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8. 7. 1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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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오후3시

서울시청광장

청소년 대토론회
이명박정부에 대처하는 청소년의 자세


~_~

잘 해야 하는데... 에휴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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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ery good, thanks for sharing

    2013.01.02 14:34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7. 14. 17:13
아수나로북에 들어가는
급식, 청소년인권, 먹거리, 식품, 생태적 먹거리, 건강권 뭐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급식 괴담을 아는가? 국에서 바퀴벌레 시체가 나왔다거나, 구더기가 나왔다거나, 몇몇 사립학교들 같은 경우는 급식비는 비싼데 급식의 질이 형편없는 걸 봐서는 뭔가 비리가 있다는, 뭐 그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 말이다. 학생들이 벌레 등이 들어간 급식을 먹고 괴물이 되어버리는, <급식해저드>라는 만화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사실적 괴담(?)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급식으로 인한 집단 식중독이라거나, 어느 사립학교에서 급식비리가 있었다거나 하는 생생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듣곤 한다. 특히 최근에는 vCJD(변종크로이츠펠트야곱병. 소위 ‘광우병’. 나는 소에게 “미쳤다”라는 딱지를 붙이는 광우병이라는 이름에 반대한다.) 위험 쇠고기까지 대두되면서 먹거리의 안전성이라는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먹거리 문제는 중요한 청소년인권 문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건강권/안전할 권리와 알 권리(식품과 소비자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두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말로 풀어보려고 한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아주 중요한.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라!


  먼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지적하자면,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는 것일 터이다. 특히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인 청소년/학생들(그리고 교사들)의 급식운영 참가는 중요하다. 급식운영에서의 예산과 시설, 그리고 전반적인 운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렴하고, 학생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학생 급식 담당자들을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급식의 문제 중 상당수는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그저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사육’당한다고 느끼는 데는 그런 급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급식운영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도, 소수의 사람들만 급식운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급식운영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고, 수시로 학생들이 운영에 참여하거나 급식시설을 체험/감시할 수 있도록 하여 급식 과정과 가까워지고 이를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위탁급식(급식업체에 돈을 주고 급식을 맡겨서 운영하는 것)보다는 직영급식(학교에서 직접 급식을 운영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다. 기업을 거치는 위탁급식보다는 아무래도 직영급식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감시할 여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직영급식은 기업의 이해관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또, 직영급식은 위탁업체보다 식중독 발생률이 낮다. 급식 위탁업체는 급식 시설비용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모든 학교의 급식을 직영화하기는 어렵겠으나 점차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시설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급식운영 참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vCJD 위험 쇠고기의 경우에도, 이런 직영급식과 학생들의 민주적인 참여와 통제를 통해 vCJD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사용될까봐 불안해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도 비민주적인 정부의 독단에서 비롯된 문제다.)




먹거리는 그냥 상품이 아니다!

  하지만, 급식운영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기초이다. (그 기초조차 안 되어 있어서 입 닥치고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지만 -_-.) 이제 우리는 식재료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 자체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로부터 먼 어딘가에서 어떻게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식재료들과 식품들이 어떤 과정으로 유통되었는지도 모르게 근처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돈 주고 샀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알 권리나 건강권, 민주주의 같은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거나 ‘복불복’ 식으로 운에 맡겨지게 된다.
  그 대안으로 유통과정을 축소시키고 생산지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생산 과정이나 방식 등을 최대한 공개하는 생활협동조합(생협) 시스템이나 산지 직거래 방식 등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방식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좀 더 소통하게 되고 좀 더 민주적으로 생산과 유통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생산 과정에서 더 생태적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함께. 먹거리는 우리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상품 논리만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무상급식 :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무상급식은 중요한 가치이다. 일단 무상교육의 이념 속에서는 학교에서 먹는 급식도 무상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무상급식은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고 기본적인 권리라는 관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건강한 먹거리는 돈과 관계없이 먹을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적 목적에서라도 무상급식은 필요하다. 예산 해결을 위해 성금이나 기부금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 기본은 공짜 급식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내가 생태적 먹거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넘어가겠다. 생태적인 먹거리의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살충제나 화학비료, 성장촉진제 같은 수단(생태계를 파괴하고 먹는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을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한 가지 종류의 작물을 집중적으로 재배(농약, 살충제에 의존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가며)함으로써 생태계를 붕괴시키거나 동물들을 매우 파괴적인 환경에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쩔도록 투여해가며 대량사육하는 등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이 아닌, 좀 더 생태계를 존중하는 생산 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를 ‘생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인 먹거리는 지속가능한 식량생산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기만일지언정 조금 더 동식물 윤리적인 생산을 위해서도, 마지막으로 그 먹거리를 먹는 사람을 위해서도 꼭 실현되어야 한다. 특히 vCJD나 조류독감 등의 질병이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대량생산하는 축산업 시스템에 의해 더 쉽게 전염되고 있으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생태적 먹거리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소의 vCJD와 관련하여 소를 죽인 나이가 20개월이나 30개월이니 말이 많은데, 실제로 소의 평균수명은 약 20년이다. 그런 소를 2~3년 동안 성장촉진제와 동물성 사료, 항생제를 먹여가며 강제로 빨리 키워서 죽이는 이 시스템이 과연 윤리적이거나 생태적인 걸까?)
  이런 생태적 먹거리들이 현재로서는 비싼 축에 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싼 가격에 사먹었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들이 그 싼 가격 대신 얼마나 많은 생태적 가치 등을 희생해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생태적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야 하며, 육식과 대량소비에 익숙해진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필요도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급식에 적용한다면, 학교 차원에서 직접 학생, 교사와 함께 농사나 양식 등을 통해 생태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을 구상해볼 수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먹는 식량을 다 조달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책임지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서 어떻게 먹거리가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지역의 학교들과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생산자와 직접 소통하고 안전하고 생태적인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나는 학생들이 급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과정, 설거지 과정 등에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학 문제 몇 개 더 푸는 것보다 중요한 교육은 이런 가사노동 분야이다. 30대가 되도록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없어서 요리책에 의존하거나 일부 여성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결국 성별분업 논리(사실 급식을 맡아서 만드는 직원들의 다수는 여성이다.)물론 수백 명, 수천 명의 학생들이 먹는 급식을 학생들이 하루종일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정기적으로 학생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급식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방안 등과 학교당 학생 수를 줄이는 일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먹이는’ 존재가 아니다

  급식을 비롯해서 먹거리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을 매우 수동적인 존재, 또는 보호해야 할 대상 정도로만 취급하는 태도이다. 급식문제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심정” 운운하는 것은, 성별분업적 표현(왜 항상 어머니가 먹거리를 걱정하는 제1순위 주체인가?) 때문에도 옳지 못하지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도 옳지 못하다. 학교에서만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시키겠다는 정책도 그렇다. (특히 2007년 무렵부터 있었던 “아이건강국민연대”는, 비록 그 운동 내용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는 해도 이런 관점을 고집하고 있는 면이 많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물론 먹거리나 건강에 관한 문제를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로만 이야기하는 건 사기다. 거짓말이다. 먹거리를 만들고 유통시키고 소비하는 구조가, 사회적 시스템이, 생활양식과 패턴, 환경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것과 무관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건강권을 맡기겠다는 건 무책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의 급식이나 먹거리 관련 운동이나 정책들은 아동-청소년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파악하지도 않았고, 그 운동의 운동주체로 보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앞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민주적인 급식이나 학생들의 참여 같은 중요한 부분들은 간과되었다. 교사나 부모들은 때때로 편식을 못하도록 ‘급식지도’를 한다면서 체벌과 같은 강제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탄산음료나 과자 같은 것이 뭐가 문제이고 왜 소비함녀 안 되는지를 알리고 스스로 소비를 줄이도록 하거나 그런 문제 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를 규제하기보다는, 학교에서만 탄산음료를 없애는 이상한 정책을 쓰기도 했다.
  급식이나 먹는 것을 지도하는 과정에서도 강제적·강압적인 방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심각한 영양의 불균형이 질병을 일으킬 정도라면 의학적인 처방과 지도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라면 급식지도는 설명과 설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설명과 설득에 근거하여 교육하지 않으면, 강압과 강제를 통한 급식지도는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인 효과를 볼 뿐이다. 급식지도는 뭐도 가리지 말고 잘 먹어야 하고 몇 분 안에 먹어야 하고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먹거리 생산의 생태적 문제점들이나 알 권리, 먹거리 민주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최대한 다양한 식성(그것이 취향이건 종교적/사상적 이유건)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야 할 것이고, 다양한 음식들을 자율배식하는 형태가 가장 좋을 텐데 일부 식단에서는 조정 과정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탄산음료 금지 같은 정책도 좀 우스운데, 학교에서만 금지하는 것, 그리고 청소년에게는 탄산음료가 해롭다고 금지시키려고 하면서 비청소년(어른)들에게는 아무 말도 없는 사고방식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학교 밖에서는 맘껏 먹어도 된단 말인가? 탄산음료는 특히 청소년들에게만 유해하고 비청소년들은 아무 문제 없단 말인가? 탄산음료나 과자 등이 그렇게 건강에 해롭다면 그냥 소비하도록 냅두는 것은 분명 좋은 정책이 아니며, 그 유해성을 충분히 알리고 강조할 필요는 있다. 아니면 차라리 생산자(기업)를 규제해야 할 텐데, 기업을 상대로 탄산음료나 과자 생산을 규제하는 일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좀 더 만만한 소비자-청소년들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논리에 기대어 규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먹거리를 ‘먹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먹거리를 ‘먹는’ 존재이며, 그 먹거리에 대해 의견을 내고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꾸 ‘아이들의 건강권’을 들먹이며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먹이네 마네 어른들끼리 떠들지 말고, 청소년들과 함께 뭘 먹을지 말지, 그리고 어떤 먹거리를 어떻게 만들고 유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천하자. 당신들이 대신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아이들의 건강권’이라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이제, ‘건강권’을 우리의 제대로 된 인권으로 돌려받아보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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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아요. 누구 말대로 정말 우리는 밥상에서 매일매일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투표해야 하는데 말이죠.

    2008.07.21 17:3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7. 5. 02:22
오답 승리의 희망(오승희) 8호에 실을 글







투덜리즘 : 명박이 치하의 꿈높현시


  청소년들은 아프다. 명박이 정부는 청소년의 삶을 학대하고 있다. 아니다. 명박 이전부터 청소년 학대는 벌어져왔다. 다들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4.15학교자율화’ 조치가 어쩌구 떠들지만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이라는 과목별 ‘우열반’, 0교시,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언어영역 쉽게 내서 1교시 끝나고 자살하는 일 없게 한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입시경쟁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할 동안에, 많은 학교에서 버젓이 강제야자와 강제보충수업이 시행되는 동안에, 정답과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이 계속되는 동안에, ‘노간지’(놈현)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래, 어쩌면 교육/청소년인권문제에서는 노무현도 X놈이었을 뿐이었다. 쥐박이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쥐보다는 좋았다고 칭찬 듣는 게 기뻐할 일은 아닐 듯싶다.
  한 교사는 4.15학교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며 없애버린 규제들 대부분이 ‘전봇대’(명박이가 쓸데없는 규제에 붙인 은유)가 아닌 ‘신호등’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4.15학교자율화 등등 때문에 학교들이 더 학생들을 막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전반적으로 경쟁이 더 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학교자율화’는 ‘학생타율화’요 ‘학생노예화’였다. 그러나 어쨌건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호등’이 고장 난 신호등이었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그 규제들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이 도로 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들은 신호등 몇 개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지난 정권을 욕하고 있을 시간조차 별로 없다. 우리는 돌팔이 명박이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지금까진 삽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입시경쟁 속에 파묻어가더니, 이젠 불도저로 그대로 밀어버리려고 하는 꼴이다. 4.15학교자율화를 하고, 본고사를 허용하고, 중고등학교도 서열화시키고, 기타 등.등.등.

  그리하여, 기어코, 가설라무네, 불도저에 밟히는 게 조낸 아팠던 청소년들이 꿈틀하기에 이르렀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안 그래도 불만이 높았던 청소년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그런데 글쎄, 이 무식한 것들이 더 때리고 밟으려고만 든다. 집회신고했다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고 교육청들이 장학사 대군을 동원했다. 경기상고 교사는 학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했더니 절대폭력권을 발동하여 그 학생을 쥐어 패버렸다.
  게다가 정부는 학생노예화 정책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학교자율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람들의 촛불을, 행동을 그저 ‘광우병&미국산쇠고기’에 관한 이야기로만 한정지으면서 말이다.(재협상도 안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무시당해서, 경쟁당해서, 학대당해서 아프고, 맞아서 아프다. 그러나 아프면 아플수록, 죽기 전까지는 더 꿈틀대고 더 비명을 지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비명소리는 이렇게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학생노예화! 집어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하라!”
“광우병급식&식품 명박이나 처먹어!”


  지금의 상황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꿈높현시다. 꿈높현시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영화 『8마일』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저번 호의 ‘지못미’에 이어 2탄은 ‘꿈높현시’다.
  왜 지금 상황이 꿈높현시냐 하면, 예를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적극적으로 말해보려 했던 사람들도 명박이 때문에 ‘4.15학교자율화’ 막기에도 급급해졌다는 것이다.(지금도 말하고 있지만 묻히고 있다.)
  또한 급식운영에 민주적 참여, 생태적인 식량 생산과 직거래 시스템 등등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되는 거 막기도 막막하다는 것이다.
  또또한 정당가입, 선거운동, 표현의 자유, 학생회, 대의제와 선거연령 등등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온갖 것들을 없앨 것을 꿈꾸고 있지만, 집회장에서 장학사들 쫓아내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를 들면, 나는 ‘4.15학교자율화’는 욕하고 명박이를 싫어하지만 “입시폐지”를 쓴 피켓이나 낙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따라서 지금의 촛불은, 그다지 꿈높현시를 극복시켜줄 것 같진 않다.

  정녕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긴 현실이 시궁창인 건, 쥐가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이 시궁창인 현실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쥐박이부터 퇴치할 수밖에. 끈질기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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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8.07.05 11:51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6. 30. 01:46
촛불이 낳은 고민들 속에서



촛불과 청소년인권 사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여러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알고 있으실 겁니다. 그 중에서도 아수나로서울지부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함께하고 있는데, 어차피 제가 서울지부 외의 다른 지역 사정 같은 걸 잘 아는 것도아니니까 아수나로 서울지부의 이야기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최근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 단연그 촛불집회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자율화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할 정부의 의무를 포기한 인권침해라는 내용의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출하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빨강물고기 인권교육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도있기는 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활동이 촛불집회에 관련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촛불과 청소년인권사이"라고 달아보았지요.

  아수나로(서울지부 뿐 아니라)가 처음에 초점을 맞춘 것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부당하게 침해하는 경찰이나 교육청 그리고 학교들의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촛불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여러단체들이 청소년들을 차별적으로 대하거나 보호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수나로차원에서 <현재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에 대한 청소년인권단체로서의 우려>라는 글을 써서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단체들이나 카페들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좀 까칠한 글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반응이 그리 좋았던 거 같진 않습니다. ㅋㅋ;
  (참 관련 글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요런 성명서도 썼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5월 17일에 '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메시지가 돌면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청소년들의등교거부에 대해 그토록 알레르기,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이 사회는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의 불복종 행동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을 반겼던 것에 비하면 잘 이해가가지 않는 모습이지요. -_-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저항 의지의 표현이었던 5월 17일 휴교시위문자메시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교육공동체 나다 및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을 꾸리고 열심히준비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단체들과의 의견 충돌이나 마찰도 좀 있었구요. 여하간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했던5.17 청소년행동을 끝냈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흑흑... (휴교시위 문자 처음 돌린 사람을 잡아서 집회 준비에동참시켜야 합니다!!!)

  그 이후에도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에서, 이 이른바'촛불정세'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와 청소년들만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낼 수 있을지 고민해왔습니다. 촛불정세는 분명청소년인권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전개시키고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촛불정세는 여러 가지이야기들을 모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또는 "광우병" 또는 "반 이명박"에 묻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으며, 더 많은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묻어버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촛불집회 안에서도 청소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이나 보호주의적인시선들은 여기저기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in 서울)은 "거리를 학교로 도로를칠판으로"라는 표어와 함께 거리에 락카칠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분필로 아스팔트에 글씨를 쓰며 놀았습니다. 그러면서 전단지와선전물 등으로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하는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효과는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요-.



"촛불소녀"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활동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이제 이 촛불정세가 던져주고 있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이 촛불정세는, 청소년들(10대들)이 그 처음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사회 참여와 그런 정치/사회참여를 이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 복합적인 측면이 모여 있는 상징적 아이콘이바로 "촛불소녀"입니다.

  "촛불소녀"는 처음에는 나눔문화라는 단체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기획의도가 청소년들의주체성, 적극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그려내는 것이었는지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있습니다. 제가 나눔문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나눔문화가 촛불소녀를 만들기 전부터"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지켜주자"("우리들"이란 표현도 문제지요.)라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었고 촛불소녀 기획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나비판은찾아볼 수 없었으며, 촛불소녀를 만든 이후에도 그런 종이피켓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나눠주고 있었다는 점은 지적해야 합니다.또한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글 중에는,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며, 청소년들의행동을 깜찍하다고 표현하는, 기존 비청소년들(어른들)의 여러 차별적 시선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글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촛불소녀"라는 상징의 내용과 뉘앙스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주의적/차별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으며, '촛불'이라는상징과 함께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지켜줘야 할 약자, 혹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여성) 청소년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기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즉,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촛불소녀"는 이 촛불정세 곳곳에서 눈에 띄는 청소년들에 대한차별적/보호주의적 시선들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촛불소녀의 이미지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것같습니다. 촛불소녀가, 청소년들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나타난 상징이라는 것은 분명한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소녀는, 처음 그 아이콘과 단어를 만들어냈던 기획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촛불정세 속에서두드러지는 청소년들의 활발한 활동 속에서 청소년들의 적극성을 표현하는 아이콘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동시에 집회 현장에서"촛불아줌마" "촛불노동자" "촛불대학생" "촛불회사원" 기타 등등의 표현들이 등장하면서, 처음에 '촛불'과 '소녀'를결합시킴으로써 강조되었던 촛불소녀의 그 '특별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희석되기도 했습니다.

  촛불소녀는 요컨대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촛불집회 안에서도 강고한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보호주의 사이에서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는이미지입니다. 청소년들은 그리고 그런 변화하는 면들, 이중적인 면들이 아수나로와 같은 청소년인권단체를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인것이지요. 청소년들의 평등한 정치적 권리나 지위에 초점을 맞추고 촛불정세와 청소년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려고 할 때, 이런이중적인 부분들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서울지부는, 함께하는 단체들과 함께 더욱 더 집회 현장과 촛불정세 속에도 고집스레 자리잡고 있는 '미성년자' 보호주의나 차별들에도전하려 할 것이라는 점이겠군요. ^^; 청소년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이런 고민들을더 나누고 심화시킬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식지에 넣을 글로 쓴 것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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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2. 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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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 워크숍]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

 

1. 여는 말

- 2006년, 청소년인권운동을 고민했던 사람들이 모여 ‘청소년 인권운동, 어디까지 왔나’라는 워크숍을 진행한 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워크숍에서 제기되었던 운동의 고민지점과 그 해결의 단초를 바탕으로 2년 동안 펼쳐온 청소년인권운동. 다시 그 청소년인권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해보면서 활동 속에서 제기되는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청소년의 삶에 큰 파장을 갖고 오리라 생각되는 2008년 새정권의 교육·사회·청소년 정책들에 대해 청소년인권운동은 어떤 방향과 활동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2. 일시 및 장소

- 일시: 2008년 2월 12일 3시

- 장소: 성공회대학교

 

3. 참가대상

- 청소년인권운동에 관심있는 청소년

- 청소년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활동가 혹은 비청소년활동가

- 청소년인권운동에 관심 있는 교사 혹은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청소년활동가

 

4. 전체 프로그램

 

순서

시간

내용

비고

1

~ 3:00

참가자 등록

2

3:00 ~ 3:30

참가자 소개 및 몸풀기 마음열기

3

3:30 ~ 5:30

청소년인권운동 주제별 고민풀기

주제별 토론 후 발표 및 전체 토론

4

5:30 ~ 6:00

휴식

5

6:00 ~ 8:00

이명박시대,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략 모색하기

전체 토론

 

※ 청소년인권운동 주제별 고민풀기에서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청소년당사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주체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운동은 무엇인지, 주체들을 만나는 운동은 무엇인지?)

- 지역에 기반 한 청소년인권운동,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 청소년인권운동의 의제, 집중해야 하는가? 확장해야 하는가?

- 운동 속에 발견되는 청소년 보호주의.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 자유주제(당일 접수를 받습니다.)

 

5. 참가비 및 문의

- 참가비, 청소년: 3천원 비청소년: 5천원

- 참가방식: 이메일(youthhr@chol.com) 혹은 네트워크카페(cafe.daum.net/youthhr)로 신청해주세요.

 - 문의: 전누리(02-365-5359, 016-297-980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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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8. 1. 14. 13:53


돕헤드가 상당히 의역을 한 거 같아서 원문도 구해보고 싶긴 하지만;; 뭐 여하간...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Marc Siverstein 지음



    오늘날의 사회에서 아동은 독특한 방식으로 억압되어 있지만 이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서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잘 모르기 일쑤다. 불평등과 강요에 기반해 아동과 성인의 관계가 이뤄진다는 사실은 보통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의 사회적 억압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이유는 아동에 대한 차별이 어떻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동은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이 아동에 대해 어떤 형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주권과 강요하지 않음, 그리고 자유연합과 상호부조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아나키즘의 사상은 부모역할론, 교육일반론 그리고 아동육성론 등에서 비권위적 이론을 공식화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또한 억압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아동들이 해방을 시작하는데 아나키즘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권위는 부모로부터 나온다. 부모는 아동이 태어난 날로부터 만 18세 또는 19세에 이를 때까지 법적으로 정당화된 보호권을 갖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관점에서 아동과 관계를 맺는다. 부모는 아동을 소유물로 바라보는데, 그래서 아동은 양육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며, 적정선을 지켜야 하고, 통제되어야 하며, 규율을 배워야 하고, 선행을 했을 때는 칭찬을 받고 잘못했을 때는 체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아동에 대한 이런 식의 개념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한다.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그저 자신의 미래에 소속될 뿐이다.”


    일부 부모들은 핵가족 하에서의 숨막히는 분위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자식을 과도하게 보호한다’거나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기도 한다. 성별화된 질서가 생성되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다. 권위적인 이데올로기가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도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를 통해서다. 핵가족 하에서 성(性)에 대해 금욕적으로 억압한 결과 아동들에게서 신경증적이고 반사회적인 인격적 특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신이 가진 특정 종교(유대교, 기독교 등)나 정치적 입장(미국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가 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등)를 자식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한다. 유대교 가정에서는 남자아이가 13살이 되면 유대교 성년식인 ‘바 미츠바(Bar Mitzvah)’라는 것을 열어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하거나 또는 대놓고 강요하기도 한다. 이는 ‘남자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표시다. 하누카, 크리스마스 등은 아동이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종교적 잔치다. 자신 스스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하는 기회를 아동은 부여받지 못한다.

    아이가 5살 무렵이 되면 학교에 보내지는데, 이곳은 아나키스트 밥 블랙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아동수용소’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기관에서 아동은 교사에 의해 주의 깊게 감시를 당한다. 교사는 아동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보고를 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아동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생각이나 개인성의 징후를 보일 때마다 은근하게 또는 명시적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그것을 꺾어놓는 것이다. 아동이 ‘제대로’ 행동을 하지 않을 때는 학생주임에게 보낸다거나, 교무실에 가둬놓는다거나, 정학시킨다거나, 퇴학처분을 내린다거나 또는 낮은 성적을 주는 등의 체벌을 가한다. 사립학교 대부분에서 그리고 많은 공립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복장과 두발의 규정이 가해진다. 웃옷은 반드시 가지런히 바지에 넣어야 한다거나 허리띠를 반드시 매야 한다는 식의 조항까지 있을 정도다. 문신을 하거나 머리를 염색하거나 귀걸이나 피어싱을 하거나 또는 기타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학생주임이나 또는 교장이 직접 나서서 호통을 치고 이를 금지시킨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노동자와 사장의 관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장은 회사를 소유하고, ‘행동 규정’을 마련하며, ‘생산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권위자에게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며, 학생들의 분노는 학생자치기구나 학교가 인정하는 학생회 등을 통해 조절된다. 이는 거대한 노동조합총연맹(미국의 경우 AFL-CIO 같은 단체)을 통해 노동자들의 분노가 조절되는 것과 유사하다. 학생자치기구가 사소한 개혁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아나키즘이 요구하는 것처럼 학교의 존재 자체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강요와 폭력의 철폐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가 감옥과 얼마나 많은 점에서 닮아 있는가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감옥과 학교 모두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적용된다. 권위적인 구조, 복장과 두발 규정,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 정숙과 질서에 대한 강조, 금지규정을 지키기 위한 단속, 행동에 대한 규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보상제도, 개인 자율성에 대한 상실, 자유에 대한 억압,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 등.

    이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아동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이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점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작업장--학생들은 패스트푸드 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착취를 경험한다--에서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자신이 부모와 성인들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부당하지는 않은지 이야기해보자. 계급에 대한 자각은 필수적이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자신이 하나의 독특한 계급으로서 억압을 받는다는 계급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억압하는 계급은 삶의 조건에 대해 명령을 내린다. 아나키스트들의 국제노동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회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의 규약 서문을 알기 쉽게 바꿔서 말해보면,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구체적으로 조그만 방식으로 불복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예를 들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거나, 학교가 강요하는 종교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 또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할 때, 과제의 주제로 청소년 운동의 역사 또는 엠마 골드만이나, 학교에서 아나키스트 동아리를 만들고 반전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한 15살 학생 케이티 시에라Katie Sierra 등을 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들 앞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해보자. 이는 노동자들의 작업거부나 태업과 비슷한 방식의 불복종이다. 학교 바깥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등 스스로를 교육시켜보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학교에 붙일 수도 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소책자나 잡지를 만들어 학교에 돌릴 수도 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 동맹휴학 또는 ‘길거리를 되찾자’ 등의 방식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엽적일 수도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접하면서 더욱 급진적이 되어 문제의 뿌리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아나키스트 동아리는 근처 개훈련장에 붙어 있던 ‘복종을 가르칩니다’ 라는 문구를 떼어내 한 고등학교에 펄럭이도록 붙여놓았다. 이런 행동은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부모들과 학교 당국은 예전에는 별로 저항을 받지 않고도 지나갔던 것들이 이제는 학생들로부터 저항을 일으키게 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그런 권력이 도전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학생은 전처럼 형태가 없는 한 무리의 온순한 양떼가 아니라 계급의식을 갖고 지성을 갖춘 젊은 청소년들로 조직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을 영원히 없애나갈 것이다.

   아나키즘은 청소년 해방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강요와 폭력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은 청소년이 처해 있는 노예와도 같은 속박상태에서 청소년이 자유로워지는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청소년의 해방에 있어서 아나키즘은 부모의 강요를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는 통찰을 제공한다. 즉 청소년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대안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중권력 전략’의 좋은 예이다. 새로운 사회는 낡은 사회의 껍질을 벗고서 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약골 번역)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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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ItemID=1994

    위에 번역된 거 원문이 여기 있더라고....

    2008.01.14 15: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돕헤드

    의역은 하지 않았는데... 원문을 거의 그대로 직역을 했어.

    2010.05.08 20:28 [ ADDR : EDIT/ DEL : REPLY ]
    •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외국에도 강제야간자율학습이 있어요?;;

      2010.05.08 22:28 신고 [ ADDR : EDIT/ DEL ]
    • 원문에서 찾아보니 그 부분은 (curfew, uniform etc)라고 되어 있네요; curfew는 야간 외출금지, 통금 같은 거니까 야간강제자율학습이랑은 좀 다르고 가정이나 기숙사 등에서의 귀가시간, 외출금지시간에 가까울 듯해요 @_@

      돕이 번역을 이상하게 했다거나 원문을 왜곡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강제야자'가 외국엔 없을 텐데 --; 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읽으면서 ㅎㅎ;

      2010.05.08 23:17 신고 [ ADDR : EDIT/ DEL ]
  3. 2016 희년 청소년 해방 선포
    https://www.facebook.com/jubilee.free

    2016.09.11 21:0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