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11.05 그것이 바로 내셔널리즘 아닌가? - 〈아이 캔 스피크〉 (2)
  2. 2010.06.21 난 월드컵에 반대한다 (31)
  3. 2008.07.22 '광야에서'에 대한 불편함 (2)
흘러들어온꿈2017. 11. 5. 20:11

그것이 바로 내셔널리즘 아닌가?

※ 〈아이 캔 스피크〉 미리니름(스포일러)이 가득합니다.


추석 연휴 직전에 〈아이 캔 스피크〉를 보았다.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최근 〈리얼〉이나 〈VIP〉나 〈군함도〉로 내려가 있던 한국 상업 영화에 대한 기대치와 상호 작용하여, 상대 평가를 한다면 꽤 높은 평가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군 ‘위안부’ 내용을 다룬 대중적인 영화의 계보 속에서 이 영화가 실현한 미덕이나 진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쨌건 〈아이 캔 스피크〉가 한국 상업 영화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재미있는 것 이후에라도 이 영화의 문제점이나 ‘해로움’을 좀 더 말해야겠다고 느꼈다. 어느 쪽으로든 말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주변이 온통 〈아이 캔 스피크〉 칭찬 일색이기에 긴 글로 문제점을 다 짚으려고 했지만, 그 사이에 나와 비슷한 관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의 문제점을 짚은 글들이 몇 편 나왔기에, 단상들을 모아놓은 정도로 적고자 한다.


박민재의 서사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이 이야기상으로도 배우의 연기로도 압도적인 주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상당 부분 박민재(이제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관객이 박민재에게 감정 이입할 것을 기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나옥분 만큼이나 박민재의 서사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

먼저, 나는 박민재 캐릭터에 대한 일각의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예고편이나 포스터에 적힌 것과 달리 박민재는 ‘원칙주의자’가 아니다. 박민재는 초반에 나옥분에 대해 대응할 때 원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이는 단지 곤란한 민원인에 대한 대처 방침을 선언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오히려 박민재는 이후 구청장에게 재개발 추진에서 구청이 책임을 벗기 위한 꼼수를 제시하고, 구청장 앞에서는 지금 자기 직급에 만족한다고 겸손한 체하면서도 바로 진급 시험 준비를 하러 가는, 상당히 속물적이면서도 책략가의 일면을 가진 인물이다. 나옥분이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할 때 궤변을 구사하며 일부러 어려운 단어로 시험을 치는 것도 그런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다.

그러므로 박민재에 초점을 맞춘 영화의 서사는, 속물적이며 개인주의적이고 복지부동 자세의 공무원 박민재가 나옥분을 만나면서 변화하고 나옥분을 매개로 열의와 공적 책임감을 갖고 나서게 되는 이야기다. 박민재가 미국까지 가서 의회에 난입할 때가 그 변화의 절정을 찍는 순간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 〈아이 캔 스피크〉의 중심 이야기 중 한 축은 〈변호인〉 등 최근 한국 영화에서 여러 차례 변주되었던 ‘소시민의 각성’ 테마를 담고 있다.





공무원과 국가

그런데 기존의 비슷한 이야기들과 박민재의 이야기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바로 박민재가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박민재는 본래 공적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할 책무가 있는 국가의 대리인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많은 공무원이 그러하듯이) 그가 공적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이 캔 스피크〉의 이야기 배후에 숨어 있는 갈등이다.

이런 문제는 나옥분과의 대비를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재개발 문제를 비롯해 시장과 거리의 온갖 공적 문제들에 ‘오지랖’ 넓게 개입하고 다니는 것은 그저 한 개인인 나옥분이다. 반면 〈아이 캔 스피크〉에서 개그 장면처럼 지나치는 공무원들의 일상을 보자. 명절 맞이 인사 이벤트를 하고, 계단에 소비 kcal 표시를 (그것도 거꾸로) 붙이는 그런 쓸모없어 보이는 전시성 사업들이나 하고 있다. 중간중간에 다소 뜬금없이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씬들은, 사람들의 삶과 유리된, 공적이지 못한 공무원-국가를 보여 주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박민재가 시장에 가서 법원 판결이 나기도 전인데 행패를 부리는 깡패들을 제지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공무원으로서의 박민재는 존재 의의를 찾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이 캔 스피크〉가 공무원–국가의 의미를 회복시키는 것은 바로 민족의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나서는 것을 통해서다. 나옥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밝혀지고 난 뒤 구청 공무원들은 그가 ‘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나서서 서명을 받고, 박민재의 설득으로 구청장도 움직인다. 그래서 〈아이 캔 스피크〉는 국가와 민족, 내셔널리즘에 관한 영화이다.



나옥분의 서사

이승한이 비평했듯, 〈아이 캔 스피크〉의 미덕은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의 계보 속에서 피해자인 인물을 입체적이고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나옥분은 ‘도깨비 할머니’이기도 하고, 또한 ‘위안부’ 피해자로서 어머니와 동생 등에게도 외면당하고 자신을 감추고 살아왔다. 나옥분의 사연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광복 후 한국 사회의 적대적인 반응을 간접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참고 : 피해자도 엄마도 아닌 ‘개인’의 초상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12211.html/)

그런데 나는 나옥분을 박민재와 대비되는 면을 통해 해석하고 싶다. 나옥분이 온갖 문제점을 찾아내서 시정하게 하고 민원을 내고 다니는 모습은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일을 늘리는 악성 민원인인 것으로 그려지고 시장 상인들 역시 나옥분이 트집이나 잡고 다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을 한다. 박민재의 동생 박영재는 나옥분의 그런 행동을 ‘외로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단지 가족 없이 혈혈단신으로 사는 처지의 외로움일까?

극중에서 나옥분이 민원을 제기하고 지적하는 것들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옥분은 재개발 추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건물을 일부러 훼손하는 행동을 고발하고, 입간판을 치우라고 할 때 역시 간판이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고 하며 어린이들이 그 입간판에 부딪혀서 사고가 날 뻔한 사례들을 거론한다. 반면에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했단 이유로 단속을 당한 식당 주인이 “할머니가 신고했죠?”라고 따질 때는 자신을 뭘로 보고 그러냐고 한다. 나옥분은 (적어도 자기 생각에는) 이것저것 다 트집을 잡고 신고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름대로 공공의 복리와 정의를 위해서, 이웃들의 공생을 위해서 필요한 규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나설 것을 촉구하는 사람이다. ‘공무원’도 아님에도.

다소 과잉의 해석일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상상해 본다. 나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 또한 광복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감춰야 할 ‘사적인 수치’로 부정당하고, 국가로부터도 소극적으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나서서 공적 규범을 지키고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시장 건물주의 ‘합법적’ 횡포에 맞서서 구청이 나서서 상인들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는, 그러나 구청은 오히려 건물주의 편인 상황에 좌절하는 나옥분의 모습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겹쳐 보게 된다. 물론 나옥분이 기본적으로 같이 사는 이웃들을 챙기려 하고 정이 많은 인물이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말이다.

나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수치’를 숨기고 살기를 바란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이를 감추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친구의 설득과 위독함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어머니와의 약속을 깨고 증언을 하러 나서기에 이른다. 따라서 나옥분의 서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나서는 – 공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던 캐릭터가, 자기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돌아보고 화해하고 극복하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박민재가 사적 세계에서 공적 세계로 나아간다면, 나옥분은 공적 세계에만 주로 걸쳐 있다가 숨겨져 있던 사적 세계를 꺼낸다. 그런데 나옥분이 갖고 있던 비밀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이는 이제 온 민족의, 국가의 이슈가 된 문제였다. 그래서 나옥분의 이야기에서 후반부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가 통합된다.



‘죄송합니다’에는 무엇이 담겼나

나옥분이 제기해 온 그 많은 민원과 문제들은 그저 ‘악성 민원인의 심술’이라고 무시당하다가, 나옥분이 숨겨 온 개인사를 드러내자 그것은 대단히 공적 사안이 되고 박민재를 비롯하여 국가와 구청이 나서게 되는 것은 참 역설적이다. 시장 상인으로서의 나옥분, 노인으로서의 나옥분의 문제제기는 정당하지 못하게 취급되었지만, 민족이 공격당한 사건으로서 위안부 ‘피해자’인 나옥분의 존재는 갑자기 거대해진다. 나는 이것이 민족-국가의 소유물로서의 여성의 몸과 성이라는 관념이 (과거 민족의 ‘수치’로 생각하고 덮으려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다.

〈아이 캔 스피크〉의 연출 중에 무엇보다도 박민재와 족발집 사람이 나옥분에게 사과를 하는 시점이 나옥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이 알려진 이후인 점이 아쉬웠다. 마치 나옥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서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특히 박민재가 울먹이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장면은 껄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재개발에 관한 민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이나 폭언을 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라면 그런 점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해명을 하거나 사과를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박민재의 “죄송합니다”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죄책감을 투영하기를, 관객이 감정 이입하기를 의도하는 것처럼 느꼈다.

(좀 더 나아가면 이는 박민재라는 남성으로 대표되는 국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화해를 청하는 장면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구청 공무원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박민재 옆자리의 여성 공무원은 거의 역할이 없이 박민재에게 연애 감정을 우스운 방식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로만 소비되는 것이 그저 우연일까? ‘여성부’보다도 구청장이 나서서 일을 처리하라고 박민재가 말하는 것이 단지 설득을 위한 언변일 뿐인가?)

(참고 : "나(I)"는 꼭 '위안부'여야만 하는가.
 https://brunch.co.kr/@like-orwell/35 )


적대와 봉합

많은 사람들이 〈아이 캔 스피크〉가 전반과 후반의 서사가 잘 이어지지 않고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것이 만듦새의 엉성함이 아니라, 이 영화가 깔고 있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높은 개연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면?

초반부와 중반부까지 영화가 제기한 갈등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옥분이 노인으로서 겪는 차별이나 문제들, 재개발을 둘러싼 문제들, 민원인 나옥분과 구청 공무원 사이의 갈등, 박민재와 박영재 사이의 긴장 등. 그러나 후반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그 모든 갈등은 뒤로 물러난다. 아니, 밀려난다. 그리고 주된 갈등은 일본을 대표하는 외교관(인가? 너무 외교관 안 같아서….)과 나옥분을 비롯한 한국인들 사이의 문제로 바꿔치기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미국 의회 장면은 더 극적이어야 했고, 일본 외교관은 더 단순하고 악해 보여야 했을 것이다.

이 ‘외부’에 대한 적대는 내부의 여러 이해관계 문제와 갈등을 봉합해버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개발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건물주와 깡패(일명 ‘용팔이’)들을 비롯한 재개발 추진 세력, 구청 공무원들, 나옥분 사이의 대립이다. 문제들 사이에는 위계가 생겼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거나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재개발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구청이 낸 소송도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데, 영화가 재개발 문제를 결말부에서 다루는 방식은 무책임할 정도이다. 이럴 거면 굳이 재개발 문제를 왜 플롯 안에 포함시킨 것인가? 첫 장면을 재개발에 관련된 건물 훼손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속았다는 배신감마저 든다.

그리고 이는 영화 외적으로 확대해 보아도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박정희든 박근혜든)가 일제 강점기 문제에 대해 잘못된 협상을 한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 또한 일본은 총리 명의로 일단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적이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단지 공식 인정과 사과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의 반성과 법적 책임 인정 문제 등 더 구체적인 논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이런 맥락을 축소하고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더 단순화한다. 한국 정부의 책임도 사라지고, 한국인들은 그저 나옥분(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힘을 모아주고 여비를 보태주는 협력자로만 그려진다. 따라서 이 영화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루는 데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 자체를 다루는 데는 퇴행적인 면마저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소재를 통해서 공무원-국가의 존재 의의를 보이는 데서 더 가서, 일본에 대한 적대를 바탕으로 한국 내부의 단결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내셔널리즘, 국가주의-민족주의가 작동하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공무원들은 여전하지만, 나옥분을 서포트함으로써 국가의 공적 일을 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얻는다(고 착각한다). 영화가 상영시간 전체에 걸쳐 나옥분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냈음에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나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증언자로 단순해지고 만다. 결국 이 영화가 내셔널리즘의 역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참고 : 후 캔 스피크 / 후지이 다케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4569.html )


세대 간 문제

사족으로, 나는 영화를 본 직후에 〈아이 캔 스피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대표되는 노인 세대와 박민재 등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 간의 문제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경제적으로도 발전하고 국제적으로도 위상을 가지게 된(영어 실력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현재 젊은 세대가, 이전의 식민지 시기 기억을 가진 세대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을 담고 있다. 박민재, 박영재, 나옥분이 이루는 유사 가족 관계도 그런 틀로 생각해볼 면이 있다. 어쩌면 가부장적 국가의 모습은 더 나이 많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젊고 유능하면서 나옥분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나옥분을 돕는 박민재의 얼굴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이 부분은 공부가 부족하여 아직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더 풀어간다면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비슷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다른 영화들과 비교 대조를 해 가며. 그러나 어쨌건,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은 스스로 말할 수 있고 과거 자기를 침묵하게 했던 것과 싸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우리가 더 나아진 구석일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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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일고 갑니다 ^^

    2017.11.25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2. 조아영

    잘 읽고 갑니다. 영화를 보고 어딘가 미묘하게 속시원하지 않은 감정이 드는 이유는 이때문이었던것 같습니다.

    2017.12.18 10:4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6. 21. 22:50

(본격 까달라는 글? -_-)


사촌동생에게 수학을 좀 가르쳐주러 갔던 날의 일이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대한민국(남한이든 한국이든 여하간) 축구 국가대표팀 사이의 경기가 끝난 바로 다다음날이라서, 아니나 다를까 월드컵 축구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들 "우리가 아르헨티나한테 져서 기분 나빴어."

나의 삐딱한 입은 각각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인 사촌동생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공현 "왜 우리야?"

동생들 "응?"

공현 "경기를 하고 진 건 한국 축구 대표팀이잖아. 니가 진 거 아니잖아."

동생들 "우리나라니까 우리지."

공현 "한국 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경기해서 니가 이기거나 지는 건 아니잖아. 왜 우리가 이기는 거고 우리가 지는 거야?"

동생들 "아 우리나라 팀이니까 우리지."

공현 "난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한국 축구팀이 얼른 지면 좋겠어. 나이지리아도 지고 16강도 안 가고."

동생들 "헐. 왜?"

공현 "시끄럽고 응원한다고 사람도 지하철에 얼마나 바글바글한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7월에 있는데 그 전에 월드컵이 끝나면 좋겠거든."  (* 7월 13, 14일에 있는 성적공개 일제고사를 말함.)

동생들 "뭐야 그게. 우리가 이겨야지. 그래야 기분이 좋지"

공현 "우리가 아니라니까. 한국 축구팀이지. 근데 왜 한국팀이 이겨야 하는데?"

동생들 "우리나라니까 우리가 이기면 좋지."

공현 "반대로 한국 축구팀이 이기면 진 다른 팀 나라 사람들은 어떨까?"

동생들 "아르헨티나한테 졌을 때 우리 기분 같겠지 뭐. 나이지리아는 꼭 우리가 이겨야 돼."

...... '왜 한국팀이 이겨야 하고 다른 나라 팀이 지는 건 괜찮은가, 왜 한국팀이 이기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는 급기야 이 이야기는 이렇게까지 발전한다.

동생들 "아르헨티나는 나쁜 놈들이야."

공현 "왜?"

동생들 "어, 마라도나가 한국 막 깔보고 그랬어."

공현 "그래? 그럼 그 사람이 잘못한 걸지 몰라도 왜 아르헨티나가 나빠?"

동생들 "그 사람이 아르헨티나 사람이잖아."

공현 "그래? 그럼 조두순도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은 나쁘겠구나."

동생들 "어... 조두순은 싫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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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나는 월드컵을 반대한다.

사실 찾아보면 월드컵을 반대할 이유야 많다. 아동노동착취나 남아공 월드컵 준비 이면에 숨겨진 철거와 폭력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FIFA와 세계자본의 돈벌이를 비판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교육문제, 인권문제를 공론화시키면서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월드컵에 관한 스포츠 기사들이 언론을 도배질하고 사람들의 화제거리가 온통 월드컵으로 쏠리는 것이 얼마나 내 활동에 지장을 주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다. (어쨌건 사람들의 기억력과 화제 용량, 언론 지면이란 한정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한 가지 현상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한다. 국가주의 - 애국심 - 국가(또는 국가의 대표들)와 나의 동일시.

예전에 '올림픽에 대한 불편함' 이란 제목으로 끄적인 글이랑 같은 맥락에서다.

국가 대항 운동 경기는 '국가대표'들과 '국가대표'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고 이를 통해 국가들은 국민들의 단결력을 강화한다.
그 과정에서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국가대표 선수들과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과, 그 국가의 사회 체제나 정부 체제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같지 않다. 각각의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는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운동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거나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월드컵을 통해서 단지 그 나라에서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을 뽑아서 만든 팀들끼리의 경쟁이,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쟁인 것처럼 바뀌게 된다.

국가대표(엘리트)와 자기의 동일시. 국가대표와 국가의 동일시. 국가와 자기의 동일시.
사실 굉장히 국가주의/민족주의적인 심리상태이고, 어마어마한 정치적인 효과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가 유엔안보리에 정부의 의견과 다른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해서 길길이 뛰는 정부 사람들과 우파 단체들을 생각해보라. 국가를 하나로 묶어내고 정부의 의견이 곧 국민/국가의 의견인 것으로 만들려는 데에도 그와 동일화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정당한 인권을 유보하라." 국가주의적 맥락에서 정당화된 수많은 인권침해의 역사들은, 국가와 자기를 동일시한 사람들의 묵인 속에 이루어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맹세를 강요하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반대 운동을 했고, 모든 국가가 폐지된 사회를 상상하는 나에게 월드컵이 그 '당연하다는 듯이' 내뿜고 있는 국가주의의 열기는 심리적으로 혐오감이 들 정도이다. 내 생애에 빨간색이 이렇게 싫어진 때가 처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민주적인 의식은, 국가와 정부(엘리트/대표들로 이루어진)와 자신, 인민(시민이라고 하든 국민이라고 하든)들을 분리하고 국가 권력을 견제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사회를 바꾸고 만들어가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국가주의를 내면화시키는 효과적인 이벤트인 월드컵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이미 월드컵이니 교과서니 해서 특정한 정치적인 경향을 학습하도록 하고 있으면서 교사들의 정치 활동에는 눈에 불을 켜고 짤라버리겠다고 으르렁대는 정부의 위선....



난 축구를 좋아할 뿐이야 / 난 그저 다 같이 즐기는 축제가 좋을 뿐이야 ??


물론 이런 비판을 두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난 축구를 좋아할 뿐이야", 또는 "나는 그저 다 같이 거리에서 즐기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좋을 뿐이야."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

그저 축구를 좋아할 뿐이라는 분들에게는, 그렇다면 굳이 한국 축구 대표팀이 이기든 지든 상관 없이 축구를 즐기시라고 하고 싶다. 한국이 이기든 지든 월드컵은 정해진 경기 수를 다 치러나간다. 한국 대표팀이 축구라는 경기에서 뭔가 특출나고 흥미로운 특성을 가진 팀이 아닌 이상,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굳이 한국 대표팀을 응원해야 할 이유는 없다.

혹시 "축구를 좋아할 뿐이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은 한국팀이야. 잘 아는 선수들도 많고 친숙하고..."라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게 된 그 배경에 '애국심'이나 '국가주의' 같은 요소가 눈꼽만큼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나라면 자신할 수 없다.) 혹시 그런 요소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 속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 자체를 다소 경계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권해드리고 싶다.


다 같이 거리에서 즐기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좋다는 분들에게는 먼저 고개를 끄덕여드리고 싶다. 개인화되고 분절되고 생계의 압박 속에 치어 돌아가는 삶 속에서 거리를 점거하고 벌이는 집단 축제를 욕망하게 되는 것은 대단히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왜 굳이 월드컵에서만 이러한 축제가 만들어지는가, 왜 굳이 이토록 국가주의적인 이벤트에서만 그런 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의문은 떨치기가 어렵다. 어쩌면 그런 축제 같은 분위기, 즐거운 광장에서의 행사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국가주의적인 방식으로 포섭하고 이용하는 것이 월드컵은 아닐까?
   (2010년 월드컵에서는 자본들의 개입도 노골적이다)

그래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즐기는 축제로서 월드컵 응원을 하러 간다는 분들에게는, 월드컵 말고도 훨씬 더 인간적인, 국가주의나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민주적인 축제를 욕망해보실 생각은 없냐고 제안하고 싶다. (2008년의 촛불은 어쩌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즐기시더라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내면화되는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부탁드리고 싶다.


(... 애국이 왜 나쁘단 거? 이 매국노 새퀴. 일본으로 가버려라!   --> 이런 분들에겐 별로 드리고 싶은 말도 없고; )


추신 : 그래서, 여하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에서 한국이 져서,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런 열기가 좀 수그러들기를. 그리고 7월 13, 14일 일제고사 반대 운동에 열기가 더해지기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 졌을 땐 정말 만세를 불렀다니깐. 열심히 연습하고 경기한 선수 분들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그 상대 팀 선수 분들에겐 죄송할 일 없는 것이니 쌤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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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21 23:28 [ ADDR : EDIT/ DEL : REPLY ]
  2. 지나가는 길에 잠깐 눈에 들어와서 한말씀 적고 가도 괜찮을련지요? ^^;;
    글쓴이분의 글을 아주 잘 읽어보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거의 모든 분야에 필수불가결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본이지요.
    우리는 직간접적인 자본의 영향 아래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월드컵 뿐만 아니라, 항시 누군가는 '타인이 어떠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신의 이익'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월드컵 역시 이러한 자본의 영향아래 만들어진 산물이라 볼 수 있겠군요.

    그러나 오월동주라는 말이 있듯이, 현재의 한국 사회 분위기는 단합을 필요로 합니다.
    굳이 이러한 상황들이 국가주의라던지 민족주의와 결부될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 정치/사회적 문제점의 대표적인 것으로 지역갈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곧 국민의 분열입니다. (이 외에도 경제적 소득 격차에 따른 갈등 등 여러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월드컵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글쓴이분께서 말씀하신 '다 같이 즐기는 축제' 입니다.
    특정 국가의 승리의 여부와 상관 없이, 일차적으로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것입니다.
    스포츠는 직접 하는 행위의 스포츠로써 '인간 관계 형성'의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말그대로 국가 대표라는 선수가 '나 대신' 행위하는 스포츠입니다.
    국가 대표의 모집단은 해당 국적을 가진 국민입니다. 물론 '국가 대표 = 국민'의 항등식은 성립되지 않으나, 국가 대표의 국가와 국민의 국가는 동일합니다.
    글쓴이께서 말씀하신 국가주의란 것은 혹 과거 파시즘과 관련된 부정적인 표현이라 생각듭니다.
    애국심과 전체주의는 분명히 다릅니다. 애국심은 직장이나 가족 ·향토에 대한 애정과 모순됨이 없이 결부되어 평화적 성격을 지닙니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여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군중들이 꼭 미련한 군중만은 아닌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월드컵에 열광하지 않습니다만, 애국의 의미가 다소 변질되어 부정적인 의미로만 해석된 것 같아 이렇게 넋두리 놓아보았습니다. 분명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것'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인데, 애국이 꼭 현정부에 이익이 되는 것으로 서술 하셔서 이렇게 써 보았습니다.
    정치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애국이겠지요.

    분명, 월드컵에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루빨리 개선 되었으면 좋겠네요.
    글쓴이 분의 포스트를 보면서 새로 알게된 사실도 여럿 되군요. ^^
    건강한 생각을 갖고 항상 자신의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쓰신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혹 시간이 되면 여러 글을 더 보아 저도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수고하세요~

    2010.06.21 23: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애국심 / 애향심 또는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능
      '단합'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는 어떤 게 있을까요. 월드컵이 지역갈등을 해소시켜줄 것 같진 않은데요; 특히 계급간 갈등은 더더욱...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행사는 이런 다양한 층위의 갈등들을 '해결' 한다기 보다는 감추는 성격이 더 강한듯 해요.

      2010.06.21 23:45 [ ADDR : EDIT/ DEL ]
    • 애국심의 사전적 의미를 빌려온 것입니다. ^^;
      분명 월드컵이 지역갈등을 해소시켜주진 않겠지요. 하지만 현재 분열된 사회 속에 분명 단합이라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스포츠의 순기능이라는 역할이 바로 사회적 통합이라고 배웠구요. 굳이 이러한 스포츠의 순기능을 무시한채 이해적인 요소들만 갖고 본다면 당연히 월드컵은 눈엣가시인 존재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2010.06.21 23:51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그 단합이라는 게 왜 필요한 건지 궁금했어요. '분열'에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게 아닌 건 제쳐두더라도 '단합'이 이해관계를 떠나서 왜 막연히 좋아야만 하는 건지 말예요.

      2010.06.22 00:08 [ ADDR : EDIT/ DEL ]
    • 자본 일반이랑 개개인의 이익 일반은 다른 문제에요. 섣불리 자본 이야길 드시는 건; 세계 규모의 축구 대회라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한 형태의 행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월드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행사인 건 맞죠.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본문에서 저는 딱히 자본의 문제를 주된 걸로 지적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요 -ㅂ-;;

      - 지역주의의 문제는 국가를 분열시키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서나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서 행위하지 않게 되는 게 문제일 뿐이죠. 분열, 갈등 없는 민주주의란 없습니다. 어떤 분열이나 어떤 갈등이냐의 문제가 논의 대상이어야 하는 거죠.

      - 꼭 파시즘이 아니어도 국가주의 일반에 대해서 저는 비판적인 정치적 포지션에 있습니다. 애국심은 자기가 사는 삶의 터젼이나 관계에 대한 사랑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에요 -_-;; 그 두 개를 두루뭉실하게 넘기면서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의 확장이 애국심이란 식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둘은 개념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차이점이 많습니다.

      - 국가대표의 모집단이 국민이고 국가대표의 국가와 국민의 국가가 동일하니까 문제 될 것이 없다라 -_-;;;;같은 국민을 '모집단'(원래 모집단이란 말 이런 데서 쓰는 거 아닌데.. 머엉)으로 한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국가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존재, 국가가 적대해야 하는 존재가 되지요. 범죄자가 특히 그렇고... 국적이 '같다'고 해서 국가가 같다고 말하는 건 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입니다. 용산에서 돌아가신 철거민들에게의 국가와 삼성 전 회장님에게의 국가는 같은 국가가 아니에요. 저에게의 국가와 제 애인에게의 국가도 같은 국가는 아니죠.

      - 제 포지션에서는 애국은 그냥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_= 국가주의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거니까요. 저는 '현정권'만 반대하는 건 아니거든요.

      2010.06.24 20:51 신고 [ ADDR : EDIT/ DEL ]
  3. 정말 평화에 찌들어 무뇌아가 된 철부지에 쓰래기 같은글 잘보고갑니다 ^^

    2010.06.22 00:16 [ ADDR : EDIT/ DEL : REPLY ]
    • ...
      이분 덧글에 갑자기 동감을 마구 찍고 싶은 이유가 뭐지...

      2010.06.23 18:43 신고 [ ADDR : EDIT/ DEL ]
    • 평화에 찌들어서, 전쟁을 일으키는 데 두려움이 없는 거라면 모를까,
      평화에 찌들어서 전쟁과 같은 상태를 강력하게 부정하고 그에 이르는 것들을 반대하는 것이라거나 전쟁 상황을 상정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
      모두가 평화에 익숙해지고 평화로운 상황만을 상정하는 사회가, 전쟁을 위협하거나 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좋은 상황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사회가 평화롭다고 생각하진 않지만요.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송경동)

      2010.06.24 20:44 신고 [ ADDR : EDIT/ DEL ]
  4. 하하 저도 아르헨티나전에서 졌을때 속으로 만세를 불렀던 사람인데 반갑네요 ㅎㅎ
    선수들한테는 미안하지만 16강 진출 안하구 4대강 문제라든지 여러가지 중요한 이슈들이 묻혀가질 않길 간절히 바랄뿐이에요;

    2010.06.22 00: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대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상대하는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는 안 미안해해도 되잖아요? ㅋㅋ고마워할 겁니다.

      2010.06.24 20:52 신고 [ ADDR : EDIT/ DEL ]
    • 맞는 말이세요 ㅋㅋ ^^

      2010.06.26 04:13 신고 [ ADDR : EDIT/ DEL ]
  5.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어. ㅇㅇ
    근데 자네가 써놓은 글에도 있다시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순수하게 즐기는 축제로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네.
    자네가 자네 친척 동생들에게 말한 태도는... 자네도 어떻게 보면 초딩과 다를 바가 없어보여. -_-;
    예전 자네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생각해 온 건데, 자네는 자네 혼자만을 독립, 세상과 따로 놓고 보려고 하는 것 같아.

    뭐...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은 드럽지 않아. 더러운건 자본이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즐겁고 신나는 축제, 아니면 현실에서 느끼는 자신들의 패배의식을 '국가대표'란 이름을 단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하는게 아닌가...라고 난 생각하지만서도. (...)
    나도 보고 있으면 신이나서 '대~ 한민국!'을 외치니까~ 근데, 보고나면 왠지 씁쓸하지... '난 대체 왜 저들을 응원하는 것인가? 내가 단순히 한국사람이라서? 한국사람은 왜 한국을 응원해야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축구선수인 메시는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이건 예시네. 난 이청용선수랑 이영표선수가 좋아)' 이런 식의 번뇌?
    뭐... 박태환 선수나 김연아 선수나 우리 월드컵 축구팀을 응원할 때마다 난 자본의 엄청난 개입보단 그들을 통해 나의 패배의식을 지워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ㅇㅇ

    2010.06.23 18: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순수'나 '깨끗'함이나 '드러움'(더러움)이란 개념과는 별 연관이 없는 글인뎁쇼.
      이 이야기는 '윤리판단'으로 어느 게 선이고 악이라거나 어느 건 순수하고 드럽다는 식의 판단이 아니라 국가주의[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포지션에서 내놓는 정치적인 글이라네. 나는 세상이 더러워서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딱히 자본이 더럽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나는 사람들의 욕망이 어떻게 움직이나, 사회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나, 그것이 내 지향에 도움이 되나 반대되는 걸로 작용하나, 그런 걸 따지지 사람들의 욕망이 순수한지 아닌지를 따지진 않아. 애초에 그런 걸 판단하는 기준도 있을 수 없고 -_- 애국심이든 자본이든 사회적인 이데올로기, 현상, 체제에서 분리된 '순수한' 욕망이라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남? 아니 그런 것으로부터 분리되면 '순수'한 건가?;

      오히려 나는 세계와 나 자신을 상대화함으로써 내가 세계에 개입하고 투쟁할 수 있는 영역을 열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야. 세상과 따로가 아니라 오히려 계속 더 깊숙하게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뿐. 오히려 '순수'와 '드러운' 것을 구분하고 자신들은 순수하다고 이야기하는 님 같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세상에서,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님의 논법을 뒤집는다면.

      ps. 초등학생 분들 무시하지 마시길. ^^

      2010.06.24 21:00 신고 [ ADDR : EDIT/ DEL ]
    • 요즘 들어 소설책만 읽다보니... 글을 읽는 능력이 거의 없어져버린 덧. -_ㅠ
      (아니 사실 질적으로 좋은 책도 읽고는 다니는데... 천주교 서적들. 월간으로 나오는 책들인데 좀 좋더라긔. 군대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종교서적 ㅠㅠ)

      흐음... 생각해보면 자네의 행동은 개입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만. ㅇㅇ
      근데 왜 난 가끔씩 네가 '선을 긋는 것 같다'란 느낌이 들어. 내 똘끼가 요즘 많이 상승해서 그러나.

      2010.06.25 19:31 신고 [ ADDR : EDIT/ DEL ]
  6. 비밀댓글입니다

    2010.06.24 22:41 [ ADDR : EDIT/ DEL : REPLY ]
  7. 응원하는 팀을 우리 팀이라고 하고 승패에 승복하되 강한 감정적 어필을 하는 게 결코 이상한 게 아닌 거 같네..

    무엇보다도 축구를 즐기는 거면 한국이 이기든 말든 신경쓰지 말길 바란다는 건... 한국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한테 말하면 그만인 것을.. 한국인인데 아르헨티나 응원할 수 있지 않나? 그 사람한테 그렇게 말해 ㅋㅋㅋ 축구를 즐겨보질 못하고 즐기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게 너무 드러나지 않나... 이건 뭐... 국가주의니 뭐니 그거의 희생돼서 니네들이 정신머리 없이 한국 지지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네가 하는 거 어느 하나 학습되지 않은 게 있기라도 한가.. 축구 응원하고 흥분하며 설레고 열광하는 그 자체가 국가주의의 완성과 세계자본가들의 퇴폐적 번영에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넘 폭력적이고 앞뒤 없고 생각 없는 거 같다...

    자신의 향토팀을 지지하는 경우 대기업이 설립한 것이 아닌 시민구단은 어떠할까.. 결국 프로축구와 대한축구협회 그외 FIFA의 번영에 공헌하는 정신없는 바보들이라ㅗ 판단하는 건가...

    아 정말 세상을 바꿀 마음이 있는 건가...

    그냥 이 정도 선에서 꼼지락 깐죽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2010.06.26 01: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사람들이 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될까에서부터 묻는 거야. 아르헨티나를 응원할 수도 있냐 없냐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거라는 거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는 걸 인정한 상태에서 그것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느냐 그리고 그 정치성을 내가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쓴 거고.
      내가 축구를 즐기냐 안 즐기냐는 큰 상관 없는 듯. 내가 축구라는 스포츠를 별로 못 즐기는 사람인 건 사실이지만 (차라리 야구면 모를까) 그게 글의 내용을 무의미하게 만들진 않으니.

      어차피 사람들이 스포츠에서 자기나 자기 친한 사람이 직접 하는 것도 아닌 이상 어느 팀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느냐 하는 건 작은 계기나 요소에 좌우되는 문제, 라고 생각되는데. 연고지든 팀의 스타일이든 소속된 선수든 유니폼이든 상징이든 국적이든 뭐든... 그런데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이 한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결과 생기는 효과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쓴 글이지.
      한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희생된 거라거나 정신머리 없다거나 퇴폐적이라고 쓰지 않았는데? 사회 현상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글을 썼더니 그 현상에 관련된 사람들을 까는 글이라고 생각하는 우문이구만.

      / 지금 내가 바로 청소년들을 조직하여 월드컵과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설 것도 아니고 나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활동을 기획하며 쓴 것도 아니고,
      그런 블로그 글에 대해서 세상을 바꿀 마음 운운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은 안 되고 꼼지락 깐죽대는 글이나 쓰고 있다고 하는 혁수님이 넘 폭력적이고 앞뒤 없고 생각 없는 것도 같구랴.

      // 그리고 혁수님이 세상을 바꾸려고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이야기 들을 위치는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2010.06.27 01:51 신고 [ ADDR : EDIT/ DEL ]
    • "난 안 깠는데? 너는 그걸 깠다고 우문하며 지적질했고, 난 그걸 들을 처지임을 강조하거나 언급하지 않았으나 너 역시 그럴 처지가 아니잖아"라는 건 무슨 앞뒤를 생각한 것인가.. 이거야말로 위에다 아래 얹고 뒤에다 앞을 붙인 거구만.

      축구 자체를 즐기지 못하니 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제한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너는 애국이니 국가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남들과 다른 입장에서 제대로 판단하고 남들은 그르다고 믿겠지만 실상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겠지 물론.

      사건과 사물에 정치적이지 않은 건 사실 없고, 포함돼 있는 정치성에 관한 찬반을 논하는 게 옳지 않다거나 네가 쓰지 않은 사실을 썼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 네가 말하는 찬반제기가 그르고, 쓰지 않았지만 쓴 거나 마찬가지라고 얘기한 거야.

      세상을 바꿀 마음을 운운하며 너의 블로그를 구경한 건 네가 그런 삶의 모토로 타인과 차별화됨에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본 나의 판단이며 그것에 네가 토를 달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네 삶의 스타일과 글, 다양한 활동을 평가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진 말라구.

      2010.07.01 07:06 신고 [ ADDR : EDIT/ DEL ]
    • 나름 의미를 담아서 열심히 쓴 글을 한 줄로 무리하게 요약하려니까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게 요약되잖슴. 나도 한 1분쯤 쳐다봤네 첫 줄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어서.
      축구를 즐기지 않기 때문에 혹은 즐기지 않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이야 얼마든지 있지. 그리고 그 내용의 범주를 별로 벗어나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되니, 축구를 즐기냐 안 즐기냐는 별로 중요치 않은 듯하단 건데. (내가 공 차고 뛰어다니는 건 또 은근 좋아하지만 여기서 '축구를 좋아한다'는 그 맥락은 아닌 듯하니 그건 패스)

      그리고 별로 딱히 뭐 내가 '제대로' 판단하고 있고 남들은 그르다고 믿는 것도 아닌데... =ㅂ= "그렇지 않겠지 물론"은 어디서 갑툭튀인데.

      "축구 응원하고 흥분하며 설레고 열광하는 그 자체가 국가주의의 완성과 세계자본가들의 퇴폐적 번영에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넘 폭력적이고 앞뒤 없고 생각 없는 거 같다..."
      라고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일 뿐. 혁수처럼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자기 머리 속에서 갈라놓고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흥분하며 열광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을 '폭력적이고 앞뒤 없고 생각 없는 거 같다'라고 평가하는 방식이나, 거기에 연장선에서 갑자기 나오는 "아 정말 세상을 바꿀 마음이 있는 건가" 류의 드립이, 혁수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폭력적이고 앞뒤 없고 생각 없다는 평을 들어 싸다는 것일 뿐이지. 혁수 스스로 쓴 글에 대해 혁수 식의 평가 기준으로 평가한 것을 부정하지 말라구.

      2010.07.07 03:01 신고 [ ADDR : EDIT/ DEL ]
  8. 상대화 파편화에 매몰돼서 삶의 유희도 없고... 상대적이고 지성적이라고 믿는 갇힌 지식 때문에 오히려 하고자 하는 일은 무능할 뿐 정치적이지 못하며 무력하여 그저 놀이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2010.06.26 01: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냥 이 댓글을 보니 혁수랑 무명이 왜 사이가 안 좋은지 알겠음. 둘이 많이 닮았네 그랴 ㅎㅎ

      2010.06.27 01:52 신고 [ ADDR : EDIT/ DEL ]
    • 그게 내 말에 무슨 대답이 되지? 그런 천한 것과 함께 논하지 마라.

      2010.07.01 07:08 신고 [ ADDR : EDIT/ DEL ]
    • 무명을 천한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도, 나는 별로 혁수가 이미 별로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 내가 사용하는 '정치적'이라는 어휘의 의미는 혁수가 사용하는 '정치적'이라는 어휘와 다른 거 같지만.

      2010.07.07 03:02 신고 [ ADDR : EDIT/ DEL ]
  9. dma

    축구경기관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에는,
    양팀의 전략이나 전술, 선수들의 플레이가 겨뤄지는 양상을 보면서 얻는 재미와,
    특정 팀에 감정이입하여 '우리'가 잘할때 못할때 울고 웃는 재미가 있을텐데,
    월드컵 응원 mass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자-축구의룰과게임을즐기기-보다는 후자-'우리모두하나되기놀이'라고 할까요-가 압도적이라고 봐야죠. 그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와 관련없는 유럽 유명 축구리그를 보라고 하면 보다가 졸 테니까요. 그래서 축구매니아들 중에는 평소엔 축구에 관심도 없으면서 월드컵 때만 열광하는 이들을 고깝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요.

    다만 이 글은 그런 축구매니아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사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전자를 즐길 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요. 다만 이런 글에 따라붙는 '순수하게 축구를 즐길 뿐이다'고 할 때 그 '즐김'은 후자, 즉 '우리모두하나되기놀이'를 즐긴다는 것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우리하나되기놀이' 그 자체를 나쁘다 할 것은 아닐 겁니다. 아니, 나와 다른 사람 간에 마음의 경계심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건 기본적으로 좋은 거겠죠.

    그런데 만약 내가 지금 광장에서 열광하면서 응원하고 있는데, 그동안 나를 죽도록 부려먹으면서 최저임금도 제대로 안주던 알바하는 곳 젊은 사장이 같이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나는 진짜로 '우리'일까요? 월드컵 경기는 그와 내가 국가의 이름 아래 '우리'이고 '하나'가 되도록 만듭니다. 이명박과 내가, 월드컵 광고를 하는 돈많은 기업과 내가 '우리'이고 '하나'가 됩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이고 '하나'가 되는거죠.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된 결과, 사장이 반성하고 내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주고, 이명박이 반성하고 진짜로 국민들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하고, 돈많은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질좋은 일자리를 주고 소비자 돈을 갈취하지 않게 된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보단, 평소 억울해하던 노동자, 화내던 국민들 쪽 마음이 느슨해지기가 훨씬 더 쉽지요. 딱히 국가가 국민들을 더욱 사랑해서 잘하게 되지는 않는데, 국민들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애국심-이 커지는 것이지요.

    바로 그래서 국가들과 자본은 올림픽을 발명하고, 월드컵을 만들어서 4년마다 그것도 둘 합치면 2년에 한번씩 죽어라 돌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거부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넌 이걸 즐겨보질 못하고 즐기는게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비웃으며 자랑스럽게 즐기고 있지요.

    2010.06.29 04:59 [ ADDR : EDIT/ DEL : REPLY ]
    • 내가 우리모두하나되기놀이를 즐긴다고 유추한 건지 연역한 건지 모르겠으나... 난 일본도 응원하고, 호날두도 응원하고, 한국전 오심(?)에 관한 편파적인 지적질을 즐기지 않는 상황이니 위 덧글의 말에 내가 해당하지 않음은 당연한 듯.

      즐기지 못하는 게 바보고, 바보에게 불가능한 것은 영원히 그대로 유지될 게 확실시되므로, 그러한 자를 비웃을 수 있는 건 바보 아닌 자의 참된 권리.

      도대체 내가 이런 글을 쓴다고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던 사람이 되고, 사장이랑 사이 좋게 관람하며 하나가 된다거나(더럽다) 이명박에 대한 애정과 조선인으로서 자긍심이 커질 거라고 보는가. 이것은 그냥 이론과 저항의 대상에 대한 획정이 실재와 결합하지 못한 탓이겠고, 내가 우월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아직 모르는 탓이기도 하겠다.

      올림픽해도 별로 축구말고는 관심도 없는데.. 이건 국가를 사랑해서인가 축구를 즐겨서인가.. 벌어지는 현상일까, 거부하고 지적질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거부에 비해 교묘하게 만든 장치를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모든 걸 일면만이 아니라 전체로서 폭넓게 이해하고 볼 줄 아는 건 누구일까. 이건 내용에 관한 논의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물론 나임.

      2010.07.01 07:18 신고 [ ADDR : EDIT/ DEL ]
  10. 이 글을 읽어본 바 네 글에는 십분 동의하고 너의 포지션도 이해할 수 있지만 갑자기 내 블로그에 덧글 달았을 때는 좀 놀랬음...ㅋ
    나는 정말 '국가주의' 나 '애국심' 하고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본문에 언급된 그런 분위기 자체는 되게 싫어하지만. 일단 한국 국대는 '못하는데 올라가려고 기를 쓰는 전형적인 약팀'의 모습이 있어서 좋아하게 된 거지...-_; 너무 잘했으면 아예 안봤을듯.

    역시 이런 이상한 분위기를 없애려면 한국 국대가 축구를 엄청 잘하게 되서 16강 따위로는 거들떠도 안 보게 만들어버려야함.ㅋㅋㅋ 결승전쯤 가면 오 하면서 잠깐 축제분위기 좀 내고 말아야지 원...

    근데 저 혁수란 분은 뭐하시는 분이야?; 같이 일하시는 분인감? 어그로 쩌시네...

    2010.07.02 03:27 [ ADDR : EDIT/ DEL : REPLY ]
  11. Left

    애국심이나 국가주의가 하나라도 끼여있지 않다고 말 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 애국심이나 국가주의도 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이 아닐까요?
    그걸 두고 님께서 뭐라 하신다면 그거야 말로 인권침해 같은데요.....

    2010.07.09 19:32 [ ADDR : EDIT/ DEL : REPLY ]
    • 많은 오해를 사는 게,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등이, "나에게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내가 뭘 생각하고 말하든 내 생각과 말에 대해 뭐라고 얘기(비판)하지 마!"로 착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그런 불개입이나 서로에 대한 무관심을 뜻하는 말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표현에 대해서 내가 내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것(비판하거나 동조하는 것)도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거니까요 -_-;;

      제가 그런 애국주의나 국가주의적인 행위를 금지하거나 탄압하거나 폭력적으로라도 저지해야 한다고 한다면 인권침해라고 하셔도 됩니다. ㅇㅇ

      2010.07.10 02:09 신고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08. 7. 22. 21:34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 이게 '광야에서'의 가사인데...

난 촛불집회에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뭐가 걸린 것처럼 불편한데 사람들은 다 별 문제의식 없이 잘 부르는 것 같다. -;; 뭐 가락 자체는 좋아서 가끔 흥얼거리긴 하는데 역시 가사는 좀

예를 들어서

"하얀 옷의 핏줄기"
- 이건 혈연 중심의 민족 개념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표현이고

"해뜨는 동해에서~광활한 만주벌판"
- 이건 동서남북 모두 우리가 정복하겠다는 거고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 이건 결국 앞에 나온 만주벌판에 다시 선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단순히 말하면 만주 그거 옛날에 고구려 땅이었으니까 우리가 다시 먹자! 이거고,..
 그런데 심지어 "어찌 주저하리오"라면서 주저 없이 영토를 확장하겠다고 한다 ㅎㄷㄷㄷ


이렇게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이고
이렇게 제국주의적이고 영토확장주의적인 노래가 있나....



독도 문제로 일본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최근 정국에서는 더 많이 불릴 법한 노래란 생각이 문득 든다 -_-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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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조

    그렇게 볼수도 있네..
    흰 옷은 맞는데.
    난 광활한 만주벌판 부를때마다 독립투사들 생각하고
    다시 서는 저 들판 할때 빼앗길 들에도 봄이 오는가 이런 말이 생각났었는데 ㅋㅋㅋ
    다시 보니 잃었던 땅을 찾자는말인데
    만주벌판도 찾고싶다는 말같기는하다. ㅋㅋ

    2008.07.26 00:23 [ ADDR : EDIT/ DEL : REPLY ]
    • 만주벌판이 그냥 독립운동-독립투사와의 연관성이라고 보기 어려운 게

      그럼 남도랑 대구를 이루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2008.07.26 01:31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