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8. 8. 29. 01:03
청소년직접행동 내부 워크숍에서 기획단이 청소년운동에 대해 생각하는 걸 써달라고 하기에 대충 썼던 -_-




공현의 청소년운동 메모



  이 글에 워크숍 기획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서, 그리고 요새 내 글 쓰는 스타일이 그래서, 토막내서 여러 주제들을 간단간단하게 쓴다. 왜 이렇게 요새는 메모만 하게 되는지. 여하간 대충 읽으면 될 것이다.



☆ 청소년운동

  청소년운동이 뭔가, 라고 물으면 글쎄올시다. 뭐 특별할 게 있나 싶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미성년자 운동’이 어떨까 싶기도 한데, ‘미성년자’라는 말이 아무래도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보니까 그대로 쓰기는 그렇고…. 어쨌건, 누구나 대부분 경험하게 되고 또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변하는 특성 때문에 청소년이 소수자 정체성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특성이 어떻건 ‘미성년자’는 이 사회에서 분명 억압 받거나 통제받거나 차별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된다. 음음.
  여하간 이 사회가 ‘미성년자’ - 국제적 용어로 하면 ‘아동’(child)을 따로 구별하고 불평등하게(단순히 ‘다르게’가 아니다) 대하는 것, 그것이 청소년운동(좀 더 정확히는 저항적인 청소년운동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고... 내 경우에는 청소년인권운동이겠지.)의 이유이고 원인이다. 거기에 굳이 하나의 요소를 더 첨가한다면, 청소년들도 인간들이고, 인간인 이상 행복해지고 싶고, 행복해지기 위한 사회적인 조건들과 구조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밖의 미사여구나 명분이나 이론은, 실제로 유용하거나 자기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청소년운동을 설명할 때는 그다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각자가 청소년운동을 하는 이유야 다를 것이고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들 각각의 이유나 의미가 궁금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 이유나 의미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같이 운동을 하면서 그 이유나 의미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항상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는 청소년운동의 당사자주의 문제에 대해 덧붙이자면, 청소년운동에서 그 운동을 ‘누가’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지만 필수적인 문제는 아니다. 당사자주의에 따라서 청소년들이 직접 하는 게 좋을 것이고 또 직접 하는 것이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만이 청소년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운동은 이 사회에서 청소년의 문제에 관한 운동인데, 이 정의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여야 한다는 규정을 논리적으로는 도출할 수 없다.



☆ 청소년운동이 있긴 했나?

  ‘미성년자’(아동이라고 부르건 청소년이라고 부르건)를 일종의 소수자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운동을 한 역사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글에서는 편의상 앞으로 ‘미성년자’ 정체성 인식 뭐 이정도로 표현하겠다.) 1980년대 중고등학생운동(‘고운’)이나 참교육운동은 민주화운동이거나 자주통일운동이거나 노동계급운동이거나 교육운동의 성격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또한 그 운동들에 인적 or 사상적 or 조직적 뿌리를 두고 있는 희망 같은 단체들은, 좀 성격이 광범위하긴 한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청소년운동단체로서의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전에는 학생자치와 교육, 문화활동, 자주통일 등에 대한 이야기가 강했지 ‘미성년자’의 사회적 지위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고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저항하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있어왔고 앞서 언급한 운동들도 그런 움직임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미성년자’ 정체성 인식을 중심에 두고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활동해온 움직임이 한국 사회에서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운동(1995년부터 그 역사를 짚어갈 수 있는)이 이런 입장과 이런 맥락에 서있는 운동들과 조직들을 만들어나가고 발달시켜 왔다고 본다. 이제 그 나이가 10년을 넘은 청소년인권운동이지만, 운동 역사 10년은 매우 짧은 편에 속하며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제대로 부를 만한 것이 2000년대 들어서야 발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것은 극히 불안정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이었으며, 그 흐름은 정치 참여 운동이나 보호주의나 교육운동이나 기타 등등 다른 담론들과 뒤섞이고 부딪치며 흘러왔다. 그래서 나는 너무 조급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눈앞에 과제들이 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과제들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일 것이다.



☆ 2008년 상황과 청소년직접행동

  나는 전누리처럼 (이른바) 정세 분석하는 걸 즐기지도 않고 정치 예보를 할 생각도 없으니 현재까지 상황에 대한 내 인식만 간단하게 쓰겠다.
  이명박 정부는 절차적인 대의민주주의를 비롯하여 이루어진 정치적인 몇몇 자유들과 국민국가의 자주성이 줄어드는 상황이고, 이는 2002년 이후로 강하게 형성된 다수 사람들의 ‘국민’ 의식과 많은 부분 배치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특권적 집단의 독주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불만들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식이나 애국심이나 자주, 이 땅의 민주주의 등의 명분을 표면에 내세우며 표출되었다.(촛불집회) 희망 같은 단체는 이러한 청소년들의 불만-욕망과 민주주의, 자주, 애국심 등의 대중적이고 거대담론적인 명분의 결합에 익숙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내 입장(그리고 다른 몇몇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으로는 청소년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없고 공론화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예컨대, ‘성인’들의 역사는,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이나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부가적으로 내건 독자적인 교육에 대한 요구 등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들의 운동은 단지 독립운동이고 민주화운동일 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8년 촛불집회도 광우병 쇠고기 투쟁으로 기억되기 십상일 것이며, 교육문제 등도 많이 공론화되고 있지만 핵심 이슈로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치적 움직임들을 대놓고 탄압하거나 일정 부분 완화시키고 무마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촛불 안팎으로 많았다.
  5.17 청소년행동도 ‘휴교시위’ 문자메시지를 계기로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모임인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2008년 초에 정한 연대체 성격 문제라거나 운영 호흡 등의 면에서 촛불집회 대응을 적절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네트워크와는 별도로 촛불집회 정세에서 움직이는 모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에 대한 우리의 고민 자체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권리의 문제 그리고 민주주의(그냥 대의민주주의 말고 -_-)를 그 중심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청소년직접행동의 활동방향도 주로 그런 쪽으로 되어 있었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문제는 특히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며, 2001년부터(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선거권 운동이나 다른 여러 방식으로 제기된 문제였다. 분명히 이 문제를 물고 운동할 단위는 분명히 필요했고 청소년직접행동은 2008년 촛불집회 정세와 교육감 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했다.

* 여기에 따로 쓰진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 상황은 저항적인 운동을 하는 단체들에 ‘단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나로서는 달갑지 않은 정세이지만 그 필요성을 마냥 부인할 수는 없는 게 슬프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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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6. 19. 16:16


“미성년자”, “아이들이 무슨 죄냐”, “촛불소녀” 그 공통점



완고한 청소년 차별/대상화/보호주의

  ‘그들’은 이야기한다. 촛불집회를 처음에 시작한 주역은 청소년들이었다고. 청소년들은 대단하다고. 청소년들은 역사적인 주체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한다. 청소년들이 기특하고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어른들이 해주겠다고.
  집회현장에는 아이들/청소년들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혼재해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그들을 대상화하려고 한다. 내 눈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과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축소시키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예외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어른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두려는 마음들이 엿보인다. 반드시 어른들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집회현장의 많은 청소년들도 그런 사고방식들을 내면화하고 있다.
  그렇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청소년들에 대한 태도는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수적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랬다. ‘미성년자’(차별적인 표현이다.)는 부모 동의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촛불집회 웹홍보물, 밤 10시 이후에 ‘미성년자’는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방침,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눔문화의 종이피켓과 집회현장에서의 구호들, 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는 백안시하면서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지지하는 ‘여론’, 등교거부를 포함하여 청소년들의 행동을 알리는 홍보물을 삭제하는 안티명박카페와 정책반대시민연대 카페 운영진, 예비군들의 여성과 청소년 등은 뒤로 물러나라는 폭력적인 방식들, 집회가 경찰과의 충돌로 좀 위험한 상황이 될 거 같으면 가끔씩 다가와서 말을 걸며 위험하니까 그만 집에 가라고 반말로 말하시는 어르신들, 연행자들 중에서 ‘미성년자’는 석방하라는 구호들, 연행되는 여성 청소년의 사진에 사실과 무관하게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캡션을 다는 기사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대상화는 완고했고, 그 완고함은 청소년들의 ‘도전’조차 ‘흡수’해버렸다. 밤샘 가두시위가 경찰의 연행 등으로 대충 소강상태에 빠지고 시청 광장에 마련된 소규모 자유발언-토론의 장에서 한 청소년이 청소년들에게 반말을 쓰는 사례,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구호, 위험하다고 ‘미성년자’는 가두시위 중에 일찍 집에 가라고 하던 사람 등을 예시로 들면서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대할 것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에 대해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그 박수와 환호가 그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년이 나서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응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나☆문화의 손피켓을 패러디하여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락카로 거리에 글씨를 새겼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 문구를 본 촛불집회 사회자는 “자신들이 지켜줄 테니 어른들은 마음 놓고 촛불을 들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하자.”라는 식으로 진행 중 발언을 했다. 연행되었던 청소년이 쓴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이라는 글을 비롯하여, 청소년들이 자신의 주체적인 면을 강조하고 촛불 속에서의 차별과 보호주의, 대상화를 비판한 표현들은 오히려 어른들이 더 미안해하고 더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인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이라도 그런 청소년들의 문제제기에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좀 우회해서, 패러디해가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그들에게는 ‘도전’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기특한 행동이거나 재롱이었을지는 몰라도.

“촛불소녀”에 거는 태클

  이런 상황에서 나눔☆화의 “촛불소녀”가 등장했다. 촛불소녀가 설령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획이었다고 하더라도, 촛불소녀는 그런 식으로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기존의 여성 청소년들의 약자로서의 이미지(‘촛불’이라는 상징물과 결합하여 더욱 강화된)를 재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촛불소녀, 촛불백수, 촛불노동자, 촛불대학생, 촛불국회의원… 이런 말들을 만들어서 나열해보면 “촛불소녀”가 ‘소녀’로서 가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눔문☆는 여전히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우리들”이란 표현도 문제다.)라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었고, 촛불소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다.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촛불소녀에 대해 많이 궁금하셨죠? 질문이 많아 올립니다^^>라는 글에는, 촛불소녀가 만들어진 것이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해주는 말들이 많다. 그들은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하며, “우리사회에서 가장 순수한 정신과 민감한 감성을 가지고 / 정의와 용기를 간직한 촛불소녀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마지막 희망”이라면서, “아이들의 깜찍하고 용감한 행동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지켜주자고 말하는 것과 KBS를 지켜주자고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아이들을 지켜주자면서 “촛불소녀”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만드는 것이 가지는,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입장을 청소년(촛불소녀)의 이름으로 표방하는 것이 가지는 모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청소년들을 순수하고 특수한 존재로 신비화시키고 있었고, 청소년들을 미래의 존재로 만드는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행동을 “깜찍하다”라고 ‘어른’이 말하는 것 속의 권력을 성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는 진짜 도전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눈치 보면서 빙 둘러 말하던 방식을 포기하겠다.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그것을 성년/미성년(어른/아이) 구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청소년들을 대상화시키고 보호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하질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들은 이 사회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행동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청소년들에게는 미안하고 기특해 하는 태도가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접 도전하겠다. 그런 차별과 대상화에 맞서서 직접 비판하고 도전하겠다. 촛불집회에 나오는 이른바 ‘시민’들은, 이명박 반대를 외칠 때는 함께하는 사람들일지 몰라도, 청소년인권의 문제에서는 단지 ‘시민’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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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결

    공감합니다.
    '소녀'가 있던 자리에 '여성'을 넣으면 그대로 저의 입장을 말하는 글이라서요.
    ㅇㅇ녀, 여ㅇㅇ로서 불릴 뿐, 독립된 호칭을 얻을 수 없는 대상으로서, 이 사회의 인식의 틀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을 잘 이해합니다.

    참고로, (대체 몇 살부터 어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정해진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저는 이른바 어른들 중 하나입니다.

    2008.06.19 20:33 [ ADDR : EDIT/ DEL : REPLY ]
  2. 퍼갈게요 공현님

    2008.06.20 09:34 [ ADDR : EDIT/ DEL : REPLY ]
  3. 좋은 글이네요!!
    다음에 만나면 촛불소녀에 대해서 조금 더 물어보게씀.
    잘 안다가오는 면들이 가끔 있어서 ^^.

    2008.06.22 00:3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