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 해당되는 글 138건

  1. 2011.03.05 "학생인권으로 여는 행복교육의 오늘" - 학생인권 시민 연속 특강
  2. 2011.03.05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2011.03.19.) (5)
  3. 2011.02.17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
  4. 2011.02.03 국회도서관이 18금? 도서관 이용에 자의적 나이 제한은 차별
  5. 2011.01.26 [참세상] “간접체벌로 훈육? 우리가 개야?”...교과부 성토
  6. 2011.01.17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고 싶은가? - 교과부의 반인권적 시행령 개악 시도를 반대한다
  7. 2011.01.03 [학생인권조례] 학생은 오리가 아닙니다!
  8. 2010.12.25 학생-교사-폭력-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1)
  9. 2010.12.21 온라인게임셧다운제 반대와 좌파적 도그마, 혹은 소비와 금욕에 대한 단상
  10. 2010.11.17 사랑은 19금이 아니다 - 청소년학생 연애탄압 (2)
  11. 2010.11.08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 체벌 금지, 대안이라거나 (12)
  12. 2010.10.16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공청회 (10/18) (2)
  13. 2010.09.28 Let me Introduce 청소년인권운동
  14. 2010.09.20 [청소년인권] 사랑도 인권이라규! - 청소년 연애 탄압 사례를 조사합니다 -
  15. 2010.09.15 [참세상-미디어충청] 교사도 폭행당하는데...학생인권조례 무색
  16. 2010.09.13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청소년인권 입문서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17. 2010.09.08 [페미니즘인(in)걸?] "부모님 모셔와"가 무섭지 않은 세상을 만들려면?
  18. 2010.09.06 [학생인권조례 서울본부 성명] 서울시교육청의 ‘체벌없는 평화로운 학교만들기’ 정책 시행에 부쳐
  19. 2010.08.21 체벌금지, 대안, 교장, 평교사, 학생 (6)
  20. 2010.08.13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 (2)
걸어가는꿈2011. 3. 5. 11:07





"학생인권으로 여는 행복교육의 오늘"

학생인권 시민 연속 특강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서울교육의 희망을 찾다”

    : 혁신학교-무상급식-학생인권조례에 담긴 교육철학, 학생의 인권과 자치 역량 강화가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 3/14(월) 오후 7시 / 서대문구청 강당


○ 이범희 용인 흥덕고 교장 “혁신학교와 학생을 존중하는 학교문화”

    : 수업혁신은 물론 학생 생활지도 혁신을 일구어내고 있는 흥덕고의 사례를 통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 3/16(수) 오후 7시 / 숭곡중학교 강당


 ○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폭력 트라우마와 체벌 없는 교육”

    : 학창시절 폭력의 경험이 우리 사회 문화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드는 기초로서 ‘체벌 없는 교육’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 3/22(화) 오전 10시 / 성동교육청 4층 강당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노동의 거울, 학교”

    : 학교는 노동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우리 사회 반(反)노동 문화는 학교의 역할과 상관 없나. 일하는 사람들이 자녀의 성적이 아닌 학교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를 살펴본다.

    : 3/23(수) 오후 7시 / 세종대  광개토관 105호


○ 백창우 시인/작곡가  “아이들 감성을 꽃피우는 노래 이야기”

    : 시와 노래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성을 꽃피게 만드는 부모와 교육의 역할을 짚어본다.

    : 3/31(목) 오전 10시 / 흥사단 3층 강당


 

 


  우리는 꿈꿉니다. 학생들이 모욕당하고 상처 입지 않는 교육을.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를 웃게 만드는 교육을. 저마다의 차이가 환대받고 우애를 익힐 수 있는 교육을. 인권과 민주주의를 익힐 수 있는 교육을.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존중하며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을.

  겨 울바람이 물러나고 꽁꽁 얼어붙었던 들판에서 새순이 움트듯, 이제 학생의 인권과 행복이 활짝 꽃피는 학교를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서울시 체벌금지 정책으로 시작된 학생인권 정책이 시민들과 교육 주체들의 열정과 지혜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배움과 나눔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함께해주세요.




□ 주최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 지역 교육․시민단체 공동 주최

□ 후원 :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 문의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02-582-8884/ 017-214-355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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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5. 00:06



실종신고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찾습니다>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1년에 몇 번씩 학생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시험, 그리고 오직 시험을 위한 교육.
이명박 정부 이후 시험지옥은 나아지기는커녕 대놓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등수에 목매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평가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획일적 경쟁을 부추기는 줄세우기 없이 모든 학교는 평등해야 합니다.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받고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학력·학벌로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한국의 교육예산은 너무 짭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쾌적한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돈 문제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예산을 늘려서 쾌적한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의 운영은 그 어떤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정도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참여권과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은 존엄한 인간이기에, 하교는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체벌, 두발복장규제, 강제야자 등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억압들은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먼저 인간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합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다른 곳에도 많이 퍼날라주세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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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등학교는 중간고사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더욱 힘든건 매달 단원평가를 해서 평가한다고 하니 더 고달프다는거죠

    2011.03.05 0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중간기말부터"는 하나의 대유적 표현이고 ^^;
      여하튼 점수 매기고 등수 매기는 시험을 없애자는 거죠

      2011.03.11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2.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모르겠습니다.

    2011.03.05 0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

    의무교육으로 강제되지 않을 뿐, 유치원도 교과부가 관리 감독하는 학교입니다. 생애 초기교육 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초중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유치원 또한 무상교육이 실시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2011.03.11 10:13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1. 2. 17. 21:08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

“교사 체벌에 학생 응대했다면 ‘정당방위’ 맞잖아”

김도연 기자 2011.02.17 02:16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
경 기도의 학생인권조례 공포, 서울의 체벌금지 시행 이후 각종 매체들이 연일 ‘대드는 학생’ ‘매맞는 교사’ 등 ‘교사들의 수모’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이렇게 교사들의 ‘권리’에 관심 가졌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교권의 추락’을 우려했다.
‘체벌이 금지’된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권은 정말로 추락하고 있는가. 교사들이 직접 입을 열었다. 16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주최로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가 말하다’ 토론회에서 교사들은 가장 먼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왜곡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해냈다.


“‘체벌금지’를 ‘체벌금지’라 말했을 뿐인데 언론은 ‘싸가지 없다’ 하네”


이기규 교사(서울 수송초)
체벌 하던 교사들도 ‘금지’를 강조하니까 체벌 안 하고 있다. 그동안 다른 방법은 안 해왔으니까 힘들어하긴 한다. 그래도 생활지도를 아예 못하겠다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는 게 사실이다. 근데 언론은 생각이 좀 달랐던 거 같다. 체벌금지 시행 이후 나에게도 몇몇 기자들에게 전화가 왔었다. ‘체벌이 금지됐는데 학생지도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묻더라. 그때마다 별 문제 없다고 답하면서 우리학교 사정을 설명해드렸는데 그들이 원하는 말이 아니었던지 한 번도 인용되지는 않더라.


조영선 교사(서울 경인고)
언론보도 보면서 제일 불편했던 점은 애들이 교사를 때리고, ‘싸가지’ 없게 군다고 지적하는 거다. 우리학교에도 비슷한 사례 있었다. 어떤 교사가 체벌을 했고 거기에 대해 애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과정에서 약간의 터치가 있었던 거다. 나중에 그 친구하고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자기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 아니냐고 그러더라. 폭력 자체가 정당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가 맞았으면 방어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거다. 근데 그건 사실 ‘팩트’다. 때리려는 교사 앞에서 ‘체벌금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 체벌금지를 체벌금지라고 하는 게 팩트가 아니면 뭐냐. 근데 언론에서는 이걸 ‘싸가지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말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언론이 웃기는 서사를 만들고 있다.





이 들은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 시행 과정에서 교사로서 소외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육주체로서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위로부터의 개혁’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기규 교사(서울 수송초)
“학생인권에 대해서만큼은 얘기하는 과정도 되게 ‘인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들 대부분은 체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체벌금지’를 선언하면서 마치 모든 교사들이 체벌을 해왔다는 분위기로 말하니까 여기저기서 푸념이 있었다. 체벌을 하냐 안하냐와 상관없이, 체벌금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는 것 같아서 체벌금지 이후 교사들이 약간 위축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사들의 의견 공유되면서 결정됐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례 하나 만들고 따라야 한다가 아니라 이 문제를 교사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는 기회 마련해주는 것, 천천히 가더라도 교사와 공유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건 교육청, 교육단체 모두에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인권조례와 체벌금지, 학교문화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하 지만 그럼에도 이번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시행이 무척 ‘유의미’한 일이며, 이를 오히려 생활지도 방식의 전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는 교사들도 이견이 없어 보였다. 교사들은 억압적인 학교문화를 교사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고, 혹자는 ‘체벌 교사’였던 자신의 감동적인 ‘체벌 탈출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오혜원 교사(경기 호계중)
언론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발표 후에 ‘당하는 여교사’ ‘맞는 여교사’ 등 교권 추락의 대표사례로 약한 여교사를 거론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젊고 약한 여교사만의 문제 아니라 학생들과 인간적 관계 형성하지 못하는 대다수 교사들의 문제인 것 같다. 억압적이고 남성적인 학교 구조에서 억지로 애들을 통제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 역할을 맡아왔던 이들은 인권조례가 발표되고 나서 오랫동안 수행해온 여교사 역할을 이제라도 버려야 하는 건지 혼란에 빠진 건 사실인 거 같다. 그중 일부는 때리지 말라고 하니까 대신 벌점을 강하게 주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더 우스워지더라. 그런 역할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이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이번 인권조례 시행을 교사와 학생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학교에서 새롭게 만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현석 교사(서울 당산초)
나는 서울시교육감이 체벌금지를 발표하기 전까지 체벌을 많이 하는 교사였다. 우리 반에 지각을 잘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처음엔 왜 지각하니 물어보다가 하루 늦을 때마다 한 대씩 맞자고 했다. 연속 30일 지각해서 30일 동안 때렸다. 그렇게 때리면서도 나는 그 아이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고, 체벌이 벌점보다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체벌금지가 되고 주변인들과 얘기 많이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른이 무단횡단을 했는데 경찰이 ‘당신은 법을 위반했으니까 비인간적으로 벌금 물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세 대를 때리겠다’고 하면서 횡단보도 앞에 엎어놓고 때린다면 정말 비인간적인 것이었겠다, 나는 그걸 여태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을 때려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해지더라. 그래서 2학기 때 아이들에게 그동안 내가 때려온 것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매 때문에 너희들에게 정말 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착각하고 살아온 것 같다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열더라.
사실 내가 체벌 교사였어서 체벌금지 이후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교사한테 연수도 좀 시키고 교사 동의도 좀 얻고 그런 다음에 차근차근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건 정말 야만이 인간다움으로 가는 거라 무조건 해야 하는 거다. 나의 경우 체벌 금지가 아이들을 다른 눈으로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결국 학교를 바꾸는 것은 학생들의 힘”

한 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학교들의 사례가 공유되기도 했다. 다양한 학교 사례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열패감을 갖고 입학한 아이들에게 신뢰와 미래에 대한 꿈을 실어주려 노력하는 흥덕고, 학생인권조례를 이해하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조례를 강독했고 올해는 학교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고민을 하고 있다는 원종고, 학교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직접 행동이 있었던 소사고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만주 교사(경기 흥덕고)
입학식 할 때 아이들을 만났는데 눈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더라.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의심을 가진 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던 생활규정을, 용의복장규정을 빼고 학생들의 인권, 권리를 보장 쪽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이다 보니 진학의 문제나 학력의 문제가 역시 주요 관심사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진학문제가 진로문제’라는 거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자기 비전을 갖고 또 자존감을 지키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성취를 높이는 역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입하려고 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교가 진짜 우리를 생각해준다는 믿음 갖고 아이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이용석 교사(경기 원종고)
우리 학교가 작년에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면서 초점을 둔 건 학생, 학부모, 교사가 조례를 이해하도록 하는 거였다. 아이들이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현관에 조례 내용을 크게 뽑아서 전시회도 하고 기말고사 끝나고는 인권주간을 둬서 일주일 동안 인권조례를 활용한 가위바위보, 보물찾기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부모총회에서 조례 내용을 강독하기도 하고 교사들도 매주 수요일마다 인문학강좌 연수를 60시간 진행했다. 올해 화두는 학교문화의 변화다. 학생, 교사, 학교 구성원이 같은 인간으로 똑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머리는 자율화해놓고 교실에서는 ‘이 새끼 저 새끼’ 해서는 인권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주안점 두는 게 학생자치 활성화다.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 갖고 인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회와 동아리활동 강화를 지원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교실 내에서 작동하는 미세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인권은 교육제도, 교육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학생인권을 보장하려면 대학입시 문제들도 다 손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육제도, 교육정책에 전면으로 맞서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성애 교사(경기 소사고)
우리 학교 같은 경우,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더라도 반드시 현장에서 무력화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분들이 학교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 학부모 대표로 많이 참석했다. 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규제해야 한다는 두 입장이 4대 7로 매번 부딪쳤다. 학생 대표도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리한 싸움이 계속됐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몇몇 위원들이 학생공청회를 제안했는데 이 공청회에서 많은 얘기가 나왔다. 교사들이 소사고 근무하는 기간 동안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이 멋진 말들을 많이 했다. 공청회 뒤에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학생들이 회의 참관도 요구했고, 참관을 거부당하자 다음날 바로 아침 교문 앞에서 행동에 돌입했다. 아침 8시 20분 종이 치니까 아이들이 다 같이 운동장에 뛰어나가서 줄 맞춰 서더니 ‘근조 인권, 정의’라고 쓰인 피켓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걸 마치고 들어가는 학생들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정말 ‘해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이후에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금까지 11년 학교 다니는 동안 이렇게 학교가 오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학생들은 개학 이후 회의에 참관했고, 위원들 간에 이견은 끝내 해소되지 않았지만 비밀투표에서 6대 5로 이겼다. 학부모들은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아무래도 학생 대표들이 대표성의 문제를 많이 고민한 것 같더라.
결국 생활인권규정을 만든 주인공들은 위원들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정말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해낸 학생들의 힘이었다. 학생들 스스로 자기가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런 인권을 스스로 얻어나가는 과정이 소중했다. 이 힘이 올해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하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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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2. 3. 03:58



한국에는 최대의 국립도서관이자 '납본도서관'(모든 출판된 책 등을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도서관)인 곳이 2곳 있습니다.

하나는 국회도서관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도서관입니다.


그런데 그 두 곳 모두 이용에 연령 제한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

국회도서관은 18세, 중앙도서관은 16세를 기준으로 이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수나로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뭐 국회도서관 점거(-ㅂ-)를 할 만큼의 여력은 없지만,

청소년들의 언론 기고로 문제제기를 해보았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0127115740&section=03

[프레시안] 18禁 도서관…"청소년들은 개념이 없다?"

[기고] 국회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이용 나이 제한 부당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61726.html

[한겨레]

[왜냐면] 국회도서관 청소년 출입금지는 차별



국회도서관 연령제한이 없어진다고 해도 청소년들이 그걸 많이 이용할 거 같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국회도서관 문제는 다수 청소년들의 삶과 큰 연관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18세이상은 되고 미만은 안 되는가,라고 묻는 행위 자체의 정치적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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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 26. 09:58

“간접체벌로 훈육? 우리가 개야?”...교과부 성토

청소년, “간접체벌도 체벌, 학생인권 보장해야”

김도연 기자 2011.01.25 18:39


청소년들이 간접체벌 허용, 학교장에 학칙 제정 권한 부여, 문제 학생 지도를 위한 출석정지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부의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선진화방안)에 대해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25일, 청소년들이 흥사단 강당에 모여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문화 선진화방안에 대한 분노와 우려들을 쏟아냈다. ‘학생인권․학교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교과부 시행령 개악저지 대책모임’ 주최로 마련된 이 자리에는 일반계 고등학생, 실업계 고등학생, 대안학교 학생, 탈학교 청소년, 중학생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했으며 멀게는 천안, 무주에서 걸음한 청소년들도 있었다.


“간접체벌로 우리를 훈육한다고? 우리가 개야? 말이야?!”

청소년들이 교과부의 ‘선진화방안’에서 가장 분개한 부분은 단연 ‘간접체벌 허용’ 안이었다. 이들은 교과부가 ‘교육적 훈육’이라 주장하는 기합도 충분히 모욕적일 수 있는데도 이를 ‘간접체벌’이라 규정해 허용하려 한다며, 애초에 ‘간접체벌’과 ‘직접체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꼼수’라고 지적했다. 체벌을 통해 청소년을 훈육하려는 성인들의 시각과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빼놓지 않았다.

둠코
예전부터 학생이 맞는 매는 사랑의 매라고 해서 우리는 계속 맞아왔다. 이제야 체벌금지가 시행되면서 학생을 때리는 건 반인권적, 비인간적이라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을 훈육하기 위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켜서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는 인식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때리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라 안 되지만 하기 싫어하는 것을 시켜서 교정, 조정할 수 있다는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 같다.

예슬 나는 일반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내 행동을 남이 제약한다는 걸 상상을 못했다. 성인이 회사 입사시험 보러 가서 커닝을 한다한들 감독관이 때리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지는 않는다. 그거랑 똑같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이 왜 우리한테는 통용되지 않는 걸까. 왜 상대가 청소년이라고 해서 내가 널 통제할 권리, 가르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창준(부천 소사고) 초등 6년, 중고등 6년, 총 12년의 교육과정은 절대 짧은 게 아니다. 그 긴 교육과정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선생은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서 행동을 교정해야 한다. 그럴 때 학생인권과 교권이 동시에 상승한다. 체벌 같은 것으로 단시간에 교육효과를 내려는 건 오류고 12년의 교육과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영 체벌을 스트레스 한풀이로 사용하는 교사도 있고, 입시경쟁 심화시키기 위해 체벌하는 교사도 많다. 교사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입시와 관련된 게 많다.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그러려면 성적을 높여야 하고, 1등급 받아야 하고. 이런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체벌한다. 수업시간에, 수업에 집중 안했다는 이유로 때리거나 영어단어 몇 개 외워오게 하고 외우지 못했다고 틀린 개수대로 때리는 거 보면 경마장의 말이 생각난다. 기수가 말을 빨리,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게 하려고 매질을 하잖나. 우리가 말 같다.
영이(부천 사는 고등학생) 간접체벌이라고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 체벌한다는 거 자체가 강아지 기르듯 하는 거 아닌가. ‘빵’(총 쏘는 시늉) 하면 웅크리라고 가르칠 때도, 안하면 겁주고 하면 밥 주고 이런 식인데, 왠지 우리도 이런 거 같다. 머리를 안 단정하게 하면 겁주고. 잘하면 면해주고. 우리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미성년자는 주체적 생각 갖지 못한다고 여기니까 우리를 짐승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짜증난다.
그리고 학교나 가정에서 원하는 게 성실성인데 성실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공부 잘하고 인성 좋은 아이들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건지. 선생이나 가정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은 아닐까.
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절제 못해서 더 때릴 수도 있고 체벌이 악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학생은 물론이고 동료교사도 말릴 수 없다. 그나마 학생인권조례가 생겨서 권력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교과부가 ‘선진화’라는 명분 아래 다시 학생인권조례를 뒤로 ‘빠꾸’시키는 일을 한 건 너무 아니다.

하은(천안서 온 중학생) 간접체벌이 체벌이랑 구분하는 게 전혀 의미가 없다. 간접체벌도 모욕적인 게 많다. 여학생의 경우 치마입고 오리걸음 하거나 엎드려뻗쳐 하면 되게 민망하다. 초등학교 때는 두 친구가 싸우면 둘이 박치기 시키고, 자기 주먹 들어서 자기 머리 때리라고 시키기도 했다. 충분히 모욕적이다. 선생님이 손 안 댄다고 해서 간접체벌이라고 하는 것 되게 웃기다.
어스(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간접체벌’은 교과부가 발명한 말이다. 서울시에서 체벌금지 조치 들어가니까 조례에서 금지한 건 ‘직접체벌’이라고 한정하고 기합은 간접체벌이라면서 간접체벌은 가능하다고 꼼수를 쓰는 것이다. 체벌이면 체벌이지 간접체벌이 어딨나.
예반(무주 중학생) 선진화방안 발표된 거 보고 짜증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기뻤다. 사회자 말처럼 이런 간접체벌이라는 꼼수 쓰게 된 것 자체가 우리사회가 발전한 거 같다. 사랑의 매 운운하던 시절보다는 발전한 것 같다.


“교장 재량권 확대? 있는 것도 뺏어와야 할 판!”


교과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단위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확대한 데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청소년들은 “지금보다 더?”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충분, 아니 과하다는 것이다. 최훈민 삼각산중 학생은 “이미 교장은 학교에서 신”이라며 “재량권을 줄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재량권도 뺏어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영 학생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교장은 인권에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수십 년 간 체벌해 온 사람”이라며 “교장에게 학생인권의 범위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은 범법자에게 법을 만드는 일을 시키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교 과부는 지난 17일, 학교문화선진화방안과 함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령을 발표했다. 이 개정령에는 ‘학생의 권리보장 지원’이라는 이름의 제31조의5 조항이 신설됐는데, 제31조의5의2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기본법 제12조 제3항에 의하여 교원의 교육.연구활동 및 학생의 학습활동을 보호하고, 학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1항에 따른 학생의 권리 행사의 범위를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는, ‘학생의 권리 보장 지원’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조항에서 학교장으로 하여금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한 교육기본법 제12조 제1항은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는 내용의,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 조항이다.

다영 교장이 학생인권을 제한하는 재량을 갖게 하는 건 정말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일반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교장, 교감, 부장 선생님들은 교직 현장에서 오랜 경험이 있으니 이들에게 (학생인권 행사의 범위를 정하도록 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교장들은 학생인권에 되게 관심 없고, 승진하다 보니까 교장된 거지 학생인권 잘 알아서 교장된 것 아니야. 교직생활하면서 몇 십 년 동안 애들 팬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한테 재량권 준다는 게 말이 되냐. 범법자한테 법 만드는 일 시키는 거랑 똑같다.
훈민(서울 삼각산중) 교장 뽑는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 학교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냐. 그런 사회에서 아무 문제 없이 지내온 선생들이 교장 되는 거다. 의식 있는 선생님들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마찰을 겪고, 그 과정에서 징계당하거나 그만둔다. 그런 사람들이 교장이 돼야한다.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따르고, 잘 때리고, 교장한테 대든다고 협박하는 선생님들이 교장이 된다. 그래서 학교가 악순환 되는 거다. 우리 교장이 나한테 ‘사회 부조리 보면 인생이 고달파진다’고 그러더라.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고.(훈민 학생은 얼마 전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교칙개정위원회의 실태와 학생체벌 실태 등을 담은 학생신문을 발간하려다 교장선생님의 제지 한마디로 인쇄 직전에 발간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이 일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교장 뽑는 방법부터 틀렸다. 의식수준을 갖춘 사람 뽑는 게 아니라 교과부 말에 순종하는 사람 뽑는 말도 안되는 방식이다.
창준(소사고) 학교장에게 재량을 주는 것은 학생-교사-교장 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근데 대부분의 학교는 민주적이지 않다. 학생회는 언제나 학생부 선생들이 감시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교과부가 학교장에게 재량권을 주는 건, 인권조례안에 바탕 두지 말고 학교장 니 맘대로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훈민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아무리 수평적이어도 학교장에게 재량을 절대 주면 안 된다. 재량 주면 수직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엄청 수직적이다. 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있지 않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재량 줄 상황이 아니다. ‘있는 재량’도 뺏어와야 한다.
지난주 체벌 허용 논란에 대해 다룬 ‘MBC 100분 토론’ 보면서 엄청 답답했다. 교총 회장이 나와서 ‘단위학교에 재량주면 학생, 학부모가 모여서 잘 얘기할 거’라는데, 꿈의 학교, 우리가 감히 생각해보지도 못한 학교에 대해 얘기하더라. 교총 회장이, 교과부가 현실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인권은 ‘자유’ 그 자체니까!
학생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선진화방안의 독소조항들을 우려하는 것에서 출발했던 이야기는 결국, 다시 학생인권으로 돌아왔다.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자유’ 그 자체였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퇴로가 없다. 청소년들은 이날 어른들을 향해, 설령 ‘주어진’ 인권일지라도 빼앗아갈 궁리 대신 지금의 혼란을 함께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내달라 주문했다.
홍보(소사고) 인권은 자유이자 책임이다. 자유의 힘은 엄청나다.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생각과 능동적 사고력을 준다. 학교는 사회를 가르치는 곳이다. 인권이 없고 자유가 없어서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이 사회를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겠나. 때려줄 선생님도 없는데. 이 인권이 주체성과 능동성을 준다. 사회에 나가서도 이 사회를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인권이 더 나은 사회, 밝은 사회를 만들 것이다.
석민(의정부고) 학교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면 절차부터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군(영상고) EBS 다큐프라임 ‘학교란 무엇인가’ 마지막에 그런 말이 나오더라. ‘대개의 경우 학생이 학교에 맞춘다. 그러지 말고 학교를 학생에게 맞추라. 그러면 학생이 달라진다.’ 우리도 이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처럼 학생들을 변화시키려는 법이 아니라 선생과 학교가 학생에 맞추는 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창준(소사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나서 교권침해사례가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지금은 과도기이다. 우리는 인권다운 인권을 한번도 보장받아본 적이 없는데, 인권이 무엇이고 인권다운 인권을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조례를 통해 얻은 거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예방주사를 맞고 나서 열이 나는 상태 같은 거다. 하지만 열을 가라앉히기 위해 약을 또 먹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억지로 약을 투약하기보다 선생, 학생, 학부모 세 주체가 같이 의논하면서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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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 17. 19:17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고 싶은가?

- 교과부의 반인권적 시행령 개악 시도를 반대한다

 

  오늘 오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학교문화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고, 학생인권 침해를 노골적으로 허용하는 시행령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미 예전부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와 여러 교육․사회․시민․청소년단체들은 수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시행령 개악을 공식화하고, 강행하는 교과부의 뻔뻔한 작태에 대해 우리는 차마 공식적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오늘 교과부에서 발표한 내용은 ① 학교장의 학칙 제정 등 권한 강화 ② 학칙준수 서약식 실시 ③ 출석정지 도입 ④ 이른바 ‘간접체벌’ 허용 등이다. 이미 예전부터 문제점에 대해 누누이 언급했었지만 다시 한 번 하나하나 지적해보고자 한다.

 

  하나, 학교장에게 학칙 제정권을 전면 부여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같다. 본래 인권의 제한은 엄격한 조건과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러나 학교장이 자의적으로 인권을 제한하고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는 이러한 내용은 마치 군사독재 시절 유신헌법을 연상시키는, 학교의 시계를 무려 40년은 거꾸로 돌리려는 만행이다.

  학칙은 어디까지나 학교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고 교육에 참여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목적과 한계 속에서 민주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학교장의 독재적 학교 운영이 어떻게 학교 구성원들을 괴롭게 하는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고 있지 않은가? UN아동권리협약 또한 제28조에서 학교 규칙이 아동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도록 운영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정부가 취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자신이 비준한 법적 효력이 있는 협약조차 정면으로 위반하는 조치를 당당하게 내놓을 셈인가?

 

  하나, 출석정지 제도의 도입과 징계 수위의 강화는 학교 현장에서 악용될 소지가 큰 독소 조항이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에 밉보인 학생들이나 ‘찍힌’ 학생들을 사회봉사나 특별교육이수 등의 징계를 계속 줘서 밖으로 돌리고, 강제로 전학을 보내거나 가벼운 사안만으로 퇴학을 시키는 등 징계를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징계 받은 일수가 출석일수로 계산되지 않는 ‘출석정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런 학생들을 합법적으로 ‘유급’ 혹은 ‘퇴학’시킬 방법만 제공하는 꼴이다. 또한 이미 학교폭력예방법에 다른 학생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한 학생에 대한 ‘출석정지’ 제도가 있음에도 새삼스레 시행령에 출석정지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이 제도가 교사나 학교에게 밉보인 학생들을 격리하고 낙인 찍는 데 남용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교장이 자의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게 한 내용과 함께 생각해보면 그런 위험은 더더욱 높아진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징계가 학생들의 회복과 복귀, 지도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문제 학생들’을 낙인 찍고 배제하는 데 남용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징계 제도가 과연 교육적인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지 또한 징계 절차가 공정하고 민주적인지를 점검하고 이를 개혁하는 일이다. 징계의 수위를 강화하고 학생들을 더욱 강하게 찍어 누르려고 하는 것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출석정지 제도 등의 징계가 학교의 보복 수단이나 학생 배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징계의 공정성과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 학칙 준수 서약식을 개최하도록 하여 학생들의 준법 의식을 고양하겠다는 발상은 역시 학교를 독재구역으로 만들려는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준법 의식’은 그 법이 민주적이고 정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학칙이 학생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민주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입학식에서 학칙 준수 서약식을 하라는 것은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전원에게 이미 존재하는 학칙을 무조건 지키겠다고 서약하라고 강요하는, 양심의 자유 침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학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칙 준수 서약식’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학칙의 제정이다.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규제할 수 있게 해놓고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학칙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독재의 논리이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학생생활과 밀접한 학칙을 제개정할 때는 학생의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고, 또 학생자치활동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분명 교과부가 학생자치활동에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고 학칙 제개정시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학생자치활동 활성화에는 정작 그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회의 독립적 권한 보장과 학교 운영 참여 보장은 제대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칙 제개정 시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이나 절차 또한 학교별로 마음대로 하도록 맡겨두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심히 의심스럽다. 형식적인 의견 반영, 학생을 들러리로 만드는 상황이 여러 학교에서 벌어질 것이 뻔하다. 이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회의만을 학습시킬 반교육적인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해라. 하지만 그 방식은 마음대로.”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는 그런 논리야말로 독재를 민주주의의 거짓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곤 했다는 교훈을 역사에서 배웠다.

 

  하나, 학생들을 직접 때리지 않고 고통을 주는 이른바 ‘굴리는’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꼼수로 인권침해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이미 수년 전, 체벌을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로 스스로 정의한 적이 있으며, 직접 때리는 체벌과 학생들에게 ‘기합’, ‘얼차려’ 등을 주는 굴리는 체벌 사이에는 특별한 구분을 두지 않았다. 갑자기 '때리는‘ 체벌과 ’굴리는‘ 체벌을 나누고 ’굴리는‘ 체벌만 허용하겠다는 해괴한 논리에는 정당한 근거가 없다. 교과부는 “간접체벌”을 “반복적․지속적으로 신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나 정작 그 바로 앞에서는 대표적 ’기합‘인 “팔굽혀펴기” 등을 예로 들고 있으며, 시행령 개악안 또한 직접 때리는 행위만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결국 직접 ’가격‘하지만 않으면 학생에게 어떤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이더라도 허용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2007년 부산에서, 2010년 김포에서, 학생들이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체벌로 목숨을 잃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때리는‘ 체벌이든 ’굴리는‘ 체벌이든 학생들에게 폭력이고 인권침해이며 반교육 반인권적이라는 점은 별 차이가 없다. UN아동권리위원회 역시 “신체적인 처벌은 항상 굴욕적”이라고 밝히며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체벌의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굴리는‘ 체벌이든 ’때리는‘ 체벌이든 모든 체벌은 금지되어야 한다. 교과부는 체벌에 ’직접‘, '간접’ 이름을 붙이며 체벌을 허용하려는 해괴한 시도를 할 시간과 노력을, 체벌 없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

 

  교과부는 이번 발표를 “학교문화의 선진화”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 내용의 실상을 보면 학생인권의 무력화, 학교독재 강화를 위한 꼼수일 뿐이다. 일부 긍정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는 거의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교과부의 꼼수는 초․중등교육기본법 개악을 시도하다 국회의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 보고, 행정부 독단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행령 개악으로 방향을 바꾼 것에서부터 이미 드러났다. 또한 학생인권에 적대적 부정적 입장을 내온 단체 일색이었던 ‘학생권리 신장방안 마련 관계자회의’로 시행령의 의견수렴 절차를 대신하려 했던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시행령 개악의 추진과정은 형식적 절차마저도 충족했다고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 법률적 근거 없이 학생인권을 제한하고,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 침해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위헌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교과부의 시행령 개악 시도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교과부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학생인권을 더 세련되게 잘 침해하고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잘 보장하고, 어떻게 하면 인권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연구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정부가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한하고 침해할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는 교과부의 학생인권조례 무력화를 위한 제도 도입 및 시행령 개악을 막기 위해 법률적인 부분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밝히는 바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반인권 반민주 반교육 시행령 개악을 철회하라!

 

 

2011117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공동체 나다, 군인권센터,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모임,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서울지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특별시지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즐거운교육상상,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서울시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흥사단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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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 3. 12:41


오리가 아닙니다!
사육이 아닌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다사다난 했던 한해였습니다.

언제 갈까 싶었는데 어김없이 한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옵니다.

한해를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2010년과 함께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싶은 것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입니까?

 

자연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4대강? 불법으로 민간사찰을 하고도 당당한 그들의 뻔뻔함?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남북한 상황? 가볍디 가벼운 나의 지갑 ㅠ.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011년에는 학교에서 차별과 폭력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학생과 교사의 인권이 서로 존중되는 행복한 교육이 새롭게 시작되길 바래봅니다.

 

연말연시, 추위에 떨고 있을 누군가를 한번쯤은 돌아볼 줄 아는 그대!

그대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생명체,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기억해주세요~

학생인권조례는 제도도 법률도 아닙니다.

여러 사람의 기억과 좌절과 희망으로 꼬물대는 생명체입니다.

 

2010년을 보내며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뜻깊은 선물을 주고 싶다면?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2010년 한해 등골 빠지게 고생한 당신, 이 지랄 맞은 세상이 계속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http://www.sturightnow.net/sign)

 

내년에도 시인 유하의 말처럼, 학교에서 배우는 게 매 맞고 침묵하는 법,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군림하는 법,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수많은 규칙 앞에 상상력을 굴복시키는 법이 아니기를 원하신다면?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아무 부작용이나 혼란 없이 변화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리 비싼 부작용도 ‘폭력의 교육’을 지속시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분은?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민심을 배반하고 귀 닫고 불통인 정권이 싫으신 분도?

☞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서명하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잊고 지낸 친구들, 올 한해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 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고 결심하신 분이라면?

☞ 더불어 ‘서울 학생인권조례’ 서명도 모아주세요! (http://www.sturightnow.net/sign)

 

2011년, 그대의 새해가 희망차고 활기차길 기원하면서

시민의 힘으로 학교에서 폭력과 차별을 사라지게 할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기쁜 그 날도 함께 기원해 주세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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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2. 25. 23:09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홍보팀에서 언론기고를 하자고 제안해서 쓰게 된 글입니다.  아직  초안이니까 여러 가지 고쳐야죠;;

근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만약 지면에 기고를 한다면 앞부분만 해야 될 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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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 학생 0.1%와 교사 70%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산수를 잘 못하던 분들에게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자,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수는 몇 명쯤 될까? 찾아보니 대략 사십만명 정도 된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대략 오백만명 정도 된다. 더 자세한 수치를 제시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매년 변하고 있는 수치니까 이 정도를 잡고 얘기를 해보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어떤 이유로든 간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교사가 학생을 모욕했거나 학생에게 폭력을 쓴 경우부터 그냥 순전히 학생 본인에게 정서적 문제가 있던 경우에까지,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극소수일 것은 확실하다. 만약에 그 비율을 0.1%, 그러니까 1/1000이라고 해보면 어떨까? 5,000,000×0.1% = 5,000. 즉 5,0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만약 0.01%라고 하면 어떨까? 약 5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는 가정이 된다. 0.1%면 5,000명, 0.01%면 5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자 만약에, 최근 언론에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보도하고 있는 몇몇 사례들은 그 0.01% 혹은 0.1%의 일부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0.1%라거나 0.01%라는 수치는 결코 큰 수치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99.9% 그렇다.”라고 말할 때, 이 99.9%는 심리적으로는 100%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어떤 집단의 0.1%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문제도 문제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0.1%를 가지고서 그 집단 전체를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체제의 위기를 예언하는 것은 오류이고 과장이다. 지금 몇몇 언론들이 눈에 불을 켜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례를 찾아서 보도하며 교육의 위기를 부르짖고 “요즘 학생들”의 무서움을 설파하는 모습에서 나는 딱 그런 모습을 본다.

  앞서 설명했듯이 전체 초중고 학생들의 0.01%만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수는 약 500명이 된다. 물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가 1년에 500건씩이나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확률을 가정해본 것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몇몇 언론들이 하는 것처럼 몇 년 전 몇 달 전 사건들까지, 지역을 막론하고 찾아다닌다면, 거의 1년 내내 그런 보도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다.

  자, 그럼 이제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는 어떨까? 2010년 10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와 참교육연구소에서 전국 교사 14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약 70%가 체벌을 한다고 응답했다. “거의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교사들을 제외하더라도 약 20%의 교사들은 체벌을 ‘자주’ 한다. 전체 교사 집단에 이 비율을 적용해보자. 400,000×70% = 280,000. 400,000×20% = 80,000. 이십팔만명의 교사가 체벌을 하고, 팔만명의 교사가 ‘자주’ 체벌을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칙이나 한계 없이 ‘자유롭게’ 체벌한다고 답한 교사도 3.8%나 되니까, 이 역시 1만명은 넘는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교사 1명은 학생 수십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학생 1명이 교사 여러 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란 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폭력의 영향력은 비교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체벌금지 이후’에도 여전히 체벌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추적하기보다는 굳이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들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언론은 얼마나 공정한 것일까.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것은 센세이션 하지 못하지만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전형적인 황색 언론의 논리이다.

  나는 학생인권운동을 하면서 지난 몇 년 간 교사가 학생의 뺨이나 머리를 때린 사건, 체벌 중에 학생이 골절상을 입은 사건 등 수십건의 ‘선정적인’ 체벌 사례들을 접해왔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사정이나 언론의 무관심 등으로 전혀 공론화하지 못한 사례들이 반을 넘는다. 일상적으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맞는 것은 잘 문제가 되지도 않고 교사 집단 전체를 낙인찍을 이유도 되지 않고 교사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도 되지 않지만, 어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맞는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가 되고 학생 집단 전체를 욕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가 되는 세상. 그 모습이 이미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쓰고 있으니까 학생들도 교사들에게 폭력을 쓰는, 폭력과 폭력이 맞부딪치는 교실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교사에 대한 폭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든 교사이든 학부모이든 누구든,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그것은 예컨대 범죄자에 대한 경찰력 행사처럼 엄격한 요건 속에 예외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일방적으로 선정적인 사례들만을 부각시키며 어떤 사람들을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지금처럼 선정적 사건들을 캐내서 계속 뿌려대기만 하는 그런 언론 보도들은, 불공정하며 무책임하다. 그 언론들은 정작 그런 식의 부풀리기 보도가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혹시 그 몇몇 언론들의 보도 추세야말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꺾어놓기 위한 ‘계산’에 따른 것은 아닌가?


‘학교 붕괴’를 직시하라

  나도 한국의 학교 교육이 붕괴해가고 있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요즘 애들이 선생님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더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 학교가 부여하는 과업과 수행하는 교육 활동에 냉소적이거나 불참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소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극소수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보다,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는 이 현실이 더욱 큰 문제이다. 학생들의 교사 폭행은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미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에 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교육이 노골적으로 계급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학교에 차별과 억압이 심할 때, 학교 교육과 사회 현실이 학생들에게 삶에 관한 희망을 주지 못할 때, 학교 교육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서 내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학교 수업이 학생들에게 동기를 주지 못하고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할 때 ― 이럴 때 학교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교육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이유를 잃고 학교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미 1980년대, 1990년대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학교 붕괴’ 담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고용 없는 성장과 입시경쟁, 취업경쟁의 모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는 ‘학교 붕괴’ 현상을 확산시키고 가속화시키고 있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득세하고 학교는 입시․취업기관 혹은 졸업장 발급 기관이 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열의를 갖고 따르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 또한,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부동산 투기나 해라.”라고 대놓고 말하고, 학생들은 성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좌절하고 체념하던,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학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 붕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뭔지, 여기에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입시경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평준화라거나 복지정책 및 경제정책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커다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교육이나 탈학교론, 공교육 재편론 등 여러 가지 논의들이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억압, 그리고 학교간 경쟁을 강화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 또한 ‘학교 붕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학생들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위한 복지를 보장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학교 생활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 ― 학생인권 보장이야말로 학교가 가기 싫고 믿을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재밌고 자발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바뀌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 아닐까? 누구든 진정으로 학교 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진지한 논의와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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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ildaro.com/sub_read.html?uid=5588&section=sc5&section2=%BD%CA%B4%EB
    좀 더 다듬은 내용이 일다 기고글로 실렸습니다.

    2011.01.03 14: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딱딱한꿈2010. 12. 21. 16:41


- 예전에 한 번 쓰려고 기획했지만 결국 쓰지 못한 리포트랄까, 소논문 중에 이런 주제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금욕은 과연 배타적인 것인가. 소비하는 소비자와 금욕적 노동자 이 모순적인 둘을 짜맞추는 것이 자본주의의 인간 교육은 아닌가?" 뭐 이런 문제의식인데,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하는 소비 주체와 금욕적인 노동 주체의 형성에 관한 사례 분석"이라고 해야 할까.


- 주로 휴대전화 문제 관련해서 했던 생각인데,
스스로 좌파적이라고 하는 교사들이나 활동가들 중에서는 "청소년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는 것을 반대한다."라는 요구가 휴대전화 이동통신 자본의 손에 청소년들을 무책임하게 던져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즉 그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규제하는 것은 소비를 절제할 줄 알게 하는 것이고 이것은 반자본주의적/대안적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근데 진짜 그럴까?


- 금욕적이고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인간은 근대 자본주의가 요구한 참고 절약하고 축적하고 노동하는 노동자 상에 가깝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를 많이 하는 소비자들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는 이런 금욕적 존재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공장이나 직장에서는 이러한 금욕적 자기 통제(노동시간 중에는 휴대전화나 메신져 등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 시간을 엄수할 것 등등)가 요구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규제하는 것과 닮아 있다."
즉 학교의 휴대전화 규제나 학생 통제는 전혀 대안적이지도 반자본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건 오히려 "일터에서는 묵묵히 규율을 지키며 일을 하고 일터를 벗어나면 소비자가 되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자본주의적 시민"의 모습과 일치한다.



-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관해서 그것이 결국 "게임 소비의 자유"를 외치는 것이며 게임업계나 자본주의적 욕망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을 보았다. 그러나 그 비판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은, "그럼 청소년을 (게임에서든 휴대전화에서든)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대안적/반자본주의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서 '소비'='자본주의적'이라는 단순한 도식만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그런 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외려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재생산되기 위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훈육은 아닌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야말로, 아동/청소년을 구분하고 억압하고 차별하고 보호해온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방식 아닌가??



- 사실 모든 인간은 소비하고 향유해야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인 방식이든 뭐든지 간에 먹고 일하고 노는 등 모든 것들은 소비되고 향유되는 것이다.
그 소비가 다만 화폐로 거래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원론적으로 접근하면 게임은 놀이의 일종이다. 인간은 놀지 않고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놀이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대안적 방식으로 돈을 쓰지 않는 다른 놀이 문화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 상품이 좋은지 나쁜지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해서 규제할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반적 사실이다.
무조건적인 판매와 소비의 자유를 주장할 사람은 없다. 당연히 사람에게 해로운 상품은 규제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게 굳이 일반적인 모든 시민들이 아니라 '청소년'인가? 또, 게임에 관해서라면 게임의 내용이 과연 인류 보편의 가치-인권이나 평화 등-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고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게임을 밤에 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인가? 게임은 그 자체로 마약이나 독극물 등등 만큼이나 유해한가? 청소년의 경우에 밤 시간에 하는 게임은 일반적으로 유해하단 말인가?

청소년의 문화적 자기결정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청소년들의 참여와 주체 형성을 통해서, 혹은 대안적 문화와 놀이가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게 "청소년에 대한 교육적 책임의 방기"라는 언설은, 역시 청소년들의 입장은 무시하는 꼰대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단순히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에 그치지 말고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 놀이 문화나 시설, 제도, 여건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면 그건 당연히 옳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강제야자/보충수업에 반대하고 학원과 사교육을 비판하고 입시경쟁교육을 폐지하려고 하고 청소년 문화에 관한 예산과 정책에 그렇게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자체가 소비의 자유를 옹호하고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적 입장이라는 식의 주장은 청소년의 인권 문제와 자본주의 문제 사이의 상호작용을 무시한 단견이다.



- 다른 사람이 어떤지는 몰라도, 나는 '분류적으로는 좌파'에 속하겠지만, 어떤 좌파적 도그마("소비는 나쁘다"거나)가 우선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의 경우에는 어떤 사회가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인가, 어떤 사회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할 기회가 보장된 사회인가 등등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런 생각들이 결과적으로 좌파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나는 처음 운동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청소년인권활동가일 뿐이다.



- 게임업계의 이해관계와 청소년들의 이해관계가 갈리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http://gonghyun.tistory.com/806   여기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밖에 2010년 12월 22일 토론회에서 발표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사의 발제문 또한 일독해보신다면 청소년보호정책의 노림수와 문제에 관해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문화 영역에서 자본주의적 문화를 극복하는 방식은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오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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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1. 17. 15:57



아수나로에서 어제 발표한 거구요
담당한 분이 쓰러지셔서 도중에 제가 땜빵으로 밤새가며 자료 정리를 했던 ㅠ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48998.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1213131&code=94040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9115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9269

http://www.suwo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054


관련기사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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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19금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사랑에, 성에 인색하다. 청소년들의 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으면서도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는 부족하기만 하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듯이, 학교들은 학생들의 사랑과 성을 금지하고 처벌하기에만 급급하다. 때로는 입시공부를, 때로는 학생다움을 내세우며.


그러나 사랑할 권리는 하나의 인권이다. 사랑하는 감정, 성적인 행위와 마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사생활의 자유이다. 「2008청소년인권선언」에서는 제8조에서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도 제16조에서 아동은 사생활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불법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추진한 바 있는 광주 학생인권조례안에는 사생활과 개인 정보의 보호 부분에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둘러싼 감정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여 청소년들의 사랑할 권리 보장을 꾀하고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역시 사생활의 자유에 관한 조항에서 “학생의 교우관계에 간섭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랑할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폭력과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인 동시에 실현을 위해 경제적 사회적 능력이 필요한 사회권이기도 하다. 학교의 연애 탄압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청소년 성적 자기결정권 실현을 위한 첫 걸음일 뿐이다. 사랑이 ‘19금’이 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는 정신적․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법적․경제적 이유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안습 상황,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책임감을 기르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교육청들, 학교들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학칙들을 폐지하라.

◆ 학교와 가정에서 실효성 있고 인권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라. 청소년들이 성에 관한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

◆ 정부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사회적 캠페인 및 교육을 실시하라.

◆ 정부는 임신․출산을 한 청소년이 출산․양육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을 마련하라.

◆ 정부는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마련하고 사회적 제도를 개선하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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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이 기사들이 매우 안타깝더군요. 갈길이 너무 멉니다.

    2010.11.18 15: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를 가만히 두란말이야~ 나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
    그들이 하고싶은 말이 아닐까요.. 전 왜 그때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 까요.

    2010.11.21 05: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1. 8. 15:30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 체벌 금지, 대안이라거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서울, 경기 등부터 시작해서 체벌 금지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십수년 동안 이어져온 체벌 반대 운동이 맺은 성과라는 생각에 조금은 기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벌 금지에 대해 공격하고,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체벌은 금지되었는데 그걸 대체하는 '상벌점제'(그린마일리지, 생활평점제)가 더 힘들다고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뭐 이미 체벌이 왜 금지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숱하게 다루어왔으니, 이 글에서는 체벌 금지가 지향하는 그 의미랄까, 체벌의 대안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원론적으로 : 체벌과 체벌 금지 사이



체벌과 체벌 금지를 다루면서 교육관료들(쉽게 말해 교육청 공무원들이라거나, 교장 교감이라거나, 아니면 때로는 교육감이나 교사들 등도...)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체벌을 단지 일종의 '행위'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들은 곧잘 이 문제를 '때리느냐 안 때리느냐', '기합 주느냐 안 주느냐' 정도의 문제로만 봅니다. 그 결과 체벌 금지를 앞두고 "그럼 때리는 것보다 더 약발이 잘 받는 통제 수단이 뭔가?"에 골몰하는 것, 지금 그들이 말하는 '체벌의 대안' 논의입니다.

그러나 체벌과 체벌 금지 사이의 차이는 단지 '때리느냐 안 때리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좀 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체벌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할 대상으로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발적으로나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학생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에 대해 칭찬을 해주거나 보상을 해주면 이 행동이 좋은 행동이라고 학습하고, 그 행동에 대해 벌을 주거나 고통을 주면 이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고 학습한다는 식입니다. 교육은 사회화가 덜 되어서 뭐가 좋은 행동이고 나쁜 행동인지 구별할 줄 모르고 좋은 행동이 몸에 배지 않은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질서를 지키도록 사회의 틀 안에 넣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벌', '고통'으로 체벌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필요하구요.
(대개 이런 걸 '행동주의'라고 하는데요. 뭐 행동주의의 이론이나 방법론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고 행동주의가 딱 이런 내용인 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행동주의를 극단적으로 적용한 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_-)

체벌을 반대하면서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좀 더 주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육은 힘과 지식과 도덕을 가진 교사가 미성숙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사회 속에 살며 삶의 과정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은 학생들의 그러한 성장을 도와서 학생들이 더 좋은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고츠키이론 등등) 이러한 관점에서는 학생들의 자발성과 참여가 좀 더 중시됩니다.


이에 따라 교육 방식에서도 차이가 생깁니다. 체벌을 옹호하는 쪽은 교육에서 어떤 가치관이나 지식을 주입하는 게 좋다고 믿습니다. 배우기 싫어하는 학생에게도 강제로라도 지식을 외우게 해야 합니다.(한국에서는 입시를 위해서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 과정에서 체벌 등의 폭력이 동원되겠지요.
반면 체벌을 반대하는 쪽은 어떤 가치관이나 지식을 주로 경험하고 참여하는 활동을 통해서 익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교육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필요성과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득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체벌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느냐 자체 또한 이러한 교육적-철학적 입장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체벌은 여러 가지 '벌' 중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어쨌건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고통을 느끼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적강화'나 '처벌'의 수단이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체벌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더 주목합니다. 체벌을 당하거나 혹은 체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학생들은, 체벌로 인해서 사람의 몸에 대한 존중이 약해지고 폭력에 익숙해지며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때문에 어떤 교육적 목적을 위해 체벌을 하든 체벌은 반교육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오히려 체벌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은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 체벌의 대안?



체벌의 대안을 이야기할 때는 이러한 교육철학적인 문제의식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상벌점제는 앞서 이야기한 체벌을 옹호하는 입장의 철학이 반영된 대표적인 제도입니다. 학생들을 '상점'과 '벌점'으로 통제하고 학습시키겠다는 거지요. 자기 행동의 의미 등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행동이 점수로 환산되는 비교육성이나 사소한 규정 위반들이 누적되어서 퇴학까지 이를 수도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상벌점제의 폐해는 이미 여러 번 지적되었습니다.

체벌이 없어졌지만 체벌을 대체할 만큼 학생들에게 공포와 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수단이 들어선 학교. 이건 전혀 '대안적인' 모습이 아니고 체벌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럼 체벌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중장기적인 대안은 사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시되었습니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든가, 입시교육이 아니라 좀 더 학생들의 삶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든가, 수업시수를 줄인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지요. 굉장히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이야기인데도 왠지 '비현실적인' 주장 취급 받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 대안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해선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단은 지금 당장의 요구에 따라 더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대안을 이야기해봅시다. 우선 체벌이 일어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뭘까요?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2010년 수도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참교육연구소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체벌의 주된 이유(복수응답)로 "과제나 수업태도"가 56.8%, "두발복장문제"가 41.0%, "지각/결석"이 33.2%가 나왔습니다. 사실 두발복장 문제나 지각 문제 등은 '어떻게 처벌하냐' 차원이 아니라 반인권적인 두발복장규제를 폐지하고 등교시간을 좀 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_-) 학교 생활규정이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는 내용으로 개정되기만 해도 체벌의 절반은 없어질 겁니다.(또한 같은 조사에서 학교의 생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중고등학생들 중 53.4%가 규정이 학생들의 생활 실정과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답했다지요.)

여하간, 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체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수업 운영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수업 중에 떠들거나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과제 포함)을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점이지요. 두발복장규제 등이 없는 초등학교의 경우는 특히 수업 운영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뭐 수업 중에 떠들어서 다른 학생의 학습권까지 침해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이야기하곤 하지요.


*
일단, 그 대안은 어렵지 않습니다. 애초에 체벌 문제를 단기적으로 풀기 어려운 건, 모든 학생들이 그 수업에서 담당 교사의 감독과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그 고정관념을 버리면 대안이 보입니다. 하루 중에 최대 몇 시간 정도는 학생들이 자기 컨디션이나 상태에 따라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대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업 중에 한두 번 떠들거나 잠시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까지 모두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정 그날 그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고 싫은 학생들만 선택하는 겁니다. 사실 학생들이 일부러 악의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고 싶어서 수업 시간에 꾸역꾸역 교실에 남아서 떠들거나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_-)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다 싫은 수업은 듣지 않을 거라구요? 일단은 한 수업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수를 제한하거나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어느 학생이 이 제도를 이용해서 반복적으로 특정 수업을 듣지 않는다거나 너무 많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담을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강제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그 내용을 배울 것 같나요? 떠들거나 딴짓을 하겠지요. 만일 그 수업의 방식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 수업이 좀 더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참여하고 싶어지도록, 학생들과 같이 이야기해서 수업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교사들에게 점수를 매겨서 줄 세우는 교원평가제 따위보다 이게 수업 개선에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대체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체육활동 혹은 예술활동을 하거나, 시사적인 내용에 대해 토론하거나, 인권교육이나 놀이교육을 하거나, 사회적인 문제 해결 능력, 민주적 운영 능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마련하면 됩니다. 수업 진도를 잘 못 따라가서 이해가 안 가서 흥미를 잃은 학생이라면 보충 수업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대체교육 프로그램에조차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은 하루에 1시간 정도는 휴게실에서 쉬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쉴 수 있게 하면 됩니다.

아니면 정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상담교사와 면담하거나 상담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2010년 참교육연구소 조사에서 교사들은 68.9%가 "학생에게 맞춘 특별교육, 전문가와의 상담 및 치료"가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체벌을 대체하는 좋은 지도 수단이라고 답했습니다.

이건 그렇게 어려운 대안도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건 여분의 교실 3-4개와 교사 수를 좀 더 늘리고 외부 강사를 고용하면 됩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예산을 편성하고 추진하면 몇 개월이나 1년 안에 자리잡을 제도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휴게 제도"라고 해도 좋고, 학생들이 마냥 쉬고 노는 것 같아서 이런 이름이 싫은 분들은 "대안교실제도" 뭐 이런 식으로 이름 붙여도 좋습니다.

 여기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이 되려면 학생들이 자기 시간표를 직접 의견을 반영해서 짤 수 있도록 하고 매년마다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만드는 등의 내용이 들어가야겠죠. 학교에 있는 시간 자체를 줄이거나요. 아니면 교과 지식 전달보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교육라는 믿음으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방해하는 학생들의 욕구와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 사이에 즉석 토론/회의/협상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자율적인 교실 정도는 되어야 근본적 대안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건 그냥 "지금과 같은 수업과 학교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 않는 속에서 어떻게 수업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교육적으로[인권적으로] 지도하고 관리할 것인가" 정도 수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미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제도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한 학교에서는 수업 중에 수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은 제한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올 수 있습니다. 핀란드 같은 곳은 수업 중에 딴 짓을 해도 처벌 대상이 되지 않고, 수업이 어렵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 등은 특별지원교육을 받거나 대체 프로그램을 받기도 합니다.(책 『핀란드 교실혁명』을 통해 수학 수업 시간에 뜨개질을 하는 아이 등등 여러 모습이 알려져 있죠.) 애초에 중고등학교인데도 자기 수업 시간표 자체를 학생들이 스스로 편성하면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두거나 하는 나라들도 얼마든지 있어요.
(사실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세계 최장시간을 기록하는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부터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체벌의 대안으로 발표한 '성찰교실제도'도 기본 취지로는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저는 이 성찰교실제가 좀만 교사들 눈밖에 나는 학생들을 가둬두고 격리시키는 용도가 될까봐 우려하고 있지만요. 하지만 어쨌건 "1명의 교사가 이 반의 모든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고 수업에 강제로라도 참여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을 깨는 방향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글은 '성찰교실'을 처벌의 의미가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원해서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가서 그냥 갇혀 있다가 오는 곳이 아니라 유익하고 재밌는 대체 교육 프로그램을 받는 곳으로 바꾸자고 제안하는 셈입니다.
(근데 성찰교실을 운영하면 교장, 교감 등이 학생들을 책임지는 게 늘어나는데, 이를 꺼려하는 교장, 교감 등은 성찰교실제는 별로 안 좋아하고 상벌점제로 때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를 보충할 다른 대안으로 학생 자치의 활성화 같은 것도, 의외로 단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학생 자치는 추상적이고 원칙적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자치적인 질서를 의미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미 지금 교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만, 수업 시간 중에 과도하게 떠들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다른 학생들이 제지하거나 화를 내곤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학습권'을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모습일까요?

학생 자치를 통해서 학생들의 민주적 조직화가 이루어진다면, 어느 정도 일탈적인 학생들은 학생들 내부에서 억제시키는 풍토가 뿌리내리게 됩니다. 학생들이 무력하게 자기 권리를 침해당할 때도 교사가 해결해주길 바라며 침묵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자기 권리를 지켜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그런 문화가 자리잡히면 학교 현장에서 문제 해결은 쉬워질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나 교사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바꾸려고 하겠지만, 동시에 같은 학생끼리의 인권침해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제지할 테니까요. '폭력'을 독점한 소수의 교사가 수백명 수천명의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관념은 학생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힘과 가능성을 무시한 독재적 발상이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통제할 수 없고 원자화된 수많은 학생들과 그 학생들에게 무한대로 책임을 지는 교사들이라는 모델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 함께 민주적 자치 능력을 가진 학교 모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마치며 :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이미 몇 차례 공개 토론회 등에서 언급된 것이니 부담 없이 밝히자면, 이미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들은 체벌 금지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내부 논조를 결정했습니다. 체벌을 금지하고 교육을 '선진화'해야 한다구요. 저는 그게 한편으로는 체벌 금지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상벌점제 등으로 더욱 비인간적으로 통제되는 학교"를 지지한다고 생각해서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체벌에 대해 논의하면서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체벌에 대한 논의는 너무 '가볍'습니다. 체벌이 아니면 뭘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누를 거냐, 라는 식의 논의로는 학생들은 별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교육이 별로 바뀌지도 않을 거구요.

교사 임용은 줄이고 교육 예산은 줄이는 정부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교사들 수가 부족하고 교육환경이 열악하니까 체벌 없는 학교가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납니다.

그동안 교육이-학교가 가지고 있던 모순과 구조적 문제들 등에 대해서는 별 소리도 안 하다가 "현장을 모른다"느니 하며 현재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계속 가져야 한다고 하는 비겁한 일부 교사들(교총이라거나?)에게도 화가 나구요. (사실 체벌 금지는 교사 개인의 폭력과 책임 속에 학생들을 맡겨놓던 상황에서 학교가 제도가 같이 책임지는 것으로 변하기 위한 것이니까 평교사들에게는 이익이라고 봅니다.)

체벌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면서 아주 구조적, 근본적인 곳까지 뜯어고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학교생활규정의 개정, 예산의 확보, 학교가 학생들을 같이 책임지는 여러 프로그램들의 도입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그런 것들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학교에 학생들을 정학시키고 퇴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느니 하는 건 피상적인 사고방식이고 또 더 큰 사회 문제를 잔뜩 낳을 방법입니다. 적어도, 정말로 적어도, 예산과 인력 충원 정도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체벌 논의는 너무 '가벼운' 게 되고 말 겁니다.

체벌의 대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장기적인 것에서부터 단기적인 것까지요. 상벌점제나 퇴학처럼 대안 같지 않은 대안들을 쳐내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관점과 의지의 문제일 뿐입니다.





추신 : 그런 의미에서 교사 임용을 늘리라거나 교육예산을 늘리라는 요구는 단지 사범대생/교대생들의 요구가 아니라 학생.청소년들의 이해관계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역량이 없어서 청소년운동이 거기까지 개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나중에 든 생각을 추가로 남깁니다 ::
 1) 교사 임용을 늘려서 수업 시간 중에 한 교실에 교사를 2명 정도 배치해서 1명은 수업을 하고 1명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독려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지하도록 하는 것도 충분히 단기적 대안입니다.

2) 상벌점제의 경우에, 정 도입을 막을 수 없다면, 수업 시간 중 수업과 관련된 것으로 그 대상, 항목 등을 엄격하게 제한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최소한 상벌점제가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게 하려면요.
(2011년 2월 24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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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라

    정말 잘 읽었습니다
    속이 시원한 글이군요
    '체벌'속에 들어있는 통제의식, 민주화의 퇴행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결코 체벌금지를 반대할수 없을것인데 말입니다..

    2010.11.08 19:19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 ^^;
      체벌 외의 다른 방식으로 그런 통제를 구현하려고 하는 것도 비판해야 한다는 취지로 썼습니당

      2010.11.09 18:02 신고 [ ADDR : EDIT/ DEL ]
  2. 어쩌다

    트랙백타고 흘러들어온 사람입니다.

    일단 글이 너무 길군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이라면 문단정리를 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글을 보면서 한가지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 것은 체벌금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좀더 설득력있는 근거나 대안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논의가 제자리에만 머무는 까닭은 찬성 측 입장의 논거나 대안이 설득력을 가지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제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는 글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대안들이란 것도 대부분은 체벌금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차선책으로 내놓은 것들을 받아적는 수준일 뿐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비전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여 참패한 정치인들의 일례를 굳이 이 자리에서 하나하나 열거하진 않겠습니다.

    그 동안 찬성측이 내놓은 근거는 사실상 한가지 뿐이라고 보입니다. 체벌은 언제나 폭력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고 인격권을 침해하며 막연히 그로 인해 사회의 폭력적 성향을 가중시킨다는 추측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틀린말입니다. 이미 근대국가가 공공연하게 법률로서 폭력행사를 정당화하고 있고 그건 다른 근대국가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대국가에 대하여 정의해 놓은 막스 베버의 말을 참고해 보더라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법률에 의해서 신체의 자유나 인격권을 제한하는 것도 현행 헌법상으로는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은 체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그만큼 철저하게 상벌제도나 수업권 박탈, 부모의 소환 등 폭력을 대체하는 대안들을 마련하고 있으므로 체벌을 가할 필요성이 우리보다 적을 뿐입니다. 만약 그런 대안들이 모두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경우에도 과연 그들이 체벌을 폭력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지할 지는 의문이죠.

    현행법상 부모에게 주어지는 친권 속에는 징계권(체벌권)도 포함되어 있고 교사 역시 부모와 마찬가지로 일정 범위 내에서는 민법상 감독자책임을 집니다. 교사(구체적으로는 학교장이겠지만)에게 부모와 마찬가지로 체벌권(권리)을 주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결국 최종적으로 금전적인 배상을 지는 책임(의무)주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도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사립학교법상 징계권이나 민법상 친권에 근거해서 상해가 아닌 한 체벌(폭력)을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문제삼아 위헌으로 가져간 바는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체벌은 (다소 불분명하나) 현행법으로 정당화되는 범위 내에 있는 기본권 제한인 상황입니다. 따라서 체벌에 의한 제한이 과도하냐 과도하지 않느냐의 문제만이 다른 대안들과의 관계에서 남을 뿐이죠.

    많은 학생들이 체벌금지=내 멋대로 행동하더라도 통제받지 않을 자유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자유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체벌권을 박탈하는 자유를 얘기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지겠다는 대안없이는 논의를 진전시킬 수가 없습니다. 특히 체벌의 주된 원인인 과제나 수업태도 불량에 따른 책임을 어떤식으로 지겠다는 적극적인 대안을 내놓음없이 어떠한 논의를 하던 차이는 좁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상벌제도는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래서 안되고 대안교실은 재정적인 문제가 있으니 우리의 논의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피해가기만 해서는 체벌이 폐지되면 교권이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은 광우병 소고기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워보입니다. 그 불가능을 해내려면 지금 이 글에서처럼 권리만 주장하기 보다는 현행 법을 바꿀 입법자들에게 제시할 타협안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타협의 내용은 현재 재정적인 상황을 감안하여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체벌을 대신할 책임의 내용'에 관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권리와 의무는 바라보는 측면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의어라고 보아야 합니다.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의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은 기만일 뿐입니다. 체벌금지에 대한 권리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이제는 그 이면에 어떤 의무를 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좀더 듣고 싶다는 것이 이글에 대한 저의 감상입니다.

    덧) 민주화가 민주공화국처럼 민주주의나 공화주의를 합쳐 의미하는 것이라면 시민이 가진 권리의 크기와 의무의 크기가 정확히 일치하며, 시민의 다수결로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했던 아테네만큼 민주화에 걸맞는 모범적인 사회는 없을 것입니다. 아테네에서 시민권을 가지지 않은 자는 의무가 없는 노예나 여자들뿐이었으니까요.

    권리만 크고 의무는 한없이 적다면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군주들만 존재하는 군주국으로 공화주의가 퇴행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또한 상대를 설득하여 다수결을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은 민주화의 퇴행이 아니라 단순히 민주주의를 수행할 능력의 부족이 아닐까 합니다.

    2010.11.08 22:18 [ ADDR : EDIT/ DEL : REPLY ]
    • 1/ 이 글은 체벌금지 대안이 뭐냐고 묻는 청소년 활동가 분들을 위해 쓴 글이니까 좀 길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만약에 다른 용도로 널리 퍼뜨린다면 더 줄여야겠죠.

      2/ 이 글은 체벌금지의 당위성이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제일 앞에 분명히 썼을 텐데요 ^^;
      그리고 근대국가가 행사하는 제도적 폭력과 신체적 폭력은 비슷한 걸로 간주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근대국가에게 허용된 폭력 자체에도 직접적으로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데는 커다란 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고문이나 태형 등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 현재 한국의 판례로 볼 때 체벌은 분명히 완전히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등에 비춰서 사법부가 내린 판단이죠. 그리고 저는 그런 법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바꾸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입장입니다만 ^^; 어떤 법이 인권에 비추어볼 때 정당하지 않다면 그걸 바꾸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요?

      굳이 법적 근거를 원하신다면, 형식적으로는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 유엔아동권리협약, 사회권협약, 자유권협약 등이 가정, 학교, 사회 전체에서의 체벌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겠군요.


      4/ 만일 어떤 학생들이 체벌금지를 통제받지 않고 멋대로 행동할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만큼 체벌이나 기타 억압적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살 기회를 주지 않고 체벌-폭력으로 통제하고 억눌러 왔기 때문에, 그렇게 통제하는 데 사용된 수단 하나가 금지된 걸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겠지요.
      저는 충분히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재정적 상황은 정치적, 정책적 판단의 대상이지 고정불변의 상황이 아닙니다.


      5/ 어쩌다님은 국가로부터 부당한 구금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의무를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기본적 인권은 의무 없이도 보장되고 보호받기 때문에 기본권이고 인권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6/ 아테네에서 여성이나 노예가 '의무'가 없었다구요? ^^; 강제로 노동하고 가사노동을 하는 등의 것들은 '의무'가 아닌지요. 자유가 없지만 의무만 있는 대표적 사례일 듯합니다.
      (저는 '책임'과 '의무'는 다른 맥락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과 자유는 같이 다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자유가 행사되는 속에서 그 자유에 대해 책임이 생기는 거지요.
      "교사에게 맞거나 신체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정도 수준의 소극적 자유를 가지고 뭘 거창하게 공화주의나 민주공화정까지.

      2010.11.09 17:13 신고 [ ADDR : EDIT/ DEL ]
  3. 어쩌다를 보고

    윗글을 보고 한마디 남깁니다.

    '체벌은 언제나 폭력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고 인격권을 침해하며 막연히 그로 인해 사회의 폭력적 성향을 가중시킨다는 추측 하나 뿐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틀린말입니다. 이미 근대국가가 공공연하게 법률로서 폭력행사를 정당화하고 있고 그건 다른 근대국가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참 재미있는 소재거립니다만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근대 타국가가 비슷하다고 해서 잘못된 행위가 바른 행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체벌금지=내 멋대로 행동하더라도 통제받지 않을 자유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자유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또 위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제가 볼 때 이글에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단순히 글쓴이의 타인에 대한 시각에 불과합니다.

    '권리와 의무는 바라보는 측면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의어라고 보아야 합니다.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의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은 기만일 뿐입니다. 체벌금지에 대한 권리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이제는 그 이면에 어떤 의무를 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좀더 듣고 싶다는 것이 이글에 대한 저의 감상입니다. '

    마지막으로 위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참 교과서적인 말씀이십니다.
    우린 교과서적 이야기에 대해 좀더 본질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법이고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여기에 대한 시각을 달리한다면 그건 제각각의 시각 차이입니다
    반드시 상대의 시각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와 의무는 참 좋은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권리를 누리고 있으며 무슨 의무를 지고 있습니까?
    인간이 반드시 누려야하는 권리에 부여해야할 의무는 타인에게 그 권리를 누릴수 있게 하는 것 정도입니다.

    마치 학생이 마땅히 더 나은 교육 분위기를 만들어야하는 것처럼 의견이 진행된 느낌이 드는데
    그렇다면 성인은 더 나은 국가를 이루지 못하는한 마찬 가지 취급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까?

    옳은 길은 지향의 대상이지 의무로서 얽매는 순간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 체벌은 인권을 침해하는 수준의 행위입니다. 윗 댓글분의 의견은 마치 살아 있어도 되는 권리를 얻고 싶다면 세상에 이로운 행위를 해라와 같이 들리는군요.

    2010.11.09 08:19 [ ADDR : EDIT/ DEL : REPLY ]
  4. 위에서 언급한 헌재의 각하판결의 내용입니다.

    2004헌마739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31조제7항위헌확인 [2004.10.05] [각하(2호),각하(4호)] [결정문 ] [지정재판부]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에 대해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 위헌이 선언된다면 청구외 김○호의 폭행에 대한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청구외 김○호에 대해서는 이미 폭행 혐의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이 위헌으로 선언된다고 하여 청구외 김○호의 폭행에 대한 법적 평가가 달라질 것은 아니다.

    청구외 김○호의 "폭행이 정당화될 것인가는 법률차원의 문제다." 즉 청구외 김○호의 폭행이 형법 제260조 제1항의 폭행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다만 위법성조각사유로써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교사의 체벌이 포함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로 된다. 그런데,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불과한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이 위헌으로 선언된다고 하여 바로 교사의 체벌이 정당행위가 아닌 것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초중등교육법상 체벌이 위헌이 되어도 형법 제20조에 의해서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판단의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헌재는 형법 제20조에 의해서 체벌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법원과는 좀 다른 입장으로도 보이네요.)

    그렇다면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 부적법함을 면할 수 없다.

    법률에 의해서도 폭행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생각은 본인만의 고견이신 듯 합니다.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는 의사의 치료행위(상해)나 교사의 체벌(폭행) 및 기타 친권자의 체벌(폭행) 현행범 체포(폭행)이 대표적입니다. 만약 교사의 체벌이 형법상 정당행위에 포함되어서 안된다고 보는 특별한 근거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 나름의 논지를 듣고 싶습니다.

    가볍게 제 논의를 정리하겠습니다. 1. 교육의 목적없이 손이나 발로 때리는 행위는 이미 체벌이 아닙니다. 그건 학생들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형사고소로 해결 가능합니다. 2. 교육목적을 가지고 적정한 방법내에서의 행위는 현행법률로 정당화되는 폭행이라고 보는 것이 특별한 반대의견 없는 의견으로 보입니다. 3. 따라서 법률로 정당화 되는 폭력 속에 체벌이 포함되어서는 안되는 까닭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요.

    2010.11.09 13: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 현행법에 의해 폭행이 정당화되더라도 그 현행법이 인권의 기준이나 정의 등에 어긋난다고 판단될 때는 그 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미 인권활동가들이든 학생들이든 국제기구이든 체벌 금지를 요구/권고하는 일은 여러 차례 있었구요.
      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사람에게 현행법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게 얼마나 이상한 말인지는 이해하시겠는지요? ^^;
      교사의 체벌이나 친권자의 체벌 모두가 정당행위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사실상 이미 국제법상 금지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명시된 사안들이고,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요건들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아동을 인권을 가진 인격체로 본다면 정당행위로 봐선 안 되겠지요.

      2010.11.09 17:30 신고 [ ADDR : EDIT/ DEL ]
  5. 픽션들

    학생들에게 수업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여 교사들에게 교육할 의무가 주어지고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교육목적 범위 내에서 체벌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느정도 체벌을 수인할 의무가 나오는 것입니다. 교사들의 수업권은 학생들의 수업권을 위해 제한되기 때문에 교사들의 수업권(수업이 방해된다는 이유로)만을 가지고 학생들의 수업권을 박탈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그런 법률도 없구요.

    굳이 체벌을 폐지하고 싶다면 수업권을 박탈하는 식으로 상응하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학생들이 학습태도 불량들을 이유로 지적을 받으면 수업권이 박탈되고 부모 역시 자녀교육권을 박탈되더라도 학교측에 항의하거나 교육비반환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합의서를 모아서 교육청에 제출하여 설득해 나가는게 어떨까 하네요. 권리와 의무가 일치하여야 한다는 말은 그런 뜻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2010.11.09 14:23 [ ADDR : EDIT/ DEL : REPLY ]
    • - 요약하면 학생들의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와 교사가 존재하는 게 맞지만, 체벌을 교육의 범주나 교육의 정당한 수단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체벌권은 교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 법에 대해 잘 아시는 듯한데, 오히려 말씀하신 그런 조치들이 과잉 조치입니다. 법익의 균형이 맞질 않아요 -_-; 단지 학습태도 불량을 이유로 교육권이 쉽게 박탈될 수 있다는 건 교육권을 너무 가벼운 법익으로 보는 거지요.
      현재 서울시교육청이 학습태도가 반복적으로 불량해서 다른 학생들의 수업 참여에까지 피해를 주는 학생을 제한적으로 '성찰교실'에 보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굳이 법적으로 따진다면 그 정도가 균형이 맞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육권은 인권이기 때문에 침해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강구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성찰교실보다 모두의 교육권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이 글에 대안으로 쓴 겁니다.

      --- 근데 이 글은 체벌 대안 등에 대한 글인데 왜 체벌의 정당성을 묻는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리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다들 글을 잘 안 읽으시나.

      2010.11.09 17:34 신고 [ ADDR : EDIT/ DEL ]
  6. 한가지 혼동하시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흔히들 교사들이 교육적 목적 없이 손이나 발로 때리는 것은 이미 체벌이 아닙니다. 폭력일 뿐이죠. 그건 형사사건으로 고소되면 처벌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미 그런 식으로 처벌된 사례들도 판례가 많이 쌓여있구요. (인천지방법원 2009.04.23 선고 2009고단1010 판결) 특별히 학생들이라는 이유로 성인에 비하여 그런 모든 폭력까지 감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이기 때문에 유난히 인권침해가 심하게 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피해자의 재정적 능력때문에 고소나 소송이 불가능하냐의 문제는 딱히 학생에게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고 방법이 적정하다면 법에서 그것을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행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 역시 딱히 이것까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는 입장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도 다른 정당행위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보고 있는 것 같구요. 심지어 위헌 여부를 판단해줄 필요도 달리 없다고 보는 것 같은 입장으로 보입니다.

    전자의 문제는 체벌금지가 아니라 개별적인 형사고소를 통해서 해결될 문제라고 보이며,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라면 다시 학생들의 책임이 문제됩니다. 교사의 체벌권이 필요없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으로도 충분히 그 교육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모든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쪽의 주장이라면 그에대한 근거를, 체벌만이 그렇다면 법률에서 정당화되고 있는 폭력과 체벌이 어떠한 점에서 다르다는 것인지 구별지어 설득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2010.11.09 17: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 음? 전 딱히 이 글에서 "교육적 목적 없이 손이나 발로 때리는 것"까지 체벌로 보고 쓴 적은 없습니다만. 여기서 다룬 건 대개는 "교육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이뤄지는 체벌"에 대한 거죠.

      - 말씀하시는 체벌의 정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의 학교에서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많은 폭력들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탈적인 폭력이 아니라 '허용된 체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벌 때문에 죽는 학생들도 거의 매년마다 1명씩은 보는 것 같은데, 개중에는 단지 사고로만 판단하는 경우들도 꽤 됩니다.

      물론 각각의 사건들은 혹시 고소하거나 하면 이길지도 모르는 사건들이 많지만, 소송이란 게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리고 단소로 손바닥을 때리거나 발바닥을 때리거나 엎드려뻗쳐놓고 큐대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 판례상에서 정당하다고 인정한 체벌의 경우에도 '학생청소년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폭력인 게 맞습니다.


      - 제가 아는 헌법학자나 법학자 중에서는 체벌 허용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도 꽤 됩니다만 ^^; 대표적으로 오동석 교수라거나. 뭐 곽노현 교육감도 법학자 출신이죠.

      굳이 법적 근거를 원하신다면 헌법 뿐 아니라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를 인정받는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협약 등에서도 체벌 금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을 법원(法原)으로 잘 삼지 않는 국내 법조계의 풍토 탓에 판결에 잘 반영되지는 않습니다만.


      - -_-; 현재 학교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순전히 법적으로만 말씀드린다면-

      공권력에 의한 체포나 혹은 정당방위 등으로 행사되는 폭력과 체벌은 분명히 성격이 다른 폭력입니다.
      경찰 등 공권력의 경우이든, 정당방위를 하는 개인의 경우이든, 구체적이고 긴급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폭력의 행사가 불가피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폭력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오히려 체벌을 옹호하는 쪽이 특정 상황에서 체벌이 불가피하다는 걸 입증해야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체벌이 없이 교육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나라의 사례이든 체벌 없이 교육을 하는 학교들의 사례이든 입증되어있으며, 체벌로 달성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에 관해서도 많은 이견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 신체적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특정 상황이라면, 싸움을 뜯어말리는 과정에서의 물리력 행사나 자기를 해하려 드는 학생에 대한 정당방위 정도겠지요.

      2010.11.09 17:35 신고 [ ADDR : EDIT/ DEL ]
  7. 위 댓글에도 이미 언급했었는데, 제 댓글을 잘 안 읽으셨나봅니다. 체벌의 대안 등에 관하여 소극적인 부정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서 적은 것이었습니다. 체벌의 정당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체벌은 금지하고 대신 다른 대안을 취하자는 입장 아니셨습니까? 그러나 현재까지 나온 대안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정적 제약이 있다는 식의 부정만으로는 그 어떤 현실적인 소득도 얻을 수 없고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넌 어쩌자는건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데? 이런 의문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 체벌이 정당한지 2.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 제한이 필요한지 3. 그 제한수단으로 체벌이 지나치다면 다른 대안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의 순서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 법률로 체벌(폭행)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 헌법 제37조 2항에 의해서 법률에 의해서 모든 기본권의 제한이 가능합니다. 헌법에 근거한 법률에 의해서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률에 의해서 폭행(위에서 말한 허용범위 내의 신체의 자유 제한)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헌재의 헌법해석에 대한 입장입니다. 저 역시 그 논지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체벌에 의한 제한이 과잉이냐 아니냐의 문제만 남는 것이라고 설명한 까닭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공현님께서는 저와는 달리 폭행은 어떤 사유(법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하셨으나 실제로는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근거한 법률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논지를 펴고 있고 저도 그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렇다면 남들과 다른 주장을 하실 때는 그에 대한 마땅한 근거를 제시해주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가령 비교법적으로 다른 나라의 헌법은 어떻게 되어 있다는 식의 내용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기로 법률에 의한 기본권제한(신체의 자유 포함)을 부정하는 나라는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헌으로 제37조 2항을 삭제하자는 설득도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고문과 체벌을 비슷하게 보시는 듯 한데;; 고문이 금지되기 때문에 체벌도 금지된다고 보는 것은 체벌의 개념을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범위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보시는 것 아니십니까?

    2. 교육목적 달성을 위한 제한이 필요한지 :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나라든지 공감합니다. 미국이나 유럽등도 체벌을 대신하는 대안들을 여러방면으로 간구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 보면 그들도 기본적으로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서 학생들에게 일정한 페널티를 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페널티로서 다른 대안들이 너무 잘되어 있기 때문에 체벌이 필요없는 상황일 뿐이지요. 그러니 남는 문제는 우리의 상황에서도 그 페널티가 꼭 체벌이어야 하냐? 이것뿐입니다. 한마디로 그 수단으로서 체벌이 적합하냐 혹은 너무 과중하진 않느냐의 문제가 남을 뿐입니다.

    3. 체벌을 대신할 다른 대안은 없는지 : 체벌 존치를 주장하는 교사들의 주된 근거는 (다른 수단이 없다면 비례원칙상 법률로도 정당화되는) 체벌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제시한 대안들의 헛점을 꼬집어보았자 사실 체벌 존치를 주장하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그러니까 체벌만이 유일무이한 수단이다)을 더욱 공고히 할 뿐입니다. 체벌이 꼭 폐지되어야 한다면 체벌을 대신할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그들이 지적하는 대안의 헛점을 어떤식으로 보완해 갈것인지를 탐색하여 제시하는 것이 의미있는 행동일 것인데 아쉽게도 체벌금지를 찬성하는 입장 중에서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제시안을 내놓은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업을 방해하거나 친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학생에게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다른 식으로 제한을 가해야 하는데 성찰교실은 제한이라기 보다는 수익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것 역시 상대를 우롱하는 짓이죠. 상대는 그럼 어떤 제한을 감수하겠냐고 묻는데 우리는 성찰교실에서 성찰이나 하며 있겠다라고 하면 저라도 그런 곳이 있다면 기꺼이 수업권 포기하고 그리로 갈것 같군요. 그 제도를 남용하는 학생들이 그리 적진 않을 듯 하네요. 덧붙여 위에서 말한 수업권 박탈은 독일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 기본권 보장이 잘된 선진국이라고 보는데 아직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위헌을 안 맞은걸 보면 법익형량에 어긋난다는 그 주장 역시 독자적인 견해가 되겠군요. 사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판례들은 대부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를 고대로 갖다 베낀다는 그런 뒷다마(?)들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위헌판결 받으면 그땐 그 주장이 설득력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겠죠.

    게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교실은 재정적인 제약(상담원이나 지도선생)이 따릅니다. 말안듣는 놈 떡하나 더준다는 속담처럼 기꺼이 지갑을 열 생각이 있는 관대한 상대방을 만난다면 그런 배짱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상대방이 관대한 인물인지 인색한 인물인지 정도는 파악을 해가면서 절충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그 쪽도 구미가 당기겠죠.

    사실 체벌 존치론자들도 항상 말끝마다 다른 수단이 없으니까, 라는 단서를 답니다. 그들 대다수가 체벌같은 변태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이 아닌 이상 체벌을 꺼림직하게 생각한다는 증거로 제게는 읽힙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다른 수단을 찾는게 진심으로 체벌금지를 바라는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낫지 않습니까.

    어찌되었건 논의가 제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는 듯 하여 이쯤에서 저는 퇴장하겠습니다.

    그리고 문단 나누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읽는데 눈이 좀 아팠거든요.

    덧) 입증책임은 잘못 알고 계신 듯 하여 적습니다. 책을 참고하여 덧붙이느라 좀 늦어진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입증책임이란 주장한 사실이 불분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로 인해 패소위험을 부담할 책임입니다. 민사소송법적으로 보통 입증책임은 주장을 하는 자가 집니다.

    체벌보다 효과적인 다른 대안이 있기 때문에 체벌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는 자가 다른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 대안이 체벌보다 더 효과적인지(이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체벌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 성공한 바가 없으니 그 성공가능성 및 재정적인 수단까지)를 제시해야 하는 겁니다. 그 대안이 효과적이거나 실효적이라고 판단되지 않을 경우에 그로 인해 불분명한 사실(효과적인 대안이 존재하는지 불분명)이 되면 그로 인한 불이익은 주장한 자가 집니다. 결국 다른 효과적인 대안은 없는 것이 되어서 체벌만이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되는 겁니다.

    입증책임은 법정에서 판사들이 어떻게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나 하는 말이고 실생활에서 입증책임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 좀 웃기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건 법학과 상관없이 상식적으로 법개정을 주장하는 자가 구체적인 입법안을 조사하고 그 입법의 성공가능성을 분석하여 보고서로 제출해야지 법을 내버려두자는 자가 입법개정금지이유를 제시하겠습니까?

    말씀하신 곽노현 법학자의 글을 찾아보았으나 그 분도 체벌이 위법한 이유는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체벌은 선택했기 때문에 과잉제한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사실상 다른 수단이 없다면 체벌이 정당화된다는 것까지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그 다른 수단은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도입시에 성공가능성에 의문을 제시하기 때문에 다들 긴가민가 하는 것이겠죠.

    2010.11.10 14: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0. 16. 15:21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공청회

때 :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2시
곳 : 한국건강연대 3층 강당 (경복궁역)



"교육의 중심에 사람을!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이다!"
이런 믿음으로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자 합니다.
시민들의 힘을 모아 학생인권의 시대를 열기 위해 주민발의운동을 시작합니다.
주민발의안 초안을 발표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으니 함께해주세요!



인사말씀 홍세화 (주민발의 청구인 대표)

발 제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 주민발의안 초안 발표

토 론

오동석 아주대 헌법학교수,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

학생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김혜정 학부모
이복균 신도림중학교 교장
서울시교육의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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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10.17 11:3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9. 28. 21:02


청소년인권과 청소년인권운동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쓴-

아니 정확히는 옛날에 쓴 글 두개를 편집해서 합친 다음에 마무리 부분만 새로 추가한 글;;



Let me Introduce 청소년인권운동


‘미성년자’라는 굴레


청소년들에게는, 법적으로 붙어 있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미성년자”라는 이름입니다. 민법에서는 만 20세 미만, 청소년보호법에서는 만19세(사실상 연20세) 미만, 공직선거법에서는 만 19세 미만 등등으로 그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요? 미성년자라는 말은 ‘아직 성년이 아닌 사람’, ‘아직 완성된 나이가 아닌 사람’, ‘미성숙한 나이의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이건 마치 장애인을 “비정상인”이라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같은, 괴악한 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별적인 말이란 거죠.

어떤 사람들을 “미성년자”로 이름 붙이고 “미성년자”로 대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미성년자”라고 불릴 때 그 사람들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다른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의 강요를 당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니며 교육받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정치 참여 같은 문제에서는 전사회적 왕따를 당합니다. 그들은 학교의 교육과 가족의 보호․통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니까, 성숙한 사람들이 그들을 때려서라도 잘못을 고치려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항은 있을 수 없죠. 왜냐하면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이 항상 더 옳을 텐데. 그러니까 학교를 운영하든 자기 삶의 진로를 결정하든 정책을 결정하든, 그들은 쏙 빼놓고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들은 혹시 무슨 사고를 저지르거나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니까 밤에는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보호자의 허락 없이 돌아다니거나 외박을 하거나 하면 안 되죠. 돈을 주거나 돈을 벌 수 있게 했다간 잘못 쓸 수도 있으니까 조금씩조금씩 용돈만 주거나 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이니까 일을 하더라도 그건 사회 경험을 하고 배우는 것이고, 돈을 조금만 주거나 좀 함부로 대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다.

미성숙한 그들을 사회는 ‘보호’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니까 혹시 책이나 그림이나 영화 같은 걸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잘못된 걸 따라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다 미리미리 금지해둬야 합니다. 성행위? 섹스하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거나 하면 어떻게 책임을 지겠습니까? 당연히 다 금지해야죠! 그렇게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성욕이나 성적 자유?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더 두드러지는 건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더 무거운 짐이 지워집니다. 입시경쟁, 취업경쟁이라는 짐이죠.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미성년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만들기 위해서, 경쟁은 옵션이 아닌 필수입니다. 한국처럼 먹고 살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현실이 바로 청소년인권 문제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 문제로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들이 학교와 가정에서의 문제이고, 그에 더해서 노동, 정치, 문화 등의 분야들이 다루어집니다.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미성년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차별과 폭력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청소년들을 선도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아동, 청소년들의 인권 담론도 세계적으로 보면 보통 이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에서, 아동 청소년들이 인격체로 존중받고 참여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동보호나 청소년보호 담론과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사이에 긴장 관계가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어른들의 편견이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고 모순라며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한국의 청소년인권운동


한국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은 주로 학교와 교육에 관한 저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딱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청소년들이 사회에 저항했던 몇몇 대표적인 사건들을 살펴봐도 그러합니다. 1920년대 30년대의 학생들의 항일운동 속에 같이 끼어 나왔던 식민지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나, 1980년대 중후반에 학생회장 직선제를 외치고 보충수업철폐를 외치고 학교민주화를 외쳤던 중고등학생들의 운동이나 대체로 그 문제의식은 학교와 교육제도를 향해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일제강점기의 식민지 문제, 군사독재와 민주화 문제, 노동자와 철거민 등 계급문제 등)들이 밀접하게 결합해있기는 하지만요.

1990년대 후반 PC통신과 인터넷에 힘을 얻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청소년인권운동 역시 처음에 가장 많이 얘기되었던 이슈는 강제자율학습과 강제보충수업, 체벌, 두발복장규제 등 학교에서의 인권침해들이었습니다. 또, 청소년인권운동을 한국 사회에 알린 큰 사건이었던 2000년 두발자유화운동인 ‘노컷운동’ 역시 학생인권 분야의 운동이었지요. 아직 청소년들이 ‘미성년자’로 이름 붙여지고 사회 전반에서 차별받고 인권을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나 청소년인권에 대한 체계적 주장들은 부족했었고, 주장하는 내용도 좀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는 이와 함께 만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노동-아르바이트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불만 등도 막 시작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2000년대 초중반은 여러 가지 청소년인권 모임이나 단체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여러 가지 청소년인권운동의 이슈들이 사회적으로 제기되던 시기입니다. 두발자유, 체벌금지, 0교시 반대, 학생회 법제화, NEIS 정보인권, 입시경쟁반대, 종교자유 등을 꼽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청소년인권운동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 시기이기도 합니다. 돈도 없고 마땅한 공간도 없는 현실,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어서 지속되기 어려운 운동의 태생적 조건, 운동을 위한 이론의 부재, 축적되지 않는 운동, 학교와 사회의 탄압 등등. 특히 다른 운동들과는 달리 운동의 당사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고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버려서 운동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은 청소년인권운동의 계속되는 고민거리입니다. 한때는 자발적으로 생긴 청소년인권모임 중에 3년을 넘게 버티는 곳이 없다는 게 정설일 정도였으니까요.(단체의 주요 구성원들이 고1 혹은 중3 때 시작해서 고2, 고3 때까지 활동을 하고, 수험생활 때 본격 돌입하거나 졸업을 하게 되면 모임이 망하는;;)

2005년, 2006년은 그러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온 주체들이 과거 운동을 평가하고,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토론이 이루어졌던 시기이고, 그 결과 청소년인권운동을 안정적으로 해나가는 단체와 연대체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셈입니다. 그 이후 2008년 촛불집회와 교육감 선거, 일제고사 등을 거치며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운동이나 교육정책에 관한 운동 등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민간에서 교육청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러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성과라고 해야겠지요. 물론, 다른 한편으론 이명박 정부 이후로 여러 학생인권 현실과 교육 상황들이 후퇴하고 운동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보편적이지만 부문적인, 부문적이지만 보편적인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청소년은 소수자인가?’라는 질문인데,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왜냐면 청소년들은 그 권력관계나 인권 상황들을 보면 사회적 소수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어쨌건 청소년이거나 과거에 청소년이었었으며 지금 청소년인 사람도 언젠가는 청소년이 아니게 된다는 점에서 청소년 문제는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은 부문적인 문제인 동시에 보편적인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청소년들을 단지 ‘미래의 기대주’로 보거나 ‘우리 운동이 더 오래 가기 위해선 청소년들을 조직해야 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청소년들을 지금 여기에서 같이 운동을 하고 인권과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동등한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쉽게 말을 놓고 하대를 하는 어른 활동가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소수자로서의 감수성인 셈이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이 언젠가 청소년이 아니게 되고 또 다른 삶을 살게 될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시선을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어서, 가끔은 그냥저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거나 그런 걸 이용해먹기도 합니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청소년들의 인권 문제는 소수자 문제로서도 보편적 문제로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제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정치에서, 경제에서, 문화에서 청소년들이 인간으로 대우받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직접 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지금 자신이 청소년이 아닌 분들이라도, 청소년인권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라는 궁색한 이유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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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9. 20. 04:04


사랑도 인권이라규!

- 청소년 연애 탄압 사례를 조사합니다 -


“남·여 학생이 학교 내외에서 짝지어 다니는 것을 금한다.”
“재학생의 교내외 이성교제는 금한다  이성교제를 한 학생 : 장기선도(가정학습, 병원이나 치료전문기관 의탁)”
“벌점 20점 : 동성간의 비정상적인 교제”


성적 떨어진다며 연애하는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교사,
‘이성교제’를 징계하고 손잡는 것에 벌점을 매기는 학교,
동성애를 ‘비정상적’이라며 검열하는 규정.....

사랑을 탄압하는 구닥다리 인권침해가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도 우리의 당당한 인권입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금지당한 사례를 모읍니다.
어이없는 교칙, 친구의 경험, 나 자신의 경험 등등.......

지역, 학교 이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onlyasunaro@naver.com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2010년 10월 11일까지 보내주세요! ^^;)


 ※ 보내주신 사례들은 익명 처리 후 인권 현실을 알리고 바꿀 것을 요구하는 데 사용됩니다.
     제보자의 신분 등이 노출되지 않게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http://asunaro.or.kr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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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9. 15. 14:26

교사도 폭행당하는데...학생인권조례 무색

평등학부모회 "교장사퇴, 사립재단퇴진" 요구

최정철(현장기자) 2010.09.15 08:25




교육-사회단체가 교사를 체벌한 경기도 평택의 H고교 학교장 김모씨 사퇴와 사립재단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H고교 앞에서 14일 오후에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공적인 영역인 교육과 학교를 사적인 족벌사학이 지배하고 운영하는 사립학교의 구조차체가 폭력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면서 ‘교장의 사과와 사퇴’, ‘사립재단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김태균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표는 “학생인권실현을 위해 학생인권조례재정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학생의 ‘용의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교사를 체벌하였다. 교장이 학생 복장문제를 이유로 교사를 폭행할 정도면 학생들은 어떠하겠는가?”라며 해당학교장의 행태를 비판했다.
권오일 경기교육운동연대 ‘꼼’ 대표는 “학교장이 학생들 앞에서 담임교사를 폭행한 것은 반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패륜적인 행위다”라며 학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관계자는 “해당학교의 추가적인 불법행위와 비리행위에 대하여 조사 중이고 지속적인 대응 할 것”이라 밝혀 해당 학교의 문제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을 경고했다.
경기도교육청의 관계자는 “사립학교에 대한 징계권은 이사회에 있기 때문에 도교육청의 권한은 제한적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추가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밝혀질 경우 그 책임의 중함을 따져 교장의 해임 등을 지시할 수 있으며, 이사장 등이 이를 거부할 경우 임원승인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 여운을 남겼다.

이번 사건은 교장인 김모 씨가 지난달 24일, 점심시간에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 상태를 점검하면서 용의복장이 불량한 학생의 학급 담임을 체벌 했다. 체벌 당시, 학생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교사는 칠판에 손을 짚고 회초리로 엉덩이를 1~3대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체벌당한 교사는 여성 2명을 포함한 총 7명이었으며, 일부 교사들은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이후 체벌을 지켜보던 한 학생이 도교육청 게시판에 밝히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도육청은 두 차례 감사를 실시했고, 교장의 교권침해를 인정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모 교장은 도교육청 감사에서 “교육차원에서 때린 것”이라며 “이후 교사들에게 사과했다”고 밝혔다.

한편, 평택에 위치한 또 다른 사립 고등학교에서는 조퇴하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치마를 들춰내는 방법으로 ‘생리검사’를 실시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며, 이 학교 또한 족벌경영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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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9. 13. 03:07


교육희망에서 원고 청탁받고 썼던 글인데요

http://news.eduhope.net/news/view.php?board=media-50&id=12317
이런 식으로 실렸네욤.

아래는 원래 썼던 원문입니다.
실린 거는 분량 관계상 좀 편집된 거 같네요.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청소년인권 입문서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나처럼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한 4-5년 정도 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병’ 같은 게 있다.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것에 질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학생인권 분야에서 그런 경향이 심한데, 예컨대 “두발자유가 왜 인권인가”, “휴대전화 압수는 왜 인권침해인가” 같은 이야기들을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대답하기 지긋지긋해 하고 귀찮아하는 증상을 보인다. 정작 학생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제 막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초적인 이야기는 하기 귀찮아하니, 이것 참 문제 있다. 청소년인권에 관심 좀 가지고 있고 공부 좀 해본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라면 비슷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번 체벌이 왜 인권침해인지, 같은 어찌 보면 명명백백한 것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나왔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김민아 지음. 끌레마.)라는 좀 뻔한 제목의 책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 일을 하던 사람이 썼다. 책의 표제도 그렇지만 “청소년, ‘지금-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라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이 고만고만하게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사랑으로 지도하자는 류의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인권에 대해 발언해오고 쌓아온 우리의 이야기들이, 비록 비주류 기구이긴 하지만 정부기구에서 일하던 사람에게도 이만큼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작은 성취감 같은 것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1부 「이분법에 갇힌 청소년」에서는 청소년과 학생을 보는 대략적인 관점들에 대해 다루고 있고, 2부 「유예된 권리, 그러나 ‘지금-여기’가 중요하다」, 3부「가고 싶은 학교」에서는 주로 학생들의 인권, 학교에서의 인권을 다루었고 일부 가정에서의 인권 문제도 다루고 있다. 4부 「살고 싶은 사회」는 학교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의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차별에 관한 사례들과 문제의식으로 채워져 있다. 체벌이나 두발자유 뿐 아니라 벌점제, 무상급식, 사생활의 자유, 교육시설과 환경, 노동인권, 학벌주의, 외모차별 등까지 청소년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인권 문제들을 폭 넓게 담으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각 챕터가 교과서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인권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의 경험담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되었던 사례들이 나오고, 그 문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저자의 견해를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국제인권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등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제시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모든 챕터가 이런 구성인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Tip 본문관련 조항’에서는 그 인권 문제에 관련된 법이나 국제협약의 조항, 국제인권기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참고 자료로 보여준다. 그리고 매 챕터마다 뒤에 ‘인권의 눈으로 더 넓게 더 깊게’라는 박스 형태의 글로 인권교육 프로그램이나 경험담, 다른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김민아 씨가 인권교육을 다니면서 만난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그 청소년들이 인권교육 과정에서 만든 이미지들은 이 책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좋은 양념이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청소년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위적으로 우리의 어떤 의식과 태도를 바꾸자 정도의 논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예컨대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사생활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존중합시다”로 좀 약하게 결론을 맺고 있고, 학벌주의를 이야기할 때도 마무리가 약하다. 이건 인권침해니까 하면 안 된다, 이래야 한다, 투의 이야기들이 계속되기 때문에 도덕교과서처럼 공허한 느낌마저 준다. 마지막 챕터의 소재로 ‘삐삐 롱스타킹’을 택한 건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만, 가정과 학교로부터 자유로운 아이인 삐삐 롱스타킹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담지 못하고 “삐삐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기를 바라본다.” 정도로 정리하는 것은 소재가 아깝다.

  하지만 딱 그정도 선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별 거부감이나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청소년인권 문제에 대해 이제 막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청소년인권이 어떤 건지 그 대략적인 관점과 내용을 알고 익히기에는 크게 빠뜨린 것 없이 만들어졌다. 인권 문제에 대해 물어보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나 청소년들에게 한 번 부담 없이 읽어보라며 내밀 수 있는 책, 그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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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9. 8. 23:15

[페미니즘인(in)걸]"부모님 모셔와"가 무섭지 않은 세상을 만들려면?

청소년과 여성, 가족 제도에 스크래치 내기

공현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뭔가 규정을 어기거나 학교 눈 밖에 나는 짓을 했을 때 가장 두려운 조치는 뭘까? 그야 당연히 체벌이나 욕설, 또는 퇴학 같은 징계들 모두 다 무섭긴 무섭다. 그런데 내 경험상 가장 손써볼 도리가 없으면서도 껄끄러웠던 것은 “집에 전화하는 것”, “부모님(혹은 집안 어른, 보호자) 불러오는 것”이었다. 뭐 이런저런 집안 사정에 따라 다들 조금씩 느끼는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부모/보호자 소환은 공식적인 징계도 아니고 직접 두들겨 패는 폭력도 아니라서 학교 입장에서는 부담될 것 없으면서, 학생 입장에서는 참 대응하기도 어렵고 압박스러운 스킬 중 하나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학교의 탄압은 버텨냈으면서도 이 집안의 압박 ― 가정탄압 앞에 굴복해야 했다.

교사들의 이 “부모님 모셔와” 스킬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생활 전반을 모두 규율할 권력이 부모/보호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교사의 권한을 정당화하는 주된 논리 중에서 “부모/보호자로부터 교육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부모/보호자에게는 청소년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또 부모/보호자는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하고 지도할 권리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벌을 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은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기가 힘들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부모/보호자들은 청소년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배력도 가지고 있다. 부모-자식 관계에서는 대놓고 대들고 반항하기가 껄끄러운 문화적 심리적 장벽들도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 집에 전화를 하고 부모/보호자를 부르는 일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힘을 행사할 수 있고 청소년들 입장에선 저항하기도 힘든 권력자를 불러들이는 조치인 셈이다. 학교보다 더 강력한 권력은 가족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라면 문제제기를 할 거리가 되는 일들도, 부모/보호자에 의해 집안에서 이루어지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곤 한다. 예컨대 학교 안에서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나눠줬다고 해서 징계를 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자식이 그런 전단지를 나눠줬다고 어머니가 자식을 혼내거나 용돈을 깎거나 외출금지를 내리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학교가 학교에 반항적인 학생의 생활을 감시하기 위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거나 하면 사회적 논란이 일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자식을 걱정해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부모/보호자와 자식/청소년의 관계가 권력관계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또 ‘부모’라는 엄마와 아빠가 있는 정상가족 중심적인 용어를 벗어나기 위해서 언제부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몇몇은 “친권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페미니즘 : 가족 비판의 동지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끊임없이 좋은 곳, 회복되어야 할 곳으로 일컬어진다. 학교에서도 음악시간이면 “즐거운 곳에서 나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내 집뿐”이라는 노래를 배우고, 동요도 엄마, 아빠와의 추억이나 화목한 가정을 소재로 한 게 많다.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전해줄 수 있겠니. 먹고 싶은 것이나 놀고 싶은 것이나 모두모두 할 수 있게 해줄래.”라고 노래하는 「피노키오」라거나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하는 「어른들은 몰라요」가 가장 투쟁적일 정도?) 영화에서 공익 광고에서 신문에서 법에서 가족은 계속 건강하게 회복되어야 할 곳, 삭막한 사회에서 마지막 안식처 정도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 한편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에 속한 청소년들은 ‘정상 가족’을 당연한 걸로 전제하고 있고 가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는 사회에서 ‘정상 가족’을 가지기를 소망하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청소년들의 삶을 살다보면 과연 가족이 그런 것인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청소년들은 가족에서는 정(情) 같은 것 말고도 생활을 하나하나 규율하고 명령하는 권력도 경험할 수 있다. 가족이 안식처라는 것은 노동에 지친 남성 가부장을 위한 판타지는 아닐까? 청소년에게 가족은 등을 누이고 쉬는 곳이 되기도 하지만 공부하라는 압박을 받는 곳, 또 다른 일터, 친권자에게 잘 보이고 생활비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에서는 친권자들에 의해 사랑과 교육의 이름을 달고 체벌이나 감금 같은 폭력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때로는 소유욕과 의무감이나 권력의 행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진로나 생활을 놓고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청소년과 친권자 사이의 갈등은, 가족이 순전한 ‘공동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가족’ 안에서도 충분히 많은 폭력과 권력관계, 사회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가족 비판의 영역에서 청소년운동의 ‘선배’인 셈이다. 페미니즘은 결혼이 불평등한 계약이고 가족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으며 여성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족 안에서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가족 제도에 의해 여성들의 성은 통제받는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일터와 사회는 남성들의 공간이고 가족은 여성들의 공간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여성들에게 가사노동, 양육노동, 감정노동 등을 부담시킴으로써 가족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왔다. 여성들에게 가족은 안식처이자 보금자리가 아니라 일종의 일터이다. 그것도 그 일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처럼 가족이 자연스러운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그 안에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과 권력관계들이 얽혀 있는 사회적인 제도라는 관점이 만들어진 것에는 페미니즘의 기여가 컸다. (사회주의-공산주의나 아나키즘 역시 이러한 관점을 만드는 데 일부 기여했다.)

페미니즘에 따르면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할 책임을 어머니-여성에게 떠맡기는 걸 정당화하는 ‘모성’ 역시 자연스러운 게 아닌 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비판은 청소년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이다. 친권자들이 가진 양육의 책임은 동시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하고 규율할 권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성’ 이데올로기 등을 비판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가족 안에서 겪는 억압과 갈등을 어느 개인의 문제 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사회 제도에서 가장 많은 부분 맞물려 있다. 체벌이나 가정폭력,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과 억압 등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여성과 청소년 모두가 집에 있어야 할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점,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 존재라는 점도 동일하다. 양육의 책임과 그 권력의 문제에서는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의 경우 서로 입장이 다르지만 같이 극복해야 할 얼키고설킨 굴레가 된다. 여성 청소년들이 남성 청소년들에 비해 가족 안에서 더 많은 억압을 받는 현실에서도 페미니즘과 ‘청소녀니즘’(청소년+이즘ism)이 만나는 교차점을 볼 수 있다.

물론 남성 가부장 역시 가족 제도 안에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고개 숙인 아버지’ 등의 담론을 보면 지금의 가족 제도가 남성 가부장에게 어떠한 부담을 주고 있고 또 가족의 판타지가 이를 어떻게 은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지금의 가족 제도를 바꾸기 위해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고 거기에 저항할 동기가 있는 주체는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이다. 가족을 비판하고 스크래치를 내고 바꾸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페미니즘 운동과 청소년운동은 동지 관계에 있다.


연대가 가능하든 말든

그러나 현실을 보면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이 연대해서 가족을 바꿀 수 있을지, 나는 좀 의문스럽다. 이른바 ‘정상 가족’ 속에서 청소년들은 여성-어머니와 많은 충돌과 갈등을 겪는 일이 많다. 아버지는 좀 더 무게 있는 라스트 보스 급, 권력자로 존재하면서 중요한 순간에만 나서서 권력을 휘두르고, ‘정상 가족’ 안에서는 어머니가 청소년들의 일상생활 속에 권력자로 등장한다.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저항할 때는 청소년과 여성-어머니가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여성-어머니가 연합하여 청소년의 삶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려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남성 청소년과 아버지가 여성-어머니를 착취하기도 한다.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은 지금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직접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쉽사리 연대할 수 없다. 하긴 애초에 가족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강고한 이 사회에서는, 가족의 문제를 느끼더라도 그걸 가족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 짓는 사람들 자체가 드문 판이니 이 또한 하나의 탁상공론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페미니즘 운동과 청소년운동에게 가족은 같이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짧은 청소년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페미니즘 운동 역시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가족을 충분히 비판하고 바꾸는 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우선은 가족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포장하는 사회에서 가족을 하나의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제도로 보고 그 제도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족끼리 서로 존중합시다.”, “서로 대화하는 가족을 만듭시다.” 같은 류의 캠페인을 넘어 가족이 사회적인 운동과 정치의 대상으로 생각되기 시작할 때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들과 여성들의 가족 안에서의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우리의 다른 이해관계를 내세워 가족 제도에 스크래치를 내고 태클을 검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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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8 호 [기사입력] 2010년 09월 08일 17:46:2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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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9. 6. 21:19

[성명]

서울시교육청의 ‘체벌없는 평화로운 학교만들기’ 정책 시행에 부쳐

 

  학생인권조례제정서울운동본부(이하 서울운동본부)는 이번 달부터 시행되는 서울시교육청의 ‘체벌없는 평화로운 학교만들기’ 정책을 적극 환영한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교육에 있어 인권보장은 우리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목표이다. 체벌금지는 교육의 현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교육을 인간다운 교육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으로바꾸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서울운동본부는 9월 한달 동안 각 학교별로 체벌금지 및 대안 마련을 위한 교칙 개정 속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들 사이의 생산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길 희망한다. 체벌이 실질적으로 사라지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교육주체들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체벌금지에 대한 공감이 모아질 때 체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며, 체벌을 대신할 수 있는 현명한 지혜들이 모아질 수 있을것이다.

  일각의 우려처럼 체벌금지 시행에 있어 초기 학교 현장의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혼란에 겁을 먹을 것이 아니라 체벌금지가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로 살피어야 할 것이다. 알다시피, 체벌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교사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체벌금지가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토론과 함께 교육당국의 지원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서울운동본부는체벌금지에 반발해 공청회 과정에서 항의를 하고 집단퇴장을 하거나 여전히 체벌금지 조치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는 일부 교장․교사 및 교육단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폭력을 통해 쉽게 교육해왔던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 체벌금지에 대한 거부반응은 일면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가르치고, 가르쳐 온 대상이 동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길 부탁한다. 하물며 동물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인간에 대한 폭력을 계속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심히 의심케 할 뿐이다. 인권이라는 세계적․시대적 추세를 거스르기보다는 폭력 없이 학교운영이 가능할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에 하루빨리 동참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체벌금지를 넘어 학생인권의 전반적 현실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체벌문제는 우리가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지만 이외에도 우리가 풀어야 할 학생인권의 문제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학생인권 전반을 고민하는 학생인권조례는 그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촉구한다.

 

 2010. 9. 1

학생인권조례제정 서울운동본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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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8. 21. 12:27

1
체벌이든 강제야자든 복장자유든 마찬가지인데,
그런 사안들에 대한 '정교한' 대안은 대개가 전사회적인 레벨이 되기 쉽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를 들어 "그럼 강제로 야자 안 시키고 저녁에 애들이 맘대로 놀게 두면 걔네가 결국 학원에 가거나 PC방 가서 인터넷 중독되는 거밖에 더 있냐"라는 식의 얘기라거나 등등...
강제 야자 반대 이야기를 하다보면 입시경쟁교육 얘기뿐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정책과 지역사회의 열악함까지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거죠.
체벌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체벌을 금지해놓고 "그럼 체벌 없이 어떻게 지금처럼 학교에 애들을 잡아놓지?"라는 식으로 접근하다보면 상벌점제니 교육벌이니 퇴학이니 온갖 괴악한 방법론들이 나오는 겁니다.
결국 체벌금지에서 올바르고 정교한 대안이란 건, 작게는 교육제도의 변화나 교육예산의 문제, 크게는 사회적 교육의 부족함과 노동환경과 경제적 문제까지도 논의에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문 제는 그게 지극히 옳은 이야기임에도 실제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공무원 관료들이나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이게 참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건 자기들의 업무 소관을 벗어나는 거거든요. 정책 내면서 팍팍 질러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복장자유 하나 하려면 사회가 이만큼 바뀌어야 한다"라고 제안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거든요. 못하는 걸 수도 있구요.

그래서 결국 문제는 정교한 대안이 있냐 없냐가 아닙니다. 그만큼을 바꿔낼 수 있는 정치력이 있냐, 또는 운동의 역량이 있냐는 거죠.



2
물론 이 이야기는 일종의 '환원론'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엔 체벌금지든 두발자유든 개소리다! 결국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거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체벌이 금지가 되고 청소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안 된다는 원칙이 확립되는 것,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벌 금지의 원칙을 확인하고 공표하는 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건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지 금까지 최소한 10년이 넘게 숱하게 체벌이 문제가 되어왔고, 체벌을 자율적으로 없애고 사라지게 하겠다며 온갖 립서비스들이 나왔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교장이든 교감이든 장학사든 체벌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뭘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있더라도 굉장히 극소수였죠. 일단 "때릴 수 있다"라는 걸 전제해놓고서 "뭐 그래도 안 좋을 수 있으니까..."라는 식의 '옵션' 정도로만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장들이나 교사들이 이번에 체벌금지에 대해 '반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짜증이 나는 면이 있습니다. 마치 곽노현 교육감이 갑자기 체벌금지를 지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체벌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있어왔거든요. 심지어 교육부에서도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에 체벌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구요.



3
그런데 체벌금지에 대한 평교사들의 반발과 교장들의 반발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걸 단순히 "체벌밖에 교육방식을 모르는 구닥다리 꼰대들의 생각"이라고 보면 안 돼요.

지 금 언론을 통해 밝혀진 서울시교육청에서 내놓은 예시안들을 보면,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에 교사가 생활 태도든 학습 태도든 문제가 심한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내고 그 학생을 교장이 책임지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교장과 학교 전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방안들이 더러 있어요.
그동안은 '체벌'을 통해서 비공식적인 교사 개인의 폭력으로 학교의 질서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체벌금지 이후, 교사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던 학교가 이제 학교 차원에서 그리고 그 학교의 최고책임자인 교장 차원에서 학생 지도와 교육에 대해 책무를 지게 된 겁니다. 그동안은 문제가 생기면 체벌 교사 개인이 징계를 받고 소송을 당했는데, 이제는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게 생긴 거죠. 교장들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집단 퇴장을 하고 "체벌은 교권이다"를 울부짖는 교장들은, 뭐 물론 "체벌의 정당성/교육성"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도 꽤나 있겠습니다만은, 자기들의 이익을 잘 알고 행동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들 일이 늘어나고 부담이 늘어나고 책임이 늘어나는 걸 피하고 싶은 거니까요. 행정업무 좀 처리하고 교사들 갈구면서 군림하던 그동안의 교장들의 삶이 흔들릴 테니, 무리도 아닙니다.(모든 교장들이 이랬다는 건 아닙니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사는 게 충분히 '가능했던' 직위가 교장이었지요.)

반면에 평교사들의 반발은 진짜로 '체벌의 정당성/교육성'을 믿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체벌을 금지하는 게 그동안 교사들이 문제였다, 인권침해를 해온 가해자다, 라는 낙인을 찍는 거 같아서 싫은 사람들도 있을 거고, 아니면 체벌이 금지된 후에도 계속해서 학생 지도와 교육의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묻는 식으로 학교가 운영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체벌금지는 평교사들을 어느 정도는 우리 편으로 만들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체벌을 금지한다는 건 교사 개인이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라 학교가, 교육계가, 지역사회가 모두 교육에 책임을 지고 함께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면서 설득해야 할 겁니다.

그와는 반대로, 교장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4
그럼 학생들은 뭘 어째야 하느냐- 인데.
우리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체벌금지 이후에 대응이 개인화되는 걸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체벌 금지했는데 왜 체벌하냐, 해서 교사를 교육청이나 경찰에 신고하고- 이런 방식이요. 물론 이런 사람들이 하나도 안 나오게 할 수야 없습니다만, 최소한 청소년인권운동 차원에서 그런 전략을 취하면 안 된다는 거죠.

체 벌을 허용하는 것은 그 학교의 문제이고, 체벌이 일어나는 경우에 그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책임지라고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건 서명운동이 될 수도 있고 학내시위가 될 수도 있겠죠.
일단은 사회적으로 체벌금지가 학생들에 대한 또다른 통제(상벌점제 같은)의 고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도 중요할 거구요 ^^;

이 뒷부분에 학생들이 어떻게 할까, 우리는 어떻게 할까, 하는 부분은 같이 운동하는 다른 분들과 회의하고 토론하면서 같이 만들어가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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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체로 공감하지만, 교장들의 경우 체벌금지 이후 맡을 일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주는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 상담교사 확충이 좀 진행되고, 교장들에게 관련 연수를 이수하게 한 이후에 금지하는게 유리한 입지가 되지 않을지? 물론 10여년 동안 계속 이야기되어 오던 거지만, 저들은 전혀 뭔가를 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한 것도 없었으니. -_-

    체벌금지가 하루빨리 되었으면 좋겠지만, "너무 급하다"는 여론이 많은 상황에서 이렇게 밀고 가는게 과연 괜찮은 방법일까 모르겠어. 민주적 정당성 문제도 그렇고, 이해찬 재탕이 될까봐도 그렇고. 물론 곽노현과 이해찬은 여러 면에서 다르고, 지금의 조치는 그 때의 조치와 내용 면에서 많이 다르지만.

    2010.08.21 19:53 [ ADDR : EDIT/ DEL : REPLY ]
    • 좀 더 신중하고 준비해서 접근했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야 나도 있지만. 예를 들어 내년부터 체벌금지를 예고한다든가. (실현가능성 차원에서-)
      이미 교육감이 지른 걸 어쩌겠어 -_- 뭔가 자신이 있으니까 질렀겠지?;;;(ㅎㄷㄷ)
      여하간 운동에서는 그냥 우리 페이스로 할 일을 하는 수밖에

      2010.08.22 04:12 신고 [ ADDR : EDIT/ DEL ]
  2. 전에 피엡 씨와 네이트온으로 체벌 / 교육 문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1, 2의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입안할 때, 그 정책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 지를 파악하면서' 짜고 'ALL OR NOT' 식의 환원주의는 곤란하다- 의 결론으로 마무리를 지었었죠.

    제 생각에도 4번식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잘못된 점을 발견 → 신고' 의 체제가 거의 '상식'이 된지 오래인 데 이 상식을 어떻게 깨부수느냐 겠죠. 활동가 차원 및 기자, 평론가의 차원에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오늘 혜원이의 부탁으로 제가 강의실을 빌려 열리는 '아수나로 경기북부지역 준비 모임'이 열리는데, 한 번 말을 꺼내봐야 겠어요. 강의실 관리 / 정리 차원에서 가는 거니 넌지시;;

    2010.08.22 05:17 [ ADDR : EDIT/ DEL : REPLY ]
    • 문제해결이 개인화되는 게, 미국식 사회로 가고 있는 거죠, 라고 하면 너무 단순화려나요. ㅠㅠ 휴

      2010.08.30 04:28 신고 [ ADDR : EDIT/ DEL ]
  3. 글 잘 읽었어요. 체벌 금지가 평교사의 지지를 얻으면서 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용이할 것 같지는 않아요. 교사들의 의식이 그리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실질적으로 평교사들이 체벌 없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연수를 시키는 게 현실적이겠지요. 또한 말씀하신 대로 이 조처의 부담이 평교사에게만 가중되지 않도록 많은 조치를 해야겠고요.

    그 밖에 개인적으로는 한국 학교에서 체벌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곽노현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지르고 보는 거죠. 그리고는 원칙이라고 땅땅, 못박는. 그거 아니면 체벌 못 없애요. 없애는 걸 원칙으로 정해놓고 문제를 나중에 해결하는 방식이 맞다고 봐요. 만일 '언제부터 나중에 없애겠다' 라고 해 놔도 그 기간 동안의 반발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고요.

    2010.08.25 18: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체벌금지를 선언하면서 가는 게 체벌을 없애는 방법이라는 데는 동의하는데요
      다만 체벌금지 선언이, 기존에 체벌금지를 주장해온 세력들과의 공조와 준비나 반대 세력에 어떻게 대응할지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가 아니라 곽노현 교육감 개인의 결단과 정치력에 맡겨진 것 같은 구도가 된 게 아쉽긴 합니다.

      2010.08.30 04:2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 8. 13. 02:02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

류은숙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Ending legalized violence against children, global report 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Global Initiative to End All Corporal Punishment of Children/Save the Children Sweden)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은 2001년 제네바에서 시작됐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현이라는 과제 속에서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을 근절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은 1979년 세계최초로 스웨덴이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두 단체가 공동으로 발간한 2009년 보고서에는 체벌금지를 향한 세계적 동향이 담겨있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www.endcorpralpunishment.org에서 볼 수 있다.(역자 주)


아동폭력에 관한 유엔 특별대표, 마르타 산토스 페의 메시지

아동이 자신들의 인간 존엄성과 신체적 안전, 법 앞에 평등한 보호를 존중받을 권리는 현재 법률로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끝낼 것을 요구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체벌 및 모든 형태의 잔인하거나 굴욕적인 형태의 처벌로부터 보호받을 아동의 권리를 일반논평 8(2006년)에서 강조한 것처럼, 체벌금지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분명하고 명시적인 국가적 인권 규범의 기초가 필수적이다. 체벌금지 입법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긍정적인 훈육과 사회적 지지와 행동 변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홍보와 인식 개선 노력 및 (체벌이 아닌 대안적) 역량 만들기 노력을 통해 법적 개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부모를 비롯해 아동을 돌보는 이들과 교사들이 긍정적이고 비폭력적인 형태의 훈육으로 옮겨갈 수 있으려면, 교재와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위 사진:유럽평의회 체벌금지 캠페인 포스터

체벌금지를 위한 인권적 기초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된 지 20여년 동안 계속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모든 체벌을 법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협약을 해석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06년 채택한 일반논평 8이다.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연구의 독립전문가인 파울로 핀헤이로 교수는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A/61/299)에서 모든 국가는 체벌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른 국제인권조약 기구도 마찬가지로 체벌금지를 권고했다. 가령 고문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2009년 보고서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로 명령되건 교육적 또는 훈육적 조치로서 관리되건 간에” 체벌은 금지돼야만 한다고 했다.

2008년 12월 유엔총회는 아동권리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모든 환경에서의 아동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법률적 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들에게 촉구했다. 유엔인권이사회도 마찬가지의 권고를 2008년에 채택했다. “아동에 대한 체벌을 포함하여 체벌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벌 또는 심지어 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상기시켰다.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제도(Universal Periodic Review, 모든 유엔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는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적법화한 국가들을 되풀이하여 검토했다.

지역인권기구도 점차 체벌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아동의 권리와 복지에 관한 아프리카 헌장에 따른 국가보고서를 검토한 위원회는 최초의 결론적 의견에서 체벌금지를 권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점진적으로 아동에 대한 체벌을 반대하는 결정을 해왔고, 유럽 사회권위원회는 모든 형태의 체벌을 금지하지 않는 국가는 유럽사회헌장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봐왔다. 2008년 유럽평의회는 “아동구타에 반대하여 당신 손을 들라”는 캠페인에 착수했다. 이 캠페인은 모든 회원국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지역적 정부간 조직의 최초의 캠페인이 될 것이다. 47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완전금지를 입법했고, 더 많은 수가 법률초안을 논의 중에 있다. 미주인권위원회는 아동체벌 금지와 근절을 회원국의 인권증진에서 우선순위의 문제로 확정했다. 2008년 미주인권위원회는 미주인권재판소에 자문을 요청했다. 아동체벌금지가 미주인권협약과 인권선언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밝혀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미주인권재판소는 자문의견은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회원국들이 비준한 국제인권협약 하의 의무내용이나 미주인권재판소의 기존 관할사항에서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주인권재판소는 아동은 “권리를 가지며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아동은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적영역에서나 공적영역에서나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야만 하며 입법적 조치 뿐 아니라 여타의 조치가 요구된다고 했다.

위 사진:"폭력은 답이 아니라고 얼마나 얘기를 해야 되겠니?" <사진 출처; www.bhutanobserver.bt>

2009년 성취된 것, 성취되지 못한 것

모든 형태의 체벌(부모와 여타 보호자들에 의한 체벌을 포함하여)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국가들은 세계적으로 25개국이다. 적어도 23개국이 완전한 체벌금지를 약속했고 그것을 위한 법 초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09개국이 모든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했다. 150개국은 법원에서 체벌형을 선고하는 것을, 109개국은 형벌기관에서 훈육적 조치로 사용하는 것을, 36개국은 거주시설과 보육시설, 수양보호 등 모든 보호기관에서의 체벌사용을 금지했다.

법 개혁 비율은 최근 몇 년 동안에 극적으로 증가했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7개국이 아동에게 폭력으로부터 동등한 보호를 제공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아동인구 중 단 3.2%만이 부모나 다른 보호자들에게 맞는 것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된다. 4.6%만이 모든 형태의 대안양육기관에서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국가에서 산다. 체벌금지를 약속한 정부들이 법개혁을 이루고, 현재 논의 중인 법 초안들이 통과된다할지라도 세계아동인구의 1/5만이 법적으로 보호받게 될 것이다.

150개국 이상의 정부가 가정에서의 체벌금지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체벌이 학교에서 적법한 국가가 거의 90개국이다.

체벌 완전 금지를 성취한 국가들

1979년 스웨덴/1983년 핀란드/1987년 노르웨이/1989년 오스트리아/1994년 사이프러스/1997년 덴마크/1998년 라트비아/1998년 크로아티아/2000년 이스라엘/2000년 독일/2003년 불가리아/2003년 아이슬란드/2003년 우크라이나/2004년 루마니아/2004년 헝가리/2006년 그리스/2007년 네덜란드/2007년 뉴질랜드/2007년 포르투갈/2007년 우루과이/2007년 베네수엘라/2007년 스페인/2008년 코스타리카/2008년 남수단/2008년 몰도바공화국/2008년 룩셈부르크



스웨덴 - 체벌금지 30주년을 기념하다

스웨덴은 체벌금지법 30주년을 맞아 법의 효과와 스웨덴 사회의 변화를 기술하기 위한 보고서 <폭력은 결코 다시는 안돼-스웨덴의 체벌폐지 30년>을 발간했다.

스웨덴에서 1979년 부모에 의한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을 때 대규모 선전 캠페인이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아이를 때리는 것이 더 이상 적법하지 않다는 것을 1981년까지 모든 가정의 90%이상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취학 전 아동은 부모에게 맞았는데, 1970년대에는 50% 미만으로 1980년대에는 1/3로 줄었다. 2000년 이후로는 이 수치가 단지 몇 %에 지나지 않았다. 맞은 경험이 있는 아동도 빈도가 흔치않으며 아주 경미하게 체벌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얼마나 부자이고 잘 운영되던 간에, 아동에게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안전이라는 권리를 쉽사리 제공할 수는 없다. 이런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동에게 가까운 모든 어른들-부모, 교사, 이웃, 친척, 친구 등-의 헌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서 아동에게 경청하는 시민사회, 그리고 법으로 아동의 권리를 지키고 부모를 지원하고 돕는 국가는, 신체적 및 정신적 폭력을 경험하지 않고 자랄 수 있는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끝없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체벌폐지 30년 기념 보고서 중에서)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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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5 호 [기사입력] 2010년 08월 11일 16:35:4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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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30 20:1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