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9. 8. 11. 00:49



청소년 독립 불가능 사회



  먼저, 청소년들이 독립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현재의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독립은 아주 어려운 노릇이고, 대개는 부모-보호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 살게 된다. 가정이 얼마나 많은 청소년인권침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공간인지는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몇 년 전에 개정이 되긴 했는데, 사실 민법의 친법 관련 조항에는 “자식은 친권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런 식의 조항이 있었다. 설령 민법에서 그런 표현 자체는 수정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청소년들의 그런 현실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렇게 부모-보호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처지는 청소년인권 문제의 중심에 위치한다. 논리적으로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청소년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조차도 부모-보호자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보호자는 대리인으로서 청소년에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 생활, 이후 삶의 진로 그 무엇도 부모-보호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정말로 모 씨처럼 가출을 결행하지 않는 이상은. 그렇기에 청소년들은 부모-보호자의 선의에 의존해야만 하는데, 부모-보호자가 항상 믿을 만하거나 사랑스럽거나 신뢰가 가는 상대일 수는 없는 게 또 현실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독립’은 청소년들의 이런 처지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대안이 그렇듯이 이 또한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우선은 역시 돈 문제. 2009 아동청소년종합실태조사 보고에 따르면 9-11세 중 5만원 이상의 용돈을 받는 건 2.6%에 그쳤다. 12-18세에 5만원 이상의 용돈을 받는 건 28.5%에 불과했다. 5만원 미만의 용돈 중에서 필수적으로 쓰게 되는 돈을 좀 쓰고 그 나머지를 아무리 저축해봤자 쓸 만한 독립 자금이 되는 건 요원해 보인다. 일을 하고 싶어도 만15세가 넘어야 노동을 할 수 있고, 임금은 쥐꼬리보다 좀 많은 정도이다. 게다가 부모-보호자에게 “17살 때부터 나가서 살고 싶으니 취직을 할 수 있게 보호자동의서를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오냐, 그래라.” 할 부모-보호자가 얼마나 있을까.
  사실 한국 사회에서 ‘독립’은 0대, 10대뿐 아니라 20대 초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주거비다. 보증금 500에 월세 30만원 정도는 되어야 쓸 만한 집을 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엄청 작은 원룸이나 고시원, 매우 건강에 안 좋은 반지하(라지만 저 가격 이하면 거의 지하다. 서울 기준으로 500에 30이 보통 반지하-지층 방) 신세를 져야 한다. 보증금이 없어서 그런 곳에 들어가더라도 1달에 꼬박꼬박 20~30만원씩이 주거비로 지출되는 건 웬만한 정규직이 아닌 한 경제적으로 꽤 부담이 된다. 수도권 지역 특히 서울의 경우 집값 문제가 더 심각하다.
  게다가 민법상으로는 만19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은 원칙적으로는 혼자서 집 임대차 계약 같은 것을 맺기가 어렵다. 계약 자체가 효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호자가 와서 쏼라쏼라 하면 무효화될 수 있기 때문에 대개는 12살이나 16살 쯤 되어보이는 청소년이 와서 집 계약을 맺으려고 하면 보호자에게 연락부터 하려고 할 것이다. 뭐 간혹 그냥 둘러대면 뚫리는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만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뭐 부모-보호자가 갑부여서 초기자금을 왕창 받지 않는 게 아니라면, 독립할 수 있는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경로는 ‘그룹홈’(공동생활주거) 뿐인데, 수가 매우 적고 자격도 제한적이며 정부 지원도 열악하다.
  청소년들의 독립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 독립적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당수 청소년들의 상황(소위 ‘소녀-소년가장’이거나 빈곤층이거나 해서 혼자서 생활을 꾸려가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의 수는 많지 않다.), 고립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도시적 삶의 문제 등등 그밖에도 고려해야 할 문제는 널려 있다. 이는 뭐 음모론적으로 말하면 청소년들의 독립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정에 종속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더 분석적으로 이야기하면 청소년들의 독립 같은 건 아예 상상하거나 염두에 두지도 않고 구성되어 있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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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청소년독립팀에서 짧게 쓴 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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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본소득네트워크에도 올려주시면 감읍할듯 'ㅅ'

    2009.08.11 12:14 [ ADDR : EDIT/ DEL : REPLY ]
    • 올렸습니다-만, 도움이 될지 @_@;;

      2009.08.11 12:57 신고 [ ADDR : EDIT/ DEL ]
    • 실은 얼마전 대학생사람연대 실천단 신문에 게재한 기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서 말입니다.

      <해방적 기본소득>

      돈이 없어서 굶어죽고, 학교급식비 못내서 눈칫밥 먹어야 하고,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어제의 동료에게 몽둥이를 들이밀고, 우리 아이 학원 보내기 위해 남의 부모를 직장에서 쫓아내야 하는 이 시대에, 기본소득은 최소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과 양심의 해방을 약속한다.
      기본소득은 강제된 관계로부터의 해방 역시 약속한다. 노동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비자발적 피부양자가 스스로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독립성을 약속한다. 배우자의 선택, 부모자식 관계의 선택에 있어 금전적 장애만큼은 확실히 사라질 수 있다.
      근본적이진 않아도, 기본소득이 가져오는 작고 많은 해방들은 근본적 해방으로 나아갈 거대한 추진력이 될 것이다. 공권력의 폭력에 분노하면서도 내일 출근시간 때문에 참아야 할 필요도 없고, 부당한 노동과 비양심적 노동의 강요에 조금 더 용기 있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투표일 종일근무를 강요하는 반민주적 상사에게 타이거 어퍼컷을 날릴 수 있게 될 것이다.

      2009.08.11 18:43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2. 28. 02:06
아수나로 북에 실으려고 쓴 글...

쿨럭.




청소년의 두 가지 ‘빈곤’

 1
  자, 당신이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어느 가난한 청소년이라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당신의 집은 어느 허름하고 오래된 주공아파트이거나, 반지하나 지하층일 것이다. 집에 습기가 차거나 책꽂이 뒤편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하기보다는 퀘퀘한 냄새에 몸이 찌뿌둥한 집.… 아니면 ‘달동네’라고 불리는 그런 곳, “가파른 계단길이 보이고 집집마다 벽이 거의 맞대어 있는 듯하였다. 연희의 엄마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연희는 공사장에서 벽돌로 소꿉놀이를 한다.…”(소설 비누인형 중에서) 이런 서술이 낯설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당신은, 담임 교사가 당신이 기초생활수급자인지 급식비 면제인지 어떤지 학생들 모두가 있는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래야 한다. 비록 수업료나 학교운영지원비는 면제라고 해도 준비물 값이라거나 교재 값 등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기에, 제대로 수업을 받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의 가정이 어중간하게 돈을 벌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가난하다면(이른바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보다는 돈을 조금 벌지만 여전히 살기는 초 어려운 사람들) 더욱 곤란한 노릇이다. 게다가 당신이 성적이 좋을 가능성은 별로 많지가 않아서, 성적에 따른 차별과 경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학교에서 당신은 듣보잡 취급을 받을 것이며,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거나 보충수업을 받는 것이 부러워 보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열등감이나 낮은 자존감 등을 보상받기 위해 폭력으로 남을 괴롭히거나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더해 다른 학생들의 삥을 뜯는 그런 청소년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집에 가도 그리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열심히 노동해야 하는 탓에 당신은 필요한 최소한의 관심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면 가난 때문에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 어른들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거나, 방임되어 있을 것이다.(‘소년소녀가장’이나 ‘조손가정’도 많을 것이다.) 지역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에 나가는 것은 먹을 걸 주기도 하고 집안 일을 걱정해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걸 도와주기 때문에 당신이 조금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하지만 공부방 선생님들도 항상 일손과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많은 관심을 계속 주긴 어렵다. 안 좋은 주거환경과 식생활, 그리고 주변에서 관심을 많이 못 주는 탓에, 당신은 가벼운 병에 걸려도 영양 상태가 안 좋거나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큰 병으로 발전할 위험이 그나마 조금 사는 청소년들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2
  또 다른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빈곤층이라고 할 만한 집은 아니고, 부모가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인 청소년이다. 당신은 비록 아주 비싼 것이나 호화스러운 물건을 맘대로 지르거나 ‘꽃보다 남자’의 F4처럼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진 못했지만, 이때까지 넉넉한 용돈을 받으며 적당히 풍족하게 살아왔다. 수업료나 학원비 같은 건 모두 부모님들이 계좌이체로 처리할 문제였고 당신은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그 금액이 얼마인지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중학교 2학년 즈음에 부모와 진로 문제로 크게 다투고 가출을 했다고 하자. 당신은 가출을 해서 가정의 테두리 밖으로 나오자마자 돈이라는 게 얼마나 잔인한 현실인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잠은 어찌어찌 친구 집을 전전하며 해결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교통비, 식비, 옷값 등등 사는 게 쉽지가 않을 것이다.
  집에는 들어가기 싫고, 처음 나올 때 챙겨 나온 돈도 곧 떨어질 텐데, 알바를 해보려고 해도 부모 동의서가 필요할뿐더러 당신은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다. 당신이 만일 여성 청소년이라면 돈을 벌거나 잘 곳을 얻기 위해 성매매를 할지도 모른다. 혹시, 정말 만에 하나, 복권에 당첨되어서 독립해서 살 수 있는 집을 얻을 만큼의 목돈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렇더라도 당신은 ‘민사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보호자 없이는 당첨금을 받기도 어렵고, 그 돈으로 집(전세든 월세든) 계약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가난’이라는 인권침해

  “가난”(家難)이란 말을 한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집(家)이 어렵다(難)는 뜻이다. 이 단어 속에 경제적으로 부유한지 빈곤한지를 판단하는 단위가 “집”(가족, 가정)이라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청소년의 경우에도, 그 청소년의 경제적 지위 ― “계층”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 는 그 청소년이 속한 가족/가정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그 친권자(부모나 후견인, 때로는 공공시설. 보호자.)가 돈을 얼마나 벌고 돈을 얼마나 갖고 있냐에 따라 청소년의 경제적 지위도 정해진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요컨대 소득이 적고 재산도 적은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면 청소년들도 빈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내가 “빈곤”, “가난”, 말은 참 쉽게 하고 있지만, 빈곤이란 건 쉽지 않은 문제다. 빈곤이라는 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꼭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을 제대로 얻을 수 없는 조건이라는 소리다. 소유하고 소비하는 물질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평가되는 사회에서 빈곤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가 낮다는 의미도 된다. 가난은 우선 주거·식사·건강 등 물질적인 면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위협하고, 장기적으로는 청소년들의 자존감이나 성격 등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쉽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2008년 7월 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촛불행진에 참가했던 한 청소년이 집에 돌아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청소년이 자살한 직접적인 이유는 그렇게 명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청소년의 집은 기초생활수급 가정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으며, 그 청소년의 담임 교사는 기초생활수급자 명단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읽어가며 공개했고, 부유한 집안과 가난한 집안을 차별하는 말도 종종 했다는 일 등이 알려졌다. 이런 것들이 그 청소년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아무 영향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공교육은 다분히 ‘계급적’이다. 이건 이제 너무 노골적이어서 비밀도 폭로도 아니다. 부자 동네로 유명한 서울 강남지역이 입시경쟁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고, 입시경쟁에서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다. 주거환경, 사교육, 부모나 가족들의 직업과 학력수준, 성장환경에서 익히게 되는 언어나 문화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어쨌건 이미 공정한 경쟁이니 기회의 평등이니 하는 환상들은 깨진 지 오래다. 무상교육이나 복지제도도 제대로 되어 있지는 않고, 하물며 사교육이나 보충수업 등의 개인적 교육비 투자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게 만드는 입시경쟁 하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가난한 청소년들이 힘겹게 교육받더라도 쾌활하고 즐겁게, 순수하게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도 낡은 환상이다. 물론 어딘가에 그런 청소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가지 차별이나 열등감, 학벌사회 등은 저소득층 청소년들 중 다수가 입시경쟁에서 탈락하거나 아니면 아예 학교를 때려치우고 알바를 전전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교사들 중 대부분이 빡센 입시경쟁이나 임용고시 경쟁을 통과한 엘리트이고 빈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난한 청소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주의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가난한 청소년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학교교육도 문제지만,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더 큰 문제는 주거환경이나 가정환경일지도 모른다. 열악한 주거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문제고, 돈 벌어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아니면 아예 신경써줄 다른 가족이 없어서 인간으로서 또는 청소년으로서 필요한 지원이나 관심을 제때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에는 어른들의 폭력이나 학대를 당하기도 하고, 그렇게 몸에 각인된 폭력성과 상처들은 그 청소년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지역공부방, 지역아동센터, 복지관 등에서 이런 청소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가난한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 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 복지관 등에 지원을 늘리고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시켜서 지역적으로 가난한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돌보며 시스템을 만드는 일도 하나의 과제가 될 수 있겠다. 가난한 청소년들의 심리적인 면을 돌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인 생계 보장과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한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정도 이외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결국 심각한 빈부격차/양극화와 계급을 없앤다거나, 입시경쟁을 없앤다거나,(“가난한 청소년들도 입시경쟁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자.” 라는 말은 좀 뭔가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하는 다분히 근본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빈곤은, 이 자본주의 사회 최대의 문제 중 하나니까.


‘청소년’ 자체의 계급성

  앞서, ‘가난한’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았지만 이번에는 ‘청소년’이라는 것 자체가 빈곤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가난”의 뜻을 설명하면서 빈곤을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단위가 가정/가족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경제적 상태가 그 가족의 소득이나 재산에 달려 있는 게 보통이라고 하더라도, 한 가족 안에서도 경제적 지위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사회적 임금에서나 가족 안의 지위에서나 여성이 남성 가부장과는 다른 경제적 지위나 권한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일종의 계급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여성에게는 경제적 권리나 재산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가 많았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여성이 일종의 ‘노예’ 신분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청소년들 또한 사회적으로 그리고 가족 안에서 다른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에게는 ‘경제적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 여기서 경제적 권리는 단순히 ‘(사유)재산권’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의식주, 문화생활 등)을 보장받고 자유롭게 사회적 생활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권리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이 사회는 청소년들이 필요한 돈이나 의식주 등을 가정/가족에게서 제공받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아주 ‘가난한’ 경우가 아니면 청소년들의 의식주나 경제적 권리 등은 굳이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가정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청소년’, ‘친권자(부모 등)의 소유물이 아닌 청소년’ 등을 꿈꾸기 시작하는 순간, 이런 인식은 효력을 잃게 된다.
  우선, 청소년들이 가정/가족의 지원으로 생활을 보장받는 것은 결코 공짜도 아니고 친권자의 일방적인 희생도 아니다. 거기에는 경제적 지배의 성격이 있어서, 많은 경우에 이런 경제적 지원에는 대가가 따른다. 친권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 열심히 공부할 것, 친권자의 말을 잘 들을 것, 진로 결정시에 친권자의 의견을 중요하게 고려할 것 등등이 대표적이다. 친권자(대개 부모들)가 청소년들에게 가지는 독점적인 영향력 또한 이런 경제적 지배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88만원세대』에서 우석훈, 박권일 씨가 지적하고 있듯이 이런 경제적 종속성이 20대 중반까지도 계속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의 경제적 권리는 매우 포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청소년들은 만20세 미만은 ‘미성년자’라는 민법의 규정에 따라 민사 계약(그러니까, 보통 돈이 오가는 계약.)을 할 권리가 원칙적으로 없다. 계약을 하더라도 보호자/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하거나, 보호자/친권자가 그 계약을 사후에 취소해버릴 수 있다. 청소년들의 임금 노동(종종 ‘알바’라 불리는)에도 많은 제한이 뒤따른다. 한 마디로 청소년들이 돈을 벌고 쓰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이다. 하긴, 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더라도 한국의 경제 상황이나 청소년들에 대한 저임금 착취, 부동산 가격 및 물가 등을 볼 때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겠지만….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청소년들은 모두 (굳이 빈곤 계층의 가정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잠재적인 무산 계급’(재산/생산수단 등이 없는 계급)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가족이 제공하는 보호·통제·지배·지원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헐벗은 몸뚱아리만 가지고 아무런 경제적 권리도 없이 살아남기 힘든 존재가 될 테니까 말이다. 물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이 쉽게 그걸 포기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이런 인식에 다소의 무리가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청소년들에 대한 친권자/부모의 지배, 사회적인 통제 등을 말할 때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권리 문제, 또는 계급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청소년들의 경제적 권리를 요구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청소년들에게 일해서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하라는 뜻이 아니다.(당장은 그런 의미가 포함되겠지만.) 경제적 권리 중에 노동인권도 포함되기는 하지만, 노동인권이 곧 경제적 권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청소년 노동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청소년들의 경제적 권리 전반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이 알바를 하면서 ‘어느 정도 안전한 환경에서 착취당할 권리’를 요구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최저 생계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국가나 사회가 청소년들의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생활하지 않더라도 의식주와 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라는 이야기다. 모든 청소년이 7살 때부터 강제적으로 독립적 생활을 하게 하라는 건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원한다면 독립적 생활도 가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가 실현된다는 것은, 가족/가정이라는 사회적 기반과 ‘미성년자’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 타격을 가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매우 ‘불온한’ 요구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급진적인’ 요구이다. 그러나 인권은 이 사회의 테두리와 한계를 넘어 다른 사회를 상상하는 능력을 잃는 순간 살아 숨 쉬는 언어가 될 수 없다.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 사회의 근본적인 밑그림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못 할 짓인가? 나는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루어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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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8. 11. 12:39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을

[인권교육, 날다] 독립을 위한 청소년들의 고개 넘기 프로젝트

고은채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는 것, 혈연이 아니라도 서로 의지가 되는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 것은 행복이고 기쁨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가족이라도 혈연이라도 같이 사는 것이 괴로운 일이 될 수 있음은, 교과서 같은 데는 나오지 않지만 또 하나의 진실이랄까. 어릴 적 가출은 이루지 못할 로망으로, 충동으로 이해되곤 한다. 곧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쯧쯧…’ 혀를 차며 지적되는 것이 청소년의 가출이다. 하지만 이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충동’과 ‘고생’으로 단정 짓기엔 몹시 불쾌한, 저마다의 배경과 사정이 있다.

날개달기

매달 한 차례씩, 청소년과 함께하는 인권교육(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을 기획하면서 나온 여러 주제 중에 ‘가출 그리고 독립’은 인권교육의 새로운 주제였다. ‘독립이 권리야? 가출은 개인의 선택이잖아.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은? 이렇게 착취해도 괜찮은 사회야?’ 이리하여 만들어진 보드게임!

위 사진: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집을 나서며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며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 특히 가출과 독립을 혼자만의 문제, 온전히 개인이 해결해야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온 문제의 시작을 바꿔보기로 했다. 각자 부딪치게 되는 상황을 스스로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을 사회가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 “당장 오늘 저녁 집을 나온다면? 어디서 하룻밤을 보낼까? 찜질방? 친구 집?” 힘들 것이라는 막연한 가출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독립적 삶에 도달하는 ‘부루 마블 가출 버젼’의 주사위를 함께 던져보자.

더불어 날개짓 1

보드게임 판과 주사위, 이동 말 등을 준비한다. 보드 판에는 게임의 요소를 더해 ‘지갑을 잃어버려서 3칸 뒤로’나 행운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 숙식 해결’을 넣도록 한다. 주사위를 1,2,3(4,5,6도 1,2,3으로 바꿈)만 표시하면 거의 대부분의 모둠이 보드 판 곳곳을 거쳐 갈 수 있다. 그리고 집을 나설 때 마주치는 어려움 10여 개를 쪽지에 적은 다음 주머니나 상자에 넣어둔다.

위 사진:가출하고 해결해야 하는 쪽지들

2~3명씩 모둠을 구성해 전체 게임에 참여하는 모둠이 네 모둠을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한 모둠씩 주사위를 굴려가며 말을 이동한다. ‘고개 넘기’에 말이 걸리면 주머니에서 쪽지를 한 장 뽑아 쪽지의 문제를 해결한다. 알고 있는 방법을 동원해 모둠에서 해결을 모색한다. 한 번 뽑은 쪽지는 진행에 따라 한 번 더 풀어보도록 주머니에 도로 넣을 수 있다. 두 번 정도.

위 사진:부루마블 가출 버젼 : ‘꽝’ ‘장기자랑’ ‘원하는 말이랑 바꾸기’ 등과 같이 숨은 고개를 만들면 더 흥미롭다.


• 밤에 잘 곳이 없어 : 친구 집 찜질방은 못 가는데…
• 얹혀살던 친구 집에서 더 이상 재워주기 곤란하다고 한다.

“친구 부모님이 재워주는 거 반대하면, 공부 잘하는 친구라고 하면 좀 더 잘 수 있어. 전에 친구 가출했을 때, 내 친구가 공부 좀 했는데 아주 잘한다고 했더니 엄마가 자도 좋다고 했거든.”
“한 달만 봐 달라고 사정해보자. 설마 잘 데도 없다는데 내쫓을까?”
“고시텔은 어때? 알바해서….”
“고시텔에 가려면 하루 종일 알바 해야 돼. 학교는 어떡하구.”“단체를 활용하는 거야. 인권단체한테 재워달라고. 하하”

•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비용이 없어 ㅠ.ㅠ
“데이트는 돈 안 드는 데 찾아보는 거야. 도서관 같은 곳.”
“먹는 건 어떻게 해?”
“아! 촛불집회 가면 먹는 것도 주잖아. 볼 것도 있고, 걷기도 하고, 시간도 잘 가. 짱이다.”
“먹는 거는 대형 마트 시식코너!”
“근데 차비는 들잖아. 적어도 2천 원은 들어.”
“그럼, 집에서부터 행진하라고 해. 하하.”

• 이가 아픈데 치과 갈 돈도 없고, 보험증 없어서 괜찮나?
“아픈 건 참을 수밖에 없어.”
“후원을 모으는 거야. 자유발언 같은 데서 가출했다고 말하고, 아프다고 후원해달라고 하면 어때?”
“보건소가면 돈 들어?”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자. 의사 아는 사람 없어?”
“야, 우리가 의사를 아는 사람이 어딨어! 우리 나이에 의사를 알기가 쉽냐?”
“아프면 불쌍하다.”

•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하는데 부모동의서가 필요하네.
• 아르바이트 저임금 노동착취 + 인권침해

“아르바이트, 동의서 없으면 안 돼?”
“난 전에 알바 할 때, 동의서뿐만 아니라 노동부 장관 허가서도 있어야 했어. 만 15세 미만이래서.”
“위조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돼?”
“동의서 위조해서 내도 어른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해.”
“그러면 어떻게 해?”
“가짜 어른 섭외하면 되잖아.”
“근데 그거 불법이지?”

• 학교에 갔는데 교사가 가출한 걸 알고 집으로 보내려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왔다.
• 등교문제, 교복과 책, 준비물, 급식비, 등록금

“가출한 거 학교에 얘기하면 안 되겠지?”
“당근이지. 집에 끌려가. 그리고 가출은 교칙 위반이야.”
“학교에서 거짓말 해야겠네”
“다니면서는 계속 거짓말 하겠지. 급식비 못내도 거짓말, 준비물 못 가져가도 거짓말, 근데 학교 다니기 쉽지 않겠다. 잘 데도 없는데 학교 다닐 생각할까?”

• 가출했는데 돈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흑
“잘 데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옷도 꼬질꼬질 하면…” “최악이다”
“집에서 엄마 통장이라도 들고 나와야 하는 거야? 참.”
“왠지 계속 불법으로 간다, 우리.”
“그러게 점점…. 정당한 방법은 없나?”
“야, 우울해진다.”

신나게 시작한 가출 여행이 점점 심각해진다. 웃으면서도 우울함이 배어 나오는 청소년의 가출 일기에 빨리 게임을 끝내도, 마냥 환호성이 나오지는 않는다. 게임이 끝날 때쯤이면 가출해서, 독립해서 당당히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우리 현실에 착잡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출, 할 게 못되는구나’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출의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보다 가출의 정당성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이 집을 나와서 정당하게 살 수 없는 사회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이래도 되는 거야?!!”

더불어 날개짓 2

위 사진:독립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들! ‘사회’와 ‘나’로 나눠서 생각해봐요~

독립을 희망하는 청소년이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사회는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각 모둠별로 각각의 리스트를 만들도록 한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 으뜸인 것은 다른 모둠이 퀴즈로 맞춰보도록 색지로 가리고, 발표를 한다.

사회에서 준비·제공해야 할 것들
· 노동할 수 있는 조건 /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일자리
· 주거 공간 : (정부의) 직접적인 제공 / 안정적인 주거 공간(무상)
· 청소년을 위한 의료보험 (청소년은 의료비 공짜?) / 학교, 사업장 등 건강검진+치료
· 교육… (쩜쩜쩜; 왠지 그냥 지금의 교육은 아닌 것 같아) / 교육개혁, 무상교육, 입시폐지
· 교통비+공과금 무상 또는 할인?

이외에 청소년이 스스로 독립을 위해서 준비해야할 것들로는 ‘독립에 대한 의지와 뻔뻔함’ ‘시간관리’ ‘인간관계’ ‘깡’ ‘요리실력’ 등을 뽑았다. 또 청소년의 알바 저임금으로는 잠자리는커녕 세끼 식사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 가출한 청소년도 학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고, 현장학습 가면 입장료 내야 한다는 사실,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급식비 못 내면 식판 안 준다는 거, 청소년이라고 절대 공과금 같은 것은 깎아주지 않는다는 거 등등 8개월째 가출 중, 독립을 꿈꾸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적나라한 현실을 들춰낸다.

끄덕끄덕 맞장구

서로의 평화를 위해 차라리 집을 나와 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혼자 사는(또는 혈연이 아닌 구성원들과 함께 사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안타까움’ 그리고 ‘불안’이다. 가출이든 독립이든 청소년은 ‘이렇게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청소년의 독립적 삶이 가능한 사회는 꿈꿔 본 적이 없다. ‘안타까움’은 그저 안타깝게, ‘불안’은 그저 불안으로 안은 채 지낸다. 그러나 그들은 꿈꾼다. 저들의 안타까움과 불안을 딛고 자신의 독립을!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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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14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29일 17:08:58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했던 독립-_-; 그나마 좀 잘 되었던 것 같아서 좋았었지 훗;;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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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10. 12:41

[내 말 좀 들어봐]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가출소년 따이루,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오다

따이루
신발을 걸치고 도망쳐 나온 그날

난 2006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왔다. 집에서는 '어린 것이 뭘 아냐,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빨갱이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학교나 열심히 다녀라, 쪽 팔린다' 이런 반응이었다. 가족들은 몇 달 저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근데 몇 개월이 지나도 애가 점점 더 빨개지는 것 같고 머리만 커지는 것 같으니깐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통금시간이 생기고, 컴퓨터를 할 때마다 감시를 받고, 통화 내역도 조회하고, 주변 친구나 활동가들 연락처를 여기저기서 모아서 연락망까지도 은밀히 만들었다. 난 이걸 블랙리스트라고 부른다. 학교에 전화해서 내 학교생활과 친구에 대해 알아내는 건 기본이었다. 집이랑 학교가 나도 모르게 나에 대해 통화하는 것도 물론이구. 너무 화가 났다. 나를 통제하고 보호하려고만 하고, 나와 대화는 하려 하지 않는 그런 자세와 행동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뒤가 캐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고 화가 났다.

그런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기분 나쁘다, 문제 있는 거 아니냐'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네가 잘했으면 내가 이러겠냐면서 오히려 나한테 화내고……. 쥐뿔도 없는 나는 그냥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사람들로부터 독립할 힘도, 돈도 그 무엇도 없었으니깐. 그렇게 싸우다 지고, 외출금지 당하면서 겨우겨우 살았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던 따이루~


2007년 11월 11일에 큰 집회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경찰이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강경대응 하겠다 어쩌겠다 하면서 난리를 쳐서 엄마아빠는 내가 저기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일요일에 교회 갔다 어디도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 특히 집회는 절대 가지 마!”라고 경고를 했다. 순간 급당황;; 하지만 가고 싶었던 집회고, 무조건 집회 가지 말라고 협박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더 짜증났다. 그래서 정성 가득 감동적인 편지를 한 장 써놓고 집회에 갔다. 편지 쓰면서 집에 가면 욕먹고 일주일 정도 외출금지 당할 거라고 대충 예상은 했었다. 통금 10분전. 집회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데 집안 분위기가 완전 얼음장이었다. 아빠가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보더니 어디 갔다 왔냐, 왜 갔냐, 왜 엄마아빠 말 씹고 가냐, 죽고 싶냐면서 취조와 협박을 하셨다. 난 완전 쫄아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다 오늘은 참는다는 듯이 “이제부터 무기한 외출금지다. 엄마아빠 있을 때만 허락받고 컴퓨터 켜고 숙제만 해라. 텔레비전 보지 말고 성경말씀 읽어라!” 헐;; 이런 표정으로 문 쪽에 얼어붙은 채 가만 서있었다. 그때 방에서 날 째려보던 아빠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더니 내 머리를 잡아당겨 내동댕이치면서 패기 시작했다. 마음이 얼어서 그런지 아주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근데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 무서웠다, 아빠의 그 살기어린 눈빛이. 그때 엄마가 외치더라구. “왜 애를 패요? 차라리 내보내요.” 그 순간 난 본능적으로 신발을 걸치고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는 지금 얹혀사는 집으로 달려갔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돈 나갈 구멍은 많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집을 나오고 나니 하나에서 열까지 다 힘들다. 그 중에 좀 더 많이 힘든 것 중 하나는 텅텅 빈 지갑!

계획된 출가가 아니라서 모아둔 돈도 없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나 인맥도 없고, 알바를 하려고 해도 노동부의 허가증이 필요한 나이여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지금 얹혀사는 곳은 신림이고 학교는 구로여서 학교를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타야 해서 차비도 많이 든다. 밥 사먹느라 또 돈 들고……. 수입은 없는데 지출만 생기다보니 빚이 몇 만원이나 생겨버렸어. 거기다 앞으로 급식비에, 학교운영지원비에, 고등학교 가려면 입학금에 교복 값, 준비물 값, 소풍·수련회비도 내야 하는데……. 아프면 병원비도 내야하고 계속 얹혀살기 그러니까 월세도 내야 하는데……. 아무리 아껴 살아도 돈 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내가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우울했다. 그래서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간절히 느끼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간절히 원했던 것 중 하나가 무상교육이었는데, 엠비(MB)가 되셨으니 투잡(two job) 뛰어야 겨우 학교 다닐 것 같다─┌이런……. 아픈 것도 걱정이다. 특히 의료보험적용 힘든 치과. 난 이가 성하지 않은데,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 못갈 생각하니깐 너무 싫어 미칠 거 같다. 투잡도 모자란 것 같다. 추가 부업으로 인형 눈이랑 봉투도 열심히 붙여야겠다!

두 번째로 날 힘들게 하는 건 보호! 알바를 하려 해도, 핸드폰을 만들려 해도 보호자 동의가 없으면 어쩔 수가 없다. 보호자동의 없이 할 수 있는 게 손꼽힐 정도다. 그나마 엄마와 옛날에 했던 약속 중 하나가 '고등학교 입학에 한해서 보호자 동의를 해 준다'여서 고등학교 갈 돈만 되면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고 내가 할 일들인데 나보다 왜 보호자가 중요한 걸까? 내가 가고 싶은 길과 부모님이 갔으면 하는 길이 다른 건 당연한 거잖아. 둘은 분명 서로 다른 인격체니깐!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도 축소판도 아닌 한 인격체잖아. 그런데도 청소년에게는 선택할 권리도,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만들어 나갈 권리도 없다.

“걸리면 집에서 쫓겨나.” 청소년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활동을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세상에서 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 막막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세상은 돈 없으면 죽으라고 하니 더 막막해진다. 그러고 보니 왜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이런 미친 세상으로부터는 우릴 보호하지 않는 거지? ㅋㅋ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가출 후 선생님의 중재로 엄마와 협상(?)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협상은 그냥 엄마와 나의 생각 차이만 확인하고 별 진전 없이 끝났다. 그렇게 두 달이나 지났다. 정해진 것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면서 살다보니 그런지, 사는 게 불안정해서 그런지 폐인생활 모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 메일을 보냈다. 엄마는 건강하게 지내라는 말만 하셨다. 그래서 직접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양보안을 내놓았다. 그러다 인권운동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엄마는 '통금 7시!'를 계속 주장했다.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통금시간이 오후 7시면, 친구들하고 놀지도 못하고 인권운동을 하지 말라는 거랑 다름없다-_-

하지만 이 협상에서 인권운동 하는 걸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오직 깡 하나만 갖고 하는 이런 불공정한 협상에서 이 정도 성과를 건져 내다니, 부라보~ 노동자들이 회사랑 싸우는 거랑 청소년이 집이랑 싸우는 거는 상당히 비슷하다. 노동자나 청소년이나 ‘깡’ 하나밖에 가진 게 없으니까. 기계를 멈추고 서비스를 중단할 ‘깡’, 집을 나올 ‘깡’. 그나마 노동자들은 빈약하게라도 법의 보호를 받지만, 가출한 청소년은 법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청소년의 가출할 권리, 독립적으로 살 권리도 노동자의 파업권 이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 아닐까. 이 권리를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나와 부모님의 생각 차이는 두 달 정도의 가출로는 뛰어넘기 힘들 것 같다. 집에 들어가는 조건인 ‘무조건적인 오후7시 통금’에 동의할 수 없기에 난 여전히 집을 나와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독립해서 사는 걸 꿈꾸고 있다.

가출 후에 찾은 길

가출을 한 후에 얻은 게 은근히 많다. 미역국 안 질기고 적당히 담백하고 고소하게 끓이는 법, 김치볶음밥 타지 않고 맵지 않게 만드는 법, 김치찌개 고소하고 얼큰하게 끓이는 법, 쓰레기를 반으로 줄이는 법, 빨래를 깨끗이 냄새 안 나게 하는 법, 청소 빨리 잘 하는 법 등등과 같은 생활의 지혜를 배웠다. 당장 내 앞의 일들과 좀더 먼 미래에 대해 계획도 세우고 의지도 다졌다. 나를 지지해주고 힘들 때 도와주고 필요할 때 태클도 넣어주는 진짜 친구들도 만났고, 집에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추억들도 만들었다. 그리고 8만3천원의 빚(ㅋㅋ). 가장 큰 건 '나'를 찾으려 노력했고 '나'를 찾을 길을 발견했다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꿈꾸는 세상, 내가 원하는 가치관을 자유롭게 외치면서 난 나를 찾아 나갈 거다.

가출 후 힘들어 하면서도 좋아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건 분명 이 사회에서 가장 따뜻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가장 폭력적으로 될 수도 있는 공간이다. 가족이 나에게 주었던 보호와 억압의 벽을 부수고 나온 지금! 앞으로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지금이, 내가 보이고 내가 개척하는 이 길이 좋다. 후회는 없다.

[끄덕끄덕 맞장구]
집을 나온 뒤 친구네에 얹혀살며 두 달이란 긴 시간을 보낸 따이루. 워낙에 단단하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라, 자유가 주는 달콤함과 여유 때문인지 때론 배짱이 정말 두둑해보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막막함과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10대 때 청소년 인권을 포함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가족들이 말리거나 금지해 활동을 접는 청소년을 여럿 보았습니다. 가족에게 생존과 교육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의 처지에서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부모의 뜻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게 자식 된 도리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선, 부모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사회에선, 청소년은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편견을 버리지 않는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래서인지 인권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을 약속받기 위해 거리로 나선 따이루의 싸움이 더욱더 힘겨워 보이고 안쓰럽습니다.

대개 부모와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온 청소년에게는 철없는 아이, 반항적인 아이, 위험에 빠지기 쉬운 아이라는 시선이 따라붙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생고생하지 말고 양보하고 집으로 들어가라’라는 충고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백기 투항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삶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망이나, 사실 그/녀들이 부모와의 싸움에서 아무런 패도 내밀 수 없는 약자라는 사실은 간단히 잊힙니다.

최초의 둥지를 떠나온 청소년은 아무 자기 보호막도 없이 차가운 거리에 서고 살아남기 위해 위험하거나 착취적인 관계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다행히 따이루는 피신에서 가출, 독립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을 지지해주고 먹을거리도 챙겨주는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있는 집 청소년은 유학이다 연수다 해서 부모와의 갈등을 잠시 회피할 수 있겠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은 어떨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집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든, 청소년이 주어진 둥지를 떠나 독립적으로 새 둥지를 만들 권리가 보장된다면, 그 세상은 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안락한 삶 때문에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부모가 지어준 둥지를 떠나지 않으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요즘, 안락함을 포기하는 대신 자기 길을 찾아 나선 따이루가 더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이 싸움에서 따이루가 꼭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뜻도 용기도 열망도 꺾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따이루가 좀더 유리한 위치에서 부모와의 협상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그 버티는 시간 동안의 고단함을 지켜보고 힘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배경내]
◎ 따이루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입니다.
인권오름 제 86 호 [입력] 2008년 01월 09일 11:53:4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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