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0. 10. 13. 23:10

[페미니즘인(in)걸] ‘여성+청소년=여성청소년’이란 공식을 넘어서자

복합차별에 대해 아시는지?

발새


사실 페인걸은 매번 복합차별을 다루었었다. 여성과 청소년이라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한번 제대로 다뤄보자는 취지로, 이번 페인걸 주제, 복합차별이다.

지하철 난투극

60이 넘은 여성과 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둘이서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배경이 지하철이라 “지하철 난투극”이란 이름이 붙었다. 처음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는 ‘어린 것이 싸가지 없다’던 네티즌들은 나중에 그 여성청소년이 자신이 실수한 것에 대해 거듭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여성이 폭언을 한 상황을 듣고 여중생 vs 할머니의 싸움에서 여중생 편을 들었다. 싸움의 발발은 그 여성청소년이 신발의 흙을 실수로 옆의 그 사람의 옷에 묻힌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한 가지 조건을 비틀어 보자. 실수로 옷에 흙을 묻힌 사람이 여성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남성 청소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조건에서도 그 사람은 폭언을 했고 몸싸움이 일어났을까? 영상 속의 사람은 여성과 청소년이라는 두 가지 약자성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과 청소년이라는 틀을 각각 들이대면 보이지 않던 이 상황은 여성-청소년이라는 틀 안에서 제대로 보여 진다. 이렇게 두 가지의 복합된 차별은 합집합이라기 보단 교집합의 문제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청소년 인권 운동과 여성 운동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여성 청소년이 겪는 문제는 여성운동과 청소년 운동이라는 단일한 틀로 잘 담아 지지 않는다. 청소년 인권 운동의 내부에서도 여성 청소년들은 종종 소외된다. 청소년 인권 운동의 중요 의제인 두발이나 체벌 등은 여성청소년보다는 남성 청소년에게 더 압박스러운 것들이다. 반면 여성 청소년에게 예민한 사안인 외박이나 섹스, 임신 등은 어느새 뒤로 밀려난다.

여성운동 속의 여성 청소년들의 존재는 더욱 미미하다. 결혼, 출산, 취업 등 여성 운동에서 주목해온 의제는 주로 성인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번 더 여성청소년들이 복합차별의 대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청소년운동+여성운동=여성청소년운동’이란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차별은 여성 청소년 고유의 경험이다.

청소년과 여성의 사이에서

너희는 안 꾸며도 예쁜 나이다. 화장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하렴.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교사들한테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청소년기가 안 꾸며도 예쁜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에 여드름 나고 한창 살찌는 신체 나인데 말이다. 이런 어조는 여성청소년에게 ‘여성’보다 ‘청소년’이 되라는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애나 성에는 관심을 갖지 말고 외모를 치장하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순종적인 청소년 말이다.

하지만 이런 교사들에게서 조금 시선을 돌려보면 어떤가. 소녀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노골적으로 판매하는 대중매체, 외모로 서열을 매기곤 하는 또래 여자 친구들. 여성 청소년들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청소년으로서의 이미지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 청소년들은 청소년은 물론 ‘외모에 치장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존재하기를 요구받는다.



여성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이 두 가지 이미지는 몹시 상반되는 것이라 양쪽의 장단을 맞추기가 힘겹다. 아침 등교 시간에는 학생부의 눈을 피해 긴 치마를 입었다가, 학교에 오면 다시 바느질을 해서 짧은 미니스커트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공부만 하던 모범생들이라도 수학여행을 갈 때면 탱크 탑에 미니스커트를 입는 센스도 있어야 한다. 이 둘 중 한 가지라도 놓치는 순간 공부밖에 모르는 찌질이와 생각 없이 노는 날라리 중 하나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위 사진:여러번 바느질한 교복치마


언어를 잃어버리다

나도 청소년기를 복합차별의 대상인 여성 청소년으로서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에 담고 싶은 나의 차별 경험담이 없었다. 나의 외모는 지금이나 그때나 성별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다닐 때 난 철저하게 청‘소년’이었던 것 같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난 차별받을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차별에 대한 이렇다 할 기억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청소년기에 차별당한 일이 없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사건들을 언어로 바꿔 기억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다. 경험하는 모든 일은 적절한 언어가 있어야 제대로 기억된다. 감정의 결을 표현하는 데도 사랑, 우정, 동경 등 많은 단어가 동원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단어가 없다면 감정을 언어로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나는 청소년기에 내가 당한 차별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만나지 못했고 나의 경험들은 반편이가 되어 여성이나 청소년으로서 겪은 일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큼직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라도 있었으면 그 일을 다시 복합차별을 관점에서 재구성해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복합차별이란 새로운 단어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경험을 기억으로 바꾸는 길목에서 옳은 방향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교실 곳곳에서 일어나는 복합차별은 복합차별이라는 단어를 만나지 못한 체 당사자들의 언어 뒤로 숨어버리고 있다.

약자들은 자신을 설명할 단어를 잃어버린다고 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그 말이 참 실감난다.
덧붙이는 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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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22 호 [기사입력] 2010년 10월 12일 22:48:4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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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8. 4. 21:16

[페미니즘인(in)걸] 납량특집 -공포영화

그 영화가 무서웠던 더 무서운 이유

발새


이번 페인 걸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한 납량특집, 공포영화 속의 여성청소년들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장르에 비해 공포물은 유독 ‘학교’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10년 째 장수중인 <여고괴담>시리즈, 최근에 속편이 개봉한 <고사>시리즈 등이 모두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입시위주로 모든 학생들을 경쟁자·적으로 만드는 ‘학교’라는 공간은 이제 한국에서 공포영화의 단골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포 영화가 이런 학교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상업 영화의 메커니즘 안에 있는 장르 영화의 하나인 공포영화는 대부분의 경우 사회 비판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상황 혹은 공간이 가지는 폭력성은 어떤 인물의 부도덕함이나 싸이코틱함으로 대치되어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공포 영화 속에 여성 청소년이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성 청소년들을 사회적인 약자로서 묘사한다고 한들, 이것이 어떤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단지 영화적인 재미를 돋우기 위해서 사용되는 장치인 경우가 다반사다.


지못미 소녀들
위 사진: 영화 <아랑> 포스터

그렇다면 여성청소년들은 공포영화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보자. 여성 청소년들은 보호해야 할 존재로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아랑>이란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이 짝사랑했던 소녀를 지키지 못해 그녀를 강간하고 죽인 범인들을 연쇄 살인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성 청소년들은 성폭행이나 죽임을 당하여 남은 사람들에게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러블리 본즈>, <살인의 추억>, <마더> 등등 말이다. 이런 경우 여성 청소년들은 사회적 약자의 대표격인 셈이다. 물론 이런 설정 자체가 여성 청소년을 무기력한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더 아니꼬운 것은 영화가 의도하는 것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과 영화 밖의 관객들의 ‘순결한 소녀’의 보호에 대한 합의란 것이다. 이 사회에서 순결한 소녀는 당연히 보호받아야할 대상들일 뿐이다. 때문에 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었을 때, 관객들은 이들의 사건을 수사하거나 이들의 복수를 하는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주로 남성들)에게 더 쉽게 몰입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설정을 가진 영화로 <추격자>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보호의 대상으로 순결한 소녀가 아닌 순결하지 않은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데, 영화는 이 여성을 보호해야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그녀가 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임을 강조한다.


공포와 에로 사이

이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여성 청소년은 다른 한편으론 에로틱한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공포영화는 애초에 비명을 지르고 칼에 찔리는 여성들의 이미지로,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했었다. 여기에 소녀·여고생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그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소녀나 여고생의 순결한 몸을 파괴하는 쾌감을 주는 것이다.
위 사진:<여고괴담4> 중, 끔찍하게 살해당한 여고생의 몸


<여고괴담>시리즈를 보라. 3편부터 5편까지는 본격적으로 난도질당하는 여고생의 몸이 등장한다. <고사>는 좀 더 자극적으로 수조 안에서 죽어가는 여고생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공포 영화들이 재수 없는 것은 이렇게 보여줄 건 다 보여주면서도 남성들에게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은 것 같은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고괴담>시리즈에서 여고생들의 몸이 난도질당하고 관절이 꺾이는 것은 외모나 성적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여성들 본인의 탓이고, <고사>의 경우 관객은 문제를 풀어서 수조안에서 여고생을 구출하는 입장이다. 앞서 말했듯이 공포 영화는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재미로 차용하는 것일 뿐 결코 약자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에로 코드의 또 다른 형태로, 성적인 금기를 범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주로 임신, 동성애나 사제 간의 사랑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성적인 금기를 어기는 소녀는 성인여성보다 더 도발적인 법이다. 예로 <여고괴담>시리즈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 동성애 코드, <여고괴담4>에서 다룬 사제 간의 사랑, <여고괴담5>에서 다룬 임신 등이 있다. 이 영화들은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불완전한 존재?

또 하나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청소년의 이미지는 불완전성이다. 여성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인 여성과 청소년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캐릭터의 극대화를 노리는 공포영화에서 이런 이미지가 얼마나 반갑겠는가.

공포 학원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청소년들이 외모나 성적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캐릭터는 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초자연적인 무엇과 결탁하거나, 죽어서도 계속 특정한 공간에 머물거나 하는 등의 형태로 공포를 만들어낸다. 드물게 공포영화에서 이성적이고 침착한 역할을 하는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더라도 다른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로 <4교시 추리 영역>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대신 폐쇄적인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남자 주인공이 출중한 외모, 명석한 두뇌 그리고 리더쉽까지 갖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또 이런 불완전함의 이미지는 여성 청소년들을 우정과 사랑을 혼동하는 모습으로 묘사하여, 여성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부분의 공포영화에 동성애 코드를 남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주체적인 귀신들

반대로 공포 영화에서 여성 청소년들은 앞서 말한 것과는 다르게 주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고괴담>시리즈의 1,2편, <분신사바>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여성 청소년들이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귀신과 거래를 하거나, 직접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여성청소년들이 제 모습을 온전히 가지고선 누구를 죽이거나 괴롭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포영화는 굳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여성 청소년의 이미지를 깨뜨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위 사진:여고괴담> 중 한 맺힌 여고생 귀신



그 영화가 무서웠던 이유

공포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들을 불편하지 않으면서 무섭게 만드는 일이다. <여고괴담>에서 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하다 죽은 여고생이 귀신이 되어 학교를 떠돈다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여고괴담>의 줄거리가 주인공 여고생이 살아서 자신을 괴롭히고 배신한 친구들을 한 명씩 살해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 영화를 편히 볼 관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또 반대로 만약 <추격자>의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성적인 무능함을 무시한 여성들에게 귀신이 되어 복수하는 내용이라면 누가 이 영화를 재밌게 보겠는가. 이렇듯 공포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관객이 어떻게 여성과 남성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공포물은 상황이나 공간의 폭력성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장르보다 사회의 병리 현상을 다룰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여태 그런 공포영화가 잘 없었을 뿐이다, 좋은 예로 <샤이닝>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어느 평범한 아버지-남편이 한순간에 폭력적인 살인마가 되는 내용인데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지만 덮어두었던 아버지-남편의 폭력적인 모습을 잘 포착하여 뛰어난 공포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처럼 공포영화는 반드시 이미 구성된 세계관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공포영화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녀들을 보고 싶지 않다. 그녀들의 캐릭터도 역할도 너무 뻔하다. 그렇다고 신개념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여성 청소년들은 청소년으로서 학교 안에서 한 인간으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여성으로서 가부장사회의 약자란 위치에 있다.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포착하여 훌륭한 공포영화로 탄생시킬 수는 없는가?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 바로 영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타인의 감정을, 내 것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훌륭한 매체가 아닌가. 한 명의 영화팬으로서 공포영화에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어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지못미: 인터넷 용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줄임말.
덧붙이는 글
발새 님은 청소년 인권 활동가 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14 호 [기사입력] 2010년 08월 04일 15:50:1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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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7. 7. 20:14

[페미니즘 인(in) 걸?] 잔혹한 소년만화의 테제

‘소녀’ ‘정규직’ 오타쿠가 본 소년만화 씹어주기

둠코



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들을 보면 거의 사족을 못 쓴다. 흔히들 말하는 ‘오타쿠’ 이다. 어떤 한 분야에 꽤나 심하게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음악 오타쿠, 와인 오타쿠, 이런 식으로도 쓰이지만 그냥 ‘오타쿠’라고 하면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일정 장르의 게임(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던가, 애니,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 같은 것들)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어쨌든 애니메이션에 엄청 빠져서, 하루에 거의 여덟 시간씩 착실히(?) 보는 ‘정규직 오타쿠’ 였다. 지금도 하루에 8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틈만 나면 애니메이션을 본다.

그런데 청소년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러다가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마냥 재미있던 애니메이션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내가 접하는 많은 만화에서, 혹은 주류라 불리는 많은 만화들에서 여성의 캐릭터는 언제나 비중이 적거나 존재감이 옅다. 정확히 말하면 남성들에게 가려져 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기도 했지만 결국 오타쿠짓은 습관이어서 그런지 금단 증상에 져 버리고 말았다.

보통 만화는 크게 소년만화와 소녀만화로 나뉜다. 소년만화는 초, 중, 고등학생 남성층을 주로 겨냥해 만든 것으로 스포츠만화나 전투만화가 주를 이룬다. 슬램덩크, 테니스의 왕자, 우에키의 법칙, 나루토, 원피스, 블리치, 은혼 등이 있다. 반면 소녀만화는 한국에서는 흔히 순정만화라고 불리고 있는데, 초, 중, 고등학생 여성층을 대상으로 애틋한 로맨스를 통해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떠올리면 된다. 대표작으로 캔디 캔디, 나나, 토라도라 등이 있다. 이렇듯 독자층을 구분한 이 단어들도 여성과 남성의 고정화된 성 역할에 따라 나눠 놓은 것이다.


모에(*)!! 만화 속의 여성 찾기

소년만화에서는 크게 두 가지 캐릭터로 여성이 나온다. 첫 번째는 ‘서비스 캐릭터’이다. 이 때 서비스란 여성캐릭터를 이용한 성적 흥분을 남성에게 서비스 한다는 노골적 의미이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만화계에서 서비스 캐릭터라는 말이 쓰인다. 이건 거의 모든 주류 소년만화에 빠지지 않는 요소로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기분 나쁜 캐릭터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부각시키고 많은 경우에 그런 여성 캐릭터가 적게는 두세 명에서 많게는 열 명 가까이 나와서 주 독자층인 남성들의 취향에 따라 ‘고를’수 있게 했다. 독자가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만화에 나오는 여성들이 자신을 따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런 만화로는 『에반게리온』, 『왕도둑 징』(이건 매 화마다 주인공에게 반하는 서로 다른 여자들이 한 번씩 등장하는, 뭔가 본드걸 같은 느낌이긴 한데) 같은 만화들, 많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서비스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있고(이 미.연.시** 같은 경우는 그냥 그 서비스 캐릭터를 즐기는 것 자체가 목표다.) 전투만화 같은 경우에도 여성들이 노출이 많은 복장을 하고 나오게 하거나 가슴, 엉덩이 등을 강조한다. 『절망선생』이라는 만화에는 매번 어떤 일이든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절망하는 선생이 나오는데 그 선생을 좋아하는 열댓 명의 여학생들이 등장한다. 그 여학생들은 제각기 두드러지게 다른 성격을 가지는데 스토커, 귀국자녀, 은둔형 외톨이, 동인녀(***), 초 포지티브 소녀(****), 뭐든 계획적으로 딱 부러지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여자애 등이 나온다. 정작 선생은 그 중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피해 다닌다는 느낌이다. 결국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무도 ‘선택’ 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맘에 드는 여성캐릭터를 고르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노림수가 있다.



두 번째는 ‘서포터 캐릭터’이다. 서포터 캐릭터는 스포츠 만화라던가, 전투만화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여성이 주로 남성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스토리가 진행 될수록 주인공과 여성 캐릭터 사이에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전투만화에서는 여성이 적에게 납치되어 남성인 주인공이 여성을 지켜주는 구도이다. 여성들도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남성인 주인공보다 강하지 않다. 여성이 열심히 싸우기는 하지만 최종 승리는 언제나 남성 주연 캐릭터가 독식한다.

이런 구도에서는 ‘남자다움’ 혹은 ‘사나이들의 세계’ 같은 것이 굉장히 부각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나이들의 세계를 좋아한다. 일본의 유명한 만화 잡지 ‘점프’의 3요소는 승리, 우정 사랑으로 모두 ‘남자의’ 승리, 우정, 사랑이다.



『블리치』, 『나루토』, 『원피스』 같은 전투만화와 『테니스의 왕자』, 『슬램덩크』같은 스포츠만화에서 여성들이 주로 서포터로 나온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애처로운, 보고 있으면 화가 치미는 서포터로 등장하는 만화는 『데스노트』라고 생각한다. 『데스노트』에 나오는 아마네 미사는 데스노트를 손에 넣어 사람을 죽이는 라이토가 세계적 탐정인 ‘L’에게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 ‘L’에게 구속되어서도 입을 열지 않고, 자신에게 두 번째 데스노트를 준 사신(*****)과 거래를 해서 수명을 두 번이나 깎아먹는다. 기본적으로 자신은 바보이니 라이토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고 공언할 정도로 의존적인 캐릭터이다.


『미래일기』 분홍머리 여자애 가사이 유노

서비스나 서포터 등 여성을 부차적인 존재로 다루는 캐릭터 외에 예외적인 경우들도 많이 있다. 세 번째는 전투미소녀 캐릭터이다. 이 경우 남성 주인공보다 여성이 강하다. 남성은 주로 여성에게 보호받는다. 하지만 만화의 골자가 전투라고 해도 전투 능력이 높은 여성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전투는 주로 남자 주인공을 지키기 위한 것이거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남성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는 패턴이다. 결국 정신적으로 남성에게 기대고 있다는 식의 전개로 이어진다. ‘예쁜데다 강하기까지하다’ 는 식의 외모지상주의는 기본으로 깔려있다.

『웨딩피치』, 『세일러 문』, 『카드캡터 체리』, 『울트라매니악』, 『신풍괴도 쟌느』 같은 변신물은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적들과 싸우지만 위기일 때 달려오는 건 남성들이다. 『미래일기』 같은 경우 각자 고유의 능력을 지닌 일기의 소유자들이 서로를 죽여서 승자를 가리는 게임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일기를 이용한 일종의 능력자 배틀물의 형식이다. 남자 주인공은 소심하고 매사에 주눅 들어 있다. 가사이 유노라는 우등생에 역시나 일기의 소유자인 여성이 주인공을 열렬히 좋아해서 위기에 처한 남자주인공을 위해 싸운다. 일기를 파괴해서 상대방을 처치하는 마지막은 남자주인공이 하는 걸 봐서 가사이 유노가 서포터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주인공이 너무나 하는 게 없다. 이 마지막 경우가 가장 질이 나쁘다. 여성이 고정된 역할에서 해방되는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다가 결국은 ‘그래봤자 여자’ 라는 메시지가 읽히니까.




언니들이 필요하다

남성 중심의 애니메이션에서 부차적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여성캐릭터가 있는데, 이른바 ‘언니 캐릭터’ 이다. 『원피스』(물론 원피스 자체는 굉장히 뜨악할 정도로 마초스럽다.)라는 만화에는 언니 캐릭터가 증장한다. 『원피스』 주연급 캐릭터는 9명인데(지금까지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457화 기준으로) 모두 ‘밀집모자 해적단’의 일원이다. 그 중에 여자 캐릭터는 딱 두 명이다. 참 난감한 성비이다. 한 명이 니코 로빈이고, 또 한 명이 나미이다.

위 사진:『원피스』 그림 순서대로 로빈, Dr.리누, 벨메일


니코 로빈, 벨메일, Dr. 리누. 내가 좋아하는 세 언니의 이름이다. 니코 로빈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고고학 연구가 진행되었던 ‘오하라’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로빈은 어린 나이에 고고학 자격을 취득했지만 ‘오하라’의 연구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역사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세계정부’가 섬을 통째로 공격해서 멸망시킨다. 유일한 생존자인 그녀는 여러 암흑의 조직에 몸담고 사는데 그 모든 조직들이 그녀 하나를 생존자로 남기고 괴멸한다. 그녀의 특기는 배신, 거짓말, 암살. 그녀는 모든 것을 내다보고, 꿰뚫고 있다. 조직이나 권력을 이용하고 배신할 줄 아는 ‘악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주인공들 ‘밀짚모자 해적단’을 뒤에서 받치고 있다. 벨 메일은 주인공중 하나인 여자애 나미의 의붓 엄마이다. 그녀는 어릴 적에 해병이 되겠다고 마을을 뛰쳐나가 입대하는데,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나미와 누군지도 모를 나미를 어르고 있던 노지코를 발견한다. 두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에 죽을 각오로 고향에 돌아와서 친딸도 아닌 두 여자애를 강하게 길러낸다. 해적인 아론이 마을에 쳐들어왔을 때도 당당히 맞서 싸우다가 “태어난 시대를 원망해서는 안 돼. 살아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그녀의 자식을 위한 희생은 전통적 ‘모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딸들에게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Dr. 리누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선의인 쵸파의 스승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데리고 있던 인간사슴 쵸파를 맡아서, 자신의 의술을 모두 전수한다. 섬 가장 높은 산의 성에 살며 가끔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러 ‘쳐들어와서는’ 치료를 해 준 후 그 집 재산의 절반을 뜯어간다. “Happy 하냐? 나는 아직도 팔팔한 130대라구!”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아름다움의 비결이 알고 싶나?” 라고 당당히 외치는 여자. 성격이 괄괄하고 똑부러지지만 쵸파가 정든 고향을 망설이지 않고 떠나게 해 주는 사려 깊음도 있다. 자신의 나이나 외모에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다리가 아픈 아이의 팔을 꾹 눌러서 “봐라, 다리 아픈 거 다 잊었지.”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의 넉살과 “내 환자가 침대에서 나갈 때는, 완치 되거나, 죽거나. 두 경우다. 낫지도 않았는데 맘대로 돌아다니면 죽여 버리겠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괴상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다. 다들 어느 정도 롤모델로 삼고 싶은 언니들이다.

위 사진:『은혼』 『가구라』


그것 말고도 『은혼』이라는, 일본의 개화기를 판타지로 바꿔서 그린 만화에도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일본이 서양의 국가가 아닌 우주인들에게 개항했다는 설정. 그래서 우주인들이 (만화 안에서 천인天人이라고 부른다.)사회의 지배층이 된 세계를 그린다. 주인공인 긴토키는 은발의 사무라이이다. 사무라이는 폼도 뭣도 없는, 집세가 5달 정도 밀려있고 당뇨병 위험에 시달리는 뭐든지 해 주는 해결사(결국 돈은 못 버는)이다. 해결사 사무실에 얹혀사는 가구라라는 여자는 우주에서 유명한 전투민족인 야토족 소녀인데 스쿠터 정도는 한 손으로 세울 수 있고 총 맞은 구멍은 좀 있으면 막히는, 엄청난 신체 능력을 지닌 여자애이다. 무기로 총알이 나가는 우산;;을 쓴다. 전기밥솥 째로 밥을 마실 정도로 먹성이 좋고, 엉뚱한 성격이다. 사다하루라는 커다랗고 사람 머리를 덥석 물어버리는 견신犬神을 키운다. 해결사 일행이 범죄사건에 휘말려 경찰에게 심문을 받았는데 조사를 끝내고 풀려나오면서 ‘경찰이 엄청 열 받으니 경찰서 문간에 토해주겠다.’ 는, 만화의 여주인공 이미지가 절대로 아닌 여자애이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조직에 들어가면 짱을 먹자는 게 좌우명이라나. 만화에 나오는 여성 주연급캐릭터는 어느 정도 예쁘고, 도를 넘는 더러운 짓이나 막 되먹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틀을 확 깨버리는 통쾌함이 있다.


우리는 애니메이션 속에 살고 있다

멋진 언니들이 많지만 애니메이션 전체에서 여성의 위치는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소년만화들은 남성들‘만을’ 독자로 지정하고 있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여성 팬 층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게 되어도 마초 세계관을 수긍하고 내면화하기 전에는 편하게 즐길 수가 없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구도가 남성이다 보니 아무리 멋진 여성 캐릭터가 나와 봤자 ‘멋진 조연’일 뿐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멋진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것으로 만화 안의 성 역할 구분 짓기가 해결될 수 없다. 특정 캐릭터 하나가 남녀의 성역할의 구도를 깼다고 한들, 팔아먹기 위해 만들어 낸 수많은 여성캐릭터들에 대한 면죄부 혹은 변명정도 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좋은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애니메이션, 만화가 여성의 인기를 위한 수단 혹은 보조물로 대하지 않는 시각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여성이 ‘남성들의 뒤에서 받쳐주는, 남성들이 보기에 좋은’ 캐릭터로 나오는 걸 좋아하는 독자들이 없어져야 하고, 현실에서 성별에 따른 위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니 참 어려운 일이로세..;ㅅ;

주류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많이 읽히고 팔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가장 전형적인 모습들, 혹은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 중에 가장 부각되는 것이 성역할의 구분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과장되게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이 현실의 복사판이라는 걸 알면 ‘이건 애니메이션이고, 현실이 아니니까 괜찮아’ 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질 것이다. 불편해진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면 언젠가 불편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모에: 패티쉬와 비슷한 개념으로 어떤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 어떤 캐릭터의 특징에 팬덤을 가지는 것. 대개는 아이템이나 성격, 그 사람의 신분, 직업 등이다. 안경모에, 소꿉친구모에와 같이 쓰인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남성 주인공이 등장, 그것이 플레이어가 된다. 주변에 ‘선택’ 할 수 있는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특정 캐릭터와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지를 골라 행동하면서 마지막에는 원하는 여성 캐릭터와 맺어지게 되는 것이 목적이다.

*** 동인녀: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2차 제작물인 동인지를 만들어 내거나 읽는 여성을 지칭. 만화의 주인공들을 엮어서 BL(남성간의 사랑을 그림)로 만드는 종류의 2차 제작이 주를 이룬다. 다른 말로 야오녀 라고도 한다.

**** 초 포지티브 소녀: 절망선생이 모든 것을 부정적을 생각하는 반면, 이 소녀는 도저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것 조차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 사신과의 거래: 데스노트에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죽일 수 있다. 단 본인의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하고 본명을 풀네임으로 적어야 한다. 사신과 거래를 하게 되면 사신의 눈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이 능력이 있으면 사람 얼굴 위에 그 사람의 본명이 보이게 된다. 댓가는 남은 수명의 절반.


덧붙이는 글
둠코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10 호 [기사입력] 2010년 07월 07일 17:13:16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창 유희왕 TCG 할때 대회장이나 미카엘에서 남자들만 득실 거린 것도 관련있을려나..
    생각해보니 카드 일러스트도 거기에 해당될지도

    2010.07.08 00:30 [ ADDR : EDIT/ DEL : REPLY ]
  2. 뭐죠 이 향기는

    2010.07.08 02:13 [ ADDR : EDIT/ DEL : REPLY ]
    • 생각하시는 그 향기인 듯 하군요. ㅎ

      어쨌든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2010.07.08 11:15 [ ADDR : EDIT/ DEL ]
  3. 대단한 글이군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을 여기서 보고 갑니다.
    저도 남자이지만, 우연히 안티페미니즘 주제로 어느 분의 논문을 읽고 기존에 제가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틀이 약간 변형되었습니다. 그런다고 전 그렇게 많이 아는 것도 아니오. 페미니스트도 아닙니다.
    단지 애니메이션오타쿠문화가 남성으로부터 시작되어 거기에 담겨진 캔디이데올로기, 신데렐라컴플렉스, 할렘구조 등에서
    이것은 왠지 아니다라는 기분이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 케이온에서 저는 이 작품이 기존 틀을 깬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수동적이 아닌 능동, 남성들의 머리속에 나오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만든 여성이라(허벅지와 다리. 달릴때 팔이 앞뒤가 아닌 좌우, 신체사이즈 등)
    물론 순정만화로 시작한 세일러문처럼 강력한 여전사라도 남자가 없으면 결국 안되는 인식이
    박힌 어느과학의 초전자포같은 작품이 나온듯이 제법 공감이 큰 글이네요

    2010.07.09 11:59 [ ADDR : EDIT/ DEL : REPLY ]
    • 문화 컨텐츠가 기존 사회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속에서도 어떻게 대안적인 모델을 만들거냐 또는 어떻게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창작할 거냐- 이런 걸 생각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가진 글이라고 생각해요

      2010.08.30 04:31 신고 [ ADDR : EDIT/ DEL ]
    • 이 별거 없는 글에 공현만큼 그럴듯한 해석을 달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라는;;; 저는 단지 제 오타쿠 혼과 운동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감동에 허우적 거리며 썼을 뿐이라는;;;

      2010.09.02 05:56 [ ADDR : EDIT/ DEL ]
  4. 비밀댓글입니다

    2010.08.24 19:29 [ ADDR : EDIT/ DEL : REPLY ]
  5. 테오

    하지만 만화나 라이트노벨에서의 왜곡된 여성상에 대해 논했다간 바로 팬에게 융단폭격맞기가 일쑤죠 ㄱ-
    국내 라이트노벨 중 [미얄의 추천]을 읽다, 남성판타지가 지나치게 담긴 여성상 밖에 안나오고 그나마 주체성있어보이는 여자는 무조건 악역으로 등장한다, 라는 내용으로 비평문을 작성해 블로그에 게제했는데...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무슨 개소리냐, 라노벨의 스토리 진행을 위해 그런 캐릭터가 나온거지 비하하는 시선 때문에 일부러 만든게 아니다! 라고 외치며 맹비난 받았어요. ;ㅁ;
    뭐... 그렇지, 일부러 만든건 아니었겠지, '일부러'는 아니었겠지, 일부러 만들었으면 정말 손도 쓸 수 없을 정도일테니.

    ...좀 현실적인 여성상, 남성상이 나오는 라노벨이 늘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이 글 보고 왠지 공감되서 덧글 달았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ㅎㅁ

    2010.09.15 10:15 [ ADDR : EDIT/ DEL : REPLY ]
  6. 지나가던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소년만화을 이런 눈으로도 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는 글이였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ㅎ

    2011.08.16 21:59 [ ADDR : EDIT/ DEL : REPLY ]
  7. 지나가던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소년만화을 이런 눈으로도 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는 글이였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ㅎ

    2011.08.16 21:59 [ ADDR : EDIT/ DEL : REPLY ]
  8. 여니

    여자로서 만화책좋아하는데...공감많이 되네요
    특히 소년만화에는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진여자가 많이 나오는데
    남자들의로망인가봐요 ㅋ ㅌ늑히 멋진조연으로밖에 있을수없다..그점도.
    하지만 레이브에서는 여주인공 엘리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더라구요..그래서 잘봤어요 ㅋㅋ
    여자들도 원나블같은 소년만화를 정말 즐길수있는데 여자를 위한 디테일이 좀빠져서 슬프네요 ㅎㅎ

    2011.12.09 10:24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2. 9. 16:05

[페미니즘인(in)걸] 밑바닥에 깔린 청소녀 알바

44만원에 그치지 않는 노동현실

윤티



44만원, 청소년 비정규직 알바


나는 청소녀 알바생이다. 시사in에서 얼마 전에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름붙이길, 일명 “44만원 세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이며, 청소년이고, 말하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요즘 청소년노동인권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여러 번 우려먹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이게 뭐 비밀도 아니고 계속 말해서 닳고 닳을 얘기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ㅋㅋ 그래서 이번에도 내 경험을 가지고 한 번 청소녀 알바생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탈학교 청소년인 나는 부모의 눈치 압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내가 번 돈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알바를 시작했고, 내가 처음 일했던 곳은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일을 하였다. 내가 하는 일은 뒤편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남자애들의 일보다 더 편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기준으로 책정된 건지 잘 몰랐지만) 남녀의 시급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러한 차이에 대해 별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게 그리 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면 할수록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계산대를 두드리고 주문을 받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성다움’을 같이 팔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야 알았다. 난 주문을 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맑은 목소리를 선사해야 했고, 버거를 만드느라 지친 몸에 못지않게 스스로를 여성스럽게 가다듬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하는 ‘험한 일’을 해야 했다.

청소녀들, 돈을 벌려면 성을 이용하라구?

어쨌든 돈은 벌어야 했기에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그만두게 된 뒤에도 다른 일을 구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참 커다란 ‘일’이었다. 사무직 일이었는데, 처음에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나가서 서류 정리 조금 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루 4~5시간 일하고 일당은 2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가자마자 내게 설거지와 청소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라. 자기가 혼자 일하고 있는데, 그런 일들을 못하고 있다고. 이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한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그 사장의 사무실(인지 집인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급을 받는 날, 그 기러기 사장의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에 나는 큰 반항 한 번 못하고 ‘당해야’ 했다. 처음엔 다리를 쓰다듬더니, 나중에는 안아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도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냥 박차고 나와 버릴 수도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더 치가 떨린다. 나는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장이 원한 건 내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일이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여성청소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구하려면 일단 이런 수모는 미리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오피스텔을 빠져 나왔다.

사실 처음엔 이런 일을 당했어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장의 해코지가 두려워서, 또는 이제 와서 하소연해봤자 뭐가 있겠나 싶은 마음에, 내 마음 속에만 꽁꽁 숨겨왔던 것 같다. 많은 청소녀 알바생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위 사진:청소년 알바를 모집하는 광고.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밑바닥 노동, 청소년 노동인권 현실

얼마 전인 11월 27일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실태’를 보면, 청소년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88만원 세대만도 못한 44만원 세대인 청소년 알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밑바닥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급이 3770원이었을 때도 2100원, 2500원 등등 햄버거 한 개 값만도 못한 시급을 받으며 청소년 알바는 그렇게 '헐값노동' 취급을 받아 왔다. 그나마 올해부터 시급이 4000원으로 올랐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또한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가혹하다.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일하는 도중에 휴식 시간과 휴식 공간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휴게시간 따로 없다/휴게실 없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62.0%, 62.8%로 꽤나 높게 나왔다. 근로기준법에도 4시간 일을 하면 30분은 꼭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쉬는 것도 사치일 뿐인 것 같다. 나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 매일 똑같은 버거만 먹으면서 좁은 곳에서 딱 30분 쉬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30분이 너무 짧게 느껴졌으니까.

우리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고용주(비청소년)들은 우리를 더 쉽게 대한다. 실제로 어떤 청소년은 일하는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일테다. 일단 '청소년'에 대해, 거기다 공부만 죽어라 열심히 해야 할 청소년이 '알바'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딱히 칭찬해주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만만한 존재다. 그래서 서비스업, 주문을 받는다거나, 전화를 건다거나 하는 업종에 있다 보면 손님들까지 우리를 막 대할 때가 있다.

용모단정(?)과 밑바닥을 벗어날 날은

나도 일을 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확실히 변하지 않는 건, 여성청소년에게는 주어진 일자리조차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힘들게 일하고 돈 많이 주는 알바는 난 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편의점 야간알바는 대부분 남자를 뽑고 오토바이배달이나 다른 배달 쪽 일도 거의 남자가 대부분이다. 청소년 알바도 성별분업이 되어 있다. 여성들은 상냥하고 예쁘고 얌전한 일, 남성들은 힘쓰고, 몸 부딪히고, 강하고, 험한 일. 우리는 그런 식의 험한 일은 여성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계속 교육받아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중매체들에서도 여성의 직업과 남성의 직업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보여준다. 그리고 남성 직업인데 그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 소위 말하는 '여성 엘리트' 을 보여주며, 이례적인 일이라는 투로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다른 여성들을 향해 말한다.
"너도 네 재주껏 해봐."
남성은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여성은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다시 내가 알바를 구할 때는 '용모단정'이라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시간을 써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스물스물 생겼다.

여성청소년으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밑바닥 노동'인 청소년 노동에서 그 '밑바닥'을 뚫고 한참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초초저임금인) 시급에 남녀차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손님들을 대할 때 아무리 토 나올 것 같은 손님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급 더 올려 줄테니, 애인이 되어달라는 마초 아저씨들의 더러운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과 청소년, 여성 청소년의 노동 현실은 언제쯤 밑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윤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82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9일 15:14:28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음. 그러고 보니 난 참 운좋게도 좋은 알바를 구한 듯 하네.

    2009.12.09 22:03 [ ADDR : EDIT/ DEL : REPLY ]
  2.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소녀동지들이여!

    투쟁을 해야지

    안하고 억울하게 당하기만 할 것인가?

    내가 여러분이었으면 짤릴 각오하고 소녀고용살이노조를 만들어서 우리들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었다.

    당하기만 할 것인가?

    나의 동지들이여!

    2009.12.17 00:54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아무래도 활동가 입장이다보니- 그런 말은 쉽게 못하겠습니다 ㅋ;;;;; 노조 만들려고 하면 짤릴 게 뻔한 게 비정규직 파트타임이니까요.
      제가 청소년노동운동 쪽에 뛰어들 때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노조를 만드는 건 '우리들의 처지를 이해해달라' 이상이기도 하지요

      2009.12.17 17:19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8. 19. 22:4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성-청소년, 보호주의에 묻힌 성적 자기결정권

난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촛불집회에서 연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아실까 모르겠어요. 그 때 기사가 났었는데, 대부분 기사 내용이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여중생...' 뭐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났어요. 근데 사실 전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고 그런 적 없는데, 그 때 언론들에서는 모두들 '집에 가고 싶어요, 무서워요, 저 보내주세요 흑흑... 한 여중생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았었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어린 10대 소녀로, 그 기사들은 절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은, 보호해줘야 할 약자,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언제부터 나는 누군가가 지켜줘야 했을까요? 왜 나는 보호받아야 할 어린 소녀일까요? 연행당할 때 '미성년자는 풀어줘라!'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10시 이후에는 집회에 남아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 때, 항상 따라오는 건, 내가 '청소년'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이라 못하고, 안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일단 술 담배 마음대로 못 삽니다. 찜질방도 10시 이후로는 보호자 없이는 출입 못 하구요. 숙박시설도 보호자가 없으면 마찬가지로 잠 못 자구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밖에 나와도 잘 곳이 없어요. 이 모든 것들은 다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는 건데, 그 유해환경에 '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선거에서 당선돼 우리가 다시 한숨 쉴 수밖에 없게 만든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관계를 한 학생은 퇴학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청소년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청소년은 아직 판단력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해환경에 쉽게 물들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해주겠다는 말 속에 권력 관계가 있는 거고,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 통제나 억압, 지배가 있게 됩니다. 보호라는 말로 차단시켜 놓음으로써 격리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구요.
보호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보호만 싹 없앤다면 여러 문제들이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보호만 하는 것이 맞나? 그것은 현상 유지를 위한 방책이지,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아니지요. 어느 선에서 차단만 시켜놓는 미봉책입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 유해 환경이라고 했을 때 뭔가가 유해 하다면 유해 환경 자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건데 그것을 출입 금지로만 그냥 금기시 해놓는 것. 성을 이야기 하자면, 그러니까 성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너희들, 잘못하면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인데, 지금 사회에서 청소년이 임신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낙태'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낳아서 어쩔건데?'가 되어버리는거죠. 또 사회적인 시선들, '아니, 저 어린 것들이.' 하는 비난의 눈길. 하지만 청소년들이 임신 했을 때, 낳아서 양육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임신을 하면 인생이 불행해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을 통제해서 막겠다는 것은 문제를 덮어 놓거나 어느 선에서 눌러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을 금지했을 때, 보호하려 했을 때 보다 청소년의 임신율, 낙태율, 이런 것들이 수치상 줄어들 순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닌거고, 청소년의 행복과도 거리가 멀어지지요. 또 사실 낙태 비율만 놓고 보자면,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제일 높다고 해요. 임신을 하고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아이를 지워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양육 문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양육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고 있는 사회의 문제인거죠.
다시 보호주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여자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밤이 위험해지는 환경, 밤에 범죄 위험(성폭행, 납치, 살인 등..)이  높은데, 범죄의 위험성에 대해 CCTV설치 정도로 해결하려는 것이나, 위험하니까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들. 그 위험한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밤길 이야기는 '여성에 대한 보호'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비청소년이 되어도, 여성인 경우 집 안에서 외박을 금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연행 사건에 대한 기사의 내용도, 실은 그 청소년이 남성 청소년이었다면, 그런 식의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호'에 있어서, 청소년 사이에서도 성별의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성, 섹스에 관해서는 나이보다 성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보호주의'라는 것에 '성적자기결정권'은 묻히게 됩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아직 당연한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인정받지 못하고, 주위에 숨겨야 될 것만 같은 분위기, 청소년이 섹스하기엔 사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없는 것들, 등등. 하지만 성에 대한 통제가, 청소년의 성을 금기하는 것도 있지만 비혼이란 범주에 청소년이 속한다고 본다면, 20대일지라도 비혼일 경우는 섹스했다고 하면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청소년이더라도 비혼부는 없고, 비혼모는 있지요. 임신후 결과에서, 여성 청소년에게만 더 많은 성적 통제가 가해지고, 남성 청소년의 경우는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구요. 남성 청소년의 성경험이 여성 청소년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통계도 있고 경험에 대한 해석에서도 여성 청소년보다 남성 청소년에게 훨씬 관대하게 적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의 차이. 결혼을 중심으로 봤을 때, 결혼하지 않았다는 게 여성 청소년에게 훨씬 크게 적용하지요. 혼전순결에 대한 사회적 강박 같은 걸까요? 
사랑니라는 영화를 보면 여성 학원 교사가 남자 아이와 여관을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텔 종업원이 비난을 할 때는 그 여성에게 비난을 가합니다. 20대, 30대 남성과 10대 여성이 할 때에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은 일반적으로는 여성에게 가게 됩니다. 그 때는 '저 발랑 까진 어린 것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지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아직도 쉬쉬하는 사회. 보호를 위한 건가요? 그렇다면, 그 보호를 거부하겠습니다. 이제는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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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속에서도 권리를 외치다


공현


청소년 성폭력 사건의 그 ‘특별함’

  청소년(아동) 성폭력 사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분명 웬만한 청소년 성폭력 사건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권력(물론 구체적 사건에 따라 +a가 있다.) 속에 일어난 여타의 성폭력 사건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성폭력 사건일 텐데, 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특별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사람들은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이고 비청소년-‘성인’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최근에는 혜진 씨 예슬 씨가 피해자였던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는 천인공노(天人共怒), 인면수심(人面獸心) 등 한자어를 써가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무슨 변태 성욕의 증거가 발견되었다면서 가해자를 열심히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타자화 한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를 발동시켜서 성폭력 범죄자들을 더욱 빡세게 처벌하겠다는 법률 개정 검토를 하고, 부모들은 아동 성폭력 피해 예방을 위해 밤길 조심하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조심하고 등등의 조심 사항들을 내놓는다.
  아동-청소년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대표적인 것이 2004년에 있었던 밀양에서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 공론화되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비난이 커지며, ‘미성년자’들의 ‘충동적인’ 범행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고 청소년들의 ‘미성숙’함이 강조된다. 청소년에 대한 음란물 규제와 같은 조치도 항상 따라 다닌다. 최근에 있었던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에서도, 정부에서 검토한다고 한 조치는 결국 ‘음란물 규제’가 아니었던가?
  분명히 아동-청소년들의 성폭력 사건은 대개 성별 권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 ‘전형적인’ 성폭력 사건이다. 아동-청소년들의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가 반영된 경우도 많지만,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별 권력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책임 전가라거나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것을 금기시하는 모습도, 여타의 성폭력 사건들과 비슷한 모습들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이 사회의 태도는 아동-청소년들의 특수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청소녀/년의 성적 결정권”이란 이름으로 특별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청소년에게 위험한 성

  그렇다. 청소년에게 성(性)은 위험한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여성에게 성은 위험한 것이다, 라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여하간 청소년들에게 성은 위험한데, 하나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때문(가해/피해 모든 면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에게 성행위는 금기시되며 그러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위험은 연령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아동-청소년 성폭력에 특히 민감한 이 사회(이게 과연 ‘약자에 대한 폭력에 분노’하는 ‘순수’한 마음일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폭력만 특히 강조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은 특히 위험하다. 하나는 ‘자라나는 새싹들’인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 인식 안에는 청소년에 대한 이중적인 고정관념들이 이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성이 위험한 두 번째 이유는, 청소년들의 성행위는 이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데는,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신세망친다, 라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문제와 더불어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가 부여하는 생애주기-나이주의(나이주의라는 말은 여기선 매우 복합적으로 나이에 따른 권력과 위계를 뜻함과 동시에 나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생애주기의 의미를 지닌다.)의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 고등학교 때인가 국어 선생이 “어른”의 어원이 성행위를 경험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청소년들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정한 청소년들의 틀과 지위를 벗어나는 일이기에 위험하다.
  최근 인기 도서인 『88만원 세대』를 보면 첫 챕터에 “첫 섹스의 경제학,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10대들이 섹스를 하지 못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구구절절 분석해놨는데, 옳은 소리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이 꼭 경제적 지위의 문제만은 아니다. 30대 기혼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경제적 여건이 매우 곤란한 경우 주변에서는 걱정을 하고 염려스러워 하긴 하겠지만, 10대 미혼(비혼) 여성이 임신을 한 경우에는 비난과 좀 다른 스트레스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청소년 안의 성별 권력

  그런 이야기로 원고의 반절을 쓰고서도, 또 청소년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청소년’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들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존재한다. 청소년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들도 충분히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고, 일상적으로는 수업 시간에 남성중심적인 성적 농담을 통해 친밀한 공모 관계를 형성하는 남성 교사와 남성 학생들의 관계를 봐도 그렇다. 최근에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성구매를 한 남성 청소년들에 대해 교사가 통제를 잘못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언론이나 사람들을 봐도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식의 판타지는 계속된다.(물론 거기에는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성숙한’ 성인들이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도 같이 있다.)
  또한, 바로 요 앞에서 청소년들에게 성이 금기시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또한 남성 청소년의 경우와 여성 청소년의 경우가 다르게 취급되며, 미혼/기혼 기준 또한 여성 청소년들에게 매우 강하게 적용된다. 남성 청소년들의 성행위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난다의 발제에 충분히 자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까 이만 줄이겠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

  그래서, 도대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 않은 이 토막난 원고의 끝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발제라는 게 원래 시원한 답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함께 토론할 이야기거리를 꺼내보자는 것이니 속 시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고 인정되어야 한다. 비록 아동권리협약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홀대받는 권리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권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성적 권리라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성에 대해 알 권리, 성평등(동성애나 성전환 등을 포함한)에 대한 권리 기타 등등을 의미한다. 비록 청소년의 성적인 자유가 힘 있는 남성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자유주의나 프리섹스로 오인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청소년 안에서 성적 권력 관계가 엄존하기에 수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더라도,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청소년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다, 라고 하면 “그래 당연하지. 하지만…”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도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매우 과민하게 반응한다. 왜 이 사회는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까? 그것이 그토록 위험한가? 그것이 정녕 그리도 위험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적어도 그 사람들이 18세 이전에 섹스를 하면 자궁에 질병이 생길 확률이 몇 배 높아지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유 때문에 ‘위험’하다는 건 아닐 테니까.) 청소년들에게는 성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성을 권리가 아닌 보호와 통제, 위협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때 청소년들은 그리 행복하지도 못할 것이고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A4를 3페이지나 낭비했다는 것은 죄악인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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