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5. 4. 27. 11:44

[2030 잠금해제] 10년째 두발자유 운동 중 / 공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8489.html



2005년 5월 다시 한번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청소년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도 그해였다. 그래도 그땐 두발자유화가 금방 될 줄 알았다. 헤어스타일은 개인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할 문제이고, 학교들은 규제를 할 그 어떤 합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으니까. 길이든 색깔이든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같았다. 같이 활동하던 지인이 “두발자유를 위해 뼈를 묻을 각오가 있느냐”는 낯간지러운 질문을 했을 적에 나는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정말로 뼈를 묻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길어야 10년 정도면 되겠거니, 그렇게 막연히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 5월이면 이제 내가 두발자유 운동을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된다. 10년째 두발자유 운동을 해온 셈이다.






이걸로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연재가 끝났네요.

작년 5월부터 딱 1년, 총 13번을 썼던가 그런데. 저에게 지면을 내주고 원고료도 줬던 한겨레 신문사에 일단 감사드리고,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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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4. 3. 21. 21:17


http://yosm.asunaro.or.kr/1






※ 배포된 〔요즘것들〕 창간준비호에 일부 그림 그린 사람, 글쓴이 정보가 누락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창간준비호 일정에 맞춰 디자인과 편집 등을 급하게 하다가 벌어진 실수였습니다.

이름이 빠진 글쓴이, 그린이 등께 사과드리며, 그밖에 오자 등에 대해서도 독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다음 정식 1호 때는 더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창간준비호


발행일 : 2014년 3월 12일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발행

제보 및 구독문의 asunaro@asunaro.or.kr












[그림=심규민 (slackerz0120@gmail.com)]




같은


"오랜만에 학교 온 학생들을 환영해주러 나온 선생님들? ㄴㄴ~

등굣길부터 학생들의 겉모습에 점수를 매기는 그들. 새학기가 밝았네 벌점이 쌓이네~"


"꿀잠 자던 시간에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충격. 이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겪는 시차적응에 맞먹는다. 하루종일 츄리닝을 입고 다니던 몸을 교복에 끼워 넣으려니 갑갑. 규정이 만들어 놓은 틀에 나를 끼워넣으려니 더 깝깝!"


"학교가 학생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 학생들에게 오리처럼 걸으라고 하고, 네 '발'로 엎드려 있으라고 한다. 학기 초부터."


[글=이경은 기자]




[SPECIAL] 상콤한 새 학기를 여는 '군기잡기'?

               - 학생들 “우릴 겁주고 통제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 






[SPECIAL] 1학년을 위한 학교는 없다?
               - 선배와 교사, 양쪽에 치이는 이중고 겪어






[소식] 개학에 반대하는 이유는? "방학도 제대로 안 해서!"







[소식] "조퇴도 학생의 권리다!"








[청소년 봉인해제] 종교강요에 맞서 싸운 위영서씨 인터뷰

                           - "분노가 학교를 바꾸는 힘"








[칼럼 : 청소년의 눈으로] 교복의 창살을 풀어헤치자









[리뷰  ver.청소년]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 『겨울왕국』 (크리스 벅/제니퍼 리, 108분, 3D 애니메이션) 












[청소년 24시]
[청소년24시]는 청소년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짧게 전하는 곳입니다. 여러 청소년들의 제보와 투고를 기다립니다.



◆ 체벌 폭행당한 학생 뇌사 상태에 빠져


2월에 순천에서 체벌을 당한 고등학생이 뇌사 상태에 빠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피해 학생은 지각을 했다고 교사에 의해 머리를 벽에 찧는 폭행을 당했고 복도를 '오리걸음'으로 걷는 기합도 받았다고 한다. 일부 언론들은 해당 학교에서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학생이 폭행을 당한 후 조퇴를 한 것처럼 출석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서는 교사가 신체 및 도구로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을 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학생의 뇌사가 교사의 폭행에 의한 것인지 가려지기는 쉽지 않겠으나, 가해 교사는 처벌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인 학생 분은 3월 11일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조의를 표합니다.)



◆ 입학생들에게 '서약' 강요하는 학교들


입학생들에게 '서약서'를 받는 학교들이 있다. 대개 '학교규칙을 잘 지키겠다', '스승을 존경하겠다', '상급생에게 겸손하겠다', '학업에 전념하겠다' 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한 경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와 같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서약서를 제보한 학생 이모씨는 "규칙이 정당한 지 아닌지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무조건 복종 서약이나 다름없다. 국민이 되는 조건으로 정부가 준법서약을 요구하지는 않지 않나. 사람이 법보다 우선하고, 국민이 국가의 주체이기 때문일 테다. 학교가 학생에게 서약을 요구하는 것은 학생을 학교자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아서라고 본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컷태클] 건전공부 vs. 유해게임?



[그림=심규민 (slackerz0120@gmail.com)]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이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청소년의 공부는 과도하든 어쩌든 건전하다고 장려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걸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건전한' 공부보단 '유해한' 게임을 좀 더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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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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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5. 21. 09:36




좀 스캔 화질이 안 좋네;;

페르세폴리스 2권 152페이지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루어지는 여성 억압 + 정치적 억압이든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학생들에 대한 두발복장규제나 정치활동탄압이든

단지 어떤 '편견'에 의해 일어나는 관습 같은 건 아니라는 거죠 @_@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내 바지가 충분히 긴 건가?'

'베일이 잘 씌워졌나?'

'화장한 게 너무 진한가?'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쩌지?'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내 삶은 살만한 걸까?'

'정치범들은 어떻게 된 걸까?'

당연한 거다.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면 분석과 사고의 개념을 잃게 되니까. 두려움은 우리를 마비시킨다. 그리고 언제나 두려움은 모든 독재체제에서 억압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머리를 보이게 하거나 화장을 하는 것은 당연히 저항의 행동이 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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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딴 것보다 사람은 놀고 먹는 데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때 행동할 수 있는 거임..
    돈 벌자 성공하자 생각하는 순간 활동력에 큰 제약을 받는다
    우메헤헤헤헤헤
    너무 크다 그런 거임

    2010.05.21 13: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예전에는 글쟁이들이나 인문학자들이 글을 쓰고 연구를 하는 것에 어떤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 못마땅했는데,
    생각해 보니 현대의 법의 골격과 기초가 되는 유동변수들이 거의 로마 평화시대에 이룩된 것은
    그들이 노예를 부리며 놀고 먹었에 머리가 그쪽으로 잘 돌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놀고 먹어야 된다... 누가 나 놀고 먹는 데 돈 좀 대주면 대단한 걸 해낼 수 있을 거 같다

    2010.05.21 13: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밀댓글입니다

    2010.05.21 21:19 [ ADDR : EDIT/ DEL : REPLY ]
  4. 뭔데 >_< 뭔데

    2010.05.22 16: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4. 12. 13:04

일단 대만과 한국의 차이


대만 두발자유화 사례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먼저 첨부해둡니다.

2005년 내용입니다.



4월 23일 中華民國學生反髮禁自治協會 ; 중화민국학생반발금자치협회 설립
(반 발금 = 두발규제(발금) 반대)
(협회장 北市成功高中升高三的李建緯和創會會長 ; 이건위, 타이페이 성공중고교 고3학년)
反髮禁自治協會 , 인터넷 사이트 오픈, 회원수 9만6천명 확보

6월 19일 타이페이FM101.7, 中華民國學生反髮禁自治協會 회견
7월 19일 "我的頭發自己管" (아적두발자기관 = 내 머리는 내가 결정한다) 구호
             홍보동영상 제작, 인터넷 배포 [동영상보기]

7월 19일 오후 1시, 타이페이 교육부 청사 앞 첫 시위
7월 24일 오전 10시 30분, 타이페이 교육부 청사 앞 시위 전격 결행
                                    대만 남부도시 카오슝 시민광장에서도 중고교생 시위 전격 결행

7월 25일 대만 교육부 두발규제 전면폐지 결정

(nocut.idoo.net에서 나온 대만 사례 정리 내용)



대만 정부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오는 9월부터 초중고생의 두발 자유화를 선언하며 신발, 양말, 복장 등에 대한 규제의 철폐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정부의 결정이 있기까지 대만 청소년들은 4월 23일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11만명의 청소년들의 회원을 모았다. 이들은 24일 교육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열었으며 결국 교육부장관의 면담을 얻어냈다.

면담이 있은 직후 다음날인 25일,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두발규제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후 새학기가 시작되는 대만의 학교는 각 학교에서 학생들이 활발하게 두발규정에 대한 토론을 열며 교사들과의 적절한 규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대만의 중화민국학생반발금자치협회 소속의 청소년 신리 양과 인터뷰를 갖았으며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Q :한국의 인터넷뉴스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우리는 대만의 두발 자유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당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A : 저의 소개요? 저는 두발 제한 반대 협회기구의 일원이구요, 이름은 신리라고 합니다.

Q :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두발 자유화를 이뤄내기까지의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 4월 23일 협회를 설립하고 인터넷사이트를 열었습니다. 회원들이 연계한 명단을 가지고 같이 교육부장관에게 갔습니다.우리는 교육부가 두발 금지를 멈출 것을 바랬습니다. 대략은 이렇고요, 우리는 인터넷을 매체로 이용하여 두발금지라는 주제를논의했습니다. 현재는 비록 교육부가 두발금지의 종결을 선언했지만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는 두발 규정이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우리는 학교에 가서 소통하고 학교의 어른들과 공개적이고 평등한 대화 기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학생들의 생각을 듣기를원하고, 학생 또한 어른들이 왜 이렇게 두발 자유화를 지지하지 않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1318virus 2005년 10월 1일자
<두발자유화 이뤄낸 대만 청소년 전화 인터뷰>에서 인용)



대만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되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 2005년 학생들의 요구를 교육부가 전격 수용하면서 두발규제폐지 지침이 내려지게 됩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권위주의 정부가 민주화되면서 사회가 더 자유화되고 민주화되는 분위기를 가속화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겠지요?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문민정부'라고 하는 김영삼 정부 때 두발규제와 교복을 폐지하기는커녕 전두환 정부 때 자율화 되고 전두환 정부 말 ~ 노태우 정부 때 부활하고 있던 두발규제 등을 꽤 적극적으로 재도입시킵니다. -_-;;)



대만 정부의 2005년 조치가 한국 정부의 태도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은, 몇 가지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1- 대만의 경우 9만명 회원들이 인터넷 토론방에 가입했다며 엄청 대단한 것인 것처럼 말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도 1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터넷서명을 벌여서 크게 이슈화되었던 2000년 노컷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도 교육부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학생, 학부모, 교사 협의로 두발규제 결정"이라는 지침만을 발표했을 뿐이다.

      2- 대만의 경우도 사실 뭐 그렇게까지 몇 만명짜리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건 아니다. 수백, 수천 규모의 2회 연속 시위 등은 한국에도 2005년에 있었고, 2006, 2007년에 꾸준히 두발자유 등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가 교육부 앞, 광화문 등지에서 계속 있었다. 이 중 2005년 집회는 내신등급제 등과 맞물리면서 엄청나게 크게 이슈화됐었고 교육부에서도 비상을 걸었을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도 교육부가 학생인권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면담에 임한 적은 청소년단체가 집회 직후 면담요청을 한 2006년 1번뿐이었는데, 이때도 "학교에서 알아서 정할 일"이라는 식의 2000년 입장을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3- 국회의원을 통해 2006년 2007년에 아수나로 등의 단체들이 국정감사에 개입하며 학교들 사례를 모아서 교육부를 열심히 깠던 적이 있는데, 그러한 지적에도 교육부는 요지부동. 심지어 국회에서도 학생인권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많은 부분 삭제되고 '학생인권 보장 의무' 조항 하나만 신설되었을 뿐이다.

      4- 지금까지 두발자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동영상들은 많이 만들어졌고 또 개중에는 그 당시 며칠 간 널리 배포되고 이슈가 된 동영상도 있었다. 진성고 동영상 같은 경우도 있고....
          예를 들어 죽음의트라이앵글 같은 동영상은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영상으로 매우 크게 이슈화되고 떴던 UCC다. 하지만 정부에서든 사회적으로든 이에 대해 성의있게 대책을 내놓은 바 없었다.



   정부가 정말로 사람들(학생들을 포함해서)의 말에 귀기울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면 2008년 촛불집회 때 대한민국 사회구조가 확 바뀌었겠죠?;;

온라인 서명운동, 거리 집회, 동영상 등 사실 대만에 비해 겉에 드러난 활동 내용으로는 그렇게까지 꿀릴 만한 역사는 아닙니다. 한국의 두발자유 운동도.
그런데 대만은 되고 한국은 안 되는 걸까요?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운동적 상황들이 얽혀 있는 문제겠지요.
어쨌건 대만 정부의 경우 2005년에 두발자유화를 할 만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고 한국의 경우는 정부가 전혀 그럴 의지나 귀를 기울일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요즘 대만 사례를 보고 있는데.
졸라 정부가 착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그런데 한국은 전혀 안 착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라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



(대만의 경우에도 1318바이러스 인터뷰를 보면 알겠으나, 두발규제폐지 조치 이후에도 학교 현장에서는 계속 두발규제냐 자유화냐 가지고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 현장이 얼마나 탄탄하게 조직화되어 있냐 또한 실질적 두발자유화에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건 아수나로에서는 2005-6년 운동 때 토론하면서 중요하게 지적했던 부분 중 하나이긴 했는데;;)




운동 이야긔

대만의 청소년운동 조건이야 제가 잘 알 길이 없으니 그것과 비교하기는 무리겠구요;;

일단 분명히 말하면, 온라인 공간에서 청소년인권, 두발자유 등이 먹히는 의제로 확 불이 붙어서 학생들이 대거 싸이트에 가입하고 하던 시대는 한국에서는 1990년대말, 2000년대 초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도 두발자유 등은 대부분 중고생들이 열망하는 인권 사안이긴 합니다만... 어쨌건 그때 당시 같은 폭발력은 없는 건 사실입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등을 거치며 더욱더 강해지는 입시경쟁과 인권침해 속에서 '해도 안 될 거야' 라는 식의 무력감과 패배감 등의 분위기가 더 많이 퍼져있는 시점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_@

(* 대만의 9만명, 11만명 가입과 저런 운동 등이 대만에서의 일정한 학생회 조직 등이 작동한 결과인지, 순수하게 이슈의 폭발력에 기댄 운동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수나로에서 활동회원으로 적극 활동을 하고 있는 70명은 그런 조건 속에서도 정말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운동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중요한 소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2005년 당시의 대만 정부보다 좀 더 못됐다고 한들 어쩌겠습니까? 그 조건에 맞추어서 말을 들어처먹을 수밖에 없도록 운동을 만들고, 교육감 선거 때도 두발자유 등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후보들한테 받아내고 이런 식으로 계속 해나가야겠지요 ^^;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조직하며 실질적인 두발자유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나가는 것도 중요하구요.


동영상이나 만화 등으로 홍보를 하고, 집회를 하고 하는 것은 중요한 활동 방법이고 앞으로 꾸준히 해나가야 할 방법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청소년들의 저항과 행동을 통해 인권을 쟁취하고 사회를 바꾸어나가겠다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_@

그리고 만약에 그런 홍보나 집회가 여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들과 맞물려 '대박'이 나서 두발자유화를 비롯하여 여러 청소년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요.

다만 드리고 싶은 말은,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하지 마시고, 지속적으로 두발자유화를 비롯하여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행동하고 싸워나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추진이나, 그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교육감 후보들이 학생인권조례 등을 얘기하는 것을 볼 때, <'교육행정당국(교육부나 교육청)' 차원에서의 두발자유화 지침>을 끌어내는 일이 그렇게 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우리가 열심히 활동한다면 말이지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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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심히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를 열심히 쓰는 방식으로 (헌데 아직도 서버는 고쳐지지 않았고) 보답해야죠.

    2010.04.12 14:23 [ ADDR : EDIT/ DEL : REPLY ]
  2. 고생하셨네요.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다만 대만 인구가 2200만명이기 때문에 대만의 9만명은 우리나라 16만명보다 훨씬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만은 국립대만대학, 국립사범대학 외에는 다 거기서 거기인 대학들이라 입시 스트레스가 훨씬 적습니다. 상위권 10%만 죽어라 공부하죠. 또 대학가서 책상물림 해야 한다는 문화가 없습니다. 장인정신으로 이어지는 나라라서 오히려 자녀가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보다 청소년 운동이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겠죠. 무엇보다도 대만 남자들은 한국에 비해 훨씬 덜 가부장적입니다. 음. 이게 결정적일듯

    2010.04.12 16:11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인구 문제를 생각 안했네요 ㅎㅎ;;
      예 입시 문제랑 사회문화적인 요소들이 좀 큰 것 같습니다 @_@
      저는 사실 대만 사례는 좀 운이 좋았던 경우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유럽 쪽만 해도 체벌이나 학교에서의 군사주의적, 억압적 문화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68혁명 수준의 변화를 겪어야 했잖아요?

      2010.04.12 16:1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12. 10. 02:28




  학생들은 흔히 '두발규제'에 대해서는 많은 반감을 가지고 두발자유를 외치곤 하지만, (물론 이 두발자유 또한 염색, 파마 같은 거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으나) 중고등학교에서의 복장규제 - 가장 대표적으로 교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반감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덜해지는 것 같다.(뭐 그렇다고 해도 학생 10명 중 최소한 4-5명은 교복을 싫어하는 거 같지만)

  왜 학생들은 교복에 대해서는 비교적 덜한 반감을 가지는 것일까?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니 제복 특유의 '멋있음'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며 사이비 심리 분석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굳이 그런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게 생산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건 전문가 분들이 잘 연구해주실 테니까.
  이 글에서는 그저 교복폐지(또는 교복 강제 폐지)를 반대할 때 맨날 나오는 몇몇 이야기들에 대해서 반박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교복 없는 중고등학교'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자신의 감정, 생각을 돌아보길 바란다



1. '학생다움'

  교복은 최소한의 학생다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결국 두발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이 '학생다움'이라는 걸 대체 누가 규정하는 것인가? 두발복장에 대한 규제, 외모에 대한 규제를 하면서 들먹이는 '학생다움'이라는 것은 결국 일부 꼰대스런 어른들(다수일까 소수일까?), 그리고 이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그것이 폭력을 동원해가면서 옹호될 만한 가치인지부터가 의문이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자신이 원하는 나 자신을 표현할 권리, 두발이나 복장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는 굉장히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필요하다. 학생다운 모습으로 교장선생님과 일부 지역주민(어른)들의 눈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제한할 만큼 구체적이고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인가? 국가안보나 공공질서 유지(여기서 공공질서란 모호하고 폭넓은 개념이 아니라 굉장히 구체적이고 필수적인 질서만을 뜻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거나, 폭력에 대한 예방이라거나...)를 위해 교복을 강제로 입힐 필요가 있는가? "학생다움"이라는 이유는, 개인이 추구하는 취향이나 가치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 모두의 인권을 제한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사실 옷을 홀라당 벗고 나체로 다니거나 타인에 대한 명백한 심리적, 신체적 침해의 위험이 있지 않는 한 (이 경우 성폭력적 행위가 될 수 있다.) 복장규제 자체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학생다움을 위해서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이런 소리다. "누군가 힘 있는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 사람들이 단정하다고 생각하는 제복을 모두 똑같이 입어야 한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우리는 광고에 놀아나는 의류자본의 바비인형어서도 안 되겠지만, 꼰대들의 폭력에 놀아나는 학교의 바비인형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2. 통일성

  교복을 입히는 게 그 학교 학생들에게 통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확실히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누가 누군지 언뜻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게, 참으로 획일적이기는 하다. 그런데, 왜 '통일성'이 필요하지? 모두가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단정하게 있는 게 보기 좋으니까? 누군가의 눈에 보기 좋아보이는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서 인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 결국 이것도 학생다움과 비슷한 이야기로 귀결되고 만다.

  교복을 강제하는 이유로 '통일성'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오히려 학생들을 모두 획일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교복은 폐지되어야 마땅함을 시인하는 꼴이다. 학교는 군대도 아니고 반드시 통일된 제복을 입어야 할 실용적 필요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학생들을 획일적 모습으로 만드는 교복과 두발규제는 다양성과 인권을 억압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복장규제만 사라져도 학교 분위기가 좀 더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실 한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 속에는 '그래야 통제/관리하기 쉽다.'라는 말이 숨어있다. 교복만 보고도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수 있어야 그 학생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복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더욱 없어져야 할 일이다. 학생들을 잘 교육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의식과 판단력을 심어주기보다는 교복이라는 장치로 획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이념인가? 만일 소풍 같은 것을 가서 학생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면, 따로 통일된 뱃지를 단다든지 손수건을 가진다든지 아주 작은 공통의 표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특별한 의식(장례식이라거나?)이 있을 때만 통일된 복장을 문화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규정과 폭력을 통해 통일된 복장을 요구하는 것은 실로 괴악한 일이다.


3. 경제적 차별

  교복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난관은 아마도 경제적인 차별의 문제일 것이다. 요컨대, 교복을 폐지하게 되면, 옷에서부터 빈부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빈곤한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교복을 아무리 입혀도 가방, 외투, 평소의 소비, 성적 등등의 부분들에서 이미 빈부격차는 뻔히 드러나고 있으며 교복이 그런 부분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쨌건 교복이 빈부격차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조금은 있다고 쳐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뭔가 이상하다. 학교는 사실 성적이나 옷차림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자유와 평등과 개성과 공공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기구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그런 내용의 교육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교복을 입혀서 겉으로 확 드러나는 경제력 차이만 좀 숨기겠다고?

   나는 학교가 학생들의 눈을 현실에서 돌리게 하는 눈 가리개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빈부격차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교복 입힌다고 얼마나 가릴 수 있을지도 다소 의문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과연 그 하늘을 가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이 든다. 학교는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하며,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가 입고 있는 옷의 가격이나 삐까번쩍함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런 교육을 하려고 노력을 열심히 했지만 어쩔 수 없네요, 교복이라도 입힙시다..."도 아니고 자기 본래의 역할은 전혀 수행하지 않으면서 교복 입히는 핑계로만 경제적 불평등을 대고 있다.

  백보양보하여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때문에 복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귀금속 악세서리'나 '수십만원 넘는 메이커 티 팍팍 나는 옷'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규정을 두고, 빈곤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복지를 보장하여 좋은 의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면 될 일이다. 굳이 교복처럼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인권을 제한해야 할 때도 필요최소한만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장의 자유가 인권인 이상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또한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인권적 교육을 하면서 복장규제가 불필요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 그리고, 빈부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불공평한 빈부격차를 해소하자고 주장한다. 실제의 격차는 그대로 둔 채 백만장자건 서민이건 옷만 같은 거 입고 차 같은 거 타고 다니게 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4. 귀차니즘

  사실 학생들이 교복폐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장 흔하게 하는 이야기가 이것인 것 같다. 교복을 강제로 입고 다녀야 할 때는 교복 그냥 입고 다니면 됐는데, 교복 강제가 없어지면 아침마다 무슨 옷 입을지 골라야 할 것이라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교복의 효과"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해서 입는 것조차 귀찮아 하고, 남이 강제해주는 옷을 수동적으로 입는 '노예' 상태에 익숙해져있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정 그렇게 귀찮으시면 당신만의 교복을 한 벌이나 두 벌 정해서 그 옷만 줄창 입고 다니시면 된다. 그게 교복처럼 한 종류의 옷만 강제로 모든 학생들이 입고 다녀야 할 이유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그리고 강제로 교복을 입게 하는 게 사라지고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옷을 입고 다닐 수 있게 된다면 이내 이런 귀차니즘 소리는 사라질 거라고 믿는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옷을 골라 입고 다니는 것,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많은 어른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직장에 제복 안 입고 가도 되는) 어른들이 귀찮으니까 교복/제복/국민복 같은 걸 만들자고 하지는 않더라.




  교복은 사라져야 한다.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중고등학교의 문화는 두발규제보다 더 획일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학생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짓누르고 학생들을 길들이고 순응시키고 있다. 교복은 두발규제와 함께 여/남 성역할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여성은 치마 교복, 남자는 바지 교복 등등) 교복이 없는 학교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있으며, 한국에도 많은 대안학교들이(대안학교 아닌 학교들도 소수 있다.) 대부분 교복이 없는데도 잘 돌아간다. 교복이 없고 두발규제가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라. '유토피아'까진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학교 모습일 것이다.




추신 : 경제적 차이를 은폐하려고 교복을 입힌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다, 라는 주장을 놓고,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그럼 성적도 공개해야겠네. 엄연히 존재하는 성적 차이를 왜 숨기려고 하나."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성적 문제와 교복 문제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첫째, 교복을 없애고 복장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매우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성적을 공개하는 것에는 이처럼 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학교간 학생간 성적 경쟁을 조장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즉, 교복폐지에는 경제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정적 효과보다 더 앞서는 긍정적 가치가 존재하는 데 비해, 성적 공개에는 그러한 긍정적 가치가 별로 없다.

둘째, 성적은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서열화, 차별 시스템이다. 학교 교육은 마치 성적이 그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나타내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이는 학력/학벌에 대한 차별로 구체화된다.(능력주의 신화) 경제력의 차이는 학교 밖에서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이며 학교가 대처해야 할 외부 요인이지만, 성적은 학교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요소인 것이다.





- 옛날에 쓴 '교복폐지론'의 후속작일까 보완작일까 뭐 그런 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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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현

    초공감하고가요!

    2009.12.10 18:26 [ ADDR : EDIT/ DEL : REPLY ]
  2. ehdjkwjd

    대박공감ㅋㅋㅋ

    2010.05.12 23:44 [ ADDR : EDIT/ DEL : REPLY ]
  3. 헤움

    빈부격차에 관한 반박이 와닿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2010.06.10 11:13 [ ADDR : EDIT/ DEL : REPLY ]
  4. 갈리프레이

    정말 초공감입니다.
    아주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글좀 퍼갈게요^^

    2010.06.18 17:55 [ ADDR : EDIT/ DEL : REPLY ]
  5. 진짜공감ㅋ

    학생이라서 그런지 진짜 대박 공감가요! 진심 대박 불편하고 살찌거나 키크면 재활용 불가..ㅋㅋㅋㅋㅋ
    스마트나 아이비 그런건 원단부터 티나서 쟤는 잘산다 못산다 그런소리 다나옴.


    솔직히 교복 "불편"해요. 왜 입는지 모르겠음.

    2010.10.29 21:20 [ ADDR : EDIT/ DEL : REPLY ]
  6. 초초공감

    맞어요. 전 교복 입기 싫어서 사복입고 엄청 일찍 등교해요

    2012.04.06 19:55 [ ADDR : EDIT/ DEL : REPLY ]
  7. 어... 너무 좋은 글이네요....
    교복좀 사라지면 좋겠네요

    2014.03.30 22: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wa

    틀린말이 하나도 없네요. 굉장히 예전 글인데 정말 공감하고 갑니다. 우리나라.. 언젠가는 꼭 교복과 외향적 규제가 모두 폐지되었으면....!

    2016.06.27 00:58 [ ADDR : EDIT/ DEL : REPLY ]
  9. ㅇㅁㅇ

    와.. 진짜 초공감입니다! 교복 사라졌으면...!

    2017.10.06 11:51 [ ADDR : EDIT/ DEL : REPLY ]
  10. 비밀댓글입니다

    2017.10.19 11:24 [ ADDR : EDIT/ DEL : REPLY ]
  11. 너거메보지가랑이

    초딩들

    2017.10.19 11:2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0. 28. 13:41

토론회 ~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의 현주소
학생의 날, 전국 중고생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개선 방안 토론회

2009년 11월 1일 일요일 오후 1시30분 ~ 오후 4시
장소 : 서울여성플라자(대방역) 4층 아트컬리지3



흑흑 두달 동안 우릴 괴롭힌 학생인권실태조사, 드디어 여기에서 결과발표 합니다 ㅠㅠ

많이 와주세용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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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걸어가는 꿈이 어떤 카테고리인지 알 수가 없어... 홍보???

    2009.10.28 18: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8. 27. 18:16




이번에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 실태에 대한 조사를 하려고 하는데요
사이비 대학생이라서(-_-) 사조방이고 뭐고 들은 적이 없어서
설문지를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서 만들긴 했는데


뭐 특별히 학문적으로 대답자에 따라 교차분석하고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이런 거 안 할 거니까
혹시 특별히 문제가 있는 문항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아슬아슬하게 정해진 분량에 맞춘 거긴 하지만, 최대한 수정해봐야지요....

도움 주십시오 ㅠㅠㅠㅠㅠㅠ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 실태 조사

 



  이 설문지는 이명박 정부 이후 다양한 학생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현재 정부와 지역 교육청의 정책들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한 문항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조사는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최근(올해)까지 학교에 다녔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설문조사의 결과 및 분석 내용은 학생들의 인권 현실을 알리고, 정부의 정책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요구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경험에 따라 솔직하게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설문조사 결과 발표 시 설문에 참가한 분들의 개인 정보는 익명으로 처리되며 유출되지 않습니다. 혹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웹페이지(  ) 등을 활용하시고, 이후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관련 활동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연락처를 남겨주십시오.


설문조사 참가자 인적 사항

  학교가 있는 지역

 

현재 다니거나

최근 다녔던 학교

 

학년 (나이)

 

성별

 

연락처 

(선택사항 / 관심 있는 분들만 기입)

 


조사기간 : 2009년 8월 말 ~ 9월 중순






 

1. 다니는 학교의 두발규제와 관련 규정이 있습니까?

① 머리카락의 길이 또는 염색, 파마 등을 규제하는 규정이 있다.

② 구체적인 규정은 없지만 교사들이 자기 기준에 따라 규제한다.

③ 두발규제가 없고 완전히 자유롭다.         ④ 기타 (                             )


2. 다니는 학교의 복장규제와 관련 규정이 어떻습니까? (해당되는 것 모두 표시)

① 교복을 강제로 입게 한다.        ② 교복 안팎에 옷(셔츠,외투 등) 입는 것을 규제한다.

③ 양말,스타킹,신발,가방 등 색깔, 형태를 규제한다.  ④ 화장하는 것을 규제한다.

⑤ 귀걸이,핀 등 악세서리를 규제한다.               ⑥ 명찰 착용을 강제한다.

⑦ 교복은 강제가 아니나 옷 종류,색깔을 규제한다.

⑨ 복장과 관련된 규제가 전혀 없다.      ⑩ 기타 (                                        )

(※ ⑨번에 답하신 분은 4번으로 곧장 넘어가주십시오.)


3. 두발복장규제를 위반했을 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해당되는 것 모두 표시)

① 강제이발  ② 체벌  ③ 벌점이나 징계  ④ 훈계  ⑤ 악세서리 등 압수  ⑥ 재검사

⑦ 기타 (                                )


4. 2008년 이후 두발복장규제 관련 규정, 단속 등이 바뀌었습니까? (해당되는 것 모두 표시)

① 규정이 더 자유롭게 개정되었다.  ② 규정이 학생들을 더 규제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③ 단속과 처벌이 덜해졌다.         ④ 단속과 처벌이 더 엄격해졌다.

⑤ 별다른 변화가 없다.             ⑥ 잘 모르겠다.

⑦ 기타 (                                                  )


5. 다음 중 다니는 학교에 존재하는 것에 모두 표시해주십시오.

① 야간자율학습  ② 아침자율학습  ③ 아침보충수업(0교시)  ④ 오후,저녁보충수업

⑤ 방과후학교    ⑥ 점심시간 등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⑦ 방학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 아무것도 없는 분은 7번으로 곧장 넘어가주십시오.)


6. 앞서 열거한 것들 중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까? 어떤 것이 강제적이고 어떤 것이 자유로운지, 7번 보기 중에 골라서 다음 중 해당하는 것에 보기 번호를 적어주십시오.

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

② 불참하면 이유를 요구하거나 참여하도록 반강제적 압력을 가한다. (                     )

③ 학교에선 강제하지 않지만 부모나 보호자가 강제적으로 참여시킨다. (                      )

④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다.  (                                            )


7. 학교에 등교하는 시간과 하교하는 시간은 보통 몇 시입니까? 하교 후에 학원을 다닌다면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은 보통 몇 시입니까? 또, 하루에 보통 몇 시간 정도 주무십니까?

  등교시간 :                              하교시간 :                 

  학원이 끝나는 시간 :                    수면시간 :






8. 2008년 이후 보충수업,자율학습 등과 등하교시간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해당하는 것에 모두 표시)

① 야간자율학습, 아침 자율학습, 보충수업 등이 새로 생겼거나, 더 강제적으로 운영된다.

② 직접 강제되지는 않지만 성적 압박이나 가정에서의 압박이 더 심해졌다.

③ 야간자율학습, 아침 자율학습, 보충수업 등이 더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④ 등교시간이 더 빨라지거나 하교시간이 더 늦어졌다.

⑤ 등교시간이 더 늦어지거나 하교시간이 더 빨라졌다.

④ 별다른 변화가 없다.                    ⑤ 잘 모르겠다.


9. 현재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을 얼마나 받고 계십니까?

   1주일에 총 (           ) 시간  /  과목 :                          (예 : 수학, 영어, 논술, 미술 등)


10. 2008년 이후 사교육을 받는 양과 내용 등이 변화했습니까?

① 사교육을 받는 시간이나 사교육의 종류, 과목 등이 증가했다.

② 사교육을 받는 시간이나 사교육의 종류, 과목 등이 감소했다.    ③ 별다른 변화가 없다.     

④ 잘 모르겠다.        ⑤ 변화하긴 했는데 학년/학교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정도이다.


11. 입시나 성적, 진로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습니까?

① 많이 받는다   ② 조금 받는다   ③ 보통이다   ④ 잘 안 받는다   ⑤ 전혀 안 받는다


12. 2008년 이후 입시경쟁이나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증가하거나 감소했습니까?

① 많이 증가했다.   ② 증가했다.   ③ 별 차이 없다.   ④ 감소했다.   ⑤ 많이 감소했다.


13. 다니는 학교에 소지품 검사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① 1주일에 1회 이상 수시로 검사한다.     ② 1주일에 1회 미만 1달에 1회 이상 검사한다.

③ 1달에 1회 미만 검사한다.              ④ 드물게 특별한 경우에만 소지품을 검사한다.

⑤ 소지품 검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⑥ 기타 (                                      )


14. 다니는 학교에서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되어 있습니까?

① 휴대전화를 소지하는 것이 규정으로 금지되어 있다.    ② 수업시간 중 소지만 금지되어 있다.

③ 규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으나 교사에 따라 규제하기도 한다.

④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 규제받지 않는다.   ⑤ 기타 (                                   )


15. 소지품 검사 및 압수 시 주로 압수하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예 : 휴대전화, MP3 등 전자/음악기기, 소설,만화,잡지 등 책, 담배 등)



16. 2008년 이후 소지품 검사,휴대전화 금지 등과 관련하여 변화가 있습니까? (해당하는 것 모두 표시)

① 소지품 검사가 생겼거나 소지품 검사를 더 자주, 엄격히 하게 됐다.

② 소지품 검사를 안 하게 됐거나 더 적게, 덜 엄격히 하게 됐다.

③ 휴대전화를 규제하는 규정이 새로 생기거나 더 심하게 규제하게 되었다.

④ 휴대전화를 규제하는 규정이 완화되거나 덜 규제하게 되었다.

⑤ 아무런 변화가 없다.                     ⑥ 잘 모르겠다.


17. 3년 이내에 체벌(도구나 손발 등을 사용하여 때리거나 꼬집는 등의 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기합 등의 벌)을 직접 당하거나 다른 학생이 체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습니까?

① 1주일에 1회 이상 경험한다.             ② 1주일에 1회 미만 1달에 1번 이상 경험한다.

③ 1달에 1회 미만으로 드물게 경험한다.    ④ 매우 드물게 경험한다. 

⑤ 3년 이내에 체벌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

  (※ ⑤번에 답하신 분은 19번으로 곧장 넘어가주십시오.)


18. 체벌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체벌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해당하는 것 모두 표시)

① 두발복장규정 등 위반  ② 지각이나 결석  ③ 과제나 수업태도  ④ 성적  

⑤ 교사의 지도 불응      ⑥ 교사나 학교에 대한 저항  ⑥ 기타 (                        )


19. 3년 이내에 교사의 언어 폭력(욕설,비하,폭언,모욕 등)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습니까?

① 1주일에 1회 이상 경험한다.            ② 1주일에 1회 미만 1달에 1번 이상 경험한다.

③ 1달에 1회 미만으로 드물게 경험한다.   ④ 매우 드물게 경험한다.

⑤ 3년 이내에 언어적 폭력이나 모욕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


20. 경험했던 체벌이나 언어폭력 중 특히 심각하거나 부당하다고 느낀 것이 있으면 적어주십시오.



21. 2008년 이후 체벌,언어폭력이 심해지거나 덜해졌습니까? (해당하는 것 모두 표시)

① 체벌이 더 잦아지거나 심해졌다.       ② 체벌이 더 적어지고 정도가 덜해졌다.

③ 언어폭력이 더 잦아지거나 심해졌다.   ④ 언어폭력이 더 적어지고 정도가 덜해졌다.

⑤ 변화가 없다.                         ⑥ 잘 모르겠다.


22. 다니는 학교에 벌점제나 상벌점제가 있습니까? 있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① 상벌점제로 학교 생활에 더 많은 통제를 받는다고 느낀다.

② 상벌점제가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고 느낀다.      ③ 상벌점제가 있든 없든 큰 차이 없을 것 같다.

④ 상벌점제가 없다.            ⑤ 기타 (                                              )


23. 학교에서 학생들이 주로 징계(교내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이수,퇴학,강제전학 등)를 받게 되는 사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주된 이유라고 느끼는 것 3개만 표시)

① 두발복장규제 위반  ② 지각이나 결석  ③ 교내폭력  ④ 음주나 흡연  ⑤ 교사지도불응

⑥ 교사나 학교에 대한 저항              ⑦ 기타 (                                     )


24. 2008년 이후 학생들이 징계를 받는 것이 증가하거나 감소했습니까?

① 징계를 받는 것이 증가했다.      ② 징계를 받는 것이 감소했다.

③ 별다른 변화가 없다.             ④ 잘 모르겠다.

(※ ③, ④번에 답하신 분은 25번으로 곧장 넘어가주십시오.)


25. 변화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하는 것에 모두 표시)

① 상벌점제의 도입  ② 학교 규정의 변화  ③ 교장,교감,교사 등의 변화

④ 학생들의 변화    ⑤ 잘 모르겠다       ⑥ 기타 (                                  )


26. 학생회 등을 통해서 학교 운영(예산,학칙제개정,교육과정 등)에 학생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습니까?

① 학생회나 다른 기구를 통해 학교 운영에 학생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다.

② 학교 운영에 대해 학생들이 알 수 있고 의견을 내지만 잘 반영되지 않는다.

③ 학교 운영에 학생들이 참여하기 어려우며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

④ 학생들은 학교 운영에 대해 잘 알 수 없으며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27. 학생회 운영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나 학교의 규제가 있습니까? 아는 대로 모두 써주십시오. (예 : 학생회 활동에 지도 교사나 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함. 학생회 임원에 성적 제한이 있음. 등)



28.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이 충분히 보장, 지원받고 있습니까? (해당하는 것에 모두 표시)

① 동아리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교의 지원도 충분하다.

② 학교에서 선호하지 않는 동아리는 허가가 나지 않거나 폐쇄될 수 있다.

③ 학교의 동아리에 대한 지원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④ 동아리 활동이 거의 없다.

⑤ 학생들이 동아리에 잘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하지 못한다.(시간 부족 등의 이유로)

⑤ 기타 (                                                                  )


29. 2008년 이후 학생회와 동아리의 활동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① 학생회와 동아리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② 학생회와 동아리의 활동이 더 줄어들었다.

③ 별다른 변화가 없다.                        ④ 잘 모르겠다.

(※ ③, ④번에 답하신 분은 30번으로 곧장 넘어가주십시오.)


30. 만약 변화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하는 것에 모두 표시)

① 학교운영,규정의 변화  ② 교장,교감,교사 등의 변화  ③ 학생들의 변화 

④ 학교의 지원(예산,시설 등)의 변화                      ⑤ 입시압박 등 학교 환경의 변화

⑥ 기타 (                                                        )


31. 학교에서 자신 또는 다른 학생이 차별을 당했다고 느낀 경우가 있습니까? 있다면 차별 사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해당하는 것 모두 표시)

① 성적   ② 성별    ③ 나이나 학년      ④ 성정체성,성적지향(동성애 등) ⑤ 장애 여부   ⑥ 인종

⑦ 경제력 ⑧ 외모,신체적 특징 ⑨ 차별을 당했다고 느낀 적이 없다.  ⑩ 기타 (                      )

  (※ ⑨번에 답하신 분은 32번으로 곧장 넘어가주십시오.)


32. 자신 또는 다른 학생이 차별을 당했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차별을 당했다고 느꼈습니까? (해당하는 것에 모두 표시)

① 교사에 의한 언어적 폭력(모욕,비하,욕설,놀림 등)       ② 교사의 체벌 

③ 학생들에 의한 괴롭힘,폭력,놀림,따돌림             ④ 독서실, 급식실 등 시설 이용

⑤ 학생회장, 반장 등 임원 출마   ⑥ 정보 공개    ⑦ 기타 (                              )


33. 2008년 이후 학교에서의 차별이 증가하거나 감소했다고 느끼십니까? (복수 응답 가능)

① 학교에서 차별이 증가했다. (차별이 증가한 부분 :                   )

② 학교에서 차별이 감소했다. (차별이 감소한 부분 :                   )

③ 별다른 변화가 없다.       ④ 잘 모르겠다.


34. 현재 학교운영,교육환경 등이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① 인권을 매우 잘 보장하고 있다.  ② 인권을 잘 보장하고 있다.        ③ 보통이다. 

④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⑤ 인권을 매우 많이 침해하고 있다.


35. 2008년 이후 학생인권 관련하여 학교운영,교육환경 등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느끼십니까?

①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②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③ 별다른 변화가 없다.                     ④ 잘 모르겠다.


36. 학생인권 문제들 중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 두발규제, 강제야자, 체벌, 학생회와 학교운영참여, 급식, 입시경쟁 등) 또는 학생인권, 교육정책 등과 관련하여 꼭 하고 싶으면 적어주십시오.



37. 현재 정부는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최선을 다하고 있다.  ② 노력은 하고 있다.               ③ 보통이다. 

④ 노력이 부족하다.     ⑤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다.


38. 현재 정부나 지역 교육청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음 정책들의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까?

 

상세히안다

대략안다 

잘모른다

전혀모른다

학교자율화

그린마일리지

일제고사(전국학력평가)

자사고,마이스터고 등 고교다양화300

대입자율화(3불폐지,입학사정관제 등)

학생인권조례

휴대전화금지조례

                                             

39. 현재 정부나 지역 교육청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음 정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이찬성

찬성 

보통

반대

많이반대

모름

학교자율화

그린마일리지

일제고사(전국학력평가)

자사고,마이스터고 등 고교다양화300

대입자율화(3불폐지,입학사정관제 등)

학생인권조례

휴대전화금지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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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1.03 00:3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7. 19. 11:28


청소년들에게 금지된 단어 '인권'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우리들의 인권'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입시경쟁, 집회 탄압, 언론탄압......

오직 1등만이 살아남기에 1등이 되기위해 경쟁하고
성적/성별/성정체성/나이/생각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무시하고
경쟁과 차별과 폭력에 쩔은 이런 세상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우울한 세상에 금지된 우리들의 권리를 찾아 두리번두리번~
상콤발랄 청소년인권캠프 별세상에서 함께 찾아요★


첫째날엔 청소년들의 인권이 뭔지 알아보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인권들을 찾아보는, 별을 낚다!

둘째날엔 청소년들의 인권을 찾기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얘기하고 행동을 연습하는, 별을 쏘다! (그리고 놀기 ㅋㅋ)

셋째날엔 별세상에서 찾은 인권과 힘들을 가슴 속에 새기고 달라진 마음으로, 별을 새기다!


상콤발랄 별난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 모두 오세요~


cafe.naver.com/qufzoavm (클릭!)
▲ 궁금한점이나 참가신청은 별세상캠프 네이버카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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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30. 11:28

근대 교육 속의 전근대

 


*

  지극히 근대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때때로 전근대적인 것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예컨대 최근에는 많이 감소한 추세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대나 감옥 안에서는 구타 등이 문제가 되었으며, 최근에도 완전히 근절되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공교육 공간인 학교에서의 체벌이나 두발규제, 용의복장 단속등도, 이처럼 근대적인 곳에 있는 전근대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형을 연상해주세요.)

  어째서 이처럼 상반된 듯한 요소가 공존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근대적인 통제와 규율의 입장에서 볼 때 전근대적인 통제 방식이 부분적으로는 쓸 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근대적인 통제의 기본 정신은 유지하되, 그 수단으로 전근대적인 방식을 차용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신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가 국제적으로 선언된 ‘세계인권선언’이나 다른 여러 기준들에 위배되는 인권침해라고 해도, 여하간 체벌로 직접 고통을 주는 것은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의 교육적 효과가 어쨌든, 근대적인 공간인 학교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유용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체벌이 계속 존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같은 요인도 분명히 한 몫 했겠지요.

 


*

  교육기본법 제2조를 보면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홍익인간을 실현토록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적인 교육의 도입은, 이런 민주시민의 문제나 인품 도야가 직접적인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형태의 공교육을 도입한 것(영국의 경우 1870년대)은 노동자들이 너무 무식하여 일을 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50년대를 전후해서 도시 외부로부터 노동력 제공이 감소하자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챙겨주기 시작했지요. “자 이 기계를 돌려서 일해라.”라고 말하면서 설명서를 건네줘도, 상당수의 노동자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기계를 돌리거나 명령을 서류로 받거나 하는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돈이나 상품의 수량계산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덧셈뺄셈 계산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엄수나 규율에 순종하는 습관이 몸에 밴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후발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했고 의무교육은 더욱 강력하게 도입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선택할 권리여야 할 “교육권”이, “의무교육”이라는 것 때문에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는 모호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 이런 근대적 교육의 기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 옮겨오면서 별첨 : 아, 다른 한 이면에는 의무교육이 아동에 대한 부모-보호자의 방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도 있음.)

 


  아까 저는 근대가 전근대적 요소를 차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에서 정말 직접적이고 잔인한 인권침해를 일으키는 것은 전근대적 요소입니다. 두발규제, 용의복장검사, 체벌 등등... 그리고 그것들은 즉각적으로 인권감수성을 자극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신체의 자유와 같은 근본적인 부분을 침해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인권감수성이란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인지라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매로 인식하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폭력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느끼는 소수를 묵살하고 무시해도 좋을까요?) 그러나 인권감수성의 차원에서 지극히 근대적인 억압을 인식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억압의 경우보다 좀 더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억압은 주로 경쟁체제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편입하게 만듦으로써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학생들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느끼기 어렵게 만듭니다.

  전근대적 억압이 비록 가시적으로 인권을 침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그 전근대적 억압을 차용하는 근대적 교육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근대 교육과 결합한 전근대적 억압을 인권감수성 차원에서 인식하고, 그 인식을 결국 의식적인 차원에서 근대 교육의 문제점, 예를 들어 입시경쟁체제의 문제점과 같은 것을 비판하는 데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만을 인권의 원칙과 체계적인 비판으로까지 승화시킬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무주푸른꿈고에서 청소년인권강의한다고 2006년인가에 끄적인 글인데... (인권운동사랑방 개굴 쫓아갔음)

실제로 가보니 이딴 딱딱한 내용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내 경험 위주로 갔다지요-_- 결국 이 글은 그냥 묻혔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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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4. 18. 15:36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숙청하라


박진


 


대뜸 전화기 너머로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거기 인권단체죠?"

감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목소리다. 이런 류의 질문을 대뜸 던질때 우리는 긴장한다. 너희같은 것들이 무슨 인권이야. 로 시작되는 욕설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럴때는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고 정중히 경청하더라도 감정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어서, 재수 없게 전화기를 잡았던 활동가는 그날 하루, 우울모드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소리가 젊다. 대부분 나이 꽤나 잡순 남성 어르신의 목소리는 일단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짧은 순간 스치는 생각. 학생인권캠페인을 나갔던 학교의 열혈보수 오른쪽 학생인가. 그런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그럴때는 정말 슬프다. 자신들의 아픔과 반인권적인 상황을, 공부라는 이름으로 모두 덮어버리는데, 그런 일에 학생 스스로가 나서면 정말 정말 속상해 버린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는 그게 아니더라. 다행이다.

"학생한테는 인권이 없는건가요?' 마치 비명같다.

우리가 캠페인을 나가는 학교도 아니란다. 속사포 같이 쏟아진다.
"선생님이라고 우리한테 마구 욕해도 돼요?"
"머리를 자르라는데, 공부하고 머리길이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부당하다고 하니까, 안경 벗으라고 때리려고 해요. 아니 사실은 끌려 가서 맞았어요"

그래, 맞다. 듣고 있자니, 고대 노예제 사회도 아니고, 억울하고 억울하고 분통터질 일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저당잡힌 자유와 권리가 너무 많다. 이유는 오직 하나, 학생이기때문이다.

"우리 애들 지금 백명 모여있습니다. 모두 화가 많이 났어요. 가만 두고 싶지 않아요. 도와주세요."

벌점제로 자퇴한 친구들은 없냐고 물었다.

"왜 없어요. 작년 우리반에서 다섯명이나 벌점제로 자퇴했어요."

백 명의 반란군은 왁자지껄 시끄럽기 그지없다. 저항의 의지를 모으는 중인가 본데, 대견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고 마음만 어지럽다. 도대체 이 사회는 왜 이토록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이 아닌 곳이 없나 말이다. 사람답게 살자고 하는 사람이 어린 학생부터 노동자, 농민, 기자, 선생님, 철거민, 가족을 먼저 보낸 유가족 할거없이 백방이다. 안타깝다.

"일단 이럽게 합시다. 우선 백명이 서로를 믿고 함께하겠다는 게 중요합니다. 알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미안하게도 아무도 학생들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해서 조목조목 반인권적인 사례들을 모으세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리해 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는 이걸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도 의견을 나누세요. 그리고 저녁에 다시 통화합시다."

학생에게 인권이 있냐고? 어떤 대답을 원하는가, 학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보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싶은가? 아니면 당연히 인권이 있지...라고 대답하고 싶은가. 나는 모든 대답이 다 우둔한 답이라 생각한다. 현실에 학생에게 인권은 없다. 다만 그것을 얻기 위해 쟁취할 때만 인권은 있다. 그것이 인권의 오랜 역사이기도 했다.

내 머리에 다른 사람이 함부로 가위질을 가져다 대는 한, 어른이라는 이유로 어린 사람에게 욕해도 된다는 뻔뻔한 답이 거침없이 돌아오는 한, 매질과 폭력이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한, 경쟁질서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야, 일단 경쟁력 있는 사람부터 되라고 부추키는 사회가 있는한, 당연, 인권은 없다. 그래서 당신들의 몫? 당연히 싸움과 저항밖에 없다.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숙청하라. 답은 그것이다.


*박진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사진은 메이데이출판사에서 나온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의 표지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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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4. 15. 16:58

[디카로물구나무] 학생답게, 여성답게

'알은 왜 안돼?

홍이, 민선


지난 4월8일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있던 날,
모처럼 집에 갔다가 투표권이 있는 아버지를 따라 투표 장소인 동네 학교에 가봤어.
기다리다가 학생지도실에 붙은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의 내용은...


구속? NO! 학생다움만 보여줘
(학생다움만 보이라는 것이 구속 아니냐구요?)

넥타이 착용은 필수! 교내에서 귀걸이 착용 미워요.
(그래,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봐줄만 했어.)

교복변형 No No No!
교복을 줄인 것을 보여주는 듯한 그림 옆에 '알'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확 꽂히더라.
(뭐야! 거기에 알이 왜 들어가?)

학생답게

그렇다. ‘학생답게’ 라는 말. 학창시절을 살아왔던 어른들, 또는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닐까? 그런데 이 ‘학생답게’라는 말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학교에서 또는 가정에서, 그도 아니면 각종매체에서 학생다움을 이야기 한다. 그러한 이야기들 안에서는 여러 가지 학생다운 청소년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들에 들지 못하면 불량/비행 청소년으로까지 그려지곤 한다. 많은 경우 실제로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외모를 꾸미고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알이라구..??

왜 굳이 그림 옆에 "알"이라는 단어를 써야 했을까? 왜 여학생의 종아리 근육이 이 포스터에 등장해야 했을까?

절대 다수 학교에서 치마를 입어야 하는 여학생들의 경우 긴바지를 입는 남학생들과 달리 다리 부분이 밖으로 드러나 보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원치 않는 학생들이라도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드러내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치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청소녀의 다리는 곧바로 신체적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이어진다.

포스터에 등장한 그림과 알은 청소녀들에게 남성/여성으로 규정된 이상적인 신체상, 성별화된 외모상을 강요한다. 근육은 남성성의 상징이 되곤 하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S라인과 매끈한 각선미를 가진 여성들이 호감을 얻으니 여기에 맞추라는 뜻이기도 하다.



단속과 통제가 아닌 자유로운 청소년 인권을 꿈꾸며..

2008년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었다. 그에 맞춰 청소년들 역시 자신들의 삶을 바탕으로 한 ‘청소년인권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에는 청소년들 스스로의 외모를 꾸미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선언문 9조에 청소년에게는 자기 머리카락이나 복장 등을 마음대로 하고 꾸밀 권리가 있으며, 학교에 소속된 것을 이유로 교복과 이름표 착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또 '학생다움' 혹은 '청소년다움'을 정의하는 것은 결국 청소년 자신이라는 것도 분명히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은 이러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따른 단속과 통제가 아니다. 이미 청소년들은 그런 단속과 통제의 대상이 되길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 스스로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이 땅에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홍이님과 민선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48 호 [기사입력] 2009년 04월 15일 8:47:0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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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3. 30. 01:19
2007년 1월에 완성했던 글인데
2년이 지난 아직도 유효하다는 게 슬프군요-
자료 정리의 의미에서, 그리고 학기 초를 맞아 올려둡니다

호적돌의 그나마 최근(2008년 1월;;) 쓴 "두발복장규제는 성희롱이다" 글은 이 링크로? (근데 이 링크가 전체공개로 열려 있는지 모르겠네)



두발자유를 주장하려는 청소년을 위한 논리들

 

공현 / 윤종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
emptyyoon@naver.com / taekyoon73@hanmail.net

 

 

 

들어가며

 

☆  중고등학생의 두발자유. 도대체 몇 년 동안 나온 이야기인가. 기록을 뒤적거려보면 1985년에도 두발자유를 외치며 학생들이 농성을 했다고 하고 1970년대 후반에도 안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이 두발자유를 외치며 학교를 뛰쳐나와 시내를 누비며 시위를 했다는 증언도 있으니, 이 얼마나 오랫동안 되풀이 되어온 주장인가. 두발자유가 ‘인권’이자 ‘기본권’이라는 논리로 등장한 것도 7년이 넘었으니 이런이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그 긴 시간이 지나도록 두발자유화 하나 못 이루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기나긴 세월동안 청소년들의 싸움과 노력이 있었기에 반삭 아니면 몽실언니였던 두발규제가 지금은 또 이만큼이나 된 것일 수도 있다.

 

☆  애당초 두발자유냐 두발규제냐의 다툼 속에서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는 불가하다. 왜냐하면 두발자유냐 두발규제냐는 결국 그 근본을 따져보면 “교육에서 무엇을 우선시하는가?” “학교(사회)는 무엇을 위한 곳인가?”, “청소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를 포함하는, 가치관과 가치관 사이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신라면이 맛있느냐 무파마가 맛있느냐, 개가 예쁘냐 고양이가 예쁘냐를 놓고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 따위가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극히 드문 예외를 빼면 두발자유를 주장하고자 하는 사람이 두발규제를 신봉하는 사람을 훌륭한 논리적 대화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
  자, 여기 한 약간 다혈질인 교사와 한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학생의 교무실에서의 밀실회담(?)을 상상해보자.
  “니들 머리 자유로 하면 온갖 요란한 짓 다 하고 다닐 거잖아. 그걸 어떻게 교육자로서 보고 있냐. 다 너희를 생각하는 마음인 거야.”
  “그러나 그 요란한 짓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공공복리나 질서유지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위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이러해서 두발규제는 인권침해입니다. 이 인권침해가 정당화되지 못하므로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어디서 선생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야. 여하간 니들 머리 긴 꼴 못 봐. 염색한 꼴은 더더욱 못 보고. 학부모님들은 또 얼마나 난리를 치겠냐.”
  “그건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의 자의적인…”
  “한 마디만 더 말대꾸하면 3번 아이언 가져와서 엎드려뻗치라고 한다.”
  오 이런. 세상은 별로 합리적인 곳이 못 된다. 평등하고 이성적인 대화의 장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냉엄한 현실 속, 권력의 작용이란.
  만일 여러분의 조금 덜 다혈질인 교사, 혹은 조금 더 침착하고 덜 폭력적인 교사와 대화를 할 경우에도, 만일 그 교사가 두발규제 신봉자라면 빙빙 돌기만 하고 도저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두 논리가 전혀 다른 전제와 전혀 다른 가치관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분명 두발자유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왜 두발자유가 정당하고 두발규제가 그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목적이 두발규제 신봉자를 설득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여하간 아무리 우리가 귀차니스트라고 해도 뭔가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있어야 하는 게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며, 또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을 두발자유 쪽으로 붙잡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 안 해도 알 거다.
  이 글은 두발자유를 주장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인권/기본권으로서의 두발자유 주장 논리를 긁어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또, 이건 “어떻게 두발자유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우리는 왜 두발자유를 주장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쓰고 있다. 만일 “어떻게 두발자유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은 분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으시다면, 그런 이야기는 별로 써있지 않으니 오해 없길 바란다, 훗.

 

 

 

 

두발자유 -> 인권!

 

  두발자유는 인권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선언한다.(사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할 생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5년에 내놓은 결정문에서 두발자유가 기본권임을 인정했다. 그럼 두발자유가 대체 ‘인간답게 살 권리’ 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인지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그러니까 2000년을 전후로 하여 일어난 청소년인권으로서의 두발자유운동에서 가장 흔하게 나온 이야기는 바로 두발자유가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라는 주장이었다. 고등학교 〈법과 사회〉 교과서를 봐도 두발도 신체이며 두발을 손상시키는 것도 상해죄(신체를 다치게 한 죄란 거지.)에 해당한다고 해석되고 있으니까, 두발자유는 당연하게도 ‘신체의 자유’로, 아~주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법학자들(대다수라는 게 우울한 현실이다.)과 기존의 법 해석은 ‘신체의 자유’를 국가 공권력이 개인을 자의적으로 체포하거나 구속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만 해석해왔다는 것 또한 알아두어야 한다. 이는 소극적 자유권을 옹호하고 있으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근대법적인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거를 편의상 신체의 자유의 ①번 의미라고 해두자.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에 대한 진보적인 해석은 기존의 협소한 해석에 몇 가지 의미를 추가하여 권리를 더 광범위하게 본다. 바로 신체적으로 훼손[규제]당하지 않을 권리 혹은 개인의 신체결정권이다. 이것을 ②번 의미라고 해두자.
  만약에, 법 좀 안다는 사람이 신체의 자유는 ①번 의미니까 두발자유에 적용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①번 의미와 ②번 의미를 모두 주장하는 법학 교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기 바란다. 전북대 교수님 특강에서 저 해석을 들었는데 성함은 잊어버렸다. 죄송하다. 알게 되면 추가해보도록 하겠다.
  진보적인 인권관에 따른 해석을 가미하자면,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신체를 자의적으로 구속하지 않음으로써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①번 의미만 충족시킨다고 장땡이 아니란 거다. 진보적인 인권을 주장하는 우리는, 사회는 사람들의 ‘신체의 자유’(두 번째 의미에서)를 적극 보장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발자유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기존의 협소한 해석에서의 ‘신체의 자유’가 아니라 더 적극적인 해석에서의 ‘신체의 자유’에 해당한다. 애초에 인권이라는 게, 문구 하나하나나 기존의 문구 해석에 구속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점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알아두길 바란다.
 ※ 본래 인권에 대한 해석은 계속 진보한다. 예를 들어 최초로 인간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 등장했을 무렵에는 그 인간의 권리에 여성의 권리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여성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운동으로 여성의 권리도 그 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새로운 조항들도 만들어졌다.
    뭐, 세상이 그런 거다. 불변하는 것도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달까.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니까는.

 

 

  ‘신체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나 ‘개성발현권’의 측면에서 두발자유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는 보통 ‘언론․표현의 자유’라는 식으로 언론의 자유와 한 세트로 정치적 자유의 일부로 생각되지만, 포괄적으로 해석했을 때는 두발자유나 복장의 자유 또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개성발현권은 비록 헌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라고 하여 헌법에 직접 안 써놨어도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다는 ‘포괄주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권에 들어갈 수 있다. 개성발현권을 행복추구권의 일부로 보는 시각도 있다. 행복추구권 입장은 일본 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일본은 두발자유를 행복추구권으로 인정한 전례가 있다.
  이 주장은 두발자유 뿐 아니라 용의복장의 자유 전반을 포괄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두발자유를 기본권이라고 인정한 입장 또한 ‘개성발현권’의 입장에서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 논리를 가져올 때의 장점은 국가인권위원회(무려 국가기관이고, 인권에 관해서는 여하간 나름 권위 있는 곳이다.) 결정문이 떡하니 있다는 것. 들이대면 적어도 지식의 권위라는 면에서는 섣불리 부정하기 어렵다. 많은 어른들이 권위에 약하다. 후후.

 

 

  두발자유가 인권이고 기본권이라는 사실은 실로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인권을 사회가 제한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시킨 후에야 가능하다고, 이 민주주의 사회, 법치주의 사회가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시민혁명 이후 만들어진 현대 사회의 목적은 바로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을 잘 보장하고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즉, 사회의 목적 자체가 인권보장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인권을 제한하려면, 즉 자신의 목적을 ‘배신’ 때리려면, 그게 별 수 없다는 거를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에게 봉사하라고 만들어진 로봇이 어쩔 수 없이 한 인간을 죽여야 한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 뭐 예를 들어 그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1억 명이 죽는다든가 그 인간이 무시무시한 살인마로 사형선고를 받았다든가 뭐 그런 사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내가 사형제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인권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거냐, 하면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전문(前文)에 보면 사람들이 폭동(혹은 폭력적인 혁명)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권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고 써있다. 이걸 바꿔서 말하면 사회가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혹은 오히려 침해한다면, 사회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뒤엎어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것이 바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을 때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저항권’이다. 오오, 참을 수 없는 ‘인권’의 무거움이여.
  입증 책임의 문제도 있다. 두발자유가 기본권이자 인권이라는 주장은, 두발규제가 당연한 상태가 아니라 두발자유가 당연한 상태이며 두발규제는 두발자유에 대한 제한이고 예외적인 경우임을 뜻한다. 이렇게 될 경우에는 두발자유라는 인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쪽에서 두발규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입증할 책임을 지게 된다.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쪽에 두발자유를 왜 해야 하는지 입증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니란 거다. 그러니까, 두발자유를 주장해도 학생들의 탈선이 없다거나 성적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라고 누가 말하면, 당당하게 두발자유는 기본권이니까 오히려 두발규제를 주장하는 쪽에 두발규제의 입증 책임이 있다고 말하자. 곧 두발규제를 하려는 쪽에서 두발규제가 왜 필요한지, 두발자유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혹은 사회의 유지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지, 공공복리나 공익을 현저하게 저해하는지 뭐 그런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발자유는, 굳이 그것이 성적과 관계가 없다는 것, 아니면 두발자유를 해도 알아서 ‘교사들 만족시킬’ 머리를 하고 다닐 거라는 것 같은 걸 증명 따위 하지 않아도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그것은,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물고문, 전기고문해서 성적을 올리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인 것과 마찬가지다. 두발규제를 해서라도 면학분위기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인권보다 입시교육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게 더 훌륭한 가치라는 소리랑 똑같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도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두발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좀 더 세세하게 기본권을 제한할 때 필요한 요건이 뭔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우선,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목적이 정당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해야 한다. 제한할 때도 권리의 본질적인 부분은 제한할 수 없으며, 그 제한이 필요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기본권을 제한해서 얻게 되는 법적인 이익(정의, 공공복리 등)이 기본권 제한 때문에 잃게 되는 정의와 균형이 맞을 정도여야 한다.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국회에서 정한 법률로만 가능하다. 신체적·정신적․정치적 자유의 경우는 제한 조건이 더 엄격해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현존하는 긴급한 위험이 있을 때만 제한할 수 있다.
  이 조건에 두발자유 문제를 대입해보자. 두발자유를 제한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학생들을 쉽게 통제하고 교사의 폭력에 순종하게 만들며 권위주의적인 학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목적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위배되며, 명시적으로는 교육기본법 제2조가 선언하고 있는 교육의 목적(민주시민, 홍익인간의 이념에 맞는 훌륭한 인품의 사람을 만드는 것)과 제12조에서 “①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 ②교육내용·교육방법·교재 및 교육시설은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강구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도 위배된다.
  두발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도 아니며 학교 질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적절하지도 않다. 지금까지 두발자유와 청소년 범죄나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 등의 인과관계는 증명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발자유는 신체의 자유이자 개성발현권․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신체적 자유인 동시에 정신적 자유에 해당한다. 따라서 두발자유로 인해 실질적이고 현존하는 긴급한 위험도 없고, 두발자유가 분명하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닌 이상 제한할 수 없다. 
  법률로써 제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기도 모호하다. 초중등교육법에 보면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지도․감독 기관의 인가를 받아서 학교규칙(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교육상 필요한 때에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해 학생을 징계하거나 지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제8조와 제18조) 그리고 그 자세한 기재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는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보면 학칙에는 다음 사항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1. 수업연한·학년·학기 및 휴업일
2. 학급편제 및 학생정원
3. 교과·수업일수 및 고사와 과정수료의 인정
4. 입학·재입학·편입학·전학·휴학·퇴학·수료 및 졸업
5.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6. 수업료·입학금 기타의 비용징수
7. 학생포상 및 학생징계
8. 학생자치활동의 조직 및 운영
9. 학칙개정절차
10. 기타 법령에서 정하는 사항

  여기에 학생의 용의복장을 규제할 수 있다는 항목은 없는데, 결국 학생징계의 한 기준으로 ‘학생생활규정’, ‘용의복장규정’ 등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두발자유를 비롯한 용의복장의 자유가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제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규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설령 법률로써 두발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그 정당성이 거의 없으며 위헌,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판에 이는 학칙 제정 과정에 당사자인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한다는 현실과 함께 절차적인 정당성도 심각하게 훼손한다.

 

 


  두발자유가 기본권이자 인권이라는 말은 이처럼, 결코 두발자유가 손쉽게 건드리고 규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애매모호한 ‘질서’나 ‘분위기’, ‘보기 안 좋다.’. ‘학생답지 않다.’ 등의 말로 인권을 침해하려드는 교사들이나 이에 동조하는 학생, 학부모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람들에게 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

 

 

두발규제 -> 폭력!

 

  자, 두발자유가 인권이고 기본권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실컷 떠들었으니까 이제는 두발규제를 비판하고 두발규제 주장을 반박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학생다움”, “위화감”, “성인과 구별”, “질서와 규칙”, “학교 평판” 등등 두발규제를 옹호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흔히 나오는 논리들에 반박하는 대항논리를 여기에 쓸 것이다.

 


학생다움과 위화감?

 

  어떤 사람들은 두발자유를 실시해서 다양한 머리 모양을 하게 되면 염색이라거나 아니면 장발이라거나 여하간 그런 외모가 학생답지 않다고들 이야기한다. “학생답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그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연한 ‘학생다움’의 모습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다움”을 권장하는 것은 사회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다워야 한다.”라는 이유만으로 제도적으로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권력으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학생다워야 하기 때문에 두발규제를 하고 교복을 입히겠다니. 그건 말하자면 사람들이 ‘여성다운 여성’이나, ‘남성다운 남성’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강제로 성형수술을 시키거나 강제로 옷 스타일을 규제하는 것과 비슷한 짓이다. 단순한 권장사항(게다가 사회의 “~다움”이란 편견에 찌든 옳지 않은 것일 때도 있다!)과 인간으로서의 권리, 헌법과 국제조약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저울질하면 권리 쪽이 더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담으로, 나만 해도 남성임에도 간혹 치마를 입고 다니는데, 그런 옷차림을 하고 다녀서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기는 하지만 치마를 입고 다닌다고 해서 처벌을 받거나 위협을 당한 적은 없다.)
  학교 평판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평판이 인간의 존엄성, 인권-기본권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아니, 사실 이 문제는 모든 학교가 두발자유화를 하면 전혀 걱정할 게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학교의 교장이라면 차라리 주변 학교들까지 두발자유화할 것을 적극 설득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무지개색으로 염색을 하거나, 비싼 파마를 한 학생들이 어떤 ‘위화감’을 조성할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위화감이라는 것은 두발규제가 당연한 잘못된 세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두발자유가 당연한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와 개성발현권이 보장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길거리에서 빨간 머리를 한 젊은이와 전통 한복을 입은 젊은이가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빨간 머리 젊은이는 속으로 “저 구린 한복을 입고 어떻게 길에 다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전통 한복을 입은 젊은이는 “저게 무슨 난리야? 서양사람 닮으려고 애를 쓰는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제대로 된 민주 시민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 면전에서 굳이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표현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거나, “내 마음에는 안 들지만 간섭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충돌해야만 하는 ‘권리’의 부분이나 인류 보편의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닌 이상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는 인권적으로 필수다.
  아마, 두발자유화 이후 맨 처음 염색을 한 학생이 나타나면 “쟤, 뭐야?”라고 생각하며 위화감을 느끼는 학생도 몇몇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면 그런 다양한 머리 모습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런 경험은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주 드물지만 경제적 위화감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부잣집 학생이 머리를 거창하게 꾸미고 학교를 왔다고 하자. 그런데 그게 문제인가? 공교육은 본질적으로 성적이나 옷차림이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단 걸 적극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방법을 고민하기는커녕 다 똑같이 입힐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이거 참. 빈부격차 때문에 생기는 외모의 차이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게 해야 한다는 담론은 옷차림이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임을 공공연히 인정하는 효과까지 갖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학교가 아무리 잘 가르쳐도 그런 것 때문에 경제적 위화감이나 갈등이 빚어진다면, 어째서 학교는 그런 것을 은폐하려 드는지 의문이다. 현실에서는 엄연히 ‘다양한 머리’와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는데, 유독 학교에서는 그것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논리다. 학교는 학생들의 눈가리개가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빈부격차를 두발규제를 한다고 해서 얼마나 가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과연 가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해봐야 한다. 교육은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불평등을 은폐하는 도구인가? 그런 불평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이나 위화감을 어떻게 조정하고 해결하는지 배우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다. 또 그런 불평등에 대한 경험을 원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계발하거나 사회 변혁의 꿈을 꿀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가 머리카락의 삐까번쩍함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두발자유는 인권보장일 뿐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현실에 대한 직시 또한 가르쳐준다. ‘위화감’이라는 구실로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성인과 구별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청소년과 성인의 구분을 위해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해야 한다고 한다.(비학생 청소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주장이라는 점은 상당히 거슬린다.)
  청소년들을 굳이 두발규제 등을 통해 성인과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청소년들이 청소년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 유해한 사회의 환경을 접할까봐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청소년들이 소위 ‘청소년 유해업소’나 술, 담배 등을 접할까 걱정스럽다는 소리다. 다른 하나는 성인인 척하는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므로 청소년들이 단정한 머리모양에 교복을 입고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둘은 미묘하게 다른 듯하면서도 거의 비슷한 소리다. 범죄건 유해환경이건 ‘탈선’이란 말로 뭉뚱그려지니까.

 

  우선,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본적 인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마치 범죄자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 모두를 감옥 안에 가둬놓고 보호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사회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 사회 환경을 없애려고 해야지 사람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청소년 유해환경’이라는 게 일부 어른들이 자의적으로 정해놓은 거라는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만약에 이 사회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유해’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이라면, 그것은 그런 환경을 조성할 정도로 무분별한 이윤추구를 허용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잘못이다.
  뭐 어쨌건 간에 좀 더 지엽적으로 책임 소재를 논하더라도, 청소년들의 유해업소 출입과 음주, 흡연은 상인들이 ‘신분증’ 검사만 제대로 해도 해결될 것이다. 많은 어른들은 “머리를 기르면 성인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른들이 얼마나 법을 하찮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상인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고자 한다면 ‘외모’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신분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인들에게 이러한 의무를 철저히 지킬 것을 요구하기는커녕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어른들은, 한 마디로 일부 상인들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자녀들을 규제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상인들의 편의와 학생들의 인권. 무엇이 더 중요할까?

 

  그리고 학생들이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높다는 주장은 청소년들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고 충동적이라는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성격에 대한 심리학 연구는 많지만,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명백하게 더 높다고 증명된 바는 없다. 오히려 범죄율을 살펴보면, 2005년 한 해 총 범죄수는 1,893,896건인데 청소년들의 범죄(소년범죄 : 20세 미만의 사람이 저지른 범죄)수는 67,478건이다. 계산해보면, 소년범죄는 전체 범죄의 약 1/28 정도다. 그런데 인구로 보면 10세~19세까지 인구만 600만 명 정도로 전체인구(4800만 명 정도)의 1/8 정도 된다. 즉, 인구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범죄율은 오히려 다른 나이대에 비해 낮은 편이다.(통계청에서 찾아본 자료들이다.) 만약 범죄율을 근거로 기본권을 제한한다면 40대의 범죄율이 2003년 통계 28%로 가장 높기 때문에 40대를 대상으로 두발규제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령대를 기준으로, 막연한 편견과 가능성만을 이유로 인권을 제한하겠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알겠는가?
  예를 들어 3급 이상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당신들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어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오른쪽 볼에 별 마크를 그리고 다녀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사회가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신체적 제약을 거는 행위로 볼 수 있으며, 이를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학생에게 “너희는 어른과 구분되어야 하니까”나 혹은 “너희가 머리가 길면 탈선할 수 있으니까”라며 인권을 침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두발이 단정하지 않으면 그것이 심리 상태도 해이해져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유치한 반영론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검증된 적이 없다. 만일 어떤 청소년이 절도나 성폭력과 같은 범죄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눈에 띄는 염색머리를 하느니 평범한 머리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머리나 단발머리를 한 학생도 얼마든지 도둑질이나 성폭행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두발규제가 있기 때문에 일탈을 원하는 청소년들이 ‘두발규제’라는 금기를 깨는 경향이 나타나는 측면도 있다. 즉, 두발자유가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소망하게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전혀 증명된 적도 없는 주장을 갖고 기본권-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하니, 통탄할 노릇이다. 또, 만약 이게 증명이 되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된 이야기지 딱히 청소년들에게만 적용할 문제도 아니다.
  게다가, 성인들이 이야기하는 ‘해이해진 심리 상태’란 무엇인가? 이는 청소년들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청소년들을 자신들의 생각대로만 통제하겠다는 것인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다거나 공공복리를 실질적으로 저해한다거나, 뭐 그런 파괴적인 행위를 제재하는 것이 아닌 한, 청소년들을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시도가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의미하고 사회에 필요한 도덕을 감수성 면에서나 이성 면에서 ‘교육’하고 반성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모를 통일시켜서 예의를 강제로 박아 넣으려는 폭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지껄이는 태도에는 질릴 정도다. 청소년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그들 자신의 것이다.
  혹자는 두발자유화와 복장자유화를 실시한 적이 있던 전두환 정권 시절, 그러니까 1980년대에 청소년들의 범죄율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러한 주장을 펴는 통계자료나 논문이 있다면 공개해주기 바란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것이 학문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 그때 두발자유화 때문에 학생을 교사로 착각하여 인사하는 학부모가 있었다거나 하는 해프닝들은 많이 전해지지만, 두발자유와 범죄 사이의 연관을 분명하게 입증한 연구는 없다. 만에 하나라도 둘 사이의 연관이 입증되더라도 그것이 학생 다수에 대한 인권제한 자체를 옹호할 증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당시의 사회 상황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당시 군사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 사탕발림과 정권 이미지 향상을 목적으로 두발자유화, 복장자유화를 학생들에게 던져주었으며 또 비슷한 목적으로 3S(Sport, Sex, Screen) 정책도 실시했다.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이 3S 정책으로 인해 ‘유흥’적인 분위기가 비교적 강해졌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두발자유가 범죄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성인의 범죄율이 함께 증가하지 않았는가를 함께 비교 조사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신분 구별을 위해서 특정 신분에게 기본권을 포기하라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감시의 효율’을 ‘인간의 존엄성’, ‘인권’보다 높은 가치로 여기는 반인권적 발상이다.

 

 


성적을 위해, 그리고 너희를 위해?

 

  학생들의 성적을 들먹이며 두발규제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머리에 신경 쓰면 학교 성적이 떨어진다나 뭐라나. 그리고 “너희를 위해” 두발규제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두발자유와 관련된 다큐에서 새벽 1시까지 강제자율학습을 시키는 학교의 교장이 “학생들을 공부시켜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떠들던 게 생각난다. 쩝.
  여하간 성적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두발규제와 성적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입증된 것도 별로 없기도 한데, 여하간 나는 두발자유를 하면 학교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더 산만해지리라는 데 심정적으로는 동의하는 편이다. 증명된 바 없지만,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당한 통제와 억압에서 벗어났는데, 당연히 더 산만해지는 게 자연스러울 듯한 기분이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학교가 지나치게 억압적이라는 게 맞을 거다. 그런데 할 말이 없다는 것은, 그럼 성적이나 학교 분위기를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기본권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냐는 거다. 무시무시한 가치의 전도 현상이다. 이 가치관을 받아들이면, 학교 분위기를 산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떠든 학생을 고문한다거나, 성적이 낮은 학생을 고문해서라도 성적을 올린다거나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대체 인권을 뭘로 아는건지 한숨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너희를 위해서”라는 주장을 위해 딱 맞는 고사가 있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한 왕이 자기 궁궐에 진귀한 새가 날아 들어오자 기뻐하며 새를 위해 음악을 울리고 진수성찬을 차렸다고 한다. 그러나 새는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고 한다. 왕은 새를 위해 한답시고 이것저것 했는데 새는 오히려 그 대접 때문에 죽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그것을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봐야 설득력이 없다. 그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자기 소유물로 여기거나 의지나 인격이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규칙이니 지켜라?

 

  교육기본법 제12조 ③ “학생은 학교의 규칙을 준수하여야 하며, 교원의 교육ㆍ연구활동을 방해하거나 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 ①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
  이런 법률에 의거해서, 아니 뭐 이런 법률 같은 건 모르더라도 여하간 “학교의 규칙이니까 무조건 지켜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학교의 규제가 싫으면 학교를 떠나라.”라는 말은 덤으로 붙는다.

 

  우선 “학교의 규제가 싫으면 학교를 떠나라.”라는 말에 대한 반론부터 펴겠다.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는 두발규제에 정당성이 없더라도 계속 지켜나가겠으니 동의하지 않는 청소년은 전부 학교를 나가라는 소리다. 그러한 주장은 “두발규제를 하기위해 ‘교육’을 포기하겠다.”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반교육적인 두발규제가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 혹은 교육(좁게 봐도 학교 공교육) 그 자체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가치가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되었다. 학교는 학생들의 인권을 탄압하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다.
  간혹 보면 선지원 학교라는 이유나 기타 등등 잡다한 이유로 학생들이 자기 선택에 의해 온 것이니 닥치고 따르라는 논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드러난다. 예를 들어 내가 (가)라는 나라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나라에서 수사기관이 내게 고문을 가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는 내 선택에 의해 그 나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인가? 내 인권을 침해한 것이니 잘못을 시정하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인가? 어떤 집단을 선택하는 것과 그 집단의 잘못에 대한 비판은, 완전 별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항상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눈 감고 그것을 피하는 것만을 선택해왔다면, 사회의 개혁이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를 떠나야 할 것은 두발규제에 반대하는 학생이 아니라 두발규제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다.

 

  또한 “규칙이니 지켜라.”라는 말은 낡은 “형식적 법치주의”의 입장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적 법치주의”란 법이라는 형식을 갖추기만 하면 그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어떻건 간에 어떤 법도 허용될 수 있다고 하는 입장이다. 이 형식적 법치주의는 교과서에서조차 부정되는 입장이다. 법은 사회의 궁극적인 목적과 이념, 정의에 합치해야 하며, 악법은 법이 아니다. 우리는 악법에 불복종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벌임으로써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려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쪽과 두발규제를 주장하는 쪽이 맞서고 있는 현실은, 두발규제가 악법이냐 악법이 아니냐를 가지고 싸우는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당연히 두발규제가 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악법도 일단 지켜라.”를 요구하는 것은 전혀 적당하지 않다. “악법도 법이다.” 식으로 “규칙이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지켜라.”라고 말하는 것은 두발규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데, 잘못됐으면 없앨 궁리를 해야지 그걸 지키라고 요구하는 건 스스로의 무식함과 불의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규칙이니 지켜라.” 따위 문제가 아니라 그 규칙을 없앨지 그대로 둘지를 놓고, 규칙의 정당성을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대고서 규칙이니까 무조건 지키라고 한다거나 그 규칙에 근거한 권력을 휘둘러대는 것은 실로 폭력적이고 권위적이라고 하겠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대체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이 “규제를 통한 억압”,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복종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폭력일 뿐이며 인권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인권선언 제26조에는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 교육은 모든 국가들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 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을 증진시키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을 촉진시켜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두발규제를 비롯한 용의복장규제나 체벌 등은 학생들에게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강화시켜주기는커녕 인권 및 기본적 자유가 얼마나 가볍게 침해당할 수 있는지 학습하게 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두발규제는 교육권까지 침해하고 있다. 굳이 내가 교육기본법까지는 들먹이지 않아도 되리라 여긴다.
  좀 더 절차적인 이야기를 하면, 현재의 학칙은 그것을 수용하고 지켜야할 학생들의 동의 없이 학교장 및 교사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다. 물론 이미 정해진 교칙 이니 지키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교칙이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등 상위법의 조항들과 대치된다면 이는 정당한 규칙이라고 할 수 없기에 그것을 따르지 않을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두발규제는 분명 정당한 근거 없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위헌적 성격이 강하다. 학교라는 제도 교육집단이 “두발규제” 없이는 유지 되지 않는다는 것, 혹은 그만큼 두발규제를 할 커다란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기본권 제한의 요건에 맞추어 엄밀하게 입증하지 않는 한 그 위헌적 규칙을 정당화시킬 방법은 없다.
  아참, 많은 분들이 사립학교의 학칙은 공립학교의 학칙보다 더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해 걱정하는데, 사실 사립학교 또한 교육기본법이나 초중등교육법, 사립학교법 등에 의해 존재하고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해둔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일부 유럽 지방이나 미국의 소위 ‘명문’ 사립학교의 엄격한 용의복장규제를 이야기할 텐데, 나는 그것 또한 그 안의 청소년들이 충분히 문제제기할 수 있는 인권침해라고 본다. 그 ‘명문’이라는 곳에서 그런 식으로 교육을 하니까 아마 세계 곳곳의 소위 ‘지도자들’ 중에 괴악한 자들이 많은가보다.

 


학부모가 원해서 어쩔 수 없다?
  학부모가 원하기 때문에 학교가 어쩔 수 없이 두발규제를 해야 한다는 말은, 비겁한 말임과 동시에 학교의 의견을 은폐하는 말이다. 물론 두발규제를 원하는 학부모들은 모두 인권침해의 가해자이며 반인권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학부모가 원하기 때문에 한다는 말 속에는, 두발규제는 “해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미 깔려 있다. 만일 학부모들이 학교에 아주 심각하게 인권침해적이거나 부당하고 공익 - 다른 사람이나 공공적인 권리를 짓밟는 행위(단적으로 공금을 횡령하라거나, 학생들을 물고문하라거나)를 요구한다면, 그걸 그대로 할 것인가? 만약 어떤 교사가 학부모가 원한다는 이유로 그런 짓을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교사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두발규제가 정말로 인권침해이며 없어져야 할 악이라고 생각한다면, 학교의 교사들은 학부모가 원한다고 해도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들 또한 학교가 인권을 침해해 가면서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청소년들은 당신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의무도 하기 전에 권리부터?

 

  “의무도 하기 전에 권리부터 주장한다.”라는 비난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의문을 느낀다. 대체 무슨 의무를 말하는 건가? 그렇게 물으면 대개 뭐 두발규제를 지켜야 한다느니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느니 성적이 높아야 한다느니 심지어 휴지를 길에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경제적 능력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의무를 한 후에야 권리가 있다는 것부터 우선 맞지 않는데, 인권사상은 본래 권리가 먼저 있고 사람들의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무가 발생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은 엄격한 요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법에서 “비례의 원칙” 같은 게 대표적인데, 비례의 원칙은 범죄를 저지른 정도에 맞게 권리를 제한(=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면, 경미한 절도죄를 저지른 사람의 손을 자른다거나 사형을 할 수는 없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권리를 제한받게 되는 것은 그 내용과 절차 모든 면에서 법적인 요건을 만족시킬 때, 특정한 의무에 대해 특정한 권리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포괄적으로 ‘의무’를 안 했으니 포괄적으로 ‘권리’를 제한받는다는 건, 솔직히 반박할 가치도 못 느끼는 헛소리다. 두발규제는 전혀 합당한 ‘처벌’이 될 수 없으며, 이 논리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모두를 대상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경제적 능력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인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실업자라고 해서 인권을 침해당해도 되는가? 인격을 모독해도 되는가? 고문하거나 때려도 되는가? 경제적 능력의 부족은 자연스럽게 합당한 경제적인 권리의 부족을 낳을 뿐이다. 청소년들은 민법상 경제활동에서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인간의 인권-기본권을 무효화시킬 수 없다. “아동권리협약” 같은 것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라.
  게다가 이미 다수의 청소년들은 반쯤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부모의 ‘친권’에 의해 권리를 제한받고 있다. 솔직히 한국은 ‘친권’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편이라서 그 자체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을 정도다.(일기장 훔쳐보기나 감금, 체벌 등…. 솔직히 나는 친권제한특별법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느낄 정도다.) 경제적인 능력을 이유로 해서 인권침해를 받아들일 이유는 전혀 없다.


 

 


인권은 무슨 인권, 멋 부리려는 거지?

 

  두발자유나 용의복장자유에 대한 주장을 하다보면 꼭 부딪치게 되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멋 부릴 자유는 자유가 아니냐?”라는 거다.
  우선, “인권이 대체 뭔지 자세한 공부 없이 남들이 인권이라고 하니까 따라나서는 사람들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라는 주장부터 반박하자. 인권의식은 지식이 아니다. 인권의식은 차라리 감수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간이 인간인 한 공통적으로 가지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으며, 이는 스스로가 자명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라고 노직이란 학자는 말했다. “직관적으로”에 밑줄 바란다. 어떤 제도나 처우가 인권에 비추어봐서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헌법 조문이나 국제협약 조문을 뒤적거려서 아는 게 아니요, 느낌으로 알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느낌이란 두발규제의 경우에는 “내가 내 머리카락 가지고서 내가 멋 내고 싶은 만큼 내겠다는데 어째서 그런 데까지 간섭하는가?”와 같은 불쾌함이다. 그러므로 인권이 뭔지도 모르면서 멋 내고 싶어서 떠든다는 폄하는 정당하지 않다. 인권에 대해 자세히, 지식으로서 알지 못해도 자기 인권을 주장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멋 낸다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멋 내고 싶어서 두발자유 주장한다.”라고 말하면 욕처럼 듣는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보도자료를 보라. “학생의 두발자유는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이나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등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 권리로서 인정되어야 하며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두발제한 규정을 근거로 학생들의 두발을 일률적이고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 및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부합하지 않으며 특히 강제적으로 학생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인격권 등에 대한 침해라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서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멋 낼 권리”로 치환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멋 내기”라고 말하면 안 좋은 것 같고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이라고 말하면 좋게 들리는 세상이다. 쳇.
  인권을 말하는 게 가식적으로 들린다면, 최저생활비 보장을 요구할 때 “생활권”이나 “사회권”이라고 말하는 건 가식적인 것이고 “배불리 먹고 살자.”라고 말하는 게 진솔하다는 이야기다. 내가 듣기에는 양쪽 표현 모두 별 차이 없는 것 같다. “멋 낼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 사회가 통탄스럽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멋 낼 권리보다 중요한 권리는 물론 많다. 예를 들면 “자율학습을 강요받지 않고 여가를 즐길 권리”라든가 “맞지 않을 권리”, “획일적인 입시교육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일류대학 안 나와도 부당한 차별 안 받을 권리” 같은 것들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멋 낼 권리”와 배치되는 건 아니다.
  당당하게 주장한다. “개성발현권” = “멋 낼 권리”는 인권이고 기본권이다.

 


선생님에 대한 도전?

 

  혹시, 선생님들이 학생 지도나 수업에 힘이 들지 않겠는가 물어올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만약 선생님들이 힘이 드신다면, 그것은 두발 자유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열악한 교육 환경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들이 교육에 힘들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 반에 30~5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며, 선생님들에게 떠넘겨진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의 권리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권리 또한 보장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선생님들의 권리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는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학급과밀화 문제나 입시경쟁체제는 그런 점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의 권리를 침해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분량 사정상 학급과밀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한 학급당 학생수를 지금의 반이나 3분의 1로 줄이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선생님의 수가 늘어야 됨은 당연하다. 선생님들에게 부과되는 여러 가지 잡무(돈 걷기, 공문 작성 등등)가 줄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수업 과목과 수업시수가 줄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자신의 수업 준비와 학생들에게 쓸 시간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범죄나 폭력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생활지도에는 ‘전문 상담 교사’의 확충을 통한 지원이 필수다. 현재와 같이 길거리에서 좀 ‘불량’해 보이는 학생들을 다그쳐 학교를 알아내고 처벌하는 방식은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반발심만 높일 뿐이다. 선생님과의 ‘윤리적 토론’이나 전문적인 상담으로 인격적 지도가 이뤄져야 한다.
  흔히 언론은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권리를 대립되는 것으로 그려놓고 싸움 붙이기를 즐긴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권리를 반드시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과 학생을 힘들게 하는 것은 구조적으로는 열악한 교육 여건과 왜곡된 체제다. 그런 점에서 교사의 노동권이나 교권(인권을 침해할 권리로서의 교권이 아닌 정당한 교권!)의 보장과 교육 여건의 개선은 학생들의 인권 찾기에 반대되기는커녕,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선생님들도 두발과 복장의 자유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교사는 성인이고, 존중받는 듯하지만 사실 학교도 엄격한 위계서열과 비민주적인 관행들이 많이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복장과 머리를 보자. 크게 튀지 않는 머리에 비슷한 정장 차림. 왜 선생님은 반바지를 입거나, 튀는 머리를 하거나, 청바지를 입거나 하면 안 되는 것인가? 2006년에는 생활한복을 입었다는 게 욕을 먹을 빌미가 되었던 이용석 선생님 같은 사람도 있다. 만약 선생님들도 복장과 두발의 자유를 주장한다면 우리는 선생님들과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청소년인권을 주장하는 우리는 선생님들과 함께 ‘민주적인 학교’, ‘학교민주화’를 이야기할 자세가 되어있다. 선생님들이 더 이상 ‘가르치는 기계’가 아니라 힘들고, 짜증도 낼 줄 아는 인간임을 고백하고 함께 이야기하길 원한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원한다. 선생님과 선생님 사이의 평등한 관계 또한 원한다. 지위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인간적인 관계를 원한다. 각자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해주며, 잘못된 것은 싸워서라도 고칠 줄 알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법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의 의미일 것이다.

 

 


군대 가서도 두발자유 주장할래?

 

  이 이야기는 은근히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말해서 가장 황당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군대와 학교는 가장 차별화되는 조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하거나 혹은 그러한 훈련을 시키는 단체이며, 집단의 전투작전 수행능력이라는 목적만을 최우선시하는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인권이나 인격을 고려하는 집단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는 분명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존중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며, 당위적으로는 그 어느 곳보다도 인권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따라서 군대와 학교는 사회 전체를 놓고 볼 때 가장 다른 조직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군국주의 식민지 경험이나 권위주의 군부 독재의 경험이 학교를 군대와 유사한 곳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그러한 과오를 고쳐 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군대와 학교를 비슷한 걸로 나열하는 것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정도의 무식함이다.
  게다가 군대는 본래 인권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폐지되어야 한다. 군대 폐지나 시민군 창설까지는 안 가더라도 최소한 군비의 축소가 인권 실현에 바람직하다는 것은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제창된 진보적인 인권체계 이후로 종종 나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이 사회 구성원들의 평화․인권 의식을 저해하고 불안 심리를 부추긴다는 점, 그리고 앞서 설명했다시피 군대라는 조직이 내부적으로도 반(反)인권적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개개인이 사상의 자유에 따라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 없는 한국의 징병제 군대는 매우 반인권적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서 유엔의 자유권위원회도 2006년 말 무렵에 양심적․종교적․사상적 병역거부 인정과 적절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한 바 있으니 참고하기 비란다.

 

 


두발자율화 & 두발완화 -> 인권침해!

 

  두발자유운동을 하다보면 심심찮게 “두발자율화” 혹은 “두발규제 완화”의 주장을 접할 수 있다. 이 두 주장은 두발규제 자체의 완전한 폐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인권으로서의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입장과 맞지 않는다.

 

 

  먼저 두발자율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과거에는 “두발자율화”와 “두발자유화”가 별 차이 없이 사용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두발자율화와 두발자유화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용어가 되었다는 점을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우선 지적해둔다. 두발자율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자면, 그것은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학생, 교사, 학부모의 교육3주체가 합의하거나 아니면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생회 등을 통해 두발규정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는 강제이발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덤으로 붙어 다닌다. (그에 비해 두발자유화는 두발자유는 인권-기본권이기 때문에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보통 쓰는 의미에서 ‘자율’과 ‘자유’는 모두 개인을 단위로 하기 때문에, 집단을 단위로 하는 “두발자율화”와 개인을 단위로 하는 “두발자유화”라는 의미의 차이는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그렇게 사용되고 있는데….
  우선 두발자율화가 왜 문제인지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가겠다. 우선 두발자율화는 그자체가 인권침해다. 인권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 권리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권리이다. 두발자율화는 두발규제 자체가 인권침해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이 두발규제를 통한 기본권의 제한이 과연 옳은지를 논의하지 않고 각 개인의 ‘인권’을 집단의 ‘합의’에 양도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두발자율화는 학교 구성원들 간에 토론과 합의, 다수 여론에 의한 결정 등 매우 민주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두발자율화가 그대로 적용되어,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발자유에 대한 설문조사하여 80%의 학생들은 현상 유지, 나머지 20%는 두발자유를 선택한다면, 그 학교에는 두발규제가 그대로 존속하게 된다. 그럼 나머지 20% 학생들은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다수가 소수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다수의 의견이나 혹은 ‘합의’된 의견이라고 해도 그것이 단 1명의 인권이라도 침해한다면 그것은 인정될 수 없다. 인권-기본권의 제한은 앞서 말했듯이 내용적으로 그 제한의 목적이 정당하고 그 제한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 등등 많은 조건들이 충족․입증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집단적 합의를 통해 개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두발자율화 논리대로라면, 국민투표를 통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사형에 처하거나 고문하는 것도 정당하다는 소리가 된다. 만일 이런 전체주의적 폐해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두발자유 설문조사나 혹은 합의 과정에서 때 두발규제를 원했던 학생들에게만 두발규제를 실시하고 두발자유를 바란 학생들은 두발자유를 완전 보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두발자율화를 통한 단계적 두발자유화 논리도 경험적으로 그 어려움이 입증되었기에, 두발자유화 주장을 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굳이 두발자율화 단계론 쪽을 선택해야 할 당위가 없다. 2000년도의 두발제한 반대 - 두발자유 운동 때 교육부는 공문으로 교육3주체 합의라는 두발자율화의 입장을 밝혔으나, 그 이후 6년이 지나도록 두발규제가 눈에 띄게 두발자유화의 방향으로 변화할 낌새가 보이지는 않았다. 2000년도 당시에는 상당수 학교가 두발규제를 완화했으나 그 이후 몇 년 동안 다시 강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3주체 합의나 토론을 통한 두발자율화 주장의 난점은, 현실적으로 교사와 학부모가 사회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토론이나 합의는 청소년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력 관계의 문제를 간과하고 ‘여론’이나 ‘합의’, ‘설득’, ‘평등한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그런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청소년들 다수가 저항하고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권력의 약세를 만회한다는 적극적인 발상, 권리의식이 결여된 것이다. 2000년의 운동은 두발자율화 지침의 다른 폐해도 잘 보여주고 있다. 2000년의 두발제한 반대 - 두발자유 운동이 이어지지 못한 것은, 두발자율화 지침에 현혹된 사람들이 두발자유운동을 계속 해나가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두발자율화를 교육3주체의 합의가 아니라 학생회 등을 통해 학생들끼리의 합의 형태로 하면 두발자유는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굳이 두발자율화를 거치는지 의문이다. 두발자유가 인권에 부합하고 두발자율은 인권침해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두발자유가 당연히 옳은 것이고, 만약 학생들끼리 두발규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면 두발규제의 완전 폐지, 두발완전자유화를 주장하는 것이 옳다.

 

 

  두발완화는 보통은 “길이제한은 없기를 바라지만 염색이나 파마는 좀 그렇지 않냐.”라는 주장이나 “어느 정도 풀어주면 좋겠지만 완전 자유는 바라지 않는다.”의 주장을 의미한다. 이 주장을 하는 동기는 대개 스스로가 두발규제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는 경우와 교사나 학부모가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지레 겁먹고 주장의 수위를 낮추는 경우가 있다.
  우선 스스로가 두발규제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두발규제가 왜 인권침해이고 왜 사라져야 하는지 앞에 지겹도록 써두었으니까 굳이 길게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두발완화 논리가 얼마나 웃긴 건지, 그리고 이기적인 건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어느 날, 매일같이 주인한테 매를 맞던 노예들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노예들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주인에게 항의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주인에게 이야기 하자! 하루에 5대 이상 맞을 수 없다고!” 기껏 주인에게 항거하기로 결심해놓고 5대 이상 맞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저 일화를 보면서, 기껏 인권을 내세워 두발자유화를 외쳐놓고 어느 정도 길이에서 타협을 볼까하고 고민하는 두발완화(재조정) 역시 노예들의 태도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리고 “나는 이정도로만 완화되면 족하다.”라는 것은, 이정도 완화로는 족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무시하는 것이다. 만약 귀밑 3cm 단발머리이던 두발규제가 완화되어서 귀밑 10cm가 되었다고 하자. 완화되기 이전에는 “나는 귀밑 3cm 단발머리도 좋으니까 두발완화에 반대한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귀밑 10cm는 되면 좋겠으니 완화에 찬성한다.”라고 말하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염색과 파마에 반대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염색과 파마는 안 된단 말인가?
  예를 들어 특수한 파마를 해서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서 수업시간에 뒷사람이 칠판을 보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할 정도라면 그 사람은 제일 뒷자리로 간다거나 이런저런 제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예시에서는 교육권)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분명한 기준이 아니라면 그저 자신의 취향과 기준에 맞춰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두발규제를 정하고자 할 뿐이다.
  아주 가끔 염색과 파마에 대해서 생태계 오염이나 건강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그건 염색약, 파마약의 생산 자체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염색약과 파마약의 생산이나 그것의 소비를 장려해대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없이 청소년들에게만 그것을 제한한다는 것은 그 저변에 청소년 규제의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게 아닐까?
  지레 겁먹고 주장의 수위를 낮추는 것도 협상의 기술면에서 볼 때 전혀 적당하지 못하다. 두발자유화를 인권으로서 강하게 주장할 때 상대방은 논리적으로 그것에 대응해야 하는 곤란에 처하게 되지만, 두발완화를 주장할 때 그것을 단지 머리 길러달라고 떼쓰는 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좀 더 높다.(어차피 학교는 보통 그렇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두발완화를 주장할 때 동원될 수 있는 논리는 기껏해야 “옆 학교는 이렇다.”라거나 “너무 심하다.” 정도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두발완전자유를 주장하면 보통 학교는 겨우 그것에 대해 타협안으로서 두발규제 완화를 제안한다. 마치 물건 값을 에누리할 때 목표로 하는 값보다 더 낮은 값을 먼저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완화라는 타협안을 먼저 제안해야 할 것은 결코 두발자유운동을 하는 쪽이 아니다. 우리의 최초 요구는 언제나 두발완전자유화여야 하며, 우리들의 인권이어야 한다.

 

 

  실제로 개별학교에서 두발자유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학교의 타협안에 대해 검토하고 그것의 수용여부를 생각하는 것은 선택 가능한 것이다. 또, 힘이 부족할 때 그런 타협을 수용하는 것이 크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힘의 부족 자체이지 타협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원칙을 주장할 때는 두발자율화나 두발완화를 주장하지 않고 두발완전자유화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은 인권적인 관점에서 명백한 점이다.

 

 

 


맺으며

 

  지금까지 내가 정리한 논리는 두발자유가 인권이라는 것에 기초하여 두발자유를 옹호하고 두발규제를 반박하기 위한 것들이다. 나름대로 총정리하는 기분으로 썼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이 글이 쓰인 시점, 즉 2007년 초까지의 사건들이나 과정들 중 일부만을 반영하고 있고, 두발자유와 관련된 담론(이야기)들은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쓴 두발규제 반박 논리들에 나온 두발규제 옹호 논리들 외에도 다양한 두발규제 옹호 논리들이 보이고 있다. 이 논리들은 대개 각 학교 홈페이지에 용감한 학생들이 두발자유 주장 글을 올렸다가 교사로부터 반박을 받으면서 수집된 것들인데, 거기서 나오는 논리들을 보면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각양각색인 것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두발자유의 논리를 만드는 시기는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다. 2000년 이후로 두발자유와 청소년인권에 대해서 수많은 토론회가 있었고, 온라인이나 온라인이 아닌 상황에서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이제 두발자유운동은 행동하고 또 행동하는 것이 요구될 뿐이다. 이 글은 새롭게 행동에 나서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축적된 두발자유 주장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두발자유를 이룰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해서 나는 따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나는 “어떻게 청소년인권운동을 해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싶다. 두발자유 뿐 아니라 용의복장자유, 체벌추방, 강제자율보충학습 추방, 입시경쟁 철폐, 민주적 학생회의 건설과 학생회 권리 획득,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무상교육 실현, 청소년노동인권, 장애청소년인권, 청소년동성애자의 인권 등등 청소년인권운동은 너무나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며, 이중에는 그 달성 방법 면에서 서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유사한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용의복장자유와 체벌추방과 같은 문제는 두발자유 문제와 방법론적으로 유사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 몇 주 동안의 노력의 결실인 이 글이, 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청소년들의 주체적 운동을 통한 두발자유화 쟁취를 기원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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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좀 더 간결하게 줄여서 JPG 파일 같이 만들어 올리면 눈에 더 쏙 들어올 듯 해요^^

    2009.03.31 15: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건 딱히 배포/홍보용은 아니고...
      시간 많은 사람들 읽으라고 한? -ㅂ-
      홍보용으로 만들려면 따로 이 중에 핵심적인 부분만 뽑아서 디자인 해야겠죠 ㅎㅎ

      2009.04.01 22:09 신고 [ ADDR : EDIT/ DEL ]
  2. j군

    글 잘보고 갑니다^^

    2009.04.05 17:22 [ ADDR : EDIT/ DEL : REPLY ]
  3.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퍼갈께요 ㅎㅎ

    2009.10.24 22:44 [ ADDR : EDIT/ DEL : REPLY ]
  4. 네임

    일본에서 들어왓습니다.(단발령) 일본에게 해방한지 몇십년이 지낫습니다. 자율화 해야합니다

    2010.04.24 21:02 [ ADDR : EDIT/ DEL : REPLY ]
  5. JDH

    정말 공감합니다. 퍼갈게요~

    2012.08.07 12:39 [ ADDR : EDIT/ DEL : REPLY ]
  6. 학생1

    안녕하세요 전 어는 한 학교의 학생인데 토론을 하게됬는데 이글 인용(도용말고 몇군데만 발췌) 해도될까요?
    허락을 구합니다

    2015.03.31 21:47 [ ADDR : EDIT/ DEL : REPLY ]
    • 많이 활용하시라고 쓴 글이니까요. 활용하세요~ 그리고 아수나로도 활동 같이 하면 좋습니다 ^_^

      2015.04.02 08:56 신고 [ ADDR : EDIT/ DEL ]
  7. ㅠㅠ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 글을 너무 재밌게 사이다로 쓰셔요 진짜 존경스럽네요ㅠㅠㅠ 원래 댓글 잘 안다는데 토론대회에 너무 유용하게 사용할 것 같아서 감동받아서 댓글써요.. 진짜 마음 같아서는 밥 사드리고 싶네욤!

    2015.11.03 20:20 [ ADDR : EDIT/ DEL : REPLY ]
  8. 감사합니당

    안녕하세요 한 고등학생입니다 내용좀 인용해도될까요!!

    2017.03.06 17:44 [ ADDR : EDIT/ DEL : REPLY ]
  9. 갈치

    반갑습니다. 좋은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사는 고등학생인데 저희 학교 두발자유화 운동에 본문내용을 요약해서 사용하고 싶습니다.

    2017.09.21 00:49 [ ADDR : EDIT/ DEL : REPLY ]
  10. 정말

    대다나다
    감사합니다

    2018.10.30 20:31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2. 22. 08:06

[싱싱고고]이것이 MB 식 학교?

고달이




덧붙이는 글
고달이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40 호 [기사입력] 2009년 02월 17일 21:00:38


사실 억압적 학교 운영과 규정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체벌만 없애고 "벌점제"로 운영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체벌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체벌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지만
징벌 위주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벌점제도 개선되어야 하고,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규정들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 없다면 체벌이든 벌점제든 숨이 막힐 것이다. (숨막히는 방식의 차이일 뿐. 코를 막아서 숨이 막히느냐, 목을 졸라서 숨이 막히느냐...)


방과후학교란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는 입시보충수업도 그저 포장은 잘하지, 하는 생각밖엔 안 든다.
공교육 정상화, 라고들 말하지만, 그 정상화가 공교육 내용의 개선과 인권보장이 아니라, 단지 사교육으로부터 학생들을 뺏어 오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입시경쟁교육을 받아야 하는 교육상황(이놈부터 바꿔야 한다.) 속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게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시켜주겠다, 라는 걸,

"학교가 학생들을 책임지겠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뻔뻔스러움이라니.


--

이번에 임실의 기적 어쩌구 떠들다가 성적 조작이라고 난리가 났는데,
사실 그게 성적 조작이 아니더라도, 거기서 소개된 "임실의 기적"이라는 건 결국 학생들 빡세게 보충수업 시키고 입시공부 시킨 결과물이란 것이었다.

그게 제대로 된 교육일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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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뭐, 담배, 복장불량으로 벌점먹는 학생 감싸주겠다는 태도가 학교 폭력을 키워나가고 여러 멀쩡한 학생들 자살하게 만드는건 알고 계시는지요. 걔네들이 학교를 안 떠나면 다른 애들이 자살하는 구조입니다. 아직도 모르시나요?

    2009.02.22 11: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윗분

      학교폭력은 학생들끼리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커지는 것이지 복장이나 담배같은것은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보는데요.
      불량배들이 있으면 그것을 신고해야 하는게 정상이지만 학생들은 보복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겁니다.

      2009.02.22 14:33 [ ADDR : EDIT/ DEL ]
    • 답답하신분

      그 문제아들을 퇴학시키면 모든것이 해결된답니까? 그럼 문제아들이 '넵 알아서 사라져드릴께요' 한답니까? 그렇게 문제를 일으킬 정도면 퇴학시킨다고 해도 학교폭력은 없어지지 않아요 근본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지 그냥 짜르기만 하면 모든것이 해결된답니까?

      2009.02.23 10:14 [ ADDR : EDIT/ DEL ]
    • 예 바로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는 동안에 지금도 교실에선 죄 없는 아이들이 두들겨 맞고 옥상에서 뛰어내립니다. 불량학생의 인권 보호냐 피해학생의 인권 보호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된다니까요? 지금 학교 상황이 그렇게 한가해 보이시나요?

      학교에서 총기난사 안 한다고 무슨 대한민국 학교들이 알퐁스 도데의 소설에 나오는 그런 꿈과 사랑이 넘치는 곳인줄 아시나 봅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따윈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는건 죄악이지요.

      2009.02.23 12:58 신고 [ ADDR : EDIT/ DEL ]
    • 1. 복장 불량의 경우, 학교에서 규정하고 강요하는 대로의 복장을 하지 않는 학생이 반드시 학생간 폭력에서 가해 학생이라는 개연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2. 흡연의 경우에도 금연 교육은 필요하지만 흡연이 반드시 강제로 금지되어야 하는 건지 고민이 요구되긴 하는데, 여하간에 흡연을 하는 학생이 반드시 가해 학생인지도 좀 모호하군요.

      (어디까지나 경험 세계에 국한해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 흡연 학생이어도 학생간 폭력 가해 학생이 아닌 케이스가 더 많은 것 같던데요?
      이에 대해 정확하게 논의하려면 통계라도 필요할 텐데, 근데 이 현상은 복잡한 게, 역으로 말해서 흡연을 금지하기 때문에 소위 '불량' 학생들이 흡연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9.02.23 18:39 신고 [ ADDR : EDIT/ DEL ]
    • 저는 학교에서 폭력(학생간이건, 교사에 의한 것이건, 구조적인 것이건)이 대단히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그렇게 '특수한' 가해자의 문제로 국한시켜서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옳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상류층이고 모범생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가지고 그걸로 다른 학생들을 움직여서 소수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들은 적이 있고 말이지요.
      "담배, 복장불량으로 벌점 먹는 학생"과 "학생간 폭력에서 가해학생"과 동일한 집단이 아니고, 학생간 폭력에 대한 대응이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여전히 미비하고, 학교에서 구조적 폭력이 반복되고, 계급적 격차나 성적 차별 등 학생들의 자존감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상, 소수의 특수한 타자(담배, 복장불량 학생? '불량' 학생?)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학생간 폭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건 "한가한 소리"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소리입니다. 소수의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다수의 ('멀쩡한') '우리'를 구하겠다는 발상은, 저한테는 오류투성이로 보이거든요.

      2009.02.23 18:43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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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17 20:4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