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1. 6. 10. 10:23
안티조선 운동사 - 10점
한윤형 지음/텍스트



‘또 하나의 역사’ 『안티조선 운동사』 소개글인지 서평인지


『안티조선 운동사』 서평을 쓰려고 개요를 간단하게 메모해보았다. 하지만 그 개요로 글을 다 쓰지 못하고, 몇 번이고 그 개요를 다시 쓰고 다시 썼다. 도무지 리뷰의 맥락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안티조선 운동사』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티조선 운동사』에 일부 그 책임을 돌리고 싶다. 『안티조선 운동사』에는 읽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안티조선 운동사』를 읽으면서 ‘독후감’에 이런 내용을 넣어야지, 하고 메모했던 많은 것들이 도무지 하나의 통일성과 논지를 가지고 정리되지 않는 상황과 씨름해야 했다. 읽은 이에게 단일한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여러 가지 생각의 소재를 제공해주고 새로운 생각들의 계기가 되어주는 것, 그건 역사책에 있어서는 차라리 장점이 아닐까? 그래서 그냥,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냥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몇몇 생각들이나 지점들 중에서 소개할 만한 것들 두엇을 골라서 소개하는 걸로 서평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안티조선 운동사』의 표지에 적혀 있는 부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이다. 책을 처음에 집어 들었을 때는 너무 부제가 거창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더랬다. 15~20년 남짓한 사회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가지고 ‘또 하나의 역사’라니, 너무 스케일이 크지 않은가?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그 부제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다른 독자 분들도 그럴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단순히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사회운동에 대한 역사 정리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후반까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안티조선 운동’ 관점에서의 조망이며 한윤형의 정치평론이다. 그리고 특히 노무현 정부(나는 사실 노무현 정부가 안티조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에 대한 한 안티조선 운동 참여자의 평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안티조선 운동이란 프리즘으로 바라본 지난 15년간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p.15. 여는 글.)


예를 들어서, 다음은 『안티조선 운동사』에서 노무현 지지층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이 ‘집단’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려 한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강준만의 ‘실명 비판’과 진중권의 ‘키보드워리어질’은, 심지어 《조선일보》와 전쟁을 벌이며 나온 노무현의 개혁 정치조차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광할 준비가 된 ‘집단’이 없었다면 무의미했다. 물론 강준만, 진중권, 노무현, 그리고 기타 여러 등장인물들은 이 ‘집단’의 정서를 구체화하고, 정교화하고, 더 큰 덩어리로 만든 공로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집단’의 열망에 주어진 ‘해답’으로 존재했을 뿐이지, 그 주인공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pp.248~249)


즉 한윤형 씨는 『안티조선 운동사』를 운동사인 동시에 안티조선 운동과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해석 또는 평론으로 위치 지우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안티조선 운동의 자료를 모으고 기록한 ‘백서’나 사료 모음, 또는 역사기록 정도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안티조선 운동사』는, 비록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저자 ― 한윤형 씨의 정치적 견해나 평론, 그리고 논설이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기록과 평가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나라면 이런 식으로 글을 쓰려면 아마 어느 정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지 아주 그냥 머리가 빠지도록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한윤형 씨가 실제로 작업 과정에서 그런 부분 때문에 고생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결과물인 이 책 안에는 특별히 망설이거나 어려워 한 듯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건 아마도 한윤형 씨 자신이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였으며 안티조선 운동을 통해서 정치적 사회적 의식이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극우 헤게모니론을 근거로 《조선일보》를 기타 신문과 구별하는 논의가 여전히 유효한지는 더 따져 봐야 할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는 최장집 사건에서 《조선일보》의 ‘마지막 기동전’을 보았으며, 그 후에도《조선일보》의 과장․왜곡 보도의 수준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현격히 다른 수준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극우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의 실행자로 《조선일보》를 지목해 낼 수 있을지는 알수 없다.”(p.128)


어쩌면 나도 ‘조중동문’의 ‘기동전’의 피해자 중 하나라고 슬쩍 한 숟갈 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10년 7월 동아일보가 주도하고 조선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등이 가세했던 ‘아수나로-진보교육감 공격’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교육감’ 당선 이후, 그들을 까기 위해서 아수나로의 일제고사/교원평가제 반대 행동 등에 관해서 ‘홍위병’ “청소년들이 날뛴다.”라는 식의 보도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심지어 1면까지 사용해주었고 조선일보도 2면과 사설 등에 자리를 내며 아수나로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까지 해주셨다.

아수나로는 주민직선 교육감들이 선출되기 이전부터 일제고사 반대 행동을 했고 교원평가제에 대해 (더 급진적으로, 점수화하는 평가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학교운영, 교원인사 등에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의)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 일제고사 반대 행동 같은 경우도 2008년 10월이나 2009년 3월의 활동이 규모 면에서나 실천 방법(농성, 오답선언, 등교거부 등) 면에서나 가장 컸다. 그런 점들에 비추어 볼 때 그 보도는 다소 생뚱맞은 일이었다. 서울시 곽노현 교육감 등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7월 교육부 일제고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최장집 사건 같은 데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것도 ‘극우 헤게모니’에 위협이 될 만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을 공격하기 위한 일종의 기동전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안티조선 운동사』의 지적대로 과연 지금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그러한 ‘극우 헤게모니’의 대표적 주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수나로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게 동아일보였듯이, 오히려 동아일보나 문화일보 등이 그러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미 언소주, 행언련 등 지금의 언론운동은 사실상 ‘조중동’ 내지는 ‘조중동문’ 등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안티조선 운동사』를 읽으면서 내게 가장 생소하게 다가왔던 것은 동아일보 이야기였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게 2004~5년 무렵, 그리고 사회적인 여러 사안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길게 잡아봐야 2002년 정도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2000년 10월, 한겨레신문 정연주 논설위원의 손에서 탄생했던 “조중동”이라는 조어가 굳어진 시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동아일보는 높은 빈도로 조선일보보다 더 악의적인 보도를 해왔다. 따라서 동아일보가 조선/중앙보다 더 개혁적인 위치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좀 낯설게 들릴 수밖에 없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안티조선 운동사』를 읽어보시라. 『안티조선 운동사』는 조선일보 이야기 뿐 아니라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이 어떤 역사를 거쳐서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진영 논리를 넘어


“이런 논리에 다가서면, 여기에는 ‘우리 편은 우리 편이니까 옳고, 상대편은 상대편이니까 그르다’는 자폐적인 답밖에 남지 않는다.”(p.268)

“참여정부는 대단히 미심쩍은 논점을 손에 쥐고서 조중동과 분쟁을 일으켜 그들의 몰상식함을 이끌어 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반대한다면 이런 저열한 의사소통 방식을 넘어서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 저열한 의사소통에 동참하는 일이었다. 소위 개혁 언론들은 참여정부가 그어 놓은 전선에 따라 별수없이, 혹은 자의에 의해, ‘조중동과의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이를테면 공정한 잣대로 쌍방을 평가하지 못하고 ‘패싸움’에 휘말린다는 인상을 주었던 셈이다. 그 결과 참여정부를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더 ‘《조선일보》 비판’ 활동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됐다.”(pp.361-362)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를 비판함으로써 한국 언론들에게 중론이나 여론을 관성적으로 대변하고 답습하는 것을 넘어 공론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강제해야 했다.”(p.464)


『안티조선 운동사』가 반복해서 주문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운동이, 정치가, 언론이, 담론이, ‘진영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안티조선’은 공정성과 당파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조선일보가 취해오던 왜곡된 진영 논리를 넘어서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안티조선 운동은 그런 문제의식을 과연 얼마나 견지했는가? 스스로가 조선일보식의 저급한 편향성, 저열한 의사소통 방식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아닌가? 때문에, ‘발전적인 운동’을 위해서는, ‘안티조선’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언론운동이 ‘발전적인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조선일보(또는 조중동)만 없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이러한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조선일보(또는 조중동)가 사라져야 한다.’가 되어야만 한다.

(‘조선일보=친일파’라는 공식을 이용해 안티조선이 대중화되던 시절을 서술하면서 한윤형 씨가 던지는 “운동은 어디까지 단순화될 수 있는 것일까?”(p.190)라는 질문에서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나는 한윤형이라는 저자를 좋아한다. 한윤형 씨의 장점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공정하게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한윤형 씨의 글쓰기는 당파적이지만, 최소한의 공정성이라는 룰을 지키려고 애쓴다. 우군에게만 특별히 너그럽지도 않으며, 이중 기준을 적용하는 일도 없다. 당파성의 근거가 되는 기준도 명확한 편이다. 그때 당파성은 일종의 실용성이 되기도 한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특히 그런 한윤형 씨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책이다.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운동이기 때문에 좀 더 너그러워도 좋을 법하건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이 가장 편파적인 것이다'라는 말 자체도 안티조선 운동에서 등장했던 말(정확히는 유시민 씨가 쓴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작 이 말을 한 분이 또는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공정하게 편파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안티조선 운동사』를 놓고서 한윤형 씨 ― 10대 무렵부터 안티조선 운동에 빚을 진 어떤 한 사람은 ‘공정하게 편파적인’ 그 자세를 가능한 한 유지하고 있으면서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기록과 평가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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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7. 7. 02:32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7/07/3899190.html


일제고사 반대하면서 집회하는 걸 두고서 '중앙일보'에 무슨 교육학 교수라는 사람이 "경쟁이 인권침해면 월드컵에 선발된 선수들도 인권침해를 당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뭐 대충 이런 개드립을 쳤다.
(정확히는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하며 온 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던 우리의 축구대표팀도 평가와 경쟁을 거쳐 구성된 팀이다. 그렇다면 이 선수들의 인권 또한 침해당했다는 말인가." 가 원문)


전형적인 허수아비 치기랄까, 좀 이상한 비약이다. 왜냐하면 아수나로를 비롯해서 일제고사 시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든 경쟁은 모두 인권침해"라는 식으로 주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이 교육의 주가 되고 목적이 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무한경쟁교육/입시경쟁 중단!"을 외친 적은 있어도 "세상에서 모든 경쟁을 완전히 없애버려라!"라고 얘기한 적은 없다. =_=

또한 이 교수는 "‘평가=경쟁=인권침해’라는 등식은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도 "평가=경쟁=인권침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굳이 말한다면 어떤 평가, 어떤 경쟁, 어떤 경쟁은 인권침해의 부분집합이 될 수 있다... 정도?) 이 교수는 스스로 고안해낸 등식이 스스로 왜곡되고 과장되었다고 시인하고 있다. 개드립에 연이은 개드립이니, 실로 뻘글이다.



핀란드에서 온 피터 존슨 교장을 인터뷰했던 기사
도 표제가 "교육에 웬 경쟁? 그건 스포츠에서나 효과"였다. 경쟁이 필요하거나 좋은 효과를 내는 분야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분야도 경쟁적인 방식을 통해 선수들이 더 즐겁게, 실력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매력이나, 학술 연구라거나, 뭐 공사 입찰이라거나, 특정기술이라거나 등은 경쟁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경쟁적인 게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는 경우도 있다.(다만, 나는 생계를 볼모로 한 취업경쟁, 불안정노동 등에도 반대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식당에서 우리가 메뉴를 보고 무슨 음식을 먹을까 정하는 경우도 음식들 사이의 경쟁이다.
그러니까, 이 교수의 글은, 무슨 "경쟁적 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했더니, 그럼 식당에서 메뉴도 한 종류로 통일해야 하냐고 묻는 식의 오버질을 할 기세...



(7월 9일 6시30분. 청계광장 옆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일제고사 경쟁교육 반대 청소년행동이 있다.)


교육은 사람들이 사회화되고 자신들의 잠재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과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된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고사를 포함하여 한국의 경쟁적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을 계발하고 학생들의 삶을 도와주는 역할이 아니라, 학생들이 획일적으로 '시험을 위한 공부' '점수/성적/등수를 위한 공부'를 하게 만들고 있다. 그 자체로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며, 부수적으로 건강권, 신체의 자유, 여가권 등등에도 충분히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죽하면 까다로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경쟁적 교육체제가 아동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한국에 개선을 권고했겠는가?


이번 2010년 7월 일제고사부터는 학교별 성적이 공개되고, 성적 공개에 따라 학교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경쟁의 등쌀에 압박 받는 것은 첫째가 학생들이고 둘째가 교사들이다. "목숨 걸고 공부"하라며 강제야자 강제보충수업 일제고사성적을 위한 시험문제풀이를 요구당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이딴 것도 교육이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어느 초등학교에 걸린 무시무시한 현수막...)


이제 더이상 일제고사 시험이 교육을 위한 것이라느니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느니 하지 말자. 단지 학생들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삶의 현실과 종합적인 교육 상황을 질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일제고사처럼 점수화하고 서열을 매기고, 성적을 공개하는 방식 같은 건 불필요하다. 그건 학생 학교 간 성적 경쟁을 시키려고 할 때나 필요한 짓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제고사를 반대한다. 그리고 일제고사에서 더 나아가서, 수능 내신 등등 입시경쟁, 점수따기에 일그러진 이 교육 같지도 않은 교육을 반대한다.

지금, 시험은 학생들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학생들을 줄세우기 위한 도구이다. 시험이 패자를 만든다. No Test No Loser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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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3. 27. 01:26


작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에 중앙일보에서 1면에 낸,
철도 파업이 한 고등학생 분의 꿈을 짓밟았다는 투의 기사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레디앙에서 그 건에 대해서 다룬 기사가 나왔네요.








중앙일보 기사 조작의 전말

"'철도 파업으로 서울대 불합격' 기사, 사실과 전혀 다른 악의적 조작"



지난 해 12월 4일 <중앙일보>는 1면 머릿기사로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철도파업이 일류대를 진학하려는 어려운 환경의 젊은이의 꿈을 망쳤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각 보수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누리꾼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이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된 기사임이 드러났다”며 관련 증거들을 제시했다.


언론중재위 "직접적인 연관관계 밝혀진 바 없다"

   
  ▲ 당시 <중앙일보> 기사.

언론중재위도 지난 3월 5일 이군의 지각과 철도 파업은 연관이 없다는 요지의 정정보도 할 것을 직권 조정했다. 언론중재위가 철도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언론중재위는 “해당 수험생이 서울대 면접에 늦어 서울대에 불합격한 것과 철도노조 파업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혀진 바 없다”는 보도를 중앙일보 2면에 게재할 것을 직권으로 조정했다.

또한 같은 내용을 중앙일보 인터넷 사이트 조인스 닷컴에도 하룻동안 게재하라고 조정했다. 언론중재위는 이어 만일 중앙일보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매일 100만원을 철도노조에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앙일보 장정훈 기자는 "승차한 역과 시간에서 틀린 점은 있었다"면서도 "이 모군이 면접을 보지 못한 것은 구로역 사고이기 때문에 언론중재위의 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쟁점 1. 이군은 몇시에 어디서 전철을 기다렸나?

중 앙일보는 12월 4일자에서 "이군은 27일 오전 7시 소사역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렸다"면서 "10분, 20분, 시간은 흘러가는데 열차가 오지 않았고 그때 '구로역 전동차 사고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철도노조는 이 부분부터 거짓이라는 입장이다. 구로역 사고가 난 시각은 오전 7시 44분으로 그 이전까지 철도는 정상운행됐기 때문에 7시부터 열차가 오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모군도 사건 이후 중앙일보에 메일을 보내 "소사역이 아닌 부천역에서 승차했으며 7시가 아닌 7시 20분부터 전철을 기다렸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도 이 부분에서 잘못이 있음을 시인했다.

쟁점 2. 이군은 어떤 열차를 탄 것인가?

중앙일보는 이후 언론중재위에 보낸 답변서에서 이군이 7시 32분 부천역에서 출발한 K38 열차를 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앙일보는 이 열차가 사고 없이 갔다면 8시 20분을 전후해 서울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앙일보 답변의 요지다.

하지만 이 것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는 8시 15분 입실시간이 지나도 이 군이 도착하지 않자 이군에게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이 군도 구일역에서 서울대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K38 열차는 8시 5분경에 구일역을 빠져나와 8시 8분경 구로역에 접근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따라서 이군이 탄 열차는 K38 열차 다음 열차인 K40 열차를 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옳다. K40 열차는 부천에서 7시 40분에 출발한 열차다.

쟁점 3. 이 모군은 서울역에 몇시까지 도착해야 했나?

중 앙일보는 “이날 이군은 오전 9시에 있을 면접시험을 보러 서울대에 가는 길이었다.(중략)서울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9시 20분이었기 때문에 (중략) 면접은 불허되었다.”고 전했다. 마치 서울대 면접장 도착시간이 9시인 것으로 상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실과 달랐다.

서울대 2009년 수시면접 보조위원은 “애초에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면접학생이 면접실에 입실해야 되는 시간이 8시 15분으로 공지되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서울대 면접 시간은 9시이나 8시 15분까지는 서울대에 도착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쟁점 4. 부천역에서 서울대 면접장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부천역에서 신도림까지 18분, 신도림 환승 시간 10분, 신도림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 14분, 다시 택시 등을 타기 위한 환승시간 8분, 서울대 입구역에서 서울대 도서관 건물 진입시간 등을 고려한 시간 15분(철도노조는 버스 이용 22분, 중앙일보는 택시 이용 10분 주장)을 합하면 65분이 걸린다.

더욱이 이 시간은 아침에 혼잡한 시간 등을 감안하지 않은 시간으로 실제 아침 출근시간은 이보다 5-~0분 정도 더 걸린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전언이다. 이를 감안해 볼 때 이 군이 부천역에서 7시 40분에 전철을 탔다면 당초 서울대 면접 입실 시간 8시 15분은 물론, 서울대가 제시하는 마지막 면접 가능 시간인 8시 45분까지 입실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쟁점 5. 그 밖의 중앙일보의 말바꾸기 또는 모순

중앙일보는 "승객들이 한꺼번에 몰린 버스 승강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이군은 서너 대의 버스를 놓친 뒤 가까스로 서울대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군은 이후 구일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갔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취재가 전혀 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일보는 또 이 군이 9시 16분에 신도림역에 도착하고 9시 30분을 넘어서 서울대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14분만에 신도림에서 서울대까지 전철을 이용해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면접은 불허됐다."고 보도했다. 마치 이군이 늦었지만 면접장에 도착했으나 서울대측에 의해 면접이 불허된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거짓이었다. 이 군은 "건물로 들어갈 생각도 포기하고 그 자리서 충격으로 잠시 정신이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감"이라고 밝혔다. 아예 면접장에는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철도노조는 "이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는 곧바로 각 보수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라며 "철도파업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켰다"고 분노했다. 철도노조는 또 "이군의 미래를 위해 그냥 넘어가자는 내부 의견도 상당수 많았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놔둘 경우 이 조작기사를 계속 이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03월 26일 (금) 17:33:15 윤춘호 현장기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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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간을 달리는 이군!?

    2010.04.01 19:41 [ ADDR : EDIT/ DEL : REPLY ]
  2. 리잔느

    ㅋㅋㅋㅋㅋㅋ 아 이 기사.. 기억난다. 역시나........ ㅋㅋㅋㅋ

    2010.04.13 20:3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