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1. 9. 21. 17:36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소식지인 아수라장 ( http://news.asunaro.or.kr/ )에 싣기 위해 쓴 글입니다.





무상급식 그거, 참 별거 아닌데


  지난 8월 24일, 서울에서는 무상급식의 지원범위와 대상에 관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제는 전(前) 서울시장)의 꼼수로 들어간 시행 년도나 "단계적", "전면적"과 같은 문구를 빼고 그 논쟁의 중심을 살펴보면, 이는 결국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초등학생/중학생에게"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소득이나 재산이 적은 사람들에게만" 급식비를 면제할 것인지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무상급식"이란 것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급식을 따로 급식비 받지 않고 제공하는 정책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건 바꿔 말하면 그냥 무상급식을 할 거냐 말 거냐의 논쟁인 셈이다.

  입장을 막론하고, 지금 한국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은 과열되어 있다. 한국 정부의 예산이 한 해에 200~300조를 넘는 게 보통인 마당에, 그 1%도 안 되는 몇천억 정도1) 예 산 더 쓰는 것 가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부르스를 추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상급식 하나 한다고 보편적 복지가 시작되고 학교에 차별이 사라지며 공동체의식이 길러지고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결국 "무상급식"을 하나의 상징 삼아서 복지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는 건데, 이 "무상급식"이라는 게 아무래도 덩치도 작고 복지 정책으로서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닌지라 논쟁이 자꾸만 산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이 조그마한 무상급식 하나 가지고 그리 아웅다웅 하는 꼴이 안타까울 수밖에.


무상급식의 인권적 의미와 장점?

  뭐 어찌 되었건 나는 무상급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편이다. 교육권과 먹을 권리는 인권 중의 하나로,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수준을 보장받아야만 한다. 특히 국제인권협약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동등하게 개방되도록 하기 위해서, 초등교육은 무상이어야 하고 국가는 그럴 능력만 있다면 중등교육, 고등교육(대학)까지도 점진적으로 무상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설령 빈곤층에게 교육비를 면제하거나 지원하는 등의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교육비를 면제받기 위해서 별도의 증명 절차 등을 거쳐야 하는 그 자체가 교육을 받는 데 하나의 장벽이 되기 때문에, 교육은 공짜가 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급식 역시 교육과정의 일부이고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기 때문에 무상교육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먹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한 적용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교육은, 우리 사회가 사람의 먹을 권리,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를 사회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당연한 권리로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친권자들에게, 모든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야 비로소 교육은 친권자가 자기 자녀들에게 하는 '투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권리가 된다. 친권자가 자녀에게 "내가 내 돈 내서 너 학교 보내니까 내 말 들어!"라고 윽박지르는 소유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보장적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상교육, 무상급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만화. 시사IN 205호(2011.08.20.) 중에서 인용


  또한 무상급식은 효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본래 '선별적 복지'에는 '선별'에 대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게 된다.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모으고 사용하는 걸 제한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부처들이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 전체를 파악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때문에 빈곤층에게 급식비를 면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빈곤층인지를 입증하고 확인하고 선별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게 그 사람이 정말로 빈곤층인지를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다 공무원들 인건비 등등 돈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오세훈 전 시장께서 주장하신 돈 못 버는 하위 50%만 급식비를 면제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의 맹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그 이하를 파악하는 방식에서도 여러 맹점이 생기는 판국에, 전체 시민들의 소득을 파악해서 그걸 반으로 자르는 선을 정하고, 그 선 위인지 아래인지를 다 선별하도록 하겠다고 한 셈이니, 행정적으로 가능한 일일 리가 없다.

  보편적인 복지를 하게 되면 소득을 파악하는 것은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청에서만 하고, 대신에 소득과 재산이 더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많은 합당한 세금을 내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 외의 다른 복지 시스템에서는 선별에 들어가는 절차와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세금 정책과 함께한다면 보편적 복지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는 그때그때 영역과 성격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무상급식 따위!

  가끔, 내가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것을 놓고 그런데 왜 복장자유화에는 찬성하냐고 딴지 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는 무상급식을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 '눈칫밥'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싶다. 일단 복장을 자유화함으로써 생기는 개성의 자유 실현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급식을 유상으로 함으로써 생기는 일은 도저히 없을 것 같으니,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수다. 만일 이처럼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무상급식이라는 게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뜻하기라도 해야 한다. 뭐, 지금 많은 학교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사먹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급식비를 학교가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학교의 억압적이고 일괄적인 방식과 문화의 문제이다. 특히나 학교들은 급식 자체에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더 늘릴 필요도 있겠고. 급식의 질 향상과 식단의 다양성, 선택권 보장은 무상급식 이후에 급식을 계속 개선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아니면,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교복이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어지거나 모든 학생들, 청소년들에게 옷을 살 돈이나 상품권이 주어지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솔까말, 나는 강제교복을 없애고 복장을 자유화하면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 빈곤층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에, 그러면 옷 살 돈을 정부에서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이 역시 무상급식처럼 가능하면 모든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옷 살 돈을 주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 터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미안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대부분의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에서는 현실이다! 아동수당 제도라고 들어보셨는가? 아동수당은 1926년에 뉴질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건데, 아동이 있으면 소득이 얼마든 간에 무조건적으로 그 집에 돈을 주는 제도이다. 국가에서 양육을 책임지는 방식인 것이다. 독일은 월 184유로(약29만원정도)에 아동이 많을수록 추가수당이 있고, 스웨덴은 16세 이하 아동에게 월 950크로나(약12만원)에다가 학교에 다니면 주는 추가 수당, 병이 있으면 주는 추가 수당, 아동이 많으면 주는 추가 수당 등 여러 추가 아동수당이 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2010년부터 15세 미만 아동 1인당 월 26000엔(약36만원 정도)의 아동수당을 준다. 지금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OECD에 가입한 국가들 중에 아동수당 제도가 없는 데는 미국, 터키, 멕시코, 한국뿐이다. 2)

  그래서 최근에 독일에 가있는 분이 한국의 무상급식 논란 이야기에 대해 독일은 무상급식을 안 하는 이유를 얘기하길 ① 독일은 오후까지 수업을 안 해서 학교에서 밥을 안 먹는 경우가 많고 ② 독일은 급식을 무상으로 주기보다는 급식비나 밥 사먹을 돈을 국가에서 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 흑흑.

  물론 아동수당이 한국에 도입되면 죄다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말 거라는 씁쓸한 예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 돈이 반드시 아동․청소년들에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용돈/생활비의 형태로 쥐어지게 만드는 제도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기사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무상급식 덕에 굳는 급식비마저도 사교육비로 지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건 복지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쟁교육의 문제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무상급식을 생각할 때마다 영 찝찝하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도 모두 무상교육으로 만들라는 요구쯤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최소한 아동수당은 되어야 좀 복지 정책으로서 제대로 된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3)은 못할망정. 그러니까 이제 우리(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도, 좀 강하게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라에다가 우리한테 돈 좀 내놓으라고. 아동수당도 내놓고 교육비도 좀 더 쓰라고. 체벌을 하라고 하지 말고 교사 수, 교실 수를 늘리라고. 빈곤층 핑계 대며 교복을 입히지 말고, 옷 사 입을 돈을 내놓으시라고. 그 별 거 아닌 무상급식 따위 하나 가지고 벌벌 떨지 좀 말란 말이다!





1) 주민투표 당시 자료를 보면, 서울시 초등학교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필요한 예산이 약 600억 수준이었다. 급식 질을 좀 더 높인다고 해도 900억 정도일 테니, 전국 실시에는 최대 4000억 이하일 것이다.

2) 한국에서도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12세 미만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던 적이 있다. 당연히 아직 통과 안 됐지.

3)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 쉽게 말해 매달 모두의 통장에 30만원씩 국가가 입금을 해준다고 상상해보시면 된다. 보편적 복지 중 현금 부문의 완결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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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ㄷㄷ

    쓰레기같은글 잘읽었습니다

    2011.09.22 01:26 [ ADDR : EDIT/ DEL : REPLY ]
  2. ㅇㅇ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진보적 상식 - 애들 키우느라 뼈빠진다(그래서 복지가 확충되어야 한다) - 속에 감춰진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신선하네요.

    2011.09.22 14:20 [ ADDR : EDIT/ DEL : REPLY ]
  3. 하얀저고리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2011.09.25 10:2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7. 1. 03:13

청소년들이 독립적으로 살기 위한 조건은?

청소년의 입장에서 본 기본소득 운동

공현



기본소득은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생계에 필요한 소득을 보장한다는 구상이다. 재산이 있든 없든,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에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 개개인에게 매달 균등한 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현물 급여에 속하는 데 비해 기본소득은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개개인에게 기본소득을 얼마씩 보장해야 할지는 주장하는 사람이나 모델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최저생계비 안팎에서 왔다 갔다 하는 듯하다. 정부에서 정해둔 최저생계비(꽤나 적지만) 기준으로 보면 대략 50만 원 정도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작년부터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꾸려져서 기본소득 운동을 해가고 있다. 기본소득네트워크에서는 기본소득과 기본소득 운동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기본소득과 여성’, ‘기본소득과 장애인’, ‘기본소득과 청소년’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과 연계되지 않는 무조건적인 소득이기 때문에 기존의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에서 배제되어 있거나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이 더 큰 이해당사자가 된다. 그 일환으로 지난 6월 19일, 기본소득네트워크의 제안으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대학생사람연대가 공동 주최한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가 열렸다.



가족과 교육을 변화시키는 기본소득

첫 발제자인 기본소득네트워크 김성일 씨는 “간섭받지 않을 자유”,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전제 조건으로서 기본소득의 개념과 의미를 이야기했다. 그 다음으로 기본소득 도입이 학교․교육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가정․가족에서 청소년의 지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개인화․시장화 된 교육과 대학, 20대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본소득의 의의 등에 대한 발제들이 이어졌다. 발제자들은 대체로 여러 가지 문화적, 제도적 걸림돌이 있긴 하지만,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기본소득은 지금까지의 가족, 세대 중심의 복지 정책과는 달리 개인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복지제도의 중점을 가족이 아니라 개인에게 두는 것 자체가 패러다임의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는 우선 가족(정확히는 부모나 보호자, 후견인 등)의 경제력에 종속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밑받침이 된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자의든 타의든 가족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청소년에게 아주 어려운 삶이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사회와는 달리, 가족의 틀을 벗어나더라도 사회가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10대, 20대가 자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또한 소위 ‘정상가족’을 가진 청소년과 그렇지 못한 청소년들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이 기본소득을 직접 받음으로써 생기는 변화 외에도,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 변화는 청소년들의 삶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다. 교육의 방식과 내용은 노동시장이나 경제 구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의 사회에서는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력을 쌓고 입시경쟁 및 취업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학력(學歷)과 학벌이라는 차별 기제를 쥐고서 학생들을 강제적으로 공부하게 만들고,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경쟁에 참여하도록 몰아넣는 모양새다.



만일 기본소득이 도입되어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정규직 노동자나 전문직이 되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생활수준이 더 쉽게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이런 경쟁은 완화된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이나 고등학교 등을 졸업하지 않는 것의 위험부담이 줄어든다. 기본소득은 사회에서 학교가 갖고 있는 독점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입시경쟁을 위한 학교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삶을 위한 교육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삶 전반에 걸쳐 생계에 대한 두려움과 압력을 줄여주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한 실탄”

이날 토론회에서 주로 쟁점이 되었던 것은 기본소득 도입이 과연 그만큼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1살 정도의 아동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지급하고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이며, 민법상 경제적 권리가 제한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들도 언급되었다. 또한 한국의 문화적 풍토상 기본소득을 부모/보호자/후견인의 간섭 없이 얼마나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체로 사회 구조에서 기본소득 도입이 과연 얼마만큼 변화를 견인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 컸던 것 같다. 자본에 의해서 소비의 주체로만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청소년들이 기본소득을 명품 소비 등에만 사용한다면 기본소득은 그렇게 큰 역할을 해내지는 못할지도 모른다거나, 지금 상황에서는 기본소득이 시장화를 극복하는 제도가 되기보다는 전부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게 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왔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학교를 그만둔 학생들과 계속 학교에 적응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상류층이 되는 학생들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결과적인 양극화 문제 등도 토론의 주제였다. 현실적으로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큰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거, 의료, 교육 등의 영역에서 기본적인 공공재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은 학교와 가정에 종속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삶을 바꿀 가능성을 안고 있는 제도이다. 기본소득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이, 청소년들의 생활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삶은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기본소득은 다른 여러 복지를 포함해 제도·문화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 가족과 교육,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운동이 없이는 도입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날 김성일 씨는 기본소득은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한 실탄”이라고 했다.

토론회를 마치고,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에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제도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든 학교든, 누군가의 눈높이에 맞는 인간이 되고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적이나 뭔가를 달성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으며 사회 전체가 우리의 살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경쟁과 예속 속에서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은 그 의미 자체로 즐거운 제도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09 호 [기사입력] 2010년 06월 30일 16:36:3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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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6. 28. 10:58



격월간 사람에서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 쓴 원고를 수정하여 다시 싣고 싶다고 해서 수정한 거예용.





패륜적 기본소득

공현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 노동 등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에게 균등하게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의 생계에 필요한 돈을 사회가 균등하게,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개개인의 계좌에 매달 정부가 30~5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입금해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본소득은 특히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거나 차별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제도이다. 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에서는 기본소득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며 토론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장애인”, “기본소득과 여성”, “기본소득과 청소년” 등의 주제로 연속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 글은 6월 1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준비해서 연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서 발제한 원고를 고쳐쓴 것이다.


가정에서의 청소년의 지위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 아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도로 학교와 가정을 꼽을 수 있다.(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학원’도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에 비해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는 잘 공론화되지 않는다. 이는 학교가 제도화된 공적 공간이며 집단적, 조직적 제도인 반면 가정은 사적 공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가정에서의 체벌,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와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등을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에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이유로 대량 해직을 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교사의 정치적 자유는 학생들의 미성숙을 이유로 문제가 되지만 아무도 부모나 다른 가족의 정치활동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법 제도부터 보자. 민법에는 친권의 효력으로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 교양할 권리의무(913조), 청소년의 거주지를 지정할 권리(914조), 징계할 권리(915조), 재산 관리권(916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부모, 후견인 등의 친권자가 정하는 곳에서만 살아야 하고, 친권자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친권자에게 자의적으로 체벌이나 용돈 끊기, 외출금지 등의 징계를 당할 수 있으며, 재산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개정이 되긴 했는데, 민법의 친법 관련 조항에는 “자식은 친권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는 단지 법 규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의 문제이다. 극단적인 예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적이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친권자에게 체벌을 당하다가 죽음에 이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모태신앙’을 비롯해서 가정에서 종교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하거나 강압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개인적인 다이어리나 휴대전화 기록 등을 친권자가 함부로 보고 이를 근거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일, 위치추적 등은 ‘부모의 사랑과 걱정’으로 정당화된다. 어느 학교에 진학을 할 것인가,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가, 학원을 갈 것인가 등의 문제도 거의 다 친권자의 뜻이 많이 반영된 결정을 하게 된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은 대부분이 가정에서의 반대와 탄압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청소년 자신의 자발성이 없이 100% 전적으로 친권자의 뜻만을 관철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친권자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처우가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의 삶에 대해 친권자가 가지는 지배력은 상당히 강력하고, 그 지배력을 행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선택은 대부분이 친권자들의 성향에 맡겨져 있다. 제도적․문화적 조건만으로 봤을 때는 청소년들은 ‘친권자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어왔다. 아나키즘에서는 근대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어 이야기한다. 꽤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바쿠닌 또한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 Marc Siverstein 지음.) 페미니즘 쪽에서도 남성 가부장과 여성 사이의 권력관계에 더해서 아동에 대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논의들이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 또한 세대간의 지배 종료를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안했던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는 많은 부분 경제적인 종속성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말 안 들어? 그럼 용돈 없어!”, “내 말 듣기 싫으면 나가. 여기가 니 집이냐? 니가 입는 옷 먹는 거 다 누구 돈으로 산 건데?” 용돈 뿐 아니라 의식주 전체를 친권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친권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압박의 수단이란 무궁무진하다. “내가 너 키우느라 들인 돈이 얼만데” 등 한국 특유의 높은 보육․교육비 때문에 (좀 넓게 잡은) 중산층 이상의 친권자들이 가지는 투자의식과 주도권 등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또한 가정의 경제력의 일부를 담당함으로써 어느 정도 협상력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기본소득의 액수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친권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보다 독립적이고 덜 의존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미래에 자신들에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돌려주기를 바라는 친권자들에게는 투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동시에 자신들의 노인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됨에 따라 청소년을 채찍질해서 사회 상층에 쑤셔 넣을 동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친권자들도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니까 가정 안에서 경제력의 부담 정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돈이란 같은 액수더라도 어느 정도 있는 자들보다는 없는 자들에게 더 효용이 큰 법이다. 가정 안에서 가지는 경제력의 비율이 0에서 10이 되는 것은 발언권이나 협상력의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 모델에서는 소득이 많은 친권자들은 세금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내게 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좀 잘 사는 가정 안에서는 경제력의 분배 효과를 가지게 된다.

  여차하면 가출할 수 있다는 것도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출은 자신이 원하는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투쟁이나 보이콧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출을 해도 주거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가출의 리스크가 컸다. 이 리스크는 가출 후에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막막함과 정해진 레일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출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 우선 일차적으로는 최저생계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니 가출 후에도 청소년들이 독립적 생활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나아가서 기본소득의 도입은 노동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 죽어라 스펙을 쌓아야 하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게 될 것이며, 가정과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며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훨씬 작아지게 만들어준다. 여차하면 파업이든 태업이든 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기본소득은 가출 등 가족의 틀을 벗어난 청소년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 되면서 청소년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는 청소년들의 독립 시기가 빨라지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지금 주로 청소년들, 그러니까 0~19, 20세 정도까지의 ‘미성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친권자의 경제적 지배력이라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20대 초중반의 사람들 다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생계에 필요한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계속 돈을 모아서 주거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대학 진학의 보편화에 청년실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점점 늦어지고 있는 독립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10대, 20대 전반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뜻한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더 이상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권자 말 잘 듣고 나중에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 효도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덜어지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살던 관계가 좀 더 독립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가정 안팎에서의 투쟁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에서의 권력관계들을 공론화하면서 변화시키는 청소년들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윤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실로 ‘패륜적’이다.


문화적 어려움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지위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문화적인 문제나 여러 제도적인 문제들에 얽혀 있다. 민법이나 노동법 같은 데부터 넓게 본다면 교육제도나 선거연령, 사회적 인식 등까지도 모두 청소년들의 독립적인 삶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달라지면 상층 구조는 다소 오차가 있더라도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에서부터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요인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청소년들이 세뱃돈 압수당하듯이 기본소득을 받자마자 친권자들에게 압수당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더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몇몇 장애인 시설들이 보조금 더 타내려고 장애인들을 데려와서 보조금을 갈취하듯이, 아이 1명을 더 낳으면 그만큼 기본소득을 더 번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는 친권자들도 나타날 수 있다. 아니면 학생간 폭력에서 ‘삥’을 뜯는 규모가 커지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괴 등의 범죄가 증가하는 일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도입 초기에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판단능력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히 청소년들은 (사실은 20, 30대들도 좀 해당) 경제적 주체가 되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안 좋은 쪽으로 발휘한다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나 명품 소비 문화 등에 소득을 다 쓸 수도 있다. 지금도 빈곤층 가정의 청소년에서부터 이런 명품 소비, 신제품 소비 등의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독립에 기여하기보다는 명품이나 10대 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다면, 친권자에게 손을 벌려서 그런 소비를 하는 것보다는 낫겠으나, 최선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문화적 변화에 더해 어떻게 경제적 주체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을 교육할지, 이러한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계획해야 할 문제이다.


가능성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액수상으로는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빈곤하고 더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이 있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가정/가족 단위로만 묶여서 생각되어왔고 독립된 경제적 능력을 인정받거나 보장받은 적이 없는 청소년들은 기본소득 도입의 이해당사자 중에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그 자체로 청소년들을 해방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청소년들이 친권자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지금의 사회적 시선으로 본다면 ‘패륜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중 하나일 수는 있다. 또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청소년들의 삶이나 교육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과정 자체, 그리고 기본소득에서 청소년들(0세~19세 정도)이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도입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과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역시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운동과 제도는 최소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전까지는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그런 새로운 사회로 가는 가능성을 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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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ma

    밀도 높은 글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2010.06.29 03:39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6. 19. 18:26



첨부한 pdf 파일에는 그 외의 발제문들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본격 학교 엎는 기본소득



지금부터 김칫국을 마실꺼당.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0세이상의 모든 시민에게 50만원 가량의 기본소득이 지급되며, 그것이 친권자들에 의해 남용되지 않게 방지해주는 최소한의1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된다는 가정을 해보자. 어찌됬건 친권자는 쩌는 존재이니 그들이 돈을 꿀꺽 할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테고, '미성숙'한 청소년 따위가 돈을 받아봐야 유흥비로 탕진하겠지 하며 츤츤대는 사람도 있을법하고, 야자에 학원에 강제학습당하느라 유흥비로 쓸 시간조차 없을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거다. (현실은 유흥할 공간이 없당...)

어느정도는 모두가 맞는 말이다.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해서 모든 청소년이 현재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식의 블링블링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거라고,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뀔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이런저런 균열들이 생기면서야 비로소 큰 틀들이 바뀌기 시작할테다. 그 큰 틀들 중에 학교가 있다.

남한의 청소년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뜨든.) 대부분에게 가정과 더불어 억압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시간과 즐거움과 권리의 블랙홀이당. '다니기 싫지만 어쩔수 없지,' 하며 비장한 스멜을 풍기는 대사가 난무하는 그 곳, 왜 '어쩔 수 없이', '다녀야만' 할까. 고통스럽지만 깊이있는 학문을 통한 진리의 탐구를 위해? 안다닌다고 하면 아빠가 족치니까? 당장 나가면 할게 없어서? 대학 졸업장 없으면 정규직이 못되니까? 첫번째 경우라면 남한이 아닌것 같고(...) 두번째 경우에 관해선 공현이 패륜적으로 설명해 줄테고, 여기서는 세번째와 네번째의 경우를 보자.

"야 넌 학교 왜 다니냐? 재미없지않아?" 하면 "어차피 나가봤자 할게 없잖아." 하는 애들을 꽤 많이 봤당. 여기서 '할게 없다'는 말은 두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레알 할게 없어서 심심하다는 뜻과,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의미. 전자처럼 규제랑 강제 쩌는 학교가 그래도 심심한것보다 낫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면 캐암울할거당. 모두가 머리카락을 한개씩 뽑으며 대체 청소년에게 얼마나 놀이공간이나 놀거리가 없는지에 대해 반성해야 할 거다. 후자라면 18세미만의 노동을 제한하는 법을 개정해야하고, 알바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하지만, 여기에 기본소득이 얹어진다면 청소년의 생존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당장 생계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기 때문에 학교를 나올 수 있는 여지도 많아진다.

대학 졸업장을 통해 고소득 전문직을 굳이 해야겠다는 청소년들에게는 기본소득이 재학이나 진학 여부에 직접적으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를 '선택'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청소년이 주위에 늘어가고,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는 이들이 조금씩만 늘어나도 다른 학생들이 그 영향을 받는것은 물론, 현재의 '못견디겠으면 나가셈' 식의 일방적 학교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다. 두발규제와 교복, 체벌을 남발하고 내신 챙기려면 알아서 들어라 식의 수업이 계속되는 학교라면 청소년의 '선택'을 받지 못할테니. 이런게 레알학교선택제이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고등학교에 진학 워너비만 남는다면, 그것도 그 나름의 파장이 있을테고.

기본소득의 목적 중 하나는 다들 알다시피 ‘강요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당. 그러니까 ‘강요된 노동을 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 아둥바둥 입시경쟁에 취업경쟁에 매달리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노동시장의 모양새도 많이 바뀔 텐데, 그렇게 일자리가 더 많아지고 정규직 취업을 하려고 학벌을 따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 압박이 약화된다면 경쟁적 교육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줄세우기 위한 경쟁, 등수를 위한 점수 매기기, 이딴 것들이 아니라 학생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본소득은 학교가 취업과 입시를 위한 학원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거징.

당연히 이걸 다 개드립으로 볼 수도 있당. 기본소득이 어찌어찌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청소년이 그 과정에서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지급 대상 연령이 0세는 커녕 18세, 19세 마냥 높아질 가능성이 크니까. 그래서 결국 기본소득이 정말로 청소년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학교를 엎는 효과를 내려면, 더 많은 청소년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세력화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의 김칫국 마시기는 그 목소리의 일환이당.




1 가 뭘지는 나도 모른다. 같이 얘기해보자며... 어렵다며...


2 명박교육의 기만적 고교'선택'제 같은거 말고.







패륜적 기본소득

공현



가정에서의 청소년의 지위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 아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도로 학교와 가정을 꼽을 수 있다.(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학원’도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에 비해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는 잘 공론화되지 않는다. 이는 학교가 제도화된 공적 공간이며 집단적, 조직적 제도인 반면 가정은 사적 공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정이 ‘제도’라는 말 자체에도 반발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가정에서의 체벌,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와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등을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쉽게 알 수 있다.

구체적인 통계 등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것들(특히 청소년‘활동가’들이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그리고 법 제도를 통해서 보면 가정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를 알 수 있다. 민법에는 친권의 효력으로 친권자1가 청소년을 보호, 교양할 권리의무(913조), 청소년의 거주지를 지정할 권리(914조), 징계할 권리(915조), 재산 관리권(916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부모, 후견인 등의 친권자가 정하는 곳에서만 살아야 하고, 친권자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친권자에게 자의적으로 징계를 당할 수 있으며(주로 체벌을 하거나 용돈을 줄이거나 외출금지를 시키거나 물건을 압수하는 등), 재산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사생활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을 침해당하고 있으며, 진로 결정 등에서도 강압에 노출되기 쉽다. 친권자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처우가 달라지겠지만, 제도적문화적 조건만으로 봤을 때는 청소년들은 ‘부모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회적 지위에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아나키즘은 근대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꽤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바쿠닌 또한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2 페미니즘 쪽에서도 남성 가부장과 여성 사이의 권력관계에 더해서 아동에 대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논의들이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 또한 세대간의 지배 종료를 페미니즘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안했던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는 많은 부분 경제적인 종속성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말 안 들어? 그럼 용돈 없어!”, “내 말 듣기 싫으면 나가. 여기가 니 집이냐? 니가 입는 옷 먹는 거 다 누구 돈으로 산 건데?” 용돈 뿐 아니라 의식주 전체를 친권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친권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압박의 수단이란 무궁무진하다. “내가 너 키우느라 들인 돈이 얼만데” 등 한국 특유의 높은 보육․교육비 때문에 (좀 넓게 잡은) 중산층 이상의 친권자들이 가지는 투자의식과 주도권 등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또한 가정의 경제력의 일부를 담당함으로써 어느 정도 협상력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액수와 비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친권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보다 독립적이고 덜 의존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미래에 자신들에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돌려주기를 바라는 친권자들에게는 투자의 부담이 줄어들고, 또 자신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됨에 따라 청소년을 채찍질해서 사회 상층부에 쑤셔 넣을 동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친권자들도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니까 가정 안에서 경제력의 부담 정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돈이란 같은 액수더라도 어느 정도 있는 자들보다는 없는 자들에게 더 효용이 큰 법이다. 일단 가정 안에서 가지는 경제력의 비율이 0에서 10이 되는 것은 발언권이나 협상력의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 모델에서는 소득이 많은 친권자들은 세금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내게 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좀 잘 사는 가정 안에서는 경제력의 분배 효과를 가지게 된다.

여차하면 가출할 수 있다는 것도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출은 자신이 원하는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투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출을 해도 주거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가출의 리스크가 컸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가출 후의 리스크가 크게 줄 것이다. 가출 후의 일차적 생활에서가 그렇고, 이차적으로 가출로 인해 정해진 레일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그렇다.3  여차하면 파업이든 태업이든 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기본소득은 가출 등 가족의 틀을 벗어난 청소년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 되면서 청소년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의 독립 시기가 빨라지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생계에 필요한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계속 돈을 모아서 주거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대학 진학의 보편화에 청년실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점점 늦어지고 있는 독립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10대, 20대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뜻한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더 이상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권자 말 잘 듣고 나중에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 효도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덜어지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살던 관계가 좀 더 독립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가정 안에서의 투쟁4 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에서의 권력관계들을 공론화하면서 변화시키는 청소년들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윤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실로 ‘패륜적’이다.



문화적 어려움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지위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문화적인 문제나 여러 제도적인 문제들에 얽혀 있다. 민법이나 노동법 같은 데부터 넓게 본다면 교육제도나 선거연령, 사회적 인식 등까지도 모두 청소년들의 독립적인 삶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달라지면 상층 구조는 다소 오차가 있더라도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에서부터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요인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청소년들이 세뱃돈 압수당하듯이 기본소득을 받자마자 친권자들에게 압수당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더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이 1명을 더 낳으면 그만큼 기본소득을 더 번다고 생각해서 무슨 자동으로 돈을 버는 존재로 생각하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는 친권자들도 나타날 수 있다. 출산율은 높아질 거 같지만, 그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 나쁜 쪽으로 작용할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5

기본소득 도입 초기에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판단능력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히 청소년들은 (사실은 20, 30대들도 좀 해당) 경제적 주체가 되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안 좋은 쪽으로 발휘한다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나 명품 소비 문화 등에 의해 기본소득을 다 쓸지도 모른다.6  지금도 빈곤층 가정의 청소년에서부터 이런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독립에 기여하기보다는 명품이나 10대 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다면, 뭐 아주 나쁜 건 아닐지 몰라도 최선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문화적 변화에 더해 어떻게 경제적 주체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을 교육할지, 이러한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계획해야 할 문제이다.



가능성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빈곤하고 더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이 있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기본소득 도입의 이해당사자 중에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그 자체로 청소년들을 해방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청소년들이 친권자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지금의 사회적 시선으로 본다면 ‘패륜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중 하나일 수는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과정 자체, 그리고 기본소득에서 청소년들(0세~19세 정도)이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투쟁이 될 것이며, 기본소득 도입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과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역시 난이도 높은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운동과 제도는 최소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전까지는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그런 새로운 사회로 가는 가능성을 말이다.





아버지 부에 어머니 모자를 쓰는 부모라는 표현은 정상 가족 중심적 표현. 그렇다고 ‘보호자’ 같은 표현을 쓰는 것보다는, 그들과 청소년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친권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 Marc Siverstein 지음.


이 이차적 리스크 때문에 가출 또한 어느 정도 계급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4  지 금까지 아수나로에서 이야기 나온 전술만 열거한다면, 무단외박, 가출, 화장실 점거, (부모가 꽤 명망 있는 활동가인 경우) 좌파 언론에 기고 등이 있는데, 기본소득의 도입은 이 투쟁 방식을 여러 가지로 확대시켜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출산율이 높아지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난 아직은 출산율이 좀 낮은 쪽을 지지하는데.


이런 기업의 마케팅 전략 문제는 『88만원 세대』가 잘 짚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안 좋은 쪽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기본소득을 수령한 아동을 납치하여 기본소득을 갈취하는 등의 범죄까지도 상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지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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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6. 17. 16:13


 

"기본소득과 청소년"
:청소년과 기본소득의 적절한 만남

일시 : 2010년 6월 19일 토요일 14시
장소 : 민주노총 서울본부 1층 아동청소년센터

사회 : 밤의마왕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토론자 :
김성일 (기본소득네트워크) : "기본소득, 간섭받지 않을 권리"
발칙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학교을 엎어버리는 기본소득"
박정훈 (대학생사람연대) : "기본소득과 대학생"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패륜적 기본소득"

주최 :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학생사람연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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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원고는 수정하는 대로 올리겠슴둥;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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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에는 꼭 가야겠습니다. 졸음과 귀차니즘을 이기고서어엉 (어째 서울로 옮기고 나니 귀차니즘이 심해졌어어어) …아, 그리고 혜원이 하고 따이루 씨가 참석하는 지 알 수 있을까요. 별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2010.06.17 16:28 [ ADDR : EDIT/ DEL : REPLY ]
    • 따이루는 올 확률 반반
      혜원은 아마 오려나;; 원래라면 올 텐데 지금 강원도 가있어서... 안 올 확률이 높을걸요

      2010.06.18 17:14 신고 [ ADDR : EDIT/ DEL ]
    • …라고 생각했었는데, 못 가게 되었습니다. 교지 회의 시간이 재조정되었어요! 엉엉엉. (…)

      2010.06.18 22:35 [ ADDR : EDIT/ DEL ]
  2. 오 이거 가보고 싶다. 근데 난 군인이긔... ㅠㅠㅠㅠㅠ

    2010.06.17 18: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 오고 싶어한다는 것도 좀 의외?

      2010.06.18 17:14 신고 [ ADDR : EDIT/ DEL ]
    • 아니 요즘 심심해서 (...)
      그리고 예전에는 이런거 보더라도 그닥 감흥이 안왔는데,
      군인이 되고 나서부터 좀 감흥은 오더군.
      무엇보다 친구가 뭘 그리 열심히 하나 궁금하기도 하긔 ㅇㅇ

      2010.06.19 09:42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 5. 24. 22:21


       





청소년에게 권력을! 청소년을 정치적 주체로!

  "사회 경험이 부족한데 어떻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나"

  "비이성적이고 미성숙하고 열등해서 안 된다."
  "세금도 별로 안 내는데 무슨 정치적 권리?"

  …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최근에 나온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걸 아시는가? 이런 말들은 바로수십, 수백년 전에 노동자들의 정치적 권리,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 흑인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던 이들이 부딪쳐야 했던이야기들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 뭐 저런 XX가" 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여성이나 흑인의 정치적권리를 부정하거나, 또는 재산에 따라서 정치적 권리를 차별적으로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이제 아주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주 닮은 논리로 정치적 권리를 부정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미성년자'라는딱지를 붙이고 있는 만19~만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이다.


아, 같이 좀 결정하자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고 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삶에대해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고,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결정에 대해서는 같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를 하는 놈들이 개인이건 어떤 집단이건) 독재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합법적으로 그런 독재스런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미성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만19세나 만18세 미만의 사람들,청소년들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에 대해서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그의견에 대해 아동의 연령과 성숙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얼만큼 자랐냐에 따라서 자기와 관련된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 셈이다. 사람이 얼만큼 자랐는지를 재고 정하는 건 대체 또 누구의 권한인지, 삐딱하게 보면 마음에안 드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최소한 나이가 적다고 해도 민주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좀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청소년의 능력이 닿는 한은 당연한 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공인한 셈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협약도 모두 개무시를 당하는 게 현실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진정한 의미에서 청소년을 위한 자리는없다. 학생회들은 죄다 허수아비 아니면 축제준비위원회 아니면 선도위원회 수준이다. 선거권이 없고, 정당법과 공직선거법 등에 따라정당 가입도 안 되며 선거운동도 못한다. 중고교 학칙들은 한결같이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청소년특별회의" 등의 기구들이있다고는 하나,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거의 없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 만19세이후로 유예된 민주주의일 뿐이다.

  우리 기호0번 청소년 후보가 굳이 어렵게 출마를 결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청소년들과 관련된 일은 청소년들이 결정하는게 맞다. 학교의 일은 학생, 교사들을 포함해서 학교의 노동자들 등이 같이 결정하는 게 맞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정당한 권한과권력을 되찾겠다. 우리는 학교나 교육이나 청소년들이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뻥'과 싸우기 위해서 나왔다. 다양한 정치적목소리들이 꽃피고 토론되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서 나왔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은 낚시이고 구라이다. 마치 여성들에게, 흑인들에게, 노동자들에게 그랬던것처럼. 대체 ‘미성숙’과 ‘불완전’을 정하는 기준은 뭔가? 비청소년들이 지역주의나 학연에 따라, 외모를 보고, 땅값 올려준대서투표를 하면 그건 '사회 문제'가 되는데, 청소년들은 그런 식으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니까 정치적 권리를 주면 안 된다고 한다.청소년이 하면 미성숙, 비청소년이 하면 사회문제...? 합리적이고 성숙한 인간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고헛소리다. 불완전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더라도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결정해나가는 게 민주주의이고 인권이다. 그렇게 참여하여 사회를운영하고 변화시켜가는 경험을 하면서 점차로 능숙해지고 성의있게 참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후보 청소년, 진짜로 청소년에게 힘을 줄 거임!

  가끔 보면 정부에서는 교원평가제를 갖고서 이제 학생들이 교육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는 그런면에선 완전 짝퉁일 뿐이다! 교사들에게 점수를 매겨서 관리하지만, 학생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될 수가 없게 돼있다. 그리고교육정책이나 학교교칙, 학교운영 자체가 문제투성이인데 교사들 한명 한명에게 점수를 매긴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또,청소년특별회의나 청소년참여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 갈 수 있는청소년들은 교장 추천을 받은 범생이들, 어른들 입맛에 맞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고, 그렇게 해서 바뀐 정책도 별로 없다.

  촛불집회 때 청소년들이 주체니 뭐 훌륭하니 말은 많았지만, 결국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는 나아지지 않았다. 청소년들은칭찬하던 어른들도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신장시키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민주주의를 걱정하던 사람들도 비민주적인독재 속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따.

  레알 교육감 후보인 청소년 후보는 그런 짝퉁들은 반대한다. 왜냐면 우린 진짜거든!
  학생들은 학사일정이나 학교교칙, 예결산, 교직원인사를 다 포함해서 학교운영에 참여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서부터 더커다란 교육정책이나 청소년정책까지 직접 참여해서 만들도록 할 것이다. 선거연령을 정하는 건 교육감의 권한은 아니지만, 최소한만16세로 낮추고 점점 낮춰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국회의원들과 이야기하겠다. 또한 당장 선거권이 없더라도 학생들,청소년들이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을갖고서 학내집회 허용이니 어쩌니 말이 많던데, 그런 건 당근 돼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한 걸 왜 굳이 입 아프게 떠들까.

  일상의 정치건, 국회랑 청와대랑 정부청사랑 도청이랑 시청이랑 등등에서 하는 정치건, 거리에서 하는 정치건…. 집회를 하건친구나 가족을 설득하건 가출을 하건 화장실을 점거하건 선관위랑 맞장을 뜨건 소송을 걸건 국회에 드러눕건 인터넷에 글을 올리건,교사들과 회의를 하건 위원회에 참여하건, 여하간 오만가지 방법으로 청소년들이 정당한 권력과 권한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누릴 수있게 하겠다. 바로 청소년의 힘으로!





돈 받으며 공부하자! 학생.청소년에게 소득보장!!



  우리는 흔히 학교에 돈을 내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수업료, 교육비, 등록금 …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장벽 없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교육을 보편적인 공공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상교육'을 실현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무상교육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걸까? 분명히 무상교육, 공짜로 돈 안 내고 교육받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교육권을 누리게 하기 위해 이루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무상교육만으로 충분한 걸까?

  애시당초 왜 우리는 수업료를 내면서 교육에 참여해야 할까? 교육은 물론 한 사람의 권리이자 그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거지만, 동시에 이 사회가 계속 유지되고 계속되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사회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아달라고 학생들에게 돈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학생들이 돈을 받으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 사회적인 임금을 지급하자는 것은 학생들을 단지 '교육받는 대상'이나 '돈 내고 교육을 소비하는 소비자'로 보는 걸 넘어서자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교육이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존중받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니들은 공부나 해!"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라는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리신다고? 하지만 이런 주장은 프랑스에서의 68혁명 때나 일본에서 학생들의 운동 때도 나왔던 적이 있는 주장이고, 또 실제로 스페인의 벤포스타 같은 공동체에서는 실제로 그런 제도가 시행되었던 적이 있었다.


"벤포스타에서는 학교 수업을 공동체를 위한 활동으로 보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 출석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다. 아이들은 저마다 주급 봉투를 받는다."

(에버하르트 뫼비우스 씀. 김라합 옮김.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 p.91.)

" 학교 생활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규정은 아이들이 '수업 시간 급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수업에 한 시간 참여한 학생은 작업장에서한 시간 일한 것과 똑같은 급료를 받는다. 어린이 공화국에서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주유소에서 일하는 것과 똑같은 가치를지닌, 공동체를 위한 활동으로 여긴다."
(같은 책. p.107.)




  물론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이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면, 굳이 교육에 대해 '임금' 개념의 돈을 지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임금을 받아야만 참여할 마음이 드는 괴롭고 힘든 노동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가! -_- 지금처럼 국가가 교육과정을 정하고 학생들이 강제로 배우게 하는 시스템에서라면 당연히 임금을 줘야겠지만,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학생들에 의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청소년들이 교육의 주인이 된다면 '임금을 줘야 하는' 교육을 점점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굳이 '임금'을 줘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교육이 바뀌더라도, 교육에 참여하면서 드는 돈이나 그 시간의 기회비용 등을 보상하는 수업료(학생들이 학교에 내는 수업료가 아니라 학교가 학생들에게 주는 수업료!) 정도는 주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ㅋ



청소년들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도 필요

  또 한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0번 청소년은, 이러한 임금 지급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지금까지 부모나 보호자의 경제력에 매여서 살아야 했던 것을 넘어서 청소년들이 경제적인 주체성과 자유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할 수 있게 하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나 보호자들은 '용돈'으로 주던 돈을 안 주고 대신에 이를 세금으로 납부하고 교육청에서는 이를 학생들이 수업료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청소년들 모두에게(또는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굳이 교육을 받는 만큼 임금을 준다거나 하는 것도 필요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교육감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 약속드리기는 어렵지만,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청소년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기본소득 보장을 지지하며, 만약 당선된다면 이것이 실현되도록 학생 임금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정책 공조를 펴나갈 생각이다.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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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류기아

    즉 범생이들에게 패한 자들의 불평불만이라는 소리지.
    진짜 바꾸고 싶으면 공부 잘하고 말 잘들어서 청소년특별회의나 청소년참여위원회에가서 지금의 생각과 사상을 펼치는 겁니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여러분 수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여러분 모두가 우등생이 되어서 지금의 생각과 사상을 그들에게 전파하세요. 성적높은 우등생, 장학생들은 학교가 함부로 못하는건 잘~~알고 계신듯 하니 그런 지위를 얻어서 한번 해볼 생각은 없는건가요? 여기 참여하는 인원수가 다 우수학생이 되어 외친다면 완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교사들 당황하게 만들수는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같이 '공부 못하는 넘들의 불평불만이다!!!'라는 소리도 나오지 못할꺼고 말이죠.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가장 현실성이 높은거 같은데 말이죠.

    2010.05.26 01:59 [ ADDR : EDIT/ DEL : REPLY ]
    • --> 청소년특별회의나 청소년참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거의 권한이 없음은, 제가 얼마 전 참여한 유엔사회권위원회 제출용 NGO 반박 보고서에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나네요 -ㅂ-

      제가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제가 나름 성적으로나 생활 면으로나 우등생 출신인데요 ㅋㅋㅋㅋㅋㅋ 우등생이어도 세상은 못 바꾸더라구요. 밑바닥에서부터의 청소년 집단의 세력화, 조직화, 운동이 없이는 현실을 바꿀 수가 없더라구요.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실천을 해보시면 오히려 님이 말한 그런 방법이 현실성이 없다는 걸 아시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2010.05.26 02:29 신고 [ ADDR : EDIT/ DEL ]
    • 저도 외고에서 3년동안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는 나름 우등생 출신인데요. 그래도 별 소용은 없더라고요. ㅋㅋㅋ

      아수나로에 나름 우등생 출신들이 많이 있는데, 딱히 더 늘어난다고 해서 소용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자기 생각 속에서는 자기 생각이 가장 현실적인 것 같죠. 직접 실천해보시길.

      2010.05.26 10:55 [ ADDR : EDIT/ DEL ]
    • 저도 우등생이었습니다만;;; 학교께서는 대하시던 태도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던데요; '현실적, 현실주의, 현실성'라는 말이 굉장히 오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현실'들은 '레알 현실'과는 정말 다르니까 말이에요.

      2010.05.29 22:00 [ ADDR : EDIT/ DEL ]
    • 원래 부적응자들이 저항하면 "니네는 사회 부적응자니까 그래!"라고 하고
      엘리트들이 저항하면 "니넨 가진 거 다 가지고 배부르니까 그런 소리나 하지?"라고 하는 것이죠.
      사회는 사회의 기존 체제를 바꾸려고 하는 저항들을 억압하고 고립시키는 식으로 작동하지 그걸 말하는 사람이 모의고사 성적이 1등이냐 300등이냐에 그렇게 크게 다르게 작용하진 않아요 -_-

      2010.05.31 10:00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 4. 16. 12:15
http://stcat.egloos.com/2440207
여기에서는 계속해서 선언자가 추가되고 있다. 참여하고 싶은 블로거 분들은 여기에서 댓글을 다시라.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2010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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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불만은...
 '블로그 선언'인데 정작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_-;;





사실 기본소득에 대한 내 입장은 다소 애매하다.

기본소득이 생산관계를 말하지 않고 있다느니 노동계급의 투쟁 과제가 아니라느니 개량적이라느니 하는 비판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중요한 대안 구상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지지하고 있다.
노동과 소득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노동과 무관하게 생계를 어느 정도 보장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건 내가 청소년인권활동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생계가 곤란한 룸펜스런 활동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자본주의의 폐지-혁명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은 체제 내적이고 자본주의를 갈아 엎는 데는 큰 소용이 없는 대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의 폐지-혁명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고, 청소년인권 보장을 위해서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다른 사회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청소년인권의 개선에 있어 기본소득은 꽤 유효한 전략이다. 당장 먹고 살기 빠듯한 나에게 유효한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현재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과제로 제시될 수 있는가,
또는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책으로서 정당이나 정치인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현재 한국 사회의 어떤 운동세력이 기본소득 운동을 자신의 핵심 과제로 떠안고 운동화할 수 있는가, 와 같은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도 않고 있고 대답을 내놓지도 않고 있는 이상 나는 기본소득 운동을 진지하게 사유하고 실천할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빈민, 청소년, 장애인, 노인, 여성, 저임금비정규직노동자, 실직자.....?)

단적으로 말해서 청소년운동이 기본소득을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지향한다고 밝히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내가 기본소득에 대해 취하고 있는 포지션이 딱 거기인 거지.
개인적/의식적/담론적으론 지지하지만 우리 운동의 과제로 적극 제시하고 떠안기엔 좀 어려우니 (운동 상황 때문이건 뭐건) 거리를 두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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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냥 찬성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하나만 물어보자면,

    "인플레는? 인플레는? 인플레는? 인플레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제도가 발악을 하면서 폭력이 수반되던 전례가 자꾸 떠올라서, 미안?

    2010.04.16 23:42 [ ADDR : EDIT/ DEL : REPLY ]
    • 자꾸 따지려 드는것 같아서 (진짜) 미안한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정도"라든지,
      "불로소득"이라든지,
      "충분한 복지"라든지,

      난 도대체 "어느 정도"를 요구, 또는 주장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이야기하는건지 "전혀" 찾을 수가 없어서.. 나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문장이었는지. "거리를 두고 있는 분"에게 너무 공격적인가(흠..)

      2010.04.16 23:59 [ ADDR : EDIT/ DEL ]
    • 글쎄 사회당에선


      Q.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A. 기본소득은 인플레이션과 연동하여 인상되므로, 인플레이션 자체가 기본소득 수급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또한사회경제적으로도 묶여있던 돈이 순환되면서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만, 화폐발행 자체가 증가되는 것이 아니므로 크게 우려할수준은 아닙니다. 또한 수요의 증가 원인은 대부분 공급량을 쉽게 늘릴 수 있는 저소득층의 생필품 수요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급증가로 일자리도 늘어나고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와 있긴 한데 ㅋㅋㅋ
      인플레에 대해서는 통화량이 늘면 인플레가 일어나요, 정도 이상으로는 그리 아는 게 없으니 예측하기 어렵군 나는;

      일단 기본소득의 액수나 지급액 수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있어서. 난 1인당 20-30만원만 돼도 꽤 생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1인 최저생계비에 턱걸이하는 수준 정도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근데 사실 기본소득 논의 자체가 기본보장으로 인해 생계를 위한 지출 규모가 줄어들어야 유의미한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지만 ㅇㅇ)

      2010.04.17 01:49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로그인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기본 소득을 주겠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네요.
    그럼 일종의 부유세를 걷는 건가요? 그것도 정도껏 걷으면야 상관 없긴 하겠지만, 만약 일정 수준 이상으로 걷어버리면 상류층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어떻게 설득할지 좀 궁금하네요. 사실 돈 많은 게 죄라고 보긴 어렵고 한 국가에 머물기보다는 유동적일 수 있는 상류 계층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을 저버리기 시작하면 한국 전체 소득이 떨어질 수도 있겠죠. 기본소득이 도움이 되면 다행이지만, 이로 인해 증가하는 룸펜들이라든가 이런 새로운 사회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는 거죠? 가끔 노키아의 예를 들어서 세금이 강한 나라에도 부유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 있던데, 그거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가 노키아 눈치 많이 살피더라고요 -_-; 실제로 노키아 사람들 중 일부가 정치에도 관여하고 있을 정도로 권력이 세고요. 그래서 은근 세금이나 공공재의 특혜를 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죠. 설마 이런 시스템을 바라고 사회당 측에서 기본 소득을 외치는 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나마 북유럽 쪽은 다행히 둘 사이의 관계가 원만했으니 망정이지, 한국 같은 현실에서 기본 소득 제도가 제대로 작용될 수 있을지 걱정이 드네요.

    2010.04.17 08:35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기본소득은 원래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좀 강합니다. 뭐 예산 분배의 재편도 당연히 필요하겠습니다만... 부유세보다는 불로소득 환수 뭐 이런 식인데, 자세한 재원 마련이나 재정 조달에 관련해서는 연구라거나 민주노총에서 나온 자료 같은 게 있으나 저는 원래 돈에 약한 데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거까지 찾아보긴 좀 그러하니 그러한 것들은 직접 찾아보시면 여러 유용한 정보들이 나올 것입니다.


      한국의 '현재 현실'에서 기본소득 제도는 제대로 작동은커녕 도입될 수도 없습니다. 실효적인 기본소득은 사실 사회적 권력의 전반적 재편을 필요로 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뭐 그리 실효성이 크지 않지만 기본소득 5만원, 이런 식의 공약들은 이미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나오고 있지만요 ^^;

      2010.04.18 13:40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7. 29. 11:18


최근에 유엔사회권위원회에 제출할 한국의 사회권 NGO반박보고서를 쓰고 있다.
그중에서 맡은 파트는 아동권.

다른 '주거권'이나 '물에 대한 권리', '건강권', '교육권' 등과는 달리
아동-청소년 권리(제10조, 여성(+임산부)과 아동과 가정 등에 대한 조항에 해당)은 좀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는 느낌...

'아동 노동' '청소년 성매매' '비혼모와 성교육' '탈가정 청소년' '청소년의 참여' '결식.빈곤 아동' '학교와 가정에서 체벌' '아동-청소년 문화적 권리'...
아무래도 아동-청소년이라는 특성을 가진 여러 사람들에 관하여 관련된 사회권을 다 쓰다 보니까 그렇게 산만할 수밖에 -_-;;



그래서 걱정한 게, "아동권 파트에서 핵심적으로 끌어내고 싶은 권고는?"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충 1차 초안을 쓰고 나니까 뭔가 공통된 권고 요구가 보인다 ㅋㅋ

'아동-청소년에 대한 소득 보장/지원 정책'을 요구하는 게 교육권 쪽이랑 문화적 권리를 빼고는 거의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쓰고 나서 생각한 게 "역시 기본소득제로...?;"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는 역시 기본소득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였나


다만 사회권반박보고서는 아무래도 UN사회권위원회의 다른 권고 수준들을 보면서 요구하는 걸 조정할 수밖에 없어서 전체에 대한 기본소득 보장 등을 대놓고 요구할 수 없는 게 아쉽긴 하다.

빈곤, 결식 아동 파트에서 무상급식 문제를 조금 다루긴 했는데,
최근의 경기도에서 촉발된 무상급식에 대한 논의를 좀 더 반영해서 논리를 구성해야겠다 싶다.
무상급식도 분명히 필요하다.
사실 무상급식이냐 '저소득층에 대한 무료급식'이냐 하는 논의 또한
무조건적 소득 보장이냐 빈곤층에 대한 지원이냐 하는 논의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 듯?



'무조건적인 소득 보장'은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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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문제는 현재 기본 소득제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 중에 있는 사회당과 연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참에 진보신당 청소년모임에 관련 안건을 제출해 볼까요. (…근데 되려나)

    2009.07.30 03:06 [ ADDR : EDIT/ DEL : REPLY ]
  2. 기초소득 아니죠 기본소득 맞습니다 'ㅅ'

    2009.08.03 10:35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