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 해당되는 글 138건

  1. 2009.10.28 토론회 ~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의 현주소 (2)
  2. 2009.10.24 경제재생산과 문화재생산 이론 정리한 거...
  3. 2009.10.17 소식지 아수나로 이야기 세번째 (2009년 10월)
  4. 2009.10.11 일제고사, 또 봐? (7)
  5. 2009.10.10 "공부 못하면 전학가라?" 일제고사로 밤 10시까지 학교에 갇힌 초등생들... (1)
  6. 2009.10.09 일제고사... 한 서민 학부모의 학원비 고민 : "엄마도 돈 벌어와요"
  7. 2009.10.08 '이명박가카' 그만하시죠? : 일제고사... "난 죽고 싶지 않다" (14)
  8. 2009.09.15 [이프 : 김신명숙의 편지] 교권이 문제라구요? (5)
  9. 2009.09.12 학생의 성폭력에서 교권 말고 다른 게 읽히거든? -_- (2)
  10. 2009.08.31 휴대전화금지조례는 인권침해를 정당화해주겠다는 것! (9)
  11. 2009.07.23 [인권오름] 호그와트 마법학교와 한국 학교의 상벌점제 (3)
  12. 2009.06.30 근대 교육 속의 전근대
  13. 2009.06.25 [인권오름 - 페미니즘인(in)걸] ‘여성’의 이름으로 체벌을 거부한다는 것(2)
  14. 2009.06.09 5.18민중항쟁 29주년맞이 “2009 청소년인권선언” (2)
  15. 2009.04.15 교원평가제 관련 자료와 제 의견입니다. (1)
  16. 2009.04.05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논술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 이계삼 교사 (3)
  17. 2009.03.28 "행복은 성적순이란 걸 알게 된 거 같어..." 일제고사, 좀 안 보면 안 되겠니? (9)
  18. 2008.12.05 전교조 선거에 나선 분들에게 -학생인권 문제에 관한 실천을 구체적으로 내놓으십시오
걸어가는꿈2009. 10. 28. 13:41

토론회 ~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의 현주소
학생의 날, 전국 중고생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개선 방안 토론회

2009년 11월 1일 일요일 오후 1시30분 ~ 오후 4시
장소 : 서울여성플라자(대방역) 4층 아트컬리지3



흑흑 두달 동안 우릴 괴롭힌 학생인권실태조사, 드디어 여기에서 결과발표 합니다 ㅠㅠ

많이 와주세용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음......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걸어가는 꿈이 어떤 카테고리인지 알 수가 없어... 홍보???

    2009.10.28 18: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딱딱한꿈2009. 10. 24. 22:49



아수나로에서 공부모임 할 때 쓰려고 정리한 겁니다.
이것 외에도 탈학교(deschool이라고 해야 하나) 이론 쪽도 다른 사람이 정리...

『교육과 이데올로기』를 가장 많이 참고했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하고 해서 정리한 겁니다.





경제재생산

  경제재생산 이론은, 요컨대 학교 교육이 경제 구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선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그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런 사회에서 교육제도는 경제적 성공이 개인의 능력과 자격증, 교육적 성취에 의해 좌우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계급구조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하면 “난 엄마 아빠가 부자니까 나도 잘 삼 ㅋ”이면 사람들이 기분이 매우 나쁘겠지만, “난 (엄마 아빠가 부자라서 이것저것 지원을 받아서)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으니까 능력이 있는 거고 능력이 좋은 내가 잘 사는 건 당연함” 식이라면 사람들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크게 분노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면 학교 교육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계급이 대물림되고 재생산되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재생산 이론에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학교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하는 문제이다.(보울즈와 진티스(긴티스?)라는 학자들이 주장한 건데, 미국 교육을 주 모델로 한 분석이다.) 학교 교육을 살펴보면, 어떤 학교냐에 따라서 다른 교육 방식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에서는 강한 규율을 강조하고, 대학교는 자율성을 강조한다. 상류층이 다니는 사립고등학교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규율이 약하다. (한국 학교의 경우는 반례가 많이 발견되긴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대학이 자율성이 줄어들고 규율이 강화되어가는 것은 전 고등학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상류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성격이 약화되었기 때문일지도.)
  규율과 통제, 감독을 강조하는 교육에서 학생들은 지위와 권위에 복종하도록 유순함을 배운다. 반면에, 지배계층을 양성하는 학교나 대학에서는 자율적 판단을 강조함으로써 지도력을 개발한다. 학교의 수준이나 종류에 따라 학교 안에서의 사회적 관계는, 사회의 위계적 역할 분업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교 졸업 후 자신이 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위치(노동자, 관리자, 자본가, 전문직 등등)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적응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학교교육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있고 사회는 누구에게나 능력과 업적에 따라 높고 권위 있는 지위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개방되어 있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능력에 의한 사회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특목고-자사고 및 서울대 진학률 등의 통계는 그런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는 한국의 교육이 어째서 그토록 경쟁적인가에 대해 사회학적 해답을 준다.

 

요약 :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교육은 노동계급의 자녀는 노동계급으로, 자본가계급인 자녀는 자본가계급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함. 그리고 불평등한 구조를 은폐, 정당화함.

비판 : 경제재생산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딱 학교의 형태와 사회경제적 구조가 대응하지는 않음. 경제적 불평등과 체제가 학교 교육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음. 반례들이 많음. 학생들의 능동적 역할이나 교육, 문화의 자율성 간과 (폴 윌리스의 저항이론. 노동계급 학생들의 반항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계급 재생산으로 이어지는지 ‘간파’와 ‘제약’ 개념으로 분석...) (문화재생산 이론 등)

 



문화재생산

  이러쿵저러쿵 비판이 있어도 경제재생산 이론은 학교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기초를 제공한 이론이다. 문화재생산 이론은 경제재생산 이론에 대한 비판, 보완의 성격이 있다. 문화재생산 이론을 쉽게 간추리면, 경제재생산 이론의 기본 성격을 공유하면서도 “잘 사는 애들이 어떻게 학교에서 잘 성공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문화재생산 이론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문화에 주목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식적인 지식, 문화는 지배계급 내지는 중류계층의 지식이고 문화이다. 지배계급의 학생들은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이런 형태의 지식, 문화를 습득하며 익숙해져 있다.(독서라는 이름이든 교양이라는 이름이든 뭐든...) 이런 것을 ‘문화자본’이라고 부르는데, 이 문화자본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학업성취가 계급에 따라 달라진다. 잘 사는 집의, 전문직 부모를 둔, 지배계급의 학생들은 이미 유리한 문화자본을 가지고 학교에 들어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클래식이나 가곡을 가르칠지언정 대중가요나 힙합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클래식이나 가곡 등에 더 익숙한 쪽은 좀 사는 애들일 가능성이 높다. 음악 뿐 아니라 활자화된 지식들, 교과서에 사용된 단어 등 거의 모든 교육내용에서 그런 자본의 불평등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은 탓에 문화자본의 불평등이 경제자본의 불평등과 차이가 나는 경향이 있었지만, 90년대 이후로는 점점 일치하고 있다. 서울대에 가는 학생은 돈이 좀 있는 전문직 부모를 둔 아이들이 많다는 통계 등.
  학교의 기준이 되는 문화나 지식 자체가 계급적인 것이지만, 과학/학문 등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는 잘 알아차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학교교육에서의 문화재생산은 계급간의 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학교에서 좋은 학생, 나쁜 학생을 판단하는 기준 또한 지배계급의 문화가 제공해준다.
  문화재생산 이론은 경제재생산 이론에 비해 교육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인정한다. 경제적 성공과 학문적 성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좀 잘 사는 집 학생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실패할 수는 있다. 교육체제는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성취를 가늠한다. 이런 면이 있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는 더욱 정당화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학업 성취가 100%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배계급의 자녀는 동일한 졸업장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요약 : 제도교육에서 가르치는 문화는 잘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친함. 이 문화는 학생들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해줌. 그래서 특정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학교교육에서 더욱 성공함. 교육에서의 성공은 가정에서 얻은 교양이니 배경지식이니 그런 것의 영향을 받음. 교육에서의 성공/실패가 꼭 경제적 성공/실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데, 잘 사는 애들은 이런 성공을 더 잘 써먹을 수 있고 실패해도 어느 정도 커버 가능.

 

# 경제재생산과 문화재생산 모두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 학교 교육은 사람들이 지금의 사회체제와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외의 것을 잘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교육은 사람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군말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 재생산이론은 학교의 역할, 기능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경제재생산과 문화재생산 이론을 공부함에 따라, 우리는 학교에서 당연한 것으로 주어지는 수업, 공부, 규율 등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정당하고 중립적인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들을 살펴봄으로써, 단지 “교육은 ~~해야 하는데 현실은 이렇지 않다.”라는 관념을 벗어나서 교육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도대체 불합리해 보이는 이런 경쟁과 규율들은 왜 있는 건지에 대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 이는 음모론은 아니다. 재생산 과정은 불평등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며 ‘자연스럽게’ 관련되고 있는 것. 특정한 사람들의 의식적인 의도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활동조차도 중립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활동은 이미 이데올로기적인 이해관계에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교육과 이데올로기』 中)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9. 10. 17. 12:31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후원회원들과 회원들에게 활동에 대해 알리기 위해 보내는 세번째 소식지입니다.  6월부터 지금까지 아수나로가 해온 활동을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소식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정기적으로 만들기로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요. 소식지를 받아보시는 모든 분들께 양해를 구해 봅니다^^

 

 6월부터 지금까지 각 지부들은 무엇을 했을까요ㅎㅎ~

 

아수나로 경남중부지역모임 소식

7월 부산 울산 경남지역모임 활동가들이 창원에 모여 "공부모임"을 열었습니다.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정리했고 장애인 활동가분을 초청해서 장애인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다음 공부모임은 울산에서 열립니다.9월27일 경중지부 탄생 2주년 기념행사를 했습니다.

9월 여러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2년을 이어온 경중지부는 2주년 기념 자축파티를 열고 이 때까지의 경중지부의 모습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장기적인 계획 및 눈앞에 닥친 행사들을 준비하기 위해 4시간 이상 회의했습니다. 


경중지부는 7월부터 그린마일리지, 휴대전화 규제조례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8월 10일에는 "그린마일리지와 휴대전화규제조례에 반대하는 경남 청소년모임"이란 카페를 개설했으며, 8월 22일에는 휴대전화 규제조례안 발의를 주도한 박종훈 교육위원을 찾아가 이 조례에 대한 면담을 하며 반대입장을 표명했습니다. 8월 24일 경남도교육위에서 휴대전화 규제조례가 통과되면서 마산 창원지역의 중,고등학교 앞에서 청소년들의 반대서명을 받았습니다. 총 1027명이 서명했답니다. 서명을 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린마일리지 시범실시 학교의 학생을 대상으로 전교조 경남지부와 함께 실태조사, 설문을 하였습니다. 이 실태조사는 그린마일리지가 체벌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MBC 라디오에서 의견을 말했답니다.

 

 

그리고, 그린마일리지에 대해 경남교육청은 "전면 실시"에서 "확대 실시"로 한 발짝 물러서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휴대전화 규제조례는 경남도의회 의결과정에서 "심의유보"결정이 내려졌습니다.^^

10월 8일, 우리 경중지부는 이를 바탕으로 "그린마일리지 축소, 휴대전화 규제조례 보류는 예정된 일이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1027명의 서명을 바탕으로 도 교육청에 항의진정서를 전달했습니다.

 

 



 아수나로 광주지역모임 소식

전체총회 이후, 제대로 된 모임을 가지지 못했어요. 활동회원인 박고형준과 이뮤만 외롭게 활동하고 있지만, 신입회원들을 모집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네요. 광주에서 활동할 분들 모집해요~~

그러나 지역사회와 함께 일제고사 투쟁, 청소년인궘포럼, 광주학생인권조례, 예술고 인권침해사례 대응 등 연대하면 아수나로를 알리고 있답니다. 학생인권실태조사도 했구요. 5.18민중항쟁 29주년 맞이 2009청소년인권선언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습니다.

앞으로 신입회원 모집을 위해 노력하고 지부회의체계를 통해 결의할 수 있는 단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광주지부 고복수 통신원 -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 소식

5월

- 신입회원 교육, ‘인권은 뭐? 청소년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이런 주제로 대략 즐겁게 진행했습니다. 교육이 끝나고는 신입회원 분들과 근처로 소풍을 갔습니다. 소풍은 공부 장소 가까이에 있던 총신대학교로 갔는데, 전혀 가깝지도 않았고, 기대했던 넓은 캠퍼스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후문이...

- 5월에는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외부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참가 위주였달까요- 20주년을 맞은 전교조 대회에, 약간 들러리가 되기 쉬운(?) 청소년 활동가와 교사는 ‘동지’임을 강조하는 피켓을 만들어가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 23일과 24일에는 수원의 다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약 1박 2일로, 그 동안 아수나로의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과 내부 소통 강화 등에 대해 깊이 이야기해보는 내부 워크샵을 가졌습니다.

 

6월

- 3일,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내부 공부를 했어요.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라틴’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감사해요.

-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청계광장에서 <인권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서울지부 활동가들도 인권영화제에 가서 여름밤을 즐겼답니다.

- 13일에는 퀴어퍼레이드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활동가들 몇몇이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피켓 등을 만들어가 퍼레이드에 참가했습니다.

- 5월에 이어 내부워크샵을 또 진행했어요. 내부적으로 활동팀(학생인권팀/교육정책팀/정치적권리팀/동네청소년운동팀 등)이 이 워크샵에서 구성되었습니다. 이 날 이후로, 팀 별로 나름 주제를 갖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답니다.

- 6월은 벌점제-그린마일리지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계속 끌어안고 갔던 한 달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서울지역의 그린 마일리지 시범 학교들의 학생, 교사들과 함께 만나는 간담회도 진행했고, 내부적으로 세미나도 가졌습니다.

 

7월

- 국가인권위원회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반차별공동행동 등 연대단위에서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연대회의에서 아수나로의 역할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 8월에 있을 청소년인권캠프 ‘별세상’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17일에는 ‘6회 밤길되찾기 시위, 달빛시위’에 참가했습니다. “밤 10시 신데렐라, 됐거든?!”, “청소녀에게 밤을 허하라” 등 달빛시위에 어울리는 예쁜 피켓을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 27일부터 31일까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준비한 “청소년, 바라는 세상을 말하다”, 일명 “청바다”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청소년 UCC/사진/만화 강좌에 서울지부 회원들이 아마 많이 함께 했습니다. 청바다는 현재 웹페이지 제작과 ‘개기니즘 콘테스트’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8월

- 1일부터 3일까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전국총회가 열렸어요. 아수나로에서 꽤 큰 행사(?) 중 하나입니다. 이번 총회는 지난 번 울산에 이어 서울에서 진행되느라 서울지부 활동가들이 정신 없이 바빴던 기억이... 하반기 아수나로 활동과 운영에 대해 머리 아픈 긴긴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 6일부터 8일까지! 청소년인권캠프 ‘별세상’을 다녀왔습니다. 약 20명의 청소년들이 무주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을 새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 그 동안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던 아수나로 수원지역모임 만들기를 준비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수원의 청소년 모임을 꿈꾸며 지금은 제법 꾸준히 모이고 있답니다.

 

9월

- 경남 지역에서 이미 추진되었고, 서울에서도 연말 전에 추진한다고 발표했던 ‘학내 휴대전화소지 금지조례‘ 제정에 맞서, 휴대폰을 들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발랄한 플래시몹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이 꽤 흥미 있게 지켜봐주셨는데, 마이크 등 장비 부족으로, 노래와 발언 내용이 잘 안 들려서 조금 아쉬운 퍼포먼스였어요.

- ‘2008년 이후 학생인권 실태조사‘ 설문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온/오프라인으로 거의 4000명에 가까운 청소년들이 참가해주셨어요.

- 실태조사와 함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7대 요구’를 담은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에요. 10월 말에 교육부에 민원을 넣을 예정입니다. 주말 마다 번화가나 길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10월

- ‘2008년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오는 25일에 발표합니다. 발표하면서 함께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답니다. 지금은 설문을 받은 내용을 열심히 엑셀파일에 입력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 13,14일에 있을 일제고사 반대 행동을 위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say-no' 모임,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평일 등하굣길 캠페인과 온라인 홍보를 열심히 뛰었어요. 서울에서는 13,14일 경기도 남양주로 고고씽하는 체험학습이나, 대학로에서 진행되는 일제고사 반대 행동도! 대학로에서는 영화, 뮤지컬, 인권교육, 퍼포먼스, 콘써트 등등 다양한 행사를 했죠~

- 11월 3일 학생의 날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청소년 다함께, 전국청소년학생연합,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청소년모임 등 여러 청소년단체들과 함께 준비하려고 해요. 학생의 날을 맞아 ‘학생인권 선언’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보내주세욥

 


아수나로 인천지역모임 소식

인천지부 부활!

서울에서 도와주러 온 따이루를 빼고 5~6분 정도가 활동의사를 밝혀 여름 총회 안건으로 올라가서 인준을 받았어요. 그것도 만장일치도 받았다고 하더군요.


월미도 소풍

8.10 인천지부 창립기념으로 월미도로 소풍을 갔어요. 따이루가 찾았다던 무한리필 조개구이는 찾아보니 다른 곳이고, 공현님께서 알려주신 의왕리까지 가자니 귀찮아서 그냥 인천역 인근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고 인근pc방에 가서 다함께 게임을 했어요. 전설과 게로게론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였지요.


인천지역 학생인권 내부 토론회

9.6  원래 다른 단체에도 홍보하고, 거리에서도 홍보해서 약30명정도 규모의 청소년대토론회로 진행할려 했었지만
홍보기간, 장소, 등등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수나로 인천모임 내부 토론으로 축소해서 급진행하게 되었어요.

1부-학생인권 무엇이 문제인가? 2부- 어떻게 바꿀것인가? 2개의 파트로 구분하여 토론회를 진행하였는데요.

1부는 첫번째 발제로 전설이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중심으로 학생인권문제를 고민하는 발제와

따이루의 인권으로 밟아보는 학생인권에 대한 발제로 두발규제, 체벌, 0교시 등 학생인권 각각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아수나로 수원지역모임(준) 소식

아수나로 수원지역모임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9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_<

 

 

 더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__^ 

 

1. 지난 8월 1일부터 3일까지 3일동안 서울에서 아수나로 총회가 진행되었어요.

상반기 활동 평가 및 하반기 활동 계획을 세우는 빡신 일정이었지만 자주 볼 수 없는 여러 지역의 회원들이 모인만큼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답니다.

홍대 강의실과 나다를 오가며 무더운 여름을 아수나로의 열정으로 뒤덮어버렸다고나 할까요 ^^

겨울총회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총회에서의 결정 사항들을 겨울총회때까지 열심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2. 지난 8월 22일에 아수나로 회칙이 부분개정이 되었어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세요!

-> 아수나로 회칙변경 개정 내용을 보고싶다면 클릭!

 

 

 아수나로에서 발표하거나 참가한 성명서, 논평, 선언 등 링크

 

::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안녕을 위해, 유쾌한 외침은 계속될 것이다. (09/6/22)

 

:: 우리의 입과 몸짓을 봉인하지 말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규탄한다. (09/6/26)

 

:: 교사들과 학생·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가 물로 보이니? (교사시국선언 대량징계 탄압에 대한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의 입장) (09/6/30)

 

:: 광주시교육청은 학생폭행 및 금품수수 교사를 처벌하고, 학교장과 시교육청 담당자를 문책하라 !(09/7/10)

 

:: ‘무자격/도둑취임/MB 하수인’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반대 성명서 (09/7/28)

 

:: 국가인권위원회가 '반'인권위원회인가! - 반인권적 김옥신 변호사, 사무총장 내정 철회하라! (09/9/14)

 

:: 인권위가 무슨 장난도 아니고 - 현병철이고 김옥신이고, 듣보잡은 가라 - (09/9/17)

 

 
 

 

 

 아수나로, 하실래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언제나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인권을 찾고 싶은 청소년 분들은 대환영이고,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환영입니다. ^^ 아주 자주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시더라도 괜찮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아수나로 모임에 나오고 다양한 활동에 가능한 만큼만 참여해주시면, 세상은 생각보다는 금방 바뀔지도 모릅니다.

아수나로 지역모임이 있는 곳에서는 지역모임에 참가를, 없는 곳에서는 지역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해보세요. ^^ 지역모임을 만드는 게 어려우시면 지역모임 없이라도 활동을!

아수나로에서 여건상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돈은 몇천원이라도 여유가 있다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은 아수나로에 후원을 해주세요.
매달 정기적으로 같은 액수를 후원하는 CMS를 해주실 분들은 ▲이름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와 은행 ▲액수 ▲이메일 ▲연락처 ▲주소를 적어서 onlyasunaro@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이메일, 연락처, 주소 등은 아수나로 활동 소식과 변동사항을 알릴 때, 또는 소득공제용 기부금영수증 등을 발행할 때 필요합니다.)
아니면 아수나로 전체용돈 계좌(076-018904-02-039 기업은행 최경한)로 직접 입금해주셔도 됩니다. ^^

(학생의 날 행동 준비 등으로 돈이 많이 부족합니다. 특별 후원 좀 해주세요 ㅋㅋ ㅠㅠㅠㅠ)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9. 10. 11. 22:02


또 반복되는 일제고사에 대해, 사진들과 같이 만든 포토에세이입니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라랄라

    우선 이 댓글은 위 글 또는 블로그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공부를 조금 더 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상이야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보통이기는 한데,

    적어도 정보의 섭취는 편식하면 곤란하지요.

    요즘 유윤종씨의 글을 보면 근거 자료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있는 것 같군요.

    예전과는 다르게 논리적 모순도 많이 보이고 말입니다.

    결론은?

    그냥 뻘플이라는...(흐흐흐...)

    2009.10.12 15:31 [ ADDR : EDIT/ DEL : REPLY ]
    • 활동가니까요. 활동가라는 포지션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는 불만이 별로 없습니다. 특정한 정세에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올리는 글들이니까요.

      근데 공부야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할수록 좋겠지요? ^^ 뭐 저는 제가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 공부할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한테 공부는 수단이니까요.

      근거 자료가 치우쳐져 있냐 어쩌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자료가 타당하냐 타당하지 않냐가 중요하지요. 반대되는 근거가 있으면 제시하시면 됩니다. 제가 무슨 연구자도 아니고 모든 정보를 다 종합해서 분석할 입장도 아니고, 정보를 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 생각지 않습니다. fact를 벗어나지 않는다면요.

      그리고 "논리적 모순"이 보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논리적 모순인지를 논리적으로 지적하시기 바랍니다. '모순'이란 말이 포괄적으로 남용되는 말이긴 합니다만 - 사실은 뭉뚱그려서 지적해도 될 만큼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닐 텐데요?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논지가 중복되거나 어느 정도 상충되거나 정리되지 못한 글들이야 제법 많겠지만 명확하게 '논리적 모순'이 있는 글은 잘 못찾겠네요. '요즘'에는 바빠서 제가 직접 쓴 글 자체가 별로 많지 않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렇게 써놓고 "그냥 뻘플이라는..."이라고 달아서 그냥 넘어가려는 모습이 마치 헌법에서 노동3권 빼자고 했다가 나중에 취소한다고 하신 누구를 연상시키기도 하네요. 수습용일지 몰라도, 그런 태도가 불쾌한데요? 그런 식으로 다시지만 않았어도 그리 '불쾌'하게 받아들이진 않고 그냥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법도 합니다만.

      제가 이렇게 날 서게 말하고 "뻘플에 대한 뻘답일 뿐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하면 되는 거겠죠? ^^

      (애초에 저를 이 공간에서 '유윤종씨'라고 부르는 것에서 오는 몰이해에 대한 불쾌감에 더해서 말이지요.)

      2009.10.12 21:04 신고 [ ADDR : EDIT/ DEL ]
    • 흐흐흐 ggg

      흐흐흐 .....예날에 울 마을엔 미친넘이 있었는데...매일 같이 흐흐흐...하면 웃고 다녔어요.....흐흐흐...미친넘이지요...흐흐흐...

      2009.10.13 09:19 [ ADDR : EDIT/ DEL ]
    • 라랄라

      흐흐흐 ggg / 님은 정말 미치신듯?

      불쌍하네요.

      공현 / 우선, 이 공간에는 이 공간에서 본명을 밝히는 것이, 공현씨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어떠한 정보도 없는지라, 본의아니게 무례를 범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편식하게 되면, 과연 이 정보가 Fact인가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보의 편향된 섭취와 그로 인해 왜곡된 사실(공현씨의 글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을 교조적으로 강요하는 행태는 소위 좌파 혹은 진보 지식인들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고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저 역시 공현씨의 방향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한 사람이고, 일정 부분의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방향의 활동가들에게서 보여지는 지나치게 배타적인 태도와 교조주의에 끔찍할 정도의 거부감을 가지고있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그가 옳은 점은 무엇이고 그른 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류의 종교적인 오만함으로, 상대방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더군요.

      대략 5년 전(?) 즈음의 공현씨에게서는 적어도 이런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고, 글도 비교적 다수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완성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이 많아서 사람이 날카로워진 것인지,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가 보이는 듯 하고, 글은 예전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논리적 모순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글의 완성도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좋겠군요. 이점은 유감입니다.)이기에, 이런 글을 적어본 것이지요.

      공부하라는 말은, 위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의미이자, 조금 쉬어 가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제 댓글이 상당히 경직되어있는 듯했고, 잘못하면 수구로 인식될 소지가 있어서, 나름 위트를 주기 위해 사용한 뻘플이라는 표현을 수습용으로 받아들이셨다니 역시 유감입니다.

      필답에서의 감정 표현이 쉽지 않군요.

      2009.10.14 12:58 [ ADDR : EDIT/ DEL ]
    • '본명'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쾌한 게 아니라요.
      일단 '윤종'이 아니라 '유윤종'이라고 성을 붙인 것에 대한 불쾌감도 있긴 하지만,(제가 성을 일부러 안 쓰니까요.)
      그런 걸 떠나서 '라랄라'님의 덧글을 보면 '라랄라'님이 평가하거나 논의 대상으로 삼는 건 제가 쓰는 글이거나 제 블로그의 내용인 것 같군요. 일단 온라인 외의 공간에서 저를 잘 알고 있거나 저와 면식이 있는 분이 아니라고 느끼는데, 그렇다면 제 상식에서는 제가 온라인이나 블로그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인 '공현'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라랄라'님의 의도를 추측할 수는 없지만,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굳이 '공현'이 아니라 '유윤종'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의도가 의심스럽달까 불쾌하달까 그런 거죠. ^^

      2009.10.15 22:16 신고 [ ADDR : EDIT/ DEL ]
    • 정보를 편식한다고 하신 의미 자체가 모호하긴 한데, 특정한 정치사회적 입장에서 생산되고 편집된 정보를 많이 접한다, 라는 의미라면, 글쎄요 그자체만으로 그 정보가 fact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건 '편식'이라는 말의 범주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느낌입니다만. 어떤 정보의 사실성이나 해석이 쟁점이나 논쟁거리가 될 경우에 그것에 상반되는 자료들을 참고하거나 찾아보기를 거부한 기억도 없고 말입니다.
      뭐 외국 사례 같은 걸 일부 정보를 편집된 걸로 잔뜩 짊어지고 오는 것도 아니고,(전 고의로 외국 사례는 잘 논거로 안 쓰려고 합니다만) 기본 정보에 속하는 1, 2차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정보의 '편식'이 어째서 정보의 사실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지를 막연하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먼저 논하셔야겠군요.


      제 입장에서는 교조주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딱 잘라 말하실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태도가 독선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이전에- 이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고 또 고수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독선적이라거나 배타적이라거나 교조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질적인 차이가 있는 걸까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나 표현의 차이이거나 서있는 맥락-위치-역할의 차이이거나 정도의 차이는 아닐까요?
      타인에 대한 존중,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이라는 말은 타인이나 다른 의견에 대한 불간섭, 무관심을 의미하는/전제하는/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라이어게임>에도 나오지요?) 상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독선적이거나 교조적이거나 배타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결국 일종의 전략적인 문제제기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독선, 교조, 배타성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도덕판단이 아니라 말이지요. 그 태도나 표현 방식 등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같은 게 아니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태도나 표현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대한 비판이어야 온당할지도 모른단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판단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수단적인 문제라면 '끔찍한 거부감'을 가지신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교조주의나 독선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필요하게 될 겁니다.
      (* 라랄라 님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일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에는 태도상으로는 '안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이긴 한데)

      "배타주의나 교조주의는 안 된다"라는 교조주의에 대한 회의에까지 나아가지 못하신 분에게 더 이상 많은 것을 설명하기가 귀찮다, 라고 말하는 것은 교조주의이려나요? ㅋ
      근데 또 저의 삶은 대부분의 경우에 저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계몽'이긴 합니다. 제 '계몽'은 내가 진리니까 멍청한 니들을 인도해줄게, 라기보다는 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동일화해나가는 과정이긴 한데- 이게 실제로 구별이 딱 되시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요 ㅎㅎ


      글의 완성도가 다수에게 공감을 받냐 안 받냐로 판가름 나는 것이거나, 또는 완성도가 높은 글이 공감하는 수를 늘려준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ㅂ-
      왜 완성도를 논하는 것과 공감하는 사람의 수가 연결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완성도를 판별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제 글의 경우에는 혼자서 수필 쓰던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그다지 다수에게 공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라랄라님이 말씀하시는 '다수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의 실체가 궁금하긴 한데, 일부러 기획적으로 맥락에 맞춰서 시류에 편승해서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쓴 글이 아니라 제가 제 사상 체계의 일부를 날 것으로 드러낸 글이거나 청소년인권에 대해서 래디컬한 입장에서 쓴 글은 항상 그다지 다수의 공감이나 지지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지나 공감은 글의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글의 내용이나 메시지, 또는 제가 얼마나 눈치를 봐가며 썼느냐의 문제가 더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데요 ㅎㅎ
      글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지적 자체는 동의합니다. 글을 쓰는 데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과 사유, 표현과 구성을 다듬을 수 있는 여유 자체가 부족하니까요. 정권을 바꿔주시면 짬이 좀 더 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문제 외에도 제 사유 자체가 복잡해지고 넓어지면서 그 사유의 맥락에서 일부만 잘라다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논리적 모순"이 조금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 라고 하고서 이런 어휘 선택을 잘못하신 것을 가지고 '유감입니다'라고 자평하시는 건 역시 적절한 어휘 선택이 아닌 듯합니다. ^^;;;
      저는 이런 식의 격식을 차리는 듯한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아, 참- 저는 제 일을 실질적으로 줄여줄 수 있고 그렇게 같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쉬엄쉬엄하라거나 좀 쉬어가라거나 하는 말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수용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씀만 고맙게 듣겠습니다. (그런 걸 수용하려고 노력하다보면 화딱지만 나거든요)


      마지막으로
      경직된 내용에 대해서 내용을 경직되지 않은 방식으로 고치거나 경직된 내용을 그대로 밀고 나가지도 않고, '수구'로 인식될까봐(근데 저는 저에 대한 비판이 '수구'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걱정이었다면 그냥 그런 걱정을 솔직하게 쓰시면 될 것을, '뻘플'이라는 자기 덧글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방식으로 덮으려고 하는 것(이런 게 '수습'이 아닌가요? 제가 알고 있는 '수습'의 의미가 좀 다른가봅니다)은 그리 바람직한 방식은 아닌 듯하다고 말씀드려봅니다.
      세간의 상식과는 항상 차이를 보이지만 제 상식에서는, "뻘플"처럼 자기 의견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식으로 정리하는 게 필요한 건 자기가 과하게 권력/권위를 가지고 있거나 자기가 발언하는 것이 지나친 영향력을 가질까 조심스러울 때 보통 쓸 만한 방식이지, 경직되어 있는 걸 부드럽게 하거나 '잘못하면 수구로 인식될 소지'가 있어서 예방하거나 할 때 주로 사용할 만한 방식은 아닌 듯합니다. 위트라고 하셨지만 그리 재미있지도 않았고;;

      2009.10.15 22:46 신고 [ ADDR : EDIT/ DEL ]
  2. 우왕 퍼가요 진보넷채널으로 ㄹㄹ

    2009.10.12 16:0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0. 10. 17:07


일제고사 반대 글 3번째, 설은주 선생님의 글입니다. 레디앙원문
설은주 선생님은 일제고사 날 체험학습을 안내하고 허가했다는 이유만으로 해직당한 해직교사들 중 한 분이십니다.

해직교사 분들은 10월 5일부터 전국을 돌며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알리는 대장정을 마치고 오늘 서울에 오셨습니다.
고생이 많았을 길 중에도 원고를 작성해서 보내주신 설은주 선생님의 노고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에게까지 방학 중에 반강제로 보충수업을 시킨다는 언론 기사 등이 여러번 나왔고
중학생들도 0교시 수업을 받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명박식 막장 교육 정책들이 낳은 결과가 이것입니다...

교육에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개선해나가는 정책을 취해야 하는데, 이명박 교육정책은 원래 있던 문제들을 더 심하게 악화시키는 정책입니다. 이건 뭐 돌팔이도 아니고... -_-



서울 사시는 분들은 13일 저녁 5시 30분  낙산공원으로 와주세요!!







-------------------------------------------------------------------------------------------------------------------

교육 붕괴 "공부 못하면 전학가라?"
밤 10시까지 학교에 갇힌 초등생들
[일제고사 반대③] "10월 13일, 축제 같은 반란을 소망한다"



거리에서 전국의 시민들을 만나고 다닌 지 나흘째. 나는 일제고사 거부로 인해 학교에서 쫓겨난 거리의 해직교사이다. 그리고 지금, 일제고사 거부로 해직된 열세 명 교사들과 일제고사 폐지와 해직교사 복직을 위해 전국 대장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10월 5일 울산에서 시작하여, 부산, 목포, 광주, 전주, 대구, 청주, 대전, 천안을 거쳐 왔다. 내일(10월 9일)이면 수원, 춘천을 돌고 10일에는 서울로 입성하여 일제고사 폐지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과 만나게 된다.


평범한 선생, 거리로 나서다

지금은 학교에서 쫓겨나 있지만, 작년 이맘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매일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대체로는 즐겁게, 가끔은 속상하기도 했던 평범한 선생이었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 난 무거운 돌덩이를 진 듯, 출근하는 마음이 무거웠었다. 전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되는 일제고사가 눈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 해직교사들이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설은주 교사)

일제고사란 한날, 한시에 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보고, 성적으로 줄 세우는 시험을 말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였던 과거에는 실시가 되었다. 하지만 일제고사가 치러지면 필연적으로 이어질 문제 풀이식 수업과 주입식, 암기식 수업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요구에 전혀 맞지 않았다.

일제고사는 자연스레 폐기되었다. 현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는 일제고사가 교육적 효과가 없기에 ‘지양’하고 다른 다양한 평가방식을 활용하라고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일제고사가 우리 아이들 앞에 다시 부활한다니, 교사로서 어찌 고뇌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학생 학부모들에게 교육자로서 소신을 밝히고, 그들의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하는 일이었다. 결국 그것이 이유가 되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거리에서 만난 어떤 시민은 이렇게 묻기도 한다. 학생이 시험을 안치면 어떻게 하냐고. 평가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흔히 시험이라고 하면 객관식 문답, 주관식 문답평가도 있고, 글로 쓰는 서술형 평가, 말로 하는 구술평가, 관찰평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학생이 시험을 안 치면 어떻게 하냐고요?

평가목적과 대상에 맞게 평가 방식을 택하게 된다. 평가는 다음에 이어질 학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줄 세우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제식 평가, 일제고사는 필요하지 않다.

또 이렇게 물으시는 분도 있다. 선의의 경쟁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적당한 경쟁은 서로를 분발하게 하는 유인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결과는 어떠한가. 자고 일어나면 아침 뉴스에서 성적 비관으로 생을 마감한 어린 제자들을 본다. 이미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또 한번 전국적으로 줄 세우기를 해야만 하는가.

일제고사로 인한 폐해는 작년에 일제고사가 처음 실시되자마자 바로 드러나게 되었다. 학교별, 지역별 순위가 공개되면서 뉴스가 되었던 ‘임실의 기적’은 며칠 만에 ‘임실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경쟁에서 밀려나고 싶지 않았던 교육청과 학교가 학생의 성적을 조작한 것이다. 이것이 선의의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는가.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초등학교에도 0교시가 생겨나고, 보충수업이 생겨났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는 여름 방학 동안 평소 수업시간보다도 두 시간이나 많은 8교시 수업을 했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밤 열시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잡아두었다 한다.

이 수업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어린 초등학생들이 실제 시험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OMR 작성법을 배웠다. 문제 풀이식 수업이 이뤄졌다. 이 모든 것이 일제고사를 대비한 수업이었다. 이것이 과연 교육인가.


밤 10시까지 학교에 갇힌 초등학생들

그 뿐만이 아니다. 일제고사에 대비해 단시간에 성적을 높이기 어렵다고 판단된 아이들을 특수학급에 보내거나 전학을 가라고 종용하는 일도 벌어졌다. 공부가 모자란 아이들을 다독여 더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곳이 학교인데, 이것이 과연 교육자로서 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역 간 비교를 하니, 어느 교육청에서는 도내 학교장을 닦달해 일제고사 성적을 높일 수 있는 계획을 제출하라고 했단다. 교육청의 지시에 학교에서는 일제고사 대비 시험지를 복사해 추석명절 연휴를 시작하는 아이들 가방에 가득 넣어줬다. 예년보다 연휴기간도 짧은 추석이었는데, 이 아이들 가족들과 마음 놓고 지내기나 했는지 안쓰럽기만 하다.

   
  ▲ 사진=설은주 교사

교육청은 학교를 닦달하고, 학교는 교사를 닦달하고, 교사는 학생을 닦달한다. 이제 공부 못하는 아이는 교실에서 마음 편히 배울 수도 없다.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일제고사로 인해 파탄난 학교현장의 모습이다. 이런 일제고사가 다음주인 10월 13~14일 전국적으로 또 실시되어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에 내몰려고 한다. 이것이 해직교사들이 전국대장정을 나선 이유다.

대장정 기간 동안 전국의 참 많은 시민들을 만났다. 울산시교육청에서 공업탑 로터리까지,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우리를 언제 보셨는지 박카스 두 박스까지 챙겨와 건네 주셨던 아저씨, 선전지를 유심히 보시고선 "우리 아이는 이미 다 커버렸지만, 이명박 교육 정책은 사람 만드는 것과는 반대로 간다"며 힘내라고 응원해주셨던 목포의 역전거리 이발관 아저씨.

청주 성안길에서 선전지를 읽으시곤 동네 아줌마들에게 더 알려야겠다며 몇 장 더 달라고 하셨던 아주머니와 수고한다며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격려해주셨던 시장의 아저씨, 대전 교육청 앞에서 집회하고 있던 전교조 선생님들을 보고선 건너편 인도에서 두 팔 벌려 화이팅했던 학생들.


축제 같은 반란을 소망하며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선전물을 시민들에게 건네고 피케팅을 해야 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어느 순간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불끈 힘이 나기도 했던 건 바로 이런 전국의 시민들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몇 초였지만, 이들과 진정한 교육에 대해 교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이 흩어져 있지만, 이명박식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갈망하는 시민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대장정 기간동안 실감했다. 이제 남은 일은 서로가 만나는 일이다. 학생으로, 학부모로, 교사로서 섬처럼 따로 흩어져 힘이 없다고 느낀 이들이 모두 모여야 한다.

함께 모여 잘못된 교육 정책에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가 원하는 교육의 상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10월 13일, 학교에서, 지역에서 축제처럼 반란이 일어날 수 있길 소망한다.


     관련기사
· "난 죽고 싶지 않다" · "엄마도 돈 벌어와요"

2009년 10월 09일 (금) 14:00:36 설은주 / 유현초등학교 해직교사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거 대박인데요..ㅋㅋ

    2009.10.13 12:2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0. 9. 14:21

일제고사 반대 글 연재 두번째입니다.
이번엔 한 학부모의 교육비에 대한 고민을 담았지요...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학부모회 회원 분이 쓰셨습니다.

프레시안에는  "옷 한 벌 못 사고 학원비 보태는 엄마 맘 안다면…"[세이 노! 일제고사]이미 아이들은 바쁘고 부모는 지쳤다
이런 제목으로 실렸네요.
레디앙 글을 복사해옵니다.






"엄마도 돈 벌어와요"
[일제고사 반대②] 한 서민 학부모의 학원비 고민…"4대강 22조 예산이면"



이 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되고 있는 일제고사가 오는 13~14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치러질 예정이다. 앞서 몇 차례의 일제고사과정에서 벌어진 교사해직문제 등 부작용이 명백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 측은 일제고사를 강행하려 하고 이에 대한 교육운동진영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 모임 ‘Say-No’는 학생과 학교 간의 경쟁을 가속화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3회에 걸쳐 기고 연재한다. 그 첫 순서로 인천의 중3학생의 글을, 이후 학부모와 일제고사로 인해 해직당한 교사의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Say-No’ 등 교육운동진영은 릴레이 기고 외에도 일제고사에 맞춰 등교거부 / 체험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연재는 <프레시안>에도 공동 게재된다. - 편집자 주

지난 3월 우리아이들은 학교의 무단결석 협박에도 시험성적으로 줄 세우기 위한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체험학습을 떠났었다. 모처럼 엄마와 야외 학습에 나선 두 녀석들의 밝은 모습에서 내심 동심으로 돌아가 남한강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좋은 체험을 했던 시간이었다.

오는 10월 13일 초등 6학년 중3, 그리고 고1 학생들이 말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를 또 치르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부터 일제고사를 반대했던 학부모들의 동의를 받아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을 허락했던 양심적인 교사들을 파면, 중징계 했고 소신껏 일제고사를 거부했던 학생들에게도 체험학습 불허와 무단 결석처리 등 반교육적 탄압을 했었다.

내 아이에게도 불이익 올까봐

아마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되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중징계에 협박으로 밀어붙이니 잘못된 일제고사에 문제를 느끼면서도 내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미친 교육정책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부익부빈익빈의 교육 불평등은 극에 달하고 공교육은 사교육에 무너진 지 오래다. 이제 교육문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했다.

   
  ▲ 사진=손기영 기자

과거 정부가 ‘3불 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으로 대입제도를 바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국가는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드는 역할을 하고 대입제도는 궁극적으로 대학자율에 맡기겠다는 시장주의 원칙을 제시했다.

더구나 대통령 취임 후 100일도 되지 않아 시작된 우열반 편성, 0교시 부활, 영어 몰입식 교육, 대학자율화 교육정책 실행과 최근 2009 교육과정 개편인 미래형교육과정은 교육현장은 물론이고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이제는 유아나 유치원 때부터 입시경쟁의 무한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잘 사는 집이나 못 사는 집이나

현재 초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인 내 아이들의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잘사는 강남에 비해 덜하다고는 하나 학교에서 수시로 보는 수행평가나 시험, 일제고사는 불안한 부모들의 심리를 한껏 부풀려 아이들을 능력 있다는 쪽집게 학원으로, 과외로 뺑뺑 돌린다. 잘사는 집의 아이들은 양질의 사교육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가게 될 것이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사교육은 고사하고 대학을 가기도 어려울 것이라 본다.

10 평 남짓한 작은 월세 집에서 어렵게 살고 있지만 중 3아들, 고3 딸을 둔 친구가 있다. 딸 아이 대학 보내려고 맞벌이는 기본이고 몇 년 째 옷 한 벌 못 사 입고 생활비 외에는 학원비로 다 쓴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엔 관심 없고 족집게 학원 스타 강사나 과외 정보에 바쁘다.

이 집은 딸이 공부를 꽤 잘해 엄마가 더 고생한다. 문제집, 참고서, 학원, 논술, 영, 수 과외 등 요구가 많다. 혹여 아이가 나중에 원망할까 부모는 전전긍긍 사교육비 마련에 등골 빠지는 거다. 좀 먹고 살만하다는 집도 아이가 고교생 되거나 고3이 되면 그 수준에 맞게 남들보다 더 사교육비를 지출하니 정말 끝이 없는 경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들은 개미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사교육비를 마련해야 좋은 부모 노릇하는 게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어와 한자 학습지 외에는 학원 안 다녀도 잘 컸던 우리 집 큰 아이도 요즘엔 “엄마도 돈 벌어요.” 한다.

"엄마도 돈 벌어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 녀석이 입시미술학원 보내 달라 해도 “돈 없어” 했던지라 불만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 엄마가 돈 한 푼 못 버는데도 일하느라 바쁜 게 이상했는지)

그러나 학원비가 생활비 절반을 뚝 자를 정도니 서민부모 벌이로는 감당하기 벅차다. 서점에서 데생, 수채화 책을 사다 독학하라고 주고 겨울에 알바해서 좀 싼 곳을 찾겠노라 약속하고 말았다. 착하게도 아이는 긴가민가하면서도 넘어갔다.

초등 1학년인 작은 아이는 조금 공부하고 노느라 바쁘지만 수행평가가 성적에 들어가고 일제고사로 인해 상당수 반 친구들은 이미 보습학원에, 특기적성에, 영어 공부에 바쁘다.

아이들이 시험지옥에서 벗어나 행복해 하고 부모들은 사교육비를 따로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정책이 절실하다.

4대강 예산이면 무상교육 충분

이명박 정부, 반서민적 교육정책 뿐 아니라 부자감세를 하더니 4대강 사업으로 쏟아 붓겠다는 돈은 22조원이나 된다. 이 돈이면 교육복지로 취학 전 아동 무상교육비 9조원, 고교 무상교육 3조원, 반값 등록금으로 5조원, 친환경 무상급식실시 및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1조 2천억 등 민생에 투입할 수 있는 정도의 엄청난 금액이다. 참, 이상한 대한민국이다. 국민의 혈세를 누구를 위해 쓰겠다는 건지 !

오늘 다시 두 아이의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을 신청하면서 이제는 정말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모두 나서서 싸웠으면 한다. 자식 낳기도 힘들지만 키우기는 더 힘든 세상에서 우리의 침묵과 비겁함이 더 이상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말이다.


     관련기사
· "난 죽고 싶지 않다"

2009년 10월 08일 (목) 14:39:28 박현숙 / 학부모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9. 10. 8. 11:15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 No의 한 청소년이 쓴 글입니다. 레디앙, 프레시안 등에 실렸네요.

일제고사 이후로 중학교도 방과후학교가 강제보충수업화되고 있고 시험 대비한다고 모의고사보고 온갖 괴악한 짓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학교 현장에서 학생이 전해온 이야기들이 일제고사의 폐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디앙에 실린 글을 퍼옵니다. ^^ (레디앙은 카피레프트니까;)










"난 죽고 싶지 않다"
[일제고사 반대①] "우리가 좀비냐?…공부 싫은 투정이 아닌 살겠다는 것"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되고 있는 일제고사가 오는 13~14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치러질 예정이다. 앞서 몇 차례의 일제고사과정에서 벌어진 교사해직문제 등 부작용이 명백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 측은 일제고사를 강행하려 하고 이에 대한 교육운동진영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 모임 ‘Say-No’는 학생과 학교 간의 경쟁을 가속화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3회에 걸쳐 기고 연재한다. 그 첫 순서로 인천의 중3학생의 글을, 이후 학부모와 일제고사로 인해 해직당한 교사의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Say-No’ 등 교육운동진영은 릴레이 기고 외에도 일제고사에 맞춰 등교거부 / 체험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연재는 <프레시안>에도 공동 게재된다. - 편집자 주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 이명박 같은 아이야’라는 말은 욕으로 통한다. 뭐, 그런 정도다. 내가 상당히 바쁜 와중에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우리 이야기를 하면 ‘가카’가 좀 제정신을 차릴까 해서다.

어차피 익명인데 할 말은 해야겠다.(실명으로 썼다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두렵다.) 작년에 일어난, 일제고사로부터 비롯된 참극을 보고도 또 일제고사를 치게 할 맘이 들까? 아, 정말 우리 '가카' 탄핵을 해서라도 좀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카'를 말리고 싶다.

“헬 오브 지옥”이라는 영화 제목을 아는가? 지금의 학교를 묘사하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적절한 어휘다. 일단 내 학교만 예를 들어서 봐도, 등교시간이 빨라지고, 6교시까지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하다 7교시 방과 후 학교, 8교시 자습이 반강제다. 후덜덜.

참고로 이번 일제고사 성적이 나쁘면 야자까지 할 수도 있다는 악의 수괴(통칭 교장)의 협박이 수 차례 들려오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몇몇 학교는 벌써 하고 있다고 한다. 후덜덜. 그 학교 학생에게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 사진=교육공동체 '나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시내에서 벗어난 지역이기도 하고, 고등학교도 거의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가는 식이라 경쟁 자체가 적다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방과후 프로그램에 비교과 프로그램이 구색맞추기나마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아놔, 올해 들어서 갑자기 전학년 일제고사대비프로그램이다.

거기다 다짜고짜 8교시 자습이다. 그뿐인가? 갑자기 단속도 심해졌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 교사의 지도에 불응한 학생, 복장 두발이 교칙에 어긋나는 학생, 수업시간에 분위기를 흐트리는 학생, 결과(땡땡이)한 학생, 지각생, 전부 모아다가 3교시 끝나고 운동장 한 구석에서 오리걸음 시킨다. 후덜덜. 그거 30분만 하면 5교시 음악수업에 계단을 오르지 못해 지각하는 불우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외에도 여러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선생들은 ‘아놔 8교시까지 수업해야 함’ 하고 울상이고, 학생은 ‘......살려줘요’ 하고 죽을 상이다.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가만 생각하고 있자니 요즘 유행가 구절이 떠오른다.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어, 아직 쓸만한 걸 죽지 않았어, 그런데, 너 하나 때문에 망가진 몸, 사라진 꿈, 불타는 맘’ 공감 100% 아닌가?

시험지옥 속에 바보들의 행진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대한민국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또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학생으로서 일제고사에 반대한다. 반대하는 이유? 우선,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험은 1년 4번으로 많다는 거다. 그 이상 보면 나 울지도 모른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돌연변이도 간혹 있는 모양이지만, 공부는 상당히 힘들다. 특히 시험이 주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보통 시험 보기 2~3주 전부터 시험기간이라 하여, 시험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데, 이때 학원에서 내는 숙제, 공부하라는 부모의 잔소리, 잘 봐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 등이 겹쳐진다. 내 경우는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불안으로 손톱을 물어뜯기도 한다. 시험이 끝나면 성한 손톱이 없을 정도다.

스트레스뿐인가? 하루에 대부분을 공부는 안 하더라도 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책상에 갇혀있게 된다. 그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아프다. 중3인데.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친구와 생기는 묘한 분위기. 내 친구가 나보다 시험을 잘 보면,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심한 경우는 그걸 원인으로 싸움이 나기도 한다.

이딴 시험을 줄일 생각을 해야지, 늘리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가? 이미 수행평가에, 중간기말고사에 시험은 너무나 많았다. 일제고사 시험은 내신에 반영이 안 되니까 부담이 없을 거라는 건 헛소리다. 내신에 반영하겠다는 학교들도 많고, 제대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라는 학교의 압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충 봤다가 미달이라도 나오면 수치스럽기도 하고, 강제로 보충수업에까지 끌려가야 한다.


학생들을 숫자로 만드는 일제고사

두 번째로, 일제고사는 우리를 줄세운다. 학교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숫자이다. 내가 부른 노래도, 내가 그린 그림도 모두 수행평가점수라는 숫자가 된다. 나의 학교생활에서의 태도도 ‘태도점수’라는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의해 ‘나’도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 숫자들에 순위가 매겨지고, 그 순위로 평가된다.

뭐, 사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순위니까. 그 순위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그러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 대학에 가지 못하면, ‘무능한 놈’이 된다. ‘필요 없는 놈’이 된다. 그러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순위를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죽어라고 공부만 해야 한다. 몇 명이 그렇게 한다면 나머지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뒤처지니까.

   
  ▲ 사진=교육공동체 '나다'

일제고사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줄을 세우면 이런 식으로 공부만을 강조하고, 공부만 해야 한다는 풍조가 퍼질 것이다. 결국 이제는 중3부터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만 한다. 일제고사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일제고사가 지나고 남는 것은 피폐해진 심신과, 앞으로 펼쳐질 지옥 같은 공부의 나날뿐이다.

이러한 공부의 나날들이 펼쳐지게 되면 또 사교육이 엄청나게 판치게 될 것이고, 그 사교육과 공교육의 틈새에서 학생들만 죽어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죽고싶지 않다. 나는 그런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죽음의 낭떠러지를 향하는 바보들의 행진에 반대하는 것이다.

난 죽고 싶지 않다

일제고사, 전국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과목의 같은 문제를 푸는 것, 우리가 무슨 좀비냐? 다 똑같이 그러고 앉아있게. 그런 식으로 해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코메디다.

권력자들의 웃기지도 않는 촌극에 도대체 왜 우리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학생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어떻게 하면 종이 몇 장에 인쇄된 선택지 5개 중 하나를 고르고, Tom이 전화를 건 목적을 알아맞히고(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석출된 붕산칼륨의 양을 구하고, 삼각형의 높이를 구하고,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운 목적을 알아맞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이 일제고사 시험 성적으로 평가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불가능하다.

일제고사를 계속 강행하는 것은 그냥 우리를 죽이겠다는 심산이다. 아니, 의도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은 죽어나가게 되는 시험이다.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공부에 깔려서,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학원에 치여서 죽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일제고사에 반대한다. 일제고사는 원래 입시지옥에 살던 학생들을 ‘헬 오브 지옥’, 지옥 속에서도 더 지옥에 처넣는 첫걸음이다. 이것은 단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들의 일시적인 반항이나, 공부하기 싫은 것들의 투정이 아니다. 한 번 살아보겠다고, 그저 한 번 살아보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인 것이다.


2009년 10월 06일 (화) 15:48:06 인천의 중3학생 / Say No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어른들이 후손의 미래는 생각치도 않고 투표를 거지같이 한 결과죠.

    2009.10.08 15:24 [ ADDR : EDIT/ DEL : REPLY ]
  2. 뭐야 이 잉여들은;;

    보기싫으면 처 보질 말든가....누가 납치감금폭행협박이라도 한건가?? 지 꼴리는대로 처 살다가 나중에 아파트 돌며 닭배달을 하든말든 그건 지인생이잖아???
    말하는 꼬라지가 마치 자기는 너무나도 일제고사를 보기 싫은데 누가 의자에 묶어놓고 강제로 보게하는듯???

    2009.10.08 16:59 [ ADDR : EDIT/ DEL : REPLY ]
    • 아파트 돌며 닭배달하는게 뭐..?

      너 닭시키지마..

      꼭 이런것들이 반마리 배달해달래..

      시키면 넌 산 닭 가져다 줄꺼야..

      2009.10.08 19:02 [ ADDR : EDIT/ DEL ]
    • 우와 십랔ㅋㅋㅋㅋ 산 닭 무섭닼ㅋㅋㅋㅋㅋㅋㅋ

      2009.10.08 20:10 [ ADDR : EDIT/ DEL ]
    • 1. 네! 안 보면 폭행 협박이 일어납니다. 체벌이나 훈계나 징계 등등의 이름으로요. 교사의 경우엔 해임도 하더군요. 벌써 여러건 그런 게 알려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런 강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하는 것 자체에부터 이미 강제적인 면이 있습니다. 출석부터가 반강제적이니까요.

      2. 개인적 차원에서 직접 강제를 하든 안 하든,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이런 시험을 도입해서 '다수의' 학생들이 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폐해는 충~분히 큽니다.

      3. 그런 식으로 따지면 시험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거나 과로사하더라도 '그건 지 인생'이겠네요?

      2009.10.09 14:08 신고 [ ADDR : EDIT/ DEL ]
  3. 사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자칫 '철모르는 어린친구의 치기' 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건 어른들이 나서서 반대를 해줘야 하는데
    이나라의 어른들은 정말 매정하게까지 보입니다.

    2009.10.08 17: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른, 학생 할 것 없이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저항이 하나하나 개별화된 형태가 아니라 조직적인 형태로 가능해야 할 텐데 그런 부분이 아직 부족한 건 아쉽습니다.

      2009.10.09 14:08 신고 [ ADDR : EDIT/ DEL ]
  4. 잉여인간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글 아까 기사에서도 봤고 지금 두 번째 보면서 암만 생각을 해봐도..
    '일제고사=죽음' 이라는 논리 자체가 이해가 안간다.
    그냥 공부하기 싫고 억지로 잡혀서 자습하는게 싫어서 징징거리는거잖아?

    그럼 내가 하나 묻자.. 일제고사 없어지면 무한경쟁, 줄 세우기가 없어지냐? 아니면 대입제도가 없어지냐?
    뭐 일이 졸라게 잘풀려서 대입제도까지 없어졌다 치고, 고등학교 대충 들어가는 것처럼 대학도 대충 가는 시대가 온다 치면..
    대학에서 보는 중간, 기말, 퀴즈, 과제, 발표, 논문, 영어점수, 자격증, 인턴, 취업 등 경쟁은 어떻게 할래?
    그것도 싫다고 죽겠다고 징징댈래?

    설마 실력을 쌓아 경쟁할 생각도 안하면서 남들이 힘들게 얻어낸 명문대학, 일류기업, 높은연봉을 바라는건 아니지?
    저런 것들을 얻는다해도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지만, 절대 노력과 경쟁 없이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 중고등학생하고 세대 차이가 이정도로 날 줄은 몰랐네. 이런식으로 징징거려봤자 달라지는건 아무 것도 없다.
    시험 1년에 몇 번 더 본다고 안죽는다. 약한 소리 하지마라

    2009.10.08 20:08 [ ADDR : EDIT/ DEL : REPLY ]
    • 포스팅한 사람이 중고등학생이 아니니 낭패.

      2009.10.08 20:11 [ ADDR : EDIT/ DEL ]
    • stcat / 어머 그래도 저도 3년전까지 고등학생 -_-

      잉여인간 / (님 같은 친구 사귄 기억 없는데 반말 찍찍하시는 게 불쾌하게 하네요 ^^)
      억지로 잡혀서 자습하는 거야 물론 싫죠. 그런 게 싫다고 말하고 거부한다고 말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일제고사가 없어진다고 무한경쟁, 줄세우기, 대입경쟁, 취업경쟁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생겼기 때문에 무한경쟁, 줄세우기, 중고입경쟁 등이 더 빡세진 것도 사실입니다.
      매운 라면에 고추가루와 후추를 팍팍 치는 사람에게 고추가루와 후추를 더 치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게 더 안 친다고 라면이 덜매워지냐고 묻는 것 같은 우문이군요.

      그 "실력"의 기준, 방식과 "경쟁"의 이유와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고, 그런 식의 경쟁이 일으키고 있는 폐해도 심각합니다. 특정한 교육 시스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를 인생 일반, 노력 일반으로 환원해서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삶을 열심히 산다거나 노력을 한다거나 그런 것 자체를 부정하는 말은 이 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험 1년에 몇 번 더 본다고 해서 사람 하나하나가 죽진 않겠지만 자살/과로사/건강악화/정신피폐 등은 확실하게 증가합니다.

      // 그리고 이건 세대차이가 아닙니다 잉여인간님이 몇년생인지는 모르겠지만, 1980년대 90년대에도 이런 절규를 남기고 죽은 학생들, 그리고 이런 것에 저항한 학생들이 분명히 다수 존재했습니다.

      2009.10.09 14:16 신고 [ ADDR : EDIT/ DEL ]
  5. 리잔느

    단편적 지식이 전체적인 앎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까
    구슬만 모아서 꿸 줄 모르면 아무 쓸모 없음

    그냥 구슬을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 그 측면만을 강조하는게 에러

    2009.10.09 09:29 [ ADDR : EDIT/ DEL : REPLY ]
    • 구슬이 아니라 쌀이나 피자나 포켓몬 카드나 조미료나 라면스프를 모을 수도 있어. 꼭 모으는 방식이 아니어도 되고.

      2009.10.09 14:16 신고 [ ADDR : EDIT/ DEL ]
    • 리잔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2009.10.09 15:08 [ ADDR : EDIT/ DEL ]
  6. 퍼가요 ^^

    2009.10.09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9. 15. 12:46
http://onlineif.com/main/bbs/view.php?wuser_id=letter_news&category_no=&no=536&u_no=85&pg=





[김신명숙의 편지 30]
교권이 문제라구요?
이프



<title>idsu.net</title>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탁 막히는 것같았습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머리 속이 소용돌이치면서 복잡해지더군요.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제 목을 보고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최근 큰 물의를 일으킨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에 관한 얘깁니다. ‘선생님 꼬시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유포된 이 동영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들 보셨겠지만 짧은 동영상보다 그 상황을 글로 옮긴 내용이 더 분명하게 사건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같아 조선일보에서 이 사건을 다룬 기자 칼럼-“여교사 성희롱, 죄와 벌”-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45 초짜리 동영상에는 수업이 끝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건장한 체격의 한 남학생이 시험지처럼 보이는 유인물을 걷는 여교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가선다. 여교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옮기자 "누나 사귀자"라고 소리친다. 다른 학생들이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치고, 카메라를 보고 "도망가는데요"라고 말한 남학생은 다시 여교사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다른 남학생이 여교사의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도 잡혀 있다. 여교사가 동영상을 찍는 학생을 향해 '찍지 말라'는 듯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은 끝난다.”이 글을 읽고 어떤 느낌, 혹은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그렇습니다. 언론에서는 애써 ‘성희롱’으로 축소하고 있지만 이 동영상은 전형적인 포르노의 프레임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사 포르노, 혹은 포르노 동영상의 도입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백주대낮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상대로 그런 동영상을 찍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언 론은 이를 두고 ‘추락한 교권’을 떠들고 있습니다만 이 동영상이 생산된 핵심적인 권력관계의 맥락은 교권보다는 ‘남성권력’입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권력관계 위에 존재하는 남성권력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알파걸’이니 ‘여풍’이니 하는 말들이 요란스런 한국사회에서 페니스의 권력은 아직도 굳건한 것이고 그 권력은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물들을 통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단지 페니스가 달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일이 가능한 포르노 세상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지만 클릭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전세계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현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이같은 사건까지 만들어냅니다.


이 제 더 이상 숨어있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일상문화, 더 나아가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돼버린 포르노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 특히 십대들의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데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포르노에서 보여지는 섹슈얼리티, 즉 상호존중의 아름다운 교감이 아니라 지배와 복종의 섹슈얼리티, 정신과 영혼이 함께 하는 온전하고 소중한 몸이 아니라 부위별로 소비되는 살덩어리에 바탕한 천박한 섹슈얼리티가 십대들을 포함한 우리들의 성생활, 나아가 여남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섹슈얼리티는 신의 축복’이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나 ‘삶의 동반자적 관계’같은 여남관계의 지향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성적 괴롭힘과 강간, 지배와 소외, 차별이 횡행하기 마련이지요.


포 르노의 시선에서는 눈에 띄는 모든 여자들, 권력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여자들은 물론 선생님, 상사, 친구엄마 심지어 친엄마까지 성적 대상물로 포획돼 버리고 맙니다. 이번 사건도 그렇게 포르노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포르노의 시선으로 젊은 여선생을 바라보다가, 마침 시간강사라는 약점까지 겹쳐 겁 없이 그런 행동을 벌인 것같습니다. 언론에서는 문제학생들에 대한 처벌만 솜방망이니 뭐니 시비를 걸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포르노 천국’일 것입니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친구 엄마 꼬시기’ 더 나아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제목의 실제 동영상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번 사건이 말해주는 문제 자체도 두렵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막막한 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짐짓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기자 칼럼의 경우 심지어 ‘'장난'으로 만든 동영상일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듯했다’고까지 했더군요. 물론 학생들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성적 괴롭힘을 ‘장난’이라는 가해자의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 그 칼럼을 보자니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보 도에 의하면 그 여교사는 학생들의 처벌도 원치 않고 더 이상의 어떤 다른 조치도 현재로서는 요구하고 있는 것같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도 여교사는 없었던 일로 하려고 했는데 학생이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된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고 보면 이번처럼 사건화되지 않고 묻혀버린 유사사건들이 얼마나 많을지요? 또 앞으로도 같은 성격의 사건들이 얼마나 다양한 변종으로 생겨날지요? 교단에 선 자신의 몸을 포르노의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여교사의 심정은 어떤 것일지요?


자 료를 찾아보니 이미 미국에서는 학생들에 의해 교사가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건들이 법정에서 다뤄진 케이스들이 여럿 있더군요. 한 연방법원은 4년전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성적 괴롭힘에 학교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 8월에는 뉴욕시 한 공립고등학교 여교사가 시 교육당국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알렸는데 교육당국이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했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금전적 피해보상과 함께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성적 괴롭힘을 다룰 성문화된 정책을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충격적인 건 그녀를 성적으로 괴롭힌 건 남학생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한 여학생도 그녀가 ‘성적으로 좌절돼 있어 남자가 필요하다’는 둥의 언어폭력을 썼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적 상상력은 여남을 불문하고 포르노 소비자 모두에게 작동한다는 증거겠지요.


바 라건대 이번 사건이 일과성 공분(公憤)으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절대로 일부 남학생들의 ‘과도한 장난’으로 한번 따끔하게 혼내고 말 문제가 아니니까요. 포르노 천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왜곡된 섹슈얼리티와 여남관계, 여교사들이 전방위로 당면하고 있는 ‘성적으로 적대적인 근무환경’, 체계적이고 효과있는 성교육 등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들과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이 심각한 병리적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지 당사자인 여교사들, 여성단체, 교육단체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학생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번 사건이 그대로 묻히지 않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김신명숙







공현 추신
: 학생들에 의해 + 교직원, 상사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여학생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ㅇㅅㅇ

    피해 망상에 빠져 지내는 김신명숙씨는 여전하군요.^^;

    이 사람은 기본적인 인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보니 글에도 신뢰가 안 갑니다.

    2009.09.17 20:39 [ ADDR : EDIT/ DEL : REPLY ]
    • 김신명숙 씨 개인은 잘 모르지만.
      이 글의 기본적 내용에는 동의합니다 ^^

      메신져와 메시지가 어느 정도는 구분되어야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신뢰할 만한 활동가라고도 생각해봅니다.

      (김정명신 씨랑 헷갈려서 잘못 말했었네요. 수정)

      2009.09.24 17:00 신고 [ ADDR : EDIT/ DEL ]
  2. 1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3. 2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삭제할까 하다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올렸을까 싶어서 그냥 남겨둡니다 ^^;

      2010.04.04 20:3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9. 12. 04:13

국민일보 사설 : 제자의 성희롱에서 교권이 읽힌다



1. 이 사건을 두고 교권 실추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지랄맞은 일이다.

물론 이 사건은 교사의 권력/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서 여-남 사이의 성별 권력이 이를 넘어선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장이나 교감, 또는 동료 교사 등이 여교사를 성폭행하는 사건에 대해 아무도 '교권침해'를 말하지 않는 것 등을 생각해보면, 역시 이는 다분히 문제가 있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교권'은 교사가 상급자(정부, 관리자 등)에 대해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하급자(학생)에게 가지는 권력/권위라는 인식이다.



2. 또한 우리는, 저런 식으로 '농담'(??)을 던지는 식의 성폭력(그걸 성추행이라 하든 성희롱이라 하든 성폭행이라 하든)은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게 그 빈도로는 훨씬 많은데, 그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민감하게 "이건 인권침해다"라고 반응해왔는지도 물어봐야 할 것이다.



3. 이 국민일보 사설에서 기간제 교사,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한 건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근데 마지막에 대학입시 어쩌구 하는 문장은 좀 쌩뚱맞게 보인다. 뭐든지 대학입시랑 전인교육 문제냐.



4. 어찌 되었건 저것은 성폭력이다. 여성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처한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대개의 생활 현장이 그렇듯이, 학교 현장은 단지 교사-학생 권력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관계와 맥락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

어쨌건 나는 이걸 연애-사랑을 상품화하고 '소유' 양식으로 만드는 사회, 성폭력에 둔감한 사회의 문제로 이야기하지 않고 '교권실추'의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5. 인터넷에 떠다니는 동영상 중에서 얼굴 다 알아볼 수 있게 된 동영상들을, '충격' 이러면서 퍼나르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사람의 권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성의가 있다고 봐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ajung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고 저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제가 아는 여교사 한 분은 "나는 그거보다 조금 덜 한 일을 학교(당시 남자중학교 근무)에서 종종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나를 위안삼았으면 좋겠네..." 라고 저를 위로하더군요.

    2009.09.14 11:40 [ ADDR : EDIT/ DEL : REPLY ]
    •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모든 여성이 잠재적인 성폭력의 피해자...라고 하더라구요

      2009.09.14 23:22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8. 31. 17:55





   학교에서 휴대폰 금지하고, 걷어가고, 압수하고... 많이 짜증나지 않으세요? 학생들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휴대전화규제를 조례(시, 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정하는 법)로 하게 해주겠다고 하네요?! -_-
  지금 경상남도, 서울시, 제주도 등에서 ‘휴대전화금지조례’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면학 분위기를 위해’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등교하는 것을 학교장이 금지할 수 있게 정당화해주는 것입니다.
  경상남도의 박종훈 교육위원이 낸 법안을 보면,
  휴대전화를 가져가서 그 내용을 보거나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고 있긴 하지만,
  휴대전화를 금지하고 압수하는 것을 모두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면학분위기’를 위해서....
  지금 경남에서도 학생들이 반대운동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http://cafe.naver.com/antimile)



  휴대폰을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금지하고 규제하고 압수하는 것에는,
  학생들을 공부만 하는 기계로 보는 것과 다름 없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공부에 방해가 되고 딴 짓을 하게 되는 휴대폰을 학교에 가져오지 말라는 거죠.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휴대폰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딴짓을 할 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휴대전화로 딴짓을 하게 된다구요?
  그건 재미도 없고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시험 보기 위한 공부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만 하고 강제적으로 교사에게 집중해야만 하는 교육의 문제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수업에 대해 학생들과 교사들이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좀 더 학생들을 존중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딴짓을 많이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서로의 예의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고 휴대전화를 끄거나 치우면 될 일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금지하는 것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수업을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보통 예의의 문제이지 금지하고 압수할 문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친구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면 그 친구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혼내시나요?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하면, 그 사람 휴대전화를 극장에서 압수하나요?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완전 금지시키고 압수하는 짓은 인권침해라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건 정말 우리의 통신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쌩까는 짓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권침해인 휴대전화 규제를 막지는 못할 망정 시/도의회, 시/도교육청에서 조례로 정당화해주겠다니요??
  청소년들은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 시민/도민/교육주체가 아니라는 걸까요? 그냥 통제할 대상일 뿐...
  휴대전화금지조례를 만들면서 청소년들의 권리나 자유, 의견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해봤는지 의문입니다.




  휴대전화금지조례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합니다...
  작은 행동이라도 일단 해봅시다... 
  다른 학생들에게 이런 뷁스러운 게 추진되고 있다는 걸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날려주세요...
  그리고 교육청, 의회에 항의하는 행동을 같이 합시다... (서울은 9월 5일 토요일 저녁 8시입니다)



(문자 돌리기 행동은 이렇게! 플래시몹 날짜 같은 걸 넣어도 좋겠죠?)
(* 정확히는,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시교육청에게 휴대전화금지조례를 발의할 것을 요청함.
서울시교육청은 아직 이렇다할 입장을 안 냈음.)



나는 핸드폰 없어 (원곡 : 심장이 없어)

나는 핸드폰 없어

나는 핸드폰 없어
내 폰은 교무실 서랍에 있어
휴대전화금지조례 이렇게 통과시킨대
학교에선 공부만 해야된대

돌려달라 말하면 졸업 때 줄 것 같아서
왜 뺏냐고 말하면 벌점 줄 것만 같아서
그냥 냈지 그냥 냈지 그냥 냈지
공부시키려고 참 별짓을 다해 (이렇게 힘든데)
>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resh8323

    이런 조치들은 사과하고 말로 풀수있는 학생들이 아닌
    일진이니 뭐니 하면서 지도 교사 말안듣고 뻣대는 학생들을 위한 사항입니다.

    현실적으로 말로하면 안듣는 남고에서 체벌또한 금지되고 있는 마당에....
    인권 운운하면서 선생님 말 안들을 학생들 생각하니... 학교 교육 정상화의 길은 요원해 보이는군요.

    땅에 떨어진 교권에서 어떻게 양질의 교육이 나올수 있을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2009.09.01 11:47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본문에 썼다시피, 그런 경우에 대해서 저는 애초에 왜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고 똑같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교육-수업은 왜 이토록 재미가 없고 비자발적인가, 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모두 학교 밖으로 쫓아내야 해,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요.
      그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치우라고 요구해도 듣지 않는다지만, 애초에 그 학생들도 거기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싶은 건 아닐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서 교사는 학생들이 재미 없고 당신 수업을 존중하지 않겠다, 라고 수업하지 말라고 요구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수업하고 있는 무례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수업을 일시적으로 듣고 싶지 않거나 듣기 싫은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나 제도가 학교에 따로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현재와 같은 학교 수업을 장기적으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들이 제공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오직 비슷비슷한 방식과 비슷비슷한 과목, 내용의 수업들이 강제되고 있을 뿐이지요. 문제풀이를 위한.
      (그리고 남고에서 체벌 금지된 곳 거의 없습니다. 전체의 10%도 안됩니다. 모든 학교 다 따져봐도요.)

      교권 운운하면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교육을 강요하는 교사들을 생각하니, 학교 교육 정상화의 길은 요원해보입니다.
      학생들의 상태와 의견,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획일적, 강제적, 경쟁적, 차별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양질의 교육이 나올 수 있을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2009.09.01 14:01 신고 [ ADDR : EDIT/ DEL ]
  2. ^^

    이글을 보니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실망감이 크네요..

    학교라는 곳은 공동체생활이기 때문에 규제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곳이 학교라는 곳입니다.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교육에 대한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휴대폰 사용자로 부터의 학습권을 박탈당한것에 대한 학습권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 의문이군요??
    요즘 애들을 인권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권리만을 내세우게 만들고 의무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요즘 학교라는 곳은 뭐하는 곳인지 참 한심스러워집니다.

    특히 이부분은 더 가관이군요..
    수업중에 핸드폰이 울리면 사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선생의 수업을 존중하지 않으니 수업 안 받겠다...
    쉬고싶을때 쉬고 싶다.

    중학교까지는 학습에 대한 의무가 있으니 당연히 지켜야 겠지만
    고등학교에는 그런 의무가 없으니 관두시던지 좋은 학교로 전학가시면 됩니다.
    그것도 싫으시다면 대안학교도 많으니 그 곳으로 뜻을 두시면 되지 않나요??
    아니면 검정고시를 보시면 됩니다.
    여러가지 선택이 있는 데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학교를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부모님의 강요? 그것도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세요.. 인권침해라고..

    그리고 쉬고 싶을때 쉬고 싶으시면 중고등학교도 휴학제도가 있습니다. 이용하세요!

    학교에 가고 있기 때문에 규제라는 것이 있고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법질서가 있는 것이며 자신의 권리와 함께 의무가 지워지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싫으시면 학교를 나오시는 권리를 행사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두발규제와 같이 쓰잘때기 없는 규제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핸드폰에 대한 규제는 정말 불합리한 규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권을 존중해서 만드는 불가피한 규제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009.09.01 14:44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한 명, 또는 이 활동하는 청소년들 몇 명 때문에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실망감'씩이나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a. 공동체이고 공동체의 운영에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에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칙이 옳은지 또한 그 정도가 적절한지라는 것이 우선적으로 따져져야 하느 ㄴ것입니다.

      b. 휴대전화 사용으로 불쾌감을 느끼거나 수업에 다소 방해를 받는 정도로 '학습권 박탈'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오버입니다. 수업이 조금이라도 방해받거나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그게 곧 학습권 박탈이라는 논리는 수업을 과도하게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군요 -_-
      학습권이란 말이 기존의 수업-교육을 전제로 하고 너무 남용되는 경향이 있는 용어이긴 합니다만.

      c. '의무교육'은 아동에게 부모가 교육권을 박탈하지 않고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게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 그리고 국가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에 가깝지, 아동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으며 강제로 교육을 시키는 게 '의무교육'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d. 네 대안학교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대안학교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또한 제도권 공교육이 교육의 권위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학교라는 선택지의 어려움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대안학교의 경우도 현재 그리 다양한 교육을 원하는 만큼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산의 부족 때문이건, 그 학교의 교육이념의 문제이건, 아니면 뿌리깊은 '학교화'의 문제이건.

      e.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이란 말을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네, '선택'이라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선택의 선택지 자체를 늘리라고 요구하겠습니다.

      f. 여기서 말하는 쉬고 싶다, 라는 건 휴학처럼 1년씩 쉬는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욕구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저 아주 인간적인 교육운영을 요구하는 것뿐입니다.
      ^^님의 말씀은 마치 주6일에 10시간씩 일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에서 피곤할 때도 전혀 쉴 수가 없다, 휴게실도 없다, 노동자 복지가 엉망이다, 라고 말하는 노동자에게 그럼 회사 휴직하세요! 아니면 회사 퇴직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괴악한 소리로 들리네요.

      g. 휴대전화에 대한 '불가피한 수준의 규제'는 전면 금지나 압수가 아니라 자제가 가능하도록, 그리고 자발적으로 사용을 제한하도록 권하는 규제입니다. 그리고 휴대전화 등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 시스템적인 해결방식은 위에 덧글에 적었으니 생략합니다.

      h. 휴대전화 금지, 압수가 정말로 불가피한 규제인 걸까요? 제가 교사들 인권연수도 많이 다녀보고, 교사들이나 다른 '어른'들과도 많은 회의를 해봤지만, 교사들이나 어른들이라고 해서 인권연수 때 휴대전화가 전혀 안 울리거나 전혀 딴 짓을 안 하면서 수업에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대학교 수업도 마찬가지지요. 대학교 수업의 경우는 학생이 강의실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거나 전화를 끄거나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의 경우에만 유독 그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휴대전화를 금지하고 압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왜일까요? 그게 불가피한 규제라서? 오히려 학생들이 권력관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고, 그 공간의 문화가 반인권적이고 억압적이기 때문 아닐까요?

      2009.09.02 13:34 [ ADDR : EDIT/ DEL ]
  3. ㄹㄹㄹ

    실제로 학교현장에서 학생들,교사들,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고 글을 쓰는것인지 궁금해지네요.

    휴대폰소리를 들을 권리 말고, 선생님의 말소리를 듣지못하게 되는 학생들의 권리침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실에서 다른사람의 전화벨소리,통화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공부에 집중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학생들의 인권은 어떻게

    호가 되어야 하나요?

    그리고, 개개인이 창의성있는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라는것은 수월성교육,차별화된 교육을 하자는 말씀이죠?

    2009.09.19 09:28 [ ADDR : EDIT/ DEL : REPLY ]
    • 교사들 이야기는 많이 안 들어봤지만, 교사들 중에서도 휴대전화 통제를 반대하는 교사들은 제법 있습니다.
      http://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0378

      그리고 학생들 중에서는 휴대전화 금지나 압수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 제가 학교 현장들을 다니면서 학생들의 불만들을 들어봐도 그렇구요.
      뭐 모든 학생들이 다 휴대전화 금지나 압수에 반대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당연히.

      교실에서 다른 사람의 전화벨소리, 통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듣고 싶지 않다고 요청을 하거나 부탁을 하셔야겠지요. 제가 다른 사람의 숨소리나 말소리가 듣기 싫다고 그 사람이 숨을 못 쉬게 하거나 말을 못하게 금지시킬 수 없는 것처럼요.

      지금까지 "공부에 집중할 권리"나 "학습권"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수업이나 교실, 학교를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오직 학교가 요구하는 입시공부와 학습에만 특화된 공간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해있었습니다. 학생들의 교육권은 분명히 보장되어야 할 것이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 - 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을 때 거기에 맞는 여러 시설들도 제공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업 중에는 전혀 딴짓이나 산만함, 조용히 교사 말에만 집중하는 수업 분위기에 해가 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인간성에 대한 폭력일 수 있습니다.'

      // 제가 말하는 개개인에게 맞춰서 다양하게 보장되는 교육은 현재의 교육 틀 안에서 수준별/차별 교육을 하자는 내용이 아닙니다. 수준별/차별 교육은 이런 맥락에서는 학생들에게 더 억압적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탈학교 이론이나 적성교육에 더 가까운 구상이겠습니다만.

      2009.09.19 12:27 신고 [ ADDR : EDIT/ DEL ]
  4. 지나가던 학생1

    휴대전화 금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하다가 글쓴이님의 의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인권 침해에 대한 부분도 이해가 가구요. 하지만, '애초에 왜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고 똑같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교육-수업은 왜 이토록 재미가 없고 비자발적인가'라는 내용은 휴대전화 소지에 대한 의견과 관련은 있지만 조금 관점을 벗어난 듯 싶네요. 또한, 수업의 흥미에 대한 부분은 개인차가 있겠지요.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서로의 예의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고 휴대전화를 끄거나 치우면 될 일입니다. '-> 물론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예의에 신경쓰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실수로 켜져있지 않는 한)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가 끊임없이 발생한다면(그런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학생들은 계속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친구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면 그 친구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혼내시나요?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하면, 그 사람 휴대전화를 극장에서 압수하나요?' 이 예시는 열외의 경우 같습니다. 조건이 달라지니까요.

    또한, 휴대폰 게임 중독에 걸리면 헤어나오지 못해 수업시간에도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죠. 저희 학교에도 수업시간마다 문자에, 게임을 쉬지않고 하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께서 그 친구들에게 혼을 내시는 동안 많은 시간이 소비되며, 벨소리에 수업이 방해가 되기도 하지요. 게다가 누구 핸드폰이냐며 그 휴대폰의 주인을 찾는 경우에는 꽤 오래걸립니다. (물론, 이제는 묵인해버리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의견은 다르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짧은 소견 올려봅니다.^^

    2010.05.27 01:45 [ ADDR : EDIT/ DEL : REPLY ]
  5. 지나가던 학생1

    휴대전화 금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하다가 글쓴이님의 의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인권 침해에 대한 부분도 이해가 가구요. 하지만, '애초에 왜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고 똑같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교육-수업은 왜 이토록 재미가 없고 비자발적인가'라는 내용은 휴대전화 소지에 대한 의견과 관련은 있지만 조금 관점을 벗어난 듯 싶네요. 또한, 수업의 흥미에 대한 부분은 개인차가 있겠지요.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서로의 예의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고 휴대전화를 끄거나 치우면 될 일입니다. '-> 물론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예의에 신경쓰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실수로 켜져있지 않는 한)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가 끊임없이 발생한다면(그런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학생들은 계속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친구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면 그 친구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혼내시나요?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하면, 그 사람 휴대전화를 극장에서 압수하나요?' 이 예시는 열외의 경우 같습니다. 조건이 달라지니까요.

    또한, 휴대폰 게임 중독에 걸리면 헤어나오지 못해 수업시간에도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죠. 저희 학교에도 수업시간마다 문자에, 게임을 쉬지않고 하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께서 그 친구들에게 혼을 내시는 동안 많은 시간이 소비되며, 벨소리에 수업이 방해가 되기도 하지요. 게다가 누구 핸드폰이냐며 그 휴대폰의 주인을 찾는 경우에는 꽤 오래걸립니다. (물론, 이제는 묵인해버리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의견은 다르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짧은 소견 올려봅니다.^^

    2010.05.27 01:45 [ ADDR : EDIT/ DEL : REPLY ]
    • 지금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은 상호간의 존중이나 예의라는 룰이 적용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분히 강제적이고 비자발적이며 수직적인 관계가 지배하고 있는 게 현재의 학교교육이지요. 그 예시는, 결국 학교 또는 학교수업이라는 조건이 얼마나 강제적 강압적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그런 것들과 비교하면서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학교교육의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약간만 소통하고 룰을 손본다면 학교교육의 원활한 진행과 휴대전화 사용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 나온 정도의 선이 그런 조건에서 가능한 타협점이겠지요.

      중독 같은 경우도 왜 중독되고 또 무엇이 그 중독을 지속시키는 걸까요? ^^;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2010.05.31 09:5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7. 23. 09:44

[내 말 좀 들어봐] 호그와트 마법학교와 한국 학교의 상벌점제

학생은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구~

찬욱


난 해리 포터 마니아야. 읽고 또 읽고 다음 편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학교 때는 시험기간에 해리 포터를 읽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적도 있었지ㅋㅋ 그런데 이번에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해리 포터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보게 됐지. 그런데 이번엔 해리포터 안에서 뭔가 새로운 걸 발견했어!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다스리는 상벌점제

위 사진: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수업 장면

해리 포터의 줄거리는 대강이라도 알고 있지? 고아인 해리는 이모와 이모부 집에서 구린 대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어. 열 살이 되던 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호그와트 마법사 학교에 입학하게 되지. 호그와트는 마법의 능력이 있는 사람만 입학할 수 있는 7년제 학교야. 호그와트에 입학한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살게 되는데, 기숙사는 4개로 나뉘어 있어. 학생을 용기 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 순수혈통 엘리트, 그리고 정의롭고 성실한 사람으로 분류해서 각각 기숙사에 배정하는 거지.

해리가 배정받은 기숙사는 그리핀도르야. 호그와트 마법학교엔 ‘반’의 개념이 없고 ‘기숙사’단위로 나눠서 수업을 듣기 때문에 기숙사는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야. 각 기숙사에는 사감교수가 있고, 기숙사 단위로 점수를 매겨 학생들을 평가해. 체벌은 없는 대신(가끔 개념 없는 교수들이 끔찍한 체벌을 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훌륭한 일을 하면 가점을 주고 규칙을 어기면 감점을 줘.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기숙사는 연말에 기숙사 우승컵을 받게 되지. 학생들은 수업시간이나 일상생활에서 각 기숙사 반장들과 교수들로부터 상점이나 감점을 받아.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 떠든다거나 복장이 교수나 반장들 맘에 안 든다거나 하면 감점을 받을 수 있어. 규칙들도 꽤나 많아서 규칙을 어기면 감점을 받게 돼. 몇 시 이후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거나 어디는 출입할 수 없다거나 하는 규칙들.


스네이프 교수의 악행 : 꼬투리 잡아 맘대로 감점

위 사진:벌점으로 해리와 친구들을 괴롭히는 스네이프 교수

해리가 들어간 그리핀도르는 다른 기숙사인 슬리데린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돼. 슬리데린의 사감인 스네이프 교수는 해리를 무척 싫어하지. 해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책에 자세히 나와있으니 읽어보시고. 아무튼 마법의 약을 가르치는 스네이프 교수는 첫 번째 수업시간에 해리에게 감점을 줘. 태도가 너무 건방지다는 거지. 해리의 친구인 헤르미온느도 감점을 받은 적 있어. 스네이프가 말하라고 지목하기 전에 질문에 대답했다는 게 이유였어. 이런 방식으로 스네이프 교수는 계속 꼬투리를 잡아 감점을 시키지. 당연히 자기가 맡고 있는 슬리데린 기숙사 학생들은 절대 감점을 시키지 않지.

감점을 받게 된 해리는 기숙사 전체에 해를 끼치게 되었다는 부담감을 갖게 돼. 물론 그렇다고 해리가 모든 규칙에 순응하며 생활하진 않지만, 기숙사 전체가 우승컵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거니까 부담을 갖는 건 당연하겠지. 같은 기숙사 학생들도 해리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곤 해. 소설에선 그런 일들로 인해 다른 학생들과 해리 사이에 묘한 갈등이 생기기도 해. 행동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기고 그것도 기숙사 단위로 연대 책임을 묻는 방식은 학생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통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마치 한 친구의 잘못 때문에 반 전체가 단체기합을 받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 친구는 반 아이들로부터 엄청난 눈총을 받게 되잖아.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규칙에 민감해지고 교수들 말에 고분고분해지게 되는 거야.


벌점이 넘쳐나고, 신고가 넘쳐나고...

위 사진:학교 곳곳에서 학생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초등학교 선도부 활동 모습 [출처: 교육희망]

가만, 쭉 읽다가 뭔가 떠오른 거 없어?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 가까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그린 마일리지’(Green mileage)라고 들어본 적 있어? ‘그린 마일리지’ 제도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는 상벌점제도야. 전국 초·중·고교의 10%에 이르는 1천858개 학교에서 현재 시범 운영되고 있고, 2011년까지 전체 학교에 도입될 거라고 해.

내가 다니는 학교엔 상벌점제가 없지만,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정말 놀라웠어. 교과부에서는 체벌의 대안으로 상벌점제를 도입하겠다고 한 모양이지만, 상벌점제가 들어온 뒤에도 체벌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야. 이건 뭥미? 게다가 상점은 너무 멀리 있고 벌점은 너무 가까이 있대. 교사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벌점, 머리가 규정보다 조금만 길어도 벌점, 뭘 해도 벌점 벌점 벌점! 아이고 뭐가 그리도 많은지……. 반별로 합산해서 벌점이 많은 반에게 불이익을 주는 학교도 있대. 들어나 보셨나, 신고제! 규칙을 어긴 학생을 신고하면 신고한 애한테 상점을 주기도 한다는 거야. 신고를 당한 애는 누가 날 고발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아내서 자기도 복수할 기회를 노리겠지. 학생 선도부가 나서서 벌점을 매기는 학교도 아주 많대. 벌점이 어느 정도 쌓이면 징계도 주고 부모님한테 통보도 간대. 이런 일이 초등학교에서도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니 더 끔찍해. (초등학교라고 해서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우린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구~

이런 상황에서 정말 학교를 다닐 만할까? 체벌보다 상벌점제가 낫다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닌가? 게다가 벌점을 매기는 근거 규칙들은 대다수가 인권을 침해하는 것들 아니었나? 상벌점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취급하는 것을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점수 하나에 울고 웃고 고분고분해지는, 말 잘 듣는 개로 만들기 위한 과정. 상벌점제가 불러올 것은 억압과 통제에 익숙해진 우리들 모습이야. 그걸 알았다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지?






[끄덕끄덕 맞장구] 학생 녹화사업, ‘그린 마일리지 제도’

해리 포터 이야기를 상벌점제를 통해 들여다보니 엄청 흥미진진한걸?ㅎ 글 잘 읽었어.

상벌점제는 낯선 제도는 아니지. 오래 전부터 상벌점제를 시행해온 학교들도 여럿 있었고, 몇몇 교육청에서는 교육청 정책으로 추진하기도 했었고. 올해 들어 새로워진 점이라면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에서 ‘그린 마일리지 제도’라는 이름으로 상벌점제가 공식 운영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곧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걸 거야. 또 하나, ‘그린 마일리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중-고를 연계해서 벌점을 마일리지 개념으로 적립, 기록하도록 함으로써 학생 통제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좁히겠다는 점도 들 수 있겠군.

교과부가 그린 마일리지 제도를 ‘체벌의 대안’입네 ‘학생 인권 존중 방안’입네 하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MB식 학생 녹화사업’의 일환이라는 악취를 숨길 수는 없지. 녹화사업이 뭐냐고? 쿠데타로 불법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비판의식과 저항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특별교육을 시켰던 사건을 말해. 이명박 정권 역시 시민들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자나 깨나 법치를 외치고 있잖아? 교과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 법에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반인권적인 교칙에 순응하는 학생부터 만들겠다는 것, 교사와 선도부를 통해 비판 의식의 씨앗을 벌점을 통해 뽑아버리겠다는 것이 그린 마일리지 제도의 숨은 의도이지.

어떤 교사들은 체벌처럼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고 학생들을 상벌점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에 혹하는 모양이야.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상벌점제의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몰라. 매질, 단체기합과 같은 체벌이나 강제이발 같은 일은 교칙의 잔혹함과 파괴된 교사-학생 관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반면, 벌점을 매기는 일은 그 본질을 교묘하게 숨기지. 학생들의 저항감도 적은 편이고. 게다가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교칙을 집행하는 과정에 ‘합리성’이라는 외양까지 덧입혀줘. 조용하고도 교묘하게 학생의 자유 영혼을 잠식하고 ‘법치’에 길들여지게 만드는 것이지.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학교가 지키기를 요구하는 규정이 정당한지를 따지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더욱 교묘해진 통제엔 더 예민해진 감수성으로 맞서야 해. 그린 마일리지 제도의 폐해를 드러내고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를 따져보는 일을 서둘러야겠다.

◎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

덧붙이는 글
찬욱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62 호 [기사입력] 2009년 07월 22일 12:39:37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굳이 짚고 넘어가자면 저 상벌점제는 해리포터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능...
    마법사의 돌에서부터 호그와트 설정이 그랬고, 내 고딩때도 이에대한 비판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능...;;

    2009.07.23 18: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뭐 그렇지. 고딩 때? 누가 쓴 건지 혹시 찾아볼 수 있남> 요새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 대응이 꽤 문제거리라서

      2009.07.26 00:52 신고 [ ADDR : EDIT/ DEL ]
  2. 글쎄, 누가 썼는지 어떤 책이었는지 전혀..;; 그리고 상벌점제는 군대에도 있다능..

    2009.07.26 18: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6. 30. 11:28

근대 교육 속의 전근대

 


*

  지극히 근대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때때로 전근대적인 것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예컨대 최근에는 많이 감소한 추세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대나 감옥 안에서는 구타 등이 문제가 되었으며, 최근에도 완전히 근절되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공교육 공간인 학교에서의 체벌이나 두발규제, 용의복장 단속등도, 이처럼 근대적인 곳에 있는 전근대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형을 연상해주세요.)

  어째서 이처럼 상반된 듯한 요소가 공존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근대적인 통제와 규율의 입장에서 볼 때 전근대적인 통제 방식이 부분적으로는 쓸 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근대적인 통제의 기본 정신은 유지하되, 그 수단으로 전근대적인 방식을 차용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신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가 국제적으로 선언된 ‘세계인권선언’이나 다른 여러 기준들에 위배되는 인권침해라고 해도, 여하간 체벌로 직접 고통을 주는 것은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의 교육적 효과가 어쨌든, 근대적인 공간인 학교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유용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체벌이 계속 존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같은 요인도 분명히 한 몫 했겠지요.

 


*

  교육기본법 제2조를 보면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홍익인간을 실현토록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적인 교육의 도입은, 이런 민주시민의 문제나 인품 도야가 직접적인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형태의 공교육을 도입한 것(영국의 경우 1870년대)은 노동자들이 너무 무식하여 일을 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50년대를 전후해서 도시 외부로부터 노동력 제공이 감소하자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챙겨주기 시작했지요. “자 이 기계를 돌려서 일해라.”라고 말하면서 설명서를 건네줘도, 상당수의 노동자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기계를 돌리거나 명령을 서류로 받거나 하는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돈이나 상품의 수량계산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덧셈뺄셈 계산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엄수나 규율에 순종하는 습관이 몸에 밴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후발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했고 의무교육은 더욱 강력하게 도입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선택할 권리여야 할 “교육권”이, “의무교육”이라는 것 때문에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는 모호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 이런 근대적 교육의 기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 옮겨오면서 별첨 : 아, 다른 한 이면에는 의무교육이 아동에 대한 부모-보호자의 방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도 있음.)

 


  아까 저는 근대가 전근대적 요소를 차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에서 정말 직접적이고 잔인한 인권침해를 일으키는 것은 전근대적 요소입니다. 두발규제, 용의복장검사, 체벌 등등... 그리고 그것들은 즉각적으로 인권감수성을 자극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신체의 자유와 같은 근본적인 부분을 침해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인권감수성이란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인지라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매로 인식하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폭력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느끼는 소수를 묵살하고 무시해도 좋을까요?) 그러나 인권감수성의 차원에서 지극히 근대적인 억압을 인식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억압의 경우보다 좀 더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억압은 주로 경쟁체제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편입하게 만듦으로써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학생들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느끼기 어렵게 만듭니다.

  전근대적 억압이 비록 가시적으로 인권을 침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그 전근대적 억압을 차용하는 근대적 교육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근대 교육과 결합한 전근대적 억압을 인권감수성 차원에서 인식하고, 그 인식을 결국 의식적인 차원에서 근대 교육의 문제점, 예를 들어 입시경쟁체제의 문제점과 같은 것을 비판하는 데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만을 인권의 원칙과 체계적인 비판으로까지 승화시킬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무주푸른꿈고에서 청소년인권강의한다고 2006년인가에 끄적인 글인데... (인권운동사랑방 개굴 쫓아갔음)

실제로 가보니 이딴 딱딱한 내용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내 경험 위주로 갔다지요-_- 결국 이 글은 그냥 묻혔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9. 6. 25. 00:51

[페미니즘인(in)걸] ‘여성’의 이름으로 체벌을 거부한다는 것(2)

조금 덜 아프게 맞은 대가는?

난다


청소년인권활동이란 걸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불편한 것들’을 인식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라는 집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날의 경험은 나를 흔들어놓았다. 그러다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면서,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청소년인권은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학생인권은 내가 하는 청소년인권운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어찌 보면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은 학교 안 청소년들의 인권을 말하는 것인데, 두발자유나 체벌금지나 또는 강제야자 반대 같은 게 대표적인 목소리이지 않을까 싶다.


성별에 따른 폭력의 강도 차이

이제 1년 조금 넘게 활동을 하면서 그 동안 캠페인이든, 집회든,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은 문화제이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학교가 정해놓은 선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을 꽤 많이 만났다. 처음엔 무조건 많이 만나는 게 중요했다. “청소년들의 직접행동이 중요해요!” 라고 외치면서 여기저기 얘기하곤 했다. 그러다가 요즘엔 점점 어떤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학생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성 청소년들보다 남성 청소년들의 움직임과 분노가 더 크고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서명을 받거나 캠페인을 하거나 할 때는 적극적인 액션이 다들 비슷비슷하긴 한데, 행동을 고민하고, 불만을 더 크게 터뜨리는 쪽은 남성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었다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왜 남성청소년들이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확실히 남성청소년들(앞으로는 남청) ‘신체적인 폭력'에 노출되기가 더 쉬웠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친구끼리(남자애들끼리) 때리고 맞고 하고서 집에 들어오면 "뚝! 울지 마!" 하면서 남자애들은 싸워가면서 크는 거라고 말하곤 하는 상황을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반대로 어느 누구도 여자애들이 서로 치고 박고 때리고 하면서 크는 거라는 얘길 들은 적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교사들이 체벌을 행할 때, 여성청소년들(앞으로는 여청)은 상대적으로 더 살살 때리기도 하고, 봐주기도 한다. 똑같은 잘못-이라고 규정되는 것들-이었는데, 나는 손바닥을 맞고, 나와 같은 반의 남자애는 허벅지를 '거칠게' 맞았다. 왜 그랬을까? 답이 나오긴 한다. 왜냐하면 남자애들은 강하게 커야 하니까. 어릴 때부터 거칠고, 강하게 커야 '진짜' 남자 소리 듣지.

그래서일까, 남청들의 적극적인 액션은? 더 많이 규제 당하고, 더 많이 잡히고, 더 많이 맞기 때문에? 더 불만이 많이 쌓이기 때문에?

 


체벌은 남성청소년들 사안일까

이렇게 보면 학생인권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체벌’은 여청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는 것도 같다. 확실히 여청들은 상대적으로 체벌에서 비껴나 있다. 남청들이 100대를 맞는다고 하면 여청들은 40대를 맞는다고나 할까. 그래서 남청들은 여기에서도 불만을 표하곤 한다. "여학생들은 왜 살살 때리냐", "여학생은 왜 덜 잡냐", "남녀 차별이다." 등등. 체벌의 강도나 횟수로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여청들은 남청들보다 더 나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걸까? 여청들에게는 체벌을 안 당하는 대신, 그 체벌을 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폭력이 존재한다. 광주의 한 학교에서는 교사가 벌로 한 여학생에게 치마를 벗고 교실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시켰다고 한다. 여청들에게는 이처럼 ‘수치심’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벌’을 주곤 한다. 거칠고 강하게 자라기를 요구받는 남자애들과는 달리 착하고 부드럽게 자라기를 요구받는 여자애들을 팰 순 없으니, 몸 처신 잘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체벌 대신 성추행을 당한다’, ‘더 많은 통제를 당한다’ 라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나.

성별 권력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한, 더없이 폭력성이 드러나는 공간인 학교에서, 비록 '학교'라는 특수성-교육의 장이라든지, 하는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것 때문에 여성/남성이 아닌 '학생'으로써 입시경쟁의 문제가 주로 부각되는-덕분에 묻혀있으면 묻혀있지 그것이 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성역할은 구분되어 왔다. '성'의 구분이 아니라, 성'역할'의 구분이다. 철저하게. 이런 성역할, 거기다 청소년을 연결해볼까? 성역할의 구분뿐만 아니라 그 역할을 잘 수행해내게 하기 위한 기대도 확 커진다. 청소년은 기대 받는 '자원'들 아닌가. 이 사회를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틀에 맞춰진 좋은 여성이, 좋은 남성이 되길 우리는 기대 받는다. 그래서 여청과 남청은 다른 방식으로 통제당하고, 다른 폭력을 몸에 각인하고 살게 된다.



체벌에 다른 성역할 고정과 학생들 간 분리 효과

체벌은 태초부터(!) 폭력이다. 학교 안 남청들에게만 더 많이 가해져서, 차별이어서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체벌로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그런 폭력을 겪으면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성역할을 더욱 명확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이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로 먹고 살아온 이 사회를 알게 모르게 유지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교는 그런 점을 미처 보지 못하게 만들고, 누가 더 맞고 누가 덜 맞았는지 치사한 차별-평등 논리만 오가게 된다. 그래서 더 무시무시하다. 그곳에서 남성청소년들은 여성청소년을 공격한다. “나도 맞았으니, 그리고 나도 걸렸으니, 너도 맞아야 하고 걸려야 해.” 라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이끄는 곳이 학교다.

폭력은 학교 내 권력질서에서 발생한다. 벌을 받는 일은 학교에서 벌어진다. 그렇기에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처럼 똑같이 맞는다고, 벌을 받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당장은 더 맞고 덜 맞는 차이가 보일지 몰라도, 결국 그런 차별 대우(?)의 피해자는 여학생 남학생 모두이다. 벌 받는 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건, 어떤 방식이건, 매한가지다. 남청들이여, 여청들과 손을 잡을지어다. 당신들의 고통은 여성들이 그만큼의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이여, 꾸준히 폭력을 행하고, 벌을 줌으로써 청소년들을 통제해야한다는 생각이 깊이 박힌 낡은 학교에, 성역할을 깨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만들려는 무시무시한 의도를 가진 이 사회에, 함께 손을 잡고 어퍼컷을 날릴지어다.


덧붙이는 글
난다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58 호 [기사입력] 2009년 06월 24일 14:11:42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9. 6. 9. 12:54

5.18민중항쟁 29주년맞이 “2009 청소년인권선언”

또 다시 5월, 그리고 2009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워 목숨을 바친 518민중항쟁 29주기가 되는 해이다. 지난 29년을 돌아보면 광주를 비롯해서 한국사회의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국가와 자본에 탄압받지 않기 위해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기도 하며 작년의 2008인권선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가치와 인권들이 주장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수많은 ‘인권선언’들은 구호와 형태에서만 그치고 있을 뿐 인권의 모든 것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특 히 청소년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그들의 인권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질 것만 같다. 경쟁을 좋아하는 대통령과 교육감 덕분에 줄서기를 위한 공부도 더 빡세게 해야 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들도 여전히 존재하며, 학교에서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시위를 했다가 퇴학 압박을 받는 등 일일이 다 쓰자면 종이가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사회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는 인권의 사항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의견을 기반으로 이 자리에서 2009 청소년인권선언을 발표한다.

물 론, 이번 선언을 통해 세상이 단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는 과정 하나하나가 인권이 꽃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걸음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선언이 말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청소년들이 선언문을 공감하고, 현실에 반영이 되도록 선언을 알려나가는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청소년은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어. 충분한 휴식과 여유, 그리고 적절하고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 등은 중요해.
- 의료서비스 과정에서 청소년이거나 경제적인 약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설명 받지 못하거나 치료받지 못하면 안 돼!
- 학교에서 체력검사나 신체검사할 때도 그렇고 의료상의 정보를 청소년의 동의 없이 알려서는 안 돼!
- 생리적 현상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상의할 수 있고 보장받아야 돼. 특히, 여성의 생리기간은 안식일이 필요해.

청소년은 먹고 싶은 것을 잘 먹을 수 있어야 해.
- 취향과 사상, 종교 등의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어. 특히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해.
- 담배나 주류 등 기호식품에 대한 청소년들의 접근금지를 해서는 안 돼. 이것들이 정말 유해하다고 생각하면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제재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에 홍보가 필요해.
- 청소년이라고 해서 억지로 음식을 강요해서는 안 돼. 자신의 몸은 자신이 챙겨야 할 몫이지, 남이 강요해서 건강해지는 문제가 아니야. 

청소년에게는 놀 권리가 있어.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들을 통해 즐길 권리도 있지.
- 미성년자 금지라는 이유로 청소년의 문화적 접근을 못하게 하는 건 부당해. 우리도 문화적 해택을 누릴 수 있고 평가할 수 있어.
- 자신의 취미를 즐길 뿐만 아니라, 그에 필요한 돈이나 문화를 만들어낼 권리를 보장받고 그런 다양한 문화 또한 차별받아서는 안돼. 그리고 사회는 청소년들이 놀만한 공간이라던가 그에 필요한 환경을 지원해야해. 

청소년은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해.
- 방학, 휴가, 공휴일에 쉬어야 할 의무가 있고 생리가 있을 때나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해. 특히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마련해야 해.
- 배설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정말 급한데 못 가게해서 아프면 나중에 책임질 거야?
-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우리도 건강과 활력을 챙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빡센 입시경쟁교육과 환경들을 없애야해.

청소년에게는 인간답고 민주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해.
- 교육을 받고 싶어도 가난해서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 돈 없이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원하는 교육을 공짜로 받게 해줘.
- 우리는 더 이상 성적으로 경쟁하지 않을 거야. 우릴 시험성적으로 판단하고 차별하지 마.
- 야간‘자율’학습이라면서 강제로 실시하는 건 뭥미? 청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스스로 만들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해. 교과서건 뭐건 다 내용을 정해서 그대로 따르라고 하지 말란 말야.
- 우리는 참고서나 강제로 푸는 기계가 아니야.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 함께 배워가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어. 교사가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훈계이지, 교육이 아니야. 분명 교사도 우리에게 배울 점이 있다구.
- 선후배 관계, 나이, 직위, 소수자 등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권위적인 의사소통, 차별, 아웃팅, 폭력 등 일어나지 않도록 인권교육은 정기적으로 필요해.
-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발언권을 묵살시켜서는 안 돼. 판단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돼.
-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고 소통이야.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해. 청소년에게는 교사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훈계는 너만 하냐! 너나 잘하든지!
- 청소년은 역사적 진실을 알고 탐색하고, 사회의 현실, 과학적 지식, 사는 데 필요한 여러 기술들 등을 비롯해서 중요한 학문들과 자기가 알고 싶은 것들을 원하는 만큼 많이 배울 권리가 있어. 외국어 교육은 영어 같은 한 언어만 신봉하고 빡센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하고 또 하고 싶은 외국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어야 해.
- 교육 환경은 충분히 좋아야 하고, 교육 재정이나 예산도 충분해야 해. 예를 들어, 수십 명씩 오밀조밀 부대껴야 하는 교실이라거나, 찌는 여름이나 꽁꽁 어는 겨울에 에어컨, 히터 등을 교무실에만 빵빵하게 틀고 학생들은 손도 못 대게 하는 건 대체 뭐니?

청소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생각하고 주장할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있어.
- 미션스쿨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강제로 종교의례에 동원하거나 헌금을 내라고 하지도 말고, 종교를 가지고 차별하지도 마!
-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지 마.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사라져야 해.
- 국가, 기업, 기성세대들의 권력으로 특정 사상을 주입하거나, 특정사상에 대해 탄압, 처벌해서는 안 돼. 

청소년은 자신만의 공간과 영역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관련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어.
- 검사할 거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오라구. 부모나 교사, 경찰이란 이유로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우리의 기록을 엿보는 건 인권침해야.
- 바꿀 수도 없는 주민등록번호로 우리에게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고, 지문을 다 찍어야 하는 주민등록증을 강요해선 안 돼.
- 감시카메라로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휴대폰으로 위치추적을 하는 등의 스토커 짓은 우리의 안전을 핑계로 우릴 통제하는 거야!
- NEIS를 비롯한 성적 등등 개인 정보에 대한 공개는 인권침해야. 성적표도 청소년들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집에 보내거나 하지 말라구. 

청소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알고 싶은 것들을 알고 살 수 있어.
- 인터넷이나 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언론, 전단지, 영상 등등을 만들고 배포할 권리가 있어. 이런 것들을 검열하거나, 허가(?)받지 않았단 이유로 훼손하거나 탄압해선 안 돼.
-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집회나 시위를 할 권리가 있어.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도 집회를 할 수 있고, 집회를 했단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정보를 못 접하거나 미디어를 쓰지 못하게 해선 안 돼. 청소년들에게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매체들이 충분히 지원되어야 해.  

청소년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해.
- 집에서 통금시간을 정해놓거나, 학교에서 밖에 나갈 때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거나 해서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아선 안 돼.
- 청소년의 신체적 조건이나 경제적 조건이나 국적 등 때문에 교통수단 이용을 비롯한 이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되고,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 시설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해. 

청소년이 동네북이냐? 청소년은 위협적인 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
- 때리지 좀 마! 교사나 부모(보호자)나 다른 어른이나 또래나, 누구든 우리에게 매질, 발길질, 주먹질, 기합, 모욕 등의 폭력을 행하지 말아야 해.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어떤 이유라도 그게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할 이유는 될 수 없어. ‘사랑의 매’는 거짓말이야.
- 청소년은 학도호국단 등으로 동원되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에게는 당연히 살 권리가 있어. 입시경쟁이나 안전사고나 폭력이나 빈곤함 등을 비롯해서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모든 직․간접적인 폭력들은 사라져야 해. 

청소년에게는 자기 머리카락이나 복장 등을 마음대로 하고 꾸밀 권리가 있어.
-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고 이름표를 달게 하지 마! 사복을 입을 자유도 있다구!
- ‘학생다움’ 또는 ‘청소년다움’은 누가 정하냐? 염색, 파마, 삭발, 레게, 고데기, 생머리 등등 청소년은 자기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어. 

청소년의 사랑과 성적 행위, 성적 자기결정권을 막거나 짓밟지 마!
-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 청소년은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 권리가 있어. 성은 청소년이 알아서는 안 될 비밀스런 분야가 아니야.
- 청소년은 성매매나 성폭력, 성적 착취를 당하면 안 돼. 또 성매매 같은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도 않아야 하지. 그러기 위해 청소년의 주거권이나 경제적 권리 등 다른 인권들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해.
- 이성애만이, 또는 여/남 성별이분법이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건 무개념이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모두 차별 없이 존중하란 말야!
- 단, 성차별, 폭력을 저지르는 마초스런 행동 등은 인권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어!

청소년들은 적절한 살 곳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이 사는 곳은, 살만한 넓이와 시설의 좋은 환경이어야 하고, 생태적이면서 건강에 나쁘지 않아야 하고, 가능한 한 청소년들이 살고 싶어 할 만 한 곳이어야 해.
- 쫓겨나서 살 곳이 없을까봐 다른 사람들(부모 등등)의 일방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거나 인권침해 등을 당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해.
- 가출은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 만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적극적 표현 방식일 수 있어. 청소년들이 원하는 독립적 주거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해. 쉼터나 그룹홈처럼 지금 있는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인 주거들도 더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이 되어야 하고,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해. 

청소년은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일하는 목적이 생계를 위한 것이건 다른 용도를 위한 것이건 상관없이 청소년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해.
- 청소년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부당해!
- 노동을 하는 청소년에게는 안전하고 좋은 노동환경에서 적절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착취를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에게는 노동 조건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고, 이런 행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선 안 돼.
- 청소년을 강제로 동원해서 노동시킬 수 없어. 예를 들면, 봉사시간을 채워오게 하거나 다른 강압적인 방법으로 봉사활동이나 참여하고 싶지 않은 행사에 강제로 참석시켜서는 안 돼. 

청소년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돈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을 대리인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쓸 수 있어.
- 돈이 없어서 밥을 못 사먹거나, 교통비가 없어서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되거나, 난방비가 없어서 추위에 떠는 일 등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보장이 있어야 해.
- 먹고 살기에 필요한 적절한 돈을 벌 기회가 박탈당하지 않아야 해. 어리다는 이유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이 번 돈을 남에게(부모 등등) 맡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이런 것들을 사회에서 보장을 해주어야 하는 거라구!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 때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해.
- 교사, 교장, 교육감, 지방자치단체, 국회의원, 대통령 등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들을 선택할 수도 탄핵할 수도 있어야 해.
- 청소년들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반영하고 직접적으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 시늉만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실제로 충분히 반영하시오!
- 교칙이나 집안에서의 규칙 등을 정할 때 청소년 당사자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해.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 없애!
- 청소년에게는 성탄절 씰이나 수능 떡값 등의 성금을 강제로 내지 않을 권리가 있어.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 우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니들 맘대로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좀 존중해!
- 나의 삶의 주인은 나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직업이나 가치관을 비롯해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
-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거짓된 핑계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해! 찜질방, 게임방, 노래방 등에 10시 이후에 출입을 금지하거나, 청소년통행금지 거리를 지정하거나,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청소년의 행동에 대한 통제라구!
- 만일 이 사회에 위험하거나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청소년에게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세상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해.

청소년은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행동할 권리가 있어.
-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의견을 표현하거나 시위나 집회나 점거를 하거나 수업거부나 시험거부나 등교거부나 가출 등등의 파업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권리야.
- 처벌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하고, 인권침해 현장에서 당장 멈추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 “예의”나 “학생의 본분”, “자식의 본분” 같은 말로 우리의 정당한 인권을 위한 행동을 공격하거나 하면 못 써.

청소년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어. 청소년이라고 해서 누리지 말아야 할 인권 따윈 없다구!
- “미성년자”라는 말은 청소년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말이야. “미성년자”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버리자!
- 나이가 적다거나 학생이라는 등의 이유로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우~
- 처음 만나서 나이 좀 많다고 곧장 반말하거나 막 대하는 건 정말 뷁이야.
-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학교에 다니는 건 아냐. 탈학교 청소년이라고 해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당신이 바로 문제라오. 또한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는지 여부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차별받지 않아야 해. 

청소년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해.
- 집에서 통금시간을 정해놓거나, 학교에서 밖에 나갈 때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거나 해서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아선 안 돼.
- 청소년의 신체적 조건이나 경제적 조건이나 국적 등 때문에 교통수단 이용을 비롯한 이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되고,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 시설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해. 

청소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은 충분히 실수하고 경험을 쌓아갈 권리가 있어.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꾸고 추구할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의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 사회가 가능한 한 제공해야 해.
- 청소년의 행복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것이어야 해. 청소년은 지금을 사는 인간이고, 미래로 삶이나 행복을 유예한 인간이 아냐.

2009. 5. 24

2009 518 청소년인권선언자 일동

강 형찬 위성은 최진욱 윤도성 조아라 박민주 김다영 한수진 설지환 고대한 천영경 원내강 임기빌 조진량 임준영 강혜수 오종현 신서혜 이민주 곽민주 진아라 이영인 박설희 황다솔 박수진 임형덕 최숙인 박윤아 양수진 강민창 김서빈 김인지 박선용 박다진 정동환 김가영 조정은 정유리나 강지연 유수정 김은유 신다정 용지영 김민정 김신영 최설아 최호준 송새롬 오승현 임여은 김한나 임가희 안상민 이한솔 이원정 이미송 오미령 허정연 이유라 김수현 최은비 박흐선 김규태 나종성 이창윤 김정혁 이하연 한찬란 박동민 박예현 황주언 류미송 강선주 채지원 박다솜 박준서 박미리 조은영 문길상 이진범 김영산 김경민 최병국 주진주 김유리 이유지 주정애 이도영 배종열 최혜진 최근실 황은지 김태란 김은아 서민정 김세영 고경태 이상진 이해윤 윤서인 김경주 최솔휘 오신우 정동수 이다솔 박주현 김범원 김준형 김민지 이건우 박한솔 고예선 김승현 정일형 이령근 박현식 이다경 이현진 박지은 김미리 최다인 공현도 김형태 한지은 곽영서 심승아 장연수 박은성 조미나 박은빈 박신영 강현희 김한빛 유다혜 백준석 김하늘 전가현 문민제 신주성 김혜원 소아라 이동훈 장준영 오민희 이정혜 하수빈 윤수진 정선화 김유진 고상은 고연지 이미진 정윤모 박예림 서주희 송예림 최지원 고미소 이다솔 최희진 전혜빈 정영석 김대희 송도영 이소민 최홍준 최지현 심연수 김현재 장인우 서유리 김이꽃 김혁진 최수지 조현지 이승호 진정진 최진화 최진현 송시호 기진주 김재완 이ㅠ림 채아름 송유민 남슬기 선희빈 임형준 양윤화 서소연 정소영 최세현 나혜진 김혜선 오윤한 김보하 이은미 고민재 정찬영 한동혁 고영재 김우성 장병준 박정주 문효선 유나영 김나영 김혜찬 김주연 구가연 이시영 김슬 박나리 곽지현 김영운 정지혜 정화영 제갈진 홍세훈 조혜연 박은기 홍연희 이영빈 윤정선 윤재호 김수정 하주형 김나영 서동희 이영은 정해천 양지연 박고형준 김영서 문성빈 나슬기 이한솔 김화란 이해원 김은비 차진주 신경례 정채연 김한빈 고은석 조우영 한유경 강아 김도희 김다솜 김하은 박진 전은엽 전우리 양민경 김인선 김동욱 김용태 윤혜빈 박한별 소아영 정송현 기혜숙 김지연 오진옥 서은혜 노지현 김헤정 오다연 윤영채 조은영 김지혜 정대욱 조송이 박시은 서민주 김형신 방채현 나소은 임지수 정병호 조우영 백승례 홍지웅 심지인 이아영 김지현 차왕현 장용대 서지은 위하리 김의연 김민지 조우영 김명화 박세리 김원비 배솔리 손윤주 홍한솔 서주혜 이진 강연희 박하영 김영빈 정소영 허루시 장윤진 박소운 손예지 이승호 전정진 최정화 최진현 송시호 기진주 김재완 김유림 채아름 송유민 남슬기 선희빈 임형준 양윤화




----------------------------------------------------------------------------------------------



내용상으로는, 이 선언문은 2008 청소년인권선언 의 일종의 수정본이랄까. 그런 느낌이구만요.

몇가지 추가된 항목이나 전문이 보이는 정도..

다만 순서상으로는 그리 많은 고려를 하지 않은 것 같군요; 2008 버전은 순서도 엄청 고민고민해서 짠 건데.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1.본문과는 관계없지만 5월24일은 김슷캇 탄신절
    2.청소년의 실질적 시민권 획득을 위해 기본소득을!

    2009.06.10 12:12 [ ADDR : EDIT/ DEL : REPLY ]
    • 24일이면 벌써 지나셨군요 ㅎㅎ

      기본소득주장에 동의하긴 하는데, 현재 청소년인권운동이 기본소득운동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는... 일제고사나 상벌점제만으로도 허덕이고 있는 ㅡㅡ;;

      2009.06.10 13:53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4. 15. 15:59


추적60분 인터뷰 요청 때문에, 거기 참가할 학생 분들에게 드리기 위해 모은 자료.

학부모단체 성명서 안에 법안 자료 포함되어 있으니 그걸 먼저 보시길...

그리고 전교조대안이라고 쓴 파일은 2006년에 전교조에서 교원평가제 정부안 반대하면서 대안으로 내놓은 자료. 현재 입장과는 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2006년에 발표한 교원평가제 관련해서 청소년-학생인권 관점에서 접근한 성명서와 토론문이 핵심입니다만 ㅎㅎ 학부모단체 성명서도 내용이 그리 나쁘진 않네요.






일단 제 개인 의견을 첨부하자면...

학생과 학부모의 교원평가제가 필요할 수는 있습니다. 교육 민주화와 교육과정에 학생참여라는 맥락에서.
(그런데 교육과정에 학생참여나 교육감선거에 학생의견 반영 등의 장치 없이 교원평가제 하나만 달랑 얘기하는 걸 보면, 그리고 법안을 보면, 정부-한나라당 안은 전혀 그런 맥락은 아님.)
그리고 주로 교장과 교감들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근무평정을 없애면서 학생들 중심의 교원평가제가 자리잡는 건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에서 낸 안을 보면 교장과 교감, 동료 교사들도 평가 주체로 되어 있고... 아무래도 근무평정제도와 엮이면 교감과 교장, 교육청에 의한 교사 통제가 강화되는 방식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 리고 교원평가제가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의 실질적인 소통을 보장하기보다는 점수화되어 있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수업만족도 0.9점. 학생존중 2.4점. 이런 식으로 된 평가서를 받게 되면 그게 실질적으로 교육에 학생들 의견을 반영하는 게 될 수 있을까요? 거기다가 학생서열화 학교서열화에 이어 교사서열화까지 시키는 셈인데요 =_=;
현재 인사(승진 등)에는 반영 안 할 거라고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연수 등이 필요하면 강제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인사 반영이 어느 정도 되는 셈이고, 이후 인사 반영을 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워낙 뷁스런 교사들한테 많이 당했기 때문에 저런 교사는 인사 반영해서 불이익을 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학생인권을 많이 침해하는 교사들은 1년에 한 번 뭐 이렇게 하는 교원평가제가 아니라 인권침해가 고발되는 즉시 조사해서 징계하는 게 맞습니다. 교원평가제 할 때까진 그냥 맞고 성폭력 당하고 지내란 겁니까? -_-;
교원평가제는 좀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적격 교사' 어쩌구 하는 데 휩쓸리지 말구요.
학생들이 교육에 참여할 권리, 민주적인 교육을 만들 권리, 의견을 반영할 권리... 이런 문제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사들한테 점수 매기는 건 학생들 입장에서 쾌감일지도 모르지만 (ㅎㄷㄷ) 그리 실익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행인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09.05.25 23:22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4. 5. 12:34

계간 청소년문학 2008년 여름호...인가 실렸다고 했나?;

여하간 어느 정도 면식이 있는 이계삼 선생님의 글. 읽으면서 확실히 '글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다지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논술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 이계삼(밀성고 교사)

 

 

 01.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글의 제목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정리한 러시아 민담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따왔습니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지요. 파홈이라는 욕심 많은 농부가 새 땅으로 이주해갔는데, 그곳 촌장이 1000루블만 내면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걸어 돌아오는 데까지를 모두 주겠다고 합니다. 파홈이 환장을 해서 정신없이 내달리다가 해 떨어질 무렵 목표지점에 기진맥진해서 도착했는데, 결국 거기서 쓰러져 죽고 맙니다. 죽은 파홈의 시신을 일꾼들이 땅을 파서 묻었는데, 파홈에게 정작 필요했던 땅은 제 시신을 묻을 만큼의 자리면 됐다는 겁니다.
  이 글을 부탁받고 며칠 이런저런 생각을 굴려가다가 문득 저 러시아 민담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에게는 과연 얼마만큼의 논술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라는 질문이 간절해 집니다. 논술 교육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습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처럼,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고발하지 않고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는 허위의 행렬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까지 논술교육이 내려가 있지만, 사실 초등학생들, 특히 저학년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를 논술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은 범죄적인 행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등교육에서 이루어지는 논술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후퇴한 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좋은 삶’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굳이 긴요하지 않은 능력을, 그것도 중등 교육 과정에서, 그 문제를 출제한 교수들도 엉터리 답안을 제출하기 일쑤인 이 고난도의 시험을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논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급격히 커졌습니다. 아시다시피 2008년부터 시행된 대입제도와의 관련 때문이지요. 지금은 오락가락하는 중이지만, 입시에서는 어떻게든 2008년 이전보다는 앞선 자리를 차지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하루 동안의 학력고사로 '한 방'에 입시를 끝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는 3년동안의 내신과 수능시험과, 논술․면접과 같은 대학별 고사까지 치러야합니다. 내신과 수능은 그나마 학교 교육과 연관이라도 있지만, 입시 논술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따로 반을 만들고, 별도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를 두고 ‘옥상옥(屋上屋)’이라고 하지요. 집 위에 집을 올리고, 거기에 또 집을 올리는 형국입니다. 교사는 지치고, 학생들은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의 집’은 위태로워집니다.
  그래도 논술은 그 자체로는 '좋은 거'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교육 현장에 잘 뿌리내리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무어든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것이 실제로 활용되는 사회적 맥락이고, 그것의 영역과 범위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적정선’을 지켜주는 것은 그래서 몹시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감미로운 것들도 가장 시어빠진 것이 될 수 있다네. 백합꽃이 썩을 때 잡초보다 훨씬 나쁜 냄새를 풍긴다네." 이런 시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한계치를 넘어서면 그 순간부터는 파괴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이 논술이란 놈이 저 구석진 자리가 아니라 입시를 향한 꼭짓점에 자리 잡고 있다보니, 이 놈이 중요한 것들을 빼앗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의 문학적 상상력, 감수성과 관련해서 논술은 상당 부분 이들을 잠식하고 퇴화시킬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 글은 그것들의 관계도를 조금이나마 밝혀보려는 시도입니다.


02.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저는 며칠 동안 틈틈이 교무실 캐비닛에 보관해 두었던 아이들의 글을 꺼내 읽었습니다. 저 또한 다른 여러 국어 선생님들처럼 글을 써서 같이 읽고 나누는 수업을 비교적 오랫동안 해 왔는데요, 우연한 계기로 아직 제 손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글쓰기 공책들입니다. 졸업하고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이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잘 살고는 있는지 그리워지기도 했고, 새삼스럽게도 국어 선생이라는 자리가 참 복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한 학생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논술반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여러 권의 책을 돌려읽으며 서로 짤막한 독후감들도 나누었는데, 포리스터 카터라는 미국 작가가 쓴 체로키 인디언의 후예인 ‘작은 나무’라는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의 독후감의 일부입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통나무. 밤톨만한 영혼. 머릿속이 숫자로 가득 찬 내 모습과 닮은 것 같다. 남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심. 애써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마치 우연히 그런 것처럼 눈이 닿는 자리에 욕심이 묻어있는 듯하다. 충분히 안 쓰고도 살 수 있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이 말은 가시가 되어 때맞춰 고개를 들곤 한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어린아이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친구가 뒤떨어져 있으면 어딘가에 서서 기다려주는 마음이 있었던 그때. 앞서든 말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쓸쓸히 뒤에 혼자 남지만 않는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 이 생각은 해볼 겨를조차 없었다. 친구들도 나처럼, 따라잡을 수 있도록 기다려줬으니까. 내 것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손에 넣으려고도 해보았지만, 그 일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욕심 탓에,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내 영혼은 얼마만할까? 욕심을 가질수록 마음을 다친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다친 그 마음도 '영혼의 마음'이 분명하다. 마음을 다치지 않고 얼마든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 영혼이 아닐까 싶다. 영혼을 이해한다면….

  이 글은 책에 대한 짧은 독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시적인 여백과 울림을 가진 아름다운 에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니 그 학생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 학생은 시골 교회 목회를 하시는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독일로 유학을 가시는 바람에 7년간 독일에서 살았습니다. 약사였던 어머니가 생계를 잇기 위해 자식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그 학생은 말수가 적지만, 진중하고 사려깊은 여학생이었습니다. 문제는, ‘스피드’를 강조하는 한국식 교육에 좀처럼 적응을 못했다는 거지요. 언어영역 시험 100분 동안 좀처럼 60문제를 다 풀지 못해서 항상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책도 아주 느리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처절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아 늘 보기 안쓰러웠습니다.
  다행히 논술 수업은 재미있게 따라왔습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날카로운 통찰도 보여줬고, 위와 같은 빼어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이 써내는 논술글은 보기가 안타까웠습니다. 논술은 뼈대가 단순한 글입니다. 제시문이 말하는 바에 대해 설명하고, 제시문간의 연관관계를 밝히고, 그에 바탕해서 자신의 주장을 예증하면 되는데, 이처럼 생각이 많고, 생각과 생각간의 매듭은 느슨하되 그 속에 풍부한 서정을 감추고 있는 학생들, 그것들의 졸가리를 세울 지성은 아직 배양하지 못한 학생은 논술을 끔찍하게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아예 논술문에 대한 답을 써 내지 못하거나, 질문이 원하는 서너 가지 요소 중에서 자신에게 와 닿은 한 두 문제에 대해 깊숙한 이야기를 하다가 분량을 다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의 에세이를 읽는 일은 경탄의 연속이었지만, 논술문 첨삭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재수를 하면서까지 한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심리학 공부를 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이를 포기하고 아버지가 계시는 독일로 곧장 유학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가끔 연락이 오는데 그곳 대학생활에 다행히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03.

  대개 백일장에서 상을 타오는 학생은 모범생들이고, 그래서 학업 성적과 글솜씨의 상관성이 높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면 실상은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백일장 입상용(用) 글’이 따로 있고, 거기에서 상을 타오는 학생들은 백일장 입상에 필요한 문법을 잘 체득하고 있습니다. 읽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잘 짜맞추어진 감동 없는 글들이 많습니다.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제가 보기엔 학교 교육에서 학업 성적과의 상관성이 제일 낮은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찍부터 바른 글쓰기 교육을 위해 애써온 한국글쓰기연구회 선생님들이 펴낸 책들이 있습니다. 중학생들의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보리), 고등학생들의 글은 <날고 싶지만>(보리)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깜짝 놀라는 것은 뜻밖에도 실업계 학생들이 정말 생생하고 진솔한, 감동적인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은 제게도 비슷한 체험들이 있습니다. 제가 교사 생활하면서 읽었던 가장 감동적이고 우수한 글들은 논술이나 백일장과 같은 강력한 보상 체제가 작동하는 틀 속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들은 가정 형편이나 성적이 좋지 않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이 많음에도 나름의 감수성을 다치지 않고 지켜온 학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스스럼없이 써 내는 그런 글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지금도 떠오르는 글들이 몇 편 있습니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거의 싸움 분야의 ‘통’(아마 한자어 統(통)에서 유래된 듯한데, 도시에서는 ‘짱’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기선 ‘통’이라고 합니다)으로 통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끔 술이 덜 깬 채로 등교해서 종일 엎드려 있기도 했는데, 그 친구가 3학년 독서 시간에 쓴 글이 생각납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나는 원치 않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서열을 재기 위한 싸움에 종종 불려나갔다. 그 때의 고요한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싸움이 끝나면 내 주먹은 피에 젖어 있었고, 나를 따르는 친구들도 늘어났지만, 이상하게 싸움이 싫어졌다. 지금 나는 일생토록 함께 하고픈 존경하는 선배가 있는데, 그분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 글을 읽어주던 시간, 여학생들이 껌뻑 넘어가고, 녀석은 붉어진 얼굴로 연신 손사래를 칩니다. 아마도 녀석은 그 글을 통해 제 맘속에 똬리 틀고 있던 소망, 이를테면 남자들의 약육강식의 힘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픈 꿈을 꾼 겁니다. 실제로 그 학생은 소망처럼 기능대학에 진학했는데, 군제대후에 취업해서 착실하게 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른 한 여학생의 글입니다. 역시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그 글은 밀양장에 내다 팔기 위해 콩이야 팥이야, 산나물을 뜯어 보자기에 싸서 시내로 나오는 할머니들로 가득 찬 아침 등교 버스의 모습을 묘사한 글이었습니다. 지금도 제게 잊혀지지 않는 부분은 “팔걸이에 나란히 매달린 자기의 희디 흰 팔목과 시커멓게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팔이 너무나 대조되어서, 문득 처연한 슬픔이 몰려와서 할머니의 그 검고 거칠한 손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여학생의 글이 떠오릅니다. ‘열등감’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했는데, 손에 땀이 많이 채이고, 유독 까칠까칠해서 친구들과 손을 잡지 못하고, 좋아하는 이와 악수할 일이 생기면 자신이 싫어지기까지 했다는 학생의 글입니다. 이 글은 제가 월간 <작은책>에 투고하느라 워드로 직접 입력해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데, 아래는 그 글의 끝부분입니다.

  ……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동안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다음과 같은 사실 말이다. '남과 악수하는 일은 끔찍해요' ― 사실은 악수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 누구와든 손잡기 싫어요' 사실은 ― 그 누구든 손을 잡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이 미워요' ― 사실 나는 누구보다 내 손을 사랑한다. 단지 남이 내민 손을 잡을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소재거리를 갖고 쓸 내용을 생각하는 동안 내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남에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일이 그동안 나에게는 엄청난 심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한 글자 두 글자 나의 '손'에 대해 적어가면서 하루 종일 내 '손'을 쳐다보고 끔찍한 기억들을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무덤덤해져 있었다. …… 조그만 희망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내 '손'을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 그 용기 말이다. 내가 만일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이라면, 온통 일그러지고 뒤틀린 피부를 가진 사람의 얼굴을 맨 먼저 쓰다듬을 것이며, 내가 만일 가장 부드러운 손을 가진 사람이라면 살가죽이 뼈에 붙은 메마르고 앙상한 아이의 몸을 맨 먼저 어루만지리라. 나는 소망한다. 남을 위해 내가 먼저 손 내밀 수 있기를.

  제가 생각하기에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유롭고 너그러운 분위기입니다. 이 글을 잘 써서, 이 글로써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을수록 훌륭한 글이 태어납니다. 점수나 서열의 척도로 사용되지 않고, 그 어떤 보상과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어떤 것이든 다 받아들여지는 너그러운 분위기와 자유로움. 이것은 글쓰기에서 나머지 모든 요소를 다 합쳐도 좋을 만큼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글쓰기는 언어를 매제로 하여 체험을 이미지와 형상으로 그려내는 작업입니다. 이미지와 형상이 작용하는 영역이 넓을수록 예술적이고, 글쓴이 자신의 지평을 넘어서는 초월성을 획득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 학생들이 목을 매야 하는 논술문은 실은 최하급의 글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쓰는 가장 가치로운 글로 일기를 꼽습니다. 일기는 자신이 자신에게 바치는 글이기에 그 어떤 글로도 담을 수 없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일기는 자신을 표현하고, 치유하고, 성장케 하고, 자신을 초월하는 삶의 비전으로 이끌어줍니다. 일기를 통해서라면, 그 누구든 자신에게는 일급의 문필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육 현장에서는 논술의 압박으로 인해 저런 류의 글쓰기는 숨쉴 공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직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입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글쓰기만이 강조됩니다. 바탕과 끄트머리가 뒤바뀐 것입니다.


04.

  논술문 쓰기는 물론 미덕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논술 수업에서 요약하기와 메모하기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텔레비전 토론을 보면 참 엉터리가 많습니다. 그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 기록해 놓지 않고, 대충 제 방식대로 알아들은 뒤에 제 하고픈 이야기를 할 차례만 노리다 보니 맥락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가 횡행하는 것입니다. 제시문을 잘 뜯어읽고 요약하고, 그것들의 맥락을 갈무리하면서 찬찬히 메모하는 과정에서 민주시민의 중요한 자질이 일깨워집니다. 그것은 또한 고등 학문 탐구에도 매우 긴요한 지적인 자질을 훈련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 정도의 훈련이란 굳이 논술고사라는 거창한 '틀'이 아니더라도, 중등 교육 과정 속에 얼마든지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상처받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 상처는 크고 깊습니다.
  논술은 상상력을 빼앗습니다. 상상력이란 이를테면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공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상력은 간단히 말하면, 주어진 인식의 지평을 넘어 존재하는 세계의 형상을 그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꼭 미래나 비현실을 향해가는 것만은 아니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술문 쓰기는 아이들을 일단 주어진 ‘틀’에 굴복하게 만들면서부터 출발합니다. 아이들은 ‘틀’에 굴복하고, 논제가 요구하는 금 바깥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구속감을 경험함으로써 모르는 새 상상력을 억압하게 됩니다.
  논술은 교양의 의미를 왜곡시킵니다. 논술에 찬동하는 분들은 어쨌건 책읽기와 사색, 토론이 바탕이 되는 논술 교육은 교양을 배양하는 효과적인 틀이 될 것이라 주장합니다만, 그것은 교양에 대한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교양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지식을 얻고, 고전을 두루 섭렵해서 배양하는 것이 교양이라면 논술 교육은 어쨌건 교양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교양은 좀 다른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 사회의 자칭 지도층들, 강부자, 고소영들은 왜 이렇게 ‘교양’이 없을까요?” 요컨대, 제가 생각하는 교양의 맥락에서는 우리 사회 자체가 실은 무교양의 극치입니다.
  자신을 헌법이 정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통치권자가 아니라, 회사 사장(CEO)으로 규정하고, 국민을 직원으로 여기는 우리 대통령의 언행을 한번 봅시다. “못생긴 마사지걸이 써비스가 더 좋다”, “오케스트라 노조는 금속노조소속이다. 왜냐하면 바이올린 줄이 쇠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대통령 후보 시절이지만, 이런 천박한 농담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수없이 주억거렸습니다. 지난 총선 때 14석을 얻은 ‘친박연대’라는 정당을 보셨겠지요. 아무리 총선용으로 급조한 정당이고, 의석이 급해도 그렇지, 정당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가 있는지, 지금도 그 이름을 들으면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수치심이 느껴집니다.
  논술문을 잘 하는 것과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가장 좋은 교양인은 타인을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덕성일 뿐, 남들이 잘 못 읽어내는 어려운 책을 줄줄 읽고, 따박따박 제 주장을 글로써 펼치는 훈련을 하는 것으로 연마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가르친 졸업생인데,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의 미니홈피를 우연히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학생은 미니홈피에 자신의 모의고사 점수와 등급을 계속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좀 실망을 했지요. 논술문도 아주 잘 써 냈고, 나중에 명문대학에 진학했는데, 사실 그런 행동은 제가 볼 때는 교양 없는 행동입니다. 아마, 미니홈피나 카페 등에서 자신의 성적을 공개하고, 서로 상의하는 풍토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것은 논술 교육이 그나마 추구하는 교양정신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일입니다.
  교양은 삶의 덕성이고, 그것을 잴 수 있는 척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상력을 억압하고, 교양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우리 사회의 논술 열풍은 그래서 반교육의 극치입니다. 한마디로, 논술은 상위 30%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방편이고, 학생들의 지적 능력의 극히 협소한 부분을 감별해 내는 기제에 불과합니다.


05.

  교양을 쌓고, 문학적 상상력,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는데 제일 좋은 길은 책을 많이 읽는 것에 있지는 않는 듯합니다. 책을 빨리, 많이 읽는 것이 남다른 재능인 것처럼 떠받드는 풍조가 있지만, 그건 허깨비같은 소립니다.
텍스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만큼만 반응합니다.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위장(胃腸)과 소화능력과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고,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음식물은 건강에 치명적이듯, 독서량도 그러합니다.
  저는 필사(베껴쓰기)와 낭독을 권합니다. 실제로 저는 고등학생 시절, 일기장에 그날 문제집을 풀다가 발견한 좋은 시나, 소설의 구절이 있으면 종종 옮겨 적곤 했습니다. 이런 체험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눈으로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텍스트의 ‘육체성’을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옮겨 적은 시들은 20년이 된 지금도 기억이 나고, 그 시를 보노라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윤동주, 신동엽, 김수영, 김소월, 박재삼, 김광균 님의 시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김승옥의 '무진기행', 조세희의 ‘난․쏘․공’, 최인훈의 ‘광장’의 구절들. 다들 문제집에서 만났지만, 이들은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입니다.
  베껴쓰는 것과 함께 낭독은 또한 텍스트의 육체성을 느끼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시나 소설 텍스트를 통으로 끝까지 함께 읽는 일을 즐겨합니다. 낭독은 읽는 이와 듣는 이에게 눈으로 묵독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기쁨과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길어 올립니다.
  중요한 사상가로 이반 일리치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만년에는 중세 사회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그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중세 때의 ‘읽기’와 지금의 ‘읽기’는 매우 달랐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일리치는 12세기의 수도사 성(聖) 빅토르 휴라는 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휴와 같은 중세 수도사들은 마치 수도원의 포도밭에서 딴 포도의 맛을 음미하듯이 온 몸으로 글을 낭독하면서 한 줄 한 줄 ‘맛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면서 또한 텍스트가 담고 있는 진리를 ‘육화’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이에 반해 오늘날의 독서는 '하이퍼스페이스 속의 수음행위' 같은 것으로 변해버렸다고 일리치는 말합니다. 


06.

  이제 이야기를 좀 정리해야겠습니다. 논술은 중등 교육과정이건, 고등학문 탐구를 위한 준비를 위한 지적 훈련이건 협소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지만, 글을 쓰고 읽는 것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너그러운 분위기입니다. 낭독과 필사는 논술의 요약하기와 메모하기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교양을 쌓고,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우는데 훨씬 가치롭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에서 되살려져야할 것들입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논술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요. 파홈에게는 제 육신이 묻힐 만큼의 땅만이 필요했듯, 사람에게는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표현할 정도의 논리적 직관만 있으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촛불시위 때 인상적으로 보았던 구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먹고, 민간의료보험으로 치료 못 받고 죽으면, 화장해서 대운하에 뿌려주오.” 이 시국에 담긴 문제들의 기본 구조를 인식할 수 있는 논리적 직관, 이를 저런 위트 있는 문구로 드러내는 표현능력, 그리고 이를 들고 직접 광장으로 나와 외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서장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학생들은 행복하겠습니다.
    자유롭고 너그러운 시공간을 함께 하므로.

    2009.04.06 12:16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 저도 이계삼 선생님한테 배웠으면 좋았을 텐뎅 킁

      2009.04.06 12:18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10.03.16 16:3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3. 28. 00:06

제가 아는, 이번에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성남에 사는 손OO 학생이 쓴 글입니다...


일제고사, 벌써 세번째다
그동안 일제고사를 볼 때마다 등교거부나 체험학습, 서명운동 같은 반대 행동이 있었고, 이제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3번째 시험을 앞두고 있다...
난 이제 고1이 되어서 31일에 일제고사를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 10월에 일제고사를 볼 거고, 그리고 '모의고사'란 이름으로 일제고사 비스무레한 시험을 11일에 봤다.
이 11일 모의고사 시험이 끝난 후 학생이 죽었다는 뉴스를 봤다. 자살을 했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해졌는데,,, 그 다음에 몇 명 더 죽었다고 한다.............................

또, 모의고사 후에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정말 행복은 성적순이란걸... 알게 된 거 같어"
정말 우울해하는 친구를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4월에 또 모의고사를 본다. 일반학교들은 CA 시간, 동아리활동 시간도 없애가면서 학생들을 공부시킨다고 한다.
친구의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중학교인데 보충수업을 저녁 7시 8시까지 시킨다고 한다. 성적 올린다고...
어제 아침엔 울산에서는 초등학교에서 7교시까지 수업을 한다고 하는 기사를 봤다...
이게 다 일제고사 때문일까?


하지만 아직도 많은 친구들은 그냥 시험 하나 더 본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일제고사가 뭔지, 어떤 시험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학생들에게 일제고사가 뭔지 알려주려고 했다던 선생님들은 파면되거나 해직당했다...
그게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시험을 더 보고 더 힘들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일제고사가 뭔지 알려주는 선생님은 아직 한 번도 못 만나봤다 그냥 진단평가라고만 하지...
학교에서 무슨 시험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 강제로 시험을 보게 해서... 지금 보는 게 무슨 시험인지도 잘 모르면서, 많은 학생들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경쟁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시험 보기 싫다
더 이상 이런 '행복은 성적순'인 무한 경쟁은 하기 싫다

등교거부나 체험학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생님이 무서워서... 주저주저하다가 하지는 못했다
일제고사날 딱 빠졌다간 완전 찍히는 거잖아 -_-;
그래도 친구들이 일제고사 중단하라고 길바닥에서 농성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몇 번 찾아갔었다
그밖에도 집회나... 시험 그냥 대충 찍겠다는 서명이나...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싶다.
이런 막장 교육을 좀 그만하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학생은 죽어나고 교사는 쫓겨나는 막장 시험 일제고사...
이제 바로 다음주 화요일에,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일제고사 시험을 봅니다.

무한경쟁 시험 일제고사.
좀 안 보면 안 될까요?

경쟁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 경쟁이 사람을 죽이는 경쟁이라면 경쟁을 없애거나 완화할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이 2MB짜리 정부가 계속 일제고사를 강행하겠다면
우리가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돈 없이도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길...
청소년을 죽이는 교육이 사라지길...


----------------------------------------------------------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에서 만든 홍보물입니다.
(정글고 캐릭터 무단 도용이 염려스럽긴 하지만 --;;)
잘 만든 거 같습니다-




이건 광주 쪽 계획입니다.
다른 지역 것도 혹시 있으면 제보라도??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놀고자빠진다;;

    대학졸업하고 사회나갔더니 경쟁이 심하다고 데모질할 넘들이네;;; 에휴.....나잇살 처먹고 하고싶은거 한다며 집에서 공부나 하고 스트레스 풀러 데모질이나 하면 부모가 뭐라 할지 궁금하다....

    2009.03.28 08:01 [ ADDR : EDIT/ DEL : REPLY ]
    • 경쟁이 심하다고, 좀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라고 데모하는 거 참 좋은 일이죠 ㅎㅎ 그냥 순응하는 것보단.
      데모를 한다고 스트레스가 풀리진 않아요. 오히려 더 쌓일 때가 많더라구요, 준비하는 입장에선 -_-
      부모의 자식에 대한 권력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하죠 훗

      2009.04.01 22:10 신고 [ ADDR : EDIT/ DEL ]
  2. 안녕하세요, 네이버 오픈캐스터 구피입니다.
    님의 글을 <정론직필, 휴머노미스트의 시선> 265호에 실었습니다.
    옳은 목소리에 감사드리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09.03.28 10:46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밀댓글입니다

    2009.03.28 11:32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그래서 이번엔 실제 등교거부자 조작보다는 오답선언 모으기에 주력하고 있어욥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공정택도 노무현 때부터 교육감...

      2009.04.01 22:10 신고 [ ADDR : EDIT/ DEL ]
  4. 초중고등학교 때 보는 그 종이쪼가리 한 장의 시험들이
    대학에 와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답하는 나지만.
    뭐 [지식의 파편의 축적]이라면 [많이 모아서 나쁠 건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학문'이라는 걸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고기를 잡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고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측정하게 된 건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한 탓이겠...
    사실 과정보다 결과를 측정하기가 더 쉽지.
    하지만 그게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은 ㅋ

    요즘 초중고 교육이 거꾸로 가고있어... 교육 뿐 아니라 일련의 정치적 법적 사건들도 그렇고.. 에혀...
    그래서 난 덕분에(?) 법 공부 할 때 사례가 많이 늘어나서 좋긴 하더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9.03.28 22:14 [ ADDR : EDIT/ DEL : REPLY ]
    • 고기를 잡느 ㄴ거 외에도 다른 알 것들도 많은데 고기잡는 것만 측정하는 것도 문제지-

      2009.04.01 22:11 신고 [ ADDR : EDIT/ DEL ]
  5. 좋은 글입니다..

    경쟁보다는 협동하는게 중요한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2009.03.29 13:36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12. 5. 19:59

전교조 선거에 나선 분들에게

- 학생인권 문제에 관한 실천을 구체적으로 내놓으십시오
 

  전교조 선거에 나선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이 글은 전교조 선거에 나서서 앞으로 2년 동안 전교조의 운동을 결정짓게 될 분들에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의견을 전하기위한글입니다. 남의 단체에 왈가왈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이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참교육'을표어로 내세우며 학생들, 교사들, 학부모들이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한다는 (학생인권에 우호적인 입장의) 최대의교사노조인 전교조에게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기대이자 요구라고생각합니다.
  그러니 주의깊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 저, 우리는 지금까지 다양한 학생인권문제들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이 종종 다분히 선언적인 수준에서만 다루어져온 것을 아쉽게생각합니다. 전교조는 체벌이나 두발복장규제, 소지품검사 등을 비롯하여 학생인권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물을 때마다 원칙적인학생인권 침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간혹 전교조안의 관심 있는 소수 조합원들, 아니면 전교조 집행부의 활동가 일부만이 활동했을 뿐, 전교조의 조직적인 활동은 찾아보기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전교조의 활동이 보이는 영역은 학생회 및 학생자치 분야와 입시경쟁 및 교육정책 관련 분야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러나 학생자치에 대해서도 전교조가 개별 조합원들이나 소그룹적인 활동에만 의존하고 있고 전교조에서의 적극적인 입장과활동계획을확립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적인 예로, 학생회 법제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었을때 이를통과시키자는 서명운동을 전교조에서도 1~2년 진행했으나, 그 성과는 5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교조의9만조합원들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런 서명운동 성과도 그렇고,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회에서 축제를 어떻게 하면 잘치르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에도 버거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올해에 전교조 본부 집행부가 일제고사 반대 행동에 찬물을끼얹는 입장을 내기도 했던 것 등을 생각하면 교육정책 분야에서도 좀 불안불안합니다. 2006년에 떴던 "죽음의 트라이앵글 - 누가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라는 동영상 UCC에서 드러난, 전교조가 내신 위주 입시를 주장하여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만드는 데일조했다는 학생들의 인식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특정대학(소위 '명문대') 합격을 광고하는 현수막에 반대하는 운동이 재작년부터 간간이 있어왔는데, 입시경쟁에 반대한다고 하는 전교조에서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결합했습니까?

  이 문제는 학생들이 전교조에 대한 신뢰성의문제이기도 하기에 전교조 분들 입장에서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아 할 것입니다. 전교조는 교원 노동조합이지만 동시에 "참교육"을 외치며학생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한 존립 근거로 삼아왔고, 교사로서의 교육운동단체이기도 합니다.전교조가 조직적으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실천을 하지 못한다면, 전교조는 자신이 내세운 그 중요한 존립 근거 중 하나를 스스로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전교조 교사인데 강제야자에 적극 동참하고, 전교조 교사인데 강제이발을 하고, 전교조 교사인데 체벌을 하는모습은 현장에서 학생들이 전교조 교사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입니다.


  우리는 이번 전교조 선거에 나온 모든후보들과 그 후보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명확한 실천 계획들을 고민하고 내놓길바랍니다.그것은 조합원들 모두에 대한 인권교육에서부터 조합원 중에 체벌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징계를 하는 방안과 같은 내부적강경책, 그리고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전교조가 국회에서건 거리에서건 학교에서건 어떻게 주장을 하고 활동할지에 대한 구체적인계획까지 모두포함하는 것입니다.

  전교조가 참교육을 표어로 내건 교사 교육운동단체로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권을주장하며 행동할 때 이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입니다.(때로는 그것조차 안 되어서 전교조 교사가 학생들의 투쟁에발목을 잡는 일이 없지 않았지만요.) 우리는 모호하게 연대하겠다, 학생인권을 위해 노력하겠다, 이런 립서비스들을 반복하길 바라는것이 아니며, 전교조 선거에 나선 분들이 학생인권 문제를 좀 더 구체적인 실천/정책 계획들로 이야기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선된후에, 또 낙선된 후에도, 그런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길 바랍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선거가 끝난 후에 당선된 전교조 집행부와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만남을 가지는 것도 검토하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이번 전교조 선거에투표권을가지고 있지 않고, 당연히 전교조 선거에 나온 분들은 우리의 의견보다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의 마음을 더 고려할것입니다.어쩌면 그래서 민감한 주제인 학생인권 문제에 관해 제대로 발언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체벌한 조합원은제재하겠다고 하면 전교조 조합원 수가 팍 줄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전교조가 정말 참교육을 외치는전교조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을 짓밟는 교육은 더 이상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며, 학생인권을 보장하기위해 할 수 있는 실천을 하지 않는 교사는 참교육을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교조 선거에 나선 모든 분들이 우리의의견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그 고민의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전교조가 학생인권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입장과 계획을 갖고 있다는것을 확실히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2008년 12월 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onlyasunaro@naver.com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