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0. 4. 24. 16:06




『오버 더 호라이즌』. 2004년.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만일 나에게 이영도의 장편소설 중 사람 홀리기로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별다른 주저 없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꼽으라고 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와 『오버 더 호라이즌』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이영도가 쓴 판타지 소설 단편집이다. '오버 더 ~' 시리즈 3편이 수록된 앞부분과, '어느 실험실의 풍경'이라는 카테고리로 3편이 수록된 뒷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 「오버 더 네뷸러」, 「오버 더 미스트」 세 편으로 구성된 앞부분은 하나의 세계관과 같은 등장인물들,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연속성을 가진 작품들이다. 「골렘」, 「키메라」, 「행복의 근원」은 이영도의 데뷔작인 『드래곤 라자』에서 역사 속 인물로 등장하는 핸드레이크와 그 제자 솔로쳐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버 더 ~' 시리즈가 평범한 위트와 이야기가 적절히 섞인 단편이라면, '어느 실험실의 풍경'은 철학적인 고찰을 대마법사의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유머러스한 해프닝으로 적어낸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화장실에서, 또는 울적한 밤에 혼자 읽으며 낄낄거리기 좋다.)

( * 2001년 간행된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에는 「오버 더 오라이즌」 등 외에 『오버 더 호라이즌』에 없는 「아름다운 전통」, 「전사의 후예」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직 구하지 못했다. )


시공간, 여-남, 나에 대한 짤막하고 신선한 고찰들

  이 중에서 '어느 실험실의 풍경'에 속하는 세 편은 흥미로운 생각거리들을 담고 있다. 「골렘」은 시공간의 분절성을, 「키메라」는 여자와 남자를, 「행복의 근원」은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핸드레이크와 솔로쳐의 실험을 빌어 탐구한다.

 「골렘」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새로워보이는 통찰을 담고 있으나, 나의 경우는 이미 오래 전에 생각했던 문제이고(잘난 척 아님!) 또 '언어의 분절성' 같은 개념을 다룰 때 이미 곧잘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상황 설정 등에서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고 그렇게 유머러스하고 재미있지는 않기에 세 단편 중에 가장 덜 인상적이었다고 평하겠다.

 「키메라」는 작가가 페미니스트라는 평가가 나올 법도 한 이야기인데, 내가 보기엔 그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현재 세상 남정네들에 대한 위트 있는 자조에 가깝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행복의 근원」인데, 세 단편 중에서 가장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이야기여서 그렇기도 하고, 그 주제의식의 비범함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나는 네가 주는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네게 너를 선물할 수도 있겠지요."라는 존재의 관계성에 대한 의식은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고 말한 『드래곤 라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도 같다.




지평선과 성운과 안개 너머에 있는 것

  그러나 이 단편집 전체를 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표제작이 "오버 더 호라이즌"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버 더 ~" 시리즈들이다. '오버 더 ~' 시리즈는 각각 '악기 살해자', '마법사', '개양이 미확인 생명체'라는 다른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적인 주제의식/테마가 일관되게 존재한다. 그것은 일종의 휴머니즘이라고 불릴 만한 것인데, 굳이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여기 삶에 대한 사랑'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에는 '호라이즌'(영어로 horizon. 지평선, 수평선이라는 뜻)이라는 엘프가 나온다. 호라이즌은 지평선을 넘기 위해서 악기를 연주하고, 그 결과 악기를 '죽이는'(그 악기로 다시는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악기살해자'이다. 지평선을 넘는다는 것은 은유적으로 지금 이 세계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호라이즌(지평선)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라이즌의 삶의 목표는 '지평선(=호라이즌)을 넘는 것'뿐이며 이를 위해 어떤 것도 불사한다. 실로 구도자적이다. 티르는 바이올린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치고 호라이즌이 찾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런 호라이즌과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오버 더 호라이즌」이라는 제목은 지평선을 넘으려는 호라이즌를 가리키는 표현인 동시에, 바로 그 '호라이즌'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주인공인 티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건 연주될 필요 없습니다. 조용히 입 닫아야 됩니다." "왜지요?" "사람을 죽이니까."(pp.90-91.)
  "자넨 악기뿐만이 아니라 자네 자신도 죽이고 있어. 지평선을 넘을 순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보인다고 해서 전부 다 닿을 수 있는 건 아냐."(p.112.)

  호라이즌이 바라는 것, 지평선을 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삶이고 생명이고 호라이즌이 벗어나려고 하는 이 세계다. 티르와 호라이즌의 대립구도 속에서 티르는 이 세계의 가치와 삶을 긍정하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쳐서 도시를 떠나서 팔려고 했던 티르가 어느 시점에서 마음을 바꾸고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쳐서 팔 생각을 버린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스레일치퍼티'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분쟁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바뀌었을 수도 있고, 호라이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이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주제의식을 다소 모호하게 드러낸 데 비해, 「오버 더 네뷸러」와 「오버 더 미스트」는 그것을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오버 더 네뷸러」에서 티르는 수천년 수만년 동안 '마술'을 축적시키고 발전시켜 공간을 지배하고 저 성운까지 닿을 수 있을 가능성보다도, 바로 지금의 삶, 세상을 파괴하는 마법사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션을 죽인다. 「오버 더 미스트」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권력다툼에 휘말리며 '재앙의 징조'가 된 '개양이 개(천사)와 고양이(저승사자) 사이에 태어난 미확인 생명체'를 살려준다.


  "사카 둠바에서 까로 트랙스까지 7400년. 그리고 션 그웬에서 이름을 모를 누군가까지의 수만 년. 어떻게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찬성을 보내겠어. 그리고 내 짧은 팔이나마 그들의 어깨에 걸어 함께 걸어갈 거야."
  "그들?"
  "서로 손가락을 깨무는 것을 삼갈 줄 아는 자들의 곁에서."
p.207.

  '왜 즐거워하지? 또 변신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이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이지만,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남아줘. 내가 즐거워하는 것은 저승사자와 천사 때문이야.'
  '저 동물들의 무엇 때문에?'
  '살아나려고 하고 있거든.'
  ... (중략) ...
  "힘들게 깨달았습니다. 그 새끼들은 태어난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pp.326-327.


  지평선보다 더, 성운 너머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삶이다. 혼란스러운 안개 너머에서 분명한 것은 살려고 하는 것, 태어난 생명이다. 이 텍스트는 '지평선을 넘는 것', '성운 너머에 도달하는 것', '불길한 징조' 등등의 거대담론들을 배척하고, 지금 여기의 삶과 현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일견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삶과 현실에 대한 긍정과 사랑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는 불가능하다. 현실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먼저 봐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폴라리스 랩소디』(2000) 8권 마지막에 실린 송경아 씨의 해설을 보면, 송경아 씨는 작가[이영도]가 비인간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인간에게 냉소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평한다. 『오버 더 호라이즌』에 실린 '오버 더 ~' 시리즈들은 그런 송경아 씨의 지적을 수용한 것처럼(시간적으로 볼 땐 또 딱히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작가의 태도는 이후 『눈물을 마시는 새』 등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영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은 『오버 더 호라이즌』이다.



  비평을 마치며, 마지막 인용으로 「오버 더 네뷸러」에 나오는 오크 경전어를 적는다.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영웅, 현자, 성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멍청이, 얼간이, 바보."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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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2. 13. 14:06


  수호자들을 가리키는 '여신의 신랑'이라는 칭호는, 혼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나가의 사회를 놓고 볼 때 매우 기이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가의 여인은 한 명의 남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동물과 다름없는 재생산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나가의 사회에서, 이 '신랑'이라는 혼인 제도를 연상케 하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의미는 우리의 혼인 제도와 같다. 여신의 신랑이라는 칭호는 그들 수호자들이 다른 여인이 아닌 단 한 명의 여인인 발자국 없는 여신에게만 충실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렇다면 나가 사회에서 이들 수호자 집단은 동물적인 동료들에 비해 고등한 자들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의 혼인 제도가 나가들의 난혼보다 고등한 방식이라 믿는 것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다. 때론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곤 하는 논리적 탐구는 아쉽게도 우리의 혼인 제도가 나가의 난혼보다 별로 우월할 것이 없음을 증명해준다.
  사람들은 동물보다 훨씬 성장이 느리다. 따라서 사람의 여자들은 성장이 빠른 동물들의 암컷에 비해 육아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여자와 미숙한 자손 양자에게 위험한 투자임은 자명하다. 혼인 제도는 수컷에게 이 위험을 분담하게 하는 제도다. 즉 먹이를 구해 오고 적대적 환경에 맞서 투쟁하는 등의 역할을 남자가 담당함으로써 보다 안전한 재생산을 꾀하려는 제도가 우리의 혼인 제도다. 이것은 이를 테면 어미와 새끼라는 기본적인 가족 구조에 수컷이 편입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가들의 경우는 수컷이 담당할 역할을 사회적 체계가 대신하고 있다. 심장 적출법에 의해 나가 여자들은 자손을 충분히 보호할 만큼 강력해졌으며 그들의 땅 한계선 이남에서 나가에게 불리한 거의 모든 요소를 일소했다. 그 시점에서 나가 남자들은 자신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가족의 기본 구조인 암컷 어미와 새끼의 관계에 수컷이 끼어들 자리가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역할이 감소되면 권력도 감소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나가의 사회는 여성이 지배한다. 나는 '여신의 신랑'이라는 호칭에는 암컷 어미와 새끼의 관계에서 추방되자 더 크고 더 위대한 것에 편입되고자 몸부림치는 나가 남자들의 슬픈 소속 욕구가 반영되어 있지 않나 추측한다.
  그러니 이 때려죽이고 싶도록 사랑스러운 손자 녀석아. 네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그 '남성미'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남자들에게 '남성미에 대한 찬사와 존경'이라는 웃기는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남자들에게 수컷 역할을 맡겨야 할 만큼 원시적이라는 사실에 고마워하도록 해라!

- 독설가로 유명했던 우슬라 사르마크 부인이 혈기방장한 손자에게 들려준 애정 어린 충고 中


(이영도. 2003. 『눈물을 마시는 새 2』.  pp.152-154. 황금가지 출판사)





그냥 어느 모 카페인지 하는 데서, 여성 우월주의자였나 여성상위주의자였나로 찍힌 기념으로 발췌해두는 인용문.


(이영도가 나가 사회를 구상하면서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텍스트들을 참조한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리고 우슬라 사르마크라는 이름 자체도, 팬카페 등에 보면 어슐러 르귄에서 따온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건 여성 상위일지도 몰라 ㅋㅋㅋ

좀 더 세부적으로 이야기하면, 나가 사회는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기능을 심장 적출법과 키보렌 등 주변 환경 덕에 개개인이 그다지 부담하지 않는 반면에, 아동을 양육하는 기능은 '가문'에서 여성들이 맡고 있다. 즉 양육, 육아 기능까지도 사회가 상당 부분 부담하게 되면 나가 사회는 여성 상위가 아닌 구조로 변화해갈 수도 있다.

부모(친권자)의 아동에 대한 권력의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고민하기 위해서도, "역할이 감소되면 권력도 감소되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문장은 참조해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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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성우월주의자로 찍힌 기념이로군.

    2010.02.14 20: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0. 1. 20. 20:59




사회생활이 지나치게 세밀하게 조직되어서, 시인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는 이미 중대한 일이 모두 다 종식되는 때다. 개미나 벌이나, 혹은 흰개미들이라도 지구의 지배권을 물려받는 편이 낫다. 국민들이 그들의 '과격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나쁜 일이고, 또한 국민들이 그들의 '보수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고립된 단독의 자신이 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간극이나 구멍을 사회 기구 속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더 나쁜 일이다 - 설사 그 사람이 다만 기인이나 집시나 범죄자나 바보 얼간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
 그 시민들의 대부분은 군거하고, 인습에 사로잡혀 있고, 순종하고, 그 때문에 자기의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싫어하고, 만약에 노예 제도가 아직도 성행한다면 기꺼이 노예가 되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혹은 지적 일치를 시민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의미에서, 이 세계가 자유를 보유하는 한 거기에 따르는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

- 로버트 그레이브스(1895~1985, 영국의 시인, 소설가.)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에서 재발췌)






  "규범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다. 엄밀히 말해서 규칙은, 규범은, 윤리는 한계 짓는 능력밖에 없다. 반짝거리거나 흐르기, 끓기를 금지하는 도덕이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규칙과 규범과 윤리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밖으로 나아가는 대신 안으로 한계 짓는다. 죄를 저질러라! 증오해라! 죽여라! 규범을 무시하고 죄를 저지를 때, 타인이 안간힘을 다해 지키는 것을 거리낌 없이 빼앗아 마실 때, 생은 장절한 날개를 펼치고 미답의 하늘로 날아간다! 그 하늘에서 너희들은 반짝거리고 흐르고 끓을 수 있다!"

... (중략) ...


  "예, 저희들은 파렴치하게 죄를 저지를 겁니다. 혼란을 퍼뜨려 생전 보도 듣도 못한 것들이 나타나게 하고, 그중 아름다운 것들을 게걸스럽게 취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규범에 묶어 치워 둘 겁니다. 그리고 규범이 뭔지도 모르는 양 다시 혼란을 퍼뜨릴 겁니다. 한계인 규범은 길잡이가 아니라 그냥 불필요한 것들을 치워두는 곳이지요. 우리는 혼란을 퍼뜨릴 겁니다."
  이라세오날은 비늘을 부딪쳤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모두 죽을 거다."
  엘시는 슬픈 눈으로 이라세오날을 보다가 말했다.
  "그러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8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하여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가져올 혼란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오래 전에 메모해둔 저 김수영 씨의 글에서 재발췌한 문장이 생각났다. 그러다가 피마새도 생각났고...

혼란 그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무언가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솔직히 좀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란은 인간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것이 어떤 혼란인지, 얼마만큼의 혼란인지, 어디에서 비롯된 혼란인지, 언제까지의 혼란인지 등등에 대한 섬세한 논의 없이 '혼란'이라는 말 자체로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가며 공세를 펴는 것은 기실 별로 내용이 없는 말인 셈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공허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자유'를 단체 이름에 붙인 사람들이 혼란 그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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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꿈2009. 5. 28. 19:08


『드래곤 라자』를 복기(라고 하는 게 맞을까?)하고 있다.


직접적인 동기는 『그림자 자국』을 읽기 위해서다.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맞아 황금가지가 드래곤 라자 애장판을 내놓으면서 이영도한테 애장판에 실을 후속작, 속편 같은 걸 부탁했는데, 이영도가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써서 줘버려서 탄생했다고 하는 책. -_-;;

그래서 『그림자 자국』을 읽으려고 대충 훑어보니까
아니 도대체 기억이 안 난다;; 이루릴이라거나 아프나이델이라거나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캐릭터' 였는지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드래곤 라자』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걸 처음 읽은 게 2000년인가 99년인가의 추석이었으니까
거의 10년만의 복기다.

『눈물을 마시는 새』처럼 사서 모셔놓고 두고두고 읽고 싶지만 그럴 돈은 없어서 일단 대여점 신세를 지면서 한 권 한 권 돌파하고 있다.
(돈만 생기면 애장판 세트로 지르는데 -_-;
이번 달에는 『헬로우 블랙잭』13권을 폐업한 대여점에서 질러버려서 돈에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림자 자국』 외에도 『드래곤 라자』를 복기하는 이유들이 또 있다.

나의 중학교 이후의 사유 중 1/4 정도는 이영도가 자신의 소설에서 제시한 질문과 논의들을 붙들고 싸우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는 철학사와 사상사에 대한 공부, 그리고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의 간극들을 넘지 못해서 바둥거리고 있는 요즈음에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내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모조리 이영도를 읽히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발상인데,
뭐 그건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무시하더라도-

여하간 나 자신의 생각의 흐름이 형성되었던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건 요즘 좀 많이 힘들어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이나 만화는 분명 현실 도피 기능이 있다.)

『퓨처 워커』는 별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폴라리스 랩소디』, 『피를 마시는 새』는 꼭 다시 전권을 읽고 싶은데, 『폴라리스 랩소디』는 집에 4권인가까지밖에 없고... 『피를 마시는 새』는 눈마새의 두 배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하는 대작이라서 언제 다 사서 볼지 ㅎㅎ ㅠㅠㅠㅠㅠㅠ



# 네이버에서 연재된 이영도 단편 「에소릴의 드래곤」도 심심풀이로 읽어볼 만하다. 기존의 판타지 서사를 가지고 노는 듯하고 조금은 풍자적인 작품이지만, 그러면서도 생각할 꺼리들을 두세 가지 쯤 던져준다.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394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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