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유예된 존재들 - 청소년인권의 도전

공현 2020. 3. 21. 15:15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써 온 글들을 모으고, 보충/수정해서 엮었습니다. 새로 쓴 글도 몇 있고요. 제 첫 단독 저서입니다. (두 번째는 없으면 좋겠네요.)

청소년인권의 문제의식을 알리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예된 존재들 - 청소년인권의 도전》

'책을 펴내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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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존재, 유예된 문제들

청소년 때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해서 계속 활동하는 사람들은, 스무 살이 넘고 나서 누구나 한 번씩은 이런 말을 들어 보았다. “언제까지 청소년운동 할 거야? 이제 다른 일/활동을 해야지.” 그 속에는 청소년운동은 청소년기에 잠시 하는 운동이란 생각 또는 청소년 당사자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나는 청소년운동을 10년도 넘게 해 왔지만 요즘도 그런 말을 듣곤 하니, 과연 안 들을 날이 오긴 할지 모르겠다.
이런 인식은 청소년인권 문제를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 청소년의 인권을 제한하고 짓밟는 일은 몇 년만 참으면 된다는 이유로 쉽사리 정당화된다. 어린이·청소년은 차별받는 ‘소수자’로 인정받기보다는 그저 ‘유예된 존재들’로 여겨질 뿐이다. 바로 그것이 차별과 억압의 논리임에도. 그리고 그런 논리 탓에 청소년인권 문제의 해결은 정말로 오래도록 유예되어 왔다. 정치와 사회가 민주화되어도 학교와 청소년들의 삶에는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 두발 자유화라는 어찌 보면 소박한 목표조차도, 문제가 제기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인권 문제는 청소년 시절 몇 년만의 문제라 생각하고, 청소년운동을 ‘청소년들이 나서서 말하고 행동하는 장면’으로만 기억할 때, 청소년운동의 가치와 의미 역시 인정받기 어렵다. 청소년운동도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경험과 자원을 축적하며 발전하고 성장해야 하고, 그러면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더 깊어지고 풍부해져야만 한다. 그런데 청소년기에만 하고 마는 운동, 스쳐 가는 운동처럼 여겨진다면 운동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청소년인권에 대한 주장이나 이야기도 비슷한 내용만을 반복하게 된다.
나를 비롯해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은 청소년운동에 대한 이런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인내심을 가짐과 동시에, 같은 주장을 더 잘 다듬어서 말하기 위해, 주장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기 위해 도전해 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7세에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15년 차 활동가가, 그러한 노력과 도전을 이어 가면서 청소년인권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 성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청소년인권 또는 아동인권 이야기가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자거나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말은 너무나 흔하고 당연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자거나, 청소년의 자유와 사생활을 존중하라고 하거나, 청소년이 인간으로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고 정치·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을 하면 반대와 우려가 더 많이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은 마치 많은 지지를 받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청소년인권 문제를 고민하고 청소년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은, 좋은 어른이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청소년인권 논의는 청소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생각하고 변화시키자는 이야기이다. 사실 청소년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 주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고 정당한 자리를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적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청소년운동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우리는 좋은 어른이 많은 세상이 아니라, 나쁜 어른을 만나도 두렵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 책의 글들이 청소년운동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윤곽을 그리게 해 주면 좋겠다. 청소년인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사회와 여러 문제들을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관점과 태도, 사고방식이 독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책의 1부 〈한국 교육은 불법이다〉는 학생인권과 교육 제도에 관련된 내용이다. 경쟁 교육과 너무 긴 학습 시간 등 교육 제도의 문제에 대해 인권의 기준으로 살펴보았고, 체벌이나 두발 규제, 학생인권조례, 그 외 학교 규칙의 문제 등을 다루었다. 2부 〈예비인 삶은 없다〉에서는 가족 안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를 짚고, 노키즈존, 청소년 보호주의, 국가주의와 나이주의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청소년을 ‘예비’ 인간으로 보는 등 사회 전반의 청소년관을 비판하기도 했다. 3부 〈학교와 사회의 민주주의는 함께 간다〉에서는 주로 참정권과 민주주의, 참여할 권리에 관련된 글들을 모았다. 오랜 운동의 결과로 이루어 낸 18세 선거권의 의미를 묻고 여전히 제한되어 있는 청소년의 참정권 문제를 지적했다. 학생회나 학교 민주주의에 관련된 내용도 3부에 묶었다.

2005년,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청소년운동을 시작하고 청소년인권에 대해 공부해 보려 했을 때, 읽을 만한 책이 마땅치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학술서를 제외하면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배경내) 정도가 학생인권 문제를 다룬 거의 유일한 책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청소년인권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모아서 책으로 펴내는 것이 청소년운동의 목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청소년인권이나 청소년운동에 관련된 책들은 많이 늘었다. 그중 몇몇에는 나도 기여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청소년인권을 주제로 삼은 책들이 그리 다종다양하지는 않다. 특히 청소년운동활동가가 쓴 책은 손꼽을 만큼밖에 없다. 부족하나마 이 책이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해 줄 거라는 마음으로 책을 내놓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과거 〈한겨레〉, 〈전북일보〉, 〈프레시안〉, 《한겨레21》, 《오늘의 교육》 등의 지면에 실었던 글들, 활동하면서 여러 기회에 썼던 글들을 보충하고 재구성한 것들이 많다. 새로 쓰다시피 한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큰 수정 없이 실은 것들도 있다. 과거 지면을 내주었던 매체들이나 토론과 기고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던 단체들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서 저자로서 책을 내는 것이 직업 윤리상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망설이기도 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출간할 수 있었던 데는 동료 편집자들의 지지와 열의 덕분이 컸음을 밝힌다. 청소년인권에 대한 책을 꾸준히 만들어 펴내고 있는 교육공동체 벗에 이 기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글과 책이라는 형식상 나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하게 됐지만, 이 글들은 사실상 나의 개인 작업이라기보다는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다. 청소년운동을 하며 행동하고 참여한 청소년들이 있었기에 이토록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나 이전에 그리고 동시대에 청소년운동을 했던 동료 활동가들이 내 글의 내용을 같이 채운 것이다. 함께한 토론과 공부의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고 때로는 다른 활동가들이 내 글을 봐 주면서 모자란 점을 채워 주기도 했다. 이 책이 청소년운동이 함께 만든 성과인 만큼, 이 책으로 얻게 될 영광이나 이득이 있다면 그 역시 청소년운동에 공유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 책이 그 누구보다도 청소년으로서 자신의 인권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영감과 용기를 주기를 바라며. 더 많은 이들이 청소년인권과 청소년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2020년 3월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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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존재들

유예된 존재, 유예된 문제들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청소년은 차별받는 ‘소수자’로 인정받기보다 그저 ‘유예된 존재들’로 여겨진다. 청소년인권 문제는 특정한 나이만 지나면 저절로 해소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이 바로 차별과 억압의 논리라고 역설한다. 아동인권과 청소년인권을 보호하자는 말은 너무 흔하고 당연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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