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 12. 9. 11:44
[논평] 수능 뒤에도 고3들을 학교에 가둬두라고? 학생들이 노는 게 그렇게 보기 싫나?
- ‘정상화’를 원한다면 입시교육과 과중한 학습부담을 없애고,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


11 월 7일, 2013년 수능시험이 있었다. 전국의 수험생들을 경쟁시키고 줄세우고 대학서열구조 속에 밀어 넣는 입시의 과정 중 가장 비중이 크고 상징적인 시험이 11월 7일 치러졌다. 모든 고3 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몇 개월, 몇 년을 입시공부 속에 버텨온 고3 학생들 중 수십만 명이 시험을 치러냈다. 그러나 수능이 끝난 뒤에도 고3 학생들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언론들에서는 고3 교실이 난장판이고 학생들이 학교에 제대로 출석도 하지 않는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들에서는 단축수업을 금지한다고, 정상수업을 하라는 지침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능 일정을 늦추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수능이 끝난 뒤 학교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수능 이전에 많은 고등학교들이 입시를 교육의 목표로 삼아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수능 전부터도 본래 다수의 고등학교들은 교육기관으로서는 ‘난장판’이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에서의 성공과 승리라고 대놓고 말하고, 입시 일정에 맞춰서 무리를 해서라도 교과 진도를 마치며, 그 뒤에는 입시 준비를 위해 문제 풀이에 몰두하는 수업을 한다. 이렇게 입시학원처럼 운영되는 학교를 과연 올바른 교육기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연 수능 후의 학교가, 수능 전의 학교보다 더 난장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수능 이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처럼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 교육의 한 측면일 뿐이다. 학생들에게 “수능 때까지만 참아라.”라고 하면서 과중한 공부시간, 입시 스트레스, 학업을 강요하는 것이 입시기관 학교의 운영 방식이다. 그러니 수능이 뒤에는 학교에 붙어서 공부하라고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수능을 본 고3 학생의 입장에서는 수능 뒤에도 정상수업을 시키라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을 어기는 ‘무리수’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 와 같은 입시기관화된 학교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고3 정상수업’을 강변하는 것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찍 끝나는 꼴, 쉬고 노는 꼴을 보기 싫다는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에 걸쳐 과중한 학업부담 속에 학생들을 몰아넣으면서, 고작 1-2개월 남짓 단축수업을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니까 화가 날 지경이다. 애초에 한국의 공부시간은 너무 길고 학업부담은 너무 크다. 정규수업을 오후 4시, 5시까지 하는 것이 기본이고,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등을 하면 밤 늦게서야 하교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고도 또 학원을 가는 등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고3 때는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나오거나 사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과중한 학업부담은 사라져야 하고, 오히려 오후 1~2시 정도면 하교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수능시험이 끝났든 어쨌든 학생은 학교에 8, 9시간씩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과중한 학교의 일정을 계속해서 강요하려는 것은 그저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둬야 안심이 되는 강박관념은 아닌가?


수능 끝난 뒤 고3 정상수업이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하라. 입시에 올인하는 교육을 개혁하고,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바꿔내라. 현재의 과중한 학습부담을, 학생들이 감당할 만하게, 학생들의 교육권과 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정도로 줄여라. 고3 수업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하는 교육당국들은, 과연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해본 적은 있는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학교들을 ‘정상화’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더불어 우리는 고3 학생들을 무조건 학교에 가둬두라는 식의 지침이, 비민주적인 교육정책 결정 탓에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부, 교육청들이 고3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런 막무가내 억지 정책을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논란이 되자 학생들과 토론을 해보잔 식으로 말을 던졌지만, 실제로 학생들과 제대로 토론을 하기보다는 형식적으로 게시판을 열어두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학생들의 참여가 없는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은 그것만으로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닌 주체이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학생들이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치를 활성화시키고 참여의 길을 열어라. 그래야만 이런 억지 정책이 강행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2013년 12월 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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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10. 3. 21:22


[논평] 교육부는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지 말고 학생인권 보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

- 교육부의 '임신․출산한 학생의 교육권 보장 등' 정책에 대해


  교육부가 학교에서 임신․출산한 학생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학칙, 연애(소위 "이성교제")나 신체접촉을 이유로 징계를 하는 학칙 등을 개정하도록 점검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별 없이 인권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진작 이루어졌어야 할, 당연한 조치였다고 할 것이다. 학생의 사랑과 교제에까지 학교가 간섭하고 강제하는 것은 학생의 사생활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짓밟는 반인권적․반교육적인 행태라고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학생 비혼모 등 임신․출산한 학생에 대한 차별 문제도 여러 차례 개선 권고가 있었다. UN아동권리위원회와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각각 임신․출산한 학생에 대한 차별과 교육권 박탈 등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던 바 있다. 이에 따라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도 임신․출산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었다. 이번 교육부의 조치는 그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학칙을 점검하도록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교육부의 이러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 또한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더 실효성 있고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한다.


"학생인권조례 반대" 입장과의 자가당착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교육부의 모순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그동안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무효소송까지 강행하는 등 온갖 시비를 걸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 내용 등을 들며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반대 이유 중 하나로 거론했다. 그러나 비혼모 학생 등 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차별금지 조치는 꼭 필요하며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교칙은 바꿔야만 한다는 것을 교육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음을 이번 조치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의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가 '임신 조장'이라는 황당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 앞장서서 차별금지 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교육부가 그동안 소위 '진보교육감'을 깎아 내리려는 정략적인 이유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편견과 억지에 편승하고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장의 학칙 제개정권을 제한하므로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번 조치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을 침해하는 학칙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시정하도록 할 수 있어야 옳다. 학칙 제개정권이란 인권과 교육의 기준 안에서, 상급기관의 감독에 따라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를 따라서 행사되어야 할 권한이다. 인권 보장의 원칙이 학교의 자율성에 우선하는 것임은 당연하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교육청이 학교들을 감독․지도할 근거를 제공하는 법일 따름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학교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을 자유가 있다는 말과 다름없는, 말도 안 되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리한 소송을 취하하고, 자가당착적인 억지 부리기를 중단해야 한다.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교육부는 이번 조치가 언론에 보도되자 <설명자료>를 내며 "권고하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교육부가 처음에 보낸 자료 어디를 살펴보아도 권고한다는 내용은 없다. "학생 미혼모 등 학습권 보장 관련 점검을 실시"하라고 하며 "징벌적 학교규칙 제·개정 실태 점검"을 학교별로 교육청 단위로 실시하라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부가 이처럼 꼭 필요한 인권 정책에 관해서 언론보도 뒤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교육부의 소극적인 <설명자료>를 보면서,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무리하게 공격하며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해 학교에 대한 관리감독의 권한과 인권보장의 의무를 포기하는 길을 택한다면 이는 심각한 주객전도일 것이다. '임신·출산한 학생의 교육권 보장', '연애를 이유로 학생을 징계하는 학칙의 개정' 등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인권 보장 조치이다. 교육부가 눈치를 보며 권고만 하고 말 사안이 아니다. 차별 없는 교육 등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은 교육부부터 학교까지, 교육기관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리한 제동 걸기를 철회하고, 학생인권 보장 정책의 필요성을 공식 인정해야 한다. 그 뒤에 한시라도 빨리 교육청, 학교 구성원, 시민사회 등과 함께 힘을 모아 학생인권 보장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2013년 10월 2일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강 원교육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 경기학생인권실현을위한네트워크/ 경북교육연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광주교사실천연대 ‘활’/ 광주노동자교육센터/ 광주비정규직센터/ 광주여성노동자회/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인권회의/ 광주청소년인권교육연구회/ 광주청소년회복센터/ 광주YMCA/ 교육공공성실현을위한울산교육연대/ 교육공동체 나다/ 국제앰네스티대학생네트워크/ 군인권센터/ 노동자연대 다함께/ 녹색당+/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동성애자인권연대/ 무지개행동 이반스쿨팀/ 문화연대/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서울교육희망네트워크/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 시민모임 즐거운교육 상상/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양평교육희망네트워크/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법률공동체 두런두런/ 인권운동사랑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부설 한국아동청소년인권센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연대회의 청소년위원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통합진보당서울시당/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학생인권을위한인천시민연대/ 학생인권조례제정경남본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흥사단교육운동본부/ 희망의우리학교/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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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9. 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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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깔짝대는 식의 대입제도 개선안, 우리에겐 필요 없다

-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


 

   지난 8월 27일, 교육부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하였다. 일단 이게 도대체 몇 번째 개선안인지, 또 이번 대입제도는 과연 몇 달이나 갈지, 궁금함이 앞선다. 야심차게 도입했던 수준별 수능도 1년만에 폐지를 한다고 한다. 온갖 베타테스트를 타의에 의해 당하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선, 도대체 교육부는 제도를 도입할 때 충분한 준비를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건지 실험을 하는 건지 짜증이 난다. 또한 이번 개선안 역시 기존에 나왔던 무수히 많은 동족들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입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내용이 전혀 아니고 학생들이 입시경쟁 때문에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들만 눈에 띈다.

 

1. 먼저 우려스러운 점 중 하나는 2017년 수능부터 현재의 문·이과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수험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전부 치르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입시본위제도 아래의 대다수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과목은 물론 시간표마저 수능에 맞춰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수능의 문·이과 구분 폐지는 고등학교의 문·이과 구분 폐지로 직통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고등학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전과목을 다 배워야 한다면, 안 그래도 공부 부담이 큰 학생들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더 늘리는 것밖에 안 된다. 게다가 일괄적으로 모든 과목을 배우도록 하는 것은 학생의 교육 선택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고 대다수 과목들은 학교가 정해주는 대로 수강해야 하는 불합리한 교육체제에서 더욱 퇴보하는 것일 뿐이다.

현행 문·이과 구분은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를 배울 기회를 제한하는 등 문제가 많기에 개선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문·이과의 선택은 실제로는 입시에 종속되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교육을 선택하고 참여할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문·이과 가릴 것 없이 수학, 사회, 과학 등을 모두 다 배우도록 하는 것은 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일 방안과 함께, 학생들의 교육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2.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는 점 역시 좋게 평가해줄 수 없다. 애초에 '한국사 필수화/강화' 논의부터가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역사를 국가가 정한 내용으로 배워야만 한다는 소리와 다름 없다. 이는 곧 국가가 교육을 통해 의무적으로 사람들에게 자국․자민족 중심주의, 국가가 보는 대로의 역사관을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 양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대단히 국가주의적인 정책이다. 역사를 교양이나 비판적 시민의식의 성장을 돕는 지식으로 배우게 하지 않고 ‘애국심’과 ‘국가관’ 등을 주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사 교과서'에 비해 많이 덜해졌다고는 하나 현재 한국사 교과의 내용은 자국․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상당히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국사 교육을 반드시 배워서 반드시 수능 시험을 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반길 수가 없다.

  게다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 지식을 달달 외우고 있느냐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배우는지, 그리고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는지 하는 것이다.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적으로 치르게 한다는 것은 한국사를 시험용으로 ‘암기’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일 뿐이다. 이는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역사를 알게 되고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덜컥 집어넣는 것은 단순히 여론에 밀려 내놓은 대책으로 보이며, 이는 학생들의 부담만을 늘릴 뿐이다. 과연 이런 결과가 수험생의 선택의 자유마저 침해하면서 얻을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서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강제로 배우게 하겠다는 것은 교육부가 교육의 수단으로 시험과 경쟁과 줄세우기밖에 모른다고 고백하는 꼴이다. 역사 교육의 제대로 된 모습은 학생들이 역사를 우리의 현재와 삶에 연관된 문제로 이해하고 의미 있게 공부하여 삶과 사회에 대한 지혜를 기를 수 있게 돕는 것일 터이다. 죽은 지식, 시험용 암기 과목으로 배우게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3. 물론 이번 개선안이 수험생 및 학생의 편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기존의 수천 개에 육박하는 수시 종류를 수시 4개, 정시 2개로 제한한 점과, 수시에서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것을 폐지 또는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는 나름 환영할 일이다. 적어도 뭐가 뭔지 잘 이해도 안 가는 복잡한 전형들 때문에 돈을 들고 입시 컨설턴트의 문을 두드려야 할 일은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입시 전형이 줄어들면 조금 덜 골치가 아파지고 약간 더 간편해지긴 하겠지만 학생들이 입시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보다 대입제도가 더 단순했던 과거에도 입시경쟁교육은 학생들을 옥죄고 있었다.

 

 

  이번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은 학생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해 본 것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이번 개선안 역시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의 병폐를 해소할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실망스럽다. 대입제도 개선은 입시경쟁교육을 없애고 학생들이 자유롭고 즐겁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긴 대입제도 변천사에 몇 글자를 더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개선안은 학생들에게는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우리나라 교육은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만을 심어줄 것이다. 대입제도를 가지고 이렇게 깔짝대는 것은 학생들을 놀리는 짓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커다란, 근본적인 변화다.

 

  경쟁적인 교육은 교육이 아니며 오히려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학서열화를 없애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 대학을 굳이 안 가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들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으므로 폐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교육은, 무늬만 교육인 채로 여전히 학생들을 괴롭히고 줄세우고 차별하는 제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교육부는 수박 겉핥기식 개선안을 내놓은 것으로 안주해선 안 되며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첫 걸음은, 학생, 교사, 시민 등 여러 사람들이 교육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일 것이다.

 




2013년 9월 1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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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 20. 18:00

교과부의 학교 독재구역화 ?

학생은 노예가 아니다

공현



2011년 1월 17일 월요일 오전 10시 40분 경, 교육과학기술부(이주호 장관, 아래 교과부)에서 학교장의 자의적 권한을 강화하고 학생 인권에 부정적이며 특정 형태의 체벌을 허용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악 조치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이 번쩍 깼다.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진즉 들었으나 이렇게 급하게 발표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탓이다. 더군다나 청소년들,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시늉조차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주 중에 입법예고까지 한다는 이야기에 기가 막혔다.(하긴 언제 한 번이나 교육정책 같은 걸 정하면서 학생들 의견을 들은 적이나 있었나.) 교육과학기술부가 17일 발표한 것의 제목은 ‘인성 및 공공의식 함양을 위한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이었는데, 가히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버금가는 사기적인 작명이었다.

‘학교자율’의 독재성

뜬금없는 역사 드립 하나. 중고등학교 때 국사나 세계사 같은 걸 배우다보면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앙 정부의 권한이 약해지고 지방의 호족들, 귀족들이 마음대로 자기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되면, 사람들은 더 심한 폭정과 착취에 시달릴 수 있다고. 물론 신분제 사회의 귀족 정치와 민주주의 사회의 분권화, 지방자치는 근본적으로 그 질과 방식이 다르므로, 이런 이야기를 단순히 현대에 적용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초중고등학교들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런 사례가 적용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학교자율화’가 이명박 정부의 특허품인 것 같지만 사실 ‘학교자율’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0년에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온라인 서명과 운동이 불붙던 시절, 교육부는 두발규제를 학교들이 자율적으로 학교구성원들과 합의해서 결정하라는 ‘학교자율’ 지침을 발표했다. 2005년 두발자유 운동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 이후에 체벌을 비롯하여 온갖 인권을 침해하는 학교의 관행과 제도들에 대해 문제제기 했을 때도 교육청과 교육부는 ‘학교자율’, ‘학교장 재량’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니, 그 이전에 1990년대에 강제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올 때부터, 그것은 학교의 자율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자율’, ‘학교장재량’은 많은 경우 학교가, 학교장이, 학생들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을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는 것을 의미했다. 마치 중세 유럽, 귀족들이 자기 장원 안에서 ‘자율성’을 가지고 마음대로 주민들을 지배한 것처럼. 호족들이 자기 세력이 미치는 영지 안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이를 ‘학교자율화’라는 정책 이름까지 붙여 더욱 노골적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표는 그 절정이다. 교과부가 발표한 시행령 개악 안에서 가장 문제가 큰 조항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제31조의5(학생의 권리보장 지원) ② 학교의 장은 교육기본법 제12조 제3항에 의하여 교원의 교육․연구 활동 및 학생의 학습활동을 보호하고, 학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1항에 따른 학생의 권리 행사의 범위를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

아예 학생의 권리 행사 전반을 학교장이 모호한 이유만 가지고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조항이다. 상상해보라. 만약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의 권리보장 지원) 회사의 사장은 회사의 영업활동 및 사원의 근로를 보호하고, 회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근로자의 권리 행사의 범위를 사규로 정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명시된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현실의 회사에서는 자의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마음대로 침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합법화해주고 사장에게 자의적 포괄적 권리 제한 권한을 위임하는 이런 입법이 대단히 반인권적이며 비상식적이라는 것을 두말할 것 없다.

교과부는 이것이 학교장의 독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 아마도 새롭게 고치려는 시행령 안에는 학칙을 제‧개정 할 때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조항 역시 있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교과부는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라고만 했을 뿐, 그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나 형식은 역시 학교에서 알아서 마음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의 참여가 형식적인 참여, 들러리 서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처럼 학교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우습게 아는 모습에서 학생들은 어떤 것을 학습하게 될까?

인권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인권을 불가피하게 제한해야 할 경우에도 내용적으로 절차적으로 엄격한 원칙과 조건들이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28조에서 역시 정부가 학교 규칙이 학생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운영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학교장이 자의적으로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 것,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학생인권의 보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권을 무슨 장식품 정도로 우습게 아는 것이다.

위 사진:1월 19일 교과부 앞에서 청소년들이 긴급 항의 기자회견 하고 있다.



체벌과 출석정지 제도

교육부에서 과거에 체벌에 관해 규정했던 것 등을 살펴보면 체벌은 ‘신체적 고통을 주는 방식의 처벌’로, 거기에는 도구나 신체를 이용하여 때리는 행위나 반복적 지속적으로 불편한 자세나 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주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에 따르면, 그러한 체벌들을 포함해서 그밖에 굴욕적 모욕적 처우 또한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과부는 이번에 갑자기 이른바 “직접/간접체벌”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면서 직접체벌은 허용하고 간접체벌은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없던 분류법을 새로이 창작한 것인데, 직접체벌은 교사가 직접 때리는 체벌이고 간접체벌은 직접 때리지는 않는 체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든 간접체벌의 예시를 보면 손들고 서있기, 엎드려뻗쳐, 운동장 돌기 등이 있는데, 시행령 개악안 등을 보면 정확히는 직접 때리는 행위만을 금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때리지만 않으면 어떤 체벌을 주더라도 괜찮은 게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소위 ‘기합’, ‘얼차려’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한 셈이다.

교과부의 작명 센스만 보면 마치 때리는 체벌은 좀 더 심한 것이고 학생들을 ‘굴리는’ 체벌은 간접적인 것, 덜 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체적 고통을 준다는 의미에서 이 두 체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또한 ‘굴리는’ 체벌이 더 안전하다거나 덜 고통스럽다는 근거도 없다. 세상에 잔혹한 ‘기합’, ‘얼차려’들이 얼마나 많던가. 오히려 2007년에 ‘오리걸음’ 체벌을 받다가 사망에 이른 학생, 2010년 ‘앉았다 일어났다’ 체벌을 받다가 사망에 이른 학생 등 이러한 ‘굴리는’ 체벌이 건강에 더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직접체벌”, “간접체벌”이라는 분류와 이름 붙이기 자체가 꼼수이고 기만인 셈이다. 교과부의 방침은 체벌의 방법에 관해 조금의 제한을 뒀을 뿐, 그저 “체벌을 계속하겠다.”라는 선언에 불과하다.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고 신체적․물리적 폭력으로 누르는 교육이 아닌 교육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벌점제까지 적용하겠다고 하니, 학생들을 점수와 폭력, 이중으로 옭아매겠다는 것이다.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발표가 학생들을 폭력으로 통제하고 억누르기 위한 것이라면, 새로 도입하겠다고 한 ‘출석정지’ 제도는 열외인 학생들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학교의 눈 밖에 난 ‘찍힌’ 학생들을 사소한 규정 위반이나 벌점제를 이용해서 사회봉사 징계나 특별교육이수 징계를 통해 학교 밖으로 돌리는 경우들이 있다. 좀 심한 경우에는 아예 강제전학, 퇴학을 시켜버리기도 한다. ‘출석정지’ 제도는 그 징계의 내용은 특별교육이수와 비슷하지만, 징계기간이 ‘무단결석’ 처리된다는 점이 특별교육이수와 다르다. 따라서 출석정지 제도를 악용하면 이는 ‘찍힌’ 학생들을 손쉽게 학교에서 배제시켜버리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 학교장이 학칙으로 마음대로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한 내용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학교의 징계는 첫째,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행동의 잘못을 알고 변화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하고 둘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출석정지 제도는 특별교육이수와 내용적으로는 다를 것도 없으면서, 학생이 성실하게 그 징계 기간 동안 특별교육프로그램 등을 이수하더라도 ‘무단결석’ 처리되게 하는 제도이다. 말 그대로 학생들의 변화와 복귀, 예방 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학생들을 내쫓기 위한 제도인 셈이다.

출석정지 제도가 특별교육이수보다 더 강한 징계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제도는 일상적으로 수업시간에 수업을 방해하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징계도 아니다. 지금 학교 징계 제도에서 바뀌어야 할 점은 이런 ‘강화된’ 징계 제도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징계의 공정성과 민주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 아닐까?


노예와 학생 사이


다소 단순화된 도식이지만,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불복종에 관한 글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의 복종과 주인과 노예 사이의 복종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학생과 교사 사이의 관계, 혹은 학생과 학교장 사이의 관계가 과연 노예와 주인 사이의 관계에 비교해볼 때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최근 진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 조치 등은 학생들의 인권운동이 아주 조금의 성과라도 거두면서 이런 모습에 변화가 생기는가 했지만, 이런 변화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교과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이라는 수를 내놓았다. 이번 교과부의 발표를 보면 학생들의 모습과 책에서 읽은 노예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인다. 학생들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학교장, 그리고 그 학교장의 명령과 통제에 따라 폭력과 추방을 이용해 학생들을 관리하고 억압하는 교사들. 학생과 교사의 관계와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다르다는 지적은, 차라리 ‘달라야 한다.’는 당위명제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세계인권선언 전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맞선 최후의 수단으로 폭력적 반란에 의지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권이 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나 교과부가 만들려는 법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장의 손에 인권을 침해할 권한을 ‘합법적으로’ 안겨 주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권이 법에 의해 오히려 침해당하는 지금, 우리에게는 폭력적 반란이 필요하단 말인가? 글쎄, 그게 폭력적 수단이건 아니건 간에, 학생들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저항이 필요한 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35 호 [기사입력] 2011년 01월 19일 21:29:1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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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건 강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11.03.29 18:16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 17. 19:17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고 싶은가?

- 교과부의 반인권적 시행령 개악 시도를 반대한다

 

  오늘 오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학교문화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고, 학생인권 침해를 노골적으로 허용하는 시행령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미 예전부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와 여러 교육․사회․시민․청소년단체들은 수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시행령 개악을 공식화하고, 강행하는 교과부의 뻔뻔한 작태에 대해 우리는 차마 공식적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오늘 교과부에서 발표한 내용은 ① 학교장의 학칙 제정 등 권한 강화 ② 학칙준수 서약식 실시 ③ 출석정지 도입 ④ 이른바 ‘간접체벌’ 허용 등이다. 이미 예전부터 문제점에 대해 누누이 언급했었지만 다시 한 번 하나하나 지적해보고자 한다.

 

  하나, 학교장에게 학칙 제정권을 전면 부여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같다. 본래 인권의 제한은 엄격한 조건과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러나 학교장이 자의적으로 인권을 제한하고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는 이러한 내용은 마치 군사독재 시절 유신헌법을 연상시키는, 학교의 시계를 무려 40년은 거꾸로 돌리려는 만행이다.

  학칙은 어디까지나 학교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고 교육에 참여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목적과 한계 속에서 민주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학교장의 독재적 학교 운영이 어떻게 학교 구성원들을 괴롭게 하는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고 있지 않은가? UN아동권리협약 또한 제28조에서 학교 규칙이 아동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도록 운영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정부가 취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자신이 비준한 법적 효력이 있는 협약조차 정면으로 위반하는 조치를 당당하게 내놓을 셈인가?

 

  하나, 출석정지 제도의 도입과 징계 수위의 강화는 학교 현장에서 악용될 소지가 큰 독소 조항이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에 밉보인 학생들이나 ‘찍힌’ 학생들을 사회봉사나 특별교육이수 등의 징계를 계속 줘서 밖으로 돌리고, 강제로 전학을 보내거나 가벼운 사안만으로 퇴학을 시키는 등 징계를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징계 받은 일수가 출석일수로 계산되지 않는 ‘출석정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런 학생들을 합법적으로 ‘유급’ 혹은 ‘퇴학’시킬 방법만 제공하는 꼴이다. 또한 이미 학교폭력예방법에 다른 학생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한 학생에 대한 ‘출석정지’ 제도가 있음에도 새삼스레 시행령에 출석정지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이 제도가 교사나 학교에게 밉보인 학생들을 격리하고 낙인 찍는 데 남용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교장이 자의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게 한 내용과 함께 생각해보면 그런 위험은 더더욱 높아진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징계가 학생들의 회복과 복귀, 지도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문제 학생들’을 낙인 찍고 배제하는 데 남용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징계 제도가 과연 교육적인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지 또한 징계 절차가 공정하고 민주적인지를 점검하고 이를 개혁하는 일이다. 징계의 수위를 강화하고 학생들을 더욱 강하게 찍어 누르려고 하는 것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출석정지 제도 등의 징계가 학교의 보복 수단이나 학생 배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징계의 공정성과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 학칙 준수 서약식을 개최하도록 하여 학생들의 준법 의식을 고양하겠다는 발상은 역시 학교를 독재구역으로 만들려는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준법 의식’은 그 법이 민주적이고 정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학칙이 학생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민주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입학식에서 학칙 준수 서약식을 하라는 것은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전원에게 이미 존재하는 학칙을 무조건 지키겠다고 서약하라고 강요하는, 양심의 자유 침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학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칙 준수 서약식’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학칙의 제정이다.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규제할 수 있게 해놓고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학칙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독재의 논리이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학생생활과 밀접한 학칙을 제개정할 때는 학생의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고, 또 학생자치활동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분명 교과부가 학생자치활동에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고 학칙 제개정시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학생자치활동 활성화에는 정작 그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회의 독립적 권한 보장과 학교 운영 참여 보장은 제대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칙 제개정 시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이나 절차 또한 학교별로 마음대로 하도록 맡겨두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심히 의심스럽다. 형식적인 의견 반영, 학생을 들러리로 만드는 상황이 여러 학교에서 벌어질 것이 뻔하다. 이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회의만을 학습시킬 반교육적인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해라. 하지만 그 방식은 마음대로.”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는 그런 논리야말로 독재를 민주주의의 거짓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곤 했다는 교훈을 역사에서 배웠다.

 

  하나, 학생들을 직접 때리지 않고 고통을 주는 이른바 ‘굴리는’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꼼수로 인권침해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이미 수년 전, 체벌을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로 스스로 정의한 적이 있으며, 직접 때리는 체벌과 학생들에게 ‘기합’, ‘얼차려’ 등을 주는 굴리는 체벌 사이에는 특별한 구분을 두지 않았다. 갑자기 '때리는‘ 체벌과 ’굴리는‘ 체벌을 나누고 ’굴리는‘ 체벌만 허용하겠다는 해괴한 논리에는 정당한 근거가 없다. 교과부는 “간접체벌”을 “반복적․지속적으로 신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나 정작 그 바로 앞에서는 대표적 ’기합‘인 “팔굽혀펴기” 등을 예로 들고 있으며, 시행령 개악안 또한 직접 때리는 행위만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결국 직접 ’가격‘하지만 않으면 학생에게 어떤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이더라도 허용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2007년 부산에서, 2010년 김포에서, 학생들이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체벌로 목숨을 잃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때리는‘ 체벌이든 ’굴리는‘ 체벌이든 학생들에게 폭력이고 인권침해이며 반교육 반인권적이라는 점은 별 차이가 없다. UN아동권리위원회 역시 “신체적인 처벌은 항상 굴욕적”이라고 밝히며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체벌의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굴리는‘ 체벌이든 ’때리는‘ 체벌이든 모든 체벌은 금지되어야 한다. 교과부는 체벌에 ’직접‘, '간접’ 이름을 붙이며 체벌을 허용하려는 해괴한 시도를 할 시간과 노력을, 체벌 없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

 

  교과부는 이번 발표를 “학교문화의 선진화”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 내용의 실상을 보면 학생인권의 무력화, 학교독재 강화를 위한 꼼수일 뿐이다. 일부 긍정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는 거의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교과부의 꼼수는 초․중등교육기본법 개악을 시도하다 국회의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 보고, 행정부 독단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행령 개악으로 방향을 바꾼 것에서부터 이미 드러났다. 또한 학생인권에 적대적 부정적 입장을 내온 단체 일색이었던 ‘학생권리 신장방안 마련 관계자회의’로 시행령의 의견수렴 절차를 대신하려 했던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시행령 개악의 추진과정은 형식적 절차마저도 충족했다고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 법률적 근거 없이 학생인권을 제한하고,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 침해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위헌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교과부의 시행령 개악 시도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교과부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학생인권을 더 세련되게 잘 침해하고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잘 보장하고, 어떻게 하면 인권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연구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정부가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한하고 침해할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는 교과부의 학생인권조례 무력화를 위한 제도 도입 및 시행령 개악을 막기 위해 법률적인 부분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밝히는 바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반인권 반민주 반교육 시행령 개악을 철회하라!

 

 

2011117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공동체 나다, 군인권센터,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모임,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서울지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특별시지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즐거운교육상상,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서울시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흥사단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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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3. 16. 12:54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컨닝을 조장하고 성적을 조작하는 일제고사...
성적과 점수라는 결과를 위해, 과정이나 수단이 어떻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시험...
"히틀러의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할 시험...
계속 봐야 하나요???












일제고사 안 보겠다는 건 거짓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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