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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0. 01:33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호야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한때는 대학에 안 가는 인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학에 안 가고도 사지 멀쩡, 정신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삶이 끝날 것만 같은 이 땅에서 고졸자로서 목소리를 내고자 글을 써본다.

고졸 인생의 서막

나는 사실 대학 거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모아놓고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공부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목적으로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나의 제도교육에 대한 반감은 고등학교 3년간 서서히 발전을 거듭했지만 난 차마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3 봄,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3월의 어느 날, 고려대 김예슬 씨가 대학을 자퇴했다. 나는 당시 경향신문을 보고 있었던 터라 그날 아침 1면에서 그녀의 소식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내 반응은 ‘드디어 대학생의 입으로 신자유주의가 삐걱대는 소리를 듣는구나!’ 뭐 이런 거였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을 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려워졌다. 고3이라는 멍에가 나를 죄여왔고, 더 이상 깊은 고찰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나도 대학이 별로 맘에 안 들면 박차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한 채 다시 입시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그때까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제도교육의 목에 비수를 꽂자.’ 나의 고3 좌우명이었다. 그 말인즉슨 일단은 제도교육에게 몸이고 마음이고 다 내주고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어 제도교육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계획은 올해 2월 1일, 정시 다군 발표가 있던 날 산산이 깨졌다. 불합격. 가, 나, 다군 정시에서 몽땅 떨어져버린 것이다.(수시는 쓰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틀어져버린 인생에 눈물이 나왔다. 그날 공교롭게도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야했던 나는 진료가 끝나고 나오면서 신촌 대로를 질질 짜며 걸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제 어쩔 것인가. 나는 고뇌에 빠졌다. 나는 내 삶의 1년을 또 유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것은 해선 안 될,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김예슬 씨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도 나눔문화에서 활동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1월 말부터 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면서 내 인생을 대학 없이 그려 나가보자. 나는 그렇게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고졸자’ 인생의 서막이다.

대학 거부, 그 이후_ 고난

그럼 대학을 거부한 이후에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먼저 고난 편. 내가 대학생이 아닌 ‘고졸 스무 살’로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고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자퇴랑 아예 안 다닌 거는 전혀 다른 거야! 그래도 일단 가보고 결정하자.”, “재수는 훨씬 쉬워, 이미 공부한 거 한번 더 하는 거잖니.”, “1년 그걸 못 참냐.”, “사이버대학이라도 원서 넣는 게 어떠니?” “우리 언니가 대학을 안 가다니! 언니, 재수하면 안 돼? 친구들이 너네 언니 어느 대학 갔냐고 물어보면 쪽팔려.” … 고졸자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선포한 후 가족들에게서 들은 수많은 말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초기에는 재수를 끊임없이 종용하던 말들이 시간이 흘러서는 “돈이나 벌어라”, “언니 취직 안 해?”로 변해갔다. 나는 한순간에 집에서 가장 창창했던 사람에서 가장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갑을 여는 어머니가 눈치를 주기 시작하고 동생에게서 멸시의 눈빛을 받는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탄압도 힘들었지만 사회에서의 차별도 피부로 다가왔다. 대학 진학자가 80%에 육박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유별난’ 20대였다.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나 강연의 이름에는 언제나 ‘대학생’이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생이시죠?”하고 운을 뗐다. 이 사회의 ‘대학중심주의’는 도처에서 나를 공격해왔다.

대학 거부를 결심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각오했지만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가끔은 정말 대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취업의 관문까지는 자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너의 미래를 그려내 보여줘!’라며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나는 기껏해야 몇 주 앞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누군가 체계적으로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려낼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의 양이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압박과 차별들이 대학에 안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정과 사회 도처에 깔려있는 대학중심주의와 학벌 차별, 이제 아파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아프다고 소리쳐 보는 건 어떨까.

대학 거부, 그 이후_ 변화

이번에는 변화 편이다.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던 그 압박감은 단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번엔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대학 거부에 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겠다.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운 좋게 그때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4학년처럼, 과제와 시험에 여전히 시달리면서, 거기에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장학금을 노리려고 정말 대학 공부에 몰두하는 인생. 결국 젊음의 증표인 저항을 실현할 기회는 쥐꼬리만큼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쥐고 있던 것을 (반강제적이었지만) 놓음으로써 변화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나의 의식을 깨고 나온 것이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리치는 것에 비해 그 반향은 아주 미약했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소리치고, 움직이면서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대학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취업→결혼(가정)=행복한 인생’이라는 공식에 돌을 던지고 싶어서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대학의 존재 이유와 내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분명 개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 사회인데 왜 정작 본인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를 미루고 다들 정해진 루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대학 진학률 80%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학에 관한 진지한 고찰 없이 그냥 너도 나도 가는 것,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는 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최근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을 보고 놀랐다. 거기의 진로 상담 부분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온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스카이(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뜻하는 은어) 중 한 곳에 들어가서 토익 몇 점을 넘기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성형수술을 하고…. 우리는 그저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부딪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분명 불안하고 어두컴컴한 가시밭길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탈학교 예찬자가 되었다는 것일까. 나는 12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가 나에게 주는 억압에 대해서 불평만 할 줄 알았지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9개월간 학교 밖을 나와 여러 가지 활동과 세미나를 하면서 ‘길 자체가 학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이 9개월간 길에서 배웠다. 유유상종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나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또한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공부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찾아보면 여러 가지 세미나를 하고, 함께 살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대안 공동체들이 꽤 있다. 나도 그중 한 곳과 접속하여 몇 달간 세미나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대학을 안 가면 배우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배움은 도처에 있다.

앞으로의 행보

대학에 가든 안 가든 행복한 삶에는 언제나 질문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 있다면 배우게 되고, 내가 갈 길이 보인다. 그런 질문을 갖지 못한다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게 된다. 나도 한동안 갈팡질팡 했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불의에도 자주 침묵하고,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학교에 다니던 12년간 순응만을 배워서 그런지 머리는 저항하라고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나는 불의를 맞닥뜨려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또 내 마음이 가라는 데로 충실히 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꼭 하고 싶었던, 한번뿐인 기회들을 날려버리는 일이 많다. 좀 더 나에게 떳떳하고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아직 나는 글 외에는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 꿈은 이 정도다. 이 꿈들과 나의 질문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아직 어떤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직업이면 더 좋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 주리라 믿는다. 요즘 나를 장악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립과 주거권이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상반기에 아수나로 친구들과 스쾃 운동을 해 보는걸 제안해보고 싶다.

다시 대학 거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땅의 약 20%, 대학생 아닌 20대들이 조용히 입 닫고 사회의 흐름에 묻혀 살아간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입을 열고, 여기 우리도 있다고 외친다면 어떨까. 무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이번 대학입시거부 20대 선언이 개개인이 조금씩 틀에서 빠져나와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원 없이 외쳐보면 좋겠다. 부디 많은 분이 용기 내어 동참해주시길! 가지 않은 길, 분명 어려운 선택이지만 한번 뿐인 인생이라면 조금 스릴 있게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호야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8일 18:14:5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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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0 02:33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동

    접때 중국집에서 밥 먹으면 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었네요. 한겨레 1면 나온 거 보고 깜놀..
    앞으로 욕 많이 드실텐데 기운내시고 저처럼 맹목적이고 열광적인 팬도 있으니..ㅎㅎ

    2011.10.20 23:25 [ ADDR : EDIT/ DEL : REPLY ]
  3. Very good, thanks for sharing

    2013.01.02 14:3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8. 16:40

광주학생인권조례, 이제 출발이다. 광주학생인권조례 통과를 환영하며,

시교육청은 실질적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바란다.

 

 

 

  오늘, 10월 5일, 광주학생인권조례가 광주시의회에서 재석 21명 중, 찬성 17명, 반대 2명(박인화, 임동호), 기권 2명(정희곤, 이은박)으로 통과되었다. 지난 9월 26일, 교육상임위에 이어 오늘 광주학생인권조례가 광주시의회에서 논의되었고, 드디어 통과되었다. 광주학생인권조례의 통과는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되어왔던 학생인권의 열악한 현실을, 지금도 학교 안팎에서 고스란히 그 무거운 짐을 떠안고 있을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학생인권보장을 요구해왔던 지역사회에, 기쁜 소식임에 분명하다. 그 동안 광주학생인권조례가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통과되기를 촉구하고 학생인권보장을 요구해왔던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환영하고, 광주시의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광주학생인권조례가 통과함으로써, 학생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난무했던 학교에서, 인권의 가치가 넘실대는 진짜 교육의 현장으로 바뀔 학교가 기대된다. 광주 학생인권조례는 말로만 떠돌았던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당연한 명제에 힘을 보태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며 또한 학생인권보장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학생인권보장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 유보되거나 미뤄질 수 있다고 의견을 밝힐 수도 없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조례안과 관련한 불필요한 논쟁을 진행하기보다 조례가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정착될 수 있을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조례를 발의하고 통과한 광주교육청과 광주시의회는 물론이고 관심있는 모든 교사,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 시민 모두의 몫일 것이다.

 

  특히 광주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가 현장에서 충분히 적용되고,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현장의 걱정과 우려가 존재하고, 또한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요구하는 이들이 상당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구성원내부의 교육과 인권문화형성을 위한 노력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학생인권조례는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광주시 교육청은 시급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례정착을 위한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아울러 광주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광주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추진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의 문제는 광주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의 학생에게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는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인권조례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밝힌다. 각 지자체 및 중앙정부에서도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역할과 책임을 다하길 진심으로 촉구한다.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 가고 싶어지는 학교, 진정한 소통과 교육이 존재하는 학교, 학생도 교사도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될 광주학생인권조례의 광주시의회의 통과를 다시 한 번 환영한다. 이제 출발이다.

 

 


2011. 10. 05.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원회
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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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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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08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9. 21. 17:36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소식지인 아수라장 ( http://news.asunaro.or.kr/ )에 싣기 위해 쓴 글입니다.





무상급식 그거, 참 별거 아닌데


  지난 8월 24일, 서울에서는 무상급식의 지원범위와 대상에 관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제는 전(前) 서울시장)의 꼼수로 들어간 시행 년도나 "단계적", "전면적"과 같은 문구를 빼고 그 논쟁의 중심을 살펴보면, 이는 결국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초등학생/중학생에게"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소득이나 재산이 적은 사람들에게만" 급식비를 면제할 것인지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무상급식"이란 것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급식을 따로 급식비 받지 않고 제공하는 정책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건 바꿔 말하면 그냥 무상급식을 할 거냐 말 거냐의 논쟁인 셈이다.

  입장을 막론하고, 지금 한국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은 과열되어 있다. 한국 정부의 예산이 한 해에 200~300조를 넘는 게 보통인 마당에, 그 1%도 안 되는 몇천억 정도1) 예 산 더 쓰는 것 가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부르스를 추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상급식 하나 한다고 보편적 복지가 시작되고 학교에 차별이 사라지며 공동체의식이 길러지고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결국 "무상급식"을 하나의 상징 삼아서 복지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는 건데, 이 "무상급식"이라는 게 아무래도 덩치도 작고 복지 정책으로서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닌지라 논쟁이 자꾸만 산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이 조그마한 무상급식 하나 가지고 그리 아웅다웅 하는 꼴이 안타까울 수밖에.


무상급식의 인권적 의미와 장점?

  뭐 어찌 되었건 나는 무상급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편이다. 교육권과 먹을 권리는 인권 중의 하나로,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수준을 보장받아야만 한다. 특히 국제인권협약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동등하게 개방되도록 하기 위해서, 초등교육은 무상이어야 하고 국가는 그럴 능력만 있다면 중등교육, 고등교육(대학)까지도 점진적으로 무상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설령 빈곤층에게 교육비를 면제하거나 지원하는 등의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교육비를 면제받기 위해서 별도의 증명 절차 등을 거쳐야 하는 그 자체가 교육을 받는 데 하나의 장벽이 되기 때문에, 교육은 공짜가 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급식 역시 교육과정의 일부이고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기 때문에 무상교육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먹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한 적용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교육은, 우리 사회가 사람의 먹을 권리,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를 사회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당연한 권리로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친권자들에게, 모든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야 비로소 교육은 친권자가 자기 자녀들에게 하는 '투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권리가 된다. 친권자가 자녀에게 "내가 내 돈 내서 너 학교 보내니까 내 말 들어!"라고 윽박지르는 소유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보장적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상교육, 무상급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만화. 시사IN 205호(2011.08.20.) 중에서 인용


  또한 무상급식은 효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본래 '선별적 복지'에는 '선별'에 대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게 된다.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모으고 사용하는 걸 제한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부처들이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 전체를 파악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때문에 빈곤층에게 급식비를 면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빈곤층인지를 입증하고 확인하고 선별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게 그 사람이 정말로 빈곤층인지를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다 공무원들 인건비 등등 돈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오세훈 전 시장께서 주장하신 돈 못 버는 하위 50%만 급식비를 면제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의 맹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그 이하를 파악하는 방식에서도 여러 맹점이 생기는 판국에, 전체 시민들의 소득을 파악해서 그걸 반으로 자르는 선을 정하고, 그 선 위인지 아래인지를 다 선별하도록 하겠다고 한 셈이니, 행정적으로 가능한 일일 리가 없다.

  보편적인 복지를 하게 되면 소득을 파악하는 것은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청에서만 하고, 대신에 소득과 재산이 더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많은 합당한 세금을 내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 외의 다른 복지 시스템에서는 선별에 들어가는 절차와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세금 정책과 함께한다면 보편적 복지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는 그때그때 영역과 성격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무상급식 따위!

  가끔, 내가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것을 놓고 그런데 왜 복장자유화에는 찬성하냐고 딴지 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는 무상급식을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 '눈칫밥'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싶다. 일단 복장을 자유화함으로써 생기는 개성의 자유 실현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급식을 유상으로 함으로써 생기는 일은 도저히 없을 것 같으니,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수다. 만일 이처럼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무상급식이라는 게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뜻하기라도 해야 한다. 뭐, 지금 많은 학교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사먹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급식비를 학교가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학교의 억압적이고 일괄적인 방식과 문화의 문제이다. 특히나 학교들은 급식 자체에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더 늘릴 필요도 있겠고. 급식의 질 향상과 식단의 다양성, 선택권 보장은 무상급식 이후에 급식을 계속 개선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아니면,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교복이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어지거나 모든 학생들, 청소년들에게 옷을 살 돈이나 상품권이 주어지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솔까말, 나는 강제교복을 없애고 복장을 자유화하면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 빈곤층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에, 그러면 옷 살 돈을 정부에서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이 역시 무상급식처럼 가능하면 모든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옷 살 돈을 주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 터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미안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대부분의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에서는 현실이다! 아동수당 제도라고 들어보셨는가? 아동수당은 1926년에 뉴질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건데, 아동이 있으면 소득이 얼마든 간에 무조건적으로 그 집에 돈을 주는 제도이다. 국가에서 양육을 책임지는 방식인 것이다. 독일은 월 184유로(약29만원정도)에 아동이 많을수록 추가수당이 있고, 스웨덴은 16세 이하 아동에게 월 950크로나(약12만원)에다가 학교에 다니면 주는 추가 수당, 병이 있으면 주는 추가 수당, 아동이 많으면 주는 추가 수당 등 여러 추가 아동수당이 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2010년부터 15세 미만 아동 1인당 월 26000엔(약36만원 정도)의 아동수당을 준다. 지금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OECD에 가입한 국가들 중에 아동수당 제도가 없는 데는 미국, 터키, 멕시코, 한국뿐이다. 2)

  그래서 최근에 독일에 가있는 분이 한국의 무상급식 논란 이야기에 대해 독일은 무상급식을 안 하는 이유를 얘기하길 ① 독일은 오후까지 수업을 안 해서 학교에서 밥을 안 먹는 경우가 많고 ② 독일은 급식을 무상으로 주기보다는 급식비나 밥 사먹을 돈을 국가에서 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 흑흑.

  물론 아동수당이 한국에 도입되면 죄다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말 거라는 씁쓸한 예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 돈이 반드시 아동․청소년들에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용돈/생활비의 형태로 쥐어지게 만드는 제도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기사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무상급식 덕에 굳는 급식비마저도 사교육비로 지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건 복지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쟁교육의 문제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무상급식을 생각할 때마다 영 찝찝하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도 모두 무상교육으로 만들라는 요구쯤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최소한 아동수당은 되어야 좀 복지 정책으로서 제대로 된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3)은 못할망정. 그러니까 이제 우리(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도, 좀 강하게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라에다가 우리한테 돈 좀 내놓으라고. 아동수당도 내놓고 교육비도 좀 더 쓰라고. 체벌을 하라고 하지 말고 교사 수, 교실 수를 늘리라고. 빈곤층 핑계 대며 교복을 입히지 말고, 옷 사 입을 돈을 내놓으시라고. 그 별 거 아닌 무상급식 따위 하나 가지고 벌벌 떨지 좀 말란 말이다!





1) 주민투표 당시 자료를 보면, 서울시 초등학교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필요한 예산이 약 600억 수준이었다. 급식 질을 좀 더 높인다고 해도 900억 정도일 테니, 전국 실시에는 최대 4000억 이하일 것이다.

2) 한국에서도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12세 미만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던 적이 있다. 당연히 아직 통과 안 됐지.

3)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 쉽게 말해 매달 모두의 통장에 30만원씩 국가가 입금을 해준다고 상상해보시면 된다. 보편적 복지 중 현금 부문의 완결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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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ㄷㄷ

    쓰레기같은글 잘읽었습니다

    2011.09.22 01:26 [ ADDR : EDIT/ DEL : REPLY ]
  2. ㅇㅇ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진보적 상식 - 애들 키우느라 뼈빠진다(그래서 복지가 확충되어야 한다) - 속에 감춰진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신선하네요.

    2011.09.22 14:20 [ ADDR : EDIT/ DEL : REPLY ]
  3. 하얀저고리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2011.09.25 10:2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9. 14. 22:59
입 닥치고 내 말 들어, 이러고 싶은 거지?
학생 교내 집회는 안 된다고? 솔직해지시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24882&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좀 급하게 부탁을 받고 급하게 쓴 글이었는데

원제는 "학생인권조례 논쟁, 발전 좀 합시다!"로 달아서 보냈었다.
뭐 제목 달면서도 이거 아마 재미 없는 제목이라서 바꾸겠구만... 싶긴 했는데
입닥치고 내 말 들어, 이러고 싶은 거지? 라니 -_-; 자극적으로도 뽑으셨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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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갱이니, 종북이니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당연히 드는 생각을 말해도 막바로 저런 부류로 모는... 대체 언제쯤에나 바뀔 수 있을까요.

    2011.09.16 13: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9. 9. 16:09


[성명] 금지와 검열을 남발하는 청소년 보호주의 정책을 중단하라!


  최근, 정부의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에 대한 통제가 심각하다. 지난 5월 제정된 '청소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도'와 그 직후 이루어진 청소년들이 게임을 이용할 때 엄격한 보호자 동의 확인을 거치도록 한 법 제정은 대표적이다. "술", "감기약"(항정신성 약물이란다!) 등의 단어만 들어가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하고 "사람들 햄버거를 처먹으며 나를 비웃어 미간을 찌푸리지마 동정은 됐고"(일통 「거지」) 등의 노래가 내용이 염세적이고 비속어를 쓴단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청소년보호위원회 및 음반심의위원회의 블랙코미디스러운 검열은 더더욱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이밖에도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자의적 등급 심의, 그리고 이번의 청소년 '멀티방' 및 복합게임장 출입 금지 법 제정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처럼 연이어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보호주의적 정책들을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고 있으며,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이를 견제하려는 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국회가 '꼰대'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청소년들의 놀 권리와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반인권적이다. 청소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을 자유가 있다. 문화를 사회가 공익을 이유로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러 의견이 분분한 주제이며, 청소년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놀이에 대해 '합리적이고 필요 최소한의' 제한만을 가하더라도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판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는 자의적이고 불합리하며 폭압적인 규제들을 강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청소년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코딱지 만큼밖에 안 하면서 청소년들의 생활에 대해 금지, 금지, 금지만을 늘려가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 보호주의 정책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학생답고 단정해' 보이는 모습을 만들기 위한 두발복장규제와 질적으로 다를바 없다. 거기에는 청소년들의 삶과 권리에 대한 진지한 고려는 없고,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어른들의 틀 안에 가둬두려는 욕심 뿐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만의, 또는 지금 이러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주무부처로 지목받고 있는 여성가족부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셧다운제도가 처음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의 일이었다. 청소년보호법으로 대표되는 청소년 문화에 대한 통제, 보호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음반심의, 게임심의 등이 자의적 기준과 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비판은 계속 제기되었다. 수년 전에는 상대적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심의·검열이 이루어져서 문제가 잘 불거지지 않았던 것 뿐, 그 방식과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는 문제는 그대로이다. "모든 문화 예술 행위는 반드시 성경(기독교)의 잣대로 심판된다"(강인중 현 음반심의위원장)라고 대놓고 말하는 괴악한 인물이 심의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설령 '상식적인 어른들'이 심의를 한다고 해도 그 근본적인 문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청소년들을 염려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높지만, 청소년들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너무나 작은 사회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 자신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사회에 참여하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는 결국 청소년들을 어른들의 눈으로 재단하고 통제하려고만 하는 정책들로 이어지고 있다. 부처 개편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 여성가족부 등을 오가며 청소년 정책을 입안해온 관료들의 꼰대성도, 그리고 청소년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면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거의 듣지 않거나 요식적으로만 듣는 모습도, 모두가 계속 반복되어온 문제인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보호"를 내세우며 청소년들 자신의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통제와 금지를 외치는 청소년 보호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 특히 그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청소년들의 복합게임장 출입 금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도, 보호자 동의 확인 등 청소년들의 놀 권리, 문화적 권리를 무시하는 정책들을 즉각 폐지하라!

1. 자의적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음반, 게임, 영상 등에 대한 검열을 중단하라!

1. 청소년들의 삶과 문화를 통제하는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하고, 대신 청소년을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유해한 사회 환경을 없애가고, 청소년들의 인권과 삶의 질과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라!

1. 청소년 정책을 '가족'의 관점, 보호주의적 관점에서 만드는 지금의 체계를 버리고, 청소년을 주체로 보고 청소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위한 체계를 도입하라!

1. 청소년들에게 전면적으로 청소년 관련 정책 및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


2011년 9월 8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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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1. 8. 31. 16:55
헌법재판소인가 안보재판소인가
- 인권을 저버린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규탄한다

2011 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와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제8항 대해 7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04년 결정이후 7년 만의 결정이다.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지켜달라는 7년 동안의 외침은 결국 외면당했다. 7년 전과 똑같은 7대 2의 합헌 결정. 결국 이번 헌법재판소의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졌던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이 2011년 대한민국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결정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며 재판을 미뤄왔던 많은 젊은이들은 다시 감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에 헌법재판관들은 스스로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2004년에 내린 동일조항에 대한 합헌결정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병역거부에 대한 많은 사회적인 변화가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병역거부 인정 결정, 국제사회의 권고, 국방부의 전향적인 대체복무제 도입 결정까지 있었다. 비록 이명박 정권 이후 병역거부에 대한 많은 진전들이 백지화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변화를 분명히 반영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7년 전보다 못한, 후퇴하는 결정을 내렸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는 결정이기는 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법부에 대한 권고를 5명의 재판관의 이름으로 담고 있었다. 비록 법률을 위헌이라 결정할 순 없지만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는 고뇌가 담긴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는 고뇌의 흔적조차 없다. 고뇌가 없는 것을 넘어서서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할 법원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인권침해를 정당화하고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아니라 국방부 관계자가 쓴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보상황에 대한 걱정과 병력자원 손실에 대한 우려가 넘쳐나고 있다. 이 정도면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안보재판소라고 해도 될 지경이다.

또한 국제인권규약에 대한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은 누가 읽어볼까 민망한 수준이다. 유엔은 그동안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근거하여 수차례에 걸쳐 회원국들에게 병역거부권 인정을 권고했으며, 일반논평과 결의안을 통해 병역거부권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정부에게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는 결정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자유권규약을 위반했다는 결정 역시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유래없는 인원인 100명에 대한 권고가 나오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문에서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에서 할 소리인가. 그럼 그동안 반복된 유엔의 권고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유엔회원국이자 자유권규약 가입국으로서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시대착오적인 국제규약 해석은 국제적인 망신이자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고민없는 합헌결정으로 논의를 종식시켜버린 헌법재판소는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할 책임을 저버린 것으로서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감내해야 이들의 감옥행을 멈출 수 있는 것인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1만 6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옥에 다녀왔고, 현재 약 8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있다. 이들이 주장한 것은 면제나 특혜가 아니라 총을 들지않고 다른 방식으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이다. 연대회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규탄하며, 다시한번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촉구한다.


2011년 8월 30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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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7. 25. 13:13





학생인권, 밀어서 잠금해제>_<!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10개월…

학생인권의 봉인은 풀렸을까요?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주인공이 되었나요?



경 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지만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학생들에게 제대로 교육하고 홍보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인권이 개선되는 데 힘이 되고 있지만,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잘 알고 자기 인권의 주인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50% 부족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현실에서 완성해나갈 주인공은 바로 학생입니다.

그래서! 학생인권과 학생인권조례에 관심 있는 경기도 학생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밀어서 잠금해제!>

학 생인권조례의 역사와 배경, 내용에 대한 교육,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에 대한 토론, 인권감수성을 높여주는 인권교육 프로그램 등등… 대부도 바닷가에서 우리 안의 학생인권을 <밀어서 잠금해제> 해보세요! 그리고 돌아가서 우리 학교의, 우리 지역의 학생인권을 <밀어서 잠금해제> 해보아요!



캠프 일시 : 2011년 8월 2일 ~ 4일 (평일이지만 방학 중이니까 괜찮죠? ^^)


캠프 장소 :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새중앙교회 수양원

(마땅한 장소를 알아보다 새중앙교회 수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교회수양원이긴 하지만 캠프는 종교활동과는 무관합니다.^^;)


참가 대상 : 경기도 지역 중고등학생 선착순 35명

(초등학교 고학년인 분들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 괜찮아요~!)



신청 방법 :: 파일 첨부된 참가신청서를 다운받아서 작성한 후 asunaro@asunaro.or.kr 이메일로 7월 29일(금)까지 보냅니다.^_^

참가비 :: 4만원 (내기 어려운 분들은 참가신청서에 표시해주시면 지원 또는 면제 가능합니다~)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경기도 인권교육 연구회

문의 :: 010-9916-1461 난다 / asunaro@asunaro.or.kr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경기도 인권교육 연구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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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7. 19. 12:53

유권자 태클거는 선거법에 헤드락을!

10만 입법청원 서명 동참해주세요!

 

2000년 낙선운동 단속
2004년 패러디 창작물 단속
2007년 인터넷 UCC 단속, 88000여건 삭제
2010년 4대강·무상급식 캠페인 단속, 트위터 단속
2011년 10월 14일(총선 D-180일) 선거법 단속 예정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는 데, 도대체 유권자는 선거때 투표찍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습니까.

단 13일(총선), 22일(대선)의 짧은 선거기간을 제외하고, 유권자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유권자 태클거는 선거법 바꾸자. 입법청원 서명 바로가기 아래 클릭! ⇓

유권자 태클거는 선거법에 헤드락을! 입법청원 서명하러 가기!(클릭!)


선거에 출마할 정치인(후보자)과 정당을 비판하거나 지지하면 선거법 위반이고,
2010년에는 선관위가 ‘4대강, 무상급식’을 단속했으니, 올해 10월부터는 ‘반값등록금, 핵발전소, 해군기지, FTA 등등’ 무엇 하나 안심하고 정책을 알릴 수도 없습니다.

 

당장 내년 선거에서 구시대적 선거법이 유권자의 입과 손발을 어떻게 묶을지, 유권자들의 지난 수난 기록을 돌아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유권자 수난사 바로가기)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모두들 선거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선거 6개월 전부터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면 그토록 중요한 선거에서 유권자는 그저 구경꾼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난 6월 1일, 선거법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여러 시민단체, 네티즌들이 함께 모여 ‘유권자 자유 네트워크(준)’(약칭 유자넷)을 발족했습니다.

 

그리고 9월 1일, 유권자를 옥죄는 선거법을 개정하는 입법청원을 하고자 합니다.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마음껏 말하고 행동할 자유를 원하는지 보여줄 때입니다. 
선거법 개정 10만 입법청원에 꼭 함께 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유권자 태클거는 선거법 바꾸자. 입법청원 서명 바로가기 아래 클릭! ⇓

유권자 태클거는 선거법에 헤드락을! 입법청원 서명하러 가기!(클릭!)

 

 

※ 즐거운 이벤트 하나 : 입법청원에 동참하는 1천번째, 2천번째...만번째 온라인 시민들에게는 유자넷과 함께하는 명사들이 기증한 ‘즐거운 지식쌓기 3종세트(확신의함정:금태섭 변호사, 위키리크스:다니엘 둠 샤이트 베르크, 호모레지스탕스:박경신 외)’ 10권을 드립니다.

 


★ 유자넷과 함께하는 단체/시민을 소개합니다.
강원민주언론시민연합, 광주전남녹색연합,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 광양만녹색연합,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경기환경운동연합,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나눔문화, 녹색교통운동, 녹색연합, 대전충남녹색연합,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언론시민연합, 생태지평, 서울환경운동연합, 안산YMCA,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 원주녹색연합, 전북녹색연합,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교육학부모회, 참여연대, 천안YMCA,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함께하는시민행동,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KYC,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한국여성민우회,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경기북부참여연대, 광주참여자치21, 대구참여연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순천참여자치시민연대, 여수시민협, 울산시민연대, 제주참여환경연대, 참여와자치를위한춘천시민연대,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815평화행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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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23 13:19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5. 23. 09:54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전교조도 안 될 거라 했었다”

서울본부, 8만5천 청구인 명부 서울시교육청에 접수

김도연 기자 2011.05.20 13:58


서울시교육청 현관이 눈물바다가 됐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사로 학생인권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며 이내 눈물을 쏟았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서울본부)가 20일 서울학생인권조례 청구인 명부 제출에 앞서 서울시교육청 1층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날 “주민발의 성사로 경기도에 이어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현실이 바로 우리 눈앞에 왔다”며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학교가 인권과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학교로 변화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고 주민발의 운동의 성사를 알렸다.
이 자리에서 6개월 동안 직접 거리서명에 나섰던 청소년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실감이 안 난다”며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다.
▲  청소년 활동가들이 서로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예솔 청소년 활동가는 “전교조도, 서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다들 (주민발의 성사가) 안 될 거라고 그랬다”며 “그래도 우리는 ‘주민발의 운동을 하는 거 자체가 의미 있겠지’ 하고 했는데 진짜 성사가 되니까 실감이 안 난다. 너무 좋다”고 말했다.
다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도 “20일에 이렇게 주민발의 성공했다고 보고대회를 하고 있는 이 상황이 아직도 꿈만 같다”고 전했다. 다영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8만 2천이 모여서 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오늘 이렇게 하게 돼서 너무 다행”이라며 “지지해주신 서울시민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  다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거리에서 시민들을 설득하고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아직 못 만난 시민 분들께는 너무 죄송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사로 현장 교사들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졌다. 이병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장은 “이번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주민발의 성사는 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접선거를 하게 된 정도의 비중과 의미가 있다”며 “교사들의 일터이자 학생들의 삶터인 학교에서 인권이 꽃피울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서울본부는 서울시민 8만5천821명의 서울학생인권조례 청구인 명부를 시교육청에 제출했다. 시교육청은 명부 검증을 거쳐 서울본부의 조례안이 주민발의 요건을 갖추면 60일 이내에 서울시의회에 해당 조례 안건을 제출해야 한다.
▲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청구인명부가 담긴 상자를 시교육청으로 나르고 있다.

서울본부 측은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시의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며 “2004년 친환경학교급식지원조례, 2009년 서울광장조례에 이어 세 번째로 성사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서울지역에서 주민발의로 제정된 최초의 조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또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유치원까지 그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두발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생 권리를 축소한 부분도 바로잡았다”며 “서울시민의 뜻으로 쓰인 서울학생인권조례제정 주민발의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라”고 시의회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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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5. 18. 05:21


“사람이 되어라”와 “학생도 사람이다”


공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사람이 되어라」는 한국의 학생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원숭이이다. 교문에 커다랗게 박힌 글자가 수백 학생들의 등굣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먼저 사람이 되어라.” 먼저 사람이 된 선생님이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 학교에서 말 잘 듣고 남을 도우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곳. “대학 가서 사람 되자.”라는 급훈이 걸려 있는 곳. 「사람이 되어라」에서 그리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인 원철이는 숲에서 학교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는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사람이 된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원철이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니 맘대로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해! 사람은 대학 가고 나서 되는 거야!”라고 호통을 치며 체벌을 하는 선생님. 학교를 뛰쳐나온 원철이는, 사람 안 될 거냐고 어서 학교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전 이미 사람이에요!”


나는 종종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학생인권 캠페인 같은 것을 하곤 한다. 최근에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하다보니 거의 매일 같이 3개월 동안 하루 6~8시간씩 캠페인을 했다. 그러다보면 지나가던 사람에게서 “아니, 그럼 학생이 사람이지 돼지에요?” 같은 장난스러운 질문을 심심찮게 받곤 한다. 가끔은 “「사람이 되어라」에서 보니까 원숭이던데요.” 하고 대답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할 것도 없겠지만,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말이 학생들이 생물학적으로,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 인류)가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오히려 생물학적으로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사람으로 대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학생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사회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학생 ―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해도 되는 몇 안 되는 집단 중에 하나이다.(다른 집단으로는 군인 정도가 있겠다. 군인의 경우, 직접 때리는 구타는 금지되어 있지만, 얼차려나 기합은 가능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경우, 때리는 것이나 ‘기합’을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구속구를 채우거나 독방에 가두는 것은 가능하다.) 그나마 최근에 서울, 경기도, 강원도 등은 학교에서 체벌 완전 금지를 선언했고 교육과학기술부 또한 법령을 개정하여 학교에서의 때리는 체벌은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도 큰 진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정이나 학원에서는 반(半)합법적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많은 학교에서 체벌이 일어나고 또 묵인되고 있다.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기합을 받다가 목숨을 잃은 학생들까지 있는데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기합’ 같은 형태의 ‘때리지 않는’ 체벌은 계속 허용(조장?)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학생 ―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권리를 원천 봉쇄당한 몇 안 되는 집단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질적으로는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절차적으로라도 의견을 제시하고 투표나 공청회나 기타 여러 형태로 자신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투표권을 가지지 못하며, 이에 더해서 정당 가입, 정치 활동 등을 포괄적으로 제한당한다. 최근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때문에 위헌소송을 검토하다가 안 건데, 심지어 자신의 기본권 침해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을 청구하려고 해도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청소년들은 주민발의나 주민투표 등, 법적으로 유효한 서명에 참여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교육 정책이나 청소년 정책을 결정할 때 정부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조차 제대로 가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학생회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학생들의 ‘특별 활동’의 한 종류로 규정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밖에도 하나하나 청소년들의 ‘당연한’ 일상을 뜯어보면 참 당연하지 않은 일이 많다. 예컨대 성적이 공개되거나 성적표가 보호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발송되는 모습이라거나,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할지 말지를 정할 때 본인의 동의를 묻는 게 아니라 보호자의 동의를 묻는 모습은 어떠한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자의적 소지품 검사는 어떠한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정 위험한 물건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며 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일까?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고 해서 극장 직원이 관객의 휴대전화를 압수한다면, 얼마나 화가 날 것인가? 어른들이 폐에 질환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증서를 가지고 있고 담배를 살 때 폐 질환이 없으며 담배를 피어도 건강에 큰 해악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면? 종교재단이 세운 회사라고 해서 직원들이 전부 다 그 종교 의식에 강제로 참여해야 한다면?



‘덜 된 존재’와 인간 사이에서

물론 학생인권 문제는 지난 10년을 주욱 훑어보면, 많이 개선되었다. 학생인권을 외치는 사회적 운동이 시작된 지가 거의 15년 안팎이니까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낸 뿌듯한 성과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여러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성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숙제를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등 지역별로 다른 학생인권 정책을 펴면서 지역간의 격차, 학교간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어느 지역은 학생들의 학칙 개정 참여를 보장하고 어느 지역은 전혀 보장하지 않는가 하면, 같은 동네에서도 어느 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학습을 강제로 시키고 어느 학교는 완전히 자율로 하는 모양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 어느 학교에 입학했느냐, 어느 선생님들이 있느냐에 따라서 오락가락 하는 권리라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그건 차라리 복불복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아직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인권 문제도 많이 있다. 예컨대 UN아동권리위원회는 2003년, 한국의 지나치게 경쟁적 교육환경이 아동의 발달권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개선하라고 권고했던 바 있다. 두발자유, 강제적 자율보충학습, 학생자치,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쉴 권리 등 최소한의 학생인권이 어느 정도 개선되고 나면 그 다음에 부딪치게 될 주된 인권 문제는 바로 교육 문제일 것이다. 교육 정책 자체가 인권 침해가 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권리(‘알바’라고 불리는 노동의 문제나 주거권 등) 같은 문제와 청소년보호법 같은 청소년 정책의 문제도 중요한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의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도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학생이 어디서 머리를 염색하느냐부터, 심지어는 강제 자율보충학습, 강제 종교의식 참여, 성적 차별 등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옹호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얘기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학교 안에서 기본적인 언론․표현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하는 것을 가지고서도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 정책의 문제나 정치적/경제적 권리 등을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상상하기도 두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게, 깊게 가져보면 어떨까. 청소년들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 참여 등, 이미 유럽, 남미 등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북서유럽 또한 68혁명 등 학생들의 많은 요구와 행동, 그리고 사회적 갈등을 겪으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개선될 수 있었다. 1968년 수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고 시위를 하는 68혁명의 와중에 영국의 청소년들이 발표했던 요구안을 보면 지금의 한국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자유롭게 조직을 결성․가입하고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 없이 학교나 교사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동의서는 학생 의사가 아니므로 정당하지 않다”, “우리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양심에 반하는 종교교육이나 예배는 거부돼야 한다” 등등. 한국 역시 학생들, 청소년들의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외침과 행동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원숭이’, 아니 ‘덜 된 존재’(미성년자) 취급받는 학생 ― 청소년들이 ‘사람’이 되는 제대로 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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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4. 28. 21:07



‘체벌의 교육적 효과’라는 말의 모순과 본질



  체벌 사건이 불거진 어느 한 중학교에, 면담을 하러 찾아갔을 때 일이다. 어느 한 학부모가 “잘못을 하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말을 했다. 한창 논쟁 중이었던 나는 그 말 한 마디에 화가 나서 그동안 마음에 꾹꾹 담아 두었던 말을 꺼내고 말았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이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선생님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선생님을 때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 말은 단순히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지라고 요구하는 발언이거나 싸가지 없는 발언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체벌 옹호론이 안고 있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던 말이었다.


  체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주장 중에는 이런 게 있다. <체벌은 중요한 교육적 효과가 있으므로 정당하다.> “잘못을 하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말을 좀 더 세련되게 바꾸면 대충 이런 말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이 말을 한 번 찬찬히 가지고 놀아보자. 이 문장에서 “교육”을 ‘올바른 것’을 알고 있는 교사가 ‘잘못된 것’을 생각/실천하는 혹은 ‘올바른 것’을 알지 못하는 학생에게 ‘올바른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동의하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구체화해볼 수 있다.(물론 교육은 이런 단순한 과정이 아니지만, 적어도 올바른 것을 아는 교사가 잘못을 하는 학생을 교육적으로 체벌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교육’의 그림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그러므로 문장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체벌은 교사가 알고 있는 ‘올바른 것’에 학생이 동의하도록 하는 데 유용하므로 정당하다.> 이 말은 결국 이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폭력으로 어떤 생각에 다른 사람이 동의하도록 하는 것은 정당하다.>, 아니면, 적어도, <정당할 수 있다.>


  이 명제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떠나서 이 명제는 심각한 모순을 일으킬 가능성을 안고 있다. 문제는 어떤 생각이 그 생각 자체의 설득력이나 효과가 아니라 그와 무관한 외부의 요인에 의해 다른 사람이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당하다는 부분에서 생긴다. 물론 현실에서야 생각이나 주장에 동의하는 데에 많은 외부적 심리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것이 정당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를 정당하다고 선언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모순은, 그 명제 자신과 반대되는 명제를 연결시켜 일종의 메타 명제를 만들어보았을 때 일어난다. 어떤 명제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 명제 자체의 내용과 무관하게 외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명제와 그 외적 수단 사이의 불일치와 모순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 <“폭력으로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하게 만드는 건 잘못이다.”라는 의견을 폭력을 이용해서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정당하다.>(이는 실제로 학교 현장이나 가정에서 곧잘 일어나는 모습이다!) 물론 이런 기괴한 모순은 ‘폭력’이 아닌 다른 것을 넣어 봐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돈으로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하게 만드는 건 잘못이다.”라는 의견을 돈을 이용해서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정당하다.>



탈출구와 본질


  체벌을 옹호하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이 모순을 벗어나려고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솔직하게 이 모순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교육적 효과를 주장하지 않으면서 단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체벌은 교육적 수단이 아니라 열악한 교육환경이나 가정환경 속에서의 통제 수단, 일종의 필요악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그래서 체벌이 없어져도 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체벌금지 문제가 사회적 공론화가 된 지도 어언 15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투의 이런 주장은 무책임해보이기까지 한다. “너무 오래도록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또한 체벌이 단순히 필요최소한의 통제 수단으로서만 긍정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실제로는 체벌이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현실에도 반대하는 위치에 서야 할 텐데,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건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될 때, 그나마 생산적 정책적 논의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기는 하다.



  두 번째 방법은 “아이들의 경우에만, 미성숙하므로 맞아도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풀어써보면 이렇다. “아이들은 미성숙하고 어른들은 성숙하다. 그러므로 어른들의 생각은 아이들의 생각보다 항상 옳다.” 적어도, “옳을 개연성이 크다.” 또는 “아이들은 미성숙하므로 어떤 의견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외적 수단을 통해 동의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명제와 외적 수단의 모순’이 해소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이에 비해 어른이 언제나 ― 적어도 대체로 옳다는 것을 이미 전제해버리고서는, 거기에서 어떤 모순이 생기든 ‘어쨌건 옳기 때문에’ 그걸 깔아뭉개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맞아도 되는 존재’로서의 아이들과 ‘사람’을 분리시키는 태도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경험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인권적으로든, “아이들은 미성숙하고 어른들은 성숙하므로 어른들이 항상 옳다.”라거나 “아이들은 맞아도 된다.”라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논의하는 것은 이 다음의 일로 미뤄두자. 그저, 나는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체벌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즉, 체벌은 아동-청소년과 어른-비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이고 계급문제이다. ‘맞아도 되는 존재’(아이, 청소년)와 ‘사람’(어른, 비청소년)을 분리시키는 인식과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이다. 정혜신 박사는 2011년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서 때리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여러분보다 약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죠.”

  아동-청소년과 어른-비청소년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인간이 아닌 존재, 인간이 덜 된 존재로 취급당하는 아동-청소년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간으로 인정받게 할 것인가? 오늘도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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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못을 하면 맞아야"

    이 논리가, 민주주의를 전파하려면 전쟁을 벌여야하고, 가끔은 말 잘 듣는 독재정권을 지지함으로써 세계질서를 바로세워야한다는 그런 논리와 상당히 비슷하더라고요.

    2011.04.29 02:24 [ ADDR : EDIT/ DEL : REPLY ]
    • 체벌 찬성이 이라크전쟁 지지로 이어지는 심오한 세계군요...

      2011.04.30 23:45 신고 [ ADDR : EDIT/ DEL ]
  2. 그럼

    "당신이 나보다 미성숙한 어른이라고 결론이 났고, 내가 나이도 몇살 더 먹었다면 (당신을 위해) 좀 때려도 되겠소?" 라고 질문을 던져봐야겠군요.

    2011.04.29 11:31 [ ADDR : EDIT/ DEL : REPLY ]
    • 그 결론을 누가 내느냐가 결국 문제가 되겠지요 ㅋ
      그리고 아이-청소년의 경우에는 사회적 힘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에 의해 그렇게 규정당했다는 걸 지적해야 할 거구요.

      2011.04.30 23:45 신고 [ ADDR : EDIT/ DEL ]
  3. 체벌이 없는 학교에 가보셨나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체벌이(폭력)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관심도 그렇게 크지 않았었구요. 학교 급식의 경우엔 한 반에서 열명정도의 인원만 먹었었죠. 대부분 자기용돈으로 쓰느라 굶는 학생이 다수였습니다. 학교급식수준이 맛이나 위생이나 좋은 편은 아니여서 그리고 다른 이유로해서 저 또한 먹지 않았었죠. 밥 먹고싶으면 학교 밖 식당으로 나가곤 했었는데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학교 밖으로 나가는건 금지사항이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도 대부분 학교급식은 먹지 않았죠. 점심시간에 길거리에서 선생님을 마주치면 어떨까요? 학생들은 전부 도망갔습니다. 혼날게 분명하니까요. 때리진 않아도 잔소리가 듣기 싫고 분위기상 피해야 할거 같으니까요. 그래도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는 좋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떠들어도 자도 아무런 소리도 안했죠. 자는애는 자고 점심시간지나서 등교하는 애는 늘 그 시간에오고 공부하는애들 몇 위주로만 수업이 진행됬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러려니하죠. 시험만 잘 보면 되니까요. 학교수업이 안나가도 학교시험은 치룰수 있는 대한민국시스템이 있으니까요. 체벌 얘기를 하다 요점이 흐트러진거 같은데, 체벌의 형태가 폭력적이고 남용되면 그건 큰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나이때 학생들은 금지나 어떤 권리를 자신의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는거죠. 맞으니까 공부하는 애 맞아도 안하는 애 그냥 그런 애 무관심한 선생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는 젊은 선생 무시하는 학생들.. 이게 제가 다니던 학교 입니다. 여기에 폭력이 개입해서 급식먹게하고 자는 애 깨우고 등교시간 엄수하게 하면 어떨까요? 결과는 같습니다. 맞아도 바뀌는건 없더군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실업계라 칠십명의 학생들이 삼년간 같은 반 입니다. 학생은 그대로지만 선생님은 계속 바뀌죠. 때리나 안 때리나 결과는 비슷하더군요. 선생님들의 태도에 따라 학생들의태도가 크게 바뀌는게 없었습니다. 폰으로 쓰다보니까 글이 완전 이상 하게 되었네요

    2011.04.29 18: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첫 글이 폭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거 같네요. 그냥 이런 학교도 있구나란 정도로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학교 시험의 경우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줍니다. 그래도 공부 하는 애들만 하지요. 실업계 학교끼리 내신으로 경쟁해 대학에 가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 입니다. 애들이 공부를 안하는 것도 있지만요. 더 놀라운건 교수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실업계 학생들은 대학은 보냈지만 기본 지식이 없어 대학가서 많이들 고생하죠. 학교에서 따는 자격증은 컴할 삼급정도의 수준으로 사회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구요. 학생들이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2011.04.29 18: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정말이지 만들어진 틀 내에만 놀아납니다. 언제나 인문계위주의 글이나 관심만 보이지 실업계쪽은 일반적인 인식 수준인 꼴똥 학교니까처럼 뒷전인거 같아 글을 남겨봅니다. 그리고 글 몇 개를 읽어 봤는데 댓글이 참 인상적이네요ㅋ 보통 다른 블로거들은 다른의견이나 비아냥 거리는글엔 욕이 난무하는데ㅋ 댓글이 다른 곳에 비해선 깔끔하고 좋은거 같습니다. 좋은 글들 이 많네요ㅋ

    2011.04.29 18: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말씀하신 부분은 체벌 이야기와는 좀 또 다른 부분 같네요. -ㅁ-
      저는 학생들이 인권이란 개념이 없다거나 하는 게 나이에서 비롯되는 자연발생적 특징이 아니라 사회적인 그리고 교육시스템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 다른 국가와 사회, 문화 사이에 있는 그 커다란 간극과 차이를 설명할 수 없겠지요.

      2011.04.30 23:44 신고 [ ADDR : EDIT/ DEL ]
    • 근데 학생인권조례 국면이 좀 정리가 되면 나중에 쓸 기회가 있을 텐데, 저는 '체벌금지' 자체도 사실 '어른들의 이슈'라고 보는 관점을 갖고 있어요.
      만약 곽노현 등이 학생들의 관점에서 생각했다면 '체벌금지'말고 다른 것부터 시작했겠지요. 그런 점에선 말씀하신 그런 지적에 동의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건 또 별론이지요.

      2011.04.30 23:51 신고 [ ADDR : EDIT/ DEL ]
  6. 상긔

    ㅎㅎ 맞아요 체벌은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체벌을 당하는 대상은 오히려 반항심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체벌이란 많은 청소년들을 억누르는 겁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도 생기지요
    오히려 체벌을 하지 않고 충고를 하는게 더 좋지 않을 까요^ㅇ^

    2011.12.06 21:48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1. 3. 26. 09:28
"감옥갈 각오로 원전 스위치 끄자"
[기고] "지금은 행동 조직할 때…1백만 촛불 들게 해야"




지금 내가 다니는 전남대학교 안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을 홍보하는 비디오 테이프가 상영되고 있다. 잘하는 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홍보를 조직할 때가 아니다. 이미 아줌마들은 미역 사재기에 들어갔다. 아줌마들은 후쿠시마에서 흘러온 방사능에 대한 구체적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아줌마들의 미역 사재기를 향해 가족이기주의라고 손찌검하지 말라. 그것은 조직되지 않은 대중이 개인의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합리적 행동이다. 나쁜 것은 정치권의 무대응이다.

역사가 진보신당에게 요구하는 것

그중 재빠르게 진보신당이 원전 폐지의 당론을 결정한 것, 반가운 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토론을 조직할 때가 아니다. 대중은 행동의 기회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는 진보신당에게 원전폐지 투쟁의 선봉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통합도 중요하고 총선도 중요하다. 지도자들의 상층 연대, 소중하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은 원전을 둘러싼 범국민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광우병으로 100만 명이 촛불을 들었다면 방사능으로 100만 명의 국민이 촛불을 들도록 하자. 이명박 따위들이야 계속 원전의 안전성을 떠들어도 좋다. 우리는 원전의 스위치를 끄러 들어가야 한다. 

   
  ▲영광 핵발전소 모습. 

나는 지난 20여 년 원자력발전소의 문제점을 강의해왔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는 박정희, 전두환 두 독재자의 유물이다. 그때 그들은 미국의 웨스팅 하우스와 벡텔이 던져준 떡고물에 눈이 어두워 민족의 미래를 팔아먹었다. 독재는 노동자에게는 저임금이었고, 농민들에게는 저농산물 가격이었을 뿐 아니라, 삼천리 금수강산을 핵의 괴물에게 저당잡힌 '사건'이었다.

2000년 전 주몽 할아버지가 이 땅에 '핵똥'을 남기고 갔다고 하자. 우라늄 방사능(플루토늄)의 반감기가 2500년이다. 주몽 할아부지가 싸고 간 핵똥이 1키로그램이라면, 아직도 500그람이 핵분열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라늄의 핵똥이 1/1000로 줄어드는 데 자그만치 2만5천 년 걸린다. 우리가 남기고 간 '핵똥'이 지하 어디엔가 저장되어 있다가 지진과 함께 어디에서 터질 지 모르는 세월이 2만 년이다. 하여 지금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를 돌리고 있다는 것은 딱 한 세대의 풍요로운 전기를 위해 1천 세대에게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세대 풍요를 위해 1천 세대에 치명적 범죄

그때마다 나의 청소년들은 “황샘, 뻥이 쎄."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체르노빌은 영광노빌이 아니고 고리노빌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청소년들은 다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고 행동이다. 문제는 원자력 발전소의 이해당사자들은 죽어도 원전을 끄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 원전은 터질 수밖에 없는가?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은 30년이다. 그런데 끄지 않는다. 죽어도 끄지 않는다. 왜 끄지 않을까? 원자력 발전소 한 기가 2조 원이다. 2조 원은 동네 '똥개 이름'이 아니다. 1천억짜리 대기업 스무 개에 달하는 자본이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 21기이므로 원전의 자본이 물경 40조 원이라는 거다.

이들이 알아서 양심적으로, 자발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스위치를 내려줄 것을 바라지 말자. 권력자들이 자발적으로 원전을 폐지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이건희가 알아서 상속세를 내달라 기대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무망한 일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자본에는 심장이 없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모든 구멍에서 오직 이윤의 피 냄새만을 풍기는 자본이라는 괴물에게 후쿠시마의 재앙은 보이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소의 스위치는 절대 꺼지지 않는다. 하여 20년 안에 반드시 원자력 발전소는 터진다. 원자력 발전소의 스위치를 내리자. 주거침입의 죄를 물어 감옥에 보내면 당당하게 감옥에 들어가자. 후쿠시마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여, 영광이 터지고, 월성이 터지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2011년 03월 26일 (토) 08:44:23 황광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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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14. 06:3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0593


참세상 기사 보신 분들 계시죠~? 흑흑 ㅠㅠ


경향신문 특집기획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학생인권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제발 서명 모으는 거 부탁드려요!!










[호소문]


학생인권, 여전히 열악합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여러분들의 작은 노력을 보태주세요



작년 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 벌써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보수언론들은 하나 같이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마치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학생들은 막장으로 치닫는 듯한 선정적인 보도를 써대며 학생인권조례 까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각 학교들은 아직까지도 학생인권조례에 맞게 학교 규칙을 수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후 6개월 안에 ‘규정개정심의위원회’를 열어 반인권적인 학교규정들을 수정해야 하지만, 각 학교들은 이마저도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겐 알리지도 않은 채 위원회를 열어 새 학칙을 통과시키거나, 당연히 허용되어야 할 학생참관을 거부하는 등, 학생인권조례의 실질적인 적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마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립학교의 교사들은 심지어 ‘사립학교는 학생인권조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거나, ‘교장 멋대로 학생인권조례를 거부 할 수 있다.’하는 등의 허위사실을 의도적으로 유포하여 학생들의 혼란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를 들지 않고는 도저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무개념한 교사들은 될 대로 되라며 여전히 학생들을 패고 있습니다.

교육감의 체벌금지 조치가 내려진 서울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말로만 체벌 금지이지, 저처럼 서울의 사립고를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서 겪는 학교는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체벌금지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교사들은 여전히 매를 들었습니다. 또한 간접체벌도 체벌임을 모르는 무지한 교사들에 의해 엎드려뻗쳐나, 오리걸음 등의 간접체벌은 체벌을 대체한다는 명목 하에 오히려 더 성행했습니다. 교장의 지시 아래 학교는, 학생들과 그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체벌을 대체한다는 구실로 기존의 상·벌점 제도를 대폭 강화하였고, 교사들은 사소한 일에도 벌점을 남발하였습니다. 전혀 사라지지 않은 체벌과 함께 무분별하게 벌점이 남발되는 상·벌점 제도는 학생들을 이중으로 옥죄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서울과 경기도의 학생들이 느끼는 학교에서의 인권 침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조치에 반발하여 보란 듯이 학생들을 갈구는 학교와 교사들에 의해 오히려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를 각 학교들에 정착시키고, 다른 지역에도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를 하루빨리 제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다행히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이후, 그 뒤를 이어 많은 지역에서 뜻 있는 개인, 단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중 서울에서는 인권, 교육, 청소년 등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이 모여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를 발족시켰습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에서는 서울시민들과 교육 주체들의 힘을 모아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주민발의안의 형식으로 서울시민들의 서명을 얻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채 자리도 잡지 못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와 갑작스레 시행된 서울의 체벌금지 조치에 관한 보수 언론들의 의도적인 왜곡, 과장 보도. 진보 교육감들의 정책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등.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울의 주민발의 운동은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민발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4월 말까지 만19세이상 서울 시민의 1%, 약 8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지만, 2월 말 현재 모인 서명은 2만도 채 되지 않습니다.


만19세 미만 청소년, 학생들의 서명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당사자인 초중고등학생들은 정작 서명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든 이 운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저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직 추위가 채 물러가지 않은 날씨 속에서 매일 5~6시간씩 강행군을 하며, 매 주 1천명의 서명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원확인을 위해 필요한 주민등록번호와 거주지 기재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관심과 오해 등으로 이러한 거리서명운동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중, 고등학교들의 개학 이후에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인 대부분의 활동가들의 참여가 제한되는 등 그 앞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지금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고자 하는 각 지역의 사람들이 서울의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주민발의 운동이 성공적으로 완수된다면 전국적인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에 기폭제가 될 수도 있지만, 이대로 무너지게 된다면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전국적인 제정운동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서울에서의 주민발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각 지역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의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뜻 있는 많은 개인, 단체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2개월, 짧은 기간이지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니, 여러분들의 작은 노력이 조금씩 보태진다면 2개월은 한참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힘으로 서울의 학교를 바꿔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학교. 더 이상의 차별, 폭력이 없는 학교.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숨 쉬며 꿈을 꽃 피울 수 있는 학교. 학생과 교사 모두 진정으로 행복한 학교. 여러분들의 작은 노력 하나로 가능합니다.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sturightnow.net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홈페이지 -> 이 곳에서 서명해주세요!!

http://bit.ly/g6jMsH  우편으로 서명용지 간편하게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미소지음 (서울, 고등학교 3학년 학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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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빠

    2011.05.30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2. 학생도우미

    그래요... 이렇게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계시니 그 목소리 꼭 더 많은 곳에 들릴 거예요^^

    2011.05.31 00:19 [ ADDR : EDIT/ DEL : REPLY ]
  3. 신나라

    학생인권. 반드시 존중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방안이 시급합니다.

    2011.05.31 00:41 [ ADDR : EDIT/ DEL : REPLY ]
  4. 아아수

    그렇습니다 인권존중되어야 합니다

    2011.05.31 01:04 [ ADDR : EDIT/ DEL : REPLY ]
  5. 학생인권

    꼭 보장해주십시오~

    2011.05.31 01:37 [ ADDR : EDIT/ DEL : REPLY ]
  6. cat

    맞습니다~ 맞지요~!!

    2011.05.31 01:59 [ ADDR : EDIT/ DEL : REPLY ]
  7. 나무

    잘 읽고 갑니다~

    2011.05.31 08:32 [ ADDR : EDIT/ DEL : REPLY ]
  8. ㅇㅇ

    우리의 학생..지킵시다.

    2011.05.31 08:33 [ ADDR : EDIT/ DEL : REPLY ]
  9. 전국 학생들 화이팅

    2011.05.31 09:07 [ ADDR : EDIT/ DEL : REPLY ]
  10. bada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보장해주세요~

    2011.05.31 09:20 [ ADDR : EDIT/ DEL : REPLY ]
  11. 청소년

    ^^

    2011.05.31 10:25 [ ADDR : EDIT/ DEL : REPLY ]
  12. 보름달

    청소년들이 바르고 긍정적으로 자라기를

    2011.05.31 11:02 [ ADDR : EDIT/ DEL : REPLY ]
  13. 나학생

    화이팅!!!

    2011.05.31 19:36 [ ADDR : EDIT/ DEL : REPLY ]
  14. 많이좋아졌다곤 하지만아직 잔재가 남아있는 현실...
    하루빨리 학생들도 인권을 존중받는 날이 왔음하네여

    2011.05.31 19:44 [ ADDR : EDIT/ DEL : REPLY ]
  15. 김혜리

    ^^♥

    2011.05.31 22:55 [ ADDR : EDIT/ DEL : REPLY ]
  16. 힘내요!!! 힘힘힘!!!

    2011.06.02 00:36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3. 5. 00:06



실종신고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찾습니다>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1년에 몇 번씩 학생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시험, 그리고 오직 시험을 위한 교육.
이명박 정부 이후 시험지옥은 나아지기는커녕 대놓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등수에 목매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평가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획일적 경쟁을 부추기는 줄세우기 없이 모든 학교는 평등해야 합니다.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받고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학력·학벌로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한국의 교육예산은 너무 짭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쾌적한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돈 문제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예산을 늘려서 쾌적한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의 운영은 그 어떤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정도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참여권과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은 존엄한 인간이기에, 하교는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체벌, 두발복장규제, 강제야자 등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억압들은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먼저 인간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합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다른 곳에도 많이 퍼날라주세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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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등학교는 중간고사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더욱 힘든건 매달 단원평가를 해서 평가한다고 하니 더 고달프다는거죠

    2011.03.05 0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중간기말부터"는 하나의 대유적 표현이고 ^^;
      여하튼 점수 매기고 등수 매기는 시험을 없애자는 거죠

      2011.03.11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2.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모르겠습니다.

    2011.03.05 0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

    의무교육으로 강제되지 않을 뿐, 유치원도 교과부가 관리 감독하는 학교입니다. 생애 초기교육 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초중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유치원 또한 무상교육이 실시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2011.03.11 10:1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2. 17. 10:10



청소년의 놀 권리,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조건,

그리고 게임 셧다운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놀이로서의 게임

  이제 나도 청소년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민망한 이십대중반, 스물네살이 되긴 했지만, 그나마 청소년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이야기해보자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게임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호들갑을 떠는 어른들이 다소 생뚱맞게 느껴진다. 게임은 청소년들의 삶에서 하나의 문화이자 일상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시절엔 쉬는 시간마다 학교 컴퓨터에 붙어 앉아서 ‘피카츄 배구’를 하며 반 최강자를 가렸었고, 방과 후 친구들과 단골로 놀러가는 곳은 PC방이었다. 순발력이 떨어져서 ‘레인보우식스’나 ‘서든어택’은 못해봤지만 ‘스타크래프트’라면 이런 나도 해봤고, 이른바 MMORPG라면 ‘어둠의 나라’나 ‘마비노기’도 꽤 오랫동안 플레이 했었다. 지금도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긴 회의를 하다가 중간에 20분쯤 쉬는 시간을 가지면 사무실 컴퓨터에서 같이 ‘카트라이더’나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며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그럼 게임의 순기능은 뭔가요?” 나는 솔직히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 컴퓨터 게임이 주된 놀이 문화가 아니었던 시절, 아무도 청소년들이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을 하고 노는 것에 대해서 순간적인 판단력과 관찰력과 추리력, 그리고 체력을 길러주는 운동이라는 식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었다. 아무도 ‘말뚝박기’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비교하는 표를 만들거나 토론하지 않았었다. 꼭 이런 놀이들을 불러들이지 않더라도, 아무도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에게 영화 감상의 순기능을 굳이 따져묻지 않는다. 물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게임과 숨바꼭질과 영화감상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게임의 경우에만 그 “순기능”을 정당화할 것을 요구받는 것은 다소 부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게임을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섭고 해로운 어떤 것으로 미리 전제해놓는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는 취급을 받는 것 같지만, 엄연히 한국이 1991년에 가입한 국제인권규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제31조
1.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2. 당사국은 문화적∙예술적 활동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증진하며, 문화, 예술, 오락 및 여가활동을 위해 적절하고 균등한 기회 제공을 촉진해야 한다.

  즉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청소년들에게 ‘놀 권리’를 하나의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청소년들에 관련된 인권 기준의 경우 이 권리는 문화적 권리나 여가권 등으로 표현된다.) 게임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위한 하나의 놀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놀 권리가 사람이 사랍답게 살기 위한 인권의 일종이라는 것,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에 더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라는 것 역시 인정하자.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며 노는 것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더 바람직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들이 처한 조건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게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온라인게임이 쉽게 대중화되고 ‘과몰입’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들이 관련되어 있다.

  우선 그 첫 번째는 시간적 조건이다. 세계적으로 긴 학습시간과 높은 사교육 비율은 청소년들이 여가시간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중간중간에 20분 30분 정도의 ‘짬’을 제외하면 밤늦게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다수의 청소년들이 집에 와서 바로 컴퓨터를 켜고 짧은 시간만에 할 수 있는 게임을 최선의 놀이로 택하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두 번째는 공간적 조건이다. 여기에서 공간적이라는 것은 청소년들이 놀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OECD 국가 중에 아동복지비 하위권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지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즐기며 놀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청소년수련관도 전체 청소년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학원 간판은 거리를 메우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놀고 즐길 문화를 제공하는 공공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있더라도 시간적 이유나 입시 문제 등등 여러 이유로 청소년들이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세 번째는 경제적 조건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경제력을 가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경제적으로 거의 전적으로 ‘친권자’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노동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제약이 많으며 그 임금음 대단히 낮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놀이를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이기 어렵고 저렴한 비용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온라인이나 게임의 세계로 수요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는 한국에서 콘솔게임이나 패키지게임은 많이 죽고, 일단 처음 시작할 때는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며 돈을 쓰더라도 몇 백원 몇 천원 수준으로 조금씩만 쓰면 되는 온라인게임이 득세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심리적 조건이다. 입시나 장래 진로에 대한 불안 등 한국 사회에서 현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다. 또한 청소년들은 사회적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의미있는 한 주체로서의 삶이 막혀 있다. 실제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많은 것을 억압당할수록, 그리고 사회 활동에 의미있게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할수록, 게임과 같은 가상의 컨텐츠에 몰입하기 쉽다. 얼마 전에도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등과 공격적 행동이나 일탈 행동 사이의 연관관계를 밝힌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스트레스와 게임 몰입 사이의 연관관계 역시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유엔사회권위원회 역시 한국의 청소년들이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과 주의력결핍장애가 증가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권고한 바 있다. 단순히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 전반, 청소년들의 삶의 질 전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 논란이 되는 와중에, 항상 논의의 중심에서 빠져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이다. 사실 앞서 서술한 청소년들이 처해있는 조건의 문제 또한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얼마나 시간적․공간적․경제적․사회적으로 자기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일부 게임 과몰입 등의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청소년들의 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 놀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규제하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적절한 방식일까? 또한 게임과몰입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 맞춘 대응이 아니라 나이(16세)를 기준으로 모든 청소년들에 대한 셧다운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 역시 모든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을 경시한 처사인 건 아닐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논의에서 청소년들의 삶 전반에 대한 상황을 좀 더 이야기해볼 필요를 느끼는 이유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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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격하게 공감해요 +_+

    2011.02.18 14:42 [ ADDR : EDIT/ DEL : REPLY ]
  2. 지나다

    '게임일반'이 아닌 '현재 한국의 온라인게임'에 대한 평가도 필요할 것 같고..
    놀이로서 게임이 등산이나 공놀이 등과는 달리 기업이 만들어 논 '게임세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해하지 않는 게임을 만들도록 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물어 규제의 필요성을 따지는 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온라인게임이 또 하나의 사회라면 그 사회를 더 나은 세계로 만드는 것 역시 활동의 영역이 아닐까요?

    2011.02.19 02:59 [ ADDR : EDIT/ DEL : REPLY ]
  3. 지나다// 등산이나 공놀이는 건전한 놀이, '현재 한국의 온라인게임'은 해로운 놀이... 라는 건가요? 어떤 문화의 이롭다/해롭다를 윗선에서 논해 '주는' 것 자체가 저에겐 권위주의와 억압의 출발점처럼 보이는데요. 데스메탈처럼 파괴적이고 정서에 해로운 음악을 차단하고 클래식처럼 정서를 함양하는 음악만 들으라는 그런 통제와 논리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잖아요.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군요.

    한발 양보해서 실제로 '현재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보여주는 면모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할지라도, 부정적인 놀이가 부정적인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현실이 부정적인 놀이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한참 훌리건의 악영향이 컸을 때, 아마 셧다운제 같은 논의대로라면 축구의 폭력성과 중독성이 훌리건을 만드니 티켓 구매 제한을 뒀을 겁니다. 하지만 축구가 훌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축구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미 구성된 공격성이 훌리건을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왜 게임은 똑같이 보지 않을까요?

    디스이즈게임(http://www.thisisgame.com)에서 웹툰을 연재했던 원사운드님이 남기신 명언이 있습니다. "시바... 오락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http://www.thisisgame.com/board/view.php?id=211702&board=&category=106&subcategory=2&page=1&best=&searchmode=&search=&orderby=&token=) 놀이에 '순기능'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낡아빠진 꼰대들의 발상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글쓴 분께 격한 찬성 날립니다.

    2011.02.19 10:36 [ ADDR : EDIT/ DEL : REPLY ]
  4. 지나다

    동조자// 남의 블로그에서 논쟁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조금 덧붙여봅니다.
    항상 '온라인게임사의 사회적책임'이나 '온라인게임의 규제'를 이야기할때면 듣게되는... '왜 게임을 유해하다/비건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이야기.. 그래서 미리 '아니요. 게임은 유해하지 않습니다. 단지 '유해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매번 하게되는군요.
    과자하나에도 아이들의 장난감에도 햄버거에도 많은 규제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유해하기때문에 이런저런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하지않도록 '잘만들어라고' 규제를 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게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규제의 방법으로 '셧다운제'를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현님의 글의 취지-청소년들이 게임을 놀이로 즐기게 된 여러 조건들-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시바... 오락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음... 이건 참.. 뭘로 만들어진지도 모를 햄버거를 먹으면서 "맛있으면 됐찌 뭘따져" 처럼 들리는 군요. 햄버거가게 사장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소비자이겠군요.

    2011.02.19 14:04 [ ADDR : EDIT/ DEL : REPLY ]
  5. 지나다 & 동조자 /
    온라인게임을 비롯해서, 게임을 규제하거나 게임 기업에게 자신들이 만들어낸 게임에 관해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규제의 방식이 게임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더군다나 게임 하는 사람 일반이 아닌 게임 하는 사람 중 나이를 기준으로 일부 집단만 선정해서 규제한다는 건요.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들이 게임을 하는 걸 규제하는 걸로밖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거 같습니다. 결국 셧다운제에 찬성하는 청소년들조차 하는 이야기는 "우리는 규제를 받아야 해!"가 되어버리죠. 참 우울한 제도입니다.


    + "오락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라는 말의 맥락은 굳이 햄버거에 비유한다면 이런 이야기일 겁니다. "몸에 좋은 현미쌀밥을 먹으렴. 니가 햄버거를 먹는 특별한 이유나 햄버거 먹는 것의 순기능을 증명하렴." "햄버거 먹는 데 이유가 어딨어! 맛있어서 먹는 거지!"

    / 게임이나 놀이 문화의 내용이나 바람직함에 대해 논의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요.

    2011.02.22 17: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 26. 09:58

“간접체벌로 훈육? 우리가 개야?”...교과부 성토

청소년, “간접체벌도 체벌, 학생인권 보장해야”

김도연 기자 2011.01.25 18:39


청소년들이 간접체벌 허용, 학교장에 학칙 제정 권한 부여, 문제 학생 지도를 위한 출석정지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부의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선진화방안)에 대해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25일, 청소년들이 흥사단 강당에 모여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문화 선진화방안에 대한 분노와 우려들을 쏟아냈다. ‘학생인권․학교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교과부 시행령 개악저지 대책모임’ 주최로 마련된 이 자리에는 일반계 고등학생, 실업계 고등학생, 대안학교 학생, 탈학교 청소년, 중학생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했으며 멀게는 천안, 무주에서 걸음한 청소년들도 있었다.


“간접체벌로 우리를 훈육한다고? 우리가 개야? 말이야?!”

청소년들이 교과부의 ‘선진화방안’에서 가장 분개한 부분은 단연 ‘간접체벌 허용’ 안이었다. 이들은 교과부가 ‘교육적 훈육’이라 주장하는 기합도 충분히 모욕적일 수 있는데도 이를 ‘간접체벌’이라 규정해 허용하려 한다며, 애초에 ‘간접체벌’과 ‘직접체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꼼수’라고 지적했다. 체벌을 통해 청소년을 훈육하려는 성인들의 시각과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빼놓지 않았다.

둠코
예전부터 학생이 맞는 매는 사랑의 매라고 해서 우리는 계속 맞아왔다. 이제야 체벌금지가 시행되면서 학생을 때리는 건 반인권적, 비인간적이라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을 훈육하기 위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켜서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는 인식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때리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라 안 되지만 하기 싫어하는 것을 시켜서 교정, 조정할 수 있다는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 같다.

예슬 나는 일반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내 행동을 남이 제약한다는 걸 상상을 못했다. 성인이 회사 입사시험 보러 가서 커닝을 한다한들 감독관이 때리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지는 않는다. 그거랑 똑같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이 왜 우리한테는 통용되지 않는 걸까. 왜 상대가 청소년이라고 해서 내가 널 통제할 권리, 가르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창준(부천 소사고) 초등 6년, 중고등 6년, 총 12년의 교육과정은 절대 짧은 게 아니다. 그 긴 교육과정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선생은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서 행동을 교정해야 한다. 그럴 때 학생인권과 교권이 동시에 상승한다. 체벌 같은 것으로 단시간에 교육효과를 내려는 건 오류고 12년의 교육과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영 체벌을 스트레스 한풀이로 사용하는 교사도 있고, 입시경쟁 심화시키기 위해 체벌하는 교사도 많다. 교사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입시와 관련된 게 많다.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그러려면 성적을 높여야 하고, 1등급 받아야 하고. 이런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체벌한다. 수업시간에, 수업에 집중 안했다는 이유로 때리거나 영어단어 몇 개 외워오게 하고 외우지 못했다고 틀린 개수대로 때리는 거 보면 경마장의 말이 생각난다. 기수가 말을 빨리,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게 하려고 매질을 하잖나. 우리가 말 같다.
영이(부천 사는 고등학생) 간접체벌이라고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 체벌한다는 거 자체가 강아지 기르듯 하는 거 아닌가. ‘빵’(총 쏘는 시늉) 하면 웅크리라고 가르칠 때도, 안하면 겁주고 하면 밥 주고 이런 식인데, 왠지 우리도 이런 거 같다. 머리를 안 단정하게 하면 겁주고. 잘하면 면해주고. 우리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미성년자는 주체적 생각 갖지 못한다고 여기니까 우리를 짐승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짜증난다.
그리고 학교나 가정에서 원하는 게 성실성인데 성실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공부 잘하고 인성 좋은 아이들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건지. 선생이나 가정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은 아닐까.
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절제 못해서 더 때릴 수도 있고 체벌이 악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학생은 물론이고 동료교사도 말릴 수 없다. 그나마 학생인권조례가 생겨서 권력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교과부가 ‘선진화’라는 명분 아래 다시 학생인권조례를 뒤로 ‘빠꾸’시키는 일을 한 건 너무 아니다.

하은(천안서 온 중학생) 간접체벌이 체벌이랑 구분하는 게 전혀 의미가 없다. 간접체벌도 모욕적인 게 많다. 여학생의 경우 치마입고 오리걸음 하거나 엎드려뻗쳐 하면 되게 민망하다. 초등학교 때는 두 친구가 싸우면 둘이 박치기 시키고, 자기 주먹 들어서 자기 머리 때리라고 시키기도 했다. 충분히 모욕적이다. 선생님이 손 안 댄다고 해서 간접체벌이라고 하는 것 되게 웃기다.
어스(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간접체벌’은 교과부가 발명한 말이다. 서울시에서 체벌금지 조치 들어가니까 조례에서 금지한 건 ‘직접체벌’이라고 한정하고 기합은 간접체벌이라면서 간접체벌은 가능하다고 꼼수를 쓰는 것이다. 체벌이면 체벌이지 간접체벌이 어딨나.
예반(무주 중학생) 선진화방안 발표된 거 보고 짜증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기뻤다. 사회자 말처럼 이런 간접체벌이라는 꼼수 쓰게 된 것 자체가 우리사회가 발전한 거 같다. 사랑의 매 운운하던 시절보다는 발전한 것 같다.


“교장 재량권 확대? 있는 것도 뺏어와야 할 판!”


교과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단위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확대한 데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청소년들은 “지금보다 더?”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충분, 아니 과하다는 것이다. 최훈민 삼각산중 학생은 “이미 교장은 학교에서 신”이라며 “재량권을 줄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재량권도 뺏어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영 학생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교장은 인권에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수십 년 간 체벌해 온 사람”이라며 “교장에게 학생인권의 범위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은 범법자에게 법을 만드는 일을 시키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교 과부는 지난 17일, 학교문화선진화방안과 함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령을 발표했다. 이 개정령에는 ‘학생의 권리보장 지원’이라는 이름의 제31조의5 조항이 신설됐는데, 제31조의5의2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기본법 제12조 제3항에 의하여 교원의 교육.연구활동 및 학생의 학습활동을 보호하고, 학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1항에 따른 학생의 권리 행사의 범위를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는, ‘학생의 권리 보장 지원’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조항에서 학교장으로 하여금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한 교육기본법 제12조 제1항은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는 내용의,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 조항이다.

다영 교장이 학생인권을 제한하는 재량을 갖게 하는 건 정말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일반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교장, 교감, 부장 선생님들은 교직 현장에서 오랜 경험이 있으니 이들에게 (학생인권 행사의 범위를 정하도록 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교장들은 학생인권에 되게 관심 없고, 승진하다 보니까 교장된 거지 학생인권 잘 알아서 교장된 것 아니야. 교직생활하면서 몇 십 년 동안 애들 팬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한테 재량권 준다는 게 말이 되냐. 범법자한테 법 만드는 일 시키는 거랑 똑같다.
훈민(서울 삼각산중) 교장 뽑는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 학교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냐. 그런 사회에서 아무 문제 없이 지내온 선생들이 교장 되는 거다. 의식 있는 선생님들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마찰을 겪고, 그 과정에서 징계당하거나 그만둔다. 그런 사람들이 교장이 돼야한다.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따르고, 잘 때리고, 교장한테 대든다고 협박하는 선생님들이 교장이 된다. 그래서 학교가 악순환 되는 거다. 우리 교장이 나한테 ‘사회 부조리 보면 인생이 고달파진다’고 그러더라.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고.(훈민 학생은 얼마 전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교칙개정위원회의 실태와 학생체벌 실태 등을 담은 학생신문을 발간하려다 교장선생님의 제지 한마디로 인쇄 직전에 발간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이 일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교장 뽑는 방법부터 틀렸다. 의식수준을 갖춘 사람 뽑는 게 아니라 교과부 말에 순종하는 사람 뽑는 말도 안되는 방식이다.
창준(소사고) 학교장에게 재량을 주는 것은 학생-교사-교장 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근데 대부분의 학교는 민주적이지 않다. 학생회는 언제나 학생부 선생들이 감시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교과부가 학교장에게 재량권을 주는 건, 인권조례안에 바탕 두지 말고 학교장 니 맘대로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훈민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아무리 수평적이어도 학교장에게 재량을 절대 주면 안 된다. 재량 주면 수직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엄청 수직적이다. 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있지 않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재량 줄 상황이 아니다. ‘있는 재량’도 뺏어와야 한다.
지난주 체벌 허용 논란에 대해 다룬 ‘MBC 100분 토론’ 보면서 엄청 답답했다. 교총 회장이 나와서 ‘단위학교에 재량주면 학생, 학부모가 모여서 잘 얘기할 거’라는데, 꿈의 학교, 우리가 감히 생각해보지도 못한 학교에 대해 얘기하더라. 교총 회장이, 교과부가 현실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인권은 ‘자유’ 그 자체니까!
학생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선진화방안의 독소조항들을 우려하는 것에서 출발했던 이야기는 결국, 다시 학생인권으로 돌아왔다.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자유’ 그 자체였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퇴로가 없다. 청소년들은 이날 어른들을 향해, 설령 ‘주어진’ 인권일지라도 빼앗아갈 궁리 대신 지금의 혼란을 함께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내달라 주문했다.
홍보(소사고) 인권은 자유이자 책임이다. 자유의 힘은 엄청나다.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생각과 능동적 사고력을 준다. 학교는 사회를 가르치는 곳이다. 인권이 없고 자유가 없어서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이 사회를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겠나. 때려줄 선생님도 없는데. 이 인권이 주체성과 능동성을 준다. 사회에 나가서도 이 사회를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인권이 더 나은 사회, 밝은 사회를 만들 것이다.
석민(의정부고) 학교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면 절차부터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군(영상고) EBS 다큐프라임 ‘학교란 무엇인가’ 마지막에 그런 말이 나오더라. ‘대개의 경우 학생이 학교에 맞춘다. 그러지 말고 학교를 학생에게 맞추라. 그러면 학생이 달라진다.’ 우리도 이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처럼 학생들을 변화시키려는 법이 아니라 선생과 학교가 학생에 맞추는 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창준(소사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나서 교권침해사례가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지금은 과도기이다. 우리는 인권다운 인권을 한번도 보장받아본 적이 없는데, 인권이 무엇이고 인권다운 인권을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조례를 통해 얻은 거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예방주사를 맞고 나서 열이 나는 상태 같은 거다. 하지만 열을 가라앉히기 위해 약을 또 먹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억지로 약을 투약하기보다 선생, 학생, 학부모 세 주체가 같이 의논하면서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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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 3. 12:41


오리가 아닙니다!
사육이 아닌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다사다난 했던 한해였습니다.

언제 갈까 싶었는데 어김없이 한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옵니다.

한해를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2010년과 함께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싶은 것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입니까?

 

자연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4대강? 불법으로 민간사찰을 하고도 당당한 그들의 뻔뻔함?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남북한 상황? 가볍디 가벼운 나의 지갑 ㅠ.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011년에는 학교에서 차별과 폭력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학생과 교사의 인권이 서로 존중되는 행복한 교육이 새롭게 시작되길 바래봅니다.

 

연말연시, 추위에 떨고 있을 누군가를 한번쯤은 돌아볼 줄 아는 그대!

그대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생명체,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기억해주세요~

학생인권조례는 제도도 법률도 아닙니다.

여러 사람의 기억과 좌절과 희망으로 꼬물대는 생명체입니다.

 

2010년을 보내며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뜻깊은 선물을 주고 싶다면?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2010년 한해 등골 빠지게 고생한 당신, 이 지랄 맞은 세상이 계속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http://www.sturightnow.net/sign)

 

내년에도 시인 유하의 말처럼, 학교에서 배우는 게 매 맞고 침묵하는 법,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군림하는 법,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수많은 규칙 앞에 상상력을 굴복시키는 법이 아니기를 원하신다면?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아무 부작용이나 혼란 없이 변화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리 비싼 부작용도 ‘폭력의 교육’을 지속시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분은?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민심을 배반하고 귀 닫고 불통인 정권이 싫으신 분도?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잊고 지낸 친구들, 올 한해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 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고 결심하신 분이라면?

☞ 더불어 ‘서울 학생인권조례’ 서명도 모아주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2011년, 그대의 새해가 희망차고 활기차길 기원하면서

시민의 힘으로 학교에서 폭력과 차별을 사라지게 할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기쁜 그 날도 함께 기원해 주세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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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12. 28. 22:44


2010년 12월 25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부터 『소수의견』(손아람)을 읽었다. 대개의 독서가 그렇듯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정한 날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돌이켜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내 눈 앞 책 속에서는 사람이 죽고 재개발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금 들자, 내 눈 앞, TV 화면 속에서는 교황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억압자들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었다.
 

12월 28일, 『소수의견』을 다 읽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관악구 신림동에는, 여전히 철거민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새겨진 벽들이 헐벗고 있었다.

용산참사 국민법정에 갔을 때를 생각했다. 두발규제를 헌법소원을 내자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겹쳐 울렸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재판을 생각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3분짜리 플래시몹을 했다는 이유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끌려가던 고등학생 동료를 지키려고 하다가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되고 기소되어서 받고 있는 재판이다.지난번 재판이 끝나고 생각했었다. "이 재판은 법의 이치와 논리에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공정하거나 정의롭지는 않다." 재판이 끝나고나면, 글을 하나 써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법은 사람 위에 있었다. 그건 법이 사람 위에만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pp.422-42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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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2. 25. 23:09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홍보팀에서 언론기고를 하자고 제안해서 쓰게 된 글입니다.  아직  초안이니까 여러 가지 고쳐야죠;;

근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만약 지면에 기고를 한다면 앞부분만 해야 될 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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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 학생 0.1%와 교사 70%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산수를 잘 못하던 분들에게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자,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수는 몇 명쯤 될까? 찾아보니 대략 사십만명 정도 된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대략 오백만명 정도 된다. 더 자세한 수치를 제시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매년 변하고 있는 수치니까 이 정도를 잡고 얘기를 해보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어떤 이유로든 간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교사가 학생을 모욕했거나 학생에게 폭력을 쓴 경우부터 그냥 순전히 학생 본인에게 정서적 문제가 있던 경우에까지,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극소수일 것은 확실하다. 만약에 그 비율을 0.1%, 그러니까 1/1000이라고 해보면 어떨까? 5,000,000×0.1% = 5,000. 즉 5,0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만약 0.01%라고 하면 어떨까? 약 5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는 가정이 된다. 0.1%면 5,000명, 0.01%면 5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자 만약에, 최근 언론에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보도하고 있는 몇몇 사례들은 그 0.01% 혹은 0.1%의 일부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0.1%라거나 0.01%라는 수치는 결코 큰 수치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99.9% 그렇다.”라고 말할 때, 이 99.9%는 심리적으로는 100%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어떤 집단의 0.1%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문제도 문제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0.1%를 가지고서 그 집단 전체를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체제의 위기를 예언하는 것은 오류이고 과장이다. 지금 몇몇 언론들이 눈에 불을 켜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례를 찾아서 보도하며 교육의 위기를 부르짖고 “요즘 학생들”의 무서움을 설파하는 모습에서 나는 딱 그런 모습을 본다.

  앞서 설명했듯이 전체 초중고 학생들의 0.01%만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수는 약 500명이 된다. 물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가 1년에 500건씩이나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확률을 가정해본 것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몇몇 언론들이 하는 것처럼 몇 년 전 몇 달 전 사건들까지, 지역을 막론하고 찾아다닌다면, 거의 1년 내내 그런 보도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다.

  자, 그럼 이제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는 어떨까? 2010년 10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와 참교육연구소에서 전국 교사 14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약 70%가 체벌을 한다고 응답했다. “거의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교사들을 제외하더라도 약 20%의 교사들은 체벌을 ‘자주’ 한다. 전체 교사 집단에 이 비율을 적용해보자. 400,000×70% = 280,000. 400,000×20% = 80,000. 이십팔만명의 교사가 체벌을 하고, 팔만명의 교사가 ‘자주’ 체벌을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칙이나 한계 없이 ‘자유롭게’ 체벌한다고 답한 교사도 3.8%나 되니까, 이 역시 1만명은 넘는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교사 1명은 학생 수십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학생 1명이 교사 여러 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란 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폭력의 영향력은 비교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체벌금지 이후’에도 여전히 체벌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추적하기보다는 굳이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들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언론은 얼마나 공정한 것일까.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것은 센세이션 하지 못하지만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전형적인 황색 언론의 논리이다.

  나는 학생인권운동을 하면서 지난 몇 년 간 교사가 학생의 뺨이나 머리를 때린 사건, 체벌 중에 학생이 골절상을 입은 사건 등 수십건의 ‘선정적인’ 체벌 사례들을 접해왔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사정이나 언론의 무관심 등으로 전혀 공론화하지 못한 사례들이 반을 넘는다. 일상적으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맞는 것은 잘 문제가 되지도 않고 교사 집단 전체를 낙인찍을 이유도 되지 않고 교사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도 되지 않지만, 어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맞는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가 되고 학생 집단 전체를 욕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가 되는 세상. 그 모습이 이미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쓰고 있으니까 학생들도 교사들에게 폭력을 쓰는, 폭력과 폭력이 맞부딪치는 교실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교사에 대한 폭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든 교사이든 학부모이든 누구든,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그것은 예컨대 범죄자에 대한 경찰력 행사처럼 엄격한 요건 속에 예외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일방적으로 선정적인 사례들만을 부각시키며 어떤 사람들을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지금처럼 선정적 사건들을 캐내서 계속 뿌려대기만 하는 그런 언론 보도들은, 불공정하며 무책임하다. 그 언론들은 정작 그런 식의 부풀리기 보도가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혹시 그 몇몇 언론들의 보도 추세야말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꺾어놓기 위한 ‘계산’에 따른 것은 아닌가?


‘학교 붕괴’를 직시하라

  나도 한국의 학교 교육이 붕괴해가고 있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요즘 애들이 선생님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더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 학교가 부여하는 과업과 수행하는 교육 활동에 냉소적이거나 불참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소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극소수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보다,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는 이 현실이 더욱 큰 문제이다. 학생들의 교사 폭행은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미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에 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교육이 노골적으로 계급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학교에 차별과 억압이 심할 때, 학교 교육과 사회 현실이 학생들에게 삶에 관한 희망을 주지 못할 때, 학교 교육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서 내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학교 수업이 학생들에게 동기를 주지 못하고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할 때 ― 이럴 때 학교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교육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이유를 잃고 학교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미 1980년대, 1990년대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학교 붕괴’ 담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고용 없는 성장과 입시경쟁, 취업경쟁의 모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는 ‘학교 붕괴’ 현상을 확산시키고 가속화시키고 있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득세하고 학교는 입시․취업기관 혹은 졸업장 발급 기관이 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열의를 갖고 따르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 또한,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부동산 투기나 해라.”라고 대놓고 말하고, 학생들은 성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좌절하고 체념하던,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학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 붕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뭔지, 여기에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입시경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평준화라거나 복지정책 및 경제정책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커다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교육이나 탈학교론, 공교육 재편론 등 여러 가지 논의들이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억압, 그리고 학교간 경쟁을 강화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 또한 ‘학교 붕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학생들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위한 복지를 보장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학교 생활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 ― 학생인권 보장이야말로 학교가 가기 싫고 믿을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재밌고 자발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바뀌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 아닐까? 누구든 진정으로 학교 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진지한 논의와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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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ildaro.com/sub_read.html?uid=5588&section=sc5&section2=%BD%CA%B4%EB
    좀 더 다듬은 내용이 일다 기고글로 실렸습니다.

    2011.01.03 14: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2. 8. 11:44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9614

“인권위, 인권상 줄 자격없다”...수상 거부 파문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1208022220&section=03

우리가 현병철 위원장이 주는 '인권상'을 거부한 까닭

[성명 전문] 김은총 학생 "인권위가 오히려 인권 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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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의 국가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


김은총 (영복여자고등학교 3학년)

2010 인권에세이 공모전 고등부 대상 수상자


상을 받는다는 건 참 기쁜 일이다. 내가 열심히 쓴 글이 좋게 평가 받아서 대상까지 받게 되었다면, 그건 참 과분할 정도의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상을 거부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앉아있는 현병철 위원장이 주는 상은 별로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몇 달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청소년인권’을 주제로 인권에세이 공모전을 하는 것을 보고 <‘언론’은 있지만, ‘여론’은 없는 학교>라는 제목으로 공모했다. ‘여론’이 없는 학교의 현실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신문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국가인권위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들이 사퇴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전문위원들도 사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위원들과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은,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던 와중에 얼마 전 이 인권에세이 공모전에서 내가 쓴 글이 대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받았고,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이 상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비 록 나는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수능 공부보다도 인권 공부에 더 열을 올렸고, 인권활동에도 참여해왔다. 어쩌면 현병철 인권위원장보다도 더. 발칙하고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현병철 위원장은 고등학생인 나도 느낄 만한 인권감수성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여러 위원들이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데도, 그 목소리에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인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권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박힌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꽉 막힌 학교, 꽉 막힌 이 사회와 별반 다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과연 나에게, 그리고 다른 나머지 수상자들에게 상을 줄 자격이나 있을까.


인 권에세이로 선정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많은 내용들이 ‘언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가 직접 선정한 작품들에서 이야기하는 인권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는’ 인권위의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아야 한다. 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현병철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온 것에 대해 책임지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내 가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인권’을 지금 현병철이라는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끝도 없이 밑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인권을 보장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애를 써야 할 국가인권위가 오히려 인권을 모욕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정말로 지금 상황에 심각성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성찰할 의지가 생긴다면, 감히 인권에세이 수상자인 청소년들에게 “참 잘했어요. 그러니 우리가 상 줄게요”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제대로 된 국가인권위원회로 인정할 수 없으며, 현병철 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앉아있는 인권위에서 주는 상은 받고 싶지 않다. 현병철 위원장은 나에게 상을 줄 자격조차 없다. 나는 2010인권에세이 대상 수상을 거부한다. 12월 10일 수상식 당일에 이런 뜻을 밝힐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친구와 같이 태국 여행을 가기로 한 날짜와 겹쳐서 수상식에 참가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수상을 거부한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내 목소리가 보태어져,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12월 13일 즈음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더 이상 현병철이라는 분이 아니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출처] 은총님의 수상거부 글입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ASUNARO]) |작성자 onlyasun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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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장 사칭하는 무자격 현병철 님은 이제 그만 물러나시라


인권에세이 수상거부한 김은총님의 인권에세이 국가인권위 블로그 글!

밑에 현병철 까고 은총님 응원하는 댓글 달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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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puda

    부끄럽고 비통하다.어린학생의 눈으로봐도 저정도이니 이나라의 앞길이 걱정된다

    2010.12.08 19:1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