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 해당되는 글 138건

  1. 2012.01.19 01.25 “폭력이 부르는 폭력, 차별이 부르는 폭력” - 학교폭력의 해법 모색과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집담회 (2)
  2. 2012.01.18 미조직된 시민들의 호응으로 만들어진 서울학생인권조례 (1)
  3. 2012.01.06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환영 서한을~
  4. 2011.12.19 두 번째 노땡큐 칼럼 : 차라리 ‘차별하라’고 말하라 (1)
  5. 2011.11.17 [논평] 청소년단체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의 활동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입장에 대해
  6. 2011.11.16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7. 2011.11.14 대학입시거부선언문 (2011/11/10)
  8. 2011.10.27 [나의 대학거부] 4년의 공장 제련기간을 거부한다 (1)
  9. 2011.10.21 이번주말, 경기도 상벌점제 토론회와 청소년 정치적 권리 토론회
  10. 2011.10.21 투명가방끈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에 함께해주세요!!! (2)
  11. 2011.10.21 20대 대학거부선언에 함께할 분들을 모아요!!
  12. 2011.10.20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5)
  13. 2011.10.18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받는 질문들 (2)
  14. 2011.10.17 [투명가방끈] 대학입시거부선언, 포스터와 요구안
  15. 2011.10.14 [인권오름] [나의 대학거부] 대학 잘못 온 사람이 던지는 물음표
  16. 2011.10.13 학생인권조례의 기본 철학
  17. 2011.10.08 광주학생인권조례, 이제 출발이다. 광주학생인권조례 통과를 환영하며, 시교육청은 실질적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바란다. (1)
  18. 2011.10.08 <기자회견문> 학생인권, 아직과 이미 사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19. 2011.09.21 무상급식 그거, 참 별거 아닌데 (7)
  20. 2011.09.20 [오늘의교육] 우리 모두, 바동거립시다
걸어가는꿈2012. 1. 19. 12:16


“폭력이 부르는 폭력, 차별이 부르는 폭력”

- 학교폭력의 해법 모색과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집담회

 

모십니다.

 

다시금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 전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학교폭력 문제를 빌미로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시키려는 정치적 발언들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지금 문제시되고 있는 ‘학교폭력’(학생간 폭력)의 개념을 확장하는 한편,

학교폭력의 해법에 다가서는 접근방식들을 근본적으로 재점점해보는 자리를 갖고자 합니다.

 

이번 집담회는 참석자 전원이 상호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학교폭력문제, 차별과 폭력 문제, 인권과 교육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오신 단체들이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담회 기획안]

 

 

“폭력이 부르는 폭력, 차별이 부르는 폭력”

- 학교폭력의 해법 모색과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집담회

 

 

■ 때: 1월 25일(수) 오후 2시~5시

■ 곳: 흥사단 강당

■ 공동주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윤명화․김형태 의원실, 전교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학생인권조례성소수자공동행동

 

■ 구성

: 집담회는 참석자 모두가 심층적인 분석과 해법을 함께 모색하는 방식으로 진행

: 간략 발제를 요청한 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참석자들의 의견과 상호 토론을 통해 퍼즐을 완성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

 

- 사회 : 배경내(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1부. [진단] 학교 안 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괴물인가? 누가 왜 표적이 되는가? 학교 안 힘의 위계질서와 차별이 낳는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의 악순환을 진단한다.

: 집담회 참가자들의 진단을 들어보면서 ‘학교폭력’(학생간 폭력)에서 ‘폭력 학교’(폭력적 학교구조와 학교문화)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중요함을 살펴본다.


1)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경쟁교육, 폭력적 학교문화 진단

- 이희진(교사, 대구학생인권연대)

2) 폭력학교를 피해 짐을 싼 사람들

- 문한뫼(학교폭력 피해 학생)

3) 장애학생에 대한 폭력 : ‘도가니’와 대전 지적장애 학생에 대한 폭력사건을 중심으로

- 최석윤(서울장애인부모회)

4)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폭력 : 아웃팅과 집단폭행, 자살에 내몰린 청소년 성소수자

- 호림(학생인권조례성소수자공동행동 차별사례팀)

5) 국제결혼가정, 이주가정 학생에 대한 폭력

- 석원정(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6) ‘학교 실적’이 만들어낸 피해자들 : 학교 실적을 위해 죽음의 공장으로 내몰린 현장실습생들(학생 운동선수 인권문제와의 유사성도 포함)

- 하인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전교조실업위원회)

 


2부. [해법 모색을 위한 쟁점토론] ‘폭력의 학교, 죽음의 학교’를 넘어서기 위하여

: 학교폭력 문제의 해법을 찾는 접근방식의 근본적 관점을 점검하는 쟁점토론을 위주로 집담회를 진행한다.

: 입시경쟁교육의 문제, 폭력적 사회문화가 학교폭력의 밑불이 되고 있음은 전제로 하고, 그 이상의 구체적 논의를 진행한다.

: 사회자가 쟁점별로 먼저 말문을 열어줄 사람을 초대해서 입장을 들어본 다음, 전체가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 주요 쟁점

1. 학교폭력에 대한 침묵과 방관, 악순환 구조, 어떻게 깰 것인가

2. 가해자 처벌 위주의 해법과 피해자(잠재적 피해자) 지원 중심의 대책은 어떤 차이를 만드나

3. 학교폭력 해법에서 교사, 학생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4. 학생인권조례는 학교폭력 예방과 해결에 무력한가

5. 학교를 넘어선 지원망 확충과 성찰적 사회문화 어떻게 만들까

 <각 쟁점별 토론을 열어주실 분들>

◯ 이영탁(전교조 참교육실)

◯ 문재현(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 둠코(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김선혜(평화를만드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 김영삼(서울시교육청 생활지도정책자문위)

◯ 이정희(경기도인권교육연구회)

◯ 유정은(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아동청소년인권센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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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가비

    참가비가 있나요? 그리고 갈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인가요?

    2012.01.20 01:41 [ ADDR : EDIT/ DEL : REPLY ]
    • 참가비는 없습니다.
      참가 자격은, 음 글쎄요 학생간 폭력과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 ^^;

      2012.01.20 11:3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2. 1. 18. 03:23

미조직된 시민들의 호응으로 만들어진 서울학생인권조례

-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 주민발의의 경험



  2011년 12월 초,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학생인권조례주민발의 운동을 하던 경남에서, 주민발의에 필요한 숫자인 2만5천여명을 훌쩍 넘긴 3만6천여명으로 서명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수나로 경남중부지부의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되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쉽다고 했다. 서울 주민발의처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호응을 얻으면서 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보다 더 안정적으로 주민발의를 성사시킨 경남을 부러워하고 있던 나로서는 새로운 관점의 평가였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의 험난했던 과정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의 과정은 험난 또 험난했다. 처음 주민발의를 시작할 당시에는, 전교조 서울지부 활동가가 내놓은 낙관적인 전망을 믿었었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는 친환경무상급식조례 주민발의 당시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주민발의 서명을 모을 계획을 내놓았었고, 그에 따르면 2011년 1월까지 3~4만명 정도는 모을 수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2011년 1월,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참담했다. 주민발의 기간 6개월의 반이 지났는데도 모여 있는 건 고작 6000명 남짓의 서명이었다. 서울시 투표권자의 1%, 최소 8만2천명을 모아야 하는데… 3개월만에 7만6천명을 더 모아야 할 판이었다.

  사실 처음에도 친환경무상급식조례와 학생인권조례를 비슷한 것으로 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던 적이 있었다. 교사인 전교조 조합원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친환경무상급식조례와 학생인권조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청소년운동에서 반복적으로 던졌던, "왜 우리 사회는 '애들 밥 먹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면서 '학생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에는 소극적, 부정적인가?"라는 질문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친환경무상급식에 비해서 청소년들, 학생들을 시혜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좀 더 근본적인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주제였다. 결과적으로 전교조 교사 조직을 비롯하여 처음에 계획했던 '조직서명'은 충분히 움직이지 못했고, 2011년 2월부터는 '거리서명'이라는 방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거리서명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 주요한 서명 방식으로 생각되지 않았었다. 12월에 2차례 해봤지만 추운 날씨에다가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까지 적어야 하는 주민발의 청구인 서명의 특성상 3시간을 해도 40~50여명의 서명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조직으로부터의 서명을 기대할 수 없다면 발로 뛸 수밖에. 2월 들어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6시간 풀타임 거리서명을 개시했다. 목표는 하루 200명. 남은 3개월동안 하루 200명씩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면 3만여명을 거리서명으로 채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 매일 거리서명에 나선 사람들은 주로 청소년활동가들이었다. 첫날에는 6시간을 했는데도 100명밖에 못 받았지만, 점점 요령이 붙고 어느 지역이 잘 되는지 정보가 축적되면서 하루 200명씩 받아내는 게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감동적이었던 시민들의 호응

  2, 3월은 매일 아침 9시에 모여서 그날의 서명 일정을 정리하고, 11시부터 5시나 5시30분까지 거리서명을 한 뒤(3월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자 저녁 6시까지 서명을 연장한 날도 비일비재했다.), 저녁에는 온갖 행사나 강연이나 다른 단체 총회에까지 찾아다니면서 서명을 호소하고 받아내고, 밤 8, 9시쯤 사무실로 돌아와서 그날 받은 서명을 다 세고 정리하고 서명 물품을 정리한 뒤에 11시가 넘어서 집에 가면 바로 쓰러져 자는 생활로 2개월을 보냈다. 노동시간으로만 따지면 하루 12~13시간이 넘었고, 무거운 앰프와 가판대와 전단지와 서명용지를 들고 옮기고 추운 날씨에 6시간 동안 서명을 받으러 서있고 돌아다니는 육체노동과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서명을 받아내야 하는 감정노동이 골고루 섞인, 강도 높은 노동의 나날이었다. 처음에는 쉬는 날 없이 하다가 한 명 한 명 몸살로 쓰러져서 쉬는 일이 속출하면서 그제야 한 사람당 1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의무적으로 쉬기로 했다. 2, 3월의 그 지옥 같았고 이를 악 물고 보냈던 시간들, 단순한 노동강도로는 말할 수 없는 울분과 절치부심의 시간들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4월 11일, 이제 주민발의 기간은 원래대로라면 보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 되었다. 서울시에서 중구청장, 강남구의원 등 재보궐선거가 있어서 재보궐선거 기간 동안 그 지역에서 주민발의 서명이 금지되어, 금지되었던 기간만큼 그 지역만 연장이 되어서 서명 최종 마감일은 5월 10일로 미뤄져 있었지만, 어쨌건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점이었다. 그때 모인 서명은 3만2천명 남짓. 그 중 2만명 넘는 숫자가 거리서명으로만 모은 숫자였다. 조직서명은 여전히 당초 목표의 반에도 못 미치고 있었다. 11일 중간보고 기자회견 전까지 최소한 절반, 4만명은 모으고 발표하려 했던 소기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4월 11일에 기자회견을 하고 여러 언론에 소식이 알려진 뒤, 그리고 주민발의 청구인 대표였던 홍세화 씨가 한겨레에 자신의 칼럼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소식을 전한 뒤, 시민들의 호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홍세화 씨 칼럼이 실린 날에는 서울본부 전화로 어떻게 하면 서명을 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 홈페이지에 올려뒀던 우편서명용지를 시민들이 다운로드하면서 홈페이지가 트래픽 초과로 다운, 리셋시켜 복구하는 일이 반복됐고 결국 홈페이지 트래픽 용량까지 늘렸다.

  나는 아직도 그때가 생각난다. 4월 26일, 원래대로라면 주민발의 서명이 마감되었어야 할 날, 그 날은 아무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은 어느 서울시민 분들이 한 명 한 명 보내준 우편 서명만 800명이 넘게 들어왔다. 어느 분은 4월 26일에 바로 제출해야 하는 건 줄 알고 혹시라도 늦을까봐 자기 서명 한 장을 퀵으로 보내오시기까지 하셨다. 비록 4월 26일에도 서명은 7만명에 못 미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날과 그 다음날만큼은 밀려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우편서명에 즐거워할 수 있었다. 학생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이 이만큼이나 많았구나, 하고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거리서명 역시 날이 좀 풀리고 우리도 요령이 붙으면서, 그리고 주민발의 막바지가 되어 다른 단체들도 거리서명에 힘을 집중하면서 더 놀라운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어린이대공원에서는 평균적으로 주말마다 하루 500명, 최고 기록을 세운 날은 하루에 900여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부모들의 호응이 높았다. 학생인권이 자기 아이가 곧 겪을 문제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펜을 들고 서명에 참여해주는 부모들의 힘으로 어린이대공원 서명은 성공적일 수 있었다.

  5월 10일, 주민발의 서명을 마감한 날, 모인 서명이 8만 5천명으로 집계되자 서울본부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사실 5월 초까지만 해도 우리는 주민발의 무산을 점치며 우울해하고 있던 차였다. 아무리 쥐어짜봐도 3천~5천명의 서명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부족한 서명을 각계각층에서 서울본부 소속이 아닌데도 힘을 보태준 단체들, 그리고 예상 이상으로 몰려든 시민들의 자발적인 우편서명이 채워주었다.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 등에 거리서명이 중구와 강남구에서밖에 못 받았는데도 대박이 터졌던 덕분도 있었다. 기쁨도 잠시, 주민등록번호나 이름, 주소 기재 오류로 7만2천명밖에 유효 서명이 없다고 하여 보정기간 5일만에 1만여명의 서명을 더 받아야 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때도 태풍 속을 뚫고 거리서명을 받고 또 많은 서울시민들의 계속되는 호응과 참여로, 총 약 11만명의 서명, 최종적으로 유효하다고 인정된 97,702명의 서명으로 주민발의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미조직 대중과 조직 대중 사이 어디쯤

  서울에서 마지막에 대략적으로 서명을 집계해봤을 때, 굵직굵직했던 것은 거리서명으로 모은 게 약 3만, 전교조 서울지부 7~8천,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명이 1만4천, 대한불교청년회가 1만2천, 우편서명이 6천 등이었다. 그런데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1만4천명 중에서도 8천명 이상은 거의 담당 활동가 2명이 매일 따로 거리서명을 뛴 결과였기에, 민주노총 서울본부도 노조 조직 서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7천명 남짓이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에서는, 절반 이상을 거리서명, 우편서명 등 미조직 시민들로부터 받은 것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경남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에서는 거리서명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서명수의 20% 미만이다. 3만6천명 중 1만명 이상을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받았고, 전교조 경남지부도 5천명 이상 받았다. 학부모단체들과 어린이책시민연대, 그리고 지역운동을 하는 단위들도 많은 수의 서명을 모아왔다.(중간까지는 각 단위별 목표 서명과 달성한 수가 공개되어 있었으나 최종 마감 이후 공개되지 않아서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이런 차이는 지역특성이나 그 지역에 지역조직, 노조 등 대중조직들의 조직화 정도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경남은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2008년 무렵부터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조직 대중들의 학생인권에 대한 의식이 더 우호적이기 때문인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서울 주민발의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미리 수임인 교육이나 조직을 통한 서명 계획을 좀 더 철저하게 세운 것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서울에서 주민발의에 학을 뗐던 청소년활동가들은 경남처럼 조직 서명의 힘으로 주민발의를 성사시킨 것을 보고 매우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졌다. 때문에 경남의 활동가에게서 서울의 주민발의를 부러워하는 듯한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서울이었기 때문에 더 이슈화가 됐고 그래서 더 많은 미조직 대중들이 알고 호응하고 참여하는 과정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거리서명과 우편서명으로 턱걸이 하듯이 피 말리는 기분 속에 겨우 성사시킨 주민발의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말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미조직 서울시민들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호응이 예상 이상으로 높았던 것이고 그것 역시 우리가 감동할 일이었고, 또한 우리가 지난 수년간 학생인권운동을 해온 성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조직 대중들의 호응으로 성사시킨 주민발의는 너무나 취약하기도 하다. 우리는 원래 각계각층의 조직된 대중들, 특히 교사들에게 학생인권에 대해 알리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의 목표 중 하나로 잡았었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것은 좌파적․개혁적 시민사회운동에 조직 대중들 사이에서도 학생인권이 별로 통하지 않고 있으며, 노조 등의 대중조직들 역시 그런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조직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할 만한 조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교조 안에서의 의식 차이는, 간부들 사이에서도 심각할 정도로 컸다. 미조직 대중들에 크게 의존하여 주민발의를 성공시켰지만, 당초 기대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 학교 안에서 변화를 돕는 주체로서 교사․학부모 등을 만들어내는 계기로서 주민발의는 성공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학생인권조례 운동은, 비단 주민발의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조직 대중과 미조직 대중, 그 둘 모두를 향해 전개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서울과 경남 주민발의 사례의 중간 어디쯤에 적절한 균형점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일단 나는 청소년활동가이고, 청소년의 경우에는 절대다수가 미조직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현장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제도이기도 하지만, 미조직된 초중고등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더 조직화해내기 위한 계기이기도 하다.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지금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될 때를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학칙개정 대응 메뉴얼 발간'과 개별 학교 대응 등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당시에 있었던 학칙개정에 대한 여러 경험들로부터 배워서, 좀 더 면밀하게 학생들이 주인이 되어서 학칙개정에 참여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조직화해낼 수 있는 계획을 고심 중에 있다. 주민발의는 어쨌든 끝났다. 거리에서 '비청소년'들에게 청소년,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서 서명을 해달라고 구걸해야 했던 끔찍했던 시간도 끝났다. 비청소년들도 이렇게 많이 학생인권에 대해 호응해주는구나 하는 감동도, 분노와 억울함도, 모두 가슴에 남겨두고. 이제 다시 청소년운동으로 돌아올 때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곧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힌다. 흑흑.)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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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냥

    흑흑흑
    (같이 울자 흑흑흑)

    2012.01.18 12:0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2. 1. 6. 17:58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2012년 1월 3일

허광태 의장님께


지난 2011년 12월 20일, 서울특별시의회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부합하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성공적으로 제정하여 서울시 학교에 재학 중인 아동과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하게 된 바에 대하여 환영하는 바입니다.

본 조례가 그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학생들의 사생활, 표현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성적 기호(성적 지향) 등 다양한 사유로 행하여지는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 한민국의 학교 환경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있어 본 조례의 제정이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및 성전환자의 권리의 명시적 보호를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본 조례의 제정이 향후 성적 기호(성적 지향)를 이유로 행하여지는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의 국가차원적인 채택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닦는 발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서울시 시민의 인권향상을 위하여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으신 의장님과 서울특별시의회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해니 메걸리
중동아주국 
현장지원 및 기술제휴부 대표




근데 '참조'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랑 이대영 서울시 부교육감이네요 ㅋㅋ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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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2. 19. 01:00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909.html


"서울시의회 자유게시판에 들어가보니 동성애 차별 금지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생각하라”며 “당신 가족이라도, 당신 자식이라도 그렇게 하겠느냐”고 묻는 글이 보였다. 만일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동성애자라면 나는 차별금지법이, 성적 지향 차별 금지를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있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내 가족이 상처받고 차별당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쓴 글. 이번에는 좀 여유 있게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썼다.

약간은 화가 나서 쓰기도 했던 글.

바로 지금 서울시의회에서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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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2.22 14:42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1. 17. 16:44
[논평] 청소년단체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의 활동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입장에 대해



  청소년단체가 무슨 활동만 하면 '배후'에 뭐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나 '청소년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거의 공식이 된 것 같다. 며칠 전, 전교조의 기관지인 <교육희망>에 한 청소년단체의 운영, '배후'에 관한 의혹 제기 기사가 실렸고 해당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됐다. 아울러 전국교직원노동조합(다음부터 전교조)은 "청소년단체 이용한 전교조 죽이기 음모 즉각 중단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교사들의 수업 중 개인 의견을 담은 발언을 녹음해서 "정치 편향 교육"이라며 고발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다음부터 한청연)이라는 단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굳이 쓰자니 종이가 아까울 정도로 당연하게도, 우리는 한청연의 이 같은 활동에 비판적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편향되지 않은 교육이란 불가능하며, 정치적 중립이란 많은 경우 보수적인 태도를 의미하곤 한다. 예컨대 지금 학교에서 입시경쟁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되지만, 적극적으로 입시교육을 하는 것은 비정치적인 것, 정치적 중립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정치적 태도란 지금의 사회·정치·교육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 정치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교사도 학생도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교실에서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한청연의 이번 활동과 같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교사들의 의견 표현을 사냥하듯이 고발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교사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은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인권 기준이고 민주주의의 당연한 가치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한청연이 이러한 활동을 그만둘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한청연의 활동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우리는 관련 기사, 특히 전교조의 성명에서 보이는 심각한 편견에 대해 문제제기하고자 한다. 청소년단체의 활동을 놓고 "어른들의 정치이념놀이에 …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 누군가가 "청소년단체를 이용"하고 있다거나, "청소년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고 하는 것 등은, 청소년들의 사회․정치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에 편승하는 것이고, 청소년단체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회계나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후원을 받은 적이 있다거나 어디서 지원한다는 의혹이 있더라는 '카더라' 식 내용만으로 '이용'이니 '꼭두각시'니 표현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능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꼰대질'에는 좌우가 없고 상하만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전교조가 아이들을 조종해서 나오게 했다는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의 발언이나 보수․수구언론들의 무책임한 발언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청연의 활동에 대해 반대하고 비판하려면, 단체 대 단체로서 당당하게 문제제기하고 대응하라. 청소년단체든 어떤 단체든, 그 단체가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고 다른 단체나 정부의 조종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려면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청소년들의 활동은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이용하는 것이라는 편견에 편승하는 것은, 주체적으로 사회․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모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만든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사회․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주체이며 누가 배후에서 청소년단체를 조종하고 있을 거라는 식의 무리한 예단은, 누구든 함부로 내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전교조 등이 이러한 발언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2011년 11월 17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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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6. 01:21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고예솔


나는 지금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3이다. 학년으로 고3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학력인정이 안 되는 학교라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중․고졸 검정고시를 보지 않을 것이고 대학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그런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은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청소년에 대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는 여전하다. 올해 초 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참여했다.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서명이 아니라 유권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들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례를 제정해 반인권적인 행동에 대한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입시 위주의 무한경쟁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입시거부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간디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대해 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이란 가면 가는 것이고 안가면 안 가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지 마라. 대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우리는 이렇게 6년간 배워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은 나의 대학입시 거부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도 해 주었지만 동참하려 하지는 않았다. 나 자신은 무한경쟁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일까. 하지만 좋든 싫든 학벌만으로 평가받는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있는 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입시 따위랑은 전혀 관계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도 19세 혹은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무언가 압박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낮에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를 뭔가를 포기한 사람쯤으로 취급하곤 한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나의 삶은 대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 질문 속에 지내다보면 나도 대학엘 가야하는 것 아닐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살 수나 있을까? 하는 압박감으로 초조해지기도 한다. 무한경쟁 교육 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있다고 할 수 있는 내가 이정도로 압박을 느끼는데 그 속에 살아온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얼마나 심할까 싶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대학에 매여 있는 사회

학교 현장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환경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은 민주사회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민주적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벌 위주의 사회 속에서 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학교는 대학만이 목표인 것처럼 학생들을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인권을 논의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논의로 치부된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얼마나 보내는가로 능력이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을 경쟁으로 몰아세우고 권위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십년 후의 행복을 위해 십년동안의 시간을 공포와 초조함으로 가득 채우고, 마음을 나누어야 할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매순간 순간이 모여서 미래가 되는 것인데 미래에만 의미를 두고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십년이 지나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행복이 찾아올까?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학벌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 불안한 일이다.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 사회에서 초졸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보호 아래 살던 내가 이 문제 많고 험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더군다나 사회가 요구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걷고자 한다는 것이 두렵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대학을 목적으로 한 그런 공부가 아닌데 그것 말고 다른 배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건 이 사회의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꿈들이 존중되고 그들이 다양한 선택을 당당히 말하고 꿈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대학을 가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학은 지금처럼 학벌로 줄 세우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학교 현장에서나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이 운동은 입시위주 교육이 낳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문제제기라고 봐주면 좋겠다. 문제 당사자인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대안을 찾고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교육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답을 다시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나는 졸업을 하고나면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귀농할 생각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을 따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이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 많고 거기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고예솔 님은 대안학교를 다니며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15:54:5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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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4. 10:18

대학입시거부선언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 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대학입시경쟁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라는 걸.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의 과정이라는 걸. 이 경쟁에 미친 입시위주 교육과 불안정한 모두의 삶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단단한 제도에 시비를 건다. 조용히 경쟁에서 지쳐 떨어지는 대신,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 하는 대신, 사회가 붙여준 루저라는 딱지를 버리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한다.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게 묻는다. 어째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배움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해야 하고 주어지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지.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지. 대학은 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강요되고, 다양한 삶의 길이 아닌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하는지. 왜 대학만이 독점적으로 ‘학력’, ‘자격’, ‘지식’을 판매하고, 대학 밖에서는 다른 배움의 길을 찾기 어려운지. 정부와 사회는 왜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넘기는지. 점점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해도 우리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늘의 불행을 저축해도 내일의 행복이 오진 않을 것 같고, 불안과 경쟁만이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가.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우리는 낙오자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거부가 낙오가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기에, 우리는 거부라는 길을 택한다.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배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제는 이 교육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 우리의 보편적 권리로서 존재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대학 밖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길, 삶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한다. 무한경쟁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교육을 원한다.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학교가 서열화되지 않은 사회, 우리를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는 사회를 원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 사람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수능만을, 순응만을 요구하는 교육, 남을 밟는 것 외에 살 길은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 이것들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 아깝기에. 학력과 학벌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에 갇혀있기에는 우리들의 배움이 너무 소중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선언한다. 여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노라고. 자유로운 배움을 위해, 존엄하고 안정된 인간적인 삶을 위해, 유예되지 않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행동하겠다. 살아가겠다.


2011년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


고예솔 김민성 김재홍 김해솔 문동혁 민다영 박제헌
양현아 이찬우 이현지 임준혁 장주성 전경현 정열음
조만성 최경수 최난희 한소영 (18명)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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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7. 07:45

[나의 대학거부] 4년의 공장 제련기간을 거부한다

레쓰



나는 전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아니 이제는 학교를 잘린 전문계고 고등학교 학생이다. (졸업을 불과 몇 개월 남겨두고 무단결석이라는 엄청난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계속 여러 인권운동, 사회운동에 참여해왔고,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났다. 하지만 입시교육이나 대학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도, 대학에는 일단 갈 생각을 한다. 나도 기존의 권위주의, 군사문화, 이성애중심주의, 마초 쩌는 이 ‘학교’라는 시스템을 잘 버텼고 수없이 많은 체벌과 욕설 속에서 큰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나름 길들여졌기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고3인 내 주변에 넘실거리는 입시의 물결 속에 조용히 휩쓸려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들어갈 줄 알았다.

청소년운동을 열심히 해온 청소년 중에는 대학에 자기가 활동해온 경력들을 제출해서 수시나 특별 전형, 입학사정관제 등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도 있다. NGO(엔지오, 비정부기구) 활동 전형이 있는 성공회대학교 같은 곳에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학에 활동한 경력을 낸다고 다 붙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간 경우가 없진 않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모습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아 “활동 팔아 대학 간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년 활동가들의 현실을 자조하는 의미에서, 때로는 그렇게 대학에 간 본인이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냥 조용히 활동한 경력을 팔아 대학에 가려고 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은 역시 성공회대학교였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성공회대학교. 단지 그 학교에 NGO 활동 전형이 있고 몇 명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그 대학에 청소년운동 경력을 통해 입학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회대가 표방하는 이념을 동경했기 때문에 “나는 저 대학에 들어가리라, 반드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하나의 수험생으로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위 사진:5차 희망버스에서 대학입시거부를 외치다


반값등록금 집회와 대학의 현실

당연히 대학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를 부채질한 것은 바로 등록금 집회였다. “반값 등록금 실현하라!” 이렇게 외치는 대학생들의 현재 모습보다도, 대학을 졸업한 그 후, ‘대졸’의 생활이 눈에 더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풍족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업의 질과 소득, 임금은 양극화되고 있었고, 취업 경쟁에 매달리고, 취업을 하더라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씩 등록금을 내느라 받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7, 8년의 세월을 보내는 선배들을 보았다.

그렇게,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대학생들의 현실을 보고 들으면서 과연 한국에서 대학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는 굳이 빚을 내가면서까지 대학을 다니는 것일까. 왜, 대학 교육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리도 목숨 걸고 대학을 가려 하고 있을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동경했던,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성공회대 또한 내가 대학입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교수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바로 그 대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학생들에게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 사건도 일어났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은 학교 운영 전반에서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고 실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학교의 특색을 만들고 학교를 꾸미는 상품 포장일 뿐인 것일까? 과연 성공회대에 진학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성공회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엄청난 동경이 무너지면서, 또 다시 내가 과연 대학을 가야 하는가, 가고 싶은가 되새겨보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제련되는 상품이길 거부한다

대학이 여러 잘못을 저지르고, 학생들을 탄압하고, 기업화되는 것은 성공회대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념이 사라진 대학교, 언론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학문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교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런 의미들마저 잃어버린 그런 대학에 가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 끝에 얻은 답은 간단했다. 그런 대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취업을 위한 1등급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위 사진:레쓰.
나 는 그런 ‘나의 상품화’에 반대한다. 김예슬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대자보에 썼듯이, 상품의 길이 아닌 인간의 길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간 대학교라는 이름의 공장에서 또 다시 제련되는 것에 불과한 이 현실, 더 좋은 스펙 상품이 되기 위해 등록금과 시간을 갖다 바쳐야 하는 현실에 반대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생들의 현실 뿐 아니라, 우리들, 청소년들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보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계속 상품화 되는 과정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교육이 점수 매겨지고 등수 매겨지는 무한경쟁의 과정이지는 않은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초중고를 경쟁 속에 보내는데, 그렇게 가게 된 대학마저도 경쟁 속에 상품화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이 무한경쟁 사회에서 대학입시거부는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 80%가 대학을 나오는 이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고 살겠다는 선언이니 말이다. 운동사회 내부에서조차 학벌을 따지는 이 현실. 그렇지만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나와 같이 이 운동을 하는 다른 누구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누구는 수능을 거부한다.

대학입시거부가 정말 미친 짓일까? 사람들은 기억이나 하고들 있을까 모르겠다. 올해, 한 고등학생이 성적을 이유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던 사건을. 몇 년 전 초등학생이 도복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던 사건을.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정말 미친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이 미친 경쟁교육을 견뎌내고 대학에 가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다. 다시 미친 경쟁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정말 미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청소년 수십 명 수백 명이 입시경쟁으로 목숨을 끊고 꿈을 잃어도 기사거리조차 되기 힘든 이 나라에서 정말 미친 것이 뭔지, 사람들이 우리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듣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레쓰 님은 19살, 중졸과 고졸에서 간당간당하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진보신당 청소년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2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26일 11:58:3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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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광흠

    e 노트에 소개했습니다^^

    2011.10.28 14:0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21. 14:45




이날 상벌점제 토론회에서는
경기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것 등도 발표하고
상벌점제의 문제점과 내용이나 대안 등을 논의해봅니다.







이틀 연속 토론회 ㅎㅎㅎ 젠장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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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1. 14:35




불안하고 불행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자!


대학입시거부선언!!!!


참여대상
: 대학입시를 거부하고자 하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3학년 학생 / 19살(93년생) 청소년들



참여방법
: 대학입시거부선언에 동참하실 분들은 첨부되어 있는 선언지를 작성하신후, 투명가방끈 공식메일로 보내주세요 (wrongedu@gmail.com)

 


작성시 주의사항

- 성함은 본명으로 적어주세요

- 핸드폰이 없으시면 연락가능한 집/사무실번호를 적어주세요



참고사항
- 별도의 선언비나 참가비는 받지 않습니다, 재정을 지원해주시고 싶으시다면 후원으로 함께해주실수 있습니다 :)

- 11월9일 수능시험 전날 오후7시부터 최종선언문과 추후 활동계획이 논의되는 <거부자총회>가 진행되고, 11월10일 수능시험일 오전10시에 <선언발표기자회견>이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날 참석이 어려운 분들도 선언에는 함께 참여하실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함께 참여해주세요/자세한 내용 추후 공지)




(선언지 작성 샘플)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 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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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2 10:0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21. 14:31




대학, 정말 다들 가야만 하는 곳일까요?

대학이 더 큰 배움을 위한 고이 아니라 취업준비소가 되고 기업화되고 있는 현실
수백만원의 비싼 대학등록금을받아가며 졸업장, 학력 장사를 하고 있는 대학들의 모습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치열한 입시경쟁
대학을 졸업해도 먹고 살기는 만만치 않은 <88만원세대>의 현실
고졸자에 대한 차별, 출신 대학에 따른 차별이 뿌리 깊은 사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대학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
이런 잘못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선언을 발표하고 운동을 하려 합니다.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대학중심사회를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교육을 사회를 세상을 바꾸는 대학거부선언! 함께해요!

참여자격 : 20대 이상, 대학을 애초 가지 않았거나 다니다가 자퇴한 사람
참여기간 : 2011년 10월 30일까지! (11월 1일 발표 예정)

참여방법
★ 대학거부선언문 초안을 읽어본다.
☆ disuniversity@gmail.com 로 선언에 참가한다는 메일을 첨부한 양식에 맞게 작성해 보낸다.
★ (이미 자퇴를 했거나 아예 대학을 안 갔었다면 그냥 패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다.
☆ 선언문에 대해 고치거나 덧붙이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보탠다.
★ 대학거부/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의 여러 활동들에 열심히 참여한다.

※ 대학거부선언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같이 하는 활동입니다~ http://cafe.daum.net/wrongedu1





20대 대학거부선언 참여
*작성 후 disuniversity@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이        름

 

연   락   처

 

대학거부방식

대학 중퇴 // 비진학

이   메   일

 

하고 싶은 말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서,
대학에 가더라도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하이킥을 날리고자 하는
20대들의 대학거부선언에 동참합니다.

2011년   월   일





[20대 대학거부선언 초안]

20대 대학거부선언

-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에 숨이 막혔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우리는 많은 것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겪은 차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을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자꾸 재촉하기만 합니다. 너희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그만큼 뭔가 남다른 성과를 내놓아보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해보려 할 때 사회는 그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그저 바라봐주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대학 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들 하는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대학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사회는 차별과 배제의 이빨을 들이댑니다.


  이렇게 이미 한 번 대학을 거부한 후에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그러나 대학에 가 본 우리는 압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세대'의 삶이라는 것을. 또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으려는 우리는 압니다. 그 레이스에 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오자, 패배자, 루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지를.


  우리는 바랍니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모든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든, 대학을 안 갔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열아홉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 "20대의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지금의 사회와 대학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거부와 선언이, 외침과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1일 (예정)


(이후 선언에 참가하는 분들의 이름을 추가해 나갈 예정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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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0. 01:33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호야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한때는 대학에 안 가는 인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학에 안 가고도 사지 멀쩡, 정신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삶이 끝날 것만 같은 이 땅에서 고졸자로서 목소리를 내고자 글을 써본다.

고졸 인생의 서막

나는 사실 대학 거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모아놓고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공부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목적으로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나의 제도교육에 대한 반감은 고등학교 3년간 서서히 발전을 거듭했지만 난 차마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3 봄,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3월의 어느 날, 고려대 김예슬 씨가 대학을 자퇴했다. 나는 당시 경향신문을 보고 있었던 터라 그날 아침 1면에서 그녀의 소식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내 반응은 ‘드디어 대학생의 입으로 신자유주의가 삐걱대는 소리를 듣는구나!’ 뭐 이런 거였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을 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려워졌다. 고3이라는 멍에가 나를 죄여왔고, 더 이상 깊은 고찰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나도 대학이 별로 맘에 안 들면 박차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한 채 다시 입시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그때까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제도교육의 목에 비수를 꽂자.’ 나의 고3 좌우명이었다. 그 말인즉슨 일단은 제도교육에게 몸이고 마음이고 다 내주고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어 제도교육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계획은 올해 2월 1일, 정시 다군 발표가 있던 날 산산이 깨졌다. 불합격. 가, 나, 다군 정시에서 몽땅 떨어져버린 것이다.(수시는 쓰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틀어져버린 인생에 눈물이 나왔다. 그날 공교롭게도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야했던 나는 진료가 끝나고 나오면서 신촌 대로를 질질 짜며 걸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제 어쩔 것인가. 나는 고뇌에 빠졌다. 나는 내 삶의 1년을 또 유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것은 해선 안 될,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김예슬 씨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도 나눔문화에서 활동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1월 말부터 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면서 내 인생을 대학 없이 그려 나가보자. 나는 그렇게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고졸자’ 인생의 서막이다.

대학 거부, 그 이후_ 고난

그럼 대학을 거부한 이후에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먼저 고난 편. 내가 대학생이 아닌 ‘고졸 스무 살’로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고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자퇴랑 아예 안 다닌 거는 전혀 다른 거야! 그래도 일단 가보고 결정하자.”, “재수는 훨씬 쉬워, 이미 공부한 거 한번 더 하는 거잖니.”, “1년 그걸 못 참냐.”, “사이버대학이라도 원서 넣는 게 어떠니?” “우리 언니가 대학을 안 가다니! 언니, 재수하면 안 돼? 친구들이 너네 언니 어느 대학 갔냐고 물어보면 쪽팔려.” … 고졸자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선포한 후 가족들에게서 들은 수많은 말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초기에는 재수를 끊임없이 종용하던 말들이 시간이 흘러서는 “돈이나 벌어라”, “언니 취직 안 해?”로 변해갔다. 나는 한순간에 집에서 가장 창창했던 사람에서 가장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갑을 여는 어머니가 눈치를 주기 시작하고 동생에게서 멸시의 눈빛을 받는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탄압도 힘들었지만 사회에서의 차별도 피부로 다가왔다. 대학 진학자가 80%에 육박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유별난’ 20대였다.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나 강연의 이름에는 언제나 ‘대학생’이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생이시죠?”하고 운을 뗐다. 이 사회의 ‘대학중심주의’는 도처에서 나를 공격해왔다.

대학 거부를 결심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각오했지만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가끔은 정말 대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취업의 관문까지는 자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너의 미래를 그려내 보여줘!’라며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나는 기껏해야 몇 주 앞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누군가 체계적으로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려낼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의 양이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압박과 차별들이 대학에 안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정과 사회 도처에 깔려있는 대학중심주의와 학벌 차별, 이제 아파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아프다고 소리쳐 보는 건 어떨까.

대학 거부, 그 이후_ 변화

이번에는 변화 편이다.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던 그 압박감은 단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번엔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대학 거부에 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겠다.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운 좋게 그때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4학년처럼, 과제와 시험에 여전히 시달리면서, 거기에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장학금을 노리려고 정말 대학 공부에 몰두하는 인생. 결국 젊음의 증표인 저항을 실현할 기회는 쥐꼬리만큼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쥐고 있던 것을 (반강제적이었지만) 놓음으로써 변화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나의 의식을 깨고 나온 것이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리치는 것에 비해 그 반향은 아주 미약했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소리치고, 움직이면서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대학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취업→결혼(가정)=행복한 인생’이라는 공식에 돌을 던지고 싶어서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대학의 존재 이유와 내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분명 개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 사회인데 왜 정작 본인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를 미루고 다들 정해진 루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대학 진학률 80%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학에 관한 진지한 고찰 없이 그냥 너도 나도 가는 것,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는 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최근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을 보고 놀랐다. 거기의 진로 상담 부분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온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스카이(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뜻하는 은어) 중 한 곳에 들어가서 토익 몇 점을 넘기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성형수술을 하고…. 우리는 그저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부딪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분명 불안하고 어두컴컴한 가시밭길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탈학교 예찬자가 되었다는 것일까. 나는 12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가 나에게 주는 억압에 대해서 불평만 할 줄 알았지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9개월간 학교 밖을 나와 여러 가지 활동과 세미나를 하면서 ‘길 자체가 학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이 9개월간 길에서 배웠다. 유유상종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나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또한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공부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찾아보면 여러 가지 세미나를 하고, 함께 살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대안 공동체들이 꽤 있다. 나도 그중 한 곳과 접속하여 몇 달간 세미나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대학을 안 가면 배우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배움은 도처에 있다.

앞으로의 행보

대학에 가든 안 가든 행복한 삶에는 언제나 질문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 있다면 배우게 되고, 내가 갈 길이 보인다. 그런 질문을 갖지 못한다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게 된다. 나도 한동안 갈팡질팡 했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불의에도 자주 침묵하고,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학교에 다니던 12년간 순응만을 배워서 그런지 머리는 저항하라고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나는 불의를 맞닥뜨려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또 내 마음이 가라는 데로 충실히 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꼭 하고 싶었던, 한번뿐인 기회들을 날려버리는 일이 많다. 좀 더 나에게 떳떳하고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아직 나는 글 외에는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 꿈은 이 정도다. 이 꿈들과 나의 질문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아직 어떤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직업이면 더 좋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 주리라 믿는다. 요즘 나를 장악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립과 주거권이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상반기에 아수나로 친구들과 스쾃 운동을 해 보는걸 제안해보고 싶다.

다시 대학 거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땅의 약 20%, 대학생 아닌 20대들이 조용히 입 닫고 사회의 흐름에 묻혀 살아간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입을 열고, 여기 우리도 있다고 외친다면 어떨까. 무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이번 대학입시거부 20대 선언이 개개인이 조금씩 틀에서 빠져나와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원 없이 외쳐보면 좋겠다. 부디 많은 분이 용기 내어 동참해주시길! 가지 않은 길, 분명 어려운 선택이지만 한번 뿐인 인생이라면 조금 스릴 있게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호야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8일 18:14:5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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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0 02:33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동

    접때 중국집에서 밥 먹으면 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었네요. 한겨레 1면 나온 거 보고 깜놀..
    앞으로 욕 많이 드실텐데 기운내시고 저처럼 맹목적이고 열광적인 팬도 있으니..ㅎㅎ

    2011.10.20 23:25 [ ADDR : EDIT/ DEL : REPLY ]
  3. Very good, thanks for sharing

    2013.01.02 14:3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18. 12:25
어린이책시민연대 회보에 부탁 받고 썼던 글입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받는 질문들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다. 좀 더 부연하자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등등 학생인권 활동도 하고, 교육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활동, 청소년 노동자들에 관한 활동도 하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활동 등등 여러 가지다. 활동을 하다보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술자리에서, 운동을 막 시작한 다른 청소년에게서, 등등…. 그런 질문들 중에서 한 번 대표적인 질문 몇 가지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게 아마 나에 대해서, 내가 하는 청소년운동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분들에게 가장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질문 1 : 어떻게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첫 번째로, 자주 받는 질문은 청소년인권이나 학생인권에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흔한 질문이다. 인터뷰 같은 걸 할 때면 누구나 앞부분에 배치할 만한 질문. 그렇지만 나는 그 흔한 질문에 항상 대답하기가 어렵다. 어떤 계기로 자기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인권을 알려면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건이 필요한 걸까? 굳이 따지자면 청소년으로서의 삶은 매 순간이 그런 '계기'로 가득 차 있는 것 아닐까.

나에게 초면부터 반말을 하는 어른에서부터 나를 오직 성적으로만 측정하는 입시 교육이나 친권자의 말을 들어야 하는 가족의 시스템까지, 미시적인 데서부터 거시적인 데까지, 청소년들의 일상은 모두 '계기'이다. 나 역시 특별히 뭐뭐가 싫었다기보다는, 그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청소년들이 받아야만 하는 온갖 비민주적인 불합리한 억압과 규제들 전반에 대한 짜증이 쌓여 있었다. 교복, 두발규제, 등교시간 등에서부터 진로나 입시의 문제까지, 모두 모두 모두! 아마 다른 청소년활동가들도 비슷한 사정이었을 것 같다.

오히려 문제는 인권에 대한 인식이나 자기 삶에 대한 불만보다는, '행동'일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나 불만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될까? 여러 가지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제가 얽혀 있을 법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운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냥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집단적 지속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하는 '운동'을 하게 될까?

나 같은 경우, 일단 '행동'에 나서게 되는 데까지는 별다른 문턱이 없었다. 그냥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이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단발적이고 개인적인 항의와 행동 등을 학교 안에서 했었다. 그렇게 하면서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았다. 고민이라곤 그저 부모님이 활동하는 것 때문에 불이익이라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과, 대입 등 진로 문제 정도? 애초에 성적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을 하면서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와도 괘념치 않았다. 교사가 불러서 나무라면 "지금 저한테 중요한 게 뭔지는 제가 결정해요."라고 당돌하게 대답하곤 했다. 원체 고민 없이 사는 스타일이라서 그렇다.

그러다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2005년, 고3이 되고난 후였다. 2005년 5월 7일, 혹시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다. 내신등급제에 반대하며 청소년들 1000여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 1주일 뒤인 14일에는 '두발자유'와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집회가 열렸다. 2주일 연속으로 열리는 청소년들의 거리집회에 언론도 인터넷도 술렁거렸다. 나도 신문으로 인터넷으로 그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두발자유 집회에 참가하러 광주에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런 단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비로소 '운동'이라고 할 만한 걸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모아서 소모임을 만들고, 모임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계획을 짜서 활동도 하고, 지역에서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작은 집회를 준비했다. 말하자면 '운동'이라는 걸 남들이 하는 걸 보고서 "오 저런 방법이!" 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준비할 때(결과적으로는 한 20명이 왔고, 소나기까지 내려서 망했다.) 아수나로에서 도와주겠다고 온라인으로 연락을 해왔다. 그 이후에 꾸준히 교류를 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가입도 하게 되었다. 아수나로는 원래 "청소년인권연구포럼"으로 과거에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20대가 되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를 하고 청소년인권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였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이름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 바꾸고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활동하는 활동 단체로 성격을 전환했다. 처음에는 두발자유 운동을 주로 했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여러 활동에 함께하고 학교 밖에서는 거리 집회, 서명운동 등을 꾸준히 벌였다. 그렇게 나는 '어느샌가', '자연스레' 청소년인권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질문2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왜 아직도 청소년운동을 해요?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보다 더 높은 빈도를 자랑할지도 모르는 질문이다. 바로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왜 청소년운동을 해요?"이다. 하도 많이 질문을 받다보니 이제는 그냥 웃으면서 "그러게요."라고 대답하고 넘기고 싶을 정도다. 하기사 내 나이도 이제 20대 초반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스물넷.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궁금할 법도 하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 안에서 최고령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주변에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9로 시작하는 상황에서 앞자리가 8로 시작하는 나는 대단히 노땅 취급을 받곤 한다.

이 질문 역시 대답하기 다소 곤란하다. 대답할 만한 어떤 거창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이런 식으로 대답을 했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라서요." "왜 청소년인권활동가죠?"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니까요." "왜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냐니깐요?" "청소년인권활동가라서요." … 물론 질문한 사람을 만족시켜주는 대답도 아니고, "그건 그냥 관성이잖아!"라거나 "말장난하지 마세요." 같은 비난을 듣기 딱 좋은 대답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진실에 가까운 대답인 것을. 나는 내가 청소년인권활동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게, 그게 내 삶이고 내 일이니까 한다는 게 그렇게 말장난 같이 들리는 걸까?

그래서 나중엔 이걸 좀 더 그럴 듯하게 포장해보았다. "왜 사는지 이유를 필요로 하진 않잖아요? 청소년운동이 그냥 제 삶이 된 거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대충 끄덕끄덕 하는 것 같긴 하던데, 말하는 내가 닭살이 돋는다는 게 문제다. 가장 솔직한 대답은, "아니 뭐 19살까지 청소년운동하다가 스무살 되어서 싹 손 떼는 게 더 얄밉고… 계속 하고 싶고… 어쩌다 보니…"일 것이다. 관심 가지고 있고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해도 좋다. 애초에 아수나로 자체가 과거에 20대가 되면 청소년운동에 딱 발을 끊는 문화를 비판하면서, 비청소년들도 청소년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열어놓고 시작한 단체였기 때문에 단체 안에서의 어려움도 별로 없었다. 사실, 20대 됐다고 해서 청소년운동에 관심 끊고 발 끊는 것, 그건 그것대로 또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나이주의는 여러 가지 난관이 되고 있다. 비록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나이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 나이가 많다고 해서 권력을 가지거나 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쉽고, 밖에서 보기에도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청소년운동 안에서, 단체 안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할 거리들, 주의할 부분들이 많아져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감수하고라도, 나는 청소년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



질문3 너무 이상적/급진적이지 않아요?


세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청소년운동이 너무 이상적, 급진적이지는 않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질문을 때로는 정말 궁금해서, 때로는 조롱의 형태로, 때로는 걱정의 옷을 입고, 때로는 화를 내며 던진다. 청소년운동은 두발자유 정도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강제로 교복을 입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고, 복지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입시경쟁교육을 없애기 위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주장하기도 하고, 학생들을 점수로 평가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목적을 시험보기로 만들어버리는 시험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학교 교육에 대한 선택권, 더 나아가면 전 사회적인 탈학교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학 안 나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올해 3월에 우리가 열었던 집회의 주요 요구들이었다.

청소년운동의 이야기들이 교육 영역으로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하며 나이가 몇 살이든 정당 가입, 정치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청소년들에게 온갖 것을 금지하는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하고, 청소년들에게 정말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함께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한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성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혹시 임신을 하게 되면 비난 받지 않고 잘 낳아서 양육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모, 보호자 등 친권자가 자녀에 대해 너무 많은 권력과 책임을 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지금과 같은 가정을 폐지하고, 사회적인 양육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예 '미성년자'라는 차별적 말을 없애자는 것, 사람은 누구나 다 미성숙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미성숙하고 누구는 성숙하다고 나누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우리가 함께 사회적으로 서로의 인간다운 삶을 책임지자는 것, 그것이 나처럼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이런 요구들은 물론 지금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급진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한 번 역으로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주장들을 놓고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은, 과연 이런 얘기들이 '급진적'이어서 반대하는 걸까 아니면 이것 자체에 반대하는 걸까? 만일 그 이야기 자체에는 동감하지만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함께 조금씩조금씩 바꾸어가면 될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 청소년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하니, 우리 사회를 이런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자는 제안인 것이다.

2005년에 두발자유 운동을 할 때, 그 당시에는 두발자유를 이야기하더라도 염색/파마의 자유까지 주장하는 것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물론 그런 경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2011년 8월 초, 주민발의에 성공한 서울 학생인권조례안은 원칙적으로 염색/파마 등의 자유까지 완전히 보장하고자 하고 있다. 최소한 염색/파마 등 머리카락의 색깔과 형태를 바꾸는 게 너무 급진적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차별금지, 체벌금지, 두발복장자유, 학생의 학교 운영 참여 등을 대표적인 내용으로 세워두고 거리에서 4개월 동안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을 하면서 두 가지 양면적인 감정을 느꼈다. 어른들은 역시 아직도 학생인권에 대해 무관심하고 거부감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마음, 역시 청소년들이 직접 나서서 해야 겠구나 하는 것이 그 하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6년 전 내가 처음 청소년운동을 하던 때보다 학생인권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인상을 받았고, 우리의 활동이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2010년 9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을 때도, 2011년 7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완전히 성사되었을 때도, 그런 안도감을 느꼈다. 처음에 학생인권운동이 시작되었던 1995년에만 해도 학생인권조례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너무 성급하다. 기다려라."라는 말은 "안 해주겠다."라는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일 때가 많다. 그 말에 그저 기다리다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나마 천천히, 세상이 바뀌어 간다.

무엇이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점진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변화가 급진적일지 점진적일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온힘을 다해 주장하고 부딪쳐야 겨우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곤 한다. 그래서 너무 급진적/이상적이지는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한 발 물러나서 얘기하지 말고 직접 현실 속에 서서 행동하면서 본다면, 급진적인 것은 없다. 그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고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바라는 마음과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운동이다. 그것이, 내가 이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청소년운동을 하는 자세인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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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일감 있고 좋네요. 잘 쓰겠습니다..... ^^

    2011.10.19 01:37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 사실 이거 청탁 받을 때 주제가 좀 여러 개를 같이 넣어달라고 요구 받아서 고민 끝에 정한 형식이었어요

      2011.10.20 01:24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1. 10. 17. 16:10

(대학입시거부선언운동 포스터)
http://cafe.daum.net/wrongedu1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한다


교 육의 목적은 우리가 좀 더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은 과연 어떤가요? 사람을 점수 매기는 것, 줄 세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경쟁시키는 것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수능과 대입은 우리의 수학능력을 검정해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평가로 우리를 등급으로 나누고 줄 세우는 것일 뿐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숫자로 점수 매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어떤 이는 숨 막히는 압박감을 견뎌내야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경쟁에서 밀려난 낙오자 취급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가치는 점수로 성적으로 등수로 백분위로 매겨지고 있습니다. 이건 인간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상품을 위한 품평이고 경쟁일 뿐입니다. 무한경쟁은 교육이 아닙니다.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합니다.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주입식교육에 반대한다


시 험을 위한, 경쟁을 위한 교육은 우리들에게 정답을 외울 것을 강요합니다. 주어진 정답을 얼마나 잘 외웠는지, 시험을 내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교육은 학생들이 함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사가 강사가 조용히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답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됩니다. 이런 교육이 학생들이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요? 학생들은 교육의 주체입니다. 학생들에게 이미 정해진 정답을 일방적으로 외우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찾아가고 체험하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입니다. 다양한 답을 인정하는 교육, 체험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교육, 참여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교육을 원합니다.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학 생들은 학교에서 인간으로서의 여러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두발복장단속, 숱한 차별들, 폭력들이 당연한 일상처럼 일어납니다. 학생들이 목소리를 냈다가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경쟁의 압박이나 공부 부담 그 자체가 인권침해가 됩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수직적인 권력관계를 내면화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곤 합니다.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학교가 더 효율적으로 값싸게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학생인권침해의 원인입니다. 이는 인간보다 학생보다 성적이, 입시가, 성과가 더 중요시되는 비정상적인 교육의 모습입니다.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 과정에서 우리의 인권은 더욱 잘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 육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소질을 계발하고, 사람답게 더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학교는 입시준비학원, 취업준비학원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내용들은 많은 부분이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교육이 시험을 보기 위한 도구, 생존을 위한 스펙 쌓기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입시, 취업 위주의 교육은 그 내용도 우리들의 삶에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는 ‘시험 봐서 점수 매기기 좋은 것’들로 채워집니다. 그럴수록 지식은 삶에서 동떨어지게 되고, 학생들이 진짜로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고 바람직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 체험과 만날 수 있는 교육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대 학등록금은 1년에 수백만원, 학교에 따라서는 천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은 돈 많은 사람들만이 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 학비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치솟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육열"은 단지 정부가 사회가 교육을 함께 책임지지 않고 개인의 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어느 학교든 전반적인 교육예산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학교 시설은 열악하고, 교사의 종류와 수는 부족하고 학급당 학생수는 너무 많습니다. 교육예산 부족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좋은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누리는 권리입니다. 사회에서 정부에서 교육에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의 완전한 무상교육, 보편적인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한 국에서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대학 진학율이 80%를 넘어서는 현실에서, 일단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학을 가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나 못난 사람 취급을 받게 됩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성공한 삶’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단 대학이라는 공인된 기관을 졸업해야만 좀 먹고 살 만하다는 경제적인 이유부터,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 거부감이 있습니다. 대학은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 더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하나의 선택지여야만 합니다. 대학 밖에서도 다른 많은 공부나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을 모두가 가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에 반대합니다.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벌차별과 학벌사회에 반대한다


이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고졸보다는 대졸이, 대졸 중에서도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더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임금부터 시작해서 많은 상황에서 차별을 받게 되고, 사람들도 학력과 학벌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곤 합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은, 모두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그리고 더 이름값 있는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결코 학력이나 학벌만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고, 평등한 기회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학력과 학벌에 대한 차별들을 금지하고 사람들의 차별적인 생각들을 바꿔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 리 사회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배경과 학력, 학벌을 확보해둬야 좋은 직업을 가지고 소득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조금만 삐끗하면 저소득층, 빈곤층으로 추락할 거라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지금과 같은 경쟁교육과 사회를 유지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 대학을 가지 않고 특출난 능력과 운으로 억만장자가 된다고 해도 그건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 오히려 그런 운과 재능이 없는 많은 이들을 대학에 목을 매야 합니다. 생존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를 바꾸고 경제구조를 바꿔가면서,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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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14. 18:17

[나의 대학거부] 대학 잘못 온 사람이 던지는 물음표

공현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껄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울대 학생으로 적을 두고 있다. 아니, 있었다. 바로 지난주에 학과 행정실에 자퇴한다는 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아직 자퇴 처리가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중요한 건, 바로 그거다. 내가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이 나에게 껄끄러운 일이었다는 것.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어쩌다보니 청소년운동이라는 걸 하게 됐다. 그것도 뭐 YMCA, 보이스카웃 같은 게 아니라, 아주 저항적이고 투쟁성 충만한 청소년인권운동이었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 고3, 남들은 다들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에 열심히 집회를 준비하고 캠페인을 꾸리고 학내 모임을 만들고 지하신문을 기획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걸 놓고 담임교사가 불러서 나무라도, 시큰둥하게 “지금 저한테 뭐가 중요한지는 제가 정해요.”라고 얘기하고 나왔다. 자연스레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도 발전시켜나갔고 ‘안티수능’ 운동 등도 알게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느껴온, 학교가 나를 성적으로 대우하는 데서 비롯된 소외감을 더 분명하게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온갖 인권침해를 감내해가며 입시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는 게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이들은 성적이 좋은 게,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자기 노력의 결과”이며 입시체제는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시험 성적이 좋은 게 일종의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입시에 적합한 형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나보다 더 노력하고도 나보다 시험을 잘 못 보는 친구들도 많았고, 나보다 그 분야 학문에 대한 감도 지식도 뛰어난데도 내신/수능 성적은 낮은 친구도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나보다 더 남들에게 가치가 있는 사람 같은데도 입시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친구들도 많았다. 사람을 문제풀이 점수로 ‘평가’하는 시스템, 그건 어쨌든 ‘공정’할 수도 ‘인간적’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적이 상위권이라는 이유로, 또는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 ‘명문대’에 가게 되었을 때 ‘명문대’ 학생이라거나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가지게 될 자원과 혜택들이 부당한 특혜, 불공정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했더라도, 현실에선 여러 가지 것들이 꼬여 있었다. 나는 입시경쟁에 비판적이었지만 정작 대학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미루고 있었다. 2학기 때 영어교사가 입시를 앞두고 친구들을 격려하는 말을 해보라고 했을 때, “이런 식으로 살 바엔 그냥 대학을 때려치웁시다.”라고 말해서 모두를 벙~찌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쟤는 성적도 잘 나오면서 위선 떨고 있다”는 냉소를 받았다.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나는 뭐 일단 한번 내보자면서 서울대 2학기 수시 원서도 냈고 ― 서류에서 똑, 떨어졌지만 ― 성적에 대한 미련은 버렸으면서도 학교 숙제나 수업 참여, 복습은 또 습관적으로 꽤나 성실하게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그저 입시 문제에 대해서 우유부단한 상태일 뿐이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진로/입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봤다. 친하게 지내던 교사에게도, 지역의 다른 활동가에게도,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에게도, 짝사랑했던 사람에게도, 당시 상담을 받던 카운슬링 센터의 상담사 분에게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그래도 대학은 최선을 다해서 가고 나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앞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등등의 얘기들이었다. 어느 대학을 가는 게 좋다는 조언은 있었어도, 대학을 가지 않는 게 좋다거나 대학이 활동에 안 좋을 거라는 말은 없었다. 어쩌면 그건 그들의 수험생에 대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대학 같은 건 안 가는 게 좋다고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가끔 한다. 주변의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좀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나도 그냥 대학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수능을 잘 보려고 노력을 하진 않았다. 수능 바로 전날에도 다른 신문 원고를 쓰다가 늦게 잤다. 다만 수능 시험 자체는 특별히 틀리려고 하거나 대충 하는 것 없이 풀 수 있는 한 풀었다. 그냥 모의고사 보는 기분으로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도 점수는 잘 나왔다. 그 전에 모의고사 성적이 뚝뚝 떨어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수능만 성적이 높게 나왔으니 이건 운이라고 해야 할지. 정시 원서를 쓸 때는 부모와 많이 다퉜다.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뜻대로 연세대, 서울대에 원서를 냈다. 논술은 좀 재미있었다. 둘 다, 합격했다.

결국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고서 한 생각은 이런 거였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입시에 대한 그 골치 아픈 고민과 갈등들이 어쨌건 일단락되었다는 기쁨. 부모 뜻대로 대학을 갔으니 크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 같은 것. 입시경쟁에 학벌사회에 반대한다면서 서울대의 후광을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딱히 서울대에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누군가 나보다 더 서울대에 가고 싶었을 사람을 밀어내고 합격한 것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감정.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여러 가지 감정들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했다. 결국 나 자신에게 운동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간 대학이었다.


대학 부적응이랄지…

그렇게 들어오게 된 대학은, 마치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공부든 대학 내 운동이든 즐기려고 했다면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기업에 취직할 생각도, 고시를 볼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주변 다른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평가해보면, 서울대는 단지 학벌, 이름값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강신청을 할 때도 이미 ‘필수’로 시간표가 다 나와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건 6학점, 10학점도 채 안 된다는 대학도 있었고, 대학에 교양 과목 수업의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대학도 있었다. 그에 비해 서울대는 여성학이든 사회주의이든 문학이든, 나처럼 졸업이나 학점에 괘념치 않는다면 비교적 여러 수업을 골라 들을 자유가 있었고, 강의의 질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대학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서울대 졸업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계속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의 다양성과 질마저도 다른 대학들에 비교해봤을 때 결국 불공평한 자원 분배의 특혜이고 특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대학 안에서 대학생운동이라도 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운동은 청소년운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청소년운동 일정 때문에 과반 행사는 죄다 불참했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하나 하던 평화운동 동아리 활동은 나 외에 사람들이 대부분 졸업하면서 정리하게 됐다.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계속 서울대 학생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거부하게 했다. 나중에는 수업에 잘 들어가지도 않게 됐고 학교에 나가지를 않아서 모든 과목에 낙제점을 받기도 했다. 이것도 일종의 대학부적응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요즘 대학이라는 게 그런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 남아 있을 곳이 못 된다. 등록금은 내가 입학할 때 이미 200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학자금 대출을 몇 번 받았고, 집이 개인회생 중이라는 사유로 장학금도 한 번 받아봤지만, 성적이 뚝뚝 떨어지니 학자금 대출도 장학금도 불가능해졌다. 학자금 대출도 성적이 일정 수준 이하면 안 해준다는 걸 알고서 우습기도 했고, 이미 두 번 받은 학자금 대출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웠다. 내가 무슨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질 계획도 아니었고….

내가 고등학교 때 대학을 가는 변명이 되어주었던 ‘서울대 가서 사회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운동에 더 유리하다’는 건,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냥 헛소리라는 게 명확해졌다. 지금 운동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것이었지 몇몇 엘리트가 아니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개인적 출세나 권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변화가 필요했다. 사실 서울대 나온다고 해서 무슨 특별히 운동에 도움이 되는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학력․학벌 같은 것들은 사회에 순응하려고 할 때는 커다란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저항하려고 할 때는 별 다른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어차피 욕 먹는 건 똑같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이 입시를 비판하면 쟤는 공부 못 하고 피해 보니까 저런다고 하고,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입시를 비판하면 지는 잘 나가니까 배가 불러서 저런다고 하는 게 세상이다.

대학에 더 있을 이유도 없어졌고, 대학에 더 있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두 학기쯤 학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던 건 결국 병역 문제가 이유였다. 병역거부를 하겠노라고 진작부터 마음을 굳히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병역거부자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편이니, 나도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서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줬기에 조금씩 조금씩 대학을 이유로 병역 문제를 미뤄왔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휴학은 한도까지 다 썼고, 등록금을 해결할 방법도 딱히 없고, 대학을 더 다닐 마음도 없다. 병역거부는 지금도 좀, 아니 많이 두렵지만 마음을 굳혔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주변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다고 하니, “옳거니”하며 지금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퇴서를 냈다. 하기사 어차피 군 휴학으로 인정도 안 되는 병역거부 때문에 학교는 제적될 처지였다. 부모도 병역거부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으셨기 때문에 병역거부 때문에라도 대학교를 일단 그만두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해두었다.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을 뿐

내가 어떻게 대학을 오게 되었고 어떻게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나, 개략적이지만 길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냥 원래 서울대 안 갔어야 할 사람이 우물쭈물하다가 서울대에 갔다가 그만두는 과정일 뿐이라고 요약해볼 수도 있다. 하기야 대학거부가 뭐 별거인가. 나는 김예슬 씨가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쓴 글을 읽어봤을 때 어찌나 오글거렸는지 모른다. 뭐 이렇게 폼을 잡고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 싶어서. 읽으면서 그것도 고대생이기 때문에 잡아볼 수 있는 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영 삼키기가 어려운 글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나의 대학 자퇴, 대학거부를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가진 행동이라고 말하고 싶긴 하다. 내가 서울대에 가기를 꺼려했던 것, 대학 진학 자체를 놓고 고민했던 것, 대학에 발을 붙이지 못했던 것, 결국 대학에 자퇴서를 낸 것, 그 모든 과정들은 불공정하고 비인간적․비교육적인 입시경쟁교육, 대학서열체제,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개개인의 차원에서 착하게 산다거나 윤리적 선택을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입시 공부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딱히 내가 착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바꾸기 위한 활동의 일부로서 대학을 거부한다. 내가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해도 ‘서울대’라는 타이틀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효과가 있기에, 그런 사회적 의미와 효과를 공격하기 위해서 그 타이틀을 거부한다. 대학거부가 이처럼 정치적,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대학입시를 거부하기로 한 ‘수험생’ 나이대의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하려 하고, 이미 대학에 가지 않았거나 나처럼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과 같이 대학거부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나면 이제 “서울대 거부한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대학을 다닐 때도 걸리는 건 많았지만, 대학을 자퇴해도 걸리는 건 아마도 많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병역거부를 하고 출소한 다음에 뭔가 공부가 하고 싶어져서 다시 대학을 가고 싶어질지 어떨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입시폐지-대학평준화가 되고 나면 다시 대학을 맘 편히 갈 수도 있을 거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게 금방 될 거 같지도 않고….

이제 며칠 안에 김예슬 씨처럼 거창한 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대학거부의 뜻을 알리는 대자보를 하나 학교 안에 붙여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무슨 반응이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우리가 대학을 거부한 거에 괜히 자기가 비난 받는 것처럼 느끼거나 하는 대학생, 대학졸업생은 없으면 좋겠다. 대학을 그만두거나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이나 대학 체제 등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같이 참여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지금 같은 교육을, 인권을 짓밟는 학교를, 잘못된 대학을 당연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싶을 뿐이다. 우리들의 대학거부의 의미는 대충 그거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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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0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2일 13:12:0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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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13. 04:23


학생인권조례의 기본 철학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연구소 창,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는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으로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지침서>를 만들었다. 지침서에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각종 국제인권조약과 조약기구들이 제시한 바 있는 학생인권에 관한 기준, 유엔회의 결의문, 유니세프 '아동친화적 학교' 가이드라인 등을 종합 검토하면서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10가지 열쇠말'을 뽑아냈다. 이 10가지 열쇠말이야말로 학생인권조례의 기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1. 권리의 존엄한 주체로서의 학생
아동기 혹은 학창시절은 성숙을 기다리는 인생의 대기실이 아니다. 학생은 학교생활 전반에서 존엄한 권리의 주체로서 대접받아야 한다. 학교는 학생이 의사를 형성하고 표현하고 결정에 참여하고 변화에 기여하는 과정을 통해 권한과 권리행사 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학생을 조작이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 자체이자 능동적 행위자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2. 참여와 결정을 훈련할 수 있는 학교
학생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고 그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의견을 밝힌다는 것은 의견을 표현할 진정할 기회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위해서는 학교 생활은 물론 사회에 대한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명목적인 참여, 장식적인 참여, 조작된 참여는 진정한 참여일 수 없다. 학교는 학생에게 능동적인 참여, 의사결정,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는 도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3.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에 맞서는 학교
학교는 학생의 다양성을 사랑해야 한다. 학생은 특정한 규범이나 삶의 양식에 종속당하기를 강요당하지 않고 자기 존재 그대로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학교는 다양성을 교육의 주춧돌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고 학생이 부당하게 구별되거나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혹은 잠재하는 차별을 확인하고 이에 맞서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뒤따라야 한다.


4. 감당할 만한 교육
학교 교육은 학생이 감당할 만한 교육이어야 한다. 학생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 교육은 교육의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교육은 학생 친화적이고 학생 중심적으로 짜여야 한다. 교육의 목표는 물론 교육의 내용과 과정, 학교의 규율 등은 학생의 존엄성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5. 자유의 행사를 통한 책임 있는 삶의 영위
학생은 학교 교육을 통해 자유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 책임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되어야 한다. 책임 있는 삶에 대한 준비는 질서 유지나 통제의 강박에서 나오는 강압적 지도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인권에 대한 상호존중, 이해와 평화, 연대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교육이야말로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6. 총체적 삶에 대한 돌봄이 있는 학교
학교는 학생의 삶에서 중요한 인격적, 사회적 환경이다. 학교는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에 학생이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학생에 대한 총체적 돌봄이 불가능하다. 학교는 아동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학교에 들어오기 전과 학교를 떠난 후 학생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필요한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7.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에 대한 존중
학생의 삶에 대한 돌봄과 교육을 제공하는 과정은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에 기초해야 한다. 건강, 안전, 성장에 대한 관심과 돌봄은 학생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하고 행동의 선택을 결정할 기회를 제공받고 인격을 존중받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8. 네트워크와 연대가 꽃피는 학교
학생 인권 보장은 교사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었을 때는 실현될 수 없다. 학생 인권은 인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을 갖춘 학교를 요구한다. 학교는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지원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비롯, 학교 밖 행위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학교 밖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학교가 연대의 공간으로 재구성되기 위해서는 학교 안팎의 행위자들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9. 교사의 권한과 역량 강화
교사의 연대 없이 학생 인권은 보장될 수 없다. 교사의 연대는 그들의 책임에 대한 강조 뿐 아니라 충분한 권한과 역량의 확보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교사는 학교의 변화를 이끌 옹호자이자 변화의 촉매자로서 능동적 참여를 보장받아야 하고, 학생 인권에 목소리를 내는 데 필요한 권한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10. 권리구제에 대한 보장
학생은 인권침해에 노출되기 쉬울 뿐 아니라, 인권침해를 호소하고 그 호소가 경청되는 경험을 갖기 힘들다. 사법 절차를 통한 구제에 접근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없이 인권이 보장되고 인권침해가 예방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대한 실효성 있는 학교 안팎의 구제 절차를 알고 그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학내 권리 구제 제도를 마련하는 경우에는 학생의 의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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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8. 16:40

광주학생인권조례, 이제 출발이다. 광주학생인권조례 통과를 환영하며,

시교육청은 실질적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바란다.

 

 

 

  오늘, 10월 5일, 광주학생인권조례가 광주시의회에서 재석 21명 중, 찬성 17명, 반대 2명(박인화, 임동호), 기권 2명(정희곤, 이은박)으로 통과되었다. 지난 9월 26일, 교육상임위에 이어 오늘 광주학생인권조례가 광주시의회에서 논의되었고, 드디어 통과되었다. 광주학생인권조례의 통과는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되어왔던 학생인권의 열악한 현실을, 지금도 학교 안팎에서 고스란히 그 무거운 짐을 떠안고 있을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학생인권보장을 요구해왔던 지역사회에, 기쁜 소식임에 분명하다. 그 동안 광주학생인권조례가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통과되기를 촉구하고 학생인권보장을 요구해왔던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환영하고, 광주시의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광주학생인권조례가 통과함으로써, 학생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난무했던 학교에서, 인권의 가치가 넘실대는 진짜 교육의 현장으로 바뀔 학교가 기대된다. 광주 학생인권조례는 말로만 떠돌았던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당연한 명제에 힘을 보태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며 또한 학생인권보장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학생인권보장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 유보되거나 미뤄질 수 있다고 의견을 밝힐 수도 없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조례안과 관련한 불필요한 논쟁을 진행하기보다 조례가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정착될 수 있을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조례를 발의하고 통과한 광주교육청과 광주시의회는 물론이고 관심있는 모든 교사,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 시민 모두의 몫일 것이다.

 

  특히 광주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가 현장에서 충분히 적용되고,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현장의 걱정과 우려가 존재하고, 또한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요구하는 이들이 상당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구성원내부의 교육과 인권문화형성을 위한 노력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학생인권조례는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광주시 교육청은 시급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례정착을 위한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아울러 광주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광주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추진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의 문제는 광주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의 학생에게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는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인권조례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밝힌다. 각 지자체 및 중앙정부에서도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역할과 책임을 다하길 진심으로 촉구한다.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 가고 싶어지는 학교, 진정한 소통과 교육이 존재하는 학교, 학생도 교사도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될 광주학생인권조례의 광주시의회의 통과를 다시 한 번 환영한다. 이제 출발이다.

 

 


2011. 10. 05.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원회
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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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티스토리 블로그 트래픽 올리는방법을 공유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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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내용은 http://gpon.tistory.com 여기에 와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0.08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8. 16:32

<기자회견문>


학생인권, 아직과 이미 사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 해 10월 5일,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인 <경기도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지켜보았다.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학교 현장에서 시행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부 보수 언론과 교육계인사들은 학생인권이 가지는 정당성을 외면한 채 인권조례에 대해 악의적인 선전으로 일관했다. 교실붕괴와 교권추락의 원인이 인권조례라도 되는 듯 근거 없는 거센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 기나긴 진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어느 덧 학생인권조례가 첫돌을 맞이하였다.

 

  인권조례의 제정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스스로 반 인권적인 학교의 모습을 조금씩 지워내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서울, 전북, 강원, 광주 등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전국적인 조례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전국 최초의 인권조례라는 점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 시대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제껏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왔던 학생인권에 대하여 활발한 논쟁의 촉매가 되었다.


  그래서 학생인권은 교문을 넘어섰는가. 인권조례의 제정 1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수없이 반문해보아야 한다. 아직도 교문지도와 체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체벌금지이후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벌점제는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숨통을 조이고만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정착에 누구보다 노력을 해야 할 경기도교육청 역시 안타깝다. 학생인권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학생들이 스스로 인권조례의 시행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생참여위원회’는 교육청의 까다로운 절차와 미흡한 운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언론보도와 교육청 민원게시판에 올라오는 사례들을 통해 아직까지 학교 현장 곳곳에서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드러났지만 경기도교육청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아직 학교 현장 곳곳에 스며들지 못한 채 교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학생인권은 학생인권조례의 제대로 된 정착화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변화와 마주하기까지 진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진통의 시간을 겪고 나서 마침내 학생인권으로 넘실대는 학교를 꿈꿔본다. 가장 억압받는 존재인 학생이 학생인권의 주체로 우뚝 서고, 이들의 옹호자이며 또한 주체인 교사들이 권리를 존중받는 그야말로 존중의 공동체가 만들어 지는 것을 그려본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1주년을 맞이한 이 날이 출발의 또 다른 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학생인권조례의 어려운 탄생의 첫해 동안 고단했으나 수고했고,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하자는 의미로 오늘을 축하한다.



2011.10.05.

경기도학생인권조례 1주년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1주년 공동기획단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경기지역모임, 참교육학부모회 수원지부, 평등교육실현을위한학부모회 수원지부, 아주대글로벌 인권센터, 전교조 경기지부, 경기도인권교육연구회, 경기교육운동연대 ‘꼼’, 다산인권센터, 새누리 장애인 부모연대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경기민족예술인총연합,경기복지시민연대,경기시민사회포럼,경기여성단체연합,경기여성연대,경기자주여성연대,경기환경운동연합, 녹색자치경기연대,YWCA경기도협의회, 참교육학부모회 경기지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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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9. 21. 17:36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소식지인 아수라장 ( http://news.asunaro.or.kr/ )에 싣기 위해 쓴 글입니다.





무상급식 그거, 참 별거 아닌데


  지난 8월 24일, 서울에서는 무상급식의 지원범위와 대상에 관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제는 전(前) 서울시장)의 꼼수로 들어간 시행 년도나 "단계적", "전면적"과 같은 문구를 빼고 그 논쟁의 중심을 살펴보면, 이는 결국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초등학생/중학생에게"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소득이나 재산이 적은 사람들에게만" 급식비를 면제할 것인지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무상급식"이란 것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급식을 따로 급식비 받지 않고 제공하는 정책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건 바꿔 말하면 그냥 무상급식을 할 거냐 말 거냐의 논쟁인 셈이다.

  입장을 막론하고, 지금 한국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은 과열되어 있다. 한국 정부의 예산이 한 해에 200~300조를 넘는 게 보통인 마당에, 그 1%도 안 되는 몇천억 정도1) 예 산 더 쓰는 것 가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부르스를 추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상급식 하나 한다고 보편적 복지가 시작되고 학교에 차별이 사라지며 공동체의식이 길러지고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결국 "무상급식"을 하나의 상징 삼아서 복지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는 건데, 이 "무상급식"이라는 게 아무래도 덩치도 작고 복지 정책으로서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닌지라 논쟁이 자꾸만 산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이 조그마한 무상급식 하나 가지고 그리 아웅다웅 하는 꼴이 안타까울 수밖에.


무상급식의 인권적 의미와 장점?

  뭐 어찌 되었건 나는 무상급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편이다. 교육권과 먹을 권리는 인권 중의 하나로,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수준을 보장받아야만 한다. 특히 국제인권협약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동등하게 개방되도록 하기 위해서, 초등교육은 무상이어야 하고 국가는 그럴 능력만 있다면 중등교육, 고등교육(대학)까지도 점진적으로 무상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설령 빈곤층에게 교육비를 면제하거나 지원하는 등의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교육비를 면제받기 위해서 별도의 증명 절차 등을 거쳐야 하는 그 자체가 교육을 받는 데 하나의 장벽이 되기 때문에, 교육은 공짜가 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급식 역시 교육과정의 일부이고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기 때문에 무상교육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먹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한 적용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교육은, 우리 사회가 사람의 먹을 권리,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를 사회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당연한 권리로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친권자들에게, 모든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야 비로소 교육은 친권자가 자기 자녀들에게 하는 '투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권리가 된다. 친권자가 자녀에게 "내가 내 돈 내서 너 학교 보내니까 내 말 들어!"라고 윽박지르는 소유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보장적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상교육, 무상급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만화. 시사IN 205호(2011.08.20.) 중에서 인용


  또한 무상급식은 효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본래 '선별적 복지'에는 '선별'에 대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게 된다.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모으고 사용하는 걸 제한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부처들이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 전체를 파악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때문에 빈곤층에게 급식비를 면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빈곤층인지를 입증하고 확인하고 선별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게 그 사람이 정말로 빈곤층인지를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다 공무원들 인건비 등등 돈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오세훈 전 시장께서 주장하신 돈 못 버는 하위 50%만 급식비를 면제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의 맹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그 이하를 파악하는 방식에서도 여러 맹점이 생기는 판국에, 전체 시민들의 소득을 파악해서 그걸 반으로 자르는 선을 정하고, 그 선 위인지 아래인지를 다 선별하도록 하겠다고 한 셈이니, 행정적으로 가능한 일일 리가 없다.

  보편적인 복지를 하게 되면 소득을 파악하는 것은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청에서만 하고, 대신에 소득과 재산이 더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많은 합당한 세금을 내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 외의 다른 복지 시스템에서는 선별에 들어가는 절차와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세금 정책과 함께한다면 보편적 복지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는 그때그때 영역과 성격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무상급식 따위!

  가끔, 내가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것을 놓고 그런데 왜 복장자유화에는 찬성하냐고 딴지 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는 무상급식을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 '눈칫밥'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싶다. 일단 복장을 자유화함으로써 생기는 개성의 자유 실현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급식을 유상으로 함으로써 생기는 일은 도저히 없을 것 같으니,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수다. 만일 이처럼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무상급식이라는 게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뜻하기라도 해야 한다. 뭐, 지금 많은 학교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사먹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급식비를 학교가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학교의 억압적이고 일괄적인 방식과 문화의 문제이다. 특히나 학교들은 급식 자체에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더 늘릴 필요도 있겠고. 급식의 질 향상과 식단의 다양성, 선택권 보장은 무상급식 이후에 급식을 계속 개선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아니면,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교복이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어지거나 모든 학생들, 청소년들에게 옷을 살 돈이나 상품권이 주어지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솔까말, 나는 강제교복을 없애고 복장을 자유화하면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 빈곤층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에, 그러면 옷 살 돈을 정부에서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이 역시 무상급식처럼 가능하면 모든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옷 살 돈을 주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 터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미안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대부분의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에서는 현실이다! 아동수당 제도라고 들어보셨는가? 아동수당은 1926년에 뉴질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건데, 아동이 있으면 소득이 얼마든 간에 무조건적으로 그 집에 돈을 주는 제도이다. 국가에서 양육을 책임지는 방식인 것이다. 독일은 월 184유로(약29만원정도)에 아동이 많을수록 추가수당이 있고, 스웨덴은 16세 이하 아동에게 월 950크로나(약12만원)에다가 학교에 다니면 주는 추가 수당, 병이 있으면 주는 추가 수당, 아동이 많으면 주는 추가 수당 등 여러 추가 아동수당이 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2010년부터 15세 미만 아동 1인당 월 26000엔(약36만원 정도)의 아동수당을 준다. 지금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OECD에 가입한 국가들 중에 아동수당 제도가 없는 데는 미국, 터키, 멕시코, 한국뿐이다. 2)

  그래서 최근에 독일에 가있는 분이 한국의 무상급식 논란 이야기에 대해 독일은 무상급식을 안 하는 이유를 얘기하길 ① 독일은 오후까지 수업을 안 해서 학교에서 밥을 안 먹는 경우가 많고 ② 독일은 급식을 무상으로 주기보다는 급식비나 밥 사먹을 돈을 국가에서 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 흑흑.

  물론 아동수당이 한국에 도입되면 죄다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말 거라는 씁쓸한 예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 돈이 반드시 아동․청소년들에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용돈/생활비의 형태로 쥐어지게 만드는 제도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기사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무상급식 덕에 굳는 급식비마저도 사교육비로 지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건 복지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쟁교육의 문제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무상급식을 생각할 때마다 영 찝찝하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도 모두 무상교육으로 만들라는 요구쯤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최소한 아동수당은 되어야 좀 복지 정책으로서 제대로 된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3)은 못할망정. 그러니까 이제 우리(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도, 좀 강하게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라에다가 우리한테 돈 좀 내놓으라고. 아동수당도 내놓고 교육비도 좀 더 쓰라고. 체벌을 하라고 하지 말고 교사 수, 교실 수를 늘리라고. 빈곤층 핑계 대며 교복을 입히지 말고, 옷 사 입을 돈을 내놓으시라고. 그 별 거 아닌 무상급식 따위 하나 가지고 벌벌 떨지 좀 말란 말이다!





1) 주민투표 당시 자료를 보면, 서울시 초등학교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필요한 예산이 약 600억 수준이었다. 급식 질을 좀 더 높인다고 해도 900억 정도일 테니, 전국 실시에는 최대 4000억 이하일 것이다.

2) 한국에서도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12세 미만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던 적이 있다. 당연히 아직 통과 안 됐지.

3)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 쉽게 말해 매달 모두의 통장에 30만원씩 국가가 입금을 해준다고 상상해보시면 된다. 보편적 복지 중 현금 부문의 완결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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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ㄷㄷ

    쓰레기같은글 잘읽었습니다

    2011.09.22 01:26 [ ADDR : EDIT/ DEL : REPLY ]
  2. ㅇㅇ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진보적 상식 - 애들 키우느라 뼈빠진다(그래서 복지가 확충되어야 한다) - 속에 감춰진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신선하네요.

    2011.09.22 14:20 [ ADDR : EDIT/ DEL : REPLY ]
  3. 하얀저고리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2011.09.25 10:2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9. 20. 16:33





http://blog.naver.com/communebut/20138034384
<오늘의교육> 7,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후일담인데...
7월 중순이었나- 평등교육학부모회 사람을 만났는데 제가 범국민교육연대에 저 메일 보낸 거 가지고 안에서 말이 많다고 하더군요. 대충 뭐 저걸 공개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그래서 웃으며 이미 <오늘의교육> 원고에 넣어버려서 공개했는데, 라고 했었다지요. >_<
내가 저거 공개 안 하거나 부끄러워 할 줄 알았나;;
에휴. 부끄러워 해야 할 게 누구인지.


p.s. 다행히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는 최종 성사되었습니다! ^^ 이 글은 6월 말 쯤에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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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바동거립시다

-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과정에 대한 평가

 

윤종(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gonghyun@gmail.com

 

 

 

왜 곽노현 교육감 놔두고 주민발의를 하려고 했나

2010년 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활동해 온 지 1년, 아니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해 온 지 5년 반 만의 ‘성과’였다. 하지만 특별히 축배를 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청소년활동가들 사이에는 약간의 당혹감도 감돌았다. 이렇게 쉽게 통과될 조례가 아닌데, 하는 당혹감.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갑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올랐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은 우리에게 분명히 성과였지만, 일종의 ‘무력감’을 동시에 안겨 주었던 것 같다. 물론, 우리가 자문위원회에서, 학생참여기획단에서, 공청회장에서, 거리에서 그 ‘개고생’을 하고 주먹구구식 교육청 행정과 형식주의에 휘둘리기도 하고, 집회의 자유와 두발 자유 등을 가지고 그렇게 치고받고 했던 과정이 있었기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노력은 정말 별 의미가 없는 것만 같은 느낌을, 많은 청소년활동가들이 느껴야만 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상곤 교육감이 집회의 자유를 명시한 조항 등을 흐려 놓은 안으로 발의를 했을 때도 그랬고,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도의회에서 삽시간에 통과가 됐을 때도 그랬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도 골치 아픈 일들은 많았다. 가장 대표적으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 학생들에게, 교사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그래서 통과 직후에는 “두발 자유 조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오해도 많았다. 교육청과 학교에서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배포하고 교육과 홍보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들을 우려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전부터 학생들에게 홍보해야 한다고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했지만, 교육청에서는 아직 제정되지 않은 조례를 홍보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교육청의 입장과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알지 못하는 현실도 답답했다. 교육청과 지역의 여러 단체들 사이에 학생인권조례 정착을 위한 공조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하고자 한 것은 이런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의 경험과 현실적 어려움들 때문이었다. 교육청이나 서울시의회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보다 후퇴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또 서울시민들에게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다른 움직임이 필요했다. 두발 완전 자유화 등이 명확하게 들어간 좀 더 나은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조중동문 등을 비롯한 언론들의 학생인권 반대 공세에 대한 고려도 없진 않았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주민발의는 무엇보다도 운동에 대한 강제였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게을러지지 말고 계속해서 거리에서, 조직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학생인권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의무를 부여했다. <경향신문> 3월 특집 <아직도 먼 학생인권> 같은 것들도 어떻게든 학생인권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제안하고 함께 준비한 기획이었다. 또한 주민발의는 학생인권에 대해 소극적으로 찬성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던 여러 단체와 개인들에게 ‘학생인권 쪽박 차는 꼴 보기 싫으면 서명 모으세요’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6개월 안에 8만 2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야만 한다는 조건을 걺으로써, 각계각층의 지역운동, 시민운동, 종교운동, 노동운동 등이 학생인권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한몫을 하도록 압력(?)을 가했던 셈이다.

 

 

절반의 성공

그래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의 목표는 달성했을까? 일단 거리로 나가서, 여러 행사장에서,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일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본격적으로 거리 서명을 시작한 2월부터 5월까지, 못해도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설명을 했을 것이다.

 

주민발의 과정에서, 어디 서명해 줄 곳 없나 하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찾고 연락한 끝에, 이전에는 학생인권운동에 대해 잘 모르고 결합하지 않았던 여러 새로운 단체들, 사람들도 발굴해 낼 수 있었다. 종교의 자유 조항을 보고 종교계 등이 힘을 실어 주었고, 어린이책시민연대 역시 학생인권조례에 열의를 보였다. 온라인에서도 SNS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 많은 누리꾼들이 학생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학생인권을 위해 글을 올리고 서명을 모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온갖 노력의 결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무엇보다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주민발의 과정에서도 제정 이후에도 가장 큰 힘이 되어 줘야 할 교육운동의 움직임이 소극적이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처음에 회의 과정에서 주민발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최대 3만, 최소한 2만 정도를 목표로 세웠으나 서울지부 조합원 숫자만큼의 서명도 모으지 못했다. 또한 서울의 여러 지역에 터를 둔 수많은 ‘풀뿌리’ 교육단체들과 교육시민단체들 중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에 참여한 단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었다(물론 그 단체의 활동가들이나 간부들은 대체로 서명을 했다. 그러나 단체 차원에서 힘을 실어 주진 않았다).

 

 

안이함과 절박함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이 글은 어쩌면 교육운동을 좀 까는 글일 수 있다. 하지만 먼저 좀 착해 보이기 위해서 자기반성부터 해 보겠다. 나 역시 2010년까지만 해도 이 주민발의에 대해 다소 안이했다. 뭐랄까, 그래도 교육운동을 비롯해서 이른바 ‘민주·진보·개혁’ 운동 안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와 관심이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학생인권 문제가 공론화된 지가 10여 년이고, 학생인권법이나 학생인권조례 등의 이야기가 나온 게 6년째인데 설마 또 이걸 하나하나 설득을 해야 할까, 여러 단체들의 회원들과 회원들의 지인들 정도만 받아도 반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러나 되돌아보면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민주노총이나 정당들, 전교조들, 학부모들, 지역단체들을 방문하며 학생인권에 대한 교육과 간담회를 먼저 진행했어야 했다. 학생인권 의제는 설령 그 조직의 간부들이나 활동가들이 동의하고 있더라도 그 조직의 회원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의제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해 달라고 하면 해 주겠지, 라고 생각하며 별로 어렵지 않게 수천수만의 서명을 약속했던 큰 조직의 활동가들은 금세 벽에 부딪혔다. 그게 친환경급식조례나 광장조례와는 다른 부분이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만들려고 한다면, 자기 조직을 그 조직에서만 알아서 챙기는 게 아니라, 학생인권운동 차원에서 회원들, 조합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육하고 간담회, 토론회를 하는 등의 자리를 계속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내가 주민발의에 ‘올인’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데는 만19세 이상만 서명을 할 수 있는 주민발의 방식의 문제도 있었다. 주민발의 서명을 모으는 활동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리 서명 외에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법적으로는 수임인도 될 수 없기 때문에 거리 서명을 받더라도 형식적으로는 직접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초기에 청소년 측의 계획은 홍보 활동을 함께하거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청소년 서포터즈’ 같은 식으로 학생들, 청소년들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좀 모호한 부분이 있다. 나는 지금도 학생인권조례가 청소년들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도 지역에서, 학교 안에서 터를 잡고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런 조직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6개월 안에 만19세 이상 유권자들 1%의 서명을 받아 내야 하는 주민발의는 그런 데까지 힘을 쏟을 여유를 주지 못했다. 주민발의에서 청소년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은 초기 기획 단계부터 있어 왔다. 그런 문제의식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서명은 비청소년 단체들이 모으고 청소년단체들은 청소년들의 행동과 조직을 만드는 사업에 전념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안이한 마음가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11년 1월 말, 3개월이 지났는데도 서명 수가 1만도 채 되지 않았고, 2010년 9월만 해도 빨리 시작하자고 재촉하던 전교조 서울지부에서는 조합원들 사이에 동의가 되지 않아서, 준비가 되지 않아서 서명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결국 주민발의를 계속할 건지 포기할 건지를 안건으로 놓고 논의하는 자리까지 열렸다. 그 자리에 참가한 청소년활동가들이 이런 식으로 갈 바에는 그냥 주민발의를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다른 청소년활동가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여러분들한테는 이게 실패해도 연대 사업 하나가 실패한 것뿐이겠지만 청소년인권운동에게는 5년, 10년을 해 온 운동이 실패하고 크게 후퇴하는 겁니다.”

 

다시 결의를 다져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끌고 가기로 결정하고, 2월부터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매일같이 거리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목표는 하루 200명씩. 1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6시간씩. 거리 서명의 주력은 어쨌건 청소년활동가들이었다. 그때 청소년활동가들이 그렇게 매일 거리 서명을 한 동력은, 마음속에 “역시 어른들을 믿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불신과, 겨우 꽃피우려고 하는 학생인권을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들이, 학생들이 만들어 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 지경이 되어서도 그 ‘절박함’은 몇몇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것 같았다. 무상급식 책 출판기념회에 서명을 받으러 갔을 때 남의 행사에 와서 이런 거 하면 욕먹는다고 하지 말라고 했던 활동가의 말은 지금도 내게 상처로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그 활동가는 1월 말에 주민발의를 끝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었다(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1월 말 회의 때 적극적으로 주민발의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단체들 중에서 자기 말에 그만큼의 책임을 진 건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흥사단교육운동본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어이가 없어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펑펑 울었다.

 

그밖에도 어차피 안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안 한다는 사람들, 주민발의 실패한다고 망하는 거 아닌데 이거에만 목매달 필요 없지 않냐는 사람들, 딱 1번 거리 서명 나온 건데 ‘다른 할 일도 있었는데 나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하도 문자를 보내셔서 나왔다’고 웃으면서 말하던 사람들, 뭐 어차피 안 돼도 교육감 발의나 의원 발의도 있지 않냐던 사람들……. 2월부터 서명 작업이 끝날 때까지 3개월은 그런 수모와 실망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힘이 되어 준 단체들, 사람들도 많긴 많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단체였는데 열과 성을 다해서 수백 장, 수천 장을 해 온 곳들도 있었고 마음을 함께하며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지탱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3개월을 계속 걸어 나간 힘에는, 잘 안 하면서 미안해할 줄도 모르고 초만 치는 사람들이 미워서 보란 듯이 성공시켜 버리겠다는 악과 깡, 그리고 그래도 의외의 곳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서라도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을 것이다.

 

 

운동의 무능함

교육운동은 왜 그렇게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에 적극적이지 못했을까? 물론 학생인권 문제는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서 열심히 하지 않은 탓도 클 것이다. 그에 더해서, 처음에는 ‘이 인간들이 학생인권에 반대하거나 떨떠름해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러나’ 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나는 한편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라. 분회장들 연락처도 다 확인이 안 되고 있고 분회까지 연락이 다 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전교조 서울지부는 얼마나 현장 조직과의 괴리를 보여 주고 있는가. 어차피 안 될 것 같아서 안 한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굉장히 비겁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 뒤에는 얼마나 큰 무력감과 패배의 상처가 있는가. 지역 풀뿌리 교육단체라고 하는 곳에서 전교조 지회 없이는 자체적인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상황은 또 어떤가. 자식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수임인 등록하고 자기 인맥으로 단 하루 동안 60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내는 ‘일반인’에 비해서, ‘40명, 50명도 모으기 어렵다’, ‘학생인권에 대해 말을 꺼내기 두렵다’고 하는 교육운동활동가들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홍세화 씨가 한겨레 칼럼에 쓴 말마따나, 무상급식 주민투표 서명은 80만 명을 모아 내는 상황에서 단 8만 명도 모으지 못하는 그 조직력의 차이는 얼마나 참담한가. 체벌 금지에 찬성한다는 전교조에서는 왜 체벌 금지를 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현장 실천이나 지침을 전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가. (혁신학교에 바빠서?)

 

우리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하면서 부딪힌 것은 사람들의 반발이 아니라 운동의 무능이었고 활동가들의 무기력이었다. 내가 화가 났던 것은, 다수의 교육운동활동가들에게서 청소년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 ― 어차피 우리 운동의 현실은 시궁창 밑바닥이고 더 물러설 곳도 없고 아등바등 발버둥 쳐서 어떻게든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그런 마음 ― 를 별로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교육운동의 현장 조직(학교와 지역)이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고, 활동가들의 피로감 때문이었으며, 일종의 현실 안주 때문이었다.

 

 

밑바닥에서 바동거리지 않으면……

4월 중순 무렵에 범국민교육연대에서 보낸 메일을 보다가, 2012년 교육혁명연구회를 만들자는 제안서를 보고서 열 받아서 답장을 보냈다.

 

“야, 이 개새끼들아, 하고 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네요.

뭐? 2012년 교육혁명을 연구한다구요? -_-

서울시민 1%의 서명도 조직 못해 내는 교육운동이 어지간히 혁명 잘 하시겠습니다, 그려.

범국민교육연대에서 소식이라고 보낸 이메일 중에서

학생인권조례 서명 조직해 달라는 요청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주간교육동향브리핑에서도 아~주 드문드문 본 것 같네요.

이제 2주 남았습니다.

2주 동안도 학생인권조례에 올인할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한다는 겁니까?

더 이상 호소하고 부탁하기도 지칩니다.

이제는 협박 컨셉이거든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실패하면

교육운동을 아주 가루가 되게 밟아 드릴 테니 각오하고 계세요.”

 

메일을 받아 본 담당자분이나 범국민교육연대 활동가분들의 얼굴이 어땠을지 알 길이야 없다. 지금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은 마지막 보정 기간을 앞두고 있다. 1만 장 정도가 부족하긴 하지만, 무효 서명지로 돌아온 것 중에 단순 오타나 이름을 잘못 본 것 등이 많아서 꽤 많은 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고 거리 서명/우편 서명도 하루 1,000명 이상을 받아 내고 있어서, 아마도 성공할 것으로 점쳐진다. 일단 교육운동을 가루가 되게 밟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긴 하다. 그 밖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주민발의 실패할 경우에 대해 온갖 협박을 해 놔서 뒷감당이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다.

 

하지만 앞의 이메일에 적은 것과 같은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사실 이 문제는 옛날부터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단체 안에서도 계속 말이 나왔던 문제였다. 교육운동은 일제고사를 놓고서 “평가를 평가한다”라고 하면서 시험식 평가, 점수 평가 자체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기는 하지만, 정작 그런 주장을 대중화하고 운동과 실천으로 만들어 내는 데는 무관심하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서 대학평준화를 이룰 것이라고 하더니 정작 만들어 놓은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는 2년, 3년 지나니까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연대체 제안은 맨날 메일로 오는데 그 연대체에서 어떤 현장 투쟁과 실천을 조직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교육희망네트워크가 선거용 조직이라고 비판하는 좌파 교육활동가들은 그럼 선거만 바라보고 정책 만들고 토론회하고 세미나 하는 것 외에 무슨 아래에서부터의 운동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공을 보며 교육운동활동가들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부끄러움? 감동? 글쎄. 내 작은 소망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과정이 교육운동활동가들에게 자기 운동을 반성하고 되돌아볼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안 될 거라고 했던 운동을 성공시킨 그 감격이 교육운동활동가들에게도 계속 좀 더 적극적으로 밑바닥에서 바동거릴 힘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4만이 채 넘지 못했던 서명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 속에서 1주일에 1만씩 늘어나면서 결국 8만 5천을 넘겼을 때 그 감동을, 이 과정을 함께하고 지켜봤던 활동가들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4월 초나 3월 말 정도에 그렇게 이슈화시키고 소문을 내면서 했다면 피가 마르는 기분을 좀 덜 느꼈을 텐데!) 입으로 헛약속만 남발하는 몇몇 단체들과 알음알음 정성을 모아서 마음을 담아서 서명지를 수십 장, 수백 장씩 보내 주시는 얼굴도 모르는 시민 여러분들을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비교해 보면서 느꼈던 그 씁쓸함과 따뜻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면 좋겠다.

 

전교조를 비롯해서 10년, 20년 교육운동을 해 온 분들이 충분히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건 이제 갓 6년 정도 운동을 한 내가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내 친척 중에도 전교조 해직 교사로서 도피 생활을 해 왔던 분도 계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히 지금 다시 한 번 주문하고 싶다. 교육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청소년들, 학생들과 같이 밑바닥에서 바동거려 보자고. 바동거리지 않는 한, 더 이상의 변화도 뭣도 없기 때문이다.

 

 

 

윤종(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언론 《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당사자로서 시작해서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코가 꿰어서 계속하고 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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