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준화'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3.09.18 명절만큼은 대학입시 얘기는 참아주세요! (평등명절 현수막 캠페인)
  2. 2011.08.29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3. 2011.03.24 [인권오름]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
  4. 2011.03.13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5. 2011.03.05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2011.03.19.) (5)
  6. 2009.11.16 '플래쉬몹한 20대 두명' 연행기 (27)
  7. 2009.11.12 어김없이 쌀쌀한 수능날입니다. 어김없이 수능거부입니다. (2)
  8. 2009.11.11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2009년 11월 14일! 경쟁의 벽을 허무는 당당한 반란!
  9. 2009.01.02 세 종류의 “수능대박”
  10. 2008.11.13 수능을 거부하고, 입시경쟁을 반대하는 사람들 (4)
  11. 2008.11.12 입시경쟁 없는 교육, 어떻게 만들까? - 11월 14일 수능 다음날 ~_~ 청소년 입시폐지 토론회
  12. 2008.11.12 수능맞이 : 수능대박은 허구일 뿐... 입시 좀 폐지하면 안 될까나?
  13. 2008.11.03 학생의 날 기획 홍보물 - 역사는 바로 지금이다, 입시경쟁 노예교육을 철폐하라!
  14. 2008.10.04 [참세상] 무한경쟁 ‘일제고사’ Say NO!
  15. 2008.09.05 ‘일제고사’를 비롯한 몹쓸 교육정책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제안합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
  16. 2008.09.04 입시경쟁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교육문제 전단지) (4)
  17. 2008.05.30 '미친소'(but 아픈소)가 무서운 우리, 그리고 우리도 정말 미치겠다 -_- (10)
  18. 2008.01.08 청소년인권운동의 입으로 입시경쟁교육 앞담화까기
걸어가는꿈2013. 9. 18. 02:42




http://www.socialfunch.org/equalityedufestive




○ 요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보면, 명절 때 고향집을 방문하고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갈수록 꺼려진다고 합니다. 특히 고3이 되면 그 기피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하네요. 현상적으로는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거부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은 연휴가 시험기간에 끼어있어서 핑계 삼아 혼자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친척집을 방문한 청소년도 내키지는 않으나 부모님에게 끌려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심지어는 명절은 싫지만 친척들이 주는 용돈 때문에 따라 나선다는 청소년도 있답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명절 친척집 방문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얼굴을 보자마자 성적이야기를 꺼내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는데요.

○ 물론 가족, 친척끼리 궁금한 게 많은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곤란해 할 질문은 굳이 묻지 않는 배려도 필요하겠죠. 관심의 표현이 오히려 부담과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색함을 피하고자 난처한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건 참아줘야 합니다. 예컨대 ‘성적은 잘 나오지? 잘 할 수 있을 거야.’처럼 민감한 질문은 공개적인 자리 대신 따로 자리를 마련해 나누는 것이 좋겠죠.

○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은 성적․대학․입시․스펙 등 가족과 친척간의 위화감과 차별을 조성하는 대화를 줄이고, 보다 편하고 동등한 분위기 속에서 명절을 보내자는 취지에서 평등명절 캠페인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곡식까지 풍요로우니 더없이 좋은 날이라는 뜻이죠. 여러분도 이번 추석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풍요롭고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휘영청 밝은 보름달 보고 소원 비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 캠페인1) 명절만큼 이런 얘기는 참아주세요.
․‘대학 갈 준비는 잘하고 있지? 네 00만큼은 해라.’
․‘눈높이 낮춰야 하는 거 아니니? 00이는 어디에 입학했더라.’
․‘취업은 언제 하니? 그러니까 4년제 대학은 나와야지.’
․‘네가 모 대학에 들어가면 00가 등록금을 내주겠다.’


○ 캠페인2) 평등명절 현수막을 게시해주세요.
․게시기간 : 2013년 추석연휴 전~
․현수막 문구 : ‘가는 곳은 달라도 평등한 명절, 명절만큼은 대학입시 얘기는 참아주세요.’, ‘상상만 해도 즐거운 명절, 대학진학이 아닌 자기진로에 대한 꿈을 나눠요.‘
․설치장소 : 명절 때 이동이 많은 기차역, 버스터미널, 톨게이트 등 출입구 지역

○ 캠페인2-1) 평등명절 현수막 설치를 위해 후원해주세요.
․입금 계좌번호 : 광주은행 019-107-337776 농협 301-0124-8869-41
․필요한 예산 : 현수막 출력비 5장*2만원=10만원, 주유비 3만원 = 총13만원

○ 문의 : 070.8234.1319 antihakb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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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 시민 모임에서 이번 추석 때 하는 캠페인입니다.

실효성이 팍팍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문제의식을 전하는 데는 괜찮은 활동인 거 같네요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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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8. 29. 04:25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 문의: 010-7270-1900(따이루)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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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24. 13:33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

공현


청소년 집회 준비 과정은 좀 이상하다. 다른 집회들을 준비하는 과정과 비교해보면 그 우선순위가 전혀 다르다. 청소년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돈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부분은 바로 홍보이다. 충분한 홍보를 통해 조직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참여하도록 하지 않은 채 집회를 하면 50명도 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 등을 비롯한 여러 운동들의 집회 준비 과정에서 홍보가 ‘이미 어느 정도 조직화된’ 사람들에게 집회를 확실히 주지시키고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것인 반면, 청소년 집회에서 ‘홍보’는 사실 집회 자체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청소년운동의 씁쓸한 조직화 현황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19일에 있었던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3월 2일, 초중고등학교들이 개학하자마자 등하교길 홍보를 시작했다. 매일 매일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 일정에 참여하는 와중에도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가며 등하교길 홍보와 주말 번화가 홍보로 전단지만 대략 1만5천 장을 배포했다. 웹자보도, 퍼나를 만하고 퍼나를 수 있는 사이트에는 거의 모두 퍼날랐다.

전단지를 받아본 청소년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냥 읽지도 않고 버리는 경우도 있고, 바로 주머니에 넣는 경우, 묵묵히 읽는 경우도 있다. 이번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라는 주장을 전면에 배치해서 그런지 “야 이거 쩐다!”, “이거 꼭 해야 돼!”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전단지를 받아들고 “꼭 가겠다”라고 말한 청소년 분들 중에 반만 왔어도 집회가 참 대박이 났을 텐데……. 1만 5천 장을 청소년들에게 배포했는데 그 전단지를 받고 온 청소년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 전단지를 받고서 오는 청소년들의 비율은 0.1%도 안 되는 셈이다. 쩝. 일단은 학교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그런 주장을 많은 청소년들이 접하는 계기가 된 것 자체에 만족해야 할까?


청소년운동의 현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번 “실종신고” 집회는 그토록 많은 품을 들여 홍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집회 참가자가 100여 명에 그쳤으며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이미 아수나로나 다른 단체 등에서 활동을 하던 청소년들이었다. 집회 분위기는 좋았지만 과거의 청소년 거리 집회들처럼 미조직된 청소년들 상당수가 나오는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작년 일제고사 반대 집회 등에서부터 확인되어왔던 이런 모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먼저 첫째, 200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생들이 미군장갑차 살인사건을 비롯하여 내신등급제와 학생인권 등을 가지고 곧잘 거리로 나오던 시기에는 그나마 미조직된 학생들이 거리 집회에 참가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친 이후의 변화인지 아니면 교육․사회 환경의 변화인지 혹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 탓인지, 미조직된 학생들이 친구들과 같이 옹기종기 집회에 참가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니 2008년까지만 해도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 역시 이제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별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시큰둥한 모습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등 논쟁적인 주장들을 전면에 내세웠는데도 그렇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른바 ‘진보교육감’ 등이 학생인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과, 작년 조중동에서 아수나로 등을 대대적으로 다룬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집회는 청소년운동이 앞으로 조직력을 키우는 데 더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교훈을 준다. 집회가 끝난 뒤, 아수나로 회원들끼리 김치찌개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식당을 가득 채운 30여 명의 아수나로 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몇 년 전만 해도 10명 남짓하던 아수나로가 이렇게 커졌나 하며 뿌듯해했고, 계산을 하며 밥값에 절망했고, 마지막으로 “조직된 사람들로 200명을 채울 자신이 없으면 앞으론 단순 홍보에 의존한 거리 집회는 하지 말아야겠다. 밥값으로 단체가 파산하더라도.”라는 다짐을 했더랬다.

실종신고, 그 후…

이번에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시험 폐지)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학력, 학벌 폐지, 사람다운 생활 보장)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교육예산, 복지 확대)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학교 민주화, 학교운영․교육정책 참여)
◑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인권 보장)

이런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우려도 있을 법하고, 또 실제로도 그러한 의견이 인터넷 등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은 오히려 ‘생활 밀착형’ 주장이 된다. 예컨대 시험 폐지의 경우에, 대다수 중고등학생들의 경우에는 “전집형 일제고사를 표집형으로”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 같은 복잡한 정책적 논의보다는 “모든 시험 폐지”와 같은 주장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인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일제고사든 모의고사든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자신들에게 점수와 등수를 매기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학생들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줄 세우고 점수를 내기 위해 이루어지는 시험, 그리고 그 시험을 위한 교육 자체가 문제이고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를 가지고 깔짝깔짝 복잡하게 장난치는 것보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가 더 현실적인 대안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런 주장들 중 대다수는 청소년운동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운동과 정치 세력들의 것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는 복지 사회 건설 주장,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의 변형이다. 교육예산을 GDP 대비 6%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것은 십여 년 전부터 나온 교육운동의 요구였다. 시험 폐지의 경우에도 일제고사나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을 거치면서 “평가가 아닌 진단을”, “평가하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을 바꿔야 한다.”와 같은 형태의 주장으로 여러 토론회와 포럼에서 교육운동 주체들(주로 교사, 교수, 학부모들)이 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회운동의 주체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운동 주체들은 자기들끼리 하는 토론회나 포럼에서 이런 주장을 정리해서 내거나 아니면 정치세력에 정책으로 제안하기만 하고, 그런 주장들을 대중화하고 행동으로 풀어내는 데는 게으르다. 오랜 시간 대중적․지역적인 운동을 해온 것은 무상급식을 비롯하여 몇 가지뿐이고, 그나마 이 무상급식의 경우에도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적 논리와 제대로 된 의미는 충분히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적 운동이 “대안 없는 반대”만 한다는 식의 비판은 잘못되었다. 적어도 교육운동에서는, 대안과 정책을 만들고 공부하고 토론하기만 하고 운동과 실천을 하지 않고 있는 문제가 더 크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아수나로는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이 주장들을 내세워서 청소년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조직화하고, 행동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작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2월에 회원들이 모여 두 차례의 토론을 거쳐 주장의 내용과 슬로건을 확정했고, 이 주장들은 앞으로 적어도 1, 2년 동안 아수나로의 학생인권과 교육에 관한 활동 전반을 관통하는 슬로건이 될 것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에서는 말 그대로 “이런 것들이 우리 교육에는 없다. 학생들에게는 없다.”라고 “실종신고”를 한 셈이다. 이제 사라진 제대로 된 교육, 학생인권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그걸 같이 할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일, 그게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43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3일 12:21:1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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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13. 22:22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시험을 위한 시험, 등수를 위한 시험, 없애버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을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으로!
● 줄 세우기가 목적인 시험 대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진단’과 ‘평가’를!


여러분들은 일 년에 시험을 몇 번 치시나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모의고사, 수능까지. 그 외에도 때에 따라 쪽지시험을 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매주 주간고사나 월말고사를 치기도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적게는 일 년에 네다섯 번, 많게는 일 년에 스무 번도 넘게 칩니다. 대체로 한 달에 두세 번은 시험을 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날짜만 기다리다보면 금세 졸업을 하는 게 학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 년에도 골백번씩 치다보면 마치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중간기말고사와 ‘학교RPG’의 최종 스테이지인 ‘수능’을 치기 위해서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이건 시험에 나오니까 꼭 알아둬”라든지 “이 부분은 수능에서 거의 안 다루니까 알아서 읽어봐”라는 말씀을 하기도 하십니다. 시험에 나오니까 중요한 걸까요, 중요하니까 시험에 나오는 걸까요? 그 ‘중요하다는 것’은 뭘 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까요? 정말 헷갈리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교육은 마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를 쓰는 게 아니라, 냄비를 쓰기 위해 라면을 끓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만약 교육의 목적과 수단의 앞뒤가 제대로 맞는 얘기가 되려고 한다면, 배운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점수를 더 받으려고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나 골치아픈 것이 되게 만드는 시험은 아니어야 합니다. 시험을 안 쳐도,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것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시험을 치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면, 시험범위에 맞춰 진도에 쫓기게 되어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곤해지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또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은 교과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밑줄을 치고, 읽으면서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일 텐데도 대충 훑어보고 지나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또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과 같이 단순히 성적을 내서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부분만큼 배웠을 때에 그 부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가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복습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처럼 성적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거나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또 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매우 슬픈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시험 하나 없앤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말하는 지금의 교육이 가진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등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경쟁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평준화한다든지,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제도들이 마련돼야 하겠지요. 이 부분들은 <실종신고>의 다른 요구를 소개한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시험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아요!



입시경쟁.학벌 없는 사회, 대학 안 가도 되는 세상!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 명문고, 명문대 가는 건 모두의 목표일 순 없다! 학교 줄세우기 NO! 획일적 입시경쟁 NO!

● 내가 나온 학교가 내 가치를 결정하진 않는다! 학벌 학력 차별 금지!

● 대학 안 나와도 모두가 하고픈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라!



"먼저 대학이나 가라." "대학 안 나오면 알바, 비정규직밖에 못한다." "명문대 가야 사람 대접 받는다." ……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들어본 고등학생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금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를 위해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 좋은 중학교에 가야 합니다. 학창시절 12년 동안 강요받는 인생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버린', '학교에서 내놓은' 취급을 받곤 합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상위권, 중상위권 학생들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목포에서 한 고등학생 분이 분신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 역시 성적 등 스트레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에 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이 사회에서 학벌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학벌은 수입이 높은 직업을 가지는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나 사회 상류층에서 좋은 학벌은 이제 ‘기본’이 되어 그 이외에 쌓아야 할 스펙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SKY대학을 졸업해도 정말 작은 부분까지 남보다 위로 올라서야만 그나마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SKY대학을 안 나와도, 고졸이어도, 잘 먹고 살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고, 학생들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 바둥거려야 합니다.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은 남을 생각하는 사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학벌을 가지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 보기 좋은 것, 부모가 시키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만 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큰 일이 나고 인생을 망칠 것처럼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12년을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단 하루 만에 수능이라는 방법으로 평가당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창시절 내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 남보다 위에 설 궁리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자발적이고 흥미 있는 것이 아닌, 불안에 밀려 꾸역꾸역 해야 하는 강제 노역으로 바뀝니다.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학벌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사회의 풍조를 바꾸려면 대학을 획일적으로 줄세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꿈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인생의 한 선택지일 뿐 절대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학생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은 서열 없이 평준화해서 어느 대학이라도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존중받고 원하는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학벌과 상관없이 노력하기만 하면 생활하기에 알맞은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한국처럼 대학진학율이 높은 사회, '대학 나오는 게 당연한'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모든 중고등학생들의 목표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인 것처럼 교육하는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_-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도 충분히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과 비슷하다는 미국이나 일본도, 대학에 진학할 뜻이 있는 학생들 외에 다수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목매달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안 나와도 된다고, 자기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학벌과 학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학생들이 먼저 오로지 좋은 학벌만을 향해 달리기를 강요하는 지금의 교육제도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한테 돈 좀 내놔!!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 화장실에 온수는 좀 나오게! 학교 시설 개선, 좀 더 쾌적한 학교를!

● 학급당 학생 수 줄이고 교직원을 더 뽑아서 좀 더 나은 교육을!

●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현, 나아가 미친 대학 등록금도 무상으로 ㄱㄱ!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교 시설 너무 좋다~"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물론 진짜로 시설도 좋고 번쩍번쩍한 학교도 있지만 그런 학교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냉난방도 제대로 안 해주는 학교, 따뜻한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학교, 탈의실이나 동아리실도 없는 학교, 운동장도 작거나 없는 학교, 급식이 형편없는 학교, 화장실이 낡거나 부족한 학교가 태반입니다. 심지어 밖에서 보이는 운동장이랑 외관은 엄청 좋아 보이게 꾸며놨는데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학교도 있습니다.

시설뿐만이 아닙니다. 별로 넓지도 않은 한 반에 30~40명의 학생들이 같이 생활해야 하고, 교사들의 수도 학생들과 진지하게 교류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 이런 시설, 이런 교육환경의 학교에 다니는 데 교재비, 교복비, 급식비 해서 얼마나 돈이 많이 드나요? 고등학교는 또 등록금을 1년에 4번, ·40만원, 50만원씩 내야 합니다. 헐 -_-

왜 그런지 이유는 뻔합니다. 한국 정부가 교육에 쓰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예산을 GDP(국내총생산. 그러니까 한국 안에서 1년 동안 총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느냐 하는 겁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의 6%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예산은 2009년에 GDP의 5.0% → 2011년 4.55%로,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 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안 좋은데, 정부에서는 돈 아낀다고 교사 채용도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핀란드,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학교 시설 등이 대체로 갖춰져 있어서 시설 마련에 돈을 크게 쓸 일이 없는데도 GDP 대비 5.5% 정도의 교육예산을 매년 쓰고 있습니다. 학교도 교실도 더 늘려야 하는 한국은 당연히 그보다 돈을 더 써야겠죠?)


어른들은 맨날 우리에게 너희는 미래의 새싹이고 잘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들이는 노력을 보면 그런 건 다 거짓말이거나, 우리들을 공부시키려는 낚시 같습니다. 우리를 진짜로 생각해주고 있다면 당연히 교육에 돈을 좀 더 들여야 하지 않나요? 4대강 삽질할 돈, 좀만 빼서 학교 화장실에 따뜻한 물 좀 나오게 하고 급식 질 좋게 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부동산 투기하는 어른들한테 세금을 좀 더 걷어서라도 고등학교 등록금을 초등학교, 중학교처럼 공짜로 하고, 미친 듯이 높은 대학 등록금도 낮춰서 공짜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 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한 반 20명쯤 학생들과 2명의 교사가 수업을 운영하곤 한다고 합니다.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한 반 20명에 교사 1명, 아니면 한 반 30명에 교사 2명 정도는 되어야 좀 나은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돈이 없다는 건 핑계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10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개드립에 따르면 한국은 G20을 개최한 선진국입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좀 더 쾌적한 학교에서 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학생들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교실 환경, 모든 학생들을 위한 무상교육을. 단순히 경제규모가 얼마다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교육, 좋은 교육환경이라는 면에서 만족하고 자랑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죠?






내가 다니는 학교운영, 내가 결정한다!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 

● 생활규정부터 수학여행 일정까지, 학교운영에 학생참여권 보장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데, 왜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걸까요? 작년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한 명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연설문을 썼다고 학교가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주었지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의 체벌실태를 고발한 신문을 발행하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았습니다. 성적이 낮으면 학생회장, 학급회장(반장)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이래놓고도 학교는 뻔뻔하게도 민주시민을 양성한다고 자처합니다. 이렇게 반민주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까요? 학교 내에서의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이나 주장을 했다고 압력을 주거나, 징계를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행위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선거 출마에 자격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 안에서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학생회는 할 수 없는 것만 왜 이리 가득한 걸까요? 화장실에 휴지 놓는 것조차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학생회가 노골적으로 학생들의 권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요.


학생회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규정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런 식으로 하는게 좋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수학여행은 어느 장소로 언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예산 등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학부모, 교사 등과 함께 동등한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곳은 아니었죠.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요구하고 외쳤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나서서 권력을 쟁취하고 학교민주주의를 요구할 때입니다.



학생도 인간이다! 두발자유 등 인권 보장!

- 규제와 폭력 대신 존중과 소통을


● 두발복장자유화, 강제자율․보충학습, 소지품 압수 중단!
● 성적․외모․돈․장애․성 등에 의한 차별 중단!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 학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체벌금지, 언어폭력 금지, 벌점제 폐지! 학생을 무시하고 통제하고 패는 교육이 아니라 존중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을!
●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생인권 침해 합법화 방안, 갖다 버려!
●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

학생도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학생도 사람으로서의 권리,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지금도 많은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두발규제, 복장규제, 언어폭력 등 많은 폭력과 반인권적인 통제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여온 끝에, 그리고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에서는 체벌금지가 발표되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다소 개선된 학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대다수 중고등학교에 두발복장규제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강제적으로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시키고 아침 7시, 7시 반까지 등교하게 하는 학교들도 많습니다. 수업시간 중 사용만 약속을 만들고 조심하게 하면 될 것을 휴대전화, 음악기기, 전자기기, 책 등을 아예 금지하거나 압수해버리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쇠파이프로 죽도로 목도로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오리걸음’ 같은 체벌을 하는 학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차별하고, 벌점을 통해 생활 하나하나까지 점수로 규제하며 학교에서 내쫓는 모습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자율화’라며 학생인권 문제를 학교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이젠 체벌을 허용한다고 하고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면서 학생인권 침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인권은 학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모든 학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선입니다. 지방자치가 각 지역에서 살인, 강도, 폭행을 합법화할지 처벌할지 알아서 하게 하는 게 아니듯이, 인권은 학교장의 손에 그렇게 맡겨질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과 같은 모든 학교가 지키게 할 제도가 필요한 겁니다.

학교는 사육이 아닌 교육을 해야 합니다. 교육은 고통이 아닌 소통이어야 합니다.

두들겨 패거나 벌점을 매기는 교육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 숨통 트이는 교육. 잘못을 하면 두들겨패거나 쫓아내는 게 아니라 잘못을 알게 하고 민주적, 합리적인 처벌과 예방을 하는 학교. 학생들을 같은 머리 같은 옷 안에 가둬두고 획일적인 성적으로 차별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다양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교육. 막말과 욕설이 아니라 서로 간의 존댓말과 친밀함, 예의가 있는 교실.

불가능하다구요? 꿈 같은 소리라구요? 최소한 학생도 인간이고 인격체라는 걸 인정하고, 두발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부터 보장해나가기 시작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도 인간이라는 그 당연한 진실을, 현실로 만듭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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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5. 00:06



실종신고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찾습니다>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1년에 몇 번씩 학생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시험, 그리고 오직 시험을 위한 교육.
이명박 정부 이후 시험지옥은 나아지기는커녕 대놓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등수에 목매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평가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획일적 경쟁을 부추기는 줄세우기 없이 모든 학교는 평등해야 합니다.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받고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학력·학벌로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한국의 교육예산은 너무 짭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쾌적한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돈 문제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예산을 늘려서 쾌적한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의 운영은 그 어떤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정도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참여권과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은 존엄한 인간이기에, 하교는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체벌, 두발복장규제, 강제야자 등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억압들은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먼저 인간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합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다른 곳에도 많이 퍼날라주세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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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등학교는 중간고사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더욱 힘든건 매달 단원평가를 해서 평가한다고 하니 더 고달프다는거죠

    2011.03.05 0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중간기말부터"는 하나의 대유적 표현이고 ^^;
      여하튼 점수 매기고 등수 매기는 시험을 없애자는 거죠

      2011.03.11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2.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모르겠습니다.

    2011.03.05 0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

    의무교육으로 강제되지 않을 뿐, 유치원도 교과부가 관리 감독하는 학교입니다. 생애 초기교육 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초중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유치원 또한 무상교육이 실시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2011.03.11 10:1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1. 16. 13:43

플래쉬몹한 20대 두명 연행


저는 MBC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쿨럭 -_-

아아 유모 씨라니 이 무슨... ㅠ_ㅠ ㅠ_ㅠ



 정리를 하면


그날 전체 일정은 오전에 회의를 하고 12시 30분에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모여서 플래시몹에 대해서 장소, 방식 등을 전달받고, 플래시몹을 한 뒤에, 2시에 종각 앞에 있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집회로 가는 거였지요.


플래시몹 방식은, "우선 멈춤"이라는 제목 그대로, 3분 정도 가만히 멈춰 서있는 거 @_@
뭐 어차피 집회야 2시부터 실컷 할 테니... 피켓도 없고 그냥 수십명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기 마음대로 여기저기 흩어져서 멈춰 서있는 거였습니다.





근데 오전 회의가 늦게 끝나면서 12시 30분 플래시몹에는 못 갔고-(회의 끝난 시간이 12시 40분 정도 -_-;;)
여차저차하여 늦게 도착했는데,
광화문 쪽이 경찰들로 뒤덮여 있더라구요.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것이 아닌 전경들의 것이었다. 우왕-

세종문화회관 뒤로 가니까 거기도 경찰들이 쫙 깔려 있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긴 했는데, 경찰이 뭐 쪽지를 빼앗아갔다 이런 이야기를 지나치면서 하긴 했는데,
제가 늦게 가서 이미 사람들은 흩어지던 중이었고, 옆에 경찰도 있고 하여 자세한 사항은 전달받지 못하고 무작정 일단 도착하자마자 흩어졌지요 ㅎㄷㄷ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하는 건가? 싶어서 광화문 광장에 가서 있다가...(근데 사람들이 안 보여서, 경찰 무전 옆에서 엿들어가면서 어디서 하는 건지 알아내려고 했는데 소용은 없었슴둥)


근데 광화문 광장 길 건너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사람들이 몇 명 멈춰 있는 게 보이더라구요 ㅋ
그래서 아 저기구나 벌써 시작해버렸네 하면서 길을 건넜는데


횡단보도를 다 건널 즈음에 경찰들이 그냥 가만히 멈춰서있는 공기(고등학생인 청소년인권활동가)를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공기를 끌고 전경버스로 연행해가더군요 -┌
(나중에 듣자하니 준비한 쪽에서도 원래부터 어느 정도 시비 걸 거는 예상했다고 합니다. 근데 연행은 생각도 못했다고.)

'썅 저건 뭐야' 싶은 황당함.
잠시 멈칫하다가 연행해가는 거에 달려들었고, 몸싸움을 벌였지요.
왜 연행하냐고 옆에서 따지던 사람들에게 경찰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이라고 하는 게 들렸습니다
집회라고 생각했다면, 해산명령도 안 내렸으면서 연행할 수 있는 건가;

그나저나 중과부적인지라 결국 공기는 전경버스에 실렸지요 ㅠㅠ
(이 과정에서 전 안경 바닥에 떨어지고 책 떨구고 노트북가방 벗겨지고 난리도 아니었음. 정말 완전히 뒤엉켜서, 누가 내 팔다리 어깨 머리칼 가방을 잡아당기는 건지도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땅에 몇 번은 엎어지고 일어나고,,,)

허나 어쨌건 공기는 2시 집회에서 나름 중요인물이었기에, 거기다가 말도 안 되는 연행이라고 생각하여
전경버스 앞에 서서 버티려고 했는데 인도에서 내려가기도 전에 경찰이 끌어내서, 아예 전경버스 앞에 확 주저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연ㅋ행ㅋ 되었지요 쿨럭. 공무집행방해라면서.
(경찰 가서 조사 받을 때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에 미신고집회 참여, 그리고 공무집행방해 두 개로 하더군요. 체포할 때는 공무집행방해라더니;)

연행 과정에서 길바닥에 앉은 저를 들고 가면서 옷 다 벗겨지고 메리야스만 남고 상의가 다 가슴 위로 올라오고 완전 민망했어요. *-_-*





근데 공기는 정작 훈방되었음. -_- 고등학생이라고.

전 왜 그렇게 기를 쓰며 막으려고 했던 걸까요?
아아 낚였어...



어쨌건 잠시 후 박모 씨가 플래시몹 주최자로 지목 받아서 버스 안으로 들어왔고,,,(다들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무슨 근거로 주최자라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고, 3분간 가만히 서있는 플래시몹이 왜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대상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고 박모 씨가 20대..라고 하니 뭔가 낯설구만요. 맞긴 한데 20대란 생각을 안해봤어...ㅎㄷㄷ)

그렇게 두 명이 종로경찰서로 호송되었습니다.

전경버스 안에서 여경들이 계속 지키길래, 전 여자가 아니니까 굳이 여자 경찰 분들이 안 지켜도 되는뎁쇼, 했더니 당황하면서 남자 경찰관을 부르면서,
뭐 저 체포해서 끌고 온 것도 여경 분들이라고 하더라구요.
전 완전 난리 중이라 여경인지 남자 경찰관인지도 볼 겨를도 없었는데,
어쨌건 왜 미리 말 안하고 잡혀 와서 말하냐고, 들고 오기 힘들었다고 여경 분들이 투덜거리시더군요.


전경버스 안은 창문도 못 열게 하고 다른 물건도 손 못 대게 하고 계속 감시를 하고 했으나,
목 마르다고 하니까 물은 주더라구요.


손은 까지고 긁힌 자국투성이 ㅠㅠ
몸싸움 과정에서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통증은 그때까진 별로 없었지만 저녁이 되자 팔, 다리, 허리도 매우 뻐근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도착한 게 1시 40분? 그쯤이었고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일단 처음에는 저희를 체포해온 경찰 분들 2분이 진술을 하시더군요.

경찰 분들 진술 끝나고 한~참 지나고 나서(4시쯤?) 저희 조사가 시작되었는데요.

제가 가방을 몸싸움 과정에서 다 떨어뜨려서 그 안에 있던 지갑 신분증 도장 다 못 갖고 와서 별 수 없이 지장을 몇 번 찍어야 했습니다.

옛날에 쓴 이 글에 나오는 형사 분이 제 이름을 알아보고서 "유** 씨 저 모르세요?" "법대로 48시간 꽉꽉 채워봅시다." "올린 글 잘 봤습니다." "시간은 오늘 내일 모레 많으니까 찐하게 이야기를 해보자구요" 등등의 말을 하여서 '아, 종로서로 오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좀 했지요.
저도 "형사님이 참 감정적으로 수사를 하시네요." "저도 그때 해주신 전화 잘 받았습니다." 등등 좀 언쟁을 벌이긴 했지만
다행히 그 형사 분이 아니라 다른 형사분이 조사를 맡아서 뭐 그 이후로는 별로 부딪치진 않았습니다.

조사는 2시간 정도 걸렸는데 형사 분 타자가 느려서 오래 걸린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플래시몹이 뭔지 잘 모르셔서 설명 같은 거 하기도 했구요
제 학력 같은 건 왜 궁금해하는지 모르겠더이다.
그리고 저를 집시법으로도 걸었는데, 미안하지만 늦게 와서 플래시몹은 참여를 못했는데, 플래시몹 참여를 한 적도 없고, 이걸 연행하는 것도 말도 안 된다, 뭐 이런 이야기했지요. 체포해가는 거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이유 같은 거 이야기하고...
근데 몇 분 동안 몸싸움했냐, 몇 m나 몸싸움했냐, 하는데 그 난리통에 그거 ㄹ어찌 기억해요;;



6시쯤, 조사가 끝나고, 민변에 부탁드린 변호사 분이 6시 넘어 와서 조서 대충 다 쓴 다음에야 변호사 분이랑 접견하면서 논의를 좀 하고,,, 수정을 좀 하고서 조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 중간중간에 제가 갇혀서 원래 오늘까지 해야 했을 일 몇 개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노트북 챙겨달라고 하고, 펑크난 일정들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하고,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등등의 일을 했지요.


그리고 면회 온 분들이 시켜준 저녁을 조사실에서 먹고 나서 7시 넘어서 유치장에 들어갔네요.
'



유치장 안에는 원형감옥 형태로 생겨서, 중앙에 있는 경찰들이 반원형으로 배치된 유치장 안을 한 자리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판옵티콘 모델이더라구요.

유치장 들어갈 때는 소지품을 다 내놓게 하고, 금속탐지기로 몸을 한 번 뒤집니다. 양말도 벗어야 하구요.
소지품 뒤질 때 경찰 분이 자꾸 반말하셔서 "죄송하지만, 존대말 써주실래요?"라고 했더니 "아 네, 그러세요. 알았어요. 당연히 그래야죠."라고 했는데 이게 비꼬는 말인지 정말로 반말 쓰는 걸 반성을 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이후로도 저 말고 다른 분들에게는 대부분 반말을 거의 섞어 쓰시는 걸 봐선 -┌

그리고 유치장 옆방에는 외국인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반말로 "시끄럽다. 조용히 해" 등등 다소 폭언을 하셔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 분은 말이 안 통해서 얼마나 갑갑할지.


그날은 워낙 피곤해서 들어가자마자 잠들었는데, 저까지 포함해서 그 방에 3명이 있었습니다.
 모포 같은 건 없었지만 난방이 잘 되어서, 뜨뜻하게 잘 자고 있는데 밤 9시인지 10시인진 모르겠지만 좀 자고 있으니 깨워서 모포 받으러 나오라고 해서 모포 받아 와서 깔고 덮고 잘 잤습니다.
오랜만에 11시간쯤은 푹 잔 듯... 다만 불을 다 꺼주진 않아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잤습니다.


아침에 7시인가 일어났는데 일어나서 모포 개서 반납하고 나서 아침밥을 먹었는데, 밥은 국이 고기국이라서 제가 먹을 수가 없어서 밥 김치 무침 같은 거, 이렇게만 먹었습니다.(제가 고기를 안 먹어요;) 김치만 좀 더 맛있었다면 먹어줄 만했을 텐데 -_-

화장실은 유치장 안에 각각 하나씩 있는데, 쪽문을 사이에 놓고 있고 격리되어 있질 않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에 앉아 있으면 목이나 가슴 위로는 다 보여요. 소리도 다 들리구요. 그리고 그리 깨끗하진 않았습니다.


옆에 다른 분들은 책을 많이 보시던데, 유치장 안에 책이 있고 요청하면 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만-

전 피곤해서 아침 먹고 또 잤습니다. ㅋ

이렇게 뜨뜻한 방바닥에서 일 걱정 없이 잘 기회가 또 어디있겠습니까.


그래서 푹 자는데 한 11시쯤 불러서 나가보니 2차 조사를 하더군요.
면회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딱 시간이 겹쳐서 공교롭게도 조사 전에 보지 못했습니다.

2차 조사는 주로 채증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진행되었는데요.
제가 속한 단체에 관한 것도 많이 물어봐서, 그 단체가 이번 행사 주최한 것도 아니고 조직적 연관이 있느 ㄴ것도 아닌데 왜 묻냐고 물었지만 별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굴만 몇 번 기자회견이나 집회에서 봤고 서로 통성명 한 적도 없어서 잘 모르는 분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는 사람이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기자회견 같은 때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모른다고 했더니 어제 면회도 왔는데 왜 모르냐고 형사 분이 뭐라고 하길래, (근데 어제 이분이 면회를 왔었나? 기억이;;) 저 말고 같이 잡혀온 박모 씨랑 아는 사이인가보라고 했지요...
근데 계속 추궁을 해서 아 진짜 모르는데 어쩌라고  -ㅂ- 이런 분위기로 좀 하다가
제가 전경버스 앞에 앉아 있는 사진 보여주면서 본인 맞냐고 하길래 맞다고 했지요. 옷이랑 머리가 특이해서 못 알아볼 일은 없겠다고.
그나저나 다른 형사 분이 계속 머리카락 길어서 여자인 줄 알고 여경들이 고생했다고 계속 태클 걸길래 좀 압뷁.


조서 쓰고 나서 의견 진술하는 칸이 있는데, 1차조사나 2차조사나 모두 비슷하게 썼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듯?

1. 잠깐 동안 가만히 서있는 플래시몹이 왜 연행 이유가 되냐.
2. 해산명령도 안 하고 다짜고짜 연행하는 건 적법하지 않다.
3. 적법하지 않은 것에 항의한 게 공무집행 방해가 되냐.
4. 몸싸움 과정에서 난 손팔 다 긁히고 까지고 상의까지 다 벗겨졌었는데, 경찰들 모자 벗겨지거나 한 것만 얘기하는 건 불공정하다.
5. 사건과 무관한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단체 정보는 왜 그리 묻는지 이해가 안 간다.

2차 조사 끝나고 면회 2번 하고, (면회실은 이중 삼중 벽에 막혀 있는데, 서로 말이 잘 안 들려서 마이크 쓰는데, 저쪽 마이크는 고장나서 나오질 않아;; 약간 힘들었습니다.)


점심은 도시락 사식을 사서 넣어줘서 그걸 먹었는데요. 반찬이 더 늘어서, 멸치볶음이라거나 샐러드 같은 게 좀 있긴 했는데, 고기 반찬들이 2개씩 있어서 그건 먹질 못했습니다. 대신 국은 고기국이 아니라 된장국이라 좋았습니다.




먹고 면회 온 사람들이 넣어준 책 (오버 더 호라이즌 ㅋ) 읽고 또 좀 자고 생각하고 그러고 있다가

5시 30분 정도에 저녁밥을 역시 도시락 사식 먹고 있는데 반쯤 먹으니까 석방 명령 떨어졌다고 먹고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반쯤만 먹고 덮고서 나와서 소지품이랑 받고
면회 온 사람들이 양말 넣어줬는데, 양말은 안에 뭐 숨기고 하는 걸 우려한 건지 그걸로 목이라도 맬 거라 생각한 건지, 유치장 안에서는 못 신어서, 나오면서 받아서 신었습니다.

소지품 돌려받고 밖으로 나오니 꽤 쌀쌀하더군요.

어쨌건 마중 나온 다른 활동가들이랑 만나서 저녁을 먹고 귀가. 에구구.

체포 이후부터 28시간만에, 유치장 입감된 지 약 22시간만에 나온 셈이지요.



그나저나 이제 벌금을 때리려나 어쩌려나.................................
만약 검찰이 기소해서 벌금 때리면 국가 손배 신청하기로 이야기하긴 했습니다.





결론 : 연행 그렇게까지 별거 없습니다. @_@ 근데 좀 시간 버리기이긴 한 듯.

그나저나 연행되고 하는 거에 너무 무감각해지면 안 되는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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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네요..ㅎㅎ^^;
    고생하셨습니다~

    2009.11.16 16: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고생하셨습니다... 푹 쉬고 나오셔서 다행이네요.

    2009.11.16 17:01 [ ADDR : EDIT/ DEL : REPLY ]
    • 쉬어서 다행이긴 했는데 ㅎㅎ
      며칠 더 있어야 한다 그러면 좀 힘들엇을 거 같습니다.

      2009.11.16 19:11 신고 [ ADDR : EDIT/ DEL ]
  3.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나라 꼴이 왜 이 모양인지요 ㅠㅠ

    2009.11.16 17:34 [ ADDR : EDIT/ DEL : REPLY ]
  4. 공현 ㅠ ㅠ 일단 잘읽었어 훋ㄷㄷㄷ 진짜 억울하기도 하고 경찰이 미친건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_= 진짜 부당했다 ㅋㅋ 에고에고 공현 언제한번 같이 이거가지고 이야기 꽃을 피워보자구 ㅋㅋㅋ 박여사도 같이

    2009.11.16 20:02 [ ADDR : EDIT/ DEL : REPLY ]
  5. 둠코

    수고했음. 다음엔 잡혀가지 맙시다. 그게 공현잘못은 아니지만, 안그랬으면 좋겠다고.

    2009.11.16 20:04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도 안 잡혀가려고 했... 큭 기록이 깨졌어

      2009.11.17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 둠코

      훗 기록을 세워 주겠어. 목표 30대??

      2009.11.18 00:28 [ ADDR : EDIT/ DEL ]
  6. 해밀

    허....너무 고생한다 난 모하는 거지

    2009.11.16 20:38 [ ADDR : EDIT/ DEL : REPLY ]
  7. 하아

    자괴감을 느낍니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나라 녹을 조금이라도 먹지 않았다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생각만이라는 것이 더러운 것이죠

    2009.11.16 21:57 [ ADDR : EDIT/ DEL : REPLY ]
    • 너무 자괴감을 느끼실 필욘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하는 거죠 ^^;

      2009.11.17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8. 오오 9시 뉴스 오오오 9시 뉴스

    2009.11.17 02:12 [ ADDR : EDIT/ DEL : REPLY ]
  9. 고생하셨습니다. ㅡ0-);; 어린 아이들과 광화문 광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면, 단체로 잡혀갈지도 모르겠군요. 잇힝!?

    2009.11.17 11:33 [ ADDR : EDIT/ DEL : REPLY ]
    • ㅋㅋㅋ 놀이하기 전에 일제고사로 인해 놀지 못하는 현실을 담은 거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 잡혀갈 겁니다 아마

      2009.11.17 14:11 신고 [ ADDR : EDIT/ DEL ]
  10. 욕보셨습니다.. 적법하지 않은 절차가 있다면 꼭 걸고 넘어가시길..
    가만히 서 있었는데 어떤 시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경찰의 임의해석같은데;
    포스터에 빨간색이 많고, '지령 전달'이라는 단어때문에 손해본 건 아닐지 농담 반으로 생각해봅니다 -ㅁ-

    2009.11.17 15:46 [ ADDR : EDIT/ DEL : REPLY ]
  11. 짜증나네요.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이 난리들인지... 광화문 광장에 순찰도는 의경들만 불쌍하죠. 이젠 군대와 의경 강도가 비슷할듯~ 찔리는 일을 하는 의경들..

    2009.11.17 19:45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광화문에서도 청와대까진 꽤 먼데 말이지요... 가만히 멈춰서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폭도로 변해서 폭탄 들고 러쉬할 줄 안 걸까요?

      2009.11.19 18:22 신고 [ ADDR : EDIT/ DEL ]
  12. 당고

    공현ㅠ_ㅠ 고생했어ㅠ_ㅠ
    다음에 연행되면 나도 면회나 갈까......(으응?)
    연행에 무감각해지고 그러지 마, 제발!

    2009.11.18 18:07 [ ADDR : EDIT/ DEL : REPLY ]
    • 면회 와도 별로 할 거 없으 ㅎㅎ

      나도 무감각해지기는 싫은데, 주위에서 자꾸 잡혀가니 영;

      2009.11.19 18:22 신고 [ ADDR : EDIT/ DEL ]
  13. 음 안녕하세요 저도 이 사건 신문기사 읽고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에 게시글을 썼는데 엮인글이라고 되어있어서 한번 들렀습니다. 그나저나 읽고나니 우리나라 경찰이 정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이 드네요. 진짜 좀 갈아엎어야할 정도로 진짜 심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적절하지 못한 비유이긴하지만 요즘시대에 저런식의 대처를 한 경찰은 마치 2차세계대전의 추측군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생각이 나게 하네요;ㅁ;

    2009.12.13 16:1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1. 12. 20:58


어김없이 쌀쌀한 수능날입니다.
그래도 작년 수능날보다는 많이 따뜻한 것 같습니다.

문득 세어보니 제가 수능을 본 지도 4년이 흘렀습니다.
4년동안 이 입시경쟁의 현실 위에 뭘 해놓았나, 최소한 이 우울한 입시경쟁의 현실에 타격을 줄 만한 근거지라도 꾸려놓았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올해도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에서 수능날에 입시경쟁의 현실을 비판하고
입시경쟁교육 폐지 대학평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 기자회견에 참여한 것도, 안티수능(입시즐)일 때부터 세어보면 4번째네요. 입시폐지로는 3번째고...)


원래 이번에는 수능거부 학생이 없을 것 같았는데,
수능 바로 전전날에 간디학교에서 꾸려진 수능폐지 1인시위 모임의 고3 학생 분들이 연락이 와서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입시경쟁교육 중단
대학평준화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도 굉장히 오래 전부터 해온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대선에 나와서 "서울대 폐지론"이라는 이름으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식의 대학평준화를 내건 것부터 세어봐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한 8년 되었나?


그런데 그런 목소리에 귀기울이지는 않고 중고등학교들도 전격 서열화시키고
학생들에게 더 빡세게 공부를 시키고 학생들을 괴롭히는 이명박 정부는... 생각하면 암울합니다 에휴;;
(뭐 노무현 정부라고 귀기울인 건 아니지만;)


수능 개탄이 아닌 대학평준화로   하재근 씨가 레디앙에 쓴 글입니다. 하재근 씨의 글을 100% 다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 글을 비롯해서 교육 관련 글들은 적절하게 나오는 글들이 많은 듯.

여러분이 아무리 수능대박을 외쳐도, 상대평가가 기본인 대학입시와 수능에서 누군가의 수능대박은 누군가의 수능쪽박을 의미합니다 ㅠㅠㅠㅠ


수능을 자격고사화해야 합니다. 대학을 평준화해야 하구요.
그리고 대학평준화 뿐 아니라 나아가서
대학을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전국 공동행동 "경쟁의 벽을 허무는 당당한 반란"


간디학교 1인시위 모임에서 준비해온 피켓 중 하나입니다. ^^


그밖에도 이날 기자회견에는 청소년, 학생 분들도 꽤 많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입시와 교육 문제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들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할 텐데요.


홍세화 씨의 발언입니다. 입시경쟁교육, 학생들을 점수로 줄세우는 획일적인 교육, 대학서열화, 학벌 차별 등에 대해 발언하셨던 것 같습니다.(추워서 잘 못 들었어요 ㅎㅎ;;)


간디학교 1인시위 모임에서 준비해온 다른 피켓입니다.

제 친구가 죽었습니다.
SKY 못 가면 하늘 볼 권리도 없나요?
공부를 하지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피 묻은 펜은 싫어요!
수능폐지 대학평준화



퍼포먼스 준비 중입니다. 퍼포먼스에는 저와 4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닉네임 옥션교주(ㅋㅋ;),
역시 간디학교 수능 반대 1인시위 모임인... 고3 학생임에도 수능 시험장에 안 간 이 키 큰 아이가 수고했습니다 ㅋ

퍼포먼스는 학생을 가두고 있는 학벌차별, 교육비, 살인적 입시경쟁 등을,
교사 보호자(학부모) 학생이 사방에서 잡아당겨서 해체하고 무너뜨리면, 안에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무상교육" "꿈을 꿀 수 있는 교육"이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 요즘 하는 고민이, '수능거부'란 무엇일까 하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수능거부, 라고는 하지만 수시에 합격하거나 해서 수능을 안 봐도 되는 사람이 수능을 보지 않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그렇다면 수능 거부는 사실 수능시험을 안 본다는 것과 동시에 대입거부, 대학진학 거부를 의미하는 거겠죠?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은 의외로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학생들을 일찍부터 모집하고 설득해서 수능거부 선언을 조직해보면 몇 명이나 나올까요?
(수능을 보지 않는, 대학을 안 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지금의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을 거라고 딱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요)


지금처럼 청소년활동가들 중에서, 대안학교 학생들 중에서 수능거부자들 1~2명이 나서서 하는 것보다는 재밌고 생산적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수능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의 이후의 삶까지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대안이나 커뮤니티가 마련되어야겠죠.
수능거부운동하면 안돼요? (레디앙)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찾아왔습니다.
신종플루로 학생들의 건강이 걱정스러워도,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 물고 보는 수능시험.
매번 "수능대박"을 외치지만, 모두가 대박이 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시험을 잘 보는 건 다른 학생을 떨어뜨리는 거죠...

왜 학생들을 이런 경쟁 속으로 내몰아야 하나요?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면서 성적과 학벌로 학생들을 차별할까요?

이제 경쟁의 벽을 허물고 당당한 반란을 외칩니다.
입시경쟁으로 굴러가는 교육이 아니라 다른 교육을 상상해봅니다.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교육을 함께 만들기 위해!


교사들을 경쟁시키고 입시공부 더 잘 시키는 교사들에게 유리할 정부의 '교원관리제'
"미래형"이라는 이름으로, 국영수 입시과목을 더 늘리고 일제고사를 시킨다는 '미래형 교육과정'
학생들을 더 괴롭게 하는 고교서열화 시험지옥 MB식 경쟁교육도 꺼지라고 합시다.ㅋㅋ



2009년 11월 14일 오후 2시 보신각으로!!
(사전 퍼포먼스에 같이 할 분들은 12시30분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와주세요 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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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조

    이거 자세히는 못봤는데
    수능을 거부하고 수능을 안봐도 되는 전형으로 대학에 가겠다고했다던 소문이있는데
    사실인감? 만약 그렇다면.. 촘... -_- 이라고 생각했었어

    2009.11.30 13:49 [ ADDR : EDIT/ DEL : REPLY ]
    • 1인시위한 4명인가 중에서 2명인가 3명은 아예 대학진학을 안하신다고 한 거고~
      찬욱(옥션교주)+1분인가는 이미 수시 붙었는데 여하간 입시 비판하는 뜻에서 같이 한 거얌

      2009.11.30 15:46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11. 11. 19:03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찾아왔습니다.
신종플루로 학생들의 건강이 걱정스러워도,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 물고 보는 수능시험.
매번 "수능대박"을 외치지만, 모두가 대박이 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시험을 잘 보는 건 다른 학생을 떨어뜨리는 거죠...

왜 학생들을 이런 경쟁 속으로 내몰아야 하나요?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면서 성적과 학벌로 학생들을 차별할까요?

이제 경쟁의 벽을 허물고 당당한 반란을 외칩니다.
입시경쟁으로 굴러가는 교육이 아니라 다른 교육을 상상해봅니다.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교육을 함께 만들기 위해!


교사들을 경쟁시키고 입시공부 더 잘 시키는 교사들에게 유리할 정부의 '교원관리제'
"미래형"이라는 이름으로, 국영수 입시과목을 더 늘리고 일제고사를 시킨다는 '미래형 교육과정'
학생들을 더 괴롭게 하는 고교서열화 시험지옥 MB식 경쟁교육도 꺼지라고 합시다.ㅋㅋ



2009년 11월 14일 오후 2시 보신각으로!!
(사전 퍼포먼스에 같이 할 분들은 12시30분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와주세요 ㅋㅋ)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휴대폰 액정클리너도 있다는거!
   꽁짜니깐 많이들 받아가서 달고 다니고, 나눠주세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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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가 형해화되면서 뭔가 캘린더사업화된 집회.

이번 집회하고나서 확 개편을 해버려야지...


수능을 반대하는 고등학생들의 1인시위와 교육단체들의 기자회견 등도 수능 당일에 있습니다. 바로 내일이네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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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 2. 02:05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소식지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와서 쓴 글입니다-
주제가 "수능"이었어요 -_=;;





세 종류의 “수능대박”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외면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내가 수능을 본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닌 2005년의 일이었다. 비행기도 못 뜨게 하고 출근시간도 늦추게 하는 수능 시험의 당사자가 되는 게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뭐 사실 별 것 없었다. 전교조 교사 한 명 없는 사립학교에서 고3 내내 한 달에 1~2번씩 모의고사를 지겹도록 봤던 덕인지, 그냥 좀 특이한 모의고사 하나 보는 것만 같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이미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반년 이상이 지난 뒤에 보는 수능이었기에, 수능거부라든지 안티수능페스티벌이라든지 해서 수능을 볼지 말지 남모르게 고민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런 수능 라이프(?) 와중에도, 가장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면서 가장 역겨웠던 것은 “수능대박”을 기원한다는 응원들이었다. (2학년 때 반강제적으로 돈을 걷어가는 것에 그렇게 분개했기에 ‘고3’이 된 후에도 학생회에서 나눠준다는 엿이니 초콜렛이니 뭐니는 죄다 거부하긴 했지만.) 인터넷이건 방송이건 수능시험장 앞이건 “수능대박” “수능대박” 주문이 떠돌았다.
  수능은 상대평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며 공부할 능력이 있나 없나 검증하겠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의 능력을 절대평가로 측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잘하냐 못하냐를 평가하는 상대평가 방식의 시험이다. 수능이 상대평가라는 것은 수능에서 내가 대박이 나면 남은 못 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운이 좋아서 찍은 게 몇 개 운좋게 맞아서 원래 4등급이었을 법한 성적이 3등급이 되었다고 해보자. 나는 대박이 났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대박’의 이면에 있는 현실은, 다른 누군가가 3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수험생들에게 수능대박 나라고 응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수능대박 나라는 응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는 결코 사람들의 입시경쟁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소박하게 “수능대박”을 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3이나 재수생의 현실도, 입시경쟁의 현실도 잘 알고 있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 구조에 대해서도 모르지 않는다. 예전에, 2006년 7월에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민족문화상징 100개에 “고3”이 한국의 교육 현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으로 추천받았지만 여론조사 결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탈락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만큼 수능, 고3 등으로 대표되는 입시경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남을 밟고 올라설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은 경쟁의 구조에서 눈을 돌리고, 모두가 아무도 밟지 않고 날아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듯이 외치는 “수능대박”의 주문 소리…. 그러나 그런 주문 소리에 별로 신통력이 없는지,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올해에도 누군가는 수능 성적 때문에 자살하고, 등급과 표준점수에 일희일비하며, 꿈도 성적 때문에 바꿔가며, 자존감조차도 성적에 휘둘리며, ‘수험생’들은 이제 재수/반수/지방대/인서울/명문대 기타 등등의 서열 구조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깃발 대신 학교들과 학원들에 걸려 있는 “○○대 ○○○과 12명 합격”하는 식의 현수막들만 머리 위에 펄럭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순응 대박”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소리였다. 입시경쟁에 대해, 강제야자를 비롯해서 학교 생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니 말이 맞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괜히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여라.”라는 류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교사들도 그랬지만, 학생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3시기에 온갖 분란을 일으키며 학교를 다녔던 나를 싫어하던 학생들도 1/3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입시경쟁의 성격을 적절히 꼬집어서, 수능을 “순응” 시험이라고 비꼬곤 한다. 이 순응 시험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수능 시험이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와 입시경쟁 체제에 잘 순응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수능 시험이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들 등 교육주체들을 말 잘 듣게 순응시킨다는 뜻이다.  수능대박[순응대박]은 “순응하면 대박”난다는 말씀되시겠고.
  학생들이 두발규제 폐지 등에 대해서는 곧잘 시위를 하면서도, 입시경쟁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주 적극적·급진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순응’에 있다. 입시경쟁체제나 교육시스템은 너무 거대해보이고 잘 바뀔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너무나 당연한 것인 양 눈 앞에 존재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깔짝거리는 많은 정책들이 아무 효과가 없거나 입시경쟁을 더 심하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꼴을 보면 그런 무력감은 더 커진다. 수능만 끝나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학생들도 학교의 생활 규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은 수능이 얼마나 학생들의 삶을 ‘순응’하도록 규율하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아주 나이가 적을 때부터 성적과 등수에 따라 가치를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설령 그런 가치 평가에 대해 의문이나 불만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상상할 능력이 없다. 나 또한 성적이 높다는 이유로 나를 ‘이뻐하는’ 교사들과 성적으로 인간이 평가당하는 학교 시스템에 초등학교 때부터 스트레스와 괴리와 혐오감을 느껴왔음에도,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막막함밖엔 느끼질 못했다. 성적에 의해 우월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삶은, 나이가 적을 때부터 계급적으로 나뉘어지고, 그들이 삶/세상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다르게 만든다. 예컨대, 내 친구가 서울대 다니는 학생들이 비교적 자신감도 있고 자존감도 강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나이가 적을 때부터 서울대에 입학할 때까지 입시경쟁 속에서 학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학교를 적극적으로 박차고 나온 청소년들은 그래도 좀 더 폭이 넓은 편인데,)은, 강제야자 같은 일(강제적으로 시키는 공부의 비효율성. 정부에서도 강제로 하는 것은 금지한…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학원에 못 간다는 이유로 강제야자를 반대한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더라도, 입시경쟁 그 자체를 없애자고 제안하기는 주저한다. 돈 많은 집 학생과 돈 없는 집 학생이 겪게 되는 교육격차와 사교육 불평등/차별의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입시학원 자체를 안 다녀도 되고 입시공부에 목 매지 않아도 되는 교육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한다. “너도 노력하면 대박날 수 있다.”라거나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후회 안 하고 잘 산다.”라는 식으로 학생들의 욕망을 유예시키고 학생들 사이에 차별을 만드는 정책도 이런 ‘순응’에 한 몫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리하여,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비겁한 논리가 교육현장에 횡행하게 된다. “재능이 있는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격언이 여기에 더해지면, 피할 수 없으니 즐긴다는 소극적 태도에서 입시경쟁의 승리를 위해 입시공부를 즐기는 적극적인 태도가 되기도 한다. 입시경쟁 과정에서 겪는 피로, 혐오, 고통, 자괴감, 허무, 복종, 등등의 것들에 순응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한다. “다 너희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며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에게 ‘매타작’을 하는 일부 사티스트 교사들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 성적 취향으로서의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분히 에리히 프롬적인 의미도 포함해서)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 사회 구조에 의해 강요되고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하는 세상은 불행하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의 대우 명제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이다.(아, 물론 명령형 문장은 명제가 아니다. 그래도 그냥 너그러이 넘겨주시길.) 그러나 대체 어디로 피해야 하나? 도저히 즐길 수가 없어서 피할 곳을 찾던 학생들이 끝내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대안학교라거나 유학이라거나 다른 방식으로 입시경쟁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가계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주는 소수만이 가능한 선택지이기 십상이며, 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3의 명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랄까. 하지만 입시경쟁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십년 전부터 나왔음에도, 입시경쟁 자체를 문제시하며 “입시폐지”를 외치고 “수능반대”를 요구해온 운동은 그 역사가 길지 않다. 기껏해야 2003년부터 시작된 안티수능페스티벌이나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공약으로 나온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도일까? 2005년 5월에 내신등급제 도입을 계기로 “내신도 본고사도 입시경쟁은 싫다!”라고 외친 학생들의 집회, 2007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수능을 거부한 고3 학생들의 1인시위,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에서 하고 있는 자전거 행진 등의 활동 등등도, 입시경쟁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번져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듯이 수능도 거부하면서 입시경쟁을 무력화시키는 투쟁방식도 꿈꾸어보긴 하지만, 아직까지 수능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절대적인 위치와 인식을 생각해보면 그건 좀 요원할 것 같다. 하지만 일제고사나 학교자율화나 교원평가를 빙자한 교원관리제나 국제중이나 ‘자살고’(자율형 살입고?)를 비롯해서 2MB 정부의 입시경쟁 심화 정책들이 쓰나미처럼 몰아치고, 그에 대항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저항이 점점 자라난다면, 입시경쟁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따라서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만들고 싶다. 진짜 제대로 된 “수능대박”을 만들어보자. 수능을 크게 박살낸다는 의미에서의 수능대박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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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1. 13. 21:11

  수능 시험을 보지 않고 교육부 앞에 선 고등학교 3학년에 속해 있는 여성 청소년은 말했다. 여기 서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무섭다고 하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서도 말했다.

  친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수업 잘 듣고 쉬는 시간에 잘 떠들고 점심시간에 매점 가고, 이러면서 살지만,
  가끔씩 다이어리를 보다보면 블로그를 보다보면 지나가면서 문득문득 보다보면,
  죽고 싶다고 하고 힘들다고 말한다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면들이 너무 많다고.
  친구들이 사는 걸 보면 태엽을 감으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 같다고.

  목이 메인 그가 잠시 발언을 멈췄을 때, 눈치 없게도 한 기자가 "왜 수능을 거부하게 되었지만 말해주고 들어가세요. 왜 거부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요."라고 물었다.
  그 말에 "이유요?"라고 반문한 그는 또 잠시 뜸을 들였다.
  몇 초 후,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말했다.

  수능에, 입시경쟁에 반대해서라고. 이런 입시경쟁을 없애자고 말하기 위해서라고. 지금 같은 입시경쟁, 지금 같은 교육이 계속된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그 말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들어왔을 법한 평범한 말이었지만, 거기에 묻어나는 감정은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그래서 다들 울었다. 비록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울었을 것이다. 연민이 아닌, 슬픔과 분노로.


  어쨌건, 작년에 홀로 1인시위를 하며 서있던 그루에 비해,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며 서 있는 엠*의 모습은,
  좀 덜 쓸쓸해 보였다.





  수능 시험 때문에 자살한 청소년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기원하기 이전에,
  당당해지라고, 수능은 중요하긴 하지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기 이전에,

  무책임하게 살라고 "명령"하고 "요구"하기 이전에
  입시경쟁을, 입시경쟁교육을 어떻게 없앨지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닐까.
  청소년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든 후에, 인간답게 살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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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입시가 폐지되어도 대학이 평준화 될지라도
    그렇게 되면 취직전에 또 다른 선별과정이 생길것입니다
    서열화되기 싫다면 취직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됩니다

    솔직히 입시경쟁 비인격적인것 다 알고 있습니다만
    뚜렸한 대안도 없이 반대만 하는건 호소력이 약할듯합니다

    2008.11.13 22:35 [ ADDR : EDIT/ DEL : REPLY ]
    • 대안이 없다구요?
      입시 경쟁이 가열된 이후
      대안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백, 수천개씩 이야기되곤 했습니다.
      단지 입시 교육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와, 입시교육 틀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대안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 뿐입니다.

      당장 큰 서점에 들러보세요.
      입시교육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들은 넘쳐납니다.
      그 책들 중 한권이라도 읽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읽기 싫으시다구요?
      제가 대표적인 이론 몇가지 알려드릴까요?
      본인이 관심이 없다고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교육에 관심을 갖는 건 모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대 교육의 부당성을 이야기 했다가 쫒겨난 서울대 총장도 있고,
      대학이 아닌 대학원 위주의 분과형 교육체제를 말한 교육부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안이 없다는 건 좀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교육에 대한 관심이 이정도 라는 게 한심할 뿐입니다.
      참여하지 않을 거면, 최소한의 관심이라고 가지려는 노력을 보여주세요.

      지금의 문제점은 대안이 없다는 것과 상관없습니다.
      넘쳐나는 대안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성숙된 사회분위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교육을 이렇게 바꾸자라고 말한다면,
      정부와 보수단체들도 토을 달며 반대할 것이고
      뉴라이트같은 또라이 집단들도 또 뭐라 쭝얼거릴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교육은 곧 학력이다라는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인재는 곧 지식을 많이 갖춘 자입니다.
      인식의 문제부터 시작해야 할 터인데 대안을 내 놓아라 하는 것은 무책임입니다.

      대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받아들일 자세가 안되어 있는 것이 문제인데...

      2008.11.14 09:24 [ ADDR : EDIT/ DEL ]
    • http://edu4all.kr 뭐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 사이트만 잘 보셔도 ^^; 책으로도 나온 게 많지만요-
      흠..
      제가 구상하는 "완전한" 대안은 거의 혁명 수준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정도이기는 한데요.
      불완전하지만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라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정책 정도~?

      노동시장에서의 경쟁 문제도 분명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변화가 필요합니다.

      2008.11.17 20:56 신고 [ ADDR : EDIT/ DEL ]
  2. “뚜렷한 대안도 없이”라고요? 대안을 주장하는지 안 하는지 찾아보기나 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취직 전에 또 다른 선별 과정이 생길 것”이라는 말은, 경쟁이 미뤄지든 앞당겨지든 상관 없다는 말씀이신지 궁금하네요. 저는 입시도, 취업경쟁도 완전히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경쟁이 그래도 뒤로 미뤄져서 숨쉴 햇수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게 나아보이는데요.
    조금이라도 함께 고민해야지, 너무 냉소적으로 말씀하신 듯합니다.

    2008.11.14 02: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11. 12. 23:10



청소년 입시폐지 토론회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입시경쟁 없는 교육, 어떻게 만들까?


학교자율화, 일제고사, 고교서열화, 국제중......
명박이와 정택이의 교육정책들은 무한경쟁을 만들고 있는데~
그전부터도 입시경쟁은 우릴 조이고 있는데~
수십년 묵은 입시경쟁지옥! 청소년들 말은 씹히고...
대체 어쩔? ㅠㅠ
가장 심각한 청소년인권침해 중 하나인 입시경쟁 문제,
대안과 해결책을 같이 고민해보아요 @_@


시간 : 2008년 11월 14일 (금) 저녁 6시 30분

장소 : 민주노총 서울본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서대문역 1번출구 첫번째 골목 상생학원 건물 2층

 

문의 : 010-2480-3328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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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단체, 또는 청소년활동가 분들에게 드리는 초대의 글 ^^

  안녕하세요. 저희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나오고 있는 일제고사나 ‘학교자율화’ 등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 시험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정책들이 입시경쟁을 더 빡세게 만들고 청소년들을 더 살기 힘들게 만드는 건 분명한 거 같습니다. 연이어 보도되고 있는 초등학생 분들의 자살 소식이라거나,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 강제야자, 보충수업, 모의고사들을 보면 말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또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도,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입시 때문에 목숨을 끊었는지를. 이명박 정부 전부터 입시경쟁 문제, 사교육 문제는 단골손님처럼 종종 신문을 장식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입시경쟁교육을 반대하는 우리들의 대안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을 막아내는 데서 멈추지 않아야 할 겁니다. 그럼 청소년들은, 청소년단체들은, 어떤 주장과 대안을 가지고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11월, 그야말로 ‘수능의 달’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라는 곳에서 입시폐지를 주장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입니다.

저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도 거기에 맞춰서 청소년단체들,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서 입시경쟁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꼭 참가해주셔서 같이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년단체나 모임에서는 1~2분 이상은 꼭 와주시길 바랍니다.(물론 많이 오실수록 좋죠 ^^;)

 

 

* 첨부 *


 참가하시는 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먼저 고민해오시고 자신의(혹은 자기 단체의) 입장이나 계획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1. 입시경쟁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신가요?

2. 입시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책이나 대안으로 무엇을 생각하나요?

3. 입시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소년(단체)으로서 어떤 활동 계획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만약 활동 계획이 없으시다면, 청소년(단체)으로서 어떤 방식의 활동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4.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중심 과제이자 구호로 가지고 운동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외의 다른 과제나 목표, 지향을 생각하고 있으신 게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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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1. 12. 18:43




(출처 : 다음웹툰  박대리는 사회 부적응자 27화)



수능이 바로 내일인데, 곧곧에 수능대박을 기원한다는 이야기들이 올라오고 떠다니고 있습니다. 둥둥...

뭐 그런 마음이랄까 인정이랄까, 안쓰러워하고 응원하고 싶은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한편에서는 그런 '수능대박'을 마케팅으로 이용하며 상업 이벤트로 하는 것도 좀 짜증나긴 하지만요.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수험생 여러분의 수능대박을 기원한다" 라는 건 말짱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_-

아니 뭐, 공부를 한 만큼 보는 건데 대박을 기원하네 뭐네 하는 건 사행심이다, 라는 류의 말은 아니구요.

절대평가라면 또 모르겠는데, 수능은 상대평가입니다.
내가 얼마나 기초적 지식을 가지고 있고 대학의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를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보다 얼마나 잘하고 못하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죠.
말하자면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 구조에 맞춰서 학생들을 줄세우기 위한, 몇%까지는 1등급 몇%까지는 2등급 이런 방식의 상대평가인 겁니다.
(수학능력평가라는 이름만 보면 꼭 무슨 자격고사-절대평가인 것 같지만, 기만적이게도 -_-;)

따라서 이런 시험에서 "수험생 여러분 수능대박 나세요"하는 건 거칠게 말하면 헛소리밖에 안 됩니다.
누군가가 수능대박이 난다는 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등급 밖으로 밀려나서 대박이 아니게 된다는 뜻이니까요.
누군가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라는 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등급이 밀려나서 불행해진다는 거니까요.



그게 수많은 수험생들이 시험에 응시하기 전에 애써 잊으려고 하거나 잘 의식하지 않는 현실이죠.

나의 승리는 곧 누군가를 패배시킨 결과라는 것.


동시에 수능 대박 나라고 '덕담'(?)을 날리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밀려나고 떨어진다는 것 말이지요.



수능 대박을 기원한다, 라는 거짓말보다는

뷁스러운 대학서열-입시경쟁 체제와
내신-수능-논술의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깨고

더 나은 교육을 만들자
고 말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고 진실된 말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승리하기 위해 누군가를 패배시키고 탈락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이요.
인권도 보장되고, 입시경쟁도 좀 안 하고, 시험을 위해 가르치는 게 아닌, 그런 교육이요.

그걸 위해서는 대학평준화라거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입시 폐지라거나, 뭐 이런저런 정치적 결단과 개혁들이 필요하겠죠.
그런 변화를 위한 저항과 행동이 필요할 것이구요.





이번에 저도 청소년인권보장을 위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에서 하는 행동에 같이 하고 있습니다 @_@

내일 수능날에는 수능을 거부한 학생의 1인시위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요구 선언 발표 등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주욱 행동들이 있구요.

수능이 끝난 분들도, 수능을 아직 보지 않은 분들도, 모두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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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보신각에서 제 2회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문화제 " 꽃들에게 희망을" 이 진행됩니다.

스 스로 나비가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하고 경쟁의 탑을 방황하던 애벌레의 이야기가 담긴 동명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 에서 이름을 따온 이번 문화제는 우리 스스로가 나비 임을 선포하며,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세지를 전달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21일 금요일 밤 6시 보신각에서 만나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문화제에 앞서,

수능을 기점으로 한주간 불복종 행동 주간을 선포합니다!

15일과 19일에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의 문화행동기획단 "몹쓸(몹쓸교육을 쓸어버리는 사람들)" 에서 준비한 선전전과 퍼포먼스가 있습니다.

그외에도 가능한 문화행동들을 알려주시면 적극적으로 연대하겠습니다.

 

○ 13일 10시 30분 교육부 앞 “수능, 그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날씨마저도 얼어붙어 버리는 날, 출근시간이 미뤄지고, 비행기도 뜨지 못하는 하루, 12년 배움을 정리하는 단 하루를 거부합니다.
수능을 거부하는 몹쓸의 직접행동 1탄 “더 이상 우리에게 죽음의 경쟁을 강요하지 마!”  

+ 10시 30분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진행됩니다.
+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피 튀기는 경쟁속 죽어가는 현실을 표현하는 퍼포먼스
+ 퍼포먼스 진행계획
  - 하루 17시간 공부하는 청소년, 경쟁을 위해 친구에게 노트조차 빌려주지 않는 청소년, 수억의 사교육시장에 내몰리는 학부모, 성적만을 평가해야하는 교사, 학벌로 인해 고통받는 대학생, 등 경쟁교육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그 중심에는 피투성이가된 청소년이 모두를 대표하여 수능을 거부하며 홀로 피켓을 들고 있다.

○ 15일 1시 명동 “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


내가 진짜로 원하는 교육을 말하다. 경쟁에서 벗어난 애벌레가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되듯이 내가 가진 나비의 날개를 만들어 봅시다.
입시중심의 경쟁교육을 반대한다. 몹쓸의 직접행동 2탄 “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 1시부터 명동 거리 선전전과 서명 및 내가 원하는 교육 인터뷰
+ 나의 꿈 날개 만들기


○ 19일 10시 30분 소라광장 “우리에겐 꿈이 있습니다.”


의미 없는 경쟁의 탑을 쌓는 애벌레는 사실 나비의 날개를 품고 있습니다. 경쟁교육, 성적지상주의에 파묻힌 우리에게도 사실 꿈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꿈의 날개를 펼치며 외칩니다.
+ 10시 30분 소라광장 앞 기자회견, 11시 애벌레 퍼포먼스
+ 퍼포먼스 진행 내용 : 애벌레 복장을 하고 파이낸셜빌딩앞 계단에서 힘겨운 오르기를 지속, 청소년들과 함께 애벌레에서 탈피하여 날개를 펼치는 내용.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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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1. 3. 03:23







11월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

 

그냥 "독립운동"이 아니라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교육에 저항한 운동!

  정부에서는 작년부터 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라고 부릅니다. 분명히 1929년 11월에 학생들이 대규모로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구가 “독립운동” 네 글자로 표현될 수 있는 간단한 것이었을까요?
 
  당시 학생들은   학생들의 자치권 / 학교운영에 학생 참가 / 교내에서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 / 식민지노예교육 차별교육 철폐 를 주장하는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하고 동맹휴학을 했습니다.
 
  현실은 별로 바뀌지 않았고, 그당시 학생들의 요구는 유효기간 안 지났습니다. 인권을 짓밟는 경쟁,차별,폭력투성이 교육을 보십시오. 설치류(쥐) 대통령 하는 짓과, 청소년이 든 촛불을 보십시오. 1929년의 외침은, 지금도 완성되지 못한 현재진행형입니다.

 

 

저항의 역사는 바로 지금!

 

  학생의 날을 과거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로만 만드는 것은, 학생의 날을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안습 박제 장식품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학생의 날에는 옛날일을 재현하고 과거를 기념하는 것보다는 지금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과 사회에 저항하는 날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입니다. 역사는 기념하고 기억하는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이 바로 역사입니다.

 

 

  2008 학생의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s 기획 홍보물
★ 이 전단지를 습득하신 분은 읽어보신 후 주변 사람에게 권해주세요.
   우체통에 넣으면 우체부만 고생시킵니다.

 

 

 



노예교육은 여전하다!

 

무한 경쟁 노예 교육을 철폐하라!

 

  80년 전, 11월 3일에 학생들은 그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식민지 노예 교육 철폐를 외쳤습니다.
  지금도 노예교육은 여전합니다. 학생들은 학벌, 입시, 성적의 노예입니다. 우리를 줄세우는 입시 속에서 상품취급당하고, 때론 입시경쟁 때문에 죽기도 하고, 두발복장규제, 체벌 폭력, 강제야자 등등 속에 사는 청소년들이 노예가 아니면 뭘까요?

  그런데 설치류(쥐)를 수장으로 둔 지금 정부는 “학교자율화”란 이름으로 학생노예화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일제고사, 중고교입시경쟁 등등 무한경쟁교육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차별중단, 민주주의, 입시경쟁 중단을 말하고자 합니다.
  식민지 노예 교육을 철폐하라고 외쳤던 1929년에 이어, 이렇게 외치고자 합니다.
   “무한경쟁 노예 교육을 철폐하라!”

 

 

입시폐지하고 다양성과 평등의 교육을

 

  서열화된 학교들과 입시경쟁을 그대로 둔 채로 대입전형이나 중고등학교들 형태 갖고 장난치는 걸로는, 학생들의 삶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입시경쟁을 없애야 합니다.
 
  입시경쟁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월에는 전국적으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요구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에 대한 요구는 바로 학생인권과 입시폐지입니다.
 
  노예교육을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교육을 위해 행동하는 날, 입시폐지와 학생인권과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학생들이 저항하는 날, 그날이 진정한 학생의 날이 될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asunaro 청소년인권보장, 아수나로와 같이 해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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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0. 4. 00:51


뭐 참세상 기사로 나온 사회진보연대 분이 쓴 기사이긴 한데요 @_@

일단 지금 하고 있는 활동 &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 이야기라서 퍼다놓아요~_~


일제고사가 이제 다다음주고, 날짜로 따지면 열흘 정도 남았네요.

그전까지 거의 매일 등하교길 홍보를 할 텐데- 쿨럭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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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일제고사’ Say NO!

[기고] 청소년 인권활동가 따이루 인터뷰

진재연(사회진보연대)  / 2008년10월02일 15시28분


모두가 일제히, 시험을 보는 ‘일제고사’가 다가오고 있다. 10월 8일에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국가수준기초학력진단평가’를 치르게 되며, 10월 14일-15일 이틀간 초6, 중3, 고1학생들이 ‘국가수준학성성취도평가’라는 이름의 시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이러한 시험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학교,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4-5%에 해당하는 '표집학교‘를 선정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교육정책에 반영해왔다. ‘초중등교육법상’으로도 전국일제고사는 표집으로 선정된 학교만 실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부터 해당학년 모든 학생들에게 시험을 실시하도록 하고,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시험당일 소풍이나 학사일정을 모두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시험의 결과를 4단계로 구분해 공개하고, 지역별 학교별로 성적을 비교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제고사 강제실시에 대해 많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학교의 서열화, 사교육비 증가, 입시에 따른 학교 교육 파행 등, 한국 사회 교육의 문제점들이 더욱 파괴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는 학생들, 가장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는 부모님들, 그러나 입시와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꿈과 재능이 사라져가고 있는 사회. 이러한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일제고사 반대’를 외치는 청소년들이 있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청소년들의 제대로 된 저항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지가 막 불타고 있다”는 청소년 인권활동가 따이루도 그 중 한 명이다.

▲  캐발랄 솔직담백 따이루의 뒷모습. 따이루는 오늘도 학교에서, 거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요즘 따이루(16)는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모임’ (cafe.daum.net/say-no) 일을 하느라 하루하루가 무척 바쁘다. 학교를 마치고,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 회의를 하고 성명서를 쓰고 선전물을 만든다. 또한 기자회견, 온라인 행동, 청소년선언 등 구체적인 실천행동으로 몸을 움직이느라 눈코 뜰 새 없다. 2006년 중학교 1학년 때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ASUNARO)를 만나 활동을 시작한 따이루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키가 청소년'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만들어 가기 위해 일제고사 반대행동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째는 시험보기 싫어요. 가장 큰 이유는 그거에요. 시험 보는 게 너무 싫고 이제 지겨워요. (웃음) 그 다음에는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 된 이후에 사실상 경쟁교육을 대 놓고 하겠다는 건데, 청소년에게 다가오는 직접적인 정책이잖아요. 이걸 막느냐 못 막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일제고사 반대투쟁은 앞으로 교육정책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느냐, 이명박-공정택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이에요. 그리고 또, 일제고사가 가지고 있는 자체의 문제점이 있어요. 줄 세우기를 한다는 거에요. 그게 지금보다 더 심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회에서 공부로 성공할 능력이 절대 없는 따이루에게는 상당히 압박스러운 일이죠.(웃음) 학교 다니는 상황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입시교육이 더 강해진다는 건 인권이라는 가치나 소통하는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런 거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이 운동을 하고 있는 거죠.


학교가 줄 세우기를 한다는 걸 몸으로 느끼나요?
다른 학교들은 우리 학교보다 더 심하지만. 내 사례만 말하면, 애들을 등수대로 앉히는 거요. 수학선생님이 시험 끝나고 등수대로 앉혔어요. 잠깐 동안 앉혔다가 복귀 시켰지만. 또, 선생님들이 상위권 공부 잘하는 아이들한테 보이는 친절, 엄청난 친절(웃음) 같은 게 있죠. 우리에겐 오지 않는 정보가 그 아이들한테는 가기도 하는 그런 차별이요. 그런 거 통해서 애들을 차별하고 줄 세우기를 하는 거에요. 또, 수학반을 성적으로 나눠서 상중하로 분반을 했어요. 합법적인 우열반 형태인거죠. ‘상’반 애들이 ‘하’ 반 애들한테 “난 ‘상’반 갈게. 얘들아 안녕” 그러고 가요. 그러면 다른 애들이 “미친놈” 그러죠(웃음) 애들은 농담일 수도 있는데, 가벼운 농담 같지는 않은 거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지고 있어요.


시험이 싫은 이유에 대해 조금 더 말해줄래요?

공부하고 싶지 않은 과목인데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나는 옛날부터 수학이란 과목은 정말 싫었어요. 영어는, 영어 성명서를 읽겠다는 목표가 있긴 한데.(웃음) 수확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기본적인 것만 알면 될 거 같은데. 그런 압박이 너무 싫었고, 압박을 ‘만들어주시는’ 시험이 싫어요. 오늘도 시험 보고 왔어요. 소위 말해서 공부를 거의 포기 한 애들이 있고, 중간 정도인 애들이 있고, 공부에 거의 미친 애들이 있어요. 포기한 애들이랑은 웃고 놀고 얘기하고 그러는데. 오늘도 그러다가 시험시간이 다가오니까 어떤 애들은 장례식 표정으로 공부만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도 너무 싫고. 시험 끝난 다음에 애들이 자꾸 한탄하고 걱정하는 것도 싫어요. 엄마가 패겠지, 어떻게 하냐 그러는 얘기도 싫고요.


친구들이랑 그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 많이 하나요?

할 때도 많죠. 애들은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저는 ‘성공’이라는 거 자체도 반대하거든요. 내가 어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 성공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건 누군가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고. 경쟁이라는 게 공정하지도 않은 거고요. 도덕교과서에 나온 말들도 이상하잖아요. ‘도덕’은, 얼마나 이상한 얘기가 많나 보려고 읽어봐요. 이번에 시험 보면서 읽었는데. ‘도덕을 찢어버려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도덕이라는 게 양심이잖아요. 개인의 양심이라는 걸 교과과목에 주입시키고 획일화하는 거죠. 국가에 대한 비판보다 충성을 원하니까. 내가 국가에 대한 뭘 할 수 있는 지 고민해봐 그러잖아요. 문제 풀 때 나와 반대되는 거 찍어야 하는 거니까. 그나마 ‘사회’는 좋아요. 프랑스혁명이나 근현대사는 재미있어요. 사회 같은 과목은 사이사이에 구멍이 많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랑말랑한 게 있어요.


학교에서는 일제고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학교 친구들은 몰라요. 학교에서 아직 안 알려줬어요.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어요. 일제고사가 뭐냐? 14-15일 시험 보는 거야. 또 시험 봐? 그런 반응이요. 아마 지금 중간고사 기간이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려고 나름 인심 쓰신 거 같은데. 시험 끝나고 말해 줄 거 같아요. 아마 학원 다니는 애들이나 알만한 애들은 알고 있겠죠. 학원에는 일제 고사 대비반 같은 것도 있으니까. 아는 애들은 알거에요. 아마 중간고사 끝나면 학교에서도 일제고사 대비반 수업이 진행되지 않을까요.
일제고사 반대 온라인 서명 바로가기


일제고사 당일 날 시험거부-등교거부 행동을 준비하고 있죠?

지금까지 등교거부 행동이 몇 번 있었는데, 물론 허당, 굴욕인적도 있었지만(웃음) 저는 제가 고3때나 등교거부 같은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촛불집회, 등교거부, 시험거부 엄청난 발전이죠. 등교거부는 이 사회에서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던 청소년들의 가장 수위 높은 행동이에요. 그리고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이나 생존권을 위해 싸울 때 노동 3권이 있잖아요. 청소년들에게 사실상 교섭권도 없단 말이에요. 청소년들도 학교 안에서 학업에 착취당하는 건데. 저는 이게 진정한 의미의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생도 충분히 노동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청소년들이 착취당하지 않기 위한 파업인거에요. 직접적으로 거부함으로서 타격을 주고 구멍을 내는 거죠. 바뀔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에요. 그렇게 구멍을 만들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요구하는 거죠. 사람들은 등교거부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원하는 교육’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데, 저나 아수나로에서 고민하고 있는 건, 그냥 주입식 교육은 아니라는 거죠.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연구해 보거나,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수학 뿐 아니라 국어 영어 사회 과학 다. 주입의 목표가 대학을 가거나 취직하는 거잖아요.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고, 정규직 되는 거. 그 과정에서 경쟁하라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순응 하는 게 진리라는 거잖아요. 비판적인 생각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학생회 탄압하잖아요. 교육이라는 건 민주주의라는 건 도전하면서 토론하면서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요. 권위 있는 교장, 학생부, 교사의 권위에 굴복하게 만드는 건 교육이 아니죠. 교사와 학생이 평등한 관계속에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죠. 교사가 항상 새로운 정보를 주는 역할이 아니고 서로 주고 받는 관계 될 수 있는 거니까. 목표가 단순히 대학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고민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교육 만들고 싶은 건데. 지금까지 경쟁에서는 반대방향으로, 그게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는 거죠. 소통하는 교육은 경쟁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거든요. 애들한테 정보 주입하기도 바쁜데, 애들 삐딱한 말 듣고 있으면 학교에서는 성이 안 차겠지. 경쟁교육 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거라고 생각해요. 일제고사는 그런 것들을 없애는 게 아니라 더 강화시키는 거니까 문제인거에요.


학교 친구들이 따이루의 활동에 대해 알고 있나요?

네. 알죠. 학교에서 인권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기도 해요. 어느 때는, 애들이 너 어디 갔다 왔어? 너 또 시위 갔냐? 그러면 저는 비정규직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막 얘기 하죠. 그러면 같이 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제가 무슨 강연하는 것 처럼 애들이 모여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시험 때는 그런 게 안 되죠. 가끔 나쁘게 말하는 애들도 있어요. 근데 그냥 욕하는 건 괜찮은데, ‘야, 호모’ ‘병신’ 이렇게 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을 할 때는 정말 싫어요. 사람들이 다 ‘이 놈의 교육 갖다 버려야지’ 그러잖아요. 애들도 다들 이런 교육, 학교 다 싫어하는데.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우리가 바꾸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거죠. 평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액션이라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 같은 바보나 공부 못 하는 애, 돈 없어서 사교육 못하는 애들이나 부모들이 나서야 하는 문제인거에요.


앞으로 뭐하고 싶어요?

지금 내가 사는 지역에서 청소년 축제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이번 일제고사 반대행동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운동권들은 항상 시작인데 ing가 안 돼요. (웃음) 그리고, 학생의 날 (11월 3일) 행동도 잘 하고 싶어요. 우리가 원하는 교육에 대해 교과부나 이명박도 그냥 무시 할 수 없을 거고. 저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키가 청소년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이 가장 억압당하고 있잖아요. 저항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청소년들은 발칙하잖아요. 청소년들이 발칙한 게 철 없다고 표현되는 건데, 현실과 타협되지 않는 다는 거죠. 운동도 관성화 되었잖아요. 전교조가 교육주체 결의대회 하는 건,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잖아요. 그런 거 말고 열정을 갖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거죠.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을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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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9. 5. 12:02



‘일제고사’를 비롯한 몹쓸 교육정책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제안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초필살 교육 현실


  유난히도 시간이 빠르게 흐른 한 해입니다. 2008년도 벌써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막장 교육정책도 하나 둘 자리를 피고 눌러앉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교자율화 조치만 해도 벌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채 학교에 ‘0교시’ ‘우열반’을 상시대기 시킬 기반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두어 달만 지나면 지금 인터넷 신문에 줄줄이 뜨고 있는 국제중 설립에 관한 기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출 지 모를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걸 막을 순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것 또한 애석하게도 사람 손으로는 막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막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있고, 우리는 그 일들을 막아보고자 여러분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공정택 교육감 당선 이후 밀려드는 일련의 교육정책들은 오직 한 가지 ‘필살경쟁’의 길로 학생들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도 이 땅의 교육은 ‘필살경쟁’이었지만, 이제는 ‘초필살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공부(경쟁)를 위해 태어난 인간이 되길 바라고, 온갖 술수를 통해 그렇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국제중을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의 고교 서열화 300 프로젝트 등등, 이것들은 한 마디로 ‘경쟁기지’입니다. 이러한 경쟁기지들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설 예정이고, 딱히 예지능력이 없더라도 미래가 어떨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학교 간 서열화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학생들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지요. 행복? 행복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10월 14, 15일에 국가 주도 학업성취도평가 이름의 일제고사가 치러집니다. 2010년에는  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을 3등급으로 나눠 학교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학교정보 공개법이 시행되고, 서울시에서는 학교선택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됩니다.
  2010년 시행이라 학교정보공개법이 이번 해엔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개할 성적정보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일제고사는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합니다.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울 잠재적인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일제고사의 1차적인 목적이니까요. 이것은 이후 학생들의 성적으로 학교들을 줄 세울 자료가 되고, 학교가 학생들(어쩌면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욱 더 ‘입시경쟁교육’ 에 박차를 가할 이유가 되겠지요. 일제고사와 학교정보공개법, 학교선택제는 국제중, 자율형 사립고 등등과 나란히 극심한 경쟁을 유발할 테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생들은 상위권 학교에 선택받기 위해, 지금도 그렇지만, 더욱더 ‘입시형 인간’이 되려 할 것입니다. ‘고3은 인간이 아니다’ 따위의 말이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까지 퍼져갈 것이란 예상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일제고사 거부’(또는 불복종)에서부터 경쟁교육 반대로~


  이 끊임없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경쟁교육에서 일제고사는 일종의 시작점이자 하나의 계기입니다. 우리는 아직 사람들이 이런 새로운 경쟁적 교육제도들에 순응하기 전에, 이 제도를 당연시하고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시작되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일제고사에 불복종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왜 하필 부담스럽고 실현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이는 ‘불복종’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냐구요? 그건, 지금까지 우리(교육운동이건, 청소년인권운동이건 기타 등등)가 해온 집회나 1인시위나 기자회견 같은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식상하고 효과가 적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귀를 꽉 막고 있는 저 사람들이, “아 그러셔?” 하고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슬쩍 물타기 해서 넘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경쟁교육을 직접 거부하는, 좀 더 빡센 ‘직접행동’을 고려해야 하는 때입니다. 정책 제안과 토론회와 기자회견과, 가끔 가다가 조직된 사람들이 머리수를 채우는 집회만 줄창 하며 허우적대고 있는 교육운동을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 않고, 특정한 날짜에 전국에서 동시에 시험을 보는 형태의 ‘일제고사’(전국학업성취도평가?)는 대대적인 불복종을 기획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일제고사를 직접 보진 않더라도 경쟁을 조장하는 정책들과 입시경쟁교육에 반대하는 모든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을 제안합니다. 일제고사를 직접 보는 3개 학년 뿐 아니라 다른 청소년들도 10월 14, 15일을 계기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 혹은 패배가 걱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탄압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긴 준비와 물밑작업을 할 것이고, 설령 패배하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패배는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그 바탕에 깔고 있기에 앞으로의 운동에 유의미한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덜한 지옥이 아니라 학력 학벌과 상관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교육, 시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교육, 경쟁에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교육을 원합니다.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말해서, 우리는 정답을 강요하는 시험과 차별을 만드는 경쟁,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이 모두 싫습니다. 일제고사 반대를 계기로, 이에 관하여 입시경쟁교육 폐지를 위한 행동을 연결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제고사가 이뤄질 것이란 사실은커녕 일제고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당사자인 학생들조차 그렇습니다. 멍하니 손놓고 시험지 오기만 기다리는 학생들, 학부모, 교사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감당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방관이라는 동조를 택한 대가인지도 모르지요.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마의 2010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공정택 교육감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제고사나 국제중 설립이나, 막기 위해선 언제나 그렇듯 보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거부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하 구체적인 제안과 계획서 등은 보안 관계(?)상 생략)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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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9. 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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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접는 타입의 A4구요~
전체디자인은 밤의마왕 님이, 그리고 일부 사진 첨가랑 텍스트는 공현이 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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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고사, 학교자율화(=학교학원화 또는 교육포기), 고교등급제, 국제중, 대입규제폐지... 바로 지금 경쟁력을 높인답시고 가고 있는 교육의 모습이야. 안 그래도 미쳐있던 교육이 더 미치려나 봐. 안 그래도 받기 힘들던 교육이 더 힘들어지려나봐.

  정말 사람들이 행복한 교육, 청소년의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이 뭔지, 우리들이 직접 나서서 가르쳐줘야 되지 않겠어?


입시경쟁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꿔야 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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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경쟁의중심에서인권을외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1986년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 中

  난 1등같은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 너무나 모순이다, 모순. 세상은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아니 대학! 대학!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 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매일 경쟁! 공부! 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들어가는 내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위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 않아”
2007년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 中

인간은 항상 자유를 추구하는구나..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되야지. 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현실은 너무달라. 상상 이상으로 너무달라.
공부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공부공부공부. 좁디좁은교실에 선풍기4대히터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곳에서 각기 다른재능을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가는법”.
슬펐어.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뿐이야.
노래부르길좋아하고, 그림그리길좋아하고, 수다떨길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않아.
같은머리 같은옷 그리고 같은공부.
쫍디쫍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넣고, 선풍기4대와, 히터2대. 그리고 선생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교육비판&선동 전단지 ㅋㅋ)







3페이지


경쟁적 교육은 인권침해다!

  다들 “교육에 문제 있다.”라고 씹기 바쁘지만, 정작 교육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어떤 사람들은 학벌과 입시, 경쟁과 차별은 당연한 거라고, 바꿀 수 없다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하지.
  그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 때문에 목숨을, 행복을, 꿈을 잃고 있지.
  교육 같지도 않은 교육 속에서, 인권도 행복도 삶도 무시되고 있어. UN아동권리위원회도 한국의 경쟁적 교육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지. 입시경쟁은 쉬고 놀 권리를 짓밟고, 성적이나 학교에 따른 차별을 만들고, 체벌 같은 폭력의 이유가 되고, 획일적인 교육을 만들지. 이런 상황에선 ‘선택’ ‘자유’ 같은 건 다 거짓말이야. 기본환경 자체가 강압이잖아?
  정답만 강요하는 시험과 점수라는 숫자들로 우리를 값매길 수 있다는 발상은 정말 토 나와. 입시경쟁은 모두에게 안 좋아. 획일적이고 점수 따는 법이나 가르치는 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자기개발일 수는 없어. 입시경쟁은 교육권/발달권을 짓밟는 명백한 인권침해야.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학력차별금지 같은 것들은 좀 더 살만하고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위한 시작이고 한 걸음이야. 다양하고 평등한 사회,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 민주적인 교육, 모두 가능한 일이야.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순응하지만은 말자. 입시경쟁교육을 거부하자. 이제 우리가 원하는 교육, 새롭고 다른 교육, 우리가 행복한 교육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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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교육 정책, 갑갑해서 목이 메는 우리들

  정부는 “다양성”과 “교육권”을 보장하겠다며 경쟁을 더 빡세게 하고, 학교와 학원에 대한 규제들을 없애겠다고 해. 시험을 더 많이 보고, 성적을 공개해서 학교와 학생들을 더 줄 세우겠다고도 하지. 정말 갑갑해서 목이 메이지 않니? ㅠ  “다양성”과 “교육권”은 경쟁을 빡세게 시켜서는 이룰 수 없어. 반대로, “다양성”과 “교육권”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서열화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할 때 보장할 수 있는 거야.
  입시경쟁을 없애야 해. 점수로 인간을 평가하는 시험과 서열화를, 반강제적인 학교/학원의 입시교육을 중단시켜야 해. 정작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데, 국가경쟁력 몇 위고 어쩌구 하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청소년인권을 위한 기분 좋은 상상&실천

- 일제고사 같은 듣보잡 경쟁교육 정책들에 시험거부 등으로 저항하자.
- 경쟁을 일으키는 대학서열화를 깨고 대학평준화, 무시험 입학 등을 도입하자.
- 학력, 학벌, 학과, 직업 차별을 최소화하거나 없애기 위한 변화를 만들어 가자.
- 모두를 위한 공짜(무상)교육과 환경, 시설 개선을 위해 교육예산을 늘리게 하자.
- 교육과정과 수업내용 정하는 것에 청소년들의 민주적참여를 보장하게 만들자.
-                                                           (상상력을 발휘해서 직접 채우기 ^^)



Let's ASUNARO

  핀란드 같은 나라의 교육들은, 적어도 한국보다는 좀 더 청소년들의 인권과 행복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은 교육은 분명히 가능합니다. 프랑스와 칠레 등에서는 청소년들이, 때로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 등과 함께, 직접 행동하여 교육 정책들을 바꿔냈습니다. 당연한 권리가 짓밟힐 때, 필요한 것은 비겁한 침묵과 순응이 아닌 저항입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바로 당신, 바로 여러분이 같이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 ASUNARO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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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현님, 이화여대 교육학과 오욱환 교수의 <한국 사회의 교육열 : 기원과 심화> (교육과학사) 혹시 읽어보셨나요?
    제가 본 책들 중에서 이 '학벌출세사회' 의 기원을 가장 잘 밝힌 책이라서요. 제 블로그에도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 여차저차해서 미뤄졌습니다. 출세교육론이 지배하는 사회와, 그게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차근차근 밝히고 있으니 한 번 읽어보세요. 각 대학교 도서관에도 있을겁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좀 더 전략적(전쟁용어 쓰기 싫지만...)으로 성공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학벌경쟁에 뛰어드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게 그 첫걸음일 것 같아서요.

    (....아하, 그런데 제가 이미 이 책을 추천해드린 적이 있었던 것 같군요. 언젠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리고 저도 조만간(언제가 될지는 확실치 않음) 네이버에서 다른 블로그로 이사할 것 같아요.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는 순간이 왔네요.

    2008.09.05 11:57 [ ADDR : EDIT/ DEL : REPLY ]
    • 음 @_@ 네 예전에도 한 번 추천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서 못 읽고 있네욥

      글쿤요~ 이사하면 알려주세요 ㅎㅎ

      2008.09.05 12:03 신고 [ ADDR : EDIT/ DEL ]
  2. 버람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봐....

    2008.09.07 18:35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도 그러고 싶지만... 흠 쉽지 않아 ㅡㅡ;;

      다음 거부터는 그래야지 ㅎㅎ

      근데 저건 내가 디자인 한 거 아니오

      2008.09.08 12:31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5. 30. 05:39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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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헥헥 겨우 다 만들었네 ㅠㅠㅠ

아 그런데 두번째 장은 글자 수가 좀 많은데

줄이려고 애를 써봤지만 어렵군요 음음...

나름 아수나로에서 고심과 논의 끝에 만든 전단지 디자인입니다...
촛불집회나 촛불문화제 등등에 가서 뿌릴 내용으로;;

 
아앍 거의 밤을 샜더니 죽을 거 같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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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소’가 무서운 우리?


   광우병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면서 동물 뼛가루를 넣은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전염되었다는 게 유력한 추측이에요.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면 초기에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다가 뇌에 구멍이 뚫리면서 죽어가요, 아직까진 전염을 막는 방법도, 치료법도 없어요.
 
   쇠고기를 안 먹으면 되지 않냐구요? 젤리, 과자, 알약, 화장품 등등 정말 많은 물건에 소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물질이 들어기요. 이건 그만큼 인간이 가축들을 많이 착취해왔다는 소리인 동시에, 고기를 직접 먹지 않더라도 광우병에 전염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또, 헌혈로 전염된 사례도 있어요.
 
   광우병은 이윤을 더 남기려고 동물들을 착취해온 인간이 만든 끔찍한 병인 셈이죠. 우리가 요새 쇠고기가 20개월이 어떻고 30개월이 어떻고 떠들지만, 원래 소의 수명은 20년 정도란 걸 아시나요? 광우병에 걸린 소들은 “미친 소”가 아니라 “아픈 소”에요. 미친 건 차라리 인간/육식문화/축산업일지도 몰라요.
 


미쿡산 쇠고기만 문제야?

   우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요. 미쿡에서 수입해 오는 쇠고기가 분명 광우병 위험이 높거든요. 사람들의 의견을 캐무시하고 사람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불법이라며 폭력을 써서 잡아가기나 하고,‘장관고시’를 강행한 2MB 정부에는 정말 화가 나고, 정부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 소들도 광우병으로부터 100% 안전하진 않아요. 고급 한우를 제외하면, 한국산 쇠고기 중 상당수가 소로 만든 사료를 먹은 닭, 돼지 등을 다시 갈아서 소에게 먹이는 절약정신(?)으로 사육돼요. 거기다 한국정부는 안전할 거라면서 광우병 검사를 미국보다도 대충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결코 한국도 광우병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닌 거죠. 어쩌면 문제는 어느 나라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진 쇠고기냐이죠.


 학교급식! 넌 안전하냐?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알려주지도 않고, 확인도 어려운 지금의 급식제도!  이런 급식을 다수의 청소년들이 먹고 있어요. 한 번 일 터지면 대박으로 터질 수 밖에 없는 단체 학교급식은 광우병을 넘어 모든 위험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요.
   유전자변형식품, 광우병 쇠고기, 농약과 항생제 등으로 쩐 채소들과 고기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고 먹는 사람들. 먹거리 생산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급식은 더 불안해요.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먹는 게 이 상태이니 안습 ㅠ_ㅠ


사람들의, 특히 청소년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안!

 1) 안전하고 저렴한 식재료가 필요해!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먹거리 생산과 직영급식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제도적 지원!
기를 수 있는 건 학교나 공동체에서 직접 생태적으로 기르기!
지역 학교들이 함께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식재료를 저렴하게 산지에서 사오기!
 
2)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
이 음식에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재료가 들어있는지 모두 알게 하기!
식재료를 사오는 과정, 음식이 만들어지고 이동되는 과정 등이 투명하게 공개!
급식을 먹는 사람들이 직접 모든 과정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마련!



청소년도 정말 미치겠다 -_-

    광우병에 걸리는 소들은, 좁은 곳에 갇혀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등을 주입당하며, 양이나 소나 돼지나 닭이나 오리 등을 갈아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으며 사육당해요. 그러다가 뇌에 구멍이 뚫리며 주저앉게 되고, 결국 살해당해 먹히거나‘처분’되죠.
   많은 한국의 청소년들은, 좁은 교실, 두발복장규제, 시간표의 틀 속에 갇혀서, 입시 지식을 주입당하며, 옆의 친구와 약육강식 (약자의 고기를 강자가 먹는) 의 경쟁을 벌이며 사육당하죠. 그러면서 마음과 머리에는 구멍이 뚫리고 건강을 쫌 해치게 되며, 결국 이 나라를 위한‘인적자원’이 되죠.


공부+경쟁 더 빡세게 시키겠다는 정부, 뭥미?

    성적이라는 획일적 기준을 갖고 경쟁시키고 차별하는 교육, 명문대 가는 것과 취직 잘 하는 게 목표인 교육 때문에 이미 우리는 죽을 맛이에요.
   근데 2MB 정부는 고교서열화, 영어몰입교육, 학교자율화 등 경쟁과 공부를 더 빡세게 하고, 학생들과 학교를 서열화하는 정책을 내놨어요. ㅠ 거기다 학교자율화 정책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두발복장규제, 체벌, 0교시와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도 제한을 덜하겠다는 거니까... 완전 어이상실!

   우리는 국가를 위한 인적자원도 아니고, 죽은 듯 지내는 시체들도 아니에요. 정부가 할 일은 교육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지금의 뷁스런 교육을 개혁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선은 한 줄로 서열화된 학교 구조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청소년들의 교육권, 행복, 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쟁적 교육을 그만두고, 다양하고도 평등한 교육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2MB 정부는 상수도, 의료보험 사영화(민영화) 등 안 그래도 팍팍한 생활이 더 빡세질 정책들까지 추진하고 있어요. 우리는 인권보장과는 완전 반대로 가고 있는 무개념 정부 때문에 갑갑해서 목이 맬 지경 -_ㅜ

청소년은 평등한 정치적 주체!
 
    청소년들에게도 정치적인 권리가 있어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으며, 정치 활동을 할 권리가 있어요.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도 있어요.

   이런 권리들을 씹어가며 교육청, 학교, 경찰에서는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 등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축시키고 우리를 교실, 학원, 집에 가둬두려 하고 있죠. 때로는 집에서 우리의 활동을 막기도 해요. 많은 학생들에겐 공부 압박도 장난 아닌 게 사실이구요 -_-; 요새는 특히 막나가는 경찰들에게 잡혀갈까봐 무섭기도 하죠.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서 외쳐야 해요. 우리의 행복과 권리를 위해, 그리고 무개념 정부의 짜증나는 행태를 고치기 위해. 더많은 민주주의(예컨대“국민소환제”?)를 요구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부탁드려요.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반말을 쓰거나 하지 마세요. 그리고“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등, 우리를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의 피켓들은 자제해주세요. 우린 마냥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많이 고생하네요. 죄송합니다. 학생 여러분들이 뭔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모습이 그래도 보기 좋아서 다행입니다.

    2008.05.30 09: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건 뭐... 싱싱한 괴담도 아닌 떡밥이 쉬어버린 괴담만 반복하면 그렇게 좋소?
    이러니 광우병종말교라고 하지.

    2008.05.30 10:06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름 쉬어버린 괴담과는 좀이라도 차별적인 내용을 담으려 했답니다

      2008.05.30 15:33 신고 [ ADDR : EDIT/ DEL ]
  3. 입시스트레스도 심할텐데 고생이 많군요.
    그런 것들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우리 어른들이 만들었어야 하는데, 부끄럽군요.

    2008.05.30 10: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하지만 정치에 신경을 안 쓰면서 사는 사회라는 것도 좀 우울할지도 모르겠네요 -ㅂ-;

      2008.05.30 15:34 신고 [ ADDR : EDIT/ DEL ]
  4. 오랫만이에요 ^ ^; 잘지내시죠?
    공현은 열심히 활동하는데;;;
    부끄럽기만 하네요... 화이팅입니다!

    2008.05.30 12:46 [ ADDR : EDIT/ DEL : REPLY ]
    • 명박이가 물러나든 활동가들이 과로사하든 둘 중에 하나일 거 같은데 어서 과로 행진에 합류하심이...

      2008.05.30 15:34 신고 [ ADDR : EDIT/ DEL ]
  5. 자보 이쁘다! 글씨체 짱 ㅋㅋ "명박이가 물러나든 활동가들이 과로사하든" 이 말 왜케 웃긴데 처절하냐 ㅠ ㅠ;;

    2008.05.31 01:01 [ ADDR : EDIT/ DEL : REPLY ]
  6. 물결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런데 저 인쇄물 편집본 정말 귀엽고 예쁘고, 글도 참 술술 읽히게 잘 쓰셨습니다.

    2008.06.09 05:2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1. 8. 12:02

청소년인권운동의 입으로 입시경쟁교육 앞담화 까기


공현 = 윤종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

emptyyoon@naver.com / taekyoon73@hanmail.net



◎ 복잡난감한 괴물퇴치 미션


  여기, 괴물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괴물과 싸운다고 뛰어들었다가 그 앞에서 계속 낑낑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 모두는 저 괴물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 저 괴물을 없애야 한다, 우리도 같이 싸우자, 그렇게 말하기는 참 쉬운 일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큰 괴물을 과연 없앨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왠지 괴물한테 먼저 덤벼서 달라붙어 있는 사람의 눈치도 보인다. 그 사람이 먼저 찜해놓았으니까, 오랜 세월 괴물이랑 싸워왔으니까…. 저건 아닌 거 같아도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싸우는 방식도 맘대로 해보기 어렵고, 눈치도 보이고, 스트레스도 받고… 여하간 좀 난감하다. 괴물 하나 상대하기도 버거워 돌아가시겠는데, 괴물이랑 먼저 와서 싸우고 있는 저 사람도 상대하기 골치가 아프니, 에휴 걍 때려치면 안 될까 하지만, 때려칠 수는 더더욱 없고….


  음, 대충, 입시경쟁교육 문제에 마주해 있는 내 심정이 저렇다.

  입시경쟁교육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중요하고도 커다란 문제라는 것은, 뭐 웬만한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당근 청소년인권운동의 입장에서도 입시경쟁교육 구조라는 ‘괴물’은, 교육이나 학교에 관련된 청소년인권 문제들 전반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입시경쟁교육은 분명 청소년들의 삶을 억압하고 있다. 또한 시험기간에는 활동 참여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수험생 시기가 되면(고3, 재수생, n수생 등등)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등, 실제적으로 청소년들이 인권운동 같은 걸 하는 데 상당히 커다란 걸림돌이 되는 문제이다.


  중요한 문제라서 그런지, 공략 난이도도 높다.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는 부모, 교사, 학교장, 학원, 대학, 기업, 정부 등 모두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얽혀 있기에 건드리기가 어렵다. 또한 입시경쟁교육과 맞서는 것은, ‘하향평준화’에 대한 보수 언론들의 공포감 조성과, ‘국가경쟁력’을 운운하는 뿌리깊은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 행동양식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입시경쟁교육의 문제가 아주 커다랗고 강고한 구조 - 시스템과 싸우는 일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입시경쟁교육의 현실을 자신들이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하고 쉽사리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그런데 동시에, 나를 포함해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를 청소년인권운동이 다루는 것에 대한 ‘긴장’을 갖고 있다. 그런 긴장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자세한 것은 본문에서 언급하겠다.


  그러나 그 어떤 긴장과 곤란한 점이 있더라도, 현실에서 입시경쟁 문제와 부딪치고 있는 나는 입시경쟁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괴물 앞에서 먼저 와서 싸우고 있던 사람이 불편하다고 해서 괴물과의 싸움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 오히려 이런 긴장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입시경쟁교육에 대해 말해야 한다. 청소년인권운동이 긴장감과 불만과 상처를 덮어가면서 ‘교육운동’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청소년인권운동의 입장에서 입시경쟁교육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인권의 입장에서의 교육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안의 방향을 만들어내야 한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교육운동의 담론들이 견지하고 있는 관점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정치(精緻 : 정확&치밀)하게 반박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운동이 반복해온 담론을 답습하는 형태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다른 입장에서의 이야기가 우리에겐 분명히 있다. 단지 그것이 명료하게 표현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다원적 평등’ 식칼로 괴물 회 뜨기


본론에 들어가며, 문제의식에 대한 맛보기


  한국의 경쟁적인 교육 환경이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니 개선하라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를 굳이 인용할 것도 없이,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는 다방면의 청소년인권 침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 입시경쟁 때문에 강제자습, 강제보충수업, 심야학원 등이 횡행하게 되고 이 때문에 청소년들의 자유권, 여가권, 휴식권, 건강권 등이 침해되며,

 ▲ 청소년들에게 입시경쟁체제를 강요하기 위해서 학교, 학원, 가정에서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을 체벌하고 통제하고 강압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며,

 ▲ 성적비관이나 입시경쟁이 주는 스트레스와 절망감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해 수십 명에 이른다.

 

  여기서 내가 이와 같은 입시경쟁교육의 ‘영향’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입시경쟁체제 그 자체 - 경쟁교육체제 그 자체를 인권의 입장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랄까나, 여하간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물론, 입시경쟁교육의 ‘영향’들은 입시경쟁교육과 분리할 수 없으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안도 이를 분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인 내가 편하기 위해서 이렇게 대략 화제를 한정한다. 이 글의 결론부터 미리니름하자면, 나는 입시경쟁 및 현재의 초중등교과과정 등이 그 자체로 사람들의 평등권, 교육권, 발달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고 짓밟고 있다는 주장을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평등권은 단지 계층간 지역간 불평등이나 이른바 양극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교육에서의 평등”에 대한 인식 또한 청소년의 입장에서 재정리하고자 한다. 재정리된 “교육에서의 평등” 개념은, 계층 및 지역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을 중심 문제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평등이란 단지 모든 것을 똑같이 대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평등의 이념을 나타내는 정확하고도 포괄적인 표현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 분야에서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기에 경쟁에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에게 더 좋은 보상을 주는 것은 평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상황도 사실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당연하지가 않다.

  과연 이 사회가 가치있게 평가하는 ‘능력’이란 무엇이며 그 평가는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가? 능력에 따른 보상은 적절하고 합리적인 것인가? 너무 과도하거나 부족하지는 않나? 그리고 과연 교육체계가 어느 정도 독점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평가’와 ‘경쟁’이,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존재 방식, 다양한 성질들을 모두 공정하고 평등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현재의 입시제도는 시험 문제 잘 푸는 사람, 암기 잘 하는 사람이 좋은 점수를 받으므로 진짜 인재를 길러낼 수 없어서 문제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유리한 입시제도들이다.”와 같은 비판들이나 “수능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크게 결정나는 불합리한 제도다.”, “학벌(출신 학교)이 불합리하게 너무 많은 걸 결정짓는다.”라는 식의 비판들이 있다.

  분명히, 현재 교육의 목표가 허울 좋은 교육기본법이나 국제조약 같은 데 써놓은 것과는 달리, 사실은 사람들을 사회에 더 잘 순응하게 만들고 더 잘 통제당하게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위한 인적 자원을 생산해내는 데 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교육의 목적은 확실하게 바뀌어야 하며, 듣기 좋게 써놓은 목적과 실제 목적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거나 교육 시스템이 그 목적을 좀 더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질문과 비판들도 중요하다. 합목적성과 동시에 경쟁 자체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교육’이라는 이름을 단 현재의 경쟁 시스템이 사실은 단지 현재 사회체제의 재생산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또는 교육이 그 자체의 올바른 목적(말하자면, 민주시민 양성, 인권의식 탑재, 총체적이고 적절한 발달,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서 작동하지 않고 사회적 재분배 등을 위한 수단이지는 않은지,(‘능력’을 평가해서 사회적 자원을 분배한다는 ‘명목’하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합리와 불평등과 불의가 생기지는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 이런 비판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어느 정도 검토가 이루어져 왔기에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는 좀 종이나 모니터 화면 등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상투적이고 재미없기도 하다. 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과연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고 경쟁시키고 이에 대해 보상을 제공하는 입시경쟁교육 시스템이라는 게 과연 얼마나 다양한 인간들에게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또한 그런 시스템이 얼마나 인간들을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다원적 평등 : 우리는 평등하게 다르며, 다름으로써 평등하다.


  이제부터 나는 ‘다원적 평등’이라는 개념적 식칼로 입시경쟁교육 괴물을 회 뜨려고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원적 평등’이라는 식칼이 대체 뭔지,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다원적 평등’ 식칼을 만들기 위해, 먼저 간단한 우화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토끼와 거북이가 육상경주를 했는데, 당연하게도 압도적인 차이로 토끼가 이겼다. 이에 불만을 가진 거북이는 이번에는 육상이 아니라 바다에서 수영경주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당연하게도 압도적인 차이로 토끼가 졌다. 오기가 생긴 토끼는 1년 동안 죽어라 수영만 연습해서 세상에서 가장 헤엄을 빠르게 치는 토끼가 되었고, 거북이에게 다시 도전했다. 훈련의 성과가 있었는지 토끼와 거북이의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거북이와의 차이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둘의 경주 소식을 들은 상어가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먼저 도착한 거북이를 잡아먹었고, 거북이보다 좀 뒤처져서 헤엄치던 토끼는 상어가 거북이를 먹는 것을 보고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내가 급조한 거긴 하지만(-_-), 이 우화는 경쟁의 기준에 대해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육상에서 빠른 것과 수영에서 빠른 것, 그 중에 뭐가 더 우월한가? 아니 애초에 빠른 것이 느린 것보다 더 우월한가? 평등을 정의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말은 참 쉬워보이지만, 실제로 이를 구체화시키려고 할 때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는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그리고 다른 것을 어떻게 다르게 대우해야 하는가?


  교육 불평등을 다루는 기존의 조리도구들 중에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바로 ‘경제적 수준에 따른 교육의 차이’라는 식칼이다. 이는 경제적 수준이 교육의 격차와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한 가지는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개발하고 발달시키고 평가하여 적절한 보상을 주는 체계인데 ‘개인’의 능력과 경제적 수준은 별 연관이 없으므로 이것이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다른 한 가지는 경제적 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재생산하고 착취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인식이다. 두 번째의 재생산에 대한 이론 또한 매우 의미있는 주장이며 근대 교육의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일단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려고 한다.

  좀 까칠하게 얘기하자면, ‘개인’의 능력에 대한 주류적인 소박한(?) 신앙은 다분히 근대 개인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즉, 개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능력이나 적성의 차이는 선천적인 개인적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빈부격차 등으로 인한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보상의 불평등은 그런 개인적 차이를 온전히 드러내고 반영하는 데 방해가 되는 왜곡이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실제로 개인의 능력이나 적성, 소질 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그 개인의 능력이나 적성, 소질이 지니는 가치는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격차라는 사회적 조건의 차이 때문에 개인의 능력, 적성, 소질이 달라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므로 이를 불평등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단지 경제적이거나 지역적인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면 개인의 자유로운 능력이 마음껏 활개치게 되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닌, 좀 더 복잡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잠시 국제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발달권과 교육권에 대해서 여러 조항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있다.


제 27 조

1. 당사국은 모든 아동이 신체적·지적·정신적·도덕적 및 사회적 발달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짐을 인정한다.

2. 부모 또는 기타 아동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자는 능력과 재산의 범위안에서 아동 발달에 필요한 생활여건을 확보할 일차적 책임을 진다.

3. 당사국은 국내 여건과 재정의 범위안에서 부모 또는 기타 아동에 대하여 책임있는 자가 이 권리를 실현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특히 영양, 의복 및 주거에 대하여 물질적 보조 및 지원계획을 제공하여야 한다.


제 29 조

당사국은 아동교육이 다음의 목표를 지향하여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가.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신체적 능력의 최대한의 계발

나. 인권과 기본적 자유 및 국제연합헌장에 규정된 원칙에 대한 존중의 진전

다. 자신의 부모, 문화적 주체성, 언어 및 가치 그리고 현거주국과 출신국의 국가적 가치 및 이질문명에 대한 존중의 진전

라. 아동이 인종적·민족적·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의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유사회에서 책임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

마.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의 진전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굵게 한 강조는 내가 했다.)


  맨날 질문만 하는 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여기에서 ‘발달’이란, ‘계발’이란 무엇일까? 모호한 개념이며 당사자들 외엔 누구도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긴 하지만, 사회가 그것을 보장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충이나마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발달의 다양한 가능성들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이를 지원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발달권’과 ‘교육권’에 대한 이야기는 ‘다원적 평등’을 이루는 중요한 부품이 되므로 꼭 기억해둘 것을 권장한다.

 

  다시 처음에 제시했던 우화로 돌아가보자. 내가 만든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고전적인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와 비교해서 읽어보자. 두 이야기를 비교해서 읽으면, 주류적인 가치 - 능력만이 유일한 ‘능력’인 것처럼 평가받고 나머지 능력은 비가시화(안 보이는 것처럼 은폐되는 것)되거나 평가절하 당하는 현상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동화책에서, 교과서에서 배워온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는 결코 거북이가 토끼보다 수영을 더 빨리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영은 기본적으로 땅에서 생활하는 동물인 인간에게는 달리기보다 덜 주류적인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거북이가 토끼들과 함께 교육받으며 성장했다면, 수영 따위는 해볼 기회조차 없었다면 그 거북이의 발달권은 보장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거북이들 중에도 달리기가 토끼보다 훨씬 빠른 슈퍼 거북이가 있었다면? 이런 거북이에게는 달리기의 기회 또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달리기를 잘한다고 해서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건 잘하냐 못하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각 사람들의 행복, 선호, 발달, 자기계발, 자존감 등의 문제이며 기회의 문제이다.) 물론 수영과 달리기 외에 다른 고려해야 할 가치들, 능력들, 소질들이 많다. 때로는 상어에 잡아먹히지 않은 토끼처럼, 수영이 느린 것 또는 어중간하게 느린 것이 장점일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온갖 다른 능력들과 소질들, 적성들을 어떻게 평등하게 평가하고 대우하고 보장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결국 이는 사회적으로 중시하는 가치의 문제와 연관된다. 어떤 사회가 A와 B라는 가치-능력만을 중시한다면, 그 외의 다른 모든 능력과 소질, 적성들은 평가절하되거나 비가시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능력과 소질, 적성들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권리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꼭 능력이나 소질, 적성이 아닐 수도 있으며 거기에 경제적 조건, 지역적 조건, 장애/비장애, 성적 지향, 병력 등 다른 사회적 조건들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요컨대, 발달권과 교육권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다원성이다.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말은 엄밀하게는 “다른 것은 평등하게 다르게”라고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가치들을 위계화․서열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평등을 저해한다. 따라서, 평등은 근본적으로 다원주의적이며 다원적 평등만이 평등일 수 있다. 한 가지, 또는 소수의 기준만을 고려한 평등은 총체적인 평등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러한 발달권과 다원적 평등의 개념은, 전통적으로 평등을 제창해온 사람들이 받아야 했던 공격 - 즉 전체주의라거나 획일화라는 공격을 부정한다. 그것은 다원주의를 근간에 깔고 있으며,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인간의 관계가 진정으로 인간적이며 “사랑은 사랑으로만, 신의는 신의로만… 교환되는” 사회,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 사회 모두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념이다.


  다원적 평등의 개념은, 간단한 ‘질’과 ‘양’의 개념으로 바꿔서 표현할 수 있다. EBS에서 했던 그림 그리기 프로의 밥 아저씨가 “참 쉽죠?”라고 하는 립서비스랑은 다른 의미로, 진짜 간단하다. 사과 6개와 포도 20개는, 결코 그 개수를 비교해서 포도가 더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단순히 크기가 다르다는 이야기라면 물론 저울에 달아보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의 문제라면 이는 측정 불가능하다. 또한 사과가 약으로 쓰일 수 있는 희귀한 병에 걸린 환자에게는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떠나서 사과의 가치가 훨씬 높을 것이며, 포도로 포도주를 담그거나 하려는 사람에게는 사과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파스칼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집단들이 존재한다. 강한 자들, 선남선녀들, 똑똑한 사람들, 독실한 신자들. 이들 각자는 다른 곳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에서 군림한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서로 만나며, 또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어리석지 않은가? 왜? 그들 각자가 지닌 우월함은 서로 그 종류가 다른 것들이지 않은가! ...... 우리는 서로 다른 자질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무를 지고 있다.

- 파스칼


  본래, 질적으로 다른 것들은 교환 불가능하다. 물론 특정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질적으로 다른 것들이 양적으로 교환된다. 나한테 보리가 필요한데 너는 계란이 필요하니까, 보리 1포대와 계란 20개를 교환하자, 라는 식으로. 이 교환은 화폐나 다른 뭔가가 매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각 사람이 부여하는 가치의 질과 정도가 모두 다를 수 있고 조건과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되기 때문에, 양적으로 통일될 수 없으며 보편적으로 계량화할 수도 없다. (이걸 양적으로 계량하려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작동 원리 중 하나이다.)

  ‘질적으로 다른’ 여러 가치, 여러 능력들과 소질들을, 서열을 매기는 ‘양적인 방식’을 통해서 평가하고 대우하는 것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다른 것을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특질들, 소질들, 능력들에 대해서 그것을 모두 다르게 대우하고 평가하고 존중해야 하며, 가치를 위계화하거나 서열화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가치의 다원성을 중심으로 한 평등, 그것이 다원적 평등이다.


  물론 우리는 다원적 평등이라는 식칼을 휘두를 때, 몇 가지 조심할 사항이 있다는 걸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평등보다 우선하는 가치로서 존중되어야 할, 인간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존중이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의 신장 등은 다원적 평등의 적용에서 예외적인 지위일 수 있다. 또한 실제로 구체적인 사회는 무한히 다원주의적일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무한히 다양성을 보장하고 무한히 다원주의적인 사회는 개념적으로 가정할 수는 있지만 실재할 수는 없다. 때로는 모순되기도 하는 무한한 가치와 성격들을 모두 똑같이 추구한다는 것은 아무런 속성이나 특징이 없는, 비역사적이고 비실재적인 사회 외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가치들이 다른 가치들보다 더 우월하고 유의미한 것으로 대우받는 현상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현실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만 다양성의 지평을 계속해서 넓힘으로써 개념적으로 완전한 평등에 근접해갈 수 있을 뿐이다.


※ 다원적 평등의 ‘다양성’에 대해, 생태계 다양성과 비슷한 의미에서 해석하고 정당화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러 다른 사회 상황 등을 고려 가능하고, 다른 사회 상황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가치, 다른 능력과 소질이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전반적인 다양성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랄까? 하지만 나는 일단은 다원적 평등을 인간의 권리(평등권, 발달권)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데 만족하겠다. 다양성을 사회의 생존과 발달에 유리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양성의 근거 자체를 뒤흔드는 반격의 소지를 남기는 것일 수도 있다. 즉, 획일화가 사회의 생존과 발달에 유리한 특정 상황에서는 전체주의도 정당하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홍정훈이 『비상하는 매』에서 주장한 대로 삶의 목적은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다원적 평등에 대한 기초적인 이야기는 대충 한 것 같으니, 이제 직접 현재 교육의 배를 칼로 가르고 뼈를 발라내면서 이 식칼을 써먹어보자.


  현재의 입시경쟁체제는,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몇 개의 과목들에 관해 출제된 오지선다/단답형 문제들을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이 정확하게 정답을 맞추느냐를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서열화한다. 물론 요 몇 년 사이에는 과거에 비해서 출석점수, 봉사시간, 논술, 예체능 실기, 자격증 등 다양한 것들이 입시에 반영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가치’의 다원화가 아닌 입시 ‘전형’(방식)의 다양화에 불과하다.

  가치의 다원화와 방식의 다양화는 전혀 그 의미가 다르다. 방식의 다양화는, 물론 한 가지 방식만으로 평가할 때보다는 약간 더 가치의 다원화 현상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며, 입시 방식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가치를 다원화시켜주지는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입시 방식이 여러 개가 생겼다고 해서 그것들이 현재 학교에 다니면서 입시에 직면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삶, 진로, 꿈들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되도록 해주는 것은 아니란 거다.

  아무리 입시 방식들을 내신이 어쩌구 논술이 어쩌구 수능이 어쩌구 본고사가 어쩌구, 특기자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만들더라도, 그런 방식들을 통해 평가하고 서열화시키는 가치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말 극소수의 예술적 학문적 경우를 제외하면, 현재의 공교육이 평가하려는 가치는 대동소이하다. 얼마나 주어진 환경에 잘 순응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주어진 문제를 얼마나 빠르게 ‘해결’하는가? 얼마나 문제 낸 사람의 의도를 잘 추측하여 ‘정답’을 잘 찾는가? 얼마나 주류적인 기술을 잘 구사하는가? 얼마나 계량화되고 정식화된 주류적인 교과서의 지식들을 잘 외우고 잘 사용하는가? 얼마나 말을 듣기 좋고 유창하게 하고 글을 논리정연하고 무난하게 쓰는가? 그런 기준들에 더해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글쓰기 등의 국민공통교과목들과 입시 교과목들도 ‘가치’의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근 논술이나 몇몇 방식의 시험들은, 대학의 서열에 따라 평가하는 가치들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나 연세대의 논술 문제는, 전남대나 경북대의 논술 문제에 비해 더 날카로운 사고와 더 많은 교과서 외의 지식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또한 결국 인간의 풍부하고 다양한 가치, 능력, 소질, 적성들을 온전히 평가하기 위한 것들이 아니라, 지식기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들을 좀 더 차별화해가며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입시경쟁교육은, 말하자면 가치의 독과점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육상경주 중에서 800m 달리기를 잘하는지 허들 경주를 잘하는지 100m 달리기를 잘하는지 마라톤을 잘하는지… 그런 식으로 다양한 육상경주의 방식들을 통해 경쟁하더라도 결국 거기에서 평가하는 가치들은 육상경주에 필요한 순발력, 지구력, 다리 근력, 달리기 자세, 등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질적으로 다르고 다양한 능력, 적성, 가치들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소수의 기준들 ― 말하자면 수학문제를 잘 푸는가, 언어영역 문제를 잘 푸는가, 수능영어를 잘 해석하는가, 수행평가 숙제를 열심히 해오는가, 기술 자격증을 많이 따는가 등등 그런 것들 ― 만으로 경쟁시키고, 그것으로 그들의 존재의 가치들을 평가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불평등하고 폭력적이다. 현재의 입시경쟁교육은, 사람들의 발달권과 교육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거나 저해시키며, 일원적인 가치체계에 기반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써, 인간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차별을 낳는다. 현재의 주류적인 사회가 요구하는 몇몇 요소들 ― 능력들, 재산 정도, 상품성, 정체성 등 ― 만이 우대를 받고 그밖의 것들이 주변화되고 무시되는 현상은, 인간 전체에 대한 왜곡과 차별을 낳는다.


  따라서 다원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 방식, 교육 내용, 교육 과정 자체를 완전히 갈아엎고 재구성해야 한다. 학교에서 체득하게 되는 순응적 생활방식과 교과서의 지식들이 진리(?)의 위치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은 인정할 수 없다. “실업계는 직업교육 인문계는 대학진학” 식의 분리는(물론 실업계 학생의 다수가 전문대를 진학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얼마나 의미가 있는 분리일지 의문이지만) 대학진학을 통해 고학력과 학벌을 획득하는 것을 더 우월한 가치로 평가하는 현실에서 가치의 서열화와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대학서열화와 학력 및 학벌로 대표되는 차별 현상은 물론이요 학과간, 분야간 불평등 또한 다원적 평등을 추구하는 교육에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

  경쟁을 중심으로 한 교육은 필연적으로 가치의 독과점 체계와 함께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쟁은 교육의 중심 가치가 되어선 안 된다. 보수 언론 같은 데가 종종 경쟁, 서열화를 다양성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다. 경쟁과 서열화는 독과점된 가치체계에 기반하여 인간을 평가하고 구분할 뿐이지, 인간의 여러 가지 입체적인 차이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이런 경쟁을 중시하는 이야기는 보통 “국가경쟁력”과 같은 국가주의적 주장, 그리고 “효율성” “경제성장”과 같은 자본주의적 주장들과 함께 몰려다니는데, 인간의 권리와 다양성, 평등의 추구를 근간에 두는 교육과 국가주의나 자본주의처럼 인간을 수단화하고 ‘인적 자원’으로 취급하려는 주장들은 사이가 매우 안 좋을 수밖에 없고 만나기만 하면 싸우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처럼 다원적 평등의 교육은, 현재의 입시경쟁교육과 학교 교육 체계, 그리고 국가주의 및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 체계 전반과 충돌한다.


  교육을 통해서 계급과 계층이 재생산되는 현상은, 공교육 시스템이 평가하고자 하는 기준들이 대체로 부유층의 사람들에게 유리한 데서 기인한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습시키는 내용들이 사회의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있으며, 학교에 취학하기 전에 경험하게 되는 언어 환경, 지식 환경, 문화자본 등은 학교에서의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교육이나 유학 등을 통해서 학교에서 평가하는 주류적인 가치와 능력들을 향상시킬 기회 또한 부유층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내가 경제적으로 상위에 있는 가정에 속하는 청소년이 불평등 구조에서 상위를 차지한다고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원적 평등의 입장에서는 가치의 획일화와 서열화 자체를 비판하기 때문에, 주류적인 독과점 가치체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누구는 더 갖고 누구는 덜 갖기 때문에 문제다,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이야기를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경제적인 문제가 획일적 불평등을 만드는 하나의 요인임은 분명하고, 빈곤층의 청소년들은 다양한 삶을 모색해볼 기회조차도 더 적은 불평등 속에 놓여 있다. 경제적인 요건이 차별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가치의 독과점체계에서 주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이며, 빈곤층이 부유층에 비해 전반적으로 열악한 성장환경, 교육환경을 경험한다는 것은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교육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빈곤층도 입시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교육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해서는 안 된다. 내 말은 주류적인 가치체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의 서열화와 획일화 체계 자체를 비판하고 인간 모두의 발달권과 삶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입시경쟁교육 체계가 부유층에게 더 ‘유리’하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현재의 입시경쟁교육 체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 부유층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식으로 추측하여 이를 정치경제적 문제의식으로 연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유층 가정에 속해있으면서 학원과외 뺑뺑이를 돌고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이나 꿈과는 무관하게 정해진 코스를 따라 판검사, 변호사, 공무원, CEO, 의사, 약사 등이 되어 살아가는, 그런 청소년이 온전하게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며 자신의 ‘발달권’을 온전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부유층 청소년들이 사회적 가치들을 내면화하면서 사회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런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 않더라도. 그래서 프레이리는 『페다고지 - 피억압자의 교육학』에 현재의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이루어진 사회를 혁명하는 것은, 피억압자와 억압자 모두의 해방을 이루는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개인의 ‘자유’나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입시경쟁과 사회의 현실을 파악하고 소극적이건 적극적이건 체제에 순응하면서 사교육이나 영어공부, 입시준비와 취업준비 속에 뛰어들어 살아가고 있다는 게 더 타당할지도 모르며, “너희는 온전히 행복하지 않아!”라거나 “너희는 너희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어!”라고 외치는 것은 오만이거나 독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사회,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또한 나 자신과 내 몇몇 친구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입시경쟁교육과 학교 교육, 사회 속에서 불만, 불안, 불행 같은 느낌들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독립적 개인의 ‘자유’ 같은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은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그건 분명히 개인의 ‘자유’라는 신앙에 근거하여 사회를 비판하는 ‘순진한’ 주장들을 해체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우리의 윤리 또한 해체한다. 사회 문제를 다룰 때 사람들이 자발적인지 외부로부터 강제당하는지를 논하는 것에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사람들 또한 사회문제를 구성하는 구조의 일부이며, 중요한 건 그들이 자발적인지 비자발적인지가 아니라 (자발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상황이 바람직한지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주장하는 대로 욕망하고 살아야 한다고 할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과 사회에 대해 주장할 수밖에 없으며 또 그 실현을 위해 내 욕망에 따라 노력할 것이다. (뭐, 막간에 잠시 끼어든 변명이었다. -_-)



  나는 “가치의 독과점체계”, “일원화”, “경쟁”, “획일화”, “서열화” 등의 말이 단지 교육이나 입시경쟁에만 적용되는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전반적인 특징이며, 교육은 단지 그런 특징이 나타나는 한 영역일 뿐이다. 따라서 ‘다원적 평등’과 ‘발달권’, ‘평등권’ 등의 개념에 근거를 둔 입시경쟁교육에 대한 비판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더 중시되고 더 인정받는 특질이나 가치들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며, 자본주의는 그런 경향을 좀 더 강화하고 체계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뭐 여하간에 그런 데까지 가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일단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근대 사회에만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질적으로 다른 것들은 양적으로 비교될 수 없는데 그것이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을 가지고 거의 완전하게 교환가능하고 비교 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방식이다. 사람들의 고유의 다원화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소비” “소유” “효율적 생산” “상품성”과 같은 몇몇 방식으로 가치를 제한시키고 사람들을 평가함으로써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며 여기에 이름을 붙인다면 대략 일원화와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원화는 가치들을 비교 가능한 하나의, 또는 소수의 가치로 환원하여 양적으로 비교하려는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근대 사회는 그런 일원화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경쟁시킴으로써 통제하고 사회화시켜서 이윤을 극대화한다. 여기서 소수의 가치란, 우선 자본의 증식 = 이윤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하며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되는지 여부를 말한다.

  입시경쟁교육은, 어쩌면 이러한 근대 자본주의적인 방식을 사람들에게 학습시키고 그것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 나는 다원적 평등의 실현이 사회적 가치의 다원성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전체와 함께 다루어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Imagine, 인간적이고 평등한 교육


  부족하고도 미흡한 실력이지만 대충 회 뜨는 작업을 했으니, 이제 이걸로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 다원적 평등이 실현되고, 사람들의 발달권이 가능한 한 많이 보장되는 교육과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 이야기는 그다지 구체적인 얘기는 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원칙과 틀을 제시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선 다원적 평등은 사회적 가치의 다원주의를 기본으로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다원적 평등은 직업간의 소득 불평등이나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거나 최대한으로 완화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에서의 직업에 따른 불평등과 그에 따른 대학 학과 및 종류의 불평등이 대부분 사회의 주류적인 가치체계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다. 과연 의사나 판검사, 변호사, CEO의 업무가 만화가, 청소부, 버스기사 등의 업무보다 세 배, 다섯 배 이상 중요하고 그만큼의 사회적인 가치있는 것들을 더 만들어내는 활동인 걸까, 하는 문제제기는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학력이나 학벌과 마찬가지로 직업영역, 학과 등도 모두 가치 기준이며, 이를 서열화하고 위계화하지 않는 사회는 다원적 평등의 기본 조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가치의 평등이, 교육에서의 가치의 평등 또한 보장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직업이건 어떤 일을 하건 얼마나 일을 하건 무관하게 똑같이 취급하자는 이야기냐면서, 오히려 이는 획일화라고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주장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건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원적 평등은,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며 다원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도 임금의 차이나 노동 조건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사회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회의 다원화는 필연적으로 분야별 직업별 수입이나 조건의 차이를 대폭 감소시킨다. 노동이나 노력에 대한 평가는, 인간의 매우 다양한 사회적 욕망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될 것이다. 사람들의 노력의 정도에 따른 격차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은 인권으로서 보장될 것이다.


  다원적 평등을 추구하는 교육은, 현재와 같은 국가독점 교육, 학교 교육을 부정하고 다양한 방식과 내용의 교육을 지향한다.

  교육의 근본은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공교육의 ‘정상적 기능’은 사회적 평등을 이루어 내고 사회 내의 차별, 갈등, 교육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을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교육의 내용과 사회적 교육적 가치의 불평등, 일원화, 서열화에 대한 고민들은 필요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발달권과 교육권의 최대한의 실현은, 공교육에서는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사회통합과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교육’은, 인간을 사회에 편입시키고 사회에서 강조되고 통용되는 가치와 방식들을 개인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교육이란 게 원래 인간을 ‘사회화’시키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포괄적으로는 인간을 사회화시키는 모든 활동에 “교육”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만, 사실 제대로 된 의미의 ‘사회화’는 결코 인간을 현존하는 사회체제에 일방적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능력, 적성, 소질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다양한 행복을 모두와 함께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학교 건물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을 ‘학생’으로서 관리하고 거기에 순응하는 정도에 따라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의 교육은 근본적으로 가치의 일원화와 서열화를 내포하고 있다. 설령 학교 자체가 국가독점을 벗어나더라도, ‘학교’의 개념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큰 차이는 없다.


  다원적 평등의 교육은, 학교라는 방식을 벗어나서 공동체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내용, 여러 가지 방식의 교육 과정과 교육 제도들을 추구한다. 사회적 공동 육아, 도서관과 박물관, 예술센터 등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여러 시설들과 노동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교육과 토론, 교류, 여러 종류의 교육시설들 등이 다원적 평등의 교육의 모습이 될 것이다. “탈학교” 같은 말은, 고정된 ‘학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진다. 가장 기초적인 초등교육내용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수되겠지만, 그 이후에는 대학 졸업여부나 고등학교 졸업여부 같은 말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다원적 평등은 사회적인 인간의 권리와 발달과 행복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간적인 교육을 추구한다. 따라서 한 쪽이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다른 한 쪽에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민주적인 토론과 대화의 방식을 취하며, 또한 사람들의 그때 그때의 컨디션, 욕망, 상태 등을 고려하여 유연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를 위해서 소규모 체제를 유지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을 평가하는 방식은 결코 서열화하고 점수를 매기고 계량하는 방식이 아니다. 모든 다양한 교육 과정 중에서는 따로 평가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있으며, 평가가 필요한 경우에도 여러 사람들이 주관적인 대화와 피드백을 통해서 상호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 사회 자체가 총체적으로 인간을 대우하는 방식은, 기본적인 인간성을 평등하게 존중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다르기에 그 다름을 평등하게 다르게 대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Imagine - 그러니까 상상 속의 이야기로만 들릴 수도 있다. 또는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말들의 나열로 보일 수도 있다.

  일단 이게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건, 나도 아직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현실을 나 혼자 이러쿵저러쿵 자세하게 규정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교육, 이런 사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 글쎄. 나는 이게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말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 무한히 다원화된 사회의 존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할 수는 있다. 다원화는 다원화에 대한 부정 또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서, 저런 교육방식이나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해서는,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실현하는 것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증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설령 이게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여기에 가깝게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라는 것으로도 충분한 건 아닐까, 지금으로서는?





◎ 괴물 앞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이대기


  이 글을 시작할 때 나는 괴물과의 싸움이 어렵지만, 괴물 앞에서 먼저 와서 싸우고 있던 사람 ― 교육운동과의 관계맺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불쾌하게 받아들이거나, 또는 운동 안에서의 분열을 조장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주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 그런 생각에 대해서 딱히 반박을 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건 분명히 섭섭하거나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고, 또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소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하간 내 생각은, 그 안에서의 긴장과 불평등한 권력관계 등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단합’이나 ‘단결’이란 건 허구이고 올바르지 못하며 차라리 분열하는 게 낫다는 거니까.


  먼저 교육운동에 대해 내가 느끼는 몇 가지 고민들을 털어놓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먼저, 감히 이런 말을 하기 좀 눈치 보이긴 하지만, 교육운동을 하는 몇몇 단체들은 현재 어느 정도 ‘관성화’되어 있어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고 창조하기보다는 정책적 대안만을 만들어내고 이미 조직되어 있는 사람들을 동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단체들이 만들어내는 교육 문제에서 정책적 대안은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치중하는 단체들의 경우는 현장에서의 실천을 어떻게 끌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무엇보다도 교육운동 진영은 지금까지 주로 교사나 교수,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움직여왔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타자화-객체화하고, 수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예 :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을 살리자!”와 같은 구호나, “우리 아이들을 해방시켜줘야 한다.” 같은 표현들) 동등한 연대 상대로 생각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극히 일부만이 운동의 현장, 교육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을 동등한 연대의 대상, 운동의 주체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이 청소년들을 하대하고, “~군”, “~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 입시지옥에서 구해줘야 할 불쌍한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잘못해서 우리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이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기에, 이런 점은 청소년들과의 연대의 과정에서 계속 크고 작은 내부적 마찰을 빚는 원인이 되어왔다.


  입시제도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육운동 진영이 청소년인권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의 문제도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입시의 문제가 근본적인 문제고 대부분의 청소년인권 문제는 결국 모두 거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입시문제 해결 이전에 다른 인권 문제에 대해 전개되는 운동은 지엽적이고 표면적인 데 머무르는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하는 것이다.

  입시제도와 같은 커다란 구조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지적에는 분명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은 자신들이 일상적인 행동들(사교육을 시키고, 수업시간에 입시교육을 하고, 체벌이나 두발복장단속 등으로 통제하는 등)을 정당화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런 커다란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하려드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종종 이런 식의 주장들은 실제로 구체적인 청소년들의 저항이 일어나는 순간들을 무마하고 흐릿하게 만들기도 하며, 또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복합적 문제들을 한 가지(“입시경쟁”, “입시제도”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로만 끼워 맞추려드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왜 인권을 무시당하는가? 청소년들을 괴롭게 하고 때론 죽게 만들기까지 하는 지금과 같은 교육은 왜 생겼고 계속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이를 “이게 다 입시경쟁 때문이다.”와 같은 방식으로 단순화시키려 하는 것은, 어쩌면 입시경쟁과 맞장 뜨는 교육운동으로 청소년들을 포섭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우린 너희와 같은 편이야.”라는 제스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설령 의식적으로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진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내 탓이 아니다.”라고 말하고픈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론적인 면에서, 나는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 등을 이야기하는 경제재생산에 대한 이론이 한계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문제를 계급적 입장에서 말하려는 방식은, ‘가정’(가족)을 하나의 경제적 사회적 기본단위로 하여 그 안에서의 이해관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다수의 사회과학적 연구에서 가정을 하나의 기본적인 단위로 간주하는 방식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그다지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성주의(페미니즘)는 가정 안에서 가부장과 여성 사이에 사회경제적 위치의 차이, 그리고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가정 안에서 보호자와 자녀(아동) 사이에도 사회경제적 위치의 차이가 있으며 이해관계와 목적과 동기와 욕망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정교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경제재생산 이론이 입시경쟁교육 속에 놓여 있는 청소년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데 충분하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청소년들 중에서 입시 문제나 성적 문제 등으로 인한 자살이 더 많은 쪽은 성적이 매우 낮고 가정도 아주 빈곤한 경우보다는 오히려 성적이 중위권, 또는 상위권이면서 가정에서의 지위 상승 욕구와 압박감이 강한 경우이다.

  하지만 기존의 교육운동 진영은 입시경쟁으로 인한 청소년들의 자살 ― 사회적 타살을 강조하고 이를 부각시키지만, 그러면서도 “현재의 입시경쟁은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한 경쟁”이라거나 “돈 많은 집에 유리한 입시”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시경쟁교육 비판의 중심에 둔다. 이러한 이론적인 불협화음은, 청소년들의 상황은 ‘가정’을 이해관계의 기본단위를 가정하고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에 교육 문제를 단지 경제재생산이나 지역간 격차, 계층간 격차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교육내용 자체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게 된다. 문화재생산 이론이 이야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교육운동 안에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며, 청소년의 입장에서 교육내용과 방식이 어떤지에 대한 고민도 많지 않은 듯하다. 교육운동의 여러 현장에서 간간이 접할 수 있는, “학원을 못 가서 학원 다니는 애들을 부러워하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럼 과연 그 사람들이 학원에 다니면서 입시공부를 하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에 대한 질문을 피해가게 하곤 한다.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이런 문제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이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 다쳐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도 얻었지 / 폐품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그 고마운 자유도 얻었지”라는 구절이 있다.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는, 어쩌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진짜 승리자는 과연 얼마나 있는 걸까.


  교육운동의 이런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청소년인권운동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비판해야 한다.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의 새로운 교육운동을 만들어가면서 다른 교육운동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좋게 좋게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교육운동에 비해 청소년인권운동은 돈도 적고 사람도 적고 규모도 적고 역사도 짧은, 힘 없는 작은 운동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고 또 문제제기가 잘 먹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사실 이 글도 그런 짜증과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겨우겨우 써내려가고 있는, 교육운동에 문제제기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을.






◎ 맺으며 : 현실의 몇몇 운동들에 대한 언급


  나는 이 글에서 다원적 평등을 교육의 근본 원리로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교육의 모습을, 추상적인 차원에서라도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지금부터는 현실의 운동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려고 한다.


  먼저, 입시경쟁이 계속 유지되는 한편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입시경쟁을 없애는 것은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운동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입시경쟁을 없애기 위해서 현재의 학벌체제, 대학서열체제를 부수고 대학평준화를 이루는 것은 제도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2007년부터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대학평준화는 정책적 수단이며 하나의 중간단계일 뿐, 그 자체로 교육의 완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서열화가 있는 상태에서 고교평준화는, 다원적 평등을 실현하는 교육이 아닌 획일화된 교육을 낳았다. 이는 사실 고교평준화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학서열화와 현재의 교육과정 자체의 문제에 가깝긴 하지만, 여하간에 일원화와 경쟁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겉으로 보기에만 ‘평준화’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결코 다원적 평등을 실현하지 못한다. 그렇게 볼 때 개념적으로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입시폐지’ 또는 ‘입시경쟁폐지’일 수도 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기치가 “학벌철폐”인 걸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현재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은 학벌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학벌 이상으로 학력에 대한 차별은 교육의 다원적 평등을 저해하고 공교육과 대학교육의 독점적인 위상을 강화시켜준다. 학력의 문제도 그렇고, 실업계/인문계 분리의 문제도 그렇고, 사실 여러 가지 고민들이 필요하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공교육 정상화’나 ‘공교육 강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다른 교육, 인간적이고 평등한 교육을 향해 가기 위한 중간 과제로 이해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그리고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 또한 앞 부분에서 언급한 경제재생산 이론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나 청소년들을 대상화, 객체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청소년인권운동이 이런 부분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새로운 입장을 내놓음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뭐 그냥 적극적인 연대를 포기할 수도 있다. 여하간에 나는 이게 새롭게 만들어지는 운동이니만큼, 기존 교육운동의 방식들을 답습하지 않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이나마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대안교육운동 또는 대안교육에 대한 시도들은, 현실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뭐 그건 사실 다른 교육운동의 구상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가치의 독과점 체계, 일원화와 경쟁 등의 문제들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성질들이고, 교육영역만을 거기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방식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교육영역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들과 함께 가거나 사회 전체의 변화를 만들어낼 계기가 되지 않는 한은, 애초에 오래 갈 수 없는 기획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학교나 대안교육시설, 방식 등을 시도하는 것은 지금의 교육 현실과는 다른 방식의 교육에 대한 경험이나 사례, 가능성을 개척하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것이 궁극적, 장기적으로는 실패하더라도 그런 실험의 경험들은 변화에 여러 가지 형태로 기여할 수 있으며,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런 실험들이 없이는 새로운 변화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대안교육인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고,(몇몇 종교계 대안학교들에서 가끔씩 보이는 억압적인 모습들은, 과연 대안적 실험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을 느끼게 한다.) 대안교육운동이 갖고 있는 비청소년 중심적인, 교사나 학부모 중심적인 모습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대안교육이 하나의 완성된 정답을 향해 가는 게 아니며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계속 반성하고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교육은, 현실 위에서 시도되는 ‘대안’이지, 결코 완성된 ‘이상’이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7년에 만들어진 교육복지실현 국민운동본부에서 하는 교육복지 운동은, 내가 직접 참여하거나 많이 접해보질 못해서 잘 모르는 면이 많겠지만, 대체적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교육운동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 중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농어촌 교육에 대한 지원, 빈곤층에 대한 교육 지원, 아동의 건강권, 급식 문제 등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그 외에도 학생인권, 대학평준화와 공동학위제, 기타 등등을 모두 요구안으로 발표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운동이 무엇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다소 피상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걸 사과드린다.

  일단 교육복지 운동은 기존의 교육운동들이 가져왔던 청소년에 대한 시혜적이거나 통제적인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며 이후 청소년인권운동이 개입할 기회가 있다면 개입을 통해서 고치도록 요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복지 운동이 ‘복지’의 차원에서 농어촌과 빈곤층의 교육격차,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교육 문제가 경제 격차 지역 격차 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말하자면 경제재생산 이론이 안고 있는 한계까지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교육복지 운동은 그 운동의 성격이나 양태로 볼 때 청소년인권운동이 개입하기가 특히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교육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로서의 측면, 교육의 격차나 양극화의 문제 또한 놓고 갈 수 없고 놓고 가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또 하나 사족인데, 여러 교육운동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외국 이야기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한국의 현실보다 더 나은 사회도 외국들 중에는 있을 것이고, 여하간 현재와는 다른 어떤 체제가 가능하다고 제시하는 것도 못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외국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은 다르다는 진부한 문제제기도 가능할 것이고, 과연 한국보다 좀 더 낫다고 해서 외국의 어떤 제도나 사회 상황을 이상적인,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사람들의 모든 인권의 보장이라거나 다원적 평등의 실현 같은 이상이 실현된 사회는 없다. 단기적 과제로서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거나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인 것처럼 미화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뭐 이런저런 운동들을 언급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교육운동’은 하나다. 거듭 말했던, 바로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의 ‘교육운동’이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연대할 대상으로서의 교육운동이 아니라, 청소년인권운동의 한 분야이자 일부로서의 교육운동이다. 청소년인권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을 운동의 주체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발달을 보장하는 교육이다.

  그게 되겠냐, 라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입시경쟁교육이라거나 현재의 학교 교육이라는 괴물도 인간이 만든 괴물이니까, 인간의 힘으로 없앨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너무 안이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여하간에 없앨 수 없다는 증명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또한 다원젹 평등을 추구하는 교육을 만들어갈 수 없다는 증명도 아무도 하지 못했다.

  입시경쟁교육이라는 괴물을 함께 쓰러뜨리는 그날까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해보자. 20, 19, 18, 1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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