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0. 4. 16. 12:15
http://stcat.egloos.com/2440207
여기에서는 계속해서 선언자가 추가되고 있다. 참여하고 싶은 블로거 분들은 여기에서 댓글을 다시라.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2010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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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불만은...
 '블로그 선언'인데 정작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_-;;





사실 기본소득에 대한 내 입장은 다소 애매하다.

기본소득이 생산관계를 말하지 않고 있다느니 노동계급의 투쟁 과제가 아니라느니 개량적이라느니 하는 비판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중요한 대안 구상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지지하고 있다.
노동과 소득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노동과 무관하게 생계를 어느 정도 보장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건 내가 청소년인권활동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생계가 곤란한 룸펜스런 활동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자본주의의 폐지-혁명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은 체제 내적이고 자본주의를 갈아 엎는 데는 큰 소용이 없는 대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의 폐지-혁명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고, 청소년인권 보장을 위해서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다른 사회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청소년인권의 개선에 있어 기본소득은 꽤 유효한 전략이다. 당장 먹고 살기 빠듯한 나에게 유효한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현재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과제로 제시될 수 있는가,
또는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책으로서 정당이나 정치인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현재 한국 사회의 어떤 운동세력이 기본소득 운동을 자신의 핵심 과제로 떠안고 운동화할 수 있는가, 와 같은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도 않고 있고 대답을 내놓지도 않고 있는 이상 나는 기본소득 운동을 진지하게 사유하고 실천할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빈민, 청소년, 장애인, 노인, 여성, 저임금비정규직노동자, 실직자.....?)

단적으로 말해서 청소년운동이 기본소득을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지향한다고 밝히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내가 기본소득에 대해 취하고 있는 포지션이 딱 거기인 거지.
개인적/의식적/담론적으론 지지하지만 우리 운동의 과제로 적극 제시하고 떠안기엔 좀 어려우니 (운동 상황 때문이건 뭐건) 거리를 두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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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냥 찬성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하나만 물어보자면,

    "인플레는? 인플레는? 인플레는? 인플레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제도가 발악을 하면서 폭력이 수반되던 전례가 자꾸 떠올라서, 미안?

    2010.04.16 23:42 [ ADDR : EDIT/ DEL : REPLY ]
    • 자꾸 따지려 드는것 같아서 (진짜) 미안한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정도"라든지,
      "불로소득"이라든지,
      "충분한 복지"라든지,

      난 도대체 "어느 정도"를 요구, 또는 주장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이야기하는건지 "전혀" 찾을 수가 없어서.. 나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문장이었는지. "거리를 두고 있는 분"에게 너무 공격적인가(흠..)

      2010.04.16 23:59 [ ADDR : EDIT/ DEL ]
    • 글쎄 사회당에선


      Q.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A. 기본소득은 인플레이션과 연동하여 인상되므로, 인플레이션 자체가 기본소득 수급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또한사회경제적으로도 묶여있던 돈이 순환되면서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만, 화폐발행 자체가 증가되는 것이 아니므로 크게 우려할수준은 아닙니다. 또한 수요의 증가 원인은 대부분 공급량을 쉽게 늘릴 수 있는 저소득층의 생필품 수요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급증가로 일자리도 늘어나고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와 있긴 한데 ㅋㅋㅋ
      인플레에 대해서는 통화량이 늘면 인플레가 일어나요, 정도 이상으로는 그리 아는 게 없으니 예측하기 어렵군 나는;

      일단 기본소득의 액수나 지급액 수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있어서. 난 1인당 20-30만원만 돼도 꽤 생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1인 최저생계비에 턱걸이하는 수준 정도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근데 사실 기본소득 논의 자체가 기본보장으로 인해 생계를 위한 지출 규모가 줄어들어야 유의미한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지만 ㅇㅇ)

      2010.04.17 01:49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로그인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기본 소득을 주겠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네요.
    그럼 일종의 부유세를 걷는 건가요? 그것도 정도껏 걷으면야 상관 없긴 하겠지만, 만약 일정 수준 이상으로 걷어버리면 상류층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어떻게 설득할지 좀 궁금하네요. 사실 돈 많은 게 죄라고 보긴 어렵고 한 국가에 머물기보다는 유동적일 수 있는 상류 계층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을 저버리기 시작하면 한국 전체 소득이 떨어질 수도 있겠죠. 기본소득이 도움이 되면 다행이지만, 이로 인해 증가하는 룸펜들이라든가 이런 새로운 사회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는 거죠? 가끔 노키아의 예를 들어서 세금이 강한 나라에도 부유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 있던데, 그거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가 노키아 눈치 많이 살피더라고요 -_-; 실제로 노키아 사람들 중 일부가 정치에도 관여하고 있을 정도로 권력이 세고요. 그래서 은근 세금이나 공공재의 특혜를 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죠. 설마 이런 시스템을 바라고 사회당 측에서 기본 소득을 외치는 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나마 북유럽 쪽은 다행히 둘 사이의 관계가 원만했으니 망정이지, 한국 같은 현실에서 기본 소득 제도가 제대로 작용될 수 있을지 걱정이 드네요.

    2010.04.17 08:35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기본소득은 원래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좀 강합니다. 뭐 예산 분배의 재편도 당연히 필요하겠습니다만... 부유세보다는 불로소득 환수 뭐 이런 식인데, 자세한 재원 마련이나 재정 조달에 관련해서는 연구라거나 민주노총에서 나온 자료 같은 게 있으나 저는 원래 돈에 약한 데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거까지 찾아보긴 좀 그러하니 그러한 것들은 직접 찾아보시면 여러 유용한 정보들이 나올 것입니다.


      한국의 '현재 현실'에서 기본소득 제도는 제대로 작동은커녕 도입될 수도 없습니다. 실효적인 기본소득은 사실 사회적 권력의 전반적 재편을 필요로 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뭐 그리 실효성이 크지 않지만 기본소득 5만원, 이런 식의 공약들은 이미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나오고 있지만요 ^^;

      2010.04.18 13:40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6. 10. 13:48



이 수정 의견서는 청소년시국선언 2차 수정안이 나온 시점에서 써서 보낸 것입니다.

최종안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는데,
이 수정의견서가 일.부. 반영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언론이 과연 공정했나'라는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져서 언론이 공정했다는 이야기는 빠졌고,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려서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뭐 이런 표현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백색의 종이" 같은 표현이랑,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는 게 당연한데 지금이 매우 특수하고 막장스런 상황이라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어용, 하는 뉘앙스의 표현들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발표 바로 전날밤에 의견서 보내서 뭐하는 짓이냐고 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그럼 시국선언 바로 6일 전에 제대로 나온 선언안도 없이 제안하는 건 뭔가 하는 질문부터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단체라는 게 대개 그렇게까지 긴급하게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2009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대한 수정 의견서


0/ 먼저 우리는 청소년들의 적극적 정치․사회 활동으로서의 청소년시국선언 운동의 의의를 긍정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애통하고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있어선 안 될 일들에 비추어 볼 때, 시국선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게시되어 있는 청소년시국선언서의 내용이 반드시 고쳐져야 할 점들과 아쉬운 점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국선언은 이 ‘시국’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커다란 방향성, 맥락, 유효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현재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후 이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 또한 담고 있는 것이며, 이후 이 ‘시국’을 극복하고 변화시켜나가는 사람들의 실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의 내용이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비정치성에 대한 관념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관념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아직 정치적 색을 띠지도 못한 그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등의 표현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스스로의 비정치성, 또는 정치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면, 이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해왔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 의지를 표현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정치․사회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를 보인다면, 이는 오히려 반민주, 반인권적인 생각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은 청소년들의 정치성을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나와 있듯이, “청소년들은 이 사회나 민주주의와 유리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덧붙여서,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인권이든 권위주의든 복지국가든 그것은 분명히 이념이며 정치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비정치성으로 포장한다면 이는 오히려 왜곡이 될 것이며 앞으로의 문제 해결과 사회․정치의 발전을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교육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앞서 1번항에서 언급한, 청소년들의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과 직면하고 있기에 무거운 학업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우리를 학교에서 뛰쳐나와 이 길에서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까?” “그저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지식의 요람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에 따라”와 같은 표현들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어야 하며 공부(학업)를 하고 있는 게 정상적이라는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교과서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 훌륭한 텍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과서가 성전(bible)이라도 되는 듯이 청소년시국선언문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시정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같은 표현에서는 빈곤 청소년이나 한부모 또는 무부모 청소년에 대한 고려가 없음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입시경쟁과 폭력이 판치는 학교에서 뛰쳐나올 수 있으며, 굳이 지금처럼 절차적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무거운 학업의 짐’(특히 입시경쟁, 취업경쟁 때문에 강요받는 학업)을 잠시가 아니라 영영 내려놓고 집어치울 수도 있습니다. 굳이 정부가 7, 80년대 권위주의 독재정부로 회귀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은 정치․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도 있고 거리로 나올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가르친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더 많은 권리와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과 수사적 표현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발상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재 청소년시국선언문의 이러한 표현들이 청소년들의 활동을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일상적인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규제하는 것을 지지하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보이는 이명박 정부 이전의 사회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합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민주주의’ 가 무너졌음을 느끼고” “한때 자유의 공간으로 인식되던 인터넷 세상은, 이제 잡혀갈까 무서워 쓰고 싶은 글도 못 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던 언론이, 우리의 소리를 대변해주던 언론이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명목 아래 서서히 장악당하고 있습니다.” 등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인민(people)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지배,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일치, 주권재민 등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온전한 이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대로 작동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권리침해신고(블라인드), 인터넷 실명제 등으로 인하여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축소되던 것은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지도 않았고, 우리의 소리를 대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면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언론이 개혁되고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거라는 잘못된 진단을 낳을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많은 인권을 위해서는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을 넘어선 활동과 실천, 대안들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청소년시국선언문 첫 번째 문단에 대해서도 우려를 느낍니다. 과연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철거민들의 죽음, 한 화물노동자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애도하고, 그 과정에 있었던 부당하고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것들을 마땅히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다른 죽음들과는 다른 특별한 죽음이며, 마치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죽음인 것처럼 표현되는 것에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은, 대통령이든 철거민이든 노동자든 청소년이든 모두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죽음을 애도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기에 했던 정치가 과연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정치였는지에 대한 고려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관지을 때 그 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엇이 ‘시국’이고 무엇은 ‘시국’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시국선언문이라면 당연히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 언론의 자유 탄압,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시국’이면서, 강화되는 입시경쟁 속에서 늘어만 가는 청소년들의 죽음, 일제고사나 자사고를 비롯한 지역간 학교간 학생간 경쟁 강화, 그린마일리지나 강제야자 등 학생인권 문제, 청소년노동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최저임금 삭감,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는 청소년들의 증가 등등 청소년들의 문제는 ‘시국’이 되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이라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겪는 ‘시국’의 문제들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의 현실, 청소년들의 ‘시국’을 반영하지 못한 선언이 과연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으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대표적으로는 학생인권과 교육의 문제를 비롯하여,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요구사항으로 청소년시국선언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6/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청소년인권과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같은 의견은 어쩌면 숫자상으로는 소수의 의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시국선언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다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 수정의견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수정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청소년시국선언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청소년모임,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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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3. 10. 00:28



열정세대 - 10점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양철북


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양철북 출판사.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2009년 2월 인쇄/발행.
정가 9800원.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등은
http://blog.peoplepower21.org/CivicEdu/21171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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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만드는 일을 약간 거든 바 있는 『열정세대』를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농성장에 앉아서 다 읽었다.

  참여연대에서 친절하게 우편으로 보내준 『열정세대』를 펼 때, 참여연대 홍성희 씨에게 이 책 만드는 일 때문에 만났을 때 빌렸던 DVD를 아직도 돌려주질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일단 그건 뭐 그렇다 치고(……) (출판기념회나 뭐 그런 게 있으면 그때 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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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제목을 보고 좀 닭살이 돋았다. “열정세대”라.
  “청소년NGO활동 가이드” 이런 딱딱한 제목보다야 낫긴 하지만.

  “열정세대”라는 말이 80년대스럽다거나 구닥다리스럽다거나 뭐 그렇게 느낀 건 아니다.
  오히려 “열정세대”라 그러니까 무슨 최근에 지하철 같은 데서 나오는 젊은이들이여 도전정신을 가져라, 뭐 그런 공익광고 같은 느낌이 든다. 일종의 체제내적인 세련됨이랄까.
( 어쩌면 약간 참여연대 사무실 건물 같은 느낌? -_-; 흠 그거랑은 또 좀 다른가... 어쨌건 책 내용을 보면서도 좀 참여연대가 위치한 정치적 포지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부 글 같은 경우는 초안과 다르게 좀 덜 빡세게(??) 수정한 거란 이야길 언뜻 들었던 듯도. 그게 참여연대가 부담스러워 한 건지 양철북이 부담스러워 한 건진 모르겠으나-)



  그런데 과연 지금의 청소년들이 “열정”을 자기 삶의 중심에 품고 있는 세대이긴 한 걸까?

  아니, 그래, 그 ‘청소년들’이야 어떻든, '이 책에 나와 있는 청소년들'은 “열정”을 가슴 속에 품고 있긴 한 걸까?
  내 룸메이트이자 이 책의 첫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따이루의 경우에, 이 녀석은 과연 그 가슴 속에 “열정”이 넘치고 있나?


(따이루 사진 -_-)

  운동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열정으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대개 운동이라는 게 일종의 운명적인, 아니면 숨쉬는 듯한,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시작하고 계속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일반론적으로, 보편적인 정의라거나, 열정이라거나, 그런 건 사후에 정당화하고 갖다붙이는 것만 같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그렇기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이고 만다.

  애초에 “열정”이라고 하면 뭔가 열혈소년만화스럽거나 장인 정신이나 프로 정신,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꿈’ 같은 말이 등장해야 할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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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머리글에는
  “우리가 만난 십대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싸워서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옳다고 판단하면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라고 붙이고 있지만,

  글쎄 오히려 민주주의를 싸워서 쟁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온 여러 사람들이라고 느꼈는데...;
  이런 식으로 미시적으로, 생활 속에 이미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약간은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라는 부제는 꽤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열정" 쪽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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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08년 촛불집회 정세를 배경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은 촛불집회와 그리 큰 상관이 있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촛불집회에서 주역이었던 십대들을 탐험하고자 한다", 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책 내용은 촛불집회와는 별 상관이 없는 ‘NGO 활동’을 하는 십대들이 더 많지 않나 싶다.
  뭐 그런 것이 지금의 십대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째서 촛불집회가 가능했나 하는 촛불집회의 배경과 십대 내부의 동인을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한 공통점, 단일한 성격을 지닌 집단으로서의 십대(사회적 취급이나 규정이 아니라)라는 게 과연 성립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나로서는 그런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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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촛불집회 관련 챕터에서는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던 건 역시 여기서 인터뷰한 청소년들은 ‘청소년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한 게 아니라 그냥 ‘국민’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했다는 느낌이다.
  촛불집회 안에서 청소년들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은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긴 아마도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의 다수가 그럴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촛불집회의 주역이 십대였다 청소년이었다 라고 말하는 건 미묘한 오류가 있다. 촛불집회의 주역 또는 촛불집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나이가 10~20대 정도의 ‘국민’ 또는 ‘시민’이었다.
  기회가 닿으면 2008년 '촛불집회'에 관한 내 생각들을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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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좀 읽으면서 구성상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한 명씩 관련된 사람들이 부연하는 글 같은 것을 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게 좀 글 청탁할 때 전달이 잘못된 것이거나 구성할 때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다.

  가장 문제가 있는 챕터는 “유쾌, 상쾌, 통쾌한 정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YMCA 창숙님과 참여연대 지현님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보통 이야기를 하거나 소개를 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다른 챕터와 다른데,
  그 대화의 내용에서도 실제 활동에 대한 소개나 이야기는 참여연대 이야기가 더 많고 정작 창숙님의 활동은 많이 이야기되어 있지 않다.
  뒤에 붙은 참여연대 글 같은 경우는 그냥 참여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소개하는 내용에 가깝고, 정작 창숙 님의 정치적 활동이나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 정치적 권리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행복한 학교 만들기”의 경우에는 윤지님 이야기는 아주 좋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희망 박철우님의 글은 그냥 희망 단체 소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희망 활동, 성격 등 소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같이 활동하면서 종종 얼굴 보는데 이렇게 썼다고 해서 화내시진 않겠지 -_-;)

  연주님의 언론 활동에 대해 지식채널e의 김진혁 씨가 쓴 글은, 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연주님에게 조언을 하는 형태로 마무리를 하고 있어서 그래도 음, 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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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챕터들 말고 다른 이야기들은 부연하는 글들과 본문 이야기들 사이에 호응이나 조화가 부자연스럽지 않다. 전반적인 내용도 알차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활동을 알고 싶은 분들, 이런저런 영감이나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
  따이루, ‘품’, 리타님, 리인님, 윤지님, 연주님, 강강수월래 등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읽어볼 만하다.


  단지, 솔직한 내 욕심으로는, 청소년들의 NGO 활동 이야기, 이런 식으로 따로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것뿐. 청소년들의 그런 활동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사회면 좋겠다는 거다.

  “열정세대”라는 제목이 껄끄럽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지금의 청소년들, 십대들을 너무 특별하게 의미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내가 참여한 부분은, 간접적으로는 청소년 언론 활동이나 학생인권 관련 활동에 대해 내용 구성 전반을 놓고 조언을 한 것,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제일 뒤에 실린 이 사진 속 청소년 단체 리스트 초안을 뽑는 작업을 같이 한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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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성희

    공현~~~ 고마워요~~~ 곧 봐요~~~

    2009.03.11 07:35 [ ADDR : EDIT/ DEL : REPLY ]
  2. 기사에서 배울 많이.

    2013.01.23 16:3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8. 29. 01:03
청소년직접행동 내부 워크숍에서 기획단이 청소년운동에 대해 생각하는 걸 써달라고 하기에 대충 썼던 -_-




공현의 청소년운동 메모



  이 글에 워크숍 기획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서, 그리고 요새 내 글 쓰는 스타일이 그래서, 토막내서 여러 주제들을 간단간단하게 쓴다. 왜 이렇게 요새는 메모만 하게 되는지. 여하간 대충 읽으면 될 것이다.



☆ 청소년운동

  청소년운동이 뭔가, 라고 물으면 글쎄올시다. 뭐 특별할 게 있나 싶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미성년자 운동’이 어떨까 싶기도 한데, ‘미성년자’라는 말이 아무래도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보니까 그대로 쓰기는 그렇고…. 어쨌건, 누구나 대부분 경험하게 되고 또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변하는 특성 때문에 청소년이 소수자 정체성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특성이 어떻건 ‘미성년자’는 이 사회에서 분명 억압 받거나 통제받거나 차별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된다. 음음.
  여하간 이 사회가 ‘미성년자’ - 국제적 용어로 하면 ‘아동’(child)을 따로 구별하고 불평등하게(단순히 ‘다르게’가 아니다) 대하는 것, 그것이 청소년운동(좀 더 정확히는 저항적인 청소년운동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고... 내 경우에는 청소년인권운동이겠지.)의 이유이고 원인이다. 거기에 굳이 하나의 요소를 더 첨가한다면, 청소년들도 인간들이고, 인간인 이상 행복해지고 싶고, 행복해지기 위한 사회적인 조건들과 구조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밖의 미사여구나 명분이나 이론은, 실제로 유용하거나 자기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청소년운동을 설명할 때는 그다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각자가 청소년운동을 하는 이유야 다를 것이고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들 각각의 이유나 의미가 궁금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 이유나 의미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같이 운동을 하면서 그 이유나 의미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항상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는 청소년운동의 당사자주의 문제에 대해 덧붙이자면, 청소년운동에서 그 운동을 ‘누가’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지만 필수적인 문제는 아니다. 당사자주의에 따라서 청소년들이 직접 하는 게 좋을 것이고 또 직접 하는 것이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만이 청소년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운동은 이 사회에서 청소년의 문제에 관한 운동인데, 이 정의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여야 한다는 규정을 논리적으로는 도출할 수 없다.



☆ 청소년운동이 있긴 했나?

  ‘미성년자’(아동이라고 부르건 청소년이라고 부르건)를 일종의 소수자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운동을 한 역사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글에서는 편의상 앞으로 ‘미성년자’ 정체성 인식 뭐 이정도로 표현하겠다.) 1980년대 중고등학생운동(‘고운’)이나 참교육운동은 민주화운동이거나 자주통일운동이거나 노동계급운동이거나 교육운동의 성격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또한 그 운동들에 인적 or 사상적 or 조직적 뿌리를 두고 있는 희망 같은 단체들은, 좀 성격이 광범위하긴 한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청소년운동단체로서의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전에는 학생자치와 교육, 문화활동, 자주통일 등에 대한 이야기가 강했지 ‘미성년자’의 사회적 지위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고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저항하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있어왔고 앞서 언급한 운동들도 그런 움직임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미성년자’ 정체성 인식을 중심에 두고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활동해온 움직임이 한국 사회에서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운동(1995년부터 그 역사를 짚어갈 수 있는)이 이런 입장과 이런 맥락에 서있는 운동들과 조직들을 만들어나가고 발달시켜 왔다고 본다. 이제 그 나이가 10년을 넘은 청소년인권운동이지만, 운동 역사 10년은 매우 짧은 편에 속하며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제대로 부를 만한 것이 2000년대 들어서야 발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것은 극히 불안정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이었으며, 그 흐름은 정치 참여 운동이나 보호주의나 교육운동이나 기타 등등 다른 담론들과 뒤섞이고 부딪치며 흘러왔다. 그래서 나는 너무 조급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눈앞에 과제들이 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과제들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일 것이다.



☆ 2008년 상황과 청소년직접행동

  나는 전누리처럼 (이른바) 정세 분석하는 걸 즐기지도 않고 정치 예보를 할 생각도 없으니 현재까지 상황에 대한 내 인식만 간단하게 쓰겠다.
  이명박 정부는 절차적인 대의민주주의를 비롯하여 이루어진 정치적인 몇몇 자유들과 국민국가의 자주성이 줄어드는 상황이고, 이는 2002년 이후로 강하게 형성된 다수 사람들의 ‘국민’ 의식과 많은 부분 배치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특권적 집단의 독주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불만들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식이나 애국심이나 자주, 이 땅의 민주주의 등의 명분을 표면에 내세우며 표출되었다.(촛불집회) 희망 같은 단체는 이러한 청소년들의 불만-욕망과 민주주의, 자주, 애국심 등의 대중적이고 거대담론적인 명분의 결합에 익숙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내 입장(그리고 다른 몇몇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으로는 청소년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없고 공론화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예컨대, ‘성인’들의 역사는,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이나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부가적으로 내건 독자적인 교육에 대한 요구 등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들의 운동은 단지 독립운동이고 민주화운동일 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8년 촛불집회도 광우병 쇠고기 투쟁으로 기억되기 십상일 것이며, 교육문제 등도 많이 공론화되고 있지만 핵심 이슈로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치적 움직임들을 대놓고 탄압하거나 일정 부분 완화시키고 무마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촛불 안팎으로 많았다.
  5.17 청소년행동도 ‘휴교시위’ 문자메시지를 계기로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모임인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2008년 초에 정한 연대체 성격 문제라거나 운영 호흡 등의 면에서 촛불집회 대응을 적절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네트워크와는 별도로 촛불집회 정세에서 움직이는 모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에 대한 우리의 고민 자체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권리의 문제 그리고 민주주의(그냥 대의민주주의 말고 -_-)를 그 중심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청소년직접행동의 활동방향도 주로 그런 쪽으로 되어 있었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문제는 특히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며, 2001년부터(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선거권 운동이나 다른 여러 방식으로 제기된 문제였다. 분명히 이 문제를 물고 운동할 단위는 분명히 필요했고 청소년직접행동은 2008년 촛불집회 정세와 교육감 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했다.

* 여기에 따로 쓰진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 상황은 저항적인 운동을 하는 단체들에 ‘단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나로서는 달갑지 않은 정세이지만 그 필요성을 마냥 부인할 수는 없는 게 슬프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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