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0.10.12 02:19


[교육생각]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antihakbul.jinbo.net/?document_srl=13491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 

-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조항, 그리고 정치적 권리의 행방불명


공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정치의 실종


요즘에 청소년인권에 관한 따끈따끈한 신간,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를 읽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과 연구 등을 해오던 김민아 씨가 지은 책인데, 이 책의 서문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인권교육을 다니다보면) “문제의 답을 고르듯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답이 뭐예요?’라고 묻는 청소년도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쉽게 맞닥뜨릴 수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자신들이 처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적고서 이렇게 묻는다. “이거 인권침해 맞죠?” 그리고 마치 시험 답 맞춰보듯이 헌법 몇 조, 유엔아동권리협약 몇 조를 인용한다. 그 다음은? 인권침해 맞으니까 논리를 잘 갖춰서 얘기하겠다고 하거나 신고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청소년들이 ‘청소년인권운동’에서 보는 것은 청소년인권 문제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운동이나 저항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대해서 ‘인권’이라는 규범이 ‘정답’을 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잘못 채점된 시험 답안지에 대해 항의하러 가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신고’를 하거나 하소연을 올리곤 하는 정도?

이때, 인권은 지금 여기에는 없는 권리를 사회적인 투쟁을 통해 쟁취하고 실현시키는 역사적인 과정과 그 결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인권은 이미 존재하는 교과서적 정답이자 도덕률 정도로만 이해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실종되어 있다는 것을 이 질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답이 뭐예요?” 그러니까,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2009 년부터 만들어져온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이 2010년 경기도 교육위원회에 발의되었다. 그러나 발의된 안은 처음에 공개되었던 초안과 달리 집회의 자유에 관련된 조항이 삭제되고 사상의 자유에 관한 조항이 “세계관․인생관 또는 가치적․윤리적 판단 등 양심의 자유”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안이었다. 결국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통과는 무산되었지만, 9-10월 즈음에 경기도의회에 재상정될 안 또한 그 내용은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청으로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한 최초의 사례인 경기도교육청이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관한 부분에서 한 발 후퇴한 안을 내놓음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 두 부분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슈가 될 듯싶다.

물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에서 집회의 자유에 관한 조항과 사상의 자유에 관한 조항이 빠졌다고 해서 청소년들에게는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 초안에는 한 번 들어갔던 조항이 최종 발의안에서는 빠진 것을 학생인권에는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할 사람들은 널려 있다. 최소한 교육청이 학생들에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의지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언론들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안 발표를 “학생들 교내에서 집회 못한다”라는 식으로 표제를 뽑아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욕을 먹는 것일까? 그리고 왜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로 일각에서 추앙받으시는 김상곤 교육감 님하도 집회의 자유 조항과 사상의 자유 조항을 부담스러워 하며 뺀 것일까? 따져보면 저 장대한 비극의 한국사 100여년을 거슬러 가볼 수도 있을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정치’나 ‘사상’이라는 말에 관련된 프레임을 분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본격적인 분석은 역사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이 하라고 하고, 나는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라고 말하겠다. (이 글의 컨셉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권 중에서도 정치적 권리의 대표 주자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이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전반을 부정하는 셈이기도 하다. 사실 교사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민주노동당에 후원금 좀 냈다고 교사들을 다 짜르겠다고 하는 꼴을 보면 분명 한국의 학교는 정치를 싫어한다. 요컨대, 입시교육은 정치와 정치적 권리, 특히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싫어한다는 얘기다.



입시교육은 어떻게 정치를 억압하는가


입시교육의 특징은 철저한 정답주의이다. 교육의 목적이 입시가 되어있는 이상, (그딴 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둘째치고)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이 아니라 입시전형과 평가기준에 맞춘 답을 찾는 것이 주가 된다. 또한 입시교육은 개인주의적이다. 입시는 결국 개인의 능력주의와 출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의 이러한 특성들은 정치의 특성과는 여러모로 배치된다. 우선 정치는 상대적이다. 정치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가치의 재분배/조정이라고 정치를 정의하든, 배제된 사람들의 주체화라고 주장하든, 정치에서 정답을 찾기란 힘들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해관계들/이념들, 방법론들, 권력들이 있을 뿐이다. 정치적인 사고방식 속에서는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를 단언하기 어렵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각 정치 주체들의 정치적 능력과 정세 등에 따라 결과가 나타난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교과서에 비추어볼 때 누구의 말이 옳으냐가 아니라, 누구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교과서나 해답지에 명확한 답이 있고 그 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 것이다.

또한 정치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는 집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이 부각되는 때에도 사실은 그 개인에 얽힌 집단의 문제일 때가 많다. 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도 김상곤 교육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조직화된 집단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소통, 공론장이 없이 정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문제와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차원으로 한정시키는 입시교육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문제’들이 정치에서는 다루어져야 한다. 입시교육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정치는 낯선 언어와 사고방식일 수밖에 없고, 정치적 언어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순순히 입시교육에 순응하지 않기 십상이다.

학생들에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 ‘반교육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그 말이 사람들에게도 왠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교육’의 그림이 ‘입시교육’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어떤 올바른 것(정답)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장려한다니, 입시교육이 교육이라고 믿던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반교육적으로 보이겠는가. 교육이 개인이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문제풀이 능력 등을 개발해서 입시나 취업에서 성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집회의 자유는 반교육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집회의 자유를 놓고서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선동’에 휩쓸릴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 또한 이런 경향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좀 더 적극적으로


학생인권조례에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입시교육적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눈에 띈다. 예컨대 학내 집회의 자유에 관해서 “학내 집회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때 택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장되는 것뿐이고 학교 운영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된다면 학내집회를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학교가 정치의 장이 될 거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같은 말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결국 집회를 또 하나의 정답 정도로 만드는 것 아닐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을 때 학생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집회를 택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정당화되는 집회의 목적과 수단을 한정짓고, 집회를 온건하고 이성적이고 다소 비정치적인 무언가로 만드는 것 자체가 말이다.

사상의 자유를 단지 반성문을 강요하는 등 사상․양심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것들을 막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뭐 물론 반성문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건 중요한 인권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만 사상의 자유를 얘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의 의미를, 학생들도 사람이니까,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면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고 학교가 정치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도 좀 불만이다. 입시교육의 틀 안에서 소극적으로 어떻게 사상의 자유를 보호할까 하는 선에서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에 대해 입시교육의 틀을 깨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전교조 조합원들 중 몇 명이 정당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내가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인권단체 안에서는 이 사건을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청소년들이 집단 정당 가입을 발표해버릴까?” 하는 논의를 했었다. (전교조 자체가 별로 이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징계 절차나 양형이나 기준의 문제 정도로만 다투려는 것 같아서 접기는 했지만…) 이렇게 지금은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교육이 정치의 장이고 사회적인 공론의 장이어야 하며 정답만 강요하고 개인주의를 강화시키는 입시교육을 부수고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미 그 자체가 정치적인 ‘입시교육’이, 자신은 비정치적인 양 탈을 쓰고 정치를 압살하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4.19 12:53

위기의 학교 저자 닉 데이비스는 '거대한 사기'로 명명한 영국의 '시험 게임'에서 성적을 조작하는 다양한 수법들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다. 우선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하기 등을 지적한다. 이 수법들은 한국의 학교에서는 게임 아이템으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0교시, 강제보충, 강제야자, 모의고사, 기출문제, 밤샘학원, 족집게 과외 등 우리에게는 이미 관행화되어 있는 규칙이다.

(우리교육 2009년 3월호 p.121.
「1%만을 위한 시험 게임을 중단하라 - 서울시교육청 '일제고사 꼴찌'가 의미하는 것」 (조진희 서울 영일초 교사) 中)


이 부분을 읽으면서 뭔가 한국 교육은 정말 막장 테크구나...라는 생각을 찐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 정책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이고 일제고사니 학력미달이나 학력향상이니 국제경쟁력이니 하는 말들이 국경을 넘어 유통되는 시대라고 하여도...-_-

유럽권도 아니고 영미권에서도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시키기'를 성적 조작, 부정행위로 본다는 말입니다.
즉 정상적인 교육으로 수업을 하고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을 시켜서 그렇게 생긴 능력으로 시험을 보게 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를 시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부정행위이고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라는 거죠.

조진희 씨도 적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성적 조작이나 부정행위 축에도 들어가지 않고 아주 일상화된 '교육'입니다.
시험대비 강제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에 맞춘 문제집 풀기......
이런 걸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직접 답안지나 성적표에 교사가 손을 대서 조작을 해야 비로소 '조작'이라고 한다는... 쓸데없는 데 엄격하군)



그저께는 이런 기사까지 났더군요.

영국 학교장 1만명, ‘학력평가 거부’


영국의 교장들이 특별히 착해서는 아닐 거 같고, 영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을 볼 필요 + 영국에서는 교장들이 어떻게 선출되나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장들은
교사 -- (교장 말 잘 듣고 근무평정 잘 받아서 승진) -- 부장 교사 -- 장학사 -- 교감 -- 교장 
뭐 이런 식의 라인을 보통 타고, 교육관료들 세계에서 위에 말 잘 듣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현실을 바꿀 대안으로 교장임명제(정부에서 하는 교장 돌려막기 짝퉁 말고), 교장선출보직제 같은 게 나오는 거구요.


기사 내용으로 볼 때 저 교장단들이 특별히 인권의식이 있거나 좌파적인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다만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있다는 내용은 곧잘 눈에 띕니다. 한국에서는 현장교사-교장이 그렇게 가까운 관계가 아니란 걸 생각해보면... 일단 저런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Posted by 공현
지나가는꿈2010.02.20 03:16


내가 평소에 밝히기 꺼려하는 내 경력은,
내가 속해있는 대학교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다.
대학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테고.


나는 '상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냥 이니셜처리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 허울 좋은 학교의 명예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밝히기 싫어서 - 그냥 쓰기로 했다.)

'수학의 정석'을 써서 번 돈으로 만든 사립학교라는데,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수학의 정석으로 번 돈을 가지고부동산이라거나 여하간 어떤 불로소득으로 만든 거 아니냐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있었다. 정석 판 돈만 가지고서는 학교 못만든다는 나름의 계산과 함께. 물론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는 학생들 사이의 괴담일 뿐이다. 지배자-권력자에 대한 피지배자들의 일반적인 태도.


나는 말하자면 자립형사립고 1세대로, 노무현 정부가 자립형사립고를 공인하고나서 시범운영으로 지정된 6곳인가 7곳의 자사고 중 한 곳인 상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솔까말, 자사고가 뭔지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던 때고, 막 인문학 가르치고 양서 읽기 한대서 대안학교 같은 건 줄 알았어욤 ㅠㅠ  --> 같은 자기 변명은 줄이고...)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최소한 상산고 교육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자사고 교육'은 실패했다고 느낀다.

아니, 뭐 제대로 말한다면 한국 교육의 실패를 논해야겠지만 -┌

여기서 실패라는 건 입시 성적, 입시 결과를 놓고 하느ㅏㄴ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상산고가 명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교육의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음을 지칭한다.
어차피 한국 고등학교들의 목적이 그 고등학교의 교훈이나 교육기본법에 나온 민주시민 양성 등의 교육목표가 아님은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일단 자기들이 그렇게 내세우고 있으니 과감하게 '실패'라고 말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서울대에서 뭐를 지냈다고 하던 교장은 뭐 명문 사립고(말하자면 미국이나 영국에 있는 그런 삐까번쩍한)를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애초에 그것은 얼마나 계급적인 꿈이던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_-;;;;;) 학교 운영은 결국 한국 학교적 한계를 그다지 벗어나지는 않았다.
(--- 사실 교장의 언행부터가 모순인 게, 교장은 외국 명문고 학생들은 따로 두발복장규제 같은 거 안해도 알아서 단정하게 잘 하고 다녀서 규제를 않는 거고 니네는 그렇게 못하니까 별 수 없이 규제하는 거란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일단 그 외국 이야기가 사실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러한 규범을 벗어나는 사람에 대한 관용이 전제된 상태에서 문화적으로 규범이 형성되는 것과 학교에서 불관용을 전제로 규범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두발복장규제를 온존시키고 있고 체벌도 은근 빡세게 존재하고 있었고) 전근대적인 형태의 교육 방식과, 근대적인 입시 경쟁의 모순이 있는 상황에서, 인간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성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식의 교육 목표나,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은 '상산인의 헌장' 따위는 연설문이나 학교 홍보물을 꾸미는 장식품 이상이 되지 못했다.

※ 상산고에서 학생들에게 도덕적 마음을 길러준다며 꽃동네 전교 사회봉사를 보내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인간성'이나 '도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격리해서 수용하는 이런 시설들은 장애인권의 관점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그 '인간성'이란 대단히 비인간적인 동정, 우월한 입장에서의 자선 따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었을까. 사회 지도층의 아량, 동정이란 참 비인간적이다.

개인연구, 양서읽기, 가창시간 등 그나마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덜 입시 종속적인 성격의 특수 교과목들은 논술 대비용으로 취급받거나 아니면 학생들에게 입시 공부를 위한 자체 자습 시간 정도로 취급 받을 뿐이었다.




비록 내가 다닌 학년은 자사고 1기로서 뭔가 미묘한 집단이라서, 특목고에는 가기 좀 미묘하면서도 성적이 좋거나 아니면 특출난 장기 분야가 있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재밌는 친구들도 꽤 많이 만났지만, 이런 경향은 해가 갈수록 점점 사라지고, 성적이 좋은 모범생, 상류층의 학생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내가 재학 중에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보면 나는 어쩌면 상산고 최대의 수혜자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입시 성적으로가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여하간 나는 상산고 전대미문의 잉여+민주 만화동아리에 있었던 데다가, 방학 특강 시간에 공산당선언이나 미셸 푸코를 배우고, 다양한 형태의 아나키스트/좌파/무신론자/자유주의자/열린우리당지지자/민주노동당지지자/자연과학자/경제학자/수학자/작가/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만화가/프로그래머 등등을 만났으니까 말이다. 나는 상산고에서 글쓰기 능력과 독서, 많은 대화와 토론을 겪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학교가 공식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들은 2-3년이 흐르면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공식적 학교 시스템으로부터 내가 받은 것으로 가치 있는 것은 논문 두 편 쓴 경험 외에는 없었다고 말하면 건방져 보일까? 좋은 교사들은 몇 명 있었지만 그뿐.
부모님은 내가 안 쫓겨나고, 학교 안 그만두고 무사히 졸업한 것만으로도 상산고여서 가능했다고 하지만, 그런 걸로 감사하고 좋아하기는 너무 좀 그렇지 않은가.





자사고가 입시기관화하는 것은, 대입에 종속된 중등교육에서 학교 서열화에 따른 것인 동시에 학부모, 학생들의 욕망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입시기관화된 자사고들은, 지금도 SKY에 몇 명씩은 꼭 보내는 꽤나 성공적인 입시기관인 동시에(이미 성적 높은 애들 뽑아서 SKY 몇 명 더 보냈다고 하는 게 자사고의 우수함 때문인지는 차치하고--) 교육의 실패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지는 않나 싶다.


마치 내가 상산고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개 좋은 학생들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뭐 어느 학교, 어느 집단이든 수백명 이상 단위가 되면, 꼭 맘에 드는 사람만 있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뭐랄까. 어설픈 엘리트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랄까. -_-;;
자기가 자사고 학생이고 사회 지도층 ━ 간혹 지식인이라는 어설픈 허영을 가진 사람들. 세계 속에 자기의 위치를 직시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을 객관성과 양비론의 우위 속에 감추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간단한 예로, 대입제도에 내신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내가 불리해서,  내 이해관계 때문에 싫다고 하지 않고 온갖 말을 붙여가며 경쟁력이 어쩌구 공정성이 어쩌구 하는 것) 발로 뛰면서 현장 - 세계를 겪어보지도 않았으면 한 발 물러나서 여러가지 것들을 평가하고 시험 문제 풀듯이 사회문제를 풀려고 하는 학생들. 그러면서 봉사나 무슨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위한다며 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나 하나의 소양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 누군가가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의 삶을 위해 행동에 나설 때 그것을 말로는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같이 행동할 줄은 모르며, 이러쿵저러쿵 비평할 줄만 아는 사람들. 너무 쉽게 얼마든지 비겁해질 수 있는 사람들. 자기가 비겁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런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고, 이런 경향은 내 다음다음 학년이 더 심한 거 같아 보였고, 만약 입시기관적 성격이 더 강화되어 간다면 자사고에서 그런 학생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만약, 수천명인지 수백명인지를 먹여 살릴 거라고 하는 이 '엘리트', '사회지도층'들 중에 저런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면 말이다.


참 내 입장에서는 입시교육기관화된 부분에서 이미 상산고 - 자사고는 격한 실망의 대상이었다.
내가 어설프게 일구어놓은 청소년인권운동의 조직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도 자사고의 특성상 이미 예상한 일이긴 한데,(물론 내 잘못도 있고.)
아예 대놓고 기숙사에서의 단체기합, 체벌 문제 등으로 여러 번 학교와 마찰을 빚은 인권동아리 활동에 압력을 가하고 허가를 내주지 않던 모습에서 이미 자사고는 근대적 자유주의와 다양성조차 포기한 보통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공간으로 봐야 하겠지. 약간의 정도차이가 있을 뿐.

자사고가 입시기관화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실패'들은 어차피 자사고들에만 책임을 묻긴 힘들겠지만서도 (모든 학교와 교육시스템, 사회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



그냥 상산고 교육과 그 교육의 결과물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늘어놓고 싶은 계기가 있어서.


-- 그런데 내가 졸업하고 난 이후에 입학한 분들 중에서도 내 이름과 일화들을 아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던데, 지금도 아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느덧 졸업한 지도 4-5년 됐으니










어쨌건 결론 :: 그러니까 자사고 늘리지 말라고 이명박이든 뭐든 -_-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2.03 12:20

학교뚫고 인권킥! – 청소년, 입시를 논하다

숨막히는 한국의 입시경쟁, 과연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걸까요?
입시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세상을 원하고 이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해봐요!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오후 2시~5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지하철 2호선 센텀시티역)
장소가 좁아 선착순 20명만 받습니다.
신청게시판 http://bit.ly/schoolkick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http://asunaro.or.kr








- 우리가 너무 쉽게 접하게 되는 그릇된 생각은, '교육'과 '공부'라고 하면 현재와 같은 방식의 것 ― 즉 입시나 취업을 위한 공부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학생들이 하는 공부의 내용이나 이유에 대해 의문시하는 것을 막으며 그저 '면학', '노력'하라고만 이야기한다.
- 실제로 교육(학교든 학원이든)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육 내용과 방식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려는 의지를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신비롭기까지 한 일이다. 학생들-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아예 의견을 개진할 통로도, 권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1.22 11:37

하병수 (경기 토평중 교사)  / 2010년01월21일 16시54분



교원평가가 처음 거론된 것은 95년 5월31일 김영삼 정부가 교육시장화 정책을발표하면서부터다. 교육시장화정책 계승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교직발전종합방안에 교원평가를 포함해 공식적인 논의를시작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교육개혁의 주도권이 무기력하게도 시장 세력에게 넘어가면서 교원평가논의는출범초기부터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중심이 되어 교원평가 연구안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2005년에대대적인 여론화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여론전에서 일정한 승리감을 맛본 시장 세력과 교육 관료들은 48개 교원평가시범학교를강제하면서 사실상 교원평가를 학교개혁의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곰비임비 교원평가 시범학교를 늘린 결과 전국 1만개 학교 중에3164개교(09년 현재)가 교원평가 시범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이건 시범학교가 아니다. 교원평가의 단계적 적용이라 보면 된다.
법안마련을 위한 6자협의체 구성제안(10월12일)과 교원평가 강제실시를 위한 시・도별 교육규칙 제정을 위한교과부자문회의(1월8일)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들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성격상 늦은 감이 있기도 하다. 촛불정국이시기를 늦춰놓았을 것이다. 다만, 교원평가를 진행하려는 자들의 시나리오에 국민들뿐 아니라, 경쟁교육에 비판적인 단체들도 중심을잃은 채 서서히 포섭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원평 가에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문제(평가주체), 수업 외 평가지표 추가문제(평가영역), 인사와 보수와 연계문제(평가결과) 등다양한 문제에서 부침의 과정이 있긴 했으나, 95년 애초 교원평가를 도입하려던 시장 세력들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건재함을자랑하며 정권의 배후에서 또는 전면에서 시장화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표면적인 교원평가 도입목적은“교원의 질을 높여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교원평가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솔직한(?)이명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학생도 경쟁하고 학교도 경쟁하는데 교사만 경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교원평가도입목적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은 “경쟁하는 교사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교원평가가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을 일류학교로의 진입에 더 경쟁적으로 노력하게 만들 것이다. 교원평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모든 주체들도현재의 입시교육시스템 속에서 교원평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선 “학생, 학부모, 학교장”은 보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목표를 도와줄 교사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입시교육에 밀려난 지 오래다. 당장의 학교교육에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들도 ‘철밥통 교원’을 깨고 ,저마다 한 자락씩 간직하고 있는 ‘추억속의 못난이 교사들’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결과가 약간 부정적이라하더라도 철밥통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고, 이상한 교사는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교원평가를 찬성하게 만든다. 당사자인“교사”들은 무기력할 뿐이다. 학생들과 입시 경쟁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야자보충을 거부하지 못한다. 경쟁신화를 깨지 못하고 있는교사는 자신에게 강요되는 경쟁에도 무기력할 뿐이다. 현재 무기력한 교사들을 번뜩이게 하고 선명한 길로 이끌어가야 할 교원노조조차 교육시장 세력의 시나리오에 스멀스멀 먹히고 있다. 대중조직이니, 대중의 생각과 대세에 따라야 하는 듯 말이다.


경쟁교육이 만들어낸 비참한 한국교육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시경쟁교육의 질적인 비약에 결정타가 될 교원평가를막고 경쟁을 폐기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시장 세력들의 시나리오에 대적할 만한 것으로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국민들의 경쟁신화를 부추기고, 교사들의 무기력과 패배감을 만연시킬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개혁을 추진하기에 어려운 조건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에 지쳐있던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남한산초등학교 등 공중파를 탔던 혁신적인 학교들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장 세력들의 표면적인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가 노력해야 학교가 변할 수 있다.”
하 지만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극과 극이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혁신학교의 공통점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학생회를 만들어주어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형식화 시키지 않고 자기자녀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함께 아우르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의 학교참여를 이끌어낸 점, 교사들은 교육과정 운영에온전한 권한이 부여되고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권한을 갖고 협력하는 것이다. 또한학생들의 성적경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기평가와 일상적인 활동평가를 중심으로 평가본연의 역할을 가게 만들었다. 일체의 경쟁을비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기주도성을 신뢰하고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일관성 있게 만들어가고 있다.
교원평가는 이러한 노력과 상호모순적인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와 입시경쟁교육과 어울리는 정책이다. 경쟁교육의 강도를 드높이고 있는정책입안자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만 하게 만든다. 다소간의 긴장을 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다.오히려 좋은 정책이 끼어들 틈조차 막은 채 학교를 정체시키고 후퇴시킬 뿐이다. 철밥통을 깨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면교원평가 정책은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철밥통을 깨려하는가를 더 생각해보자. 직업과 신분의 안정은 교직뿐만아니라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자기 직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바탕이다.


한 낱 교원평가를 놓고 아웅다웅 할 때가 아니다. 현재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이 살아 숨 쉬는 학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1만 여개의 모든 학교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미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책으로 만들 주체들이바뀌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주체를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것은 권력을 바꾸는 문제이기에 당장 쉽지 않다. 현재교육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이전 정권에서도 세력을 행사해왔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교육시장화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엄청난 힘을실어주고 있을 뿐이다. 교원평가를 둘러싼 싸움은 경쟁교육을 심화시키는 사람들과 경쟁교육을 반대하고 인간화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간의 다툼이다. 인간화 교육프로그램은 충분히 있으니, 이를 현실화 시킬 시나리오를 짜고 당장 무기력에서 떨쳐 일어나길 희망한다.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9.03.19 23:36


오답 승리의 희망 창간호에 이 소설 소개 글을 쓴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에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를 실을까 하다가 너무 빡세지 않냐, 첫 호는 좀 유하게 소설로 가자, 라고 해서 썼는데
정작 써놓고 보니 이 소설이 더 빡센 것도 같았다. 전교조 창립 당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교조의 관점이라기보다는 학생의 관점에서, 그리고 입시경쟁 문제 등에 좀 더 비중을 둔 소설...

처음에 접한 건 논술 연습을 할 때 제시문으로였는데, 우리들에게 이런 얼토당토 않은 경쟁을 요구하면서, 그 교육제도에 대해 논술을 해보라고 하는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려서 붉은 펜으로 한 문단 써놓고 집으로 훌쩍 와버렸었다. 그래서 사회 선생님이랑 좀 많이 싸웠지.
이 부분이 바로 그때 제시문에 있던 부분 중 일부이다.




일제고사 반대 오답 선언을 모으는 일이, 말하자면 결국 그런, 모두 자기 촛불을 끕시다, 이런 이야기인 것 같아서 문득, 옮겨둔다.

모두 자기 촛불을 끄자... 모두 오답을 찍자... 모두 경쟁을 거부하자...
참 간단해보이는 옳은 해법이지만, 신뢰가 없이는 어려운 일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촛불을 끄는 사람을 늘리러 다니는 게 내가, 우리가 할 일이다.

 

 




11월 30일
  오늘 생물 시간에 선생님이 적자생존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깨알 같은 글시로 칠판을 한참 메워나가고 있을 때였다. 워낙 공책 검사를 철저히 하는 터라 설명도 듣는 둥 마는 둥 옮겨 적고 있는데 윤수의 목소리가 났다. 나는 정신이 번쩍들었다. 윤수가 심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무어라 질문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도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되물으셨다.
  "적자생존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구? 질문을 하겠으면 사내답게 똑바로 해."
  교실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윤수가 질문이라곤 해본 적이 없어서 나부터도 윤수가 질문 같은 걸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윤수의 질문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생물 선생님의 수업을 느닷없이 중간에서 끊어버린 셈이었다. 윤수의 두 손이 쉴새없이 교복 앞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화, 환경에 맞지 아, 않는 건 모두 죽어, 죽어야 합니까?"
  "죽는다기보다 도태되는거지. 환경에 맞는 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도태되기 마련이라 그 말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환경에 잘 맞았거나 맞게 변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들이지. 됐어?"
  "벼, 변하면 --- 어떠, 어떻게 변합니까?"
  선생님은 또 얼굴을 찌푸렸다. 윤수의 입에서 무슨 엉뚱한 소리라도 나오면 어쩌나싶어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었다.
  "아까 설명을 다 했잖아. 자 자, 그럼 이번에는 숲을 예로 들어보자구. 참나무나 소나무 같은 것하고는 달리 음지에서만 사는 식물이 있지? 위로 자라지 못해 햇빛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음지에 맞게 변화되고, 그렇게 적응한 놈만 살아남은 거야. 자연의 조화지."
  "음지, 음지에 사는 게 져, 졌는데 그게 어째 자, 자연의 조화입니까?"
  "지다니? 이런 참, 지고 이기고가 아니야. 좋고 나쁜 것도 아니고! 생물의 법칙이 그렇다는 거지. 적자생존, 자연선택설, 그것만 기억하면 돼. 돌연변이도 설명할 참이니까 이젠 자리에 앉아."
  그러나 윤수는 앉지 않았다. 계속 교복 앞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더듬대다가 가까스로 말을 만들어냈다.
  "그, 그럼, 사람, 사람은 평등한데, 환경에 따, 따라 --- 그게 저, 적자생존인지, 조, 조화인지 --- "
  "왜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각을 하고 그래? 진도 방해 그만하고 그냥 외워!"
  윤수가 비로소 자리에 앉았다. 나는 소리 죽여 한숨을 토했다.
 

(....)


12월 7일
  기원의 밤은 교장 선생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밖은 이미 캄캄했다. 강당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3학년 남녀 학생들이 가운데 앉고 학부형들이 그 주위에 앉거나 서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해마다 전국의 우수 대학에 많은 합격생을 배출해온 명문 학교의 빛나는 실적을 강조했다. 다음에는 어떤 3학년생의 어머니가 학부형 대표로 나와서 그 동안 정말 고생했다는 말을 거듭했다. 잠을 못 자서 코피 쏟던 얘기, 압박감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려 고생하던 얘기 등등을 놓고 구슬픈 목소리로 이어나가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무대 아래쪽에 불이 꺼졌다. 부분 조명 속에서 교장 선생님이 초에 불을 붙였다.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초를 한 자루씩 들고 나와 그 촛불에 불을 붙였다.
  담임선생님들은 가만가만 무대에서 내려와 자기 반 앞에 섰다. 두 손으로 초를 받쳐 든 학생들이 한 명씩 나와서 다시 그 촛불에 불을 붙였다. 강당 안은 점점이 불어나는 촛불로 채워져갔다.
 [중략]
  피아노 소리가 정적을 깼다. '선구자'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임춘미가 사뿐히 걸어 나와 노래를 불렀다. 학생들이 처음에는 낮게 나중에는 춘미의 목소리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랗게 따라 불렀다. 독립군들처럼 비장하게, 그만하면 모든 게 된 셈이었다.
 [중략]
  노래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고 내가 막 일어서려는 그때, 춘미가 물러나는 자리에 누가 불쑥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가 확성기로 울려나왔다.
  "우, 우, 우리는 마, 마라톤 선수, 선수가 아닙니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윤수였다.
  "모, 모두 승리, 승리하면 누가, 패, 패배합니까?"
  순간 실내에는 터질 듯한 정적이 흘렀다. 경규가 튀어나와 윤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내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선생님들, 또 앞자리의 3학년 남학생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윤수가 마이크를 움켜쥐고 외쳤다.
  "자기, 자기, 초, 촛불을 꺼! 꺼! 그러면 아, 아무도 패배하지 않 --- "
  아아 나는 또다시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진 3학년들이 무더기로 달겨들어 윤수를 무대 아래로 끌어내렸다. 문밖으로 질질 끌고 갔다. 놀랍게도 그들은 뜯어말리는 선생님들까지 거칠게 밀쳐냈다.
 [후략]

 

- 최시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中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11.13 21:11

  수능 시험을 보지 않고 교육부 앞에 선 고등학교 3학년에 속해 있는 여성 청소년은 말했다. 여기 서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무섭다고 하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서도 말했다.

  친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수업 잘 듣고 쉬는 시간에 잘 떠들고 점심시간에 매점 가고, 이러면서 살지만,
  가끔씩 다이어리를 보다보면 블로그를 보다보면 지나가면서 문득문득 보다보면,
  죽고 싶다고 하고 힘들다고 말한다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면들이 너무 많다고.
  친구들이 사는 걸 보면 태엽을 감으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 같다고.

  목이 메인 그가 잠시 발언을 멈췄을 때, 눈치 없게도 한 기자가 "왜 수능을 거부하게 되었지만 말해주고 들어가세요. 왜 거부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요."라고 물었다.
  그 말에 "이유요?"라고 반문한 그는 또 잠시 뜸을 들였다.
  몇 초 후,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말했다.

  수능에, 입시경쟁에 반대해서라고. 이런 입시경쟁을 없애자고 말하기 위해서라고. 지금 같은 입시경쟁, 지금 같은 교육이 계속된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그 말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들어왔을 법한 평범한 말이었지만, 거기에 묻어나는 감정은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그래서 다들 울었다. 비록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울었을 것이다. 연민이 아닌, 슬픔과 분노로.


  어쨌건, 작년에 홀로 1인시위를 하며 서있던 그루에 비해,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며 서 있는 엠*의 모습은,
  좀 덜 쓸쓸해 보였다.





  수능 시험 때문에 자살한 청소년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기원하기 이전에,
  당당해지라고, 수능은 중요하긴 하지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기 이전에,

  무책임하게 살라고 "명령"하고 "요구"하기 이전에
  입시경쟁을, 입시경쟁교육을 어떻게 없앨지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닐까.
  청소년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든 후에, 인간답게 살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10.12 20:35

 



일제고사 날에 청소년들이 등교거부, 시험거부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지난 5월 17일 '휴교시위'라거나... 아니면 광주의 한 여고에서 잇었던 수업거부라거나...
청소년들이 수업거부, 등교거부, 그런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지난 8일에도 200명 정도의 초등학생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안 봤다고 하더군요.

중고등학생들은 몇 명이나 할까 궁금합니다.

프랑스나 미국이나 칠레나 뭐 그런 외국에서는 등교거부, 수업거부 같은 거 많이들 한다는데 쩝...


혹시 이번에 좀 많이 안 되더라도 내년, 내후년엔 더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능력, 다양한 가치가 있는 건데
그걸 성적으로 평가하고 줄세우는 사회...

"학력"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특정한 능력, 특정한 문제 풀이 적성 그런 것들을 평가하는 일이란 걸
초중고 때 정말 뼈저리게 느꼈었습니다.
"학력신장"이라거나 "학력평가"란 게 허구적이란 것도요.
그건 이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순응형 인간일 뿐이겠지요.

제가 보기에도 저보다 성적을 더 못받더라도 훨씬 더 가치 있어 보이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사실 일제고사 뿐 아니라 지금처럼 점수와 성적으로 인간을 재단하는 시험 모두를 거부하자고 하고 싶네요 ㅎㅎ


행복하지 않은 교육이 언제쯤 더 행복해질까요?
아니, 행복하지 않은 건 행복하게 만드는 게 또한 인간의 일이겠죠.








 

http://cafe.daum.net/say-no

 


10월14/15일에 전국 초6, 중3, 고1을 대상으로 '일제고사(학업성취도평가)'가 진행된다고합니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는 중1과 중2를 대상으로 이어서 전국일제고사가 실시된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우리가 다니는 학교가, 우리가 사는 지역이 전국에서 몇등인지가 나오는거죠.....

 


거기다 2010년부터는 학교사이트로 일제고사성적이 공개가 의무적으로 된다고 하는데..

성적이 공개되면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는 지역은 더욱 차별받고 비교당하겠죠

2010년전 즉 이번년도에도 언론과 학원들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명문학교 꼴통학교는 나눠지겠죠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사회, 승자만 살아남는 이 사회에서 공부못하는 학생/학교/지역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일제고사뿐만이 아닙니다

국제중학교, 영어몰입식교육, 대학자율화, 학교자율화.... 지금 이명박은 학생/학교/지역을 비교시키고 경쟁시키는

무한경쟁교육정책과 돈있고 빽있는 부자들만을 위한 강남교육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청소년들은,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무한경쟁교육과 강남교육에 쩔어 한해에 몇백명씩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

가만히 있을수 없습니다!

 

2008년 10월14/15일 서울시교육청으로 모입시다!



줄세우기 시험을 거부하고, 무한경쟁교육을 거부하고 거리로 모입시다!

경쟁교육속에서 죽어나가는 청소년들의 분노를 보여줍시다!!

더이상 공부하는기계로써 살아가길 거부하고 행복한교육을 외칩시다!!



청소년들의 파업이 무한경쟁교육을 바꿉니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10.06 20:49

우리의 행동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 될 것이다.


10월 8일에는 초등학교 3학년들이, 14, 15일에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들이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험을 치르고 등수를 매기기 위한 학업성취도 평가가 시행된다. 일제고사는 자립형사립고, 학교정보공시제나 국제중 같은 초강력 경쟁 교육정책 중 하나로써,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바탕이 될 교육정책이다.

 우리는 일제고사를 거부한다.
 일제고사는 오로지 ‘경쟁’만을 위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경쟁은 사람들을 불신하도록 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없애도록 만든다. 특히 ‘인간적’이어야 할 교육정책이 ‘비인간적 인간’을 양산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순응을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껏 우리는 경쟁을 야기하는 교육정책들로 인해 수많은 고통을 받아왔다. 그러나 특히 이번 일제고사는 더욱 강력한 경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럼으로써 시험점수와 등수로 자신의 존재가치가 정해지고, 그렇게 정해진 가치에 따라 학생, 학교, 지역 간에 서열이 매겨질 것이다.

 서열은 학교 간 평준화를 파괴하고, 그로 인해 경쟁은 더욱 강화된다. 강화된 경쟁은 더욱 서열을 튼튼하게 만들게 되는 악순환이 펼쳐질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초등학교에서부터 ‘학벌주의’를 만들어낼 것이다.

 학교정보공시제는 일제고사를 점수와 학생, 지역, 학교 간 성적 격차를 그대로 ‘공개’함으로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간, 지역 간, 학구學區간 서열체제를 만드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학생들을 3개 등급으로 나누어, 각 학교 홈페이지에 반드시 그 3개 등급의 학생의 수를 팝업창을 띄우는 등으로 ‘공시’ 하도록 한 것은 ‘서열체제’를 만들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지금 검색사이트에 일제고사를 검색하면 일제고사 대비 학원들이 수없이 뜬다. 사교육이 만들어낸 차이를 없애기 위해 만든 정책이라는 일제고사가 사교육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제고사 전문 학원뿐만 아니라, 기존 학원에 일제고사의 준비를 위한 특별반은 더욱더 많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일제고사를 잘 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제고사 성적을 통해 만들어진 학교 간 서열을 통해, 그 서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따라서 사교육시장은 더욱 활발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일제고사는 사교육문제에 대하여 그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기름을 붓는 정책이다. 이런 점에서 일제고사가 해결책이나, 해결책을 위한 원인분석으로 활용된다는 말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일제고사는 사교육으로 생긴 교육격차를 더욱더 심화시켜, 더욱더 심한 양극화 현상을 야기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물론 상대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진정으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교육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성적 좋은 인간, 학벌 좋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존재라고 주입시키는 교육,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에 대한 비판이 없는 교육 등, 그저 국가의 상위계층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심어주기 위한 도구였다. 또한 평등한 교육을 통해 계층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불평등한 교육을 함으로서 계층 격차를 더욱더 심화시키고, 계급을 재생산 시켜 왔을 뿐이다. 그리고 획일화되고 권위적인 교육으로 한 인간의 삶을 성적이라는 잣대로 결정지어버리고, 항상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부른다.’는 거짓말로 청소년들에게 좀비 같은 삶을 강요해왔다.

 우리는 일제고사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무한입시경쟁, 즉 청소년들을 인간이 아닌 좀비로, 입시경쟁지옥의 전사들로, 정답 찍는 기계로 만드는 모든 제도들에 대해 반대한다. 지금 우리의 행동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는 이 일제고사 거부를 시작으로, 지금과 같이 청소년들을 아프고, 병들고, 미치게 만들며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처참한 교육현실들에 끝까지 저항하여 반드시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의 요구사항

1. 청소년들을 더욱더 강력해질 경쟁과 서열체제에 몰아넣어, 청소년의 삶을 더더욱 처절하게 만드는 일제고사를 비롯한 모든 무한입시경쟁제도들을 즉각 폐지하라!

2.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한 교육제도가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답고 평등한 교육을 원한다!

3. 따라서 진정한 교육을 위하여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청소년들과 소통하여 대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2008년 10월 6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10.04 00:51


뭐 참세상 기사로 나온 사회진보연대 분이 쓴 기사이긴 한데요 @_@

일단 지금 하고 있는 활동 &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 이야기라서 퍼다놓아요~_~


일제고사가 이제 다다음주고, 날짜로 따지면 열흘 정도 남았네요.

그전까지 거의 매일 등하교길 홍보를 할 텐데- 쿨럭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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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일제고사’ Say NO!

[기고] 청소년 인권활동가 따이루 인터뷰

진재연(사회진보연대)  / 2008년10월02일 15시28분


모두가 일제히, 시험을 보는 ‘일제고사’가 다가오고 있다. 10월 8일에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국가수준기초학력진단평가’를 치르게 되며, 10월 14일-15일 이틀간 초6, 중3, 고1학생들이 ‘국가수준학성성취도평가’라는 이름의 시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이러한 시험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학교,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4-5%에 해당하는 '표집학교‘를 선정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교육정책에 반영해왔다. ‘초중등교육법상’으로도 전국일제고사는 표집으로 선정된 학교만 실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부터 해당학년 모든 학생들에게 시험을 실시하도록 하고,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시험당일 소풍이나 학사일정을 모두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시험의 결과를 4단계로 구분해 공개하고, 지역별 학교별로 성적을 비교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제고사 강제실시에 대해 많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학교의 서열화, 사교육비 증가, 입시에 따른 학교 교육 파행 등, 한국 사회 교육의 문제점들이 더욱 파괴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는 학생들, 가장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는 부모님들, 그러나 입시와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꿈과 재능이 사라져가고 있는 사회. 이러한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일제고사 반대’를 외치는 청소년들이 있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청소년들의 제대로 된 저항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지가 막 불타고 있다”는 청소년 인권활동가 따이루도 그 중 한 명이다.

▲  캐발랄 솔직담백 따이루의 뒷모습. 따이루는 오늘도 학교에서, 거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요즘 따이루(16)는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모임’ (cafe.daum.net/say-no) 일을 하느라 하루하루가 무척 바쁘다. 학교를 마치고,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 회의를 하고 성명서를 쓰고 선전물을 만든다. 또한 기자회견, 온라인 행동, 청소년선언 등 구체적인 실천행동으로 몸을 움직이느라 눈코 뜰 새 없다. 2006년 중학교 1학년 때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ASUNARO)를 만나 활동을 시작한 따이루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키가 청소년'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만들어 가기 위해 일제고사 반대행동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째는 시험보기 싫어요. 가장 큰 이유는 그거에요. 시험 보는 게 너무 싫고 이제 지겨워요. (웃음) 그 다음에는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 된 이후에 사실상 경쟁교육을 대 놓고 하겠다는 건데, 청소년에게 다가오는 직접적인 정책이잖아요. 이걸 막느냐 못 막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일제고사 반대투쟁은 앞으로 교육정책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느냐, 이명박-공정택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이에요. 그리고 또, 일제고사가 가지고 있는 자체의 문제점이 있어요. 줄 세우기를 한다는 거에요. 그게 지금보다 더 심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회에서 공부로 성공할 능력이 절대 없는 따이루에게는 상당히 압박스러운 일이죠.(웃음) 학교 다니는 상황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입시교육이 더 강해진다는 건 인권이라는 가치나 소통하는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런 거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이 운동을 하고 있는 거죠.


학교가 줄 세우기를 한다는 걸 몸으로 느끼나요?
다른 학교들은 우리 학교보다 더 심하지만. 내 사례만 말하면, 애들을 등수대로 앉히는 거요. 수학선생님이 시험 끝나고 등수대로 앉혔어요. 잠깐 동안 앉혔다가 복귀 시켰지만. 또, 선생님들이 상위권 공부 잘하는 아이들한테 보이는 친절, 엄청난 친절(웃음) 같은 게 있죠. 우리에겐 오지 않는 정보가 그 아이들한테는 가기도 하는 그런 차별이요. 그런 거 통해서 애들을 차별하고 줄 세우기를 하는 거에요. 또, 수학반을 성적으로 나눠서 상중하로 분반을 했어요. 합법적인 우열반 형태인거죠. ‘상’반 애들이 ‘하’ 반 애들한테 “난 ‘상’반 갈게. 얘들아 안녕” 그러고 가요. 그러면 다른 애들이 “미친놈” 그러죠(웃음) 애들은 농담일 수도 있는데, 가벼운 농담 같지는 않은 거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지고 있어요.


시험이 싫은 이유에 대해 조금 더 말해줄래요?

공부하고 싶지 않은 과목인데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나는 옛날부터 수학이란 과목은 정말 싫었어요. 영어는, 영어 성명서를 읽겠다는 목표가 있긴 한데.(웃음) 수확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기본적인 것만 알면 될 거 같은데. 그런 압박이 너무 싫었고, 압박을 ‘만들어주시는’ 시험이 싫어요. 오늘도 시험 보고 왔어요. 소위 말해서 공부를 거의 포기 한 애들이 있고, 중간 정도인 애들이 있고, 공부에 거의 미친 애들이 있어요. 포기한 애들이랑은 웃고 놀고 얘기하고 그러는데. 오늘도 그러다가 시험시간이 다가오니까 어떤 애들은 장례식 표정으로 공부만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도 너무 싫고. 시험 끝난 다음에 애들이 자꾸 한탄하고 걱정하는 것도 싫어요. 엄마가 패겠지, 어떻게 하냐 그러는 얘기도 싫고요.


친구들이랑 그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 많이 하나요?

할 때도 많죠. 애들은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저는 ‘성공’이라는 거 자체도 반대하거든요. 내가 어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 성공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건 누군가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고. 경쟁이라는 게 공정하지도 않은 거고요. 도덕교과서에 나온 말들도 이상하잖아요. ‘도덕’은, 얼마나 이상한 얘기가 많나 보려고 읽어봐요. 이번에 시험 보면서 읽었는데. ‘도덕을 찢어버려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도덕이라는 게 양심이잖아요. 개인의 양심이라는 걸 교과과목에 주입시키고 획일화하는 거죠. 국가에 대한 비판보다 충성을 원하니까. 내가 국가에 대한 뭘 할 수 있는 지 고민해봐 그러잖아요. 문제 풀 때 나와 반대되는 거 찍어야 하는 거니까. 그나마 ‘사회’는 좋아요. 프랑스혁명이나 근현대사는 재미있어요. 사회 같은 과목은 사이사이에 구멍이 많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랑말랑한 게 있어요.


학교에서는 일제고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학교 친구들은 몰라요. 학교에서 아직 안 알려줬어요.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어요. 일제고사가 뭐냐? 14-15일 시험 보는 거야. 또 시험 봐? 그런 반응이요. 아마 지금 중간고사 기간이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려고 나름 인심 쓰신 거 같은데. 시험 끝나고 말해 줄 거 같아요. 아마 학원 다니는 애들이나 알만한 애들은 알고 있겠죠. 학원에는 일제 고사 대비반 같은 것도 있으니까. 아는 애들은 알거에요. 아마 중간고사 끝나면 학교에서도 일제고사 대비반 수업이 진행되지 않을까요.
일제고사 반대 온라인 서명 바로가기


일제고사 당일 날 시험거부-등교거부 행동을 준비하고 있죠?

지금까지 등교거부 행동이 몇 번 있었는데, 물론 허당, 굴욕인적도 있었지만(웃음) 저는 제가 고3때나 등교거부 같은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촛불집회, 등교거부, 시험거부 엄청난 발전이죠. 등교거부는 이 사회에서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던 청소년들의 가장 수위 높은 행동이에요. 그리고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이나 생존권을 위해 싸울 때 노동 3권이 있잖아요. 청소년들에게 사실상 교섭권도 없단 말이에요. 청소년들도 학교 안에서 학업에 착취당하는 건데. 저는 이게 진정한 의미의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생도 충분히 노동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청소년들이 착취당하지 않기 위한 파업인거에요. 직접적으로 거부함으로서 타격을 주고 구멍을 내는 거죠. 바뀔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에요. 그렇게 구멍을 만들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요구하는 거죠. 사람들은 등교거부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원하는 교육’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데, 저나 아수나로에서 고민하고 있는 건, 그냥 주입식 교육은 아니라는 거죠.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연구해 보거나,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수학 뿐 아니라 국어 영어 사회 과학 다. 주입의 목표가 대학을 가거나 취직하는 거잖아요.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고, 정규직 되는 거. 그 과정에서 경쟁하라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순응 하는 게 진리라는 거잖아요. 비판적인 생각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학생회 탄압하잖아요. 교육이라는 건 민주주의라는 건 도전하면서 토론하면서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요. 권위 있는 교장, 학생부, 교사의 권위에 굴복하게 만드는 건 교육이 아니죠. 교사와 학생이 평등한 관계속에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죠. 교사가 항상 새로운 정보를 주는 역할이 아니고 서로 주고 받는 관계 될 수 있는 거니까. 목표가 단순히 대학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고민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교육 만들고 싶은 건데. 지금까지 경쟁에서는 반대방향으로, 그게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는 거죠. 소통하는 교육은 경쟁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거든요. 애들한테 정보 주입하기도 바쁜데, 애들 삐딱한 말 듣고 있으면 학교에서는 성이 안 차겠지. 경쟁교육 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거라고 생각해요. 일제고사는 그런 것들을 없애는 게 아니라 더 강화시키는 거니까 문제인거에요.


학교 친구들이 따이루의 활동에 대해 알고 있나요?

네. 알죠. 학교에서 인권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기도 해요. 어느 때는, 애들이 너 어디 갔다 왔어? 너 또 시위 갔냐? 그러면 저는 비정규직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막 얘기 하죠. 그러면 같이 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제가 무슨 강연하는 것 처럼 애들이 모여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시험 때는 그런 게 안 되죠. 가끔 나쁘게 말하는 애들도 있어요. 근데 그냥 욕하는 건 괜찮은데, ‘야, 호모’ ‘병신’ 이렇게 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을 할 때는 정말 싫어요. 사람들이 다 ‘이 놈의 교육 갖다 버려야지’ 그러잖아요. 애들도 다들 이런 교육, 학교 다 싫어하는데.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우리가 바꾸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거죠. 평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액션이라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 같은 바보나 공부 못 하는 애, 돈 없어서 사교육 못하는 애들이나 부모들이 나서야 하는 문제인거에요.


앞으로 뭐하고 싶어요?

지금 내가 사는 지역에서 청소년 축제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이번 일제고사 반대행동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운동권들은 항상 시작인데 ing가 안 돼요. (웃음) 그리고, 학생의 날 (11월 3일) 행동도 잘 하고 싶어요. 우리가 원하는 교육에 대해 교과부나 이명박도 그냥 무시 할 수 없을 거고. 저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키가 청소년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이 가장 억압당하고 있잖아요. 저항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청소년들은 발칙하잖아요. 청소년들이 발칙한 게 철 없다고 표현되는 건데, 현실과 타협되지 않는 다는 거죠. 운동도 관성화 되었잖아요. 전교조가 교육주체 결의대회 하는 건,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잖아요. 그런 거 말고 열정을 갖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거죠.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을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05 02:22
오답 승리의 희망(오승희) 8호에 실을 글







투덜리즘 : 명박이 치하의 꿈높현시


  청소년들은 아프다. 명박이 정부는 청소년의 삶을 학대하고 있다. 아니다. 명박 이전부터 청소년 학대는 벌어져왔다. 다들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4.15학교자율화’ 조치가 어쩌구 떠들지만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이라는 과목별 ‘우열반’, 0교시,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언어영역 쉽게 내서 1교시 끝나고 자살하는 일 없게 한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입시경쟁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할 동안에, 많은 학교에서 버젓이 강제야자와 강제보충수업이 시행되는 동안에, 정답과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이 계속되는 동안에, ‘노간지’(놈현)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래, 어쩌면 교육/청소년인권문제에서는 노무현도 X놈이었을 뿐이었다. 쥐박이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쥐보다는 좋았다고 칭찬 듣는 게 기뻐할 일은 아닐 듯싶다.
  한 교사는 4.15학교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며 없애버린 규제들 대부분이 ‘전봇대’(명박이가 쓸데없는 규제에 붙인 은유)가 아닌 ‘신호등’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4.15학교자율화 등등 때문에 학교들이 더 학생들을 막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전반적으로 경쟁이 더 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학교자율화’는 ‘학생타율화’요 ‘학생노예화’였다. 그러나 어쨌건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호등’이 고장 난 신호등이었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그 규제들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이 도로 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들은 신호등 몇 개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지난 정권을 욕하고 있을 시간조차 별로 없다. 우리는 돌팔이 명박이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지금까진 삽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입시경쟁 속에 파묻어가더니, 이젠 불도저로 그대로 밀어버리려고 하는 꼴이다. 4.15학교자율화를 하고, 본고사를 허용하고, 중고등학교도 서열화시키고, 기타 등.등.등.

  그리하여, 기어코, 가설라무네, 불도저에 밟히는 게 조낸 아팠던 청소년들이 꿈틀하기에 이르렀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안 그래도 불만이 높았던 청소년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그런데 글쎄, 이 무식한 것들이 더 때리고 밟으려고만 든다. 집회신고했다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고 교육청들이 장학사 대군을 동원했다. 경기상고 교사는 학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했더니 절대폭력권을 발동하여 그 학생을 쥐어 패버렸다.
  게다가 정부는 학생노예화 정책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학교자율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람들의 촛불을, 행동을 그저 ‘광우병&미국산쇠고기’에 관한 이야기로만 한정지으면서 말이다.(재협상도 안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무시당해서, 경쟁당해서, 학대당해서 아프고, 맞아서 아프다. 그러나 아프면 아플수록, 죽기 전까지는 더 꿈틀대고 더 비명을 지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비명소리는 이렇게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학생노예화! 집어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하라!”
“광우병급식&식품 명박이나 처먹어!”


  지금의 상황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꿈높현시다. 꿈높현시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영화 『8마일』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저번 호의 ‘지못미’에 이어 2탄은 ‘꿈높현시’다.
  왜 지금 상황이 꿈높현시냐 하면, 예를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적극적으로 말해보려 했던 사람들도 명박이 때문에 ‘4.15학교자율화’ 막기에도 급급해졌다는 것이다.(지금도 말하고 있지만 묻히고 있다.)
  또한 급식운영에 민주적 참여, 생태적인 식량 생산과 직거래 시스템 등등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되는 거 막기도 막막하다는 것이다.
  또또한 정당가입, 선거운동, 표현의 자유, 학생회, 대의제와 선거연령 등등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온갖 것들을 없앨 것을 꿈꾸고 있지만, 집회장에서 장학사들 쫓아내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를 들면, 나는 ‘4.15학교자율화’는 욕하고 명박이를 싫어하지만 “입시폐지”를 쓴 피켓이나 낙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따라서 지금의 촛불은, 그다지 꿈높현시를 극복시켜줄 것 같진 않다.

  정녕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긴 현실이 시궁창인 건, 쥐가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이 시궁창인 현실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쥐박이부터 퇴치할 수밖에. 끈질기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3.04 15:37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8977







전국의 놀이터여, 단결하라!
"3월 6일 학생대학살의 날에 바리케이트가 되어다오"

“한국의 교육은 교육학 교수들이 망쳤다”는 격언을 되새기며. 놀이터여, 줄세우기 시험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맞서다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축복받은 세대일지 모른다. 과외가 금지되어 사교육비가 들지 않고, 대입 시험도 단순하여 사실상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판가름났으니 말이다.

복잡한 입시전형, 20조 원에 이르는 사교육비, 돈 없으면 사교육도 입시정보도 뒤쳐질 수밖에 없는 지금에 비추어보면, 괜찮았던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안의 풍경은 오히려 지금이 낫지 않을까. 잘못 하면 맞고, 잘못 안 해도 맞고, 특히 성적 떨어지면 죽고, 툭하면 시험 보고, 심심할 때마다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한날 한시에 시험 보고, 반 석차는 물론 전국 석차까지 공개되고, 그리고 또 맞고, 그래서 밤늦게까지 ‘자율’학습하고, 그게 싫어서 땡땡이치고, 다음날 얻어터지고.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하지만, 그 당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군대 다시 가기와 더불어 꿈에 볼까 두렵다. 물론 일부 범생이들이야 좋게 말하겠지만.

“컨닝하면 왜 안 되나요?”

그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게 있다가 교직에 뜻한 바(?) 있어 사범대나 교대에 진학하면, 술에 절어 있는 나날의 와중에도 몇 가지 충격이 다가온다. 제일 먼저 한국식 시험에 절어 있는 사범대와 교대생들을, “왜 컨닝하면 안 되나요?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모두 모여 상의하면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는데요. 아는 데도 가르쳐주지 말고 모르는 데도 묻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이죠?”라는 호피인디언 아이들의 이야기가 맞이한다.

그리고 ‘경쟁을 시키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오른다’는 건 헛된 믿음이라는 아더 콤즈의 『교육신화』가 뒤를 잇는다. 좀더 오래 뭉기적대고 있으면 스탈린의 탄압을 받았던 비운의 마르크스주의 교육학자 비고츠키(Vygotsky, L. S.)도 만난다. 그의 근접발달영역(ZPD) 개념을 통해 혼자서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과 협력을 받아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배운다.

당연히 학생 혼자 풀 수 있는 문제가 몇 개인지 세는 평가나 시험은 큰 의미가 없다. 도움이나 협력 속에서 어디까지 풀 수 있느냐를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평가도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아니, 그럼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했냐고? 대학이라서 가능하긴 했지만, 미리 문제를 알려준다. “이 중에서 두 세 문제 낸다. 지금부터 혼자서 공부해도 되고,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 해도 된다. 찾아보고 의논한 후 시험 당일날 자기 말로 답을 써라”라고 한다. 이것도 부족하지만, 덕분에 매학기 문제를 달리 한다고 머리 쥐 내렸다.

그건 그렇고 뭐니뭐니 해도 술을 확 깨게 하는 건 평가에 대한 주류 교육학의 입장이다. 보수적이라고 정평이 나있는 주류 교육학에서도 평가를 줄세우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걸 잘 모르는구나. 다르게 설명해야겠다”는 식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뒤돌아보기 위한 도구라고 본다.

진단평가니, 형성평가니, 총괄평가니 하여 종류별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모든 평가는 반성의 도구란다. 그럼, 50점 맞은 학생은 왜 그 학생이 50점인지 뒤돌아봐야 한다는 말인데, 이 무슨 염장 지르는 소리인가.

이제까지 50점이라고 60점이라고 얻어터진 볼따구, 대가리 박기, 화장실 청소는 뭐란 말인가. 학교 단위이든 전국 단위이든 석차 매긴 건 다 뭐란 말인가. 시험 봐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아니면 쭉 줄세웠던 교육자들은 사실은 교육자가 아니란 말인가.

이럴 때 성현들의 가르침, 육두문자가 필요하다. 아니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1 + 1 = 1 이 되는 열 가지 경우를 쓰시오”라는 문제를 풀게 하고 석차 매겨야 한다.

3월 6일, 학생 대학살이 시작된다

3월 6일 전국의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시험을 본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개 과목에서 서울시 교육청이 낸 25문항씩의 문제를 가지고 한꺼번에 시험을 본다. 입학하기 전에 학교에서 배치고사를 봤지만, 또 시험을 본다.

정식 명칭은 ‘진단평가’이나, 학생 입장에서는 배치고사나 진단평가나 매한가지 시험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배치고사나 중간고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학교에서 문제 내고 학교에서 시험 보고 채점하는, 그래서 학교마다 다른 그런 시험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중 1 학생이 한날 한시에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보는 거다. 고 3 수험생이 보는 수능과 유사한 거다. 성적표도 현재까지는 과목별 점수, 전국 석차 백분위 점수(전국 석차를 백분율로 표시한 점수)가 기재된다고 한다.

하지만 공정택 서울교육감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교 학교별 성적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 시험부터 한 학생의 전국 석차, 그 학교의 석차 등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도 있고, 뒤이어 예정되어 있는 시험부터 그럴 수 있다. 공개 시점이 언제이든 간에 ‘교육’감의 사고가 참 ‘교육’적이다.

이 시험,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등 전국의 16개 교육감들이 작년 9월에 합의한 거다. 교육청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거다. 물론 학생들에게 묻지 않았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시험 꼭 봐야 하나요?”라는 학생들의 항변은 ‘자율적으로’ 뭉갠다. 2MB가 권한을 대폭 교육청으로 이양한다고 했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3월 6일의 중학교 1학년 다음으로는 초등학교 4~6학년이 예정되어 있다. 3월 11일에 역시 다섯 과목을 시험 본다는데, 1% 학생들만 보는 표집 진단평가라고 하나, 모든 초 4~6학년이 볼 태세다.

너무도 ‘교육’적인 교육감님

정말 ‘교육’적인 공정택 교육감께서는 이미 서울 시내 모든 초등학교에 시험 보라고 공문을 하달하셨다. 경기도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라고 했는데, 아마 학생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이 시험보지 않을까 한다. 다른 시도 역시 오십보 백보로 예상된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의 회장이신 공정택 교육감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는데, 다른 시도 교육감께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초등 4~6학년 시험은 중 1 시험과 달리 개인별 성적표는 배부되지 않는다. 하지만 5월에 학교별로 소위 ‘미달 학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프로그램이 주어진다. 곧 어느 초등학교는 공부 못한다는 아이가 몇 명 또는 몇 %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14살 중학교 1학년도, 11살 초등학교 4학년도 19살 언니 오빠처럼 전국 시험을 치르는 날이 도래했다. 전국 석차를 아는 날이 언제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 학년 평균 65만 여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문제를 딱딱한 책상에 몇 시간 동안 앉아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한 채 쥐죽은 듯이 시험을 봐야 한다.

공식적으로 전국 석차나 다른 결과가 공개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험보고 나면 교장이나 교사들끼리는 말이 오간다. 교육청에서 은근히 학교를 갈구기도 한다. 비공개라지만, 정보력이 뛰어난 학원이나 학부모의 손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이 얼마 만인가. 10년 만의 쾌거다. 물론 서울의 공정택 교육감께서는 이미 2년 전부터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보고 계셨다. 역시 발빠르시다.

이렇게 빠른 ‘교육’적 결단에 학생들은 애시당초 없다. 작년 10월 전교조 서울지부가 초등학생 4~6학년 1,500여명에게 지난 2년 간의 일제고사에 대해 물었더니, 시험 결과를 확인한 다음에 13.2%의 아이들이 ‘죽고 싶다’고 했단다. ‘자기가 한심하다’는 아이들도 34.9%나 된단다. 이 대답을 11살, 12살, 13살 아이가 했다.

   
 
 
하긴 수능 전후로 수험생이 자살을 해도 이제는 주목하지 않는 사회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렇게 학생 대학살은 시작된다. 3월 6일 중학교 1학년을 필두로, 3월 11일 초등 4~6학년, 그리고 10월 29일 중학교 3학년, 12월 23일 중학교 1~2학년,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1~2학년은 올해 년 4회, 고 3은 6회가 예정되어 있다.

교육부가 보는 표집 진단평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2MB 시대를 맞이하여 권한을 이양받을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이야기된 거다. 11살부터 19살까지 약 6백만 명의 아이들과 그 수백만 가족들에게 16인의 교육감들이 선사한 길이다.

역시 삼성!

역시 삼성이었다. 삼성이 만든 사교육 업체 크레듀 M은 이미 3월 6일의 중 1 전국 일제고사를 대비하여 자체 모의고사를 두 번 봤다. 만들어진 지 1년도 안 된 업체가 다른 업체들보다 발빠르게 움직였다. 1월 말에 한 번, 2월 말에 한 번 하여 온라인으로 접수받아 모의고사를 봤다. 물론 무상이 아니다. 학생 1인당 2만원씩 받았다. 한 번에 약 6천 명씩 응시했다고 하니, 도합 1억 원이 넘는다.

다른 사교육업체는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앞으로 시험은 많다. 그리고 삼성 크레듀 M의 모범도 있고 하니, 16인의 시도 교육감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시험에 발맞춰 사교육업체의 다양한 수익사업이 점쳐진다. 11살부터 19살까지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죄인지.

   
▲ 대교 눈높이의 TV 광고 ‘놀이터야 안녕’
 

한편, 최근 들어서는 학교를 군대에 비유한 CF도 등장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으로 놀이터를 바라보는 튼튼한 남자아이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광고가 그거다.

대교 눈높이의 ‘놀이터야 안녕’ 편 CF에서는 “3월이면 학교 간다. 내 아이가”라는 엄마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뒤이어 남자 아이가 “놀이터야 안녕”이라고 한다.

모델이 되었던 아이의 부모가 광고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하다. CF에 자기 아이가 출연해서 대견스럽게 생각했을지, 아니면 학교는 군대고, 학교 가면 놀이터는 끊어야 한다는 CF를 보며 다른 생각을 했을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대교 눈높이의 시각이 충격이다. 군대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미리미리 사교육으로 대비하라는 말인가, 이제 아이를 놀이터에 보내지 말라는 말인가. 한국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기는 하나, 아이에게서 놀이터를 빼앗아야 한다는 시선은 기가 막힐 뿐이다.

전국의 놀이터여, 단결하라

‘놀이가 학습이고 학습이 놀이’라는 교육학의 상식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와 엄마의 돈을 챙기려고 하는 마음이 서글프다. 또한 대놓고 “아이를 놀리지 말고 학습지 풀게 하라”는 그 자신감에는 할 말이 없다.

전국의 놀이터가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3월 6일 학생 대학살의 날에 “놀이는 학습이고, 학습은 놀이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자신들의 쇠몸뚱이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 땅의 참 교육자들과 함께 “너희가 교육을 알어?!”라고 저항하였으면 한다.

언제나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미끄럼틀의 마음이 만방에 울렸으면 한다. “아이를 빼앗아가지 마라”는 그네의 몸짓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졌으면 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학교에 손 대고 싶으면,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부터 고쳐라”는 놀이 기구들의 외침이 저 푸른 하늘에 가득 하기를 꿈꾼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교육은 갔습니다
참교육의 길을 깨치고 인간파괴 숲을 향하여 난 줄세우기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시험지가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2008년 03월 04일 (화) 14:07:15 송경원 redian@redian.org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