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우리 머리 속의 관념

공현 2010. 8. 16. 09:59



우리는 경험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구성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다시 우리의 현실을 재구성한다. 예컨대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우리의 의식 속에서 재구성하고 재조립하고 있는 것이다. 객관성을 확보하겠답시고 우리의 관념의 지도와 인식의 틀을 재조명하고 반성하는 일은 부질없다. 우리의 관념을 반성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관념과 의식으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쩌구 하는 도덕 교과서적인 처방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효능이 없다.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그게 아니다.

우리의 관념이 현실을 재구성하는 경향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는 '이분법'이다. 한나라당 정권이나 수구 반공주의에 비판적인 모두를 '빨갱이'로 모는 사람. 두발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북으로 가라"라고 말하는 사람.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거나 청소년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도 두발규제 심한데요?" 이런 반문은 무의미하다. 그 사람들의 관념은 실로 명확하게 현실로부터 이 연결고리를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재구성하고 있다. 2010 청소년활동가대회 쳇에서 "폭력과 통제가 아닌 치료와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역을 맡은 어른 캐릭터를 까면서 "지금 학교가 하고 있는 건 보호를 빙자한 폭력, 통제잖습니까?"라며 따지고 든 한 청소년의 이분법도 마찬가지이다.

(별 상관 없는 팁. 한윤형 씨는  한국 사회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이념 문제라는 게 북한 문제밖에 없다, 라고 레디앙에 기고한 '누구를 위한 진보정당 운동인가'에서 말했던 적이 있다.)


이분법을 예로 드니 꼭 내가 주관적 관념이 현실을 왜곡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조심스럽다. 오해를 풀기 위해 말하자면, 우리의 관념과 인식이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관념과 인식의 내용, 재구성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건 대단히 실용적인 문제다. 우리가 현실을 재구성하는 데 사용하는 인식 틀, 관념들이 우리의 삶에 우리의 목적에 쓸만한가 쓸만하지 않은가. 그것을 평가해봐야 할 문제다.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자주 이런 욕망을 느끼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세상이 생각 같으면 좋겠다."라는 욕망. "내 머리 속의 관념처럼 현실이 깔끔하게 딱딱 구분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심지어 과학자들은 일종의 '과학적 미'로 이론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현실이 복잡하고 모호하고 지저분해 보일 때, 우리의 관념과 어긋날 때.

그러나 "현실은 이론보다 풍부하다." 주관적 관념의 한계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줍잖은 객관성의 환상에 매달리는 일 같은 것이 아니다. 경험이 관념을 만들고 다시 관념이 경험을 재구성한다면, 우리가 돌아갈 것은 다시 '경험' 뿐이지 않은가. 머리 속으로 열나게 보편타당성이나 객관성을 찾아 헤매느니, 직접 발로 손으로 몸으로 세계를 겪도록 하라. 그 속에서 실용적인 형태로 다시 우리의 주관을 구성하라.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 현실을 재구성하라. 관념은 주인이 아닌 수단이다.



------------------------------------ 이 아래는 아수나로 활동 관련한 디테일한 얘기 ------------------------------------



회칙 등은 결국 우리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관념이다. 개중에는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해서 박아놓은 규칙의 내용도 있고, 아니면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안내하고 권유하기 위한 내용도 있다. 회칙은 실용적으로 기능할 때만 의미가 있다.

특히 '지부 명칭'이나 '지부 범위' 같은 경우는 우리의 뜻대로 잘 되지 않는 대표적인 것이다. '경남중부'지부라니... 참 어디까지가 중부라는 얘기인지, 알쏭달쏭한 이름이다. 사실 나는 '경남중부'지부라는 이름을 싫어한다. 근데 뭐 그게 딱히 회칙에 어긋나서라거나 애매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지부가 이미 있어버리니까 사람들이 "경기북부지부"(경북지부?;) "전남남부지부" 등 사람들이 그런 단위를 상상하게 돼버리지 않냐는, 실용적인 이유다.(게시판에 계속 올라오는 그런 류의 글들을 보면)

어쨌건 중요한 건, 지부를 만들든 뭐를 하든 자기 관념,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하는 게 깔끔하고 멋있고 간편할 거 같아 보이는 대로 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운동은 수학 증명도, 도서관 책 분류도 아니다. 지부를 만든다는 것은 머리를 굴리는 일보다는 손과 발을 놀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아주 실천적인 일이다. 나는 언제나, 아수나로 회원 분들에게 실천적 경험을 해보시라고 하고 싶다. 괜히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