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 8. 25. 12:55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그들은 2013년에 다시 촛불을 들었을까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촛불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2008년의 촛불 청소년의 현재 2013년의 촛불 집회 참가 여부,

그 청소년들의 현재 상황 등을 추적한 기사.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조직적, 운동적 현상이 아니라 개인적 참여 경험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아, 두 번째 링크한 기사는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기사이니 참고 삼아 보시길.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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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6. 19. 16:16


“미성년자”, “아이들이 무슨 죄냐”, “촛불소녀” 그 공통점



완고한 청소년 차별/대상화/보호주의

  ‘그들’은 이야기한다. 촛불집회를 처음에 시작한 주역은 청소년들이었다고. 청소년들은 대단하다고. 청소년들은 역사적인 주체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한다. 청소년들이 기특하고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어른들이 해주겠다고.
  집회현장에는 아이들/청소년들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혼재해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그들을 대상화하려고 한다. 내 눈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과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축소시키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예외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어른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두려는 마음들이 엿보인다. 반드시 어른들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집회현장의 많은 청소년들도 그런 사고방식들을 내면화하고 있다.
  그렇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청소년들에 대한 태도는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수적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랬다. ‘미성년자’(차별적인 표현이다.)는 부모 동의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촛불집회 웹홍보물, 밤 10시 이후에 ‘미성년자’는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방침,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눔문화의 종이피켓과 집회현장에서의 구호들, 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는 백안시하면서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지지하는 ‘여론’, 등교거부를 포함하여 청소년들의 행동을 알리는 홍보물을 삭제하는 안티명박카페와 정책반대시민연대 카페 운영진, 예비군들의 여성과 청소년 등은 뒤로 물러나라는 폭력적인 방식들, 집회가 경찰과의 충돌로 좀 위험한 상황이 될 거 같으면 가끔씩 다가와서 말을 걸며 위험하니까 그만 집에 가라고 반말로 말하시는 어르신들, 연행자들 중에서 ‘미성년자’는 석방하라는 구호들, 연행되는 여성 청소년의 사진에 사실과 무관하게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캡션을 다는 기사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대상화는 완고했고, 그 완고함은 청소년들의 ‘도전’조차 ‘흡수’해버렸다. 밤샘 가두시위가 경찰의 연행 등으로 대충 소강상태에 빠지고 시청 광장에 마련된 소규모 자유발언-토론의 장에서 한 청소년이 청소년들에게 반말을 쓰는 사례,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구호, 위험하다고 ‘미성년자’는 가두시위 중에 일찍 집에 가라고 하던 사람 등을 예시로 들면서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대할 것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에 대해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그 박수와 환호가 그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년이 나서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응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나☆문화의 손피켓을 패러디하여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락카로 거리에 글씨를 새겼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 문구를 본 촛불집회 사회자는 “자신들이 지켜줄 테니 어른들은 마음 놓고 촛불을 들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하자.”라는 식으로 진행 중 발언을 했다. 연행되었던 청소년이 쓴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이라는 글을 비롯하여, 청소년들이 자신의 주체적인 면을 강조하고 촛불 속에서의 차별과 보호주의, 대상화를 비판한 표현들은 오히려 어른들이 더 미안해하고 더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인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이라도 그런 청소년들의 문제제기에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좀 우회해서, 패러디해가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그들에게는 ‘도전’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기특한 행동이거나 재롱이었을지는 몰라도.

“촛불소녀”에 거는 태클

  이런 상황에서 나눔☆화의 “촛불소녀”가 등장했다. 촛불소녀가 설령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획이었다고 하더라도, 촛불소녀는 그런 식으로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기존의 여성 청소년들의 약자로서의 이미지(‘촛불’이라는 상징물과 결합하여 더욱 강화된)를 재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촛불소녀, 촛불백수, 촛불노동자, 촛불대학생, 촛불국회의원… 이런 말들을 만들어서 나열해보면 “촛불소녀”가 ‘소녀’로서 가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눔문☆는 여전히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우리들”이란 표현도 문제다.)라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었고, 촛불소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다.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촛불소녀에 대해 많이 궁금하셨죠? 질문이 많아 올립니다^^>라는 글에는, 촛불소녀가 만들어진 것이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해주는 말들이 많다. 그들은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하며, “우리사회에서 가장 순수한 정신과 민감한 감성을 가지고 / 정의와 용기를 간직한 촛불소녀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마지막 희망”이라면서, “아이들의 깜찍하고 용감한 행동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지켜주자고 말하는 것과 KBS를 지켜주자고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아이들을 지켜주자면서 “촛불소녀”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만드는 것이 가지는,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입장을 청소년(촛불소녀)의 이름으로 표방하는 것이 가지는 모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청소년들을 순수하고 특수한 존재로 신비화시키고 있었고, 청소년들을 미래의 존재로 만드는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행동을 “깜찍하다”라고 ‘어른’이 말하는 것 속의 권력을 성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는 진짜 도전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눈치 보면서 빙 둘러 말하던 방식을 포기하겠다.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그것을 성년/미성년(어른/아이) 구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청소년들을 대상화시키고 보호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하질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들은 이 사회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행동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청소년들에게는 미안하고 기특해 하는 태도가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접 도전하겠다. 그런 차별과 대상화에 맞서서 직접 비판하고 도전하겠다. 촛불집회에 나오는 이른바 ‘시민’들은, 이명박 반대를 외칠 때는 함께하는 사람들일지 몰라도, 청소년인권의 문제에서는 단지 ‘시민’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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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결

    공감합니다.
    '소녀'가 있던 자리에 '여성'을 넣으면 그대로 저의 입장을 말하는 글이라서요.
    ㅇㅇ녀, 여ㅇㅇ로서 불릴 뿐, 독립된 호칭을 얻을 수 없는 대상으로서, 이 사회의 인식의 틀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을 잘 이해합니다.

    참고로, (대체 몇 살부터 어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정해진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저는 이른바 어른들 중 하나입니다.

    2008.06.19 20:33 [ ADDR : EDIT/ DEL : REPLY ]
  2. 퍼갈게요 공현님

    2008.06.20 09:34 [ ADDR : EDIT/ DEL : REPLY ]
  3. 좋은 글이네요!!
    다음에 만나면 촛불소녀에 대해서 조금 더 물어보게씀.
    잘 안다가오는 면들이 가끔 있어서 ^^.

    2008.06.22 00:39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6. 9. 14:01
*
6월 7일, 종로에서 "쥐덫놓기" 1인시위를 하고 나서(사진은 사진기를 다른 사람 가방에 맡겨뒀는데 못 찾아서 나중에 업로드)
시청광장에서 문화난장도 같이 하고
인권단체 천막에서 경찰폭력 대응 카드도 접고
청소년 피켓도 들고 있고 오승희 호외 등도 나눠주고 하면 노닥거리다가
저녁에 행진을 했다.
사람이 끝도 없었다. 숭례문 어귀에서 다른 일행을 만나려고 잠시 행진 옆에 비켜서서 서있었는데,
원래 우리가 가장 뒤에 처져 있는 쪽이었는데 우리 뒤에도 사람들이 끝도 없이 꾸역꾸역 나왔다.

행진을 하면서 아수나로&나다 사람들은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의 구호도 (우리끼리만) 열심히 외쳤고
뭐 그랬다.
안국동까지 갔다가 경찰차 막혀 있어서 세종로까지 돌아왔다.
돌아와서 할 일도 없어서 맥주 마시고 컵라면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앞쪽이 매우 시끄러워져서
마시던 맥주만 마저 다 마신 다음에 세종로 중심 쪽으로 갔고,
그렇게 언론과 인터넷에서 난리를 떠는 그놈의 '폭력시위' 현장에 있었다.

있다가 나왔다.


*
폭력이라는 말은 너무나 단순하고 선명하다.
폭력시위, 평화시위. 폭력/비폭력. 폭력반대. 얼마나 간단하게 구분짓는 말들인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삭제한 말들인가.

우리는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수많은 맥락들과 기준들을 읽어내야 한다.

*
이 글이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글이 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서울 광화문의 그 현장에 같이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내 감정과 내 논리와 내 질문들을 제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글이 누군가를 '추궁'하는 글인 것은 맞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답을 요구하는 글이다.



*
6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 세종로 사거리 현장은 소화기분말이 마치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고
닭장차는 온통 유리창이 깨지고 바퀴가 빠져서 주저앉아 있었다.

의료진은 소화기 분말을 맞은 사람들은 물 안 마시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어서 물을 억지로라도 마시라고 하면서 생수통을 들고 다니고 있었고
인권단체들의 인권침해 감시단은 사람들에게 물병 던지지 말라고, 물병 던진 거 주워서 경찰들이 다시 던져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다친다고 외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쇠파이프인지 깃대를 부러뜨린 것인지 나무막대기인지를 들고 버스 안을 막고 있는 전의경들의 방패를 (심각하게, 진지하게, 깨지라는 듯이) 두드리고 있었고
버스 위에 올라가 있는 전의경들에게 호스로 물을 "찌끄리는"(이정도 표현이 적절해보일 정도로, 애처로운 물줄기였다;;) 사람도 있었다.


*
폭력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그런 질문에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나는 1차적 책임은 이명박에게, 그리고 경찰에게 있다고 말할 것이다.
청와대로 가는 길만 무조건 사수한다는 방침인지 뭔지,
애초에 행진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바리케이트 같은 걸로 닭장차 지붕 위까지 방어하며 세종로를 막아둔 경찰들,
그리고 전의경들을 위험한 곳에 배치해두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전의경들이 위험한 곳에 있으니 배치를 바꾸라고 아무리 가서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지휘관들',
소화기를 미친듯이(정말 미친듯이) 뿌리고 무조건 사람들을 막으려고만 하는 사람들...


*
사실 나는 닭장차를 부수는 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진하는 걸 막으려고 닭장차를 세워두는 게 폭력일지는 몰라도, 지나가기 위해서 닭장를 끌어내거나 닭장차 철창을 뜯어내고 넘어가려고 하는 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여기서 '폭력'이라는 건 '협의의 폭력'이다. 폭력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의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호스로 물을 뿌리는 건 정말 살수차-물대포에 맞서는 자그마한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병을 던지고(그리고 그 물병이 위치에너지까지 더해서 돌아오고-_-)
쇠파이프 등으로 직접 전의경들을 공격하고
그러는 것을 나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이름붙여진 행위들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그 현장이 폭력적이었다고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들(전의경들과 시위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이 감정적으로 매우 '흥분'되어 있었고, (사실 상황상으로 그럴 만도 하지만)
전의경들이 물병을 던질 때 시위하는 사람들은 온갖 욕을 다 했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밧줄을 던지고 물을 뿌리고 깃대를 휘두를 때 전의경들은 온갖 욕설을 다 했고
그런 것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냉소하거나 욕을 했기 때문이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한 민주적인 통제나 소수의 의견이 개진될 여지조차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적'과 '아'를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하게 구별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쇠파이프로 때리고 방패로 찍는 것도 폭력이지만, 이러한 상황 그 자체가 광범위한 폭력을 구성하고 있었다.



*
그러나 폭력의 책임을 묻는 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상황에서-
차라리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왜 이 꼴인지부터 물어야 할 텐데

나는 촛불시위가 '변질'되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때 그 상황을 내 스스로 견디기 어려웠을 뿐이다.



*
나는 동기에 대해 묻고 싶다.

안국동에서 경찰버스에 막혀서 행진이 답보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민주노동당 깃발이 많이 펄럭이던 곳에 있던 사람들이 '골목으로 청와대에 가자'라고 외쳤고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 중에 두 사람도 그쪽을 따라갔다.
그때 상황이 정신이 없어서 묻지 못했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왜 어떤 생각에서 그들과 함께 갔는지 묻고 싶다.

또한 세종로에서 상황이 점점 가열되고,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런데도 닭장차는 끌어내려고 하고 (더 위험하다.)
경찰이 직접 진압(또는 연행/체포)될 가능성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시청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시청으로 다 같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도중에 세종로 중심에서 환성이 터지자(아마 닭장차를 끌어낸 거라고 추측한다.)
다시 거기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또, 그 사람들은 전화를 해서 시청광장으로 오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좀 더 "구경"한다고 하거나 좀만 더 "보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왜 어떤 생각에서 거기로 돌아갔는지, 그리고 어떤 구경을 하고 싶었는지 묻고 싶다.

항상 폭력의 최전선에서 '몸빵'을 하고 있는 동지에게, 거기에서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다.



*
폭력의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
폭력의 현장의 최전선에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거나 폭력의 한 관련자가 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가?
혹은 자극적인 어떤 폭력에 대한 흥미와 관심과 호기심 - 그것이 직접적인 '쾌'이건 일종의 '숭고'(sublime)이건, 혹은 비탄이건 - 의 충족을 욕망하고 있진 않은가?
일상과 다른 것, 색다른 것을 원하고 있진 않은가?
어떤 '역사적'(역사가 종종 폭력적이라는 것은, 폭력적인 것은 역사라는 역으로 대치된다. 역사를 구성하는 강렬한 '사건'은 종종 폭력적인데, 사람들은 종종 폭력적인 것을 강렬한 '사건'으로 오해한다.) 순간에서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도망쳤다는 자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가? 현장에 있기 위해서인가?
무력감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폭력을 택하기 위해서인가?

나는 앞서 열거한 이런 것들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여기에서 나는 "올바르지 않은" 이란 말의 사용을 피한다.) 자기만족감 추구라고 생각한다. 폭력의 관망자, 혹은 폭력의 행위자로서 동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 현장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하는 자체에 부정적이진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을 두드러지게 편집하고, 그 편집된 것들을 향유하는 방식에 반대한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그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저런 추측을 해볼 뿐이다.
나의 동기는 폭력적 현장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폭력을 '즐기려는'(여기서 즐긴다는 말은 단순한 '쾌'가 아닌 복합적인 뜻이다.) 마음이나 현장에서 도망침에서의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대개는 그렇게 행동한다.




*
현장을 기록(혹은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해서
다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폭력을 막기 위해서,
(그러나 그 현장에서 폭력을 막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폭력은 보통 매우 압도적인 힘으로 존재한다. 그 폭력을 막는 것은 또다른 압도적인 힘일 수밖에 없다. - 그 힘이 폭력의 형태를 띠건 좀 더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형태를 띠건. 그렇기에 우리는 다수의 거대한 힘을 원한다. 전의경들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이유로 그 현장에 머무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런 일들은 괴롭고 '끔찍'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구경하기 위해 혹은 좀 덜 노골적인 표현으로 보고 있기 위해 있던 사람들에게, 보고 싶어하던 사람들에게, 그러한 목적 의식이 있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모르니까 묻고 싶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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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8.06.10 01:28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곳에는 폭력 뿐만이 아니라, 구조화된 폭력을 넘어서려는 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 상황을 구경했던 사람들은 폭력을 보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그 넘어서려는 힘을 보고 싶어서였는지 하구요.

    2008.06.12 11: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당일 현장에서는 분명히 컨테이너, 또는 폭력을 넘어서려는 힘이 있었지요 @_@
      하지만 그것이 6월 8일 새벽, 닭장차를 끌어내고나서 경찰들이 '진압'을 한다며 들이닥치는 순간에도 있었는지는-;

      2008.06.12 12:04 신고 [ ADDR : EDIT/ DEL ]
  3. 비밀댓글입니다

    2008.06.12 11:34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6. 2. 14:32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의 사람들은 거리행진을 계속하고있다. 경찰은 이것이 신고하지 않은 불법집회라고 주장하면서 행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해가고 있다. 연행된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얼마 전에 또 연행된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가 뜨면서 인터넷이시끌시끌하다.
  기사의 내용은 주로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학생들', '"집에 가고 싶어요" 여중생의 눈물', '"미성년자는석방하라!"… 끝내 모두 연행' 등의 내용이다.
  나는 최근 촛불집회와 가두시위에 몇 차례 참가했던 청소년으로서,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시위 때 경찰에연행도 한 번 당했었던 청소년으로서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미성년자 연행'에 대한 언론의 시선은, 무고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연행해가는 상황에 대한 것보다는'연약하고 어린 여중생', '눈물 짓는 어린 학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사를 보면,'여중생'으로 보이는 10대가 연행버스 창문을 통해 "집에 가고 싶다"라고 외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들을연행해갔다, 는 내용인데 현장에 있던 당사자로서 말하자면 사실 그 때 그 청소년은 "집에 가고 싶다"가 아닌 "평화시위보장하라" 등 촛불집회의 정당함을 알리는 얘기를 외쳤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여중생, 중학생'이라는 이미지(?)로"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못미"라는 목소리를 담고서 '중학생', 어린 학생' 등 '약한 자의 이미지'로 비치게끔 내용을보도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을 그저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청소년을 청소년 그 자체로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서 나는 문제를 느끼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하고 직접자기 요구를 말하는 것에 "미성숙하니까", "위험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한계를 두고 비청소년들이 그걸 대신 해주려고한다거나 하는 것은 청소년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어떤 면에서는 청소년들을 차별하게 되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부당한 연행 자체보다는 '저 어린 애들'까지 연행해가는 것에 더 분노하고 있다.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저 어린 애들'까지도 거리로 나오게 내모는 정부를욕하며,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한정지으려 한다. 여성과 남성 등 성별의 차별이 부당한것처럼, 청소년과 비청소년도 차별당하지 않는 평등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 집회에서 시간이 늦어지거나 전경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청소년들은 그만 집에 가지 그러냐"고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니까' 못하게 하는 '보호주의'의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고,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자주 눈에 띄는 문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내 친구는 "어른들이 무슨 죄냐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을 만들어서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위험한 건 다 같이 위험하지 않은가? "미성년자는석방하라!"는 얘기도, 결국 '미성년자'에 대한 평소의 좀 차별적인 상식에 근거한 것일 뿐, '미성년자'만이 특별히석방되어야 할 논리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우리 이제 "왜 우리만 풀어주냐. 모두 다 석방하라."라고 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참여하거나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우리의 삶을 지키자", "서로를 지켜주자"는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었으면좋겠다.
 

난다
(성남 청소년인권모임 인지인,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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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정대

    동의합니다.
    퍼갑니다.

    2008.06.02 23:19 [ ADDR : EDIT/ DEL : REPLY ]
  2. 글 잘 읽었습니다.
    청소년, 학생들을 말 그대로 동지로 보고 말 그대로 함께 연대하기에는 현실적인 인식의 벽이 큰 것 같습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소위 청소년의 역할은 분명 큽니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프랑스 68혁명의 사례가 나오는데, 프랑스의 대학 평준화는 이 당시 함께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권리를 강하게 외친 10대들이 쟁취해 낸 것이라 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성취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해방구에서 청소년들의 권리가 더 크게, 더 많이 소리쳐졌으면 좋겠네요.

    2008.06.02 23:21 [ ADDR : EDIT/ DEL : REPLY ]
  3. 달군

    완전 공감. 보호주의 =ㅗ= 문제에요.

    2008.06.03 18:1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