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1. 4. 30. 23:42

‘운동사회 나이주의 깨기 활동’ 제안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함께 제안하는 글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청소년운동이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들과 폭넓게 연대하고 있는가 물어보면, 참 “글쎄요…”라는 대답만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가 힘이 딸려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못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싸가지 없음’도 한 몫하고 있을 겁니다. 솔직히 아수나로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라고 하면 까칠한 애들, 싸가지 없는 애들이란 인식이 적지는 않을 겁니다. 대표적으로 초면에 반말질하는 꼰대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런 거에 사사건건 문제제기하는 게 얼마나 싫겠어요. “나이도 어린 게”.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싸가지 없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동사회의, 어른들의, ‘감수성 없음’, ‘개념 없음’의 문제지요. 운동사회의 ‘나이주의’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나이주의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적은 사람들을 더 ‘아랫사람’ 취급하고, 또 운동의 자원도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인식과 구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한 번, 정식으로 본격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실 우리가 그동안 그런 문제가 있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만 대처해온 것도 사실이지요. 슬슬 이게 ‘우리’ 문제가 아니라 ‘니네’ 문제라는 걸 확실하게 까발리고 치는 게 어떨까요? 예, 마치 ‘성폭력’이 그 여성의 행실이나 지나치게 까칠하고 민감한 여성들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되던 시대에서, 최소한 운동사회 안에서 ‘성폭력’이 문제라는 공감대에 이르게 된 과정처럼 말이지요. 1999년 ‘컵깨기 행사’ 같은 이미지도 같이 떠오릅니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같이 가야 할 겁니다. ① 선언문 발표나 칼럼 써서 기고하기 ② 퍼포먼스나 액션 ③ 뱃지 만들어서 달고 다니기 등등. 우선은 나이에 따른 ‘반말’, ‘하대’ 문제부터 접근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초면에는 나이에 상관 없이 존댓말을”, “반말과 존댓말은 친소(친하고 안 친하고)를 표현하는 것이지 위계를 표현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같은 취지로요. 물론 그 외에도 나이에 따라서 맡는 직위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일단은 그게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가장 상징적으로 첫 말문을 열기 좋은 주제인 것 같아요.

  ‘연대’가 단순히 서로에게 몸을 대주는 게 아니라면, 우리 입장에서 ‘연대’란 것은 우리의 정치와 감수성이 다른 운동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은 평화적이고 화기애애한 방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일종의 도전이자 투쟁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적극성을 가지고 평등한 ‘연대’의 길을 열어 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냥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게 있다더라.”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직접 우리 입장을 들이밀기 위해서, 또 하나의 투쟁을 제안합니다. ‘운동사회 나이주의 깨기’를. 여기에 공감하신다면 먼저 계획부터 같이 짜볼까요? ^^


2011년 4월 30일 공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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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지를 표현하는 부분은 중간쯤이지만... 사실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마지막 문단.

    2011.04.30 23: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진냥

      이 글에 동의한다는 차원에서
      우리도 얼렁 반말하는 사이가 되어야 할텐데요..ㅋㅋ
      +나 담주에 서울가는데 한번 볼 수 있었음 해요..

      2011.05.01 00:07 [ ADDR : EDIT/ DEL ]
  2. 나이주의보다... 엘리트주의 먼저 제거했으면 싶어요. 운동판 꼰대들은 경력운운, 시위참여횟수 운운, 성과운운...뭐 하다가 교도소 다녀온것도 경력이고... 동성애자 운동권에선 커밍아웃한게 훈장이니깐... 난 그런것들이 더 역겨와요.. -자주 공현님 티스토리 지나가는 조곤올림-

    2011.05.01 02: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떤 노동운동 연사분의 약력에 모모집회하다가 "교도소 복역"이란게 떡하니 있더군요. 또 화염병 만드는걸 아주 자랑스레 말하고, 죽창의 각도는 이래야한다는 둥...법치도 무시하면서 기업보고 노동법 지키라고...^^;; 어이없다는...

      2011.05.01 02:26 신고 [ ADDR : EDIT/ DEL ]
    • 청소년운동가들 마음을 많이 공감하고 이해하는게.... 저도 18,19살부터 집회 시위현장에 있어서..그런말 많이 들었어요. 보통 나이주의+엘리트주의가 섞인 비아냥인데. "아직 어려서 운동경험이 없어서 미숙하네. " 어떻게보면 별뜻없어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느낄 수 있거든요. 사실 동료로
      생각하진 않더라구요. 마냥 귀엽고
      기특한(?)존재였죠. 그런대접 받기 싫은 객기에 편한복장 추구했는데...거의 정장차림에 명함파서 돌렸던 기억.. 그땐 "안녕"이 "안녕하세요"가 되더군요. (운동도 비즈니스다.)란 생각이 들던 경험.

      2011.05.01 02:34 신고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노동운동 내부의 나이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약력에 교도소 복역을 넣는 것과 엘리트주의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교도소 복역과 같은 투쟁경력은 그분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훈장이고,상처고,자랑거리입니다. 그런 것마저 '엘리트주의'로 몰아세우면 그분들께 뭐가 남나요? 피억압과 피탄압을 자랑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탓해야 할 것이지, 그분들에게 그걸 '자랑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요?

      2011.05.06 15:59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만약 그런 자랑이나 추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시위경력이 적은 활동가에 대한 배제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물론 '엘리트주의'나 '경력주의'(적절한 이름은 아닙니다만)라고 비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헌법에 나와있는 '법치주의'와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결코 같은 차원에서 얘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법은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고, 지배층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안다면) 이해하기 편해집니다. 지배층은 '법'을 피지배층의 저항과 반란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구속,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 등등. 하지만 노동법의 경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법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지배층에게 유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 책은 전태일 열사의 무기였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법치주의는 지배층의 언어이고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피지배층의 언어입니다.

      2011.05.06 16:07 [ ADDR : EDIT/ DEL ]
    • 까만이

      그래서, 만약 '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를 규명하지 못할 바에야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에게 '법치주의를 지켜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연 지배층이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서 법을 어기는 것과,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의 치열한 투쟁 과정에서 법을 어기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교도소 복역, 죽창사용, 화염병 사용등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 과감히 말하건대, 교도소갔다오고 죽창을 들고 경찰에게 맞서고 화염병을 던지는 일이, 투표일날 진보정당 후보한테 한표 찍는것보다 훨씬 가치있고 아름답고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죽창사용,화염병투척 등은 몰라도 교도소출입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시는 시각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교도소에 갇혀있는 수많은 양심수와 구속노동자와 노동운동가들이, 대체 왜 '법치'라는 기준에 재단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지배층의 입맛에 따라 법을 정하고 재판을 하고 집어넣는데, 그 교도소를 갔다왔다고, 그걸 좀 자랑했다고 해서 엘리트주의라고 비난받아야 합니까? 법을 어겨서라도 생존권을 쟁취하겠다는, 숭고한 일을 그렇게 조롱하실 수는 없는 일입니다..

      2011.05.06 16:17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불법투쟁경력이 있는 노동자들을 그런 시각으로 보시는 건요, 마치 맨날 맞고사는 약한 아이가 어느날 힘센 아이에게 대들었는데 '약한 아이도 때렸으니까 똑같다'라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불법이 있고 저런 불법이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반복하자면 노동운동가들과 노동자들에게, 투쟁경력은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경력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좋지 않지요. '역겨웠다'라고 표현하신 그런 부분들에 대해 비판하시는 게 더 좋을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본문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네요. 나이주의 깨기 활동에 대한 제안글에 이런 댓글을 남겨서 공현님께 죄송합니다. 저도 한 청소년의 입장으로서, 앞으로 수없이 겪을 운동의 현장에서, 운동가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나이주의 깨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곤님께 단 댓글들은, 첫번째와 두번째 댓글에 대한 얘기입니다. 세번째 댓글에는 공감합니다.

      2011.05.06 16:32 [ ADDR : EDIT/ DEL ]
    • 까만이님께. 부족한 제 식견에 따끔한 지적감사합니다. 우린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격지심을 거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나이를 먹고 더 많이 성찰하면서 깨달아가기에 과거를 무기로 삼지 말아야함을 알지만 그래도 하나의 예로서 제 이야길 합니다. 동성애자라서 많이 얻어터지고 다닙니다. 커밍아웃해서 더욱 주변에 적이 많지요. 저에게 염산테러를 한 사람을 찾아가 뼈마디 마디를 분질러놓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종종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대응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저는..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혁명주의자가 아닌, 잘해봤자 개혁주의자 정도라서 까만님과 의견이 다른것이므로 조롱의 의미는 아닙니다. 제 시각에선 당연히 그리 보이고 생각될 뿐이죠.저는 법이 지배계층의 권력도구로만 쓰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남용으로 분명 억울한 희생자도 발생하지만 법이 없어서 더 억울한 인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의 이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의 차이이죠. 윽박지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2011.05.07 01:58 신고 [ ADDR : EDIT/ DEL ]
    • "나 이만큼 열심히 살았어요. 나 이만큼 아팠어요. 좀 알아주세요." 제가 제 과거를 매번 강의때마다 하나의 최악의 사례로 들려줄때의 제 자신의 심리 이면엔 그런것이 있더군요. 까만님, 저에게도 노동운동가들에게도 염산테러나 교도소복역보다. "지금 여기에 맞서며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큰 훈장은 없을겁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성과를 냈다."는 자랑 좀 하는게 뭐가 어때. 그 마음이 정말 간사하다는걸 깨달았을때 무척 부끄럽더군요.

      2011.05.07 02:10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제 "염산테러"나 어떤 노동운동 연사의 "교도소 복역 약력"은 엘리트주의인거 같습니다. "너넨 이런거 못하지? 이러고도 살 수 있겠어? 난 이렇게 살때 (용기없는)너넨 뭐했어?" 같은...그런 엘리트주의, 운동가들이 없었으면(분명 그들의 행동은 귀감이 될만하지만...) 미천한 인민이 이렇게라도 살수 있었겠냐는 그 묘하고 역겨운 운동가들의 자격지심과 엘리트주의와 우월감들이 무척 싫더군요.

      2011.05.07 02:16 신고 [ ADDR : EDIT/ DEL ]
    • 무튼 까만님, 저는 서울대나온(많이 배웠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어떤 운동가의 계몽주의에 입각한 선동성 발언도 싫어하고, 운동판의 터줏대감이랍시고 곤조부리는 (많은 경험을 했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것도 싫어서요. 존대 안했다고 혼나는 것보다 " 경험이 없어서 모른다."란 소리가 더 문제 많은듯하여.. 쓴것일뿐 조롱의 의미는 아니었답니다. 저의 저항은 18살의 노동절의 노동자 시위에서 부터였거든요. 노동운동판은 조금은 아날로그를 지양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느껴요. 저는요.

      2011.05.07 02:27 신고 [ ADDR : EDIT/ DEL ]
    • 까만이

      사실 방금 위에 제가 조잡하게 써놓은 것들이, 바로 어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는 제 얇디얇은 종잇장같은 식견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생각의 차이를 거세하고 조곤님을 윽박지르고자 함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구속재벌은 없고 구속노동자가 수백명에 이르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 분노 때문에, 조곤님의 댓글에 반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법의 얘기를 지나쳐서, 노동운동과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짧은 제 느낌을 조잘대보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공현님이 주장하신, 조곤님이 경험하신 이른바 '엘리트주의' 또는 '경력주의'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운동경력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노동운동가들과 뭔가를 함께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집회장에 나가면, 운동가가 아닌 나이 지긋하신 노동자분들이, 제 어깨를 두드려주시고 반말을 하시고, 그런 건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집회장에서 연사로 나오신 분들이 그렇게 경력을 자랑한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패악들, 역겨움들을 경험하신 조곤님께 제가 감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곤님의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그런 문제의식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은 자랑할 수도 있지 않냐, 그런 자랑이 정말 비겁한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 거기에 있어서는 조곤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과 체화의 문제이니깐요.
      다만 '많은 경험을 했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는 '많이 배웠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보다는, 약간은, 조금은, 쬐~끔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 않냐.. 하는게 솔직한 제 생각입니다. 말씀하셨듯이, 귀감이 될만한 행동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자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이 제1차적 문제이기도 하고.. 물론 운동을 통해 그런 폐단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거겠지요. 다만, 이해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온정주의도 아니라,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구속을 당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구속경력이 자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선차적으로 이해하자는 겁니다. 그런 이해 없이 '경력주의 몰아내자'... 이 구호는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력주의 내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의 구속노동자, 구속노동운동가들에게도요..

      2011.05.07 20:50 [ ADDR : EDIT/ DEL ]
    • 까만이

      윽박지르는 것처럼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솔직히 불법,불법,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를 낙인찍는 시선을 평소에 많이 봐와서인지, 약간 흥분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조곤님이 스스로에게 아플수도 있는 경험까지 얘기하시며 반박에 대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우선 남기신 첫번째 댓글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짧게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맞습니다. 법에는 '권력의 남용으로 분명 억울한 희생자도 발생하지만 법이 없어서 더 억울한 인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의 이점'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태일 열사의 예시를 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의 본질, 그러니까 법이 왜 만들어졌나 하는 성격에 대해서는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한진중공업에 다녀왔습니다. 수십년간 노조에서 활동을 해온 노동자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청업체의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면 대기업들이 아예 그 하청업체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취직 못하게 하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해도, 법으로는 그걸 처벌할 방법이 없드랬습니다.
      그런데,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채길용 문철상 지부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살아야 한댑니다. 이들은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하고자 했는데, 그게,크레인 위에 올라가는 행동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지 않을수 없지 않습니까? 살기 위해서는요? 법을 지키고, 투쟁하지 않고, 순순히 해고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혁명주의자이건 개혁주의자이건 상관없이, '법은 공평하지 않다'는건 솔직히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애초부터 법이 불평등하다면, 정당한 방법을 행사해도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는 나라라면, 때로는 비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야 하는 나라라면, 왜 그 '법'을 지켜야 하는지요..
      님과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이 세계는, 이 세계의 구조는 공평한가 그렇지 않은가'인것 같습니다. 사실 노동자들의 불법 투쟁들은 단순한 개인적 복수의 차원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억압받는 이유는 이 사회의 구조가 불공평하고 불평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억압을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면, 사장을 죽이거나 그랬겠지요. 하지만 이땅에서 구속되어온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이 해온 것들은 무엇이냐? 업무방해, 공무집행 방해, 집시법 위반..... 이게 대체 사람들에게 얼마나 피해가 간다고, 감옥에 쳐넣고 콩밥을 먹이는 겁니까. 이게 저 지배자들이 해온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니잖아요. 처절하고 눈물나는 저항이죠..
      다 안지키는 법따위를 지켜서 손해보느니 차라리 법을 어기고 만다. 단순히 이런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투쟁을 해도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입니다. 무슨 특별히 불법행위를 일부러 하려고 한게 아니라, 바로 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행동을 했는데도, 불법으로 잡아넣는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그리고 경영진이 자기들 이윤을 위해,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로 정리해고를 해도, 그래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 십수명이 자살하고 그 아내가 유산을 해도, 그건 '합법'입니다. 근데 거기에 항의해서 계란 좀 던지고 페인트탄 좀 던졌다고 붙잡아서 경찰서로 연행해 가는게 이 땅의 현실입니다. 그 잘못의 크기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데, 사람을 죽이는건 저자들인데, 왜 우리만, 왜 우리가 불법이 되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2011.05.07 20:52 [ ADDR : EDIT/ DEL ]
    • 까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맞서며 살고 있다" 이 말은 참 귀감이 되네요. '자랑'들은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그것은 결코 숭고한 행위가 아니죠. 지금 여기에 맞선다는건, 참 그 자체만으로 위대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요. 염산테러에 관련한 조곤님의 이야기,..에 대해서요. 제 생각입니다만, 그런 것들을 드러내는 것은 '경력주의'가 아니에요. 전혀 듣는 사람에게 역겹지 않고, 자격지심도 아니고 엘리트주의도 아니고 우월감도 아니잖아요. 그걸 드러낸다고 조곤님한테 뭔가 큰 이익이 되는것도 아니잖아요. 스스로의 비밀스런 아픔을 얘기하고 공유하는 것을, 일부 노동운동가들의 '역겨운' 행동 따위와 동일시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공감은 인간의 아름다운 능력입니다. 경력주의 운동가들이 은근슬쩍 요구하는 '존경'과는 아예 그 급이,차원이 다른..

      주제넘게 잔소리한것처럼 느끼셨다면 죄송해요, 단지 선의의 표현입니다.

      아, 공현님 블로그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주제를 확장시킨 것 같아, 공현님께도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__)

      2011.05.07 21:17 [ ADDR : EDIT/ DEL ]
    • 하청업체 노조에 대한 탄압은 매우 가슴 아파요. 특히 잔금을 주지않고 채권등으로 지급하는 대기업의 행태.힘이 세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고있는 행위에 대해서, 마음아프고 그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수주의자이니까. 죄송하고 속상한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까만이님의 설명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더이상 논란을 만들지 않고 싶어서. 이쯤에서 끝내기로 해요.

      2011.05.07 21:26 신고 [ ADDR : EDIT/ DEL ]
    • 때때로 나의 정당한 행동이 전혀 관계없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피해가 되기도 할때. 두 문제를 달리 결론짓고 해결해야 한다는걸 이젠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전 노동집회에서 더이상의 분신자살이나 영정사진이나 그밖의 폭력들, 전경을 희롱하고 자극하는 일체의 행위들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행동이 억울하고 가슴아픈 인민의 마음을 보듬는 일로 인식되는 것에 조금은 회의적입니다. "오죽하면 그랬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회가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 행동들에 정당하든 정당하지않든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2011.05.07 21:39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는 반말 존댓말의 구분이 그냥 동아시아의 문화인 줄 알았는데 중국어에는 그런 게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무튼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나이주의를 어떻게 좀 아주 그냥 박물관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주의 타파하는 것 역시 일종의 민주화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2011.05.03 01: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0. 7. 30. 08:41



[책의 유혹] 생식기 차이가 가져온 엄청난 결과

『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이처 저, 김재희 역, 이프, 2001

초코파이

사실 이 책은 그리 딱 손에 잡혔던 책은 아니다. 책을 사고도 한동안 책꽂이에 조용히 전시해 두고 있었던 책이다. 그러다 처음 책을 잡고 보면서는 조금 불편했던 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이야기 속에서 생물학적 남성인 내 모습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년이 넘게 평화 운동, 포르노 반대 운동 등을 펼치며 여성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던 저자가 사랑, 성, 일이라는 주제로 13명의 여성들을 만나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이다.



1975년 독일에서 처음 출판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와 있는 질 오르가즘에 대한 이야기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당시에는 색다른 것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어느 정도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너무 쉽게(?)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굴을 붉혔듯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이미 죽어버린 그 무엇이 아니라 아직도 이 사회 곳곳에서 펄떡거리고 있는 작은 차이들에 대한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식기’의 아주 작은 차이가 현실에서는 엄청난 차이와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생식기’의 차이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의 차이를 낳고 이것이 결국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저자는 ‘8~9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차이’가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 온당하냐고 묻는다.

여성다울 것을 강요하는 사회,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것은 지금에도 마찬가지이다. 신부수업을 받고 가사와 육아를 자연스럽게 여성의 몫으로 되어가며 그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주부 우울증이라 이야기되며 약물이나 정신과 치료 정도로 해결하려 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여성의 무력감은 남편의 관심과 약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복잡한 무엇이다. 회사에 있으면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렇지만 그만큼 거기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들을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주말에 아이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빼앗길까봐 차라리 휴일 근무를 하면서 돈도 벌려고 회사에 나오는 남성들을 찾는 게 더 쉬울 때가 많다. 내 친구는 남편이 ‘애보는 걸 안 도와준다.’고 이야기한다. 그 친구는 대학을 나왔고, 사회의식이 투철한 친구지만 ‘육아’는 자기가 하는 거고 남편은 ‘도와주는’ 거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많은 여성이나 남성이 학력이 부족하거나 의식이 없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일상화된 ‘아주 작은 차이’의 큰 결과이기에 덤덤히 지나가는 듯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맞벌이 부부 가운데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27분으로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인 42분에 비해 5배가량 높은 것이라고 밝혔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보다 5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여성 생식기를 타고 났기에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의식은 변함이 없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사와 육아 못지않게 성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저자는 성해방이라는 것이 결국은 여성의 해방이 되지 못하고 남성 중심의 억압적인 성관계를 강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성의 성기 삽입을 통한 질 오르가즘이야말로 진정한 오르가즘이라는 전통적인 성의식과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지금도 계속 된다. 그리고 그러한 페니스(자지) 중심의 사고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의 은근한 변형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남편이 원하면 섹스가 싫어도 해줘야 한다고 알았다.’고 말하는 책 속의 한 인터뷰 여성의 말에서도 그런 모습은 드러난다. 결혼을 한 여성이든 하지 않은 여성이든 인터뷰 내용 중에서 정말 무의식중에 학습된 가부장(남성) 중심의 사회 체제는 정말 견고하다.

책의 서문에서 그녀는 “25년 전에 쓴 책이 아직도 꾸준히 읽히고 있고 여전히 그들이 물어오는 편지에 답변을 보내고 있다. 왜일까? 시간이 많이 지나오면서 상당히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고,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지?



덧붙이는 글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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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2 호 [기사입력] 2010년 07월 21일 15:06:5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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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4. 12. 16:26

[널 붙잡을 논평 1]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만’ 비친고죄?

국회의원들과 여성가족부의 꼼수를 비판한다!

 

 

지난 3월 3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일부 개정법률안>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여성가족부는 시급히 발표한 보도 자료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 사전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대폭 강화되고, 보다 내실 있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글쎄. 내놓은 대책을 봐도, 그 아래 깔려있는 철학을 살펴도 실질적인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은 요원해 보인다.

개정된 법률안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실상 친고죄 적용을 폐지하고, 피해 아동청소년이 성년에 이르기까지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의 감경규정도 배제된다.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는 여성단체들이 누누이 외쳐왔던 이야기다. 피해 여성들에게 필요한 건 '말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말할 수 없게끔 만드는 조건'의 변화다. 성폭력이 남성의 참을 수 없는 성욕의 결과라는 얼토당토않은 편견, 결국 성범죄의 원인 제공은 피해 여성이 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은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숨기고, 신고조차 포기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한 형법의 친고죄 조항은 뜯어고쳐야 마땅하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만 예외적이고 특별한 '혜택'을 줄 필요는 없다는 거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성인 피해여성의 입지를 좁히고 고립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무력한' 아동청소년은 특별히 보호받아야하지만, '부도덕한' 성인 여성은 스스로 비난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인가? 아직도 갈 길이 멀고도 멀었다.


아동청소년의 성에 대한 이러한 특별한 '보호'는 아동청소년은 사리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신체적으로도 더 취약하다는 전제 속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주의의 결과 아동청소년이 일방적인 보호의 대상만으로 인식된다면, 성에 대해 무지한채로 남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죄나 폭력, 차별을 줄이는데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에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도 만 13세 미만 아동 피해자의 경우 이미 비친고죄 적용을 받아왔다. 그러나 경찰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의심하고, 합의를 강조하고, 신고한 사람을 힐난하는 문화는 마찬가지였다. 친족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족 안에서 쉬쉬하며 조용히 묻어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친고죄로 전환한다고 해서, 어른들이 대리할 수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사라질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아동청소년 스스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명명하고 인식할 언어와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주체적으로 사건 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피해자가 학생인 경우 주소지 외의 지역에서 취학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성폭력 특별법 7조)을 만들기 이전에, 왜 피해 여성이 살던 지역을 떠나 이사하게 되거나 학교를 옮기게 되는지 그 맥락을 읽어내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라는 말이다.

백 번 양보해 친고죄 폐지만큼은 칭찬해 주려고 해도 예외 조항이 눈에 밟힌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공공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통신매체 이용 음란'은 예외에 해당한다. 강간과 추행은 그 경계가 사실상 모호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일상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함을 그렇게 말해왔건만 여전히도 성폭력을 '성기를 삽입 했냐/안했냐'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니 한심하다. 더불어 이번 개정안과 함께 성폭력 가해자 전자발찌 소급 적용 등 반인권적 법안도 동시에 처리되었다고 한다. 형량을 강화하고, 전자발찌를 채우고, 가해자의 신상정보 등록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성범죄를 줄이고 피해 여성들을 위로하는 전략인양 내세우고 있다. 성폭력 사건의 80% 이상이 가까운, 아는 사람에 의해 시도된다는 점, 처벌을 '무겁게'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하는 것이 범죄율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더하다가는 입이 닳을 것 같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제대로 파악하길 촉구한다. 아동청소년은 특별히 순수한 존재도, 특별히 아름다워야 할 존재도 아니다. 단지 이 문제적인 사회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폭력으로부터 더욱 취약한 이유는 무엇인지, 성폭력 범죄 자체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바란다. 아동청소년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머리를 쓰기 바란다. 아동청소년이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이야기하며 극복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할지 연구하기 바란다. 이 모든 것 이전에 좀 더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피해 여성, 그리고 피해 여성을 지원해 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길 바란다.

 

2010. 4. 12.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팀원들의 한줄 평! 평! 평!

 

공현: 아동 성폭력'만' 비친고죄? 얼마나 생각 없는 건지. 무상급식이 아니라 이런 게 진짜 잘못된 포퓰리즘이지~ ㅉㅉ

난다: 얘기 좀 제대로 들으시긔! 처벌만 하면 다임? 아동청소년만 '특별히 보호'만 해주면 다임?-_- 제대로 된 성폭력 예방 위한 '대책' 좀 내놓으시라는 말씀.

공기: 성폭력은 그 어떠한 이유에서도 가해자 탓이다 감히 어디서 애매모호한 기준을 들이대는것이야

한낱: 뭐 찔리는 것들 많은가보오? 성폭력 가해자 엄중처벌! 외치는 모습들 보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 같소이다. 국K-1님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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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어렸을 적에는 가해자가 잘못했더라도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고는 했었죠(하하 돌팔매질 당하나...) 지금은 제가 어른들이 말씀하는 그대로 받아 들였던 저의 무식함을 탓하고 있죠 OTL. '말할 수 없게끔 만드는 조건'의 변화가 정말중요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때 다른 반 선생이 성추행을 해서 교직 박탈당했나(?). 암튼 세상은 제가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네요. 음 아동성폭력만 비친고죄? 아동이 아니면? 친고죄란 말인가? 정말 국 뭐시기 님들 많이 찔리졌나 봅니다.

    2010.04.14 02: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오우!!!!!!!!!! 공현님 이거 트랙백 좀 걸어주시지요 http://www.stoprape.or.kr/143 요그에

    2010.04.15 10: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0. 4. 8. 16:29

[벼리] 성폭력범 강력처벌을 피해자가 원한다는 가정에 대하여

김민혜정



3월 31일 우여곡절 끝에 288차 국회 2차 본회의가 끝났다. 최근 부산 김00 성폭력 사건의 여파로 시급히 정리된 성폭력관련 법률개정안의 ‘대안*’은 찬반투표를 곤혹스럽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질적이고 방향도 철학도 제각각인 개정 내용들이 세트로 한데 묶여 있었다.

“전자발찌가 확대되어 환영하는 입장이지요?” “징역상한이 높아지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겠죠?” 하도 많이 듣는 질문이라 옆구리를 찔린 채 그냥 절이라도 해볼까 싶지만, 반복해서 말해왔다, 사실과 다르다. 다시 말해야겠다, 그렇지 않다고.

극형주의는 성폭력을 외면한다

가해자를 극형에 처하면 피해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할 거라는 가정. 사형을 다시 집행하거나, 전자발찌를 형 만료된 이에게 소급해서 채우거나,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면 속이 다 시원할 거라는 가정은, 일견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누구의 입장에서 그런지는 빼놓고 이야기된다.

성폭력 사건에 분노하는 사람 중 많은 경우는 성폭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듣고 싶지도 않아 하다가 어쩌다 알게 된 경우에는 가해자를 죽여 버리겠노라고 나선다. 사실 그 가해자는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를 잡고 더 더 자세한 상황 묘사를 요구하던 이들은, 들을수록 괴로워하다 급기야 스스로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으르렁대기 시작한다. 그러게 거길 왜 따라갔냐, 그런 옷을 왜 입었냐, 너도 좋아했냐, 그런 일을 당하고도 제정신이냐, 이런 비난은 전형적인 2차 가해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가해자를 ‘무죄’로 만드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경험한 이에게 먼저 귀 기울이지 않는, 훨씬 앞서 나가는 분노는 혐오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성, 보호되었어야 하는데 더렵혀진 성에 대한 혐오는 피해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법정형이나 가중처벌 형량이 높아지면 성폭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경계는 더 심해지고, 가해자에 대한 동정론은 더 깊어진다는 것을 경험해왔다. 전자발찌를 소급적용하면? 소수 가해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희생 책을 단행할수록, 그 부담을 피해자에 대한 공격과 비난으로 푼다는 것 역시 익히 보아왔다.

김00와 조00를 몇 차례나 광화문 복판에서 찢어죽이고 말려죽여야 한다던 분노들은 역설적으로 성폭력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쏟아지는 글들 속에서 성폭력 경험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 한번 성폭행을 당하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는 일방적인 낙담, 낙인과 저주 속에서 성폭력 경험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잘 살고 있는 나를 응원해달라고, 성폭력이 점점 희미한 옛일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하면 과연 의미있게 받아들여질까.

친고죄, 이야기하지 않을 ‘자유’

3월 23일 국회에서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등은 함께 ‘비친고죄 개정이 우선이다’ 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자발찌, 사형집행, 화학적 거세가 ‘성폭력 문제 해결’ 방책이라며 논의되고 있지만 친고죄 폐지안은 개정안이 가끔 발의되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이번에도 본회의에 상정 되지 못했다.

위 사진:3월 23일 국회에서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등이 개최한 ‘비친고죄 개정이 우선이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 모습.


사실 성폭력 신고율은 7.1%에 지나지 않는다. 저 법들이 시행된다 해도 그 해당되는 사례는 전체 성폭력의 발생 중 극히 미미한 퍼센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장벽에는 현행 성폭력이 형법상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가 있다.

친고죄는 본인만이 고소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5개 강력범죄 중 하나라고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문제인지 아닌지, 내 잘못인지 아닌지를 먼저 충분히 고민하고 오라고, 정말 정말 확신 하냐고 피해자에게 되묻고 있는 셈이다. 이 사이 피해자는 수차례 고소를 뭐 하러 하냐는 주변의 만류, 자기 자신의 포기와 낙담을 경험한다. 친고죄 존치론자들은 “피해자에게도 사생활이 있는데 어떻게 다 공개하라는 거냐” 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극도로 강조하는 13세 미만 어린이 피해자나 장애인, 특수강간의 경우 이미 비친고죄 이다. 누구의 어떤 사적 자유를 말하는 건가.

또 다른 존치주장은 “사법절차상 피해자에게 진술하게 하고 반복하면서 두 번 상처를 주는 제도가 개선되어 있지 못한데도 비친고죄로 바꾸는 것은 시기상조다” 라는 내용이 있다. 제도는 바뀌어야 하고, 반복진술의 문제는 현행 비친고죄의 대상에게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반론 끝.

여성들의 선택권,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그 내용은 ‘말하지 않을 자유’를 일컫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고죄의 영향은 비친고죄 유형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친족, 장애인, 13세 미만 성폭력에서도 피해자를 의심하고 합의를 크게 강조한다든지, 왜 굳이 고소나 신고를 했냐고 신고를 함께 한 이를 힐난하는 문화는 이미 팽배해있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법인가?

극소수의 가해자를 격리하고 회피, 혐오하는 것과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을 쏟아 붓는 양 극단의 사이에서 피해자들이 원하는 형사 처벌에 관한 대책이 있을까.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실 그런 일이 왜 일어난 것인지 알고 듣고 싶다. 80%의 성폭력은 가까운, 알고 있던 관계의 사람이 시도한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 자신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기로 한 것인지 들어보고 싶다. 모르는 관계에 있던 가해자 역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왜 생긴 거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주변사람들이 형식적으로 던져 주문처럼 외기 보다는, 가해자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스스로 골몰해 깨닫고 해명하고, 반성하기를 바란다.

내가 겪은 일을 말하고 싶다. 이것만은 단 하나의 비밀로 간직하라면 그것 때문에 속병이 날 것 같다. 다른 이들과 도움, 지지, 위로를 나누려면 일단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야기를 듣게 되는 과정에서 주변인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성폭력이 자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내 마음에 공감하고, 가해자의 생각도 알게 되어 그를 다 같이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해결과정’은 대략 이러하다. 소수의 가해자를 극단적으로 처벌하면서, 그런 극단적인 처벌을 할 수 있는 피해사건은 무엇인지 피해자를 조각내고 의심하고 분류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의 현실에 차분하고 공평하고도 전면적으로 대처하면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말’을 나누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피해자도 더 주체적인 지위에서 능동적으로 형사처리 과정에 참여하고, 가해자의 말을 반박하는 언어가 재판과정에서 더 많이 오가고, 많은 이들이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생각이 변화되고, 가해자 역시 차분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다면, 솔직히 형량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대안*’

여 러 의원들이 각자 법률개정안을 발의하면, 해당 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같은 법률의 여러 개정안들을 하나의 안으로 만든다. 이것을 ‘대안’이라고 부른다. ‘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전체 의원들은 ‘대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김민혜정 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97 호 [기사입력] 2010년 04월 07일 22:05:0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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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1. 11. 12:50

인권오름 기사 원문


원래 난다가 쓰기로 한 건데, 땜빵으로 이틀만에 써내려간... 글
뭔가 잘 쓴 거 같으면서도,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지 딱 정리하는 부분이 누락된 기분이 드는 글이다.








[페미니즘인(in)걸] 괴물들과 공주님들?

아동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공현


‘몬스터’(우라사와 나오키 지음)라는 만화가 있다. 제목부터가 ‘괴물’인 이 만화에는 진정으로 천재적이면서 잔혹한 살인자, 요한이 등장한다. 그러나 절대악인 요한을 추적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그 요한조차도 ‘인간병기’를 만들어내려고 한 어른들의 실험에서 비롯된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만화에서 요한이 사실상의 자살로 사라진 후, 남겨진 질문은 이것이다.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이 되어버린 가해자

사형, 종신형, 거세, 신상정보 공개, 전자발찌……. 최근에 아동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에게 가해져야 하는 처벌이라면서 거론되는 것들이다. ‘조 아무개 씨’의 여성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TV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면서 “그런 새끼들은 쳐죽여야 한다”라고 외치고 있다. “가해자에게 인권은 없다.”, “짐승만도 못한 놈” 같은 말들 속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 그건 아동 성폭력의 가해자(줄여서 가해자)는 자신들과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해자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존재, 이해할 수 없으며 제거되고 박멸되어야 할 ‘괴물’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성폭력 가해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체포되어 감옥에 격리되기 전까지 이 사회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범죄는 사회적인 사건이며,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도 이 사회의 일부이다. 아동 성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연구를 보자. 아동 성폭력 범죄 가해자들은 학력이 낮고, 자아존중감이 낮고, 성적 좌절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체적/사회적 힘이 약한 아동을 대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뿌리 깊은 남성 중심적 문화와 음주에 관대한 문화도 원인이 된다. 애초에 남성으로서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다는 심리 자체가 남성 중심적 사회 문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성/아동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못하고 여성/아동이 약한 존재, 무력한 존재로 묘사되고 만들어지는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21 제781호(2009.10.16.) 안수찬 기자의 「아동 성폭행범 처벌 ‘무겁게’보다 ‘확실하게’」를 참고하시라.)

사진설명여성단체가 조두순 사건에서 음주를 이유로 감형된 것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사회적 맥락이나 원인들을 외면한 채, 그리고 평소에는 폭력들에 관대한 모습마저 보이면서, ‘비정상적인 것’들로 돌출된 부분들을 잘라내려고만 한다. 마치 이백 대, 삼백 대를 때린 교사들에게는 ‘부적격 교사’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한 대, 다섯 대를 때리는 교사들에게는 관대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체벌은 학교의 폭력적인 시스템과 규제, 체벌에 관대한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한 대를 때리든 이백 대를 때리든 체벌은 근절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사회의 문화와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30대를 강간하든 아동을 강간하든, 강간을 하든 성추행을 하든, 성폭력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크든 작든, 성폭력은 근절되어야만 한다. 아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차별과 폭력, 성적 대상화에 노출되어 있는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그저 조 아무개 씨를 죽여버려야 한다고 외치며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하게 말하면 위선적이다. 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자기 당 국회의원이 저지른 성폭력을 무마하려고 술잔을 깨는 퍼포먼스를 하며 성폭력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성폭력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 아무개 씨를 죽여 버려야 한다고 댓글을 달고서 바로 다음날에 성매매 업소에 가는 남성들,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하는 남자 상사들, 강간 포르노를 보면서 하악거리는 남성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의 ‘섹시함’에 속으로 야릇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남성들이, 없을 것 같은가? 다시 한 번 묻자면, “괴물은 누구인가?”


아이들은 공주님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동 성폭력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신체적, 사회적으로 더 약자인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더욱 더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사람들이 아동에 대한 다른 폭력보다 성폭력에 특히 더 거부감을 가지며 분노하는 이유, 그리고 아동이 아닌 경우에도 신체적으로 저항할 만한 힘이 없는 여성이나 장애인이 당한 성폭력보다 아동의 경우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 등등…….

일단, 실제 그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관계가 어떤지를 떠나서,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것만으로 우리는 더 많이 분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것을 종족을 보전하고자 하는 유전자 프로그램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근대 이후로 형성된 아동관도 한 몫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동은 교육받고 보호되어야 할 존재이며, 무력한 존재라는 아동관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늘어간다. 보호자들의 불안감을 이용하여 위치추적 서비스나 CCTV 등을 다루는 업체들은 광고를 한다.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서비스를 달고, 조금이라도 연락이 안 되거나 보호자(부모, 후견인, 교사 등)의 시야를 벗어나면 안절부절 못하는 어른들이 늘어난다. 안전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그 결과는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아이들에 대한 감시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사진설명정부에서 발벗고 나서 제공해주는 위치확인 서비스. 아동이든 장애인이든 본인의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보호자가 서류만 갖추면 신청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분노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동과 성을 연관짓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사건의 끔찍함에도 분노하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욕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해자를 ‘괴물’ 취급하고, 아동을 성과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꺼려한다. 아동은 성과 무관한 순수한 존재로 남아야 하며, ‘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 성을 얘기하기를 꺼려한 나머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다.”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

이런 태도가 아동을 성적으로 무력하고 무지한 존재로 만들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매듭을 푸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아동이 성적인 존재이자 주체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명명하고 인식할 언어와 지식을 갖지 못하기 십상이다. 조 아무개 씨가 가해자인 이번 사건에서는 상해와 폭력의 정도가 심하여 피해 아동이 자신의 피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작년에 대구의 초등학교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어떤 경우에는 성폭력의 피해/가해를 특정하기도 어려웠고 때로는 그것이 성폭력인지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측면조차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체적인 측면에서 근력으로나 지구력으로나 아이들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주의의 결과 아이들이 더욱 더 사회적인 약자로 인식되고 일방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면, 또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무지한 채로 남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아이들에 대한 범죄나 폭력, 차별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들의 삶을 완벽한 감시 하에 두고 아이들의 자유를 박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째서 아동에 대한 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피해자’라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인지 이 불합리함은 참 설명하기 힘들다.

아이들 자신을 포함하여 이 사회의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성폭력 범죄 자체를 줄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닐까? 아동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잘 대처하고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이야기하며 극복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성에 살고 있는 공주님이 아니며, 아름다운 동화 속에 사는 존재도 아니다. 아이들은 이 사회에서 당신들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사건은 어느 설명 불가능한 괴물이 우리가 지켜줘야 할 순수한 공주님을 납치한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의 현실이며, 괴물을 쓰러뜨리고 공주님을 성 안에서 보호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이는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78 호 [입력] 2009년 11월 10일 22:40:32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자세히 읽지는 못했지만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정말 그렇게 생각햐?????

    2009.11.11 18:07 [ ADDR : EDIT/ DEL : REPLY ]
    • 영혼의 존재 같은 건 믿지 않으니까 ㅋㅋㅋㅋ

      심리적이라는 건 신체적이라는 것과 분리되지 않아.

      성폭력은 신체적인 폭력이지. 언어이든 접촉이든-

      내 몸이 아니라 몸이 곧 나인 거야

      2009.11.11 20:46 신고 [ ADDR : EDIT/ DEL ]
    • 발칙

      근데 대부분의 독자들은 보통 신체적인것과 심리적인것을 분리해서 얘기하잖아...? 오해의 소지가 잇지 안을깜 ㅠㅠ

      2009.11.12 13:55 [ ADDR : EDIT/ DEL ]
    •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한다, 같은 류의 말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건, 성폭력이 구체적 성행위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영혼 같은 모호하고 낭만적인 말을 끌고 들어와서 신체적인 성행위를 은폐하려는 의도를 느끼기 때문이랄까나. 성행위와 아동을 연관짓는 걸 거부하는 것처럼. 아동에게 강제로 가해지는 구체적인 성행위로서의 성폭력을 언급하기 꺼려하는 나머지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고 한다는 느낌이야. 그 말 속에는 피해자화의 의미도 있고. (영혼이 파괴된다니!)
      그래서 정신 또한 신체의 일부이거나 정신과 신체는 분리되지 않는다는, 혹은 유물론적인 맥락에서라도, 성폭력이 신체적 폭력으로 명명되어야 한다고 생각. 언어적 폭력 같은 경우에, 우리의 언어습관상 좀 미묘한 부분이 있지만.
      (굳이 신체와 정신을 나눈다 하더라도, 성폭력이라는 행위는 사실 지극히 신체적인 행위이고, 그 결과로 정신적 피해가 수반된다고 설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애초에 이렇게 정신과 신체를 분리한 설명 방식에 오류가 생기기도 하지만;)

      2009.11.12 18:01 신고 [ ADDR : EDIT/ DEL ]
  2. 아동의 성하니까 생각난 이야기인데, 최근에 중국에서 네살짜리 아동이 자위하다가 성기가 터졌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 좀 뭐랄까, 아동에게는 금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_-

    2009.11.12 00:02 [ ADDR : EDIT/ DEL : REPLY ]
    • 자제력을 상실한 성의 추구로 인한 사고(?)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9.11.12 10:17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번 휴가때 너 가고나서 눌이랑 이 얘기 잠깐 했었는데...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에 동의
    어쨌든 폭력은 폭력일뿐 성폭력은 관념일뿐

    2009.11.13 20: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cheese

    자제력을 상실한 성의 추구로 인한 사고는 어른아이할 것 없이 일어나는 사고입니다...ㅋㅋㅋ글이 너무 재밌어요. 그렇지 않아도 나영이 사건에 대한 분노가 너무 과잉되어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명확하게 짚어주는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2009.11.16 11:57 [ ADDR : EDIT/ DEL : REPLY ]
  5. 돌풍피리

    피해자가 어떤 심리적인 피해를 입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신 혹은 영혼에 대한 피해가 아니라 그냥 신체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 아닐까요?

    그냥 신체적인 문제라면 신체적인 상흔이 없이 그냥 끝난 일이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거 아닌가요??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성인에 대한 것과는 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단순히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수준의 문제가 아닌겁니다
    성적 가치관의 되돌리기 어려운 왜곡 내지는 성에 대한 무의식적 혐오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성범죄 피해자가 커서 성범죄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순환구조는 어떻게 설명하실건지요 ^^;;;

    2010.06.19 15:04 [ ADDR : EDIT/ DEL : REPLY ]
    • 설명하자니 좀 길지도;

      일단, 저는 성폭력이 단지 신체적 폭력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언술의 맥락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그 맥락은 성폭력이 단지 외견상 신체적 상처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을 담고 있지요. 그런 주장에는 적극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어떤 접촉이든 언어이든 그것은 물질적, 신체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저는 또 심리나 정신도 신체의 한 구성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신체적'이라고 말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건데, 더 이해를 도우려면 '신체적/심리적'이라고 쓸 수도 있었겠지요?;

      전 '영혼'이랑 '심리/정신'은 좀 다른 어휘라고 생각해요. '영혼'이란 말에서 우리는 신비주의적이고 어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소중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주는 범죄라는 말을 쓸 때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는 말을 쓸 때는 분명히 뉘앙스도 의미하는 바도 다릅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든 비아동에 대한 성폭력이든,(아니 사실은 성폭력 뿐 아니라 폭력 그 자체가, 그리고더 철학적으로 확장하면 '경험' 자체가?; 이건 좀 무리수인가) 가치관의 변화나 심리적 상처의 문제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축적해온 경험과 심리적 보호막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요. 그러니까 형량의 차이나 분노의 양의 차이는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2010.06.20 14:40 신고 [ ADDR : EDIT/ DEL ]
  6. 보짱

    성폭력이 신체적 문제를 벗어난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고 했을 때, 약간 걱정되는 바는 몸을 벗어난 '정신'이나 '영혼'이 따로 존재하나? 하는 것입니다. '몸'이 곧 '나'이고, '나'는 '몸'인데, '몸'을 벗어난 다른 '이성'을 언급하면 뭔가 '몸'보다 중요한 '이성'이나 '영혼'이나 '본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이는 '몸'을 '정신'에 종속화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이럴 때 항상 '몸'은 '정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느껴지니까요.

    저는 아동 성폭력이 분명 성인 간 성폭력과 다른 맥락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도 그저 동등한 개인은 아니고 권력이 작동하는 장이지만, '성인 남성'과 '여자 어린이'의 관계는 이 권력관계를 보다 극대화시키니까요.

    다만 아동성폭력만을 부각시키는 지금의 여론은 애써 '천진난만한 아동'만을 피해자로 내세움으로써, 성폭력과 관련된 여타의 논의들을 지워버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2010.06.28 11:42 [ ADDR : EDIT/ DEL : REPLY ]
  7. 보짱

    초등학교 다니는 아동들이 1~2살 먹어서 중학생되 되면 갑자기 아저씨를 유혹하는 '영계'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초등학생 성폭력에 미친 듯이 분노하면서, 인터넷채팅으로 청소녀의 성을 구매하는 그 행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요즘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장애가 있는 여학생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들과 이번 납치사건의 피해여학생은 또래입니다. 갑자기 한쪽은 파렴치한 가해자로, 한쪽은 순진무구한 피해자로 남는 사건은 어떻게 설명 가능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은 그저 보호해야 할 '공주님', '천사들'로만 보고 싶어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순진하지도 무성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지요.

    덧글) 활발한 토론 너무 부러워요^^. 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블로그에 오셔서 댓글 좀 남겨주세요. 굽신굽신(_ _)

    2010.06.28 11:49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10. 10. 03:26

[논평]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1. 우리는, 성범죄가 특히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주는 반인권적이고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아동의 인권 보장은 사회의 중요한 의무이며, 아동의 권한 강화라는 맥락에서 아동에 대한 특별한 지지와 지원,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법률에 따른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가해지는처벌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 이루어지거나,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고개별적/개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 역시 분명히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매우중요한 기준입니다.


1. 우리는,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 역시 피해아동에 대한 심각한 반인권적 범죄라고 판단하며, 가해자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생각합니다. 더불어 아동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함께 노력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1. 동시에 우리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기관과 보수적인 언론들이, 형벌의 경중 문제만을 부각시키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문제제기되었던 성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 개혁 등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에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남성의 각종 성범죄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고 제대로 된 처벌조차이루어지지 않았던 사회적 경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개별 아동 성범죄 사건의 ‘처벌’에 대해서만 치중하는 것은 위선이라고평가합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보이는 반인권적인 인식과 행동, 정치적 의도에 대해 우려를 느낍니다.


1.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실제로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 및 교육,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정부기관이 그저 분노한 여론에 편승하여 전자발찌의무기한 착용이나 보호관찰제도의 확대, 화학적 거세 등의 자극적이고 손쉬운 ‘처벌 강화’의 방편들, 하지만 근본적이지도인권적이지도 않은 미봉책들을 꺼내어놓는 모습은 실망과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합니다.


1. 또한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려는 정부기관과 언론들이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석한 여성을 성추행했던 최연희(현 18대 국회의원, 무소속,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2심에서벌금5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함으로써 사실상 무죄를 선언했던 사법부의 판결과, 그 성추행이 술 때문이라며 술잔을 망치로 깨는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박진(현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관대했던 언론들을기억합니다. 우리는, 언뜻 엄격해보이면서도 사실 전체적으로 남성이 저지르는 성범죄에 대해 매우 관대한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아동에 대한 성범죄 역시 절대로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런 사회 속에서 피해자 아동은 성장하는 동안 점점 더 심한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현재 정부기관과 언론의 무책임함과 위선적인 모습을 확인하게됩니다.


1. 우리는, 이런 반인권적인 ‘처벌’ 중심의 논의가 일정한 정치적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부는, 몇몇 특정한불법행위에 대해서만 형벌을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집회 또는 시위, <아동> 성범죄 등에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형벌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기업이 저지르는 부당노동행위나 탈세 등의 불법행위, 고위공직자의 위법행위나 업무상 책임 등에 대해서는 법을 느슨하게 적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차별적으로 법을 이용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사회를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의도는 결국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낳게 됩니다.


1. 우리는, 성폭력의 근절이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남성 위주의 권력사회 속에서 성폭력은 곳곳에서 일어나며,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막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은 더더욱성폭력의 예방을 어렵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아동 성폭력 사건이 또 한 차례 공론화된 것이, 부디 정부기관과 언론,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성폭력의 본질과 예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9년 10월 8일


인권운동사랑방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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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꿈2009. 10. 7. 11:39


쉽게 쓰라고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다른 분들이 이 논의에 있어서 구사하는 "짐승만도 못한"이니 "베풀 인권"이라느니 "영혼"이라느니 하는 언어 자체가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고난도의 것이기에, 저도 거리낌 없이 저에게 가장 쉬운 언어를 택하여서 짧게 씁니다.



@ 인권에는 '인간'이라는 것 외엔 아무 자격도 필요없다

최근에 새로 나온 책인 『인권의 문법』(류은숙) 서문을 보면 '자연권' '시민권' '인권'을 구별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 간추려 말해서 자연권이니 시민권이니 하는 것은 그 권리의 '자격'을 따지는 속성이 있지만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 권리라는 겁니다.
인권은 풀어 쓰면 그냥 '인간의 권리'니까요. 인간이기만 하면 어떤 자격도 묻지 않고 자명하게 인정되는 것이 인권입니다.(여기에서 '자명'하다는 것은 인권의 역사성이나 사회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권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하긴, "권리"라는 발상 자체가 다분히 인조적인 건데)이니까요-. 다만 인권 자체의 논리 안에서 인권은 자명하다는 말입니다.)

* 인권의 실제적 보장은 결국 국가-사회에 의한 법이나 질서에 의한 보장이므로 결국 인권은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개념이며 시민권이다... 라는 아렌트식 논의는 그냥 넘어가구요. 이건 정말 정치학자스러운 논의니까.


그래서 인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처음 문제가 되는 건, 어쩌면 '인간인지 아닌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여성, 장애인, 흑인 등은 '인간'이 아니던 사회가 있었지요. (뭐, 이 경우엔 사실 '시민권'에 가까운 개념이지만 은유적으로 넘어가고...)
그러나 그런 자격 조건을 모두 넘어서가면서 선언된 것이 '인권'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격조건에 따른 차별들을 넘어서는 투쟁들에 정당성을 제공해온 것이 인권입니다.
(- 태아가 인간이냐, 사이보그가 인간이냐 등의, 애초에 '인간'이라는 경계 그 자체가 철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이거나 유물(唯物)적인 면에서 모호해지는 영역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요.)

누군가가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인권을 박탈한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가지고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인간이 아니네 맞네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뭔가 생물학적이고 유물(唯物)적 차원에서 인간이 아닌 경우가 아니라면요


"넌 인간인데 인간이 아냐 ㅋ"는 말이 안 되잖아요? -_-

예를 들어, 명제로 표현하면-
: 살인범은 살인을 한 사람이다.
  사람이면 인권을 가지고, 인권을 가지면 사람이다.
  살인을 하면 인권을 박탈당해야 한다.
  인권을 가지지 못하는 살인범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이건 진중권이 거창하게 비트겐슈타인까지 인용해가며 쓴 명문 중 하나인 "반대를 위한 문법적 착각"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는 논법입니다. 
"나는 당신이 남자인 것을 반대한다." 
"나는 당신이 인간인 것을 반대한다."



 만일 살인범이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법률로 살인범을 처벌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서 법률이 적용되고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는 거니까요.


애초에 누군가가 인간인 이상, 인권이 있네 없네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모순입니다.




@ 범죄자의 인권제한은, 의무를 어겼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인권이 있고 그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의 목적이다 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 등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근대 사회가 성립되면서 이루어진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물론, 어느 사회든지 범죄자들의 인권을 제한(처벌)합니다.

하지만 그 제한의 논리는 "사회의 약속인 법을 어긴 당신들은 인권이라는 약속을 누릴 수도 없다!"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최소한으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자들을 처벌한다 / 또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교화한다."입니다.

(즉 "범죄자는 인권이 없다", 가 아니라 - "범죄자도 인간이라서 기본적 인권을 누려야 하지만, 더 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최소한으로 인권을 일부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다.", 입니다. 일종의 '필요악'일까요.)


'인권'이라는 약속은 사회 구성의 가장 첫번째 원리이자 약속이고 다른 법이 만들어지는 기초입니다.
더군다나 그 '첫번째 약속'은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약속입니다. 일부 범죄자에 대해서만 '인권'을 인정하지 말자고 하는 식의 논리는 사실 사회의 기본 원리로서의 인권의 성격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처음 한 약속에 근거를 두고 두 번째, 세 번째 약속을 했는데 - 여섯 번째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처음 한 약속까지 싸그리무효가 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섯번째 약속 속에는 첫번째 약속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여섯번째 약속을 어기는 것은첫번째 약속의 일부를 무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것이 이 사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첫번째약속'인 인권의 기본 성질과 근간을 모두 무효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실... 애초에 법률이든 사회적 합의이든 - 그 약속 안에는 그 약속을 어겼을 때의 처벌까지 약속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기도 한데)

"약속을 어긴 너는 인권을 보장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그 논리의 기본 골격은, 선언으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의무가 선행한다는 식의 유치한 권리론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니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너의 권리는 없다."라는 식의 암울한 권리론 말입니다.


예, 뭐 저도 12년형이 사안의 정도에 비추어볼 때 그리 쎈 형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의 사법부가 성폭행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온 것에도 불만이 많습니다.(인권단체, 여성단체 모두가 꾸준히 지적해온 문제입니다. 술을 마셨다는 것 등을 이유로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것에 대해서도요. [일다] 취중 성폭력은 감형? 가중처벌해야)
그러나 그런 판단이 "성폭행범 새끼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건 아닙니다. 성폭력이라는 인권침해의 종류와 상해의 정도에 비해 형벌이 더 무거운 게 좀 더 적절할 것 같다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조XX 같은 놈들의 인권은 더 많이 제한받아야 한다, 거의 없을 만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죠? 하지만 거칠게 "성폭행범에게 인권은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순간, 그 말은 너무나 위험한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스팀받은 사람들에게 던질 떡밥으로 성폭행범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는 입법안이나 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한심스럽고, 예방을 위한 다른 조치들을 더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뭐, 애초에 감옥에 처박아놓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한국의 형벌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고 그 위에서 몇 년형을 때렸느냐를 논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이 있지만요.




@ 범죄는 사회적 문제 + 겸손함

인권, 이라고 하면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주장일 것 같은 생각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의외일지 모르지만,
소위 '진보적(좌파적?) 인권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인권운동 단체/활동가들은 사회주의적으로, 구조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권 자체가 굉장히 사회적, 구조적, 공동체적 논의이기야 하지만요.
 
범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범죄는 개인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성품이 원래 나빠서, 유전자가 안 좋아서, 별자리가 개떡 같아서, 무슨 공의 경계 기원각성/살인고찰 편처럼 그 사람의 '기원'에 문제가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범죄는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인권운동가들이 사형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형은 어떤 범죄를 그 범죄자 개인의 책임으로만만드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그 사람의 존재에 떠넘긴다는 거지요.
(사형이 생명권 자체를 박탈하는 국가의 살인이라거나 사형이 가지는 여러 폐해들에 대한 우려가 가장 기본적인 이유긴 합니다)


제가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말이죠...
사람들은 "내가/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라면"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피해자 측과 동일시하거나 피해자의 입장에 한 번 서보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엄청나게 많지만, "내가/당신이 가해자라면"하는 식으로 가해자와 동일시해보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자신과는 전혀 별개의 존재이고 자신은 가해자가 될 수도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오만한 근자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선가는 소수성이 있다" 운운하는 이야기들을 저는 제법 많이 들어왔는데, 그 말을 뒤집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선가는 다수성(majority, 주류성)이 있다"라고 해도 큰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성폭력 범죄자들에게 열폭하면서 그런 놈들은 인권이 없다, 처참하게 죽여야 한다, 전자팔찌를 채워야 한다, 등등의 말을 내뱉는 분들을 보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자신은 그런 범죄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자신감. 그런 게 팍팍 느껴져서요.

(어떤 범죄는 전자팔찌를 채우고 어떤 범죄는 안 채우고 이런 기준 자체가 사실 좀 모호한 일이라는 위험성을 고려하고)

첫 번째로, 병역거부를 준비하고 있어서 이미 '범죄자'가 될 채비를 하고 있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나 공무집행방해죄나 무단침입죄나 국가보안법 등으로 잡혀갈 가능성이 높은 삶을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자신감은 무리이기도 하고-

두 번째로 꼭 그런 정치범으로서가 아니라도, 저는 저 자신도 살인자, 강도, 사기꾼,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해자들을 타자화시키는 일은 잘 못하겠습니다.


범죄자 한 명에게만 열폭하는 사람들 중 몇몇 분들의 모습은 범죄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타자화되고 괴물처럼 그려진 범죄자 한 명을 사회에서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을 만족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는 '피해자화'의 논리도 들어 있지요. 피해자를 어떻게 '회복'시키고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이고 세심한 고려는 포기했으니까요. 피해자는 피해자로 남아야 하지요. '영혼의 파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저는 적어도 그런 식의 영혼이란 것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귀신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그 '영혼의 파괴'라는 비유가 심리적 상처, 트라우마에 대한 비유라면 그건 굳이 성폭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남습니다. 폭력, 집단적인 따돌림이나 괴롭힘, 방임, 사고, 그런 것들 대부분이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성폭력은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폭력입니다. 성폭력 피해는 신체적 (그리고 신체 일부로서) 심리적 피해입니다. 굳이 성폭력만을 특정해가며 '영혼의 파괴'니 운운하는 것은, '성'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곤혹스러워 하는 것과 동시에, 성폭력 피해-생존 여성들을 피해자화하려는 맥락이 읽힙니다. 그러나 많은 성폭력 피해-생존 여성들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피해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어쨌건, 요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누군가가 인간인지 아닌지를 내가 내 도덕과 가치판단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든
나는 절대로 그런 가해자/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범죄는 오직 그 이상한 몇몇 놈들의 문제라는, 나는 책임이 없다는 의식이든





0.
가해자가 인권이 있냐 없냐 같은 류의 얼토당토 않은 '문법적 착각'스런 논의에 빠져 있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아동성폭력을 포함하여 모든 성폭력의 예방, 그리고 그 성폭력에 대한 적절한 사후조치(처벌을 포함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영혼에 상처가 어쩌구 하며 이야기하는 분들 중에 체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사소하고 짓궂은 궁금증을 남기고서.
아동인권-여성인권 보장, 아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성적 실천 / 섹슈얼리티를 포함하여)의 신장이라는 좀 더 장기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아서.





p.s. 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라도 가해자에게 인권이 있다, 범죄자도 인간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저는 아마 그럴 거라고 답할 텐데, 어떻게 답하든지 '위선자'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놈' 아니면 '냉혈한' 아니면 '탁상공론'이 될 그런 류의 질문이긴 하지만, 어쨌건 그렇게 답할 겁니다.

p.s.2. 더 추가적인 보충 내용들은 아래 링크한 글들을 읽어보시면 좀 더 명확해지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참고 문헌 -------------------------------------------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 김슷캇 (사회당 덕후위원회) 님 블로그

" 이들은 인권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무시한 채 마치 '피해자 인권'과 '가해자 인권'이 따로 존재하는 것 처럼대립화 시키고, '가해자 인권'을 박탈할 수록 피해자 인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인권 박탈을주장하는 이유로 피해자의 참혹함을 '어떠한 연결고리의 설명 없이' 근거로 들면서, 실질적으로는 스스로 피해자 인권도 침해한다."



"신속하고 통렬한 복수? 부질없다" - 레디앙 신민영님 글

"하지만. ‘12년형 사건’의 후폭풍은 어떠한가? 신속한 전개, 통렬한 복수만을 생각할 뿐. 챙겨야할 디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사건이 터지자 마자 나온 한나라당의 ‘유기징역 상한 폐지’ 주장. 그리고 ‘응징하고 싶지만, 화학적 거세는 너무하다’라는 인터뷰를 한 진중권씨의 글에 ‘찢어죽인다는 둥’ ‘악마 조가놈을 사형 시키자는 둥’ ‘진중권 딸도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는 둥 리플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이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세심한 고려는 온데간데 없고, 강력한 처벌을 해야한다는 주장만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고, 한 술 더떠 유화적인 의견을 내놓은 진중권 씨에게 때려죽일 듯 달려들고 있다.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라면, 다양한 논점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나와야 할 텐데 이러한 논의가 원천봉쇄되고 있는 형국이다."




취중 성폭력은 감형? 가중처벌해야 - 일다 조이여울님 기사

"성폭력 양형 실태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가 학생인 경우보다 유흥업소 주인이나 종사자인 경우 집행유예율이 높았고, 범행 이전에 가해자와 성관계가 있었던 경우 선고형량이 낮아졌다. 피해자가 음주상태였던 경우와 사건 전에 가해자와 함께 음주, 유흥 등을 한 경우에도 모두 집행유예 비율이 높고 선고형량이 낮아졌다.
 이경환 군법무관은 이 같은 법원의 판단이 ‘피해자 유발설’과 같은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편견을 암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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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다

    헉쓰...

    2009.10.07 14:49 [ ADDR : EDIT/ DEL : REPLY ]
  2. 리잔느

    난 논리로 시작해서 감정으로 끝나는 감정적인 글을 썼긴 썼지만,
    음 =ㅅ= 도의적으로 인간이 할 짓을 한 게 아니니 인간이 아니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원칙으로 돌아가면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이지.

    난 이런 사람은 무조건 죽여야한다! 이런 입장은 아니고
    인간은 변화할 여지가 있으니까 죽여서는 안된다 이런 입장이지.

    근데 양형 기준을 올려버리면... 오히려 범죄로 인정되는 범위를 상당히 좁게 해석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라구.

    2009.10.07 18:47 [ ADDR : EDIT/ DEL : REPLY ]
    • 변화할 여지나 변화가능성과는 별로 상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해.
      -- 그리고 양형 자체는 현재의 양형 기준 안에서도 충분히 지금보단 높게 때릴 수 있을걸. 법원이 그렇게 안하는 거지.

      2009.10.08 12:21 신고 [ ADDR : EDIT/ DEL ]
    • 공현님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 체계의 죄형법정주의 안에서는,
      지금의 양형기준이 거의 상한선에 다다렀다 봐도 될 겁니다. 결국 양형들간의 체계균형성에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고, 동종범죄중 하위범죄에 대한 양형마저 강화시킬 우려도 있죠. 관련 법리에 대한 꽤 심도 있는 논의로는, 노정태의http://basil83.egloos.com/ (좋은 법치주의, 강한 법치주의) 참조하시면 될 듯.

      2009.10.08 12:41 [ ADDR : EDIT/ DEL ]
    • 노정태님의 그 글은 예전에 읽어보았습니다 ^^; 많은 부분 동의했었지요-

      2009.10.08 12:52 신고 [ ADDR : EDIT/ DEL ]
  3. 끄덕끄덕 좋은글감사

    2009.10.07 23:28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오..

    이런 논의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누군가 꼭 이런 포스팅을 해주길 바랬건만..
    용감하게도 해주셨군요 +_+
    근데 문제는, 이런 내용을 어떻게 공감시키느냔데.. ;;;; 참 많은 '설득'과 욕질을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할 듯 싶습니다.

    2009.10.08 12:00 [ ADDR : EDIT/ DEL : REPLY ]
  5. 공현님

    도 혹시 곰곰님과 친분 있는 분이신가요? 하동기씨던가..그리고 곰곰님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시는 거 보고 참 용자시다, 했는 데, 님역시 멋진 저항을 하시려 하는 군요. 님 혹시 아나키스트? ㅎㅎ 어찌됐건 전 아예 개인적으로, 보다 급진적으로, 형벌 제도 자체에 대한 철학적, 실효적 의문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요. 저의 이런 견해에 대해서 강한 충격을 준 저서 한권, 님께도 추천해드리렵니다.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멋진 성찰을 가득그득 가지고 있따는..책이름은 "사형제 부활이냐 형벌제도 폐지냐" 네덜란드 법무부 장관 출신인 루크 훌스만의 저서구요,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장 진보적인 법리를 가진 곳이 네덜란드기도 하지요. 꼭 한번 읽어보셈~ +_+ (나같이 인권 인권 주장하다, 막상 군대에 가고 나서 계급의 파쇼가 되버리는 우를 범하지 마셈~)

    2009.10.08 12:38 [ ADDR : EDIT/ DEL : REPLY ]
    • 딱히 친분이 있지는 않습니다. '전쟁없는 세상' 소식지 등을 통해서 소식은 계속 받고 있지만요... 곧 얼굴 뵐 날이 있겠죠?
      사상적으로 분류하면 아나키스트나 사회주의자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그런 맥락에서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서 ㅎㅎ;
      저도 형벌제도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고 감옥인권 관련해서 활동했던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논의들은 접해보기는 했지만, 일단 이 사건에 있어서 형벌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를 건드리는 건 너무 커질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쿨럭;
      추천해주신 책은 정가 15000원이던데 돈이 좀 생기면 사서 볼게요 ^^; 아무래도 두께가 꽤 되는 게 사서 봐야 할 법 싶군요.

      2009.10.08 13:26 신고 [ ADDR : EDIT/ DEL ]
  6.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 김슷캇 (사회당 덕후위원회) 님 블로그] 클릭하면 우석훈 나옴. 뭔가 좋다능. 그치만 너무 깊게 생각해버리면 우석훈 인권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2009.10.08 20:35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나가는꿈2009. 9. 30. 02:16



사건을 다룬 취재 동영상을 봤는데
피해자의 부모는 가명 처리가 되는데
정작 피해자 본인은 버젓이 실명으로 해서
온갖 언론에서 나XX 사건이라고 불러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동-피해자에게는 자기 이름이 안 드러날 권리도 없나요?


그리고 사건을 왜 자꾸 나XX 사건이라고 피해자의 이름으로 붙이는 건지,,,
이건 뭐 괴상한 피해자중심주의.

정작 피해자가 아니라 뭇 사람들(주로 네티즌)의 자기만족, 공분이 중심에 있는. -_-
피해자인 분과 그 피해자의 가족 되시는 분들도 별로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에서 가끔은 나는 저런 파렴치한 놈이 아니야 라는 안도 같은 게 읽히는 거 같을 때가 있는데 그건 역시 나만의 착각이겠지요?)


-------------------------------------------------------------


최근에 드는 성-인권교육용 책 만들기 등에 참여하면서 하는 생각이, 성폭력은 참 '보편적인'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간 폭력이라거나 연쇄살인 같은 경우에는 차라리 계급적 요소나 심리적 요소를 찾아서 개연성 같은 걸 부여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발생 양태의 차이, 빈도의 차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은,
이토록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게 남성-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발생가능한 폭력이라니...

이번에 나XX 사건을 보면서는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채소마누라'(지은이 펫 머피)라는 SF소설이 떠올랐습니다.
(내용이 궁금하면 읽어보세요-;)

만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에서 제가 느끼는 더 특별한 분노가 있다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신체적인 약자라는 이유로 더 잔인하고 손쉽게 벌어진다는 것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얼마나 분노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분노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남겨두겠습니다.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일들투성이인 저는, 적어도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얼마 전에 강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피해의 심각성이 부각될 때에만, 피해의 심각성이 기존 사회의 '상식'을 넘어설 때에만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전혀 인권적이지 않습니다.
'미친개새끼' 한 명에게 징역을 몇 년 때리냐를 가지고 난리치는 거, 물론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처벌을 강화한다고 범죄가 근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처벌이 지나치게 경미한 것보단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들에 대해 생각하고 개선책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범인에게 어떤 고통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틈새의 미투데이에서




추신 : 어쨌거나, 이 사건이든, 최근에 논란이 된 인종차별금지법 건이든, '인권단체 드립'은 아주 그냥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참고할 글 - stcat님의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추신2 : 술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감형되는 것은 어쩌면 논리적으론 맞는 걸 수도 있습니다. 술이 취해서 책임 능력이 부족했다고 주장한다면요. 음주운전이랑은 좀 범주가 다른 것 같긴 합니다.
뭐, 좋습니다. 감형하든지요. 대신 이렇게 합시다.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술을 과하게 퍼마신 것"을 처벌하는 추가조항을 둬서, 만취상태에서 살인 강도 성폭력 등 범죄에 대해서는 그 범죄에 대해 죄를 적용하고, 거기에 더해서 술 퍼마신 죄를 추가하여 가중처벌하는 거지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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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yfarer

    나영이는 가명입니다. 다만 가명이라도 혼돈을 일으킬 우려가 있기에 바람직한지는 의문입니다. 경기도 9세 여아 등교길 성폭력피해 사건과 같은 식이 더 나아 보입니다.

    2009.09.30 09:32 [ ADDR : EDIT/ DEL : REPLY ]
    • "나영이"도 가명인지는 몰랐네요. 신문이나 방송을 몇 봤는데 (가명)이라는 표시가 안 나와서-
      가명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더라도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하는 건 분명히 좀그러네요.

      2009.09.30 15:17 신고 [ ADDR : EDIT/ DEL ]
  2. 아... 확인결과 나영이는 가명이 맞네요. (시사기획 쌈 자막에 나왔더라구요.) 그럼에도 사건명이 피해자의 이름으로 돼있는건 빨리 고쳐져야 할 사항인듯. 사람들에게는 두고두고 이런식으로 기억될테니까요.

    2009.10.01 09: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9. 15. 12:46
http://onlineif.com/main/bbs/view.php?wuser_id=letter_news&category_no=&no=536&u_no=85&pg=





[김신명숙의 편지 30]
교권이 문제라구요?
이프



<title>idsu.net</title>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탁 막히는 것같았습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머리 속이 소용돌이치면서 복잡해지더군요.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제 목을 보고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최근 큰 물의를 일으킨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에 관한 얘깁니다. ‘선생님 꼬시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유포된 이 동영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들 보셨겠지만 짧은 동영상보다 그 상황을 글로 옮긴 내용이 더 분명하게 사건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같아 조선일보에서 이 사건을 다룬 기자 칼럼-“여교사 성희롱, 죄와 벌”-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45 초짜리 동영상에는 수업이 끝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건장한 체격의 한 남학생이 시험지처럼 보이는 유인물을 걷는 여교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가선다. 여교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옮기자 "누나 사귀자"라고 소리친다. 다른 학생들이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치고, 카메라를 보고 "도망가는데요"라고 말한 남학생은 다시 여교사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다른 남학생이 여교사의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도 잡혀 있다. 여교사가 동영상을 찍는 학생을 향해 '찍지 말라'는 듯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은 끝난다.”이 글을 읽고 어떤 느낌, 혹은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그렇습니다. 언론에서는 애써 ‘성희롱’으로 축소하고 있지만 이 동영상은 전형적인 포르노의 프레임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사 포르노, 혹은 포르노 동영상의 도입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백주대낮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상대로 그런 동영상을 찍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언 론은 이를 두고 ‘추락한 교권’을 떠들고 있습니다만 이 동영상이 생산된 핵심적인 권력관계의 맥락은 교권보다는 ‘남성권력’입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권력관계 위에 존재하는 남성권력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알파걸’이니 ‘여풍’이니 하는 말들이 요란스런 한국사회에서 페니스의 권력은 아직도 굳건한 것이고 그 권력은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물들을 통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단지 페니스가 달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일이 가능한 포르노 세상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지만 클릭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전세계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현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이같은 사건까지 만들어냅니다.


이 제 더 이상 숨어있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일상문화, 더 나아가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돼버린 포르노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 특히 십대들의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데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포르노에서 보여지는 섹슈얼리티, 즉 상호존중의 아름다운 교감이 아니라 지배와 복종의 섹슈얼리티, 정신과 영혼이 함께 하는 온전하고 소중한 몸이 아니라 부위별로 소비되는 살덩어리에 바탕한 천박한 섹슈얼리티가 십대들을 포함한 우리들의 성생활, 나아가 여남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섹슈얼리티는 신의 축복’이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나 ‘삶의 동반자적 관계’같은 여남관계의 지향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성적 괴롭힘과 강간, 지배와 소외, 차별이 횡행하기 마련이지요.


포 르노의 시선에서는 눈에 띄는 모든 여자들, 권력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여자들은 물론 선생님, 상사, 친구엄마 심지어 친엄마까지 성적 대상물로 포획돼 버리고 맙니다. 이번 사건도 그렇게 포르노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포르노의 시선으로 젊은 여선생을 바라보다가, 마침 시간강사라는 약점까지 겹쳐 겁 없이 그런 행동을 벌인 것같습니다. 언론에서는 문제학생들에 대한 처벌만 솜방망이니 뭐니 시비를 걸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포르노 천국’일 것입니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친구 엄마 꼬시기’ 더 나아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제목의 실제 동영상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번 사건이 말해주는 문제 자체도 두렵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막막한 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짐짓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기자 칼럼의 경우 심지어 ‘'장난'으로 만든 동영상일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듯했다’고까지 했더군요. 물론 학생들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성적 괴롭힘을 ‘장난’이라는 가해자의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 그 칼럼을 보자니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보 도에 의하면 그 여교사는 학생들의 처벌도 원치 않고 더 이상의 어떤 다른 조치도 현재로서는 요구하고 있는 것같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도 여교사는 없었던 일로 하려고 했는데 학생이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된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고 보면 이번처럼 사건화되지 않고 묻혀버린 유사사건들이 얼마나 많을지요? 또 앞으로도 같은 성격의 사건들이 얼마나 다양한 변종으로 생겨날지요? 교단에 선 자신의 몸을 포르노의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여교사의 심정은 어떤 것일지요?


자 료를 찾아보니 이미 미국에서는 학생들에 의해 교사가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건들이 법정에서 다뤄진 케이스들이 여럿 있더군요. 한 연방법원은 4년전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성적 괴롭힘에 학교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 8월에는 뉴욕시 한 공립고등학교 여교사가 시 교육당국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알렸는데 교육당국이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했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금전적 피해보상과 함께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성적 괴롭힘을 다룰 성문화된 정책을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충격적인 건 그녀를 성적으로 괴롭힌 건 남학생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한 여학생도 그녀가 ‘성적으로 좌절돼 있어 남자가 필요하다’는 둥의 언어폭력을 썼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적 상상력은 여남을 불문하고 포르노 소비자 모두에게 작동한다는 증거겠지요.


바 라건대 이번 사건이 일과성 공분(公憤)으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절대로 일부 남학생들의 ‘과도한 장난’으로 한번 따끔하게 혼내고 말 문제가 아니니까요. 포르노 천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왜곡된 섹슈얼리티와 여남관계, 여교사들이 전방위로 당면하고 있는 ‘성적으로 적대적인 근무환경’, 체계적이고 효과있는 성교육 등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들과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이 심각한 병리적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지 당사자인 여교사들, 여성단체, 교육단체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학생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번 사건이 그대로 묻히지 않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김신명숙







공현 추신
: 학생들에 의해 + 교직원, 상사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여학생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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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ㅅㅇ

    피해 망상에 빠져 지내는 김신명숙씨는 여전하군요.^^;

    이 사람은 기본적인 인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보니 글에도 신뢰가 안 갑니다.

    2009.09.17 20:39 [ ADDR : EDIT/ DEL : REPLY ]
    • 김신명숙 씨 개인은 잘 모르지만.
      이 글의 기본적 내용에는 동의합니다 ^^

      메신져와 메시지가 어느 정도는 구분되어야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신뢰할 만한 활동가라고도 생각해봅니다.

      (김정명신 씨랑 헷갈려서 잘못 말했었네요. 수정)

      2009.09.24 17:00 신고 [ ADDR : EDIT/ DEL ]
  2. 1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3. 2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삭제할까 하다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올렸을까 싶어서 그냥 남겨둡니다 ^^;

      2010.04.04 20:3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9. 12. 04:13

국민일보 사설 : 제자의 성희롱에서 교권이 읽힌다



1. 이 사건을 두고 교권 실추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지랄맞은 일이다.

물론 이 사건은 교사의 권력/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서 여-남 사이의 성별 권력이 이를 넘어선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장이나 교감, 또는 동료 교사 등이 여교사를 성폭행하는 사건에 대해 아무도 '교권침해'를 말하지 않는 것 등을 생각해보면, 역시 이는 다분히 문제가 있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교권'은 교사가 상급자(정부, 관리자 등)에 대해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하급자(학생)에게 가지는 권력/권위라는 인식이다.



2. 또한 우리는, 저런 식으로 '농담'(??)을 던지는 식의 성폭력(그걸 성추행이라 하든 성희롱이라 하든 성폭행이라 하든)은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게 그 빈도로는 훨씬 많은데, 그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민감하게 "이건 인권침해다"라고 반응해왔는지도 물어봐야 할 것이다.



3. 이 국민일보 사설에서 기간제 교사,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한 건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근데 마지막에 대학입시 어쩌구 하는 문장은 좀 쌩뚱맞게 보인다. 뭐든지 대학입시랑 전인교육 문제냐.



4. 어찌 되었건 저것은 성폭력이다. 여성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처한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대개의 생활 현장이 그렇듯이, 학교 현장은 단지 교사-학생 권력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관계와 맥락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

어쨌건 나는 이걸 연애-사랑을 상품화하고 '소유' 양식으로 만드는 사회, 성폭력에 둔감한 사회의 문제로 이야기하지 않고 '교권실추'의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5. 인터넷에 떠다니는 동영상 중에서 얼굴 다 알아볼 수 있게 된 동영상들을, '충격' 이러면서 퍼나르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사람의 권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성의가 있다고 봐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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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jung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고 저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제가 아는 여교사 한 분은 "나는 그거보다 조금 덜 한 일을 학교(당시 남자중학교 근무)에서 종종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나를 위안삼았으면 좋겠네..." 라고 저를 위로하더군요.

    2009.09.14 11:40 [ ADDR : EDIT/ DEL : REPLY ]
    •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모든 여성이 잠재적인 성폭력의 피해자...라고 하더라구요

      2009.09.14 23:22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8. 19. 16:03


뭔가 오랜만에? 조-금 맘에 들게 쓴 글이에요.
메시지의 전달과 나라는 개인의 표현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다 포착하는 데 약간 성공한 것 같은 글.





[페미니즘인(in)걸] 신데렐라이길 거부한다

밤길을 다니고 외박을 할 자유를


공현


기숙사 통금시간은 8시? 10시?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기숙사는 당연히 여남 공용…일 리는 없고 여자 기숙사와 남자 기숙사가 마주 보고 따로따로 있었다. 어느 가을날, 내가 속해 있던 만화동아리는 중간고사가 끝난 걸 축하하며 동아리 회식을 했다.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노래방으로 고고씽. 주구장창 일본음악에 애니메이션 OST를 불러대서 ‘일반인’들과는 도무지 눈치 안 보고 노래방을 즐길 수 없는 인간들이 많았던 동아리 특성상 회식 후 노래방은 나름 필수 코스였다.

그렇게 노래방까지 갔다가 기숙사 근처까지 왔을 때 시간은 대략 저녁 7시 반쯤. 조경이 잘 되어 있는 학교를 다닌 터라, 기숙사 옆에는 나무들과 잔디가 살고 있는 공터가 있었다. 해가 붉은 색조를 띠기 시작하고 조금씩 어둑어둑해져갈 무렵, 그 공터에서 만화동아리 사람들 10여 명이서 얼음땡과 술래잡기가 벌어졌다.

그런데 채 30분도 하기 전에 여학생들이 가야 한다면서 빠지는 게 아닌가! 왜 가야 하냐고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대답. “기숙사 통금이 8시.” 남자기숙사에만 살아봐서 통금 시간은 여남 기숙사 똑같이 10시인 줄만 알았던 나는 그야말로 깜놀했다. 8시에 방별로 점호를 하고, 8시 이후에는 기숙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니. (물론 남자 기숙사의 10시 통금이라고 해서 좋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8시는 너무하지 않나? 토요일에 학교 끝나고 회식하고 수다 좀 떨다가 노래방 갔다 오면 8시는 눈 깜짝할 새 아닌가. 이처럼 성차별은, 결코 다른 어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위 사진:6회 밤길 찾기시위에 참가한 청소년들


밤길을 되찾자, 달빛시위


달빛시위라고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다. “달빛 아래 여성들, 밤길을 되찾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매년 하는 시위다. 여성들에게 위험하니까 밤중에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여성 단속(?), 성폭력 피해는 ‘야한 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닌 피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하는 식의 헛소리들, 그리고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사회에 맞서서 “밤길을 되찾자”라고 외치며 달빛 아래를 누비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는 어떨까? 문득 작년에 있었던 촛불집회 때가 떠오른다. 경찰들은 밤이 깊어지면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밤 10시가 넘었으니 청소년 여러분은 귀가해주십시오.”라고 방송을 해댔다. 한 촛불단체는 집회를 열면서 밤 10시 이후에 청소년들을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꼭 촛불집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평소에도 피씨방도 노래방도 찜질방도 모두 밤 10시 이후 청소년 출입금지다. 무슨 청소년들이 신데렐라고 밤 10시가 마법이 풀리는 시간인 것도 아니고. 청소년들이 위험한 밤길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들은 집요하다.(유일한 예외는 학원, 자습 등 ‘공부’뿐이다.) 여성들의 경우에 맞먹을 정도다. 아니, 적어도 여성들의 경우는 밤 10시 이후에 출입금지 이런 게 제도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럼, 여성 청소년들은? 여성이면서 청소년인 그들은 더 많은 제약에 마주해야만 한다. 남자기숙사는 통금 시간이 밤 10시인데 여자기숙사는 밤 8시인 바로 그 차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차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살아보면 이게 그렇게 사소한 차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기숙사 통금시간 뿐 아니라 집집마다 있는 ‘통금시간’도 보통 여성 청소년의 경우에 더 이르다. 그냥 밤길을 돌아다니는 데에도 많은 제약이 따르는데, 혹시 외박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청소년들의 외박이 대체로 잘 허락이 안 되지만 여성 청소년들이 외박하겠다고 하면 집에서는 더 난리가 날 공산이 크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도 체감하게 된다. 같이 밤늦게까지 집회를 하거나 회의/토론을 하거나 놀려고 하면 청소년들은 꼭 집과 실랑이를 해야 한다. 그냥 알아서 집에 잘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게 너그러운 집이다. 외박이 까다롭기 때문에 MT를 가기도 힘들다. 여성 청소년들은 그게 더하다. 밤 9시만 되어도 자리를 떠나는 청소년들은 여성 청소년들이 더 많다. 일반적으로, MT나 밤샘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청소년 활동가들 중에는 남성이 많다.


위 사진:6회 밤길 찾기 시위 홍보 웹자보



신데렐라이길 거부한다

고미숙은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라고 질문하고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비판적으로 추적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청소년의 존재 기반은 학교와 가족이다.”(김현철,고미숙,박노자,권인숙,나임윤경『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60쪽) 이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집(가족)과 학교(그리고 학교의 연장선상인 학원)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청소년들이 밤길을 돌아다녀선 안 되고 외박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속에는 청소년들은 가족(부모, 보호자) 또는 학교(교사, 학원)의 감독과 보호 하에 있어야 한다는 이 사회의 룰이 있다. 외박은 이런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들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다른 곳에 몸을 맡기는 일이기에 아주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허락받지 않는 외박을 이렇게 부르지 않던가? 가출(家出:가족으로부터 나감.)이라고.

사실 여성들에게 밤길을 금지하는 논리와 청소년들의 밤길을 금지하는 논리는 고만고만하다. 여성들/청소년들에게 밤길은 위험하니까. 여성들/청소년들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니까. 그리고 여성들/청소년들은 집에 있어야 하니까.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여성들의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경우에는 다소 약해진 듯하다. 꾸준한 여성운동의 결과로 여성이 남성 가부장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자식/청소년들은 부모/보호자들의 소유물이라는 식의 생각이 강고한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데렐라가 되어간다. 밤 8시, 10시, 혹은 12시에.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신데렐라가 되길 거부한다. 80년대에 사라진 통금이 여성&청소년들에게만 존재하는 현실에 저항한다. “밤길을 되찾자!”는 여성들만의 구호가 아닌 청소년들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 청소년들에게 이르러서 더욱 강고해지는 이 ‘밤길 금지’, ‘외박 금지’ 논리에 맞서서, “밤길을 되찾자!”는 누구보다도 여성 청소년들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여성주의(페미니즘)와 청소년인권은 바로 이런 지점들에서 만나며 서로 힘을 더해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66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9일 13:03:52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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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elnoveno.net/2009/08/19/relay-qna-education/

    릴레이 문답을 보낼게. 주제는 '욕망'. 공현의 '욕망론'을 듣고 싶다는... ㅎㅎ;

    2009.08.19 18:38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7. 20. 01:36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를 패러디한 전기하와 방가방가시스터즈의 '싸구려신문'입니다.
달빛시위에서 공연하는 걸 듣고 맘에 들어서 UCC를 찾았습니다.


싸구려신문을 읽는다 일면보고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여자배우 한명쯤 슥 사라져도....

ㅠㅠㅠㅠㅠㅠ




웃기면서 중간중간에 씁쓸-하네요.

여기서 싸구려신문은 무슨 신문일까요?

이 사건과 관련해서 유행했던, OO일보는 대체 어느 신문이냐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성폭력/성매매강요에 노출된 여성 분들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故 장자연 씨, 그리고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로 일컬어지는,(저는 이렇게 피해자 이름으로 짓는 걸 싫어하는 편이지만...) 성'상납'리스트에 대한 수사
권력 앞에서 흐지부지 중단되어버린 경찰 수사

장자연 씨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의미와
'그들'을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의 의미는 정반대일 것입니다.

여하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우리가...






(참 이런 게 저작권 침해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어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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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7. 18. 13:12


밤이고 비도 오고 해서 사진이 그리 잘 찍히진 않았습니다. 역시 한 5년 전에 산 삼성 디카라서 그런 듯. 삼성 거는 역시 버려야 했음.(원래 밤에 삼성 게 잘 안 찍히기로 좀 유명.) 하지만 새 거 살 돈이 없음 ㅠ



솔직히 말해 약간 힘들었어요. 비가 와서 좀 그랬던 거 같긴 한데. 행사도 후딱후딱; 한 면도 있고
UCC는 좀 한두 편 빼고는 밍밍...

달빛시위의 백미인 시위-행진도, 비가 와서 그렇게 활기차게 못했어요 ㅠㅠ 원래 행진을 재밌게 해야 하는 건데.

전기화와 방가방가시스터즈의 "싸구려신문" 등의 공연은 좋았습니당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분투하신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이날 달빛시위에서는 경기서남부 연쇄 성폭력 살인사건, 고 장자연 씨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촉구, 삼성전자에서 성희롱 사건으로 몇 년째 싸우고 계신 이야기 등이 주로 이야기 됐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밤길을 허하라" "야자, 학원만 허락된 우리의 밤길?" "청소년의 외박할 자유 보장하라" "밤10시 신데렐라, 됐거든!" 등의 내용을 피켓으로 만들어서

청소년들의 밤길 통행의 자유를 외쳤습니다 ㅋ

다음 달빛시위에는 내용에 좀 더 반영되게 고민해봐야겠다능.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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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고

    공현, 반가웠는데 말야.
    나도 밋밋한 UCC 중 하나에 출연했어 ㅋㅋㅋ
    난 왠지 씁쓸했어, 이기는 싸움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축축 처진다고나 할까-

    2009.07.18 14:06 [ ADDR : EDIT/ DEL : REPLY ]
    • 음 좀 처져. 날씨 탓도 없진 않은데. 그래서 안 처지게 좀 해야지.

      2009.07.19 12:13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오는데 고생하셨습니다 ^^

    2009.07.19 19: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8. 19. 22:4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성-청소년, 보호주의에 묻힌 성적 자기결정권

난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촛불집회에서 연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아실까 모르겠어요. 그 때 기사가 났었는데, 대부분 기사 내용이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여중생...' 뭐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났어요. 근데 사실 전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고 그런 적 없는데, 그 때 언론들에서는 모두들 '집에 가고 싶어요, 무서워요, 저 보내주세요 흑흑... 한 여중생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았었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어린 10대 소녀로, 그 기사들은 절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은, 보호해줘야 할 약자,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언제부터 나는 누군가가 지켜줘야 했을까요? 왜 나는 보호받아야 할 어린 소녀일까요? 연행당할 때 '미성년자는 풀어줘라!'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10시 이후에는 집회에 남아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 때, 항상 따라오는 건, 내가 '청소년'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이라 못하고, 안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일단 술 담배 마음대로 못 삽니다. 찜질방도 10시 이후로는 보호자 없이는 출입 못 하구요. 숙박시설도 보호자가 없으면 마찬가지로 잠 못 자구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밖에 나와도 잘 곳이 없어요. 이 모든 것들은 다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는 건데, 그 유해환경에 '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선거에서 당선돼 우리가 다시 한숨 쉴 수밖에 없게 만든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관계를 한 학생은 퇴학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청소년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청소년은 아직 판단력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해환경에 쉽게 물들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해주겠다는 말 속에 권력 관계가 있는 거고,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 통제나 억압, 지배가 있게 됩니다. 보호라는 말로 차단시켜 놓음으로써 격리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구요.
보호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보호만 싹 없앤다면 여러 문제들이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보호만 하는 것이 맞나? 그것은 현상 유지를 위한 방책이지,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아니지요. 어느 선에서 차단만 시켜놓는 미봉책입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 유해 환경이라고 했을 때 뭔가가 유해 하다면 유해 환경 자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건데 그것을 출입 금지로만 그냥 금기시 해놓는 것. 성을 이야기 하자면, 그러니까 성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너희들, 잘못하면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인데, 지금 사회에서 청소년이 임신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낙태'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낳아서 어쩔건데?'가 되어버리는거죠. 또 사회적인 시선들, '아니, 저 어린 것들이.' 하는 비난의 눈길. 하지만 청소년들이 임신 했을 때, 낳아서 양육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임신을 하면 인생이 불행해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을 통제해서 막겠다는 것은 문제를 덮어 놓거나 어느 선에서 눌러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을 금지했을 때, 보호하려 했을 때 보다 청소년의 임신율, 낙태율, 이런 것들이 수치상 줄어들 순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닌거고, 청소년의 행복과도 거리가 멀어지지요. 또 사실 낙태 비율만 놓고 보자면,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제일 높다고 해요. 임신을 하고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아이를 지워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양육 문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양육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고 있는 사회의 문제인거죠.
다시 보호주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여자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밤이 위험해지는 환경, 밤에 범죄 위험(성폭행, 납치, 살인 등..)이  높은데, 범죄의 위험성에 대해 CCTV설치 정도로 해결하려는 것이나, 위험하니까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들. 그 위험한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밤길 이야기는 '여성에 대한 보호'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비청소년이 되어도, 여성인 경우 집 안에서 외박을 금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연행 사건에 대한 기사의 내용도, 실은 그 청소년이 남성 청소년이었다면, 그런 식의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호'에 있어서, 청소년 사이에서도 성별의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성, 섹스에 관해서는 나이보다 성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보호주의'라는 것에 '성적자기결정권'은 묻히게 됩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아직 당연한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인정받지 못하고, 주위에 숨겨야 될 것만 같은 분위기, 청소년이 섹스하기엔 사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없는 것들, 등등. 하지만 성에 대한 통제가, 청소년의 성을 금기하는 것도 있지만 비혼이란 범주에 청소년이 속한다고 본다면, 20대일지라도 비혼일 경우는 섹스했다고 하면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청소년이더라도 비혼부는 없고, 비혼모는 있지요. 임신후 결과에서, 여성 청소년에게만 더 많은 성적 통제가 가해지고, 남성 청소년의 경우는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구요. 남성 청소년의 성경험이 여성 청소년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통계도 있고 경험에 대한 해석에서도 여성 청소년보다 남성 청소년에게 훨씬 관대하게 적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의 차이. 결혼을 중심으로 봤을 때, 결혼하지 않았다는 게 여성 청소년에게 훨씬 크게 적용하지요. 혼전순결에 대한 사회적 강박 같은 걸까요? 
사랑니라는 영화를 보면 여성 학원 교사가 남자 아이와 여관을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텔 종업원이 비난을 할 때는 그 여성에게 비난을 가합니다. 20대, 30대 남성과 10대 여성이 할 때에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은 일반적으로는 여성에게 가게 됩니다. 그 때는 '저 발랑 까진 어린 것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지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아직도 쉬쉬하는 사회. 보호를 위한 건가요? 그렇다면, 그 보호를 거부하겠습니다. 이제는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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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속에서도 권리를 외치다


공현


청소년 성폭력 사건의 그 ‘특별함’

  청소년(아동) 성폭력 사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분명 웬만한 청소년 성폭력 사건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권력(물론 구체적 사건에 따라 +a가 있다.) 속에 일어난 여타의 성폭력 사건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성폭력 사건일 텐데, 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특별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사람들은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이고 비청소년-‘성인’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최근에는 혜진 씨 예슬 씨가 피해자였던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는 천인공노(天人共怒), 인면수심(人面獸心) 등 한자어를 써가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무슨 변태 성욕의 증거가 발견되었다면서 가해자를 열심히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타자화 한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를 발동시켜서 성폭력 범죄자들을 더욱 빡세게 처벌하겠다는 법률 개정 검토를 하고, 부모들은 아동 성폭력 피해 예방을 위해 밤길 조심하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조심하고 등등의 조심 사항들을 내놓는다.
  아동-청소년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대표적인 것이 2004년에 있었던 밀양에서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 공론화되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비난이 커지며, ‘미성년자’들의 ‘충동적인’ 범행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고 청소년들의 ‘미성숙’함이 강조된다. 청소년에 대한 음란물 규제와 같은 조치도 항상 따라 다닌다. 최근에 있었던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에서도, 정부에서 검토한다고 한 조치는 결국 ‘음란물 규제’가 아니었던가?
  분명히 아동-청소년들의 성폭력 사건은 대개 성별 권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 ‘전형적인’ 성폭력 사건이다. 아동-청소년들의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가 반영된 경우도 많지만,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별 권력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책임 전가라거나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것을 금기시하는 모습도, 여타의 성폭력 사건들과 비슷한 모습들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이 사회의 태도는 아동-청소년들의 특수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청소녀/년의 성적 결정권”이란 이름으로 특별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청소년에게 위험한 성

  그렇다. 청소년에게 성(性)은 위험한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여성에게 성은 위험한 것이다, 라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여하간 청소년들에게 성은 위험한데, 하나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때문(가해/피해 모든 면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에게 성행위는 금기시되며 그러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위험은 연령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아동-청소년 성폭력에 특히 민감한 이 사회(이게 과연 ‘약자에 대한 폭력에 분노’하는 ‘순수’한 마음일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폭력만 특히 강조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은 특히 위험하다. 하나는 ‘자라나는 새싹들’인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 인식 안에는 청소년에 대한 이중적인 고정관념들이 이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성이 위험한 두 번째 이유는, 청소년들의 성행위는 이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데는,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신세망친다, 라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문제와 더불어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가 부여하는 생애주기-나이주의(나이주의라는 말은 여기선 매우 복합적으로 나이에 따른 권력과 위계를 뜻함과 동시에 나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생애주기의 의미를 지닌다.)의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 고등학교 때인가 국어 선생이 “어른”의 어원이 성행위를 경험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청소년들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정한 청소년들의 틀과 지위를 벗어나는 일이기에 위험하다.
  최근 인기 도서인 『88만원 세대』를 보면 첫 챕터에 “첫 섹스의 경제학,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10대들이 섹스를 하지 못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구구절절 분석해놨는데, 옳은 소리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이 꼭 경제적 지위의 문제만은 아니다. 30대 기혼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경제적 여건이 매우 곤란한 경우 주변에서는 걱정을 하고 염려스러워 하긴 하겠지만, 10대 미혼(비혼) 여성이 임신을 한 경우에는 비난과 좀 다른 스트레스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청소년 안의 성별 권력

  그런 이야기로 원고의 반절을 쓰고서도, 또 청소년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청소년’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들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존재한다. 청소년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들도 충분히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고, 일상적으로는 수업 시간에 남성중심적인 성적 농담을 통해 친밀한 공모 관계를 형성하는 남성 교사와 남성 학생들의 관계를 봐도 그렇다. 최근에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성구매를 한 남성 청소년들에 대해 교사가 통제를 잘못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언론이나 사람들을 봐도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식의 판타지는 계속된다.(물론 거기에는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성숙한’ 성인들이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도 같이 있다.)
  또한, 바로 요 앞에서 청소년들에게 성이 금기시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또한 남성 청소년의 경우와 여성 청소년의 경우가 다르게 취급되며, 미혼/기혼 기준 또한 여성 청소년들에게 매우 강하게 적용된다. 남성 청소년들의 성행위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난다의 발제에 충분히 자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까 이만 줄이겠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

  그래서, 도대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 않은 이 토막난 원고의 끝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발제라는 게 원래 시원한 답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함께 토론할 이야기거리를 꺼내보자는 것이니 속 시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고 인정되어야 한다. 비록 아동권리협약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홀대받는 권리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권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성적 권리라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성에 대해 알 권리, 성평등(동성애나 성전환 등을 포함한)에 대한 권리 기타 등등을 의미한다. 비록 청소년의 성적인 자유가 힘 있는 남성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자유주의나 프리섹스로 오인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청소년 안에서 성적 권력 관계가 엄존하기에 수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더라도,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청소년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다, 라고 하면 “그래 당연하지. 하지만…”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도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매우 과민하게 반응한다. 왜 이 사회는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까? 그것이 그토록 위험한가? 그것이 정녕 그리도 위험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적어도 그 사람들이 18세 이전에 섹스를 하면 자궁에 질병이 생길 확률이 몇 배 높아지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유 때문에 ‘위험’하다는 건 아닐 테니까.) 청소년들에게는 성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성을 권리가 아닌 보호와 통제, 위협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때 청소년들은 그리 행복하지도 못할 것이고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A4를 3페이지나 낭비했다는 것은 죄악인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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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꿈2008. 6. 28. 15:55
며칠 전에 신도림에서 88번 버스를 타고 역곡으로 가는데-
원래 밤에는 88번 버스에 사람이 좀 많다 - 1호선이 좀 일찍 끊어지는 편이라 그런지 어떤지;

그런데 내 뒤에 탄 어떤 사람이 자꾸 내 오른팔을 더듬었다.
처음엔 하도 사람이 많아서 잡을 데가 없어서 그러나, 싶어서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그냥 계속 팔을 뿌리치기만 하고 특별한 행동 없이 가만히 있었다.
숨 막히게 사람이 많았던 탓에 고개를 돌려서 이게 누구 손인지 확인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뿌리쳐도 뿌리쳐도 자꾸 팔을 더듬는 거에 기분이 좀 나빠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손이 등에 맨 가방 사이로 들어와서 옆구리를 더듬었다.
몸에 소름이 돋고 기분이 더 나빠졌다.
옆구리를 더듬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 누르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고 온갖 생각들을 머리에서 굴리면서 계속 몸을 빼서 다른 데로 가려고 했으나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애써 곁눈질로 보니까 술에 취한 거 같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아저씨였다.

소리를 지르거나 성폭행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그런 적 없다고 하거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하거나 하면 더 시끄러워질 거 같았고... 혹시 술에 취했는데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진 않을까 무서웠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그 아저씨의 손은 급기야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는데

열도 받긴 받았지만 앞서 한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어중간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죄송하지만 손 좀 치워주실래요? 자꾸 닿아서..."
이렇게 말하니까 다행히 그 아저씨가 죄송하다고, 모르고 그랬다고 하면서 손을 치웠는데

그 다음에 내가 내릴 때까지도 계속 입속으로 뭘 웅얼웅얼거려서 무서웠다. 나한테 욕하는 건 아닌가...

어지간히 술에 취했는지 막 그 비좁은 버스 안에서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맨발을 의자에 올려놓고 -; 다른 사람들도 다 막 피하던데 그 아저씨

아휴 ㅠㅠ 끔찍한 느낌.


한 번 당하고 나니까,
일생에 걸쳐서 이런 성폭력 경험 한 번 없는  '대한민국' 여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달까---- (심지어 나는 생물학적으로나 법적으로 여성도 아닌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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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잌후, ,

    2008.06.28 19:17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머, 없어요, 그런 '대한민국' 여성은.

    2008.07.31 01: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