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08. 5. 13. 12:52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7727







참세상 기사입니다.

일단 광우병이 소에게 동족을 먹여서 일어나는 질병,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서 일어나는 질병이라는 식의 다소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보다는 저에게는 훨씬 끌리는 설명입니다만 -ㅂ-;;;



광우병이라는 유령의 배회

[광우병 특별기고](1)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

김기흥(런던 임페리얼컬리지)  / 2008년05월13일 9시39분

참 세상은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논란이 시작되는5월초 , 광우병과 인간광우병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어떤 대응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광우병의 진원지인영국의 에딘버러 대학 과학학 연구소에서 광우병의 사회학적 측면과 광우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그리고 그 연구 방법들에 대한분석이 담긴 “광우병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기흥 박사와 연락이 닿았다. 김기흥 박사는참세상에 네 차례 특별기고를 통해 △광우병은 어떤 병이며 어떤 위험성이 있는가 △ 인간광우병의 위험성과 감염경로 △영국의광우병/ 인간광우병 관리 체계 △ 한국의 대응방안등을 보내 올 예정이다. [편집자 주]

미 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와 함께 광우병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되었다. 이미 지난5월 2일에 1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포함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하지만광우병은 아직도 사람들에게는 실체를 알기 힘든 배회하고 있는 유령처럼 보인다. 촛불시위에서 나온 ‘광우병 쇠고기에 5천만이 다죽는다’는 주장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객관화되지 않는 공포감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광우병을 둘러싼 과도한 정보와 기사들은 결국 무엇이 더 과학적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주장하는수잔 슈와브 무역대표부의 대표도 정부의 이상길 농림부 축산정책단장도 광우병의 위험을 주장하는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도 모두과학이라는 이름을 통해 광우병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광우병은 치료가 불가능한 변형단백질인 “프리온 (Prion)"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자세한 사항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넘치는 정보 속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은 결국 새 정부의 장관의 말에서”광우병은 복에서 독을 제거하듯이 특정부위를 제거하면 안전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전 세계에 얼마 되지않는 광우병 전문가들이 나서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줄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도 쉽게 깨어질 수 있다. 그 이유는과학자들도 시원스럽게 해답을 보여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광우병 연구 분야의 과학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논란과 논쟁을 거듭하면서 과연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성격과 치료법이무엇인지 찾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명의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지만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는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대중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이러한 과학적인 불확실성과정부의 불확실한 입장이 결합되면서 더욱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계에서합의하고 있는 광우병과 그 연관질병에 대해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집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간이다.

많 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광우병은 1985년 처음으로 영국에서 발생한 소에게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당시 영국에서 소들이갑자기 체중이 감소하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마치 미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후 10년동안 영국과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파동의 시작이었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새롭게 보고된 질병으로 죽은 소의 뇌를검사하여 뇌가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듯 뇌세포가 죽어버리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소해면상뇌증 (BovineSpongiform Encephalopathy, BSE)라고 명명하게 된다.
이미 영국은 1725년부터 양에게서 나타나는 유사한 질병인 스크래피 (Scrapie)라는 질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광우병에 대한 이해는 스크래피에 대한 연구와 필연적으로 연관된다. 많은 과학자들은 스크래피를광우병을 포함한 일군의 질병들, 즉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곱병 (vCJD)과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들에게서발생하는 신경질환인 쿠루 (Kuru),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 (Fatal Familial Insomnia, FFI),거스트만-슈트라우슬러-센커 (Gerstmann-Straussler-Scheinker, GSS)병과 북미의 사슴이나 엘크에서발생하고 있는 만성소모성 질환 (Chronic Wasting Disease) 그리고 사육되는 밍크에서 발생하는 전염성 밍크뇌증(Transmissible Mink Encephalopathy, TME)등 소위 전염성 해면상뇌증 (다시 말하면 전염성인 뇌에스펀지형태의 변화를 일으키는 질환, Transmissible Spongiform Encephalopathies, TSEs)의원형으로 보고 있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광우병에 대한 과학자들의 설명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중요하다.


첫 번째,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무엇인가?


인 간이나 동물에게서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주로 곰팡이나 기생충,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 원인이었다. 이들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자체적인 복제능력을 가진 기본정보를 담고 있는 핵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로알려진 프리온 (감염성 단백질인 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의 줄임말)은 단순한 단백질로이루어져 있다. 그것도 우리 몸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무수한 단백질 중에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상적인 프리온단백질이 갑자기 그 모양을 바꾸면서 비정상적 형태의 프리온 단백질로 전환하면서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기존의 질병발생 과정과는전혀 다른 새로운 병원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기존 병원체에 대한 치료법은 전혀 효과가 없다.
프리온 학설이 처음 발표된 1982년 이후 학계는 정말 프리온이 실제로 핵산정보 없이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단백질인가의문제를 놓고 25년간에 걸친 논쟁을 벌여왔다. 물론 이 학설을 처음 제기한 미국의 신경학자인 스탠리 프루지너 (StanleyPrusiner) 교수는 1997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하면서 논란이 사라지는 듯 했지만 여전히 일부 과학자들은 그의 학설을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보통 바이러스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바이러스와 비슷한 병원체가 발견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두 번째, 광우병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광 우병이 처음으로 발견된 1985년 이후 과학자들은 어떻게 소에게서 스크래피와 유사한 뇌질환이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찾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영국의 과학자들은 스크래피에 감염된 양의 부산물이 소의 사료로 흘러들어간 강한 연결고리를발견하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영국을 포함한 서구국가에서는 동물성 단백질을 첨가하여 만든 동물성 사료인 육골분(Meat-bone Meal, MBM)으로 알려진 사료를 소에 먹이기 시작했다. 동물성 사료에 들어가는 단백질을 높은 온도에서동물성 지방을 녹여내는 과정을 거치는데 1970년대 말 오일쇼크와 1979년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이 분야에 대한 규제를완화하고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육골분 생산업자들은 낮은 온도에서 지방을 처리하게 된다. 이과정에서 지방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지방에 둘러싸인 스크래피에 감염된 양의 부산물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 즉, 완전히고온 처리되지 않은 채 골육분의 재료로 유입되었다. 결국 골육분 사료에 유입된 스크래피 병원체는 양과 소 사이에 존재하는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광우병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세 번째, 광우병의 증상은 어떤 것인가?


광 우병은 다른 인간광우병 (변종 크로이츠펠트-야곱병)이나 스크래피와 달리 매우 일관되고 안정적인 감염증상을 보여준다. 특히광우병의 발생연령은 대부분 4세에서 5세 사이에 나타난다. 이러한 발생연령의 일관성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30개월령 소의수입제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광우병에 걸린 소는 30개월 이상이 되었을 때 뇌에서 프리온 단백질의축적이 시작되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단 초기증상은 소가 예민해지고, 발로 차기 시작하고 운동에 문제가발생한다. 그리고 다른 소들과 떨어져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그리고 뒷다리의 힘이 약해지고 주저 앉게 된다. 그리고 소리나접촉에 매우 예민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광우병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소가 미쳐서 걸린 병이라기보다는예민해지고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버둥거리는 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다.


네 번째, 광우병은 어떻게 종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광 우병의 발생은 자연적인 형태의 감염이라고 볼 수 없다. 지난 250년 동안 일상적으로 영국의 양에게서 나타난 스크래피의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스크래피 병원체가 자연적으로 인간이나 다른 동물로 전염된 예를 찾을 수 없었다. 과학자들이 수행한실험실에서 이루어진 인공적인 감염연구에서도 스크래피는 인간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실험쥐로 전이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종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스크래피가 소로 전이된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위 에서도 간략하게 소개했듯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했던 골육분을 만드는 과정에서 스크래피감염물질이 유입되었고 완전히 처리되지 않았던 것은 인간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간 장벽은 광우병이 인간으로 급속하게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연적인 장치였고 일종의 보호 장치였다. 하지만 인간이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를 섭취하는 경우직접적으로 프리온 단백질이 인간에 유입되어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종간 장벽은 또한 질병의 발생을 지연시키고 인간의유전자형에 따라 각기 다른 잠복기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학계에서 광우병의 병원체인 프리온 단백질의 종간 장벽을 넘는원인에 대한 확실하고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얼마나 많은 광우병이 지금까지 발생했는가?


1985 년에 시작된 광우병 파동은 전 영국과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1993년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2000년 말까지영국에서는 거의 2십만 마리에 가까운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되었고 모든 광우병 감염 소는 폐사 처리된다. 그리고 이웃유럽국가들인 프랑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고 스위스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영국과 유럽연합에서단행한 동물성 사료사용의 금지와 육골분 생산금지조치 이후 광우병의 발생건수는 감소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은 전세계 국가로확산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03년 캐나다에서 수입된 소에서 광우병이 처음으로 발생했으며 2004년과 2005년에텍사스와 앨러바마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발견 건수는 미국이 2003년 광우병 발생 이후 시행한759,000마리의 소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발견한 것으로 미국의 동식물보건조사 서비스 (APHIS)는 발표했다.
광우병에 대한 영국과 유럽의 경험은 광우병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통해 발생건수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보여주고 있다. 최근 광우병 발생율이 극히 낮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의 발생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파급력은 다른어떤 질병보다 강력하다. 이미 영국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단 광우병이 발생하게 되면 그 국가의 농업분야는 치명적인 타격을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영국의 쇠고기 및 유제품은 최근까지 수출을 금지하고 있었으며 유럽연합에서 정치적인 고립을 면치 못했다.
영국은 광우병 진단과 억제를 위해 수십억 파운드를 사용해야 했으며 지금까지 경제적인 손실은 약 655억 달러로 잠정 집계되고있다. 독일의 경우 광우병의 발생으로 인한 피해액은 2001년에 최소 7억 6500만 달러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럽의상황으로 인해 전세계 경제 전체에 수십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추산했다. 그 경제적인 충격과함께 인간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은 통계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소에서 발생하는 광우병은 직접적으로 인간에게치명적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곱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영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의 원인과 감염경로그리고 증상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앞으로 1996년 처음으로 영국에서 발생한 소위 인간광우병이라 불린 변종크로이츠펠트-야곱병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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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름 씨알에서 2006년부터 책 몇권을 읽고 이야기나누고 웹진에 기사도 썼었어요 ^^.
    리처드 로즈의 논픽션 '죽음의 향연'이라는 책을 읽었었거든요. 지금 글에 나오는 내용들도 그 책에서 나름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쿠루병에 대해서도...
    "소에게 동족을 먹여서 일어나는 질병,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서 일어나는 질병이라는 식의 다소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는 저도 정말이지 맘에 안들어요.

    2008.05.13 13:41 [ ADDR : EDIT/ DEL : REPLY ]
    • 물결

      동족을 먹는 행위가 여러 가지 질병의 발병 원인이라는 게 계속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는데도, 신비주의적이라고 치부하시는 건 왜인가요?

      2008.06.19 20:20 [ ADDR : EDIT/ DEL ]
  2. 물결 // 일단 동족을 먹는 행위가 여러 질병의 발병 원인이라는 사례가 어떤 게 있죠?; 제가 들은 건 최근 사안에서는 양의 스크래피, 광우병, 인간의 구루병 정도인데...
    근데 사실 그게 동족을 먹는 게 병의 원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사례인 거 같아요. 아 물론 '전염경로'일 수는 있겠죠. 왜냐하면 뇌나 척수나 내장 등에 병원체가 많이 들어있는데, 동종의 뇌나 척수나 내장을 먹으면 종간 장벽도 거의 없이 전염되고 말 테니까요. 하지만 없던 병이 동종을 먹는다고 해서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랜 옛날부터 있던 양의 스크래피는 양이 동종을 먹어서 생긴 건 아니지 않을까요? ^^;

    2008.06.19 21: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5. 3. 03:19


광우병 대안이 한국 거 먹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에 대한 불만



- 우선, "미친 소"라는 말에서 저는 한 번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사실 광우병이라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축산업이 만들어낸 질병입니다.
그런데 "미친소를 막자"라고 한다면 마치 소들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
즉, "잘못된 소"인 "미친 소"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특별히 생명존중사상을 펼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비록 고기를 먹지 않고 있더라도 좀 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이유에 가깝고)
솔직히 말하면, 열악하고 비위생적이고 약물투성이인 환경에서 '생산'되어서 살해당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미친 소"라고 마치 그게 자기 잘못인 양 이름이 붙은 소 분들에게 죄송할 정도입니다.




- 두 번째로, 광우병의 위협이 미국산 쇠고기에만 있을 거라는 왜곡된 인식입니다.
특히 그런 인식은 "한우 먹자"를 비롯해서, 일종의 국가주의/민족주의적인 이야기들과 연결되기 쉽습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라구요?
한국에서 만드는 쇠고기도 많은 경우에 육골분 동물성 사료를 먹입니다.(방목하고 여물만 먹이는 소도 있지만)
소로 만든 사료는 안 먹인다지만,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지요.
(참고로 닭과 돼지한테는 소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소한테는 그 닭과 돼지로 만든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교차감염 위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보통 좀 더 '산업적'인 방식으로 축산업이 이루어지고 약물이라거나 뭐 그런 것도 더 많이 먹인다고들 하지만, 과연 한국과 미국의 축산업에, 광우병 발병 위험이라는 걸로 볼 때, 얼마만큼 큰 차이가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광우병이 아직까지 발병하지 않았다, 라고들하지만 광우병의 잠복기가 제법 있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보고된 적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글쎄요? ^^;

광우병이라는 병은, 인간의 자본주의적 축산업과 자연 착취 자체가 낳은 질병이지,
미국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축산업 구조는, 한국의 소나 닭 등도 그에 못지 않지요.

만약에 "죽을 수도 있다"라는 공포 논리로 이야기하려면, 한국의 많은 쇠고기들도 반대해주시렵니까?

현재의 축산업, 자본주의적인 자연 착취 자체에 문제제기해주시렵니까?





-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 최소한 2만명 정도가 모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드는 생각은,
글쎄요.
사람들은 대개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지금까지 "안심하고" "웃으며" 먹어왔던 고기와 음식들이 갑자기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음식으로 변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안심하고" "웃으며" 먹어왔던 고기와 음식들도 충분히 위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아 물론 그건, 아무리 환경/생태 단체 등등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목소리를 내와도 그런 걸 이슈화하거나 하지 않는 언론이라거나 과학계라거나 기타 등등 사회 기관들의 문제도 있지만요.)

사람들은
당연시되어 왔던 것들에 문제제기하고, 바꾸자고 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는 반발하지만,
지금까지 자리잡아온 여러 가지 것들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근본부터 바꾸는 것은 "불가능", "비현실", "이상, "공상"이란 말로 가로막지만,
당연시되어 오지 않은 어떤 '변화'가 '위험'하다고 하면 그걸 막기 위해서는 충분히 나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물론 그런 '대중적인' 분위기와 행동들은,
어쩌면 이명박-한나라당 정부 자체를 무너뜨리는 걸로 나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런 게 더 나아가서 뭐 생태주의적인 변화라거나,
다른 사회복지의 문제라거나,
양극화나 노동착취의 문제라거나,
비인간적 교육의 문제라거나,
기타 등등 그런 이야기까지 나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2002~2004년의 미군장갑차 살인 사건에 대한 촛불집회, 이라크 전쟁 반대 촛불집회, 탄핵 반대 촛불집회 등에서 우리는 그런 것이 결코 쉽지도 않고 오히려 많이 어렵다는 걸 봐왔습니다.


실제로 그런 류의 움직임들이, 다른 영역의 문제들에까지 미치는 영향력이 별로 클 것 같지도 않구요.



웬만한 홍보, 웬만한 조직화 없이는,
방어적인 그리고 기존의 체제옹호적인 여러 논리들에 편승하는 움직임들에서는,
좀 더 나아가는 의제의 발전이라거나 요구, 주장, 변화의 확장은 그렇게 많이 일어나기는 어렵습니다.





- 특히 이번 촛불집회에도 애국가를 부르고 했다는 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현재 다수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자본주의적, 국가주의적, 때로는 반인권적인 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이상

"대중적인" 집회나 "대중적인" 주장이나 "대중적인" 방식이라는 건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을 건드리기 어렵다는 생각,

저 같은 다소 래디컬한 인권운동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럼 어떤 틈새를 파고들어서 그 동의의 영역을 넓힐 것인가, 하는 생각 등등.




- 여하간 미국산 소고기 반대 집회가 최소한 한국산 소고기나 축산업 구조 자체에 대한 생태주의적 이야기까지 포함하지 않는 한은, 별로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마치 전반적인 상품화와 노동착취의 문제를 죄다 미제국주의 탓이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총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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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8.05.03 13:29 [ ADDR : EDIT/ DEL : REPLY ]
  2. 링크신고!

    2008.05.03 14: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대중적으로 접근하는게 많지. 그리고 나도 대중주의적 관점을 보이고 있.....

    2008.05.04 0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어떤 틈새를 파고들 수 있을까? ㅡ.ㅜ

    2008.05.05 23:39 [ ADDR : EDIT/ DEL : REPLY ]
  5. 물결

    '학습' 중인 거라고, 조금 여유롭게 바라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학습의 결과가 비록 제가 죽고 난 뒤 먼 훗날에 나타날지라도, 느린 물살을 끌고 당길 방법은 없는 거지요.

    2008.06.09 04:53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8. 1. 31. 13:45
서울대 환경동아리 씨알의 민재 씨가 쓴 글입니다.
기름유출 사건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과 생각할 거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태안기름유출사건을 보며


서울대 환경동아리 씨 민재(달)



  태안에서 1 만 톤의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대선이라는 큰 사건 속에서도 태안기름유출사고는 관심을 받으며 40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태안을 다녀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을 통한 방제가 최선이라고 할 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다녀간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작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자원봉사와 삼성의 틀을 넘어서


  하지만 자원봉사에 대한 열광적인 언론 보도는 오히려 많은 쟁점과 현실을 묻히게 하고 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자원봉사에 대한 보도는 대선후보와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한 이벤트로 점철되고 있으며, 어민들의 생계 문제와 보상의 어려움은 제대로 이슈화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1차적인 책임의 소재만을 찾아서 이야기하는 운동단체들의 발언도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단일선체를 규제하지 않은 것, 삼성이 제대로 된 사과발언조차 하지 않은 것은 커다란 문제입니다. 그리고 씨프린스 호 때의 배상처럼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의 재생을 위한 기금 마련을 오염자인 삼성이 부담해야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화석자본주의


  그러나 태안기름유출사고는 자원봉사, 삼성의 책임, 정부의 규제가 적었다는 것만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걸음 나아가서 우리는 화석연료의 채굴과 운송, 사용에서 일어나는 - 전쟁과 기후변화, 대기오염 등 - 사회 문제와 환경 파괴의 맥락 속에서 이 문제를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화석연료의 사용이 자본주의적 생산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깨닫고, 태안기름유출사고를 한국사회의 반자본주의적,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사고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화석연료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연료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력과 목재의 불충분한 공급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가속화와 공간적 확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석탄이었으며 이는 곧 대부분 석유로 대체됩니다. 화석연료의 여러 특징이 자본의 가속화된 축적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화석연료는 1) 장소에 관계없이 자본이 원하는 만큼 2) 계절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비축하고 투입이 가능하며, 3) 집중화되고 집적화된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기름유출사고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자본주의가 가지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점입니다. 전지구적으로 한해 1000여건의 크고 작은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나며, 90년 대 동안 태안 기름유출량의 100배에 달하는 100 만 톤의 기름이 바다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그나마 이것은 70년대에 300 만 톤이었던 것이 줄어든 수치입니다.


  그러니 1차 에너지의 65%(2006년 금액대비)를 석유로 충당하고 있으며, 허베이 스프리트 호의 774배에 달하는 8억 8천 9백만 배럴(유출된 기름의 1 만 배)에 상당하는 석유를 수입하는 한국에서 커다란 기름유출사고가 15년이나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1년에 우리가 쓰는 석유의 0.01%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도 이런 엄청난 재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5년만의 사고이니 다시 계산하면 0.001%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도 이런 파괴가 일어난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니겠지요.



피해는 누구에게로 가는가


  항상 피해는 가장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이번 문제가 얼마나 화석 자본주의와 연관되어있는가 지적하는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이윤창출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적, 환경적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도적, 법적 틀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맨손 어업민들 그리고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 생태계의 많은 생물들은 어렵고 복잡한 배상절차 속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태안사건은 환경적 피해가 어떻게 약자에게 전가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앞서 배상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배상이라는 것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것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생태계, 그리고 그와 함께 파괴된 공동체는 결코 원상 복구될 수 없습니다. 주민들은 지역의 해안 생태계에 의존해서 살고 있었고, 그러한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파괴된 상황은 곧 공동체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환경 문제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던 - 즉, 근대사회에서 가장 주변부에 위치한 -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결국 생계가 어려워지는 사람들은 누군가 강제하지 않더라도 일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도시 인근 지역으로 이주할 수 밖 에 없으며, 결국 이것은 도시 빈곤층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공동체의 파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 수단이 사라져 '이주'한다는 것 정도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마을 공동체는 마을 주민들에게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자원입니다. 수 십 년 동안 함께 한 공동체 생활은 사람 사이의 유대, 고향이라는 장소에 대한 감정 등을 생성해내고 이것은 주민들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공동체가 무너지는 경험은 정서적 공황을 불러오며 이것은 평택, 부안, 새만금 등지에서 주민들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자원은 돈으로 메워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담론은 실종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반도가 세계적 자본주의의 질서에 편입되고 근대화의 전철을 타는 순간부터 1차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던 지역 공동체들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처럼 인클로저 운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기제들이 있어 지역 공동체의 붕괴와 근대적 도시의 성장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여기에는 농산물 가격을 저가로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요인, 신분제의 유산이 남아있던 것처럼 (도시에서나 받을 수 있는 근대) 교육에 대한 열망, 근대적 도시에 비교되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습니다. 도시로 나온 이주자들은 임노동자가 되었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댐, 골프장, 새만금, 핵폐기장, 기업도시, 재개발 등 근대화의 산물들은 모두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주요한 현상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이제 태안의 기름 유출 사고도 넣게 되었습니다. 태안의 사건을 관리하지 못한 사고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아무런 맥락도 가지지 않은 것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까지 공동체를 무너뜨려온 힘 - 즉 근대화와 그 물적 토대로서의 자본주의 - 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해석한다면, 태안의 공동체 붕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배상의 문제로 돌아가 볼까요. 새만금의 경우 서해안에 위치하고 갯벌에서 맨손어업을 하던 주민이 많았던 점등이 태안 등 서해안 피해 지역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이걸 토대로 기존의 배상 속에서 보인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편견과 구조 그리고 계급적으로 갈리는 상황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실제 보상에서의 문제]


  새만금 공사가 진행되고 보상이 이루어졌다. 여기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구체적으로 보상이 어떻게 주어졌나 보자.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신고를 해야했다. 신고 기간 안에 제대로 신고를 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이전까지 어업에 종사했더라도 ‘선외’로 구분되어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주로 여성이 해 온 갯일의 경우 3년간의 수입을 보상해주는 것이었고 1등급에서 6등급으로 나누어 200~100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주로 남성이 해온 선박 어업의 경우에는 5년간의 수입을 보상해주는 것이었고, 선박이 10톤 미만일 경우 톤수에 따라 3500~7500만원의 보상이 주어졌다. 그리고 한 가정에서 최대 2명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양식업과 같은 면허 어업의 경우 양식장의 시설에 따라 수억의 보상금을 받았다.

  여기서 갯일은 3년, 어선 어업의 경우 5년의 수입을 보상한다는 것에서의 불공평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가구에 2인 제한을 두면서 보통 보상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받게 되었다. 또한 실제 맨손어업에는 여성이 많이 종사하지만 더욱 많은 남성이 보상금을 받았다.(남성 498명 여성 470명) 보상금의 금액에 있어서도 실제 갯일로 벌어들이는 금액보다 훨씬 적은 돈이 제시되었다. 한달 100~200만원, 1년이면 보통 1600만원을 넘어간다. 하지만 3년간의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최대 1000만원 이었다.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으로 집행된 보상에 의해 이전까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여성들의 위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배를 타고 반년 이상 객지에 나가 운에 따라 빚을 지기도, 돈을 벌어오기도 했던 남성들과 달리, 맨손어업을 통한 수입은 꾸준한 소득을 보장했다. 실제로 생계를 짊어진 것은 여성이었다.

  면허어업의 경우 특히 지역유지, 공무원과 손이 닿은 사람들,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들 만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건수는 적지만 가장 많은 보상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보상에 대한 불평등은 지역 사회를 더욱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씨알 2005년 여름 새만금 현장활동 자료집 중 - "새만금, 그곳엔 여성들이 있다. 윤박경." 에서 참조한 글]


  물론 태안의 경우 새만금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면허어업과 어선어업/맨손어업 종사자들의 액수 차이, 너무나도 적은 보상비, 그것도 가부장적 구조가 그대로 반영되어서 보상이 된 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세한 어민들, 맨손어업 주민들, 민박집 등 기존의 국가의 관료 시스템으로 잘 통제되지 않던 사람들의 배상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소득을 증빙하는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영세 어민들은 영수증 없이 현장에서 거래를 해왔다고 합니다. 맨손어업의 경우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갱신비, 절차 등이 있어 그냥 면허 갱신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민박집의 경우도 소득 증빙을 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근대적 국가에 체계적으로 편입되지 못한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은 환경적 부담을 그대로 떠안게 됩니다. 더불어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않고 지금까지 탈세를 저질렀다는 도덕적 비난까지 함께.

  정신적 문화적 자원인 공동체를 잃을 위기에 처하고, 그나마 생계를 이어가던 수단도 사라진 주민들에게 또 하나 남은 장벽은 바로 건강의 문제입니다. 원유는 정제되지 않은 기름덩어리로 다량의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건 초기에 원유의 30%가 휘발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이것은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다량 흡입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휘발되는 성분은 다방향족 탄화수소와 발암물질인 톨루엔 벤젠 등입니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노령화되어있으며, 일당을 받으며 장시간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장기적인 건강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급성 증상으로 구토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호송된 사례가 생겨난 것과 방제에 투입된 주민의 절반 정도가 여러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짧게라도 노출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도 미약하게나마 나타날 수 있습니다. 건강 문제는 환경적 피해를 짊어지는 한 가지 양상입니다.



자연통제의 환상


  사건 이후 한국의 관료와 방제 (기술) 시스템은 그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관료와 기술자들을 비웃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연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초기에 정부는 기름유출사고가 그렇게 크지 않으며 멀리 퍼지지 않은 채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면서 그 말을 주워 담아야 했습니다. 예상보다 기름이 퍼지는 속도가 빨랐던 것입니다. 미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요동치는 조류를 따라서 기름은 태안과 보령을 덮치고 그보다 아래에 있는 전라도 제주도까지도 흘러내려갔습니다. 사태 초기에서부터 자연에 대한 완전한 파악은 불가능했고, 자연의 역동성 앞에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기술적 해결책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는 것들이었습니다. 유화제의 과다한 사용은 겉으로는 기름을 사라지게 합니다. 하지만 1차적으로 유화제라는 화학물질 자체가 오염을 일으킵니다. 유화제는 다르게 말하면 기름과 물이 섞이게 하는 세제(혹은 계면활성제)입니다. 이 물질 자체가 일으키는 오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성에 대한 인식이 있기에 정부 측에서는 씨프린스호 사건 이후 다음과 같은 자체 수칙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12년 전의 시프린스 호 사고 이후 수심 10m 이하의 해역과 어장 양식장에 3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지역에서는 유화제를 전혀 사용할 수 없으며, 수심 10~20m 지역은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기타 지역은 책임자가 판단 한다"


  2 차적으로는 잘게 분해된 기름이 바다 생물들의 몸에 쉽게 흡수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가라앉은 기름들은 사실상 인위적 처리가 불가능하며, 해안의 바닥에 모여 있다가 수온이 변하면 다시 올라와 2차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구슬처럼 분해된 기름은 손을 통한 방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퍼내거나 흡수시킬 방도가 없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고온고압 세척의 경우에도 다른 문제를 가져옵니다. 갯벌과 바위 틈 모래에는 미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체들도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고온고압(약 80도)의 물로 세척할 경우 열 쇼크로 많은 생물들이 죽으며, 이것은 기름의 자연분해를 더디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명한 사례인 액손 발데즈 호 사건의 경우 고온고압세척을 실시한 해안이 그렇지 않은 해안보다 생태계 복구가 더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고온고압세척 뿐 아니라 큰 가마솥에 돌을 넣고 끓이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방제를 위한 여러 기술들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오히려 손을 통해서 직접 닦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는 자연적으로 정화되길 바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생태계 친화적인 방법이라고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해경은 1만 5천 톤의 기름 유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방제시스템을 갖추었고 지휘체계도 해경으로 일원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이런 무력함이었습니다.


  근대적 국가는 환경오염이라는 근대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전문가와 그들이 생산해낸 기술지식에 의존하는 관료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와 환경부라는 기구는 이러한 관료 제도의 현상 형태입니다. 이런 것들은 과학기술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또한 감소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데서 나온 제도입니다. 즉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가능하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 국가의 관료 체계는 자연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의 대기 질은 여전히 세계 최악의 수준입니다. 팔당 상수원은 그 많은 비용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결코 1급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화호 또한 - 과학적 예측의 - 대표적인 실패의 사례입니다. 이런 긴 실패의 사례들 끝에 태안 사고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실패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이 요구됩니다. 먼저 근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합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객관적이고 이성적, 중립적이라는 단어를 뒤에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에 불과합니다. 과학기술 자체가 정치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뒤로 한다 해도, 과학기술이 작동하는 제도 - 즉 연구소와 대학, 평가기관들 - 는 자본과 국가의 이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근대 과학지식이 자연을 이해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자연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상호작용들 - 아니 생태계의 정의조차도 논쟁거리입니다. - 지하수의 움직임 같은 것들은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전문가들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 문제를 과학기술이 다루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환경 문제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서울시의 대기질 문제는 대기과학자들이 분석해서 해소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동차로의 이동이 강제되는 도시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기후변화 문제도 과학으로만 풀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화석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윤을 포기하면서 자본이 기후변화를 해결하려고 노력할까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들은 어떻게든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대신 새로운 자본의 이윤 축적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대규모 플랜테이션으로 생산되는 바이오연료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한 또 다른 환경 파괴와 원주민의 공동체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지오엔지니어링이라 불리는 - 탄소를 포집해 심해에 저장한다던지 하는 - 여러 해법들은 자본의 이해를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이윤 축적을 도와주면서, 자본에 의해 생겨난 위험을 자연과 인간에게 전가시키는 일입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도 생태 전문가들, 해양 전문가들만이 발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기름의 효과적인 제거와 이중선체 의무화라는 기술적인 해결책에만 몰두해서는 안됩니다. 과학기술이 밝혀주지 못하는 사회와 자연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발언해야만 합니다.

 

   

책임 묻기


  이제 유조선과 인양선이 충돌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봅시다. 유조선(화주는 현대오일뱅크)은 정박 중이었습니다. 여기에 예인선에 이끌려 움직이던 크레인(삼성물산 소유, 삼성중공업이 임대)이 밧줄이 끊어져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유조선과 부딪힌 것입니다. 단일선체였던 유조선은 검은 원유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폭풍우 속의 무리한 운항, 경고에도 불구하고 운항한 것들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정부는 관련된 실무자들을 처벌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상은 유조선이 들어있는 보험사와 국제유류보상기금(IOPC)이 지불하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사업자 보호를 위해 책임제한조항도 한국 법에 있습니다. 즉 유조선 선주와 삼성 중공업은 몇몇 관련 인사의 처벌만 있을 뿐, 실질적인 배상에는 관여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보험사와 유류보상기금이 주도하는 배상절차는 주민들에게 무척 어려운 과정이고, 청구된 금액의 30%정도만이 인정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자본 축적에서 발생한 문제와 충격은 자본주의적 충격완화 시스템 - 보험 - 과 주민과 자연에 대해 비용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완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 3천억 원의 배상한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유류보상기금의 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류오염배상보장법 제 6조에는 "선박 소유자 자신의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로 말미암아 생긴 피해에는 책임제한이 배제된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손해배상한도를 넘어가는 책임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각 회사들이 져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장기적인 공동체에 대한 지원, 생태계의 장기적 모니터링과 기록, 지속적인 방제, 봉사활동의 지원, 의료적 지원 등에 대한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야 합니다.


  단일선체에 대해선 한국 정부의 규제가 제대로 없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단일선체가 분명 사고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한동안 석유 수입이 계속될 상황에서 이중선체로의 전환이 위험을 어느 정도 줄일 것이라는 것은 고려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하지만 이중선체로 바뀐다고 해서 이 치명적인 유출이 얼마나 통제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선박기름유출사고는 유조선이 아닌 일반 대형선박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또한 세계적인 위험의 분배라는 측면을 보지 못한 채 단일선체라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이것은 한국에서의 기름 유출의 위험을 다른 국가 - 보통, 한국보다 규제가 느슨한 3세계로 - 의 지역사회와 생태계에 이전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석유의 사용이 계속 증대되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일어날 일입니다. 결국 국제적 전망을 가지고 화석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와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을 동시에 꿈꾸지 않는다면 한국에서의 이중선체 규제는 보다 자본주의의 중심부를 닮아갔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연관짓기 : 서해안의 위기


  태안기름유출사건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죽어가는 새의 사진을 보고는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파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서해안은 지금 아래에서부터 영광핵발전소, 새만금간척사업, 태안기름유출사고, 석모도-강화도 조력발전소 계획, 한강하구개발이 들어간 서해평화지대 등 여러 사업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해안개발특별법은 이런 경향을 전국의 모든 해안으로 확대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 새만금, 긴 비극의 역사


  서해는 기나긴 간척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 백제 때부터 시작된 간척은 점점 그 규모가 커지면서 결국 새만금 간척 사업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이미 퇴적이 많이 진행되어 육상화 된 지역을 소규모로 간척하던 고대의 방식과 다르게, 새만금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보도된 33km의 방조제를 바다 한가운데에 만들어 거대한 간척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4공구가 막히던 날, 해수 유통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그 이후 갯벌 생명체들의 집단적인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게와 망둥어, 조개들이 살아가던 장소는 지금은 사막처럼 변해서 흙먼지를 날리고 있습니다. 기름 유출로 인한 피해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했고, 어민들은 다시 복구될 거라는 희망도 없이 다른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외부 방조제를 다 만든 것에 불과한 새만금 사업을 마치 다 끝난 것처럼 선전하던 정부는 이제 새만금 특별법을 만들어 남은 공사를 마치려 합니다. 애초에 농업 용지로 공유수면매립면허를 받았던 것을 다시 상업이나 공업 용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며 또한 새로운 환경영향평가도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특별법은 이러한 최소한의 조항들을 모두 무력화시켰습니다. 모든 입안권을 전라북도에게 위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새만금은 끝나가는 공사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외부 방조제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내부 방조제 즉 방수제는 외부 방조제의 4배에 달하는 130k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이 끝나고 나면, 상업 용지와 공업 용지로 쓰기위한 땅을 토사로 매립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토사가 요구되며 다시 한국 곳곳의 산이 파헤쳐질 것입니다. 방조제 공사를 하면서도 방조제의 남쪽 끝 해창 갯벌 앞에 서있던 해창산이 사라졌습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돌아서 들어가면 허리 아래까지 잘린 산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파괴와 건설이 다 끝나려면 20~3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나긴 비극은 언제야 그 끝을 보여줄까요.


  그러면 이렇게 많은 생태파괴와 공동체를 무너뜨린 사업이 타당성이 있는 걸까요? 정부의 논리는 끊임없이 바뀌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새만금 사업은 농지조성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식량안보의 논리가 주된 이야기였죠. 그러나 전북 주민들은 이 공사가 전북에 파급효과를 가져와 지역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 이야기되었습니다. 하지만 농지를 만드는 것으로 이것이 달성될까요? 그래서 전라북도라는 지자체에서는 공공연히 공장과 항구를 만드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결국 지역에서 표를 구걸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동영, 이인제 같은 이들은 대선 기간 동안 새만금을 방문해 두바이와 같은 국제적 도시를 새만금에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결국 애초에 제기된 식량안보의 문제는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전북이 소외된 지역이라는 이데올로기와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 그리고 이윤을 쫓는 기업이라는 삼위일체는 서해안의 가장 거대한 생태적, 공동체 살해를 불러왔습니다.


-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의 유령


  영광에는 서해 유일의 핵발전소가 있습니다. 핵발전소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기술적인 안전책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고의 위험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배수 문제입니다. 특히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 온배수는 수심이 깊은 동해에 비해 더욱 크고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서해안 지역 곳곳을 들쑤시고 다닌 - 결국 경주에서 안식을 맞이한 것처럼 보이는 - 핵폐기장의 유령도 많은 지역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영덕, 영월, 울진, ‘안면도’, 청하, 장안, 울진, ‘굴업도’, ‘고창’, ‘영광’ 그리고 ‘부안’이 부지로 언급되었고 여기에는 서해안의 많은 지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핵폐기장의 유령이 지나간 곳마다 지역 지원금이라는 유령이 지나갔고 이것은 지역 사회를 찬성과 반대로 갈라놓았습니다. 곳곳에서 투쟁이 벌어졌고, 부안에서는 민란이라고까지 불려진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주민들은 찢어진 공동체를 복구하지 못하고 있고 정신적인 질병들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석모도 강화도 조력발전사업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세계의 여러 나라가 모여 만들어 낸 것이 교토 의정서입니다. 여기에는 3가지 유연성 체계가 동원된다. 공동이행제도, 청정개발제도, 배출권거래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조력발전사업은 유연성체계를 이용해 자본을 축적하려는, 즉 환경 산업의 최첨단에 서있는 사업이다. 조력발전소는 신재생에너지로 선전되어왔다. 화력발전소와 다르게 이것은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곧 친환경적이고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여러 층위의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몇몇 단체가 선박의 운해통로를 막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이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배출권이 적다는 것도 경제성의 측면에서 문제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거대한 방조제를 쌓아 바다의 흐름을 방해하게 될 때 일어날 생태계 파괴 - 그리고 이어지는 공동체의 파괴 - 이다. 방조제가 생길 때 해수의 흐름이 바뀌고, 퇴적, 침식의 작용도 바뀌며, 그곳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에게 영향이 생긴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발전과정에서 순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으므로 친환경적 발전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핵발전소와 대형 댐을 통한 발전이 친환경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볼 수 있다.


- 한강 하구의 개발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한강 하구의 개발이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남북 관계의 개선을 경제적 협력의 정도로 평가하는 관행 속에서 지금까지 군사적 긴장 때문에 개발의 압력을 벗어날 수 있었던 민통선 지역과 한강 하구가 새롭게 개발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갯벌 생물과 철새들이 머무르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런 개발은 제고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이것은 북한을 자본 주도적으로 통일하려는 경향을 가속화시키는 기제가 될 것이라는 데서도 깊은 우려를 준다.


- 전국 해안의 개발


  해안개발특별법은 전국의 모든 해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이것은 기존의 환경관련법을 모두 우회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심지어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도 개발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서 환경부조차도 반대한 법이다.


  이렇게 많은 사례들은 서해안의 생태계와 이에 깊게 의존하는 지역사회의 파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안의 비극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알리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가와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넘어서


  행정자치부에서는 얼마 전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태안으로 자원봉사를 간 100만명의 사람들을 노벨상 후보로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선의에 대해서 국가는 국가주의적 의미를 덧붙이려고 노력합니다. 마치 10년 전 금모으기 운동에 비견되는 일인 것처럼, 국난을 맞이해 ‘모두’가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정말 국가의 위기였을까요? 우리 ‘모두’가 이걸 극복해낸 걸까요?


  자원봉사에 대한 열광적인 보도, 방제에 대한 진척만을 보도하는 방송과 신문은 사실 삼성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와 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는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바라는 생태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개선을 해내가는 환경주의자들도 - 자본이 아닌 - 삼성이라는 단일 기업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똑같이 생태계를 걱정하고, 주민들과 공동체를 걱정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지점에 서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자원봉사를 갔다고 해서 마냥 희망에 들떠서도 안 됩니다. 결국 태안이 다른 사건들과 고립된 맥락 속에서 해석되며 한국사회의 그리고 국제적인 여타 생명들의 죽음, 공동체의 파괴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보여준 선의들은 1회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태안은 해석되는 맥락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우리는 화석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로서, 근대화에 따른 지역 공동체의 파괴의 연장선상에서, 환경문제를 과학기술적 문제로만 다루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자연통제가 환상이라는 걸 알려주는 맥락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연결들 속에서 태안에 보여준 선의를 1회성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태안 사건을 단순히 저곳의 문제가 아닌, 내가 살아가는 사회적, 물적 토대와 연관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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