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09.13 15:02



http://cafe.naver.com/asunaro/50268



[성명] 우리는 두렵다, 그래서 말한다.
- 국가정보원 발, 우리 사회에 퍼져가는 ‘종북몰이’ 탄압에 대해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시절이 수상하다. 국가정보원은 자신들이 선거 때 온라인에서 여론 조작을 벌여온 것이 드러나자 ‘종북세력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종북세력’을 막기 위해서란 명분만 있으면 법이 정한 권한을 벗어나도 된다는 생각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던 국가정보원은 지난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 등이 “내란예비음모”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고 통합진보당 당원들 등을 체포했다. 그 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국회에서 거의 광속(狂速)으로 통과되었고, 이석기 의원은 구속된 상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이후다. 극우언론들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도 ‘종북’일 수 있다고 몰아간다. 극우단체와 반공주의자들은 폭력과 협박까지 감행한다. 입건된 이들과 관련된 사람․단체에 대해서는 각종의 혐오발언, 위협, 차별 등이 가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강의를 한 사람이 신고당한 사례도 있다. 청소년 시국선언을 한 단체가 운영상 비청소년 개입 등 문제로 갈등을 빚자, 극우언론은 ‘청소년은 정치에 물들어선 안 된다’라는 논조를 깔고서 이 사건을 ‘<이석기 키즈>를 만들기 위해 종북세력이 청소년에게 접근하여 이용하려 한 것’이라고 갖다 붙인다. 심지어 충북교총은 학생인권조례도 내란예비음모와 연관된 것 아니냐며, 조례 초안을 작성한 사람을 수사하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혹시 너도 종북 아니냐, 거기 연관된 것 아니냐고. 그 중에는 두려움 때문에 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혹시나 너나 나도 ‘종북’으로 낙인찍히고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우리는 두렵다


  그렇다. 우리는 두렵다. 이것이 누구나 ‘종북 아님’,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 체제에 동의함’을 인증해야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노골적인 폭력과 차별의 시작일까 두렵다. 극우언론 등은, 저들은 이미 유죄이고 저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으면 너도 유죄가 될 것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우리 사회 전체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변화를 상상하고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리고, 체제를 어떤 식으로든 바꾸려는 목소리는 작아지게 하고 있다.

  청소년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청소년들의 주체성이나 정치적 권리 문제는 신경도 안 쓰면서 ‘종북세력’들이 <이석기 키즈>를 만들려 한다는 언론들을 보라. 학생인권조례가 내란과 연관되어 있는지 수사하라고 하는 교사단체의 성명을 보라.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이 불온세력에게 조종당한 거라고 말하는 꼰대들을 보라. 우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청소년에게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나이에 따른 위계와 차별, 나이주의를 비판한다.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고 학생들을 죽음과 불행으로 내모는 교육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청소년을 억압하는 국가주의․자본주의 등을 반대하고 청소년의 해방과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우리는, 충분히 불온하고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체제 전복 세력이나 ‘종북세력’으로 몰릴 수 있고 처벌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 때문에 우리의 활동을 망설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우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

  1995년, 청소년단체 ‘샘’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도 공안당국 등은 ‘샘’이 이적단체를 결성했고 체제를 전복시키려고 했다고 했다. 결국 이적단체 결성은 근거가 없음이 드러났고, 민족문화의 일환으로 택견을 배운 것이 무장세력 양성이었다고 했던 것 등 공안당국의 개드립은 웃음거리로 남았다. 그렇지만 ‘샘’ 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적 조항인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당시의 청소년단체들은 탄압에 시달려야만 했다. 지금은 과연 다를 것인가? 우리 아수나로도 뚜렷한 근거 없이 언론과 온라인 등에서 ‘전교조가 길러낸 홍위병’이라는 등의 비난을 받아왔다.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 있다는 이상한 음모론도 들어봤다. 근거 없는 비난과 억측에 불과해서 무시했던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 실체를 가질지도 모른다. 정부와 극우언론 등의 합작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그것을 가능케 할 것 같아 보인다. 그것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두려움을 알고서도 맞서 싸우는 것이 용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두려움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지 말라고,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려고 한다.

  만약 정말로 이석기 의원 등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거나 전쟁을 대비한 무력 활동을 논했다면, 국회의원으로서 용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역시 평화를 지향하며 보편적 인권을 지지하기에,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나 남북한의 군사주의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또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만약 인권 침해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뭇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는 사람들이 낙선운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표현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인권 침해를 옹호하고 군사주의를 선동하는 다른 수많은 정치인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겠지만 말이다.

  정말로 내란을 예비했다면, 이는 폭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므로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내란예비음모죄로 입건된 사람들의 유무죄만 논할 때는 말이다. 그 문제에서는 섣부른 피의사실 공표나 적법절차의 문제 같은 게 중요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내란예비음모죄라는 무리한 죄명을 들이댄 것은 아닌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 등 반인권적 독소 조항은 어떻게 폐지할지, 그런 것들도 이야깃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시작되어 온 사회로 퍼져 나가고 있는 흐름은, 이석기 의원 등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입장이나 군사주의적 사고방식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시작했지만, 국가정보원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사회 전체의 경직성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며 체제를 무조건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빨갱이 사냥’의 문제이다. 주류와 다른 사상을 가지고 다른 주장을 하고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혐오·배제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가고 있다.

  입건된 사람들이 유죄냐 무죄냐와 무관하게, 그들과 생각이 같으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상과 정치를 위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말한다. 다른 존재, 위험한 존재라고 섣불리 낙인을 찍은 뒤 돌을 던져도 된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말한다. 정부와 국가정보원은 ‘종북’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감시하고 탄압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공작을 중단하라. 극우언론․단체 등은 ‘종북’몰이와 낙인찍기, 혐오 폭력과 차별을 멈춰라. 청소년인권 등 사회 전영역에 반공주의와 탄압의 잣대를 들이대는 짓을 그만둬라. 청소년을 포함해 모두에게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자유, 변화를 위해 상상하고 활동할 자유를 보장하라!



2013년 9월 13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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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08.27 14:09


http://withoutwar.tistory.com/57



 병역거부자인 나는 양심수인가


1.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소식지를 읽다가, 일본대사관에 트럭을 돌진시켜 재물손괴죄 혐의로 구속재판 중이신 분이 양심수 목록에 추가된 것을 발견했다. 그분은 어느 일본사람의 '위안부 소녀상 말뚝테러'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그랬다고 한다. (그 다음번 소식지에선 양심수 목록에 없던걸보니, 아마 재판에서 실형선고를 안받으셨나보다.) 나는 그 소식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이분은 '양심수'가 맞는걸까?" 동시에,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수감이 될 때부터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거리도 같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양심수인가? 양심수란 정확히 무엇인가?"

'양심수'란 단어를 곧이곧대로 풀이해본다면, 대강 마음 속의 '양심'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양심' 때문에"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마음 속의 양심, 신념, 사상, 의견, 신앙 등을 이유로, 즉 어떤 생각이나 믿음을 품고 있다는걸 이유로 수감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을 쓰거나 말하거나 표현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것도 '양심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뭔가 겉으로 표현한게 없이 마음 속의 것을 알아내긴 어려우므로, 대체로 양심수들은 이런 표현의 자유 문제가 연관되어 있곤 하다. 여기에서 좀더 넓혀본다면, 그런 생각이나 믿음에 따라 어떤 행위,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도 어쩌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 상황에서 '양심수' 개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예컨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적표현물 소지'나 '찬양, 고무' 같은 죄명으로 처벌받는 사람들일듯 싶다. '비전향 장기수' 같은 경우도, 처음에 갇힌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 속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려나지 못하고 계속 갇혀있다면 '양심수'에 해당될테고.

그런데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에 따라 한 활동 때문에 수감된 경우를 '양심수'에 포함시키는 것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한 예로, 얼마전 노르웨이에서 자신의 극우적 신념에 따라 사람들을 죽인 사람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 역시 자기 마음 속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고 그 때문에 수감된 것이니까, '양심수'라고 불러야할까? 같은 질문이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신념에 따라 테러를 저지른 사람, 학살이나 전쟁을 저지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적합한 대답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 때문에 처벌받은게 아니라, 살인, 학살, 전쟁 등의 행위 때문에 처벌받은 것이다. 즉,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양심'과 '행위'를 구분하여 다룰 수 있다.

트럭을 일본대사관에 돌진시킨 그분에게도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분의 의견, 신념과 관계없이 오직 그 행위만을 이유로 처벌을 받는다면 말이다. 사실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에서 싣는 '양심수'들의 목록을 보면 이게 '양심수'가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사례들이 간혹 있다. '양심수'라는 개념이 그저 "나(우리)는 그 사람의 수감에 부당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라는 이야기를 포장하는 꾸밈말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양심수'가 아니란 말이 그 사람의 수감이 꼭 정당하다느 뜻도 아닐 것이고. 그러니 '양심수'의 개념은 좀 더 정확하게 쓰여야하고, 또 다른 개념들의 발명도 필요해보인다. 자본친화적 법 적용 때문에 수감된 노동자, 철거민 등을 '계급수'라고 한다거나? (물론, 관련해서 '구속노동자'나 '공안수' 등 여러 용어가 있긴 하다)

그리고 나는, 나와 같은 병역거부자 역시 과연 양심수가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양심, 신념 때문에 갇혀있는 것인가? 국가는 병역거부자들의 양심, 신념, 신앙을 처벌하는 것인가? 내 생각엔(적어도 최근엔) 국가가 병역거부자들을 입대 영장을 받고도 입대하지 않았다는 '행위'만 보고 처벌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병역거부자들의 형량이 1년6월로 줄어든 최근 몇년은 말이다. 탈영이든 항명이든 입영기피이든 다른 '병역법 위반'들도 큰 차이가 나지않는 형벌을 받곤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나는 나를 재판한 사법부든 형을 집행한 국가든 내 생각이나 주장에는 아주 무관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나(우리?)의 신념이나 주장의 내용에 무관심하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양심수'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는가?



2.
'양심수', '양심의 자유' 등이 부각되면, 거기에는 볼테르의 저 유명한 논법이 따라붙곤 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다." 여기서 "동의하지 않는다"란 말의 의미는 상관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리라.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에 관해 형성되어있는 비교적 우호적인 편인 이야기들 중에도 그런 종류의 것이 많다. 병역거부자들은 어차피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굽하지 않고 군인이 되기를 거부할 것이므로, 그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 처벌하기보다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 역시 그 중 하나의 변형 논리이다. 병역거부자들의 신앙, 신념에 동의하진 않지만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나은 길을 찾자는 식의 이야기도 그렇고. (이런 논법의 배경엔 한국의 공고한 군사주의와 병역거부자의 수적 다수가 '종교인'이라는 현실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처럼 사람의 신앙, 신념 등을 국가가 강제로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인권의식은 크게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런 논법이 껄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정치적 병역거부자', '정치적 양심수'에 속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상당수의 정치적 양심수들은 자신이 자유를 침해당해 갇혀있다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탄압당하면서도 생각하고 말하려했던 그 내용 역시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사람들이 '부당한 수감'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수감된 연유, 자신의 주장이나 활동 등에 관심을 가져주길 원할 수도 있다. 수감 사실이 앞에 오고 그들의 '양심'의 내용은 뒤로, 괄호 쳐진 채 판단 밖으로 밀려난다면 그게 꼭 바람직한걸까?

'양심'이라는 개념은 원래 이런 문제를 초래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고유한 '양심'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공유되기도 어렵단 점에서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니 '정치적 양심수'란 말은 이미 모순을 품고있다.

한나 아렌트는 논문 <시민불복종>에서 이런 '양심'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양심은 비정치적"이며, "개인의 자아와 그것의 고결함을 염려"하지, "잘못이 범해지는 세계나 그것이 그 세계의 향후 진로에 대해 갖는 결과에 주목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자기희생적 요소'가 '강렬한 관심'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진지함 그리고 법에 대한 충실함'을 나타내는 최상의 증거라는 점은 대단히 불행한 것이다. 왜냐하면 외골수적인 광신은 보통 미치광이의 표지이며, 어떤 경우라도 그것은 문제의 논점에 대한 합리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위기>,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한길사)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 이야기를 그저 '존중해야할 고유 불변의 양심'이 아니라 대화해볼만한 정치적 관점, 발언으로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그런 생각을 할때면 나는 '양심수'로 분류되기보다는 '평화수감자', 차라리 '정치범'으로 불리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3.
이런 논의는 실은 별로 새로운게 없는 것이라서, 병역거부-평화운동에서는 진작부터 '개인의 인권'과 '반군사주의, 평화'운동아리는 서로 긴장관계가 있는 두 축으로 병역거부운동을 분석해왔다. 한편으로 나는, 병역거부운동과 인권의 언어가 '양심의 자유' 말고 다른 만남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다.

병역거부가 국제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양심의 자유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결국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로 알려진 바이다. 유럽지역, 미국 지역 등에서 '종교적 양심'을 앞세운 병역거부가 먼저 등장했고, 그러한 종교적 전통이 이어지고 확산되면서 비종교적(정치적) 병역거부가 그 기반 위에서 나탄ㅆ던 것이다. 출발부터 종교적 신앙적 성격이 있었으니 '양심의 자유'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었고, 때문에 지금도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의 대표적 의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역사적 맥락 말고도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병역거부가 중요한 인권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이나, 병역거부가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속한다는 해석 등은 모두 병역거부에 대한, 정확히는 군대, 전쟁에 대한 가치판단을 깔고있는 것은 아닐까? 요컨대 사람을 살상하는 군대, 전쟁의 성격상 그것들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에 일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만하다는 공감대가, 병역거부를 인권의 언어로 옹호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양심의 자유'가 '양심'의 내용은 따지지 않는다는 전통적 설명과는 안맞겠지만, 그런 공감대가 없었다면 과연 병역거부가 인권의 대표적 의제이자 본질적 내용으로 입주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졌듯이, 인권은 중립적인 체계가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라는 친근한, 편향적 체계이고 언어이다. 역사 속의 인권 구상들 중에는 상비군 또는 국군의 폐지, 축소를 담고있는 것들도 있지 않았는가? 병역거부자가 '양심수'가 아니라고 해도 병역거부운동이 인권과 만나는 다른 조합들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여하간 병역거부운동 역시 '양심수' 너머에서 계속 나아갈 것이고, 병역거부자들 각자의 말들도 운동을 통해 계속 만들어지고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12. 10. 17.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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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중일 때 써서, 병역거부자 팀 블로그에 실렸던 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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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1.30 14:43


<병역거부소견서>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한다는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


  11월 18일, 할아버지 병환 등 때문에 대구에 있는 와중에, 수원에 제가 사는 집에 징집영장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19일에 대구에 온 애인이 영장을 전해줬습니다. 11월 29일이 입영일이었지만, 입영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병역거부를 한 것이지요. 병역거부를 한 이유, 예 소위 '소견서'를 길게 쓰고 싶진 않습니다.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고, 그간 제가 너무 많은 말로 사람들을 속여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속여 온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지만, 저 자신이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슬슬 지쳤거든요.

  제가 대체 언제부터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국가주의․전체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열다섯살 즈음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옷을 강제로 입히고, 같은 머리모양을 강요하고, 개인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생활에서부터 문제의식은 시작됐습니다. "사회(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회(국가)가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필요최소한의 것들뿐이다. 내 자발성과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희생이나 애국을 강요하는 것은 이상하다.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싹트면서, 이미 "군대"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박노자씨의 책 등을 통해서 고등학교 때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하던 고3 때, 우연히 오정록씨의 병역거부소견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견서의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그 소견서가 뭐 특별히 미문으로 되어 있거나 한 건 아니었을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명료하게 키워나가던 시기에 만난, 생생한 병역거부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존재에 대해 안 뒤로,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병역거부라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그 선택지는 어느 순간 저에게 당연한 것, 징병검사에서 면제라도 받지 않는 이상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자리 잡았습니다.(그리고 저는 징병검사에서 1급을 받아버렸지요.) 병역특례나 해외봉사 같은 여러 선택지들을 애써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런 많은 '대체복무'들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 나름의 특별한 기능이나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 뒤에는 마음이 멀어졌습니다.

  저에게 병역거부는 단순히 윤리적 결단은 아닙니다. 저는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던 이래로 항상 저를 활동가로 생각해왔습니다. 활동가란 단지 개인의 윤리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 정치적인 실천을 하는 사람이지요. 병역거부 역시, 뭐 그걸 비록 청소년인권운동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의 실천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사회의 병역거부자 기록에 숫자 하나를 더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전쟁 훈련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수감됨으로써, 개인의 인권을 다양성을 더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우리 사회가 평화에 가까워지고 인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일에 코딱지만큼의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제가 병역거부자라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군대와 군사주의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존재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병역거부 소식을 듣고 병역거부소견서를 읽고 마음이 움직였듯이, 저의 실천이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요.
  뭐, 군대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군대에 가기 싫은데 군대를 가야만 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안 가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실 군대에 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들, 적지 않을 테지요. 그런 분들에게도 저의, 그리고 우리들의 병역거부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에 닥치고 보니, 병역거부는 제 삶에서는 제가 사회적 소수자가 되는 하나의 선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앞으로 제 삶의 어떤 가능성들은 제한하고, 어떤 가능성들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선택이 되겠지요.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후회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병역거부는 제가 바라는 제 모습대로 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십년 이십년 삼십년 후에, 군대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어떻게 했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면 역시 병역거부가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군대에 복무하고 제대를 해서 살아가는 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춰봤습니다. 제가 처음 만났던 병역거부소견서, 오정록씨의 병역거부소견서에서 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영영장보다 병역거부를 먼저 만났기 때문입니다."



2011년 11월 30일







병역거부소견서도 '초안'이라고 다는 이 성실함(???)
좀 더 다듬어보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 쯤 보내야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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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빠

    군필자입니다. 님의 병역거부 찬성합니다.

    2011.11.30 22:27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는 공현 님의,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사람이 권리 없는 의무를 강요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게 지금이니까요. 또한 군대의 체계 자체도 계급이라는 비인간성을 채택하고 있으니, 저 또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으로서 치가 떨립니다.

    그러나 북한과 관련된 특수한 안보상황에서 전체주의가 징병제의 이유가 될까요? 정말 모병제로 바뀔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한국인지, 공현 님은 충분한 조사를 해보셨는가요. 그리고 만일 징병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왜 남성만 권리 없는 의무를 강요받아서 징병되는 여성상위사회에 여성부가 존재하는 걸까요.

    2012.01.26 16:41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모병제를 주장했나요? ^^;;; 모병제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저는 꼭 모병제가 정답이란 생각도 하진 않습니다. 모병제도 모병제 나름의 폐단이 있지요.
      저는 '지금 당장' 군대의 폐지 같은 걸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군대가 폐지되거나, 아님 적어도 군비축소를 통한 평화 증대를 위한 정부나 사회전반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가자고 제안하는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제 병역거부인 것이지요.


      추신 : 군대에 갔다 오는 것이 과연 '희생'이고, 남성만 징병되는 것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http://hook.hani.co.kr/archives/38065 이런 글이나 군사주의 사회 문제 등에 대한 관련 책, 논문 등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2012.02.08 17:42 신고 [ ADDR : EDIT/ DEL ]
    • 추신으로 일러주신 글을 읽고 답글 남깁니다. 글에서 말한 보상은 법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군필자 모두가 가지는 '권리'가 아니므로, 군 복무가 '희생'이 아니라는 말에 절대 반대합니다. 저부터도 그런 주관적인 보상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성만 징병되어 갖게 된 비참함이 만드는 사회문제에는 동의합니다. 그래서 여성, 장애인도 병역과 관련된 의무를 다해야 하며, 그들에게 의무 없는 권리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공현 님 주위엔 양성평등을 위해, 군면제자도 병역관련의무를 지니도록 실천하는 여성이나 장애인이 있나요? 제가 언제나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할 수 있다면, 저도 함께 돕고 싶습니다.

      한 때, 공현 님과 다른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채식인(菜食人)으로서, 채식인의 권리를 보장해주지도 않으면서 저에게 감히 강제로 의무만 주는 국방부와 정부가 괘씸했어요.
      사람이 짐승이나 병균으로부터 편하게 살려면 강해져야 하듯이, 나라가 안팎으로 안전하기 위해, 특히 한국은, 군대가 필요하므로 꾹 참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었으나, 많은 것을 잃고 위에서 말한 비참함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공현 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2012.04.25 00:38 [ ADDR : EDIT/ DEL ]
  3. 그렇다면

    그렇다면 지뢰제거에 투입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군사훈련? 필요없습니다 캄보디아나 예멘 같은 곳에서 대한민국 국격도 높이고 대체복무도 하고 그토록 원하는 무기를 없애는 일이니 일석삼조 아닙니까? 뭐 굳이 해외로 갈 필요도 없이 민통선내등 지뢰제거가 필요한 곳은 휴전선 곳곳에 널려있으니깐요

    2012.02.11 14:56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뢰제거에 투입을 해준다면 뭐 그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만 ^^;
      "그렇다면"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시든 간에, 현재 한국에는 그런 식의 군사훈련 없이 지뢰제거에 투입하는 대체복무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서 말이죠.

      2012.02.14 18:53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02.18 16:59

[ 청소년단체 공동 성명 ]

최대한 제대로 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내놓아야 한다


  설 연휴 직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자문위원회는 최종안을 김상곤 교육감에게 제출했다. 자문위원회에서 제출한 최종안을 살펴보면, 초안에 비해 더 꼼꼼하게 세부적인 보강과 수정을 가한 것을 알 수 있는 동시에, 논란이 된 조항 중 사상․양심의 자유(16조)와 집회․결사의 자유(17조)에 관련하여 이를 유지한 A안과 삭제한 B안을 함께 제출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자문위원회는 최종안에서 두 안을 제출함으로써 사상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포함시킬지 말지를 경기도교육청과 김상곤 교육감에게 위임한 것이다.

  지난 12월 발표되었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의 내용은 학생들이 그동안 제기해온 인간으로서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며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언론에서나 공청회에서나 색깔론과 무책임한 비난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가지 의미로 안타깝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학생들의 인격과 목소리를 무시하는 모습과 인권에 무지한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교육 주체인 학생들을 무시한 교육을 해오고 받아왔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실로 그 사람들에게 인권교육 등 학생들에 대한 무시와 편견을 교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분명히 해두자.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은 모두 유엔아동권리협약에 확실하게 명시된 권리들이다. 이런 내용들은 학생인권에서 부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 이런 권리들을 놓고 좌파의 음모라며 페인트칠에 여념이 없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며, 자문위원회가 이 조항들을 뺄 수도 있는 조항인 것처럼 두 가지 안을 제출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혹시라도 학생들이 미성숙한 존재이며 사상․양심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 등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는 편견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그 정당성을 위해서나 실질적인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서나 최대한 제대로 된 내용으로 제정되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경기도 교육청이 집회․결사의 자유와 사상․양심의 자유를 조례에서 삭제하는 것은, 명시적인 인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며 동시에 학생들이 인권의 주체이며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비춰질 수 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 추진 자체의 힘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찝찝한 구석 없이 학생들이 인권의 주체임을 확인하고 당연한 인권을 당연히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주장하는 바이다.

  지금 학생인권조례안을 손에 들고 있는 김상곤 교육감과 경기도 교육청은, 최대한 학생들을 존중하고 학생인권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못 알아들을까봐 쉽게 말해주면, 안 그래도 한계가 좀 있는 학생인권조례안인데 사상․양심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뺀 후퇴한 안을 택하지 말고 인권의 원칙에서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안을 채택하여 힘 있게 추진하라는 소리다. 이는 이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전국적인 전범이 될 것임을 생각해서라도 중요한 일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다소 한계가 있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학생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는 정책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학생인권조례는 최대한 제대로 된 내용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최대한 제대로 된 내용으로 통과되어야 한다. 만일 이를 교육청이든 교육감이든 교육위원회이든 도의회이든 부당한 편견이나 편먹기 논리로 깎아내고 무너뜨린다면, 우리를 포함하여 학생들은 자신들보다도 더 미성숙하고 인권의식 없는 그 사람들의 행태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2월 18일

교육공동체 나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경기지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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