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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4 『오버 더 호라이즌』 : 지금 여기 삶에 대한 사랑
  2. 2009.05.28 이영도를 복기하면서
흘러들어온꿈2010. 4. 24. 16:06




『오버 더 호라이즌』. 2004년.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만일 나에게 이영도의 장편소설 중 사람 홀리기로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별다른 주저 없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꼽으라고 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와 『오버 더 호라이즌』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이영도가 쓴 판타지 소설 단편집이다. '오버 더 ~' 시리즈 3편이 수록된 앞부분과, '어느 실험실의 풍경'이라는 카테고리로 3편이 수록된 뒷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 「오버 더 네뷸러」, 「오버 더 미스트」 세 편으로 구성된 앞부분은 하나의 세계관과 같은 등장인물들,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연속성을 가진 작품들이다. 「골렘」, 「키메라」, 「행복의 근원」은 이영도의 데뷔작인 『드래곤 라자』에서 역사 속 인물로 등장하는 핸드레이크와 그 제자 솔로쳐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버 더 ~' 시리즈가 평범한 위트와 이야기가 적절히 섞인 단편이라면, '어느 실험실의 풍경'은 철학적인 고찰을 대마법사의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유머러스한 해프닝으로 적어낸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화장실에서, 또는 울적한 밤에 혼자 읽으며 낄낄거리기 좋다.)

( * 2001년 간행된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에는 「오버 더 오라이즌」 등 외에 『오버 더 호라이즌』에 없는 「아름다운 전통」, 「전사의 후예」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직 구하지 못했다. )


시공간, 여-남, 나에 대한 짤막하고 신선한 고찰들

  이 중에서 '어느 실험실의 풍경'에 속하는 세 편은 흥미로운 생각거리들을 담고 있다. 「골렘」은 시공간의 분절성을, 「키메라」는 여자와 남자를, 「행복의 근원」은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핸드레이크와 솔로쳐의 실험을 빌어 탐구한다.

 「골렘」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새로워보이는 통찰을 담고 있으나, 나의 경우는 이미 오래 전에 생각했던 문제이고(잘난 척 아님!) 또 '언어의 분절성' 같은 개념을 다룰 때 이미 곧잘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상황 설정 등에서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고 그렇게 유머러스하고 재미있지는 않기에 세 단편 중에 가장 덜 인상적이었다고 평하겠다.

 「키메라」는 작가가 페미니스트라는 평가가 나올 법도 한 이야기인데, 내가 보기엔 그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현재 세상 남정네들에 대한 위트 있는 자조에 가깝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행복의 근원」인데, 세 단편 중에서 가장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이야기여서 그렇기도 하고, 그 주제의식의 비범함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나는 네가 주는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네게 너를 선물할 수도 있겠지요."라는 존재의 관계성에 대한 의식은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고 말한 『드래곤 라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도 같다.




지평선과 성운과 안개 너머에 있는 것

  그러나 이 단편집 전체를 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표제작이 "오버 더 호라이즌"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버 더 ~" 시리즈들이다. '오버 더 ~' 시리즈는 각각 '악기 살해자', '마법사', '개양이 미확인 생명체'라는 다른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적인 주제의식/테마가 일관되게 존재한다. 그것은 일종의 휴머니즘이라고 불릴 만한 것인데, 굳이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여기 삶에 대한 사랑'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에는 '호라이즌'(영어로 horizon. 지평선, 수평선이라는 뜻)이라는 엘프가 나온다. 호라이즌은 지평선을 넘기 위해서 악기를 연주하고, 그 결과 악기를 '죽이는'(그 악기로 다시는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악기살해자'이다. 지평선을 넘는다는 것은 은유적으로 지금 이 세계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호라이즌(지평선)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라이즌의 삶의 목표는 '지평선(=호라이즌)을 넘는 것'뿐이며 이를 위해 어떤 것도 불사한다. 실로 구도자적이다. 티르는 바이올린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치고 호라이즌이 찾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런 호라이즌과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오버 더 호라이즌」이라는 제목은 지평선을 넘으려는 호라이즌를 가리키는 표현인 동시에, 바로 그 '호라이즌'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주인공인 티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건 연주될 필요 없습니다. 조용히 입 닫아야 됩니다." "왜지요?" "사람을 죽이니까."(pp.90-91.)
  "자넨 악기뿐만이 아니라 자네 자신도 죽이고 있어. 지평선을 넘을 순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보인다고 해서 전부 다 닿을 수 있는 건 아냐."(p.112.)

  호라이즌이 바라는 것, 지평선을 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삶이고 생명이고 호라이즌이 벗어나려고 하는 이 세계다. 티르와 호라이즌의 대립구도 속에서 티르는 이 세계의 가치와 삶을 긍정하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쳐서 도시를 떠나서 팔려고 했던 티르가 어느 시점에서 마음을 바꾸고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쳐서 팔 생각을 버린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스레일치퍼티'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분쟁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바뀌었을 수도 있고, 호라이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이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주제의식을 다소 모호하게 드러낸 데 비해, 「오버 더 네뷸러」와 「오버 더 미스트」는 그것을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오버 더 네뷸러」에서 티르는 수천년 수만년 동안 '마술'을 축적시키고 발전시켜 공간을 지배하고 저 성운까지 닿을 수 있을 가능성보다도, 바로 지금의 삶, 세상을 파괴하는 마법사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션을 죽인다. 「오버 더 미스트」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권력다툼에 휘말리며 '재앙의 징조'가 된 '개양이 개(천사)와 고양이(저승사자) 사이에 태어난 미확인 생명체'를 살려준다.


  "사카 둠바에서 까로 트랙스까지 7400년. 그리고 션 그웬에서 이름을 모를 누군가까지의 수만 년. 어떻게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찬성을 보내겠어. 그리고 내 짧은 팔이나마 그들의 어깨에 걸어 함께 걸어갈 거야."
  "그들?"
  "서로 손가락을 깨무는 것을 삼갈 줄 아는 자들의 곁에서."
p.207.

  '왜 즐거워하지? 또 변신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이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이지만,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남아줘. 내가 즐거워하는 것은 저승사자와 천사 때문이야.'
  '저 동물들의 무엇 때문에?'
  '살아나려고 하고 있거든.'
  ... (중략) ...
  "힘들게 깨달았습니다. 그 새끼들은 태어난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pp.326-327.


  지평선보다 더, 성운 너머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삶이다. 혼란스러운 안개 너머에서 분명한 것은 살려고 하는 것, 태어난 생명이다. 이 텍스트는 '지평선을 넘는 것', '성운 너머에 도달하는 것', '불길한 징조' 등등의 거대담론들을 배척하고, 지금 여기의 삶과 현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일견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삶과 현실에 대한 긍정과 사랑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는 불가능하다. 현실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먼저 봐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폴라리스 랩소디』(2000) 8권 마지막에 실린 송경아 씨의 해설을 보면, 송경아 씨는 작가[이영도]가 비인간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인간에게 냉소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평한다. 『오버 더 호라이즌』에 실린 '오버 더 ~' 시리즈들은 그런 송경아 씨의 지적을 수용한 것처럼(시간적으로 볼 땐 또 딱히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작가의 태도는 이후 『눈물을 마시는 새』 등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영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은 『오버 더 호라이즌』이다.



  비평을 마치며, 마지막 인용으로 「오버 더 네뷸러」에 나오는 오크 경전어를 적는다.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영웅, 현자, 성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멍청이, 얼간이, 바보."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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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꿈2009. 5. 28. 19:08


『드래곤 라자』를 복기(라고 하는 게 맞을까?)하고 있다.


직접적인 동기는 『그림자 자국』을 읽기 위해서다.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맞아 황금가지가 드래곤 라자 애장판을 내놓으면서 이영도한테 애장판에 실을 후속작, 속편 같은 걸 부탁했는데, 이영도가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써서 줘버려서 탄생했다고 하는 책. -_-;;

그래서 『그림자 자국』을 읽으려고 대충 훑어보니까
아니 도대체 기억이 안 난다;; 이루릴이라거나 아프나이델이라거나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캐릭터' 였는지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드래곤 라자』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걸 처음 읽은 게 2000년인가 99년인가의 추석이었으니까
거의 10년만의 복기다.

『눈물을 마시는 새』처럼 사서 모셔놓고 두고두고 읽고 싶지만 그럴 돈은 없어서 일단 대여점 신세를 지면서 한 권 한 권 돌파하고 있다.
(돈만 생기면 애장판 세트로 지르는데 -_-;
이번 달에는 『헬로우 블랙잭』13권을 폐업한 대여점에서 질러버려서 돈에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림자 자국』 외에도 『드래곤 라자』를 복기하는 이유들이 또 있다.

나의 중학교 이후의 사유 중 1/4 정도는 이영도가 자신의 소설에서 제시한 질문과 논의들을 붙들고 싸우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는 철학사와 사상사에 대한 공부, 그리고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의 간극들을 넘지 못해서 바둥거리고 있는 요즈음에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내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모조리 이영도를 읽히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발상인데,
뭐 그건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무시하더라도-

여하간 나 자신의 생각의 흐름이 형성되었던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건 요즘 좀 많이 힘들어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이나 만화는 분명 현실 도피 기능이 있다.)

『퓨처 워커』는 별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폴라리스 랩소디』, 『피를 마시는 새』는 꼭 다시 전권을 읽고 싶은데, 『폴라리스 랩소디』는 집에 4권인가까지밖에 없고... 『피를 마시는 새』는 눈마새의 두 배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하는 대작이라서 언제 다 사서 볼지 ㅎㅎ ㅠㅠㅠㅠㅠㅠ



# 네이버에서 연재된 이영도 단편 「에소릴의 드래곤」도 심심풀이로 읽어볼 만하다. 기존의 판타지 서사를 가지고 노는 듯하고 조금은 풍자적인 작품이지만, 그러면서도 생각할 꺼리들을 두세 가지 쯤 던져준다.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394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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