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7. 4. 19. 15:12

이것도 노동이다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영롱.명수민 지음, 교육공동체 벗, 2016) 리뷰



운동 사회 안의 해묵은 이야깃거리로,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화제가 있다. 최근에는 열정노동/열정페이 비판 등이 여론에 대두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노동자지!’ 하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원론적으로는 맞다. 운동의 과정에서 하는 일들도 노동이다. 단체와 계약하여 정해진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더욱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나는 이게 그렇게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자명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재정 상황 상 오랜 기간 상근활동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단체 규모가 커지고 후원금을 모아 상근활동가를 새로 두기로 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회원 중 몇 명이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상근활동가가 그냥 회원이었을 때 통상 참여해 왔던 정기 회의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상근활동가로서 하는 노동인가, 아니면 회원으로서 하는 활동인가? 이런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좀 더 근본적으로는 상근활동가는 왜 돈을 받고 단체 일을 하는데, 그 외의 회원들은 돈을 받지 않고 무급 봉사로 단체의 일을 하는지부터가 고민스럽게 된다.


  조금 다른 길로 빠져 보자면, 노동자의 임금은 양면적인 성격이 있다. ‘(노동시간 또는 그 성과)에 대한 대가라는 측면과 생존과 노동력 재생산 보장이라는 측면이다.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의 노동과 그에 대한 임금은 후자의 측면이 좀 더 강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른 많은 자발적인 무임금 노동/활동/운동들 때문에 일에 대한 대가라는 식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참여가 모두 대가를 지급받아야 하는 임노동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스럽다.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자. 사실 이 질문에서 노동자, 문자 그대로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역사적 환경 속의 임노동자를 뜻한다. 법과 판례를 참고하면, 노동자는 사용자/고용주의 감독·지휘 하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구체적 상황은 단체마다 천차만별이긴 한데, 적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들은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라고 하기 어렵다.


   가령 사용자/고용주가 별도로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따로 감독이나 지휘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 또는 그 이상의 노동을 단체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가는 것은 맞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있거나 자기감독자기착취(꼭 나쁜 의미에서 쓴 말은 아니다.) 식으로 노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 등에 더해서, 이처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면 자영업자에 가까운 건가 하면, 또 정해진 임금을 받지 단체가 활동이 잘 된다고 해서 돈을 더 가져간다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나, 총회 등 단체의 의결 기구에 그 고용이나 활동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노동자에 가깝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영리 기업과 달리 그 활동의 수혜자나 대면하는 대중이 시민사회단체의 수입처가 되는 곳(후원자들이나, 극단적으로는 정부 및 기업 등 기부처나 프로젝트 발주처)과 다르다는 특징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들도 있다. , 피터 드러커 식 개념으로는 본질적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잘 알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예를 들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는 단체마다 상황이 매우 다르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으로 넓혀서 보면 실로 각양각색의 조직 구조와 노동 환경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영역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단지 노동법 준수의 문제나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같은 이야기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다각도에서 바라보기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청년들의 사회적 노동 경험에 대해 2014년에 진행한 연구를 재가공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노동이란 의미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내려는 의지와 실천, 협상을 동반한노동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공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가려는 길은 그러한 현장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청년들이 좋은 노동’(공익적이고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 노동자가 행복한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을 기대하며 사회적 노동에 찾아오고, ‘좋은 노동에 대한 질문을 계속 붙들고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의 의미나 성격이나 좋은 노동의 요건 자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려고 한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의 장점은,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을 노동의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면서도, 그 노동조건의 열악함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살피며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이 영역에 남아서 계속 일하고 있는가묻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에필로그 청년들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가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곧 이 책을 낳은 문제의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하도록 만들었을까?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고 소진시키고 있을까? ‘그럼에도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걸까? 더 좋은 노동과 사회를 향한 어떤 형태의 바람과 기대, 혹은 어떤 열망이 그들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현장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도 다층적이며 복잡하게 경험되고 있을까?” (240)

 

   그래서인지, 이 책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라는 주제를 시종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가령 1장에서는 노동, 활동, 운동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사회적 노동의 양태를 파악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하는 일은, 노동이기도 하고 (사회적) 활동이기도 하며 (정치적)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책 속에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노동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회피한다는 지적도 담겨 있지만, 동시에 활동과 노동을 엄격하게 구분했을 때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회 변동 속에 운동의 개념이 약화되거나 혹은 불명확해지고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읽힌다.


   4모순과 함께 일하기에서는 사회적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가치의 충돌이나 중첩을 보여 준다. 자율성과 타율성, 공동체적 조직 문화와 일의 효율성, 우리 좁히기와 우리 넓히기, 자립과 의존 등 가치 사이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기록한 내용에는, 과연 무엇이 좋은 노동인지, 사회적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당위적 가치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복합적 경험들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리뷰는 사실 이 책의 주제와 관점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작은 운동장 안에 들어와 막상 부딪혀본 세상은 꽃밭이 아니라 또 다른 고난이었다. 선의에 기댄 채 생활의 어려움은 애써 외면해 보려 했으나, 반복되는 삶에 지속적으로 덧대어지는 더께는 결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은 결국, 그들의 선택을 후회한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70년대 산업화의 격랑을 단기간에 거쳐오며, 더 나은 노동을 찾아내는 것에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다. 첫 번째 책인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그 증거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1213&CMPT_CD=C1500_mini)


  이 책은 단지 좋은 노동을 찾아서 온 사회적 노동 현장에도 좋은 노동은 없었다라는 서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원래 연구 보고서에서 출발해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인지 읽기 어려운 부분들이 왕왕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책의 내용에서 사회학자의 개념 등을 많이 인용해 오고 있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는, 서문에서부터 피로 사회등으로 대표되는 ‘OO사회논의가 이어져왔던 점을 거론하고 있는데, 지난 몇 년간 그러한 논의를 따라오며 읽어오지 않았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그러한 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는 부분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축적된 담론이나 개념들을 이미 독자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 자체가 학문적 영역에서 탄생한 글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노동을 위해

 

사회적 노동은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노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 자체가 복합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라고 말하고 그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말을 막고 현상을 유지하자는 소극적인 자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인지, 좀 더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막바지에서 우리에게는 완벽한 출구도 섣부른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243)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될 것임을, 삶을 지속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나는 첫 번째로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에 필요한 변화는 투명성 강화라고 생각한다. 노동 문제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문화를 없애고, 노동 조건과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공개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는 일을 하는 노동자/활동가들에게 진입 과정에서부터 이를 공개하고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며, 2차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이 영역의 현실이 이러함을 열어놓고 문제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기대가 어긋나서 생기는 문제를 줄일 수 있고 개선할 길도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운동 사회’(혹은 사회적 경제 사회/네트워크’)의 문제 인식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개별 단체나 협동조합 등의 수준에서는 자원의 한계가 많고 당장의 선택지도 적은 경우가 많다. 비슷한 여건에 놓여 있거나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위들 사이의 네트워킹과 연대를 통해서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문제나 세대 간 소통, 조직 문화 및 조직 내 민주주의와 같은 문제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로 더 문제를 확대하면, 전 사회적 공동 책임을 논의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노동영역에서의 여러 문제들은 다중적 의미에서 사회적이다. 예컨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청년 세대의 문제나 세대 간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여러 지점들은, 단순히 세대 간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청년 세대가 겪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나 전 사회에서 정치적 변화의 전망이 약화된 문제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노동, 전 사회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공익적인 성격의 일을 하지만 이 때문에 투여되는 노동에 비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은 한정되는 성격이 있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가치 있는 공익적 일이라는 합의가 가능하다면, 이에 대해 좀 더 사회적인 공동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제도적인 지원이나 공간 등 인프라 구축의 형태가 되었든, 좀 더 풀뿌리적인 연대의 형태가 되었든.(‘예술인 지원 제도가 가능하다면 활동가 지원 제도는 왜 불가능한가?)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고 한 생각은, ‘사회적 노동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의 문제와 별개로 볼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경제·교육·주거·문화·복지 등의 문제와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적 노동 영역만을 따로 놓고 이것이 좋은 노동인지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사회적 노동 영역에서의 예시들은 문제점과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모델이자 창구이다. 결국 우리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으며 나 자신에게도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우리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꼭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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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9. 9. 00:50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가 부당하다는 문제 제기에 관심을 보이는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면 마지막으로 꼭 요구하는 사항이 있다. "지금 현재 여전히 강제적으로 급식당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학교가 어디입니까? 그 학교를 밝혀주십시오. 학교급식 실태를 모니터링한 자료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를 폐지한 이후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나는 이러한 당혹스러운 질문을 접할 때마다 현재 사회운동이 얼마나 NGO의 역할을 넘어서는 위태로운 경계에 있는가를 실감한다. 현재 시민 단체들은 (프로젝트 형식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통계자료를 만들고, 정책 대안을 모색하며) 정부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대행하고 있다. 그 일들은 돈을 받지 않는다 해도 국가가 해야 할 업무를 나서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NGO의 역할이란 가령 화재가 나서 피해를 입기 쉬운 곳이 있다면 그 위기 상황을 알리고 공론화시켜 국가가 이후 소방 대책을 정확히 세울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업무인 소방 대책까지 NGO에서 세우고 있는 것이다. 소방 대책까지 마련할 수 있는 사람만이 화재 신고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NGO가 국가 업무까지 대신하다 보니, 그 안에는 작은 국가 공무원 조직을 능가하는 유능한 인력과 더불어 그 인원이 활동할 넓은 공간도 필요하게 된다. 넓은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려면 사무실 관리비용과 활동가들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늘어나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재정 사업이 주요 사업의 일부를 차지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중략)...

     그리고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은 학교 실태 파악이나 일상적인 감시 감독 같은 다양한 사업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일들은 국가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조주은(2007).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pp.40-42에서.
1장 비난과 낙인의 피해의식. #05 경계를 가로지르는 운동을 둘러싼 고민과 실천.





저는 예전부터 설문조사, 실태조사, 의견조사, 이런 거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제가 활동하는 단체들 안에서 누누히 말해온 적이 있습니다.

일단은 여기 인용한 조주은 씨의 글과 같은 이유가 가장 크지요.

사실 교육정책을 시행하면서, 그리고 학생들의 현재 인권 상황에 대해서 먼저 점검하고 실태를 조사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은 정부입니다. 그런데 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행한다는 게 기분이 나쁜 것도 있구요.(사례 수집 정도라면 신고를 받고 대응하면서 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선다, 라는 게 말이죠.)

그리고 이 양적 조사 사업이라는 게 돈이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갑니다. 설문지 인쇄하고, 보내고, 수합하고, 코딩하고, 값입력하고, 분석하고...
(질적 조사도 능동적으로 긴 시간 하게 되면 돈 많이 드는 건 똑같지만요)

아수나로처럼 돈도 없고 일손도 없는 단체에게 어울리는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설문조사나 의견조사를 해서 그걸 발표하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건 뭐랄까요-
"우리는 대중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의 운동이잖아요?
근데 영 그런 건 성격에 안 맞아서 -_-;;;
그냥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 우리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이야기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게 청소년인권운동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그런 우리의 생각들이 얼마나 잘 전달되게 적절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야 뭐 있지만요.

설문조사를 해서 뭐 지금 청소년들이 가장 바꾸고 싶어하는 문제는 이거다... 라는 식으로 발표하는 운동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솔직히.
단 한 사람이라도 인권침해에 문제제기한다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그런 방식의 운동이 청소년들을 설문조사나 의견조사에 답하는 것 정도로 의사표현하는 존재로 만든다는 생각도 있고.






사실 지금 제가 맡아서 하고 있는 실태조사 사업은 좀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제안한 거지만;)
2006년 이후로 사실 학생인권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적이라고는 전교조 지부 등에서 지역적으로 소규모로 조사한 것밖에 없고...(수도권에서 광범위하게 참교육연구소가 시행한 학생인권 실태조사도 2006년이더라구요?)

지금 시점에서 학생인권 상황이 어떤가 궁금하긴 한데
그리고 이게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에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궁금한데
그걸 조사해주는 곳이 아무데도 없잖아요.
교육부나 교육청이 해줄 것 같지도 않고.... 뷁뷁
희망에서도 사실 학생의 날 맞아서 제일 바라는 게 뭐냐, 이 정도로만 조사하지 학생인권 실태 전반을 알아본단 식으로는 조사를 잘 안하니까.

또, 2006년에 교육전략21인가 하는 데서 인권위 프로젝트 받아서 조사한 조사는
대체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체벌을 경험한 학생이 6%밖에 없다고 나오고.(이게 가능한 수치인지 -_-;;;)
조사 항목 같은 것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뭐 교칙 전반에 대한 수용 정도나 징계 방식에 대한 의견이나 그런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대표적인 학생인권 침해라고 꼽히는 것들에 대해 꼼꼼하고 명확하게 질문을 제대로 안했더라구요.


어쨌건, 그래서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정부가 도저히 하지를 않고, 그렇다고 다른 데서 제대로 해주는 곳도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

뭐 학자-연구자적 느낌으로 접근하면 재미있게 분석하고 보고서 써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건 손이 많이 가는 실태조사 진행하면서 그냥 투덜투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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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3. 10. 00:28



열정세대 - 10점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양철북


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양철북 출판사.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2009년 2월 인쇄/발행.
정가 9800원.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등은
http://blog.peoplepower21.org/CivicEdu/21171
여기에서...





#
  나도 만드는 일을 약간 거든 바 있는 『열정세대』를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농성장에 앉아서 다 읽었다.

  참여연대에서 친절하게 우편으로 보내준 『열정세대』를 펼 때, 참여연대 홍성희 씨에게 이 책 만드는 일 때문에 만났을 때 빌렸던 DVD를 아직도 돌려주질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일단 그건 뭐 그렇다 치고(……) (출판기념회나 뭐 그런 게 있으면 그때 돌려줘야겠다;)




#
  우선 제목을 보고 좀 닭살이 돋았다. “열정세대”라.
  “청소년NGO활동 가이드” 이런 딱딱한 제목보다야 낫긴 하지만.

  “열정세대”라는 말이 80년대스럽다거나 구닥다리스럽다거나 뭐 그렇게 느낀 건 아니다.
  오히려 “열정세대”라 그러니까 무슨 최근에 지하철 같은 데서 나오는 젊은이들이여 도전정신을 가져라, 뭐 그런 공익광고 같은 느낌이 든다. 일종의 체제내적인 세련됨이랄까.
( 어쩌면 약간 참여연대 사무실 건물 같은 느낌? -_-; 흠 그거랑은 또 좀 다른가... 어쨌건 책 내용을 보면서도 좀 참여연대가 위치한 정치적 포지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부 글 같은 경우는 초안과 다르게 좀 덜 빡세게(??) 수정한 거란 이야길 언뜻 들었던 듯도. 그게 참여연대가 부담스러워 한 건지 양철북이 부담스러워 한 건진 모르겠으나-)



  그런데 과연 지금의 청소년들이 “열정”을 자기 삶의 중심에 품고 있는 세대이긴 한 걸까?

  아니, 그래, 그 ‘청소년들’이야 어떻든, '이 책에 나와 있는 청소년들'은 “열정”을 가슴 속에 품고 있긴 한 걸까?
  내 룸메이트이자 이 책의 첫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따이루의 경우에, 이 녀석은 과연 그 가슴 속에 “열정”이 넘치고 있나?


(따이루 사진 -_-)

  운동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열정으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대개 운동이라는 게 일종의 운명적인, 아니면 숨쉬는 듯한,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시작하고 계속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일반론적으로, 보편적인 정의라거나, 열정이라거나, 그런 건 사후에 정당화하고 갖다붙이는 것만 같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그렇기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이고 만다.

  애초에 “열정”이라고 하면 뭔가 열혈소년만화스럽거나 장인 정신이나 프로 정신,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꿈’ 같은 말이 등장해야 할 것 같잖아!!!!!!



#
  책 머리글에는
  “우리가 만난 십대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싸워서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옳다고 판단하면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라고 붙이고 있지만,

  글쎄 오히려 민주주의를 싸워서 쟁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온 여러 사람들이라고 느꼈는데...;
  이런 식으로 미시적으로, 생활 속에 이미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약간은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라는 부제는 꽤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열정" 쪽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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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08년 촛불집회 정세를 배경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은 촛불집회와 그리 큰 상관이 있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촛불집회에서 주역이었던 십대들을 탐험하고자 한다", 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책 내용은 촛불집회와는 별 상관이 없는 ‘NGO 활동’을 하는 십대들이 더 많지 않나 싶다.
  뭐 그런 것이 지금의 십대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째서 촛불집회가 가능했나 하는 촛불집회의 배경과 십대 내부의 동인을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한 공통점, 단일한 성격을 지닌 집단으로서의 십대(사회적 취급이나 규정이 아니라)라는 게 과연 성립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나로서는 그런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 쩝.


#
  그리고 촛불집회 관련 챕터에서는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던 건 역시 여기서 인터뷰한 청소년들은 ‘청소년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한 게 아니라 그냥 ‘국민’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했다는 느낌이다.
  촛불집회 안에서 청소년들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은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긴 아마도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의 다수가 그럴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촛불집회의 주역이 십대였다 청소년이었다 라고 말하는 건 미묘한 오류가 있다. 촛불집회의 주역 또는 촛불집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나이가 10~20대 정도의 ‘국민’ 또는 ‘시민’이었다.
  기회가 닿으면 2008년 '촛불집회'에 관한 내 생각들을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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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좀 읽으면서 구성상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한 명씩 관련된 사람들이 부연하는 글 같은 것을 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게 좀 글 청탁할 때 전달이 잘못된 것이거나 구성할 때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다.

  가장 문제가 있는 챕터는 “유쾌, 상쾌, 통쾌한 정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YMCA 창숙님과 참여연대 지현님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보통 이야기를 하거나 소개를 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다른 챕터와 다른데,
  그 대화의 내용에서도 실제 활동에 대한 소개나 이야기는 참여연대 이야기가 더 많고 정작 창숙님의 활동은 많이 이야기되어 있지 않다.
  뒤에 붙은 참여연대 글 같은 경우는 그냥 참여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소개하는 내용에 가깝고, 정작 창숙 님의 정치적 활동이나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 정치적 권리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행복한 학교 만들기”의 경우에는 윤지님 이야기는 아주 좋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희망 박철우님의 글은 그냥 희망 단체 소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희망 활동, 성격 등 소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같이 활동하면서 종종 얼굴 보는데 이렇게 썼다고 해서 화내시진 않겠지 -_-;)

  연주님의 언론 활동에 대해 지식채널e의 김진혁 씨가 쓴 글은, 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연주님에게 조언을 하는 형태로 마무리를 하고 있어서 그래도 음, 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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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챕터들 말고 다른 이야기들은 부연하는 글들과 본문 이야기들 사이에 호응이나 조화가 부자연스럽지 않다. 전반적인 내용도 알차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활동을 알고 싶은 분들, 이런저런 영감이나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
  따이루, ‘품’, 리타님, 리인님, 윤지님, 연주님, 강강수월래 등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읽어볼 만하다.


  단지, 솔직한 내 욕심으로는, 청소년들의 NGO 활동 이야기, 이런 식으로 따로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것뿐. 청소년들의 그런 활동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사회면 좋겠다는 거다.

  “열정세대”라는 제목이 껄끄럽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지금의 청소년들, 십대들을 너무 특별하게 의미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내가 참여한 부분은, 간접적으로는 청소년 언론 활동이나 학생인권 관련 활동에 대해 내용 구성 전반을 놓고 조언을 한 것,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제일 뒤에 실린 이 사진 속 청소년 단체 리스트 초안을 뽑는 작업을 같이 한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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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성희

    공현~~~ 고마워요~~~ 곧 봐요~~~

    2009.03.11 07:35 [ ADDR : EDIT/ DEL : REPLY ]
  2. 기사에서 배울 많이.

    2013.01.23 16:3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