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9. 6. 24. 18:15


- 일단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 문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만의 문제는 아니란 걸 지적을 해야겠지?
전단지 돌린 걸로 징계하겠다고 한 학교나, 뱃지 차고 다니는 거 금지한 사례나,
노무현 때 청소년들 집회 나오는 것에 대해 뭐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2003년)랑, 2005년 내신등급제 두발자유 집회 등의 이야기 모두 포함해서.
(사실 두발복장자유 등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억압당하는 것은 변함 없다. 더 억압당하는 것이 변함 없다는 말은,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 전반에 대한 억압이 심해지면,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것 또한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도적 권력의 작용이든 '대중'의 인식이든.
문자메시지 추적, 휴교시위, 촛불집회, 청소년시국선언 사례.

- 청소년보호법과 교과서. 문화적 억압? 억압의 의도는?
더 급진적인 상상력이 없이는 오십보백보.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를 19세 먹이는 것과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을 19세 먹이는 것 사이에는 과연 큰 차이가 있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설령 반두비가 이명박을 비하해서 19금을 받은 게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 없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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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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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고 가사노동은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회.
여성단체들이 독재적인 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그들의 시국선언문 중 일부이다.


"무엇이 우리를 부엌에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까?"
"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과 직면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무거운 집안일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
우리는 순수한 여성들이고, 정치적 색을 띠지 않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압니다. 진정한 민주정치가 무엇인지를요."


청소년시국선언문 을 보는 내 기분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는가?
2차 수정 버전과 비교해본다면야 다른 단체들의 수정 의견을 받아들여서 상당부분 바뀌긴 했지만,
(2차 수정 버전에는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아직 정치적 색을 띠지도 못한 그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등의 표현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안에도 내가 여성에 빗대어서 말한 저 세 개의 표현은 엄존한다.


그리고 또,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구절이 더 있다.

"그저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이제 ‘가진 자’ 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합이나 상생이 아닌, 대립과 갈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 알게 되면 좋은 것 아닌가?;; ㅡㅡ;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어째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도 해명도 전혀 없다.




#

지금도 청소년시국선언 페이지에 들어가면 자동 재생되는 동영상의 첫 마디는 이렇다.
"현 청소년들의 순수한 염원이 현 이 시국선언을 꽃피우게 했습니다. 청소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는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란 행위는,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 활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뉘앙스는, 청소년시국선언을 적극적 정치활동으로 의미화하기보다는,
정치 활동이 아닌 윤리 활동으로 의미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행위는 정치색을 떠난 것이요, 사상을 떠난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윤리적 선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순수한 것이다.
(순수하다는 강조는, 순수와 비교되는 불순한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불순한 것은 무엇인가?)
오, 물론 정치는 윤리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정치는 윤리와 다르다. 밀가루와 라면이 분리될 수 없지만 다르듯이.
정치는 논쟁 가능하고 상대적이며 공공적이다.
윤리는 논쟁 불가능하고 절대적이며 사적이다.
(윤리적 사안이 논의되기 시작한다면, 그건 이미 원칙적으로는 정치의 영역이고 대상이다.
* 인권담론에는 윤리적인 성격이 있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는 인권들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실천은 정치적인 것이다.)

청소년시국선언 내용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분들은, 청소년시국선언에 대해서 비난을 보내는 우파들에게 반발할 것이다.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이며 스스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저 시국선언문의 내용과 뉘앙스에 100% 동의한다면, 그분들의 주장은 곧 한계에 부딪쳐 돌아설 것이다.

그분들은 청소년들이 '특정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학업에 매진하는 게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분들은 이 사회에서 '윤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설지언정, 이 사회의 '윤리'를 바꾸는 '정치'에 나서는 일은 반대할 것이다.

다음 문장의 모순어법을 이해하신다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고 교과서에서, 학교에서 배운대로 사는 존재이다!" (????????)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백색의 종이이다!" (???????????)
"청소년은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이지만 정치적 주체는 아니다!" (?????)


b
내가 청소년인권운동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또 작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확고하게 정리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항일독립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미군장갑차 사건이든 광우병쇠고기 문제든
무슨 사회적으로 커다란 건수에 대해서 참여해서 목소리를 열심히 내는 것만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회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실천은 평가절하되거나 다르게 받아들여질 뿐이다.

그것은 '나이가 20세 미만인 어느 국민들'의 민주주의일지언정
청소년의 민주주의는 아니다.





#

청소년시국선언임에도 '시국'의 내용으로 청소년들의 상황이 포함되지 않은 것 또한 서글픈 부분이다.
이는 이 선언 내용 작성을 주도한 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의 상황을 '시국'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명박 정부 이후의 '시국'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의 변화된 청소년 상황에 대해 썼으면 될 문제인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청소년들의 문제는 '시국'으로 포함될 수 없다는 내면화된 차별적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사소한 문제와 큼직한 문제, 사적 문제와 공적 문제의 구별-차별이랄까.

미림 씨가 쓴 시국선언 논의 게시판에 쓴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선거권이나 두발문제는 따로 다뤄져야한다. 이번 선언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것에 강력한 비판 메세지가 담겨야한다"
는 것이였고 만약 이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선언을 동참하신 단체나 개인분들이
선언하지 않으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처음 초안에는 들어가 있던 청소년 선거권 내용이 빠지는 것에 대해
한 청소년이 비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내용은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에 김용제님(시국선언문 작성에 참가한 청소년)이 단 덧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명박의 폭압정치는 느끼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부분의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으실거라고 봅니다.
반면에 청소년 선거권은 이치적으로도 한 쪽의 의견이 맞다고 확정할 수 없는 사안이며,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그 의견이 매우 분분한 사안입니다.



이 두 논리에 따르면 청소년들 관련 내용이 시국선언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1. 청소년들의 상황은 민주주의나 반민주주의에 해당되지 않는다.
2. 청소년들의 인권/권익 문제는 '대부분의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동의하는 문제가 아니라 의견이 분분한 사안이다.

... 참, 이 둘 다 서글픈 말이다.
대부분의 깨어있는 청소년들이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깨어있는'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겠고.




#

이 건에 대해, 덧글들과 글들 등에서 나타나는 몇 사람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것.


우선, 이 시국선언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몇 명의 청소년들의 생각일 수는 있어도 시국선언에 동참한 3000명의 생각은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 시국선언문을 올려놓고 서명을 받았다면 3000명이 여기에 동의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초안과는 확 달라진 글이 시국선언문 최종안이 된 마당에 말이지.
더군다나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청소년들이면서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게시판에서 적극 의견 개진을 했지만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경우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게시판도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홍보가 많이 된 후반부에 이르기 전에는,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들에 답하는 덧글을 단 사람들은 희망 아이디 아니면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그 의견이 시국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게시판에 올라왔지만 시국선언문에 반영되지 못한 의견들은, 3000명의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영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몇몇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영되지 못한 걸까?


아, 나는 이 시국선언문이 3000명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폄하할 생각은 없다. 여하간에 시국선언문이 현 상황에서 담고 있는 대체적인 정신과 방향성에 3000명이 동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문구 하나하나, 디테일한 표현 하나하나까지 포함해서 시국선언문 전체를 그냥 3000명의 생각이라고 포장하지 말았으면 할 뿐이다. 그냥 솔직하길 바랄 뿐이다.

중간에 시국선언문 내용이 전면 교체된 것은, 그냥 살만 붙인 것도 아니고 요구안도 다 바뀐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로 말한다면 절차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걸, 어떤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희망은 계속해서 시국선언문을 희망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참여로 썼다는 걸 강조하며 희망의 영향은 별로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희망이 처음 청소년시국선언을 제안하면서 올린 시국선언문 초안에 반영되어 있는 표현과 생각들, 그 코드들에 맞는 청소년들이 이 시국선언 운동에 모이는 게 자연스럽다는, 당연한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청소년들이 시국선언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주저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시국선언문 초안의 내용과 뉘앙스 때문이었다. 운동은 제안자의 코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 나는 희망이 시국선언의 내용이나 뉘앙스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은 대변자이거나 판을 까는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b

분명히 가장 좋은 모양새는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청소년 아니면 여하간 대략 이런 의견을 가진 중 누군가가 시국선언문 작성 공개 온라인 회의도 참가하고, 그 내부에서 수정안이 나오기 전부터 발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먼저 몇 가지 사정 설명을 하자면, 희망 사람이 아수나로 게시판에 청소년시국선언 제안을 한 시간은 6월 4일 목요일 밤 11시경이었다.
그리고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6월 5일부터 서울인권영화제에 참가하고 있었고, 6월 6일이나 7일에 했어야 할 정기회의도 인권영화제에 다 같이 가기로 해서 1번 쉬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때문에 논의가 늦어졌고,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개인이 단체의 결정 없이 참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인권영화제 가느라 + 희망이 제안하면서 올린 시국선언문 초안의 내용이 워낙 참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라서 적극적인 참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만 개인이 게시판을 통해서, 그리고 시국선언문 작성 회의에 참가하는 다른 청소년들 중 일부를 통해서 의견을 전달하는 일은 있었다.)

단체라는 게 보통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진 못한다.
앰네스티 같은 단체는 무려 런던까지 연락을 해서 의견이 오고가고 조율이 된 후에야 입장 발표를 한다지 -_-;
뭐 아수나로가 앰네스티처럼 의사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급할 때는 긴급 결정 시스템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6월 4일 밤 11시에 들어온 제안을 2~3일만에 처리하지 못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요일에 있던 아수나로 전체온라인회의에서 회의에서 물어봤을 때도, 내용상 좀 참가하기가 애매해서 지부별 논의도 필요하고,
내용이 대폭 수정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았고...

그러다가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겨우 회의를 하고 입장을 정리해서 글로 쓴 게 화요일(9일)이었다.

시간상 그냥 가만히 있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라도 의견을 내는 게 옳다는 판단에 의견서를 올리고/보냈다.
(희망에서는 이게 청소년 전체를 대표하는 시국선언도 아니고, 다른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하시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만약 청소년시국선언이란 이름으로 선언이 발표된다면 이게 청소년 아니면 최소한 민주주의나 이른바 '진보/개혁'적 청소년들 대부분을 대표하는 의견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받아들여질 거라는 건 자명했다.)

이처럼 시간적인 문제로만 이야기한다면, 닷새전에야 시국선언 운동 제안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안 할 수 없기에,
굳이 시간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고 싶진 않다.



그러나 여하간에 그렇게 올린 의견서에 대해서 그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덧글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글이 올라온 시점과, "이 수정의견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수정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청소년시국선언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라고 쓴 것에 대해서만 덧글로 논란이 있었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b

나는 청소년시국선언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고생하고 준비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저 현재 발표된 청소년시국선언문이 담고 있는 한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한계들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후에 발표되는 청소년'시국'선언은 내게 덜 안타까운 것이길 바란다.
애초에 '시국' 선언이란 것 자체가 가지는 한계를 무시하더라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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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성헌

    일전에 한고학연에서 몇 번 부딪힌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여전히 고등학생때의 꿈을 잊지 않으신 것 같고,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 다행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06.16 17:19 [ ADDR : EDIT/ DEL : REPLY ]
    • 딱히 고등학생 때의 꿈이라기보단 제꿈이죠 ^^
      정성헌 님도 책 사세요 ㅋㅋㅋㅋㅋㅋ

      2009.06.17 01:26 신고 [ ADDR : EDIT/ DEL ]
  2. 글은 본지 꽤 되었지만, 나름대로 이 글에 호응하는 답변 형식 (?) 의 글을 올립니다. 공현 님의 비판을 약간 참고했습니다. 트랙백도 보냅니다.

    2009.07.06 22:34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나가는꿈2009. 6. 12. 02:10


내가 청소년인권운동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또한 작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확고하게 품게 된 생각이 있는데,
그건 그러니까, 무슨 커다란 역사의 흐름 뭐시기랄까, 커다란 사회 변혁 뭐시기랄까, 그 속에서 청소년들이 한 자리 차지하고 그 건에 대해 발언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청소년들의 사회적 지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도, 아 슬프게도, 혹은 기쁘게도, 나는 상당히 프로타이스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시국선언 뭐시기 뭐시기 하면 반감부터 생기는 그런 심리적 작용이 분명히 있다.

젠장 뭐가 '시국'이란 말인가.
당신들의 시국과 나의 시국은 다르지 않은가.
'시국'이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문제에는 침묵하지 않는가.


나는 청소년인권활동가 공현이다. 고로 나는 청소년인권운동을 한다.


이명박의 폭압정치는 느끼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부분의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으실거라고 봅니다.

반면에 청소년 선거권은 이치적으로도 한 쪽의 의견이 맞다고 확정할 수 없는 사안이며,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그 의견이 매우 분분한 사안입니다.
그렇기에 나중에 차라리 그 쪽에 관하여 간담회나 토론회를 열어서 서로의 입장차를 정리하고 캠페인을 열면 열었지,
많은 청소년들의 선언을 대표하는 시국선언문에 넣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라.

'깨어있는 청소년들'이라.






프로타이스하게, 나는 시국선언에 반항한다.
내 하룻밤과 다음날의 원활한 소화를 빼앗아간 빚을 받아볼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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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10. 13:48



이 수정 의견서는 청소년시국선언 2차 수정안이 나온 시점에서 써서 보낸 것입니다.

최종안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는데,
이 수정의견서가 일.부. 반영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언론이 과연 공정했나'라는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져서 언론이 공정했다는 이야기는 빠졌고,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려서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뭐 이런 표현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백색의 종이" 같은 표현이랑,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는 게 당연한데 지금이 매우 특수하고 막장스런 상황이라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어용, 하는 뉘앙스의 표현들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발표 바로 전날밤에 의견서 보내서 뭐하는 짓이냐고 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그럼 시국선언 바로 6일 전에 제대로 나온 선언안도 없이 제안하는 건 뭔가 하는 질문부터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단체라는 게 대개 그렇게까지 긴급하게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2009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대한 수정 의견서


0/ 먼저 우리는 청소년들의 적극적 정치․사회 활동으로서의 청소년시국선언 운동의 의의를 긍정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애통하고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있어선 안 될 일들에 비추어 볼 때, 시국선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게시되어 있는 청소년시국선언서의 내용이 반드시 고쳐져야 할 점들과 아쉬운 점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국선언은 이 ‘시국’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커다란 방향성, 맥락, 유효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현재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후 이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 또한 담고 있는 것이며, 이후 이 ‘시국’을 극복하고 변화시켜나가는 사람들의 실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의 내용이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비정치성에 대한 관념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관념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아직 정치적 색을 띠지도 못한 그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등의 표현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스스로의 비정치성, 또는 정치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면, 이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해왔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 의지를 표현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정치․사회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를 보인다면, 이는 오히려 반민주, 반인권적인 생각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은 청소년들의 정치성을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나와 있듯이, “청소년들은 이 사회나 민주주의와 유리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덧붙여서,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인권이든 권위주의든 복지국가든 그것은 분명히 이념이며 정치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비정치성으로 포장한다면 이는 오히려 왜곡이 될 것이며 앞으로의 문제 해결과 사회․정치의 발전을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교육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앞서 1번항에서 언급한, 청소년들의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과 직면하고 있기에 무거운 학업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우리를 학교에서 뛰쳐나와 이 길에서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까?” “그저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지식의 요람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에 따라”와 같은 표현들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어야 하며 공부(학업)를 하고 있는 게 정상적이라는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교과서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 훌륭한 텍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과서가 성전(bible)이라도 되는 듯이 청소년시국선언문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시정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같은 표현에서는 빈곤 청소년이나 한부모 또는 무부모 청소년에 대한 고려가 없음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입시경쟁과 폭력이 판치는 학교에서 뛰쳐나올 수 있으며, 굳이 지금처럼 절차적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무거운 학업의 짐’(특히 입시경쟁, 취업경쟁 때문에 강요받는 학업)을 잠시가 아니라 영영 내려놓고 집어치울 수도 있습니다. 굳이 정부가 7, 80년대 권위주의 독재정부로 회귀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은 정치․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도 있고 거리로 나올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가르친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더 많은 권리와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과 수사적 표현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발상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재 청소년시국선언문의 이러한 표현들이 청소년들의 활동을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일상적인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규제하는 것을 지지하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보이는 이명박 정부 이전의 사회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합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민주주의’ 가 무너졌음을 느끼고” “한때 자유의 공간으로 인식되던 인터넷 세상은, 이제 잡혀갈까 무서워 쓰고 싶은 글도 못 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던 언론이, 우리의 소리를 대변해주던 언론이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명목 아래 서서히 장악당하고 있습니다.” 등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인민(people)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지배,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일치, 주권재민 등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온전한 이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대로 작동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권리침해신고(블라인드), 인터넷 실명제 등으로 인하여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축소되던 것은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지도 않았고, 우리의 소리를 대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면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언론이 개혁되고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거라는 잘못된 진단을 낳을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많은 인권을 위해서는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을 넘어선 활동과 실천, 대안들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청소년시국선언문 첫 번째 문단에 대해서도 우려를 느낍니다. 과연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철거민들의 죽음, 한 화물노동자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애도하고, 그 과정에 있었던 부당하고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것들을 마땅히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다른 죽음들과는 다른 특별한 죽음이며, 마치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죽음인 것처럼 표현되는 것에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은, 대통령이든 철거민이든 노동자든 청소년이든 모두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죽음을 애도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기에 했던 정치가 과연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정치였는지에 대한 고려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관지을 때 그 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엇이 ‘시국’이고 무엇은 ‘시국’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시국선언문이라면 당연히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 언론의 자유 탄압,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시국’이면서, 강화되는 입시경쟁 속에서 늘어만 가는 청소년들의 죽음, 일제고사나 자사고를 비롯한 지역간 학교간 학생간 경쟁 강화, 그린마일리지나 강제야자 등 학생인권 문제, 청소년노동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최저임금 삭감,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는 청소년들의 증가 등등 청소년들의 문제는 ‘시국’이 되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이라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겪는 ‘시국’의 문제들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의 현실, 청소년들의 ‘시국’을 반영하지 못한 선언이 과연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으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대표적으로는 학생인권과 교육의 문제를 비롯하여,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요구사항으로 청소년시국선언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6/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청소년인권과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같은 의견은 어쩌면 숫자상으로는 소수의 의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시국선언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다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 수정의견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수정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청소년시국선언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청소년모임,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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