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10.03.25 청소년․소녀와 민주주의 (김영수.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에서 발췌.) (4)
  2. 2010.02.15 조직의 부재 :: 여하간 문제는 조직화다 (7)
  3. 2010.01.20 이 세계가 자유를 보유하는 한 거기에 따르는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
  4. 2009.12.14 [경향신문 - 개인 삶을 희생하는 진보]를 읽고 든 생각, 노동자 평균임금 등
  5. 2009.11.02 학생의 날, 학교와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제2의 시국선언 (2)
  6. 2009.10.16 [인권오름] 경기도학생인권조례, 학생 의견을 듣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7. 2009.06.16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대한 공현 개인의 정리 겸 비평 (3)
  8. 2009.06.11 [참세상] 6.10 섞이지 못한 구호와 민주주의
  9. 2009.06.10 2009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대한 수정 의견서
  10. 2009.06.09 길 그 끝에 서서 - 지민주 (3)
  11. 2009.06.05 [펌]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 김진숙 씨 편지글
  12. 2009.06.04 가지도 않았던 기자회견 갖고 조사받으래서 안 간댔더니 협박을 -_-+++ (8)
  13. 2009.05.28 대통령은 '왕'인가? -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위기에 내포된 위험성 (61)
  14. 2009.05.28 천주교인권위원회 뉴스레터 교회와 인권 칼럼 - 시인과 법
  15. 2009.04.06 아수나로는 '아나키즘'적이려나 - 운동조직의 민주주의와 관료제, 또는 대의제
  16. 2009.04.06 [펌] 우리반반장 임영박
  17. 2009.03.10 ‘열정세대’ - 삐딱한 감상 (2)
  18. 2008.09.08 촛불소녀, ‘도전’과 ‘희석’의 줄다리기 (3)
  19. 2008.07.16 7월 17일 국민주권 실천 촛불대행진
  20. 2008.06.18 재수강은 이명박 시키자! (4)
걸어가는꿈2010. 3. 25. 00:19



청소년․소녀와 민주주의



  기성세대의 눈높이로 재단되는 청소년․소녀?

   2008년 청계천 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이 서울광장으로 번져 대한민국을 촛불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온라인의 네트워크는 촛불로 달구어졌다. 청소년․소녀들의 촛불이 기성세대의 촛불로 진화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명박차량과 명박산성에 갇혔다. 현실정치에 뛰어나다고 떠들었던 그 어느 누구든지 청소년․소녀들의 촛불에 끌려 다녀야 했다. 항상 감시와 훈육의 대상이었던 청소년․소녀들은 기성세대들을 훈육하였다. 그야말로 청소년․소녀가 보여 준 정치전복의 미학이었다. 그들은 바로 정치적 주체였다.

   2008년 청소년․소녀의 촛불공론장은 사회적 차별과 특권을 개입시키지 않고 합리적 대화를 추구하는 개인들로 구성되었다. 촛불은 개별적이면서도 개별화되지 않은 힘이었다. 또한 촛불은 집단적이면서도 집단적이지 않은 힘이었다. 개인의 힘이 집단화되기도 하였고 집단적 힘이 개별화되기도 하였다. 촛불은 개인과 집단을 연결하는 정치적 가교였다. 자발적 네트워크가 집단적이고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힘으로 작용한 것만은 틀림없다. 참여자들은 합리적 담론을 가능케 하는 기준을 존중하면서 참여자의 평등성을 보장하려 하였다. 아고라의 새로운 장이 열렸던 것이다. 촛불공론장은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민주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려 하였던 것 아닌가? 국가 중심의 정치를 국민 중심의 정치로 전이시켰던 것 아닌가? 2008년 촛불은 말이나 글로써만 미래사회의 주인이었던 청소년․소녀들을 민주주의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게 했다. 청소년․소녀들은 책에서 배워왔던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아고라 민주주의, 아니 촛불 민주주의로 전복시켰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위기국면을 발전국면으로 전화시킨 주체로 등장하였다.

   ‘청소년․소녀’라는 용어는 공시적으로나 통시적으로 대단히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 청소년․소녀의 연령을 어떻게 정하느냐, 그 언표에 해당되는 주체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용어가 함의하는 의미들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청소년․소녀’라는 용어 자체부터 대단히 유동적이고 자의적이면서도 사회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의 눈높이 시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성년이 되더라도 어린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소녀들은 군대를 갔다 오거나 결혼을 해야 어린이에서 벗어난다.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인 연령 기준이다. 청소년․소녀라는 법률적이고 형식적인 연령,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연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저 보호와 훈육의 대상일 뿐이다. 청소년․소녀를 지칭하는 용어나 연령 규정이 모두 제각각이다. 영어로 'Youth'에 해당되는 청소년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보호의 대상으로서 ‘아동children’, 성년의 전단계로서의 ‘미성년under-age’, 아동과 성년의 불완전한 과도기적 존재로서의 ‘청년adolescence’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1961년에 제정된 미성년자보호법에 의해 우리나라 청소년․소녀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훈육의 대상으로 규정받게 된다. 기성세대들이 보호해야만 하는 유리그릇이었다. 박정희 군부독재체제가 청소년․소녀들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청소년․소녀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민족해방운동의 한 주체였다. 1960년 4․19혁명에서도 투쟁의 도화선을 만들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청소년․소녀들이 순식간에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이 없는 보호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박정희 군부독재체제가 만든 두 법은 청소년․소녀를 ‘보호’와 ‘귝성’이라는 사회적 기틀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미성년자보호법은 1997년 청소년보호법으로 개정되었고, 아동복리법은 1987년에 청소년육성법으로 개정되었다가 1991년에 청소년기본법으로 다시 바뀌었다. 청소년 보호정책과 육성정책이 서로 다른 법적 근거와 기구가 양분된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두 법률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소녀들을 자기 생활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 그저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의 생활을 보호하고 양육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청소년․소녀들은 자기 생활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유엔이 정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의하면, 청소년․소녀 연령은 18세 미만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소녀의 연령은 청소년기본법에서 9세 이상에서 24세 이하이다. 청소년보호법에서는 19세 이하로 명시되어 있다.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아직 심신의 발육이 충분하지 않고 판단능력이 부족하므로 민법상 행위무능력자로 하여 법정대리인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재산상의 거래행위는 법정대리인이 대신하든지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심신의 능력이 노쇠하여 거의 행위무능력자 수준에 이른 고령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20세를 넘긴 지 오래기 때문에 20세 미만의 청소년보다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이 좋다고 인정된다. 나이를 가지고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의 유무를 판단하는 법률적 일반화의 폭력이다. 영재교육이 발달하여 15세 전후로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영재의 판단능력이 기성세대보다 뒤떨어진다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영재들은 오히려 기성세대들보다 더 훌륭한 국가정책을 자신의 창의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의 눈높이로 만들어진 기준으로만 보면, 대학에 입학한 영재들도 20세가 되지 않았기에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을 갖추지 못한 보호대상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국가별로 청소년의 심신 발육상태가 차이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청소년의 인격과 주체성을 보다 이른 나이에 인정하는 사회문화 때문일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 143개 국가가 18세 미만을 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나 이란과 같은 국가는 17세 미만을 미성년자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17세에 주민등록증을 받고도 미성년자로 나망 있다가 20세가 되어서야 성년으로 대접받는다. 20세가 되지 못해 규제받고 있는 것들을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18세가 되면 근로, 납세, 국방 등의 의무가 주어진다. 공무원에 임용되거나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결혼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20세 이상의 성년이 되지 못할 경우에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만 것들이 무수히 많다. 18세 이상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은 의무만 있지 권리는 거의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의무가 국방의 의무이다. 전시에는 17세만 넘으면 전쟁에 동원된다. 보호대상이었던 청소년이 국가를 위해 총을 들어야 한다. 17세가 전쟁에 참여할 정도로 심신이 발육되고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해서일까? 이는 주민등록증이 17세에 발급되는 근거이다. 신분증의 변천사를 보면 그 해답이 있다. 주민등록법이 개정된 이유는 총력적인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주민등록을 거주 사실과 일치시키고 주민등록증 발급대상자 연령을 민방위대 및 전시동원 대상자 연령과 일치시키고자 18세에서 17세로 낮추었다. 국가가 동원하는 청소년․소녀는 심신능력이 높이 평가되고, 국가의 관리대상으로서의 청소년․소녀는 판단능력이나 책임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꼴이 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제에서는 청소년․소녀들이 대부분 19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까지는 전시에 동원될 때 빼고는 그저 보호대상으로 남아 기성세대들의 의지대로 관리되고 양육되어야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인겨긍로 대체되는 종속적 대리주체에 불과한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아마도 세대 간의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아니 기득권 지배세력들은 청소년․소녀의 촛불을 끄기 위해 학교와 시험을 그 수단으로 삼았다. 청소년․소녀의 일상생활에서 약한 고리로 작용하는 권력관계를 이용하였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소녀들을 학벌사회가 강요하는 대학입시의 전쟁터인 학교의 울타리에 가두었다. 요즈음 대학생들도 학교의 울타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졸업을 하고 싶어도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노동의 권리가 부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갈등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동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이 10% 이상 장기화된 지 이미 오래다. 취업을 하더라도 그저 비정규직이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직업을 두 개 혹은 세 개를 가져야만 하는 다기능 사회만이 그들을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낮에는 비정규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이다. 청소년․소녀들에겐 절망의 미래를 희망의 미래로 바꾸어 내는 세대혁명의 과제만이 남는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청소년․소녀, 학벌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청소년․소녀, 일자리를 잡아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만 하는 청소년․소녀들은 노동의 위기시대에서 독립적인 자기생활의 권리를 쉽게 확보하지 못한다.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소녀의 노동과 돈을 좌지우지한다. 청소년․소녀를 훈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남게 하려는 기성세대들의 최후 수단이다. 기성세대들은 단지 내 자식만 노리갯감으로 전락하지 않으면 된다는 자기만의 울타리를 치고 있다.



  정치적 주체로 다시 서는 청소년․소녀!

  청소년․소녀들은 국민임에도 주권을 가지지 못한다. 권리는 거의 없고 의무에 짓눌려 살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위임할 대표도 기성세대들 가운데 한 사람도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의 권리조차 보호와 훈육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소녀들에게 불호가실한 미래를 위해 밤낮으로 투자하라고만 한다. 문제는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소녀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소년․소녀의 권리는 그저 자신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기성세대들의 이권은 청소년․소녀를 보호하고 훈육한다는 우산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대 간의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철저하게 방지한다. 이 문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정착시켜 나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는 청소년․소녀를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대상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국정과제를 제시하였다. 대학입시라는 경쟁지옥에서 판단능력이나 책임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비행의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청소년․소녀를 기성세대들이 잘 보호하려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는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에게 7대 영역 30대 정책과제를 대선공약사항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정책과제는 주로 청소년․소녀들을 훈육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소녀 전담부처 신설 및 예산확충, 청소년 참정권 확대 및 청소년지도자 복지개선, 지역사회 청소년 통합지원체계 내실화, 민간차원 청소년국제교류 및 국제협력 지원 강화, 청소년․소녀 지도자의 날 법제화 등을 추구한다. 이러한 정책내용들은 청소년․소녀를 지도하고 훈육하는 기성세대들의 몫이었다. 청소년․소녀 스스로 자신의 주권을 실현하게 하는 알맹이는 하나도 없었다.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청소년․소녀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훈육하려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기성세대들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지배세력은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이만이 성공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까지 만들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청소년․소녀는 현실정치의 한정치산자였다. 아니, 어떠한 행위도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금치산자였다. 국가권력은 청소년․소녀에게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없게 하였다. 기성세대들의 눈높이로 만들어진 교과서만이 그들의 공간이었다. 국정교과서는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 성장을 위해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경제, 국가의 공공적 폭력을 위해 권리를 양보하는 정치 등을 그들에게 강요하였다.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소녀들을 훈육하고 관리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울타리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탈주하는 청소년․소녀는 바로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을 찍었다. 교사가 청소년․소녀에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라도 하면 당장에 운동권 교사, 의식화 교사로 비난을 가했다.

  이제는 정치세력만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민주주의나 국가 중심의 권력에서 벗어나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청소년․소녀의 권리는 그들 스스로 관리하고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기존의 정당정치는 시민citizen, 대중mass, 다중multitude, 인민people, 군중crowd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의정치는 기성세대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였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소녀들은 시혜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과거와 같이 좁은 의미의 대의정치만이 아니라 참여와 대의가 공존하는 네트워크 정치가 발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청소년․소녀가 존재한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미래사회의 주인이자 주체라고만 말할 뿐, 항시 자신의 눈높이로 설정된 기준에 맞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온실 속의 맞춤형 화초로 간주한다. 청소년․소녀가 배우고 접하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자신들을 정치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였다. 또한 책을 통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내용만을 배우는 민주주의였다. 청소년․소녀는 2008년에 촛불을 들거나 네트워크를 타고 정치의 주체로 나섰고 왜곡되고 비틀어진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주인공이 아닌가?

  소비대중문화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등장한 1990년대의 ‘신세대’를 일컬어 탈정치적인 세대, 탈이념적인 세대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청소년․소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적 취향이나 스타일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특정 가수의 팬클럽이 주도하는 팬던문화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이후에 등장한 소위 X-세대나 N-세대 역시 탈정치적인 문화만을 추구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보호대상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만의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에 우려를 금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의 편견에 불과했다. 정치적 주체를 의회나 정당으로 제한시켜버리는 기성세대들의 잘못된 판단능력이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청소년․소녀들이야말로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해 논쟁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찬성과 반대의 요점을 정확하게 알고 비판할 능력이 기성세대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만 벌려고 하면서 살아가는 기성세대들과는 다르다. 스스로 자발적인 정치적 참여와 비판의식을 갖는 청소년․소녀들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미래희망이자 기둥이다. 청소년․소녀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국가정책을 결정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운영하는 청소년․소녀단체들도 그들 스스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사회적 보호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확보해 나가는 사회적 주체이다. 미래사회의 주인은 기성세대들의 말과 글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정치적 주체로 나설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청소년․소녀들이 정당이나 정치조직 등을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하면 된다. 자신을 사회적 보호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사회적 모순들을 극복해 나가면 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청소년․소녀 스스로 자신들의 정당을 결성하는 것이다. 청소년․소녀들은 가칭 ‘청소년․소녀미래사회당’을 결성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그 정당을 중심으로 청소년․소녀들의 국가정책에 개입하거나 대안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소녀에게 정당활동의 자유를 완전하게 보장함과 더불어 선거권․피선거권을 동시에 부여해야만 한다. 정치는 기성세대들만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팬클럽을 조직하는 청소년․소녀들의 능력을 고려하면, 가칭 청소년․소녀미래사회당은 기성세대들의 정당보다 탄탄한 조직력을 구축할 수 있다. 정당활동의 형식과 내용 역시 젊음만큼 활기찰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거연령은 1948년 정부수립 당시 만 21세로 시작되어 1960년에 만 20세로 낮추었다. 이후 45년간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만 18세 이하의 연령에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연령을 낮추는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였다. 국내법은 만 18세를 법적 성인으로 인정한다. 국가는 그들에게 병역, 납세,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단지 참정권에서만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의 권리와 의무 간에 이중적 잣대가 적용된다. 의무는 부과하면서도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오스트리아, 영국, 일본에서 ‘16세 유권자’가 등장하였다. 이 문제는 나라 안팎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행정전문가인 제럴드 하이만은 “그들이 과연 정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 ‘군대에 갈 수 있으면 투표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참정권 제한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췄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스테인 링겐 교수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도 유권자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아동들이 공공정책 결정에 영향을 더 미쳐야 한다”고 맞섰다. 체코의 인권장관인 드자밀라 스테리코파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면, 청소년․소녀의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며, 최소한 자치단체 선거라도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선거연령을 21세에서 19세로 낮추는 데 거의 50년 가까이 걸렸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16세 유권자 문제는 꿈속에서나 생각해볼 먼 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나 2008년 촛불은 16세 유권자 문제가 바로 우리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 주었다. 세계적으로 만 16세와 17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 나라도 니카라과와 쿠바 등을 비롯해 7개 국가에 이른다. 이란은 만 15세 청소년․소녀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포함한 140여 개 국가는 만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몇 몇 국가에서만 19세 이상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다른 나라 청소년에 비해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이러한 의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은 아마도 손사래를 칠 것이다. 세계 수학올림픽과 같은 경기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우리나라 청소년․소녀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연령을 만 15세 이상으로 설정하였다. 만 15세에서 만 29세까지의 총소년․소년들은 청년실업률을 산출하는 대상이다. 기성세대들은 만 15세 이상의 청소년․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노동력을 인정하고 있다.

  피선거권의 연령도 매우 다양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캐나다처럼 18세에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국가도 있다. 싱가포르나 영국은 21세에 피선거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도 25세 이상이면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서 당선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면 40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매우 혼란스럽다. 우리나라 선거권은 19세인데 국회의원 후보자격은 25세이고 대통령 후보자격은 40세라니 뭔가 모순이 있다. 정치적인 판단능력과 책임능려깅 있어서 선거권이 부여되었는데 피선거권은 또 다른 나이의 기준으로 제약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선거권 연령과 피선거권 연령은 같아야 한다. 정치적인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에서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 간에 무슨 차이가 있기에 나이로 제약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10대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가 나오거나 당선되면 그것이야말로 뛰어난 우리나라 청소년․소녀의 능력에 감사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다. 10대의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가 당선되어 기성세대들보다 국가정책을 더 잘 수립하지 못할 것이라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단지 기성세대들은 생활의 경험만을 내세우면서 청소년․소녀의 부족한 경험능력을 의심할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0대 선거권자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청소년․소녀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기성세대들의 과거 경험은 박물관의 전시품에 불과하다.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먹고사는 올드보이들이다. 청소년․소녀는 현실사회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 문제의 실질적인 전문가들이다. 컴맹이면서도 정보사회의 청소년․소녀를 이해하고 있다고 떠드는 기성세대들이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할 뿐이다. 노동과 돈을 장악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기득권의 폭력을 행사할 뿐이다. 설사 청소년․소녀의 경험이 부족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청소년․소녀 스스로 자신의 이해와 관련된 국가정책을 결정하게 하면 된다. 아프리카의 르완다 헌법은 제188조에서 국가청소년․소녀협의회를 국가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르완다 국가청소년․소녀협의회는 청소년․소녀 정책을 협의하고 결정한다. 청소년․소녀의 대표자들은 이 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다. 청소년․소녀가 단순히 기성세대들의 보호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당당한 권리주체이고 미래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 현실의 정책이 미래의 주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소녀들이 국가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협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이러한 권리를 토대로 자기주도적인 삶의 주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청소년․소녀들이 정치의 문제에서 주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세대간의 폭력이다. 청소년․소녀를 정치적 주체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와 육성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기성세대들의 과잉 애프터서비스이다. 그들의 권리를 기성세대들의 선입관과 편견으로 제한하려는 지배이데올로기이다. 국가는 가능한 한 나이가 많을 때까지 청소년․소녀를 제약하고 통제하려 한다. “청소년․소녀는 미성숙한 자이기 때문에 정치적 자기결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라든가, “청소년․소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음란물이 제도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등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심신이 발달하여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소녀들을 몰래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불과하다. 청소년․소녀들에게 판옵티콘의 원리를 작동시키려는 기성세대들의 폭력이다.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김영수. 2009. 메이데이. pp.142-155.)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관련 내부 스터디를 할 예정이라서 자료로 발췌한 것입니다.
메이데이 책은 정보공유 라이선스가 붙어 있어서 이렇게 발췌해도 딱히 저작권에 걸리지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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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고로, 글 중에 비문이거나, 문장이 좀 이상하거나, 그런 건 발췌 중에 실수라기보다는 원문이 그런 게 더 많을 겁니다...
    이거 뭔가 출판된 책인데 문장력이나 논리가 빈약해;

    2010.03.25 00: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본문과는 상관없지만 요즘 청소년쪽 기사거리 있으면 좀 굽신굽신

    2010.03.25 23:46 [ ADDR : EDIT/ DEL : REPLY ]
    • 야우리시민

      이분 오타쿠위원장 아니신지

      2010.03.27 19:42 [ ADDR : EDIT/ DEL ]
    • stcat / --;; 뭐가 있을까요?
      야우리시민 / 아마 그러셨을걸요. 지금은 아니시지만.

      2010.03.27 23:58 신고 [ ADDR : EDIT/ DEL ]

딱딱한꿈2010. 2. 15. 02:19







1

  한국 사회에서 우려되는 현상 중 하나가 조직의 부재이다. 어쩌면 이 말이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조직만 있고 개인은 없다, 전체주의적이다, 집단주의적이다 같은 류의 이야기들이었으니까는.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로 들리는 조직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분명 쌩뚱맞게까지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적이지 못하다는 지적과 조직이 약하다는 지적은 모두가 사실성을 담고 있다.

  여기서 조직(뭐 커뮤니티나 공동체라고 표현해도 좋다.)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자발성/자기이익/공익에 근거하여 사회적으로 구성된 집단, 그리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정치적․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을 말한다. 예컨대 지역의 커뮤니티, 생활협동조합, 노동조합, 학생회, 공익단체, 정당 등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적 개념을 빌자면 이런 조직들을 '자발적 결사체'나 '시민사회' 등의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결사체들은 사회에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집단적 정치 참여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도 강한 조직들은 있다. 그러나 그런 조직들은 대부분 국가 권력이나 대자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자발성에 근거하고 있는 자발적 결사체로는 보기 어렵고,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개인은 없고 조직만 있다'라고 말할 때 그 조직은 주로 국가, 학교, 군대, 대기업, 지연, 학연, 그밖에 군사 독재의 부산물로 탄생했으면서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조직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친목적 기능을 수행하는 커뮤니티들(부녀회라거나)도 여러 요인들 때문에 사회적․정치적 기능과 가능성은 미미하다 하겠다. 요컨대 지금 한국 사회는 국가․자본이 조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며, 자발적인 조직화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서술은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것으로, "한국은 시민사회가 약하고 국가가 강하다."라는 분석과 비슷한 의미일 뿐이다.



2

  조직의 부재는 개인의 원자화라는 결과를 낳는다. '학생운동'이라는 형태로 80년대-90년대 초에 비교적 높은 자발적 조직화율을 보여주던 20대-대학생들의 현재를 관찰하면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최근에 각광받는 "88만원 세대"(박권일,우석훈)나 "자기계발하는 주체"(서동진) 등의 논의들을 보면 각각의 이론적 틀에서 그런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라고 쓰면서 정작 아직 서동진 씨 책은 안 읽어봤다 -_- 서평만 읽어봤지;;) 그렇지만 20대의 경우에 이러한 '변화'가 더 눈에 잘 띈다는 것 뿐, 이는 비단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우 낮은 노조조직률, 껍데기뿐인 학생회, 지역 기반 운동의 부진,(지역주의적이고 국가 권력을 등에 업은 정당들을 제외한) 정당들의 적은 당원 수 등등… 우리는 한국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개인의 원자화가 사회의 보수화를 불러온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거대한 사회 구조 속에서, 원자화된 개인은 사회 변화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없으며 사회 구조에 적극적으로 편입된다. 무력감 속에서. 문제들은 항상 개인화되고,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정치적/집단적 해결책은 사라지고 윤리적/개인적 해결책들만이 제시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당한 부당한 피해를 주변 사람들을 조직하여 행동하고 정치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개인으로서 제도에 의존하는 방법을 택한다. '신고'처럼 권력기관에 의한 제도적 구제를 요청하는 방식. 아니면, 자신이 사회적 권력자(또는 일종의 영웅.)가 되는 방식. 이 두 방식 모두 대단히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들만이 '현실적'인 방식들로 받아들여진다.

  무력감이 없어야만 민주주의라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지적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계급상승의 꿈이나 출세의 꿈을 꿀지언정 스스로 사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논의하여 해답을 도출해내기보다는 권리를 위임하고 권력 기관에 의존한다. 시민 사회가 약하고 국가가 강력한 상황이 역으로 국가 권력을 더 강고하게 한다는 것은 우울한 재생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적'이라는 말은 기껏해야 공직선출권-피선거권과 선거권 이상으로 얼마나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건강하고 잘 굴러가는 정당이 없이는 국회나 정부 등이 잘 기능하기 어렵듯이, 다양한 조직들이 존재하지 않는 - 시민 사회가 약한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잘 운영될 수 없다.




3

  운동의 영역에서, 조직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가진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운동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은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제도적인 기구들에 의존하는 대응, 이슈파이팅, 입법운동 등등... 파업 등의 방법도 거의 무력화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는 더 두드러지는 문제점이다. (한국의 운동들이 많은 경우 입법운동에 치중하게 되는 것은 이런 우울한 현실 탓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민 없는 시민운동" 같은 말들이 시민단체를 비난하려는 의도로만 사용되는 것은 다소 부당하다. 단체들의 운동 방식을 더 개선하기 위한 연구들도 있어야겠지만, 한국 사회 전체가 조직화가 안 되는 판에 그것을 단체들만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른바 '대중'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경로들이 매스미디어와 거리선전 등 외에는 거의 없는 상황은 운동 주체들에게 끊임없이 두통이나 과로 같은 건강상의 문제들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고 있다.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들의 자발적 봉기가 가장 건강하다는 식의 주장은 낭만주의자의 근거 없는 환상이다. 비조직 대중들의 자발성을 역설하는 사람에게, 나는 "아 물론 사람들에게는 그런 자발성이 있죠."라고 말해준 다음에 그런 '대중들' 속에서 기존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현실들을 수없이 많이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논의할 수 있는 구조[조직/공론장]조차 없는 막막한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과거의 사례들을 들어가며 들려줄 수 있다.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든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개개인들의 자발성은 촛불집회처럼 일시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아무리 암울하고 원자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도 인간에게는 바람직한 사회성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는 하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지속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팬클럽이나 인터넷 카페, 동호회 등의 조직들이 촛불집회에서 한 활동들을 연구해보는 게 더 나을지도.)

  그리하여 우리의 과제는 조직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조직이 없다면 조직을 만들면 된다. 긴 시간이 걸리고 매우 어려운 일이더라도, 여하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조직이 없는 이 현실이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하고 조직화되는 경험을 함으로써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면, 청소년 대중 조직화나 청년 조직화 등은 장기적인 해결책 중 일부를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대 때 조직화를 경험하고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해결 방식을 경험한 사람들이 30대 40대 50대 60대...(후략)... 가 되어도 조직화되기 쉽다고 가정한다면, 혹은 한나 아렌트 표현대로 '정치적/공적 자유'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말이다.(과거 20대 때 학생운동[조직화]을 경험한 사람들이 꼭 그 이후에 조직화되어 있느냐, 하는 반문이 분명 가능하며, 따라서 이걸 주된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건 매우 뻘쭘한 일이다. 동시에 추진되는 다양한 해결책 중 하나 정도의 위치로 이해해야 한다.) 어쨌건 그런 류의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10대든 20대든 30대든 40대든, 0대든 80대든, 조직화는 필요한 일이니까.

  여하간, 그리하여, 문제는, 조직화다.






(네스티캣 님의 미디어다음 연재 웹툰, 트레이스에서....)







# 이 글에서 '조직화'나 '조직'을 사람에 따라서 '함께하기'라고 읽든 '공동체'라고 읽든 딱히 반대하지는 않겠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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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척 공감하는 글.

    그런데 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에 신경쓰기 보다는 촛불을 미화시키고 다시 촛불이 일어나길 소망하는데만 급급한걸까?
    그렇게 하는게 (마음이든 몸이든) 편해서?

    2010.02.15 10:54 [ ADDR : EDIT/ DEL : REPLY ]
    • 혁명적 상황이란 게 조직화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별 부담없이 나서는 상황인 건 맞는 말 같은데, 그렇지만 조직화가 일정 이상 되어 있지 않으면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보이는데 말이지-
      마음과 몸이 편해서라기보다는; 당장 정부에 대응은 해야겠는데, 조직화라는 건 성과를 보려면 길게는 10년을 내다봐야 하는 일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싶기도 -_-;

      2010.02.15 12:50 신고 [ ADDR : EDIT/ DEL ]
  2. ㄹ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지킴이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10.09.22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3. 곰돌

    이 글이 나왔을 땐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 와서야 이해하겠다는 -_- 모종의 성장이 있었던건지, 여하간 멍청했고 (지금도) 그러한 거 같단 건 사실인둡 흑

    2011.02.08 00:36 [ ADDR : EDIT/ DEL : REPLY ]
  4. 곰돌

    읽을 때 마다 몹시 다른 느낌들이 느껴지는군요...

    2012.03.18 22:42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0. 1. 20. 20:59




사회생활이 지나치게 세밀하게 조직되어서, 시인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는 이미 중대한 일이 모두 다 종식되는 때다. 개미나 벌이나, 혹은 흰개미들이라도 지구의 지배권을 물려받는 편이 낫다. 국민들이 그들의 '과격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나쁜 일이고, 또한 국민들이 그들의 '보수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고립된 단독의 자신이 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간극이나 구멍을 사회 기구 속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더 나쁜 일이다 - 설사 그 사람이 다만 기인이나 집시나 범죄자나 바보 얼간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
 그 시민들의 대부분은 군거하고, 인습에 사로잡혀 있고, 순종하고, 그 때문에 자기의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싫어하고, 만약에 노예 제도가 아직도 성행한다면 기꺼이 노예가 되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혹은 지적 일치를 시민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의미에서, 이 세계가 자유를 보유하는 한 거기에 따르는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

- 로버트 그레이브스(1895~1985, 영국의 시인, 소설가.)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에서 재발췌)






  "규범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다. 엄밀히 말해서 규칙은, 규범은, 윤리는 한계 짓는 능력밖에 없다. 반짝거리거나 흐르기, 끓기를 금지하는 도덕이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규칙과 규범과 윤리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밖으로 나아가는 대신 안으로 한계 짓는다. 죄를 저질러라! 증오해라! 죽여라! 규범을 무시하고 죄를 저지를 때, 타인이 안간힘을 다해 지키는 것을 거리낌 없이 빼앗아 마실 때, 생은 장절한 날개를 펼치고 미답의 하늘로 날아간다! 그 하늘에서 너희들은 반짝거리고 흐르고 끓을 수 있다!"

... (중략) ...


  "예, 저희들은 파렴치하게 죄를 저지를 겁니다. 혼란을 퍼뜨려 생전 보도 듣도 못한 것들이 나타나게 하고, 그중 아름다운 것들을 게걸스럽게 취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규범에 묶어 치워 둘 겁니다. 그리고 규범이 뭔지도 모르는 양 다시 혼란을 퍼뜨릴 겁니다. 한계인 규범은 길잡이가 아니라 그냥 불필요한 것들을 치워두는 곳이지요. 우리는 혼란을 퍼뜨릴 겁니다."
  이라세오날은 비늘을 부딪쳤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모두 죽을 거다."
  엘시는 슬픈 눈으로 이라세오날을 보다가 말했다.
  "그러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8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하여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가져올 혼란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오래 전에 메모해둔 저 김수영 씨의 글에서 재발췌한 문장이 생각났다. 그러다가 피마새도 생각났고...

혼란 그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무언가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솔직히 좀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란은 인간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것이 어떤 혼란인지, 얼마만큼의 혼란인지, 어디에서 비롯된 혼란인지, 언제까지의 혼란인지 등등에 대한 섬세한 논의 없이 '혼란'이라는 말 자체로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가며 공세를 펴는 것은 기실 별로 내용이 없는 말인 셈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공허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자유'를 단체 이름에 붙인 사람들이 혼란 그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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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2. 14. 13:30



경향신문 - [사유와 성찰]개인 삶을 희생하는 진보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한 민주노동당은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관, 중앙당 및 지역조직 상근자 등, 이른바 진보정치를 직업으로 삼게 된 사람들에게 평균 127만3000여원의 월급을 줬다. 국가 예산으로 지급된 국회의원과 보좌관 급여는 당이 환수했다. 이 모든 게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받는다”는 논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후 약간의 증액은 있었지만 그 원칙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지켜지고 있다.



(1) 소위 '좌파'나 '진보'로 분류되는 안에서 개인의 삶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윤리적' 요청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인 자원(무엇보다 돈 -_-)이 부족한 운동의 현실 때문일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소 운동들, 지역운동들이 그렇다. 그걸 어디까지 비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개선이 불가능한 현실을 놓고서.


(2) 그나저나 이 칼럼을 읽으면서 황당했던 부분은 따로 있다.
나는 국회의원이 '노동자 평균 임금'만 받고 나머지는 당에 환수하는 것은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노동자 평균 임금'을 받는 것이 꼭 '혁명정부'/'민주주의'의 대립쌍 속에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일까?

이 칼럼에서는 '보통 사람' 운운하며 이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노동자 평균 임금'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가장 보통 사람의 수입'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국회의원이 노동자 평균 임금을 받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 틀 속에 존재하는 정당이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문제제기해야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노동자 평균 임금'이 왜 저따위로 저임금이냐는 것 아닐까? -_-

그리고 '노동자 평균 임금'을 받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금 사회 현실에서 현실적으로 생활비가 되지 못하므로,
노동운동이나 빈민운동이 책정하는 최저생계비 기준(정부 기준보다 훨씬 높고 현실적인)에 맞춰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쓰는 게 맞는 거 아닐까????


(3) 그나저나 진짜 노동자 평균 임금은 왜 저따위로 저임금인 걸까 -_-;;
이명박 때문? 이라기보다는 책임을 묻자면 이승만, 박정희 때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한국 사회, 기업들, 노동운동, 모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최저임금을 더 삭감하자고 설레발 친 이명박 정부에서의 일이 더 생각나는 칼럼이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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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1. 2. 23:33


이제 내일이 11월 3일, 학생의 날입니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정식 명칭이 바뀌었지만 사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라는 명칭에는 좀 문제가 있지요...)


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이명박 정부 이후 중고등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연합뉴스 기사 "중고생 절반 주당 한차례 이상 체벌경험"
뉴시스 기사 청소년인권단체 "학생인권 악화되고 있다"
1318virus 기사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 "악화돼"...
경향신문기사 등교 당겨지고 하교 늦어지고… 중고생 ‘수면 부족’


기사 내용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곧 교육희망 등에도 기사가 날겁니다 @_@



학생의 날, 이라면서 기념행사도 하고 뭐도 하고 하는데 정작 학생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는 게 학생의 날의 현실입니다.


본래 학생의 날은, 1929년 광주의 중고등학생들이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이루어지던 폭력적이고,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에 맞서면서 투쟁하고 저항했던 사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두발복장규제가 있었고, 체벌이 심했고, 일본학생 조선학생 사이의 차별도 심했고, 품행평가제니 해서 학생들의 생활을 점수화해서 관리했으며, 성적 경쟁도 치열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 운영에 전혀 의견을 반영할 수 없었고(그래서 광주 학생들의 요구 중에는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보장이 있습니다.),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 본위의 교육과정과 교육내용, 사상의 자유를 검열하고 통제하는 교육에 학생들은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 지금의 학교들이랑 그리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리는 건 왜일까요? ㅠㅠ



학생의 날에 상장을 받아야 할 학생들은, 성적이 우수하거나 뭐 학교에서 정한 선행을 했거나 모범생인 학생들이 아니라... 바로 지난 2008년 5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학생들, 학교에서의 부당한 것들에 항의하며 1인시위나 집단시위를 했던 학생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학생인권실태조사 발표에 이어서 교육부에 학생인권 보장 요구 민원을 제출하는 동시에,
학생인권에 대한 요구, 교육 개혁에 대한 요구, 해직교사 복직,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요구, 4대강 죽이기 중단, 용산참사 해결, 언론악법폐기 등의 사회적 발언을 담은 요구를 담은 80주년 학생의 날 8대 요구 선언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80주년이라 8대 요구로 했다는 후문이...)

아래는 선언문 전문입니다.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요구, 더 나은 교육을 향한 열망, 그리고 사회 참여적인 뜨거운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발표된 청소년시국선언에 이어 또 다른 시국선언이라고 할 만합니다.




80주년 학생의 날 선언문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저항의 불씨가 전국으로 번져갔던 그 사건, 우리가 ‘학생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해온 그 사건 이후 80년이 흘렀다. 우리가 오늘 이 날을 기념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인이기 때문도, 그것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도 아니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선 학생들의 용기와 저항정신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월 3일은 그 이후로도 제국주의나 독재 반대, 교육민주화 등을 외치며 학생들이 행동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왔다. 

  학생들의 저항은 계속된다. 원래부터도 쌀쌀했던 한국 사회는, 이명박 정부 이후로 완전히 꽝꽝 얼어붙어가고 있다. 원래부터도 암울했던 학생인권과 교육의 현실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우리들은 학생의날을 기념한다면서 학생들에게 잔소리하는 훈화말씀 같은 형식적인 기념이 아닌 우리들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학생의날 의미를 진정으로 기념하고자 80주년학생의날선언  발표를 시작으로 뜨겁게 저항하고자 한다. 학생의 날이 담고 있는 저항의 정신은 민주화와 인권을 요구하며 학교 안팎에서 행동했던 그 모든 학생들, 그리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학생, 청소년들의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고 미래의 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억압과 차별, 불의를 참아가며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이 선언문을 통해 우리의 인권을 차별 없이 존중받는 것, 우리에 의한 그리고 우리를 위한 학교와 교육을 만드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더욱 더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자 이 사회의 의무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우리의 주권과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폭주를 그링� 것을 요구하며 이 선언을 발표한다.


1. 인권의 무덤에서 어떤 좋은 교육을 하실건가요? 학생인권보장! 

 인권은 타인의 권리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경우에도 무시되어서 안된다. 그런데 나이가 적다고, 또는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인권이 무시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교칙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머리칼은 잘리고, 교복과 온갖 복장규제들이 강제되며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매일같이 학교 안에서 자행된다. 그밖에도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강제학습을 비롯하여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들은 말할 수 없이 많다.
 10년 넘게 이런 학생인권침해에 대한 고발과 문제제기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은 인권은 아웃오브안중인 듯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라면서 ‘상벌점제’와 전자기기 금지 조례 등 한층 더 강력한 통제위주의 제도들을 내놓았고, ‘학교자율화’라는 명목 하에 학생들의 자유를 짓밟을 학교의 횡포를 허용해버렸다. 이러한 정부의 행동은 우리를, 청소년을 과연 하나의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본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매우 몰지각한 태도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두발복장규제를 폐지하라. 0교시와 강제야자를 없애서 학생의 수면권과 자유를 보장하라. 체벌과 상벌점제 등 우리에게 복종과 침묵만을 강요하는 폭력과 통제를 포기하라. 학생인권을 중심에 둔 전면적 교칙 개정을 요구한다. 80년을 맞이하는 학생의 날에 우리의 인권을 다시 한 번 선언한다.

1. 학생을 죽이는 막장교육도 교육인가요? 무한경쟁교육 중단!
오늘날 교육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선택지는 오직 두 가지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거나 혹은 낙오자가 되거나. 우리는 친구와 경쟁에 미쳐 서로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 싶다. 우리는 서로 다른 우리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우리의 서로 다른 삶과 꿈을 무시하고 성적과 등수로만 값을 매기는 교육을 거부한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는 획일적인 경쟁은 교육이 아닌 고문이다.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현 정부의 정책들은 진정 ‘막장’스럽다. 학교와 학생의 줄 세우기를 더욱 부추기는 일제고사 강행을 그만둬라. 돈 없으면 못 다니는 입시 자사고 만들기를 중단하고 입시를 위한 학교가 된 특목고에 제동을 걸어라. 대학입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경쟁에 기름을 붓는 3불정책 폐지는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거부한다. 차별과 경쟁으로만 이루어진 교육은 더 이상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님을 선언한다. 우리들은 경쟁이 아닌 협동과 평등,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을 원한다. 시험을 위한 세뇌와 무한경쟁이 아닌 학문과 지혜, 삶에 도움이 될 지식을 익힐 수 있는 우리 스스로를 위한 교육을 원한다.


1. 학생들이 아메바로 보이나요? 표현의자유, 정치적권리보장!

 표현의 자유와 참여할 권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중요한 권리이다. 학교 안에서 전단지, 포스터 등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집회 시위 등 학생의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는 학교의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학교가 노예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아닌 제대로 된 교육의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는 교문 앞에서 멈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학생회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이 학교 운영 등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학교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학생들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정치활동은 보장되어야 하고, 학생들이 정책 결정에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정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인 교육감도 청소년들 손으로 뽑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학생들 또한 이 시대,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참여의 권리, 정치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학생들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들도, 민주주의도 박탈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버리려는 시도에 청소년들은 강력히 반대한다!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1. 잘려야 할 사람은 양심교사가 아닐 텐데요? 해직교사복직!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갈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을 이유로, 사학 내부의 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교사들이 있다. 불의를 보면 참으라는 것이 교육인가? 또한 민주주의와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교사들도 있다.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 교육인가?
 우리는 이러한 해직교사들의 상황이 교육 현실을 더욱 막장으로 몰아가고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더 많이 생각하는 교사가 잘려나가는 현실은 학생들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나 학교측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교사를 잘라버리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학교는 정부의 꼭두각시가 아닌 다양한 토론과 소통의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부당한 사유로 해직당한 교사들을 즉각 복직시킬 것을 요구한다.


1.교육도 땅파서 할까요? 교육예산 확충! 교육환경개선! 

 교육은 헌법에서조차 보장한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이 사회/정부가 책임져야할 의무이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한 달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이라는 기본적인 권리가 진정 모든 사람들의 권리로 보장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학교와 교육은 무상교육은커녕 콩나물교실에 화장실에 휴지조차 없는 너무나 암울한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는 입으로는 서민을 위한 교육정책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알맹이가 없다. 반값 등록금 공약은 어디로 가고 대출을 통한 빚쟁이 양산을 살인등록금 대책이랍시고 내놓는가. 가뜩이나 부족한 교육예산은 1조4천억 원이 삭감되었고, 여러 지역에서는 무상급식 도입이 무산되거나 기존에 하던 무상급식마저 줄여나가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콩나물교실을 해소하고 소통하는 교육을 위해 부족한 교사수를 늘리기는커녕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친 대학등록금도 모자라 학비가 천만 원에 이르는 귀족 자사고까지 등장했다.
 우리는 요구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육예산을 늘려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이 사회의 책임이고 의무다.


1. 돈 뿌리며 자연파괴는 무슨 시추에이션? 4대강 삽질 중단!

 한반도 대운하에서 나온 돌연변이인 ‘4대강 살리기’는 사실은 4대강 죽이기이고 거짓말로 가득 찬 정책이라는 것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4대강 사업이 하는 일은 몇 년짜리 비정규직들을 양산하면서, 땅을 파내고 강물을 가두어 썩게 만들어 생태계를 죽이는 일밖에는 없다. 그런데도 부족한 교육, 복지예산을 줄여가면서까지 강행되고 있는 4대강 죽이기 사업에 반대한다.
 자연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다. 또한 우리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부동산, 건설 거품 경제 살리기나 임시방편조차 되지 못하는 비정규직대량양산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먹고 살 걱정을 덜 해도 될 질 좋은 경제 살리기와 복지 확충이다. 4대강죽이기사업 예산은 기업이나 ‘강부자’들이 아닌 보통의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써져야 한다. 국민들이 낸 세금들을 낭비해가며 우리의 삶의 터전을 삽질하는 4대강 사업을 즉각 폐기하라.


1. 대한민국에서 언론은 가진 사람들의 딸랑인가요? 언론악법 폐기!

 언론은 최소한의 공정성을 가지고 다양한 정보와 진실을 밝히고 전달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돈과 권력이 있냐 없냐와 무관하게 다양한 의견이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언론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언론보도가 판을 치고 때로는 진실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의견의 다양성은 보장되지 못하고 재벌 언론들이 여론을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나라당과 이명박정부가 날치기로 통과시킨 언론악법은, 돈 많은 사람들과 기업 등이 언론에 개입하는 것을 규제하기는커녕 부채질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발언을 더 규제하며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법률이다. 이러한 언론악법에 대한 많은 비판과 반대가 있었음에도 한나라당은 이러한 비판에 귀를 닫은 채, 국회에서 정해진 절차까지 어겨가며 강제로 통과시켰다. 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의 절차적 형식까지 무시한 폭거였다고 할 수 있다. 편법으로나 적법으로나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 될 언론악법을 당장 폐기하라. 청소년을 비롯하여 사회적 약자들이 더 쉽게 언론에 참여하고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

 
1. 힘없는 서민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잠이 옵니까? 용산참사해결!
 올해 1월, 용산에서 사람이 죽었다. 철거민들의 생존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무리하게 특공대를 투입해서 진압하다 시민5명과 경찰1명이 안타깝게 사망한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이 억울한 죽음에 누구하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책임지는 사람 한 명 없이 벌써 1년이 다되어 가고 있다. 정부는 진실을 밝히고 참사해결을 위하기보다는 앵무새처럼 준법만을 외치면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지금 용산참사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인간의 생명과 인권보다 막개발 이익과 시민위에 군림한 공권력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부가 생명과 인권을 짓밟으면서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막개발 정책은 집값, 땅값을 올리고 청소년을 비롯하여 이 사회에 사는 돈 없는 사람들의 주거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이명박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버리고 용산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해결되도록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기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정하게 나설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우리의 요구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이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정당하고도 당연한 요구이다. 우리의 요구들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차별과 경쟁과 폭력에 쩔은 이 사회가 바뀔 때까지, 우리는 뜨겁게 저항할 것이다.









학생의날 벌써 80년, 하지만 80년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삶은 안습ㅠㅠ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무한경쟁, 비교, 학벌, 4대강삽질, 용산참사, 언론악법....
학생들을 더 억압하고, 최소한의 민주주의조차 무너지는 암울한 학교!사회!

암울한 학교, 사회를 바꾸기 위한 80주년학생의날 선언과 퍼포먼스에 함께해주세요!
학생을 위한 학교/교육을 만들고, 시민을 위한 사회, 정부를 만들기 위해
번 학생의날은 지긋지긋한 잔소리훈화말씀 대신 후끈후끈 우리의 뜨거운 저항을!

  

1. 80주년학생의날선언에 함께해요!
▶ 온라인으로 참여! [cafe.daum.net/go1103]

 2. 11월3일 학생의날 퍼포먼스
▶ 11월3일(화) / 오후7시 / 명동성당앞으로!

3. 11월4일 수원 학생의 날 집회
▶ 11월4일(수) / 오후7시 / 수원역 광장에서!





추신 : 참, 학생의 날을 맞이하면서 한층 더 추워진 날씨가 뭔가 서럽습니다 흑흑.
오늘 하교길에 학생의 날 선언 모으는 홍보를 뛰면서는, 동상 걸리는 줄 알았어요.
선언에 많이 참여해주세요 ㅠㅠ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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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질의 노예상" 'ㅂ'

    2009.11.03 19:0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0. 16. 11:08

[내 말 좀 들어봐] 경기도학생인권조례, 학생 의견을 듣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김상곤 교육감과 조례제정자문위원회에 드리는 제안

하우


김상곤 교육감과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경기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얼마 전 경기도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교육이란 이름으로, 교육의 가장 바탕이 되어야 할 인권이 무시당하고 있고, 대입이라는 이유로 ‘인권’이라는 말이 저 뒤로 밀려나버린 현실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인 저에게 나름 기대를 갖게 합니다. 조례가 학교의 교칙보다 상위법이니까 온갖 억지를 부리고 있는 교칙들도 수정이 될 수 있고 게다가 학생인권에 대한 선생님들의 인식도 조금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기대를 품고 지난 9월 25일 있었던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조례제정위원회를 소개할 때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들더군요. 위원 중에는 국가인권위에서 일하시는 분, 학교 교장선생님, 고등학교 교사, 인권활동가들까지 계셨지만, 정작 학생대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에 관련된 분들-선생님부터 인권활동가까지-이 모두 계셨지만 막상 직접적 당사자인 학생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최우선 반영되어야 하니까요.

위 사진:지난달 25일 열렸던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조례 추진 계획을 관심있게 듣고 있다. (사진 출처: 교육희망)


그래도 이왕 추진하는 거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끔 제대로 조례가 만들어졌음 좋겠어요. 그래서 몇 가지 의견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선 바라는 점은 인권조례를 제정하기에 앞서 좀 더 구체적인 실태조사가 있었으면 해요. 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조례를 만들어 주세요. 저희 학교를 예로 들어보면, 여학생들의 바지 착용이 가능하기는 한데 조건이 달려있어요. 다리에 꼭 가려야 할 상처나 흉터가 있어서 의사의 진단서를 끊어온 경우 선생님들이 상처나 흉터 정도를 보고 최종 판단해서 허가해 주도록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러다 되니 사실상 바지를 입고 싶어도 못 입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만약 정확한 조사 없이 조례를 제정한다면 이런 상황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거예요. 또한 조례에 담긴 조항들이 구체적이어야 우리가 실제로 학교에 개선 요구를 할 때나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개선 노력을 할 때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아까 말한 것처럼 학생들의 의견 반영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 학생들의 참여를 위한 방법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글을 올리거나, 학생참여단에 들어가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생인권실태조사 중간 집계 결과를 보면,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는 사실을 아는 학생이 많지 않았어요. ‘아예 모르거나 잘 모른다’는 학생이 ‘안다’는 학생에 비해 6배쯤 많은 걸로 확인된 거죠. 결국 대부분 학생이 조례 제정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조례제정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을 봐도, 경기도 학생들이 지난달 25일 추진대회 현장에 가서야 조례가 추진 중이라는 걸 겨우 알았다는 의견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서 가장 주체가 되어야 할 학생들이 오히려 객체가 될 수밖에 없어요. 학생인권조례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학생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각 학교를 통해서, 그리고 10대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홍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위 사진:경기도학생인권조례 홍보 포스터


그리고 ‘학생 참여단’의 영향력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다’ 차원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실현할 수 있게끔 학생참여단을 만들고 꾸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대표의 발언과 교장선생님의 발언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또 다른 의의가 아닐까 생각해요.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서 나누어준 책자를 보니, 일본 가와사끼 시(市)에서 제정했던 ‘아동인권조례안’이 부록으로 실려 있더라구요. 가와사끼 시(市) 조례안에는 일종의 실행기구인 ‘권리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조례안이 그저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런 권리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만들어진 뒤에는 충분한 지원도 필요하구요. 인권침해를 당한 학생이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도 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19살 때까지 머리와 옷은 물론 심지어 가방에서부터 신발, 양말, 속옷까지 남들이 정해준 대로 따르던 아이들보고 20살이 되면 땡! 하고 “자, 이제 너는 성인이니까 자유와 책임을 줄께.”라고 말한다고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번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끄덕끄덕 맞장구]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

하우 님, 글 잘 읽어보았어요. 저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으로 결합하고 있는 인권활동가에요.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점들을 요목조목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우 님의 말처럼 자문위원으로 결합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학생대표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저 역시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여건으로 그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답니다. 조례제정자문위원회가 아무리 역할을 잘 해낸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제 몫의 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예요. 저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학생참여기획단’이 곧 구성될 테니까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학생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쓸게요. 하우 님도 학생참여기획단에 꼭 함께하셔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나라에서, 지난 5년 사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 수가 4.25배나 증가한 나라에서, 체벌이나 강제야자, 부당징계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분노의 출구를 찾지 못한 학생들이 약자를 찾아 괴롭히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는 나라에서, 학생인권은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꿈입니다. 게다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인권과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교육청 차원에서 최초로 추진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는 각별한 주목을 받을 만합니다.

교육기본법도, 초중등교육법도 모두 학생의 인권이 교육과정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학생들이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권리가 의미 있으려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적절한 절차와 수단을 통해 권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현재의 법률은 구체적인 구제절차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교육청과 학교가 법의 정신을 거슬러 학생인권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려도 이를 막을 재간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구체적인 권리 내용과 권리회복절차를 담은 조례가 만들어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자문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어 김상곤 교육감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안을 만들기까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것이 자문위원회가 다짐한 약속인데...... 아직까지 그 약속에 걸맞은 발걸음이 이어지지 못했네요. 더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와 학생참여기획단의 본격적인 구성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스페인 오렌세 지방에 위치한 <벤포스타>라는 어린이공동체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시민법 조항을 추가해가면서 어려움을 이겨내 왔다고 합니다. 그 시민법 1조는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라는 조항이라고 해요. 자유의 공기를 흡입하고 권한을 부여받은 시민이라면, 권리를 존중받고 제대로 행사해볼 기회를 가진 시민이라면 성숙할 기회를 충분히 누린 결과로서 책임을 질 줄 알겠지요. 학생인권조례가 꿈꾸는 교육의 모습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안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경기도 의회 통과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도 학생들의 참여와 활발한 의견 개진은 꼭 필요합니다. 설령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제정 시도가 주저앉는다 해도, 조례 제정을 계기로 학생인권에 관한 관심과 대안 모색의 기운이 후끈 달아오를 수 있다면 결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른 지역에도 참고할 만한 선례를 남길 수 있을 테고 말이에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나가요.


덧붙이는 글
하우 님은 수원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74 호 [기사입력] 2009년 10월 14일 13:06:0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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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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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고 가사노동은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회.
여성단체들이 독재적인 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그들의 시국선언문 중 일부이다.


"무엇이 우리를 부엌에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까?"
"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과 직면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무거운 집안일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
우리는 순수한 여성들이고, 정치적 색을 띠지 않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압니다. 진정한 민주정치가 무엇인지를요."


청소년시국선언문 을 보는 내 기분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는가?
2차 수정 버전과 비교해본다면야 다른 단체들의 수정 의견을 받아들여서 상당부분 바뀌긴 했지만,
(2차 수정 버전에는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아직 정치적 색을 띠지도 못한 그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등의 표현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안에도 내가 여성에 빗대어서 말한 저 세 개의 표현은 엄존한다.


그리고 또,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구절이 더 있다.

"그저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이제 ‘가진 자’ 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합이나 상생이 아닌, 대립과 갈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 알게 되면 좋은 것 아닌가?;; ㅡㅡ;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어째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도 해명도 전혀 없다.




#

지금도 청소년시국선언 페이지에 들어가면 자동 재생되는 동영상의 첫 마디는 이렇다.
"현 청소년들의 순수한 염원이 현 이 시국선언을 꽃피우게 했습니다. 청소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는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란 행위는,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 활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뉘앙스는, 청소년시국선언을 적극적 정치활동으로 의미화하기보다는,
정치 활동이 아닌 윤리 활동으로 의미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행위는 정치색을 떠난 것이요, 사상을 떠난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윤리적 선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순수한 것이다.
(순수하다는 강조는, 순수와 비교되는 불순한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불순한 것은 무엇인가?)
오, 물론 정치는 윤리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정치는 윤리와 다르다. 밀가루와 라면이 분리될 수 없지만 다르듯이.
정치는 논쟁 가능하고 상대적이며 공공적이다.
윤리는 논쟁 불가능하고 절대적이며 사적이다.
(윤리적 사안이 논의되기 시작한다면, 그건 이미 원칙적으로는 정치의 영역이고 대상이다.
* 인권담론에는 윤리적인 성격이 있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는 인권들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실천은 정치적인 것이다.)

청소년시국선언 내용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분들은, 청소년시국선언에 대해서 비난을 보내는 우파들에게 반발할 것이다.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이며 스스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저 시국선언문의 내용과 뉘앙스에 100% 동의한다면, 그분들의 주장은 곧 한계에 부딪쳐 돌아설 것이다.

그분들은 청소년들이 '특정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학업에 매진하는 게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분들은 이 사회에서 '윤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설지언정, 이 사회의 '윤리'를 바꾸는 '정치'에 나서는 일은 반대할 것이다.

다음 문장의 모순어법을 이해하신다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고 교과서에서, 학교에서 배운대로 사는 존재이다!" (????????)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백색의 종이이다!" (???????????)
"청소년은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이지만 정치적 주체는 아니다!" (?????)


b
내가 청소년인권운동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또 작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확고하게 정리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항일독립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미군장갑차 사건이든 광우병쇠고기 문제든
무슨 사회적으로 커다란 건수에 대해서 참여해서 목소리를 열심히 내는 것만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회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실천은 평가절하되거나 다르게 받아들여질 뿐이다.

그것은 '나이가 20세 미만인 어느 국민들'의 민주주의일지언정
청소년의 민주주의는 아니다.





#

청소년시국선언임에도 '시국'의 내용으로 청소년들의 상황이 포함되지 않은 것 또한 서글픈 부분이다.
이는 이 선언 내용 작성을 주도한 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의 상황을 '시국'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명박 정부 이후의 '시국'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의 변화된 청소년 상황에 대해 썼으면 될 문제인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청소년들의 문제는 '시국'으로 포함될 수 없다는 내면화된 차별적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사소한 문제와 큼직한 문제, 사적 문제와 공적 문제의 구별-차별이랄까.

미림 씨가 쓴 시국선언 논의 게시판에 쓴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선거권이나 두발문제는 따로 다뤄져야한다. 이번 선언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것에 강력한 비판 메세지가 담겨야한다"
는 것이였고 만약 이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선언을 동참하신 단체나 개인분들이
선언하지 않으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처음 초안에는 들어가 있던 청소년 선거권 내용이 빠지는 것에 대해
한 청소년이 비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내용은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에 김용제님(시국선언문 작성에 참가한 청소년)이 단 덧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명박의 폭압정치는 느끼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부분의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으실거라고 봅니다.
반면에 청소년 선거권은 이치적으로도 한 쪽의 의견이 맞다고 확정할 수 없는 사안이며,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그 의견이 매우 분분한 사안입니다.



이 두 논리에 따르면 청소년들 관련 내용이 시국선언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1. 청소년들의 상황은 민주주의나 반민주주의에 해당되지 않는다.
2. 청소년들의 인권/권익 문제는 '대부분의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동의하는 문제가 아니라 의견이 분분한 사안이다.

... 참, 이 둘 다 서글픈 말이다.
대부분의 깨어있는 청소년들이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깨어있는'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겠고.




#

이 건에 대해, 덧글들과 글들 등에서 나타나는 몇 사람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것.


우선, 이 시국선언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몇 명의 청소년들의 생각일 수는 있어도 시국선언에 동참한 3000명의 생각은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 시국선언문을 올려놓고 서명을 받았다면 3000명이 여기에 동의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초안과는 확 달라진 글이 시국선언문 최종안이 된 마당에 말이지.
더군다나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청소년들이면서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게시판에서 적극 의견 개진을 했지만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경우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게시판도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홍보가 많이 된 후반부에 이르기 전에는,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들에 답하는 덧글을 단 사람들은 희망 아이디 아니면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그 의견이 시국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게시판에 올라왔지만 시국선언문에 반영되지 못한 의견들은, 3000명의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영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몇몇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영되지 못한 걸까?


아, 나는 이 시국선언문이 3000명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폄하할 생각은 없다. 여하간에 시국선언문이 현 상황에서 담고 있는 대체적인 정신과 방향성에 3000명이 동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문구 하나하나, 디테일한 표현 하나하나까지 포함해서 시국선언문 전체를 그냥 3000명의 생각이라고 포장하지 말았으면 할 뿐이다. 그냥 솔직하길 바랄 뿐이다.

중간에 시국선언문 내용이 전면 교체된 것은, 그냥 살만 붙인 것도 아니고 요구안도 다 바뀐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로 말한다면 절차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걸, 어떤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희망은 계속해서 시국선언문을 희망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참여로 썼다는 걸 강조하며 희망의 영향은 별로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희망이 처음 청소년시국선언을 제안하면서 올린 시국선언문 초안에 반영되어 있는 표현과 생각들, 그 코드들에 맞는 청소년들이 이 시국선언 운동에 모이는 게 자연스럽다는, 당연한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청소년들이 시국선언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주저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시국선언문 초안의 내용과 뉘앙스 때문이었다. 운동은 제안자의 코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 나는 희망이 시국선언의 내용이나 뉘앙스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은 대변자이거나 판을 까는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b

분명히 가장 좋은 모양새는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청소년 아니면 여하간 대략 이런 의견을 가진 중 누군가가 시국선언문 작성 공개 온라인 회의도 참가하고, 그 내부에서 수정안이 나오기 전부터 발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먼저 몇 가지 사정 설명을 하자면, 희망 사람이 아수나로 게시판에 청소년시국선언 제안을 한 시간은 6월 4일 목요일 밤 11시경이었다.
그리고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6월 5일부터 서울인권영화제에 참가하고 있었고, 6월 6일이나 7일에 했어야 할 정기회의도 인권영화제에 다 같이 가기로 해서 1번 쉬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때문에 논의가 늦어졌고,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개인이 단체의 결정 없이 참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인권영화제 가느라 + 희망이 제안하면서 올린 시국선언문 초안의 내용이 워낙 참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라서 적극적인 참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만 개인이 게시판을 통해서, 그리고 시국선언문 작성 회의에 참가하는 다른 청소년들 중 일부를 통해서 의견을 전달하는 일은 있었다.)

단체라는 게 보통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진 못한다.
앰네스티 같은 단체는 무려 런던까지 연락을 해서 의견이 오고가고 조율이 된 후에야 입장 발표를 한다지 -_-;
뭐 아수나로가 앰네스티처럼 의사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급할 때는 긴급 결정 시스템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6월 4일 밤 11시에 들어온 제안을 2~3일만에 처리하지 못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요일에 있던 아수나로 전체온라인회의에서 회의에서 물어봤을 때도, 내용상 좀 참가하기가 애매해서 지부별 논의도 필요하고,
내용이 대폭 수정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았고...

그러다가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겨우 회의를 하고 입장을 정리해서 글로 쓴 게 화요일(9일)이었다.

시간상 그냥 가만히 있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라도 의견을 내는 게 옳다는 판단에 의견서를 올리고/보냈다.
(희망에서는 이게 청소년 전체를 대표하는 시국선언도 아니고, 다른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하시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만약 청소년시국선언이란 이름으로 선언이 발표된다면 이게 청소년 아니면 최소한 민주주의나 이른바 '진보/개혁'적 청소년들 대부분을 대표하는 의견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받아들여질 거라는 건 자명했다.)

이처럼 시간적인 문제로만 이야기한다면, 닷새전에야 시국선언 운동 제안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안 할 수 없기에,
굳이 시간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고 싶진 않다.



그러나 여하간에 그렇게 올린 의견서에 대해서 그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덧글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글이 올라온 시점과, "이 수정의견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수정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청소년시국선언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라고 쓴 것에 대해서만 덧글로 논란이 있었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b

나는 청소년시국선언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고생하고 준비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저 현재 발표된 청소년시국선언문이 담고 있는 한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한계들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후에 발표되는 청소년'시국'선언은 내게 덜 안타까운 것이길 바란다.
애초에 '시국' 선언이란 것 자체가 가지는 한계를 무시하더라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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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성헌

    일전에 한고학연에서 몇 번 부딪힌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여전히 고등학생때의 꿈을 잊지 않으신 것 같고,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 다행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06.16 17:19 [ ADDR : EDIT/ DEL : REPLY ]
    • 딱히 고등학생 때의 꿈이라기보단 제꿈이죠 ^^
      정성헌 님도 책 사세요 ㅋㅋㅋㅋㅋㅋ

      2009.06.17 01:26 신고 [ ADDR : EDIT/ DEL ]
  2. 글은 본지 꽤 되었지만, 나름대로 이 글에 호응하는 답변 형식 (?) 의 글을 올립니다. 공현 님의 비판을 약간 참고했습니다. 트랙백도 보냅니다.

    2009.07.06 22:34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6. 11. 10:17

6.10 섞이지 못한 구호와 민주주의

"수권정당을 만들어 달라"고 돌아온 대답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2009년06월11일 1시34분

장면 1. 10일 오후 5시 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노란색 손수건을 든 쌍용차 노동자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방금 공장을 나온 듯한 작업복 차림. 서울광장에 선 노동자들의 목소리에서는 설레임마저 느껴진다. 핸드마이크를 든 한 여성이 “정리해고 반대한다”를 외치자 노동자들은 한 글자 씩 쪼개어 팔박자 구호를 외친다. 정.리.해.고.반.대.한.다. 서울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장면2. 같은 시각 서울광장 중앙에는 천막이 쭉 쳐있다. 햇볕이 닿지 않는 천막 아래에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앉아있다. 그들 뒤로는 “국민이 주인이다. 대통령은 사죄하라. 광장 없이 민주 없다”고 쓰인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경북에서 왔다는 민주당 관계자가 “반드시 전국정당이 되어서 경북에서도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외친다. 정범구 전 의원이 ‘광야에서’를 함께 부르자고 제안한다. 박영선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든다.
장면3. 집회가 시작되고 쌍용차 노동자들은 무대 앞 쪽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 왼쪽 스크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과 포옹을 하며 웃는 사진이 뜬다. 구호를 외칠 때 마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를 있는 힘껏 든다. 노란 손수건 무리가 섬처럼 하늘로 떠오른다.


87년에서 22년이 흐른 서울시청 앞 광장.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외침은 ‘민주회복’이라는 구호에 섞이지 못했다.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과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성명서 한 귀퉁이에 담겼지만 결론은 “2012년 민주개혁정부를 다시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직선제가 없었다면 이명박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정치인의 말은 “수권정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말로 돌아왔다.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민주주의 쟁취하자”고 외치자 무대로 오른 정치인은 “그러니 야당에 힘을 실어 달라”는 고백으로 답했다.
서울광장을 연 공은 밤새 천막을 쳤던 국회의원들에게 돌아갔다. 사회자의 “국회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라는 요구에 시민들은 순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영광을 국민들에게”라는 정치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들러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장에 사람들은 많은 데 광장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도 했다.
“왜 나오셨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는 한 선생님은 “저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그 선생님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이명박 대통령이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럼 대안은?”이라는 질문에 “계속 거리로 나오는 거죠”라며 웃었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시청 앞이 아니라 용산에 민주주의가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삶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광일 교수는 “비대칭적인 힘들이 평등해 지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여성과 장애인들이 서로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국민대회 1부가 끝나고 2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문화제가 시작하자 깃발 밑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술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화제를 마치고 “살인정권 물러나라”를 외치던 시민들은 전경들의 강제 해산에 다음 약속을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2009년 6월. 야당들의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소식은 들려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백지화 되었다는 소식은,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의 장례가 치러진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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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10. 13:48



이 수정 의견서는 청소년시국선언 2차 수정안이 나온 시점에서 써서 보낸 것입니다.

최종안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는데,
이 수정의견서가 일.부. 반영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언론이 과연 공정했나'라는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져서 언론이 공정했다는 이야기는 빠졌고,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려서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뭐 이런 표현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백색의 종이" 같은 표현이랑,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는 게 당연한데 지금이 매우 특수하고 막장스런 상황이라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어용, 하는 뉘앙스의 표현들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발표 바로 전날밤에 의견서 보내서 뭐하는 짓이냐고 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그럼 시국선언 바로 6일 전에 제대로 나온 선언안도 없이 제안하는 건 뭔가 하는 질문부터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단체라는 게 대개 그렇게까지 긴급하게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2009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대한 수정 의견서


0/ 먼저 우리는 청소년들의 적극적 정치․사회 활동으로서의 청소년시국선언 운동의 의의를 긍정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애통하고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있어선 안 될 일들에 비추어 볼 때, 시국선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게시되어 있는 청소년시국선언서의 내용이 반드시 고쳐져야 할 점들과 아쉬운 점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국선언은 이 ‘시국’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커다란 방향성, 맥락, 유효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현재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후 이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 또한 담고 있는 것이며, 이후 이 ‘시국’을 극복하고 변화시켜나가는 사람들의 실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의 내용이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비정치성에 대한 관념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관념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아직 정치적 색을 띠지도 못한 그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등의 표현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스스로의 비정치성, 또는 정치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면, 이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해왔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 의지를 표현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정치․사회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를 보인다면, 이는 오히려 반민주, 반인권적인 생각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은 청소년들의 정치성을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나와 있듯이, “청소년들은 이 사회나 민주주의와 유리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덧붙여서,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인권이든 권위주의든 복지국가든 그것은 분명히 이념이며 정치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비정치성으로 포장한다면 이는 오히려 왜곡이 될 것이며 앞으로의 문제 해결과 사회․정치의 발전을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교육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앞서 1번항에서 언급한, 청소년들의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과 직면하고 있기에 무거운 학업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우리를 학교에서 뛰쳐나와 이 길에서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까?” “그저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지식의 요람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에 따라”와 같은 표현들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어야 하며 공부(학업)를 하고 있는 게 정상적이라는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교과서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 훌륭한 텍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과서가 성전(bible)이라도 되는 듯이 청소년시국선언문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시정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같은 표현에서는 빈곤 청소년이나 한부모 또는 무부모 청소년에 대한 고려가 없음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입시경쟁과 폭력이 판치는 학교에서 뛰쳐나올 수 있으며, 굳이 지금처럼 절차적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무거운 학업의 짐’(특히 입시경쟁, 취업경쟁 때문에 강요받는 학업)을 잠시가 아니라 영영 내려놓고 집어치울 수도 있습니다. 굳이 정부가 7, 80년대 권위주의 독재정부로 회귀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은 정치․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도 있고 거리로 나올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가르친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더 많은 권리와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과 수사적 표현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발상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재 청소년시국선언문의 이러한 표현들이 청소년들의 활동을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일상적인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규제하는 것을 지지하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보이는 이명박 정부 이전의 사회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합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민주주의’ 가 무너졌음을 느끼고” “한때 자유의 공간으로 인식되던 인터넷 세상은, 이제 잡혀갈까 무서워 쓰고 싶은 글도 못 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던 언론이, 우리의 소리를 대변해주던 언론이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명목 아래 서서히 장악당하고 있습니다.” 등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인민(people)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지배,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일치, 주권재민 등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온전한 이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대로 작동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권리침해신고(블라인드), 인터넷 실명제 등으로 인하여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축소되던 것은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지도 않았고, 우리의 소리를 대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면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언론이 개혁되고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거라는 잘못된 진단을 낳을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많은 인권을 위해서는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을 넘어선 활동과 실천, 대안들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청소년시국선언문 첫 번째 문단에 대해서도 우려를 느낍니다. 과연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철거민들의 죽음, 한 화물노동자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애도하고, 그 과정에 있었던 부당하고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것들을 마땅히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다른 죽음들과는 다른 특별한 죽음이며, 마치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죽음인 것처럼 표현되는 것에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은, 대통령이든 철거민이든 노동자든 청소년이든 모두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죽음을 애도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기에 했던 정치가 과연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정치였는지에 대한 고려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관지을 때 그 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엇이 ‘시국’이고 무엇은 ‘시국’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시국선언문이라면 당연히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 언론의 자유 탄압,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시국’이면서, 강화되는 입시경쟁 속에서 늘어만 가는 청소년들의 죽음, 일제고사나 자사고를 비롯한 지역간 학교간 학생간 경쟁 강화, 그린마일리지나 강제야자 등 학생인권 문제, 청소년노동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최저임금 삭감,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는 청소년들의 증가 등등 청소년들의 문제는 ‘시국’이 되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이라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겪는 ‘시국’의 문제들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의 현실, 청소년들의 ‘시국’을 반영하지 못한 선언이 과연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으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대표적으로는 학생인권과 교육의 문제를 비롯하여,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요구사항으로 청소년시국선언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6/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청소년인권과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같은 의견은 어쩌면 숫자상으로는 소수의 의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시국선언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다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 수정의견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수정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청소년시국선언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청소년모임,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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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나는꿈2009. 6. 9. 12:50


길 그 끝에 서서
글 박현욱
곡 지민주
편곡 마구리밴드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걸어온 거야
언제나 길의 끝에 서있던 사람들이
우리가 온 길을 만들어 온 것처럼

눈 앞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의 시간이 온 거야
먼저 간 사람들의 빛을 따라 온 것처럼
이제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될 차례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 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 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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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한국의 정치 상황,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에서 기본적인 가치들의 상황이
1980년대 수준으로 후퇴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2009년이며, 사회상황도 다르고, 우리의 대응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 연달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6월 10일에 모이자고 외치는 걸 보면
사람들은 2009년의 문제를 1980년대식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새로운 길을 만들기보다는 원래 있던 길들을 다시 찾아서 가려는 것 같지만,
그건 결국은 뒤로 돌아가는 일이다.

난 차라리 길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을 하겠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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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을 보실 지 모르겠으나 글 제목에 '지민경'님 아니라 '지민주'입니다.

    2015.03.30 22:21 [ ADDR : EDIT/ DEL : REPLY ]
  2. 노래를 잘 들었어요.^0^ 언제 들어도 좋네요

    2015.03.30 22:22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6. 5. 14:25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김진숙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출처] http://bsnodong.tistory.com/30






추신 : 이제보니까 프레시안에도 이 글이 올라갔네요.

덧글들은 좀 압박스러운 게 많습니다.

제가 살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김진숙 씨의 글이 여러 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가 산 시대(2000년대 이후, 특히 운동을 시작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2004년 이후)에서 노무현 씨는 '변절'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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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4. 03:24

종로경찰서에서 출석요구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유래국 형사인가 그런 이름이었는데
지능범죄수사팀인가.

유엔사회권위원회에 낼 NGO 보고서 만드는 일 때문에, 화요일에 회의하고 있는 도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차원에서 회의에 들어가고 있는데-)

2월 25일에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뭐 한 거 때문에 조사 받으러 오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2월 25일이면 거의 100일 전일 텐데 -_-;; 기억이 바로 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회의도 빨리 해야 하고 해서 그냥 알겠다고 하고 수요일 낮에 가겠다고 했는데


회의 끝나고 곰곰 생각해보니까
그날 이명박 취임 1년이라고 여러 단체들이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 했잖아요?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 No도 같이 했었고.
그래서 그거를 말하는 거 같았는데

생각해보니까 저는 거기를 안 갔더라구요 -_-;;
그때 다른 일을 맡아서. 그 기자회견 자리를 안 갔었는데.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가 뭔가 가지도 않았던 자리인데 조사 받으러 오라는 것도 신경질 나고 해서리

오늘 전화해서 약속 깬 건 죄송한데,
생각해보니까 갈 이유가 없을 거 같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안 가겠다고,
정 불러야 하면 소환장을 보내든 사유서를 보내든 체포를 하든 하시라고 뭐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담당자인 유모 형사가 전화했을 때 자리가 없어서 다른 형사한테 전해달라고 말했는데
전달을 못 받았는지 4시 5분에 유모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구요
왜 출석 안 했냐고.
그래서 다른 형사한테 말 전해달라고 했는데 전달 못 받으신 것 같다고
나갈 이유가 없는 거 같아서 안 나가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말투가 싹 바뀌면서(그전까지는 경어이다가 갑자기 반말로 ㅋㅋ)
너 그럼 출석요구 불응이다, 출석요구 3차까지 하고서 체포하러 갈 거라고, 내 앞에 수갑차고 끌려와서 울지 마라~?
대충 그러더라구요.
수갑 차고 자기 앞에서 울지 말란 소리는 2번인가 하던데요.

열이 확~ 올라왔는데 지하철 안에서 통화 중이라서 언성을 높이진 않았구요.

정 필요하시면 다시 부르던가 끌고 가던가 하라고 하고,
존댓말 쓰시고,
경찰이 그렇게 저속한 말을 하는 건 불쾌하다고 말하고
끊었습니다.


저렇게 갑자기 태도를 바꿀 줄 알았으면 녹음 기능이라도 켜놓을 걸 그랬단 생각을 했지요. ^^++++++


경찰들이 요즘 여러 사람들 계속 줄줄이 조사한다고 부르고 출석시키고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 친구 하나도 최근에 집시법 위반이라면서 출석요구해서 갔더니, 자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인데 채증한 사진 잘못 보고서 부른 거여서 그냥 시간만 낭비하고 왔었지요.




퍼포먼스든 기자회견이든 집회든 언론이든 영화제든, 말할 기회가 짓밟히고 있는 사회.
가지도 않은 사람한테 출석요구를 하는 경찰.
안 가겠다고 하니까 곧장 반말로 수갑 차고 울지 말라고 협박하는 경찰.


이것 참, 혈압이 올라서 말이죠.
정말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by PD수첩)이네요.
(PD수첩이 적절하게 잘 쳐준 것 같습니다.)

무조건 잡아가고 보고
무조건 부르고 보고
무조건 불허하고 보고
그런 게 요즘 집회 관련해서 경찰이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추신.
혹시 제가 잡혀가거들랑 면회는 안 오셔도 되어요 @_@
만화책이랑 소설책만 좀 많이 넣어주시길. (???)

하지만 잡아가더라도 어쩌죠.
저는 그때 그자리에 정말 없었기 때문에 증거 사진 같은 게 있을 수도 없어서.
그리고 그냥 기자회견 좀 하겠다는데 그걸 집시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요.
그냥 세금낭비 삽질일 듯.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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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곤양이

    ㅋㅋ난 그때 갔었는데..나한테는 안날라오네.ㅋ

    2009.06.04 12:48 [ ADDR : EDIT/ DEL : REPLY ]
  2. 난다

    팍팍 꽂히는데? 아우 갑자기 또 열오르네-_- 만약 잡혀가면 비올이랑 활동가들이랑 같이 경찰 놀려먹기 놀이를 할게. (?)

    2009.06.04 12:57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게 열 낼 건 없어. 그냥 닥치면 그때 가서 싸우면 될 일이지-

      2009.06.05 01:31 신고 [ ADDR : EDIT/ DEL ]
  3. 여울바람

    구린 경찰이군요.

    2009.06.04 13:08 [ ADDR : EDIT/ DEL : REPLY ]
  4. 응?

    http://gall.dcinside.com/list.php?id=koreauniversity

    여기에 공현님이 들었다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사람이 있네요. 이게 사실이라면 고대 다니는 고교 동창이 있으신 듯?

    2009.06.04 16:15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가보네요. 아니면 제 지인인데 이 블로그에서 보고 쓴 걸 수도 있고.

      2009.06.05 01:30 신고 [ ADDR : EDIT/ DEL ]
  5. 리잔느

    헐. 이군. 아 정말 대한민국에서 로그아웃 하고 싶어짐.

    2009.06.07 23:06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5. 28. 20:45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 글을 안 쓰려고 했다. 어차피 넘쳐나는 게 그 이야기들이라서, 내가 굳이 말을 더 보태야 하나 싶었던 거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 마디 정도는 더 해야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노무현 씨 생전의 정책이나 태도들이 어떠했나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여기저기 들어가서 뒤적거려보면 많이 보이니까, 굳이 내가 첨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위들이 내재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텐(YTN아님;)뉴스의 전유경 아나운서께서
"
야구장에서 치어리더가 없어졌다, 왜 방송국에서 예능을 안 하느냐, 왜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가 무채색이냐고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옆에 계시다면… 그냥 싸다구 한대를 날려주시던지 입에 재갈을 물려주시기 바란다"라고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거기다가 그걸 놓고 "개념있다"라거나 "속시원하다"라고 말하는 '대세'를 접하고 특히 심각성을 느꼈다;; -_-;
관련 경향신문 기사

(아, 근데 치어리더는 원래 좀 없어졌으면 하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애도/추모하자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왜 이렇게 전국적으로, 장기간 호들갑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수준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온갖 문화공연들이 다 취소되고 연기되고 있고, 대학교 축제들도 연기되고 있으며, 퀴어퍼레이드도 연기되었다.
그걸 연기하거나 취소한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타당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일요일에 예능 프로그램 하나 방송했다가 몰매를 맞은 방송사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비난하고 싶은 건 "그런 걸 하면 안 된다", "전 대통령이 죽었는데 그런 걸 하는 건 무개념하다"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이 '대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영웅주의적 정치 지형(정확히는 엘리트-대의제)의 폐해로 보인다.

엘리트주의-영웅주의에서 비롯되는 감정-행위를 '인간에 대한 예의'로 포장하지 마시라, 제발.
나는 지금의 이 추모 분위기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 두렵다. '국민주의'가 두렵다. 폭력성이 두렵다.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민중의 왕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민중의 왕은 당연히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왕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중의 왕이건, 귀족의 왕이건, 독재의 왕이건, 왕은 죽어야 한다.
귀족들의 왕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더라도, 종국에는 민중의 왕조차도 사라져야 하는 게 민주주의다.
홍세화 씨의 표현을 빌린다면, 왕을 단두대에 세우고 처형한 후에야 이루어지는 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오히려 노무현은 죽음으로써 민중의 왕으로 등극한 것 같다. 이건 뭐..)





노무현 씨도 생전에 대통령이란 한낱 직책에 지나지 않으며 대통령의 권력, 중요성, 위상을 줄이고 낮춰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씨를 민중의 왕이니, 국부니, 영웅이니, 영원한 대통령이니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노무현 씨의 정치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비판에 대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덕이 있고 훌륭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추앙받는 것이라고 반론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훌륭하고 덕이 있는 명사 정도였다면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축제나 공연(이나 투쟁)을 죄다 연기하고, 전국민이 일주일 동안 추모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그런 거에 토 다는 놈은 "무개념"하고 "싸다구를 날리거나 입에 재갈을 물릴" 놈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지금의 현상들은, 특정한 소수의 인물들이 강조되고 상징이 되는 엘리트적 대의제의 폐해라는 혐의를 피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진정한 의미에서 민중 또는 인민이 주인이 되며 평등한 민주주의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훌륭하고 인망있는 인물의 죽음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겠지만, 이런 식의 '국민이라면 당연히 슬퍼해야지' 같은 류의 반응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거기다가 노무현이 그토록 부각되는 것 자체도 '인물'로 '정치'를 표상하고 대신하는 엘리트 대의제이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민주주의 같지 않은 민주주의(대의제 엘리트정치)의 정치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할 뿐이다.
(사실 "킹메이커"니 뭐니 하는 말도 그렇다.)



무직인꿈틀이가 쓴 글에서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
단지, '망자에 대한 예의'에 대해선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 전직 대통령 외에도 노동자, 철거민, 청소년도 같이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꿈꾸던 '사람사는 세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직 최고지도자도, 일개 시민도 같이 추모받을 수 있다면 그의 '이상'에 좀 더 가까워진 사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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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c

    민중의 왕이라는 표현의 왕이 말씀하신 그런 왕은 아닐텐데요;;

    2009.05.28 22:19 [ ADDR : EDIT/ DEL : REPLY ]
    • 하지만 상징적으로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서, 노무현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냐 하는 건 드러나는 법이지요.
      "민중의 벗"이라고 했으면 또 다르겠습니다만.

      2009.05.29 02:08 신고 [ ADDR : EDIT/ DEL ]
  3. 거참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자나요. 조금 시간을 되돌리면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때처럼 국민들이 반응하셨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네요.

    영웅설이라고요? 여보세요 부동산 한탕주의에 물들인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바로 이명박입니다. 진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없다면 이렇게 거리로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부 의혹설도 있고 살아생전 좋은 모습이 장례기간에 쏟아져 나오는게 영웅주의로 보이십니까?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대통령 당선되었을때, 그 당선까지의 과정이 보기좋게 언론에서 뿌려지면 이것또한 영웅주의입니까?

    사람들은 생각하는대로 움직입니다. 그것이 글쓴님이 말한 민주주의이구요 물론 글쓴님처럼 왜이렇게 나라가 호들갑을 떠냐 라고 말할수 있는것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여서 그런겁니다.

    애도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그걸 호들갑이라고 표현하시다니요. 한나라의 지도자가 돌아가셨습니다. 장기간 국민이 애도하는것을 호들갑이라고 표현하시다니.. 생각에 자유와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건 고인을 욕보이는 행위가 아니라 애도를 하시는 많은 분들을 욕보이는것 같습니다.

    덧붙여 일부 정치인이나 지식인의 정도가 지나친 발언은 그냥 무시하는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글쓴님의 생각도 소요사태가 발생할지 모를것 같다라는 생각을 가진 정부와 큰 시각차가 없는것 같구요.

    2009.05.28 23:41 [ ADDR : EDIT/ DEL : REPLY ]
    • 살아 생전에 좋았던 모습들이 부각되는 게 영웅주의라는 게 아닙니다 끙. -_-;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표현되느냐를 말하는 겁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민주주의는 아니죠. 뭐 이 이야기는 사회구조와 개인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저는, 그, "한나라의 지도자"라고 해서 굉장히 특별한 존재라고 하는 생각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냐고 하는 겁니다.
      네 애도하는 몇몇 분들을 욕보이려고 쓴 글 맞습니다.

      저는 소요사태는 차라리 일어나길 바라기도 합니다만, 제가 지적하는 '정치적 위험성'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문제이며 정부에서 보는 것과 관점은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 가까우니까요.

      2009.05.29 02:11 신고 [ ADDR : EDIT/ DEL ]
  4. nccn

    그럼 김수환 추기경도 왕이었나보죠?

    2009.05.29 00:18 [ ADDR : EDIT/ DEL : REPLY ]
    •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반응이 어땠는지 자세히 살피진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온 국민, 온 미디어가 모두 추모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 같지도 않고, 김수환 추기경을 '왕'적 존재로 형상화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꼼꼼하게 살피진 않았으니까요,

      2009.05.29 02:12 신고 [ ADDR : EDIT/ DEL ]
  5. 누구도 등떠밀려 추모하는 사람 없습니다. 자발적인거죠. 노 전 대통령께서 왕으로 떠받들으라고 한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씀하는 거죠. 하다못해 내일이 아니라고 해도 바로 옆집에서 초상났을 때 풍악을 울리며 잔치하는건 예의가 아닙니다. 이 국민장이 100일동안 하는것도 아니고 이번 주말이면 끝날텐데...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이야기 하기 쉬워질 겁니다.

    2009.05.29 00: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옆집의 비유는 슬퍼하고 계신분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바로 옆에 집에 계신분이 슬퍼할수 있고 내 식구중에 누군가가 슬퍼할 수 있는거니까요.
      이미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에서 정치적인 합의 자체가 안되고 있는게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원인이 지금의 정부와 야당에 있다는 대다수의 견해도 그렇고, 정부와 야당의 추모객들에 대한 반응 또한 그렇습니다.
      여기부터는 정말 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의 많은 추모객들은 아버지처럼 존경하던분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겁니다. 호상에는 누구나 웃으면서 조문할 수 있지만 악상에는 그럴 수 없는게 우리나라의 상가집 문화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2009.05.29 02:24 신고 [ ADDR : EDIT/ DEL ]
    • 양보, 이런 차원의 문제도 아니고, 예능 프로 안 한다고 짜증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걸 막는/욕하는 논리, 인식, 생각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의에 위험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네, 당연히 자발적인 겁니다. 그런데 자발적인 행동들도 결국 다 사회적인 겁니다.
      저는 왜 사람들의 자발성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지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겁니다. -_-

      그리고 옆집에서 초상났을 때 잔치하냐, 이런 문제로 곧장 비유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봉하마을이 전국민의 옆집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논리나 근거, 프레임도 다릅니다.

      2009.05.29 02:31 신고 [ ADDR : EDIT/ DEL ]
    • 리잔느

      공현의 논점은, 현재의 자유위임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적 정치, 대의제, 대통령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존재하며, 이러한 문제가 이 사건을 통해서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인 듯 싶네요.
      고 노 전 대통령 추모하지 말자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자발적인 행동 자체를 금지해야한다 뭐 이런 논점은 아니고, 그냥,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들 슬퍼해야하고, 애도해야하고, 좋은 면만 보아야 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왜 다들 그런 '당위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한 사람이 그러면 애도하는 것이지만 여러 사람이(심지어 고 노 전 대통령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그 언론들조차도!) 그렇게 행동하면 사회 현상이 됩니다. 공현은 사회학도이거든요 ^^

      2009.05.29 02:56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제 말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그 슬픔의 성격은 또 무엇인지를 반성적으로 묻고 있는 겁니다. 슬퍼하고 있다는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뒤에 뭘 해야 하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리잔느 / -_-; 엘리트 정치의 핵심 또는 대표적 제도가 '자유위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음.

      2009.05.29 17:01 신고 [ ADDR : EDIT/ DEL ]
    • 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건, 슬프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개개인의 슬픔이 모여서 그 슬픔이 서로 공유되고 있다고 설명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저또한 많이 슬픕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역사이래 가장 뜻있는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했던 분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까요.

      첫번째 질문에 대한 제 답은... 많은 사람이 슬퍼서 개인이 슬퍼지는게 아니고 개인의 슬픔이 모여서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게 되어버린거라고 봅니다.

      2009.05.29 17:53 신고 [ ADDR : EDIT/ DEL ]
  6. 리잔느

    무튼 공현이 현재의 자유위임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적 정치, 대의제, 대통령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겠음. 나도 자유위임과 기속위임 관련 논문이나 좀 더 찾아서 읽어봄... ㅠ ㅋ

    2009.05.29 02:43 [ ADDR : EDIT/ DEL : REPLY ]
  7. 리잔느

    사실 대통령제는 왕권을 본따서 만든 측면이 없잖아 있음.
    군주주권제에서 민주주권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발전한 내각제는 군주주권제와 양립 가능한 정부형태이고,
    신생국은 혈연적 순수성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군주주권제를 택하기 어려웠으며, 따라서 국민적 지지와 민주적 대표성을 가지는 한 사람을 그 국가의 대표로 내세우게 되었고, 그 최초의 신생국이 바로 미국이었고;
    이러한 대통령제의 역사적 유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으려나.

    그냥 내 생각에는 지금 이 현상의 원인은... 이것 저것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다쳐도 언론이 싹 태도 바꿔서 용비어천가식 기사 써대는 거 보면 조금 웃기기도 함. 노 정부 시절 언론법 개정할 때 난리쳤던 게 누군데.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긴 건 누구길래 말이지.

    헌법 제 66조를 본다던가 하면 대통령이 마치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질 수 있으나, 사실 그 조항의 유래를 따지고 들어가면 대통령은 삼권에 우선하는 권력을 가지는 게 아니라, 행정부에 속해 있는 게 맞음(아울러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논의도 전개될 수 있으나 이것에 대해서는 패스하고). 대통령이 국가원수이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라는 조항은 우리나라가 내각제일 때 추가된거니까, 이 당시 실세는 내각이었고 대통령은 상징이었을 뿐인데, 그게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유일무이한 권력을 가지는 1인 권력기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게 되었고, 지금도 학계에서는 이게 다수였나...? 다수였는지는 잘 기억은 안나지만.

    2009.05.29 02:48 [ ADDR : EDIT/ DEL : REPLY ]
    • 언론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하나, 라는 복잡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어쨌건 대통령이 한국에서 '왕'적인 위치라는 건 이미 대부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인 것 같고, 다만 다들 그걸 인정하고 들어가는 분위기라서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거지.

      2009.05.29 17:03 신고 [ ADDR : EDIT/ DEL ]
  8. 장담컨대

    네. 좋은 논리입니다.

    그런데,
    타인과 다른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느끼시는군요.
    다른 생각을 한다는 자각.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나는 깨어있어' 라는 '우월감'.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언젠가 이 글 쓰신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2009.05.29 03:32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나가다

      동감입니다. 어느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겨 봅니다.

      대형사건이 터졌을때 어설픈 양비론을 내세우며 쿨한척 하는 놈들이 꼭 있다.
      괜히 평소에 쓰지도 않던 페이쏘스의 과잉이니 이성적 사고를 들먹이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중립적' 인게 아니라 강단이 부족한 것을 숨기려는 구차한 변명이다.

      2009.05.29 12:08 [ ADDR : EDIT/ DEL ]
    • 제 행동의 동기에 타인과 다른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 존재의 유니크함을 확인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그러한 동기가 주된 동기이거나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나가다 / 이건 어설픈 양비론도 아니고, 쿨한 척도 아닙니다. 명확하게,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적 입장(뭐 아나키즘이라고 분류하든 사회주의라고 평가하든 상관 없습니다.)에 서서 현재 상황의 한 요소를 짚고 있는 것입니다.

      2009.05.29 17:06 신고 [ ADDR : EDIT/ DEL ]
  9. 2MB 를 제가 뽑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선거에서 다수가 그를 선택했으므로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장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노무현 대동령의 죽음을 애도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수가 그리 생각함으로서 국민장을 진행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국민장의 범위나 절차, 결정 같은게 법으로 정해진게 괜한게 아닐듯 합니다. 법이라는 것은 일단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원하지 않던 원하던 지키는게 원칙일테니까요.

    글의 취지는 이해를 하나 우리 민족의 죽음에 대한 정서를 생각 해 볼 때 이런 문제 제기는 49제 이후에 하신 것이 더 진지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2009.05.29 05:36 [ ADDR : EDIT/ DEL : REPLY ]
    • 법률로서의 국민장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_-;;
      사회 현상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지요.
      단지 국가에서 국민장으로 진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과, 다수의 사람들이 그 흐름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합류하는 건 다른 거죠;

      2009.05.29 17:07 신고 [ ADDR : EDIT/ DEL ]
  10. 답답!!

    대통령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언제부터 대통령이 특별하지않은 적이 있었나요?
    난 대통령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뭐가 잘못됬다는건지 알수없는데....
    (아무나 할수 있는일이 아니기에.....)
    이런 시점에서 이런글을 올리는 님의 사고방식이 아주 특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CF의 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때와 장소를 가릴줄 알아야...."
    굳이 편을 나눌생각은 없지만... 님도 보수논객의 대열.............. 그들의 인기몰이(?)에 한몫하자는 건가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며 사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의 정서와 생각이 자유로이 하나로 모여진다는걸
    공감대라고 하죠. 공감하기 싫으면 그냥 그렇게 사세요!!!!
    괜한 문제의식 만들어 삐딱선타고 무인도로 들어가지말구... (가던지, 말던지 알바 아니지만)

    2009.05.29 07:23 [ ADDR : EDIT/ DEL : REPLY ]
    • 리잔느

      지나가던 사람입니다만.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정치적 정지' 상태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당장 6월 국회에서 처리될 미디어법 문제도 있고, 신영철 대법관 사건도 지금 묻혔잖아요.
      공현은 보수 논객도 아니고요, 사실 대통령제는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측면에서는 군주주권제와 닮은 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국가잖아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건 경계해야 할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재임시절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언론들이 용비어천가 부르는 걸 보면 사실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2009.05.29 09:53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그, 대통령이 특별한 존재라는 전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지요.
      대통령은 일단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이지만, 그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고 제왕화 되어 있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있어왔습니다. 뭐 그런 비판 자체도 넘어서 직접 민주주의, 민중적인 민주주의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없어지거나 그 권한을 크게 축소/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제 입장은 오히려 분류한다면 아나키-사회주의이거나 급진적 민주주의의 입장이지, 보수논객의 대열로 들어갈 성질은 아닌 듯합니다.

      저도 똑같이 말씀드려서 제 글에 공감하기 싫으시면 덧글 달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사시라고 말씀드리면 기분 좋으실까요? ^^;;

      2009.05.29 17:10 신고 [ ADDR : EDIT/ DEL ]
  11. 답답!!

    슬퍼서 슬프다고 표현하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할까요?
    슬픔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건가요?
    어떤대답을 원하는거죠?

    2009.05.29 07:28 [ ADDR : EDIT/ DEL : REPLY ]
    • 슬픔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원인과 이유를 추적하고 매커니즘을 밝혀내는 게 학문이 하는 일입니다. 개인의 심리라면 심리학이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할 것이고, 사회적인 현상이라면 사회학 같은 게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하겠죠.
      슬픔에도, 어떤 표현에도 당연히 이유와 맥락이 있습니다.

      노무현 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개개인들에게 당신들은 왜 슬퍼하냐고 묻는 건 아닙니다.
      노무현 씨의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 발언, 오가는 언설 같은 것들을 놓고서 그 맥락을 보는 것뿐이지요.

      2009.05.29 17:12 신고 [ ADDR : EDIT/ DEL ]
  12.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지지하던 분이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게 가슴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 그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세력과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흐르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과도하게 Up 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위에 김수환 추기경과 비교하신 분이 있던데... 김수환 추기경때와의 차이점이 바로 저런 열성 지지자들의 존재 유무일 것입니다. .. 전 두 분의 죽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러나 저러나.. 오늘로 장례절차가 어느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이니.. . .. 괜시리 착찹합니다.

    2009.05.29 08: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쩝 저는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본인의 뜻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네 지나치게 흘러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뭐가 어떤 방향으로 지나치다고 판단하는진 사람의 입장마다 다르겠지만요.

      2009.05.29 17:14 신고 [ ADDR : EDIT/ DEL ]
  13. 리잔느

    그런데 지금 6월 국회 열리고나서부터 처리될 미디어법이라던가 여러가지 현안이 있는데
    완전히 정치적인 정지 상태인 건 좀... 아니다 싶음.
    신영철 대법관 문제도 묻혔고.
    미디어법 개정 관련 쟁점토론회(사실 토론회라기보다는... 발표회 같은 분위기) 어제 했었고, 난 갔다왔는데,
    다음 아고라에 주최측에서 두 명의 발제자의 발제문 일부 올려둔 것 사람들이 제대로 안 읽더라.
    김보라미 변호사한테만 찬성표 몰아주고.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지금 분위기가 이럼.
    하지만 난 윗 분 중에서 49제까지 정치적 발언 삼가해주십시오~ 하신 분의 의견은 동의 못하겠음.
    우리가 숨쉬고 사는 법을 논의하는 게 정치인데
    거기에서 감시의 눈길을 떼지 않으면 자유위임이라 다들 지맘대로 하는데 ㅇㅋ? ㅋ

    2009.05.29 09:46 [ ADDR : EDIT/ DEL : REPLY ]
  14. 답답!!

    리잔느님... 그냥 지나가던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마치 공현님과 아무관계도 아닌냥 하면서 편을 드는데...
    공현 블로그에 가보니 글도 많이 올리고 무쟈게 친한 사이같더만....
    오늘로 국민장이 끝납니다. 오늘 하루만 참자는데 그게 그렇게 힘듭니까?
    6월 국회문제 오늘 하루만 더 참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아님 오늘 이야기하면 국회가 달라지는게 있습니까?
    그리고 공현님!!! 보수논객.... 칭한부분은 취소하겠습니다. 논객이라고 할 필요성조차 못느꼈네요
    그저 아직 갈길이 먼 학생정도...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더만..... 앞으로 공부 더 많이하라하세요. 둘이 같이하면 되겠네요
    정치공부, 인생공부, 정서를 읽는 공부, 사람과 소통하는 공부,차가운 이성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감성도 느낄줄아는 공부....
    난 최소한 이런공부는 공현님보다는 더 많이했기에 적어봤네요!!!!!

    2009.05.29 10:53 [ ADDR : EDIT/ DEL : REPLY ]
    • 리잔느님의 덧글이 제 편을 든 거 같진 않은데 말이죠 ㅎㅎ 오히려 정치적 입장은 상당히 다른 편이고 제가 먼저 태클을 거는 편인데. (아 그리고 "무쟈게 친한" 사이까진 아닙니다. 그냥 지인이지요.)

      하루만 참자는데 뭐가 힘들어서 그러냐, 이런 차원의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의 행위, 오가는 이야기들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적 맥락들, 그 배경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 전제들, 그런 것들 중에 제가 반대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_-;;;

      ///

      그리고 저는 스스로 학생보다는 청소년인권활동가가 본업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제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저의 발언의 가치를 폄하하시는 말은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요.
      저는 최소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부는 답답님보다 많이 한 것 같긴 합니다.

      2009.05.29 17:16 신고 [ ADDR : EDIT/ DEL ]
    • 리잔느

      - ㅎ. 공현과 저의 정치적 입장은 상당히 상이합니다.
      공현은 아나키적이라면 전 오히려 국가의 존재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랄까요.
      공현은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한다면 오히려 전 대의제를 주장합니다.
      - 인터넷상에서의 인맥 관계가 현실에서의 인맥 관계도 그 "정도"로 그러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
      온라인 게임에서 서로 친하다고 해서 현실에서 친할 가능성은 있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듯이 말이죠.
      - 개인적으로는, 서울역 분향소와 덕수궁 분향소를 다녀왔으니 고인에 대한 예의는 나름 차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도하는 것의 뒷면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전 지금의 '정치적 정지' 상태를 회의적으로 보는 겁니다.

      2009.05.29 18:38 [ ADDR : EDIT/ DEL ]
  15. 공헌님의 공헌님의 글을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일단,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약간 헷갈리기도 합니다.
    요즘, 2MB나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면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새삼스럽게 고민이 들었습니다.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은 일단, 자신이 직접 모든 현안에 대해 참여하기보다 자신의 대표자를 자신의 손으로 뽑아 간접적으로 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행하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엘리트-대의제의 폐해는 견제를 해야하겠지요.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어느정도 엘리트-대의제를 포함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인물을 통해서(대리해서) 나타나는 것 자체가 대의민주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정치적 의사참여 혹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선거 또한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집회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에서는 허용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 다 말하지 못한 것을 집회라는 형식을 통해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적하신 것처럼 모든 현안에 대해 모든 국민이 각자의 의견을 제대로 내지 않고 1명을 통한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인 대의제 정치체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서 배웠듯이 일방적인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민족주의, 국민주의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까지 두리뭉실하게 비판하는 것은 수긍이 가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미래의 일부 역사가들은 '공헌'님이 예민하게 반발하신 것처럼 현재의 시대를 평가하면서.. '노무현: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인 대의제 정치체제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 저는 요즘의 노무현에 대한 국민적인 애도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쇠고기 파동을 통한 촛불집회 → 대규모 집회를 통한 의사전달 →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한계의 체감적(본능적) 인식 → 분노와 한계에 대한 무기력증 및 현실외면 노력 → 노무현에 대한 과거회귀 → 노무현 자살 → 슬픔 → 노무현에 대한 과거로의 본격적인 회귀 → 과거 한계에 대한 분노의 재인식 → 전국민적인 애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공헌님께서 말씀하신 오버스러울 정도의 한 정치인에 대한 애도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애도 또한 국민들이 현재 상황에서 답답한 점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나 대의민주주의 상황에서 직접적인 의사전달 수단인 집회가 막혀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 대의민주체계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만의 해석을 떠나서..
    대한민국 많은 국민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공헌'님 처럼 저 또한 진심으로 슬픕니다.

    그분의 모든 노력이 과거의 '노탓' 놀이를 떠나서 정당히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2009.05.29 14: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저도 그건 대의민주제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의민주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구요.
      이 글은 단편적인 생각이 맞습니다. 현재 국면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총체적으로 서술한 게 아니라, 현재의 상황 중에서 어느 한 맥락만을 끄집어 내어서 그 부분에 대해 글을 쓴 거지요. 그리고 무슨 학술논문을 쓰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이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가 주목한 맥락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건 써주신 사람들의 반응이 커진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노무현에 대한 영웅시, 신격화-왕격화, 이런 맥락이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다는 지적입니다.

      2009.05.29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16. 한승수 총리 조차도 '권위주의 타파'가 고인의 훌륭한 업적이라고 추도사에서 이야기하더군요.
    정작 고인의 지지자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긴 합니다만(응?)

    2009.05.30 23:15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 말입니다 킁;
      어쩌면 대의제 정치에서 '지지자' '팬'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에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2009.06.01 15:26 신고 [ ADDR : EDIT/ DEL ]
  17. 이글이 보일지 모르겠군요. 걸어가는꿈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민주주의에 상징이 된거죠.
    모두가 민주주의에 참여한 것 뿐이고요.
    역사는 나중에 판단해 줄거에요. ^^;.. 그냥 민주주의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2009.05.31 06:18 [ ADDR : EDIT/ DEL : REPLY ]
    • 곤양이

      참여자체는 나쁘지 안은데..흐..그게 다른 이야기를 못하게하는 폭력성이 많이 보였던게 문제였죠..어느 초등학생분이 자기가 원하는 TV프로그램이 안해서 기분나쁘다고 자기 블로그에 올렸다가..신원공개되고 난리 아니었죠..흐
      그 외에도 다른 이야기들이 묻히고 왜 지금 그런걸 하느냐라는 반응들이 날라왔었죠

      2009.05.31 16:07 [ ADDR : EDIT/ DEL ]
    • ^^

      곤양이 / 그 몰지각한 '일부'로 고인을 추모한 '전부'를 평가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2009.05.31 17:20 [ ADDR : EDIT/ DEL ]
    • 민주주의의 내용은 막연한 느낌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들과 논의 속에서만 채워질 수 있지요.
      제가 제기한 문제도 민주주의의 한 쟁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

      ^^님, 제 글이든 곤양이님 글이든, 추모한 '전부'를 평가한 맥락은 딱히 보이지 않는데요?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님이 글을 넘겨짚는 것인지?
      그리고 저는 그런 식으로 욕을 하건 공격을 하건, 그런 폭력성이 과연 '몰지각한 일부'라는 말로 다른 맥락들과 단절될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럽긴 합니다.

      2009.06.01 05:05 신고 [ ADDR : EDIT/ DEL ]
    • ^^

      글을 좀 더 한정된 대상을 향하여 쓰셨어야지요.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위들이 내재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모 행위 자체를 대상으로 쓰신 글이라고 밖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고인을 추모하러 다녀간 사람이 약 500만이라고 합니다.

      고인 관련 기사의 댓글 작성자를 모두 합해봐야 5만 명도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많이 잡아 5만이라고 쳐봅시다. 1/100이군요.

      얼마 전 벌어진 죽봉 사건, 전체 참여자 중 죽봉을 휘두른 사람은 5%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고 박종태씨의 죽음은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공현 님의 글과,

      '죽창 시위로 나라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으니 우려스럽다'라며, 전체 시위에 대응한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이, 동격으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아무래도 '대세'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듯 하여 적어드립니다.

      대세 :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결정적인 형세.

      곤양이님 댓글의 경우,

      처음 댓글(anonymous님의 댓글)을 보시면,

      '모두가 참여한 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부의 반응으로 전체를 호도하는,

      전형적인 조중동식 물타기형 댓글로 판단했는데,

      지금 보니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2009.06.01 15:27 [ ADDR : EDIT/ DEL ]
  18. 아, 이건 뭐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긴 합니다만, 그제 정도까지 제 블로그에 '노무현'으로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100여명이 되는데, 금-토 중에 포털에서 검색하면 이 글이 첫 페이지에 노출이 되더군요. 즉 노무현으로 검색하고 이글을 읽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그 100여 명 중에서 덧글 남긴 사람 중에 제가 쓴 글의 취지에 동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유일하게 동감한다는 덧글 남기신 분은 제 글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신 듯? 그외에 슷캇님 등은 검색으로 들어온 건 아니니까...) 뭐 대표성 없는 표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경험적 근거는 되어줄 것 같군요 ㅎㅎ

    2009.06.01 16: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

    우선 이전 글(고인 관련)에서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고인이 진보를 '표방'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인물이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고인은 스스로의 정책 노선을 명확하게 규정한 바 없습니다.

    뭐, 그의 정책중 일부가 진보적인 가치를(굳이 나누자면) 이야기하기는 했군요.

    또 FTA 문제 하나를 가지고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다고 표현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 같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사람이 건강 보험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확대하고, 복지 예산을 증액하지는 않을겁니다.

    또한 고인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묻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입니다.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김영삼 정부 시절 일어난 IMF로 인해 기업들이 부채 비율에 대한 방어적 조치들을 취한 것과,

    김대중 정부 시절 일어난 카드대란으로 중산층이 대량 붕괴한 사건 - 사실 카드 대란 자체도 IMF의 산물이지만 - 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전부 떠넘겨 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결과는 암담했지만 정책적 의도 자체는 비정규직을 위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고인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묻는 것은, '참여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는 의견이 됩니다. 부동산 관련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고 허세욱씨에게 했다는 말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데, 혹 링크를 걸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고인이 분신한 어떤 사람에게 좋지 못한 말을 했다는 루머가 돌았던 사실은 있습니다만,

    그것이 고 허세욱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군요.
    (루머는 사실 무근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번 글로 넘어갑니다.

    <대통령은 살아서 자기 정치에 대해 평가받고, 욕 먹고, 아니면 지지를 받고, 그런 것들을 받아내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한 사회의 대통령으로 수많은 정치의 최고책임자로 있었던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공현님의 이전 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고 계시는군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하는 삶의 형태가 강제되어야 할 정도로 말이지요.:)

    이 주장은 현재 글 및 댓글의 요점과 상당히 상충한다고 보여집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대세'표현 관련해서도, 과잉 일반화의 오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댓글 및 기사의 논조에서 느낀 것을 '대세'라고 평가하신다면, 글쎄요?

    한나라당이 속칭 '알바'를 풀어 인터넷 여론조작을 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공현님이 언급하신,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집단'이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공현님이 걸어두신 링크나 다른 곳의, 고인과 관련된 기사의 댓글 및 추천수를 모두 합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사실,

    그나마도 공현님이 지적하신 문제가 담긴 기사 및 댓글은 더더욱 적다는 사실을 아셔야겠습니다.

    실제적으로 이번 사건 관련 행사에 참여해본 결과 느껴졌던 것은,

    '정치 보복에 대한 연민과 '인간' 노무현에 대한 재해석, 민주주의의 위기'정도였습니다.

    이 느낌이 틀릴 수도 있을겁니다.

    해서, 저는 '대세' 따위의 오만한 표현은 가급적 지양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대세'의 스승격인 '유행'이 만들어지는 과정(의상과 관련하여)은,

    1.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모인다.

    2. 이번 해의 유행을 어떻게 선도할 것인지 정한다.

    3. 광고를 한다.

    4. 광고 시청자들이 '선동'당한다.

    이상입니다.)

    <민중의 감정은 왜 노무현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대리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을까요?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왜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걸까요?

    민중의 정, 울분은 왜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영웅시함으로써 나타나는 걸까요?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고 발언는 것 자체가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인 대의제 정치체제를 내면화 했기 때문 아닐까요?>

    라고도 주장하셨군요.

    자칭 '진보'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 '열사'라는 단어의 사용 용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입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하신 고 허세욱씨의 유족들은, 자칭 '진보'들이 고 허세욱씨를 '이용'하는 것이 싫어,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어하셨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나도 내 삶의 일부인 내 죽음은 가능하다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씨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부분을 보면 '정치적인 의도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정치적인 의도로 죽음을 이용하는 일부 세력이(혹은 그에 선동된 일부가),

    고인의 죽음 역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인 것이고,

    그것이 '민중이 자신들의 감정을 노무현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대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민중의 정, 울분이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영웅시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보고 '대세'인양 비판하시는 거라면, 공현님 역시 그 선동에 놀아난 것일 뿐입니다.

    <노무현에 대한 영웅시, 신격화-왕격화, 이런 맥락이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다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주장 말이지요.:)

    솔직히 언급할 가치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긴 합니다만,

    '노무현을 민중이 영웅시한다'는 주장을 마치 '사실'처럼 적어 놓으셨는데,

    이건 조중동 기사를 보고 '노무현 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또, 스스로 이런 '정치적인 의도의 죽음'을 원하시는 것처럼 적어놓으셨군요.

    이런 경우를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다'고 표현하면 딱이겠습니다.:)

    민중 전체의 감정과 기분을 함부로 판단, 일원화하는 것은 상당히 '오만한' 행동입니다.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정치적이었다고 폄하하는 것은 '더러운' 행동이고요.

    본인이 정치적인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여,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평가하는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을겁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한 번 정독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슬픔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원인과 이유를 추적하고 매커니즘을 밝혀내는 게 학문이 하는 일입니다.

    개인의 심리라면 심리학이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할 것이고, 사회적인 현상이라면 사회학 같은 게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하겠죠.

    슬픔에도, 어떤 표현에도 당연히 이유와 맥락이 있습니다.>

    예, 밝혀내는 것이 학문이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진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할겁니다.

    단순히 '나는 이 현상을 이렇게 판단하는데, 이 판단을 근거로 하면 이렇게 비판할 수도 있겠군'정도의 논의를 할 수 있을 뿐,

    '이건 이거고, 그러므로 이부분이 잘못되었다'식의 주장은,

    누구의 표현 따라 '오만의 극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인터넷에 떠도는 혈액형별 성격분류법과 동급일 뿐이지요.


    * '대세'는 '민중의 왕' 노무현 전 대통령인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0%에서 요지 부동이군요.:)



    * 자발적인 행동들도 결국 다 사회적인 것이라는 주장과,

    '영원한 대통령'이라는 표현에 대한 비판은 웃음으로 남기고 이만 줄입니다.

    2009.06.03 16:40 [ ADDR : EDIT/ DEL : REPLY ]
    • 곤양이

      FTA문제만 가지고 노무현을 신자유주의라고 하는건 아니죠. 그외에 많은 정책들이있었죠..그리고 스스로 좌파신자유주의자라고 했잖아요.ㅋ

      그리고 도대체 중도라는게 뭔가요? 뚜렷한 기준점이 없는 상황에서 중도라는게 존재할까요?

      2009.05.31 16:03 [ ADDR : EDIT/ DEL ]
    • 졸려서, 다른 부분에 대한 답은 나중에 달고,
      몇가지에 대해서만 답니다.
      우선, 허세욱 씨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2003년 이세남 씨와 그외 몇 분이 분신하셨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한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 등의 발언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그런 평가가 제 글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맥락에서 언급한 거라서 사실 확인을 꼼꼼히 안 하고 썼습니다. 정정했습니다. 어쨌건 간에 사실관계가 잘못된 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허세욱 씨의 가족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허세욱 씨 본인의 태도나 의지를 오히려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진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해서는
      한미FTA 추진(도 충분히 큰 사안입니다만) 외에도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이라는 정책 기조와,(아이슬란드와 같은 금융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했지요.)
      2년마다 대량 해고 사태를 만들어낼 비정규직법안 처리(비정규직에 대해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입니다. 정책적으로, 그다지 해결하려고 노력한 게 많지 않거든요. 그게 의도 자체가 비정규직을 위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 (전쟁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일부지요.)
      서울시교육감에 공정택 씨를 중용하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고교선택제, 자사고 확대, 내신등급제 등등 교육에서의 입시경쟁 강화도 충분히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있는 정책입니다. 자립형 사립고 같은 문제도 김대중 때부터 계승해서 계속 끌고 간 정책이지요.


      ++ 그리고, 본문을 읽어보시면 알 것 같은데, 저는 '대중' 또는 '민중' 전체의 흐름이나 의견을 판단하거나, 저의 비판의 대상을 '대중'이나 '민중' 일반으로 일반화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답덧글에서 민중이란 표현을 쓴 것도 그 덧글을 쓰신 분이 먼저 민중이란 표현을 쓴 덧글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쓴 것 뿐이지요.(거기서의 민중은, 아마 그분이 생각하는 민중이 있겠지요.)
      '대세'라는 표현을 쓴 것도, '대세'에 굳이 따옴표를 쳐가면서 그것에 대해 나름 상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만,
      전유경 아나운서의 발언에 대한 언론보도 내용 및 블로그스피어의 포스트, 덧글들 등을 비롯하여,
      제가 다니는(저는 서울 전역 + 경기지역 일부를 꽤 폭 넓게 다니는 편인데) 지역 곳곳에서 보이는 추모 현수막,
      추모집회에서의 발언 내용과 분위기 등을 종합하여 그러한 생각들이 분명히 있고,
      또 그런 표현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런 표현들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관찰에서
      적어도 인터넷이나 추모집회 등에서 드러나는 추세 상으로는 따옴표 대세, 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 나온 표현입니다.
      신뢰도 있는 양적인 조사를 통해서 분석한 것은 아니니 학술적 의미는 부족하다거나 지나친 일반화라고 지적하셔도 아주 틀린 이야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애초에 어느 정도 유의미한,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집단적인 담론-감정이라는 판단 정도에서 쓴 글이니 뭐 특별히 드릴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약간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사실 전국민의 5%만 되어도 200~300만명이고, 그정도 숫자면 충분히 넘치도록 유의미한 숫자는 아닐까 하긴 합니다만.)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쯤에...

      2009.06.01 05:03 신고 [ ADDR : EDIT/ DEL ]
    • # 먼저 '대세' 및 '추모하는 행위들에 내재된'에 대해 쓰면-
      일단 제가 '대세'라는 말을 그렇게 사전적 의미로 사용한 건 아닙니다. 대세에 굳이 따옴표를 쳐가면서 쓴 건, 요즘에 인터넷에서 흔히 통용되는 '대세'라는 말을 가져왔다는 의미가 있는데, 뭐 글에서 굳이 그부분에 대해 설명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겠네요. 제가 부주의하게 어휘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 글의 맥락에서 '대세'는, 인터넷이나 드러난 정치적 공간(광장, 언론, 집회, 거리 등등...)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규모로 발화되고 유통되는 표현, 사고방식이면서, 사람들에게 소극적/적극적 동의(그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소극적 형태이든,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형태이든.)를 얻어내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제가 '대세'라고 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웅시/왕격화/신격화하는 그자체가 아니라,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특별한 지위의 것으로 강조하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 또는 그 죽음을 추모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하는 것을 자연스레 비난하는, 그리고 그 비난을 당연시하는 것 자체입니다.(이런 경향은 위에 제가 언급한 의미에서 충분히 '대세'입니다.) 그런 '대세' 속에서 저는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왕격화/신격화/영웅시 등의 맥락들을 읽어냈다는 말인 거죠.


      그리고 제가 '추모하는 행위들 속에 내재된'이라고 한건, 추모하는 행위들 전부를 지칭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뭐 어쨌건 저는 추모하는 행위들과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 및 간혹 나타나는 공격성과 비난들이, 그렇게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들을 보거나 하면 섞여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고, 대놓고 섞여 있지 않은 경우에도, '인간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단절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그 둘은 단절되지 않을 겁니다.


      (집회 시위에 관해서도, 저는 '5%의 폭력시위'를 전체 집회-시위와 분리시켜가면서 문제적인 소수로 몰아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전체나 집회의 성격, 분위기와, 집회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따로 분리시켜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집회-시위가 그 성격상 다수의 '위력'을 보이는 것이고, 또 그 집회-시위를 부당하게 봉쇄하고 억압하는 힘이 있는 상황에서, 그 폭력을 집회와 그 집회를 둘러싼 전체의 맥락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요. 차라리 폭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 제가 이명박의 발언이 문제라고 느끼는 건, 5%의 행위를 크게 부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5%건 1%건 얼마든지 영향은 미칠 수 있습니다. 저는 '죽창시위'는 나라 이미지를 훼손하고 '폭력진압'은 법과 질서를 위한 거라는 사고방식과 가치관 자체가 문제라고 느끼는 겁니다.)

      2009.06.01 15:52 신고 [ ADDR : EDIT/ DEL ]
    • # 책임의 문제에 대해
      전에 쓴 글과 지금 쓴 글은 분명히 맥락이 다릅니다. 쓴 시점도 다르고 쓴 상황도 다르고 쓴 마음도 다르지요. 단순히 사고의 방향성만으로 놓고 보면 모순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여하간 둘 다 제 마음이니까, 정당화해야겠네요.
      노무현 씨가 전대통령이었다는 건 현실이고, 바로 전 정권이었던 만큼, 저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 뒷정리 등이 만족스러울 만큼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거기에는 이명박 정권의 몰지각한 태도와 행동들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정치체제가 어때야 하고 민주주의가 어때야 하냐고 생각하는 것과 상관 없이, 어쨌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이 아주 클 때 대통령을 한 사람이고,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많이 축소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대통령으로서 많은 일을 자신의 책임과 감독하에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노무현 씨에게 전대통령으로서의 자기 정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노무현 씨에게 자신이 과거에 했던 정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노무현 씨가 (특히 이명박과 대비되면서) 메시아처럼 되거나 왕격화/신격화/영웅시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있습니다.

      2009.06.01 15:58 신고 [ ADDR : EDIT/ DEL ]
    • #정치적 죽음과 죽음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노무현 씨의 죽음은 충분히 정치적입니다. 유서에 뭐라고 썼건 말이지요. 노무현 씨를 정말로 '바보'이거나 '멍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씨가 죽으면서 자기가 죽은 이후의 상황을 한 번도 상상해보거나 그려보지 않았을 거라고 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고려나 생각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면, 이 죽음은 본인의 의도의 차원에서도 정치적입니다.

      물론,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노무현 씨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매우 정치적으로 작동하고 작용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정치적이라는 건 현재 '정치권'으로 불리는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니라, 공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전혀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죽음조차도 비정치적이란 점에선 정치적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정치적"에 대한 그런 말놀음은 생략하지요.

      그리고 저는 노무현 씨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집단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어떻게 이용하냐가 문제이긴 하지만_) 또 그런 집단이 그렇게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 감정을 노무현을 대리하여 표현하는 걸로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노무현 씨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특별히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주도나 의도에 따라 일어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미조직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뭐 제가 상황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느끼고 본 거니까, 역시 양적인 증거를 제시하긴 어렵습니담나, 간단히 말해서 봉하마을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전국에 분향소가 시민들에 의해 차려지고 분향소에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이런 것들이 특정 집단의 개입이나 언론의 보도 등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2009.06.01 16:06 신고 [ ADDR : EDIT/ DEL ]
    • ^^

      우선, 고 허세욱씨 관련한 답변부터 드리겠습니다.

      제 3자들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유족들은 고 허세욱씨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용당하고 있다는 판단을 했었고,

      활동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자발적 행동이었다'고 가볍게 단정지을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 세뇌에 의한 행동을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습니다만.)



      신자유주의 정책 관련하여,

      조금 당황스러운 몇 가지를 먼저 언급하겠습니다.


      * 이라크 파병 : '네오콘'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면 신자유주의자가 되나요?

      이라크 전쟁은 '정치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문제이지,

      '경제'의 논리로 바라볼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전쟁이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는 논리는 이곳에서 처음 듣는군요.

      네오콘(신보수주의 - 정치)과 신자유주의(경제)의 개념부터 확립하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물론, 상당히 애매한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니까요.)

      사실 이걸 학문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누자면 미국 보수주의의 '승자독식'사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당시 정부가 처했던 상황이나, 명목적(사실 실질적이었지만.) 파병 목적에 대한 언급은,

      문제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이툰 부대의 파병 목적과 성과를 보신다면 더더욱 신자유주의와는 관련이 없음을 아시게 될겁니다.)


      * 고교선택제, 내신등급제, 자사고 확대 : 고교선택제가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라면,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 되겠군요;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그로 인해 학교의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학교의 호불호가 갈리는 문제와 신자유주의가 관계가 있다는 생각도 안 들지만.)

      평준화의 대명사인 프랑스의 대학 조차도, 학생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조건이 '거주 도시 이내'라는 점에서 한국의 고교선택제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애초 고교 선택제의 취지는, '강남 8학군'을 개방하고자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또, 내신 등급제는 교내 경쟁을 부추길 수는 있겠지만,

      학교 밖에서의 경쟁은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음이 입증된 바 있습니다.
      (당시 최상위권 대학 입학생들의 성적 분포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학벌'이란 대학 타이틀을 말하는데,

      그 '학벌'을 물흐리게 한 이 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이라면, 글쎄요?
      (더 나은, 더 좋은 정책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별개로 쳐야겠지요.)

      마지막으로 자사고 문제는 현 정부의 자사고 문제와 혼동하시면 곤란합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자사고를 서울에 설립을 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돌려가며 막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유는, 서울에 편중되어있는 외고 - 과고 - 강남 8학군 등의 교육 수준을 지닌 학교를,

      지방에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요.

      '자사고' 자체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자사고'는 학비 상한액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장학금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언어적인 의미의 '자사고'와 동일시 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한국 자사고의 재정 현황을 아신다면...
      (대부분의 학교가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요. 그런데 일반 사립고의 경우 재정이 흑자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법안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우선, 비정규직법안의 뼈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 (이전에는 300인 이상인 기업)에 적용한다.

      2. 2년간 근무할 경우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해당 법안이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조항으로 인해 비정규직 채용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와,

      두번째 조항으로 인해 2년 이하의 근무자에 대한 대량 해고가 예상된다는 것이 그것이죠.


      입법 취지를 살펴보면,

      '비정규직보호 입법은 비정규직의 남용과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법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1. 현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임금, 기타 근로조건 등에서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도 이를 규제할 수 없으나,

      차별금지제도가 도입되면 비정규직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됨.

      2. 아울러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임금, 계약기간, 근로시간 등 중요한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하여,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이 더욱 보호되도록 하였슴.

      3. 종전에는 근로계약을 얼마든지 반복 갱신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최장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토록 하여,

      기간제 근로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였슴.

      4. 파견근로와 관련해서는 파견기간초과, 대상업무위반, 무허가 파견 등 모든 불법파견의 경우에 사용사업주에게 직접 고용의무를 부과하였고,

      사용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강화(1년→3년이하 징역)함.

      5. 사용자가 2년간 근로한 숙련된 근로자를 교체할 경우 생산성 저하, 신규채용에 따른 교육 훈련 등 노무관리비용 증가가 예상되고,

      이번에 명문화된 차별금지제도가 강력히 시행되면 인건비 절감효과가 크지 않게 되어, 다른 기간제 근로자로 교체할 유인도 줄어들 것임.

      등을 들고 있습니다.


      입법 취지 및 내용에 비정규직의 이익에 반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욕을 하려거든, 헛점을 노리고 악용한 기업에게 해야겠지요.

      재탕이지만, 이건 정말 조중동이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개그이지 말입니다.

      당시 참여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과열 규제책이 무려 500여 개였지요.

      무능과 악함은 별개로 치는 것이 이성적인 사고 아니겠습니까.



      대세 관련해서는,

      뭐, 변명을 하시니, 딱히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근거의 출처인 인터넷과 일부 오프라인, 블로그 방문자 100명...뭐, 좋습니다.

      제가 단 댓글 중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관련한 내용이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요지부동인 이유를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추모집회에 참여한 절반 이상의 사람들과 비슷한 특성을 보일겁니다.


      또한, <제가 '추모하는 행위들 속에 내재된'이라고 한건, 추모하는 행위들 전부를 지칭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뭐 어쨌건 저는 추모하는 행위들과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 및 간혹 나타나는 공격성과 비난들이,

      그렇게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들을 보거나 하면 섞여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고,

      대놓고 섞여 있지 않은 경우에도,

      '인간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단절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그 둘은 단절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계속 하시려거든, 앞에 주석을 달아놓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친구되는 녀석이, 작년 촛불집회 당시, 앞에서 선동하는 무리들이 전경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고, 이곳저곳 터지고, 잡혀갔던 일이 있습니다.

      뒤에 서 있었을 뿐인데, 폭력시위 가담자가 되더군요.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전체의 1%정도였습니다.

      뭐, 끝내 뒤에 서있는 대다수의 억울함을 외면하시겠다면야...^^;

      <노무현 씨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특별히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주도나 의도에 따라 일어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미조직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뭐 제가 상황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느끼고 본 거니까, 역시 양적인 증거를 제시하긴 어렵습니다만,

      간단히 말해서 봉하마을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전국에 분향소가 시민들에 의해 차려지고 분향소에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이런 것들이 특정 집단의 개입이나 언론의 보도 등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렇지요, 거의 맞을 뻔 하셨군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미조직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미조직된 사람들의 성향을 일체화시켜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터넷 댓글이나, 기사, 일부 오프라인에서 '대세'를 뽑아내는 것은 무리일겁니다.

      결국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주도나 의도에 의해 왜곡된 기사나 그것에 선동된 댓글,

      그것을 근거로 삼아 글을 쓰고 계신 것이 되겠지요.

      실제로, 소위 말하는 선동세력의 프레임과,

      공현님이 비판하는 프레임이,

      이상할 만큼 닮았군요.



      책임 관련해서, 그렇게까지 '정당화'하고 싶으시다면,

      뭐,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노무현 씨에게 자신이 과거에 했던 정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노무현 씨가 (특히 이명박과 대비되면서) 메시아처럼 되거나 왕격화/신격화/영웅시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부분을 잘 정리해서 올리신 것 보니,

      본인 스스로도 어느정도 잘못 된 것임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정치적 죽음 관련하여,

      작가가 A라는 의미를 담아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후에 교육당국이 만든 교과서는 B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가르치고 있군요.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이러한 행태 역시,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안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의도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작위적 해석은 좀 아닌 것 같군요?

      특히 '죽음'을 대상으로 하는 해석이라면,

      적어도 고인에 대한 '예의' 정도는 지켜 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농민들의 땅을 축내고 싶지 않으니,

      묘 하나 남기지 말라'고 유언했던 고 호치민씨를,

      박제해서 웅장한 박물관에 모셔두는 것과 같은 급의 행위 아니겠습니까.



      *블로그 방문자 100명 발언은,
      (그중 댓글 단 사람은 20여 명이군요.)

      어제보다 더 큰 웃음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링크를 타고 들어왔을 뿐입니다. 늅늅.

      2009.06.01 19:00 [ ADDR : EDIT/ DEL ]
    • ^^

      곤양이 / FTA 이외에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친 사례가 있다면 제시해주시지요.:)

      저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라고 규정할 만한 다른 사례를 본 기억이 없군요.

      그리고 바로 그 '좌파신자유주의'가 '중도'라고 불리는 집단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사실이 아니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8G3aUTKoCsU&feature=related

      뚜렷한 기준점을 못 잡으신다면 공부가 덜 되신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2009.06.03 16:41 [ ADDR : EDIT/ DEL ]
    • 덧글을 이제야 봤습니다만, 뒤늦게 짧게라도 답니다.

      1. 이라크전 파병 : 전쟁행위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라고 1차적으로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지지층들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것은 다분히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노무현식 자주국방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이라크 파병 자체가 한미FTA를 논하든 자동차산업을 논하든 신자유주의적인 노무현 정부의 세계화, 금융정책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의 수혜자"라고 한 박기범 씨의 말이 생각나네요.'네오콘'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인 게 아니라요.
      그리고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이 사실상 정치적이라기보단 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건 워프로피티어(전쟁수혜자) 논의 같은 걸 보시면 될 텐데,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움직임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내 정책에서의 신자유주의라고 평가하긴 어렵더라도요.

      2. 교육정책 : 푸코가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경쟁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어쩌구저쩌구 한 게 생각나는군요. 한국적 상황에서 고교선택제의 도입이 사실상 고교서열화로 연결되고 고교입시경쟁의 전면화가 될 거라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된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한 충분한 보완이나 수정 없이 고교선택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신자유주의적입니다. 한국은 직업에서건 학벌 문제에서건 충분한 평준화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지요.
      내신등급제의 경우도, 그건 '학교밖에서의 경쟁 완화'라기보다는 그 이전에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대학 입학의 전제조건이 된 성적 기준들을 흔든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을 1차적 기준으로 해야 할 텐데, 학교 안에서의 경쟁을 부추길 수는 있지만 학교 밖 경쟁은 완화시킬 수 있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모순입니다. 학교 밖에서의 '수능 성적'(이든 '출신 지역'이든 '출신 계급'이든)에 따른 격차는 약간 완화시킬 수 있다 란 식으로 말할 순 있을지 몰라도요.
      현 정부의 자사고도 등록금 상한선은 있고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금도 강제되어 있습니다. ㅎㅎ 자사고 정책은 결국 평준화에 대한 비판에 떠밀려서 일정 부분 서열화를 허용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지방'에도 특목고 수준의 학교들을 세워서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한다는 '환상의 평등'을 내세워서요. 저도 자사고 1기 출신이라서 자사고의 교육 상황이든 재정 상황이든 잘- 압니다만. 자사고와 특목고 등의 수가 늘어나는 게 중학교 수준에서의 고교 입시 경쟁을 전면화시키고, 자사고 사이에서의 서열화로 인해 자사고 학생들에게 추가적인 경쟁의 압박을 준다는 점에서 이 정책은 충분히 경쟁 강화적입니다. 그리고 장학금 정책은 보편적인 무상교육정책에 비해 문제점이 많습니다.(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자사고는 시범운영 단계였고 그 이후에 확대될 길을 다 열어놓은 정책이었습니다.)

      3. 비정규직법안 : 비정규직법안이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입법취지만을 기준으로 해서 그 취지를 선의로 해석하려고만 하는 건 굉장히 난감하게 들립니다. 일단 그러한 비정규직법안 통과가 이후 자본가들에 의한 몇몇 사업장들의 대량 해고 사태로 번졌고, 또 지금에 들어서 비정규직들이 뭐 70%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있네 어쩌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것도 안정적인 '정규직'이라기보다는 그냥 '무기계약직'이라고 해야 할 노동조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비정규직법안의 틈새와 문제점에 대해서 논의 단계에서부터 원내의 민주노동당이든 원내의 학자들과 노동운동이든 숱하게 지적하고 반대하며 대안(최소한의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이나 정규직 전환 기금에서부터)을 제시했는데도 그 대안을 수용해서 수정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입법한 건,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그런 행태가 의도적이라고 해야 할지 무능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판에 귀를 막는 건 악의입니까 무능입니까? 아니면 어중간한 생색내기입니까?

      4. 폭력집회든, 추모 분위기든, 네, 사건과 현상 전반을 보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항상 그런 억울함을 무시할 겁니다. 가령 집회현장에서 그 폭력이 순수하게 우발적이고 개인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고 상식적이라고 느끼신다면 그렇게 하셔도 딱히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그런 식의 관점이 가지는 맹점들이 너무 많아서요.
      다만, 저와 같은 관점에서는 그 집회에서 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그 집회를 '폭력집회'로 규정하고 경찰이 진압해야 할 대상, 도덕적으로 잘못된 존재로 규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는 굳이 저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에서는 '억울'해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그 친구분도.

      5. 기사가 왜곡되었거나 덧글이 선동되었다, 라고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있는 ^^님도 참 무섭게 보입니다. 제가 역으로 그것이 선동되었거나 왜곡되었다는 구체적 증거를 요구하시면 뭐라 하실 수 있겠습니까?

      6. 그리고 책임에 대한 논의와 왕적 지위에 대한 논의가 반대되는 것처럼 보여도, 저는 그다지 반대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잘못된 것임을 느껴서 쓴 게 아니구요.

      7.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차원에서,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하지 않고 권위 없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 노무현 대통령을 왕으로 추앙하는 분위기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정당해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죽으면서 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 라고 했던가요? 모호한 유서의 말들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바보'라고 주장하시려는 게 아니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자살 이후의 상황들에 대해 이런저런 예측들을 해봤을 게 당연하다는 말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를 해석할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긴 한 건지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 블로그 100명 발언은 웃으시라고 한 말이니까 웃으시는 게 맞습니다.

      2009.09.04 02:38 신고 [ ADDR : EDIT/ DEL ]
  20.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잘못된 지도자를 끌어내는 권리를 가진것은 우리 국민들이다!
    권위에 비굴해지지말고 실천투쟁으로 뜨거운 맛을 보여주자!

    2009.12.17 01:00 [ ADDR : EDIT/ DEL : REPLY ]
  21. 계삼선생님도 이 때 전교조 신문에 공현님께서 쓰신 글과 비슷한 점이 조금 있는 글을 쓰셨다가 협박 전화까지 받으셨어요 -_-;; 이 글을 읽고 제가 느낀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건 오해만 불러 일으킬 것 같으네요. 살면서 제대로 된 공부를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제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 굉장히 힘듭니다; 공현님께서 쓰신 글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2010.03.17 23:40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5. 28. 17:31
천주교인권위원회 뉴스레터 교회와 인권 2009년 5월 156호

 
[칼럼] 시인과 법

2009년 05월 27일 (수) 21:59:28 좌세준(인권위원, 변호사) chrc@chol.com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행복하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

시 인 김남주의 <시인>이라는 시입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 “네 벽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어둠뿐인” 광주교도소에서 종이와 연필이 주어지지 않아 빈 우유곽에 못으로 시를 쓰면서도 시인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을 볼라치면 세상이 다시 몽둥이로 다스려지는 듯합니다. ‘법’은 또 어떤가요. ‘법’ 축에도 못 드는 ‘고시’라는 놈이 법 중의 법 ‘헌법'에 나와 있는 국민의 건강권을 유린하더니, ‘마스크를 쓰고 집회하면 처벌한다’는 법을 만든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은 업무방해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니 구속이랍니다. 설을 일주일 앞둔 서울 한복판 재개발 철거현장에는 ‘법치질서의 확립을 위해’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습니다. 100여일이 지났음에도 희생된 가족들을 땅에 묻지 못한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5년입니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시인이 다시 살아온다면 유족들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한마디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법이지요 / 목에 걸면 그것은 / 부자들에게는 목걸이가 되고 / 가난뱅이들에게는 밧줄이 되지요”

요즘은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에는 그래도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것 같은데요. 시인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세상이 된 것도 아니요, 시인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해방 공간의 전위시인 유진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시인이 되기는 바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시는 그 다음에 써도 충분하다. 시인은 누구보다도 먼저 진정한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가 참 민주주의 세상이요, 그런 세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나서 시를 써도 늦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이상을 파괴하는 억압이 존재하는 한 시인은 언제나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전령(傳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와 민주주의의 통일 선언입니다. 그러하니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에도 시인들은 민주주의를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한’ 것입니다. 법이 아니라 총검과 몽둥이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 김남주 시인은 자신의 시가 억눌린 자와 민중들의 손에 건네져 읽혀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 눌린 /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차올라 / 각성의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 누르지 못할 노여움이 그들의 가슴에서 터져 / 싸움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를”

김남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더 좋은 세상’이 온다면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시인은 아예 필요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판, 검사나 변호사는 다 실업자가 되겠지만, 모든 이들이 ‘행복한’ 세상일 것이니 그런 세상도 한 번 꿈꾸어 볼만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상보다는 덜하지만 우선은 법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도 아니면 법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 그대로 ‘물처럼 흐르는’ 법. 결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거슬러 흐르지 않으며, 때론 굽은 모래톱을 곧게 펴기도 하고 “오뉴월 더운 날에는 농부의 시름 덜고 /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는” 고마운 물과 같은 법으로 다스려지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시인이나 우리들 모두 ‘그래도 행복한’ 그런 세상 말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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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4. 6. 17:17


아 글 제목 초 길어...

여하간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국청소년학생연합'에서 본 글 때문입니다.
전청련에서는 요즘 한~창 논쟁을 하고 있는데요.

뭐 생긴 지 얼마 안 된 조직(2008년 5월에 생겼고, 실질적으로 단체-조직의 틀을 갖춘 지는 정말 얼마 안 되었죠.)이다보니 이래저래 운영모델이나 방식이나 지향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들이 많을 테고 요즘 싸우는 것도 그런 '고비'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재미있게(어두운 욕망.-_-)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른 단체 사람으로서 그 논란에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고 보기에도 안 좋을 거 같아서 끼어들지 않고 있지만, 글을 읽다보니 아수나로에 관한 언급이 있어서 말이지요

아수나로에 대한 언급
: "아수나로 등의 단체들은 보면 알겠지만 평가하자면 아나키스트적이다. 그러다보니 단결조직된 학생행동조직체를 만들 수 없고, 그에따라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을 느껴 전청련을 단결학생행동조직체로서 끌어가려한다."



뭐 저게 전청련 전체 의견이란 것도 아니고 그냥 저 문장을 보고 나니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적는 겁니다. 즉 이 글은 전청련과 사실은 직접적 관련은 전혀 없습니다 ㅎㅎ
사실 예전에 버스 안에서 했다가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고 묻어버렸던 생각이랑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라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겁니다. 전청련 분들이 읽고서 혹시 참고하실까 싶긴 한데 뭐 그건 그 분들 개개인의 자유에 맡기고...

그래서 오늘 쓰려는 글은 '운동조직에서 민주주의와 관료제 또는 대의제의 문제' 뭐 이런 겁니다.
옛~날에 관련해서 인권오름에 '대표'가 '문제'다 라는 글을 쓴 적이 있긴 한데, 당시에는 청탁 받고 급하게 쓰느라 그리 정리된 의견을 낸 것은 아니었다지요.



*
먼저 아수나로가 '아나키즘'적이라고 칭해지는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지부'는 있는데 '지부장'도 없고, 전체 '대표'도 없고 '의장'도 없고 '위원장'도 없는 구조 때문일 것입니다.
'총회'나 '전체온라인회의'도 사실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시키는 '활동회원'이기만 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평의회 형태로 되어 있고 말이죠.
지부별, 또는 온라인 업무 관해서 '담당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담당'이 '직위'나 '명예'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귀찮은 일 해주는 사람 정도 인식이라서...

그리고 이런 운영을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 논리는 바로 '민주주의'입니다.(또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대의제의 폐해를 경계하고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정신에 입각하여,
일이 '위임'되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아수나로의 입장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상시적인 '대표'나 '~장'은 필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아수나로에서 활동회원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수나로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뭐 그런 원칙이랄까요.

--> 이렇게만 보면 굉장히 원칙주의적인 것 같죠?


*
뭐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래도 '인권운동'하는 우리인데 민주적이어야지" 어쩌구 하는 당위적 접근으로 얘기하긴 참 쉽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당위에 그다지 동의하진 않습니다.
'인권운동'하더라도 대의제나 관료제 할 수 있는 거지 뭐. 해선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데?  -- 뭐 이런 심정?

그래서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왜 손쉬운 피라미드형 구조 또는 '지부장' '대표' 뭐 이런 걸 둬서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는 구조 대신에 이런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는지 뭐 그런 것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의견(그러니까 현재 아수나로 같은 운영 방식의 장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생각들 같은 걸 적은 겁니다.




*
우리는 보통 실리와 명분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만
저는 '명분'이란 것도 결국 '실리'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라서요.
우리가 어떤 명분을 취한다면, 그건 그 명분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이렇게 '대표'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집행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단체가 커지기도 힘든 이런 시스템을 택한 데에는 나름의 실리가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
우선 첫 번째로 아수나로는 아직 그다지 덩치가 크지 않습니다.
아니 청소년(인권)운동 전반이 그리 덩치가 크지 않죠.
그래서 사실 아직 그다지, '관료제'라는 방식이나 '대의제'라는 방식이 딱, 필요한 건 아닙니다.
기껏해야 100명 남짓 정도이거나 100명 이내면 충분히 대의제를 취하지 않더라도 소통과 운영이 가능한 규모죠.
하물며 아직 수십명 단위인 아수나로는 어떻겠습니까.
한 1000명 단위가 되면 혹시 또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규모에서는 오히려 관료제적인 운영 방식을 취하는 게 비효율적입니다.
임기 다 되었다고 선거를 해서 교체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상시적으로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닌 부서들이, 단지 그 부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회의를 해야 하는 등등.
거기다가 '~~장'이나 '대표' 같은 직위를 놓고 명예욕에 따라 별 의미 없는 다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때그때 '~팀'을 꾸려가며 팀제로 운영하거나, 절차를 간소화하고 실질적으로 활동가들이 전부 되는 만큼 결합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
두 번째로, 경험적으로 볼 때 '덩치가 크고' '관료제화된' '대중조직'들에서 나타나는 폐해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전교조나 민주노총을 보면, '지도부'(중앙이건 지부건 지회건)와 그냥 조합원들 사이에,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까진 아니어도 '넘삼벽'(넘기 힘든 삼차원의 벽)이 있는 것 같더군요 -_-;
관료제-대의제는 때로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슨에 나온 말("우리가 대표를 뽑는 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야!")처럼, 그 결과 조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큰 거리를 벌려놓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덩치가 큰 '대중조직'이 된다고 해서, 우리 중 일부가 '핵심 활동가'이자 '간부'가 되고, 일부는 그냥 집회나 행사 있을 때 동원되는 '회원'이 되는 그런 조직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아수나로에 '활동회원'으로 적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기 삶 속에서 청소년인권에 관해 좀이라도 고민을 하고, 자기 생업에 바쁘더라도 여유 시간 중 일부라도 청소년인권에 관한 활동을 직접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길 바라지요.

전교조처럼 '전교조 같지 않은 전교조 교사'들이 많은 그런 조직이 되고 싶진 않달까요.

요즘 민주노총이 '식물조직'이란 류의 말이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가입되어 잇는 조합원이 몇만이건 몇십만이건, 그게 실제로 일정하게 공유된 인식 위에서 공동의 행동으로 조직되지 못하면 그 조직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할 수 없단 거죠. 그런데 관료제가 강화된 조직은 이런 식물조직이 될 위험성을 더 안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식물조직은 오히려 규모가 작은 살아있는 조직보다 못합니다. 기껏해야 조합원들이 내는 회비 덕분에 돈만 많달까요.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덩치는 크기 때문에 거쳐야 할 의사결정의 단계와 절차들은 많고, 근데 정작 죽어 있기 때문에 논의는 안 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따로 깊이 있는 토론 과정 없이 지도부 독단으로도 할 수 있는 기자회견이나 관성적인 작은 활동 같은 것들만 하는 괴상한... 말하자면 '돈많은 지도부만의 활동조직' 같은 게 될 수도 있는...?


아수나로는 이미 지금도 활동회원들 사이의 동일성이랄까, 생각의 교류랄까, 뭐 그런 걸 어찌할지 고민투성이인데 말이죠.
지부들 사이의 소통도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관료제-대의제적 요소를 조직에 도입하는 건 위험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보완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
전 아수나로가 '아나키즘적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뭐 결과적으로 현재 운영되는 형태는 다분히 아나키즘적이군요.

저는 '권력'이라는 게 아예 없는 관계라는 건 사실 전혀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수직적 관계가 많은 조직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수평적 조직, 뭐 그런 건 또 죽었거나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_-) 애매한 조직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수직적 관계가 없어야 하니까"라기보다는
"수직적 관계로는 활동회원들의 활발한 활동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공식화된 직위들을 만드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거죠.

언제나 실질적인 활동이 먼저고, 절차나 틀, 형식은 그 위에서만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절차나 틀, 형식이 실질적 활동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안 될 말이겠죠?

요컨대 저는 아나키즘적인 조직 운영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제가 아나키즘의 이상사회 구상에 동의하는 면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나키즘들에 100% 항상 동의하는 건 아니니)
제가 생각하는 지금 상황에 맞는 조직 운영이 결과적으로 아나키즘적인 운영인 뭐 그런 상황?

다른 아수나로 활동회원 분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요.




*
뭐 사실 딱히 아수나로가 반드시 어떤 직위나 대표나 이런 게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말이죠.

구체적인 방식 면에서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생각해야겠지만
만약에 덩치가 일정 이상으로 커질 것 같고 필요해진다면 직위라거나, 대의제-관료제적 요소를 일부는 도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요소를 도입하는 게 항상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민주주의도 형식으로 판별하기보다는 실제 그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어떻게 의견이 소통되고 반영되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이 언제나 대의제-관료제적 요소가 배제되어야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런 요소가 위험성이 있다는 건 항상 염두에 둬야겠지만요 ㅎㅎ

활동 분야별로 나누든가, 아니면 뭐 언론이나 소식지를 운영하는 부서를 따로 둔다든지,
뭐 아니면 지부 관리 문제상 지부장 비스무레한 걸 두거나
여하간 이런저런 요구와 결정들이 앞으로 활동해가면서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최소한 아수나로가 4~5개 이상의 지부가 안정적으로, 한 지부당 10명 이상의 활동회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활동회원들과 지부 사이에 의견-생각 교류가 활발히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활동회원들이 일정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과정을 확립하고...
뭐 그런 규모와 시스템이 갖춰진 이후에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뭐 사실 가장 이상적인 건 아수나로 뿐 아니라 아수나로와 긴밀하게 연결을 맺고 있으면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는 여러 수십명 규모의 청소년모임들이 생겨나고 그 모임들과의 네트워킹이 잘 되는 것일 테지만요.
그게 안되면 아수나로가 그자체로 일종의 대중조직...이라고 불릴 만한 천명 단위가 활동하는 정도의 조직이 되는 것도 하나의 길로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도 같기도 하고 쩝.


덧 : 아수나로 활동회원들 중에서(아 뭐 활동회원이 아니더라도 의견을 다실 수 있지만---) 이 글에 대해 다른 의견인 분도 꽤 있을 듯한데, 무플보다는 차라리 반대 의견이 좋아요 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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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4. 6. 12:50


전체적으로 그냥 재밌긴 한데(노래부르는 분들의 표정이 짱 =_=)

다만 '반장'보다는 '학생회장'이 더 급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 근신정학퇴학 14번"을 당하면 반장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좀 불편하다. 어떤 이유로 징계를 당한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전과1범, 집회시위에관한법률위반으로 전과3범, 이런 사람들과 위장전입, 금품수수, 뇌물, 이런 걸로 전과 4범, 이런 건 분명 다르지 않나.
(근데 '퇴학'당했는데 어찌 반장이지? 뭥미??!)

(그리고 추가로 광우병 쇠고기나 촛불집회 같은 이명박 정권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한 가사도 있으면 좋았을 것을)

영박[명박]은 정말 사람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한다.
실버라이닝의 한낱이 만든 '쥐를 잡는다' 랩도 녹음되면 곧 퍼뜨려봐야지 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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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3. 10. 00:28



열정세대 - 10점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양철북


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양철북 출판사.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2009년 2월 인쇄/발행.
정가 9800원.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등은
http://blog.peoplepower21.org/CivicEdu/21171
여기에서...





#
  나도 만드는 일을 약간 거든 바 있는 『열정세대』를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농성장에 앉아서 다 읽었다.

  참여연대에서 친절하게 우편으로 보내준 『열정세대』를 펼 때, 참여연대 홍성희 씨에게 이 책 만드는 일 때문에 만났을 때 빌렸던 DVD를 아직도 돌려주질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일단 그건 뭐 그렇다 치고(……) (출판기념회나 뭐 그런 게 있으면 그때 돌려줘야겠다;)




#
  우선 제목을 보고 좀 닭살이 돋았다. “열정세대”라.
  “청소년NGO활동 가이드” 이런 딱딱한 제목보다야 낫긴 하지만.

  “열정세대”라는 말이 80년대스럽다거나 구닥다리스럽다거나 뭐 그렇게 느낀 건 아니다.
  오히려 “열정세대”라 그러니까 무슨 최근에 지하철 같은 데서 나오는 젊은이들이여 도전정신을 가져라, 뭐 그런 공익광고 같은 느낌이 든다. 일종의 체제내적인 세련됨이랄까.
( 어쩌면 약간 참여연대 사무실 건물 같은 느낌? -_-; 흠 그거랑은 또 좀 다른가... 어쨌건 책 내용을 보면서도 좀 참여연대가 위치한 정치적 포지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부 글 같은 경우는 초안과 다르게 좀 덜 빡세게(??) 수정한 거란 이야길 언뜻 들었던 듯도. 그게 참여연대가 부담스러워 한 건지 양철북이 부담스러워 한 건진 모르겠으나-)



  그런데 과연 지금의 청소년들이 “열정”을 자기 삶의 중심에 품고 있는 세대이긴 한 걸까?

  아니, 그래, 그 ‘청소년들’이야 어떻든, '이 책에 나와 있는 청소년들'은 “열정”을 가슴 속에 품고 있긴 한 걸까?
  내 룸메이트이자 이 책의 첫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따이루의 경우에, 이 녀석은 과연 그 가슴 속에 “열정”이 넘치고 있나?


(따이루 사진 -_-)

  운동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열정으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대개 운동이라는 게 일종의 운명적인, 아니면 숨쉬는 듯한,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시작하고 계속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일반론적으로, 보편적인 정의라거나, 열정이라거나, 그런 건 사후에 정당화하고 갖다붙이는 것만 같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그렇기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이고 만다.

  애초에 “열정”이라고 하면 뭔가 열혈소년만화스럽거나 장인 정신이나 프로 정신,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꿈’ 같은 말이 등장해야 할 것 같잖아!!!!!!



#
  책 머리글에는
  “우리가 만난 십대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싸워서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옳다고 판단하면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라고 붙이고 있지만,

  글쎄 오히려 민주주의를 싸워서 쟁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온 여러 사람들이라고 느꼈는데...;
  이런 식으로 미시적으로, 생활 속에 이미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약간은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라는 부제는 꽤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열정" 쪽은 잘 모르겠지만...



#
  이 책은 2008년 촛불집회 정세를 배경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은 촛불집회와 그리 큰 상관이 있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촛불집회에서 주역이었던 십대들을 탐험하고자 한다", 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책 내용은 촛불집회와는 별 상관이 없는 ‘NGO 활동’을 하는 십대들이 더 많지 않나 싶다.
  뭐 그런 것이 지금의 십대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째서 촛불집회가 가능했나 하는 촛불집회의 배경과 십대 내부의 동인을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한 공통점, 단일한 성격을 지닌 집단으로서의 십대(사회적 취급이나 규정이 아니라)라는 게 과연 성립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나로서는 그런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 쩝.


#
  그리고 촛불집회 관련 챕터에서는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던 건 역시 여기서 인터뷰한 청소년들은 ‘청소년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한 게 아니라 그냥 ‘국민’으로서 촛불집회를 보고 참여했다는 느낌이다.
  촛불집회 안에서 청소년들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은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긴 아마도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의 다수가 그럴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촛불집회의 주역이 십대였다 청소년이었다 라고 말하는 건 미묘한 오류가 있다. 촛불집회의 주역 또는 촛불집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나이가 10~20대 정도의 ‘국민’ 또는 ‘시민’이었다.
  기회가 닿으면 2008년 '촛불집회'에 관한 내 생각들을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
  끝으로 좀 읽으면서 구성상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한 명씩 관련된 사람들이 부연하는 글 같은 것을 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게 좀 글 청탁할 때 전달이 잘못된 것이거나 구성할 때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다.

  가장 문제가 있는 챕터는 “유쾌, 상쾌, 통쾌한 정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YMCA 창숙님과 참여연대 지현님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보통 이야기를 하거나 소개를 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다른 챕터와 다른데,
  그 대화의 내용에서도 실제 활동에 대한 소개나 이야기는 참여연대 이야기가 더 많고 정작 창숙님의 활동은 많이 이야기되어 있지 않다.
  뒤에 붙은 참여연대 글 같은 경우는 그냥 참여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소개하는 내용에 가깝고, 정작 창숙 님의 정치적 활동이나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 정치적 권리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행복한 학교 만들기”의 경우에는 윤지님 이야기는 아주 좋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희망 박철우님의 글은 그냥 희망 단체 소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희망 활동, 성격 등 소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같이 활동하면서 종종 얼굴 보는데 이렇게 썼다고 해서 화내시진 않겠지 -_-;)

  연주님의 언론 활동에 대해 지식채널e의 김진혁 씨가 쓴 글은, 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연주님에게 조언을 하는 형태로 마무리를 하고 있어서 그래도 음, 하는 정도?




#
  그렇다고 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챕터들 말고 다른 이야기들은 부연하는 글들과 본문 이야기들 사이에 호응이나 조화가 부자연스럽지 않다. 전반적인 내용도 알차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활동을 알고 싶은 분들, 이런저런 영감이나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
  따이루, ‘품’, 리타님, 리인님, 윤지님, 연주님, 강강수월래 등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읽어볼 만하다.


  단지, 솔직한 내 욕심으로는, 청소년들의 NGO 활동 이야기, 이런 식으로 따로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것뿐. 청소년들의 그런 활동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사회면 좋겠다는 거다.

  “열정세대”라는 제목이 껄끄럽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지금의 청소년들, 십대들을 너무 특별하게 의미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내가 참여한 부분은, 간접적으로는 청소년 언론 활동이나 학생인권 관련 활동에 대해 내용 구성 전반을 놓고 조언을 한 것,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제일 뒤에 실린 이 사진 속 청소년 단체 리스트 초안을 뽑는 작업을 같이 한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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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성희

    공현~~~ 고마워요~~~ 곧 봐요~~~

    2009.03.11 07:35 [ ADDR : EDIT/ DEL : REPLY ]
  2. 기사에서 배울 많이.

    2013.01.23 16:3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9. 8. 12:29



옛날에 썼던 글들 짜깁기 혹은 재정리에 가까운 글들이네요;

흠...

시민운동가 대회에 낼 원고로 쓴 거예용.

총총.







촛불소녀, ‘도전’과 ‘희석’의 줄다리기




잠시 옛날이야기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라거나 사회 참여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혹은 청소년들의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단체들이 종종 1920년대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이라거나 1960년의 4.19, 1980년 광주,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등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운동들이 과연 얼마나 유의미했는지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과연 청소년들의 권리가 인정되거나 쟁취되었는가? 혹은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들(만)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공론화되었는가? 항일독립이나 민주화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삶과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청소년들이 이야기하고 요구안으로 내걸었던 교육과 학교와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는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이다.
  ‘성인’들의 역사는,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이나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내걸었던 교육에 대한 요구,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요구 등은 잊어버렸다. 그들의 운동은 단지 독립운동이고 민주화운동일 뿐이었으니, 사학재단의 비리와 교사의 체벌폭력까지도 독재정권과 연관 지으며 투쟁했던 80년대 고등학생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묻혔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묻힐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조건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묻혔다는 건 확실하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선명한 주장 없이 청소년들이 거대담론(민족독립이든 광복이든) 속에 뛰어들면서 했던 정치적인 활동들이,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나 지위를 증진시키는 데 명확하게 기여한 것 같지도 않다.




다시 지금 이야기 : “촛불소녀”

  그리고 나는 2008년 촛불집회의 현장에서도 그런 복잡한 문제를 생각한다. 광우병 이슈에 묻혀서 청소년들의 다양한 요구들이 묻혔다는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그래도 일단은 촛불집회 자체에서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많은 사람들이 5월에 촛불집회를 처음에 시작한 주역은 청소년들이었다고 말하며, 청소년들이 역사적 주체이고,(독립운동, 4.19, 광주, 민주화운동 등등의 양념과 함께)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여기서 ‘어른들’이나 ‘비청소년들’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이 이야기한다. 오죽하면 청소년들까지 나오겠느냐고 말하고, 청소년들이 기특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어른들이 해주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집회현장에는 아이들/청소년들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혼재해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그들을 대상화하려고 한다. 내 눈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과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축소시키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예외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이를 기존 사회의 틀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두려는 마음들이 엿보인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청소년들에 대한 태도는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수적이다.
  ‘미성년자’(차별적인 표현이다.)는 부모 동의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촛불집회 웹홍보물, 밤 10시 이후에 ‘미성년자’는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방침,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나눔문화의 종이피켓과 집회현장에서의 구호들, 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는 백안시하면서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지지하는 ‘여론’, 등교거부를 포함하여 청소년들의 행동을 알리는 홍보물을 삭제하는 안티명박카페와 정책반대시민연대 카페 운영진, 예비군이라고 칭하는 남성들의 여성과 청소년 등은 뒤로 물러나라는 폭력적인 행동 방식들, 집회가 경찰과의 충돌로 좀 위험한 상황이 될 거 같으면 가끔씩 다가와서 말을 걸며 위험하니까 그만 집에 가라고 ‘반말로’ 말하시는 어르신들, 연행자들 중에서 ‘미성년자’는 석방하라는 구호들, 연행되는 여성 청소년의 사진에, 사실과 다르게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라는 캡션을 다는 신문 기사들(이건 청소년과 여성이 중첩된 보호주의의 발로일 것이다.), 초등학생 연행에 분개하며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대상화는 완고했다. 거기에 대한 청소년들의 직접적인 ‘도전’조차도 흡수할 정도로. 마치 청소년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도전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는 듯이. 밤샘시위를 할 때 만들어진 토론의 장에서 한 청소년이 청소년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쓰는 사례라거나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구호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그 발언에 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박수와 환호였다. 박수와 환호가 무슨 문제냐고? 그 박수와 환호가, 그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년이 나서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응원하는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눔문화의 구호를 패러디해서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라는 문구를 락카로 새기곧 다녔지만, 그 문구를 본 한 촛불집회 사회자는 “자신들이 지켜줄 테니 어른들은 마음 놓고 촛불을 들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해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자.”라고 발언했다. 몇몇 사람이라도 그런 청소년들의 문제제기에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촛불소녀는 촛불집회 속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아이콘이었다. 간단하게 해석하면, 촛불소녀는 청소년들(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촛불집회의 공간을 열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또한 촛불소녀가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언되고 다양한 표정의 이미지들이 만들어진 것을 볼 때,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정치적인 도전을 희석시키는 많은 지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촛불소녀는 학교의 두발규제와 복장규제에 딱 맞는 머리 모양과 단정한 교복을 갖춰 입고 있으며, 순수하면서 또 당찬 ‘소녀’의 이미지를 어필하고 있었다.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으며, “촛불”이라는 상징(비정치적인, 순수한, 소망 기타 등등의 표현들과 연결되는)과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지켜줘야 할 약자, 혹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여성) 청소년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촛불소녀’를 만들어서 유포한 나눔문화가 촛불소녀를 만들기 전부터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를 구호로 띄웠다는 점, 또한 촛불소녀 기획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글 중에는,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며, 청소년들의 행동을 깜찍하다고 표현하는, 시선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글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촛불소녀”라는 상징의 내용과 뉘앙스를 받아들이는 그 속에 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주의적/차별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촛불소녀 자체의 죄이건, 아니면 사회적 현실의 죄이건.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도전과 이 사회(청소년들 자신도 포함한)의 희석이 만난 결과물이며 줄다리기 과정에서 나온 흔들리고 변화하는 아이콘이다.




뒤늦게 설명하는 “왜”

  여기까지의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나열한 여러 사례들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청소년 보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거나 그런 인식들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건데 뭘 그리 까칠하게 구는지 불쾌해 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문제만으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위를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에 일정한 제한을 두면서 통제하려고 하는 방식(밤늦게 들어가라고 하는 거라거나, 등교거부-휴교시위에 대한 반감이라거나)들은 너무나 한계가 많다. 딱 잘라 말해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증진시키고 청소년들에게도 해당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물론 지금의 한국 사회는 비청소년들에게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다.)를 실현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계속 억압받아 왔기에 2000년대 이후로 종종 드러나고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들의 행동이 지금 시점에서 특별히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한다면, 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을 비록 지금까지는 부당하게 유보되어 왔지만 당연한 것, 잊혀진 권리가 자신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여기서 “잊혀진”이란 표현은 물론 비유이다. 권리는 되찾아지기보다는 창조된다. “잊혀진”이 이중피동이며 “잊힌”이 옳다는 딴지는 보류한다. “잊힌”보다는 “잊혀진”이 더 멋있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은 분명 정치적(사회적, 경제적) 약자이다. 그러나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해주고 약자이기 때문에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어떻게 약자가 아닌 지위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보호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한계이다. 지금, 청소년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도전이 필요하다. 이 사회의 희석과 한계선 긋기와 충돌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감히 “청소년은 촛불소녀가 아니다”라는, 자칫하면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뉴라이트가 쓴 것처럼 보이는 문구를 택할 것이다. 청소년은 촛불소녀가 아니다. 청소년은 촛불소녀의 프레임과 이미지를 넘어 더 나아가야 할 존재이며, 훨씬 더 정치적인 존재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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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이팅~

    2008.09.08 18:19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리고 촛불의 이미지이기도 했지

    2008.09.08 18: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촛불의 이미지는 '정치적 순수성'('비정치성')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강조되지 않나?
      아 청소년 자체에 그런 이미지도 있군. 흠... 어디를 강조하냐의 문제인가

      2008.09.17 18:46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7. 16. 12: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민주권은....(;)

휴 -_-

촛불이 꺼져간다, 꺼져간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저력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의 문제-

음... 역시 민주당을 비롯해서 야당들이 싹 국회의원 사퇴를 해서 국회를 정지시켰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그냥 비만 안 오면 좋겠다. 저번 주말에는 비를 쫄딱 맞으며 집회장을 헤맨...


(근데 홍보물에서 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깃발은 좀 거슬린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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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6. 18. 18:53
재수강은 이명박 시키자!


  우리는 이 땅의 수백만 대학생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할 생각은 코딱지 만큼도 없으나, 그래도 적어도 몇 명의 대학생들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이 글을 쓴다. 결론은 간단하다. 재수강은 이명박이 하게 하자! ㅠㅠ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한 우려와 대운하를 비롯한 각종 정책에 대한 반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문제, 정부의 '소통'의 문제, 경찰폭력의 문제, 언론의 문제 등으로 계속 확대되면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장마 기간이 시작되었고 촛불집회 참가자 수가 줄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나, 이 촛불은 그리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초기에는 참가자들 중에 청소년들 비중이 컸으나, 5월 중순을 지나면서 대학생들과 20대 이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촛불집회에, 우리 또한 대학생으로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참여해왔다. 그러나 비극은 이명박 정부가 사람들의 외침에 닭장차도 모자라 명박산성까지 동원하며 귀를 막고 버티고 있었다는 데 있으며, 6월은 대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는 데 있다.

  이번 학기 학점을 살려야 하는지, 아니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함께해야 할지 갈등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고, 정부가 여전히 귀를 틀어막고 있는 상황에서 나만 살겠다고 학점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학점을 추구하는 대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유권자이며 이 땅의 시민이었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총학생회들이 결의하여 시험 거부, 또는 시험 연기를 결정했다고 하던데,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 2000년대에는 그럴 만한 배짱과 실력과 의지를 지닌 총학생회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일종의 기말고사 보이콧을 선택했다. 우리는 기말고사 시험에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혹은 기말고사 공부를 하기보다는 집회에 나가면서 최소한의 공부만 하고 시험을 보는 길을 택했다. 우리가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노트 필기한 것과 교재를 들고 가서 집회장에서 밤을 새며 나름 밤샘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런 걸로 때워질 만큼 요새 대학교 시험이 만만하지 않았다. 뷁!!!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한 소극적 기말고사 거부의 결과는 장렬했다. 이제 우리 중 몇몇은 이번 학기에 때아닌 F 몇 개를 각오해야 할 지경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학점 평균은 학자금 대출이나 장학금신청 등에서 최소 기준으로 제시되는 점수도 넘기기 어려운 지경이다.

  우리는 이 책임이 1차적으로 우리들이 거리로 나가고 밤샘시위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막장 무개념 정치를 한 이명박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한달 동안 계속된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귀를 틀어막고 있으며 종래에는 우리가 소극적 기말고사 거부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올해 대학생 학력 저하의 주 원인은 이명박 정부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장한다.
  우리의  성적은 이명박이 책임져라. 재수강은 이명박이 직접 해라. 그게 싫으면 이명박 정부는 즉각 우리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라.
   이명박 정부의 무개념에 희생당한 우리의 2008년 1학기 성적에 조의를 표하며, 더 이상의 무개념은 용납할 수 없다.


대학생 공현

2008년 6월 18일 수요일


동의하시는 분들은 퍼날라주시길 -_-;;;

리포트 쓰고 써본 글입니다. 에휴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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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처럼 이번에 졸업해서 재수강 할수도 없는 이는 어쩌죠? ㅠㅡㅠ

    2008.06.18 19:16 [ ADDR : EDIT/ DEL : REPLY ]
  2. 퍼갈게

    2008.06.19 06:15 [ ADDR : EDIT/ DEL : REPLY ]
  3. 저도 퍼감다~

    2008.06.19 16:36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거 투고해달라능...

    2008.06.21 01:5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