신의 활동을 정치 활동으로 생각지도 않는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의 정치 활동의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떨떠름한 노릇이다. 논평을 내면서도 입맛이 씁쓸하고 뒷목이 땡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박모 교사에 대한 징계나 처벌에는 반대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단지 정치적 의견을 밝히고 정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어떤 불이익을 받는 것에 반대한다. 그를 조사하고자 한다면 그가 “종북” 낙인을 찍고 막말을 한 사람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 또는 차별의 문제로 조사를 하거나, 아니면 그가 학생들과 정치적 활동을 함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어떤 강요나 강압은 없었는지를 살피는 차원에서 해야 할 것이다. 박모 교사와 같이 인증샷을 찍고 활동을 한 학생들 역시 정치 활동을 이유로 어떤 징계나 처벌을 받아선 안 된다. 학생과 청소년은 물론이요, 교사 역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각종 정치 활동의 자유를 인권으로서 보장받아야 한다.

 

물론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좌파적인 의견을 밝히고 관련된 활동을 한 교사들은 징계를 받고 처벌을 당하는 현실에서, 형평성을 들며 박모 교사 등 정권에 우호적이고 우파적인 활동을 하는 교사들도 징계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모두가 징계를 당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공평한 침해’는 학교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만들어진 교육 체제와 교과서만 따르는 교사들과 학생들만을 용인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부당한 인권 침해에 대한 저항은 “쟤도 못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모두가 할 수 있게 보장하라!”라는 자세로 이루어져야 옳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동안 정부가 시국선언 등을 했다거나 정치적 활동, 발언을 했다고 징계하고 처벌한 모든 교사들에게 사과하고 징계와 처벌을 취소해야 하며, 교사와 학생 등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도록 생각과 자세를 고쳐먹고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라고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정치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정치적 의견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활동을 할 자유는 이 사회에 사는 누구나 당연한 인권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학교라고 해서, 교사와 학생이라고 해서 여기에서 제외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학교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이 오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교육해야 한다. 모두가 입을 닫는 학교보다는,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오가는 것이 바람직한 학교라 할 것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와 문화를 만듦으로써 이룰 일이다. 이렇게 제대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뿌리 내린 교육 속에서는 박모 교사처럼 반민주적․반인권적 의견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경우도 줄어들 것이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많은 반론에 부딪혀 억제될 것이다. 학생들 역시 자율적인 경험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 세계관과 정치적 생각을 확립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학교를 침묵의 공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시끌벅적한 교육의 광장으로 만들어라. 그것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위해 그리고 서로 좀 말이 통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2013년 8월 30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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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7. 16:44
[논평] 청소년단체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의 활동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입장에 대해



  청소년단체가 무슨 활동만 하면 '배후'에 뭐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나 '청소년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거의 공식이 된 것 같다. 며칠 전, 전교조의 기관지인 <교육희망>에 한 청소년단체의 운영, '배후'에 관한 의혹 제기 기사가 실렸고 해당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됐다. 아울러 전국교직원노동조합(다음부터 전교조)은 "청소년단체 이용한 전교조 죽이기 음모 즉각 중단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교사들의 수업 중 개인 의견을 담은 발언을 녹음해서 "정치 편향 교육"이라며 고발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다음부터 한청연)이라는 단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굳이 쓰자니 종이가 아까울 정도로 당연하게도, 우리는 한청연의 이 같은 활동에 비판적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편향되지 않은 교육이란 불가능하며, 정치적 중립이란 많은 경우 보수적인 태도를 의미하곤 한다. 예컨대 지금 학교에서 입시경쟁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되지만, 적극적으로 입시교육을 하는 것은 비정치적인 것, 정치적 중립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정치적 태도란 지금의 사회·정치·교육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 정치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교사도 학생도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교실에서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한청연의 이번 활동과 같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교사들의 의견 표현을 사냥하듯이 고발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교사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은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인권 기준이고 민주주의의 당연한 가치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한청연이 이러한 활동을 그만둘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한청연의 활동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우리는 관련 기사, 특히 전교조의 성명에서 보이는 심각한 편견에 대해 문제제기하고자 한다. 청소년단체의 활동을 놓고 "어른들의 정치이념놀이에 …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 누군가가 "청소년단체를 이용"하고 있다거나, "청소년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고 하는 것 등은, 청소년들의 사회․정치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에 편승하는 것이고, 청소년단체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회계나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후원을 받은 적이 있다거나 어디서 지원한다는 의혹이 있더라는 '카더라' 식 내용만으로 '이용'이니 '꼭두각시'니 표현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능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꼰대질'에는 좌우가 없고 상하만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전교조가 아이들을 조종해서 나오게 했다는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의 발언이나 보수․수구언론들의 무책임한 발언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청연의 활동에 대해 반대하고 비판하려면, 단체 대 단체로서 당당하게 문제제기하고 대응하라. 청소년단체든 어떤 단체든, 그 단체가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고 다른 단체나 정부의 조종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려면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청소년들의 활동은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이용하는 것이라는 편견에 편승하는 것은, 주체적으로 사회․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모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만든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사회․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주체이며 누가 배후에서 청소년단체를 조종하고 있을 거라는 식의 무리한 예단은, 누구든 함부로 내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전교조 등이 이러한 발언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2011년 11월 17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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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7. 18. 12:36
안양교육지원청에서 혁신학교 부장교사들 대상으로 하는 학생인권 교육에 원고로 낸 거예욤
교사들용으로 쓴 거라 좀 많이 부드럽지요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

실내화 이야기

경 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 강원도 등에서는 체벌금지와 '생활지도 혁신'이 한창 이야기되던 중, 올해 2월 교사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교사 집담회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 입 열다>였다. 학생인권이 교권을 무너뜨린다고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교사들, 그와는 다른 학교 현실을 체험한 교사들이 모여서 이야기한 자리였다.
여러 가지 경험담과 에피소드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한 교사가 들려준 자기 학교의 실내화 규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실내화를 신고 밖에 나가는 등의 문제는 두발규제 못지않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에서 '전쟁'을 벌이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왔다. 그러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복장규제'를 바꾸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그 학교에서는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고 난 이후에 오히려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학생들은 더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냥 단속을 중단하기만 했는데 학생들의 실내화 출입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실내화를 신고 밖에 드나들면 얼마나 위생상 문제가 있고 병균을 옮기게 되고 먼지가 나게 되는지 몇 차례 설명하고 교육한 결과였다. 실내화를 신고 드나들면 안 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1 -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생활영역

번호

벌점(지도) 내용

점수

용의 복장

1

두발불량(규정 외 두발상태, 염색, 퍼머)

2

2

용의규정 위반(화장, 각종 액세서리 : 반지, 귀걸이, 피어싱 등)

3

3

복장규정 위반(교복 변형 개조 착용: 치마, 조끼, 바지, 브라우스, 교복 미착용 등)

5

4

교표 및 명찰 미부착

2

5

기타 규정 위반(학생용 가방, 스타킹, 겉옷 등)

1

준법

6

무단 지각(정문 08:30분 이후 등교), 수업지각,

무단 결과, 무단조퇴

2

7

무단결석(1회)/ 장기해외 체류에 의한 결석 제외

4

8

교내․외 행사 및 단체 활동 무단 불참

2

9

청소 및 주번활동에 지속적으로 불참

2

10

월담 행위, 무단외출

4

11

학생 출입 금지 장소 출입

5

12

사행성 오락(카드, 화투, 동전치기 등)

3

13

음란물 반입․탐독․시청(만화, 사진, 잡지, 비디오, 인터넷 등)

3

14

교내에서 불건전한 이성교재(포옹, 입맞춤, 무릎위에 앉기, 남여 같은 화장실 이용하기)

4

15

술, 담배 소지 및 교내 반입/음주 또는 흡연

7

16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 하거나 폭주

7

예절 및 공중도덕

17

실내소란(뛰기, 공놀이, 말 타기 놀이, 고성방가, 휘바람 등)

2

18

껌․침뱉기, 오물, 쓰레기 버리기, 낙서 행위

3

19

교사 또는 어른에게 불손한 언행

7

20

실내화 및 실외화 미구분 착용

2

21

급우 또는 선후배에게 욕설, 후배에게 심부름

1

22

교내외 공공기물 훼손 및 파손

7

23

실내 음식물 관련 쓰레기 반입 및 취식보행

1

학습활동

24

수업분위기 저해

(취침, 지시거부, 늦게 입실, 껌, 과자 등 음식물 섭취 등)

3

25

수업시간 전자기기 무단 사용(mp3, 휴대폰 등)

3

기 타

26

상기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

2

(서울 모중학교 벌점표)

이 실내화 이야기에는 학생인권이 학교를 향해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녹아 있다. 먼저, 학생인권은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학교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건 학생들을 처벌할 만한 '문제행동'인 것일까?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학생들이 교내에서 연애를 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교사의 의견과 다른 자기 의견을 거칠게든 부드럽게든 표출하는 것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 대한 비판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는 분명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문제행동'으로 규정해온 경향이 있다. 권장하거나 교육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금지와 처벌로 일관해오는가 하면, 불합리한 규칙에 따라서 왜 '문제행동'인지 알 수 없게 '문제행동'이 되어버리고 만 것도 있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부당한 처벌에 대해 항의하는 것 자체를 '문제행동'으로 규정하고, 교사의 지시에 불응한다거나 말대답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벌점을 부과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교가 규정하고 있는 '문제행동'의 기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예컨대 학생․청소년들의 금기로 여겨지는 '흡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고 또 학교가 금연 구역이라는 면에서 학교내 흡연이 일단 문제행동이라고 치더라도, 과연 흡연은 그렇게 강력한 처벌과 중징계를 받아야만 하는 '문제행동'인 걸까? 많은 학교들이 흡연을 거의 학교내 폭력이나 부정행위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고, 흡연이 3~4회 이상 적발되면 바로 퇴학이라는 학교들도 있을 지경이다. 또 다른 예로, 어떤 학교의 규정을 보면 애인과 학교내에서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행위가 약물 사용이나 도박 등과 비슷한 수위의 '문제행동'으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예시한 한 중학교의 벌점기준에서도, '복장규정 위반'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같이 책임져야 할 청소 활동 등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것보다도 더 많은 벌점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이런 기준들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처럼 지금까지 학교가 굳게 지켜온 '문제행동'의 기준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는 일이다. 인권의 기준에 맞게 폭력이나 차별 등의 '문제행동'에는 좀 더 엄격해지고, 대신에 불합리하고 인권침해적인 규칙에 따라 '문제행동'으로 취급되어왔던 것들을 '문제행동'이 아닌 것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행동'을 정하는 기준을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가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정하자는 것이다. '문제행동'을 단지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그 맥락과 이유를 같이 살피자는 것이다. 학생들을 보는 눈을 바꿀 때, '실내화 출입' 문제를 처벌해야 할 문제행동이 아니라 학생들과 소통해야 할 문제로 이해할 때, 학생들이 좀 더 존중받는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2 -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학 생인권이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교육하고 소통해야 하는가?"이다. 설령 교사나 학교가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도가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학생에게 이를 전달하고 교육하는 방식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실내화를 신고 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단속과 처벌로 교육하려 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고 설득할 때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친구를 괴롭히거나 때린 학생들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때린다면, 과연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가르침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이더라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반성하는 마음에서 쓰는 반성문이 아니라 교사가 요구하는 대로 강제적으로 쓰는 반성문은 과연 교육적일까?
학생들이 교사가 하는 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교육학으로 말하면 '라포'라고 해야 할까.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학생이 모욕감이나 거부감, 두려움부터 느끼고 들어간다면 이미 그 관계는 교육적인 작용이 일어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버리고 만다. 교사가 불공정한 처벌이나 대우를 한다거나 불합리한 규칙을 힘으로 강요하는 권력자처럼 보인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넘쳐나는 학생들의 '반성문 작성 노하우' 등을 보면 그런 관계에서 강요된 반성문이 얼마나 비교육적, 반교육적일 수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학교가 학생들의 소지품을 불시 검사할 때 학생들은 음주나 흡연이 나쁜 것이라는 배움을 얻을까 아니면 학교가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모멸감을 느낄까?
또한 그동안 학교에서 '문제행동'은 단지 그 행동으로만 받아들여질 때가 많았다. 지각을 자주 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왜 자주 지각을 하는지, 아침잠이 많은지, 집이 먼지, 교통편이 불편한지, 생활습관은 어떻게 되는지 아니면 학교에 오기가 싫은 건지 차근차근 살펴보고 함께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교문에서 지각한 학생들을 떼로 세워놓고 벌을 주는 데 바빴다. 흡연을 하는 이유가 주변 친구들의 영향인지 학교가 흡연을 금지하고 단속하는 것 때문에 생겨난 반발심이나 영웅심리인지 다른 어떤 스트레스가 있거나 가정 환경의 영향이 있는지 살피기보다는 흡연 학생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기에 급급했다. 법정에서라면 사람이 아니라 '행위'가 먼저겠지만, 교육에서는 '사람'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행동'을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사람'인 학생의 상황으로 보고 학생과 '대화'를 먼저 하자는 제안이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일방적인 '명령'보다는 상호적인 '대화'가 더 교육적일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할 때는 꼭 그런 걸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생활지도/교육'(최근에 서울시교육청 등은 '생활지도'라는 말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과정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를 '생활교육'으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을 할 때, '인성/사회성 교육'을 할 때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만주 교사(경기 흥덕고) 입학식 할 때 아이들을 만났는데 눈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더라.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의심을 가진 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던 생활규정을, 용의복장규정을 빼고 학생들의 인권, 권리를 보장 쪽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이다 보니 진학의 문제나 학력의 문제가 역시 주요 관심사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진학문제가 진로문제’라는 거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자기 비전을 갖고 또 자존감을 지키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성취를 높이는 역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입하려고 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교가 진짜 우리를 생각해준다는 믿음 갖고 아이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2011-02-17))

용인 흥덕고등학교 공동체 생활규범
원칙 학생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공동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한다/ 참여, 소통, 희망, 신뢰의 배움 공동체 가치를 구현한다.

각 구성원의 생활원칙
 교사 : 체벌을 절대 하지 않는다. 욕설, 비속어, 증오발언 등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등
 학부모 : 내 아이 중심에서 벗어난다.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연계성을 가지도록 한다 등
 학생: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함께 성장한다(기다리기보다는 협조를 청한다/ 도와주기보다는 함께 해결한다)

인권친화적 학생생활지도 방향
 학생생활인권규정 마련의 민주성, 합리성 추구

유의사항
 – 학생인권 존중 및 교사-학생 간 신뢰 구축 : 순간 감정 조절하기/ 교무실 호출 안 하기(벤치, 함께 걷기 등 활용)/ 무릎 꿇리기 안 하기/ 증오발언 안 하기/ 다수 앞에서 모욕주지 않기
 - 지도 전에 먼저 상담하기


물 론 이런 시도가 처음부터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에 중점을 둔 혁신학교인 용인 흥덕고등학교의 교사 역시 처음에 학생들을 만났을 때 학생들의 불신과 의심, 분노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과 교사 사이에 그러한 존중과 신뢰가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가 변화하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학교와 교사를 불신하고 삐딱선을 탈 수도 있다. 그동안 자신들을 때려왔던 교사에게 체벌금지 됐는데 정말 안 때릴까? 하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며 "때려보세요." 하며 인내심을 시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학생인권 존중의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왔던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존중과 신뢰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은 학생과 교사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싹트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이다.


교육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학 생인권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학생인권조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많은 어려움들이 얽혀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그런 어려움들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입시제도의 문제, 그밖에 여러 교실환경의 문제(학생인권조례는 교육환경 개선 또한 '인권'이라고 보고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나 중앙정부의 의지와 예산 편성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업 중에 떠들고 자는 애가 수업에 참여하게 할 방법"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도 그런 것에 대한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학교가 학생인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고 해서 입시제도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처방안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시제도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을지언정. 또한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체벌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자거나 떠드는 걸, 눈치를 보면서 덜하게 될 뿐.
학생인권조례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중에는 어떤 것은 수업 방식을 바꿈으로써 좀 나아질 수도 있고, 어떤 것은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가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단순히 교육 제도가 아니라 경제 구조나 불평등의 문제가 개선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문제도 있다. 입시제도에서 '승자'가 될 희망이 별로 없는 학생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안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가정에서부터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학생들, 학교 수업이 시간 낭비이고 지루하기만 한 학생들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런 현실들은 학교 현장에서 총체적인 '교육불가능' 상황을 낳고 있다. 이른바 '교실붕괴'는 학생인권 보장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이 무의미하고 괴로운 일이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좀 더 학교 생활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학교에 좀 더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교실붕괴'를 막으려고 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리 없다.
그 래서 교사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을 놓고서 안 그래도 지금도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대신에, 그 힘든 걸 정부가 사회가 같이 해결해줘야 하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교사들을 교육할 기회가 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학생인권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교사로서 학교 생활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 먼저 적고 이야기해보자고 했더니 "두발자유화금지"가 교사로서 필요하다는 답들이 나왔다. 교사로서 교육하는 데 필요한 게 두발자유화금지라니, 지나치게 소박할 뿐더러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는 느낌이다. 교사들이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혁신학교도 그래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보적 관계가 된다. 국제적으로도 교사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공인된 것이다.

"교사는 인권에 기반한 학교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자이다. … 어떤 교육 개혁도 교사의 능동적인 참여와 주인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단계의 교육체계에서 교사는 존중받고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 채택, 다카르(Dakar) 행동계획 69-70항)

학 생인권에 관한 토론회에서 한 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교사의 역할은 둘 중 하나다. 학생의 편에 설 것이냐.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에 설 것이냐. 그 둘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의 편보다는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을 선택해왔다. 아니, 적어도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런 교사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학생들의 비유처럼, 교사가 감옥의 '간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더 멀리 내다봐서 교사들에게, 학생들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가 아니라 학생들의 옹호자, 지원자가 되어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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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07.19 01:52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6. 9. 19:5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4498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8431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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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학생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권을 위해 - 김상곤 4
학생인권을 넘어 인간으로 살아가기 - 이계삼 6

1부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질문들

2부 학생인권 쟁점 탐구
1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36
2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64
3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이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88
4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116
5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138
6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158
7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가? 180
8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202

3부 학생인권 논리 탐구
1 성숙은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가? - '미성숙의 갑옷'을 벗는다는 것 238
2 보호는 안전망인가? 올가미인가? - 청소년 보호주의 넘어서기 250
3 학생인권, 학생과 교사의 다툼인가? -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 찾기 262
4 인권이 살면 규칙이 죽는가? - '법과 규칙이 살아 있는 학교'가 놓친 질문들 273
5 탯줄은 몇 살에 끊기나? - 학생인권, 가족과 부모의 벽 넘기 283
6 학교는 어떻게 '찌질이'를 만드나? - 학교 안 차별 들여다보기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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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간됐네요 ^^;
주문도 가능하고... 아마 좀 큰 서점에는 모두 깔렸을 겁니다
문제집, 학습지 등을 주로 내던 한겨레에듀가 교양도서로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낸 거라서...
문제집, 학습지 등팔던 루트로 학교 앞 서점 같은 데도 많이 들어갔으려나 -ㅁ-;



좀 더 자세한 소개 글 같은 거는 다음에 써서 올릴게요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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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13. 22:22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시험을 위한 시험, 등수를 위한 시험, 없애버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을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으로!
● 줄 세우기가 목적인 시험 대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진단’과 ‘평가’를!


여러분들은 일 년에 시험을 몇 번 치시나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모의고사, 수능까지. 그 외에도 때에 따라 쪽지시험을 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매주 주간고사나 월말고사를 치기도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적게는 일 년에 네다섯 번, 많게는 일 년에 스무 번도 넘게 칩니다. 대체로 한 달에 두세 번은 시험을 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날짜만 기다리다보면 금세 졸업을 하는 게 학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 년에도 골백번씩 치다보면 마치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중간기말고사와 ‘학교RPG’의 최종 스테이지인 ‘수능’을 치기 위해서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이건 시험에 나오니까 꼭 알아둬”라든지 “이 부분은 수능에서 거의 안 다루니까 알아서 읽어봐”라는 말씀을 하기도 하십니다. 시험에 나오니까 중요한 걸까요, 중요하니까 시험에 나오는 걸까요? 그 ‘중요하다는 것’은 뭘 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까요? 정말 헷갈리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교육은 마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를 쓰는 게 아니라, 냄비를 쓰기 위해 라면을 끓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만약 교육의 목적과 수단의 앞뒤가 제대로 맞는 얘기가 되려고 한다면, 배운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점수를 더 받으려고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나 골치아픈 것이 되게 만드는 시험은 아니어야 합니다. 시험을 안 쳐도,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것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시험을 치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면, 시험범위에 맞춰 진도에 쫓기게 되어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곤해지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또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은 교과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밑줄을 치고, 읽으면서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일 텐데도 대충 훑어보고 지나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또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과 같이 단순히 성적을 내서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부분만큼 배웠을 때에 그 부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가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복습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처럼 성적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거나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또 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매우 슬픈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시험 하나 없앤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말하는 지금의 교육이 가진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등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경쟁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평준화한다든지,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제도들이 마련돼야 하겠지요. 이 부분들은 <실종신고>의 다른 요구를 소개한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시험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아요!



입시경쟁.학벌 없는 사회, 대학 안 가도 되는 세상!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 명문고, 명문대 가는 건 모두의 목표일 순 없다! 학교 줄세우기 NO! 획일적 입시경쟁 NO!

● 내가 나온 학교가 내 가치를 결정하진 않는다! 학벌 학력 차별 금지!

● 대학 안 나와도 모두가 하고픈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라!



"먼저 대학이나 가라." "대학 안 나오면 알바, 비정규직밖에 못한다." "명문대 가야 사람 대접 받는다." ……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들어본 고등학생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금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를 위해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 좋은 중학교에 가야 합니다. 학창시절 12년 동안 강요받는 인생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버린', '학교에서 내놓은' 취급을 받곤 합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상위권, 중상위권 학생들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목포에서 한 고등학생 분이 분신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 역시 성적 등 스트레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에 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이 사회에서 학벌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학벌은 수입이 높은 직업을 가지는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나 사회 상류층에서 좋은 학벌은 이제 ‘기본’이 되어 그 이외에 쌓아야 할 스펙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SKY대학을 졸업해도 정말 작은 부분까지 남보다 위로 올라서야만 그나마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SKY대학을 안 나와도, 고졸이어도, 잘 먹고 살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고, 학생들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 바둥거려야 합니다.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은 남을 생각하는 사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학벌을 가지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 보기 좋은 것, 부모가 시키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만 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큰 일이 나고 인생을 망칠 것처럼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12년을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단 하루 만에 수능이라는 방법으로 평가당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창시절 내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 남보다 위에 설 궁리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자발적이고 흥미 있는 것이 아닌, 불안에 밀려 꾸역꾸역 해야 하는 강제 노역으로 바뀝니다.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학벌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사회의 풍조를 바꾸려면 대학을 획일적으로 줄세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꿈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인생의 한 선택지일 뿐 절대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학생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은 서열 없이 평준화해서 어느 대학이라도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존중받고 원하는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학벌과 상관없이 노력하기만 하면 생활하기에 알맞은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한국처럼 대학진학율이 높은 사회, '대학 나오는 게 당연한'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모든 중고등학생들의 목표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인 것처럼 교육하는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_-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도 충분히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과 비슷하다는 미국이나 일본도, 대학에 진학할 뜻이 있는 학생들 외에 다수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목매달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안 나와도 된다고, 자기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학벌과 학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학생들이 먼저 오로지 좋은 학벌만을 향해 달리기를 강요하는 지금의 교육제도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한테 돈 좀 내놔!!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 화장실에 온수는 좀 나오게! 학교 시설 개선, 좀 더 쾌적한 학교를!

● 학급당 학생 수 줄이고 교직원을 더 뽑아서 좀 더 나은 교육을!

●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현, 나아가 미친 대학 등록금도 무상으로 ㄱㄱ!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교 시설 너무 좋다~"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물론 진짜로 시설도 좋고 번쩍번쩍한 학교도 있지만 그런 학교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냉난방도 제대로 안 해주는 학교, 따뜻한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학교, 탈의실이나 동아리실도 없는 학교, 운동장도 작거나 없는 학교, 급식이 형편없는 학교, 화장실이 낡거나 부족한 학교가 태반입니다. 심지어 밖에서 보이는 운동장이랑 외관은 엄청 좋아 보이게 꾸며놨는데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학교도 있습니다.

시설뿐만이 아닙니다. 별로 넓지도 않은 한 반에 30~40명의 학생들이 같이 생활해야 하고, 교사들의 수도 학생들과 진지하게 교류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 이런 시설, 이런 교육환경의 학교에 다니는 데 교재비, 교복비, 급식비 해서 얼마나 돈이 많이 드나요? 고등학교는 또 등록금을 1년에 4번, ·40만원, 50만원씩 내야 합니다. 헐 -_-

왜 그런지 이유는 뻔합니다. 한국 정부가 교육에 쓰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예산을 GDP(국내총생산. 그러니까 한국 안에서 1년 동안 총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느냐 하는 겁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의 6%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예산은 2009년에 GDP의 5.0% → 2011년 4.55%로,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 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안 좋은데, 정부에서는 돈 아낀다고 교사 채용도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핀란드,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학교 시설 등이 대체로 갖춰져 있어서 시설 마련에 돈을 크게 쓸 일이 없는데도 GDP 대비 5.5% 정도의 교육예산을 매년 쓰고 있습니다. 학교도 교실도 더 늘려야 하는 한국은 당연히 그보다 돈을 더 써야겠죠?)


어른들은 맨날 우리에게 너희는 미래의 새싹이고 잘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들이는 노력을 보면 그런 건 다 거짓말이거나, 우리들을 공부시키려는 낚시 같습니다. 우리를 진짜로 생각해주고 있다면 당연히 교육에 돈을 좀 더 들여야 하지 않나요? 4대강 삽질할 돈, 좀만 빼서 학교 화장실에 따뜻한 물 좀 나오게 하고 급식 질 좋게 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부동산 투기하는 어른들한테 세금을 좀 더 걷어서라도 고등학교 등록금을 초등학교, 중학교처럼 공짜로 하고, 미친 듯이 높은 대학 등록금도 낮춰서 공짜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 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한 반 20명쯤 학생들과 2명의 교사가 수업을 운영하곤 한다고 합니다.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한 반 20명에 교사 1명, 아니면 한 반 30명에 교사 2명 정도는 되어야 좀 나은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돈이 없다는 건 핑계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10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개드립에 따르면 한국은 G20을 개최한 선진국입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좀 더 쾌적한 학교에서 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학생들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교실 환경, 모든 학생들을 위한 무상교육을. 단순히 경제규모가 얼마다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교육, 좋은 교육환경이라는 면에서 만족하고 자랑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죠?






내가 다니는 학교운영, 내가 결정한다!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 

● 생활규정부터 수학여행 일정까지, 학교운영에 학생참여권 보장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데, 왜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걸까요? 작년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한 명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연설문을 썼다고 학교가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주었지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의 체벌실태를 고발한 신문을 발행하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았습니다. 성적이 낮으면 학생회장, 학급회장(반장)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이래놓고도 학교는 뻔뻔하게도 민주시민을 양성한다고 자처합니다. 이렇게 반민주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까요? 학교 내에서의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이나 주장을 했다고 압력을 주거나, 징계를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행위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선거 출마에 자격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 안에서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학생회는 할 수 없는 것만 왜 이리 가득한 걸까요? 화장실에 휴지 놓는 것조차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학생회가 노골적으로 학생들의 권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요.


학생회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규정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런 식으로 하는게 좋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수학여행은 어느 장소로 언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예산 등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학부모, 교사 등과 함께 동등한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곳은 아니었죠.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요구하고 외쳤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나서서 권력을 쟁취하고 학교민주주의를 요구할 때입니다.



학생도 인간이다! 두발자유 등 인권 보장!

- 규제와 폭력 대신 존중과 소통을


● 두발복장자유화, 강제자율․보충학습, 소지품 압수 중단!
● 성적․외모․돈․장애․성 등에 의한 차별 중단!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 학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체벌금지, 언어폭력 금지, 벌점제 폐지! 학생을 무시하고 통제하고 패는 교육이 아니라 존중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을!
●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생인권 침해 합법화 방안, 갖다 버려!
●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

학생도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학생도 사람으로서의 권리,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지금도 많은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두발규제, 복장규제, 언어폭력 등 많은 폭력과 반인권적인 통제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여온 끝에, 그리고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에서는 체벌금지가 발표되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다소 개선된 학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대다수 중고등학교에 두발복장규제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강제적으로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시키고 아침 7시, 7시 반까지 등교하게 하는 학교들도 많습니다. 수업시간 중 사용만 약속을 만들고 조심하게 하면 될 것을 휴대전화, 음악기기, 전자기기, 책 등을 아예 금지하거나 압수해버리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쇠파이프로 죽도로 목도로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오리걸음’ 같은 체벌을 하는 학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차별하고, 벌점을 통해 생활 하나하나까지 점수로 규제하며 학교에서 내쫓는 모습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자율화’라며 학생인권 문제를 학교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이젠 체벌을 허용한다고 하고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면서 학생인권 침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인권은 학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모든 학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선입니다. 지방자치가 각 지역에서 살인, 강도, 폭행을 합법화할지 처벌할지 알아서 하게 하는 게 아니듯이, 인권은 학교장의 손에 그렇게 맡겨질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과 같은 모든 학교가 지키게 할 제도가 필요한 겁니다.

학교는 사육이 아닌 교육을 해야 합니다. 교육은 고통이 아닌 소통이어야 합니다.

두들겨 패거나 벌점을 매기는 교육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 숨통 트이는 교육. 잘못을 하면 두들겨패거나 쫓아내는 게 아니라 잘못을 알게 하고 민주적, 합리적인 처벌과 예방을 하는 학교. 학생들을 같은 머리 같은 옷 안에 가둬두고 획일적인 성적으로 차별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다양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교육. 막말과 욕설이 아니라 서로 간의 존댓말과 친밀함, 예의가 있는 교실.

불가능하다구요? 꿈 같은 소리라구요? 최소한 학생도 인간이고 인격체라는 걸 인정하고, 두발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부터 보장해나가기 시작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도 인간이라는 그 당연한 진실을, 현실로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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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10. 11:57

내 손으로 만드는 학생인권조례...주민발의 현장을 가다

청소년, “인권조례 절실”...4월26일까지 8만2천명 서명필요

김도연 기자 2011.03.09 00:33


“차별과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에 동참해 주세요.”
쌀쌀한 바람이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던 8일 오후, 신촌역 앞에서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한 명이라도 더 붙잡아 서명을 받고 싶지만 3월답지 않게 추운 날씨 때문에 지나치는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기가 쉽지 않다. 주민발의 기한을 49일 남겨둔 이날, 여섯 시간 동안 거리에서 받은 서명지는 100여 장 남짓. 조례제정을 현실화하기 위한 서울시 유권자 1%, 8만 2천 명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때문에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서울본부)는 지난달 8일부터 매일같이 서울 곳곳을 돌며 거리 선전전과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 모임, 노동단체 집회, 강연, 문화공연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거리에서 서명을 요청하고, 시민들에게 직접 말을 걸어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과 의미를 설명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소년 활동가들이다. 이날도 신촌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한 일곱 명 중 다섯 명이 청소년이었다. 정작 자신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서명에 참여하지 못하면서도 이들이 서명을 받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울 시내를 누비는 이유는, 학생인권조례가 이들에게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청소년 활동가들은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다영은 거리 선전전 시작부터 대부분을 함께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 활동이 지금까지 했던 어떤 활동보다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해온 건 우리끼리 한 활동을 언론에 알리는 정도였는데, 이번 학생인권조례 선전전은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대일로 이야기하고 반응을 직접 보니까 되게 신기하다.”
그렇다고 결코 쉽지는 않다. 거리에 나선 청소년들은 시민들의 무관심에 무수히 상처받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막막한 벽을 느끼기도 한다.
다영은 “수모도 많이 겪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을 꺼냈다. “서명을 하고는 서명지를 찢어서 내 얼굴에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서명해 준다고는 서명지에 엑스를 찍찍 긋고 비웃으면서 가는 사람도 봤다. ‘애들은 맞아야 돼!’ 이런 분도 많이 봤고, 우리한테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짜 상처받는 건, 눈썹 완전 찡그리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슥’지나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한테 내가 기피대상이 된 게 너무너무 슬프더라.”

청소년 활동가 ‘매미’도 자신의 경험을 보탰다. “대학로에서 서명을 받는데 현직 교사라는 분과 10여 분간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이게(학생인권조례) 중요한지, 그 사람은 왜 이게 되면 안 되는지. 토론 끝에 그 사람이 ‘아, 그럴 수도 있군요’ 하더라. 그래서 ‘그럼 서명 해주시겠어요?’ 했더니 ‘근데 전 동의 안 해요’ 하고 가버리더라. 허무했다.”

청소년 활동가 ‘아즈’는 교대에서의 ‘쓰디쓴’ 경험을 잊지 못하는 듯 거듭 이야기 했다. 그는 “교대 졸업식에서 서명을 받는데, 교대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니들이 교생실습 한번 나가봐라, 애들은 맞으면서 키워내야지. 학생인권이 뭐가 중요하냐. 학생은 인권 없어도 돼’ 이러더라”며 “그런 사람들이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는 사실에 정말 충격 먹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들은 “청소년도 주민발의에 참여할 수 있고 효력이 있었으면 벌써 8만 명한테 서명 다 받고 주민발의도 통과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조례 발의자로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매미는 “지나가다 교복 입은 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에게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많은 관심을 보인다”며 “청소년을 위한 법인데 청소년이 직접 관여를 못할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을 향해 “본인이 청소년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 달라”는 ‘호소’를 하기도 했다.
아즈는 “인권조례 제정으로 자녀나 조카, 동생 등 학교 다니는 지인이 숙제 안 해왔다고 이십 대씩 맞는 일 없이, 좀 더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영도 “우리가 선전전을 할 때, ‘교육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 학교부터 인권적인 공간이 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하겠냐’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며 “학교 다닐 때 그 분노 그대로 가지고 가서 주민발의 서명운동으로 터뜨려 달라”고 강조했다.


서울본부는 지난해 10월 26일부터 시민들을 상대로 학생인권조례제정 서명작업을 펼쳐왔다. 서울시 유권자 1%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교육청은 조례안을 정식으로 시의회에 발의해야 하며, 서명 기한은 오는 4월 26일까지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제정 주민발의 청구인 서명용지는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홈페이지(www.sturightnow.net)에서 다운받을 수 있으며 만19세 이상 서울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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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5. 11:07





"학생인권으로 여는 행복교육의 오늘"

학생인권 시민 연속 특강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서울교육의 희망을 찾다”

    : 혁신학교-무상급식-학생인권조례에 담긴 교육철학, 학생의 인권과 자치 역량 강화가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 3/14(월) 오후 7시 / 서대문구청 강당


○ 이범희 용인 흥덕고 교장 “혁신학교와 학생을 존중하는 학교문화”

    : 수업혁신은 물론 학생 생활지도 혁신을 일구어내고 있는 흥덕고의 사례를 통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 3/16(수) 오후 7시 / 숭곡중학교 강당


 ○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폭력 트라우마와 체벌 없는 교육”

    : 학창시절 폭력의 경험이 우리 사회 문화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드는 기초로서 ‘체벌 없는 교육’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 3/22(화) 오전 10시 / 성동교육청 4층 강당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노동의 거울, 학교”

    : 학교는 노동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우리 사회 반(反)노동 문화는 학교의 역할과 상관 없나. 일하는 사람들이 자녀의 성적이 아닌 학교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를 살펴본다.

    : 3/23(수) 오후 7시 / 세종대  광개토관 105호


○ 백창우 시인/작곡가  “아이들 감성을 꽃피우는 노래 이야기”

    : 시와 노래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성을 꽃피게 만드는 부모와 교육의 역할을 짚어본다.

    : 3/31(목) 오전 10시 / 흥사단 3층 강당


 

 


  우리는 꿈꿉니다. 학생들이 모욕당하고 상처 입지 않는 교육을.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를 웃게 만드는 교육을. 저마다의 차이가 환대받고 우애를 익힐 수 있는 교육을. 인권과 민주주의를 익힐 수 있는 교육을.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존중하며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을.

  겨 울바람이 물러나고 꽁꽁 얼어붙었던 들판에서 새순이 움트듯, 이제 학생의 인권과 행복이 활짝 꽃피는 학교를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서울시 체벌금지 정책으로 시작된 학생인권 정책이 시민들과 교육 주체들의 열정과 지혜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배움과 나눔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함께해주세요.




□ 주최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 지역 교육․시민단체 공동 주최

□ 후원 :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 문의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02-582-8884/ 017-214-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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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1. 2. 17. 21:08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

“교사 체벌에 학생 응대했다면 ‘정당방위’ 맞잖아”

김도연 기자 2011.02.17 02:16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
경 기도의 학생인권조례 공포, 서울의 체벌금지 시행 이후 각종 매체들이 연일 ‘대드는 학생’ ‘매맞는 교사’ 등 ‘교사들의 수모’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이렇게 교사들의 ‘권리’에 관심 가졌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교권의 추락’을 우려했다.
‘체벌이 금지’된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권은 정말로 추락하고 있는가. 교사들이 직접 입을 열었다. 16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주최로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가 말하다’ 토론회에서 교사들은 가장 먼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왜곡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해냈다.


“‘체벌금지’를 ‘체벌금지’라 말했을 뿐인데 언론은 ‘싸가지 없다’ 하네”


이기규 교사(서울 수송초)
체벌 하던 교사들도 ‘금지’를 강조하니까 체벌 안 하고 있다. 그동안 다른 방법은 안 해왔으니까 힘들어하긴 한다. 그래도 생활지도를 아예 못하겠다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는 게 사실이다. 근데 언론은 생각이 좀 달랐던 거 같다. 체벌금지 시행 이후 나에게도 몇몇 기자들에게 전화가 왔었다. ‘체벌이 금지됐는데 학생지도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묻더라. 그때마다 별 문제 없다고 답하면서 우리학교 사정을 설명해드렸는데 그들이 원하는 말이 아니었던지 한 번도 인용되지는 않더라.


조영선 교사(서울 경인고)
언론보도 보면서 제일 불편했던 점은 애들이 교사를 때리고, ‘싸가지’ 없게 군다고 지적하는 거다. 우리학교에도 비슷한 사례 있었다. 어떤 교사가 체벌을 했고 거기에 대해 애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과정에서 약간의 터치가 있었던 거다. 나중에 그 친구하고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자기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 아니냐고 그러더라. 폭력 자체가 정당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가 맞았으면 방어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거다. 근데 그건 사실 ‘팩트’다. 때리려는 교사 앞에서 ‘체벌금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 체벌금지를 체벌금지라고 하는 게 팩트가 아니면 뭐냐. 근데 언론에서는 이걸 ‘싸가지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말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언론이 웃기는 서사를 만들고 있다.





이 들은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 시행 과정에서 교사로서 소외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육주체로서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위로부터의 개혁’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기규 교사(서울 수송초)
“학생인권에 대해서만큼은 얘기하는 과정도 되게 ‘인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들 대부분은 체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체벌금지’를 선언하면서 마치 모든 교사들이 체벌을 해왔다는 분위기로 말하니까 여기저기서 푸념이 있었다. 체벌을 하냐 안하냐와 상관없이, 체벌금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는 것 같아서 체벌금지 이후 교사들이 약간 위축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사들의 의견 공유되면서 결정됐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례 하나 만들고 따라야 한다가 아니라 이 문제를 교사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는 기회 마련해주는 것, 천천히 가더라도 교사와 공유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건 교육청, 교육단체 모두에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인권조례와 체벌금지, 학교문화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하 지만 그럼에도 이번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시행이 무척 ‘유의미’한 일이며, 이를 오히려 생활지도 방식의 전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는 교사들도 이견이 없어 보였다. 교사들은 억압적인 학교문화를 교사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고, 혹자는 ‘체벌 교사’였던 자신의 감동적인 ‘체벌 탈출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오혜원 교사(경기 호계중)
언론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발표 후에 ‘당하는 여교사’ ‘맞는 여교사’ 등 교권 추락의 대표사례로 약한 여교사를 거론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젊고 약한 여교사만의 문제 아니라 학생들과 인간적 관계 형성하지 못하는 대다수 교사들의 문제인 것 같다. 억압적이고 남성적인 학교 구조에서 억지로 애들을 통제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 역할을 맡아왔던 이들은 인권조례가 발표되고 나서 오랫동안 수행해온 여교사 역할을 이제라도 버려야 하는 건지 혼란에 빠진 건 사실인 거 같다. 그중 일부는 때리지 말라고 하니까 대신 벌점을 강하게 주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더 우스워지더라. 그런 역할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이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이번 인권조례 시행을 교사와 학생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학교에서 새롭게 만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현석 교사(서울 당산초)
나는 서울시교육감이 체벌금지를 발표하기 전까지 체벌을 많이 하는 교사였다. 우리 반에 지각을 잘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처음엔 왜 지각하니 물어보다가 하루 늦을 때마다 한 대씩 맞자고 했다. 연속 30일 지각해서 30일 동안 때렸다. 그렇게 때리면서도 나는 그 아이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고, 체벌이 벌점보다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체벌금지가 되고 주변인들과 얘기 많이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른이 무단횡단을 했는데 경찰이 ‘당신은 법을 위반했으니까 비인간적으로 벌금 물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세 대를 때리겠다’고 하면서 횡단보도 앞에 엎어놓고 때린다면 정말 비인간적인 것이었겠다, 나는 그걸 여태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을 때려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해지더라. 그래서 2학기 때 아이들에게 그동안 내가 때려온 것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매 때문에 너희들에게 정말 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착각하고 살아온 것 같다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열더라.
사실 내가 체벌 교사였어서 체벌금지 이후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교사한테 연수도 좀 시키고 교사 동의도 좀 얻고 그런 다음에 차근차근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건 정말 야만이 인간다움으로 가는 거라 무조건 해야 하는 거다. 나의 경우 체벌 금지가 아이들을 다른 눈으로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결국 학교를 바꾸는 것은 학생들의 힘”

한 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학교들의 사례가 공유되기도 했다. 다양한 학교 사례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열패감을 갖고 입학한 아이들에게 신뢰와 미래에 대한 꿈을 실어주려 노력하는 흥덕고, 학생인권조례를 이해하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조례를 강독했고 올해는 학교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고민을 하고 있다는 원종고, 학교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직접 행동이 있었던 소사고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만주 교사(경기 흥덕고)
입학식 할 때 아이들을 만났는데 눈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더라.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의심을 가진 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던 생활규정을, 용의복장규정을 빼고 학생들의 인권, 권리를 보장 쪽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이다 보니 진학의 문제나 학력의 문제가 역시 주요 관심사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진학문제가 진로문제’라는 거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자기 비전을 갖고 또 자존감을 지키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성취를 높이는 역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입하려고 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교가 진짜 우리를 생각해준다는 믿음 갖고 아이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이용석 교사(경기 원종고)
우리 학교가 작년에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면서 초점을 둔 건 학생, 학부모, 교사가 조례를 이해하도록 하는 거였다. 아이들이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현관에 조례 내용을 크게 뽑아서 전시회도 하고 기말고사 끝나고는 인권주간을 둬서 일주일 동안 인권조례를 활용한 가위바위보, 보물찾기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부모총회에서 조례 내용을 강독하기도 하고 교사들도 매주 수요일마다 인문학강좌 연수를 60시간 진행했다. 올해 화두는 학교문화의 변화다. 학생, 교사, 학교 구성원이 같은 인간으로 똑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머리는 자율화해놓고 교실에서는 ‘이 새끼 저 새끼’ 해서는 인권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주안점 두는 게 학생자치 활성화다.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 갖고 인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회와 동아리활동 강화를 지원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교실 내에서 작동하는 미세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인권은 교육제도, 교육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학생인권을 보장하려면 대학입시 문제들도 다 손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육제도, 교육정책에 전면으로 맞서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성애 교사(경기 소사고)
우리 학교 같은 경우,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더라도 반드시 현장에서 무력화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분들이 학교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 학부모 대표로 많이 참석했다. 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규제해야 한다는 두 입장이 4대 7로 매번 부딪쳤다. 학생 대표도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리한 싸움이 계속됐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몇몇 위원들이 학생공청회를 제안했는데 이 공청회에서 많은 얘기가 나왔다. 교사들이 소사고 근무하는 기간 동안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이 멋진 말들을 많이 했다. 공청회 뒤에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학생들이 회의 참관도 요구했고, 참관을 거부당하자 다음날 바로 아침 교문 앞에서 행동에 돌입했다. 아침 8시 20분 종이 치니까 아이들이 다 같이 운동장에 뛰어나가서 줄 맞춰 서더니 ‘근조 인권, 정의’라고 쓰인 피켓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걸 마치고 들어가는 학생들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정말 ‘해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이후에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금까지 11년 학교 다니는 동안 이렇게 학교가 오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학생들은 개학 이후 회의에 참관했고, 위원들 간에 이견은 끝내 해소되지 않았지만 비밀투표에서 6대 5로 이겼다. 학부모들은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아무래도 학생 대표들이 대표성의 문제를 많이 고민한 것 같더라.
결국 생활인권규정을 만든 주인공들은 위원들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정말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해낸 학생들의 힘이었다. 학생들 스스로 자기가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런 인권을 스스로 얻어나가는 과정이 소중했다. 이 힘이 올해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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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 26. 09:58

“간접체벌로 훈육? 우리가 개야?”...교과부 성토

청소년, “간접체벌도 체벌, 학생인권 보장해야”

김도연 기자 2011.01.25 18:39


청소년들이 간접체벌 허용, 학교장에 학칙 제정 권한 부여, 문제 학생 지도를 위한 출석정지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부의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선진화방안)에 대해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25일, 청소년들이 흥사단 강당에 모여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문화 선진화방안에 대한 분노와 우려들을 쏟아냈다. ‘학생인권․학교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교과부 시행령 개악저지 대책모임’ 주최로 마련된 이 자리에는 일반계 고등학생, 실업계 고등학생, 대안학교 학생, 탈학교 청소년, 중학생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했으며 멀게는 천안, 무주에서 걸음한 청소년들도 있었다.


“간접체벌로 우리를 훈육한다고? 우리가 개야? 말이야?!”

청소년들이 교과부의 ‘선진화방안’에서 가장 분개한 부분은 단연 ‘간접체벌 허용’ 안이었다. 이들은 교과부가 ‘교육적 훈육’이라 주장하는 기합도 충분히 모욕적일 수 있는데도 이를 ‘간접체벌’이라 규정해 허용하려 한다며, 애초에 ‘간접체벌’과 ‘직접체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꼼수’라고 지적했다. 체벌을 통해 청소년을 훈육하려는 성인들의 시각과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빼놓지 않았다.

둠코
예전부터 학생이 맞는 매는 사랑의 매라고 해서 우리는 계속 맞아왔다. 이제야 체벌금지가 시행되면서 학생을 때리는 건 반인권적, 비인간적이라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을 훈육하기 위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켜서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는 인식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때리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라 안 되지만 하기 싫어하는 것을 시켜서 교정, 조정할 수 있다는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 같다.

예슬 나는 일반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내 행동을 남이 제약한다는 걸 상상을 못했다. 성인이 회사 입사시험 보러 가서 커닝을 한다한들 감독관이 때리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지는 않는다. 그거랑 똑같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이 왜 우리한테는 통용되지 않는 걸까. 왜 상대가 청소년이라고 해서 내가 널 통제할 권리, 가르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창준(부천 소사고) 초등 6년, 중고등 6년, 총 12년의 교육과정은 절대 짧은 게 아니다. 그 긴 교육과정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선생은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서 행동을 교정해야 한다. 그럴 때 학생인권과 교권이 동시에 상승한다. 체벌 같은 것으로 단시간에 교육효과를 내려는 건 오류고 12년의 교육과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영 체벌을 스트레스 한풀이로 사용하는 교사도 있고, 입시경쟁 심화시키기 위해 체벌하는 교사도 많다. 교사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입시와 관련된 게 많다.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그러려면 성적을 높여야 하고, 1등급 받아야 하고. 이런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체벌한다. 수업시간에, 수업에 집중 안했다는 이유로 때리거나 영어단어 몇 개 외워오게 하고 외우지 못했다고 틀린 개수대로 때리는 거 보면 경마장의 말이 생각난다. 기수가 말을 빨리,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게 하려고 매질을 하잖나. 우리가 말 같다.
영이(부천 사는 고등학생) 간접체벌이라고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 체벌한다는 거 자체가 강아지 기르듯 하는 거 아닌가. ‘빵’(총 쏘는 시늉) 하면 웅크리라고 가르칠 때도, 안하면 겁주고 하면 밥 주고 이런 식인데, 왠지 우리도 이런 거 같다. 머리를 안 단정하게 하면 겁주고. 잘하면 면해주고. 우리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미성년자는 주체적 생각 갖지 못한다고 여기니까 우리를 짐승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짜증난다.
그리고 학교나 가정에서 원하는 게 성실성인데 성실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공부 잘하고 인성 좋은 아이들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건지. 선생이나 가정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은 아닐까.
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절제 못해서 더 때릴 수도 있고 체벌이 악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학생은 물론이고 동료교사도 말릴 수 없다. 그나마 학생인권조례가 생겨서 권력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교과부가 ‘선진화’라는 명분 아래 다시 학생인권조례를 뒤로 ‘빠꾸’시키는 일을 한 건 너무 아니다.

하은(천안서 온 중학생) 간접체벌이 체벌이랑 구분하는 게 전혀 의미가 없다. 간접체벌도 모욕적인 게 많다. 여학생의 경우 치마입고 오리걸음 하거나 엎드려뻗쳐 하면 되게 민망하다. 초등학교 때는 두 친구가 싸우면 둘이 박치기 시키고, 자기 주먹 들어서 자기 머리 때리라고 시키기도 했다. 충분히 모욕적이다. 선생님이 손 안 댄다고 해서 간접체벌이라고 하는 것 되게 웃기다.
어스(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간접체벌’은 교과부가 발명한 말이다. 서울시에서 체벌금지 조치 들어가니까 조례에서 금지한 건 ‘직접체벌’이라고 한정하고 기합은 간접체벌이라면서 간접체벌은 가능하다고 꼼수를 쓰는 것이다. 체벌이면 체벌이지 간접체벌이 어딨나.
예반(무주 중학생) 선진화방안 발표된 거 보고 짜증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기뻤다. 사회자 말처럼 이런 간접체벌이라는 꼼수 쓰게 된 것 자체가 우리사회가 발전한 거 같다. 사랑의 매 운운하던 시절보다는 발전한 것 같다.


“교장 재량권 확대? 있는 것도 뺏어와야 할 판!”


교과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단위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확대한 데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청소년들은 “지금보다 더?”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충분, 아니 과하다는 것이다. 최훈민 삼각산중 학생은 “이미 교장은 학교에서 신”이라며 “재량권을 줄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재량권도 뺏어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영 학생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교장은 인권에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수십 년 간 체벌해 온 사람”이라며 “교장에게 학생인권의 범위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은 범법자에게 법을 만드는 일을 시키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교 과부는 지난 17일, 학교문화선진화방안과 함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령을 발표했다. 이 개정령에는 ‘학생의 권리보장 지원’이라는 이름의 제31조의5 조항이 신설됐는데, 제31조의5의2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기본법 제12조 제3항에 의하여 교원의 교육.연구활동 및 학생의 학습활동을 보호하고, 학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1항에 따른 학생의 권리 행사의 범위를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는, ‘학생의 권리 보장 지원’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조항에서 학교장으로 하여금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한 교육기본법 제12조 제1항은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는 내용의,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 조항이다.

다영 교장이 학생인권을 제한하는 재량을 갖게 하는 건 정말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일반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교장, 교감, 부장 선생님들은 교직 현장에서 오랜 경험이 있으니 이들에게 (학생인권 행사의 범위를 정하도록 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교장들은 학생인권에 되게 관심 없고, 승진하다 보니까 교장된 거지 학생인권 잘 알아서 교장된 것 아니야. 교직생활하면서 몇 십 년 동안 애들 팬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한테 재량권 준다는 게 말이 되냐. 범법자한테 법 만드는 일 시키는 거랑 똑같다.
훈민(서울 삼각산중) 교장 뽑는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 학교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냐. 그런 사회에서 아무 문제 없이 지내온 선생들이 교장 되는 거다. 의식 있는 선생님들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마찰을 겪고, 그 과정에서 징계당하거나 그만둔다. 그런 사람들이 교장이 돼야한다.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따르고, 잘 때리고, 교장한테 대든다고 협박하는 선생님들이 교장이 된다. 그래서 학교가 악순환 되는 거다. 우리 교장이 나한테 ‘사회 부조리 보면 인생이 고달파진다’고 그러더라.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고.(훈민 학생은 얼마 전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교칙개정위원회의 실태와 학생체벌 실태 등을 담은 학생신문을 발간하려다 교장선생님의 제지 한마디로 인쇄 직전에 발간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이 일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교장 뽑는 방법부터 틀렸다. 의식수준을 갖춘 사람 뽑는 게 아니라 교과부 말에 순종하는 사람 뽑는 말도 안되는 방식이다.
창준(소사고) 학교장에게 재량을 주는 것은 학생-교사-교장 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근데 대부분의 학교는 민주적이지 않다. 학생회는 언제나 학생부 선생들이 감시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교과부가 학교장에게 재량권을 주는 건, 인권조례안에 바탕 두지 말고 학교장 니 맘대로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훈민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아무리 수평적이어도 학교장에게 재량을 절대 주면 안 된다. 재량 주면 수직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엄청 수직적이다. 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있지 않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재량 줄 상황이 아니다. ‘있는 재량’도 뺏어와야 한다.
지난주 체벌 허용 논란에 대해 다룬 ‘MBC 100분 토론’ 보면서 엄청 답답했다. 교총 회장이 나와서 ‘단위학교에 재량주면 학생, 학부모가 모여서 잘 얘기할 거’라는데, 꿈의 학교, 우리가 감히 생각해보지도 못한 학교에 대해 얘기하더라. 교총 회장이, 교과부가 현실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인권은 ‘자유’ 그 자체니까!
학생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선진화방안의 독소조항들을 우려하는 것에서 출발했던 이야기는 결국, 다시 학생인권으로 돌아왔다.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자유’ 그 자체였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퇴로가 없다. 청소년들은 이날 어른들을 향해, 설령 ‘주어진’ 인권일지라도 빼앗아갈 궁리 대신 지금의 혼란을 함께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내달라 주문했다.
홍보(소사고) 인권은 자유이자 책임이다. 자유의 힘은 엄청나다.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생각과 능동적 사고력을 준다. 학교는 사회를 가르치는 곳이다. 인권이 없고 자유가 없어서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이 사회를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겠나. 때려줄 선생님도 없는데. 이 인권이 주체성과 능동성을 준다. 사회에 나가서도 이 사회를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인권이 더 나은 사회, 밝은 사회를 만들 것이다.
석민(의정부고) 학교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면 절차부터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군(영상고) EBS 다큐프라임 ‘학교란 무엇인가’ 마지막에 그런 말이 나오더라. ‘대개의 경우 학생이 학교에 맞춘다. 그러지 말고 학교를 학생에게 맞추라. 그러면 학생이 달라진다.’ 우리도 이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처럼 학생들을 변화시키려는 법이 아니라 선생과 학교가 학생에 맞추는 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창준(소사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나서 교권침해사례가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지금은 과도기이다. 우리는 인권다운 인권을 한번도 보장받아본 적이 없는데, 인권이 무엇이고 인권다운 인권을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조례를 통해 얻은 거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예방주사를 맞고 나서 열이 나는 상태 같은 거다. 하지만 열을 가라앉히기 위해 약을 또 먹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억지로 약을 투약하기보다 선생, 학생, 학부모 세 주체가 같이 의논하면서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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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2. 25. 23:09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홍보팀에서 언론기고를 하자고 제안해서 쓰게 된 글입니다.  아직  초안이니까 여러 가지 고쳐야죠;;

근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만약 지면에 기고를 한다면 앞부분만 해야 될 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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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 학생 0.1%와 교사 70%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산수를 잘 못하던 분들에게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자,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수는 몇 명쯤 될까? 찾아보니 대략 사십만명 정도 된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대략 오백만명 정도 된다. 더 자세한 수치를 제시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매년 변하고 있는 수치니까 이 정도를 잡고 얘기를 해보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어떤 이유로든 간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교사가 학생을 모욕했거나 학생에게 폭력을 쓴 경우부터 그냥 순전히 학생 본인에게 정서적 문제가 있던 경우에까지,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극소수일 것은 확실하다. 만약에 그 비율을 0.1%, 그러니까 1/1000이라고 해보면 어떨까? 5,000,000×0.1% = 5,000. 즉 5,0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만약 0.01%라고 하면 어떨까? 약 5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는 가정이 된다. 0.1%면 5,000명, 0.01%면 5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자 만약에, 최근 언론에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보도하고 있는 몇몇 사례들은 그 0.01% 혹은 0.1%의 일부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0.1%라거나 0.01%라는 수치는 결코 큰 수치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99.9% 그렇다.”라고 말할 때, 이 99.9%는 심리적으로는 100%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어떤 집단의 0.1%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문제도 문제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0.1%를 가지고서 그 집단 전체를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체제의 위기를 예언하는 것은 오류이고 과장이다. 지금 몇몇 언론들이 눈에 불을 켜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례를 찾아서 보도하며 교육의 위기를 부르짖고 “요즘 학생들”의 무서움을 설파하는 모습에서 나는 딱 그런 모습을 본다.

  앞서 설명했듯이 전체 초중고 학생들의 0.01%만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수는 약 500명이 된다. 물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가 1년에 500건씩이나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확률을 가정해본 것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몇몇 언론들이 하는 것처럼 몇 년 전 몇 달 전 사건들까지, 지역을 막론하고 찾아다닌다면, 거의 1년 내내 그런 보도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다.

  자, 그럼 이제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는 어떨까? 2010년 10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와 참교육연구소에서 전국 교사 14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약 70%가 체벌을 한다고 응답했다. “거의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교사들을 제외하더라도 약 20%의 교사들은 체벌을 ‘자주’ 한다. 전체 교사 집단에 이 비율을 적용해보자. 400,000×70% = 280,000. 400,000×20% = 80,000. 이십팔만명의 교사가 체벌을 하고, 팔만명의 교사가 ‘자주’ 체벌을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칙이나 한계 없이 ‘자유롭게’ 체벌한다고 답한 교사도 3.8%나 되니까, 이 역시 1만명은 넘는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교사 1명은 학생 수십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학생 1명이 교사 여러 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란 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폭력의 영향력은 비교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체벌금지 이후’에도 여전히 체벌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추적하기보다는 굳이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들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언론은 얼마나 공정한 것일까.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것은 센세이션 하지 못하지만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전형적인 황색 언론의 논리이다.

  나는 학생인권운동을 하면서 지난 몇 년 간 교사가 학생의 뺨이나 머리를 때린 사건, 체벌 중에 학생이 골절상을 입은 사건 등 수십건의 ‘선정적인’ 체벌 사례들을 접해왔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사정이나 언론의 무관심 등으로 전혀 공론화하지 못한 사례들이 반을 넘는다. 일상적으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맞는 것은 잘 문제가 되지도 않고 교사 집단 전체를 낙인찍을 이유도 되지 않고 교사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도 되지 않지만, 어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맞는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가 되고 학생 집단 전체를 욕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가 되는 세상. 그 모습이 이미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쓰고 있으니까 학생들도 교사들에게 폭력을 쓰는, 폭력과 폭력이 맞부딪치는 교실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교사에 대한 폭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든 교사이든 학부모이든 누구든,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그것은 예컨대 범죄자에 대한 경찰력 행사처럼 엄격한 요건 속에 예외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일방적으로 선정적인 사례들만을 부각시키며 어떤 사람들을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지금처럼 선정적 사건들을 캐내서 계속 뿌려대기만 하는 그런 언론 보도들은, 불공정하며 무책임하다. 그 언론들은 정작 그런 식의 부풀리기 보도가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혹시 그 몇몇 언론들의 보도 추세야말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꺾어놓기 위한 ‘계산’에 따른 것은 아닌가?


‘학교 붕괴’를 직시하라

  나도 한국의 학교 교육이 붕괴해가고 있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요즘 애들이 선생님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더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 학교가 부여하는 과업과 수행하는 교육 활동에 냉소적이거나 불참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소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극소수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보다,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는 이 현실이 더욱 큰 문제이다. 학생들의 교사 폭행은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미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에 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교육이 노골적으로 계급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학교에 차별과 억압이 심할 때, 학교 교육과 사회 현실이 학생들에게 삶에 관한 희망을 주지 못할 때, 학교 교육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서 내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학교 수업이 학생들에게 동기를 주지 못하고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할 때 ― 이럴 때 학교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교육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이유를 잃고 학교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미 1980년대, 1990년대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학교 붕괴’ 담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고용 없는 성장과 입시경쟁, 취업경쟁의 모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는 ‘학교 붕괴’ 현상을 확산시키고 가속화시키고 있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득세하고 학교는 입시․취업기관 혹은 졸업장 발급 기관이 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열의를 갖고 따르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 또한,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부동산 투기나 해라.”라고 대놓고 말하고, 학생들은 성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좌절하고 체념하던,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학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 붕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뭔지, 여기에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입시경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평준화라거나 복지정책 및 경제정책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커다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교육이나 탈학교론, 공교육 재편론 등 여러 가지 논의들이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억압, 그리고 학교간 경쟁을 강화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 또한 ‘학교 붕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학생들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위한 복지를 보장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학교 생활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 ― 학생인권 보장이야말로 학교가 가기 싫고 믿을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재밌고 자발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바뀌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 아닐까? 누구든 진정으로 학교 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진지한 논의와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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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ildaro.com/sub_read.html?uid=5588&section=sc5&section2=%BD%CA%B4%EB
    좀 더 다듬은 내용이 일다 기고글로 실렸습니다.

    2011.01.03 14: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9. 15. 14:26

교사도 폭행당하는데...학생인권조례 무색

평등학부모회 "교장사퇴, 사립재단퇴진" 요구

최정철(현장기자) 2010.09.15 08:25




교육-사회단체가 교사를 체벌한 경기도 평택의 H고교 학교장 김모씨 사퇴와 사립재단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H고교 앞에서 14일 오후에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공적인 영역인 교육과 학교를 사적인 족벌사학이 지배하고 운영하는 사립학교의 구조차체가 폭력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면서 ‘교장의 사과와 사퇴’, ‘사립재단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김태균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표는 “학생인권실현을 위해 학생인권조례재정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학생의 ‘용의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교사를 체벌하였다. 교장이 학생 복장문제를 이유로 교사를 폭행할 정도면 학생들은 어떠하겠는가?”라며 해당학교장의 행태를 비판했다.
권오일 경기교육운동연대 ‘꼼’ 대표는 “학교장이 학생들 앞에서 담임교사를 폭행한 것은 반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패륜적인 행위다”라며 학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관계자는 “해당학교의 추가적인 불법행위와 비리행위에 대하여 조사 중이고 지속적인 대응 할 것”이라 밝혀 해당 학교의 문제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을 경고했다.
경기도교육청의 관계자는 “사립학교에 대한 징계권은 이사회에 있기 때문에 도교육청의 권한은 제한적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추가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밝혀질 경우 그 책임의 중함을 따져 교장의 해임 등을 지시할 수 있으며, 이사장 등이 이를 거부할 경우 임원승인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 여운을 남겼다.

이번 사건은 교장인 김모 씨가 지난달 24일, 점심시간에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 상태를 점검하면서 용의복장이 불량한 학생의 학급 담임을 체벌 했다. 체벌 당시, 학생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교사는 칠판에 손을 짚고 회초리로 엉덩이를 1~3대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체벌당한 교사는 여성 2명을 포함한 총 7명이었으며, 일부 교사들은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이후 체벌을 지켜보던 한 학생이 도교육청 게시판에 밝히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도육청은 두 차례 감사를 실시했고, 교장의 교권침해를 인정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모 교장은 도교육청 감사에서 “교육차원에서 때린 것”이라며 “이후 교사들에게 사과했다”고 밝혔다.

한편, 평택에 위치한 또 다른 사립 고등학교에서는 조퇴하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치마를 들춰내는 방법으로 ‘생리검사’를 실시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며, 이 학교 또한 족벌경영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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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5. 27. 22:47

[싱싱고고] 정치금지의 이유

고달이



덧붙이는 글
고달이 님은 인권교육센타 '들'의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04 호 [기사입력] 2010년 05월 26일 14:57:24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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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정당가입하는 건 자유자노
    여튼 아직 이 문제는 논점을 모르겠군...
    노조강제가입이 위헌적 소지가 있더라도
    어용화되지 않은 노조 입장에서는 단결력 강화를 위해 유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점을 악용한다면 집행부가 강제 혹은 반강제된 단결력을 이용해
    특정 정치권에 힘을 실어주게 되는 거 아님?

    공무원노조나 교원노조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노동3권을 모두 향유하지야 못하지만
    노조의 정치적 행위 금지는 교사 기타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잖아

    내가 새로 짚어야 할 논점을 좀 알려줘

    2010.06.03 0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내 블로그도 쫌!!!! 방문 좀!!!!!

    2010.06.03 00: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4. 19. 12:53

위기의 학교 저자 닉 데이비스는 '거대한 사기'로 명명한 영국의 '시험 게임'에서 성적을 조작하는 다양한 수법들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다. 우선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하기 등을 지적한다. 이 수법들은 한국의 학교에서는 게임 아이템으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0교시, 강제보충, 강제야자, 모의고사, 기출문제, 밤샘학원, 족집게 과외 등 우리에게는 이미 관행화되어 있는 규칙이다.

(우리교육 2009년 3월호 p.121.
「1%만을 위한 시험 게임을 중단하라 - 서울시교육청 '일제고사 꼴찌'가 의미하는 것」 (조진희 서울 영일초 교사) 中)


이 부분을 읽으면서 뭔가 한국 교육은 정말 막장 테크구나...라는 생각을 찐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 정책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이고 일제고사니 학력미달이나 학력향상이니 국제경쟁력이니 하는 말들이 국경을 넘어 유통되는 시대라고 하여도...-_-

유럽권도 아니고 영미권에서도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시키기'를 성적 조작, 부정행위로 본다는 말입니다.
즉 정상적인 교육으로 수업을 하고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을 시켜서 그렇게 생긴 능력으로 시험을 보게 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를 시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부정행위이고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라는 거죠.

조진희 씨도 적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성적 조작이나 부정행위 축에도 들어가지 않고 아주 일상화된 '교육'입니다.
시험대비 강제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에 맞춘 문제집 풀기......
이런 걸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직접 답안지나 성적표에 교사가 손을 대서 조작을 해야 비로소 '조작'이라고 한다는... 쓸데없는 데 엄격하군)



그저께는 이런 기사까지 났더군요.

영국 학교장 1만명, ‘학력평가 거부’


영국의 교장들이 특별히 착해서는 아닐 거 같고, 영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을 볼 필요 + 영국에서는 교장들이 어떻게 선출되나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장들은
교사 -- (교장 말 잘 듣고 근무평정 잘 받아서 승진) -- 부장 교사 -- 장학사 -- 교감 -- 교장 
뭐 이런 식의 라인을 보통 타고, 교육관료들 세계에서 위에 말 잘 듣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현실을 바꿀 대안으로 교장임명제(정부에서 하는 교장 돌려막기 짝퉁 말고), 교장선출보직제 같은 게 나오는 거구요.


기사 내용으로 볼 때 저 교장단들이 특별히 인권의식이 있거나 좌파적인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다만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있다는 내용은 곧잘 눈에 띕니다. 한국에서는 현장교사-교장이 그렇게 가까운 관계가 아니란 걸 생각해보면... 일단 저런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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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2. 10. 01:40

[인권교육, 날다] ‘교권’이 뭔가요?

교권에 낚이지 말고, 교권을 낚자! - 교권의 재구성

고은채

종종 단어의 애초 뜻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며 의미가 변해서 처음과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도 숱하게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의미에서 ‘교권’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권이라는 말은 이미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교권이라는 말에 대해 학생, 학부모, 혹은 어떤 교사들이 느끼는 거부감 앞에 교권의 새로운 의미든, 교육의 진정한 의미든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교사의 권리’를 말하는데 있어, 교권을 이야기해야겠냐는 주장이다. 또 어떤 이는 “교권이 땅바닥에 뒹굴뒹굴하고 있어도 아무도 주우려하지 않더라.”며 자괴감 가득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 옛날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찾아 볼 수 없고, 설령 있어도 한 줌도 안 되는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교권은 종종 우리를 주목시키는 실체를 띠고 있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학생간의 그 어떤 ‘문제들’은 ‘교권침해’로 정리돼 뉴스든 인터넷에서든 보여 지곤 한다. 이렇게 등장하는 교권은 이때 마다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 사회를 향해 개탄하기 때문에, 좀처럼 간과할 수도 없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잡는’ 권위가 교권의 실체는 아닐텐데, 지금의 교권은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이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 래. 서. 진짜 교권이 무엇인지 파헤쳐보기로 했다.

지난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마련한 교원 인권감수성향상 연수에서 교권을 파헤쳐 보는 기회를 가졌다. 교권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 살펴보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자리였다. 교사그룹이나 학교, 사회에서 교권과 관련한 사건이 등장하지만, 교권이 무엇인지 깊이 이야기하는 자리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연수 정원을 넘어서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날개달기

연수는 교권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첫 시간을 시작으로,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보면서 교권을 재구성하는 두 번째 시간으로 옮겨졌다. 교권을 구성하는 중심적 내용인 가르칠 권리의 맞은편에 위치한, 그렇다고 생각되어온 배울 권리와의 관계, 그리고 두 가지를 모두 존중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통해 또다시 교권을 재구성했다. 이외 여교사의 눈으로 보는 교권, 비정규 교사와 함께 찾는 교권, 교권보장을 위한 조건을 탐색하는 생생토크로 이어졌다. 교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더불어 발걸음을 함께해야할 사람들을 확인케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는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봤던 두 번째 시간의 내용을 담기로 한다.


징계위기에 처한 6명의 교사가 등장한다.

- 교사 시국선언을 한 이유로 징계를 당할 상황에 처한 교사
- 수업부교재를 제작했는데, 내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하여 처벌 상황에 놓인 교사
- 작품으로 찍은 자신의 나체사진을 홈페이지 올려 징계 상황에 처한 교사
- 일제고사 때 학생들에게 안내장을 발송하고 체험학습을 간 이유로 징계 상황에 놓인 교사
- 교육감선거에서 선거운동을 한 이유로 징계에 처한 교사
- 연가를 냈는데 교장이 허가하지 않아서 근무지이탈로 징계에 처한 교사


사연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금 더 내용이 담긴 이야기쪽지로 만들어 모둠별로 나눠준다. 해당 모둠에서는 교사의 사연을 보고, 교사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마련한다. 교사를 징계할 수 있는 논리, 교사의 잘못을 추궁하는 논리를 만든다. 모둠별로 해당 사연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구성하고, 모둠별로 순차적으로 발표를 한다. 이때 나머지 다른 모둠은 징계에 처하게 된 교사의 입장에서 변론을 한다. 다른 모둠에서 변변한 변론이나 논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해당 교사는 정말 억울한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정한다.


더불어 날개짓

덕만의 역사수업은 학교에서도 인기가 남다르다. 바로 지난해부터 만들어 사용한 수업 부교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그것이다. 학생들의 눈이 이처럼 초롱초롱했던가? 스스로 놀랄 정도이다. 특히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아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기 일쑤였던 현대사 시간에 아이들이 질문을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반에서는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돼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덕만은 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좀더 꼼꼼히 챙겨볼 요량으로 인터넷과 출판된 자료에서 몇 가지 사건과 기록을 옮겨 자료를 만들고, 그것을 내용으로 수업을 했을 뿐인데 기대이상의 아이들 반응에 이것저것 의욕이 샘솟던 참이었다.
하지만 최근 덕만에게 불어 닥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칼바람에 초롱초롱 눈빛도, 샘솟던 의욕도 오간데 없어져 버렸다. 국가보안법이 위반이라니…?? 이 무슨 난데없는 일인지.
바로 덕만이 만든 수업 부교재 때문이었다. 제주 4.3항쟁과 광주 5.18 항쟁에 대한 내용이 문제라는 것이다. 적을 찬양·고무’한다는 감정서를 들이밀며 검찰에서 덕만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미 두 사건 모두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까지 한 역사적 사건이건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게다가 덕만이 사용한 자료는 인터넷과 책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과 글들로 공개되어 있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 그대로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교육해야 한다면, 교사는 대체 어떤 존재란 건지.



* 사연 중 부교재 제작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례는 현재 재판 중에 있다. 재판 대신에 학교 징계위원회 상황으로 바꿔 이야기를 꾸며봤다.

발표를 맡은 모둠은 실제 징계위원회 위원처럼 해당 교사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징계위원회, ▶덕만 교사를 지지하는 사람들


▷ “교사가 학교장의 허가도 없이 마음대로 부교재를 만들어 사용해도 됩니까? 교사로서의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에요. 그것도, 이처럼 불순한 내용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다니.. 보세요. 이걸!”

▶ “5.18과 4.3항쟁 같은 사건은 이미 교과서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에요. 게다가 덕만 교사가 만든 교재 내용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요. 덕만 교사를 징계한다면 이런 책과 인터넷의 글도 처벌받아야하는 것 아닌가요?”

▷ “문제는 학생들이라는 것이죠.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어요.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을 의식화하는 것 아니고요. 괜히 아이들한테 갈등과 혼란만을 조성하고 있다고 야단들입니다. 이건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는 것이에요. 미성숙한 아이한테 교사가 맘대로 교육하고 있는데, 아이들 귀를 막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 교사를 그만두게 해야지.”

▶ “학생들이 미성숙하다니요. 학생들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인데, 다양한 의견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토론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라고요.”

▷ “그런 얘기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제가 쭈~욱 지켜봤는데, 덕만 교사는 연가투쟁에도 참여하고, 지난 4년간 지각을 5번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작년 봄인가? 교직원회의도 불참했던 것 같고, 교사회식도 잘 참여하지 않아서 교사간의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사사건건 불란을 일으켜 온 교사라고요.”

▶ “교장선생님은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에 대해서 그만 말씀하시죠?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광주 5.18 운동 이제 학교에서 교육하라고 하는데, 왜 덕만 교사를 징계하려고 그럽니까?”

▷ “아이고, 이보세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요즘 이 교육 못하게 하는 거 몰라요? 선생님은 어떤 학교에 계신 겁니까?”


외부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학교의 많은 붙임 현상을 표현하는 참여자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라고나. 상황극은 이렇게 씁쓸한 웃음을 불러내기도 했다.

“애들의 귀를 막을 수 없지 않느냐”는 교장의 발언에서 수동적으로 학생을 대하는 관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학생을 수동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교사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수업도 허용할 수 없는, 무척이나 위험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펼치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이 마련된다면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가능해야하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라는 학생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동등한 관계 형성은 교사의 수업권, 그리고 학생은 학습권 보장에 일차적 조건이 된다는 것.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교권의 이름으로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보장되기 어렵다. 학생과 교사의 ‘물고물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다시 확인되는 찰라다.

재구성 되는 교권에는 이처럼 교사/학생의 관계를 다시 읽으며 짚어본 가르칠 권리 외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빼앗기는 것, 시민으로 누리지 못하고 박탈된 권리들도 이야기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학교의 업무 분장, 휴가처리, 수업수당의 문제는 교권이라는 말로 이야기된다. 현재 학교나 교사그룹에서 주요하게 제기되는 교권 침해의 내용이기도 하다. 어떤 교사는 “정말 이렇게 한 줌이냐? 수호하자고, 힘주어 애써 골몰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처리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교권의 전부인 것이냐”고 되묻는다. 아니, 재구성된 교권에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교사로서의 권리, 혹은 교사로서의 지위를 위협하고 침해하는 것들이 이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교권을 바라보는 눈은 깊고 넓게 뜨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90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9일 22:12:5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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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 22. 11:37

하병수 (경기 토평중 교사)  / 2010년01월21일 16시54분



교원평가가 처음 거론된 것은 95년 5월31일 김영삼 정부가 교육시장화 정책을발표하면서부터다. 교육시장화정책 계승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교직발전종합방안에 교원평가를 포함해 공식적인 논의를시작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교육개혁의 주도권이 무기력하게도 시장 세력에게 넘어가면서 교원평가논의는출범초기부터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중심이 되어 교원평가 연구안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2005년에대대적인 여론화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여론전에서 일정한 승리감을 맛본 시장 세력과 교육 관료들은 48개 교원평가시범학교를강제하면서 사실상 교원평가를 학교개혁의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곰비임비 교원평가 시범학교를 늘린 결과 전국 1만개 학교 중에3164개교(09년 현재)가 교원평가 시범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이건 시범학교가 아니다. 교원평가의 단계적 적용이라 보면 된다.
법안마련을 위한 6자협의체 구성제안(10월12일)과 교원평가 강제실시를 위한 시・도별 교육규칙 제정을 위한교과부자문회의(1월8일)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들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성격상 늦은 감이 있기도 하다. 촛불정국이시기를 늦춰놓았을 것이다. 다만, 교원평가를 진행하려는 자들의 시나리오에 국민들뿐 아니라, 경쟁교육에 비판적인 단체들도 중심을잃은 채 서서히 포섭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원평 가에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문제(평가주체), 수업 외 평가지표 추가문제(평가영역), 인사와 보수와 연계문제(평가결과) 등다양한 문제에서 부침의 과정이 있긴 했으나, 95년 애초 교원평가를 도입하려던 시장 세력들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건재함을자랑하며 정권의 배후에서 또는 전면에서 시장화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표면적인 교원평가 도입목적은“교원의 질을 높여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교원평가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솔직한(?)이명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학생도 경쟁하고 학교도 경쟁하는데 교사만 경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교원평가도입목적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은 “경쟁하는 교사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교원평가가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을 일류학교로의 진입에 더 경쟁적으로 노력하게 만들 것이다. 교원평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모든 주체들도현재의 입시교육시스템 속에서 교원평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선 “학생, 학부모, 학교장”은 보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목표를 도와줄 교사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입시교육에 밀려난 지 오래다. 당장의 학교교육에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들도 ‘철밥통 교원’을 깨고 ,저마다 한 자락씩 간직하고 있는 ‘추억속의 못난이 교사들’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결과가 약간 부정적이라하더라도 철밥통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고, 이상한 교사는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교원평가를 찬성하게 만든다. 당사자인“교사”들은 무기력할 뿐이다. 학생들과 입시 경쟁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야자보충을 거부하지 못한다. 경쟁신화를 깨지 못하고 있는교사는 자신에게 강요되는 경쟁에도 무기력할 뿐이다. 현재 무기력한 교사들을 번뜩이게 하고 선명한 길로 이끌어가야 할 교원노조조차 교육시장 세력의 시나리오에 스멀스멀 먹히고 있다. 대중조직이니, 대중의 생각과 대세에 따라야 하는 듯 말이다.


경쟁교육이 만들어낸 비참한 한국교육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시경쟁교육의 질적인 비약에 결정타가 될 교원평가를막고 경쟁을 폐기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시장 세력들의 시나리오에 대적할 만한 것으로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국민들의 경쟁신화를 부추기고, 교사들의 무기력과 패배감을 만연시킬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개혁을 추진하기에 어려운 조건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에 지쳐있던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남한산초등학교 등 공중파를 탔던 혁신적인 학교들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장 세력들의 표면적인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가 노력해야 학교가 변할 수 있다.”
하 지만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극과 극이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혁신학교의 공통점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학생회를 만들어주어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형식화 시키지 않고 자기자녀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함께 아우르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의 학교참여를 이끌어낸 점, 교사들은 교육과정 운영에온전한 권한이 부여되고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권한을 갖고 협력하는 것이다. 또한학생들의 성적경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기평가와 일상적인 활동평가를 중심으로 평가본연의 역할을 가게 만들었다. 일체의 경쟁을비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기주도성을 신뢰하고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일관성 있게 만들어가고 있다.
교원평가는 이러한 노력과 상호모순적인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와 입시경쟁교육과 어울리는 정책이다. 경쟁교육의 강도를 드높이고 있는정책입안자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만 하게 만든다. 다소간의 긴장을 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다.오히려 좋은 정책이 끼어들 틈조차 막은 채 학교를 정체시키고 후퇴시킬 뿐이다. 철밥통을 깨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면교원평가 정책은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철밥통을 깨려하는가를 더 생각해보자. 직업과 신분의 안정은 교직뿐만아니라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자기 직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바탕이다.


한 낱 교원평가를 놓고 아웅다웅 할 때가 아니다. 현재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이 살아 숨 쉬는 학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1만 여개의 모든 학교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미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책으로 만들 주체들이바뀌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주체를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것은 권력을 바꾸는 문제이기에 당장 쉽지 않다. 현재교육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이전 정권에서도 세력을 행사해왔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교육시장화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엄청난 힘을실어주고 있을 뿐이다. 교원평가를 둘러싼 싸움은 경쟁교육을 심화시키는 사람들과 경쟁교육을 반대하고 인간화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간의 다툼이다. 인간화 교육프로그램은 충분히 있으니, 이를 현실화 시킬 시나리오를 짜고 당장 무기력에서 떨쳐 일어나길 희망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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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9. 15. 12:46
http://onlineif.com/main/bbs/view.php?wuser_id=letter_news&category_no=&no=536&u_no=85&pg=





[김신명숙의 편지 30]
교권이 문제라구요?
이프



<title>idsu.net</title>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탁 막히는 것같았습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머리 속이 소용돌이치면서 복잡해지더군요.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제 목을 보고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최근 큰 물의를 일으킨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에 관한 얘깁니다. ‘선생님 꼬시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유포된 이 동영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들 보셨겠지만 짧은 동영상보다 그 상황을 글로 옮긴 내용이 더 분명하게 사건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같아 조선일보에서 이 사건을 다룬 기자 칼럼-“여교사 성희롱, 죄와 벌”-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45 초짜리 동영상에는 수업이 끝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건장한 체격의 한 남학생이 시험지처럼 보이는 유인물을 걷는 여교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가선다. 여교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옮기자 "누나 사귀자"라고 소리친다. 다른 학생들이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치고, 카메라를 보고 "도망가는데요"라고 말한 남학생은 다시 여교사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다른 남학생이 여교사의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도 잡혀 있다. 여교사가 동영상을 찍는 학생을 향해 '찍지 말라'는 듯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은 끝난다.”이 글을 읽고 어떤 느낌, 혹은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그렇습니다. 언론에서는 애써 ‘성희롱’으로 축소하고 있지만 이 동영상은 전형적인 포르노의 프레임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사 포르노, 혹은 포르노 동영상의 도입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백주대낮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상대로 그런 동영상을 찍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언 론은 이를 두고 ‘추락한 교권’을 떠들고 있습니다만 이 동영상이 생산된 핵심적인 권력관계의 맥락은 교권보다는 ‘남성권력’입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권력관계 위에 존재하는 남성권력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알파걸’이니 ‘여풍’이니 하는 말들이 요란스런 한국사회에서 페니스의 권력은 아직도 굳건한 것이고 그 권력은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물들을 통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단지 페니스가 달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일이 가능한 포르노 세상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지만 클릭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전세계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현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이같은 사건까지 만들어냅니다.


이 제 더 이상 숨어있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일상문화, 더 나아가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돼버린 포르노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 특히 십대들의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데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포르노에서 보여지는 섹슈얼리티, 즉 상호존중의 아름다운 교감이 아니라 지배와 복종의 섹슈얼리티, 정신과 영혼이 함께 하는 온전하고 소중한 몸이 아니라 부위별로 소비되는 살덩어리에 바탕한 천박한 섹슈얼리티가 십대들을 포함한 우리들의 성생활, 나아가 여남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섹슈얼리티는 신의 축복’이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나 ‘삶의 동반자적 관계’같은 여남관계의 지향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성적 괴롭힘과 강간, 지배와 소외, 차별이 횡행하기 마련이지요.


포 르노의 시선에서는 눈에 띄는 모든 여자들, 권력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여자들은 물론 선생님, 상사, 친구엄마 심지어 친엄마까지 성적 대상물로 포획돼 버리고 맙니다. 이번 사건도 그렇게 포르노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포르노의 시선으로 젊은 여선생을 바라보다가, 마침 시간강사라는 약점까지 겹쳐 겁 없이 그런 행동을 벌인 것같습니다. 언론에서는 문제학생들에 대한 처벌만 솜방망이니 뭐니 시비를 걸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포르노 천국’일 것입니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친구 엄마 꼬시기’ 더 나아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제목의 실제 동영상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번 사건이 말해주는 문제 자체도 두렵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막막한 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짐짓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기자 칼럼의 경우 심지어 ‘'장난'으로 만든 동영상일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듯했다’고까지 했더군요. 물론 학생들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성적 괴롭힘을 ‘장난’이라는 가해자의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 그 칼럼을 보자니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보 도에 의하면 그 여교사는 학생들의 처벌도 원치 않고 더 이상의 어떤 다른 조치도 현재로서는 요구하고 있는 것같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도 여교사는 없었던 일로 하려고 했는데 학생이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된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고 보면 이번처럼 사건화되지 않고 묻혀버린 유사사건들이 얼마나 많을지요? 또 앞으로도 같은 성격의 사건들이 얼마나 다양한 변종으로 생겨날지요? 교단에 선 자신의 몸을 포르노의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여교사의 심정은 어떤 것일지요?


자 료를 찾아보니 이미 미국에서는 학생들에 의해 교사가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건들이 법정에서 다뤄진 케이스들이 여럿 있더군요. 한 연방법원은 4년전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성적 괴롭힘에 학교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 8월에는 뉴욕시 한 공립고등학교 여교사가 시 교육당국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알렸는데 교육당국이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했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금전적 피해보상과 함께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성적 괴롭힘을 다룰 성문화된 정책을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충격적인 건 그녀를 성적으로 괴롭힌 건 남학생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한 여학생도 그녀가 ‘성적으로 좌절돼 있어 남자가 필요하다’는 둥의 언어폭력을 썼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적 상상력은 여남을 불문하고 포르노 소비자 모두에게 작동한다는 증거겠지요.


바 라건대 이번 사건이 일과성 공분(公憤)으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절대로 일부 남학생들의 ‘과도한 장난’으로 한번 따끔하게 혼내고 말 문제가 아니니까요. 포르노 천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왜곡된 섹슈얼리티와 여남관계, 여교사들이 전방위로 당면하고 있는 ‘성적으로 적대적인 근무환경’, 체계적이고 효과있는 성교육 등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들과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이 심각한 병리적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지 당사자인 여교사들, 여성단체, 교육단체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학생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번 사건이 그대로 묻히지 않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김신명숙







공현 추신
: 학생들에 의해 + 교직원, 상사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여학생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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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ㅅㅇ

    피해 망상에 빠져 지내는 김신명숙씨는 여전하군요.^^;

    이 사람은 기본적인 인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보니 글에도 신뢰가 안 갑니다.

    2009.09.17 20:39 [ ADDR : EDIT/ DEL : REPLY ]
    • 김신명숙 씨 개인은 잘 모르지만.
      이 글의 기본적 내용에는 동의합니다 ^^

      메신져와 메시지가 어느 정도는 구분되어야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신뢰할 만한 활동가라고도 생각해봅니다.

      (김정명신 씨랑 헷갈려서 잘못 말했었네요. 수정)

      2009.09.24 17:00 신고 [ ADDR : EDIT/ DEL ]
  2. 1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3. 2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삭제할까 하다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올렸을까 싶어서 그냥 남겨둡니다 ^^;

      2010.04.04 20:3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9. 12. 04:13

국민일보 사설 : 제자의 성희롱에서 교권이 읽힌다



1. 이 사건을 두고 교권 실추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지랄맞은 일이다.

물론 이 사건은 교사의 권력/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서 여-남 사이의 성별 권력이 이를 넘어선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장이나 교감, 또는 동료 교사 등이 여교사를 성폭행하는 사건에 대해 아무도 '교권침해'를 말하지 않는 것 등을 생각해보면, 역시 이는 다분히 문제가 있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교권'은 교사가 상급자(정부, 관리자 등)에 대해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하급자(학생)에게 가지는 권력/권위라는 인식이다.



2. 또한 우리는, 저런 식으로 '농담'(??)을 던지는 식의 성폭력(그걸 성추행이라 하든 성희롱이라 하든 성폭행이라 하든)은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게 그 빈도로는 훨씬 많은데, 그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민감하게 "이건 인권침해다"라고 반응해왔는지도 물어봐야 할 것이다.



3. 이 국민일보 사설에서 기간제 교사,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한 건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근데 마지막에 대학입시 어쩌구 하는 문장은 좀 쌩뚱맞게 보인다. 뭐든지 대학입시랑 전인교육 문제냐.



4. 어찌 되었건 저것은 성폭력이다. 여성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처한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대개의 생활 현장이 그렇듯이, 학교 현장은 단지 교사-학생 권력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관계와 맥락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

어쨌건 나는 이걸 연애-사랑을 상품화하고 '소유' 양식으로 만드는 사회, 성폭력에 둔감한 사회의 문제로 이야기하지 않고 '교권실추'의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5. 인터넷에 떠다니는 동영상 중에서 얼굴 다 알아볼 수 있게 된 동영상들을, '충격' 이러면서 퍼나르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사람의 권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성의가 있다고 봐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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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jung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고 저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제가 아는 여교사 한 분은 "나는 그거보다 조금 덜 한 일을 학교(당시 남자중학교 근무)에서 종종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나를 위안삼았으면 좋겠네..." 라고 저를 위로하더군요.

    2009.09.14 11:40 [ ADDR : EDIT/ DEL : REPLY ]
    •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모든 여성이 잠재적인 성폭력의 피해자...라고 하더라구요

      2009.09.14 23:22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12. 5. 19:59

전교조 선거에 나선 분들에게

- 학생인권 문제에 관한 실천을 구체적으로 내놓으십시오
 

  전교조 선거에 나선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이 글은 전교조 선거에 나서서 앞으로 2년 동안 전교조의 운동을 결정짓게 될 분들에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의견을 전하기위한글입니다. 남의 단체에 왈가왈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이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참교육'을표어로 내세우며 학생들, 교사들, 학부모들이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한다는 (학생인권에 우호적인 입장의) 최대의교사노조인 전교조에게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기대이자 요구라고생각합니다.
  그러니 주의깊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 저, 우리는 지금까지 다양한 학생인권문제들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이 종종 다분히 선언적인 수준에서만 다루어져온 것을 아쉽게생각합니다. 전교조는 체벌이나 두발복장규제, 소지품검사 등을 비롯하여 학생인권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물을 때마다 원칙적인학생인권 침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간혹 전교조안의 관심 있는 소수 조합원들, 아니면 전교조 집행부의 활동가 일부만이 활동했을 뿐, 전교조의 조직적인 활동은 찾아보기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전교조의 활동이 보이는 영역은 학생회 및 학생자치 분야와 입시경쟁 및 교육정책 관련 분야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러나 학생자치에 대해서도 전교조가 개별 조합원들이나 소그룹적인 활동에만 의존하고 있고 전교조에서의 적극적인 입장과활동계획을확립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적인 예로, 학생회 법제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었을때 이를통과시키자는 서명운동을 전교조에서도 1~2년 진행했으나, 그 성과는 5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교조의9만조합원들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런 서명운동 성과도 그렇고,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회에서 축제를 어떻게 하면 잘치르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에도 버거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올해에 전교조 본부 집행부가 일제고사 반대 행동에 찬물을끼얹는 입장을 내기도 했던 것 등을 생각하면 교육정책 분야에서도 좀 불안불안합니다. 2006년에 떴던 "죽음의 트라이앵글 - 누가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라는 동영상 UCC에서 드러난, 전교조가 내신 위주 입시를 주장하여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만드는 데일조했다는 학생들의 인식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특정대학(소위 '명문대') 합격을 광고하는 현수막에 반대하는 운동이 재작년부터 간간이 있어왔는데, 입시경쟁에 반대한다고 하는 전교조에서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결합했습니까?

  이 문제는 학생들이 전교조에 대한 신뢰성의문제이기도 하기에 전교조 분들 입장에서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아 할 것입니다. 전교조는 교원 노동조합이지만 동시에 "참교육"을 외치며학생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한 존립 근거로 삼아왔고, 교사로서의 교육운동단체이기도 합니다.전교조가 조직적으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실천을 하지 못한다면, 전교조는 자신이 내세운 그 중요한 존립 근거 중 하나를 스스로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전교조 교사인데 강제야자에 적극 동참하고, 전교조 교사인데 강제이발을 하고, 전교조 교사인데 체벌을 하는모습은 현장에서 학생들이 전교조 교사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입니다.


  우리는 이번 전교조 선거에 나온 모든후보들과 그 후보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명확한 실천 계획들을 고민하고 내놓길바랍니다.그것은 조합원들 모두에 대한 인권교육에서부터 조합원 중에 체벌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징계를 하는 방안과 같은 내부적강경책, 그리고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전교조가 국회에서건 거리에서건 학교에서건 어떻게 주장을 하고 활동할지에 대한 구체적인계획까지 모두포함하는 것입니다.

  전교조가 참교육을 표어로 내건 교사 교육운동단체로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권을주장하며 행동할 때 이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입니다.(때로는 그것조차 안 되어서 전교조 교사가 학생들의 투쟁에발목을 잡는 일이 없지 않았지만요.) 우리는 모호하게 연대하겠다, 학생인권을 위해 노력하겠다, 이런 립서비스들을 반복하길 바라는것이 아니며, 전교조 선거에 나선 분들이 학생인권 문제를 좀 더 구체적인 실천/정책 계획들로 이야기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선된후에, 또 낙선된 후에도, 그런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길 바랍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선거가 끝난 후에 당선된 전교조 집행부와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만남을 가지는 것도 검토하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이번 전교조 선거에투표권을가지고 있지 않고, 당연히 전교조 선거에 나온 분들은 우리의 의견보다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의 마음을 더 고려할것입니다.어쩌면 그래서 민감한 주제인 학생인권 문제에 관해 제대로 발언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체벌한 조합원은제재하겠다고 하면 전교조 조합원 수가 팍 줄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전교조가 정말 참교육을 외치는전교조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을 짓밟는 교육은 더 이상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며, 학생인권을 보장하기위해 할 수 있는 실천을 하지 않는 교사는 참교육을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교조 선거에 나선 모든 분들이 우리의의견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그 고민의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전교조가 학생인권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입장과 계획을 갖고 있다는것을 확실히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2008년 12월 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onlyasunaro@naver.com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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