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운동'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14.09.16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2호 (2014.09.10.)
  2. 2014.04.21 삐삐롱수다킹, 할까말까 - 병역? 거부? (4/28)
  3. 2014.03.30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소식지 「활력소」 제1호 (2014.03.30.)
  4. 2014.03.28 교육도 연대도 '평등'에서 시작해야
  5. 2013.10.25 전교조 숨통 조인 한국 사회, '한고학연'의 추억
  6. 2013.09.15 <파란만장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백서> 9월 16일이면 주문 신청 마감!
  7. 2013.09.14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인천 청소년 1515인 시국선언 (2013.09.07.)
  8. 2013.09.13 [아수나로 성명] 우리는 두렵다, 그래서 말한다. - 국가정보원 발, 우리 사회에 퍼져가는 ‘종북몰이’ 탄압에 대해
  9. 2013.08.25 주간경향 특집 : 2008년의 '촛불 청소년'
  10. 2013.08.25 ‘청소년운동론’ 예고편
  11. 2012.03.31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를 위한 탁상공론
  12. 2012.03.26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해산 간담회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네트워크는 죽으면 물음표를 남긴다."
  13. 2012.03.08 한고학연(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해산에 부쳐 (2)
  14. 2012.01.12 나를 묶어두는 것들 (1)
  15. 2011.10.18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받는 질문들 (2)
  16. 2011.08.31 청소년인권운동, 온라인에서 거리로 (1)
  17. 2011.04.30 ‘운동사회 나이주의 깨기 활동’ 제안 (19)
  18. 2010.06.28 "패륜적 기본소득" 격월간 사람 용으로 수정한 원고 (2)
  19. 2010.06.27 최저임금 인상과 청소년 노동자 (1)
  20. 2010.04.21 전청련(전국청소년학생연합) 해산에 부쳐 (8)
걸어가는꿈2014. 9. 16. 03:27
걸어가는꿈2014. 4. 21. 19:28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는 함께 공론화해서 논의하기는 어려웠고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답을 얻기 어려웠던 주제들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토론회보다는 가볍지만 수다회보다는 조금의 무게를 더한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개인적 고민들이 결코 개인만의 고민이 아니었기에...

병역의 문제, 대학의 문제, 가정의 문제, 연애의 문제....


어찌 생각해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 일 수 있지만 ‘갈지, 말지’ ‘할지, 말지’라는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 이 문제들을 둘러 싼 마음의 불편함, 깜깜함, 미안함 들을 함께 마음 터놓고 얘기 해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과감하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는 ‘삐삐’처럼!


현재 고민 중인 사람, 고민을 끝 낸 사람, 고민을 안 해 봤지만 함께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 누구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2014 활기 고민덜기 프로젝트 ‘삐삐 롱수다킹’ 제1탄 병역? 거부?



언제?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 제1탄-2014.04.28.월 저녁 6시


어디서?   독립문역, 부귀빌딩, 전교조서울지부 건물


누구랑?   병역을 코앞에둔, 군대를 다녀온, 군대와 활동에대해 고민하는사람, 듣고싶은사람, 이야기하고싶은 남성 여성 등등 활동가 모두모두



참가신청 - 4/ 26일까지! 010 9691 9194 예솔 ( 인원파악을 위함입니다 간단하게 문자로도 신청 가능합니다!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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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4. 3. 30. 22:48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소식지 활력소입니다. 수신거부는 hwalgy@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http://cafe.daum.net/Life2010   |   http://hwalgy.tistory.com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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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4. 3. 28. 11:10

http://www.redian.org/archive/68571





교육도 연대도 '평등'에서 시작해야

[반론] 서윤님의 레디앙 칼럼 글에 대한 반론



By   /   2014년 3월 28일, 9:50 AM 



제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2014년 3월 21일, “반핵과 탈핵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여러분께, 질문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아수나로 인천지부가 3월 20일에 열린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 김익중 교수 초청 탈핵 강연>에서 이 행사의 표어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배포한 전단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같은 내용을 온라인에도 게시한 것입니다.


그 뒤에 아수나로의 회원이며 페이스북 녹색당 그룹에도 가입되어 있던 이가 그 글을 페이스북 녹색당 그룹에 올리면서 페이스북에서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글을 행사 주최 단체들 중 인천환경운동연합,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YWCA 등의 홈페이지에도 올려뒀습니다.

참고로, 이 글에서 녹색당이 특별히 언급된 것은, 2012년 선거 당시 이 구호에 대해 아수나로가 문제제기한 적이 있으며 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행사 홍보물 이미지)

(사건의 발단이 된 행사 홍보물 이미지)


이에 대해 서윤님이 이런 글(관련 글 링크)을 레디앙에 쓰셨더군요. 일단 여기에서 교사와 학생 관계를 “교육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예시”라면서 끌어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탈핵운동 단체들이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있는 관계도 아니구요. 혹시 탈핵운동 단체들이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신다면 정말 후덜덜, 무서운 일입니다만. 글 전체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교육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고 싶었고 탈핵운동의 표어 이야기가 그냥 예시인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런데 그럼 해당 표어에 대한 논쟁 이야기를 굳이 가져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논변이 산만하고 예시가 부적절하며 추상적인 개념에 휘둘린 글이라 하겠습니다.



평등은 교육의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여하간 해당 글의 가장 주된 논지가 “교사와 학생은 평등할 수 없으며 위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니 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서윤님은 평등이라는 개념이 너무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들고 오면 여러 논의들을 무력화시킨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이 글이 상위 개념들을 끌어와서 논의를 거칠게 퉁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서윤님은 한편으로는 ‘평등’이나 ‘교육’ 같은 개념을 본인이 생각하는 좁은 의미로만 쓰고 있습니다. 예컨대 ‘평등’이라는 개념 자체도 도대체 무엇이 평등인지, 같게 대하는 것이 평등인지 다르게 대하는 것이 평등인지, 사용할 때 세밀한 정의가 필요한 개념입니다. 그런 논의 없이 ‘평등’을 ‘동일’하거나 ‘등가의 교환(호혜)을 할 수 있는 관계’라는 협소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 글의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이 글이 ‘역할’과 ‘위계’를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생은 학교-교육에서 역할이 다릅니다. 그러나 역할이 다른 것이 곧 상하관계, 위계를 만든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역할과 자리의 다름이 교사를 학생의 ‘윗사람’으로 위치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완전히 평등한 관계란 건, 내가 보기엔 호혜적 관계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베풂의 질과 양이 거의 동등함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라는 주장도 ‘베풂의 질과 양’을 대체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왜 그게 ‘동등’해야만 ‘평등’한 건지, 마치 자명한 것처럼 적혀 있지만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활동보조인은 장애인의 활동을 보조하지만 장애인에게 보조를 받는 것은 별로 없으니 장애인과 위계적인 관계를 맺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서로 평등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 안에서도 그다지 서로에게 ‘동등한 질과 양의 베풂’을 주고받지 않고 있는 경우를 더 많이 보지 않습니까?


원래 인간관계 안에서 얻는 이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질과 양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만약 교사가 학생과 함께 교육에 참여하는 일에서 보람과 기쁨과 삶의 의미를 느끼고 또 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면, 그 관계에서 교사는 충분히 많은 것을 얻고 그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배움’의 관점으로만 그 ‘호혜’를 평가하려 드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현실 속에서 ‘지적 권위’ 등의 문제를 얘기한다면 같이 고민을 나눠볼 만도 하겠습니다만…. 추상적이면서도 자의적으로 정의된 호혜니 평등이니 하는 말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위계가 없으면 교육도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단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한 관계 속에서 교육을 이루려는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들(또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 서윤님에 따르면 후배, 후임자, 자녀 등과 그 상대 역할들)에게는 모욕적으로 다가올 이야기지요.

근본적으로는 ‘교사와 학생’ 관계가 없으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그렇습니다. 일단 학습자의 경험에 중심을 둔 교육, 무형식 교육 등을 다루는 여러 교육학적 논의들이나 탈학교론의 주장을 깨끗이 무시하는 셈이지요. 혹시 지극히 ‘학교화’된 고정관념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아래 엄기호님의 논의도 역으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평등한 관계여야 비로소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대화는 어떤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가. 평등한 관계에서만 대화가 일어나요. 너와 내가 평등하다고 가정할 때만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어요. (……) 그런데 지금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평등한가요? 우정의 관계인가요? 여러분도 처음에 교사가 됐을 땐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이번에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교사들 인터뷰를 해 보면 선한 마음으로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100이면 100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해요. 여러분 중에도 아마 그런 분들 많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그냥 애들한테 가서 장난치고 떡볶이 사준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친구 같은 교사가 되려고 할 때 제일 필요한 게 우정의 관계이고, 우정의 관계는 평등을 전제로 하죠.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면서 학생과 교사를 평등한 우정의 관계로 안 바라봤어요. 친구라기보단 ‘큰형님’이 되려 했죠.” (엄기호, 〈당신은 학생에게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가?〉, [오늘의 교육 제13호(2013년 3․4월호)])


엄기호님의 주장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엄기호님은 이 앞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평등’하다고 이야기합니다.(서윤님이 혹시 이것이 자신의 ‘상징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서 굳이 덧붙여둡니다.) 그리고 평등해야만 교육이 가능하다고 하지요.

저는 엄기호님의 논리 전개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런 논의가 교사와 학생 사이의 평등이라는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성실하게 성찰한 결과이며 ‘들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사와 학생 관계가 평등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평등한 관계에서 교육이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평등은 1차적으로 우리가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징적 평등’에 불과하다구요?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은 바로 실질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평등은 누군가가 더 열등하고 미성숙한 존재라는 편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역할’의 차이 등을 ‘위계’, ‘상하관계’로 간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등한 관계에서의 만남과 대화와 경험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지지는 것입니다.

서윤님이 학생인권조례 공청회에서 들었다는 학생 분의 발언은 아마 그런 생각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아마 청소년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자크 랑시에르 등의 논의도 좀 더 붙여보고 싶은 욕심이 들지만 분량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은 보호주의를 반영하고 활용한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표어 문제로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이 표어가 아이들에 대한 ‘보호주의’를 활용한 것이고, 탈핵운동 내의 아동․청소년관(觀)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후로는 그냥 ‘청소년’이라고 쓰겠습니다. 10대 또는 0대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해주십시오.)

그 결과 청소년들을 탈핵운동의 주체에서 배제하는 문구가 되었구요. 물론 이 문구 하나 때문에 청소년들이 배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문구를 포함해서 탈핵운동,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사회 전반의 청소년관 자체가 청소년들을 배제하지요. 이 문구는 단지 그런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예시이겠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청소년이 무력하고 약한 희생자, 어른들이 책임지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불려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청소년, 실제로 보호대상 맞습니다.

그런데 비청소년도, 실제로 보호대상이 맞습니다. 이건 누구도 모르지 않을 텐데요. 특히 방사능 물질의 경우, 정도차가 있을지언정 모두에게 해롭고 모두가 보호받아야 합니다. 왜 굳이 “아이들”을 콕 집어서 쓰는지,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지배적 관념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따지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론 서윤님의 말처럼 좀 더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위계’ 속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주장 아닐까요? 그것은 보호나 보장을 시혜로 보는 것이니까요. ‘보호’가 위계와 차별의 이유가 되고, 누군가를 주체에서 배제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이유가 되며, 누군가를 보호대상의 자리에만 위치시키는 ‘보호주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A4 1쪽의 짧은 글이지만, 그것으로도 우리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전달되리라 믿었습니다. 사회운동을 해온 사람들이라면, 청소년 보호주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도, 적어도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차용하는 것의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제기만으로도 전반적인 청소년관을 성찰할 계기가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했던 모양입니다. 설명이 참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이 문제제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징후는 실은 2012년부터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2012년 글입니다.


“SNS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녹색당’이란 구호가 적힌 작은 손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어떤 청소년 단체에서 이에 대해 ‘청소년과 아동에 대한 보호주의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사무처에서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생겼다. (……) 다음날 아침에는 ‘청소년과 함께 핵없는 세상을’이라고 수정된 손현수막이 사무처에 도착했고, SNS에 바로 사진이 올라갔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 어리둥절하고 있으니깐, 옆자리에 앉아있는 청소년 운동을 했던 활동가가 말을 걸어주었다. 본인도 그 청소년 단체의 지적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들을 껴안고 가야한다고.” (송준규, 〈풀뿌리들의 놀이터〉, [공동선 104호]. (관련 글 링크) 에서 인용.)


“청소년과 함께 핵 없는 세상을!”이라니, 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표어입니까? “아이들에게”를 바꾸다보니까 나온 괴작인 셈입니다. 게다가 “청소년과 함께”라니, 그 ‘함께하는’ 주체에서 청소년이 떨어져나왔다는 문제점은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아이를 청소년으로 바꾼다고 될 문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오히려 ‘어린이’보다는 ‘아이’라는 말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라는 말 자체를 갖고 태클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실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청소년운동도 껴안고(?) 가야 하니까”라는 얕은 발상에서 나온 표어라고 할 만합니다. (옆자리에 앉아있었다는 청소년운동을 했다는 활동가가 누군지 궁금합니다. 저랑 면담 좀 하실래요? ^^)


저는 “아이들”이 “다음 세대”를 뜻한다는 변호가 기만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표어를 보거나 들었을 때, 수백년이나 수천년 후에 40대, 50대, 60대 모습을 한 미래인을 떠올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나이가 적은, 청소년의 모습으로 떠올릴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순수함, 무고함, 약함,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 결국 이 표어가 보호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며 청소년을 동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활용하고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포스터와 홍보문구에서 보이듯 ‘내 아이’, ‘내 자녀’, ‘우리 아이’를 내세우는 것과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말입니다.


탈핵을 주장하는 분들이 거론하는 것이 주로 2030년 탈핵인 것으로 압니다. 다소 유보적 입장의 정당도 2040년을 이야기하더군요. 독일은 2022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먼 미래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룰 수 없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나요? 저는 실제 내세우는 정책을 봐도 그렇고, 저 표어의 효과 면에서도 그렇고, ‘아이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를 가리킨다는 변명은 문제제기를 피해가려는 불성실한 답변일 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세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이들’이라는 표현으로 제대로 전달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아이들’이라는 표현으로만 전달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연대’도 평등에서부터


이 글을 통해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말하자면, ‘평등’이나 ‘위계’나 ‘교육’이나 ‘아이들’ 등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쓰다가 그것 자체에 경도된 나머지 인정할 부분마저 간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 담지는 못했지만, 저는 탈핵운동을 포함하여 환경-생태-녹색운동에 청소년보호주의나 청소년 차별의 문제가 상당히 뿌리 깊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생태-녹색운동뿐만 아니라 교육운동이나 여러 영역에도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육단체, 환경단체 등이 다수 참여하는 ‘아이건강국민연대’가 청소년 게임셧다운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모습이 대표적 예입니다. 그런 문제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청소년운동과 마찰을 빚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청소년운동은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비판을 하고, ‘평등’을 요구하겠지요. 교육뿐 아니라 연대 역시 ‘평등’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이번에 간단한 글을 하나 써서 우리의 문제의식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아마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탈핵운동을 하는 분들 등이 청소년운동과 연대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우리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면, 다시 한 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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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10. 25. 13:4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8194901&section=03



전교조 숨통 조인 한국 사회, '한고학연'의 추억

교육체제 내 결사자유 박해에 동병상련

공현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활동가

"나는 전교조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학생인권에 대해서 교육도 많이 받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것이다. 요컨대, 나는 전교조를 보면서 자꾸 한고학연이 떠오르고 광고협, 부고협, 마창고협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학교에서 결사의 자유를 무시당하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의 공감이라고나 할까? 오지랖이 넓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교사의 권리조차 무시하는 정부가 학생들의 권리라고 존중해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다. 그래서 별거 아닌 힘이더라도 보태고 싶다. 정부에게 전교조에 대한 그런 탄압은 부당한 것이며 결사의 자유와 노동조합의 단결권에 대해 개념을 좀 탑재하여 교원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내 마음 한편에서는 전교조 또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때 기꺼이 지지하고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뭐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그밖에도 청소년/청소년활동가들이 전교조 탄압에 관해 쓴 글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8162530&section=03

"전교조 탄압? 학생들에게 '노동 3권' 뭐라 가르칠 텐가"

[청소년이 바라본 전교조 설립 취소 위기·②] 노동권, 말 뿐인가요?

이응이 청소년 노동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017110423&section=03

"전교조 공격, 무한 경쟁 탈출하고픈 학생들 배신"

[청소년이 바라본 전교조 설립 취소 위기·①] '어불성설' 꼬투리 잡기

김가을길 서울 문창중학교 1학년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477

전교조, 해산만이 답인가?[교육 살펴보기]전교조의 법외노조화 시도에 부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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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9. 15. 15:18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활동 기록을 모두 모은 백서! 3000여쪽의 대기록!!

2013년 9월 16일까지 사전 신청을 받아서 만드니까, 바로 내일이 마감입니다. 마감 임박!!




주문은 여기서 하세요~

http://bit.ly/18gwlVA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백서  (6년의 활동을 담은)
파란만장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걸 한번 제대로 일궈내보자”
그렇게 시작했던 우리들의 활동.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년의 활동 역사를 백서 몇 권에 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반짝거림, 벅차오름, 두근거림, 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전하지는 못해도 우리들의 파란만장함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자료, 선례, 반면교사, 그리고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줄 이 모든 기록들을,
청소년인권운동에 관심이 있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를 알려는 모든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무려 5권!  1권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역사

               2권 : 학생인권

               3권 :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경기도.서울)

               4권 : 여성주의, 노동/빈곤, 보호주의

               5권 : 연대사업,연구보고사업,교육/워크숍/캠프사업



신청 및 문의  http://bit.ly/18gwlVA
           010-2540-7245 (목소리 좋은 활기 책임활동가 별다)
신청 기간  |  2013년 9월 1일 ~ 9월 16일
                  (사전 신청을 통해 수량 확인 후 9월 말 발간할 예정입니다)
가격  |  10만원  (5권 1세트, 배송료 포함)
입금할 곳  |  우리은행 1005-802-084005
                    예금주: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입금은 9월 17일까지는 해주세요~)


"총 3000여쪽이니까 10만원이더라도 용서할 수 있을 거 같아!!"



파란만장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백서 출판기념회

때 : 9월 26일(목) 오후 7시
곳 : 레드북스 (서대문역 3번출구 걸어서 5분)


청소년활동가들의 만남과 나눔의 자리
알고 있는 분들, 알고 싶은 분들, 모두 초대함!



"네트워크를 기억하는 누구나 놀러오세요~ 홈커밍데이★"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http://cafe.daum.net/Life201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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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9. 14. 21:44

[시국선언문]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인천 청소년 1515인 시국선언


18대 대선에서 국가정보원 소속 직원들이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리는 등 여론을 조작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국정원의 실체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로 불렸던 국정원은 당시에도 선거개입을 했었다. 국정원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아온 역사를 갖고 지금까지도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도 국정원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대선 삼일 전 경찰은 여론조작의 증거를 확보하고도 수사 결과를 거짓으로 꾸며 발표했다. 당시에 국정원 직원이 다수의 아이디를 사용한 증거는 나왔으나, 댓글을 단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차라리 피씨방에서 천원을 낸 증거는 있으나 컴퓨터를 사용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주장하지 그랬나. 또한 검찰은 윗선의 지시를 받아 선거개입을 했다는 이유로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유예 함으로서 사실상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찰 수사발표가 있기 전에 이미 TV토론회에서 국정원이 무죄라는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실이 드러난 다음에도 국정원 감싸기에 바빴다. 새누리당 또한 귀태 발언,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등 상관없는 다른 쟁점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애썼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국선언에 참가하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지만 이미 정부에 장악 당한 언론과 방송은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뿐만 아니라 경찰, 검찰,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빼앗긴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이 줄을 잇고 있다.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계속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촛불집회가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많은 청소년 또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은 앞으로 나서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외친 현장에는 우리 청소년이 있었다. 4.19민주화 운동에서, 80년 광주항쟁에서, 87년 민주화 운동에서도 청소년이 앞장서 민주주의를 함께 외쳐왔다. 2013년 현재, 민주주의의 광장에서도 우리 청소년은 존재한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미래를 저당 잡힌 불안한 꿈나무가 아닌, 현재의 정치적 주체이자 시민으로서 선언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일궈낸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청소년의 이름으로 새로 써 내려갈 것이다. 청소년의 정치적 발언권을 막으려는 어떠한 탄압으로도 청소년의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탄압에 당당하게 맞설 것이다.


이에 우리는 요구한다!


하나. 박근혜 정부는 현 사태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선거에 개입한 관련자를 처벌하라!


하나.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책임져라!


하나. 박근혜 정부는 언론통제를 즉각 중단하라!


하나. 청소년도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다. 청소년의 정치참여의 권리를 보장하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인천 청소년 시국선언 참가자 1515



참여자 명단 (가나다순)

강 경민 강다예 강다인 강도훈 강동찬 강동혁 강동휘 강명석 강민규 강민석 강민주 강민현 강병국 강병진 강상욱 강석현 강선미 강설후 강세리 강수빈 강수현 강예림 강유림 강인솔 강인솔 강인실 강지욱 강지현 강지훈 강진욱 강태림 강태수 강태호 강태호 강한나 강혜민 강희구 강희준 고관현 고도혁 고범수 고병익 고병찬 고서영 고선영 고수연 고승연 고아영 고영주 고윤상 고은설 고준아 고지영 고지훈 고찬영 고현준 고현진 고효섭 고희나 고희진 공대훈 공지혜 곽다인 곽은비 곽은지 곽희돈 관재상 구동해 구동현 구민선 구민성 구본필 구승현 구태원 구혜선 구혜선 구희연 구희진 권구승 권규리 권기현 권선경 권수연 권수정 권숙현 권순호 권영한 권예진 권오연 권오우 권은솔 권지현 권태규 권하은 권혜연 기찬 길동우 김가영 김가희 김가희 김강 김강혁 김건우 김건우 김건희 김경민 김경은 김경훈 김관우 김규리 김규리 김규림 김금수 김기나 김기범 김기범 김기옥 김나연 김나영 김나영 김나영 김나현 김나희 김남균 김남훈 김남휘 김누리 김다미 김다비 김다빈 김다솜 김다신 김다연 김다영 김다은 김다인 김다인 김다인 김다인 김다희 김다희 김대기 김대니 김대영 김대현 김도연 김도현 김도현 김도현 김도희 김동규 김동진 김동진 김동하 김동현 김동현 김동호 김동희 김동희 김두진 김랑희 김래영 김명진 김미경 김미조 김미지 김미진 김미진 김민경 김민경 김민경 김민기 김민서 김민선 김민섭 김민성 김민아 김민아 김민영 김민정 김민정 김민정 김민정 김민주 김민준 김민지 김민지 김민지 김민지 김민지 김민진 김민태 김민혁 김별아 김병민 김보미 김보배 김보성 김보종 김상열 김상우 김상탁 김상혁 김상현 김서영 김서영 김석원 김석주 김선규 김선규 김선미 김선민 김선아 김선정 김선진 김선희 김성전 김성준 김성진 김성현 김성훈 김세령 김세연 김세인 김세일 김소연 김소연 김소영 김소정 김소현 김소희 김솔 김솔수 김수민 김수빈 김수빈 김수빈 김수빈 김수연 김수연 김수용 김수원 김수지 김수진 김수진 김수현 김수환 김슬기 김승민 김승순 김승연 김승찬 김승한 김승해 김승현 김시성 김여상 김연수 김연우 김연우 김연욱 김연후 김영민 김영번 김영상 김영주 김영태 김영현 김예린 김예림 김예림 김예림 김예림 김예림 김예빈 김예슬 김예슬 김예은 김예은 김예은 김예인 김예지 김예지 김예지 김예진 김예진 김예진 김완선 김요셉 김용민 김용우 김용원 김용주 김용현 김우람 김우주 김운성 김원빈 김유진 김유진 김유진 김유진 김윤성 김은단 김은비 김은비 김은비 김은비 김은섭 김은수 김은영 김은정 김은채 김은택 김은택 김은혜 김의열 김이삭 김이삭 김재덕 김재범 김재선 김재열 김재영 김재용 김재홍 김정림 김정원 김정윤 김정한 김정현 김정훈 김제니 김종엽 김종윤 김종일 김주미 김주연 김주영 김주완 김주원 김주현 김주희 김준수 김준엽 김준현 김준호 김지설 김지수 김지우 김지원 김지원 김지윤 김지윤 김지은 김지헌 김지현 김지현 김지현 김지훈 김지훈 김지훈 김지희 김진교 김진석 김진아 김진용 김진우 김진 김진웅 김진혁 김진형 김진화 김찬윤 김찬중 김찬호 김창현 김창환 김채연 김채연 김채원 김채홍 김초롱 김태민 김태민 김태양 김태영 김태준 김태현 김태현 김태형 김태형 김태형 김태훈 김하늘 김하린 김하예슬 김한별 김한솔 김한진 김해주 김현근 김현수 김현우 김현우 김현정 김현주 김현주 김현준 김현중 김현진 김현진 김현진 김형근 김형근 김형빈 김혜령 김혜린 김혜림 김혜성 김혜영 김혜원 김혜인 김혜정 김혜진 김호영 김호정 김효민 김효신 김효정 김효중 김휘빈 김휘소 김희망 김희진 김희현 나미선 나예지 나지현 나진수 나현경 남경희 남궁완 남기룡 남기훈 남수연 남윤지 남채린 노강현 노관영 노다솜 노민혜 노상규 노유송 노윤지 노자훈 노주아 노지영 노지예 노훈선 당현관 당현민 도예솔 라윤정 라윤지 라정운 류대현 류연경 류지훈 류혜영 맹형주 모원국 문광옥 문민지 문선호 문세현 문소정 문영란 문정인 문정주 문정현 문준혁 문준호 문희주 민성희 민지현 박가은 박건진 박경진 박구슬 박규호 박근석 박근혜 박길준 박동빈 박민근 박민철 박범선 박병준 박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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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희 황성령 황숙정 황승희 황윤재 황이슬 황인영 황인태 황준섭 황진순 황한슬 황현우 황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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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7일 발표된 인천 청소년들의 시국선언문.

연명을 모은 규모로 볼 때는 상당히 수가 되는 편인데 묘하게 이슈화가 안 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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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9. 13. 15:02



http://cafe.naver.com/asunaro/50268



[성명] 우리는 두렵다, 그래서 말한다.
- 국가정보원 발, 우리 사회에 퍼져가는 ‘종북몰이’ 탄압에 대해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시절이 수상하다. 국가정보원은 자신들이 선거 때 온라인에서 여론 조작을 벌여온 것이 드러나자 ‘종북세력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종북세력’을 막기 위해서란 명분만 있으면 법이 정한 권한을 벗어나도 된다는 생각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던 국가정보원은 지난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 등이 “내란예비음모”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고 통합진보당 당원들 등을 체포했다. 그 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국회에서 거의 광속(狂速)으로 통과되었고, 이석기 의원은 구속된 상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이후다. 극우언론들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도 ‘종북’일 수 있다고 몰아간다. 극우단체와 반공주의자들은 폭력과 협박까지 감행한다. 입건된 이들과 관련된 사람․단체에 대해서는 각종의 혐오발언, 위협, 차별 등이 가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강의를 한 사람이 신고당한 사례도 있다. 청소년 시국선언을 한 단체가 운영상 비청소년 개입 등 문제로 갈등을 빚자, 극우언론은 ‘청소년은 정치에 물들어선 안 된다’라는 논조를 깔고서 이 사건을 ‘<이석기 키즈>를 만들기 위해 종북세력이 청소년에게 접근하여 이용하려 한 것’이라고 갖다 붙인다. 심지어 충북교총은 학생인권조례도 내란예비음모와 연관된 것 아니냐며, 조례 초안을 작성한 사람을 수사하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혹시 너도 종북 아니냐, 거기 연관된 것 아니냐고. 그 중에는 두려움 때문에 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혹시나 너나 나도 ‘종북’으로 낙인찍히고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우리는 두렵다


  그렇다. 우리는 두렵다. 이것이 누구나 ‘종북 아님’,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 체제에 동의함’을 인증해야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노골적인 폭력과 차별의 시작일까 두렵다. 극우언론 등은, 저들은 이미 유죄이고 저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으면 너도 유죄가 될 것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우리 사회 전체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변화를 상상하고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리고, 체제를 어떤 식으로든 바꾸려는 목소리는 작아지게 하고 있다.

  청소년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청소년들의 주체성이나 정치적 권리 문제는 신경도 안 쓰면서 ‘종북세력’들이 <이석기 키즈>를 만들려 한다는 언론들을 보라. 학생인권조례가 내란과 연관되어 있는지 수사하라고 하는 교사단체의 성명을 보라.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이 불온세력에게 조종당한 거라고 말하는 꼰대들을 보라. 우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청소년에게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나이에 따른 위계와 차별, 나이주의를 비판한다.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고 학생들을 죽음과 불행으로 내모는 교육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청소년을 억압하는 국가주의․자본주의 등을 반대하고 청소년의 해방과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우리는, 충분히 불온하고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체제 전복 세력이나 ‘종북세력’으로 몰릴 수 있고 처벌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 때문에 우리의 활동을 망설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우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

  1995년, 청소년단체 ‘샘’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도 공안당국 등은 ‘샘’이 이적단체를 결성했고 체제를 전복시키려고 했다고 했다. 결국 이적단체 결성은 근거가 없음이 드러났고, 민족문화의 일환으로 택견을 배운 것이 무장세력 양성이었다고 했던 것 등 공안당국의 개드립은 웃음거리로 남았다. 그렇지만 ‘샘’ 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적 조항인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당시의 청소년단체들은 탄압에 시달려야만 했다. 지금은 과연 다를 것인가? 우리 아수나로도 뚜렷한 근거 없이 언론과 온라인 등에서 ‘전교조가 길러낸 홍위병’이라는 등의 비난을 받아왔다.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 있다는 이상한 음모론도 들어봤다. 근거 없는 비난과 억측에 불과해서 무시했던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 실체를 가질지도 모른다. 정부와 극우언론 등의 합작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그것을 가능케 할 것 같아 보인다. 그것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두려움을 알고서도 맞서 싸우는 것이 용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두려움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지 말라고,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려고 한다.

  만약 정말로 이석기 의원 등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거나 전쟁을 대비한 무력 활동을 논했다면, 국회의원으로서 용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역시 평화를 지향하며 보편적 인권을 지지하기에,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나 남북한의 군사주의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또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만약 인권 침해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뭇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는 사람들이 낙선운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표현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인권 침해를 옹호하고 군사주의를 선동하는 다른 수많은 정치인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겠지만 말이다.

  정말로 내란을 예비했다면, 이는 폭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므로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내란예비음모죄로 입건된 사람들의 유무죄만 논할 때는 말이다. 그 문제에서는 섣부른 피의사실 공표나 적법절차의 문제 같은 게 중요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내란예비음모죄라는 무리한 죄명을 들이댄 것은 아닌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 등 반인권적 독소 조항은 어떻게 폐지할지, 그런 것들도 이야깃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시작되어 온 사회로 퍼져 나가고 있는 흐름은, 이석기 의원 등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입장이나 군사주의적 사고방식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시작했지만, 국가정보원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사회 전체의 경직성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며 체제를 무조건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빨갱이 사냥’의 문제이다. 주류와 다른 사상을 가지고 다른 주장을 하고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혐오·배제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가고 있다.

  입건된 사람들이 유죄냐 무죄냐와 무관하게, 그들과 생각이 같으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상과 정치를 위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말한다. 다른 존재, 위험한 존재라고 섣불리 낙인을 찍은 뒤 돌을 던져도 된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말한다. 정부와 국가정보원은 ‘종북’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감시하고 탄압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공작을 중단하라. 극우언론․단체 등은 ‘종북’몰이와 낙인찍기, 혐오 폭력과 차별을 멈춰라. 청소년인권 등 사회 전영역에 반공주의와 탄압의 잣대를 들이대는 짓을 그만둬라. 청소년을 포함해 모두에게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자유, 변화를 위해 상상하고 활동할 자유를 보장하라!



2013년 9월 13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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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8. 25. 12:55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그들은 2013년에 다시 촛불을 들었을까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촛불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2008년의 촛불 청소년의 현재 2013년의 촛불 집회 참가 여부,

그 청소년들의 현재 상황 등을 추적한 기사.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조직적, 운동적 현상이 아니라 개인적 참여 경험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아, 두 번째 링크한 기사는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기사이니 참고 삼아 보시길.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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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8. 25. 12:39

‘청소년운동론’ 예고편.pdf


‘청소년운동론’ 예고편.hwp





『오늘의 교육 2013년 3․4월호』


‘청소년운동론’ 예고편
지난 호 특집 <연습인 삶은 없다>에 대한 어떤 답변


공현


지난 호 《오늘의 교육》 특집이었던 <연습인 삶은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용주의 ‘이제는 전교조 교사가 된 한 고등학생운동활동가의 고백’을 읽고 청소년운동에 대해 글을 써야겠단 생각에 펜을 들었다. 오해는 마시길. 이 글은 그 특집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 글은 내가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품어 오다가 최근에야 구체화된 어느 욕심의 부산물이다. 바로 청소년운동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는 글, 말하자면 ‘청소년운동론’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다. 여기에서는 그 ‘청소년운동론’에 관한 구상 몇 가지를 보여 드리려고 한다. 따라서 이 글의 어떤 부분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미완성의 밑그림처럼 읽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내놓는 것은, 지난 5~6년간 청소년운동에 빠져 살아온 한 사람의 청소년운동에 대한 생각들을 늘어놓는 것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청소년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운동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소개하는 내용도 덧붙임으로써 청소년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약간의 답도 드리고 싶다.


청소년운동? : 독자성, 주체성

기본부터 시작해 보자. ‘청소년운동은 무엇인가?’ 청소년운동론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을 빼고 계산하더라도 청소년운동의 역사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음에도 청소년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리가 정식으로 이뤄진 사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학술 영역에서도 청소년운동을 설명해 줄 만족스런 이론 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실 청소년운동에 관해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청소년운동에 적대적인 보수 언론 같은 데서 만들어 내는 ‘좌파 세력에 의한 청소년 세뇌의 결과물’, ‘좌경화된 청소년들의 위험한 활동’ 같은 것들이다. 이런 좌우 이분법에 기댄 해석은 광범위한 영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운동에 우호적이라는 이들, 또는 보수 언론들의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들 속에서도 청소년운동을 교육운동에 딸린 부록 같은 걸로 생각하거나 민주·진보·개혁·혁명·변혁·좌파...... 적 사회운동의 청소년판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운동에 대한 감정은 좀 다르더라도 청소년운동을 더 큰 운동에 딸린 운동, 다른 운동에 의해 정해지는 운동으로 보는 점은 같다.

청소년운동 내부에선 어떨까? 과거 고등학생운동에선 추측건대 ‘변혁운동의 한 주체로서 (중)고등학생, 그리고 그들의 주체적 운동’이라는 답이 주류였던 것 같다. 2000년대에 청소년활동가들은 청소년운동의 주체적, 저항적, 정치적 성격을 명확히 하며 ‘진보적 청소년운동’ 같은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확립된 아동인권 규범을 차용하면서, 또 급진적 인권운동의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개념이 통용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추구하는 ‘청소년운동론’은 청소년운동을 독립적이면서도 담백하게 정의한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의 권리와 해방과 행복을 위한 운동이다. 좀 더 말을 붙여 본다면 ‘청소년(아동, 미성년)에 대한 억압, 차별, 배제, 착취, 무권리의 문제에 맞서 청소년들이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청소년운동을 오직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놓이는 자리에 관련된 것으로, 즉 청소년들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그것에 의해 정의하는 것이다. 굳이 그걸 강조하는 것은, 그래야만 청소년운동이 청소년들의 현실과 이해관계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고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입장과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하는 사회운동이 곧 여성운동인 건 아니듯이, 장애인운동이 주로 보건·복지 분야의 의제를 다룬다고 해서 복지운동에 딸린 운동이 아니듯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하는 좌파적·변혁적 운동도 아니고, 교육운동에 딸린 운동도 아니다. 청소년운동을 이야기하기 위해 ‘진보성’ 같은 잣대를 갖다 대거나 인권 규범의 보조를 받을 필요도 없다. 청소년운동의 출발점은 청소년들의 현실과 그에 대한 비판적 인식만으로 족하다. 나는 운동의 보편적 가치는 어떤 거대담론 속에 운동을 자리매김함으로써가 아니라, 운동의 고유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생겨난다고 믿는다. 가장 독자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랄까?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가장 의미 있는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쟁점은 청소년운동을 청소년이 하는 운동으로, 즉 주체에 의해 정의하는 방식이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되는 문제인데, 여기에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을 훈육·선도·선교하는 활동들이 있어 왔고 이들은 ‘청소년운동’이란 표현을 선점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 및 육성’, ‘청소년들을 바람직한 국민/시민으로 길러 내기’ 등을 목표로 하는 청소년지도단체들, 청소년 유해 환경 감시 활동이나 그와 비슷한 일들, 종교적 단체들의 청소년 활동 등이 그 예이다. 지금도 ‘청소년단체협의회’나 ‘청소년계’ 같은 명칭이 가리키는 것은 그런 운동, 그런 단체들인 게 현실이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은 발전 과정에서 그런 것들과 선을 긋기 위해 운동에서 청소년들의 주체성 문제를 강조했다. 비청소년과 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를 경계하며 청소년만이 청소년운동을 해야 하고,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나이를 먹으면 청소년운동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었다.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주체로서 하는 운동이야말로 진짜 청소년운동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청소년 해방을 위해선 청소년들의 자력화와 조직화가 필요하다. 청소년운동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청소년 대중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 내는 힘이 없어선 안 된다. 비청소년과 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가 반복되는 것을 경계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만 할 수 있고 비청소년은 해선 안 된단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들은 주체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청소년 당사자들이 운동의 핵이 되어야 하나, 그것이 비청소년들을 따돌림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청소년이든 청소년이든 청소년운동에 널리 참여하고 긍정적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은 청소년운동 발전에 필수적이다. 청소년운동은 운동의 내용에 의해 주로 정의되는 것이고, ‘누가’ 하느냐 하는 문제는 의미 있지만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동시에,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과 비청소년 사이의 관계 문제, 비청소년들의 적절한 역할 등은 앞으로 ‘청소년운동론’이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청소년? : 나이 대, 계급성, 소수자

내가 만들려는 ‘청소년운동론’이 청소년들의 현실에 그 근거를 둔다면, 다음으로는 ‘청소년’이 어떤 존재인지가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아시다시피 청소년을 정의하는 기준은 ‘나이’다. 만 18세 또는 만 20세 등 그 사회에서 성년으로 인정받는 나이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청소년이라 한다. 청소년은 생애 중의 한 시기로, 한 나이 대로 이해된다. 이에 더해 여러 과학들은 청소년을 성장 중이고 발달 중인 존재로 보고, 2차 성징이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특성들로 설명한다. 사회적으론 청소년에 ‘어른 혹은 본격적인 삶을 준비하는 나이 대’, ‘미래의 꿈나무’ 등의 의미를 씌운다. 이처럼 통시적인 관점에서 생애 중의 한 시기로 청소년을 파악하고 미래에 종속된 존재로 보는 것이 이 사회에선 지배적인 인식이다. 사회운동 안에서도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들을 예비 청년/대학생활동가로 보거나, 청소년들의 권리 문제를 장래에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훈련 또는 학습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나는 이러한 통시적인 관점을 벗어나 바로 지금 당장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하고 싶다. 미래를 위한 일시적인 나이 대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청소년을 파악하고, 우리 사회의 한 집단으로 청소년 집단을 분석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무시되고 평가절하되고 낭만화되어 온 청소년의 삶을 말하기 위해 먼저 이뤄져야 하는 관점의 전환이다. 이렇게 접근해야 청소년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소수자로 이해할 수 있고 청소년의 계급성이라는 문제도 포착할 수 있다.

이제껏 청소년과 계급 문제를 연관 지을 때는 청소년이 속한 가족의 계급을 곧 청소년의 계급으로 간주하거나, 청소년이 이후에 비청소년이 되었을 때 어떤 계급에 있느냐 하는 문제만 관심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정용주의 글에서도 “청소년은 계급”이란 이야기가 등장하듯이, 청소년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살펴보면 청소년들 자체가 계급성을 가지며 청소년들만의 이해관계도 따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 청소년들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있고 가족에 딸린 존재로서만 사회에서 생존할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형편이다. 예컨대 청소년이 친권자로부터 독립적인 삶을 꾀하려 할 때, 혹은 가족의 테두리 밖으로 나오게 될 때 청소년의 계급성은 선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물론 청소년의 계급성이란 문제는 더 꼼꼼하게 연구되어야 할 주제이다. 가령 성별, 젠더에 따라서 계급성은 다르게 경험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 등 변화하는 사회적 상황 역시 청소년 계급의 현실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소년이 속한 가족의 계급과 계층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청소년의 계급성, 이해관계가 가족의 계급적인 관계와 어떨 때 일치하고 어떨 때 충돌하는지 등 밝혀야 할 문제들이 많다.

청소년을 ‘소수자’로 보는 것 역시 통시적인 관점을 벗어나야 가능하다. 청소년을 일시적인 나이 대로만 본다면 청소년은 소수자일 수 없다. 누구나 한땐 청소년이었고, 누구든 계속해서 청소년인 사람은 없는 탓이다. 그러나 딱 지금 이 순간 청소년들의 현실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적으로 청소년은 전체 인구의 1/4 정도, 10대로만 좁혀서 보면 1/8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수 집단이다.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과소 대표되는 것이나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것은 청소년들도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소수자’임을 말해 준다. 사회적 소수자로서 청소년들이 위치해 있는 권력관계의 동학動學, 청소년들의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소년을 나이 대가 아닌 사회적 집단으로 보게 될 때 우리는 청소년 집단이 영속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사회가 미성년에 대한 구분, 억압, 차별을 계속하는 한 청소년 집단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은 청소년운동이 계속될 수 있는 근거이고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 지닌 나이 대로서의 성격도 완전히 간과할 수는 없다.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청소년을 강조한다 해도, 그 오늘을 사는 일 중에는 내일의 삶을 생각하고 이어 가는 일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청소년들의 욕구와 관심 중에는 ‘내일’의 일, 장래의 생계, 노동, 진로 등에 관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게 당연하다. 청소년운동은 이 역시도 운동의 의제로, 조직화 과정의 일부로 적절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덧붙여 청소년 집단은 영속적이더라도 그 구성원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도 청소년운동이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자본주의? : 청소년 억압의 문제

청소년에 대한 억압, 차별, 배제, 착취, 무권리의 원인과 성격을 해석하는 것도 청소년운동론에서 중요한 논점이다. 과거 고등학생운동은 반민주적 군부독재, 민족 분단,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계급 모순 등의 사회문제에서 청소년에 대한 억압도 비롯된다고 보았던 듯하다. 이는 변혁운동으로서 고등학생운동의 특징이었고, 나는 이런 특징이 시사하는 바가 여러모로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성격상 고등학생운동에선 청소년 억압 자체에 집중하여 그 문제를 폭넓게 다룬 이야기를 찾기가 어렵다. 청소년운동의 경우 초기엔 청소년 억압의 원인으로 유교적 문화나 식민지 잔재, 비청소년들의 권위 의식 등 문화적 요인들을 지목하곤 했다. 그러다 청소년운동이 좀 더 이론적 자원들을 흡수하면서 경쟁 중심의 교육 및 사회, 국가주의, 신자유주의 등에 청소년 억압의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발전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청소년 억압에 관해 좀 더 다듬어진 이론은 청소년(아동)을 따로 구분하는 인식이나 핵가족 중심의 제도, 학교 제도 등이 근대 자본주의, 국민국가의 시대에 발명된 것이므로 청소년 억압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산물이라고 본다. 이러한 논의는 자본주의의 지속과 재생산을 위해 경쟁적인 교육 체제 등을 통해 청소년을 억압하고 있다고 보며, 경제 재생산, 문화 재생산 이론 등을 인용하기도 한다.

나도 현재의 청소년 억압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청소년 억압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한정 짓는 것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금과 양상이나 연령의 차이 등은 있겠지만 과거에도 많은 사회에서 성년/미성년의 구별을 두었다. 미성년에 대한 훈육 체제, 차별, 억압 등도 존재했다. 계급, 신분, 성별, 직업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지긴 했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청소년 억압은 가부장제―여성 억압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진 것 아닐까?

모든 사회는 지속과 재생산을 위해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을 기성 사회체제에 맞게 훈육할 필요가 있다. 새로 태어나 성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기성 사회에 대해 약자인 동시에 타자의 성격을 가진다. 그들을 기성 사회에 성공적으로 동화시켜야만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특히 기성 사회체제가 차별, 억압, 착취 등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면 동화의 과정은 더욱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청소년 억압의 뿌리라 볼 수 있지만, 청소년들을 일방적인 피해자인 양 묘사하는 건 아마 오류일 것이다. 그러한 동화의 과정은 청소년들의 입장에선 생존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며, 청소년들은 다양하게 기성 사회와 협상하면서 동화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소년 억압을 보편적 문제로 파악한다면, 청소년운동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긴 하되 반자본주의운동으로 속하지만은 않는 독자적인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 억압 문제를 개선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전망 또한 별도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아직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선 자본주의사회 이외의 여러 사회의 미성년/성년 제도, 훈육 제도 등을 청소년 억압이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검토해 봐야 한다. 그런 사례들에 대한 청소년들의 개인적·집단적 저항 사례 역시 분석해 봐야 한다. 이 가설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그런 역사학적·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 못지않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청소년 억압이 어떤 것인지 정리하는 것도 ‘청소년운동론’의 중요한 과제이다. 간략히 말해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청소년을 억압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는 가족과 학교로 나타난다.

청소년들은 가족과 학교에 속해 보호받고 교육받는 존재로서만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가족과 학교는 대다수 청소년들의 생활 전반을 통제하고 결정짓는다. 가족 제도는 개인들에게 사적으로 양육을 부담시키면서 청소년에 대한 친권자의 지배를 가능케 하고, 학교 제도는 청소년들을 ‘학교화’하며 경쟁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로 차별 및 억압을 정당화한다. 이 둘 ― 가족과 학교 ― 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가족으로부터 양육의 책임을 위임받았다는 것으로 여러 권력을 정당화한다. 가족은 학교의 입시 경쟁 등에 참여하고 동조하며 청소년들을 학교에 집어넣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자식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신자유주의적 부모상 등 가족은 학교 제도에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는 단위가 되며, 경제적 지위나 여건에 따라서는 학교에서 청소년이 탈락하고 배제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가족과 학교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서 청소년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가족과 학교 제도를 변화시키거나 폐지하는 게 청소년운동의 장기적 과업이다. ‘청소년’ 하면 ‘양육’과 ‘교육’이 항상 같이 따라다니는 것도 극복해야 할 문제일 테다. 그 밖에도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 덜 된 인간으로 간주하는 여러 제도나 관행들이 청소년 억압을 이루고 있다. 노인 차별 등을 포함한 ‘나이주의’ 역시 청소년운동이 싸워 가야 할 문제이고, 불안과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적·경제적 현실도 청소년 억압의 중요한 부분이다. 더 욕심을 내 본다면 청소년 노동착취, 전쟁 동원 등 주된 문제의 양상이 다른 외국의 청소년운동과 연대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청소년운동?

돌이켜 보면 청소년운동에 대해 이만큼 논의가 가능해진 것 역시 청소년운동이 지금까지 발전해 온 덕분이다. 요즘엔 주류적인 ‘청소년학’이 청소년에 대한 비청소년 중심의 관점 일색인 현실에서 어쩌면 청소년 해방을 지향하는 새로운 ‘청소년주의’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이대로 조금 더 밀고 나간다면 말이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일단은 글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청소년운동이 어디까지 왔는지 짚어 보려고 한다.

청소년운동은 1990년대 중후반에 학생인권 문제를 비롯해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를 나누는 온라인 모임들로 출발했다. 이런 자생적인 움직임들이 운동의 꼴을 갖추기까진 많은 시행착오와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두발 자유 등 학생인권 의제들이나 여러 청소년 억압 의제들은 제기되는데 운동의 중심은 형성되질 못하고 몇 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청소년운동 조직들이 2~3년을 못 가고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걸 두고 ‘하루살이운동’, ‘도돌이표운동’ 같은 표현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선 청소년운동 주체들의 의식이 계속 발전하고 변화해 왔다. 여기엔 청소년들의 자생적 투쟁 사례들이나 2002년 이후 몇 차례 있었던 대중적 촛불집회, 진보정당운동의 등장 등 여러 사건들도 영향을 미쳤다. 청소년운동의 정치적 성격에 관한 토론, 운동 방법론 및 ‘대중운동’에 대한 논의, 역사 정리 작업 등도 이루어졌다.

2004년에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로 시작해 2006년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이하 아수나로)’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아수나로는 그런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단체이다. 아수나로는 그 이전의 운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 속에서 만들어지고 성장했다. 아수나로의 특별함은 올해로 적어도 만 7년, 포럼 시절부터 따지면 약 9년을 존속하고 있다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2006년, 배경내 활동가가 내게 아수나로가 10년만 안 망하고 가게 하라고 약속(?)을 시켰을 정도로 오래 살아남는 것 자체가 청소년운동에선 숙원이었던 것이다. 아수나로만큼 긴 시간 활동을 해 온 단체가 그 전에는 없었기에, 아수나로를 통해 축적된 자료와 경험은 청소년운동에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간 연속성이 담보된 덕에 청소년운동은 이제 겨우 운동의 주체 집단이 형성되고 운동론도 내다볼 수 있을 만한 단계에 이르렀다. 물론 아수나로는 청소년운동의 종착지가 아닌 씨앗에 불과하다. 대중 조직도 활동가 조직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 넓은 활동 영역 등은 청소년운동의 발달 속에서 아수나로가 맡아야 했던 역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수나로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해 가느냐도 중요하고, 이후에 다른 청소년운동 조직이나 흐름들이 아수나로가 축적한 자원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도 중요하다. 아수나로 말고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로 이어지는 조직과 사람들 또한 청소년운동의 소중한 자원이다.

의제나 외적 성과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자. 청소년운동이 그간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킨 의제는 주로 학생인권, 그리고 좀 더 쳐 주자면 교육 문제, 청소년 노동,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정도이다. 이 중 학생인권은 1998년 학생인권선언, 2000년 두발자유화운동 이후 적어도 13~15년은 계속되어 온 청소년운동의 핵심의제이다. 현재까지 학생인권운동은 학교에서 학생인권 상황이 개선되는 데 기여하고, 법적으론 ‘때리는 체벌’을 금지시키고, 경기도·광주광역시·서울시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서울시·경남·충북에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성공시키는 등 눈에 보이는 성과들을 내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인권 문제에 관한 운동을 좀 더 만들어 가고, 다양한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조직해 낼 수 있다면 학생인권 문제는 부족하나마 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룰 수 있을 듯싶다. 오랜 기간 끌어온 학생인권 의제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청소년운동의 발전에도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청소년 중 다수인 초·중·고생들이 좀 더 시간적 자유를 얻고 정치적·문화적 활동을 할 여지를 얻고 탄압의 위험을 줄이는 것도 청소년운동 확대에 필수적이다.

학생인권 외의 의제는 성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러 의제들로 운동을 다채롭게 채워 가는 것도 당면 과제다. 교육 문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등은 그동안 몇 번 운동이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공론화를 시키지도, 운동으로 만들지도 못한 의제들이다. 이는 청소년 다수가 쉽게 공감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므로 운동으로 잘 다듬어서 폭발력 있는 활동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 장애인 등 청소년 안의 소수자 집단에 관한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운동은 당사자를 조직화하고 다른 소수자운동과 연대하고 교류하는 것을 통해 그 발판을 마련해 갈 수 있겠다. 탈학교, 탈가정, 주거권과 같이 다소 생소할 수 있고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의제들도 운동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기획이 요구된다.

청소년운동은 앞으로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양성이 늘어나야만 할 것이다. 여러 방향, 여러 방식의 조직화를 통해 다양한 대중 조직과 활동가 조직들이 생겨나야 청소년운동이 더 활력 있는 운동이 될 수 있다. 이런 조직들은 자생적으로 생겨날 수도 있고, 기획적으로 육성될 수도 있다. 한편으론 청소년운동 연구소, 청소년운동 언론, 청소년 주거 지원이나 협동조합 같은 모임, 청소년운동의 역량을 강화할 교육 기구 등도 만들어져야 한다. 할 일이 참 많아서 몸이 열 개여야 겨우 안심이 될 것 같다.

청소년운동은 지금 많이 잡아 봐야 수백 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작은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이 운동 외부의 미조직 청소년들과 잘 접촉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용주가 말한 “열광적 진동”도 “운동의 민주성”도 자신하진 못하겠다. 솔직히 말하면 슬슬 청소년운동의 구조 개편이 있어야 운동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도 너무 조급해하진 않으련다. 예전엔 불가능하고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많은 일들이 지금은 구체적인 그림도 그려 볼 수 있게 됐으니까. 이제 씨앗은 만든 것 같으니까. 아마 곧, 본격적으로 ‘청소년운동론’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몇 가지 싹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이 씨앗에 양분을 많이들 주시길 부탁드려 본다. 스스로 씨앗이 되시는 것도 물론 환영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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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2. 3. 31. 17:10

호랑이 간담회 때 쓴 내용에 비해 좀 더 개량하고 약간 더 덧붙인 내용입니다. 공현은 2달 동안 활동을 쉬고 있으니까 이런 걸 막 쓰고 앉았습니다....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를 위한 탁상공론

공 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 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 이미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이야기해왔고, 꿈꿔왔던 과제이다. 청소년들이 사회적․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세력으로 등장하기 위해서, 운동의 힘을 가지기 위해서, 대중조직화 또는 대중조직의 필요성은 숱하게 이야기되어왔다. 친목모임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 동아리―서클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소수의 급진적 활동가들만의 운동을 벗어나야 한다, 그 많은 지적과 요구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결국 대중조직화․대중조직의 필요성이었다.


2000년 무렵부터 이미 그 꿈은 어렴풋하게 그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2000년 만들어진 전국중고등학생연합도, 2008년 촛불집회 속에서 만들어진 전국청소년학생연합도, 그리고 어쩌면 전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역시 2000년 무렵 만들어진) 역시도 성격은 서로 다르더라도 전국 청소년운동 대중조직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1980년대에 "자주적 학생회"를 건설하려 하고 여러 조직을 만들었던 고등학생운동 때부터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는 절실한 꿈이었으리라.


그렇다. 분명, 대중조직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있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가 대중조직화에 나서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 청소년 활동가라고 하더라도, 대중조직화․대중조직이 있으면 좋겠다, 있어야 한다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구체적으로 청소년 대중조직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며 운영돼야 하는지, 대중조직화와 대중조직, 대중운동의 개념상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런 것들이 약간 불분명한 것이 현실이다. 1980년대 노동․통일․대학생․좌파운동 등등을 자기화한 운동론․조직론도 있었고, 이에 따른 성과도 실패도 있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청소년운동에 이를 적용하기에는 사회적 상황이나 청소년운동의 현실 등도 다소 부적합해 보인다. 그리고 개중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이론에 경도되어 지금과는 언어가 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도 있고 말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차원에서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에 대해 정리하고, 또 현재의 청소년운동이 염두에 두어야 할 방법들과 구체적인 목표들을 설정하고자 한다. 물론 이 글은 뭐 면밀한 연구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을 며칠 앞두고 잉여로운 시간 동안에 그동안 어렴풋이 생각해왔던 것들을 정리해보려는 것에 불과하다. 대중조직화는 이런 글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직접 발로 뛰고 사람들을 만나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다만 이 글이 "대중조직화․대중조직"이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이 들리는 청소년 활동가들에게 구체적인 생각과 실천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이 글은 탁상공론이므로 이 글에서 이야기한 것 그대로 운동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비판하고 반대하고 부분적으로 지지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논의와 활동이 촉발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다.



◎ 대중조직․대중조직화에 대한 개념 정리


먼저 가장 기본적인 부분, "대중조직화"란 무엇인지, "대중조직"은 또 무엇인지부터 정리하겠다. 의외로 잘 개념 정리가 안 되어있는 것이다. 먼저 대중조직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니 대중조직은 "각계각층에서 공통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반 대중들로 조직된 사회단체. 노동조합, 소비자 보호 단체, 압력 단체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정의는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맥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예컨대 우리가 운동에서 "대중조직"이라는 말을 쓸 때, 그 말은 보통 "활동가조직" 등의 말들과 대비를 이루면서 그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즉 소수의 활동가들이 이슈파이팅을 하거나 위험성이 높은 희생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의 사람들이 활동하는 조직이 대중조직인 것이다. 이러한 대중조직은 참여하는 사람의 수나 재정, 사회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등 여러 측면에서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 변화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대중조직은, 쉽게 말해서, 사람들의 생활의 '현장'에서부터 상당수의 대중들이 조직되어 있는 형태의 조직이다. 여기서 대중은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고, 노동자, 여성, 농민, 청소년, 대학생, 특정 지역의 주민 등 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경우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노동조합총연맹 같은 것이다. 지역 당협(과거 지구당)이나 기타의 여러 조직들을 통해서 다수의 대중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정당들도 일종의 대중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조직이 대중조직이라고 불리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을 생각해볼 수 있다.


㉠ 숫자. 조직화된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하는 것은 대중조직에서 필수이다. 전체 집단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5천만 한국 인구를 생각해볼 때 아무리 못해도 수천명 이상 조직화되어 있어야 어엿한 대중조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아니면 수천명의 조직화를 구체적인 목표로 두고 이루어나가고 있는 중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작은 지역이나 집단 안에서의 대중조직인 경우엔 수백명 정도 수준이어도 되겠지만, 여하간 전체 집단에 비했을 때 어느 정도의 비율과 숫자는 갖추고 있어야 대중조직이라고 부를 만하다.


㉡ 현장성. 대중조직은 그 대중조직을 이루는 대중들의 삶의 현장에 밀착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직의 구성원들이 개인화되어서 그냥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 있기만 하는 형태의 모임은 대중조직이라고 할 수 없다. 대중들의 삶의 현장에까지 직접 조직화의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대중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일터, 지역, 학교 등 여러 삶의 현장에 그 구성원들을 조직화하는 단위가 꾸려져야 있고, 그 단위가 현장의 목소리와 현실을 대중조직의 운동에 전달, 반영시켜야 한다.


㉢ 목적․의식. 대중조직은 그 조직을 구성하는 대중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대중들 공통의 이해관계나 권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조직은 공통의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의식이라는 것은 뭐 거창한 이론이나 이념이 아니어도 좋은데, 여하간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론이라거나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 구성원들 사이에 어느 정도 동의가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중조직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내부에서 많은 논쟁을 하기도 하고 의견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는 동의가 이루어져 있고 아주 이질적으로 갈리지는 않기 때문에 조직이 꾸려지고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중조직은 다음과 같은 성격들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① 대중조직 안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일단 사람들의 숫자가 많으니까 이건 거의 필연적이다. 설령 그 대중조직의 목적과 의식 등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라고 하더라도, 성격이라거나 사고방식이라거나 인간성이라거나 여러 성격들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② 대중조직은 대의제․관료적 운영 방식을 일부 취한다. 이 역시 대중조직이 사람 수가 많고 덩치가 큰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관료화 등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또한 대중조직의 현장성은 대중조직의 결정 구조가 다분히 단계적인 형태를 가지도록 하기 때문에, 대의제의 도입도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대중조직은 관료화되고 상층 간부들의 사조직화 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원칙과 힘을 잃지 않도록 경계하고, 때로는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중조직화"란 어떤 것인가?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은 "대중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조직되어 있지 않은 대중을 조직화하여 대중조직을 만드는 과정, 그것이 바로 대중조직화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조직화는 여러 개의 현장에서 대중들을 조직화하고 그 조직들을 연합시킴으로써 이루어질 수도 있고, 중심이 되는 대중조직을 지향하는 조직을 먼저 만들고 그 조직을 구심점으로 삼아 여러 현장 조직들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대 선진적 활동가들의 노력에 의해서나 자생적인 형태로 공장별 민주노조를 만든 후 그 노조들이 연합하여 노동조합총연맹(노총)을 결성하는 경우라거나, 또는 처음부터 산별노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라거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같은 경우)를 건설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조직을 만들어서 대중들을 가입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대중조직화"가 반드시 "대중조직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중조직이라는 형태를 가지지 않더라도 대중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조직되어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즉 대중을 조직화하는 것 그 자체가 넓은 의미에서 대중조직화일 수도 있다. 대중조직이라는 형태의 필요성이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조직의 중간 단계나 전후 단계로 이러한 포괄적인 대중조직화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당한 예일지 모르겠는데, 프랑스의 경우 노조 조직률은 한국보다 더 낮은 8~9%를 기록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단체행동 등에 참여하는 경향은 한국보다 더 높다. 프랑스의 노조 조직률이 낮아진 것 자체도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겠으나, 여하간 이는 노동조합 같은 통일된 대중조직의 형태로 조직화되지 않더라도 기타 문화적 부분이나 사회의 여러 조건들을 통해 노동자 대중들이 '조직화'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아닐까. 즉, 하나의 통일된 대중조직의 형태를 가지지 않더라도, 대중은 조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의 어려움


나는 가능한 한 청소년운동에서도 대중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과제가 대중조직을 바로 만드는 것인지, 또는 청소년 일반의 대중조직이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좀 유보적인 입장이다. 대중조직의 형태라면 청소년 일반의 대중조직이 아니라, 초중고등'학생'들의 대중조직이나,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같은 식으로, 여러 청소년들의 상황에 따라 다른 대중조직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솔직히 말해서 어떤 형태가 잘 작동하고 좋은 효과를 낼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쿵저러쿵 해도 나는 청소년운동에서 대중조직을 직접 건설하려는 형식이든, 대중조직을 바로 건설하는 게 아닌 다른 방식이든, 여하간 "대중조직화"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가 여러 어려운 점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려움이란 게 복합적이다. 우선은 대개의 운동들이 한국 사회에서 조직화를 할 때 겪는 문제인데, 탄압이라거나 한국 사회의 보수성이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여하간 뭔가 이런 집단을 이루고 활동에 조금이라도 참여하고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학교로부터 가정․친권자로부터 직접적으로 탄압을 받기도하고, 아니면 경쟁교육의 압박 때문에도, 적지 않은 장벽과 위험부담을 가진다. 이런 조직화를 금기시하고, 청소년들의 정치활동 등을 죄악시 하는 사회문화적 풍토 역시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때로는 청소년 조직화에 나선 활동가들이 직접적으로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거나 하는 일도 일어났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대부분의 다른 운동들 역시 한국에서라면 어떤 형태로든 겪게 되는 것이니 뭐 그렇다고 치자. 이제 청소년운동의 특수성을 따져보기 시작하면 아주 그냥, 돌아버릴 것 같다. 가장 먼저,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은 매우 그 기간이 짧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청소년 정체성은 보통 길어야 10년이면 끝이고, 대개의 경우 청소년운동 같은 것을 알고 활동하기 시작하는 게 10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3~4년이 고작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조직화될 절실성이나 필요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몇 년만 참으면 되는데"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먹히는 것이다.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노동자, 주민 등 잘 변하지 않는 정체성의 대중들을 조직화하는 경우가 청소년운동에게는 그다지 참고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참고할 만한 건 대학생운동 등 몇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직접적인 문제도 있다. 대중조직화 작업은 보통 상당히 긴 기간을 필요로 하는데, 청소년기가 짧다는 것은, 기껏 열심히 조직화해놓은 사람들이 몇년만에 금방 청소년이 아니게 사라져버린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청소년 대중조직화 사업은 양적으로 잘 성장하지 못하고, 한 부분을 조직화해놓으면 그 전에 조직화했던 다른 쪽이 없어지고 하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곤 한다. 만일 조직화 정도를 "지금 현재 청소년인 사람들 중 몇 명이나 가입되었나" 같은 척도로 판단한다면, 청소년운동은 그 조직화 정도가 자연 감소하는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다. 물론 어느 운동이든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청소년운동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


두 번째는 돈이다. 한국에서 청소년들의 경제적 생활은 다수가 가정․친권자에게 종속되어 있다. 즉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청소년 대중을 조직화해서 '회비'를 걷는다거나 해서 조직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회비를 걷더라도 아주 소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이 그래도 비교적 조직화를 하면 조합원들의 '조합비'라는 형태로 활동에 필요한 돈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가볍지 않은 단점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보편적인 복지제도나 공공 사회 시설도 열악한 한국 사회에서는 이 단점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한국 사회에서 변화하는 노동시장 등 경제 구조라거나 청소년들의 시간을 대부분 규율하는 독특한 입시경쟁교육 문화라거나 다른 집단들에 비해서 공식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권리(선거권이든 뭐든)조차도 완전히 부정당하고 있다는 점, 비청소년 사회운동들조차도 청소년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 등,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의 어려움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한 번은 우스갯소리로 공장은 위장 취업이 되는데 학교는 위장 입학․전학이 안 돼서 문제라고 한 적도 있다.) 뭐 하지만 생각해보면, 노동자들에게는 당장의 해고 위험이나 자본과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 같은 노동자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장애인운동 역시 한국 사회에서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들은 그래서 어떤 형태의 대중조직화가 청소년운동에 적합한지 생각해볼 때 유의해야 할 문제일 뿐, 대중조직화 자체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대중조직화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더라도, 나는 청소년운동의 이러한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당장 대중조직 건설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대중조직화에 나서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운동에서 "대중조직"을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대중조직을 만들고 참여하는 등 청소년들의 활동의 자유가 좀 더 보장받고 위험부담이 적어진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대중조직의 현장성이라는 성질을 생각하면 학교나 일터, 지역(지역으로 들어가면 가정과 무관해지기도 어렵다.)의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대중조직이 만들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말이다.


일단 긴 시간을 들여 아래에서부터 조직화해내서 연합을 꾸린다는 형태부터가, 청소년운동의 특성상 시간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누군가가 청소년운동의 학교 현장성을 강조하며 몇몇 학교들을 성공적으로 조직화해내고 좋은 운동의 사례들을 만든다고 치자. 이제 그 학교들의 성공사례를 알리고 다른 학교들을 조직화하러 나설 즈음이면, 그 몇몇 학교들의 조직들은 더 이어지지 못하고 상당수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더군다나 한 학교에서 성공한 방법이라고 해서 다른 학교에서도 성공적이리라는 보증은 거의 없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와중에 학내조직이 일정 수준이상으로 여러 학교에 늘어나고 이 조직들이 연합하여 대중조직을 꾸릴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 오해는 마시라. 그렇다고 해서 학내조직화나 사례를 만들어내고 시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니까. 단지 그 방법을 통해서 곧바로 대중조직 건설을 노리는 코스가 어렵고 다른 우회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고등학생운동이나 청소년운동 안에서 만들어보려고 시도되어 왔던 학생회연합 같은 형태의 조직이, 아마 지금보다 나아진 조건 없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대중조직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나는 일단은 대중조직을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포괄적 의미에서 대중조직화를 먼저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대중조직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청소년 대중조직화 장기 목표 : "10대 청소년 1% 조직화"


청소년운동의 경우에 대중조직화를 이루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냐는 의문을 많이들 가지게 된다. 예컨대 현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회원 수가 약 140명가량 되는데, 이건 대중조직인가? 아님 500명이 넘어야 대중조직일까? 아님 수십만명? 앞서 말했듯이 어느 정도 숫자 이상이어야 대중조직이라고 말할 만한 정확한 기준은 아무데도 없다. 그런 걸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다만 나는 여기에서 청소년운동이 앞으로 목표로 삼을 만한, 의미있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해보려고 한다.


현재 한국의 10~19세, 10대 인구는 약 660만명이다. 나는 일단 이 10대 인구의 1%, 6~7만명을 조직화하는 것을 청소년운동의 장기적 대중조직화 목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1%라는 수치는 계산과 기억을 편하게 하기 위해 편의상 잡은 것으로, "1% 운동" 같은 식으로 활동가들이 기억하고 목표로 삼기 쉽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6만명이라고 하니 매우 많아 보이지만,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정도인데도 그 조직률이 낮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1%는 결코 높은 수치라고 볼 수는 없다. 숫자로만 봐도, 예컨대 우리가 그렇게 자주 욕하곤 하는 전교조의 경우에도, 교사의 수는 전체 10대 청소년의 수에 비하면 아주 적지만 조합원 수는 현재 8만여명이다. '조직화'라는 게 그 인원 모두를 '활동가' 수준으로 만드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은 새마을운동 같은 관변적 조직을 제외하면 대중조직화가 잘 돼있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비교해보면 노동조합 쪽의 조직률이 오히려 높은 편일 정도이니까, 앞서 논의한 청소년운동의 여러 걸림돌들을 생각하면 1%라는 수치는 상당히 높게 잡은 목표치라고 볼 수도 있다.


1% 조직화. 이는 곧 10대 청소년 100명 중 1명은 조직화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한 학교를 약 1000명 정도로 생각하면 그 중 10명은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이고, 수도권이라면 약 3만명 정도가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직화'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감을 잡아볼 필요가 있다. 수만명 전부가 일상적으로 청소년운동에 높은 수위의 참여를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할 터이다.


조직화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가장 떠올리기 쉬운 것은 조합원․회원․당원 같은 것으로 가입하는 등의 방식이다. 그렇지만 또 곰곰히 따져보면 형식적으로 가입만 하고 있다고 해서 조직화가 되었다고 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페이퍼 당원이니, 돈만 내고 노조의 활동에 공감하지도 참여하지도 않는 조합원 같은 존재들은 어디에나 있다. 조직화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본질을 찾으라고 한다면 역시 '접촉'과 '교류'일 것이다. 즉 지속적으로 접촉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조직으로부터 구성원에게로, 구성원으로부터 조직에게로 정보와 행위가 오가는 것이 조직화의 본질이다. 즉 조직화가 잘 되어 있다면, 구성원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그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조직에서 제공하는 일정한 통로와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이나 정보를 전달하고 반영할 수 있고, 조직 역시 구성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공동의 행동을 하도록 참여를 이끌어내서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조직 입장에서 볼 때는 '동원 가능한' 사람들, 또는 조직의 운동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하고 교육하고 설득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곧 조직화되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반면, 구성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때로는 자신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과 정보, 이해관계 등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얻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로가 조직화일 것이다. 물론 이건 단순화시킨 도식이고, 실제로는 조직 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관계 맺기가 일어나고 이런 요소 역시 조직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요컨대, 청소년운동에 6만명이 조직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단일한 대중조직에 그 6만명이 가입되어 있으며 그 6만명의 참여로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며, 또는 좀 더 느슨하더라도 청소년운동 전반에서 만든 여러 창구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접촉․교류하여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고 행동에 참여하도록 해볼 수 있는 청소년의 수가 6만명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조직화의 방식이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일 1% 조직화가 현실화된다면, 청소년운동은 온힘을 쏟아 부었을 때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청소년들의 힘을 수도권에만 1~2만명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전국적으로 움직였을 때도 3~4만 이상의 청소년들이 함께 뜻을 모아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숫자는, 청소년운동이 극소수의 청소년 활동가들에게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청소년 대중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수치이다. 그리고 과거 여러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촛불집회나 대중운동의 경험을 돌아보면, 3~4만명이라는 것은 청소년들이 마음을 모아서 행동에 나설 만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른 조직화되지 않았으면서도 동조하는 청소년들이 큰 부담감 없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심리적 선을 그럭저럭 넘기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1%, 6만이라는 조직화된 인원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기획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사건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할 때에도 필요한 최소치를 만족시키는 숫자와 비율이다. 적어도 100명 중에 1명 정도 꼴로는 조직화되어 있어야, 두 다리나 세 다리 정도를 건너서 청소년 대중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좀 더 실감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지역별 10대 인구(2012년 2월 기준) 통계를 바탕으로 1% 조직화를 했을 때의 숫자를 표로 만들어보았다. 물론 실제로 활동에 나섰을 때는 운동내외의 우연적 요소나 지역 분위기, 여건 등으로 인해 지역별 편차가 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표에서 제시한 정도가 각 지역별 조직화의 장기적인 목표로 삼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 표를 보면 정말 서울이랑 경기도가 대한민국 지역균형 발전 면에서는 ×새끼라는 걸 절감할 수 있다.


행정구역

 10~19세 인구

10대 인구의 1% (반올림한 천단위명수)

전국

6,630,196

66,302 (6만6천명)

서울특별시

1,192,541

11,925 (1만2천명)

부산광역시

425,476

4,255 (4천명)

대구광역시

348,631

3,486 (3천명)

인천광역시

378,811

3,788 (4천명)

광주광역시

228,820

2,288 (2천명)

대전광역시

216,500

2,165 (2천명)

울산광역시

168,134

1,681 (2천명)

경기도

1,650,374

16,504 (1만7천명)

강원도

195,462

1,955 (2천명)

충청북도

208,288

2,083 (2천명)

충청남도

266,047

2,660 (3천명)

전라북도

251,965

2,520 (3천명)

전라남도

244,833

2,448 (2천명)

경상북도

325,624

3,256 (3천명)

경상남도

444,796

4,448 (4천명)

제주특별자치도

83,894

839 (1천명)



◎ 조직화 방법론 : 외곽조직, 지역․학교 거점, 매체 개발 등


그러나, 다들 실감하고 있겠지만, 6만이라는 수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 6만명이 모두 활동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소 느슨한 조직화를 내다보더라도 그렇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만 해도 지금 당장 200명 조직화도 어려워서 허덕이는데 무슨 만 단위의 조직화를 바라본단 말인가? 물론 나도 당장 짠하고 6만명이 조직화될 마법의 기술을 소개할 능력은 없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저 1% 수준의 조직화가 약간 현실화될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이라도 보일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걸 다 하면서 온힘을 다해 뛰더라도 약 10년 정도 뒤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지금 단계에서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조직화를 위한 방법론들을 몇 가지 제안해보려고 한다.


하나는 '외곽조직'이다. 외곽조직이 무엇인지는 중심에 있는 본 조직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을 상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보자. 아수나로의 활동회원이 된다는 것은 사실 은근히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며, 해야 하는 활동의 양도 많은 편이다. 아수나로의 주장이나 조직 내에서의 감수성을 봐도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그러므로 아수나로에 가입시키는 방식으로 수천명 수만명의 청소년 대중을 조직화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 '외곽조직'의 형태로 조직화를 꾀해볼 수 있다. 아수나로로 청소년들을 가입시켜서 조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수나로 멤버쉽을 가지지는 않더라도 아수나로에서 하는 모임이나 사업 등에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청소년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가짐으로써 간접적인 조직화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수나로 지부가 지역에서 청소년 아카데미 사업을 한다면, 거기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아수나로 회원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카데미 참가자로서의 멤버쉽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카데미를 통해서 정세에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청소년인권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청소년들은 아카데미에서 얻은 정보로 낮은 수준의 참여를 할 수 있고, 아수나로에도 자신들의 인권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아카데미를 예로 들었지만, 학교에 인권․토론 동아리 등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아수나로 회원이 학교 안에 활동의 일환으로 동아리를 꾸린다면, 그 학교 동아리는 아수나로에 속하지는 않지만, 아수나로와 접점을 가지고 교류하는 외곽조직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아수나로에서 특정한 이슈에 대해 활동을 하면서, 그 활동을 하기 위한 별도의 청소년모임 같은 것을 꾸리는 것도 일종의 외곽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밖에 다른 청소년운동 사안에 대한 동의와 상관없이, 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청소년들이 그 활동을 하기 위해서 프로젝트팀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청소년들이 그 활동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아수나로와 접점을 가지고 교류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외곽조직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외곽조직이라고 하면 뒤에 뭔가가 숨어 있을 것 같고, 뭔가 조종하고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의도를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이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이러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다. 여러분이 아수나로 회원이 되거나 아수나로에 가입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활동(아카데미, 캠프, 프로젝트팀, 동아리 등등)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걸 얻고, 아수나로는 청소년인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라고 대놓고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다가 그 중에 청소년운동에 필이 꽂힌 사람은 아수나로에도 가입하고 청소년활동가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중조직화를 넓히기 위해서는 어떤 단체․조직에 직접 가입시키는 것 외에도 이런 외곽조직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외곽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결국 하나의 단일한 대중조직으로 청소년들을 조직화하는 방향성은 좀 약화되는 셈이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대중조직화 노선을 선택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단일한 대중조직을 꾀한다고 하더라도 중간단계로 외곽조직 방법론을 버릴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외곽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나아가서 더 많은 조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학교들과 지역에 거점을 설정하고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여서 생활하는 곳은 이러쿵저러쿵 해도 어쨌건 아직은 초중고등학교이다. 그러므로 동아리를 만들든 아니면 비공식적 소모임을 만들든 학교 안에서 가능한 경우에는 모임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교 안에 이런 모임 조직을 하기 위해 동아리․소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노하우를 쌓고,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물론 학내 조직화는 만만치 않다. 대학교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간이 좀 있는 것도 아니고, 교사들의 간섭이나 학교 측의 탄압, 학교 안에서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의 부족 등 여러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무조건 학내 조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급해하기보다는, 가능한 여건의 학교에서 안정적인 모임을 만들고, 전반적인 학교 안 여건을 개선시키는 데도 힘써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지역 거점을 만드는 것도 꽤 효과적일 수 있다. 구나 동 정도의 작은 단위에서 그 지역 청소년들 수십명 정도를 모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게 되면 조직화는 확실히 현재보다 더 진전을 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아카데미나 캠프 등 여러 가지 방식을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나 프로그램을 가지고 청소년들을 모으고, 그 청소년들 중에 적극적인 일부와 계속 관계를 맺으며, 낮은 수위의 활동을 지역 차원에서 넓혀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하고 있는 여러 시민단체, 풀뿌리단체 등과 협력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지방자치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 대상 강좌를 열거나 사업을 하고 이른바 '마을만들기'를 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방자치에서도 아동․청소년들은 대부분 소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루트를 통해서 지역에서 주민들의 청소년인권에 대한 의식․감수성을 높이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청소년들을 조직화해내고 청소년운동을 전개할 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매체 개발이다. 청소년 대중조직화를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수만명의 청소년들을 조직화하고, 그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으로 접촉․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즉 정보를 전달하고 주고받기 위해서는 매체가 필요하다. 이 매체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청소년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며, 또 지금 청소년운동을 하는 주체들이 청소년 대중에게 좀 더 폭넓게 이야기와 정보를 전달하고 선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되면 홍보․컨텐츠제공․참여활성화 등 조직화의 주요한 도구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체는 인터넷을 이용한 매체일 수도 있고, 종이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형태일 수도 있다.


이 매체에서 중요한 것은 발간되고 소통되는 주기가 너무 길어서는 안 되고, 생활에 밀착해서 생활 속에서 유통되고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체는 청소년운동을 하는 주체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야 하겠지만, 많은 부분을 청소년 대중에게 열어둠으로써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쌍방향 교류가 가능해야만 더 효과적으로 청소년들의 조직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체를 만들고 운영할 때 가장 문제가 될 것은 역시 재정 문제일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받는 구독료 등은 최소화해야 하며, 적절한 광고나 지원 등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난점이다. 언론이라거나 매체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논의가 되었기 때문에 굳이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겠다.



◎ 맺으며 : 몸으로 부딪쳐보자!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아마,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그렇다. 이건 탁상공론이다! 여기 있는 이야기만을 가지고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를 추진할 수는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역에 따라서,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사업을 시작할지, 프로그램도 필요하고, 계획과 시행착오와 경험들도 필요하다. 예컨대 서울에서 1%, 1만2천명을 조직화하려면, 구별로 약 4~500명을 조직화한단 소리다. 아무리 외곽조직과 대중적인 매체 개발 등을 활용한다고 해도 가까운 시일 내에는 택도 없는 얘기다. 또, 저렇게 지역별 학교별 거점을 만들고 조직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화를 처음 시작할 활동가 주체들 역시 필요하다. 현재 전체 청소년활동가들의 수를 다 헤아려도 300명이 채 못될 테니 곤란한 조건이다. 6만명을 조직화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못 해도 600명, 아니 1천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


뭐 기왕 탁상공론을 하는 거, 좀 더 해보도록 하자. 당장 있는 어느 정도 적극적인 청소년 활동가들의 수를 100명으로 잡아보겠다. 이 100명이 2년 동안 앞서 말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1000명을 조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해보자. 2년 동안 100명 중에 50명은 비청소년이 되거나 여러 이유로 활동을 그만둔다. 그리고 새로 조직화된 청소년들 중 5%, 50명은 또 적극적인 활동가가 될 거라 가정해보자.(5%도 너무 크게 잡은 건 아닐까 싶다.ㅠㅠ) 그러면 이제 950명의 조직화된 덜 적극적인 청소년들과 100명의 적극적인 청소년활동가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또 …… 보다시피, 수를 늘리는 게 만만치 않다. 어쨌건 2년간 1인 평균 10명의 효율은 넘어서야 좀 더 조직화가 진척을 보일 듯하다. 좀 더 조직화 방법을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쌓고, 그리고 적극적인 청소년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조직하는 것부터도 시작해야 할 판이다. 일단 단기적인 1~2년 계획은 좀 느슨하더라도 조직화된 청소년 1000명, 그리고 적극적인 청소년활동가 200명 정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식의 숫자놀음은 지겹다고? 나도 지겹다. 그러니까 이제 숫자 이야기는 그만하겠다. 이런 계산을 통해서는 그저 1% 조직화라는 목표라 짧아도 10년, 길면 20~30년은 걸릴 장기적 목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을 뿐이다. 대중조직화라는 게, 이런 산술적인 방식으로 되는 건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사회 상황에 따라서 어떤 계기가 생기면 폭발적으로 조직화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안 될 땐 아주 안 되기도 하는 게 대중조직화다. 조직화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여러 투쟁은 계속 진행될 것이니, 만약 투쟁의 성과로 학교 안에서 조직화하기 용이한 조건을 쟁취하게 되면 더 빠른 속도로 조직화를 늘릴 수도 있을 것이고….


뭐 일단은 5년 이내의 단기적 목표로는 조직화된 청소년 1만명이라도 넘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조직화를 추진해가는 와중에 '대중조직'을 직접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효과적일 것 같다는 때도 올 것이다. 그럴 때는 "전국청소년권리연대"라거나 "전국중고등학교학생회연합"이라거나 뭐 그런 것을 실질적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방법들을 얘기해보았지만, 어느 정도 활동가들이 확보된다면 그 시점부터는 청소년의 권익을 목표로 한 청소년조합이나 연합 같은 것을 만들기로 결의하고, 그 조합의 모토와 지향과 표어를 간결하게 정하고, 그 다음에는 그 조합에 가입하라고 1년여 동안 가입서를 들고 다니며 직접 학교에서 지역에서 조합원 가입을 시키는 방식으로 대중조직화에 도전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합에 가입한 청소년들과 학교․지역 차원의 프로그램과 모임을 꾸려서 돌리고, 그러다가 5천명이라거나 1만명 등 목표한 수를 돌파하면 그 대중조직의 출범을 정식 선언하는 것이다. 대중조직화에는 그런 식으로 직접 부딪쳐 보는 게 중요하다.


약간 더 구체적으로, 대중조직화를 위해서 지금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은 대충 이정도일 것이다. ㉠ 지역 차원에서 지역․학교에 거점을 만들고 조직화하려는 노력 ㉡ 전국․중앙 차원에서 매체를 개발하고 운영하고 배포하려는 노력 ㉢ 지역별 조직화 시도들을 연계시키고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노력. ㉣ 전문성이 있는 집단에서 교육 등 운영할 만한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지부들이나 여타의 지역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청소년운동의 주체들은, 활동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조직화 사업을 하나씩은 추가해서 시도해보자. 지역 단위여도 좋고 학내 단위여도 좋다. 아카데미 형태이든 강좌 형태이든 공간 형태이든 프로젝트팀 형태이든 동아리 형태이든 좋다. 지금까지 청소년운동에서 의식적으로 조직화 사업을 벌인 건 그리 많지 않았잖은가? 그리고 그런 조직화 노력의 기록들을 모으고 축적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보자. 좀 더 효과적인 조직화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청소년운동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들은 매체 개발 준비를 시작해보자. 청소년운동의 대중적 매체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보급되기만 해도 조직화나 청소년운동은 한 발 더 크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진전이 되면,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대중조직을 만들기 위해 직접 회원을 모으고 다니면서 출범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고.


글을 쓰면 쓸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라는 목표가 얼마나 달성하기 어렵고 무거운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숫자 하나 단어 하나를 치면서 그 무게가 점점 더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청소년운동은 이제 적극적인 소수의 청소년활동가들의 이슈파이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도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이나 이슈에 따라서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들도 적지 않게 남아 있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5년 10년 후에는 청소년운동은 정말로 속수무책으로 손 쓸 수 없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제 곧 수감되어서 1년 반 동안 운동에 보탬도 못 되는 주제에, 이토록 긴 탁상공론 한 번 펼쳐본 이유는 바로 그런 위기의식 때문이다. "청소년운동 대중조직화". 이제 말로만 하지 말고, 구호로만 남겨두지도 말고, 명확한 개념으로 만들어 기획으로 구체적 수치와 행위와 목표로, 그리고 실천으로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운동대중조직화를위한탁상공론.hwp


청소년운동대중조직화를위한탁상공론.pdf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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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2. 3. 26. 18:25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네트워크는 죽으면 물음표를 남긴다.”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읽고, 지형을 살펴, 현재를 묻는<물음표 간담회>

 

안녕하세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입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청소년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며, 활동해온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006년 창립 이후 학생인권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청소년 인권의 다양한 영역(여성주의, 노동/알바, 보호주의 넘어서기 등)을 개척하며, 청소년 운동의 지평을 넓혀가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왔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올해 2012년, 5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며 해소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2010년에 꾸린 ‘청소년활동기반조성모임 활기'와 통합해 청소년운동 안팎에 필요한 또 다른 역할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사람도 적은ㅠㅠ 청소년 활동의 열악한 현실을 함께 바꿔내고, 보다 나은 청소년 활동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듯, 네트워크는 죽으며 물음표를 남겨보려 합니다. 점점 깊고, 넓어져 가고 있는 청소년 활동의 영역 속에서 서로 궁금했던 점과 함께 이야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투덜대며 또 힘을 받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더 번창할 청소년 활동을 꿈꾸며 즐겁게 죽어가는(?) 네트워크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들에, 여러분이 함께 고민하고 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이야기 나누고픈 여러분을 모십니다!

 

아래 자세한 기획안과 네트워크가 남기고 싶은 질문들을 첨부합니다.

3월 29일 목요일, 늦은 6시 30분에 함께 만나길 기대합니다.

 

 

◑ 때: 2012년 3월 29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 곳: 민주노총 교육원 (서대문역 근처 경향신문사옥)

◑ 여는 단체: 청소년 활동기반 조성 모임<활기>

 

◑ 목표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2006년 창립)의 발전적 해소 및 <활기>로의 통합을 맞이하여 현재 청소년운동의 위치와 지형을 점검함.

- 현재 꾸려져있는 청소년 당사자 운동 단위들의 활동가들이 모여 서로에게 갖고 있는 질문을 나누고,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 공유함.

- 듣보잡 취급받던 청소년(인권)활동을 망하기는커녕 나름 예쁘게 성장시켜온 서로의 노고를 다독임.

- <활기>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음을 청소년 활동가들에게 알리고, 앞으로 함께 할 수 부분을 발견함.

 

<앞풀이 마당> 오후 6시 30분 ~ 오후 7시

 

<본 마당 1- 네트워크의 다잉 메시지> 오후 7시 ~ 오후 7시 30분

: 네트워크가 청소년활동가들에게 보내는 유서

: 네트워크의 시선에서 바라본 청소년(인권)활동의 흐름을 재밌게 풀어봄

: 유언을 남기고 사라진 네트워크!

 

<본 마당 2- 청소년운동, 물음표를 나누다> 오후 7시 30분~ 오후 9시 30분

: 이야기 손님을 모시고 물음표를 나눠봅니다

: 이야기 손님 뿐 아닌 모든 사람의 참여로 후끈후끈한 토크를 나눠봅니다 



[네트워크가 남기는 물음표]

* 공통 질문: 자기 단위의 정체성, 활동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 3개 뽑고, 소개.

 

To. 아수나로

 

1-1) 청소년인권이 학생인권과 같은 말이 될 수는 없지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의 숫자도 많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나 가정 안에서의 인권 문제도 중요하니까요. 아수나로 역시 학생인권으로만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아수나로 활동가들 중 상당수가 탈학교 상태기도 하구요. 이러한 아수나로에게 전국적인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어떤 의미인가요? 작년에는 특히 다른 사업보다 학생인권조례(특히 서울지부)에 많은 역량을 쏟기도 했는데요. 듣보잡 학생인권이 전국적 이슈로 떠오르고, 중요한 정세가 되는 것은 의미 있으나 학생인권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에 대해 내부 이견이나 고민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1-2)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을 하며 청소년 활동가들이 참 많이 웃고, 울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비청소년을 만나 설득하고, 서명을 독려하는 과정은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야말로 ‘보통의’ 사람들과 운동의 내용을 널리 나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주민발의의 조건상(투표권ㅠ) 그간의 ‘싸가지 없음’을 내려놓고 어른(혹은 꼰대)들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다른 운동 방식의 경험이 아수나로 활동가들에게는 무엇을 남겼나요?

 

2) 아수나로는 전국 지부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어려움이나 고민은 없으신지요? 지역마다 운동의 자원(사람, 공간 등)도 다를 테고, 이슈도 다를 텐데 그 차이들을 어떻게 모아내는지도 궁금합니다.

 

To. 정당 청소년 위원회

 

1) 정당 청소년 위원회는 청소년 인권 의제 뿐 아니라 마리 투쟁이나 재능농성장 결합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인권문제를 다루기 위해 꾸려진 여타 청소년 모임들과 달리 여러 이슈들을 고른 비중으로 다루는 것 같아요. 청소년 위원회의 정체성이 궁금해요~ 정당 안에 있는 청소년(나이 기준)들이 모여 있기에 청소년 위원회인 것이지, 아니면 청소년이 겪는 차별의 상황을 알리고 청소년 인권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위해 모인 위원회인 것인지요.

 

2) 정당은 제도권 내 정치 세력화를 모색합니다. 선거를 잘 치러내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구요. 청소년은 피선거권은커녕 선거권도 없습니다ㅠㅠ 청소년 관련 정책은 그 흔한 공약에도 제대로 담겨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있어봐야 학부모를 겨냥한 정책들이 대다수지요. 이러한 조건에서 정당 안에서 운동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활동 공간을 정당으로 삼으신 맥락이 궁금해요. 청소년에게 정당 운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3) 비청소년 당원, 혹은 당직자들과의 관계에서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을 것 같습니다. 뒷담화로 꼰대들의 욕을 와장창 하는 걸로도 화풀이가 안 되는 순간이 있지요. 당내에서 나이주의, 청소년 차별과 관련해 공론화하거나 공식적 문제제기를 해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당내 갈등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To. 10대 섹슈얼리티 인권 모임 + 서울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10대 팀

 

1)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도 10대 여성주의 운동을 쪼꼼 해본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10대 혹은 10대 여성들과 성/섹슈얼리티 담론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섹슈얼리티, 라는 말 자체도 너무 어렵지요. 청소년 인권의 다양한 영역 중 활동 키워드로 ‘섹슈얼리티’를 잡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2) 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이라는 정체성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청소년운동 안에서 호모 포비아(동성애 혐오)와 싸우는 것, 성소수자운동 안에서 나이주의와 싸우는 것. 둘 모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차별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To. 고졸이하네트워크 ‘고등어’

 

1) 대학을 안 간다고 하거나, 대학(학력/학벌중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가장 당사자인 청소년들 스스로 이 이야기를 오히려 불편하게, 허황된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또는 ‘대학에 못가는(등록금의 문제든, 성적의 문제든) 사람도 많은데, 니들은 뭐냐!’ 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보수 언론이 이런 상황을 이용해 대학입시 거부, 학력 차별 반대 운동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학력차별에 반대하는 것, 대학만이 길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려내는 데 있어서 이 정서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말 걸기를 할 수 있을까요?

 

2) 대학을 거부하는 것, 가지 않는 것이 청소년들의 더 활발한 운동이 되려면 여러 조건과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고등어에서 탈대학 공부방 활동도 하고,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은 이후의 삶을 지원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갖춰져야 할까요?

 

To. 청소년 활동기반 조성을 위한 모임 활기

 

1) 활기는 2010년에 꾸려졌고, 올해 재정비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냥 청소년활동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활동기반 조성을 위한’ 모임을 꾸리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2) 활동기반을 조성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느낌은 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활동 지원금을 준다는 건가? 여기서 하는 교육을 받으면 된다는 건가? 등등 의문 투성이~ 앞으로 활기는 청소년 활동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인지요? 다른 청소년 모임/단체들과는 어떠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읽고, 지형을 살펴, 현재를 묻는 <물음표 간담회>!
많이 많이 와주세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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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2. 3. 8. 01:03


한고학연(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해산에 부쳐

(이 글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쓰는 글로, 제가 속한 단체의 입장은 아닙니다.)


지난번, <전청련 해산에 부쳐>라고 쓴 글에 이어 또 이런 글을 쓰게 됐습니다. 서글픕니다. 지난번에는 저보다도 더 늦게 청소년운동에 나타난 단체(전청련)의 해산을 기리는 글을 썼는데, 오늘은 그보다 더 전에 만들어졌던 단체, 한고학연의 해산을 기리는 글을 쓰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느 단체의 해산에 대해서, 같이 운동을 하는 다른 이들이 무관심하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서글프기도 합니다. 뭐, 저는 애매하게 흐지부지 공중분해 되어버리지 않고 '공식 해산'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단체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단체들에게 동시대에 활동해온 활동가로서 예의를 갖추고 싶은 것입니다만, 그런 것도 어쩌면저의 독특한 성벽일 수도 있겠네요.


제가 시작할 무렵에 출범했던 단체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연)는 제가 청소년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5년에 출범했던 단체입니다. 출범 초기부터 학생회 연합이라는 형식이나 명칭 때문에, "한총련의 고등학생 판이냐"라는 식의 언론의 공격에 시달려야만 했죠. 그리고 그때문에 한고학연 초기 멤버들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뭐 저는 그 당시부터 생각했던 게, 패기 있게 "우리는 한총련 같은 것보다 더 대단하고 영향력 있는 조직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출범한다!"라거나 "한총련이든 뭐든, 우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어디 한 번 보든가!" 하고 응수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긴 합니다만.

한고학연을 한총련에 비교한다거나 하는 것은, 조직의 규모든 지향점이든 활동 내용이든, 여러 모로 참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지요. 사실 저는 한고학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비정치성을 비롯해서 운동론에 대한 의견 차이도 있었고, 만들어진 뒤 약 5년간, 한고학연이 했던 활동이라는 게, 학생회 관련 캠프나 워크샵 몇 번을 연 것과, 설문조사를 몇 번 하여 발표한 것 외에는 없었거든요. 저는 적어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고등학생 조직으로서, 아니, "고등학생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조직, "고등학교 학생회의 권한을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는 학생회 연합 조직으로서 해야만 했고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그 5년간 훨씬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 해산을 결정한 한고학연의 구성원들이 아니라 지난 한고학연의 구성원들이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논의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고학연의 활동에 대한 저의 평가나 호불호를 떠나서, 한고학연이 해산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마음 찡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비록 내가 몸 담지는 않았지만, 내가 청소년운동을 시작했을 무렵에 시작되었던 조직. 그 조직이 이제 공식해산 했다는 것이 저를 왠지 감상적으로 만듭니다. 물론 한고학연은 2008년 무렵, 아니면 그 이전부터 활발한 활동은 없긴 했습니다. 그래도 '공식해산'이라는 게 주는 느낌이 그렇군요.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고학연의 공식해산은 청소년운동에서 나름의 짧은 한 시대가 졌다는 신호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저는 청소년운동에서 저와, 그리고 아수나로 등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들과 다른 견해와 운동론과 형태를 가진 조직이 꼭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령 다른 조직들이 서로 욕하고 비판하더라도, 어쨌건 각자가 서로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청소년운동의 발전과 사회 변화를 추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운동을 건강하게 만들 거라고 믿습니다. 한고학연의 해산은 '비정치성'이나 '학생회 연합'의 형태를 내세운 운동의 한 형태가 다시 한 번 실패하고 소멸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비록 제가 동의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슬퍼하고 또 쓸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 하기만 하진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고학연은 '비교적' 역사가 긴 편인 조직이지요. 그리고 대의원 선거 등을 통해 매년 조직을 새로 구성해오던 단체 특성상 한고학연을 거쳐간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한고학연의 해산을 결정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한고학연을 거쳐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한고학연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은, 한고학연의 해산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그저 가슴 아파 하며 침묵하거나, 비난하지만은 않길 바랍니다. 한고학연에 실었던 꿈이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니라 청소년운동의, 또는 좁게 보더라도 고등학생운동 또는 고등학교학생회의 발전이었다면, 한고학연 활동과 역사와 해산에 대해서 각자의 정리와 평가가 나오길 바랍니다. 저 역시 많은 단체, 모임, 운동들을 만들고 때로는 실패하고 흐지부지되고 사라지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짐한 것은, 이걸 단지 나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나와 나 이후에 청소년운동을 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밑거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정리를 하고 기록을 하고 글을 썼습니다. 한고학연의 공식해산에 가슴이 한켠이 아프신 분들도 많겠지만, 아파 하기만 하지 마시고, 그런 형태로라도 마음을 달래주시길 감히 부탁드려봅니다. 청소년운동을 계속 해나갈 한 사람으로서요.

한고학연을 처음 만드신 분들도, 한고학연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신 분들도, 한고학연의 공식해산이라는 결정을 내리신 분들도, 모두 애쓰셨습니다. 저도 더 애쓸 것입니다. 한고학연 해산 소식에, 서글픔과 쓸쓸함을 느끼지만, 앞으로 저도 더 많은 활동으로 한고학연의 역사에 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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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굴

    전청연, 한고학연에 대해 쓴 글이지만, 왠지 그 시대를 함께 건너왔던 공현이라는 사람이 자기 자신한테 쓴 애도의 글 같다.
    한고학연의 해산을 마음 아파할 사람들에게 공현이 쓴 말 그대로를, 공현에게 돌려주고 싶다. 녀석~

    2012.03.08 18:0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2. 1. 12. 22:31


사람은 누구나 무게를 필요로 한다. 사람이 땅에 딛고 서있게 해주는 질량. 사람을 묶어두는 닻들.
나를 청소년운동에 묶어두는 것들도 있다. 내가 청소년운동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그건 누군가의 말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태도나 모습일 때도 있다. 힘들어질 때도 이를 악 물고 넘어설지언정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만드는 매듭들. 그런 매듭은 내가 처음 청소년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바로 최근까지도 새롭게 계속 계속 생겨나고 있다.


내가 처음 청소년운동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두발자유를 위해 뼈를 묻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라고 묻던 다른 청소년의 말.
아수나로가 10년은 가는 청소년단체가 되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 다른 활동가(이 사람은 학생인권, 청소년인권 운동에만 10년이 넘게 있다.)의 말.
전국중고등학생연합 시절부터의 청소년운동의 역사나 거기에서 자기가 배운 것, 앞으로 아수나로에 전해지고 이어졌으면 하는 정신이나 교훈들을 나에게 하나라도 더 전하려 애쓰던 '선배'(?) 청소년활동가.
청소년운동에서 우리에게는 남아있는 '선배'가 없고, 동년배는 우리 둘밖에 없는 삘이니, 우린 우리의 '후배'(그냥 운동을 조금 더 늦게 시작했다는 점에서-)들이 그런 처지에 처하지 않게 하자고 말하던 동년배 활동가.
학교 안에서 학내운동을 하다가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상처입고,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그런 일이 적었으면 한다는 학생 활동가.



그 모든 게 나를 여기에 딛고 서있게 했던 것들.
내가 청소년운동(또는 아수나로) 그만둘까 어쩔까 하는 소리를 절대 쉽게 할 수 없게 하는 것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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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중고등학교 때 체육시간이 평생 건강인거 같아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2012.01.13 09: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18. 12:25
어린이책시민연대 회보에 부탁 받고 썼던 글입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받는 질문들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다. 좀 더 부연하자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등등 학생인권 활동도 하고, 교육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활동, 청소년 노동자들에 관한 활동도 하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활동 등등 여러 가지다. 활동을 하다보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술자리에서, 운동을 막 시작한 다른 청소년에게서, 등등…. 그런 질문들 중에서 한 번 대표적인 질문 몇 가지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게 아마 나에 대해서, 내가 하는 청소년운동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분들에게 가장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질문 1 : 어떻게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첫 번째로, 자주 받는 질문은 청소년인권이나 학생인권에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흔한 질문이다. 인터뷰 같은 걸 할 때면 누구나 앞부분에 배치할 만한 질문. 그렇지만 나는 그 흔한 질문에 항상 대답하기가 어렵다. 어떤 계기로 자기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인권을 알려면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건이 필요한 걸까? 굳이 따지자면 청소년으로서의 삶은 매 순간이 그런 '계기'로 가득 차 있는 것 아닐까.

나에게 초면부터 반말을 하는 어른에서부터 나를 오직 성적으로만 측정하는 입시 교육이나 친권자의 말을 들어야 하는 가족의 시스템까지, 미시적인 데서부터 거시적인 데까지, 청소년들의 일상은 모두 '계기'이다. 나 역시 특별히 뭐뭐가 싫었다기보다는, 그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청소년들이 받아야만 하는 온갖 비민주적인 불합리한 억압과 규제들 전반에 대한 짜증이 쌓여 있었다. 교복, 두발규제, 등교시간 등에서부터 진로나 입시의 문제까지, 모두 모두 모두! 아마 다른 청소년활동가들도 비슷한 사정이었을 것 같다.

오히려 문제는 인권에 대한 인식이나 자기 삶에 대한 불만보다는, '행동'일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나 불만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될까? 여러 가지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제가 얽혀 있을 법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운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냥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집단적 지속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하는 '운동'을 하게 될까?

나 같은 경우, 일단 '행동'에 나서게 되는 데까지는 별다른 문턱이 없었다. 그냥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이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단발적이고 개인적인 항의와 행동 등을 학교 안에서 했었다. 그렇게 하면서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았다. 고민이라곤 그저 부모님이 활동하는 것 때문에 불이익이라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과, 대입 등 진로 문제 정도? 애초에 성적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을 하면서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와도 괘념치 않았다. 교사가 불러서 나무라면 "지금 저한테 중요한 게 뭔지는 제가 결정해요."라고 당돌하게 대답하곤 했다. 원체 고민 없이 사는 스타일이라서 그렇다.

그러다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2005년, 고3이 되고난 후였다. 2005년 5월 7일, 혹시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다. 내신등급제에 반대하며 청소년들 1000여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 1주일 뒤인 14일에는 '두발자유'와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집회가 열렸다. 2주일 연속으로 열리는 청소년들의 거리집회에 언론도 인터넷도 술렁거렸다. 나도 신문으로 인터넷으로 그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두발자유 집회에 참가하러 광주에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런 단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비로소 '운동'이라고 할 만한 걸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모아서 소모임을 만들고, 모임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계획을 짜서 활동도 하고, 지역에서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작은 집회를 준비했다. 말하자면 '운동'이라는 걸 남들이 하는 걸 보고서 "오 저런 방법이!" 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준비할 때(결과적으로는 한 20명이 왔고, 소나기까지 내려서 망했다.) 아수나로에서 도와주겠다고 온라인으로 연락을 해왔다. 그 이후에 꾸준히 교류를 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가입도 하게 되었다. 아수나로는 원래 "청소년인권연구포럼"으로 과거에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20대가 되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를 하고 청소년인권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였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이름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 바꾸고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활동하는 활동 단체로 성격을 전환했다. 처음에는 두발자유 운동을 주로 했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여러 활동에 함께하고 학교 밖에서는 거리 집회, 서명운동 등을 꾸준히 벌였다. 그렇게 나는 '어느샌가', '자연스레' 청소년인권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질문2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왜 아직도 청소년운동을 해요?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보다 더 높은 빈도를 자랑할지도 모르는 질문이다. 바로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왜 청소년운동을 해요?"이다. 하도 많이 질문을 받다보니 이제는 그냥 웃으면서 "그러게요."라고 대답하고 넘기고 싶을 정도다. 하기사 내 나이도 이제 20대 초반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스물넷.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궁금할 법도 하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 안에서 최고령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주변에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9로 시작하는 상황에서 앞자리가 8로 시작하는 나는 대단히 노땅 취급을 받곤 한다.

이 질문 역시 대답하기 다소 곤란하다. 대답할 만한 어떤 거창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이런 식으로 대답을 했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라서요." "왜 청소년인권활동가죠?"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니까요." "왜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냐니깐요?" "청소년인권활동가라서요." … 물론 질문한 사람을 만족시켜주는 대답도 아니고, "그건 그냥 관성이잖아!"라거나 "말장난하지 마세요." 같은 비난을 듣기 딱 좋은 대답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진실에 가까운 대답인 것을. 나는 내가 청소년인권활동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게, 그게 내 삶이고 내 일이니까 한다는 게 그렇게 말장난 같이 들리는 걸까?

그래서 나중엔 이걸 좀 더 그럴 듯하게 포장해보았다. "왜 사는지 이유를 필요로 하진 않잖아요? 청소년운동이 그냥 제 삶이 된 거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대충 끄덕끄덕 하는 것 같긴 하던데, 말하는 내가 닭살이 돋는다는 게 문제다. 가장 솔직한 대답은, "아니 뭐 19살까지 청소년운동하다가 스무살 되어서 싹 손 떼는 게 더 얄밉고… 계속 하고 싶고… 어쩌다 보니…"일 것이다. 관심 가지고 있고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해도 좋다. 애초에 아수나로 자체가 과거에 20대가 되면 청소년운동에 딱 발을 끊는 문화를 비판하면서, 비청소년들도 청소년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열어놓고 시작한 단체였기 때문에 단체 안에서의 어려움도 별로 없었다. 사실, 20대 됐다고 해서 청소년운동에 관심 끊고 발 끊는 것, 그건 그것대로 또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나이주의는 여러 가지 난관이 되고 있다. 비록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나이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 나이가 많다고 해서 권력을 가지거나 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쉽고, 밖에서 보기에도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청소년운동 안에서, 단체 안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할 거리들, 주의할 부분들이 많아져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감수하고라도, 나는 청소년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



질문3 너무 이상적/급진적이지 않아요?


세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청소년운동이 너무 이상적, 급진적이지는 않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질문을 때로는 정말 궁금해서, 때로는 조롱의 형태로, 때로는 걱정의 옷을 입고, 때로는 화를 내며 던진다. 청소년운동은 두발자유 정도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강제로 교복을 입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고, 복지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입시경쟁교육을 없애기 위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주장하기도 하고, 학생들을 점수로 평가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목적을 시험보기로 만들어버리는 시험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학교 교육에 대한 선택권, 더 나아가면 전 사회적인 탈학교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학 안 나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올해 3월에 우리가 열었던 집회의 주요 요구들이었다.

청소년운동의 이야기들이 교육 영역으로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하며 나이가 몇 살이든 정당 가입, 정치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청소년들에게 온갖 것을 금지하는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하고, 청소년들에게 정말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함께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한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성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혹시 임신을 하게 되면 비난 받지 않고 잘 낳아서 양육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모, 보호자 등 친권자가 자녀에 대해 너무 많은 권력과 책임을 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지금과 같은 가정을 폐지하고, 사회적인 양육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예 '미성년자'라는 차별적 말을 없애자는 것, 사람은 누구나 다 미성숙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미성숙하고 누구는 성숙하다고 나누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우리가 함께 사회적으로 서로의 인간다운 삶을 책임지자는 것, 그것이 나처럼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이런 요구들은 물론 지금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급진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한 번 역으로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주장들을 놓고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은, 과연 이런 얘기들이 '급진적'이어서 반대하는 걸까 아니면 이것 자체에 반대하는 걸까? 만일 그 이야기 자체에는 동감하지만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함께 조금씩조금씩 바꾸어가면 될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 청소년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하니, 우리 사회를 이런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자는 제안인 것이다.

2005년에 두발자유 운동을 할 때, 그 당시에는 두발자유를 이야기하더라도 염색/파마의 자유까지 주장하는 것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물론 그런 경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2011년 8월 초, 주민발의에 성공한 서울 학생인권조례안은 원칙적으로 염색/파마 등의 자유까지 완전히 보장하고자 하고 있다. 최소한 염색/파마 등 머리카락의 색깔과 형태를 바꾸는 게 너무 급진적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차별금지, 체벌금지, 두발복장자유, 학생의 학교 운영 참여 등을 대표적인 내용으로 세워두고 거리에서 4개월 동안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을 하면서 두 가지 양면적인 감정을 느꼈다. 어른들은 역시 아직도 학생인권에 대해 무관심하고 거부감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마음, 역시 청소년들이 직접 나서서 해야 겠구나 하는 것이 그 하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6년 전 내가 처음 청소년운동을 하던 때보다 학생인권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인상을 받았고, 우리의 활동이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2010년 9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을 때도, 2011년 7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완전히 성사되었을 때도, 그런 안도감을 느꼈다. 처음에 학생인권운동이 시작되었던 1995년에만 해도 학생인권조례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너무 성급하다. 기다려라."라는 말은 "안 해주겠다."라는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일 때가 많다. 그 말에 그저 기다리다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나마 천천히, 세상이 바뀌어 간다.

무엇이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점진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변화가 급진적일지 점진적일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온힘을 다해 주장하고 부딪쳐야 겨우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곤 한다. 그래서 너무 급진적/이상적이지는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한 발 물러나서 얘기하지 말고 직접 현실 속에 서서 행동하면서 본다면, 급진적인 것은 없다. 그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고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바라는 마음과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운동이다. 그것이, 내가 이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청소년운동을 하는 자세인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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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일감 있고 좋네요. 잘 쓰겠습니다..... ^^

    2011.10.19 01:37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 사실 이거 청탁 받을 때 주제가 좀 여러 개를 같이 넣어달라고 요구 받아서 고민 끝에 정한 형식이었어요

      2011.10.20 01:24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1. 8. 31. 17:50

어느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청소년들, 중고등학생들의 운동에 관해서 교육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쓴 글입니다 ^^;;





청소년인권운동, 온라인에서 거리로


  한국의 저항적인 청소년운동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까지도 얘기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인권과 권익을 주장하는 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운동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온라인에서 모이다

  그 시작은 온라인 PC통신과 인터넷이었다. 첫 발단은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1995년, 강원도 춘천에 사는 "최우주"라는 고등학생이 강제적으로 자율학습․보충수업을 시키는 것이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게시판에 올리면서, PC통신에서는 학생인권에 관한 뜨거운 이야기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최우주 군의 학교 문제, 함께 따라가봅시다."라는 토론방이 개설되었고 그 자리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인권 문제를 토로하고 토론을 진행해갔다.
  그 결실로 1995년 12월경, PC통신 <하이텔>에 "중고등학생복지회"(학복회)가 만들어졌고 이어 PC통신 <나우누리>에도 학복회가 생겨났다. 학복회는 온라인 모임에서 시작돼, 단체로서의 활동력을 많이 갖추지는 못했지만 학생인권의 이슈를 제기한 ‘최초의 청소년인권 단체’라고 할 수 있다. 학복회는 인권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학생 인권 운동을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학복회는 1998년, 교육부에서 "학생인권선언"을 제정하겠다고 했다가 이를 취소하자 항의하면서 자체적으로 "중고등학생인권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고등학생인권선언서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학생의 인권 역시 보편적 인권 안에 존재하며, 학생은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자신이 지닌 기본권을 정당히 누릴 권리를 가집니다.
그러나 학생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이러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삶의 현장인 사회에서 교육의 주체인 학생의 인권은 공공연히 침해당하고 있으며, 편견과 인습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암묵적으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학생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마저 당사자인 학생이 아닌 성년자가 중심이 됨으로써 일방적 보호, 훈육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나아가 이 나라의 왜곡된 정치구조와 맞물려 당국은 학생문제를 투표권자인 성년의 시선으로 일관하는 정책을 남발하여 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우리는 학생 또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지닌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그에 따른 마땅한 권리를 가짐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학생의 권리와 의무를 학생 스스로 보장하고자 합니다.

1. 학생은 나이, 성별, 학교 성적 등 어떠한 기준으로도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습니다.
2. 학생은 과도기의 세대가 아닌, 인격을 가진 사회구성원으로서 외부에 의한 신체적,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3. 학생은 헌법에 보장된 모든 기본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표현의 자유,행동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가집니다.
4. 학생은 쾌적한 환경에서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지닙니다.
5. 학생은 학교의 방침에 따른 일방적인 교육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요구하고 보장받을 권리를 지닙니다.
6. 학교에서 학생의 모든 자치 활동은 교사나 학부모 등 타인에 의해 제한될 수 없습니다.
7.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매체를 접할 수 있고 자유로운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보장받을 권리를 지닙니다.
8. 학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노동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9.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노동활동을 스스로 판단하여 할 수 있으며 학생이란 신분으로 노동현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10. 위와 같은 학생의 모든 권리를 부당한 기준으로 제한하지 않아야 합니다.
11. 학생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지킬 책임을 지닙니다.
12. 학교, 가정, 국가를 비롯한 사회는 위의 권리를 보장하며 합당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습니다.
13. 정부는 이와 같은 사항을 법으로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천구백구십팔년 십일월 삼일 학생의날
하이텔 중고등학생복지회, 나우누리 학생복지회



  1990년대 후반, 중고등학생복지회 외에도 인터넷에서 여러 청소년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채널텐, 네틴, 원, 아이두, 사이버유스 등이 있다. 공간들에 따라 성격 차이는 있지만, 이들 인터넷 공간들은 주로 청소년들의 문화와 삶에 대해 소통하는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했다.
  채널텐(Ch.10)은 97년 5월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청소년웹진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의 웹진’이라는 모토를 걸고 청소년들이 직접 운영했으며, 청소년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오갔다. 아이두는 10대들의 포탈 사이트 형식으로 블로그, 게시판, 토론, 일기장, 사전, 기타 등등의 다양한 컨텐츠들을 생산해왔다. 이곳도 청소년들이 직접 서버를 만들고 사이트를 개설하여 만들어진 곳이었다. 사이버유스는 정부(한국청소년개발원)의 돈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는데, 사이버유스는 청소년들의 문화와 삶, 인권에 대해 자유로운 소통과 토론을 중시했고. 사이버유스에서 청소년들은 우리SEX(성), 자퇴, 만18세 선거권,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인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고, 또 조금씩 퍼져나가던 청소년인권도 활발하게 이야기되었다.

  2000년, 채널텐, 아이두, 사이버유스의 세 사이트는 함께 “웹연대 위드(WITH)”를 구성하여 두발규제 반대 운동, 노컷운동을 전개했다. 노컷운동은, “자르지마” 배너, 국제행사에 나갔다 온 한 교사가 쓴 한국의 두발규제에 대한 비판 글 등을 매개로 온라인에서 급격히 확산되었다. 두발규제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은 2000년 하반기 즘에는 16만 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웹연대 위드는 두발규제 등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의 여론을 온라인을 통해 형성해가는 역할을 했으며, 서명운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의지를 표현했다. 웹연대 위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오프라인에서의 캠페인 활동 등을 하면서 두발자유 운동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온라인서명운동이 중심이 되고 거리 캠페인 등이 결합했던 '노컷운동'은 온라인에서 첫 시작을 했던 청소년인권운동이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노컷운동'으로 교육부에서는 각 학교별로 토론회 등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두발규제를 개정하라는 일종의 ‘두발자율화’ 조치를 내리게 되었고, "학생의 인권"이라는 것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다.


거리로 나서기까지

  2000년대 초중반은 많은 청소년운동 단체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사라진 시기였다. 그리고 많은 단체들, 개인들이 체벌, 강제적 자율학습, 입시경쟁, 청소년 노동권, 학생회, 청소년 정보인권, 종교의 자유 등 청소년인권의 의제들을 발굴하고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시기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학생회를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자는 제안, 학교 안에 조직을 만들려는 시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일구어나가려는 움직임, 언론을 통한 이슈화에 초점을 맞춘 활동 등등 여러 가지 운동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더 나은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이 꼴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뒤집어서 말하면 이 시기는 청소년운동이 지지부진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글을 올리고 서명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학내 조직을 만드는 일은 학교에서 활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번번이 좌절되었다. 일부 사립학교 등에서만 '사학분규'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저항이 일어나는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청소년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2년, 3년이 지나면 청소년이 아니게 되어버리면서 모임도 흐지부지 흩어지고 운동의 맥이 끊기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국면 전환의 계기는 '거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촛불집회' 등 거리시위는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미군장갑차 사건 때문에 일어난 여중생 추모 ․ 반미 촛불집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거리 시위에 참여했고,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청소년들도 많이 있었다. 거리 촛불집회의 흐름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2004년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로 계속 이어졌다. 청소년운동의 주체들 역시 이런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런 촛불집회들이 청소년운동으로 직접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었다.
  2005년 5월이 되어서야 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의 이슈를 가지고 모인 자발적인 촛불집회라는 '사건'이 터졌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상대평가 내신등급제 도입을 발표하자 5월 7일,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반대하며 자살학생 추모 촛불집회에 참가하러 모여들었다. 그 촛불집회는 우발적이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추모 촛불문화제로 기획했던 자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문자메시지가 돌았고 점점 규모가 커져서 입시경쟁교육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자리가 된 것이다. 교육청 장학사들과 학교 교사들의 방해 속에서도, 그날 촛불집회에는 10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교육 정책에 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리집회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005년 2월부터 2차로 두발자유 운동을 준비해오던 단체들이 바로 일주일 뒤인 5월 14일, 두발자유 집회를 열었다. 낮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2차례 최대 300여명이 참여했던 그날 두발자유 집회에서는 두발자유 뿐 아니라 전반적인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냈다.
  그날 거리집회가 바로 청소년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한 번 모이고 흩어졌고, 지속적인 운동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청소년들의 잠재적인 불만과 힘을 확인한 것은 커다란 성과였다. 거리집회의 힘은 여러 학교 안에서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내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이러한 거리집회, 촛불집회의 역사는 2008년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로도 연결된다.)
  청소년운동을 해온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은 2005년 5월의 그 '사건'을 계기로 반성과 토론을 새롭게 시작했다. 과거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한 여러 방법론들이 제시되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의 단체들, 모임들이 생겨났다. 이런 움직임들은 2006년, 2007년에도 연달아서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거리집회가 열리고 학교 안에서는 학내시위, 서명운동 등이 계속 일어나는 밑바탕이 되었다.


거리에서, 그 다음은?

  2005년 이후 거리로 나섰던 청소년인권운동은 이제 다시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의 사건은 청소년인권운동의 성과였지만, 동시에 어떻게 학교 안에서 좀 더 광범위하게 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또한 경기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학생인권 보장 조치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역에 뿌리 내린 청소년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소년들은 한국 사회에서 많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고, 입시경쟁이나 여러 차별 등 속에서 부당한 대우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청소년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청소년 정체성의 특성상 거기에 저항하기 위한 운동은 좀처럼 굳건하게 만들어지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몇 년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도 많고, 또 애써 단체를 만들거나 조직화를 해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청소년이 아니게 되면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온라인에서 시작해서 거리로 나서며 계속되어 온 청소년운동은,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나마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흡한 학생인권, 더 심해지고 있는 경쟁적인 교육, 가족 안에서의 인권,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확보 등등 과제는 많기만 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운동이 더 많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더 인간적이고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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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광흠

    이 글을 e노트에 옮겼습니다^^

    2011.09.07 09:3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4. 30. 23:42

‘운동사회 나이주의 깨기 활동’ 제안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함께 제안하는 글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청소년운동이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들과 폭넓게 연대하고 있는가 물어보면, 참 “글쎄요…”라는 대답만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가 힘이 딸려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못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싸가지 없음’도 한 몫하고 있을 겁니다. 솔직히 아수나로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라고 하면 까칠한 애들, 싸가지 없는 애들이란 인식이 적지는 않을 겁니다. 대표적으로 초면에 반말질하는 꼰대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런 거에 사사건건 문제제기하는 게 얼마나 싫겠어요. “나이도 어린 게”.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싸가지 없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동사회의, 어른들의, ‘감수성 없음’, ‘개념 없음’의 문제지요. 운동사회의 ‘나이주의’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나이주의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적은 사람들을 더 ‘아랫사람’ 취급하고, 또 운동의 자원도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인식과 구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한 번, 정식으로 본격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실 우리가 그동안 그런 문제가 있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만 대처해온 것도 사실이지요. 슬슬 이게 ‘우리’ 문제가 아니라 ‘니네’ 문제라는 걸 확실하게 까발리고 치는 게 어떨까요? 예, 마치 ‘성폭력’이 그 여성의 행실이나 지나치게 까칠하고 민감한 여성들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되던 시대에서, 최소한 운동사회 안에서 ‘성폭력’이 문제라는 공감대에 이르게 된 과정처럼 말이지요. 1999년 ‘컵깨기 행사’ 같은 이미지도 같이 떠오릅니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같이 가야 할 겁니다. ① 선언문 발표나 칼럼 써서 기고하기 ② 퍼포먼스나 액션 ③ 뱃지 만들어서 달고 다니기 등등. 우선은 나이에 따른 ‘반말’, ‘하대’ 문제부터 접근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초면에는 나이에 상관 없이 존댓말을”, “반말과 존댓말은 친소(친하고 안 친하고)를 표현하는 것이지 위계를 표현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같은 취지로요. 물론 그 외에도 나이에 따라서 맡는 직위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일단은 그게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가장 상징적으로 첫 말문을 열기 좋은 주제인 것 같아요.

  ‘연대’가 단순히 서로에게 몸을 대주는 게 아니라면, 우리 입장에서 ‘연대’란 것은 우리의 정치와 감수성이 다른 운동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은 평화적이고 화기애애한 방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일종의 도전이자 투쟁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적극성을 가지고 평등한 ‘연대’의 길을 열어 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냥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게 있다더라.”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직접 우리 입장을 들이밀기 위해서, 또 하나의 투쟁을 제안합니다. ‘운동사회 나이주의 깨기’를. 여기에 공감하신다면 먼저 계획부터 같이 짜볼까요? ^^


2011년 4월 30일 공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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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지를 표현하는 부분은 중간쯤이지만... 사실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마지막 문단.

    2011.04.30 23: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진냥

      이 글에 동의한다는 차원에서
      우리도 얼렁 반말하는 사이가 되어야 할텐데요..ㅋㅋ
      +나 담주에 서울가는데 한번 볼 수 있었음 해요..

      2011.05.01 00:07 [ ADDR : EDIT/ DEL ]
  2. 나이주의보다... 엘리트주의 먼저 제거했으면 싶어요. 운동판 꼰대들은 경력운운, 시위참여횟수 운운, 성과운운...뭐 하다가 교도소 다녀온것도 경력이고... 동성애자 운동권에선 커밍아웃한게 훈장이니깐... 난 그런것들이 더 역겨와요.. -자주 공현님 티스토리 지나가는 조곤올림-

    2011.05.01 02: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떤 노동운동 연사분의 약력에 모모집회하다가 "교도소 복역"이란게 떡하니 있더군요. 또 화염병 만드는걸 아주 자랑스레 말하고, 죽창의 각도는 이래야한다는 둥...법치도 무시하면서 기업보고 노동법 지키라고...^^;; 어이없다는...

      2011.05.01 02:26 신고 [ ADDR : EDIT/ DEL ]
    • 청소년운동가들 마음을 많이 공감하고 이해하는게.... 저도 18,19살부터 집회 시위현장에 있어서..그런말 많이 들었어요. 보통 나이주의+엘리트주의가 섞인 비아냥인데. "아직 어려서 운동경험이 없어서 미숙하네. " 어떻게보면 별뜻없어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느낄 수 있거든요. 사실 동료로
      생각하진 않더라구요. 마냥 귀엽고
      기특한(?)존재였죠. 그런대접 받기 싫은 객기에 편한복장 추구했는데...거의 정장차림에 명함파서 돌렸던 기억.. 그땐 "안녕"이 "안녕하세요"가 되더군요. (운동도 비즈니스다.)란 생각이 들던 경험.

      2011.05.01 02:34 신고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노동운동 내부의 나이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약력에 교도소 복역을 넣는 것과 엘리트주의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교도소 복역과 같은 투쟁경력은 그분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훈장이고,상처고,자랑거리입니다. 그런 것마저 '엘리트주의'로 몰아세우면 그분들께 뭐가 남나요? 피억압과 피탄압을 자랑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탓해야 할 것이지, 그분들에게 그걸 '자랑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요?

      2011.05.06 15:59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만약 그런 자랑이나 추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시위경력이 적은 활동가에 대한 배제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물론 '엘리트주의'나 '경력주의'(적절한 이름은 아닙니다만)라고 비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헌법에 나와있는 '법치주의'와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결코 같은 차원에서 얘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법은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고, 지배층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안다면) 이해하기 편해집니다. 지배층은 '법'을 피지배층의 저항과 반란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구속,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 등등. 하지만 노동법의 경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법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지배층에게 유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 책은 전태일 열사의 무기였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법치주의는 지배층의 언어이고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피지배층의 언어입니다.

      2011.05.06 16:07 [ ADDR : EDIT/ DEL ]
    • 까만이

      그래서, 만약 '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를 규명하지 못할 바에야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에게 '법치주의를 지켜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연 지배층이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서 법을 어기는 것과,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의 치열한 투쟁 과정에서 법을 어기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교도소 복역, 죽창사용, 화염병 사용등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 과감히 말하건대, 교도소갔다오고 죽창을 들고 경찰에게 맞서고 화염병을 던지는 일이, 투표일날 진보정당 후보한테 한표 찍는것보다 훨씬 가치있고 아름답고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죽창사용,화염병투척 등은 몰라도 교도소출입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시는 시각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교도소에 갇혀있는 수많은 양심수와 구속노동자와 노동운동가들이, 대체 왜 '법치'라는 기준에 재단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지배층의 입맛에 따라 법을 정하고 재판을 하고 집어넣는데, 그 교도소를 갔다왔다고, 그걸 좀 자랑했다고 해서 엘리트주의라고 비난받아야 합니까? 법을 어겨서라도 생존권을 쟁취하겠다는, 숭고한 일을 그렇게 조롱하실 수는 없는 일입니다..

      2011.05.06 16:17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불법투쟁경력이 있는 노동자들을 그런 시각으로 보시는 건요, 마치 맨날 맞고사는 약한 아이가 어느날 힘센 아이에게 대들었는데 '약한 아이도 때렸으니까 똑같다'라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불법이 있고 저런 불법이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반복하자면 노동운동가들과 노동자들에게, 투쟁경력은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경력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좋지 않지요. '역겨웠다'라고 표현하신 그런 부분들에 대해 비판하시는 게 더 좋을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본문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네요. 나이주의 깨기 활동에 대한 제안글에 이런 댓글을 남겨서 공현님께 죄송합니다. 저도 한 청소년의 입장으로서, 앞으로 수없이 겪을 운동의 현장에서, 운동가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나이주의 깨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곤님께 단 댓글들은, 첫번째와 두번째 댓글에 대한 얘기입니다. 세번째 댓글에는 공감합니다.

      2011.05.06 16:32 [ ADDR : EDIT/ DEL ]
    • 까만이님께. 부족한 제 식견에 따끔한 지적감사합니다. 우린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격지심을 거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나이를 먹고 더 많이 성찰하면서 깨달아가기에 과거를 무기로 삼지 말아야함을 알지만 그래도 하나의 예로서 제 이야길 합니다. 동성애자라서 많이 얻어터지고 다닙니다. 커밍아웃해서 더욱 주변에 적이 많지요. 저에게 염산테러를 한 사람을 찾아가 뼈마디 마디를 분질러놓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종종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대응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저는..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혁명주의자가 아닌, 잘해봤자 개혁주의자 정도라서 까만님과 의견이 다른것이므로 조롱의 의미는 아닙니다. 제 시각에선 당연히 그리 보이고 생각될 뿐이죠.저는 법이 지배계층의 권력도구로만 쓰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남용으로 분명 억울한 희생자도 발생하지만 법이 없어서 더 억울한 인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의 이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의 차이이죠. 윽박지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2011.05.07 01:58 신고 [ ADDR : EDIT/ DEL ]
    • "나 이만큼 열심히 살았어요. 나 이만큼 아팠어요. 좀 알아주세요." 제가 제 과거를 매번 강의때마다 하나의 최악의 사례로 들려줄때의 제 자신의 심리 이면엔 그런것이 있더군요. 까만님, 저에게도 노동운동가들에게도 염산테러나 교도소복역보다. "지금 여기에 맞서며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큰 훈장은 없을겁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성과를 냈다."는 자랑 좀 하는게 뭐가 어때. 그 마음이 정말 간사하다는걸 깨달았을때 무척 부끄럽더군요.

      2011.05.07 02:10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제 "염산테러"나 어떤 노동운동 연사의 "교도소 복역 약력"은 엘리트주의인거 같습니다. "너넨 이런거 못하지? 이러고도 살 수 있겠어? 난 이렇게 살때 (용기없는)너넨 뭐했어?" 같은...그런 엘리트주의, 운동가들이 없었으면(분명 그들의 행동은 귀감이 될만하지만...) 미천한 인민이 이렇게라도 살수 있었겠냐는 그 묘하고 역겨운 운동가들의 자격지심과 엘리트주의와 우월감들이 무척 싫더군요.

      2011.05.07 02:16 신고 [ ADDR : EDIT/ DEL ]
    • 무튼 까만님, 저는 서울대나온(많이 배웠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어떤 운동가의 계몽주의에 입각한 선동성 발언도 싫어하고, 운동판의 터줏대감이랍시고 곤조부리는 (많은 경험을 했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것도 싫어서요. 존대 안했다고 혼나는 것보다 " 경험이 없어서 모른다."란 소리가 더 문제 많은듯하여.. 쓴것일뿐 조롱의 의미는 아니었답니다. 저의 저항은 18살의 노동절의 노동자 시위에서 부터였거든요. 노동운동판은 조금은 아날로그를 지양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느껴요. 저는요.

      2011.05.07 02:27 신고 [ ADDR : EDIT/ DEL ]
    • 까만이

      사실 방금 위에 제가 조잡하게 써놓은 것들이, 바로 어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는 제 얇디얇은 종잇장같은 식견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생각의 차이를 거세하고 조곤님을 윽박지르고자 함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구속재벌은 없고 구속노동자가 수백명에 이르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 분노 때문에, 조곤님의 댓글에 반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법의 얘기를 지나쳐서, 노동운동과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짧은 제 느낌을 조잘대보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공현님이 주장하신, 조곤님이 경험하신 이른바 '엘리트주의' 또는 '경력주의'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운동경력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노동운동가들과 뭔가를 함께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집회장에 나가면, 운동가가 아닌 나이 지긋하신 노동자분들이, 제 어깨를 두드려주시고 반말을 하시고, 그런 건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집회장에서 연사로 나오신 분들이 그렇게 경력을 자랑한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패악들, 역겨움들을 경험하신 조곤님께 제가 감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곤님의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그런 문제의식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은 자랑할 수도 있지 않냐, 그런 자랑이 정말 비겁한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 거기에 있어서는 조곤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과 체화의 문제이니깐요.
      다만 '많은 경험을 했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는 '많이 배웠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보다는, 약간은, 조금은, 쬐~끔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 않냐.. 하는게 솔직한 제 생각입니다. 말씀하셨듯이, 귀감이 될만한 행동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자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이 제1차적 문제이기도 하고.. 물론 운동을 통해 그런 폐단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거겠지요. 다만, 이해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온정주의도 아니라,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구속을 당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구속경력이 자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선차적으로 이해하자는 겁니다. 그런 이해 없이 '경력주의 몰아내자'... 이 구호는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력주의 내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의 구속노동자, 구속노동운동가들에게도요..

      2011.05.07 20:50 [ ADDR : EDIT/ DEL ]
    • 까만이

      윽박지르는 것처럼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솔직히 불법,불법,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를 낙인찍는 시선을 평소에 많이 봐와서인지, 약간 흥분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조곤님이 스스로에게 아플수도 있는 경험까지 얘기하시며 반박에 대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우선 남기신 첫번째 댓글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짧게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맞습니다. 법에는 '권력의 남용으로 분명 억울한 희생자도 발생하지만 법이 없어서 더 억울한 인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의 이점'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태일 열사의 예시를 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의 본질, 그러니까 법이 왜 만들어졌나 하는 성격에 대해서는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한진중공업에 다녀왔습니다. 수십년간 노조에서 활동을 해온 노동자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청업체의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면 대기업들이 아예 그 하청업체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취직 못하게 하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해도, 법으로는 그걸 처벌할 방법이 없드랬습니다.
      그런데,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채길용 문철상 지부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살아야 한댑니다. 이들은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하고자 했는데, 그게,크레인 위에 올라가는 행동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지 않을수 없지 않습니까? 살기 위해서는요? 법을 지키고, 투쟁하지 않고, 순순히 해고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혁명주의자이건 개혁주의자이건 상관없이, '법은 공평하지 않다'는건 솔직히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애초부터 법이 불평등하다면, 정당한 방법을 행사해도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는 나라라면, 때로는 비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야 하는 나라라면, 왜 그 '법'을 지켜야 하는지요..
      님과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이 세계는, 이 세계의 구조는 공평한가 그렇지 않은가'인것 같습니다. 사실 노동자들의 불법 투쟁들은 단순한 개인적 복수의 차원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억압받는 이유는 이 사회의 구조가 불공평하고 불평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억압을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면, 사장을 죽이거나 그랬겠지요. 하지만 이땅에서 구속되어온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이 해온 것들은 무엇이냐? 업무방해, 공무집행 방해, 집시법 위반..... 이게 대체 사람들에게 얼마나 피해가 간다고, 감옥에 쳐넣고 콩밥을 먹이는 겁니까. 이게 저 지배자들이 해온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니잖아요. 처절하고 눈물나는 저항이죠..
      다 안지키는 법따위를 지켜서 손해보느니 차라리 법을 어기고 만다. 단순히 이런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투쟁을 해도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입니다. 무슨 특별히 불법행위를 일부러 하려고 한게 아니라, 바로 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행동을 했는데도, 불법으로 잡아넣는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그리고 경영진이 자기들 이윤을 위해,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로 정리해고를 해도, 그래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 십수명이 자살하고 그 아내가 유산을 해도, 그건 '합법'입니다. 근데 거기에 항의해서 계란 좀 던지고 페인트탄 좀 던졌다고 붙잡아서 경찰서로 연행해 가는게 이 땅의 현실입니다. 그 잘못의 크기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데, 사람을 죽이는건 저자들인데, 왜 우리만, 왜 우리가 불법이 되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2011.05.07 20:52 [ ADDR : EDIT/ DEL ]
    • 까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맞서며 살고 있다" 이 말은 참 귀감이 되네요. '자랑'들은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그것은 결코 숭고한 행위가 아니죠. 지금 여기에 맞선다는건, 참 그 자체만으로 위대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요. 염산테러에 관련한 조곤님의 이야기,..에 대해서요. 제 생각입니다만, 그런 것들을 드러내는 것은 '경력주의'가 아니에요. 전혀 듣는 사람에게 역겹지 않고, 자격지심도 아니고 엘리트주의도 아니고 우월감도 아니잖아요. 그걸 드러낸다고 조곤님한테 뭔가 큰 이익이 되는것도 아니잖아요. 스스로의 비밀스런 아픔을 얘기하고 공유하는 것을, 일부 노동운동가들의 '역겨운' 행동 따위와 동일시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공감은 인간의 아름다운 능력입니다. 경력주의 운동가들이 은근슬쩍 요구하는 '존경'과는 아예 그 급이,차원이 다른..

      주제넘게 잔소리한것처럼 느끼셨다면 죄송해요, 단지 선의의 표현입니다.

      아, 공현님 블로그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주제를 확장시킨 것 같아, 공현님께도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__)

      2011.05.07 21:17 [ ADDR : EDIT/ DEL ]
    • 하청업체 노조에 대한 탄압은 매우 가슴 아파요. 특히 잔금을 주지않고 채권등으로 지급하는 대기업의 행태.힘이 세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고있는 행위에 대해서, 마음아프고 그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수주의자이니까. 죄송하고 속상한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까만이님의 설명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더이상 논란을 만들지 않고 싶어서. 이쯤에서 끝내기로 해요.

      2011.05.07 21:26 신고 [ ADDR : EDIT/ DEL ]
    • 때때로 나의 정당한 행동이 전혀 관계없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피해가 되기도 할때. 두 문제를 달리 결론짓고 해결해야 한다는걸 이젠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전 노동집회에서 더이상의 분신자살이나 영정사진이나 그밖의 폭력들, 전경을 희롱하고 자극하는 일체의 행위들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행동이 억울하고 가슴아픈 인민의 마음을 보듬는 일로 인식되는 것에 조금은 회의적입니다. "오죽하면 그랬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회가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 행동들에 정당하든 정당하지않든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2011.05.07 21:39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는 반말 존댓말의 구분이 그냥 동아시아의 문화인 줄 알았는데 중국어에는 그런 게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무튼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나이주의를 어떻게 좀 아주 그냥 박물관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주의 타파하는 것 역시 일종의 민주화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2011.05.03 01: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6. 28. 10:58



격월간 사람에서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 쓴 원고를 수정하여 다시 싣고 싶다고 해서 수정한 거예용.





패륜적 기본소득

공현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 노동 등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에게 균등하게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의 생계에 필요한 돈을 사회가 균등하게,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개개인의 계좌에 매달 정부가 30~5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입금해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본소득은 특히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거나 차별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제도이다. 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에서는 기본소득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며 토론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장애인”, “기본소득과 여성”, “기본소득과 청소년” 등의 주제로 연속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 글은 6월 1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준비해서 연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서 발제한 원고를 고쳐쓴 것이다.


가정에서의 청소년의 지위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 아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도로 학교와 가정을 꼽을 수 있다.(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학원’도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에 비해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는 잘 공론화되지 않는다. 이는 학교가 제도화된 공적 공간이며 집단적, 조직적 제도인 반면 가정은 사적 공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가정에서의 체벌,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와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등을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에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이유로 대량 해직을 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교사의 정치적 자유는 학생들의 미성숙을 이유로 문제가 되지만 아무도 부모나 다른 가족의 정치활동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법 제도부터 보자. 민법에는 친권의 효력으로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 교양할 권리의무(913조), 청소년의 거주지를 지정할 권리(914조), 징계할 권리(915조), 재산 관리권(916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부모, 후견인 등의 친권자가 정하는 곳에서만 살아야 하고, 친권자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친권자에게 자의적으로 체벌이나 용돈 끊기, 외출금지 등의 징계를 당할 수 있으며, 재산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개정이 되긴 했는데, 민법의 친법 관련 조항에는 “자식은 친권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는 단지 법 규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의 문제이다. 극단적인 예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적이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친권자에게 체벌을 당하다가 죽음에 이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모태신앙’을 비롯해서 가정에서 종교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하거나 강압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개인적인 다이어리나 휴대전화 기록 등을 친권자가 함부로 보고 이를 근거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일, 위치추적 등은 ‘부모의 사랑과 걱정’으로 정당화된다. 어느 학교에 진학을 할 것인가,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가, 학원을 갈 것인가 등의 문제도 거의 다 친권자의 뜻이 많이 반영된 결정을 하게 된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은 대부분이 가정에서의 반대와 탄압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청소년 자신의 자발성이 없이 100% 전적으로 친권자의 뜻만을 관철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친권자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처우가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의 삶에 대해 친권자가 가지는 지배력은 상당히 강력하고, 그 지배력을 행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선택은 대부분이 친권자들의 성향에 맡겨져 있다. 제도적․문화적 조건만으로 봤을 때는 청소년들은 ‘친권자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어왔다. 아나키즘에서는 근대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어 이야기한다. 꽤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바쿠닌 또한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 Marc Siverstein 지음.) 페미니즘 쪽에서도 남성 가부장과 여성 사이의 권력관계에 더해서 아동에 대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논의들이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 또한 세대간의 지배 종료를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안했던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는 많은 부분 경제적인 종속성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말 안 들어? 그럼 용돈 없어!”, “내 말 듣기 싫으면 나가. 여기가 니 집이냐? 니가 입는 옷 먹는 거 다 누구 돈으로 산 건데?” 용돈 뿐 아니라 의식주 전체를 친권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친권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압박의 수단이란 무궁무진하다. “내가 너 키우느라 들인 돈이 얼만데” 등 한국 특유의 높은 보육․교육비 때문에 (좀 넓게 잡은) 중산층 이상의 친권자들이 가지는 투자의식과 주도권 등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또한 가정의 경제력의 일부를 담당함으로써 어느 정도 협상력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기본소득의 액수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친권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보다 독립적이고 덜 의존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미래에 자신들에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돌려주기를 바라는 친권자들에게는 투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동시에 자신들의 노인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됨에 따라 청소년을 채찍질해서 사회 상층에 쑤셔 넣을 동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친권자들도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니까 가정 안에서 경제력의 부담 정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돈이란 같은 액수더라도 어느 정도 있는 자들보다는 없는 자들에게 더 효용이 큰 법이다. 가정 안에서 가지는 경제력의 비율이 0에서 10이 되는 것은 발언권이나 협상력의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 모델에서는 소득이 많은 친권자들은 세금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내게 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좀 잘 사는 가정 안에서는 경제력의 분배 효과를 가지게 된다.

  여차하면 가출할 수 있다는 것도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출은 자신이 원하는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투쟁이나 보이콧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출을 해도 주거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가출의 리스크가 컸다. 이 리스크는 가출 후에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막막함과 정해진 레일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출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 우선 일차적으로는 최저생계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니 가출 후에도 청소년들이 독립적 생활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나아가서 기본소득의 도입은 노동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 죽어라 스펙을 쌓아야 하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게 될 것이며, 가정과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며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훨씬 작아지게 만들어준다. 여차하면 파업이든 태업이든 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기본소득은 가출 등 가족의 틀을 벗어난 청소년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 되면서 청소년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는 청소년들의 독립 시기가 빨라지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지금 주로 청소년들, 그러니까 0~19, 20세 정도까지의 ‘미성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친권자의 경제적 지배력이라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20대 초중반의 사람들 다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생계에 필요한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계속 돈을 모아서 주거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대학 진학의 보편화에 청년실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점점 늦어지고 있는 독립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10대, 20대 전반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뜻한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더 이상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권자 말 잘 듣고 나중에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 효도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덜어지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살던 관계가 좀 더 독립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가정 안팎에서의 투쟁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에서의 권력관계들을 공론화하면서 변화시키는 청소년들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윤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실로 ‘패륜적’이다.


문화적 어려움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지위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문화적인 문제나 여러 제도적인 문제들에 얽혀 있다. 민법이나 노동법 같은 데부터 넓게 본다면 교육제도나 선거연령, 사회적 인식 등까지도 모두 청소년들의 독립적인 삶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달라지면 상층 구조는 다소 오차가 있더라도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에서부터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요인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청소년들이 세뱃돈 압수당하듯이 기본소득을 받자마자 친권자들에게 압수당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더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몇몇 장애인 시설들이 보조금 더 타내려고 장애인들을 데려와서 보조금을 갈취하듯이, 아이 1명을 더 낳으면 그만큼 기본소득을 더 번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는 친권자들도 나타날 수 있다. 아니면 학생간 폭력에서 ‘삥’을 뜯는 규모가 커지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괴 등의 범죄가 증가하는 일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도입 초기에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판단능력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히 청소년들은 (사실은 20, 30대들도 좀 해당) 경제적 주체가 되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안 좋은 쪽으로 발휘한다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나 명품 소비 문화 등에 소득을 다 쓸 수도 있다. 지금도 빈곤층 가정의 청소년에서부터 이런 명품 소비, 신제품 소비 등의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독립에 기여하기보다는 명품이나 10대 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다면, 친권자에게 손을 벌려서 그런 소비를 하는 것보다는 낫겠으나, 최선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문화적 변화에 더해 어떻게 경제적 주체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을 교육할지, 이러한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계획해야 할 문제이다.


가능성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액수상으로는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빈곤하고 더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이 있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가정/가족 단위로만 묶여서 생각되어왔고 독립된 경제적 능력을 인정받거나 보장받은 적이 없는 청소년들은 기본소득 도입의 이해당사자 중에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그 자체로 청소년들을 해방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청소년들이 친권자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지금의 사회적 시선으로 본다면 ‘패륜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중 하나일 수는 있다. 또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청소년들의 삶이나 교육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과정 자체, 그리고 기본소득에서 청소년들(0세~19세 정도)이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도입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과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역시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운동과 제도는 최소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전까지는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그런 새로운 사회로 가는 가능성을 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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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ma

    밀도 높은 글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2010.06.29 03:39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6. 27. 03:35










최저임금은 거의 모든 서민들(부유층 외의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문제입니다.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법규들을 놓고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체 기본급을 정할 때도 기준이 되지만 재난·사고 피해자나 사회변동 희생자, 서민, 사회적 약자 등에 정부가 돈을 지급할 때도 기준이 된다. 이렇게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활용하는 주요 법률은 14개, 사안별 제도는 20개로 모두 34개의 법제도에 적용된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은 대체로 고령 여성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해왔습니다. 대다수가 청소노동자이고 민주노총 여성연맹 소속 조합원들인 경우가 많은 이 분들은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집회를 해야 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최저임금 투쟁을 하는 것도 몇번 있었으나,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오지는 못했습니다.
(참 이런 거 보면, 사람들이 흔히 '여성운동'이라고 하면 최저임금 인상 투쟁 같은 건 생각도 잘 안 할 텐데...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여성운동 이슈이기도.)



며칠 전에 청소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발표 등에 참여하고나서, "이거가 최저임금 투쟁의 주체들이 더 많이 확대되는 거라고 보이려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청년유니온에서도 최저임금과 관련하여 실태조사 결과나 인상요구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주로 해온 여성 청소노동자 분들이 혹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이제 10대, 20대 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하나보다 생각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주체들이 넓어져간다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는 인식 속에서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바로 언저리의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비는커녕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렵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20대-대학생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오는 게 노동운동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 사회환경, 실질임금의 후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동시에, 누가 '최저임금'을 받게 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하게 됩니다. 여성들, 청소년들, 20대들... 등등등. 지금 사회에서 돈을 벌어오는 '가부장'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들 또는 노동의 가치를 폄하당하는 이들이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가 됩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당사자가 됩니다. 최저임금은 인권의 문제입니다.


혹시 기대를 하고 계셨을 분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청소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발표도 서명운동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고 실제로 조직되어 있는 청소년 노동자들은 10명도 채 못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시작으로 해서 청소년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니까, 멀지 않은 시일 내에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의 조직이 출범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추천을!)





추신 : 그러니까 지금 경총 측에서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10원을 올리네 15원을 올리네 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시급 5180원은 별로 많은 돈이 아니라는... 얼마 전에 1만5천원 정도로 최저임금을 정한 호주는, 물가를 비교해도 한국보다 좀 더 비싸거나 식품 등에서는 더 싼 것도 꽤 많고... 쨌든 5180원은 전체적으로 낮은 실질임금을 전제한 상태에서 나온 최소값입니다. =_= 근데 4110원에서 10원 올려서 4120원 하자는 뻘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최저임금 투쟁이 더 쎄져야 하는데 에구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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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디어 없음!(<-)

    2010.06.27 21:2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4. 21. 04:04


전청련(전국청소년학생연합) 해산에 부쳐

(이 글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쓰는 글입니다. 제가 속한 단체의 입장과는 별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_@)
공현


전청련 해산 소식을 듣고 제 마음 속에 번졌던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좀 쌩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움도 씁쓸함도 아닌 외로움이라니 말입니다. 그치만 정말로, 전청련이 해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뭐, 감정을 억누르도록 사회화된 남정네라서 그리 쉽게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요.

요즘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부쩍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봅니다.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잖습니까? 제대로 된 청소년단체라고 해봐야 흔히 쓰는 말로 한줌밖에 안 되고 말이지요. 청소년들을 보호하자, 청소년들을 선도하자, 그런 단체들은 참 많고 정부 지원도 나름 빵빵합니다. 대개 청소년단체라고 하면 바로 이런 분들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자, 청소년들이 직접 운동의 주체 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행동과 저항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청소년단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운동에 대해 고민이 들어도 그 고민을 같이 토론할 만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타자(他者)가 별로 없습니다. 어떤 활동을 같이 하자고 협력을 제안할 단체들도 많지 않습니다.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건 외로운 일입니다, 아직까지는요.

그래서 전청련 해산이라는 소식이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안타까움에, 저는 외로움을 보탭니다. 전청련이 건강한 청소년조직으로 성장하여 저/우리를 좀 덜 외롭게 해줄 수 있길 바랐습니다.(키잡?!) 전청련이 제가, 또는 제가 속한 단체들이 다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의 여러 역할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좀 무협지스럽게 이야기해서, 전청련이 믿고 등을 맡길 만한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고, 제안받고, 서로가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랐습니다.


촛불의 실패, 청소년운동의 실패

저는 전청련의 해산에서 전청련이라는 어느 한 조직의 실패 뿐 아니라 한 '시대적 사건'의 실패를 읽게 됩니다. 아마 몇 년 후면 교과서에도 나오게 될 거 같은, '2008년 촛불'의 실패입니다. 전청련은 2008년 촛불 속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여러 청소년단체들 중 하나였고,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런 전청련이 끝내 해산하는 것은 2008년 촛불이 청소년운동에 남긴 성과는 무엇이었나, 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2008년 촛불은 청소년들이 시작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다, 아이들이 먼저 나오다니 부끄럽다... 청소년에 관한 말들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8년 촛불은 청소년운동에 뚜렷한 기여를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어떻게 운동들을 만들어나가고 조직해나갈지에 대해서는 정작 무관심했던 것 때문일지, 아니면 촛불집회 안에서도 반성 없이 계속된 여러 사회적 차별들의 문제일지, 거대담론적인 촛불 프레임의 문제였는지... 그런 것까지 다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건 전청련의 해산은 2008년 촛불집회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전청련 해산은 한국 운동사회, 아니 청소년운동사회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청소년단체들, 청소년활동가들은, 왜 새로 막 생겨난 자생적인 청소년단체를 지원하는 일에 무관심했던 것일까요? 뭐 제 코가 석자니 지원이라고 해도 물질적 원조 같은 건 어려웠겠지만, 활동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자료를 제공하고 전청련 활동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운영방안, 활동방향 등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전청련의 해산은 청소년운동이 현재 놓여 있는 열악한 운동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저/우리 모두의 잘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사후약방문

사실 그동안 전청련을 지켜보면서 몇 번씩이나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하며 한두마디씩 끼어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청소년단체 사람이 와서 단체 내부 사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모양새가 나쁜 일이었고 말입니다.(물론 그 중엔 전청련 카페에서 등급이 방문객 등급이어서 글을 읽고 쓰는 게 제한이 걸려 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죠;;) 결국 사후약방문 격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전청련을 지켜보면서 키보드가 근질근질거렸던 두 가지만 간추려서 적겠습니다.

사람-활동-조직 : 모든 운동단위에 다 적용되는 이야긴 아니겠지만, 저는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조직을 운영하는 경우에 일반적으로는 사람-활동-조직 순으로 사고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사람이 먼저 있어야 무엇이든 할 테니 활동하는/활동할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그 다음에는 활동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운동단체의 존재 목적은 결국 이 활동을 하는 데 있습니다. 활동이 없으면 유령단체가 되고 죽게 되는 것이고, 활동이 있으면 어떻게든 단체/조직의 목숨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운동에는 자전거 같달까 베르누이 효과 같은 성격이 있거든요.(이런 자연과학적 비유;) 활동을 하고 계속 굴러가는 조직이 넘어지지 않고 공중분해되지 않고 주위에 흡인력을 발휘하며 계속 생명력을 얻습니다. 피가 아니라 피의 흐름이 '생명'인 것처럼 말이지요.
조직구성은 그 다음입니다. 조직은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 같은 것입니다. 누가 무슨 일을 맡고, 운영은 어떤 절차로 하고, 이런 것들은 활동을 하고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부수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청련을 보면서 계속 걱정했던 것은, 활동보다는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느 자리를 누가 맡고 어느 부서를 어떻게 인사 배치하고, 어떻게 그럴듯해보이는 조직을 만들까 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는 것처럼 보였던 점입니다.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을 만들어가고,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토론 속에서 전청련의 지향점과 목표를 합의하는 식이 아니라 계속 노선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운동은, 물론 뭐 입이나 손가락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발과 얼굴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그런 점에서 저는 참 못난 활동가지요.) 발로 뛰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홍보하고 행동하면서 이루어지는 게 운동입니다. 서로가 대단한 노선이나 투쟁의 방법론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건 운동에서 부록 같은 겁니다. 조직내에서 누가 의장을 맡을까 하면서 하는 선거 같은 것도, 일종의 부록입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그 단체/조직의 성격을 정하는 거니까요. 저의 관점에서는 전청련은 '3기 지도부가 출범하지 못해서' 해산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어서' 해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활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청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전청련이 좀 더 활동 중심적으로 꾸려지고 움직였다면 더 오래 존속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생단체 : 전청련은 촛불집회의 열기 속에서 처음 시작하는 단체/조직 치고는 돈이든 사람이든 비교적 풍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것뿐, 전청련은 안정적인 재정 운영 방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이런 활동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활동이 어렵고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청련이 좀 더 신생단체로서 다른 단체들, 다른 운동들에 손을 벌렸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제가 아까 '다른 단체 사람이 와서 왈가왈부'하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는데요. 차라리 전청련 활동가들이 다른 단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활동에 대해 물어보고 고민을 나누었다면 어땠을까요? 개별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단체 차원에서 다른 단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인터뷰해서 전청련 활동에 참고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재정 문제나 여러 인맥 등도 그런 식으로 여러 단체들과 친해지고 활동에 후원을 얻고 비품을 빌리고 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거구요. 그래서 전청련이 너무 '갖춰진 조직'으로서 폼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결국 전청련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산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전청련 해산 이후

전청련 해산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청련이 해산하지 않도록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되돌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전청련 해산 이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별로 달라진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안서에 적을 단체가 하나 빠진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2008년 촛불 이전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과, 있다가 없는 것은 다릅니다. 청소년운동의 조건과 지형도 다릅니다.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 같은 무게감을 느낍니다.

전청련 해산 이후라는 말에는 동시에 촛불 이후라는 말도 숨어 있습니다. 전청련의 해산은, 청소년운동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어떤 길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따져묻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는 활동으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것입니다.

전청련에 몸 담았던 분들에게는, 전청련 해산에 너무 좌절하고 상처받지 마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은 저도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니 '학생인권공동행동'이니, 여러 모임을 만들었다가 흐지부지되거나 해산시킨 일이 여러 번입니다. -_-; 그런 시행착오와 실수 속에서 활동가들이 단련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전청련 게시판의 해산에 관한 공지를 보니, "이 공지글이 게시된 직후 단체 전환을 하고자하여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홍보하는 것을 인정함."이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전청련 분들 중에서 계속 청소년운동을 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 앞으로도 밑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으로 활동을 만들어가면 참 좋을 것입니다. 아수나로로 오셔도 환영하구요. (퍽!) 언제나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밑바닥 중 하나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게, 청소년운동의 조건상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전청련 해산에 안타깝고 외로운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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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기 대표 하던 여학생이던가 이뻤는데 (야...)

    2010.04.22 01:55 [ ADDR : EDIT/ DEL : REPLY ]
    • 음; 전청련 의장이 3명인가 있어서 누굴 말씀하시는진 모르겠지만;;;;

      2010.04.22 12:33 신고 [ ADDR : EDIT/ DEL ]
  2. 선경이요...? 의장은 의장대행까지 3명이 있었고 여자는 한명이었다는ㅋㅋㅋ 아 선경이하고 조직 내의 비하인드 스토리 쩔어욬ㅋㅋ

    2010.04.22 12:54 [ ADDR : EDIT/ DEL : REPLY ]
  3. 개인적인 생각은 이래요. 고병권 씨가 「추방과 탈주」에서도 언급했지만 촛불은 합법이냐, 비합법이냐에서 고민하다가 사그라들었다고. 촛불이 무의미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크고 묵직한 화두를 던졌죠.) 6월 이후 부터는 태생적 한계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청련의 경우는, 이미 사후약방문이 되었지만 먼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기자로서 크게 관심을 못 둔 점 (카페에 가입은 했었는데, 방문자 수준에서 끝이었죠.) 에 대해서 크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기존 단체들에 자문을 구하거나, 연대 활동을 해서 활동에 대한 모색이 더 있었으면 더 오래 갈 수 있었을 까요.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촛불 시위로 인해 생겨난 단체 대부분은 '우리는 (기존 단체와) 다르다'를 외쳤지만, 그 선명성에 너무 올-인을 하다보니 점차 활동이 밋밋해지고 결국은 해산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작년 선거에서 경주 지역 후보로 나왔던 채수범 씨 (아고라에서 '한글사랑나라사랑'으로 활동했죠.) 를 보고 식겁했어요. 단순히 '나는 촛불 시위에 참여했고' ' 이명박에 반대한다' 외에는 아무런 공약도, 지점도 없다니! 이명박 정권의 행동이 문제라는 사실은 느꼈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즉, 방향 설정에서 난조를 겪었다고 봐요.

    아무튼, 전청련의 해산에 대해 큰 아쉬움을 느낍니다. 별 관심을 주지 못해서 더욱 죄송합니다.

    추신. 청소년활동가네트워크 측에서는 전청련과 접점이 없었나요? 네트워크가 어떤 단체인지 정확히 몰라 함부로 속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네트워크 측에서 전청련에 도와주자- 이런 식의 반응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2010.04.22 13:21 [ ADDR : EDIT/ DEL : REPLY ]
    • 합법/비합법, 폭력/비폭력, 조직/대중 구도 속에 사그라든...

      // 전청련 내부 상황 자체가 외부에서는 잘 알기 어렵게 개개인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흘러간 측면이 있어서;;
      뭐 지금 와서야 이런저런 '만약에'를 내놓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먼저 손을 내밀지 난망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뚜렷하게 어떤 점에 곤란을 겪는지를 알 수 있었다면 먼저 돕자는 이야기도 나왔을 법한데... 네트워크 회의 때 딱 전청련을 꼽진 않았으나 다양한 청소년운동에 관한 모임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왔었으니;

      2010.04.23 10:26 신고 [ ADDR : EDIT/ DEL ]
  4. 브르르르럽 별 괴상한 일 많았죠

    2010.04.24 21:37 [ ADDR : EDIT/ DEL : REPLY ]
  5. Hyun

    별 괴상한일 많았죠. 그리고 공현님의 말씀에 상당부분 동의하기도 하고요. 근데 야우리시민님 말에는 상당한 왜곡을 조장할수 있는 이야기가 있네요...에휴. 이래서 소문이 무서운 것이죠. 여튼 전청련은 새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공현님이 여러가지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ㅋ

    2010.05.27 01:11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