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9.11.26 여러분이 자신을 제 선배라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2. 2013.10.25 전교조 숨통 조인 한국 사회, '한고학연'의 추억
  3. 2011.11.17 [논평] 청소년단체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의 활동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입장에 대해
  4. 2010.10.07 [짧은 글] 이른바 진보교육감 시대와 교육운동 또는 청소년운동 (1)
  5. 2010.07.08 [프레시안 기고] "무식한 '조중동' 덕에 우리가 떴습니다"
  6. 2010.06.10 우리 그냥 정치하게 해줘! - 전교조 탄압과 기호0번 청소년 후보 운동 (4)
  7. 2010.05.28 [기호0번 청소년 논평]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서도, 교사들의 정치 활동 탄압 빠염!
  8. 2010.05.27 [인권오름 : 싱싱고고] 정치금지의 이유 (2)
  9. 2010.04.23 [인권오름]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조전혁 국회의원의 막돼먹은 신념
  10. 2010.04.22 <청소년, 인권단체 공동성명>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과 동아일보를 규탄한다!
  11. 2010.04.19 일제고사 '부정행위'의 범주 차이 - 영국과 한국 사이
  12. 2010.02.10 [인권교육, 날다] ‘교권’이 뭔가요? 교권에 낚이지 말고, 교권을 낚자! - 교권의 재구성
  13. 2010.02.07 지금 전교조에 대한 탄압은 청소년들에 대한 모욕
  14. 2010.01.22 [참세상] 교원평가, 막을까? 말까? 경쟁을 폐기할 새로운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15. 2010.01.07 학생인권조례는 가장 교육적인 조치 - 두발자유 한다고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7)
  16. 2010.01.05 청소년 소설이면서 디스토피아 SF :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17. 2009.10.11 일제고사, 또 봐? (7)
  18. 2009.10.08 '이명박가카' 그만하시죠? : 일제고사... "난 죽고 싶지 않다" (14)
  19. 2009.07.02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성명서] 교사들과 학생·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가 물로 보이니? (2)
  20. 2009.03.22 막장시험 일제고사, 막장학교 막장교육 청소년이 바꿔봅세다 - 전단지 디자인 초안
걸어가는꿈2019. 11. 26. 11:09

[여러분이 자신을 제 선배라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 고등학생운동을 하셨던 분들에게, 청소년운동의 활동가가 띄우는 편지

 

제가 처음으로 고등학생운동에 관련된 이야기를 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읽었던, 최시한의 소설집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초의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소설집이지요. 물론 거기에는 고운의 조직적 활동 모습 등이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학생들이 억압적인 학교와 경쟁교육에 고통받고, 저항하고, 탄압받고... 또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가 쫓겨나면서 벌어지는 일들 등을 보며, 고등학교에 다니며 청소년운동을 했던 저 자신의 경험을 이입했습니다.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가 교무실에 불려갔을 때는, “모든 잘못이 다 죄는 아니다. 우리는 허가받아야 할 일을 한 적이 없다.”라는, 〈반성문을 쓰는 시간〉의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대학입시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함께 준비하면서 “우리는 마라톤 선수가 아닙니다. 모두 승리하면 누가 패배합니까? 자기 촛불을 꺼! 그러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아!”라는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에 나오는 대사를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면 고등학생운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부터 제 운동에는 고등학생운동이 함께했었네요.

 

저는 1988년생이고, 2005년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청소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역사연구팀’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 우리의 고민은 청소년운동에 제대로 정리된 역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뭘 했는지도 잘 모르는 채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도 하고 운동의 정당성이나 흐름도 잘 알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과연 우리가 하는 운동은 무엇인지, 누가 무엇을 해 왔는지를 찾아 나갔습니다.. 그때 역사를 찾고 정리하다가 만난 것이 고등학생운동이었습니다.

 

1987년 전후로 시작되어, 1990년대까지 이어졌던 운동. 누군가는 ‘참교육 1세대의 운동’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교육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중고등학생 운동’이라고도 부르던. 저에게는 놀라운 역사 속 이야기들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학생회 자치권, 보충수업철폐투쟁, 두발자유투쟁, 입시경쟁교육철폐, 교복부활반대... 그런 주장들은 제가 하는 청소년운동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요. 당연히 고운에 존재했던 여러 경향의 정파들이나 주장들에 제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활동을 청소년으로서 중·고등학생으로서 하는 경험, 《나무에게서 온 편지》에 나오듯 '패륜아' 소리를 들으며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탄압과 백안시를 당했던 경험은, 세월을 넘어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비록 제가 하는 운동은 30년 전의 고운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직계인 단체도 없진 않지만) 저의 경우에는 조직이나 사람을 직접 계승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저는 고운이 저희의 선배(먼저[先] 했던 세대[輩]란 의미에서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0년 전에, 중고생이자 청소년으로서 변혁주체, 운동가가 되었던 수백 명, 수천 명, 어쩌면 수만 명의 사람들을 선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30년이 지난 지금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청소년이 정치의 주체라고 말하는 우리들을 후배라고 여겨 주기를 바랍니다. 자신들의 10대 때를 떠올려서라도, 지금의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김철수 열사의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가 인간적인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김수경 열사가 남긴 “전교조를 지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가 학교 다니기가 불편하다면, 아니 고통스럽다면 이미 그곳은 학교가 아닙니다.”라는 말에 공감할 사람들이 우리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들이기를 꿈꿉니다.

 

청소년운동이 나서서 고운을 기억하는 자리를 준비해 본 건 이번이 아마 처음 같습니다. 그동안 출판기념회 등 관련된 자리에 저나 다른 활동가들이 몇 번 참석하긴 했지만요. 비록 고운에 참여했던 분들이 자신을 저의 선배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참석해 주셔서 제게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데는 전교조 30주년을 맞이하여서, 전교조만이 아니라 함께 나섰던 학생들도 기억하자고, 교육을 바꾸기 위해 나섰던 주체는 교사들만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는 욕심도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전교조에서도 많은 분들이 고운을 잊지 않고, 참석하셔서 함께 이야기 나누면 반갑겠습니다.

 

 

--

 

 

그때, 우리는 학교와 정권에 맞서 싸웠다

- 8090 참교육운동을 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마당 -

11월 29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30호

 

참가 신청 : https://forms.gle/gGQyJgjifsUMZwuA6

 

30년 전 민주주의, 통일, 해방을 꿈꾼 이는 어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주적 학생회, 입시경쟁 철폐, 전교조 교사 해직 반대를 외치며 나섰던 중고등학생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때 행동했던 사람들과 지금 행동하고 있는 청소년과의 만남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야기손님

조한진희(반다) 활동가, 다른 몸들(준)

정용주 초등 교사, 전교조 조합원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안수찬 한겨레 기자

김영희 연세대 교수

이수경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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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10. 25. 13:4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8194901&section=03



전교조 숨통 조인 한국 사회, '한고학연'의 추억

교육체제 내 결사자유 박해에 동병상련

공현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활동가

"나는 전교조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학생인권에 대해서 교육도 많이 받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것이다. 요컨대, 나는 전교조를 보면서 자꾸 한고학연이 떠오르고 광고협, 부고협, 마창고협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학교에서 결사의 자유를 무시당하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의 공감이라고나 할까? 오지랖이 넓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교사의 권리조차 무시하는 정부가 학생들의 권리라고 존중해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다. 그래서 별거 아닌 힘이더라도 보태고 싶다. 정부에게 전교조에 대한 그런 탄압은 부당한 것이며 결사의 자유와 노동조합의 단결권에 대해 개념을 좀 탑재하여 교원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내 마음 한편에서는 전교조 또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때 기꺼이 지지하고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뭐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그밖에도 청소년/청소년활동가들이 전교조 탄압에 관해 쓴 글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8162530&section=03

"전교조 탄압? 학생들에게 '노동 3권' 뭐라 가르칠 텐가"

[청소년이 바라본 전교조 설립 취소 위기·②] 노동권, 말 뿐인가요?

이응이 청소년 노동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7110423&section=03

"전교조 공격, 무한 경쟁 탈출하고픈 학생들 배신"

[청소년이 바라본 전교조 설립 취소 위기·①] '어불성설' 꼬투리 잡기

김가을길 서울 문창중학교 1학년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477

전교조, 해산만이 답인가?[교육 살펴보기]전교조의 법외노조화 시도에 부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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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7. 16:44
[논평] 청소년단체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의 활동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입장에 대해



  청소년단체가 무슨 활동만 하면 '배후'에 뭐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나 '청소년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거의 공식이 된 것 같다. 며칠 전, 전교조의 기관지인 <교육희망>에 한 청소년단체의 운영, '배후'에 관한 의혹 제기 기사가 실렸고 해당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됐다. 아울러 전국교직원노동조합(다음부터 전교조)은 "청소년단체 이용한 전교조 죽이기 음모 즉각 중단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교사들의 수업 중 개인 의견을 담은 발언을 녹음해서 "정치 편향 교육"이라며 고발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다음부터 한청연)이라는 단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굳이 쓰자니 종이가 아까울 정도로 당연하게도, 우리는 한청연의 이 같은 활동에 비판적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편향되지 않은 교육이란 불가능하며, 정치적 중립이란 많은 경우 보수적인 태도를 의미하곤 한다. 예컨대 지금 학교에서 입시경쟁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되지만, 적극적으로 입시교육을 하는 것은 비정치적인 것, 정치적 중립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정치적 태도란 지금의 사회·정치·교육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 정치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교사도 학생도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교실에서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한청연의 이번 활동과 같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교사들의 의견 표현을 사냥하듯이 고발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교사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은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인권 기준이고 민주주의의 당연한 가치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한청연이 이러한 활동을 그만둘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한청연의 활동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우리는 관련 기사, 특히 전교조의 성명에서 보이는 심각한 편견에 대해 문제제기하고자 한다. 청소년단체의 활동을 놓고 "어른들의 정치이념놀이에 …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 누군가가 "청소년단체를 이용"하고 있다거나, "청소년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고 하는 것 등은, 청소년들의 사회․정치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에 편승하는 것이고, 청소년단체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회계나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후원을 받은 적이 있다거나 어디서 지원한다는 의혹이 있더라는 '카더라' 식 내용만으로 '이용'이니 '꼭두각시'니 표현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능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꼰대질'에는 좌우가 없고 상하만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전교조가 아이들을 조종해서 나오게 했다는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의 발언이나 보수․수구언론들의 무책임한 발언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청연의 활동에 대해 반대하고 비판하려면, 단체 대 단체로서 당당하게 문제제기하고 대응하라. 청소년단체든 어떤 단체든, 그 단체가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고 다른 단체나 정부의 조종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려면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청소년들의 활동은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이용하는 것이라는 편견에 편승하는 것은, 주체적으로 사회․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모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만든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사회․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주체이며 누가 배후에서 청소년단체를 조종하고 있을 거라는 식의 무리한 예단은, 누구든 함부로 내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전교조 등이 이러한 발언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2011년 11월 17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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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0. 7. 09:19


서울교육공공성추진본부에서 하는 토론회에 굉-장히 급하게 섭외받아서 -_- 2시간여만에 뚝딱 써낸 원고이긴 한데

원래 처음엔 곽노현 교육감 까는 글을 쓰려고 하다가 아 젠장 우리가 누구를 깔 입장이기는 한가 도대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 시급한 건 곽노현 교육감을 까는 게 아니라 교육운동을 까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식으로.

저는 그 전에도 김상곤 교육감 까는 경기도 지역 일부 교육운동 쪽에 대해, 정치적 입장으로는 동의하는데, 심정적으로는 동의가 안 갔던 게, 그렇게 요구할 만큼 교육운동들이 힘이 있지가 않다능... ㅠㅠ
뭐 물론 김상곤 교육감이 일제고사 관련해서든 비정규직 관련해서든 날렸던 짓들은 비판받고 반대해야 하겠습니다만은. 운동 내적 평가로 돌아와보면 그렇게 했어야지! 라고 할 만큼 잘 했었냐는 생각이 든단 거지요.










이른바 진보교육감 시대와 교육운동 또는 청소년운동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공현

체벌금지 과정에서 보이는 징후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체벌금지를 적극 추진하는 등, 학생인권 부분에서 열의를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곽노현 교육감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교육정책에서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학생들의 인권 문제를 정책의 중심에 놓고 있는 교육감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뻐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체벌금지 조치가 발표된 지금, 상황을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평가해볼 필요는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체벌금지 조치는, 체벌금지를 주장해온 시민사회와 교육운동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해야겠지만, 동시에 그간 체벌금지를 주장해온 시민사회 및 운동세력과의 공조 없이 발표되었다. 이는 체벌금지 과정이 좀 더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한 서울시교육청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시민사회 및 교육운동의 무력함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체벌금지 조치들(학칙 개정 등)에 대해서 운동세력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할 현장 조직이 없는 청소년운동이야 고질적인 문제일 테고,(지금 겨우 준비하고 있는 건 학칙 개정에 관한 가이드, 인권적 학칙 예시안 정도) 어느 정도 현장 조직을 가지고 있다고 할 만한 교육운동 세력들 또한 체벌금지를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 외에 구체적으로 학교 현장에서의 체벌금지 진행에 단일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운동이 보이고 있는 총체적인 무력함은 그동안 안팎에서 여러 차례의 지적이 있었다. 원인은 교육운동이 담론 투쟁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부터 아래에서부터 힘을 끌어 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입시폐지를 하든 일제고사 반대를 하든 학생인권 운동을 하든 교권 운동을 하든, 받쳐주는 힘이 없이 이빨만 까고 있는 게 교육운동의 현주소가 아닌가?

이런 현상은 이른바 진보교육감 시대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의 개혁적 의제는 이른바 진보교육감(서울의 경우라면 곽노현 교육감)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될 것이고, 설령 이에 대해 교육운동에서 더욱 급진적 의제를 내건다고 하더라도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른바 진보교육감 시대는 교육운동의 현실을 시험하는 장이 될 것이다. 교육감이 내놓은 ‘좋은 아젠다’를 얼마나 현장에서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면에서든, 교육감이 하는 ‘뻘타’에 맞서서 - 아니면 교육감과 무관하게 총체적 교육제도와 구조의 문제에 맞서서 얼마나 의미있는 운동을 펼쳐나가냐, 하는 면에서든.


청소년운동에서는

청소년운동에서는 몇 가지 대응을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학생인권조례를 교육청에 맡겨두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학생인권 의제를 대중화하고 또 학생인권운동에 네트워킹 된 학생들의 조직을 만들어나가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아니면 교육청이 베푸는 학생인권조례(체벌금지 조치조차도 교육청에 의해 베풀어지는 시혜적 성격의 정책이 되고 말았다.) 이상으로 정치적 권리나 성적 권리 등 다양한 권리들을 새롭게 제기하는 시도도 유의미할 것이다. 지난 7월 일제고사 과정에서 드러났든 교육청 차원에서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교육정책의 문제들에 대해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대중화하고 행동을 조직해나가는 것 또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어쨌건 확실하게 말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곽노현 교육감이 잘하고 있냐 못하고 있냐, 하는 문제는 아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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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강정보а 좋은 글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평생건강지킴이 :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10.10.14 06:5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7. 8. 11:47



"무식한 '조중동' 덕에 우리가 떴습니다"

[기고] 청소년들이, 청소년운동이 봉으로 보이나




(전략)

맨날 전교조, 민주노총 들먹이는 게 약발이 잘 안 먹힌다 싶을 즘, 청소년단체인지 뭔지가 튀어 보이니까 그 떡밥에 달려드는 심정이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청소년들을 봉으로 보고 함부로 대해서야 곤란하다. 어차피 언론이야 각각 자기의 관점과 논조가 있는 거지만, 그래도 최소한 지켜야 하는 선은 있다. 그동안 계속 활발하게 활동해온 단체를 갑자기 교육감과 연관지어서 교육감 까는 소재로 이용해먹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비트는 건 그런 선을 넘은 것이다. 아아, 조선일보가 촛불 2주년 기사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에게 저지른 짓을 보면, 이들에게 그런 선을 지켜주기를 기대하는 건 확실히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 보수언론들인 것이다.

(후략)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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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6. 10. 01:42

우리 그냥 정치하게 해줘!

전교조 탄압과 기호0번 청소년 후보 운동

공현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사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교사들 중에서도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조합원들이. 물론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고 해서 전교조가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탬(NEIS)니 교원평가니 싸우고 욕먹고 탄압당할 일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교사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들어선 첫 해부터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안내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하나둘 해직 교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더니 교사들의 시국선언, 정당후원 등을 이유로 해임, 파면을 남발했다. 이제 200명이 넘는 해직교사들이 생겨났다. 무슨 ‘해직교사’를 이명박 표 특산품으로라도 만들 기세이다.

징계 폭탄을 두고서 대부분은 ‘전교조에 대한 공격’, ‘전교조 탄압’이라고 이야기한다. “한나라당에 100만원 후원한 교장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데 민주노동당에 1만원 후원한 전교조 조합원은 해임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징계가 어디 있어? 전교조를 노리고 두들겨패는구만, 아주!” 이 정도 수준이다. 전교조 측에서도 이 문제를 전교조 탄압으로 이해하면서 “과잉징계”, “법원 판결도 나기 전에 해임”, “형평성 상실”, “절차 무시” 등을 주로 제기했다. 결국 프레임은 ‘전교조 지지냐 탄압이냐’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지금 이 상황은 단순히 ‘전교조에 대한 공격’ 일까? 아니 뭐, 고리타분하게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공격” 이러면서 위기의식을 자극하며 연대를 호소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상황에 대해서 좀 다른 해석을 붙여보자는 것뿐이다. 왜 교사의 정치활동은 금지되는가? 교사는 왜 사상ㆍ양심의 자유, 집회ㆍ결사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모두 억압당하고 있는가? 왜 그러한 법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고 전교조 탄압의 명분이 되며 사회적 힘을 잃지 않고 있는가?

전교조나 전교조 탄압에 반대하는 언론 등이 간간이 제기하는 쟁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교수들의 정치적 자유는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데 왜 교사들은 시국선언(표현의 자유), 정당후원/가입(결사의 자유) 등이 모두 제한되고 있는가?” 교사들은 ‘공무원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디 한 번 사립초중고등학교 교사와 국공립대 교수를 비교해보면 그냥 ‘공무원이니까’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임을 알게 된다. 오히려 공무원 프레임도 “왜 교사들은 공립 사립 가릴 것 없이 국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공무원 취급을 받는가?”라는 식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사들의 희생(?)

답은 단순하다. 교수와 교사의 차이가 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뭐 연봉이나 노동환경 등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수는 대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참여하지만, 교사는 초중고등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참여한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선거권도 있고 정치적 권리들을 보장받고 있지만, 초중고등학생들에게는 선거권도 없고 정치적 권리들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인 것을 접하기에는 너무나 ‘미성숙’한 초중고등학생들을 정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교사들의 정치활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미성숙’하고 감수성과 모방성이 뛰어난 학생들이 행여나 교사들에게 영향이라도 받아서 편향된 정치적 견해를 가지게 될까봐 그런 것이다. 헌법 제31조에도 “정치적 중립성”이 명시되어 있으니까 교사의 정치활동은 위헌이라고까지 한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중고등학생들의 주체적 실천으로 보지 않고 ‘전교조의 영향’ 운운했다. 그의 망발은 이런 사고방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학생들(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권리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 또한 봉쇄되어야 했다. 청소년들에게 교사 이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의 정치적 권리는 왜 금지하지 않나 참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건 그것이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논리이다. 이건 단순히 나의 해석이나 억측이 아니라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에 대해 위헌 재판 신청을 했을 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기각하면서 내놓았던 논리이다. 결국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혹은 ‘미성숙’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강제로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며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정치 금지가 교육하는 반인권성, 반민주성

뻔히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 ‘금지’는 공평하지 못하다. 교육이 정치성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교육과정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태도들을 전제로 만들어지고 그것들을 ‘상식’이자 ‘공식적인 지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면서 교육을 비정치적으로 만들겠다는 구호는 현재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공고히 하고, 이에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정치’라며 틀어막아버린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는 ‘징계’, 한나라당 후원 교장은 ‘출세’라는 결과는 그러한 불공정성의 극단적 표현일 뿐이다.

사실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사회 굴러가는 것이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며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집단적 자기결정권으로서, 말하고 듣고 행동할 자유로서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인권이다. 정치적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 금지하는 것은 반(反)민주주의, 반(反)인권을 교육한다. ‘비정치성’을 강요하는 것은 보수적인 정치성을 띄는 것이다.

혹자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 등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면 이런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히틀러 유겐트와 같은 사례는 따져보면 국가 권력이 교육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점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교육이 정치권력,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어야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교사들을 통제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교사들을 해고하는 데 오용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나치 독일스럽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기 견해를 강요할까 걱정스럽다면,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체벌’이나 ‘평가권’ 같은 과도한 (때로는 폭력적인) 권력들에 제한을 걸고 학생들에게 정치적 능력을 배양하면서 평등한 교사-학생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학생에게 권력을 청소년에게 정치를”부터 시작하자

위 사진:전교조 탄압저지 결의대회에 지지하며 참여한 아수나로 회원들


2010 지방선거 때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요구하면서 ‘청소년 후보’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 교육에서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 0순위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호0번을 달고 출마한 청소년 후보는 말하자면 일종의 ‘계급 후보’였으며, 벽보도 안 붙여주고 공보물도 안 보내주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원망하면서 열심히 유세를 다녔다.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중에 생긴 정치활동을 이유로 한 전교조 해직 사태에 대해서도 논평을 발표하고 지지방문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학생들,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공부시킬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교사들의 정치적 자유까지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부는 지금 청소년들을 강제로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로 남겨놓기 위해 ‘대량해직’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교육의 진짜 주인인 학생들은 무시하고 정부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해고하는 것에 당연히 반대해줘야 한다.”라며 정부의 무리수를 비판했다.

전교조에 대해 ‘정치활동’을 이유로 하며 가해지는 공격들은 학생들에 대한 공격이고 모욕이기도 하다. “니네는 너무 미성숙하니까 이런 불순한 교사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해.”라면서 학생들 핑계를 대고 있는 참 가증스러운 징계이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기호0번 청소년 후보 활동을 했던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체들은 이후로도 적극적으로 이번 전교조 징계에 대응할 것이다.

위 사진:교육감 기호0번 거리 유세 중.


역으로 말해서,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보장이 교사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을 이번 전교조 징계가 보여주고 있다. 학생, 청소년들을 정치에서 왕따 당하는 존재,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남겨두는 한 교사들이 부딪치고 있는 정치적 자유의 문제들도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전교조 징계’는 전교조라는 조직만의 일로 볼 수 없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평등하게 오갈 수 있는 학교. 학생들도 교사들도 모두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를 위해서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감히 나서서 먼저 외쳤다. “학생에게 권력을! 청소년에게 정치를!” 전교조든 전교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든, ‘전교조 표적 탄압 반대’를 넘어서서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 모두의 정치적 자유가 꽃피는 학교를 보는 날이 머지않기를 바란다.

* 히틀러 유겐트

나치가 통치한 독일에서 나치즘을 내면화시키고 국가에 동원하기 위해 운영한 조직. 자세한 것은 <히틀러의 아이들>참고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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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06 호 [기사입력] 2010년 06월 09일 14:53:4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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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몇년 전에 이십대에 의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어 활동을 한다고 하는 독일의 청년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청소년 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고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권리의 모든 것이 정치라는 것으로 부터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면 정치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르치는 과목이 없다는 것이 통탄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인권활동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고 앞으로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힘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돕고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10.06.10 02: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선진국 처럼 투표 연령을 더 낮춰야 합니다.

    2010.06.10 13:00 [ ADDR : EDIT/ DEL : REPLY ]
    • 투표연령도 낮아져야 하고
      선거권이 설령 없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활동을 하도록 보장해야겠죠 ^^

      2010.06.12 02:11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 5. 28. 16:08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0번 청소년’ 논평]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서도, 교사들의 정치 활동 탄압 빠염!

  정부에서 연달아서 교사들의 ‘정치 활동’을 이유로 탄압과 징계를 남발하고 있다.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2008년 교육감 선거에서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검찰의 압박스런 조사를 받고, 이미 짤렸거나 교육과학기술부가 짜를 거라고 발표한 교사들만 200명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히며 체험학습 안내를 하는 편지를 보낸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짤린 교사들을 포함하면 이보다도 더 많은 상황이다.

  교사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시민이 아니거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누리는 데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은 교사들의 정치 활동을 왜 금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결국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두기 위해서, 학생들이 다양한 정치적 이야기들을 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학생들,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공부시킬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교사들의 정치적 자유까지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사들 중에는 체벌이라는 폭력이나 자신의 수업에 관한 권한을 남용하여 학생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는 무개념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잘못이라는 의견을 표명한 학생을 체벌한 교사의 사례가 있다. 이런 교사야말로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서 인권침해를 일삼으며 학생에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강요했으니 징계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에게 자기 권한을 남용하여 특정 견해를 강요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의 해결책은, 교사의 정치적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 분명히 아니다. 그 올바른 해결책은 체벌 등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기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폭력을 금지하고, 학생들이 정치적 주체가 되어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자유롭고 평등한 의견 교류가 가능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를 이야기하고 정치에 대해 교육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고 보장하게 하기 위해 출마했다. 우리는 학생과 교사 등 모두가 정치적 주체로 나서서 자신들의 인권을 보장받는 교육을 만들고자 한다. 다양한 견해들이 꽃피고 민주적인 정치가 이루어지는 학교를 만들고자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육을 거짓된 비정치성의 공간으로 남겨놓으려 하며 교사와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탄압하는 것에 반대한다. 정부는 지금 청소년들을 강제로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로 남겨놓기 위해 ‘대량해직’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교육의 진짜 주인인 학생들은 무시하고 정부 입맛에 안 맞는다고 짜르려는 무리수엔 당연히 반대해줘야 할 것이다.

  어른들만의 정치도 “빠(bye)염!”이고, 교사와 학생의 정치 활동 금지, 탄압도 “빠(bye)염!”이다. 더더욱 힘을 내서 청소년의 힘으로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징계와 탄압에 맞서 싸우겠다. 당선이 되든 안되든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교사들의 정치적 자유와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함께 외칠 것이다.


2010년 5월 28일 금요일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0번 청소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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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5. 27. 22:47

[싱싱고고] 정치금지의 이유

고달이



덧붙이는 글
고달이 님은 인권교육센타 '들'의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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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04 호 [기사입력] 2010년 05월 26일 14:57:24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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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정당가입하는 건 자유자노
    여튼 아직 이 문제는 논점을 모르겠군...
    노조강제가입이 위헌적 소지가 있더라도
    어용화되지 않은 노조 입장에서는 단결력 강화를 위해 유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점을 악용한다면 집행부가 강제 혹은 반강제된 단결력을 이용해
    특정 정치권에 힘을 실어주게 되는 거 아님?

    공무원노조나 교원노조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노동3권을 모두 향유하지야 못하지만
    노조의 정치적 행위 금지는 교사 기타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잖아

    내가 새로 짚어야 할 논점을 좀 알려줘

    2010.06.03 0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내 블로그도 쫌!!!! 방문 좀!!!!!

    2010.06.03 00: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4. 23. 09:56

[막말의 시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조전혁 국회의원의 막돼먹은 신념

조전혁 의원의 교원단체 교사 명단 공개에 대해

명숙



헌법기관은 헌법기관의 결정을 무시해도 된다고?

한나라당 조전혁 국회의원(인천 남동구 을)이 4월 19일 자신의 인터넷홈페이지에 5개 교원단체 소속 교원 22만 2479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다. 법원이 ‘교원단체 소속교사 명단 공개는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의원이라는 고위 신분을 내세워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등 교원단체들이 반발하자 조 의원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감시․통제 방법으로 자료를 요구하거나 직무상 얻은 자료를 공표하는 행위는 민사상 가처분의 대상이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 정말 기가 차는 발언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내세웠던 법치의 실체를 보여준다. 국회의원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에서 보이듯이 그들에게 법치란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지켜지는,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도 되는 장식일 뿐이다.

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무소불위 정치인 등장

조 의원이 말한 대로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므로 직무상 얻은 자료를 공표해도 된다고 하였지만 서울 남부지법 민사합의 51부(재판장 양재영)는 “조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은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소속 교사 명단을 인터넷 등에 공시하거나 언론 등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그는 삼권분립은 ‘나발’인지 헌법기관인 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니까 직무상 얻은 자료를 언제 어디서나 공개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한 횡포이다. 더구나 이번 공개는 정부나 사법부에 대한 감시나 통제를 위해 행사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특정 정치적 성향, 교육 성향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의 권리(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결사권)를 고의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역할수행은 다른 헌법기관의 결정을 무시할 정도로 막대하거나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국회의원의 역할수행을 권력행사로 오인하는 오만방자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역할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정당성의 토대는 바로 헌법적 질서 존중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의식 이다. 그가 국회의원의 역할보다는 힘을 가진 자로서 권력행사에 관심이 있고, 시민의 권리는 무시해도 된다는 비상식적 사고를 갖고 있다고 단정할만하다.

교원단체 가입명단 공개가 알 권리라고?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명단을 공개한 조 의원이 근거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알 권리’이다. 법원이 “교원의 교원노조 가입은 업무 외적인 영역의 개인 정보”로 “전교조 명단 공개는 개별학생이나 학부모의 학습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명단공개 금지 판결을 내렸음에도 부모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주장한다. 또한 조 의원 측의 행위를 지지하는 보수 일각에서는 ‘전교조 가입 교사만 공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교원단체도 공개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조 의원의 행위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알 권리를 보장하는 행위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숨겨진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 때문에’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조 의원의 그간 행적과 발언, 조의원의 공표행위를 지지하는 보수단체의 논거를 통해 그의 의도는 쉽게 드러난다. 그동안 조 의원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책 출판, ‘자유주의교육연합’이라는 단체의 대표로서 활동하였다. 2008년에도 교육 분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나는 우파이고, 우파인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당시 교육부장관이 개인의 인권문제가 있다고 답변했음에도 교원노조 명단 실명 공개를 주장하였고, 전교조가 그동안 정부 정책에 협조적이었나를 질의하였다.

교원단체 가입 교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단체의 성명에도 이번 공개를 ‘전교조 명단 공개’로 한정하여 해석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번 공개가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통제수단이 될 거라고 이해하고 있다. 4월 21일 방송개혁시민연대는 성명서에서 “지난 정권 전교조가 학생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친북, 반미, 반정부 교육을 실시한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내용”이라며, “명단 공개의 사회적 논란의 발단은 이렇듯 법원과 국민의 전교조에 대한 상이한 판단이 전제돼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알 권리를 주장한 맥락은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행위가 아닌 노골적인 ‘전교조 가입 교사들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한다. 사실상 노조가입이라는 ‘권리행사’를 문제 삼고 있다. 명단 공개가 알 권리 보장이 목적이라기보다 특정 노조 가입에 대한 반대를 위해 행해진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교사들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

또한 보수언론의 강한 영향력으로 전교조에 가입되었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교직원이나 학부모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이번 공개로 인해 교사 개인이 위협받는다면 큰일이다. (친절한 동아일보의 서비스로 개개 교사에 대한 공격 가능성은 넓어지고 있다.) 노조에 가입하거나 참여할 권리로서 결사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이며, 특정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결사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알 권리와 정보공개

알 권리는 국민이 자신의 이해와 인권에 연관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보장한 권리이다. 정보접근을 포함한 알 권리는 다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실제 정부기관이나 공적 기관, 공적 인물의 행위나 정책은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정책방향을 세웠는지, 돈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사안에 대한 알 권리가 차단된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나 집행에 대해 입하나 뻥긋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알 권리가 보장되고 많은 공적인 정보가 공개되어야 정부의 주요 행위나 정책에 대해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것은 그동안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배제되었던 시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정부 정책이나 교육예산 집행 내역, 사교육 비리, 뇌물을 받은 비리 학교 교장, 교육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그저 개별 교사들이 어느 단체에 가입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명단을 공개했을 뿐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알 권리는 긴장관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를 할 때는 ‘공익적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본인의 동의’와 ‘정보이용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공개는 최소한의 공익적 목적(가령, 비리교사 공개를 통한 징계 등)도 없이 조 의원의 평소 신념인 전교조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익’을 달성하려고, ‘교사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정작 필요한 알 권리에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되고 있지 않다. 한 예로, 지난 3월부터 경북지역에서 시민사회가 교육 비리에 연루된 교장․행정실장․교육 관료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교육청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보접근권은 제한된 영역에만, 그것도 정부여당의 정치성향이나 정책과 다를 때에만 보장된다면 이는 알권리라고 칭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공개는 알 권리라기보다는 ‘반정부성향 파악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결사의 권리도 딱지를 붙여 빼앗고

이제 결사의 권리는 ‘전교조 아닌 노조’에 가입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교사들이 헌법과 각종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된, 모든 시민의 권리라는 노조가입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행사하고 싶다면, ‘전교조’가 아니어야 한다. 2010년 한국에서는 노동권 중의 하나인 노동조합(단체)가입의 권리를 행사하는 일조차 검열당하고 감시당하고 있다. 유엔 대표적인 인권기구인 자유권위원회 및 사회권위원회는 전교조와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권고를 수없이 했으나 한국정부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조 의원의 노림수는 평소 막돼먹은 신념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지만, 6월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에서 보수층 지지를 모으려는 행위일 뿐이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입시경쟁 위주의 학교가 변하기를 꿈꾼다는 이유로 정부는 전교조에 빨간색을 덧칠하였다.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육의 지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논의하기보다는 ‘전교조냐, 아니냐’를 먼저 판단하게 논쟁 프레임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명단 공개는 교사들의 권리 침해이기도 하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다른 교육을 상상할 권리도 제한한다.

최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과 초중고 무상급식 필요성이 많은 시민에게 공감 받으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내가 꿈꾸는 학교생활은 무엇인지?’, ‘내 자녀가 어떤 교육환경에서 자라면 좋은지?’를 생각했다. 한국은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 85%이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88만원 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입시교육과 경쟁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심을 품고 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성찰을 무(無)로 돌리는 논쟁 프레임 바꾸기 시도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능성을 축소시킨다. 언론과 보수 일각에서 입시교육과 경쟁을 당연시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전교조 공격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다른 교육’을 꿈꿀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기에 우려스럽다.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99 호 [기사입력] 2010년 04월 22일 22:30:2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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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4. 22. 13:45


성명을 발표하고서야 생각났는데
원래 성명서 수정할 때
"학생들은 누가 좋은 교사인지 나쁜 교사인지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을 직접 겪으면서 판단할 수 있다. 거기에 소속 단체라는 걸로 선입견을 주입하려 하는 것은 학생들의 경험적 판단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며, 교육에 정치권력이 대놓고 개입하려는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했었는데 막 쓰다보니까 잊어버렸었다 ㅡㅡ;;;





<청소년, 인권단체 공동성명>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과 동아일보를 규탄한다!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공세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여기에 한나라당 조전혁 국회의원이 한 번 더 오버를 했다. 지난 19일, 조전혁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에 가입한 교사의 실명을 공개했다. 20일, 동아일보 역시 자사의 홈페이지에 명단을 공개했다. 그들은 공개의 이유에 대해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학부모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결단이란 주장을 했다.

  우리 인권․청소년단체들은 정보인권을 무시하며 유린한 조전혁 의원과 동아일보를 규탄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다. 헌법으로도, 국제인권조약에서도 개인정보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명단이 공개된 후 학생들이 “우와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도 전교조였네. 전교조 좋은 데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든, “우리 교장 선생님 맨날 운동장 조회 길게 하고 두발단속 빡세게 하는데 교총이었잖아. 앞으로 교총 싫어해야겠어.”라고 생각을 하게 되든, 학부모들이 “어머, 우리 애 담임도 전교조잖아. 학교에 항의해서 담임 바꿔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게 되든, 자신이 어느 결사/단체에 가입해있는지를 공개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이 원칙이다. 알 권리란 명분으로 민감한 정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함부로 유출한 조전혁 의원과 동아일보의 행위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또한 그동안 조전혁 의원, 한나라당, 동아일보 등의 행적을 봤을 때, 이번 명단 공개는 학교 현장을 색깔론으로 페인트칠하고, 소속단체 및 노동조합을 가지고서 교사들에게 낙인을 찍어 편가르기를 하려는 시도임이 분명해 보인다. 교사 개개인의 소속 단체를 공개해서 이를 가지고 학생, 학부모에게 교사 개개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게 하려는 것은 매우 반교육적인 일이다. 그들은 교사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교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며, 교육을 자기들 멋대로 주무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제도나 방식에도 문제는 많으나, 이를 학생들을 위해 바꾸려 하지 않고 자기들 입맛에 맞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주무르려고 하는 것은 더욱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이미 명단 공개의 위험성과 위법성은 법원에서도 지적한 바가 있었다. 남부지법 민사재판부는 “교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였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는 일반적인 개인정보보다 높은 수준으로 보호될 필요가 있는 민감한 정보”이고, 이를 공개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법률’ 등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에 가입한 교사명단을 공개하는 것을 금지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단공개를 강행한 조전혁 의원과 동아일보가 과연 인권 감수성이나 개념을 갖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헌법으로 보장된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이란 하나의 헌법기관이, 또한 사회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언론기관이 앞장서서 법을 무시하고 정보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에 우리는 더더욱 개탄할 수밖에 없다.

  이번 명단공개를 포함하여 일련의 전교조에 대한 탄압들은 더욱 큰 우려를 느끼게 한다. 이미 예전부터 시국선언 기소, 규약개정 명령 등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언론은 ‘전교조 죽이기’를 노골화했었고, 특히 한나라당은 이번 지방자치선거를 ‘전교조 심판’이란 말로 의미 짓기도 하였다. “명단공개는 정치적 결단”이란 조전혁 의원의 발언처럼, 명단공개의 강행한 것은 전교조를 탄압하기 위한 정치적 쇼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개인들의 인권을 스스럼없이 침해하는 것을 살펴보면 여전히 옛 독재시절의 향수에 빠져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글플 따름이다. 잘못된 교육제도 속에서 고통받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논의하지는 않고 전교조니 교총이니 반전교조니 편가르기, 낙인찍기에 골몰하는 일은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에 있어서도 대단히 비생산적인 일이다.

  우리는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전교조에 대한 부당한 색깔론을 그만두고, 정치적 자유 행사나 정당한 노조활동을 가지고 전교조에 대해 부당한 탄압을 가하는 것을 당장 중단하라.

  우리는 명단공개를 강행한 조전혁 의원과 동아일보를 규탄한다. 그들은 ‘정치적 결단’을 내린 만큼 정보인권을 유린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법적인 책임’과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인권․청소년단체들은 이번 사안에 있어서 부당한 인권침해와 정치적 공격을 당하고 있는 전교조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밝힌다.

 

 

2010년 4월 22일
 

 교육공동체 나다,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문화연대, 배희철, 안산노동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한국 HIV/AIDS 감염인연대KANOS,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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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4. 19. 12:53

위기의 학교 저자 닉 데이비스는 '거대한 사기'로 명명한 영국의 '시험 게임'에서 성적을 조작하는 다양한 수법들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다. 우선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하기 등을 지적한다. 이 수법들은 한국의 학교에서는 게임 아이템으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0교시, 강제보충, 강제야자, 모의고사, 기출문제, 밤샘학원, 족집게 과외 등 우리에게는 이미 관행화되어 있는 규칙이다.

(우리교육 2009년 3월호 p.121.
「1%만을 위한 시험 게임을 중단하라 - 서울시교육청 '일제고사 꼴찌'가 의미하는 것」 (조진희 서울 영일초 교사) 中)


이 부분을 읽으면서 뭔가 한국 교육은 정말 막장 테크구나...라는 생각을 찐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 정책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이고 일제고사니 학력미달이나 학력향상이니 국제경쟁력이니 하는 말들이 국경을 넘어 유통되는 시대라고 하여도...-_-

유럽권도 아니고 영미권에서도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시키기'를 성적 조작, 부정행위로 본다는 말입니다.
즉 정상적인 교육으로 수업을 하고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을 시켜서 그렇게 생긴 능력으로 시험을 보게 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를 시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부정행위이고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라는 거죠.

조진희 씨도 적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성적 조작이나 부정행위 축에도 들어가지 않고 아주 일상화된 '교육'입니다.
시험대비 강제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에 맞춘 문제집 풀기......
이런 걸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직접 답안지나 성적표에 교사가 손을 대서 조작을 해야 비로소 '조작'이라고 한다는... 쓸데없는 데 엄격하군)



그저께는 이런 기사까지 났더군요.

영국 학교장 1만명, ‘학력평가 거부’


영국의 교장들이 특별히 착해서는 아닐 거 같고, 영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을 볼 필요 + 영국에서는 교장들이 어떻게 선출되나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장들은
교사 -- (교장 말 잘 듣고 근무평정 잘 받아서 승진) -- 부장 교사 -- 장학사 -- 교감 -- 교장 
뭐 이런 식의 라인을 보통 타고, 교육관료들 세계에서 위에 말 잘 듣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현실을 바꿀 대안으로 교장임명제(정부에서 하는 교장 돌려막기 짝퉁 말고), 교장선출보직제 같은 게 나오는 거구요.


기사 내용으로 볼 때 저 교장단들이 특별히 인권의식이 있거나 좌파적인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다만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있다는 내용은 곧잘 눈에 띕니다. 한국에서는 현장교사-교장이 그렇게 가까운 관계가 아니란 걸 생각해보면... 일단 저런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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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2. 10. 01:40

[인권교육, 날다] ‘교권’이 뭔가요?

교권에 낚이지 말고, 교권을 낚자! - 교권의 재구성

고은채

종종 단어의 애초 뜻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며 의미가 변해서 처음과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도 숱하게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의미에서 ‘교권’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권이라는 말은 이미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교권이라는 말에 대해 학생, 학부모, 혹은 어떤 교사들이 느끼는 거부감 앞에 교권의 새로운 의미든, 교육의 진정한 의미든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교사의 권리’를 말하는데 있어, 교권을 이야기해야겠냐는 주장이다. 또 어떤 이는 “교권이 땅바닥에 뒹굴뒹굴하고 있어도 아무도 주우려하지 않더라.”며 자괴감 가득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 옛날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찾아 볼 수 없고, 설령 있어도 한 줌도 안 되는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교권은 종종 우리를 주목시키는 실체를 띠고 있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학생간의 그 어떤 ‘문제들’은 ‘교권침해’로 정리돼 뉴스든 인터넷에서든 보여 지곤 한다. 이렇게 등장하는 교권은 이때 마다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 사회를 향해 개탄하기 때문에, 좀처럼 간과할 수도 없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잡는’ 권위가 교권의 실체는 아닐텐데, 지금의 교권은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이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 래. 서. 진짜 교권이 무엇인지 파헤쳐보기로 했다.

지난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마련한 교원 인권감수성향상 연수에서 교권을 파헤쳐 보는 기회를 가졌다. 교권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 살펴보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자리였다. 교사그룹이나 학교, 사회에서 교권과 관련한 사건이 등장하지만, 교권이 무엇인지 깊이 이야기하는 자리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연수 정원을 넘어서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날개달기

연수는 교권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첫 시간을 시작으로,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보면서 교권을 재구성하는 두 번째 시간으로 옮겨졌다. 교권을 구성하는 중심적 내용인 가르칠 권리의 맞은편에 위치한, 그렇다고 생각되어온 배울 권리와의 관계, 그리고 두 가지를 모두 존중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통해 또다시 교권을 재구성했다. 이외 여교사의 눈으로 보는 교권, 비정규 교사와 함께 찾는 교권, 교권보장을 위한 조건을 탐색하는 생생토크로 이어졌다. 교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더불어 발걸음을 함께해야할 사람들을 확인케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는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봤던 두 번째 시간의 내용을 담기로 한다.


징계위기에 처한 6명의 교사가 등장한다.

- 교사 시국선언을 한 이유로 징계를 당할 상황에 처한 교사
- 수업부교재를 제작했는데, 내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하여 처벌 상황에 놓인 교사
- 작품으로 찍은 자신의 나체사진을 홈페이지 올려 징계 상황에 처한 교사
- 일제고사 때 학생들에게 안내장을 발송하고 체험학습을 간 이유로 징계 상황에 놓인 교사
- 교육감선거에서 선거운동을 한 이유로 징계에 처한 교사
- 연가를 냈는데 교장이 허가하지 않아서 근무지이탈로 징계에 처한 교사


사연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금 더 내용이 담긴 이야기쪽지로 만들어 모둠별로 나눠준다. 해당 모둠에서는 교사의 사연을 보고, 교사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마련한다. 교사를 징계할 수 있는 논리, 교사의 잘못을 추궁하는 논리를 만든다. 모둠별로 해당 사연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구성하고, 모둠별로 순차적으로 발표를 한다. 이때 나머지 다른 모둠은 징계에 처하게 된 교사의 입장에서 변론을 한다. 다른 모둠에서 변변한 변론이나 논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해당 교사는 정말 억울한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정한다.


더불어 날개짓

덕만의 역사수업은 학교에서도 인기가 남다르다. 바로 지난해부터 만들어 사용한 수업 부교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그것이다. 학생들의 눈이 이처럼 초롱초롱했던가? 스스로 놀랄 정도이다. 특히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아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기 일쑤였던 현대사 시간에 아이들이 질문을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반에서는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돼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덕만은 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좀더 꼼꼼히 챙겨볼 요량으로 인터넷과 출판된 자료에서 몇 가지 사건과 기록을 옮겨 자료를 만들고, 그것을 내용으로 수업을 했을 뿐인데 기대이상의 아이들 반응에 이것저것 의욕이 샘솟던 참이었다.
하지만 최근 덕만에게 불어 닥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칼바람에 초롱초롱 눈빛도, 샘솟던 의욕도 오간데 없어져 버렸다. 국가보안법이 위반이라니…?? 이 무슨 난데없는 일인지.
바로 덕만이 만든 수업 부교재 때문이었다. 제주 4.3항쟁과 광주 5.18 항쟁에 대한 내용이 문제라는 것이다. 적을 찬양·고무’한다는 감정서를 들이밀며 검찰에서 덕만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미 두 사건 모두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까지 한 역사적 사건이건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게다가 덕만이 사용한 자료는 인터넷과 책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과 글들로 공개되어 있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 그대로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교육해야 한다면, 교사는 대체 어떤 존재란 건지.



* 사연 중 부교재 제작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례는 현재 재판 중에 있다. 재판 대신에 학교 징계위원회 상황으로 바꿔 이야기를 꾸며봤다.

발표를 맡은 모둠은 실제 징계위원회 위원처럼 해당 교사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징계위원회, ▶덕만 교사를 지지하는 사람들


▷ “교사가 학교장의 허가도 없이 마음대로 부교재를 만들어 사용해도 됩니까? 교사로서의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에요. 그것도, 이처럼 불순한 내용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다니.. 보세요. 이걸!”

▶ “5.18과 4.3항쟁 같은 사건은 이미 교과서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에요. 게다가 덕만 교사가 만든 교재 내용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요. 덕만 교사를 징계한다면 이런 책과 인터넷의 글도 처벌받아야하는 것 아닌가요?”

▷ “문제는 학생들이라는 것이죠.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어요.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을 의식화하는 것 아니고요. 괜히 아이들한테 갈등과 혼란만을 조성하고 있다고 야단들입니다. 이건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는 것이에요. 미성숙한 아이한테 교사가 맘대로 교육하고 있는데, 아이들 귀를 막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 교사를 그만두게 해야지.”

▶ “학생들이 미성숙하다니요. 학생들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인데, 다양한 의견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토론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라고요.”

▷ “그런 얘기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제가 쭈~욱 지켜봤는데, 덕만 교사는 연가투쟁에도 참여하고, 지난 4년간 지각을 5번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작년 봄인가? 교직원회의도 불참했던 것 같고, 교사회식도 잘 참여하지 않아서 교사간의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사사건건 불란을 일으켜 온 교사라고요.”

▶ “교장선생님은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에 대해서 그만 말씀하시죠?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광주 5.18 운동 이제 학교에서 교육하라고 하는데, 왜 덕만 교사를 징계하려고 그럽니까?”

▷ “아이고, 이보세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요즘 이 교육 못하게 하는 거 몰라요? 선생님은 어떤 학교에 계신 겁니까?”


외부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학교의 많은 붙임 현상을 표현하는 참여자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라고나. 상황극은 이렇게 씁쓸한 웃음을 불러내기도 했다.

“애들의 귀를 막을 수 없지 않느냐”는 교장의 발언에서 수동적으로 학생을 대하는 관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학생을 수동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교사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수업도 허용할 수 없는, 무척이나 위험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펼치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이 마련된다면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가능해야하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라는 학생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동등한 관계 형성은 교사의 수업권, 그리고 학생은 학습권 보장에 일차적 조건이 된다는 것.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교권의 이름으로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보장되기 어렵다. 학생과 교사의 ‘물고물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다시 확인되는 찰라다.

재구성 되는 교권에는 이처럼 교사/학생의 관계를 다시 읽으며 짚어본 가르칠 권리 외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빼앗기는 것, 시민으로 누리지 못하고 박탈된 권리들도 이야기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학교의 업무 분장, 휴가처리, 수업수당의 문제는 교권이라는 말로 이야기된다. 현재 학교나 교사그룹에서 주요하게 제기되는 교권 침해의 내용이기도 하다. 어떤 교사는 “정말 이렇게 한 줌이냐? 수호하자고, 힘주어 애써 골몰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처리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교권의 전부인 것이냐”고 되묻는다. 아니, 재구성된 교권에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교사로서의 권리, 혹은 교사로서의 지위를 위협하고 침해하는 것들이 이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교권을 바라보는 눈은 깊고 넓게 뜨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90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9일 22:12:5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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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2. 7. 10:41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교사들을 옹호하는 것은 제게는 그리 끌리지 않는 일입니다. 교사들이 뭐 얼마나 잘 하고 있다고 굳이 청소년들,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나서서 교사들을 편들어줘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교육의 문제점을 교사들에게만 돌리고 교사들을 갈구고 굴리면 된다는 식의 교원평가제도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써서 교사들을 옹호해줄 마음은 잘 생기지를 않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선생님을 빼앗아 가지 마세요.” 같은 닭살 멘트도,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권력관계와 대립, 갈등을 무마하는 너무나 순진한 소리가 아닌가요.

  그렇지만, 저는 교사들을 옹호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립니다. 좀 더 콕 찝어서 말하면 전교조를 옹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제가 이명박 정부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제가 별로 서고 싶지 않은 위치에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한다는 것. 그 전 정권 때도 그런 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좀 심하게 그 빈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뭐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하니, 눈치 빠른 분들은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눈치 채셨을 줄로 믿습니다. 최근 검찰․경찰 등에서 저지르고 있는, 전교조에 대한 ‘정치 탄압’ 이야기입니다. 시국선언을 했다고 해서 교육과학기술부와 검경이 전교조 교사들을 징계를 하고 고발을 해서 처벌을 하겠다고 설치더니만, 이게 잘 안 될 거 같으니까 이젠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네 안 냈네 그러면서 검경에서 서버를 압수수색을 하겠다며 난리굿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슬픈 일은, 이런 이야기가 ‘먹히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교원(교사)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언론들에서 성실한 분석 기사를 내고 있으니까 그런 것 관련해서는 다른 기사들을 뒤적여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처럼 뭐 시국선언 했으니까 처벌, 후원금 냈으니까 처벌, 이러는 곳이 기껏해야 일본 정도 말고는 없다는 그런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교조에 대한 이런 공격들에 근거가 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사실 표현이 좀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원래 ‘교육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 유겐트’ 같은 것들에 대한 끔찍한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개념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 개념은 교사들이 정치권력의 탄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뭐 이런 취지였지, 교사들이 자기 신념에 따라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막으려는 게 주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에서는 이 개념이 교사들을 정치권력이 탄압하는 핑계거리가 되고 있다니…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면 박정희 정권 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어쩌구저쩌구가 헌법에 명시되고 그게 실제로는 어떻게 정권 입맛에 맞게 적용되었고… 하는 것까지도 떠들어볼 수도 있겠지만요.

  문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이, 교육의 비정치성 비슷한 말로 이해되면서 생기고 있는 많은 폐해들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최근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만 보십시오. 학생인권조례 반대한다면서 ‘집회․결사의 자유’ 조항에 딴지거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학교를 정치 선동의 장으로 변질시키려고 한다.”와 같은 말들이잖습니까?

  이처럼 교육에 심볼처럼 박혀 있는 ‘정치적 중립성’≒‘비정치성’은 교사들 뿐 아니라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까지 모두 억압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청소년인권활동가로서 굳이 전교조의 정치적 권리를 옹호하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와 학생의 정치적 권리는 같은 원인 때문에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촛불집회에 10대 학생․청소년들이 많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싫어하는 사람들(ex :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말했습니다. “이게 다 전교조 때문이다. 전교조가 애들을 선동한 거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보고도 말하더군요. “전교조가 학교를 운동권 양성소로 만들려고 한다.” 교사들과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동시에 공격하는 꽤나 효과적인 음모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시국선언에 대한 탄압, 정당에 후원금 낸 것을 빌미로 한 탄압도 결국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사들을 징계하고 고발하는 것의 깊은 곳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정치적인 색깔을 가진 교사는 은연중에 (아니면 대놓고)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학생들은 미성숙해서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그래선 안 된다. 그 교사들을 다 내쫓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전교조에게 가해지고 있는 탄압은 우리 청소년들의 자존심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무시이고 모욕이기도 합니다. 참 열 받는 일이죠.
 


우리는 정치적 동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찬찬히 따져보면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행위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이번 전교조 탄압에 대해서 ‘형평성’ 문제로 이야기하면서 왜 한나라당에 돈 낸 교총은 그냥 두면서 전교조만 표적 수사하느냐, 하는 것도 전교조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대응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것, 교육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전교조 입장에서야 아무래도 “그래 우리 정치적이다. 왜?” 이런 식으로 나오긴 부담스럽겠지만요.

  지금 당장 검찰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전교조 표적 수사는 뭐 그 절차든 내용이든 너무 몰상식하고 반인권적이긴 합니다.(별건수사, 해킹의혹 등등) 당연히 전교조에 대한 이런 식의 억지스런 탄압은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무리한 탄압에만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는 걸로는 2% 부족함을 느낍니다. 정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교사들을 징계하고 처벌하는 게 당연시되는 ― 최소한, 용인되는 ―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청소년들이 “우리는 미성숙하지 않다.” “우리는 정치적이다.”라고 외치며 정치적 세력으로 이 사회에 자신들을 증명해 보이는 것 아닐까요? 전교조에 대한 이런 식의 공격은 청소년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어쩌면 그게 전교조에게도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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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 22. 11:37

하병수 (경기 토평중 교사)  / 2010년01월21일 16시54분



교원평가가 처음 거론된 것은 95년 5월31일 김영삼 정부가 교육시장화 정책을발표하면서부터다. 교육시장화정책 계승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교직발전종합방안에 교원평가를 포함해 공식적인 논의를시작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교육개혁의 주도권이 무기력하게도 시장 세력에게 넘어가면서 교원평가논의는출범초기부터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중심이 되어 교원평가 연구안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2005년에대대적인 여론화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여론전에서 일정한 승리감을 맛본 시장 세력과 교육 관료들은 48개 교원평가시범학교를강제하면서 사실상 교원평가를 학교개혁의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곰비임비 교원평가 시범학교를 늘린 결과 전국 1만개 학교 중에3164개교(09년 현재)가 교원평가 시범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이건 시범학교가 아니다. 교원평가의 단계적 적용이라 보면 된다.
법안마련을 위한 6자협의체 구성제안(10월12일)과 교원평가 강제실시를 위한 시・도별 교육규칙 제정을 위한교과부자문회의(1월8일)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들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성격상 늦은 감이 있기도 하다. 촛불정국이시기를 늦춰놓았을 것이다. 다만, 교원평가를 진행하려는 자들의 시나리오에 국민들뿐 아니라, 경쟁교육에 비판적인 단체들도 중심을잃은 채 서서히 포섭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원평 가에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문제(평가주체), 수업 외 평가지표 추가문제(평가영역), 인사와 보수와 연계문제(평가결과) 등다양한 문제에서 부침의 과정이 있긴 했으나, 95년 애초 교원평가를 도입하려던 시장 세력들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건재함을자랑하며 정권의 배후에서 또는 전면에서 시장화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표면적인 교원평가 도입목적은“교원의 질을 높여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교원평가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솔직한(?)이명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학생도 경쟁하고 학교도 경쟁하는데 교사만 경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교원평가도입목적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은 “경쟁하는 교사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교원평가가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을 일류학교로의 진입에 더 경쟁적으로 노력하게 만들 것이다. 교원평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모든 주체들도현재의 입시교육시스템 속에서 교원평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선 “학생, 학부모, 학교장”은 보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목표를 도와줄 교사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입시교육에 밀려난 지 오래다. 당장의 학교교육에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들도 ‘철밥통 교원’을 깨고 ,저마다 한 자락씩 간직하고 있는 ‘추억속의 못난이 교사들’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결과가 약간 부정적이라하더라도 철밥통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고, 이상한 교사는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교원평가를 찬성하게 만든다. 당사자인“교사”들은 무기력할 뿐이다. 학생들과 입시 경쟁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야자보충을 거부하지 못한다. 경쟁신화를 깨지 못하고 있는교사는 자신에게 강요되는 경쟁에도 무기력할 뿐이다. 현재 무기력한 교사들을 번뜩이게 하고 선명한 길로 이끌어가야 할 교원노조조차 교육시장 세력의 시나리오에 스멀스멀 먹히고 있다. 대중조직이니, 대중의 생각과 대세에 따라야 하는 듯 말이다.


경쟁교육이 만들어낸 비참한 한국교육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시경쟁교육의 질적인 비약에 결정타가 될 교원평가를막고 경쟁을 폐기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시장 세력들의 시나리오에 대적할 만한 것으로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국민들의 경쟁신화를 부추기고, 교사들의 무기력과 패배감을 만연시킬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개혁을 추진하기에 어려운 조건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에 지쳐있던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남한산초등학교 등 공중파를 탔던 혁신적인 학교들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장 세력들의 표면적인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가 노력해야 학교가 변할 수 있다.”
하 지만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극과 극이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혁신학교의 공통점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학생회를 만들어주어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형식화 시키지 않고 자기자녀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함께 아우르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의 학교참여를 이끌어낸 점, 교사들은 교육과정 운영에온전한 권한이 부여되고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권한을 갖고 협력하는 것이다. 또한학생들의 성적경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기평가와 일상적인 활동평가를 중심으로 평가본연의 역할을 가게 만들었다. 일체의 경쟁을비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기주도성을 신뢰하고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일관성 있게 만들어가고 있다.
교원평가는 이러한 노력과 상호모순적인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와 입시경쟁교육과 어울리는 정책이다. 경쟁교육의 강도를 드높이고 있는정책입안자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만 하게 만든다. 다소간의 긴장을 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다.오히려 좋은 정책이 끼어들 틈조차 막은 채 학교를 정체시키고 후퇴시킬 뿐이다. 철밥통을 깨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면교원평가 정책은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철밥통을 깨려하는가를 더 생각해보자. 직업과 신분의 안정은 교직뿐만아니라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자기 직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바탕이다.


한 낱 교원평가를 놓고 아웅다웅 할 때가 아니다. 현재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이 살아 숨 쉬는 학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1만 여개의 모든 학교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미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책으로 만들 주체들이바뀌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주체를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것은 권력을 바꾸는 문제이기에 당장 쉽지 않다. 현재교육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이전 정권에서도 세력을 행사해왔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교육시장화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엄청난 힘을실어주고 있을 뿐이다. 교원평가를 둘러싼 싸움은 경쟁교육을 심화시키는 사람들과 경쟁교육을 반대하고 인간화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간의 다툼이다. 인간화 교육프로그램은 충분히 있으니, 이를 현실화 시킬 시나리오를 짜고 당장 무기력에서 떨쳐 일어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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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 7. 13:41

 

 

학생인권조례는 가장 교육적인 조치

[기고] 두발자유 한다고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공현(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2010년01월07일 11시03분


너무 쉽게 망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참 쉽게 망하는 나라다. 화물연대나 철도노조가 며칠만 파업해도 나라가 흔들린다고 난리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친북 좌파들의 발호로 나라가 망할 거라고 한다. 참, 국가보안법 따위가 국가안보의 ‘최후의 보루’라니 이런 막장스런 취약 국가를 봤나. 드디어 이제는 학생들에게 두발자유를 ‘허용’하고 인권을 보장하여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나라가 망할 거라는 식의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에 경기도교육청이 발표한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다. 학생들에게 두발복장의 자유를 주는 것만으로 나라가 흔들린다니, 불안해서 이딴 나라 못 살겠다. 역시 이민을 가야 하나? -_-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발이야 익히 예상된 바이지만,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조중동문(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이나 좋은학교만들기 경기학부모모임, 한국교원노동조합,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 같은 데들이 보여준 반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김 교육감의 ‘행복한 학교’ 운운은 교육 황폐화의 둔사(遁辭)”(문화일보 사설) “운동권에서 주장하는 것과 비슷해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을 모두 운동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일부 학부모 단체들의 기자회견 내용) 등을 비롯하여, 자문위 구성에 대해 좌편향 색깔론을 제기하는 동아일보 등등. 이런 말들 속에서는 현재의 학생인권의 현실과 교육의 문제에 대한 책임감 있는 논의나 우려는 보이지 않고 막연한 색깔론 및 음모론과 ‘자유’, ‘다양성’, ‘인권’에 대한 두려움만이 난무한다. 그들은 학생인권조례가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무책임하고 별 근거 없는 말들을 내뱉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전교조와 좌익의 음모라고?

사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가장 어이가 없었던 이야기가 “학생인권조례는 전교조의 획책”이라는 투의 음모론이다. 전교조가 그렇게까지 학생인권에 우호적이고 적극적이었다면, 참 나를 비롯해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고 있을까? 내가 장담컨대, 그렇게 전교조의 음모랍시고 들이대는 ‘집회의 자유 보장’에 대해서도 전교조 조합원들 중에 좀 떨떠름해하는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다. 학생들의 학교운영 참여나 학생회 활성화에 대해 반대하는 전교조 조합원들은 많지 않겠으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다. 두발복장자유나 체벌금지 등 다른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교조가 일부 지도부나 간부의 립서비스가 아니라 전교조 조합원들 다수가 공감하는 성의 있고 실질성 있는 활동으로서 체벌금지나 두발복장자유를 외친 적은 별로 없다. 일단 전교조는 학생인권조례를 대체로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얼마만큼 그 내부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전교조의 음모가 아니라 학생인권 보장을 열망하는 많은 학생들과 인권활동가들, 개념 있는 학자들의 요구와 견해를 담은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 보편적인 인권의 기준들을 학교에 적용해놓은 것뿐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는 연구팀이 많은 국제기준이나 외국 사례들, 헌법이나 국가인권위 결정 등을 분석하고 면접조사, 설문조사 등을 통해 예시 안을 제출했으며, 발표된 초안은 이를 기초로 많은 인권전문가나 교육현장의 교육자들이 참여하여 합의한 내용이다. 이러한 근거들 위에 만들어진 학생인권조례를 비판하면서 자기들은 정작 제대로 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막연한 음모론과 색깔론으로 일관하고 있고 보수적인 편견과 감정에 호소하는 말들만 가득하니, 이 얼마나 개념 없는가?

학생인권조례가 전교조나 좌익의 음모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하승수 씨가 오마이뉴스에 썼듯이) “유엔도 좌파라고 우길 텐가?” 학생들의 집회결사표현의 자유나 참여권은 UN아동권리협약에 아예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다. 오히려 현재 발표된 학생인권조례 초안에서 집회의 자유를 학교장이 제한할 수 있게 명시해놓은 것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조항이다.(이 부분은 옥외집회의 경우 그냥 집시법에 따라 경찰에게 신고하여 하게 하면 될 텐데, 현재 한국 경찰들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보다는 금지하는 쪽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합의점으로 보인다.) 또한 체벌금지나 인권에 부합하도록 학칙을 개정할 것 등은 UN아동권리위원회 등이 한국 정부에 매번 권고해온 사안이다. 이런 내용들을 놓고 전교조의 음모라느니 좌익의 망국이라느니 설레발치는 것은 “우리 우익은 인권 개념도 없고 국제 감각도 없습니다.”라고 자폭하는 꼴이다. 만약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세력 중에 정치적 성향이 좌파인 사람들과 단체들이 많다면, 그건 한국에서는 좌파들이 인권감수성이 더 뛰어나고 국제 감각이 더 훌륭한 탓일 것이다.


인권은 교육의 전제조건이자 목표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교육에 해가 된다는 주장도, 교사들의 교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해괴하기 그지없다. 학교는 본래 쩌는 입시 공부를 하는 입시 학원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는 곳이다. 교육기본법을 봐도 그렇고, UN아동권리협약을 봐도 교육의 목표는 그렇게 명시되어 있으며, 교육의 방식이나 학교의 운영, 규율도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UN아동권리협약 제28조, 29조) 이러한 가치들을 도외시해가면서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이야기는 학교의 본래 목적을 배반하는 일종의 ‘패륜적’ 드립인데, 대놓고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므로 강제성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꼴을 보니 이게 얼마나 무개념한 발언인지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것 같다.

학생들에게 규칙을 지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불합리한 교칙도 필요하다는 주장은 참으로 독재정권스럽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조건적 준법, 부당한 규칙이라도 닥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할 능력이다. 인권을 개무시하고 학생들을 개고생시키는 잘못된 규칙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권을 지키며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스스로 함께 만든 규칙을 함께 지키는 것을 배우게 해야 제대로 된 인권교육이요 민주주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책임감 없는 사람을 만들 것이라는 말도 비논리적이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놓은 대로 말하는 대로 따르는 노예를 만드는 일이다. 자유가 없이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요, 진정한 책임을 교육할 수 없다. 자기 머리카락이나 옷 입는 것 하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얼마나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인 자유가 인권이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 보장은 교사들의 권리에도 친화적이다. 학생들의 두발복장규제 등 교육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면서 과중하고 불합리한 생활지도 업무에 노출되었던 교사들의 노동조건이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명시하고 있는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 등은 동시에 교사들의 노동환경 또한 개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을 보장하며 필요최소한의 규제만을 가지고 운영되는 학교가 교육에 더 효율적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교권조례도 같이 만들라고 하는 교사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지지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항하고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의 교권조례가 아니라, 학생인권조례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함께 더 잘 학생들의 인권과 교사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로서 교권조례는 바람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학생들을 교사들의 원수보듯이 하고 학생인권과 교권이 대립하는 걸로 파악하는 인식은 교권이 보장되지 않고 학생인권이 무시당하는 학교 현실이 일으키는 착시현상이다.


다양성과 자율, 인권이 보장되지 못한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좀 더 교육다운 교육을 만들어가려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인권은 교육의 전 과정에서 실현되어야 할 조건이자 교육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가장 교육적인 것이 가장 인권적인 것이다. 경기도지역 학교의 안습적인 학생인권 상황(내가 학생들로부터 들은 체벌 때문에 뼈가 부러져서 입원한 이야기나, 두발규제 과정에서의 강제이발 사례, 복장규제 과정에서의 변태스런 규제 등등을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을 굳이 하나하나 말하면서 독자들의 그로테스크한 취미를 만족시키지 않더라도, 200대 체벌이 언론을 타지 않더라도(200대를 때리든 1대를 때리든 체벌은 폭력이다. 폭력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체벌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을 위해서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두발자유 보장으로 망하는 빈약하고 괴상한 사회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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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발자유 한다고 나라가 안 망해서야 쓰나!
    하긴, 두발자유만으론 망하진 않겠지만 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초석이야.
    가장 중요한 건 더 이상 그런 걸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런 걸로는 고통받지 않게 된다는 거겠지만.
    (더 열심히 해서 다른 것들도!)

    2010.01.07 14: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머 본문을 읽어보렴. 난 두발자유 해도 나라가 안 망한다고 쓰진 않았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목은 참세상에서 편집하면서 붙인 거고;
      두발자유로 안 망할 만큼 다양성 있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라고 결론에서 언급했을뿐

      2010.01.07 16:44 [ ADDR : EDIT/ DEL ]
    • 장난삼아서 단 댓글에 뭔 다큐로 받고 그러시나 ㅋㅋㅋㅋ

      2010.01.08 21:43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니까 나도 장난으로 단 거지. 어머.

      2010.01.08 23:36 [ ADDR : EDIT/ DEL ]
    • 우히히히
      장난 치곤 진지해보였어.

      2010.01.09 23:02 신고 [ ADDR : EDIT/ DEL ]
    • 아프다더니, 이런 댓글 달 수 있는 걸 보니, 소식지도 만들 수 있겠네? ^^ 얼른 좀 만들지?

      2010.01.10 08:54 [ ADDR : EDIT/ DEL ]
    • 어느새 소식지 내용이 된ㅋㅋ 그러고보니 소식지는 어찌되는 것인가?

      2010.01.11 21:10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10. 1. 5. 19:19

한겨레21에 실렸던 추천 글의 원본...이랄까
실제로는 분량 문제로 더 간결하게 줄였고 좀 덜 박하게 보냈다.
그리고 내가 순화한 버전 이후에도 문학동네->한겨레21을 거치면서 순화된 부분도 있는 듯 -_-



김진경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10,000원


드문 청소년 SF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종종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다. 영화 데몰리션맨도 그렇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한국의 청소년 소설로서는 드물게도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교육이, 사회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치닫게 되면 근미래에 어떤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지를 현실에 밀착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리얼한 SF'이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를 칭찬/추천하라고 하면 (약간의 과장을 곁들여) 청소년 소설로쓰여진 한국판 『1984』(조지 오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지하도시, 거주지역 불평등, 시계모자, 언론통제,경찰폭력, 그리고 뒤바뀐 낮과 밤.... 등등의 장치들은 독자들에게 지금 사회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장치들은 참신하기 때문에 놀라운 게 아니라, 익숙하기 때문에 놀랍다. 강남과 비강남, 임대아파트와 안 그런 아파트, 분당과 성남 등 이미 존재하는 거주지역에서 드러나는 불평등이 1구역 2구역 3구역 지하도시.. 하는 식의 소설 속 설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현실의 한국 정부의 미국 따라하기 행태는 소설 속의 미국 시간에 맞춰 뒤바뀐 낮과 밤과 직접 연결된다. 시계모자의 도입 과정은 학원과 과외에 쩔어 있고 이미 입시사교육화된 학교의 모습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 소설 속의 설정들은 새롭게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다. 곳곳에 이명박 정부라는 당장의 현실을 의식한 설정들도 눈에 띈다.


좀 아쉬운 캐릭터와 스토리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회적 현실과 설정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다보니 캐릭터가 약하다.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캐릭터의 심리, 감정에 잘 몰입이 안 된다. 캐릭터가 단순해서 '이해'는 잘 가지만 깊이가 부족하고 인상이 흐릿하다. 가끔씩은 사건 전개가 억지스러운 것 같고 개연성이 부족할 때도 있다.(예를 들어 대체 중앙시계탑 앞에 화살은 왜 계속 둔 건가?;) 어느 헐리웃 영화에선가 본 듯한 식상한 장면들이 반복될 때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런 단점들은 소설적인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불만사항이 될 수 있다. 교육문제, 사회문제를 '시간'에 대한 통찰로 대체한 것 등은 김진경 씨의 철학적 내공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런 담론적인 풍부함과 참신함에 비해 인물이나 이야기구조는 빈약한 불균형이 느껴진다. 김진경 씨가 꽤 훌륭한 이야기꾼인 건 맞지만, 아직 이런 식의 장편 소설을 박진감 있게 구성하고 끌고 가기에는 좀 내공이 부족한 것 아닐까 싶었다.


사회적 정치적 소설로 읽을 가치는 충분

어쨌건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사회적 정치적 텍스트로 읽기에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원래 SF란 사회적, 정치적 성격이 강한 장르가 아니던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교육 문제와 사회 문제가 하나로 엮여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이 소설은 청소년들이 직접 중앙시계탑을 부수는 클라이막스에서 마무리함으로써 ‘시계모자’를 없애는것(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웅변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과 저항을 강조한다.

물론 중앙시계탑이 부서졌다고 해서 소설 속의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모두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결말은 마치 작가가 독자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읽힌다.
중앙시계탑이 파괴되는 사건으로 혁명의 시위는 당겨졌다. 이 혁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그 결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덧 :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나올 때는 좀 웃은;
뭐 어쨌건 어떤 면에서는 이 소설은 (청소년)인권운동이나 88만원세대 등의 담론들에 약간의 빚을 지고 있다.

덧2 : 이 소설을 내가 처음에 추천사 쓰려고 원고 상태로 받았을 때는 "태양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지금도 그 제목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라니;

덧3 :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게, 그럼 김진경 씨는 참여정부 때 얼마나 잘 했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까는 부분 읽을 때마다. 참여정부 때 교육정책을 얼마나 잘 폈나? -_- 이명박 정부보다야 잘 했겠지만- 그건 자랑거리라고도 하기 어렵지 않을까. 김진경 씨는 얼마만큼의 자기 반성 위에 이런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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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0. 11. 22:02


또 반복되는 일제고사에 대해, 사진들과 같이 만든 포토에세이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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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랄라

    우선 이 댓글은 위 글 또는 블로그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공부를 조금 더 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상이야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보통이기는 한데,

    적어도 정보의 섭취는 편식하면 곤란하지요.

    요즘 유윤종씨의 글을 보면 근거 자료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있는 것 같군요.

    예전과는 다르게 논리적 모순도 많이 보이고 말입니다.

    결론은?

    그냥 뻘플이라는...(흐흐흐...)

    2009.10.12 15:31 [ ADDR : EDIT/ DEL : REPLY ]
    • 활동가니까요. 활동가라는 포지션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는 불만이 별로 없습니다. 특정한 정세에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올리는 글들이니까요.

      근데 공부야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할수록 좋겠지요? ^^ 뭐 저는 제가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 공부할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한테 공부는 수단이니까요.

      근거 자료가 치우쳐져 있냐 어쩌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자료가 타당하냐 타당하지 않냐가 중요하지요. 반대되는 근거가 있으면 제시하시면 됩니다. 제가 무슨 연구자도 아니고 모든 정보를 다 종합해서 분석할 입장도 아니고, 정보를 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 생각지 않습니다. fact를 벗어나지 않는다면요.

      그리고 "논리적 모순"이 보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논리적 모순인지를 논리적으로 지적하시기 바랍니다. '모순'이란 말이 포괄적으로 남용되는 말이긴 합니다만 - 사실은 뭉뚱그려서 지적해도 될 만큼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닐 텐데요?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논지가 중복되거나 어느 정도 상충되거나 정리되지 못한 글들이야 제법 많겠지만 명확하게 '논리적 모순'이 있는 글은 잘 못찾겠네요. '요즘'에는 바빠서 제가 직접 쓴 글 자체가 별로 많지 않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렇게 써놓고 "그냥 뻘플이라는..."이라고 달아서 그냥 넘어가려는 모습이 마치 헌법에서 노동3권 빼자고 했다가 나중에 취소한다고 하신 누구를 연상시키기도 하네요. 수습용일지 몰라도, 그런 태도가 불쾌한데요? 그런 식으로 다시지만 않았어도 그리 '불쾌'하게 받아들이진 않고 그냥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법도 합니다만.

      제가 이렇게 날 서게 말하고 "뻘플에 대한 뻘답일 뿐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하면 되는 거겠죠? ^^

      (애초에 저를 이 공간에서 '유윤종씨'라고 부르는 것에서 오는 몰이해에 대한 불쾌감에 더해서 말이지요.)

      2009.10.12 21:04 신고 [ ADDR : EDIT/ DEL ]
    • 흐흐흐 ggg

      흐흐흐 .....예날에 울 마을엔 미친넘이 있었는데...매일 같이 흐흐흐...하면 웃고 다녔어요.....흐흐흐...미친넘이지요...흐흐흐...

      2009.10.13 09:19 [ ADDR : EDIT/ DEL ]
    • 라랄라

      흐흐흐 ggg / 님은 정말 미치신듯?

      불쌍하네요.

      공현 / 우선, 이 공간에는 이 공간에서 본명을 밝히는 것이, 공현씨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어떠한 정보도 없는지라, 본의아니게 무례를 범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편식하게 되면, 과연 이 정보가 Fact인가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보의 편향된 섭취와 그로 인해 왜곡된 사실(공현씨의 글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을 교조적으로 강요하는 행태는 소위 좌파 혹은 진보 지식인들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고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저 역시 공현씨의 방향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한 사람이고, 일정 부분의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방향의 활동가들에게서 보여지는 지나치게 배타적인 태도와 교조주의에 끔찍할 정도의 거부감을 가지고있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그가 옳은 점은 무엇이고 그른 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류의 종교적인 오만함으로, 상대방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더군요.

      대략 5년 전(?) 즈음의 공현씨에게서는 적어도 이런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고, 글도 비교적 다수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완성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이 많아서 사람이 날카로워진 것인지,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가 보이는 듯 하고, 글은 예전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논리적 모순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글의 완성도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좋겠군요. 이점은 유감입니다.)이기에, 이런 글을 적어본 것이지요.

      공부하라는 말은, 위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의미이자, 조금 쉬어 가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제 댓글이 상당히 경직되어있는 듯했고, 잘못하면 수구로 인식될 소지가 있어서, 나름 위트를 주기 위해 사용한 뻘플이라는 표현을 수습용으로 받아들이셨다니 역시 유감입니다.

      필답에서의 감정 표현이 쉽지 않군요.

      2009.10.14 12:58 [ ADDR : EDIT/ DEL ]
    • '본명'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쾌한 게 아니라요.
      일단 '윤종'이 아니라 '유윤종'이라고 성을 붙인 것에 대한 불쾌감도 있긴 하지만,(제가 성을 일부러 안 쓰니까요.)
      그런 걸 떠나서 '라랄라'님의 덧글을 보면 '라랄라'님이 평가하거나 논의 대상으로 삼는 건 제가 쓰는 글이거나 제 블로그의 내용인 것 같군요. 일단 온라인 외의 공간에서 저를 잘 알고 있거나 저와 면식이 있는 분이 아니라고 느끼는데, 그렇다면 제 상식에서는 제가 온라인이나 블로그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인 '공현'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라랄라'님의 의도를 추측할 수는 없지만,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굳이 '공현'이 아니라 '유윤종'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의도가 의심스럽달까 불쾌하달까 그런 거죠. ^^

      2009.10.15 22:16 신고 [ ADDR : EDIT/ DEL ]
    • 정보를 편식한다고 하신 의미 자체가 모호하긴 한데, 특정한 정치사회적 입장에서 생산되고 편집된 정보를 많이 접한다, 라는 의미라면, 글쎄요 그자체만으로 그 정보가 fact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건 '편식'이라는 말의 범주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느낌입니다만. 어떤 정보의 사실성이나 해석이 쟁점이나 논쟁거리가 될 경우에 그것에 상반되는 자료들을 참고하거나 찾아보기를 거부한 기억도 없고 말입니다.
      뭐 외국 사례 같은 걸 일부 정보를 편집된 걸로 잔뜩 짊어지고 오는 것도 아니고,(전 고의로 외국 사례는 잘 논거로 안 쓰려고 합니다만) 기본 정보에 속하는 1, 2차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정보의 '편식'이 어째서 정보의 사실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지를 막연하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먼저 논하셔야겠군요.


      제 입장에서는 교조주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딱 잘라 말하실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태도가 독선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이전에- 이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고 또 고수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독선적이라거나 배타적이라거나 교조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질적인 차이가 있는 걸까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나 표현의 차이이거나 서있는 맥락-위치-역할의 차이이거나 정도의 차이는 아닐까요?
      타인에 대한 존중,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이라는 말은 타인이나 다른 의견에 대한 불간섭, 무관심을 의미하는/전제하는/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라이어게임>에도 나오지요?) 상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독선적이거나 교조적이거나 배타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결국 일종의 전략적인 문제제기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독선, 교조, 배타성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도덕판단이 아니라 말이지요. 그 태도나 표현 방식 등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같은 게 아니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태도나 표현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대한 비판이어야 온당할지도 모른단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판단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수단적인 문제라면 '끔찍한 거부감'을 가지신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교조주의나 독선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필요하게 될 겁니다.
      (* 라랄라 님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일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에는 태도상으로는 '안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이긴 한데)

      "배타주의나 교조주의는 안 된다"라는 교조주의에 대한 회의에까지 나아가지 못하신 분에게 더 이상 많은 것을 설명하기가 귀찮다, 라고 말하는 것은 교조주의이려나요? ㅋ
      근데 또 저의 삶은 대부분의 경우에 저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계몽'이긴 합니다. 제 '계몽'은 내가 진리니까 멍청한 니들을 인도해줄게, 라기보다는 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동일화해나가는 과정이긴 한데- 이게 실제로 구별이 딱 되시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요 ㅎㅎ


      글의 완성도가 다수에게 공감을 받냐 안 받냐로 판가름 나는 것이거나, 또는 완성도가 높은 글이 공감하는 수를 늘려준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ㅂ-
      왜 완성도를 논하는 것과 공감하는 사람의 수가 연결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완성도를 판별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제 글의 경우에는 혼자서 수필 쓰던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그다지 다수에게 공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라랄라님이 말씀하시는 '다수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의 실체가 궁금하긴 한데, 일부러 기획적으로 맥락에 맞춰서 시류에 편승해서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쓴 글이 아니라 제가 제 사상 체계의 일부를 날 것으로 드러낸 글이거나 청소년인권에 대해서 래디컬한 입장에서 쓴 글은 항상 그다지 다수의 공감이나 지지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지나 공감은 글의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글의 내용이나 메시지, 또는 제가 얼마나 눈치를 봐가며 썼느냐의 문제가 더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데요 ㅎㅎ
      글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지적 자체는 동의합니다. 글을 쓰는 데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과 사유, 표현과 구성을 다듬을 수 있는 여유 자체가 부족하니까요. 정권을 바꿔주시면 짬이 좀 더 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문제 외에도 제 사유 자체가 복잡해지고 넓어지면서 그 사유의 맥락에서 일부만 잘라다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논리적 모순"이 조금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 라고 하고서 이런 어휘 선택을 잘못하신 것을 가지고 '유감입니다'라고 자평하시는 건 역시 적절한 어휘 선택이 아닌 듯합니다. ^^;;;
      저는 이런 식의 격식을 차리는 듯한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아, 참- 저는 제 일을 실질적으로 줄여줄 수 있고 그렇게 같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쉬엄쉬엄하라거나 좀 쉬어가라거나 하는 말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수용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씀만 고맙게 듣겠습니다. (그런 걸 수용하려고 노력하다보면 화딱지만 나거든요)


      마지막으로
      경직된 내용에 대해서 내용을 경직되지 않은 방식으로 고치거나 경직된 내용을 그대로 밀고 나가지도 않고, '수구'로 인식될까봐(근데 저는 저에 대한 비판이 '수구'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걱정이었다면 그냥 그런 걱정을 솔직하게 쓰시면 될 것을, '뻘플'이라는 자기 덧글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방식으로 덮으려고 하는 것(이런 게 '수습'이 아닌가요? 제가 알고 있는 '수습'의 의미가 좀 다른가봅니다)은 그리 바람직한 방식은 아닌 듯하다고 말씀드려봅니다.
      세간의 상식과는 항상 차이를 보이지만 제 상식에서는, "뻘플"처럼 자기 의견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식으로 정리하는 게 필요한 건 자기가 과하게 권력/권위를 가지고 있거나 자기가 발언하는 것이 지나친 영향력을 가질까 조심스러울 때 보통 쓸 만한 방식이지, 경직되어 있는 걸 부드럽게 하거나 '잘못하면 수구로 인식될 소지'가 있어서 예방하거나 할 때 주로 사용할 만한 방식은 아닌 듯합니다. 위트라고 하셨지만 그리 재미있지도 않았고;;

      2009.10.15 22:46 신고 [ ADDR : EDIT/ DEL ]
  2. 우왕 퍼가요 진보넷채널으로 ㄹㄹ

    2009.10.12 16:0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0. 8. 11:15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 No의 한 청소년이 쓴 글입니다. 레디앙, 프레시안 등에 실렸네요.

일제고사 이후로 중학교도 방과후학교가 강제보충수업화되고 있고 시험 대비한다고 모의고사보고 온갖 괴악한 짓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학교 현장에서 학생이 전해온 이야기들이 일제고사의 폐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디앙에 실린 글을 퍼옵니다. ^^ (레디앙은 카피레프트니까;)










"난 죽고 싶지 않다"
[일제고사 반대①] "우리가 좀비냐?…공부 싫은 투정이 아닌 살겠다는 것"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되고 있는 일제고사가 오는 13~14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치러질 예정이다. 앞서 몇 차례의 일제고사과정에서 벌어진 교사해직문제 등 부작용이 명백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 측은 일제고사를 강행하려 하고 이에 대한 교육운동진영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 모임 ‘Say-No’는 학생과 학교 간의 경쟁을 가속화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3회에 걸쳐 기고 연재한다. 그 첫 순서로 인천의 중3학생의 글을, 이후 학부모와 일제고사로 인해 해직당한 교사의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Say-No’ 등 교육운동진영은 릴레이 기고 외에도 일제고사에 맞춰 등교거부 / 체험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연재는 <프레시안>에도 공동 게재된다. - 편집자 주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 이명박 같은 아이야’라는 말은 욕으로 통한다. 뭐, 그런 정도다. 내가 상당히 바쁜 와중에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우리 이야기를 하면 ‘가카’가 좀 제정신을 차릴까 해서다.

어차피 익명인데 할 말은 해야겠다.(실명으로 썼다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두렵다.) 작년에 일어난, 일제고사로부터 비롯된 참극을 보고도 또 일제고사를 치게 할 맘이 들까? 아, 정말 우리 '가카' 탄핵을 해서라도 좀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카'를 말리고 싶다.

“헬 오브 지옥”이라는 영화 제목을 아는가? 지금의 학교를 묘사하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적절한 어휘다. 일단 내 학교만 예를 들어서 봐도, 등교시간이 빨라지고, 6교시까지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하다 7교시 방과 후 학교, 8교시 자습이 반강제다. 후덜덜.

참고로 이번 일제고사 성적이 나쁘면 야자까지 할 수도 있다는 악의 수괴(통칭 교장)의 협박이 수 차례 들려오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몇몇 학교는 벌써 하고 있다고 한다. 후덜덜. 그 학교 학생에게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 사진=교육공동체 '나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시내에서 벗어난 지역이기도 하고, 고등학교도 거의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가는 식이라 경쟁 자체가 적다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방과후 프로그램에 비교과 프로그램이 구색맞추기나마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아놔, 올해 들어서 갑자기 전학년 일제고사대비프로그램이다.

거기다 다짜고짜 8교시 자습이다. 그뿐인가? 갑자기 단속도 심해졌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 교사의 지도에 불응한 학생, 복장 두발이 교칙에 어긋나는 학생, 수업시간에 분위기를 흐트리는 학생, 결과(땡땡이)한 학생, 지각생, 전부 모아다가 3교시 끝나고 운동장 한 구석에서 오리걸음 시킨다. 후덜덜. 그거 30분만 하면 5교시 음악수업에 계단을 오르지 못해 지각하는 불우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외에도 여러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선생들은 ‘아놔 8교시까지 수업해야 함’ 하고 울상이고, 학생은 ‘......살려줘요’ 하고 죽을 상이다.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가만 생각하고 있자니 요즘 유행가 구절이 떠오른다.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어, 아직 쓸만한 걸 죽지 않았어, 그런데, 너 하나 때문에 망가진 몸, 사라진 꿈, 불타는 맘’ 공감 100% 아닌가?

시험지옥 속에 바보들의 행진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대한민국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또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학생으로서 일제고사에 반대한다. 반대하는 이유? 우선,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험은 1년 4번으로 많다는 거다. 그 이상 보면 나 울지도 모른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돌연변이도 간혹 있는 모양이지만, 공부는 상당히 힘들다. 특히 시험이 주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보통 시험 보기 2~3주 전부터 시험기간이라 하여, 시험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데, 이때 학원에서 내는 숙제, 공부하라는 부모의 잔소리, 잘 봐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 등이 겹쳐진다. 내 경우는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불안으로 손톱을 물어뜯기도 한다. 시험이 끝나면 성한 손톱이 없을 정도다.

스트레스뿐인가? 하루에 대부분을 공부는 안 하더라도 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책상에 갇혀있게 된다. 그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아프다. 중3인데.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친구와 생기는 묘한 분위기. 내 친구가 나보다 시험을 잘 보면,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심한 경우는 그걸 원인으로 싸움이 나기도 한다.

이딴 시험을 줄일 생각을 해야지, 늘리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가? 이미 수행평가에, 중간기말고사에 시험은 너무나 많았다. 일제고사 시험은 내신에 반영이 안 되니까 부담이 없을 거라는 건 헛소리다. 내신에 반영하겠다는 학교들도 많고, 제대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라는 학교의 압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충 봤다가 미달이라도 나오면 수치스럽기도 하고, 강제로 보충수업에까지 끌려가야 한다.


학생들을 숫자로 만드는 일제고사

두 번째로, 일제고사는 우리를 줄세운다. 학교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숫자이다. 내가 부른 노래도, 내가 그린 그림도 모두 수행평가점수라는 숫자가 된다. 나의 학교생활에서의 태도도 ‘태도점수’라는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의해 ‘나’도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 숫자들에 순위가 매겨지고, 그 순위로 평가된다.

뭐, 사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순위니까. 그 순위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그러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 대학에 가지 못하면, ‘무능한 놈’이 된다. ‘필요 없는 놈’이 된다. 그러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죽어라고 공부만 해야 한다. 몇 명이 그렇게 한다면 나머지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뒤처지니까.

   
  ▲ 사진=교육공동체 '나다'

일제고사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줄을 세우면 이런 식으로 공부만을 강조하고, 공부만 해야 한다는 풍조가 퍼질 것이다. 결국 이제는 중3부터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만 한다. 일제고사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일제고사가 지나고 남는 것은 피폐해진 심신과, 앞으로 펼쳐질 지옥 같은 공부의 나날뿐이다.

이러한 공부의 나날들이 펼쳐지게 되면 또 사교육이 엄청나게 판치게 될 것이고, 그 사교육과 공교육의 틈새에서 학생들만 죽어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죽고싶지 않다. 나는 그런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죽음의 낭떠러지를 향하는 바보들의 행진에 반대하는 것이다.

난 죽고 싶지 않다

일제고사, 전국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과목의 같은 문제를 푸는 것, 우리가 무슨 좀비냐? 다 똑같이 그러고 앉아있게. 그런 식으로 해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코메디다.

권력자들의 웃기지도 않는 촌극에 도대체 왜 우리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학생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어떻게 하면 종이 몇 장에 인쇄된 선택지 5개 중 하나를 고르고, Tom이 전화를 건 목적을 알아맞히고(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석출된 붕산칼륨의 양을 구하고, 삼각형의 높이를 구하고,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운 목적을 알아맞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이 일제고사 시험 성적으로 평가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불가능하다.

일제고사를 계속 강행하는 것은 그냥 우리를 죽이겠다는 심산이다. 아니, 의도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은 죽어나가게 되는 시험이다.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공부에 깔려서,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학원에 치여서 죽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일제고사에 반대한다. 일제고사는 원래 입시지옥에 살던 학생들을 ‘헬 오브 지옥’, 지옥 속에서도 더 지옥에 처넣는 첫걸음이다. 이것은 단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들의 일시적인 반항이나, 공부하기 싫은 것들의 투정이 아니다. 한 번 살아보겠다고, 그저 한 번 살아보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인 것이다.


2009년 10월 06일 (화) 15:48:06 인천의 중3학생 / Say No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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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른들이 후손의 미래는 생각치도 않고 투표를 거지같이 한 결과죠.

    2009.10.08 15:24 [ ADDR : EDIT/ DEL : REPLY ]
  2. 뭐야 이 잉여들은;;

    보기싫으면 처 보질 말든가....누가 납치감금폭행협박이라도 한건가?? 지 꼴리는대로 처 살다가 나중에 아파트 돌며 닭배달을 하든말든 그건 지인생이잖아???
    말하는 꼬라지가 마치 자기는 너무나도 일제고사를 보기 싫은데 누가 의자에 묶어놓고 강제로 보게하는듯???

    2009.10.08 16:59 [ ADDR : EDIT/ DEL : REPLY ]
    • 아파트 돌며 닭배달하는게 뭐..?

      너 닭시키지마..

      꼭 이런것들이 반마리 배달해달래..

      시키면 넌 산 닭 가져다 줄꺼야..

      2009.10.08 19:02 [ ADDR : EDIT/ DEL ]
    • 우와 십랔ㅋㅋㅋㅋ 산 닭 무섭닼ㅋㅋㅋㅋㅋㅋㅋ

      2009.10.08 20:10 [ ADDR : EDIT/ DEL ]
    • 1. 네! 안 보면 폭행 협박이 일어납니다. 체벌이나 훈계나 징계 등등의 이름으로요. 교사의 경우엔 해임도 하더군요. 벌써 여러건 그런 게 알려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런 강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하는 것 자체에부터 이미 강제적인 면이 있습니다. 출석부터가 반강제적이니까요.

      2. 개인적 차원에서 직접 강제를 하든 안 하든,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이런 시험을 도입해서 '다수의' 학생들이 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폐해는 충~분히 큽니다.

      3. 그런 식으로 따지면 시험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거나 과로사하더라도 '그건 지 인생'이겠네요?

      2009.10.09 14:08 신고 [ ADDR : EDIT/ DEL ]
  3. 사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자칫 '철모르는 어린친구의 치기' 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건 어른들이 나서서 반대를 해줘야 하는데
    이나라의 어른들은 정말 매정하게까지 보입니다.

    2009.10.08 17: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른, 학생 할 것 없이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저항이 하나하나 개별화된 형태가 아니라 조직적인 형태로 가능해야 할 텐데 그런 부분이 아직 부족한 건 아쉽습니다.

      2009.10.09 14:08 신고 [ ADDR : EDIT/ DEL ]
  4. 잉여인간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글 아까 기사에서도 봤고 지금 두 번째 보면서 암만 생각을 해봐도..
    '일제고사=죽음' 이라는 논리 자체가 이해가 안간다.
    그냥 공부하기 싫고 억지로 잡혀서 자습하는게 싫어서 징징거리는거잖아?

    그럼 내가 하나 묻자.. 일제고사 없어지면 무한경쟁, 줄 세우기가 없어지냐? 아니면 대입제도가 없어지냐?
    뭐 일이 졸라게 잘풀려서 대입제도까지 없어졌다 치고, 고등학교 대충 들어가는 것처럼 대학도 대충 가는 시대가 온다 치면..
    대학에서 보는 중간, 기말, 퀴즈, 과제, 발표, 논문, 영어점수, 자격증, 인턴, 취업 등 경쟁은 어떻게 할래?
    그것도 싫다고 죽겠다고 징징댈래?

    설마 실력을 쌓아 경쟁할 생각도 안하면서 남들이 힘들게 얻어낸 명문대학, 일류기업, 높은연봉을 바라는건 아니지?
    저런 것들을 얻는다해도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지만, 절대 노력과 경쟁 없이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 중고등학생하고 세대 차이가 이정도로 날 줄은 몰랐네. 이런식으로 징징거려봤자 달라지는건 아무 것도 없다.
    시험 1년에 몇 번 더 본다고 안죽는다. 약한 소리 하지마라

    2009.10.08 20:08 [ ADDR : EDIT/ DEL : REPLY ]
    • 포스팅한 사람이 중고등학생이 아니니 낭패.

      2009.10.08 20:11 [ ADDR : EDIT/ DEL ]
    • stcat / 어머 그래도 저도 3년전까지 고등학생 -_-

      잉여인간 / (님 같은 친구 사귄 기억 없는데 반말 찍찍하시는 게 불쾌하게 하네요 ^^)
      억지로 잡혀서 자습하는 거야 물론 싫죠. 그런 게 싫다고 말하고 거부한다고 말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일제고사가 없어진다고 무한경쟁, 줄세우기, 대입경쟁, 취업경쟁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생겼기 때문에 무한경쟁, 줄세우기, 중고입경쟁 등이 더 빡세진 것도 사실입니다.
      매운 라면에 고추가루와 후추를 팍팍 치는 사람에게 고추가루와 후추를 더 치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게 더 안 친다고 라면이 덜매워지냐고 묻는 것 같은 우문이군요.

      그 "실력"의 기준, 방식과 "경쟁"의 이유와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고, 그런 식의 경쟁이 일으키고 있는 폐해도 심각합니다. 특정한 교육 시스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를 인생 일반, 노력 일반으로 환원해서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삶을 열심히 산다거나 노력을 한다거나 그런 것 자체를 부정하는 말은 이 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험 1년에 몇 번 더 본다고 해서 사람 하나하나가 죽진 않겠지만 자살/과로사/건강악화/정신피폐 등은 확실하게 증가합니다.

      // 그리고 이건 세대차이가 아닙니다 잉여인간님이 몇년생인지는 모르겠지만, 1980년대 90년대에도 이런 절규를 남기고 죽은 학생들, 그리고 이런 것에 저항한 학생들이 분명히 다수 존재했습니다.

      2009.10.09 14:16 신고 [ ADDR : EDIT/ DEL ]
  5. 리잔느

    단편적 지식이 전체적인 앎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까
    구슬만 모아서 꿸 줄 모르면 아무 쓸모 없음

    그냥 구슬을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 그 측면만을 강조하는게 에러

    2009.10.09 09:29 [ ADDR : EDIT/ DEL : REPLY ]
    • 구슬이 아니라 쌀이나 피자나 포켓몬 카드나 조미료나 라면스프를 모을 수도 있어. 꼭 모으는 방식이 아니어도 되고.

      2009.10.09 14:16 신고 [ ADDR : EDIT/ DEL ]
    • 리잔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2009.10.09 15:08 [ ADDR : EDIT/ DEL ]
  6. 퍼가요 ^^

    2009.10.09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7. 2. 19:24



교사들과 학생·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가 물로 보이니?

-교사시국선언 대량징계 탄압에 대한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의 입장-

  

 지난 6월 18일 1만6천여 명의 교사들이 민주주의의 후퇴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등을 비판하는 교사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26일 교과부에서는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문제 삼으며 서명을 주동하거나 서명에 적극 동참했다고 판단되는 교사 88명을 선별해서 해임이나 정직 등의 중징계를 하고 검찰에 고발을 했다. 더군다나 정부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서한을 전달하려고 하는 교사들 16명을 연행하기까지 했다.

  교과부가 이번 징계의 주요 근거로 삼고 보수 단체 등이 교사시국선언을 비난한 주요한 논거 중 하나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교사의 '정치활동 금지'이다. 그들은 그 핑계로 항상 청소년들을 걸고 넘어가곤 한다. ‘정치적인’ 교사에게 순진한 청소년들을 물들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비정치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고 ‘정치적 백지 상태’여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사들에 대한 어이없는 징계에 화가 나는 동시에, 그 징계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와 자율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까지도 교과부, 교육청 등에서는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는 집회나 촛불집회 등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활동을 할 때마다 전교조가 선동했다는 등 전교조 배후설을 만들어서 ‘순진한’ 학생들을 나쁜 교사들이 선동한다고 헛소리를 해댔다. 청소년들을 무슨 정치적 아메바로 여기는 것인가? 우리는 최근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을 비롯하여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들이 학교와 정부에 의해 탄압당했던 것과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탄압당하는 것이 같은 맥락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학교들은 교사들과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모두 ‘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육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이자 도구가 되었던 나치 독일 등의 역사적인 사례 때문에 나온 개념이다. 이는 교육이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거나 교사나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교육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되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한 개념이다. 오히려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들 입맛에 안 맞는 교과서를 다 뜯어고치게 하고 정부정책을 학교에서 홍보하게 하며, 자기들 말 안 듣는 교사들은 다 해임시키고 있는 교과부에게 적용할 만한 조항인 셈이다. 지금 교과부에서 전교조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들먹이는 ‘정치적 중립성’은, 지금 정권의 입맛에 잘 맞게 버무려 먹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징계에 항의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조차 짓밟은 정부의 행태는 이처럼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만 허락하겠다는 폭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정치적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며, 정치적이지 않을 것을 강요당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답게 살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작년 촛불집회 당시에 광우병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학생을 두들겨 팬 교사처럼 교사가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특정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강요가 아닌 이상, 교사들도 정치적인 권리가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 또한 순진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학교의 교육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교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꼭두각시도 아니다. 우리는 학교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말하거나 활동할 자유가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도 교사들도 당연히 그리고 충분히 정치적인 존재들이다. 청소년, 특히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와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가 꽃피고 다양한 사상들이 이야기될 수 있는 학교를 원한다.

  1. 시국선언에 참가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즉각 중단하고, 징계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가 연행당한 교사들을 석방하라! 

2. 교사들과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억압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법과 학칙을 폐지하고 교사와 학생 모두의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


2009년 6월 30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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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9.07.04 11:3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3. 22. 11:40


계속되는 막장시험 일제고사의 압.박.

 “일제고사”라는 걸 처음 들어보신다구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전국연합학력평가> <전국교과수준진단평가> 이런 시험들이 바로 일제고사랍니다. 일제고사는 전국에서 모든 학생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로 일제히 보는 시험들을 부르는 말이에요. 이런 시험을 보면 학생들의 전국 등수, 학교들의 전국 등수가 좍~ 나와버리죠. 올해엔 3월31일에 초등.중학생들이, 10월, 12월에
초중고교생들이 일제고사를 볼 예정입니다.


학생은 죽어나고... 교사는 쫓겨나고...

그깟 시험 좀 보면 어떠냐구 요? 하지만 일제고사는 보통 시험이 아니에요. 일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死) 시험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죠!

일제고사가 계속되면 초중고에도 서열과 학벌이 생겨요. ‘명문초등학교’,‘꼴통중학교’가 생기겠죠. 학교들은 ‘명문’학교를 만들려고 학생들을 쥐어짤 것이고,면학분위기를 조성한다며 두발복장규제나 체벌 같은 인권침해도 심해지겠죠. 이미 여러 학교들에서 강제야자,보충수업이 강화되고 있고, 장애학생, 운동부 학생 등 일제고사 성적이 낮게 나올 것 같은 학생들은 시험을 못 보게 하고 차별하는 등 안습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 전국연합평가를 치던 고등학생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죠? ㅠㅠ 이런 일이 초중고 전체에서 더 많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일제고사는 학생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점수로 학생들을 경쟁시키며 학생들을 죽어나게 하는 시험이에요. 안 그래도 살인적인 교육과 학교를 완전 ‘막장’으로 몰아갈 시험이죠.

게다가 일제고사를 비판하며 학생들,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준 교사들은 짤려서 학교 밖으로 쫓겨나기까지 했어요. ㅠ 그렇게 해직된 교사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답니다.
일제고사, 얼마나 나쁜 건지 아시겠죠?


막장교육, 막장학교  이렇게 바꿔보자!

(▼ 저희가 “막장”이란 말을 쓰는 건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분들을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에요. 그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에 빗대어 교육 환경이 끔찍한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지요.)


하나. 일제고사 망치기 오답선언

 무한경쟁 일제고사, 청소년이 거부하면 아~무 의미 없 거든? 당신들이 만든 줄 안엔 들어가지 않겠어! 대충찍기,몇개라도 일부러 틀린 답을 하는 걸로 줄세우기 일제고사를 무의미한 돈낭비로 만들어버려요!
 우린 일제고사 시험 제대로 안 보겠다는 오답선언!
 2만명이 오답선언해서 안 되면 4만명, 안 되면 8만명- 일제고사 없어질 때까지 2배로 무한도전!
♥ 온라인에서 선언 참여는 http://notest.kr에서 ^^


둘. 막장교육에 저항하는 등교거부

 일제고사와 막장교육, 막장학교에 반대하는 적극적 인 행동 등교거부! 하루쯤 학교 빠지고 시위와 퍼포 먼스를 해봐요!!
 꼭 이번 일제고사를 보는 학생들이 아니어도 청소 년들의 인권을 짓밟는 교육과 학교에 저항하고픈 분 들은 모두 환영해요~
♥ 3월 31일 서울시교육청 앞으로 아침 9시!
★ 혹시 등교거부시위가 초콤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학부모단체에서
   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도 있어요.



셋. 막장교육 바꾸기 청소년집회

 일제고사,입시경쟁,강제야자,두발규제,체벌, 벌점제...
경쟁과 시험만을 위한 교육, 다니기가 끔찍한 학교, 바꾸 기 위해 모이자~ 모여서 막장교육, 막장학교에 대한 우리들의 불만을 다같이 노래해요, 이 사회를 향해!
 인권이 보장되고 행복한 교육과 학교를 꿈꾸는 사람들은 모두모두 모여서 같이 소리쳐봐요!
♥ 3월 28일 낮 2시반 보신각 앞에서 봐요~
♥ 3월 31일 저녁 5시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 Say-No!  
http://notest.kr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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