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 10. 25. 13:4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8194901&section=03



전교조 숨통 조인 한국 사회, '한고학연'의 추억

교육체제 내 결사자유 박해에 동병상련

공현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활동가

"나는 전교조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학생인권에 대해서 교육도 많이 받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것이다. 요컨대, 나는 전교조를 보면서 자꾸 한고학연이 떠오르고 광고협, 부고협, 마창고협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학교에서 결사의 자유를 무시당하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의 공감이라고나 할까? 오지랖이 넓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교사의 권리조차 무시하는 정부가 학생들의 권리라고 존중해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다. 그래서 별거 아닌 힘이더라도 보태고 싶다. 정부에게 전교조에 대한 그런 탄압은 부당한 것이며 결사의 자유와 노동조합의 단결권에 대해 개념을 좀 탑재하여 교원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내 마음 한편에서는 전교조 또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때 기꺼이 지지하고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뭐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그밖에도 청소년/청소년활동가들이 전교조 탄압에 관해 쓴 글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8162530&section=03

"전교조 탄압? 학생들에게 '노동 3권' 뭐라 가르칠 텐가"

[청소년이 바라본 전교조 설립 취소 위기·②] 노동권, 말 뿐인가요?

이응이 청소년 노동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7110423&section=03

"전교조 공격, 무한 경쟁 탈출하고픈 학생들 배신"

[청소년이 바라본 전교조 설립 취소 위기·①] '어불성설' 꼬투리 잡기

김가을길 서울 문창중학교 1학년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477

전교조, 해산만이 답인가?[교육 살펴보기]전교조의 법외노조화 시도에 부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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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4. 5. 15:46

"야간 교대제 근무는 발암물질"

국제암연구기구 전문가들 정의…"납 성분과 같은 등급"



간혹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석면은 1970년대까지 미국의 공사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던 절연 물질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석면이 폐암 혹은 악성 중피종이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암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만, 당시의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매일같이 만지고 사용하는 물질이 암을 유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거예요.


교대제 근무가 발암물질인 이유

   
  
불안하면서도 ‘설마 이렇게 다들 사용하는데 이걸 만진다고 암이 생기겠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석면만이 아니었겠지요.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고무 공장에서 벤젠을 만지던 노동자들도, 크롬으로 도금하던 노동자들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하고 있지 않을까요.

덴마크 직업병 판정위원회는 2008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결정을 내립니다. 다름아닌 야간 근무를 포함한 교대제 근무를 발암물질로 인정한 것이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1주일에 한 번 이상 20년에서 30년 가량 야간근무를 했던 여성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산재보험으로 보상하라는 판정을 내린 것입니다.

물론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진 가족력과 같은 다른 위험요소가 없는 사람들에 한해서요. 그 결과 간호사, 비행기 승무원 등의 직업을 가졌던 38명의 여성 노동자가 산재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http://www.ask.dk/sw25371.asp)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 중 15%에서 20%가 교대제 근무를 한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몇 %나 될까요. 짐작하건데, 20% 보다 결코 작지는 않을거예요.

병원 노동자들, 방송국 노동자들, 운송 노동자들, 제조업 노동자들. 주변을 둘려보면 야간 근무는 이미 일상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발암물질이라니요. 석면이, 크롬이 혹은 흡연이 발암물질인 것은 짐작할 수있는데, 밤에 근무하는 것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납과 같은 등급

덴마크에서의 판정은 사람과 동물을 대상으로한 기존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008년에는 30여 편의 기존 연구를 분석한 결과, 비행기 승무 노동자에서 70% 가량, 다른 교대제 근무자의 경우 40% 가량 유방암 발생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 논문이 발표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를 들어 야간 근무의 어떤 요소가 암을 발생시킬 것인가를 질문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설명가능한 여러 가설들이 제시되고 또 여러 실험 결과들이 그것들을 뒷받침했습니다. 예를 들어, 밤 시간에 빛에 노출이 되면, 수면 리듬을 파괴되고 또 멜라토닌이라는 암 발생을 억제하는 호르몬 생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요.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기구(IARC :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의 결정이었습니다. 2007년에에서 24명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야간 교대제 근무를 유력한 발암물질(IARC 2A, Probable Carcinogen)으로 정의한 것이지요.

이 말은 흡연이나 석면이 속한 발암물질 그룹(IARC 1, Carcinogen) 바로 아래 등급에 야간 교대제 근무가 속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등급으로 분류되는 물질에는 납, 디젤엔진 연소가스가 있습니다.

보통 특정 화학물질이 발암물질인가 아닌가 여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인용되는 국제암연구기구가 야간 교대제를 발암물질이라고 규정한 이 결정은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20만년 진화와 충돌하는 자본주의 노동환경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야간 교대제가 인간 몸에 좋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인류의 조상을 어디까지 따라 올라갈 수 있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2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야간 근무제는 오늘날처럼 일반적인 근무형태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빛에 노출이 되어 일하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지내며 그러한 자연 조건에 맞추어서 인류는 진화해 왔던 것이지요.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또 전기가 발명되면서 밤에도 낮처럼 일할 수 있는, 혹은 일해야만 하는 상황과 조건들이 생겨나면서, 인간의 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지요.

과학자들이 야간 교대제가 생체리듬 을 파괴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20만년 가까이 진화하며 낮과 밤에 길들여진 인간의 몸이 불과 수백년 전에 시작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요되는 노동 환경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것의 다른 표현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슷한 문제가 또 다른 유방암과 난소암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타민D 합성에서도 발생합니다. 야간 교대제가 밤 시간에 노동자를 빛에 노출시켜 생체리듬을 파괴한다면, 비타민D 결핍은 낮시간에도 건물 안에서 일하면서 태양 빛에 노출되지 못해 생겨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밤에라도 일할 수 있어, 감사해야 하나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봅니다. 한국보다는 여러 면에서 진보적인 유럽국가들에서도 덴마크 직업병 판정 위원회의 결정은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아직 야간 교대제를 발암물질로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걱정이 됩니다. 석면처럼, 벤젠처럼, 흡연처럼 처음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규제가 지연되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암물질로 밝혀졌던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그 대가를 누가 치르게 될까요.

노동조합 조직율이 10% 남짓하고, 작업장에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시키는 일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50%가 넘는,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를 늘려 여성 일자리를 더 마련하겠다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아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야간 교대제가 유력한 발암물질이라는 과학적인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야간 교대제를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밤에라도 일할 수 있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 감사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 아닌가요. 암에 걸리면 보상해주면 되는 건가요.

덴마크에서 스칸디나비아 항공 비행기 승무원으로 30여년을 일하고 나서 유방암에 걸렸던 울라 만코프씨는 산재보상 결정이 난 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http://news.bbc.co.uk/2/hi/uk_news/scotland/7945145.stm)

“만약에 제 직업이 암을 유발하는 줄 알았더라면, 저는 직업을 포기했을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로요. 암으로 죽는 것이니까요. 저는 살아남고 싶어요”


2010년 04월 01일 (목) 09:08:41 김승섭 / 하버드 보건대학원 직업병 역학 박사과정



나도 밤샘 일 좀 안 하고 싶다 ㅠ_ㅠ
근데 야간 자율학습, 심야 학원교습도 그럼 발암물질로 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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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발적으로 야간 업무를 하게 만드는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와 경희대 교지 고황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

    흥미로운 기사였죠. 유한킴벌리 등의 회사에서 실시하는 4조 2교대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2010.04.07 17:17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0.04.08 02:47 [ ADDR : EDIT/ DEL : REPLY ]
    • 사실 어떻게 보면 이미 전지구적 생산력은 과잉 생산에 이르러 있을지도 몰라요; 굳이 밤을 새가며 야간 노동으로 생산을 해야 할 만큼, 모두가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며 모두 굶어 죽어요, 뭐 이런 상황인 건지는 좀 의문스러워요...

      2010.04.08 17:07 신고 [ ADDR : EDIT/ DEL ]
  3. flyingwhale

    전 지구적 생산력이 과잉생산이라는 말이 참 흥미롭네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04.09 16:16 [ ADDR : EDIT/ DEL : REPLY ]
  4.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01.31 14:4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2. 9. 16:05

[페미니즘인(in)걸] 밑바닥에 깔린 청소녀 알바

44만원에 그치지 않는 노동현실

윤티



44만원, 청소년 비정규직 알바


나는 청소녀 알바생이다. 시사in에서 얼마 전에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름붙이길, 일명 “44만원 세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이며, 청소년이고, 말하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요즘 청소년노동인권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여러 번 우려먹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이게 뭐 비밀도 아니고 계속 말해서 닳고 닳을 얘기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ㅋㅋ 그래서 이번에도 내 경험을 가지고 한 번 청소녀 알바생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탈학교 청소년인 나는 부모의 눈치 압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내가 번 돈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알바를 시작했고, 내가 처음 일했던 곳은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일을 하였다. 내가 하는 일은 뒤편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남자애들의 일보다 더 편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기준으로 책정된 건지 잘 몰랐지만) 남녀의 시급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러한 차이에 대해 별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게 그리 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면 할수록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계산대를 두드리고 주문을 받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성다움’을 같이 팔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야 알았다. 난 주문을 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맑은 목소리를 선사해야 했고, 버거를 만드느라 지친 몸에 못지않게 스스로를 여성스럽게 가다듬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하는 ‘험한 일’을 해야 했다.

청소녀들, 돈을 벌려면 성을 이용하라구?

어쨌든 돈은 벌어야 했기에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그만두게 된 뒤에도 다른 일을 구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참 커다란 ‘일’이었다. 사무직 일이었는데, 처음에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나가서 서류 정리 조금 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루 4~5시간 일하고 일당은 2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가자마자 내게 설거지와 청소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라. 자기가 혼자 일하고 있는데, 그런 일들을 못하고 있다고. 이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한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그 사장의 사무실(인지 집인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급을 받는 날, 그 기러기 사장의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에 나는 큰 반항 한 번 못하고 ‘당해야’ 했다. 처음엔 다리를 쓰다듬더니, 나중에는 안아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도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냥 박차고 나와 버릴 수도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더 치가 떨린다. 나는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장이 원한 건 내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일이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여성청소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구하려면 일단 이런 수모는 미리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오피스텔을 빠져 나왔다.

사실 처음엔 이런 일을 당했어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장의 해코지가 두려워서, 또는 이제 와서 하소연해봤자 뭐가 있겠나 싶은 마음에, 내 마음 속에만 꽁꽁 숨겨왔던 것 같다. 많은 청소녀 알바생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위 사진:청소년 알바를 모집하는 광고.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밑바닥 노동, 청소년 노동인권 현실

얼마 전인 11월 27일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실태’를 보면, 청소년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88만원 세대만도 못한 44만원 세대인 청소년 알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밑바닥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급이 3770원이었을 때도 2100원, 2500원 등등 햄버거 한 개 값만도 못한 시급을 받으며 청소년 알바는 그렇게 '헐값노동' 취급을 받아 왔다. 그나마 올해부터 시급이 4000원으로 올랐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또한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가혹하다.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일하는 도중에 휴식 시간과 휴식 공간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휴게시간 따로 없다/휴게실 없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62.0%, 62.8%로 꽤나 높게 나왔다. 근로기준법에도 4시간 일을 하면 30분은 꼭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쉬는 것도 사치일 뿐인 것 같다. 나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 매일 똑같은 버거만 먹으면서 좁은 곳에서 딱 30분 쉬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30분이 너무 짧게 느껴졌으니까.

우리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고용주(비청소년)들은 우리를 더 쉽게 대한다. 실제로 어떤 청소년은 일하는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일테다. 일단 '청소년'에 대해, 거기다 공부만 죽어라 열심히 해야 할 청소년이 '알바'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딱히 칭찬해주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만만한 존재다. 그래서 서비스업, 주문을 받는다거나, 전화를 건다거나 하는 업종에 있다 보면 손님들까지 우리를 막 대할 때가 있다.

용모단정(?)과 밑바닥을 벗어날 날은

나도 일을 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확실히 변하지 않는 건, 여성청소년에게는 주어진 일자리조차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힘들게 일하고 돈 많이 주는 알바는 난 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편의점 야간알바는 대부분 남자를 뽑고 오토바이배달이나 다른 배달 쪽 일도 거의 남자가 대부분이다. 청소년 알바도 성별분업이 되어 있다. 여성들은 상냥하고 예쁘고 얌전한 일, 남성들은 힘쓰고, 몸 부딪히고, 강하고, 험한 일. 우리는 그런 식의 험한 일은 여성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계속 교육받아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중매체들에서도 여성의 직업과 남성의 직업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보여준다. 그리고 남성 직업인데 그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 소위 말하는 '여성 엘리트' 을 보여주며, 이례적인 일이라는 투로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다른 여성들을 향해 말한다.
"너도 네 재주껏 해봐."
남성은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여성은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다시 내가 알바를 구할 때는 '용모단정'이라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시간을 써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스물스물 생겼다.

여성청소년으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밑바닥 노동'인 청소년 노동에서 그 '밑바닥'을 뚫고 한참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초초저임금인) 시급에 남녀차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손님들을 대할 때 아무리 토 나올 것 같은 손님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급 더 올려 줄테니, 애인이 되어달라는 마초 아저씨들의 더러운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과 청소년, 여성 청소년의 노동 현실은 언제쯤 밑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윤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82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9일 15:14:2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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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그러고 보니 난 참 운좋게도 좋은 알바를 구한 듯 하네.

    2009.12.09 22:03 [ ADDR : EDIT/ DEL : REPLY ]
  2.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소녀동지들이여!

    투쟁을 해야지

    안하고 억울하게 당하기만 할 것인가?

    내가 여러분이었으면 짤릴 각오하고 소녀고용살이노조를 만들어서 우리들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었다.

    당하기만 할 것인가?

    나의 동지들이여!

    2009.12.17 00:54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아무래도 활동가 입장이다보니- 그런 말은 쉽게 못하겠습니다 ㅋ;;;;; 노조 만들려고 하면 짤릴 게 뻔한 게 비정규직 파트타임이니까요.
      제가 청소년노동운동 쪽에 뛰어들 때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노조를 만드는 건 '우리들의 처지를 이해해달라' 이상이기도 하지요

      2009.12.17 17:19 신고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09. 9. 23. 17:10


과연 경제학은 현실/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가?



대학교 1학년 때 경제원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맨큐의 경제학 책을 가져다놓고 수요 공급 균형가격 완전경쟁시장 고정비용 가변비용 기업의 퇴출, 담합... 뭐 그런 것들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었다.
그리 모범생은 아니어서 수업 들은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그 중에 교역의 필요성에 대해 배우는 챕터에서 절대우위-비교우위를 설명하던 날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수업을 듣고서 내가 수업 시간에 질문을 했던 게(무려 질문씩이나 하는 학생이었다;)...
일단 분명히 그 이론은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에 주력해서 생산하면 총 효용이 늘어난다는 것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까 교수님은 비교우위에 주력하여 생산한 후에 둘 사이에 교환을 통해 둘 모두 이득이 된다고 가정하고 설명을 하셨다. 물론 둘이 교환을 할 수 없다면 비교우위에 주력하여 생산을 하지는 않을 테니 교환이 일어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교환의 결과가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되게 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교환의 비율 등 뭘 어떻게 교환하냐에 따라서 그 총효용의 증대가 양쪽 모두에 이득이 되지 않고 한쪽에는 손해가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 않나? 
 
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교수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가정하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보증은 없긴 하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답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둘이 완전히 평등하고 합리적인 경제 주체로서 협상을 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둘 사이에는 서로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교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둘은 완전히 평등하고 합리적인 상태에서 협상을 할 수 있을까? 둘의 합리성과 평등에 대한 가정 말고는 저 분배를 보증할 만한 장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장치가 없는 이상, 교역은 양쪽 모두 잘 사는 전략이 아니라 총효용은 늘리지만 한쪽이 다른 쪽을 착취하는 구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 수업은 내가 그전부터 의구심을 품어왔던 주류 경제학의 허점 같은 걸 구체적으로 느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비교우위이론에 따른 생산으로 총효용이 증가하더라도 그 총효용이 꼭 공정하게 분배되리란 법은 없다.
경제성장률이 몇%가 되고 GDP가 늘더라도 그게 꼭 모두가 잘 살게 하는 걸나 보장은 없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특정 상품의 우위나 경제규모의 차이(환율 등으로 나타나는), 군사력 등등의 요인으로 불공정한 거래를 하게 되고 불평등은 더 심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가격균형에 대해서 배울 때도, 노동시장도 똑같이 수요 공급으로 설명하고, 가격하한제가 시장을 왜곡시키는 예로 최저임금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서...
 '아니 그럼 균형가격이 형성되었을 때 그게 최저임금보다도 아래란 건가? 지금도 최저임금은 완전 쥐꼬리인데? 그거보다 더 아래면 대체 얼마인 건지. 그 임금이 도저히 먹고 살 만큼도 안 될 게 뻔한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런 생각에 도대체 이 경제원론이란 게 무슨 장난질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었다.  (지금이야 "기본소득 도입ㅋ"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당시 배울 때는 교수야 최저임금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라는 식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그럼 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지, 그런 답은 경제원론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었다.
노동자들은 가격하한제(최저임금) 때문에 실업이 되어서 먹고 살지 못하거나, 아니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초저임금을 받으며 먹고 살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란 말인가?

그런 경제학적 명제들 앞에서 생각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류' 경제학은 과연 제대로 된 현실/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는 숫자놀음은 아닐까?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 - 10점
로랑 꼬르도니에 지음, 조홍식 옮김/창비(창작과비평사)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 - 경제학의 실업이론 비판
초판 2001년
지은이: 로랑 꼬르도니에                          옮긴이: 조홍식
펴낸곳: 창작과비평사



  이들은 실업자들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실업자들은 참지 못할 정도로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실업이론은 이같은 광경이 초래하는 도덕적 상처를 가리기 위해 붙이는 반창고 역할만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적인 설명이 진정 필요한 부분은 실업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하고 충격적인 부분인데, 그렇다면 일이 없는 노동자들은 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고통스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경제학은 이들이 겪는 고통의 광경을 은폐하기 위해 또다른 쇼를 준비한다. 이 쇼에서는 실업자들이 부자이며 이익을 누리려 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수혜자적 상황에 빠졌고, 그 책임 또한 그들에게 있다고 보여준다.
책 pp.95-96


"경제학의 실업이론 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주류경제학의 환상들에 대한 알기 쉬우면서도 통렬한 비판이다.

(대개 신고전주의/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자발적 실업'과 같은 사람 홀리는 말을 써가며 실업의 원인은 노동자들한테 있노라고 말하며 최저임금과 복지제도 같은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라고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인지 이 얇은 책 한 권에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니!

이 책을 읽으면 신자유주의 [노동] 경제학에서 실업이론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못 사는 건 게으르고 못나서다"라고 외치던 저 [자유방임주의적이고 기독교도덕적인] 자본주의초기 담론을 더 복잡하고 이론적으로 꼬아놓은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아~주 합리적으로 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목표를 빨리 간파할 수 있다. 실업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의도적인 행동의 결과이며, 따라서 불만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깊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자유주의 담론의 문제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심각한 상태인데, 논리적 사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증상을 보이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실업이란 자발적 실업이며, 이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인정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실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민의 정에 사로잡힌 자유주의자가 이렇게 복지를 누리고 있는 서민들의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주의적 이상에 기초를 제공하는 유일한 이론에 따르면, 경제활동 인구의 86%를 차지하는 임금노동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데 왜 자유주의자들은 최저임금제를 철폐하여 완전고용을 이루려고 저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왜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행복해하고 있는 실업자들에게 선을 베풀려고 하는 것일까? 자유주의라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경호견이 되려는 정치적 계획이 아니라면(물론 이럴 경우 완전고용이 이뤄져야만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의 관심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이것은 매우 신비한 현상이다…….
책 pp.72-73

이 인용문과 같은 위트와 비꼬는 말들은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이런 부분들이 나올 때마다 독자들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점잖은 사람들에게 이런 부분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일지도 모르지만.)


로랑 꼬르도니에 씨는 주류경제학의 실업이론들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를 논박한다.
먼저,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노동자' 그리고 '노동시장'의 모델이 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마치 여가와 노동을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주류경제학에서의 '노동자'의 모델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경제학에서 만든 노동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먹을지 아니면 15분 더 낮잠을 잘지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번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p.35))

특히 고전적인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고 굉장히 타당한 비판(그러나 잘 수용되지 못하는 비판)을 다시 환기시킨다. 바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것과 같은 시장도 노동자도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경제학은 현실을 분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이 이래야 한다는 당위에 가깝게 되어 버린다. 책의 표현을 인용하면 그것은 "실증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 신화"이다.


  이론가들은 시장을 변호하기 위해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화, 추상화, 가설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변명할 것이다. 좋다. 우리는 항상 '마치 ~처럼'이라는 태도로 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처럼'을 너무 많이 하다보면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실증적 적절성을 전혀 갖지 못한 이 훌륭한 지적 건축물은 하나의 철학일 뿐이며, 일부 사람들이 세상에 강요하려 하는 실천적 신화에 불과하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인데…… 그 옹호자들은 이런 분석을 가장 지독한 비난으로 생각한다.
책 p.58


그 이후에 책은 "최저임금 때문에 실업이 발생한다", "사회복지제도(예약임금) 때문에 실업이 발생한다", "노조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늘리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등부터
"게으른 노동자 이론", "겁많은 노동자 이론" 등 노동자들에게 실업의 책임을 돌리는 실업이론들을 차례차례 짚어나간다.



특히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유효수요'의 문제   그리고  ▲상호보완적 노동(대부분의 노동들이 그렇다)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에 경쟁으로 한 집단의 소득이 양극화되는 현상에 대해 논의한 것은 이론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혹시라도 책을 읽기 전에 이런 논의의 요지를 간단하게 맛보기 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음 인용문을 읽기 바란다.


  의심의 여지없이 최저임금의 철폐는 반드시 완전고용을 창출하는 미덕을 발휘할 것이다. 만일 가장 비숙련된 노동자 집단의 임금이 자유롭게 변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임금은 상당히 급격한 폭락 끝에 어느 수준에선가 멈춰서서 시장을 깨끗하게 정리할 것이다. 나는 한달에 10만원 정도라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기적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이 가격이라면 사업가들은 비숙련 노동자의 고용을 분명히 늘릴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여기서는 당연히 신고전주의자가 즐겨 사용하는 우화를 소개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100만원일 때 노동조합의 독점권이 제공하는 이익의 일부분을 받으면서 풍요롭게 생활하던 노동자들은 임금이 10만원으로 내려가면 집으로 돌아가 화초나 키울 것이다.
... (중략) ...
  하지만 지적 정직함이 있다면 어떤 임금 수준에서 이런 이론이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밝혀야만 한다(이런 작업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 유연성을 막고 있는 요소들을 제거할 경우 임금이 즉각적으로 폭락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는 정통 이론이 말하는 것과 다르지만 말이다. 다시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면 최저임금제는 실업의 원인이 아니라, 실업의 가장 비참한 결과를 제한하는 구원의 방파제인 것이다.
  우선은 자유주의 담론의 기초가 되는 이론의 시발점에서부터 살펴보자. 사람들은 최저임금을 받는 자들이 가장 낮은 (한계)생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일부가 실업상태에 있는 이유는 최저임금이 같은 직종의 비숙련 노동자의 완전고용에 해당하는 (한계)생산성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사업가들이 합리적이라면 비숙련 노동자들의 (한계)생산성이 최저임금보다 떨어지는 순간 이들의 채용을 중단했을 것이다. 따라서 고용의 문이 닫히는 것은 어느 노동자가 전체 노동의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최저임금보다 조금 적을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1년에 1800만원이라고 하자. 이는 르노(Renault)의 고용주가 공장에 한 명의 비숙련공을 채용하더라도 1년 동안 라구나(Laguna) 자동차 한 대도 더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한 명의 1년 자동차 생산량이 평균 열여섯 대 가까이 되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경제학자들이 우리에게 르노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한 명을 더 채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낮은 그의 생산성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한계생산성이 정말 극적으로 하락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신기한 역설 중 하나는 숫자가 나오기만 하면 경제학자들은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르노의 고용주는 아마 추가로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는 이유가 한계생산성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추가로 자동차를 생산하더라도 이를 구입할 수 있는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기업이 노동자의 채용을 중단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생산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신비로운 요정이 나타나 완전고용의 상태에 가까이 가기만 하면 갑자기 노동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수요의 한계라는 가능성을 잠시 고려해보면, 최저임금제 같은 제도의 필요성과 효율성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다. 최저임금이 실업의 원인이 아닐 뿐더러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발생한 실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한 장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pp.74-77


  경쟁제도에서 피해를 보는 자들은 다른 종류의 경쟁자들보다 필요로 하는 일의 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많은 사람들이다. 만약 어떤 회사의 이사(理事)가 최저임금의 100배(간단히 말해서)를 번다면, 피아노 이사 우화의 경우 이 사람은 꼬리일꾼인 셈이다. 좀더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사는 경리와 경영을 담당하여 돈을 셀 줄은 알지만(그의 능력) 노동자처럼 나사를 돌릴 줄은 모르기 때문에 경영 인력에 비해 육체노동을 제공하하는 노동력이 과잉공급되는 상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육체노동자들이 이사들처럼 경리를 담당하거나 경영을 할 수 없다고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제 같은 제도의 기능은 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인해 협상력이 취약해진 노동자집단의 소득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중략)... 따라서 최저임금은 일부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이중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의의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이중의 고통이란 실업으로 인해 이들의 임금이 계속 하락하는 경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고통과 바로 이 하락 경험을 초래하는 요인인 실업이라는 고통이다.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최저임금에 대해 반대입장을 보일 때 그것이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성격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이 최저임금이 비숙련('비숙련'이란 것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노동자의 한계생산성과 비교해보았을 때 너무 높은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담론은 유효수요의 부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의 무능력(또는 의지의 결핍)을 감추는 데 필요할 뿐이다. 문제는 실업이 존재할 때 수요량을 늘리기 위해 노동의 가격을 내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수요를 이동시키는 데 있자. 그것은 각각의 가격 수준에서 노동의 수요량을 늘리는 것이며 최저임금의 수준에서도 모두가 일을 갖게끔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활동의 수준을 확장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현대 경제이론의 맹점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최근에 사람들이 거의 고정관념처럼 선호하는 의식은 신이 늙은 케인즈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케인즈가 유효수요 부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경제학자들 중의 한사람인데도 말이다.
책 pp.82-84





주류경제학이 의심스러운 상식인들을 위한 책


사실 주류 경제학에서 내뱉는 온갖 말들은 '상식'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이 책에 소개된 것만 해도 그런데, '최저임금'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실업의 결과가 아니라 실업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월 60만원도 안되는 실업수당이 예약임금이 되어서 실업을 일으킨다 등등....)

물론 '상식'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적인 곡예와 비현실적인 추상화, 가정들에 입각하여 나온 이론이 '상식'보다 더 현실/진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그러나 '상식인'(요즘 한윤형 씨의 글을 읽다보니 지식인이나 엘리트에 대비되는 '상식인'이란 말이 입에 붙었다)들로서는 학자들이 도표와 계산을 제시해가면서 이렇다는데 뭐라고 딱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뭔가 이상한데?" 싶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거나, 아니면 빈부격차나 실업 등에 대해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고 체념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결국에는 그런 경제학적인 이데올로기들은 하나의 '상식'으로 굳어져버린다.
교과서나 신문에 범람하는 '시장실패', '정부실패', '자발적 실업', '복지수혜자들의 도덕적 해이', '정부는 비효율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임' 같은 말들의 힘이다. )


그런 주류경제학의 노동시장, 최저임금, 실업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영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찜찜하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찜찜하던 부분은 분명하게 밝혀주는 불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분명한 진실을 말해주는 것 같던 경제학들이 과연 얼마나 현실/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나 하는 회의가 들게 된다. 그러다가 열성적인 독자라면 결국 새롭고 대안적인 경제학 이론들을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나도 청소년노동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최저임금과 일자리, 비숙련 노동 등의 문제를 많이 고민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부분 좀 더 정리된 논리들을 갖추게 되었다.
최근 이명박 정부 이후로 한국의 복지는 상당 부분 축소되고 있고,
올해만 해도 경제 상황 악화와 일자리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재계(자본가들)의 요구 때문에 최저임금이 (물가인상 등과 비교하여)'사실상 삭감'되었다.
청년실업의 문제, 서민 경제의 침체는 갈수록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책은 나온 지 오래 되긴 했지만 대중적인 경제서로 읽힐 만한 의의가 있다.


노동경제학자이면서도 어렵지 않게(물론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부분 같은 경우는 좀 머리를 굴려가면서 읽어야 하지만 대체로 쉽게 읽을 만하고 이런 부분은 좀 건너뛰어도 큰 문제는 없다;;) 이론적인 이야기와 상식적인 말 사이를 넘나들면서 좋은 책을 쓴 로랑 꼬르도니에 씨와 이 책을 번역한 조홍식 씨 등에게 다시 한 번 한 독자로서 감사의 뜻을 표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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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눈앞에 무슨 도표가 있어도 "기본소득ㅋ"

    2009.09.23 20:37 [ ADDR : EDIT/ DEL : REPLY ]
  2. ...라고 해도 어차피 경제학을 반박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정도의 '증거'와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을걸? 내가 보기엔 아직 '체계'라고 부르기도 부족한듯 한데.

    2009.09.29 20:47 [ ADDR : EDIT/ DEL : REPLY ]
  3. 솔직히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사회학'과 마찬가지로 현상에 대한 분석과 해석에 전념하는 분야라서, 예언적이거나 당위적 측면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더럽게 많'기는 하지. 나는 근데 아무리 읽어도 '당신들의 가정에는 사악한 사상이 담겨있어'라는 피해망상적인 푸념이 들어있는것 같달까 -_-

    2009.09.29 20:55 [ ADDR : EDIT/ DEL : REPLY ]
  4.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사실 거기에 대해선 '주류'의 의견이란게 없을 정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너무 높이거나 너무 낮추는 것은 노동환경이나 시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정도는 대부분 인정하는듯?...하지만 "적당히 올리면요?" 라든지 "기본소득"은요? 라고 물으면 아무도 모름..) 솔직히 자유주의는 지금도 (경제학 내에서) 충분히 까이고 있기도 하고..

    2009.09.29 21:02 [ ADDR : EDIT/ DEL : REPLY ]
    • 책 원본이 나온 게 90년대인가 여하간 좀 오래됐으니까, 현재의 학계의 상황과는 다른 면이 있을 수 있겠지.
      그리고 이거 책은 실제로 읽어보면 나름 경제학자가 쓴 경제학 비판이라서 굳이 외부의 사회학이나 정치학적 논의를 끌어오지 않고 경제학적인 논리로 무장되어 있음(내가 리뷰에는 대부분 생략했지만)
      * "당신들의 가정에는 사악한 사상이 담겨있어" 내지는 "당신들의 가정은 사악한 결과를 유발하고 있어"라는 인식이 있기는 하지.

      2009.09.30 01:39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7. 9. 09:51



최근에 비정규직 관련한 이야기들(그러니까, 신문 기사들이나 방송)을 보면 뭔가가 짜증이 난달까, 부족한 게 느껴진달까- 좀 그렇다.

100만 해고니 38만 해고니... %가 몇 %이고... 몇 년을 유예하느니...


솔까말. 100만이 해고되든 38만이 해고되든 단 10명이 해고되든
비정규직 - 기간제, 파견 노동자들의 노동이 불안정하고 언제든지 해고될 위험에 놓여 있으며 또 그런 해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충분히 문제적인 일이다. 이랜드-홈에버 투쟁, 기륭전자 투쟁 등을 비롯해서 우리는 이미 그런 상황들을 봐왔다.
 
그런데 이걸 거시경제적인 관점에서 통계를 가지고 해고 숫자가 몇 명이냐를 가지고 싸우고 있으니 이건 뭐 -;

수구언론이든, 개혁언론이든, 신문들조차도 해고자 숫자를 놓고 과장됐네, 해고대란은 거짓이네... 그런 데 집착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일상적으로 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짤린다.
노조든, 항의든, 사장한테 찍힐 법한 일은 눈치 보여서 하지도 못하면서..

그나마 군소좌파언론(-ㅂ-) 중 하나인 레디앙에서 "숫자가 비정규직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라는 좋은 기사를 냈다.



경제는 지극히 인간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통계와 숫자놀음으로 표현되는 거시적인 경제는 때로는 무서울 만큼 비인간적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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