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7. 10. 29. 18:47

청소년은 시민이다

김효연, 시민의 확장, 스리체어스, 2017

 

 

시민의 확장은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정당법센터 연구원인 김효연이 법학적 관점에서 청소년 참정권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의 문제를 논한 책이다. 먼저 이 책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겠다.

첫 번째로, 단지 선거권 제한 연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18세 선거권 자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슈가 된 문제지만, 국회나 언론 등에서는 그것을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로 잘 다루지 않았다. 또한 18세 선거권 외의 청소년 참정권 문제 역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민의 확장은 청소년의 권리 문제로서 참정권, 선거권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기존에 나온 책들과 차별화된다.

두 번째로, 시민의 확장은 법학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논의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주로 (민주주의) 교육의 논리나 세대 간 평등 등 사회학/사회복지학의 논리로 다루어졌던 것에 비해, 시민의 확장은 헌법재판시 기본권 제한의 법리나 인권으로서의 참정권의 성격 논의 등 법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등에서 계속해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접근이 가지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

세 번째는, 단지 국내법이나 국내 사례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 2장이 세계적으로 아동의 권리 변천사나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확장의 시야는 국제적이다. 이에 따라 실제 사례들을 검토하면서도 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청소년 참정권 관련 제도들,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경우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편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를 논하면서, ‘연령성숙도를 분리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99)도 저자가 한 연구의 깊이를 보여 준다. 이상의 장점들이 청소년 참정권 이슈에 대해 알고 이야기하기 위해 시민의 확장을 읽어야 할 이유들이라 하겠다.

 

 

사회의 책임

 

청소년의 참정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아니, 사실 청소년인권 이야기를 할 때면 거의 대부분) 청소년이 그만큼 성숙한가, 청소년이 그러한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경우가 많다.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면서 18세면 충분히 성숙하다고 논거를 드는 것도 이미 그러한 틀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장에서 던진 질문, ‘몇 살이 되어야 시민이 될 수 있는가라는 말은 곧 이러한 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아동·청소년도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따라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연역해 낸다. 다만 2008년과 2016년의 촛불 집회를 언급하면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이례적 현상이었다고 평가한 것은 아쉬운 부분인데, 이는 저자가 법학 전공자로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 사례에 밝지 못한 탓으로 이해하겠다.

4‘19세 미만 선거권 제한은 위헌이다에서는 헌법재판소가 19세 선거권 제한 연령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거권이 국가 내적인 기본권인지, 인간의 고유한 권리인 인권인지, 그리고 주권 행사의 문제인지를 나누어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내 학자 소수와 독일 학자는 선거권의 법적 성격을 인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97)라며 인권으로서의 선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과 정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청소년 참정권 제한에 반대하긴 하지만, 선거권 제한 연령 설정 자체는 입법자의 재량일 수 있다는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기에 저자가 제시한 관점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고 생각을 고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이 문제를 풀 결정권과 책임은 여전히 국회에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선거권 등을 제한하고 보장하는 기준으로 청소년이 충분히 성숙했는지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봐야 할까? 4장 소제목의 판단 능력이 미숙하면 권리를 빼앗겨도 되는가?”라는 질문도 적절하긴 하지만, 더 나아가서 시민의 확장은 사회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예컨대, 영국에서 16세 선거권 주장이 나오면서 행한 연구에서 16-17세 아동이 정치에 관심이 적고 낮은 수준의 정치적 지식을 갖고 있고 정치적 태도도 일관적이거나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2007년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한 뒤,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16-17세의 아동·청소년이 정치적 성숙성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은 선거권 연령의 변화 이후에 성장했고, 즉 선거권 연령이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에 영향을 주고 있”(122)는 것이다. 정치적 성숙성은 생물학적으로 정해진다기보다는, 제도나 사회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청소년의 성숙성이나 뛰어남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청소년도 민주주의 사회의 예외 지대가 아니게 해야 할,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 운동이다. 무엇보다도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이다. 저자의 말대로 입법부는 입법 정책으로 단계적인 선거권 연령 하향이라는 개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127) 또한 연령 제한과 상관없이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할 여러 방법들도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시민을 확장하자는 취지로 시민의 확장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에 적힌 내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청소년은 이미 시민이다.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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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7. 4. 19. 15:12

이것도 노동이다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영롱.명수민 지음, 교육공동체 벗, 2016) 리뷰



운동 사회 안의 해묵은 이야깃거리로,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화제가 있다. 최근에는 열정노동/열정페이 비판 등이 여론에 대두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노동자지!’ 하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원론적으로는 맞다. 운동의 과정에서 하는 일들도 노동이다. 단체와 계약하여 정해진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더욱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나는 이게 그렇게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자명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재정 상황 상 오랜 기간 상근활동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단체 규모가 커지고 후원금을 모아 상근활동가를 새로 두기로 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회원 중 몇 명이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상근활동가가 그냥 회원이었을 때 통상 참여해 왔던 정기 회의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상근활동가로서 하는 노동인가, 아니면 회원으로서 하는 활동인가? 이런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좀 더 근본적으로는 상근활동가는 왜 돈을 받고 단체 일을 하는데, 그 외의 회원들은 돈을 받지 않고 무급 봉사로 단체의 일을 하는지부터가 고민스럽게 된다.


  조금 다른 길로 빠져 보자면, 노동자의 임금은 양면적인 성격이 있다. ‘(노동시간 또는 그 성과)에 대한 대가라는 측면과 생존과 노동력 재생산 보장이라는 측면이다.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의 노동과 그에 대한 임금은 후자의 측면이 좀 더 강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른 많은 자발적인 무임금 노동/활동/운동들 때문에 일에 대한 대가라는 식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참여가 모두 대가를 지급받아야 하는 임노동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스럽다.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자. 사실 이 질문에서 노동자, 문자 그대로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역사적 환경 속의 임노동자를 뜻한다. 법과 판례를 참고하면, 노동자는 사용자/고용주의 감독·지휘 하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구체적 상황은 단체마다 천차만별이긴 한데, 적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들은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라고 하기 어렵다.


   가령 사용자/고용주가 별도로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따로 감독이나 지휘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 또는 그 이상의 노동을 단체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가는 것은 맞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있거나 자기감독자기착취(꼭 나쁜 의미에서 쓴 말은 아니다.) 식으로 노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 등에 더해서, 이처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면 자영업자에 가까운 건가 하면, 또 정해진 임금을 받지 단체가 활동이 잘 된다고 해서 돈을 더 가져간다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나, 총회 등 단체의 의결 기구에 그 고용이나 활동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노동자에 가깝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영리 기업과 달리 그 활동의 수혜자나 대면하는 대중이 시민사회단체의 수입처가 되는 곳(후원자들이나, 극단적으로는 정부 및 기업 등 기부처나 프로젝트 발주처)과 다르다는 특징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들도 있다. , 피터 드러커 식 개념으로는 본질적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잘 알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예를 들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는 단체마다 상황이 매우 다르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으로 넓혀서 보면 실로 각양각색의 조직 구조와 노동 환경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영역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단지 노동법 준수의 문제나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같은 이야기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다각도에서 바라보기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청년들의 사회적 노동 경험에 대해 2014년에 진행한 연구를 재가공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노동이란 의미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내려는 의지와 실천, 협상을 동반한노동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공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가려는 길은 그러한 현장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청년들이 좋은 노동’(공익적이고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 노동자가 행복한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을 기대하며 사회적 노동에 찾아오고, ‘좋은 노동에 대한 질문을 계속 붙들고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의 의미나 성격이나 좋은 노동의 요건 자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려고 한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의 장점은,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을 노동의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면서도, 그 노동조건의 열악함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살피며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이 영역에 남아서 계속 일하고 있는가묻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에필로그 청년들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가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곧 이 책을 낳은 문제의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하도록 만들었을까?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고 소진시키고 있을까? ‘그럼에도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걸까? 더 좋은 노동과 사회를 향한 어떤 형태의 바람과 기대, 혹은 어떤 열망이 그들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현장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도 다층적이며 복잡하게 경험되고 있을까?” (240)

 

   그래서인지, 이 책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라는 주제를 시종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가령 1장에서는 노동, 활동, 운동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사회적 노동의 양태를 파악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하는 일은, 노동이기도 하고 (사회적) 활동이기도 하며 (정치적)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책 속에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노동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회피한다는 지적도 담겨 있지만, 동시에 활동과 노동을 엄격하게 구분했을 때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회 변동 속에 운동의 개념이 약화되거나 혹은 불명확해지고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읽힌다.


   4모순과 함께 일하기에서는 사회적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가치의 충돌이나 중첩을 보여 준다. 자율성과 타율성, 공동체적 조직 문화와 일의 효율성, 우리 좁히기와 우리 넓히기, 자립과 의존 등 가치 사이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기록한 내용에는, 과연 무엇이 좋은 노동인지, 사회적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당위적 가치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복합적 경험들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리뷰는 사실 이 책의 주제와 관점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작은 운동장 안에 들어와 막상 부딪혀본 세상은 꽃밭이 아니라 또 다른 고난이었다. 선의에 기댄 채 생활의 어려움은 애써 외면해 보려 했으나, 반복되는 삶에 지속적으로 덧대어지는 더께는 결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은 결국, 그들의 선택을 후회한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70년대 산업화의 격랑을 단기간에 거쳐오며, 더 나은 노동을 찾아내는 것에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다. 첫 번째 책인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그 증거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1213&CMPT_CD=C1500_mini)


  이 책은 단지 좋은 노동을 찾아서 온 사회적 노동 현장에도 좋은 노동은 없었다라는 서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원래 연구 보고서에서 출발해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인지 읽기 어려운 부분들이 왕왕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책의 내용에서 사회학자의 개념 등을 많이 인용해 오고 있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는, 서문에서부터 피로 사회등으로 대표되는 ‘OO사회논의가 이어져왔던 점을 거론하고 있는데, 지난 몇 년간 그러한 논의를 따라오며 읽어오지 않았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그러한 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는 부분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축적된 담론이나 개념들을 이미 독자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 자체가 학문적 영역에서 탄생한 글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노동을 위해

 

사회적 노동은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노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 자체가 복합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라고 말하고 그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말을 막고 현상을 유지하자는 소극적인 자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인지, 좀 더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막바지에서 우리에게는 완벽한 출구도 섣부른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243)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될 것임을, 삶을 지속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나는 첫 번째로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에 필요한 변화는 투명성 강화라고 생각한다. 노동 문제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문화를 없애고, 노동 조건과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공개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는 일을 하는 노동자/활동가들에게 진입 과정에서부터 이를 공개하고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며, 2차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이 영역의 현실이 이러함을 열어놓고 문제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기대가 어긋나서 생기는 문제를 줄일 수 있고 개선할 길도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운동 사회’(혹은 사회적 경제 사회/네트워크’)의 문제 인식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개별 단체나 협동조합 등의 수준에서는 자원의 한계가 많고 당장의 선택지도 적은 경우가 많다. 비슷한 여건에 놓여 있거나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위들 사이의 네트워킹과 연대를 통해서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문제나 세대 간 소통, 조직 문화 및 조직 내 민주주의와 같은 문제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로 더 문제를 확대하면, 전 사회적 공동 책임을 논의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노동영역에서의 여러 문제들은 다중적 의미에서 사회적이다. 예컨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청년 세대의 문제나 세대 간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여러 지점들은, 단순히 세대 간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청년 세대가 겪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나 전 사회에서 정치적 변화의 전망이 약화된 문제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노동, 전 사회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공익적인 성격의 일을 하지만 이 때문에 투여되는 노동에 비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은 한정되는 성격이 있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가치 있는 공익적 일이라는 합의가 가능하다면, 이에 대해 좀 더 사회적인 공동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제도적인 지원이나 공간 등 인프라 구축의 형태가 되었든, 좀 더 풀뿌리적인 연대의 형태가 되었든.(‘예술인 지원 제도가 가능하다면 활동가 지원 제도는 왜 불가능한가?)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고 한 생각은, ‘사회적 노동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의 문제와 별개로 볼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경제·교육·주거·문화·복지 등의 문제와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적 노동 영역만을 따로 놓고 이것이 좋은 노동인지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사회적 노동 영역에서의 예시들은 문제점과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모델이자 창구이다. 결국 우리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으며 나 자신에게도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우리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꼭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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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5. 6. 21. 13:36

투명가방끈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출판기념회 (20150627)









투명가방끈 출판기념회


투명가방끈에서 오랜 시간 준비한 책<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가 나왔습니다.

 

발매를 축하하고 한 자리에서 기쁨을 나누려 합니다. 거부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대학 말고 다른 삶을 선택한 이들의 음악이, 때론 위트 있게 때론 가슴 시리게 삶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편안히 오셔서 고생한 출판팀과 저자들에게 격려를,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거부자들에게 힘을 전해주세요.

   

<이야기로 만나기>

투명가방끈 소개와 책소개, 그리고 대학거부자로서의 공통된 이야기와 개인의 특별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현 (사회자) “"대학거부 이후에 감옥에 가게 돼서 옥중에서도 자기 원고를 써서 넘겼으나 2년이 되도록 책이 안 나와서 결국엔 출소 후에 직접 출판 일을 추진한 투명가방끈 활동가"”

공기 자기소개가 싫은 공기입니다.”

난다 몇 박자 느린 삶을 사는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요즘엔 조금씩 좋아지는 중. 신난다의 난다입니다

아리데 학교 다닐 때는 대학가는게 당연했는데, 당연함 속에 숨어있던 차별을 발견했어요. 삶이 힘들고 두렵지만 이 불편함을 잘 간직하며 살고 싶은 아리데입니다.”

시원한 형 아래서 소개


 

<음악으로 만나기>

 

팽이 : 청소년인권 운동가의 마초적이고 꼰대스럽지 않은 힙합


도마 : 노래하려 대학대신 서울로 상경한 싱어송라이터의 차분한 이야기

시원한 형 : 대학과 임노동을 거부한 뒤, 세상이 강요한 자소서와 유서 사이의 가사.



시간 : 2015년 6월 27일 오후 4시-6시

장소 : 마포 민중의 집 망원역 1번 출구 도보 5분, 남 춘천 닭갈비 3층.

문의 010-2686-삼이사일

카페 : Hiddenbag.net

 

 

고마운 사람들 : 투명가방끈, 저자 및 인터뷰대상자, 편집자, 출판팀 (호야, 공현, 찬우) 오월의 봄, 양선화, 강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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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4. 3. 23. 12:54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10점
오찬호 지음/개마고원


'자기계발논리'를 원인이자 핵심으로 지목할 수 있는 걸까?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읽고 난 후 단상 겸 메모


# 우선은 이 작업에 찬사를 보낸다. 2008~2012년, 4년 간 다양한 20대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인식구조에 대해 탐구하는 이런 연구는 분명히 우리 시대상을 기록하는 작업으로서 의미가 크다. 또한 단편적인 분석과 인상비평들이 주를 이루던 '2000년대 대한민국의 20대(또는 청년?)' 논의들 속에서, 이정도의 성실함을 가지고 이야기를 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수 있다.


# 읽다가 든 궁금증 : ‘대학생 아닌 20대’, 또는 ‘전문대학생’들은 어떨까? 그것이 자기계발담론이든 체념이든 분명 공유하는 큰 맥락과 줄기가 있겠지만, 저자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 다른 위치에서 또 다른 결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홍보 문구 등에서 ‘20대’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사소한 아쉬움이 있는데, 사실 이건 이 책의 한계라기보다는 추가 연구, 다른 연구들이 더 많이 보태져야 하는 것이리라.


# 저자가 기본적으로 이런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당사자로서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지금의 20대들은 과거의 20대/대학생/청년들과 다르다! 왜 그렇지? 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약자에 연대하지 않지?” 같은 것들. 그것은 저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하고 문제적인 현상이었을 테지만… 정작 내 입장에서는 ‘그럼 그 옛날에는 대체 어땠는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20대의 관점에서 과거, 90년대의 20대(지금은 40대 정도가 되어있을)들은 대체 어땠던 것인지 그 사회적 조건과 인식 구조를 탐구해보는 작업도 재미있을 것이다. 어쨌건 저자의 그런 인식들 때문에 초반부에는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인식들에 대해 저자가 계속해서 붙이는 자기 변호 같은 것들이 오히려 더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었다.(-_-)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문제의식일 수 있는데, 과연 ‘자기계발논리’가 지금 20대에 고유하고 특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자기계발논리’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 ‘자기책임논리’ 자체는 굉장히 뿌리 깊은,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이데올로기이다. 다만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자기계발논리’가 좀 더 세련되고 전면적으로 나오고 있을 뿐인 것 아닌가. 그리고 저자는 ‘학벌주의’가 과거와 현재의 양상이 다르다고 하는데,(과거에는 ‘패거리문화’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 20대에게는 그것이 능력주의와 촘촘한 차별 기제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과연 얼마만큼 다른지 나는 좀 의문스럽다. 질적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미 과거의 학벌주의 안에 내재해있던 모습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 '능력주의' 문제에 대한 비판은 교육사회학에서 계속해서 나오던 문제이다. 교육체계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에 따른 보상/성과라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연구는 그러한 효과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제목 자체도 그렇고. 그것이 크게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데, 다만 생각보다 그게 노골적이고 강력하게 뿌리 박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 책이 기본적으로 20대의 ‘인식’, 집단적 의식을 탐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보니 ‘자기계발 논리’가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사회학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연구가 좀 더 뒷받침되어야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것 같은 구절들이 몇 개 눈에 띈다. 면접한 여러 20대들의 말들로부터 그 사람들의 심층 심리를 분석하는 여러 부분들이 그러하다. 오히려 책의 마지막인 4장의 부분들이 더 사회학적인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인데... ‘자기계발논리’ 문제에 대해서도 의식 조사 수준을 넘어서 좀 더 여러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논지를 구성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4장에서 왜 지금 경쟁이 불공정하고 능력주의가 왜 허구인가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가져다가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자기계발논리’가 과연 20대의 인식구조에서 핵심적인 문제이자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나는 그 부분에서 동의가 잘 되지 않았다. 자기계발논리도 일종의 현상이고 체제 정당화이자 자기 정당화를 위해 동원된 논리인 것 같다. 20대의 의식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10대 당시 경험, 그리고 조직화라고는 없이 개인화, 원자화되어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 구조와 삶의 경험들, 그런 것들을 좀 더 비중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착된 한국 사회의 모습, 입시경쟁, 부모 문제 등등 그런 이야기들이 없지는 않지만 비중이 좀 적다. ‘자기계발논리’를 중심에 두고 여러 가지 것들을 설명하다보니까 그림에 공백이 생기는 것 같다.



# 며칠 전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인 걸로 추정되는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업에서는 우리가 공부하고 능력을 갖춰서 들어가면 함께할 인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써먹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아는 오빠는 회사에서 일은 일대로 했는데 별 이유도 없이 잘렸다. 나이가 좀 들고 40대만 되어도 자르지 않더라도 막 눈치를 주고 명예퇴직시킨다고 한다. 무슨 왕따도 아니고 그런 것들…. 진짜 말도 안 되는 건데 우리 입장에서 당장 뭘 어쩔 수가 없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가 뭔지를 모르고 있지 않다. 문제들에 순응하게 되는 것도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오히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저 “어쩔 수가 없다”라는 부분일 것이다. 자기계발논리도 결국은 그 ‘개인으로서는 뭘 어쩔 수가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창궐하게 된다. 나는 ‘무력감’의 문제를 좀 더 집중해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력감’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개인’이 어떻게 ‘집단’이자 ‘조직’이 되게 하고, 무력감을 넘어서 최소한 뭔가 작은 거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인가. 그런 여건과 사회적 관계, 조직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실천이 이 단단한 ‘구조’를 바꾸고 넘어서는 길일 것 같다.

http://gonghyun.tistory.com2014-03-23T03:54:59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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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모임'에서 세미나로 같이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리뷰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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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4. 3. 21. 22:10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889346&start=slayer



『안녕들하십니까? -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글들 등을 모은 책이 나왔다. 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요청을 받아서 급히 써서 보낸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이 책 막바지에 실려 있다. 다만 내가 책에 원고 싣는 걸 동의하는 서류 몇 가지를 까먹고 못 보내서 내 이름이 안 실렸다 -_-;;;; 책 제일 뒤에 이 원고(두 개로 나뉘어 실렸음)를 보시면 제가 썼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안녕들 하냐는 그 질문은,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하다고들 답을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욱 안녕하지가 못한 기분이 듭니다.

  2013년에, 한 중학생이 코치에게 목검으로 ‘체벌’을 당한 뒤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청소년이 가족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죽은 사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맞아서’ 죽은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체벌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들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쉽게 정당화됩니다. 그리고 다들 너무나 안녕히 살아갑니다. 그렇게도 ‘학교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외치는 우리 사회이지만 말입니다.

  꼭 직접 때리고 죽게 하는 것만이 폭력인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들의 생활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폭력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원격으로 감시하고 조종하는 각종 어플리케이션들, 청소년의 게임 및 인터넷 이용 등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정책들, 청소년들의 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하고 이용하게 하는 ‘학교밖청소년정책’ 등. 청소년들의 생활을 국가가 학교가 친권자가 나서서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가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는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공부. 교육이 아닌 입시와 경쟁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선두를 다투는 공부시간 속에 청소년들에게는 쉬고 놀 시간조차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공부를 해봤자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학교 수업시간이란 무의미하고 괴로운 시간 때우기일 뿐입니다. 성적 때문에, 입시 때문에, 공부 때문에 청소년들이 죽고 불행해져도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만 말합니다. 대학은 서열화되어 있고 성적으로 학교로 차별을 당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문제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지만, 세상은 잘 변하지를 않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중고등학생들의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8년째 해왔습니다. 제가 하기 이전부터 있던 역사를 돌아보면, 약 15년은 두발자유화를 요구해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두발자유는 멀게만 보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몇 지역에서만 두발규제가 완화되거나 사라졌을 뿐, 다수의 지역과 학교들에는 두발규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발자유 하나조차도 15년 동안 귀를 막고 들어주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 살고 있어서 저는 도무지 안녕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 안녕하게 살아갑니다. 두발자유 그런 것은 사소한 일이라고 하면서요.

  이번에 여러 청소년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를 묻는 대자보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중고등학교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를 묻는 그 대자보를 철거하고, 학생들의 의견 표현을 짓밟았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에 대자보를 붙여본 적이 있었고, 징계를 하겠다는 위협도 당해보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고서 언론의 자유가 없는 고등학교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청소년자유언론을 만들어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항들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지금도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규칙과 편견에 막히고 기본적인 말할 자유조차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안녕들 하냐고 물을 자유조차 없습니다.


안녕들 하냐고 묻는 옆의 삐딱선에서

  제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생각한 것은 내가 안녕하냐 아니냐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삐딱한 생각이었습니다. ‘안녕하냐고 묻고 답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데도 자격 유무가 갈리는 것일까?’ 누구는 대자보를 금지당하고, 대학을 거부하거나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안녕하냐는 대자보를 붙일 마땅할 공간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자격’은 사람에게만 묻는 것이 아닙니다. ‘주제’에도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철도민영화는,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 일은, 농민들의 삶을 파괴하며 이루어지는 송전탑 건설은,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되묻고 싶어집니다. 청소년들의 삶의 현실은, 모두에게 안녕하냐고 물을 중요한 일이 아니냐고.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각종 억압과 폭력과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찌 안녕하실 수 있냐고 물을 이유가 되지 못하는 거냐고. 학벌과 학력과 성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러분은 안녕들 하시냐고. “청소년들이 ‘체벌’이라며 여전히 폭력을 당하고 두발단속을 당하는 이 끔찍한 세상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이 어색하게 들리신다면, 안녕하냐고 물을 수 있는 ‘주제’ 역시도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차라리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제대로 물을 수도 답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모두의 문제, 공공의 문제랍시고 불려나올 수도 없는 문제들입니다. 정치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는 청소년 같은 소수자들, 그리고 공공의 문제라고 생각조차 안 되고 있는 현실들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적어도 청소년인권의 문제, 대학서열화와 입시경쟁의 문제 등을 가지고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리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기 전까지는, 저는 안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살고 있는 저 자신을 사랑하기에 저는 참으로 안녕하고, 행복하기도 하겠지만요.)

  그러므로 안녕들 하냐는 질문에 대해 제가 삐딱하게 되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안녕들 하냐고 묻는 그 질문은, 정말 모두에게 묻는 것입니까? 모두가 물을 수 있는 것입니까?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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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2. 3. 16. 15:35


제가 공저/필자로 참여한 책이 현재까지 5권.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 - 청소년인권 이야기』 (공저)
『2008 인권선언 -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자!』 (필자)
『집은 인권이다 - 이상한 나라의 집 이야기』 (필자)
『청소년 인권 수첩 - 개인의 자유와 지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인권 교과서 (세상이 보이는 지식 시리즈)(3) 』 (공저)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쟁점탐구』 (공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문학동네가 같이 기획했던 성교육 책은 아직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ㅠㅠ

여하간 여섯번째 책으로

『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 - 학생인권이 교육에 묻다』가 출간되었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03457


이 책은 교육공동체 벗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1년여의 경험과
그밖에 학생인권조례에 관련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노력과 실험과 경험과 이론들을 모아서 엮은 책입니다.
"학생인권조례"에 초점을 맞추고, 학생인권조례와 연관된 여러 학생인권에 대한 논의들을 펼쳐놓았습니다.
필자 중에는 교사들이 많고, 교사 아닌 활동가들 등등도 좀 있고 그런 구성이에요




아래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권을 만난 교육, 교육을 만난 인권

어느 날 인권이 교문 안으로 들어왔다. ‘뜻밖의 선물’이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지, 어떻게 쓰면 좋은 것인지 잘 모른다. ‘인권이 교육을 망친다’는 보수 세력의 공격은 매서운데, 교육운동을 이끌고 있는 전교조조차 학생인권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나고, 광주와 서울에서도 각각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선포된 지금 학생인권은 학교현장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학교 안에서 교육과 인권의 가치는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가. 이 두려움과 혼란을 넘어 학생인권이 학교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책은 학생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온 현장교사, 인권운동활동가, 연구자들이 함께 쓴 ‘학교인권 생태 보고서’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평범한 진리이다. “가장 인권적인 것이 자장 교육적이다.”

1부 - 혼란을 통한 성숙


1부에서는 서울시교육청 체벌 금지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촉발된 학생인권 논쟁과 학교 현장의 혼란을 학생들과 교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학교 안으로 들어온 학생인권>은 서울시교육청 체벌 금지 조치 이후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교의 모습을 현장교사의 눈으로 섬세하게 그려 냈다. ‘체벌 금지 이후, 학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조영선)는 ‘체벌 금지 이후 학생들의 문제 행동이 증가했다’, ‘교육을 포기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는 세간의 의문에 대해 사례를 통해 폭력으로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은폐해 왔던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1년, 학교는 지금’(오혜원)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시행되고 있는지 추적한다. 체벌 대신 성찰 교실, 상벌점제를 통해 학생들을 징계하고 걸러내는 현실은 비교육적이라는 측면에서 학생인권조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비판하며 학생인권을 실천하는 일은 결국 학교를 배움의 공간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임을 강조한다. ‘인권의 언어, 교사의 언어’(이정희)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1년 동안 교사의 인권의식을 인터뷰한 글이다. 학생인권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교사조차 왜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을 실천하는 일을 힘들어하는지에 대해 ‘인권의 언어’와 ‘교사의 언어’라는 개념을 빗대 설명한다. 교사들의 인권의식이 상황에 따라 이중적 양상을 보이는 것은 교사가 학생인권과 관련된 상황을 학생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교사로서 체험 속에서 형성된 관점에서 해석/실천하기 때문임을 이야기하며 제도의 변화만큼이나 주체들의 의식 전환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학교를 모르는’ 이들이 쓴 학교인권 생태 보고서>는 학생인권과 관련해 늘 제3자로 취급받으며 ‘현장을 모른다’는 비판을 받아 온 인권운동활동가들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인권의 현실을 담았다. ‘테두리에서 바라본 학교인권의 속살’(배경내, 한낱)은 같은 사건을 교사와 학생이 얼마나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지를 통해 학생인권의 가장 큰 적이 입시 경쟁이 아니라 교사들의 의식과 실천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절반만 뿌리내린 학생인권 이야기’(공현)는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사와 학생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최소한의 신뢰와 상호작용도 없었던 비교육적인 학교의 모습을 비판한다. 더불어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여러 학교의 의미 있는 변화를 통해 지금의 혼란이 ‘체벌 금지/인권 보장 시대의 첫 모습’이 아니라 ‘체벌/인권 침해 시대의 끝물’이라며 희망을 씨앗을 이야기한다.

2부 - 교육과 인권, 그 사이


2부에서는 학교 안에서 교육과 인권의 가치가 어떻게 긴장하고, 충돌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교육과 인권, 그리고 교사의 딜레마’(최형규)는 학생인권과 만난 한 ‘평범한’ 교사가 어떤 딜레마와 변화를 겪었는지 고백한다. 교실 안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 상황 속에서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일과 교사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했던 장면들을 통해 교육과 인권의 가치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학생의 탄생과 인권의 유보’(이혁규)는 근대교육과 함께 탄생한 ‘학생’이라는 존재와 한국적 문화 속에서 학생의 위치가 어떻게 규정돼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인권이 문제시될 정도로 학생들의 현재를 유예시키며 영위해 온 학교는 이제 훈육의 공간으로서 지위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배움의 공간으로서 학교로 재탄생하는 길밖에 없다. ‘왜 ‘학생’의 인권인가’(오동석)는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마저 유린당하고 있는 학생인권의 실태를 고발한다. 군인, 교도소 수용자와 함께 ‘특수신분’인 학생의 인권을 왜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지, 교권이 과연 학생인권과 대립하는지, 학교 민주주의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헌법학자로서 명쾌하게 풀이해 냈다. ‘인권의 한계가 교육의 한계다’(정용주)는 학생인권이 결국 ‘범생이’들만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지 지적하며 인권의 문제는 늘 주변과 경계에 선 주체들의 문제였음을 강조한다. 학교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사고와 행위를 강제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교사는 권위가 아니라 폭력과 강제적 처벌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며 필자는 ‘인권의 한계는 곧 교육의 한계’임을 강조한다.

3부 - 인권적인 학교는 어떻게 가능한가


3부에서는 인권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제언을 담았다. 두려움과 혼란을 위해 학생인권이 학교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지 앞서 실천한 사례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가르치는’ 인권을 넘어’(한낱)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의무화된 학교 내 인권교육의 한계와 그럼에도 인권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비인권’적인 학교 문화 속에서 ‘인권’교육은 불가능하기에 인권교육이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될 수 있는 진짜 힘은 ‘내부’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인권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기’(임동헌)는 공교육 안에서도 가장 열악한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인권이 꽃피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록을 담았다. ‘교육’이 아니라 ‘징벌’에 불과했던 생활지도를 생활교육으로 바꾸어 내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를 통해 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일깨워 준다. ‘학생인권 원론 넘어서기, 질문 새롭게 하기’(이수광)는 이우학교 사례를 통해 자치와 자율이 학생들을 어떻게 학교의 주체로 성장시키는지를 이야기한다. 학생 자치와 자율을 보장하는 것은 지知정情의意체體 각 요소가 중층적으로 결합하는 전인적 성장 과정이기도 하다. ‘인권을 만난 교육, 교육을 만난 인권’(박복선)은 학생인권이 ‘교육 불가능 시대’에 ‘학교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임을 이야기한다. 모든 학생이 국가경쟁력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학교가 바로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 우리가 꿈꾸어야 할 학교라는 것이다.

에필로그 - 세상은 1㎝씩 움직인다
: 학생인권조례가 탄생하기까지


에필로그에서는 치열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 뒷이야기들을 담았다. ‘학생인권조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배경내)에서는 파란만장했던 경기도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생생한 르포이다. 특히 곽노현 교육감 부재와 보수 세력의 총공격이라는 악재 속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학생인권은 왜 우리를 뜨겁게 하지 못했나’(조영선)는 이른바 ‘전교조 키드’ 교사가 바라본 참교육과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생인권 문제에 대해 학교 현장, 특히 전교조 교사들조차 왜 그렇게 싸늘했는지에 대한 통렬한 성찰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는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다’(공현)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를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과 연관 지어서 설명한다. 학생인권조례가 단지 김상곤 교육감이나 곽노현 교육감의 업적이나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라 학생들의 작지만 꾸준한 저항과 직접행동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사용 설명서’(이형빈)는 학생인권조례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필자는 당장은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요란함은 무질서가 아니라 잔치라고 말한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침묵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주체로 성장할 것이며, 교사 역시 통제 구조 속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 사용법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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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2.03.21 17:02 [ ADDR : EDIT/ DEL : REPLY ]
    • 댓글을 지금 봤네요 날 밝으면 문자 하나 드리죠... 그런데 제가 병역거부로 4월 중순-말 사이에 수감될 듯해서, 만나시거나 하시려면 더 일찍 만나야 할 겁니다

      2012.03.25 01:16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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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21 01:39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나가는꿈2011. 3. 1. 08:45



2월 26일 토요일, 갑자기 택배에서 전화가 왔는데, 신림동 집에 택배가 온 거다...
근데 나는 이미 2월 20일에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_-;;;

할 수 없이 밤중에 신림까지 택배 찾으러 갔는데;;
여러분 저 수원으로 이사했습니다. 혹시 뭐 보내실 거 있으면 신림으로 보내시면 안 됩니다!!


여튼 찾으러 갔더니 양철북출판사에서 보낸 책 신간이었다.

책은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내가 고등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상식/인권"의 저자인 토머스 페인의 말년, 그리고 그 유골에 얽힌 여러 시대 여러 활동가들의 이야기.

작가가 된다는 건 출판사로부터 신간을 공짜로 한권씩, 연락 없이 받아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
그에 따르는 책임은 서평을 써줘야 할 의ㅁ...(??)


여하간 한윤형 씨의 『안티조선운동사』를 사서 얼마 전에 다 읽은 참이었다.

곧 리뷰를 하나 써서 올릴 건데...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도 얼른 읽어야지.
근데 양철북 출판사에서 책 보내면서 끼워 보낸 소개 글에 "연민" 어쩌구 했는데
활동가인 내 입장에선 이거 비참한 토머스 페인의 말로를 읽는 게 남 일이 아닌 거 같아서 -_-;;;;;;;;;;;;;;
앞부분 읽을 때 정말 우울해짐

"나는 아무것도 철회하지 않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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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2. 29. 00:19




양철북 출판사와 작업한,
『청소년 인권 수첩』이 저번주에 출간되었습니다.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 님이 원 저작자이고
제가 좀 다듬고, 거기에 7-8장, 한국의 인권과 청소년인권 관련 내용을 추가해서 공저자로 병기된 책입니다.
(둠코, 밤의마왕, 어쓰, 엠건도 같이 썼으나 출판사의 사정으로 저만 공저자로 들어가고 제가 책 날개 소개글에 같이 썼다고 적게 된 책;;)

다시 보니까 고칠 부분이 많이 보이네요. 개중에는 제가 고쳐달라고 지적했는데도 출판사에서 반영이 안 된것도 있고...(예컨대 "어린이권리선언"과 "아동권리협약"의 용어 통일이라든가;;;)


정가는 1만원입니다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20330









아래는 출판사의 부탁으로 쓴, 인권시민단체 등에 보내는 추천 글 같은 겁니다. @_@




『청소년인권수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인권에 대한 대중서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그 목록을 주욱 훑어보다보면 느끼는 게 있었습니다. 유아나 아동에게 인권이나 그와 연관된 가치들에 대해 단순화해서 설명하는 동화책 같은 책들은 꽤 많이 있습니다. 한편, 분야별로 주제별로 좀 전문적으로 다룬 책들이나 인권에 관한 이론을 다룬 책들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이라고 할 만한 인권에 대한 교양서, 개괄적인 인권 입문서 등등, 특히 10대 중후반 정도에 읽을 만한 책들은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인권이란 건 현실의 상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괄적인 입문서 한 권보다는 구체적인 인권 문제를 다룬 책을 읽거나 직접 인권 운동의 현장을 견학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저는 요즘에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하곤 합니다. “이 사람들은 인권이 뭔지, 법에서나 사회에서나 역사 속에서나 인권이 어떤 의미와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는구나. 아 답답해;;” 인권이라는 게 어떤 건지 그 개념의 맥락조차 공유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토론도 뭣도 안 돼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뭐 말로 설명한다고 해서 그 감수성과 가치관이 다 전달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인권이란 게 어떤 개념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그리고 현실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좀 더 많은 사람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충 이런 것들이 제가 『청소년인권수첩』을 공저하고 다듬는 작업을 흔쾌히 맡은 이유였습니다. ^^; 최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학교 현장과 지역에서 인권교육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함께 작업한 『청소년인권수첩』이 많은 활동가들이 교육하고 활동하는 데 쓸 만한 자료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특히 제가 쓴 부분 중 ‘한국의 인권 역사’, ‘청소년의 인권’ 부분은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인권운동, 청소년운동을 해온 여러분들의 활동이 아니었다면 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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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12. 28. 22:44


2010년 12월 25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부터 『소수의견』(손아람)을 읽었다. 대개의 독서가 그렇듯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정한 날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돌이켜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내 눈 앞 책 속에서는 사람이 죽고 재개발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금 들자, 내 눈 앞, TV 화면 속에서는 교황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억압자들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었다.
 

12월 28일, 『소수의견』을 다 읽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관악구 신림동에는, 여전히 철거민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새겨진 벽들이 헐벗고 있었다.

용산참사 국민법정에 갔을 때를 생각했다. 두발규제를 헌법소원을 내자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겹쳐 울렸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재판을 생각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3분짜리 플래시몹을 했다는 이유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끌려가던 고등학생 동료를 지키려고 하다가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되고 기소되어서 받고 있는 재판이다.지난번 재판이 끝나고 생각했었다. "이 재판은 법의 이치와 논리에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공정하거나 정의롭지는 않다." 재판이 끝나고나면, 글을 하나 써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법은 사람 위에 있었다. 그건 법이 사람 위에만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pp.422-42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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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9. 13. 03:07


교육희망에서 원고 청탁받고 썼던 글인데요

http://news.eduhope.net/news/view.php?board=media-50&id=12317
이런 식으로 실렸네욤.

아래는 원래 썼던 원문입니다.
실린 거는 분량 관계상 좀 편집된 거 같네요.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청소년인권 입문서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나처럼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한 4-5년 정도 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병’ 같은 게 있다.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것에 질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학생인권 분야에서 그런 경향이 심한데, 예컨대 “두발자유가 왜 인권인가”, “휴대전화 압수는 왜 인권침해인가” 같은 이야기들을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대답하기 지긋지긋해 하고 귀찮아하는 증상을 보인다. 정작 학생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제 막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초적인 이야기는 하기 귀찮아하니, 이것 참 문제 있다. 청소년인권에 관심 좀 가지고 있고 공부 좀 해본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라면 비슷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번 체벌이 왜 인권침해인지, 같은 어찌 보면 명명백백한 것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나왔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김민아 지음. 끌레마.)라는 좀 뻔한 제목의 책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 일을 하던 사람이 썼다. 책의 표제도 그렇지만 “청소년, ‘지금-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라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이 고만고만하게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사랑으로 지도하자는 류의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인권에 대해 발언해오고 쌓아온 우리의 이야기들이, 비록 비주류 기구이긴 하지만 정부기구에서 일하던 사람에게도 이만큼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작은 성취감 같은 것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1부 「이분법에 갇힌 청소년」에서는 청소년과 학생을 보는 대략적인 관점들에 대해 다루고 있고, 2부 「유예된 권리, 그러나 ‘지금-여기’가 중요하다」, 3부「가고 싶은 학교」에서는 주로 학생들의 인권, 학교에서의 인권을 다루었고 일부 가정에서의 인권 문제도 다루고 있다. 4부 「살고 싶은 사회」는 학교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의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차별에 관한 사례들과 문제의식으로 채워져 있다. 체벌이나 두발자유 뿐 아니라 벌점제, 무상급식, 사생활의 자유, 교육시설과 환경, 노동인권, 학벌주의, 외모차별 등까지 청소년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인권 문제들을 폭 넓게 담으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각 챕터가 교과서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인권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의 경험담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되었던 사례들이 나오고, 그 문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저자의 견해를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국제인권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등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제시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모든 챕터가 이런 구성인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Tip 본문관련 조항’에서는 그 인권 문제에 관련된 법이나 국제협약의 조항, 국제인권기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참고 자료로 보여준다. 그리고 매 챕터마다 뒤에 ‘인권의 눈으로 더 넓게 더 깊게’라는 박스 형태의 글로 인권교육 프로그램이나 경험담, 다른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김민아 씨가 인권교육을 다니면서 만난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그 청소년들이 인권교육 과정에서 만든 이미지들은 이 책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좋은 양념이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청소년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위적으로 우리의 어떤 의식과 태도를 바꾸자 정도의 논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예컨대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사생활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존중합시다”로 좀 약하게 결론을 맺고 있고, 학벌주의를 이야기할 때도 마무리가 약하다. 이건 인권침해니까 하면 안 된다, 이래야 한다, 투의 이야기들이 계속되기 때문에 도덕교과서처럼 공허한 느낌마저 준다. 마지막 챕터의 소재로 ‘삐삐 롱스타킹’을 택한 건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만, 가정과 학교로부터 자유로운 아이인 삐삐 롱스타킹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담지 못하고 “삐삐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기를 바라본다.” 정도로 정리하는 것은 소재가 아깝다.

  하지만 딱 그정도 선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별 거부감이나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청소년인권 문제에 대해 이제 막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청소년인권이 어떤 건지 그 대략적인 관점과 내용을 알고 익히기에는 크게 빠뜨린 것 없이 만들어졌다. 인권 문제에 대해 물어보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나 청소년들에게 한 번 부담 없이 읽어보라며 내밀 수 있는 책, 그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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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4. 12. 15:53


이건 분명 언짢고 신경 거슬리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또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얘기를 안듣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말이죠. 어른들은 여러분에게 날마다 그런 말을 하지요. 그리고 거기에 대해 여러분이 의문을 제기하면 해당되는 법조문까지 증거로 제시하면서, '여기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에 어른인 우리는 이 일을 해도 되지만 청소년인 너는 아직 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합니다. 어른들은 그걸 '청소년 보호'라고 부르며 그런 법조문은 '미성년자 보호법'이라고 부릅니다. 부모와 청소년기의 자녀들은 서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자주 입씨름을 벌입니다. 이때 부모님 쪽에서는 자신들의 권리를 '부모로서 자녀를 돌보고 보살필 권리'라고 설명하고, 자녀 쪽에서는 '부모의 폭력'이라고 비난합니다. 이들이 폭력이라고 말할 때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통틀어 글자 그대로 '폭력'을 의미하지요. 비상시엔 부모님이 정말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하니까요.

어른들은 물론 청소년들을 성적인 면에서도 통제하고자 합니다. 성적인 것을 청소년에게 허용한다면 어떤 것을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또 문제죠. 그러나 어떤 일을 '금지'하는 것은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복종하도록 통제할 수 있을 때, 또 말을 안 들으면 처벌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지요. 이 점에서 오늘날 도덕 교육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지극히 일반적인 규범을 따르고자 합니다. 모든 종류의 천박하고 부도덕하고 도가 지나친 정열에 대해서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직접 맞서 싸우는 방식으로 애초부터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1858년에 당시의 영향력 있는 어떤 교육자가 작성한 글입니다.어떤 정열의 싹을 질식시켜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사춘기에 발생하는 양성간의 성행위는 자위행위와 유사한 동기를 갖는다. 외형적으로는 그 행위가 헤테로섹스의 기본적인 인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함께 자위행위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계적인 성욕해소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1979년에 역시 이름 있는 교육자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바이어른 카톨릭 주교회에서 발표된 이 글을 쉬운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춘기의 소녀와 소년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자위행위를 할 때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겉으로는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싶은 자동적인 욕구를 둘이 함께 푸는 것일 뿐이다." 청소년들의 애정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지요.

  (중략)

여러분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유형에 속하게 될지는 여러분이 '철없는' 첫사랑의 경험에 편을 드느냐, 그런 따위를 거부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정의롭지 않은 일에 대한 분노, 거짓말과 사기에 대한 혐오도 역시 '미성숙'에 속하는 표현입니다. 세상에서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필요에 따라서는 부정행위에 동조하고 거짓에 눈을 감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은 흔히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미성숙한 사람들만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이 '미성숙' 쪽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한 사람들은 나이가 든 뒤에도 이제까지의 인습을 뒤흔드는 항상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섹스북』(귄터 아멘트 지음. 이용숙 옮김. 박영률출판사) 에서 발췌






근데 이 책에서 아주 옛~날에 발췌해둔 거라서 몇 페이지에 있던 건가는 찾을 수가 없네요;;;
그 책 자체도 지금 다른 사람 줘버렸고...
절판돼서 새로 살 수가 없어요 ㅠ_ㅠ


사실 결국 "성숙"한 것은 더 우월하고 "미성숙"한 것은 더 열등하다는 관념 자체가,
그 '성숙'과 '미성숙'을 구성하는 내용들이 대체 뭔가 꼼꼼히 살펴보면 뒤집히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하죠. 결국 모든 인간은 미성숙할 뿐이고, 살아가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어떤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권력의 문제라고.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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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7. 29. 20:37
청소년인권 서평대회, "세상의 중심에서 청소년인권을, 너도 한 번 외쳐볼래?" 기억하시는지요 ^^:


마감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7월 말"이라는 애매한 표현 때문에 헷갈리실 분들도 있겠지만
어쨌건 8월 1일 지나고 나면 더이상 접수 안 받을 거예요.



아직까지 3명 정도 참가해주셨는데요. ㅋㅋ 뭐 참가자 분들이 적으면 그만큼 1명에게 돌아가는 상금도 많아지고 총 상금 액수도 좀 줄여도 되고 그러니까

주최 입장에선 그리 나쁘진 않은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참가해야지"했는데 참가 못하신 분들이 있을까봐 한 번 더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지금 참가하셔서 참가자 수가 10명을 넘지 않게 되면 참가상으로 5만원을 받으실지도 모릅니다 @_@ 낚시낚시)


더 자세한 참가 방식 등은 카페에서 확인하세요 ^^







http://cafe.naver.com/mphrstory


감히 인권을 넘보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느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된 것, 알고 계셨나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라는 발칙한 제목이었죠

하지만 청소년인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사실 끝날 수 없죠 @_@
청소년인권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 출간에 만족하지 않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이런 좋은 책에 더 좋은 이야기들을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평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ㅎㅎ

바로 여러분이, 직접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써주세요!  라는 이야기입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를 읽고 서평을 써서 서평대회 카페에 올려주세요.  ^^
책을 읽고 나서 책 내용과 관련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라면 다!!!!!! 좋습니다.

(꼭 책을 칭찬하는 내용이 아니어도 좋고, 욕하는 내용이어도 상관 없습니다. 책 자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 않아도,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읽고 나서 글로 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


여러분이 쓰신 개성있는 청소년인권 이야기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되도록이면 청소년 분들의 참가를 권장하지만, 청소년이 아닌 분들의 참가도 막지는 않습니다.)


7월말까지 접수 받습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대충 10장 이상. A4로는 대략 1페이지 정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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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9.07.31 01:34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7. 26. 01:48

영두의 우연한 현실 - 10점
이현 지음/사계절출판사




1.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우연하지 않다



  이현 씨의 청소년 소설 단편집 『영두의 우연한 현실』. 아니 세상에, 현실이 우연하단다. 이렇게 칼 같고 서늘하고 단단한 현실이 ‘우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디 한 번 이 흥미로운 제목의 표제작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대한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소설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책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서 「어떤 실연」에 이어 두 번째로 실려 있다.

  (사실 다 읽고 나서 이 배치 순서에 좀 의구심이 들었다. 「어떤 실연」은 괜찮은 내용이긴 하지만 제일 앞에 실리기엔 ‘끌림’이 좀 부족한 것 같고,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실린 다른 이야기들의 분위기와도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혹시 소재가 비교적 무난하고 덜 부담스럽기 때문에 제일 앞에 넣은 건 아닐까?)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평행우주론이랄까 다중우주론이랄까, 그런 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평행우주론”, “다중우주론” 이런 말만 들으면 굉장히 자연과학적인 이야기일 것 같겠지만, 이 이야기는 지극히 사회적이다. 영두와 영두의 차이는, 영두 아버지의 손가락이 공장에서 프레스기를 돌리다가 손가락이 잘렸느냐 안 잘렸느냐, 하는 0.3cm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손가락이 잘린 세계에서 영두의 아버지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해고당하고 끝내 막노동 공사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영두의 집은 빈곤층이 되고, 영두는 ‘불량아’가 된다. “영두는 인생이, 한 마디로 ‘씨팔’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세계의 영두가 ‘좀 더 넉넉한 뒷바라지’를 받고 “기억력이 비상”해서 열심히 논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생이, 한 마디로 노란 풍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나는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세계의 영두가 반드시 행복하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손가락이 잘린 세계의 영두보다 여유 있고 나은 삶을 살지는 몰라도.)

  그러나 「영두의 우연한 현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현실이 사실은 그리 우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은 마치 두 영두의 차이가 0.3cm 차이, 그 ‘우연하게도’ 손가락이 잘렸냐 안 잘렸냐의 차이에서 온 것처럼 쓰고 있다. 그러나 0.3cm의 우연이 두 영두 사이를 이토록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은 결국 이 사회의 문제이고 일종의 필연이다. 산재보험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 고용보험이라거나 복지 정책은? 안전망이 지극히 취약한 이 사회는 그러한 작은 우연,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손가락이 잘리느냐 안 잘리느냐 했던 건 정말 0.3cm의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0.3cm의 우연을 이토록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만든 것은 결국 필연이 아닌가? 요컨대, 우연은 필연 위에서만 의미 있는 우연이 될 수 있다는 결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막바지에서 영두는 “난 우주라는 게, 엄청 대단한 건 줄만 알았어. 우리가 절대 어찌해 볼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철벽 같은 거 말이야. 그런데 이제 보니까 아니네. 우주라는 거, 매트릭스처럼 그냥 우리를 둘러싼 허상인 거야. 우리는 그 허상에 내몰려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 너와 나의 현실이라는 것도 그래. 우린 그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보려고, 혹은 거기서 벗어나 보려고 아득바득…… 웃기는 일이야.”라고 말한다. 그래, 우주-현실의 단단함을 의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새로운 상상력을 주니까. 주어진 조건 속에 갇혀서 생각하지 않고 조건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삶을 열어주니까. 하지만 우주-현실이 단단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중의 우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편의점 뒷문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우주-현실 속을 ‘아득바득’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은 필연 위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서 아쉬운 것은 그것뿐이다. 우주-현실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영두가, 다시 단단한 자신의 우주-현실의 안으로 자신을 던지는 과정까지는 미처 그리지 못한 것.




2. '오답 승리의 희망'은 진행형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오답 승리의 희망」은 사실 내가 이 책을 얻게 된 이유이자 읽게 된 이유이다. 실제의 오답 승리의 희망 편집진 중 한 명으로서, 오답 승리의 희망을 소재이자 제목으로 삼고 있는 소설을 어찌 안 읽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사계절 출판사에서 공짜로 주기까지 했는데… (사실 이름에 대해서 저작권료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긴 했지만 이현 씨가 1만원 후원을 해주시기도 했고 책도 2권 공짜로 얻었고 책 덕에 홍보도 많이 됐고 해서 그냥 서로 윈윈이다.)


  읽으면서 사실 좀 짠했다. 전단지 하나 돌리고 붙이는 게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해가며 혹시 지문이라도 채취할까봐 장갑까지 끼고서 몰래몰래 하는 일이어야 했던 그 고등학교 때. 그랬는데도 이미 찍혀있던 나는 학생부실로 불려가서 태연자약한 얼굴을 연기하며 누가 한 건지 모른다고, 우와 이런 것도 뿌렸군요, 하는 쇼를 해야 했지. 비록 나는 같이 못했지만, 2006년 3월, 오승희 창간호를 학교 안에 돌리던 나르샤-전북청인모 사람들의 심정도 「오답 승리의 희망」에 나오는 이오구나 곽정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아, 이오구는 좀 심하게 사차원 캐릭터라서 약간…) 물론 지금도 학교들의 상황이 그리 다른 건 아니다.

  「오답 승리의 희망」은, ‘청소년자유언론 오답 승리의 희망’이라는 소재에 2008년을 수놓았던 촛불집회(그리고, ‘촛불소녀’.)라는 배경을 덧붙이면서 새로운 결을 가지고 태어난 이야기다. 이현 씨는 “어느 보수적인(반인권적인) 고등학교 안에서 오답 승리의 희망이 배포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충실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좌절했던 ‘촛불소녀’ 곽정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간다. 그 과정에서 학교 안에서 언론·표현의 자유, 소지품 검사 문제, 강제야자, 입시경쟁, 체벌 등등 온갖 학생인권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스케치된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가벼운 위트로 끝맺는 그 여유와 솜씨에는, 정말 이현 씨도 숙련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답 승리의 희망」에는 다소 위험한 오류가 있다. 2008년의 촛불이 과연 ‘청소년인권’과 연결이 되었을까? “전에 다니던 학교는 소지품검사 거부운동도 하고, 두발자유화 서명운동도 하고 그랬어. 쉬는 시간이면 마우스를 복도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면, 알 만하지?”라는 이오구의 대사를 보면 청소년인권에 대한 의식과 2008년 촛불-반이명박의 의식이 연속선상에서 자연스레 배치되고 있다. 오답 승리의 희망과 촛불집회 참가를 자연스레 연결 짓는 것도 그렇다.

  그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분명히 2008년 촛불집회에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운동’을 시작하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참여의식을 가지게 된 청소년들(말하자면, ‘촛불소녀’든 ‘촛불청소년’이든) 중 대부분은 오히려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는 경우가 많다. “쉬는 시간이면 마우스를 복도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분위기와 “두발자유화 서명운동”을 하고 “소지품검사 거부운동”을 하는 분위기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고 연속선상에 있지 않았다. ‘민주주의’, ‘반MB’, ‘광우병소고기’, ‘국민주권’, ‘굴욕-졸속협상’을 외치던 목소리들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로도, 학교 현장에서의 투쟁으로도 잘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건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다. (나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역량과 조직이 매우 부족한 탓도 있지만, 거시적인 투쟁, 지사적인 투쟁이 가지는 한계, 그리고 2008년 촛불이 내재하고 있던 한계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현 씨가 이 둘을 너무 쉽게 연관지은 것은, 뭐 이현 씨 자신의 소망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촛불에 나온 청소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십대들-‘촛불세대’들을 포장하기 바빴던 어른들의 시선이 답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촛불의 경험으로 ‘깨어있는’ 청소년들은 한층 늘었고 이 청소년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할 거라는… 촛불집회에서 보인 청소년들의 모습은 사회에 적극적·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 “촛불소녀” “촛불세대” 등의 담론에서 과잉된 청소년에 대한 대책 없는 이미지가 좀 느껴졌다고 하면 나의 과민함인가?



  어찌 되었건 「오답 승리의 희망」에서 아직 오답은 승리하지 않았다. 앞으로 곽정과 이오구가 만들어갈 투쟁이 어떤 투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투쟁이 현재진행형임은 확실하다. 곽정이든 이오구든 오승희에 글 좀 투고해주거나 편집진으로 좀 참여해주면 좋겠다.




3.  그밖에, 자세히 다루지 못한 다른 4편에 대해

- 「빨간 신호등」은 청소년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내용 중 하나. 좀 강간-섹스 후에 곧장 제주도로 가서 며칠 간 못 만나고 돌아와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설정이 약간 작위적인 면이 있다. 남성 청소년의 시선에서 이 사건을 그린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치적인 의미랄까 계몽적인 의미랄까, 그런 면에서는 좋지만 이야기상으로는 그렇게 끌리지는 않는다.

- 「로스웰주의보」는 내 마음에 드는 단편이다. 이런 식의 서술 방식도 좋아하고, 이런 식의 상상력도 좋아한다. 식상한 맛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이런 식의 상상력-설정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게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매우 이상한 모습이라는 문제제기에는 좋지만 현실을 약간 은폐하거나 왜곡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이따위로 살아야 하는 건 사실 외계에서 날아온 ‘푸라푸라’ 때문은 아니다.

- 「어떤 실연」. 『우리들의 스캔들』 때도 느꼈지만 이현 씨는 여성 청소년들의 1인칭 시점에서 재미있는 문장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어떤 실연」도 좀 그렇다. 평범한 청소년들의 평범한 갈등과 평범한 사랑과 평범한 실연 이야기… 라고만 말할 순 없지만 뭐 대략 그렇다. 다른 이야기들과 비교하면 좀 밋밋한 맛이 없지 않아 있다.

- 「그가 남긴 것」은 장례식을 소재로 해서 그런가 이청준의 『축제』를 연상시키긴 했지만 맥락은 많이 다르다. 이현 씨 본인의 세대 때문인가, IMF 이후 가족의 모습과 관계라는 것이 이현 씨 소설에서 좀 빈번하게 나오는 모티브 같다. “다음에는 아빠하고 딸 말고 다른 사이로 태어나자, 응? 뭐든 좋으니까, 미워하지 않는, 그런 사이로 태어나자, 응? 친구라도 좋고 연인이라도 좋고……. 아니, 그래. 우리 남으로 태어나. 그냥 지하철에서 우연히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 그런 사이로 태어나. 그러면 나, 아빠 미워하지 않을 거 아니야, 그치?”하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는 따뜻한 공간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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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4. 29. 12:38

청소년들 한국사회에 도전장

[새책]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공현 외, 메이데이

최인희 기자 flyhigh@jinbo.net / 2009년04월28일 18시04분

일단 제목에서 '움찔'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라니. 청소년들이 쓴 '인권' 이야기라는 점에서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라고 반응하려던 '어른'들은 허를 찔리고 시작한다. '청소년' 뒤에 붙어올 말로 '문제'를 떠올리는 대다수 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존재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유엔인권헌장>과 <헌법>을 근거로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며 탈선과 반항을 떠올리건 공부와 입시를 떠올리건 애초에 모든 '문제'란 '문제'는 어른들이 만들었다. 보호와 훈육을 명목삼아 통제하거나 억압하거나. 그래서 청소년들은 "청소년의 반대말은 자유"라고 얘기한다.


▲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 공현 외 지음, 메이데이, 332쪽, 1만2천 원
"공부, 공부, 공부, 공부. 좁디좁은 교실에 선풍기 4대, 히터 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아이들이 오직 한 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가는 법." - '이딴 것도 교육이라고!?'중에서

"두발과 복장이 자유롭게 된다고 해서 누가 피해를 보나요? 설령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 해도 인권의 가치는 그런 가치보다 더 우선하지요."
"학생간 폭력이 지극히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할 때, 그리고 그런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오래 걸리더라도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감시카메라들을 설치하겠다고 날뛰는 것 이상의 더 좋은 대책이 나오리라 믿는다." -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중에서

"제가 '청소년보호주의'씨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청보'씨가 청소년들의 인권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입니다. '청보'씨 당신은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라거나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식의, 청소년들에 대한 현재의 차별과 인권제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중에서

"한 현직 동성애자 교사가 "청소년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일거에 해소할 대안이 있다"며 한마디 했다고 한다. "청소년 동성애자, 서울대 진학률 이성애자보다 높아! 이런 기사 하나면 됩니다"하고 말이다. 슬픈 웃음이 눈물이 되어 흐른다." -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마!' 중에서



경쟁사회의 '자원'으로 키워내야 할 존재,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어리숙한 존재, 육체와 감정이 불안정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봐달라는 외침. 그래도 청소년들을 풀어두는(?) 것이 너무나 걱정돼 못견디겠다는 분은 신경 끄시는 것이 차라리 도움 되겠다.

'운동권'들 사이에서조차 '기특하지만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했던 촛불소녀들이, 일제고사 반대를 외치고 입시경쟁을 거부하고 교육과 인권문제에 해박한 활동가로 거듭나고 있다. 이 과정은 비단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갖가지 모순의 해결 방법에 한 길 숨통을 틔워주는게 아닐까.

책 제목에 'ㅋㅋ'가 붙어 있다는 것에 "'ㅋㅋ'라니... 무려 'ㅋㅋ'라니..."라고 개탄했던 심정은 책을 펼쳐보고 이들의 날카로운 진지함에 날아가 버린다.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발표한 '2008 청소년인권선언'도 책 뒤에 수록돼 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
<목차>
청소년 ‘문제’에서 청소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1부 이딴것도 교육이라고!?
청소년의 눈으로 입시경쟁 바라보기
‘제대로 된’ 학습권과 여가권을 쟁취하자!
교육, 꼭 이래야 하진 않아요
강요되는 종교, 강요하는 교육
사교육과 청소년인권
학생 아닌 청소년의 권리 & 교육의 재구성
2부 미친학교를 혁명하라
두발.복장 규제, 넌 대체 뭥미?!
교편과 벌점에 맞서서
‘학교폭력’, 학생간 폭력? 학교의 폭력? 사회의 폭력?
사생활의 자유를 짓밟는 소지품검사!
청소년도 예외일 수 없는 정보인권 스토리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3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학생회+학교에서의 ‘정치’
청소년은 정치적 동물이다
맹랑하지만 허무하진 않은 청소년 언론의 자유
청소년의 두 가지 ‘빈곤’
상상력이 청소년노동인권을 쟁취한다
청소년보호주의 씨에게 보내는 결투장
4부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마!
가출하고 싶다...
친권과 가정의 ‘사회화’
‘야한 것’에 대한 이야기
‘이반 검열’에 도전하기
페미니즘(여성주의)과 청소녀니즘의 다면적 만남
2008 청소년인권선언
<지은이>
저자들은 가장 평범한 청소년이자 청소년인권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당사자들이다. 청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본 청소년인권의 현실을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고민을 실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다.
공현/김명진/김찬욱/무직인꿈틀이/바람/박승훈/밤의마왕/블랙투(한김종희)/생선/이름없음/피엡(김동욱)/호적돌(최성용)/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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