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4. 4. 21. 19:28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는 함께 공론화해서 논의하기는 어려웠고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답을 얻기 어려웠던 주제들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토론회보다는 가볍지만 수다회보다는 조금의 무게를 더한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개인적 고민들이 결코 개인만의 고민이 아니었기에...

병역의 문제, 대학의 문제, 가정의 문제, 연애의 문제....


어찌 생각해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 일 수 있지만 ‘갈지, 말지’ ‘할지, 말지’라는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 이 문제들을 둘러 싼 마음의 불편함, 깜깜함, 미안함 들을 함께 마음 터놓고 얘기 해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과감하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는 ‘삐삐’처럼!


현재 고민 중인 사람, 고민을 끝 낸 사람, 고민을 안 해 봤지만 함께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 누구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2014 활기 고민덜기 프로젝트 ‘삐삐 롱수다킹’ 제1탄 병역? 거부?



언제?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 제1탄-2014.04.28.월 저녁 6시


어디서?   독립문역, 부귀빌딩, 전교조서울지부 건물


누구랑?   병역을 코앞에둔, 군대를 다녀온, 군대와 활동에대해 고민하는사람, 듣고싶은사람, 이야기하고싶은 남성 여성 등등 활동가 모두모두



참가신청 - 4/ 26일까지! 010 9691 9194 예솔 ( 인원파악을 위함입니다 간단하게 문자로도 신청 가능합니다!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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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9. 29. 10:37

http://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13797&LangID=E






1. 어제인 9월 27일 유엔 인권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서 유래하는 권리이며, 모든 정부는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결의했네요.
2. 재미있는건 이 만장일치에 한국 정부도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표결 전에 한국은 징병제이며 법으로 인정하기 않기 때문에 이 결의를 온전하게 지지하기는 어렵지만 결의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며 찬성한다는..
3. 이 소식을 전했던 메일은 이렇게 끝나네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 없이 평화로운 사회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 It is not possible to live in a peaceful society without the recognition of our right to be a conscientious objector to military service.
5. 이 결의 과정에서 한국정부의 유체이탈 화법이 독특한데, 사실 전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90%가 대한민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을 위한 결의안이라고도 할 수 있는죠. 이걸 실행할 수는 없지만 찬성은 하겠다는 말은, 외교적 수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네요.
6. 유엔 인권이사회 병역거부 인정 결의안(A/HRC/24/L.23) 중 흥미로운 점이, 분쟁 이후의 사회에서 병역거부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평화정착"의 과정(as part of post-conflict peacebuilding)으로 본다는 점.
7. 병역거부는 전쟁 시기에, 전쟁 직후에 더욱 많아집니다. 전쟁의 참상, 그 속에서 강요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절감하기 때문. 전쟁이 끝난 후에, 더 이상 싸우기 싫다고 하는 이들을, 그 감정을 '권리'로서 보호하는 것. 이걸 평화라고 본 것입니다.
8.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전쟁 상대를 증오하며 더 많은 군대, 더 많은 무기를 갈구하고 이것에 반대하는 가진 이들을 적이라 낙인 찍는 사회는 아직도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닌 거죠. 맞습니다. 한국사회의 이야기입니다.






병역거부자이고 병역거부와 평화운동 등으로 논문 쓰셨던 임재성 씨 트윗 twitter.com/@beindp 에서 인용합니다.


관련 기사는 아직 못 찾겠군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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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8. 27. 14:09


http://withoutwar.tistory.com/57



 병역거부자인 나는 양심수인가


1.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소식지를 읽다가, 일본대사관에 트럭을 돌진시켜 재물손괴죄 혐의로 구속재판 중이신 분이 양심수 목록에 추가된 것을 발견했다. 그분은 어느 일본사람의 '위안부 소녀상 말뚝테러'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그랬다고 한다. (그 다음번 소식지에선 양심수 목록에 없던걸보니, 아마 재판에서 실형선고를 안받으셨나보다.) 나는 그 소식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이분은 '양심수'가 맞는걸까?" 동시에,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수감이 될 때부터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거리도 같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양심수인가? 양심수란 정확히 무엇인가?"

'양심수'란 단어를 곧이곧대로 풀이해본다면, 대강 마음 속의 '양심'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양심' 때문에"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마음 속의 양심, 신념, 사상, 의견, 신앙 등을 이유로, 즉 어떤 생각이나 믿음을 품고 있다는걸 이유로 수감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을 쓰거나 말하거나 표현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것도 '양심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뭔가 겉으로 표현한게 없이 마음 속의 것을 알아내긴 어려우므로, 대체로 양심수들은 이런 표현의 자유 문제가 연관되어 있곤 하다. 여기에서 좀더 넓혀본다면, 그런 생각이나 믿음에 따라 어떤 행위,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도 어쩌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 상황에서 '양심수' 개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예컨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적표현물 소지'나 '찬양, 고무' 같은 죄명으로 처벌받는 사람들일듯 싶다. '비전향 장기수' 같은 경우도, 처음에 갇힌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 속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려나지 못하고 계속 갇혀있다면 '양심수'에 해당될테고.

그런데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에 따라 한 활동 때문에 수감된 경우를 '양심수'에 포함시키는 것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한 예로, 얼마전 노르웨이에서 자신의 극우적 신념에 따라 사람들을 죽인 사람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 역시 자기 마음 속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고 그 때문에 수감된 것이니까, '양심수'라고 불러야할까? 같은 질문이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신념에 따라 테러를 저지른 사람, 학살이나 전쟁을 저지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적합한 대답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마음 속의 생각이나 믿음 때문에 처벌받은게 아니라, 살인, 학살, 전쟁 등의 행위 때문에 처벌받은 것이다. 즉,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양심'과 '행위'를 구분하여 다룰 수 있다.

트럭을 일본대사관에 돌진시킨 그분에게도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분의 의견, 신념과 관계없이 오직 그 행위만을 이유로 처벌을 받는다면 말이다. 사실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에서 싣는 '양심수'들의 목록을 보면 이게 '양심수'가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사례들이 간혹 있다. '양심수'라는 개념이 그저 "나(우리)는 그 사람의 수감에 부당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라는 이야기를 포장하는 꾸밈말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양심수'가 아니란 말이 그 사람의 수감이 꼭 정당하다느 뜻도 아닐 것이고. 그러니 '양심수'의 개념은 좀 더 정확하게 쓰여야하고, 또 다른 개념들의 발명도 필요해보인다. 자본친화적 법 적용 때문에 수감된 노동자, 철거민 등을 '계급수'라고 한다거나? (물론, 관련해서 '구속노동자'나 '공안수' 등 여러 용어가 있긴 하다)

그리고 나는, 나와 같은 병역거부자 역시 과연 양심수가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양심, 신념 때문에 갇혀있는 것인가? 국가는 병역거부자들의 양심, 신념, 신앙을 처벌하는 것인가? 내 생각엔(적어도 최근엔) 국가가 병역거부자들을 입대 영장을 받고도 입대하지 않았다는 '행위'만 보고 처벌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병역거부자들의 형량이 1년6월로 줄어든 최근 몇년은 말이다. 탈영이든 항명이든 입영기피이든 다른 '병역법 위반'들도 큰 차이가 나지않는 형벌을 받곤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나는 나를 재판한 사법부든 형을 집행한 국가든 내 생각이나 주장에는 아주 무관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나(우리?)의 신념이나 주장의 내용에 무관심하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양심수'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는가?



2.
'양심수', '양심의 자유' 등이 부각되면, 거기에는 볼테르의 저 유명한 논법이 따라붙곤 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다." 여기서 "동의하지 않는다"란 말의 의미는 상관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리라.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에 관해 형성되어있는 비교적 우호적인 편인 이야기들 중에도 그런 종류의 것이 많다. 병역거부자들은 어차피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굽하지 않고 군인이 되기를 거부할 것이므로, 그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 처벌하기보다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 역시 그 중 하나의 변형 논리이다. 병역거부자들의 신앙, 신념에 동의하진 않지만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나은 길을 찾자는 식의 이야기도 그렇고. (이런 논법의 배경엔 한국의 공고한 군사주의와 병역거부자의 수적 다수가 '종교인'이라는 현실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처럼 사람의 신앙, 신념 등을 국가가 강제로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인권의식은 크게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런 논법이 껄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정치적 병역거부자', '정치적 양심수'에 속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상당수의 정치적 양심수들은 자신이 자유를 침해당해 갇혀있다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탄압당하면서도 생각하고 말하려했던 그 내용 역시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사람들이 '부당한 수감'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수감된 연유, 자신의 주장이나 활동 등에 관심을 가져주길 원할 수도 있다. 수감 사실이 앞에 오고 그들의 '양심'의 내용은 뒤로, 괄호 쳐진 채 판단 밖으로 밀려난다면 그게 꼭 바람직한걸까?

'양심'이라는 개념은 원래 이런 문제를 초래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고유한 '양심'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공유되기도 어렵단 점에서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니 '정치적 양심수'란 말은 이미 모순을 품고있다.

한나 아렌트는 논문 <시민불복종>에서 이런 '양심'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양심은 비정치적"이며, "개인의 자아와 그것의 고결함을 염려"하지, "잘못이 범해지는 세계나 그것이 그 세계의 향후 진로에 대해 갖는 결과에 주목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자기희생적 요소'가 '강렬한 관심'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진지함 그리고 법에 대한 충실함'을 나타내는 최상의 증거라는 점은 대단히 불행한 것이다. 왜냐하면 외골수적인 광신은 보통 미치광이의 표지이며, 어떤 경우라도 그것은 문제의 논점에 대한 합리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위기>,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한길사)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 이야기를 그저 '존중해야할 고유 불변의 양심'이 아니라 대화해볼만한 정치적 관점, 발언으로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그런 생각을 할때면 나는 '양심수'로 분류되기보다는 '평화수감자', 차라리 '정치범'으로 불리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3.
이런 논의는 실은 별로 새로운게 없는 것이라서, 병역거부-평화운동에서는 진작부터 '개인의 인권'과 '반군사주의, 평화'운동아리는 서로 긴장관계가 있는 두 축으로 병역거부운동을 분석해왔다. 한편으로 나는, 병역거부운동과 인권의 언어가 '양심의 자유' 말고 다른 만남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다.

병역거부가 국제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양심의 자유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결국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로 알려진 바이다. 유럽지역, 미국 지역 등에서 '종교적 양심'을 앞세운 병역거부가 먼저 등장했고, 그러한 종교적 전통이 이어지고 확산되면서 비종교적(정치적) 병역거부가 그 기반 위에서 나탄ㅆ던 것이다. 출발부터 종교적 신앙적 성격이 있었으니 '양심의 자유'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었고, 때문에 지금도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의 대표적 의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역사적 맥락 말고도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병역거부가 중요한 인권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이나, 병역거부가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속한다는 해석 등은 모두 병역거부에 대한, 정확히는 군대, 전쟁에 대한 가치판단을 깔고있는 것은 아닐까? 요컨대 사람을 살상하는 군대, 전쟁의 성격상 그것들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에 일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만하다는 공감대가, 병역거부를 인권의 언어로 옹호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양심의 자유'가 '양심'의 내용은 따지지 않는다는 전통적 설명과는 안맞겠지만, 그런 공감대가 없었다면 과연 병역거부가 인권의 대표적 의제이자 본질적 내용으로 입주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졌듯이, 인권은 중립적인 체계가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라는 친근한, 편향적 체계이고 언어이다. 역사 속의 인권 구상들 중에는 상비군 또는 국군의 폐지, 축소를 담고있는 것들도 있지 않았는가? 병역거부자가 '양심수'가 아니라고 해도 병역거부운동이 인권과 만나는 다른 조합들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여하간 병역거부운동 역시 '양심수' 너머에서 계속 나아갈 것이고, 병역거부자들 각자의 말들도 운동을 통해 계속 만들어지고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12. 10. 17.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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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중일 때 써서, 병역거부자 팀 블로그에 실렸던 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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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30. 14:43


<병역거부소견서>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한다는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


  11월 18일, 할아버지 병환 등 때문에 대구에 있는 와중에, 수원에 제가 사는 집에 징집영장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19일에 대구에 온 애인이 영장을 전해줬습니다. 11월 29일이 입영일이었지만, 입영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병역거부를 한 것이지요. 병역거부를 한 이유, 예 소위 '소견서'를 길게 쓰고 싶진 않습니다.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고, 그간 제가 너무 많은 말로 사람들을 속여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속여 온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지만, 저 자신이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슬슬 지쳤거든요.

  제가 대체 언제부터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국가주의․전체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열다섯살 즈음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옷을 강제로 입히고, 같은 머리모양을 강요하고, 개인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생활에서부터 문제의식은 시작됐습니다. "사회(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회(국가)가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필요최소한의 것들뿐이다. 내 자발성과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희생이나 애국을 강요하는 것은 이상하다.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싹트면서, 이미 "군대"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박노자씨의 책 등을 통해서 고등학교 때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하던 고3 때, 우연히 오정록씨의 병역거부소견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견서의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그 소견서가 뭐 특별히 미문으로 되어 있거나 한 건 아니었을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명료하게 키워나가던 시기에 만난, 생생한 병역거부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존재에 대해 안 뒤로,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병역거부라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그 선택지는 어느 순간 저에게 당연한 것, 징병검사에서 면제라도 받지 않는 이상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자리 잡았습니다.(그리고 저는 징병검사에서 1급을 받아버렸지요.) 병역특례나 해외봉사 같은 여러 선택지들을 애써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런 많은 '대체복무'들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 나름의 특별한 기능이나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 뒤에는 마음이 멀어졌습니다.

  저에게 병역거부는 단순히 윤리적 결단은 아닙니다. 저는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던 이래로 항상 저를 활동가로 생각해왔습니다. 활동가란 단지 개인의 윤리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 정치적인 실천을 하는 사람이지요. 병역거부 역시, 뭐 그걸 비록 청소년인권운동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의 실천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사회의 병역거부자 기록에 숫자 하나를 더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전쟁 훈련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수감됨으로써, 개인의 인권을 다양성을 더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우리 사회가 평화에 가까워지고 인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일에 코딱지만큼의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제가 병역거부자라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군대와 군사주의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존재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병역거부 소식을 듣고 병역거부소견서를 읽고 마음이 움직였듯이, 저의 실천이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요.
  뭐, 군대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군대에 가기 싫은데 군대를 가야만 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안 가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실 군대에 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들, 적지 않을 테지요. 그런 분들에게도 저의, 그리고 우리들의 병역거부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에 닥치고 보니, 병역거부는 제 삶에서는 제가 사회적 소수자가 되는 하나의 선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앞으로 제 삶의 어떤 가능성들은 제한하고, 어떤 가능성들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선택이 되겠지요.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후회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병역거부는 제가 바라는 제 모습대로 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십년 이십년 삼십년 후에, 군대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어떻게 했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면 역시 병역거부가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군대에 복무하고 제대를 해서 살아가는 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춰봤습니다. 제가 처음 만났던 병역거부소견서, 오정록씨의 병역거부소견서에서 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영영장보다 병역거부를 먼저 만났기 때문입니다."



2011년 11월 30일







병역거부소견서도 '초안'이라고 다는 이 성실함(???)
좀 더 다듬어보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 쯤 보내야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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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빠

    군필자입니다. 님의 병역거부 찬성합니다.

    2011.11.30 22:27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는 공현 님의,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사람이 권리 없는 의무를 강요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게 지금이니까요. 또한 군대의 체계 자체도 계급이라는 비인간성을 채택하고 있으니, 저 또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으로서 치가 떨립니다.

    그러나 북한과 관련된 특수한 안보상황에서 전체주의가 징병제의 이유가 될까요? 정말 모병제로 바뀔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한국인지, 공현 님은 충분한 조사를 해보셨는가요. 그리고 만일 징병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왜 남성만 권리 없는 의무를 강요받아서 징병되는 여성상위사회에 여성부가 존재하는 걸까요.

    2012.01.26 16:41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모병제를 주장했나요? ^^;;; 모병제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저는 꼭 모병제가 정답이란 생각도 하진 않습니다. 모병제도 모병제 나름의 폐단이 있지요.
      저는 '지금 당장' 군대의 폐지 같은 걸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군대가 폐지되거나, 아님 적어도 군비축소를 통한 평화 증대를 위한 정부나 사회전반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가자고 제안하는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제 병역거부인 것이지요.


      추신 : 군대에 갔다 오는 것이 과연 '희생'이고, 남성만 징병되는 것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http://hook.hani.co.kr/archives/38065 이런 글이나 군사주의 사회 문제 등에 대한 관련 책, 논문 등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2012.02.08 17:42 신고 [ ADDR : EDIT/ DEL ]
    • 추신으로 일러주신 글을 읽고 답글 남깁니다. 글에서 말한 보상은 법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군필자 모두가 가지는 '권리'가 아니므로, 군 복무가 '희생'이 아니라는 말에 절대 반대합니다. 저부터도 그런 주관적인 보상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성만 징병되어 갖게 된 비참함이 만드는 사회문제에는 동의합니다. 그래서 여성, 장애인도 병역과 관련된 의무를 다해야 하며, 그들에게 의무 없는 권리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공현 님 주위엔 양성평등을 위해, 군면제자도 병역관련의무를 지니도록 실천하는 여성이나 장애인이 있나요? 제가 언제나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할 수 있다면, 저도 함께 돕고 싶습니다.

      한 때, 공현 님과 다른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채식인(菜食人)으로서, 채식인의 권리를 보장해주지도 않으면서 저에게 감히 강제로 의무만 주는 국방부와 정부가 괘씸했어요.
      사람이 짐승이나 병균으로부터 편하게 살려면 강해져야 하듯이, 나라가 안팎으로 안전하기 위해, 특히 한국은, 군대가 필요하므로 꾹 참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었으나, 많은 것을 잃고 위에서 말한 비참함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공현 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2012.04.25 00:38 [ ADDR : EDIT/ DEL ]
  3. 그렇다면

    그렇다면 지뢰제거에 투입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군사훈련? 필요없습니다 캄보디아나 예멘 같은 곳에서 대한민국 국격도 높이고 대체복무도 하고 그토록 원하는 무기를 없애는 일이니 일석삼조 아닙니까? 뭐 굳이 해외로 갈 필요도 없이 민통선내등 지뢰제거가 필요한 곳은 휴전선 곳곳에 널려있으니깐요

    2012.02.11 14:56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뢰제거에 투입을 해준다면 뭐 그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만 ^^;
      "그렇다면"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시든 간에, 현재 한국에는 그런 식의 군사훈련 없이 지뢰제거에 투입하는 대체복무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서 말이죠.

      2012.02.14 18:53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1. 2. 4. 01:49


예전에 한 두달 전에 전쟁없는세상에서 써달라고 해서 쓴 글.
거기 소식지가 나온 후에 뒤늦게 올립니다.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살




  내 나이도 어느새 20대 중반. 스물하고도 세살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군대는 언제 가느냐 혹은 어떻게 하느냐 라고 묻곤 한다. 심지어 청소년인권에 관한 강연을 나가도 그런 질문이 꼭 한 번씩 들어온다. 좀 떨떠름해하면서도 아마도 병역거부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반응은 삼분된다. “용감하다”, “대단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그래도 징역 사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고 하며 걱정하고 다른 대체복무를 찾아보라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부류는 병역거부가 뭔지도 잘 몰라서 “군대 안 갈 수도 있어요?”라거나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라고 묻는 사람들(주로 군대 문제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라거나)이다.


병역거부의 불이익?

  나는 용감하다고 말하는 분들이나 걱정하는 분들에게는 “군대에서 2년이나 감옥에서 1년 6개월이나… 징역이나 징병이나 뭐 비슷하지 않겠어요?”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농담이나 위안이 아니라 진담이다. 병역거부가 나한테 그렇게 큰 불이익이나 피해가 될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징역에는 휴가가 없다는 것, 그리고 전과자가 된다는 게 문제일 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뭐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국가공무원이라거나 변호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병역거부 경력이 그렇게 결격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병역 미필의 전과자는 기피할 테니 좀 어려울 듯한데, 병역거부를 하기 전에 그런 문제에 관해서 운동을 미리미리 해둬서 좀 바꿔둬야 할지 어떨지 고민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운동 같은 것에 좀 짬이 나면 해볼 텐데. 모든 병역거부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나처럼 병역거부가 그 이후의 삶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설계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병역거부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약간은 가벼운 문제로 느껴진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반대의 문제이다. 내가 지금의 신념과 생각대로 병역거부를 하고 징역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그 이후에 오히려 걱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병역거부가 일종의 훈장이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든 다른 사회운동을 하든, 아니면 작가가 되든, 병역거부라는 나의 부가속성을 ‘팔고’ 싶은 욕망이 계속 따라다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한 내 말을 여러 차례 들었던 부모님이 (이미 설득하는 건 포기하심) “그런 게 니가 하는 운동 뭐 그런 거에서는 명예로운 일이니?”라고 물어보셨다.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것이 특별하게 명예로운 일로 대접받지는 않는 운동이 건강한 운동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전과자라고 하니까 생각난 게, 어차피 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관련해서 광화문 거리 인도에서 3분간 멈춰있는 플래시몹을 하다가 청소년이 체포되는 것에 저항해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일단 경찰의 체포가 부적법했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도 유죄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그러면 나는 어차피 전과자다. 이명박 정부에서 인권운동한다는 게 다 이렇지 뭐 싶기도 하고, 어차피 빨간 줄 그은 거 병역거부도 좀 부담이 적겠군 싶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려나?



인생의 터닝포인트

  쨌든 요즘은 병역거부 문제를 생각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병역거부가 그냥 군대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 대학 생계 3가지 문제가 엮여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자퇴하고 병역거부를 하고 싶어 하는 나와 대학은 졸업하고 병역거부를 하라는 부모 사이의 갈등이고, 좀 더 자세하게 보면 대학과 군대에 매여서 단체 상근이든 뭐든 자유롭게 하지도 못하고 독자적으로 경제력을 갖추지도 못하고 있는 꼬인 상황의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도 병역거부는 받아들이신다니 좋은 부모님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병역거부는 네 뜻대로 하게 해줬으니 대학은 우리 뜻대로”라는 식으로 내 삶을 가지고 흥정을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만 하다. 대학과 군대를 따로 떼어놓고 풀 수 있으면 더 쉬우련만, 이미 나이가 차버린 나는 대학을 그만두거나 졸업하는 즉시 병역거부의 결단을 내려야 하니까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당장 뭔가 경제력이 있으면 부모님과 싸워서라도 마음대로 해버릴 텐데 경제력이 생기려면 대학과 군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니 아놔 이거 어쩌란 건지.

  올해 들어서는 돈도 없고 갑갑한 마음에 “아 씨발 답이 안 보이는데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두 번 자살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살면서 못 먹어본 게 많고 애인도 있고 청소년운동에서도 할 일이 많고 등등의 변명을 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병역거부를 대체 ‘언제’ 할 것이고 대학은 어떻게 하고 할 것이냐 등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 살이고,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에야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런 게 좀 구체적으로 보일 것 같다. 그래서 병역거부는 내 인생 설계에서 일종의 터닝포인트로 설정되어 있다. 총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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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다

    총총. 별총총.

    2011.02.05 23:22 [ ADDR : EDIT/ DEL : REPLY ]
  2. 용용

    훈장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게 너무 와닿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운동 외에는 다른 걸 보지도 않았고 보려하지도 않았고 이 활동-인권옹호,라고 해야하나-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인권활동가들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이나 입시거부, 병역거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움이나 응원같은 감정보다도 멋지다, 부럽다는 마음이 앞섰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 다 사라지진 않았어요. 아직까지 검정고시를 볼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이유로 안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나는 너희들과 같아지기 싫어'라는 우월해지고 싶은 감정도 분명 있는 것 같거든요.. 아직 모르겠어요 내 진심이 뭔지 뭐가 맞고 틀린건지. 내가 뭔지 모르겠어요.

    우연히 들어왔다가 글 잘보고 가요 공현. 총총.

    2011.04.06 01:39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2. 11. 04:07

[논평] 대체복무제 제도화 앞에 놓인 과제


인권운동사랑방

18일 국방부는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할 계획이라는 것이 발표의 주된 내용이다. 이로써 평화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총을 들지 않는 대신 감옥에 가게 되는 반인권적인 상황이 끝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이번 발표를 환영한다.

하지만 국방부의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허용 방안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 종교적 사유뿐만 아니라 정치적·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역시도 대체복무가 허용되어야 한다. 종교적 사유와 정치적·평화적 신념은 동일하게 ‘총 대신 평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사유와 정치적·평화적 신념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국방부는 종교적 사유든 정치적·평화적 신념에 의해서든, 평화의 가치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할 것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 이번 발표에서 국방부는 ‘입대 전’의 병역거부만을 허용하고 ‘복무 중’과 예비군의 병역거부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병역거부의 시기를 ‘입대 전’과 ‘복무 중’·예비군으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교나 평화적 신념은 군 입대 전과 후를 차별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방부는 군 기강 와해 소지가 있고 군복무 경험자의 진정성을 신뢰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복무 중’ 병역거부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국방부가 든 이유는 오히려 군대 내 인권을 증진해야함을 역설하고 있을 뿐이다. 군대 내 인권이 증진된다면 군 복무와 종교·평화적 신념이 경쟁할 일은 없을 것이다.

대체복무 기간을 일반 현역병의 2배 수준인 36개월로 정한 것도 문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으면 징벌적 수준에 해당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는 평화적 신념에 대한 권리로서 보장해야할 문제이지 병역거부에 대한 징벌이 되어선 안된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점은 국방부가 여전히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이번 조치도 ‘소수자의 권리’ 구제 수준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도 실현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대체복무제 도입의 단초가 마련된 점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병역거부를 인권으로 본다는 것은 단지 총을 거부하는 대신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개인적 차원의 신념 유지 혹은 권리 구제 수준 정도로 그칠 수 없다. 그것은 외부의 위협을 핑계로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해온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적 신념을 확산하는 계기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소수자에 대한 시혜’로 한정하고 있는 이번 국방부의 조치는 하나의 진전이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다. 대체복무제의 제도화를 앞두고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과제를 다시금 벼릴 때다.
인권오름 제 72 호 [입력] 2007년 09월 19일 14:18:0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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