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9. 11. 11. 12:50

인권오름 기사 원문


원래 난다가 쓰기로 한 건데, 땜빵으로 이틀만에 써내려간... 글
뭔가 잘 쓴 거 같으면서도,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지 딱 정리하는 부분이 누락된 기분이 드는 글이다.








[페미니즘인(in)걸] 괴물들과 공주님들?

아동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공현


‘몬스터’(우라사와 나오키 지음)라는 만화가 있다. 제목부터가 ‘괴물’인 이 만화에는 진정으로 천재적이면서 잔혹한 살인자, 요한이 등장한다. 그러나 절대악인 요한을 추적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그 요한조차도 ‘인간병기’를 만들어내려고 한 어른들의 실험에서 비롯된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만화에서 요한이 사실상의 자살로 사라진 후, 남겨진 질문은 이것이다.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이 되어버린 가해자

사형, 종신형, 거세, 신상정보 공개, 전자발찌……. 최근에 아동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에게 가해져야 하는 처벌이라면서 거론되는 것들이다. ‘조 아무개 씨’의 여성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TV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면서 “그런 새끼들은 쳐죽여야 한다”라고 외치고 있다. “가해자에게 인권은 없다.”, “짐승만도 못한 놈” 같은 말들 속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 그건 아동 성폭력의 가해자(줄여서 가해자)는 자신들과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해자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존재, 이해할 수 없으며 제거되고 박멸되어야 할 ‘괴물’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성폭력 가해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체포되어 감옥에 격리되기 전까지 이 사회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범죄는 사회적인 사건이며,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도 이 사회의 일부이다. 아동 성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연구를 보자. 아동 성폭력 범죄 가해자들은 학력이 낮고, 자아존중감이 낮고, 성적 좌절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체적/사회적 힘이 약한 아동을 대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뿌리 깊은 남성 중심적 문화와 음주에 관대한 문화도 원인이 된다. 애초에 남성으로서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다는 심리 자체가 남성 중심적 사회 문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성/아동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못하고 여성/아동이 약한 존재, 무력한 존재로 묘사되고 만들어지는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21 제781호(2009.10.16.) 안수찬 기자의 「아동 성폭행범 처벌 ‘무겁게’보다 ‘확실하게’」를 참고하시라.)

사진설명여성단체가 조두순 사건에서 음주를 이유로 감형된 것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사회적 맥락이나 원인들을 외면한 채, 그리고 평소에는 폭력들에 관대한 모습마저 보이면서, ‘비정상적인 것’들로 돌출된 부분들을 잘라내려고만 한다. 마치 이백 대, 삼백 대를 때린 교사들에게는 ‘부적격 교사’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한 대, 다섯 대를 때리는 교사들에게는 관대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체벌은 학교의 폭력적인 시스템과 규제, 체벌에 관대한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한 대를 때리든 이백 대를 때리든 체벌은 근절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사회의 문화와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30대를 강간하든 아동을 강간하든, 강간을 하든 성추행을 하든, 성폭력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크든 작든, 성폭력은 근절되어야만 한다. 아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차별과 폭력, 성적 대상화에 노출되어 있는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그저 조 아무개 씨를 죽여버려야 한다고 외치며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하게 말하면 위선적이다. 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자기 당 국회의원이 저지른 성폭력을 무마하려고 술잔을 깨는 퍼포먼스를 하며 성폭력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성폭력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 아무개 씨를 죽여 버려야 한다고 댓글을 달고서 바로 다음날에 성매매 업소에 가는 남성들,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하는 남자 상사들, 강간 포르노를 보면서 하악거리는 남성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의 ‘섹시함’에 속으로 야릇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남성들이, 없을 것 같은가? 다시 한 번 묻자면, “괴물은 누구인가?”


아이들은 공주님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동 성폭력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신체적, 사회적으로 더 약자인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더욱 더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사람들이 아동에 대한 다른 폭력보다 성폭력에 특히 더 거부감을 가지며 분노하는 이유, 그리고 아동이 아닌 경우에도 신체적으로 저항할 만한 힘이 없는 여성이나 장애인이 당한 성폭력보다 아동의 경우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 등등…….

일단, 실제 그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관계가 어떤지를 떠나서,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것만으로 우리는 더 많이 분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것을 종족을 보전하고자 하는 유전자 프로그램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근대 이후로 형성된 아동관도 한 몫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동은 교육받고 보호되어야 할 존재이며, 무력한 존재라는 아동관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늘어간다. 보호자들의 불안감을 이용하여 위치추적 서비스나 CCTV 등을 다루는 업체들은 광고를 한다.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서비스를 달고, 조금이라도 연락이 안 되거나 보호자(부모, 후견인, 교사 등)의 시야를 벗어나면 안절부절 못하는 어른들이 늘어난다. 안전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그 결과는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아이들에 대한 감시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사진설명정부에서 발벗고 나서 제공해주는 위치확인 서비스. 아동이든 장애인이든 본인의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보호자가 서류만 갖추면 신청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분노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동과 성을 연관짓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사건의 끔찍함에도 분노하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욕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해자를 ‘괴물’ 취급하고, 아동을 성과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꺼려한다. 아동은 성과 무관한 순수한 존재로 남아야 하며, ‘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 성을 얘기하기를 꺼려한 나머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다.”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

이런 태도가 아동을 성적으로 무력하고 무지한 존재로 만들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매듭을 푸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아동이 성적인 존재이자 주체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명명하고 인식할 언어와 지식을 갖지 못하기 십상이다. 조 아무개 씨가 가해자인 이번 사건에서는 상해와 폭력의 정도가 심하여 피해 아동이 자신의 피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작년에 대구의 초등학교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어떤 경우에는 성폭력의 피해/가해를 특정하기도 어려웠고 때로는 그것이 성폭력인지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측면조차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체적인 측면에서 근력으로나 지구력으로나 아이들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주의의 결과 아이들이 더욱 더 사회적인 약자로 인식되고 일방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면, 또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무지한 채로 남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아이들에 대한 범죄나 폭력, 차별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들의 삶을 완벽한 감시 하에 두고 아이들의 자유를 박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째서 아동에 대한 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피해자’라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인지 이 불합리함은 참 설명하기 힘들다.

아이들 자신을 포함하여 이 사회의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성폭력 범죄 자체를 줄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닐까? 아동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잘 대처하고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이야기하며 극복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성에 살고 있는 공주님이 아니며, 아름다운 동화 속에 사는 존재도 아니다. 아이들은 이 사회에서 당신들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사건은 어느 설명 불가능한 괴물이 우리가 지켜줘야 할 순수한 공주님을 납치한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의 현실이며, 괴물을 쓰러뜨리고 공주님을 성 안에서 보호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이는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78 호 [입력] 2009년 11월 10일 22:40:32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자세히 읽지는 못했지만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정말 그렇게 생각햐?????

    2009.11.11 18:07 [ ADDR : EDIT/ DEL : REPLY ]
    • 영혼의 존재 같은 건 믿지 않으니까 ㅋㅋㅋㅋ

      심리적이라는 건 신체적이라는 것과 분리되지 않아.

      성폭력은 신체적인 폭력이지. 언어이든 접촉이든-

      내 몸이 아니라 몸이 곧 나인 거야

      2009.11.11 20:46 신고 [ ADDR : EDIT/ DEL ]
    • 발칙

      근데 대부분의 독자들은 보통 신체적인것과 심리적인것을 분리해서 얘기하잖아...? 오해의 소지가 잇지 안을깜 ㅠㅠ

      2009.11.12 13:55 [ ADDR : EDIT/ DEL ]
    •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한다, 같은 류의 말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건, 성폭력이 구체적 성행위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영혼 같은 모호하고 낭만적인 말을 끌고 들어와서 신체적인 성행위를 은폐하려는 의도를 느끼기 때문이랄까나. 성행위와 아동을 연관짓는 걸 거부하는 것처럼. 아동에게 강제로 가해지는 구체적인 성행위로서의 성폭력을 언급하기 꺼려하는 나머지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고 한다는 느낌이야. 그 말 속에는 피해자화의 의미도 있고. (영혼이 파괴된다니!)
      그래서 정신 또한 신체의 일부이거나 정신과 신체는 분리되지 않는다는, 혹은 유물론적인 맥락에서라도, 성폭력이 신체적 폭력으로 명명되어야 한다고 생각. 언어적 폭력 같은 경우에, 우리의 언어습관상 좀 미묘한 부분이 있지만.
      (굳이 신체와 정신을 나눈다 하더라도, 성폭력이라는 행위는 사실 지극히 신체적인 행위이고, 그 결과로 정신적 피해가 수반된다고 설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애초에 이렇게 정신과 신체를 분리한 설명 방식에 오류가 생기기도 하지만;)

      2009.11.12 18:01 신고 [ ADDR : EDIT/ DEL ]
  2. 아동의 성하니까 생각난 이야기인데, 최근에 중국에서 네살짜리 아동이 자위하다가 성기가 터졌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 좀 뭐랄까, 아동에게는 금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_-

    2009.11.12 00:02 [ ADDR : EDIT/ DEL : REPLY ]
    • 자제력을 상실한 성의 추구로 인한 사고(?)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9.11.12 10:17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번 휴가때 너 가고나서 눌이랑 이 얘기 잠깐 했었는데...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에 동의
    어쨌든 폭력은 폭력일뿐 성폭력은 관념일뿐

    2009.11.13 20: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cheese

    자제력을 상실한 성의 추구로 인한 사고는 어른아이할 것 없이 일어나는 사고입니다...ㅋㅋㅋ글이 너무 재밌어요. 그렇지 않아도 나영이 사건에 대한 분노가 너무 과잉되어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명확하게 짚어주는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2009.11.16 11:57 [ ADDR : EDIT/ DEL : REPLY ]
  5. 돌풍피리

    피해자가 어떤 심리적인 피해를 입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신 혹은 영혼에 대한 피해가 아니라 그냥 신체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 아닐까요?

    그냥 신체적인 문제라면 신체적인 상흔이 없이 그냥 끝난 일이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거 아닌가요??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성인에 대한 것과는 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단순히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수준의 문제가 아닌겁니다
    성적 가치관의 되돌리기 어려운 왜곡 내지는 성에 대한 무의식적 혐오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성범죄 피해자가 커서 성범죄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순환구조는 어떻게 설명하실건지요 ^^;;;

    2010.06.19 15:04 [ ADDR : EDIT/ DEL : REPLY ]
    • 설명하자니 좀 길지도;

      일단, 저는 성폭력이 단지 신체적 폭력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언술의 맥락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그 맥락은 성폭력이 단지 외견상 신체적 상처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을 담고 있지요. 그런 주장에는 적극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어떤 접촉이든 언어이든 그것은 물질적, 신체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저는 또 심리나 정신도 신체의 한 구성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신체적'이라고 말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건데, 더 이해를 도우려면 '신체적/심리적'이라고 쓸 수도 있었겠지요?;

      전 '영혼'이랑 '심리/정신'은 좀 다른 어휘라고 생각해요. '영혼'이란 말에서 우리는 신비주의적이고 어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소중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주는 범죄라는 말을 쓸 때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는 말을 쓸 때는 분명히 뉘앙스도 의미하는 바도 다릅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든 비아동에 대한 성폭력이든,(아니 사실은 성폭력 뿐 아니라 폭력 그 자체가, 그리고더 철학적으로 확장하면 '경험' 자체가?; 이건 좀 무리수인가) 가치관의 변화나 심리적 상처의 문제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축적해온 경험과 심리적 보호막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요. 그러니까 형량의 차이나 분노의 양의 차이는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2010.06.20 14:40 신고 [ ADDR : EDIT/ DEL ]
  6. 보짱

    성폭력이 신체적 문제를 벗어난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고 했을 때, 약간 걱정되는 바는 몸을 벗어난 '정신'이나 '영혼'이 따로 존재하나? 하는 것입니다. '몸'이 곧 '나'이고, '나'는 '몸'인데, '몸'을 벗어난 다른 '이성'을 언급하면 뭔가 '몸'보다 중요한 '이성'이나 '영혼'이나 '본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이는 '몸'을 '정신'에 종속화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이럴 때 항상 '몸'은 '정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느껴지니까요.

    저는 아동 성폭력이 분명 성인 간 성폭력과 다른 맥락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도 그저 동등한 개인은 아니고 권력이 작동하는 장이지만, '성인 남성'과 '여자 어린이'의 관계는 이 권력관계를 보다 극대화시키니까요.

    다만 아동성폭력만을 부각시키는 지금의 여론은 애써 '천진난만한 아동'만을 피해자로 내세움으로써, 성폭력과 관련된 여타의 논의들을 지워버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2010.06.28 11:42 [ ADDR : EDIT/ DEL : REPLY ]
  7. 보짱

    초등학교 다니는 아동들이 1~2살 먹어서 중학생되 되면 갑자기 아저씨를 유혹하는 '영계'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초등학생 성폭력에 미친 듯이 분노하면서, 인터넷채팅으로 청소녀의 성을 구매하는 그 행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요즘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장애가 있는 여학생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들과 이번 납치사건의 피해여학생은 또래입니다. 갑자기 한쪽은 파렴치한 가해자로, 한쪽은 순진무구한 피해자로 남는 사건은 어떻게 설명 가능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은 그저 보호해야 할 '공주님', '천사들'로만 보고 싶어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순진하지도 무성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지요.

    덧글) 활발한 토론 너무 부러워요^^. 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블로그에 오셔서 댓글 좀 남겨주세요. 굽신굽신(_ _)

    2010.06.28 11:49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10. 10. 03:26

[논평]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1. 우리는, 성범죄가 특히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주는 반인권적이고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아동의 인권 보장은 사회의 중요한 의무이며, 아동의 권한 강화라는 맥락에서 아동에 대한 특별한 지지와 지원,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법률에 따른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가해지는처벌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 이루어지거나,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고개별적/개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 역시 분명히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매우중요한 기준입니다.


1. 우리는,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 역시 피해아동에 대한 심각한 반인권적 범죄라고 판단하며, 가해자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생각합니다. 더불어 아동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함께 노력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1. 동시에 우리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기관과 보수적인 언론들이, 형벌의 경중 문제만을 부각시키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문제제기되었던 성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 개혁 등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에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남성의 각종 성범죄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고 제대로 된 처벌조차이루어지지 않았던 사회적 경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개별 아동 성범죄 사건의 ‘처벌’에 대해서만 치중하는 것은 위선이라고평가합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보이는 반인권적인 인식과 행동, 정치적 의도에 대해 우려를 느낍니다.


1.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실제로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 및 교육,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정부기관이 그저 분노한 여론에 편승하여 전자발찌의무기한 착용이나 보호관찰제도의 확대, 화학적 거세 등의 자극적이고 손쉬운 ‘처벌 강화’의 방편들, 하지만 근본적이지도인권적이지도 않은 미봉책들을 꺼내어놓는 모습은 실망과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합니다.


1. 또한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려는 정부기관과 언론들이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석한 여성을 성추행했던 최연희(현 18대 국회의원, 무소속,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2심에서벌금5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함으로써 사실상 무죄를 선언했던 사법부의 판결과, 그 성추행이 술 때문이라며 술잔을 망치로 깨는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박진(현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관대했던 언론들을기억합니다. 우리는, 언뜻 엄격해보이면서도 사실 전체적으로 남성이 저지르는 성범죄에 대해 매우 관대한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아동에 대한 성범죄 역시 절대로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런 사회 속에서 피해자 아동은 성장하는 동안 점점 더 심한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현재 정부기관과 언론의 무책임함과 위선적인 모습을 확인하게됩니다.


1. 우리는, 이런 반인권적인 ‘처벌’ 중심의 논의가 일정한 정치적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부는, 몇몇 특정한불법행위에 대해서만 형벌을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집회 또는 시위, <아동> 성범죄 등에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형벌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기업이 저지르는 부당노동행위나 탈세 등의 불법행위, 고위공직자의 위법행위나 업무상 책임 등에 대해서는 법을 느슨하게 적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차별적으로 법을 이용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사회를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의도는 결국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낳게 됩니다.


1. 우리는, 성폭력의 근절이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남성 위주의 권력사회 속에서 성폭력은 곳곳에서 일어나며,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막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은 더더욱성폭력의 예방을 어렵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아동 성폭력 사건이 또 한 차례 공론화된 것이, 부디 정부기관과 언론,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성폭력의 본질과 예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9년 10월 8일


인권운동사랑방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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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꿈2009. 10. 7. 11:39


쉽게 쓰라고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다른 분들이 이 논의에 있어서 구사하는 "짐승만도 못한"이니 "베풀 인권"이라느니 "영혼"이라느니 하는 언어 자체가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고난도의 것이기에, 저도 거리낌 없이 저에게 가장 쉬운 언어를 택하여서 짧게 씁니다.



@ 인권에는 '인간'이라는 것 외엔 아무 자격도 필요없다

최근에 새로 나온 책인 『인권의 문법』(류은숙) 서문을 보면 '자연권' '시민권' '인권'을 구별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 간추려 말해서 자연권이니 시민권이니 하는 것은 그 권리의 '자격'을 따지는 속성이 있지만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 권리라는 겁니다.
인권은 풀어 쓰면 그냥 '인간의 권리'니까요. 인간이기만 하면 어떤 자격도 묻지 않고 자명하게 인정되는 것이 인권입니다.(여기에서 '자명'하다는 것은 인권의 역사성이나 사회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권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하긴, "권리"라는 발상 자체가 다분히 인조적인 건데)이니까요-. 다만 인권 자체의 논리 안에서 인권은 자명하다는 말입니다.)

* 인권의 실제적 보장은 결국 국가-사회에 의한 법이나 질서에 의한 보장이므로 결국 인권은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개념이며 시민권이다... 라는 아렌트식 논의는 그냥 넘어가구요. 이건 정말 정치학자스러운 논의니까.


그래서 인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처음 문제가 되는 건, 어쩌면 '인간인지 아닌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여성, 장애인, 흑인 등은 '인간'이 아니던 사회가 있었지요. (뭐, 이 경우엔 사실 '시민권'에 가까운 개념이지만 은유적으로 넘어가고...)
그러나 그런 자격 조건을 모두 넘어서가면서 선언된 것이 '인권'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격조건에 따른 차별들을 넘어서는 투쟁들에 정당성을 제공해온 것이 인권입니다.
(- 태아가 인간이냐, 사이보그가 인간이냐 등의, 애초에 '인간'이라는 경계 그 자체가 철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이거나 유물(唯物)적인 면에서 모호해지는 영역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요.)

누군가가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인권을 박탈한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가지고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인간이 아니네 맞네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뭔가 생물학적이고 유물(唯物)적 차원에서 인간이 아닌 경우가 아니라면요


"넌 인간인데 인간이 아냐 ㅋ"는 말이 안 되잖아요? -_-

예를 들어, 명제로 표현하면-
: 살인범은 살인을 한 사람이다.
  사람이면 인권을 가지고, 인권을 가지면 사람이다.
  살인을 하면 인권을 박탈당해야 한다.
  인권을 가지지 못하는 살인범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이건 진중권이 거창하게 비트겐슈타인까지 인용해가며 쓴 명문 중 하나인 "반대를 위한 문법적 착각"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는 논법입니다. 
"나는 당신이 남자인 것을 반대한다." 
"나는 당신이 인간인 것을 반대한다."



 만일 살인범이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법률로 살인범을 처벌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서 법률이 적용되고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는 거니까요.


애초에 누군가가 인간인 이상, 인권이 있네 없네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모순입니다.




@ 범죄자의 인권제한은, 의무를 어겼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인권이 있고 그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의 목적이다 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 등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근대 사회가 성립되면서 이루어진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물론, 어느 사회든지 범죄자들의 인권을 제한(처벌)합니다.

하지만 그 제한의 논리는 "사회의 약속인 법을 어긴 당신들은 인권이라는 약속을 누릴 수도 없다!"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최소한으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자들을 처벌한다 / 또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교화한다."입니다.

(즉 "범죄자는 인권이 없다", 가 아니라 - "범죄자도 인간이라서 기본적 인권을 누려야 하지만, 더 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최소한으로 인권을 일부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다.", 입니다. 일종의 '필요악'일까요.)


'인권'이라는 약속은 사회 구성의 가장 첫번째 원리이자 약속이고 다른 법이 만들어지는 기초입니다.
더군다나 그 '첫번째 약속'은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약속입니다. 일부 범죄자에 대해서만 '인권'을 인정하지 말자고 하는 식의 논리는 사실 사회의 기본 원리로서의 인권의 성격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처음 한 약속에 근거를 두고 두 번째, 세 번째 약속을 했는데 - 여섯 번째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처음 한 약속까지 싸그리무효가 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섯번째 약속 속에는 첫번째 약속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여섯번째 약속을 어기는 것은첫번째 약속의 일부를 무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것이 이 사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첫번째약속'인 인권의 기본 성질과 근간을 모두 무효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실... 애초에 법률이든 사회적 합의이든 - 그 약속 안에는 그 약속을 어겼을 때의 처벌까지 약속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기도 한데)

"약속을 어긴 너는 인권을 보장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그 논리의 기본 골격은, 선언으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의무가 선행한다는 식의 유치한 권리론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니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너의 권리는 없다."라는 식의 암울한 권리론 말입니다.


예, 뭐 저도 12년형이 사안의 정도에 비추어볼 때 그리 쎈 형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의 사법부가 성폭행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온 것에도 불만이 많습니다.(인권단체, 여성단체 모두가 꾸준히 지적해온 문제입니다. 술을 마셨다는 것 등을 이유로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것에 대해서도요. [일다] 취중 성폭력은 감형? 가중처벌해야)
그러나 그런 판단이 "성폭행범 새끼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건 아닙니다. 성폭력이라는 인권침해의 종류와 상해의 정도에 비해 형벌이 더 무거운 게 좀 더 적절할 것 같다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조XX 같은 놈들의 인권은 더 많이 제한받아야 한다, 거의 없을 만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죠? 하지만 거칠게 "성폭행범에게 인권은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순간, 그 말은 너무나 위험한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스팀받은 사람들에게 던질 떡밥으로 성폭행범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는 입법안이나 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한심스럽고, 예방을 위한 다른 조치들을 더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뭐, 애초에 감옥에 처박아놓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한국의 형벌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고 그 위에서 몇 년형을 때렸느냐를 논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이 있지만요.




@ 범죄는 사회적 문제 + 겸손함

인권, 이라고 하면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주장일 것 같은 생각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의외일지 모르지만,
소위 '진보적(좌파적?) 인권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인권운동 단체/활동가들은 사회주의적으로, 구조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권 자체가 굉장히 사회적, 구조적, 공동체적 논의이기야 하지만요.
 
범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범죄는 개인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성품이 원래 나빠서, 유전자가 안 좋아서, 별자리가 개떡 같아서, 무슨 공의 경계 기원각성/살인고찰 편처럼 그 사람의 '기원'에 문제가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범죄는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인권운동가들이 사형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형은 어떤 범죄를 그 범죄자 개인의 책임으로만만드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그 사람의 존재에 떠넘긴다는 거지요.
(사형이 생명권 자체를 박탈하는 국가의 살인이라거나 사형이 가지는 여러 폐해들에 대한 우려가 가장 기본적인 이유긴 합니다)


제가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말이죠...
사람들은 "내가/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라면"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피해자 측과 동일시하거나 피해자의 입장에 한 번 서보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엄청나게 많지만, "내가/당신이 가해자라면"하는 식으로 가해자와 동일시해보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자신과는 전혀 별개의 존재이고 자신은 가해자가 될 수도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오만한 근자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선가는 소수성이 있다" 운운하는 이야기들을 저는 제법 많이 들어왔는데, 그 말을 뒤집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선가는 다수성(majority, 주류성)이 있다"라고 해도 큰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성폭력 범죄자들에게 열폭하면서 그런 놈들은 인권이 없다, 처참하게 죽여야 한다, 전자팔찌를 채워야 한다, 등등의 말을 내뱉는 분들을 보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자신은 그런 범죄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자신감. 그런 게 팍팍 느껴져서요.

(어떤 범죄는 전자팔찌를 채우고 어떤 범죄는 안 채우고 이런 기준 자체가 사실 좀 모호한 일이라는 위험성을 고려하고)

첫 번째로, 병역거부를 준비하고 있어서 이미 '범죄자'가 될 채비를 하고 있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나 공무집행방해죄나 무단침입죄나 국가보안법 등으로 잡혀갈 가능성이 높은 삶을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자신감은 무리이기도 하고-

두 번째로 꼭 그런 정치범으로서가 아니라도, 저는 저 자신도 살인자, 강도, 사기꾼,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해자들을 타자화시키는 일은 잘 못하겠습니다.


범죄자 한 명에게만 열폭하는 사람들 중 몇몇 분들의 모습은 범죄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타자화되고 괴물처럼 그려진 범죄자 한 명을 사회에서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을 만족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는 '피해자화'의 논리도 들어 있지요. 피해자를 어떻게 '회복'시키고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이고 세심한 고려는 포기했으니까요. 피해자는 피해자로 남아야 하지요. '영혼의 파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저는 적어도 그런 식의 영혼이란 것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귀신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그 '영혼의 파괴'라는 비유가 심리적 상처, 트라우마에 대한 비유라면 그건 굳이 성폭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남습니다. 폭력, 집단적인 따돌림이나 괴롭힘, 방임, 사고, 그런 것들 대부분이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성폭력은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폭력입니다. 성폭력 피해는 신체적 (그리고 신체 일부로서) 심리적 피해입니다. 굳이 성폭력만을 특정해가며 '영혼의 파괴'니 운운하는 것은, '성'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곤혹스러워 하는 것과 동시에, 성폭력 피해-생존 여성들을 피해자화하려는 맥락이 읽힙니다. 그러나 많은 성폭력 피해-생존 여성들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피해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어쨌건, 요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누군가가 인간인지 아닌지를 내가 내 도덕과 가치판단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든
나는 절대로 그런 가해자/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범죄는 오직 그 이상한 몇몇 놈들의 문제라는, 나는 책임이 없다는 의식이든





0.
가해자가 인권이 있냐 없냐 같은 류의 얼토당토 않은 '문법적 착각'스런 논의에 빠져 있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아동성폭력을 포함하여 모든 성폭력의 예방, 그리고 그 성폭력에 대한 적절한 사후조치(처벌을 포함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영혼에 상처가 어쩌구 하며 이야기하는 분들 중에 체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사소하고 짓궂은 궁금증을 남기고서.
아동인권-여성인권 보장, 아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성적 실천 / 섹슈얼리티를 포함하여)의 신장이라는 좀 더 장기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아서.





p.s. 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라도 가해자에게 인권이 있다, 범죄자도 인간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저는 아마 그럴 거라고 답할 텐데, 어떻게 답하든지 '위선자'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놈' 아니면 '냉혈한' 아니면 '탁상공론'이 될 그런 류의 질문이긴 하지만, 어쨌건 그렇게 답할 겁니다.

p.s.2. 더 추가적인 보충 내용들은 아래 링크한 글들을 읽어보시면 좀 더 명확해지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참고 문헌 -------------------------------------------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 김슷캇 (사회당 덕후위원회) 님 블로그

" 이들은 인권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무시한 채 마치 '피해자 인권'과 '가해자 인권'이 따로 존재하는 것 처럼대립화 시키고, '가해자 인권'을 박탈할 수록 피해자 인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인권 박탈을주장하는 이유로 피해자의 참혹함을 '어떠한 연결고리의 설명 없이' 근거로 들면서, 실질적으로는 스스로 피해자 인권도 침해한다."



"신속하고 통렬한 복수? 부질없다" - 레디앙 신민영님 글

"하지만. ‘12년형 사건’의 후폭풍은 어떠한가? 신속한 전개, 통렬한 복수만을 생각할 뿐. 챙겨야할 디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사건이 터지자 마자 나온 한나라당의 ‘유기징역 상한 폐지’ 주장. 그리고 ‘응징하고 싶지만, 화학적 거세는 너무하다’라는 인터뷰를 한 진중권씨의 글에 ‘찢어죽인다는 둥’ ‘악마 조가놈을 사형 시키자는 둥’ ‘진중권 딸도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는 둥 리플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이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세심한 고려는 온데간데 없고, 강력한 처벌을 해야한다는 주장만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고, 한 술 더떠 유화적인 의견을 내놓은 진중권 씨에게 때려죽일 듯 달려들고 있다.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라면, 다양한 논점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나와야 할 텐데 이러한 논의가 원천봉쇄되고 있는 형국이다."




취중 성폭력은 감형? 가중처벌해야 - 일다 조이여울님 기사

"성폭력 양형 실태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가 학생인 경우보다 유흥업소 주인이나 종사자인 경우 집행유예율이 높았고, 범행 이전에 가해자와 성관계가 있었던 경우 선고형량이 낮아졌다. 피해자가 음주상태였던 경우와 사건 전에 가해자와 함께 음주, 유흥 등을 한 경우에도 모두 집행유예 비율이 높고 선고형량이 낮아졌다.
 이경환 군법무관은 이 같은 법원의 판단이 ‘피해자 유발설’과 같은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편견을 암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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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다

    헉쓰...

    2009.10.07 14:49 [ ADDR : EDIT/ DEL : REPLY ]
  2. 리잔느

    난 논리로 시작해서 감정으로 끝나는 감정적인 글을 썼긴 썼지만,
    음 =ㅅ= 도의적으로 인간이 할 짓을 한 게 아니니 인간이 아니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원칙으로 돌아가면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이지.

    난 이런 사람은 무조건 죽여야한다! 이런 입장은 아니고
    인간은 변화할 여지가 있으니까 죽여서는 안된다 이런 입장이지.

    근데 양형 기준을 올려버리면... 오히려 범죄로 인정되는 범위를 상당히 좁게 해석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라구.

    2009.10.07 18:47 [ ADDR : EDIT/ DEL : REPLY ]
    • 변화할 여지나 변화가능성과는 별로 상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해.
      -- 그리고 양형 자체는 현재의 양형 기준 안에서도 충분히 지금보단 높게 때릴 수 있을걸. 법원이 그렇게 안하는 거지.

      2009.10.08 12:21 신고 [ ADDR : EDIT/ DEL ]
    • 공현님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 체계의 죄형법정주의 안에서는,
      지금의 양형기준이 거의 상한선에 다다렀다 봐도 될 겁니다. 결국 양형들간의 체계균형성에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고, 동종범죄중 하위범죄에 대한 양형마저 강화시킬 우려도 있죠. 관련 법리에 대한 꽤 심도 있는 논의로는, 노정태의http://basil83.egloos.com/ (좋은 법치주의, 강한 법치주의) 참조하시면 될 듯.

      2009.10.08 12:41 [ ADDR : EDIT/ DEL ]
    • 노정태님의 그 글은 예전에 읽어보았습니다 ^^; 많은 부분 동의했었지요-

      2009.10.08 12:52 신고 [ ADDR : EDIT/ DEL ]
  3. 끄덕끄덕 좋은글감사

    2009.10.07 23:28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오..

    이런 논의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누군가 꼭 이런 포스팅을 해주길 바랬건만..
    용감하게도 해주셨군요 +_+
    근데 문제는, 이런 내용을 어떻게 공감시키느냔데.. ;;;; 참 많은 '설득'과 욕질을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할 듯 싶습니다.

    2009.10.08 12:00 [ ADDR : EDIT/ DEL : REPLY ]
  5. 공현님

    도 혹시 곰곰님과 친분 있는 분이신가요? 하동기씨던가..그리고 곰곰님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시는 거 보고 참 용자시다, 했는 데, 님역시 멋진 저항을 하시려 하는 군요. 님 혹시 아나키스트? ㅎㅎ 어찌됐건 전 아예 개인적으로, 보다 급진적으로, 형벌 제도 자체에 대한 철학적, 실효적 의문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요. 저의 이런 견해에 대해서 강한 충격을 준 저서 한권, 님께도 추천해드리렵니다.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멋진 성찰을 가득그득 가지고 있따는..책이름은 "사형제 부활이냐 형벌제도 폐지냐" 네덜란드 법무부 장관 출신인 루크 훌스만의 저서구요,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장 진보적인 법리를 가진 곳이 네덜란드기도 하지요. 꼭 한번 읽어보셈~ +_+ (나같이 인권 인권 주장하다, 막상 군대에 가고 나서 계급의 파쇼가 되버리는 우를 범하지 마셈~)

    2009.10.08 12:38 [ ADDR : EDIT/ DEL : REPLY ]
    • 딱히 친분이 있지는 않습니다. '전쟁없는 세상' 소식지 등을 통해서 소식은 계속 받고 있지만요... 곧 얼굴 뵐 날이 있겠죠?
      사상적으로 분류하면 아나키스트나 사회주의자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그런 맥락에서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서 ㅎㅎ;
      저도 형벌제도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고 감옥인권 관련해서 활동했던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논의들은 접해보기는 했지만, 일단 이 사건에 있어서 형벌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를 건드리는 건 너무 커질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쿨럭;
      추천해주신 책은 정가 15000원이던데 돈이 좀 생기면 사서 볼게요 ^^; 아무래도 두께가 꽤 되는 게 사서 봐야 할 법 싶군요.

      2009.10.08 13:26 신고 [ ADDR : EDIT/ DEL ]
  6.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 김슷캇 (사회당 덕후위원회) 님 블로그] 클릭하면 우석훈 나옴. 뭔가 좋다능. 그치만 너무 깊게 생각해버리면 우석훈 인권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2009.10.08 20:35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