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9. 11. 16. 13:43

플래쉬몹한 20대 두명 연행


저는 MBC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쿨럭 -_-

아아 유모 씨라니 이 무슨... ㅠ_ㅠ ㅠ_ㅠ



 정리를 하면


그날 전체 일정은 오전에 회의를 하고 12시 30분에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모여서 플래시몹에 대해서 장소, 방식 등을 전달받고, 플래시몹을 한 뒤에, 2시에 종각 앞에 있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집회로 가는 거였지요.


플래시몹 방식은, "우선 멈춤"이라는 제목 그대로, 3분 정도 가만히 멈춰 서있는 거 @_@
뭐 어차피 집회야 2시부터 실컷 할 테니... 피켓도 없고 그냥 수십명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기 마음대로 여기저기 흩어져서 멈춰 서있는 거였습니다.





근데 오전 회의가 늦게 끝나면서 12시 30분 플래시몹에는 못 갔고-(회의 끝난 시간이 12시 40분 정도 -_-;;)
여차저차하여 늦게 도착했는데,
광화문 쪽이 경찰들로 뒤덮여 있더라구요.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것이 아닌 전경들의 것이었다. 우왕-

세종문화회관 뒤로 가니까 거기도 경찰들이 쫙 깔려 있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긴 했는데, 경찰이 뭐 쪽지를 빼앗아갔다 이런 이야기를 지나치면서 하긴 했는데,
제가 늦게 가서 이미 사람들은 흩어지던 중이었고, 옆에 경찰도 있고 하여 자세한 사항은 전달받지 못하고 무작정 일단 도착하자마자 흩어졌지요 ㅎㄷㄷ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하는 건가? 싶어서 광화문 광장에 가서 있다가...(근데 사람들이 안 보여서, 경찰 무전 옆에서 엿들어가면서 어디서 하는 건지 알아내려고 했는데 소용은 없었슴둥)


근데 광화문 광장 길 건너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사람들이 몇 명 멈춰 있는 게 보이더라구요 ㅋ
그래서 아 저기구나 벌써 시작해버렸네 하면서 길을 건넜는데


횡단보도를 다 건널 즈음에 경찰들이 그냥 가만히 멈춰서있는 공기(고등학생인 청소년인권활동가)를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공기를 끌고 전경버스로 연행해가더군요 -┌
(나중에 듣자하니 준비한 쪽에서도 원래부터 어느 정도 시비 걸 거는 예상했다고 합니다. 근데 연행은 생각도 못했다고.)

'썅 저건 뭐야' 싶은 황당함.
잠시 멈칫하다가 연행해가는 거에 달려들었고, 몸싸움을 벌였지요.
왜 연행하냐고 옆에서 따지던 사람들에게 경찰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이라고 하는 게 들렸습니다
집회라고 생각했다면, 해산명령도 안 내렸으면서 연행할 수 있는 건가;

그나저나 중과부적인지라 결국 공기는 전경버스에 실렸지요 ㅠㅠ
(이 과정에서 전 안경 바닥에 떨어지고 책 떨구고 노트북가방 벗겨지고 난리도 아니었음. 정말 완전히 뒤엉켜서, 누가 내 팔다리 어깨 머리칼 가방을 잡아당기는 건지도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땅에 몇 번은 엎어지고 일어나고,,,)

허나 어쨌건 공기는 2시 집회에서 나름 중요인물이었기에, 거기다가 말도 안 되는 연행이라고 생각하여
전경버스 앞에 서서 버티려고 했는데 인도에서 내려가기도 전에 경찰이 끌어내서, 아예 전경버스 앞에 확 주저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연ㅋ행ㅋ 되었지요 쿨럭. 공무집행방해라면서.
(경찰 가서 조사 받을 때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에 미신고집회 참여, 그리고 공무집행방해 두 개로 하더군요. 체포할 때는 공무집행방해라더니;)

연행 과정에서 길바닥에 앉은 저를 들고 가면서 옷 다 벗겨지고 메리야스만 남고 상의가 다 가슴 위로 올라오고 완전 민망했어요. *-_-*





근데 공기는 정작 훈방되었음. -_- 고등학생이라고.

전 왜 그렇게 기를 쓰며 막으려고 했던 걸까요?
아아 낚였어...



어쨌건 잠시 후 박모 씨가 플래시몹 주최자로 지목 받아서 버스 안으로 들어왔고,,,(다들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무슨 근거로 주최자라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고, 3분간 가만히 서있는 플래시몹이 왜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대상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고 박모 씨가 20대..라고 하니 뭔가 낯설구만요. 맞긴 한데 20대란 생각을 안해봤어...ㅎㄷㄷ)

그렇게 두 명이 종로경찰서로 호송되었습니다.

전경버스 안에서 여경들이 계속 지키길래, 전 여자가 아니니까 굳이 여자 경찰 분들이 안 지켜도 되는뎁쇼, 했더니 당황하면서 남자 경찰관을 부르면서,
뭐 저 체포해서 끌고 온 것도 여경 분들이라고 하더라구요.
전 완전 난리 중이라 여경인지 남자 경찰관인지도 볼 겨를도 없었는데,
어쨌건 왜 미리 말 안하고 잡혀 와서 말하냐고, 들고 오기 힘들었다고 여경 분들이 투덜거리시더군요.


전경버스 안은 창문도 못 열게 하고 다른 물건도 손 못 대게 하고 계속 감시를 하고 했으나,
목 마르다고 하니까 물은 주더라구요.


손은 까지고 긁힌 자국투성이 ㅠㅠ
몸싸움 과정에서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통증은 그때까진 별로 없었지만 저녁이 되자 팔, 다리, 허리도 매우 뻐근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도착한 게 1시 40분? 그쯤이었고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일단 처음에는 저희를 체포해온 경찰 분들 2분이 진술을 하시더군요.

경찰 분들 진술 끝나고 한~참 지나고 나서(4시쯤?) 저희 조사가 시작되었는데요.

제가 가방을 몸싸움 과정에서 다 떨어뜨려서 그 안에 있던 지갑 신분증 도장 다 못 갖고 와서 별 수 없이 지장을 몇 번 찍어야 했습니다.

옛날에 쓴 이 글에 나오는 형사 분이 제 이름을 알아보고서 "유** 씨 저 모르세요?" "법대로 48시간 꽉꽉 채워봅시다." "올린 글 잘 봤습니다." "시간은 오늘 내일 모레 많으니까 찐하게 이야기를 해보자구요" 등등의 말을 하여서 '아, 종로서로 오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좀 했지요.
저도 "형사님이 참 감정적으로 수사를 하시네요." "저도 그때 해주신 전화 잘 받았습니다." 등등 좀 언쟁을 벌이긴 했지만
다행히 그 형사 분이 아니라 다른 형사분이 조사를 맡아서 뭐 그 이후로는 별로 부딪치진 않았습니다.

조사는 2시간 정도 걸렸는데 형사 분 타자가 느려서 오래 걸린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플래시몹이 뭔지 잘 모르셔서 설명 같은 거 하기도 했구요
제 학력 같은 건 왜 궁금해하는지 모르겠더이다.
그리고 저를 집시법으로도 걸었는데, 미안하지만 늦게 와서 플래시몹은 참여를 못했는데, 플래시몹 참여를 한 적도 없고, 이걸 연행하는 것도 말도 안 된다, 뭐 이런 이야기했지요. 체포해가는 거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이유 같은 거 이야기하고...
근데 몇 분 동안 몸싸움했냐, 몇 m나 몸싸움했냐, 하는데 그 난리통에 그거 ㄹ어찌 기억해요;;



6시쯤, 조사가 끝나고, 민변에 부탁드린 변호사 분이 6시 넘어 와서 조서 대충 다 쓴 다음에야 변호사 분이랑 접견하면서 논의를 좀 하고,,, 수정을 좀 하고서 조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 중간중간에 제가 갇혀서 원래 오늘까지 해야 했을 일 몇 개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노트북 챙겨달라고 하고, 펑크난 일정들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하고,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등등의 일을 했지요.


그리고 면회 온 분들이 시켜준 저녁을 조사실에서 먹고 나서 7시 넘어서 유치장에 들어갔네요.
'



유치장 안에는 원형감옥 형태로 생겨서, 중앙에 있는 경찰들이 반원형으로 배치된 유치장 안을 한 자리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판옵티콘 모델이더라구요.

유치장 들어갈 때는 소지품을 다 내놓게 하고, 금속탐지기로 몸을 한 번 뒤집니다. 양말도 벗어야 하구요.
소지품 뒤질 때 경찰 분이 자꾸 반말하셔서 "죄송하지만, 존대말 써주실래요?"라고 했더니 "아 네, 그러세요. 알았어요. 당연히 그래야죠."라고 했는데 이게 비꼬는 말인지 정말로 반말 쓰는 걸 반성을 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이후로도 저 말고 다른 분들에게는 대부분 반말을 거의 섞어 쓰시는 걸 봐선 -┌

그리고 유치장 옆방에는 외국인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반말로 "시끄럽다. 조용히 해" 등등 다소 폭언을 하셔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 분은 말이 안 통해서 얼마나 갑갑할지.


그날은 워낙 피곤해서 들어가자마자 잠들었는데, 저까지 포함해서 그 방에 3명이 있었습니다.
 모포 같은 건 없었지만 난방이 잘 되어서, 뜨뜻하게 잘 자고 있는데 밤 9시인지 10시인진 모르겠지만 좀 자고 있으니 깨워서 모포 받으러 나오라고 해서 모포 받아 와서 깔고 덮고 잘 잤습니다.
오랜만에 11시간쯤은 푹 잔 듯... 다만 불을 다 꺼주진 않아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잤습니다.


아침에 7시인가 일어났는데 일어나서 모포 개서 반납하고 나서 아침밥을 먹었는데, 밥은 국이 고기국이라서 제가 먹을 수가 없어서 밥 김치 무침 같은 거, 이렇게만 먹었습니다.(제가 고기를 안 먹어요;) 김치만 좀 더 맛있었다면 먹어줄 만했을 텐데 -_-

화장실은 유치장 안에 각각 하나씩 있는데, 쪽문을 사이에 놓고 있고 격리되어 있질 않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에 앉아 있으면 목이나 가슴 위로는 다 보여요. 소리도 다 들리구요. 그리고 그리 깨끗하진 않았습니다.


옆에 다른 분들은 책을 많이 보시던데, 유치장 안에 책이 있고 요청하면 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만-

전 피곤해서 아침 먹고 또 잤습니다. ㅋ

이렇게 뜨뜻한 방바닥에서 일 걱정 없이 잘 기회가 또 어디있겠습니까.


그래서 푹 자는데 한 11시쯤 불러서 나가보니 2차 조사를 하더군요.
면회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딱 시간이 겹쳐서 공교롭게도 조사 전에 보지 못했습니다.

2차 조사는 주로 채증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진행되었는데요.
제가 속한 단체에 관한 것도 많이 물어봐서, 그 단체가 이번 행사 주최한 것도 아니고 조직적 연관이 있느 ㄴ것도 아닌데 왜 묻냐고 물었지만 별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굴만 몇 번 기자회견이나 집회에서 봤고 서로 통성명 한 적도 없어서 잘 모르는 분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는 사람이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기자회견 같은 때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모른다고 했더니 어제 면회도 왔는데 왜 모르냐고 형사 분이 뭐라고 하길래, (근데 어제 이분이 면회를 왔었나? 기억이;;) 저 말고 같이 잡혀온 박모 씨랑 아는 사이인가보라고 했지요...
근데 계속 추궁을 해서 아 진짜 모르는데 어쩌라고  -ㅂ- 이런 분위기로 좀 하다가
제가 전경버스 앞에 앉아 있는 사진 보여주면서 본인 맞냐고 하길래 맞다고 했지요. 옷이랑 머리가 특이해서 못 알아볼 일은 없겠다고.
그나저나 다른 형사 분이 계속 머리카락 길어서 여자인 줄 알고 여경들이 고생했다고 계속 태클 걸길래 좀 압뷁.


조서 쓰고 나서 의견 진술하는 칸이 있는데, 1차조사나 2차조사나 모두 비슷하게 썼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듯?

1. 잠깐 동안 가만히 서있는 플래시몹이 왜 연행 이유가 되냐.
2. 해산명령도 안 하고 다짜고짜 연행하는 건 적법하지 않다.
3. 적법하지 않은 것에 항의한 게 공무집행 방해가 되냐.
4. 몸싸움 과정에서 난 손팔 다 긁히고 까지고 상의까지 다 벗겨졌었는데, 경찰들 모자 벗겨지거나 한 것만 얘기하는 건 불공정하다.
5. 사건과 무관한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단체 정보는 왜 그리 묻는지 이해가 안 간다.

2차 조사 끝나고 면회 2번 하고, (면회실은 이중 삼중 벽에 막혀 있는데, 서로 말이 잘 안 들려서 마이크 쓰는데, 저쪽 마이크는 고장나서 나오질 않아;; 약간 힘들었습니다.)


점심은 도시락 사식을 사서 넣어줘서 그걸 먹었는데요. 반찬이 더 늘어서, 멸치볶음이라거나 샐러드 같은 게 좀 있긴 했는데, 고기 반찬들이 2개씩 있어서 그건 먹질 못했습니다. 대신 국은 고기국이 아니라 된장국이라 좋았습니다.




먹고 면회 온 사람들이 넣어준 책 (오버 더 호라이즌 ㅋ) 읽고 또 좀 자고 생각하고 그러고 있다가

5시 30분 정도에 저녁밥을 역시 도시락 사식 먹고 있는데 반쯤 먹으니까 석방 명령 떨어졌다고 먹고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반쯤만 먹고 덮고서 나와서 소지품이랑 받고
면회 온 사람들이 양말 넣어줬는데, 양말은 안에 뭐 숨기고 하는 걸 우려한 건지 그걸로 목이라도 맬 거라 생각한 건지, 유치장 안에서는 못 신어서, 나오면서 받아서 신었습니다.

소지품 돌려받고 밖으로 나오니 꽤 쌀쌀하더군요.

어쨌건 마중 나온 다른 활동가들이랑 만나서 저녁을 먹고 귀가. 에구구.

체포 이후부터 28시간만에, 유치장 입감된 지 약 22시간만에 나온 셈이지요.



그나저나 이제 벌금을 때리려나 어쩌려나.................................
만약 검찰이 기소해서 벌금 때리면 국가 손배 신청하기로 이야기하긴 했습니다.





결론 : 연행 그렇게까지 별거 없습니다. @_@ 근데 좀 시간 버리기이긴 한 듯.

그나저나 연행되고 하는 거에 너무 무감각해지면 안 되는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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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네요..ㅎㅎ^^;
    고생하셨습니다~

    2009.11.16 16: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고생하셨습니다... 푹 쉬고 나오셔서 다행이네요.

    2009.11.16 17:01 [ ADDR : EDIT/ DEL : REPLY ]
    • 쉬어서 다행이긴 했는데 ㅎㅎ
      며칠 더 있어야 한다 그러면 좀 힘들엇을 거 같습니다.

      2009.11.16 19:11 신고 [ ADDR : EDIT/ DEL ]
  3.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나라 꼴이 왜 이 모양인지요 ㅠㅠ

    2009.11.16 17:34 [ ADDR : EDIT/ DEL : REPLY ]
  4. 공현 ㅠ ㅠ 일단 잘읽었어 훋ㄷㄷㄷ 진짜 억울하기도 하고 경찰이 미친건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_= 진짜 부당했다 ㅋㅋ 에고에고 공현 언제한번 같이 이거가지고 이야기 꽃을 피워보자구 ㅋㅋㅋ 박여사도 같이

    2009.11.16 20:02 [ ADDR : EDIT/ DEL : REPLY ]
  5. 둠코

    수고했음. 다음엔 잡혀가지 맙시다. 그게 공현잘못은 아니지만, 안그랬으면 좋겠다고.

    2009.11.16 20:04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도 안 잡혀가려고 했... 큭 기록이 깨졌어

      2009.11.17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 둠코

      훗 기록을 세워 주겠어. 목표 30대??

      2009.11.18 00:28 [ ADDR : EDIT/ DEL ]
  6. 해밀

    허....너무 고생한다 난 모하는 거지

    2009.11.16 20:38 [ ADDR : EDIT/ DEL : REPLY ]
  7. 하아

    자괴감을 느낍니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나라 녹을 조금이라도 먹지 않았다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생각만이라는 것이 더러운 것이죠

    2009.11.16 21:57 [ ADDR : EDIT/ DEL : REPLY ]
    • 너무 자괴감을 느끼실 필욘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하는 거죠 ^^;

      2009.11.17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8. 오오 9시 뉴스 오오오 9시 뉴스

    2009.11.17 02:12 [ ADDR : EDIT/ DEL : REPLY ]
  9. 고생하셨습니다. ㅡ0-);; 어린 아이들과 광화문 광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면, 단체로 잡혀갈지도 모르겠군요. 잇힝!?

    2009.11.17 11:33 [ ADDR : EDIT/ DEL : REPLY ]
    • ㅋㅋㅋ 놀이하기 전에 일제고사로 인해 놀지 못하는 현실을 담은 거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 잡혀갈 겁니다 아마

      2009.11.17 14:11 신고 [ ADDR : EDIT/ DEL ]
  10. 욕보셨습니다.. 적법하지 않은 절차가 있다면 꼭 걸고 넘어가시길..
    가만히 서 있었는데 어떤 시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경찰의 임의해석같은데;
    포스터에 빨간색이 많고, '지령 전달'이라는 단어때문에 손해본 건 아닐지 농담 반으로 생각해봅니다 -ㅁ-

    2009.11.17 15:46 [ ADDR : EDIT/ DEL : REPLY ]
  11. 짜증나네요.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이 난리들인지... 광화문 광장에 순찰도는 의경들만 불쌍하죠. 이젠 군대와 의경 강도가 비슷할듯~ 찔리는 일을 하는 의경들..

    2009.11.17 19:45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광화문에서도 청와대까진 꽤 먼데 말이지요... 가만히 멈춰서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폭도로 변해서 폭탄 들고 러쉬할 줄 안 걸까요?

      2009.11.19 18:22 신고 [ ADDR : EDIT/ DEL ]
  12. 당고

    공현ㅠ_ㅠ 고생했어ㅠ_ㅠ
    다음에 연행되면 나도 면회나 갈까......(으응?)
    연행에 무감각해지고 그러지 마, 제발!

    2009.11.18 18:07 [ ADDR : EDIT/ DEL : REPLY ]
    • 면회 와도 별로 할 거 없으 ㅎㅎ

      나도 무감각해지기는 싫은데, 주위에서 자꾸 잡혀가니 영;

      2009.11.19 18:22 신고 [ ADDR : EDIT/ DEL ]
  13. 음 안녕하세요 저도 이 사건 신문기사 읽고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에 게시글을 썼는데 엮인글이라고 되어있어서 한번 들렀습니다. 그나저나 읽고나니 우리나라 경찰이 정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이 드네요. 진짜 좀 갈아엎어야할 정도로 진짜 심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적절하지 못한 비유이긴하지만 요즘시대에 저런식의 대처를 한 경찰은 마치 2차세계대전의 추측군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생각이 나게 하네요;ㅁ;

    2009.12.13 16:1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1. 12. 20:58


어김없이 쌀쌀한 수능날입니다.
그래도 작년 수능날보다는 많이 따뜻한 것 같습니다.

문득 세어보니 제가 수능을 본 지도 4년이 흘렀습니다.
4년동안 이 입시경쟁의 현실 위에 뭘 해놓았나, 최소한 이 우울한 입시경쟁의 현실에 타격을 줄 만한 근거지라도 꾸려놓았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올해도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에서 수능날에 입시경쟁의 현실을 비판하고
입시경쟁교육 폐지 대학평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 기자회견에 참여한 것도, 안티수능(입시즐)일 때부터 세어보면 4번째네요. 입시폐지로는 3번째고...)


원래 이번에는 수능거부 학생이 없을 것 같았는데,
수능 바로 전전날에 간디학교에서 꾸려진 수능폐지 1인시위 모임의 고3 학생 분들이 연락이 와서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입시경쟁교육 중단
대학평준화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도 굉장히 오래 전부터 해온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대선에 나와서 "서울대 폐지론"이라는 이름으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식의 대학평준화를 내건 것부터 세어봐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한 8년 되었나?


그런데 그런 목소리에 귀기울이지는 않고 중고등학교들도 전격 서열화시키고
학생들에게 더 빡세게 공부를 시키고 학생들을 괴롭히는 이명박 정부는... 생각하면 암울합니다 에휴;;
(뭐 노무현 정부라고 귀기울인 건 아니지만;)


수능 개탄이 아닌 대학평준화로   하재근 씨가 레디앙에 쓴 글입니다. 하재근 씨의 글을 100% 다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 글을 비롯해서 교육 관련 글들은 적절하게 나오는 글들이 많은 듯.

여러분이 아무리 수능대박을 외쳐도, 상대평가가 기본인 대학입시와 수능에서 누군가의 수능대박은 누군가의 수능쪽박을 의미합니다 ㅠㅠㅠㅠ


수능을 자격고사화해야 합니다. 대학을 평준화해야 하구요.
그리고 대학평준화 뿐 아니라 나아가서
대학을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전국 공동행동 "경쟁의 벽을 허무는 당당한 반란"


간디학교 1인시위 모임에서 준비해온 피켓 중 하나입니다. ^^


그밖에도 이날 기자회견에는 청소년, 학생 분들도 꽤 많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입시와 교육 문제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들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할 텐데요.


홍세화 씨의 발언입니다. 입시경쟁교육, 학생들을 점수로 줄세우는 획일적인 교육, 대학서열화, 학벌 차별 등에 대해 발언하셨던 것 같습니다.(추워서 잘 못 들었어요 ㅎㅎ;;)


간디학교 1인시위 모임에서 준비해온 다른 피켓입니다.

제 친구가 죽었습니다.
SKY 못 가면 하늘 볼 권리도 없나요?
공부를 하지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피 묻은 펜은 싫어요!
수능폐지 대학평준화



퍼포먼스 준비 중입니다. 퍼포먼스에는 저와 4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닉네임 옥션교주(ㅋㅋ;),
역시 간디학교 수능 반대 1인시위 모임인... 고3 학생임에도 수능 시험장에 안 간 이 키 큰 아이가 수고했습니다 ㅋ

퍼포먼스는 학생을 가두고 있는 학벌차별, 교육비, 살인적 입시경쟁 등을,
교사 보호자(학부모) 학생이 사방에서 잡아당겨서 해체하고 무너뜨리면, 안에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무상교육" "꿈을 꿀 수 있는 교육"이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 요즘 하는 고민이, '수능거부'란 무엇일까 하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수능거부, 라고는 하지만 수시에 합격하거나 해서 수능을 안 봐도 되는 사람이 수능을 보지 않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그렇다면 수능 거부는 사실 수능시험을 안 본다는 것과 동시에 대입거부, 대학진학 거부를 의미하는 거겠죠?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은 의외로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학생들을 일찍부터 모집하고 설득해서 수능거부 선언을 조직해보면 몇 명이나 나올까요?
(수능을 보지 않는, 대학을 안 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지금의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을 거라고 딱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요)


지금처럼 청소년활동가들 중에서, 대안학교 학생들 중에서 수능거부자들 1~2명이 나서서 하는 것보다는 재밌고 생산적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수능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의 이후의 삶까지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대안이나 커뮤니티가 마련되어야겠죠.
수능거부운동하면 안돼요? (레디앙)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찾아왔습니다.
신종플루로 학생들의 건강이 걱정스러워도,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 물고 보는 수능시험.
매번 "수능대박"을 외치지만, 모두가 대박이 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시험을 잘 보는 건 다른 학생을 떨어뜨리는 거죠...

왜 학생들을 이런 경쟁 속으로 내몰아야 하나요?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면서 성적과 학벌로 학생들을 차별할까요?

이제 경쟁의 벽을 허물고 당당한 반란을 외칩니다.
입시경쟁으로 굴러가는 교육이 아니라 다른 교육을 상상해봅니다.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교육을 함께 만들기 위해!


교사들을 경쟁시키고 입시공부 더 잘 시키는 교사들에게 유리할 정부의 '교원관리제'
"미래형"이라는 이름으로, 국영수 입시과목을 더 늘리고 일제고사를 시킨다는 '미래형 교육과정'
학생들을 더 괴롭게 하는 고교서열화 시험지옥 MB식 경쟁교육도 꺼지라고 합시다.ㅋㅋ



2009년 11월 14일 오후 2시 보신각으로!!
(사전 퍼포먼스에 같이 할 분들은 12시30분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와주세요 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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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조

    이거 자세히는 못봤는데
    수능을 거부하고 수능을 안봐도 되는 전형으로 대학에 가겠다고했다던 소문이있는데
    사실인감? 만약 그렇다면.. 촘... -_- 이라고 생각했었어

    2009.11.30 13:49 [ ADDR : EDIT/ DEL : REPLY ]
    • 1인시위한 4명인가 중에서 2명인가 3명은 아예 대학진학을 안하신다고 한 거고~
      찬욱(옥션교주)+1분인가는 이미 수시 붙었는데 여하간 입시 비판하는 뜻에서 같이 한 거얌

      2009.11.30 15:46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11. 11. 19:03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찾아왔습니다.
신종플루로 학생들의 건강이 걱정스러워도,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 물고 보는 수능시험.
매번 "수능대박"을 외치지만, 모두가 대박이 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시험을 잘 보는 건 다른 학생을 떨어뜨리는 거죠...

왜 학생들을 이런 경쟁 속으로 내몰아야 하나요?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면서 성적과 학벌로 학생들을 차별할까요?

이제 경쟁의 벽을 허물고 당당한 반란을 외칩니다.
입시경쟁으로 굴러가는 교육이 아니라 다른 교육을 상상해봅니다.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교육을 함께 만들기 위해!


교사들을 경쟁시키고 입시공부 더 잘 시키는 교사들에게 유리할 정부의 '교원관리제'
"미래형"이라는 이름으로, 국영수 입시과목을 더 늘리고 일제고사를 시킨다는 '미래형 교육과정'
학생들을 더 괴롭게 하는 고교서열화 시험지옥 MB식 경쟁교육도 꺼지라고 합시다.ㅋㅋ



2009년 11월 14일 오후 2시 보신각으로!!
(사전 퍼포먼스에 같이 할 분들은 12시30분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와주세요 ㅋㅋ)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휴대폰 액정클리너도 있다는거!
   꽁짜니깐 많이들 받아가서 달고 다니고, 나눠주세염 (▶클릭!)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가 형해화되면서 뭔가 캘린더사업화된 집회.

이번 집회하고나서 확 개편을 해버려야지...


수능을 반대하는 고등학생들의 1인시위와 교육단체들의 기자회견 등도 수능 당일에 있습니다. 바로 내일이네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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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0. 28. 13:41

토론회 ~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의 현주소
학생의 날, 전국 중고생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개선 방안 토론회

2009년 11월 1일 일요일 오후 1시30분 ~ 오후 4시
장소 : 서울여성플라자(대방역) 4층 아트컬리지3



흑흑 두달 동안 우릴 괴롭힌 학생인권실태조사, 드디어 여기에서 결과발표 합니다 ㅠㅠ

많이 와주세용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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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걸어가는 꿈이 어떤 카테고리인지 알 수가 없어... 홍보???

    2009.10.28 18: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0. 11. 22:02


또 반복되는 일제고사에 대해, 사진들과 같이 만든 포토에세이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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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랄라

    우선 이 댓글은 위 글 또는 블로그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공부를 조금 더 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상이야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보통이기는 한데,

    적어도 정보의 섭취는 편식하면 곤란하지요.

    요즘 유윤종씨의 글을 보면 근거 자료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있는 것 같군요.

    예전과는 다르게 논리적 모순도 많이 보이고 말입니다.

    결론은?

    그냥 뻘플이라는...(흐흐흐...)

    2009.10.12 15:31 [ ADDR : EDIT/ DEL : REPLY ]
    • 활동가니까요. 활동가라는 포지션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는 불만이 별로 없습니다. 특정한 정세에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올리는 글들이니까요.

      근데 공부야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할수록 좋겠지요? ^^ 뭐 저는 제가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 공부할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한테 공부는 수단이니까요.

      근거 자료가 치우쳐져 있냐 어쩌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자료가 타당하냐 타당하지 않냐가 중요하지요. 반대되는 근거가 있으면 제시하시면 됩니다. 제가 무슨 연구자도 아니고 모든 정보를 다 종합해서 분석할 입장도 아니고, 정보를 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 생각지 않습니다. fact를 벗어나지 않는다면요.

      그리고 "논리적 모순"이 보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논리적 모순인지를 논리적으로 지적하시기 바랍니다. '모순'이란 말이 포괄적으로 남용되는 말이긴 합니다만 - 사실은 뭉뚱그려서 지적해도 될 만큼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닐 텐데요?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논지가 중복되거나 어느 정도 상충되거나 정리되지 못한 글들이야 제법 많겠지만 명확하게 '논리적 모순'이 있는 글은 잘 못찾겠네요. '요즘'에는 바빠서 제가 직접 쓴 글 자체가 별로 많지 않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렇게 써놓고 "그냥 뻘플이라는..."이라고 달아서 그냥 넘어가려는 모습이 마치 헌법에서 노동3권 빼자고 했다가 나중에 취소한다고 하신 누구를 연상시키기도 하네요. 수습용일지 몰라도, 그런 태도가 불쾌한데요? 그런 식으로 다시지만 않았어도 그리 '불쾌'하게 받아들이진 않고 그냥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법도 합니다만.

      제가 이렇게 날 서게 말하고 "뻘플에 대한 뻘답일 뿐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하면 되는 거겠죠? ^^

      (애초에 저를 이 공간에서 '유윤종씨'라고 부르는 것에서 오는 몰이해에 대한 불쾌감에 더해서 말이지요.)

      2009.10.12 21:04 신고 [ ADDR : EDIT/ DEL ]
    • 흐흐흐 ggg

      흐흐흐 .....예날에 울 마을엔 미친넘이 있었는데...매일 같이 흐흐흐...하면 웃고 다녔어요.....흐흐흐...미친넘이지요...흐흐흐...

      2009.10.13 09:19 [ ADDR : EDIT/ DEL ]
    • 라랄라

      흐흐흐 ggg / 님은 정말 미치신듯?

      불쌍하네요.

      공현 / 우선, 이 공간에는 이 공간에서 본명을 밝히는 것이, 공현씨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어떠한 정보도 없는지라, 본의아니게 무례를 범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편식하게 되면, 과연 이 정보가 Fact인가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보의 편향된 섭취와 그로 인해 왜곡된 사실(공현씨의 글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을 교조적으로 강요하는 행태는 소위 좌파 혹은 진보 지식인들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고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저 역시 공현씨의 방향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한 사람이고, 일정 부분의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방향의 활동가들에게서 보여지는 지나치게 배타적인 태도와 교조주의에 끔찍할 정도의 거부감을 가지고있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그가 옳은 점은 무엇이고 그른 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류의 종교적인 오만함으로, 상대방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더군요.

      대략 5년 전(?) 즈음의 공현씨에게서는 적어도 이런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고, 글도 비교적 다수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완성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이 많아서 사람이 날카로워진 것인지,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가 보이는 듯 하고, 글은 예전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논리적 모순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글의 완성도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좋겠군요. 이점은 유감입니다.)이기에, 이런 글을 적어본 것이지요.

      공부하라는 말은, 위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의미이자, 조금 쉬어 가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제 댓글이 상당히 경직되어있는 듯했고, 잘못하면 수구로 인식될 소지가 있어서, 나름 위트를 주기 위해 사용한 뻘플이라는 표현을 수습용으로 받아들이셨다니 역시 유감입니다.

      필답에서의 감정 표현이 쉽지 않군요.

      2009.10.14 12:58 [ ADDR : EDIT/ DEL ]
    • '본명'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쾌한 게 아니라요.
      일단 '윤종'이 아니라 '유윤종'이라고 성을 붙인 것에 대한 불쾌감도 있긴 하지만,(제가 성을 일부러 안 쓰니까요.)
      그런 걸 떠나서 '라랄라'님의 덧글을 보면 '라랄라'님이 평가하거나 논의 대상으로 삼는 건 제가 쓰는 글이거나 제 블로그의 내용인 것 같군요. 일단 온라인 외의 공간에서 저를 잘 알고 있거나 저와 면식이 있는 분이 아니라고 느끼는데, 그렇다면 제 상식에서는 제가 온라인이나 블로그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인 '공현'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라랄라'님의 의도를 추측할 수는 없지만,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굳이 '공현'이 아니라 '유윤종'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의도가 의심스럽달까 불쾌하달까 그런 거죠. ^^

      2009.10.15 22:16 신고 [ ADDR : EDIT/ DEL ]
    • 정보를 편식한다고 하신 의미 자체가 모호하긴 한데, 특정한 정치사회적 입장에서 생산되고 편집된 정보를 많이 접한다, 라는 의미라면, 글쎄요 그자체만으로 그 정보가 fact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건 '편식'이라는 말의 범주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느낌입니다만. 어떤 정보의 사실성이나 해석이 쟁점이나 논쟁거리가 될 경우에 그것에 상반되는 자료들을 참고하거나 찾아보기를 거부한 기억도 없고 말입니다.
      뭐 외국 사례 같은 걸 일부 정보를 편집된 걸로 잔뜩 짊어지고 오는 것도 아니고,(전 고의로 외국 사례는 잘 논거로 안 쓰려고 합니다만) 기본 정보에 속하는 1, 2차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정보의 '편식'이 어째서 정보의 사실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지를 막연하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먼저 논하셔야겠군요.


      제 입장에서는 교조주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딱 잘라 말하실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태도가 독선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이전에- 이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고 또 고수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독선적이라거나 배타적이라거나 교조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질적인 차이가 있는 걸까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나 표현의 차이이거나 서있는 맥락-위치-역할의 차이이거나 정도의 차이는 아닐까요?
      타인에 대한 존중,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이라는 말은 타인이나 다른 의견에 대한 불간섭, 무관심을 의미하는/전제하는/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라이어게임>에도 나오지요?) 상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독선적이거나 교조적이거나 배타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결국 일종의 전략적인 문제제기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독선, 교조, 배타성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도덕판단이 아니라 말이지요. 그 태도나 표현 방식 등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같은 게 아니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태도나 표현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대한 비판이어야 온당할지도 모른단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판단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수단적인 문제라면 '끔찍한 거부감'을 가지신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교조주의나 독선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필요하게 될 겁니다.
      (* 라랄라 님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일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에는 태도상으로는 '안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이긴 한데)

      "배타주의나 교조주의는 안 된다"라는 교조주의에 대한 회의에까지 나아가지 못하신 분에게 더 이상 많은 것을 설명하기가 귀찮다, 라고 말하는 것은 교조주의이려나요? ㅋ
      근데 또 저의 삶은 대부분의 경우에 저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계몽'이긴 합니다. 제 '계몽'은 내가 진리니까 멍청한 니들을 인도해줄게, 라기보다는 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동일화해나가는 과정이긴 한데- 이게 실제로 구별이 딱 되시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요 ㅎㅎ


      글의 완성도가 다수에게 공감을 받냐 안 받냐로 판가름 나는 것이거나, 또는 완성도가 높은 글이 공감하는 수를 늘려준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ㅂ-
      왜 완성도를 논하는 것과 공감하는 사람의 수가 연결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완성도를 판별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제 글의 경우에는 혼자서 수필 쓰던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그다지 다수에게 공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라랄라님이 말씀하시는 '다수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의 실체가 궁금하긴 한데, 일부러 기획적으로 맥락에 맞춰서 시류에 편승해서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쓴 글이 아니라 제가 제 사상 체계의 일부를 날 것으로 드러낸 글이거나 청소년인권에 대해서 래디컬한 입장에서 쓴 글은 항상 그다지 다수의 공감이나 지지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지나 공감은 글의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글의 내용이나 메시지, 또는 제가 얼마나 눈치를 봐가며 썼느냐의 문제가 더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데요 ㅎㅎ
      글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지적 자체는 동의합니다. 글을 쓰는 데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과 사유, 표현과 구성을 다듬을 수 있는 여유 자체가 부족하니까요. 정권을 바꿔주시면 짬이 좀 더 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문제 외에도 제 사유 자체가 복잡해지고 넓어지면서 그 사유의 맥락에서 일부만 잘라다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논리적 모순"이 조금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 라고 하고서 이런 어휘 선택을 잘못하신 것을 가지고 '유감입니다'라고 자평하시는 건 역시 적절한 어휘 선택이 아닌 듯합니다. ^^;;;
      저는 이런 식의 격식을 차리는 듯한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아, 참- 저는 제 일을 실질적으로 줄여줄 수 있고 그렇게 같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쉬엄쉬엄하라거나 좀 쉬어가라거나 하는 말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수용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씀만 고맙게 듣겠습니다. (그런 걸 수용하려고 노력하다보면 화딱지만 나거든요)


      마지막으로
      경직된 내용에 대해서 내용을 경직되지 않은 방식으로 고치거나 경직된 내용을 그대로 밀고 나가지도 않고, '수구'로 인식될까봐(근데 저는 저에 대한 비판이 '수구'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걱정이었다면 그냥 그런 걱정을 솔직하게 쓰시면 될 것을, '뻘플'이라는 자기 덧글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방식으로 덮으려고 하는 것(이런 게 '수습'이 아닌가요? 제가 알고 있는 '수습'의 의미가 좀 다른가봅니다)은 그리 바람직한 방식은 아닌 듯하다고 말씀드려봅니다.
      세간의 상식과는 항상 차이를 보이지만 제 상식에서는, "뻘플"처럼 자기 의견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식으로 정리하는 게 필요한 건 자기가 과하게 권력/권위를 가지고 있거나 자기가 발언하는 것이 지나친 영향력을 가질까 조심스러울 때 보통 쓸 만한 방식이지, 경직되어 있는 걸 부드럽게 하거나 '잘못하면 수구로 인식될 소지'가 있어서 예방하거나 할 때 주로 사용할 만한 방식은 아닌 듯합니다. 위트라고 하셨지만 그리 재미있지도 않았고;;

      2009.10.15 22:46 신고 [ ADDR : EDIT/ DEL ]
  2. 우왕 퍼가요 진보넷채널으로 ㄹㄹ

    2009.10.12 16:0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4. 9. 15:06
오답 승리의 희망 10호에 편집진 부분에 쓴 글.






[커져버린스토리] 방학이 방학다워야 방학이지!



  ‘개학’을 이야기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방학’이다. 방학 없인 개학이 있을 수 없고 개학 없인 방학이 있을 수 없으니, 오호 돌고 도는 음양의 원리(??)로구나!
  그런데 한국이 아닌 외국에도 방학이 있을까? 아마 있겠지? 그런데 그 방학은 한국의 방학이랑 같은 방식일까? 이런 궁금증에 영국 아이들의 일반적이고 평온한 학교 생활을 묘사한 유명서적인 『해리 포터』를 들춰보니까 영국의 학교들은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아주 긴 여름방학과, 2주 정도 되는 크리스마스 방학. 아하 영국은 여름방학이 길고 겨울방학이 짧구나-_- 이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래도 방학의 형태는 다르지만 방학 제도는 학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있는 것 같다는 게 요지다.
  방학은 세계적으로 학교가 있다면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제도일 거다, 아마. 왜 그럴까? 어쩌면 ‘방학’이라는 게 그냥 여름이랑 겨울에 너무 덥고 추워서 수업하기 힘드니까 학교 나오지 말아라, 하는 게 아니고 교육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제도일지도 모른다. 안 그러면 일 년 내내 적당히 쾌적한 날씨이거나 날씨가 비슷한 지역에선 방학 없이 365일 수업만 하게?

  이렇게 질러놓고 보니 “방학의 교육적 효과” 같은 논문이라도 대령해야 할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찾지 못했다. 교사들이 방학 중에 연수도 받고 연구도 하고 수업 준비도 하고 평가 업무도 하면서 많은 일을 하기에 방학 기간이 필요하다는 글은 찾을 수 있었지만, 교사들 이야기는 「우리교육」이나 「교육희망」이나 「교육신문」 같은 뭐 그런데서 다룰 테니까 굳이 오승희에서 그 이야길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교사들도 방학이 필요하구나, 방학 때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받는 건 아니구나, 정도만 머릿속에 넣어두자.


쉴 권리, 놀 권리!

  쉬고 노는 것은 중요한 인간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에는 “휴식할 권리와 여가를 즐길 권리”가 나와 있고,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적함한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청소년인권단체가 발표한 2008청소년인권선언에도 “방학, 휴가, 공휴일이나 쉬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하며 “청소년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고 써있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 시간이자 여가 시간으로서 방학은 보장되어야 한다. 입시경쟁이라는 괴물이 탐욕스레 입을 벌리고 방학기간 중에도 보충수업과 사교육에 찌들어 살라고 외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봉사시간 뭐 그런 규정들은 방학 중에도 강제적인 자원봉사 노동(‘강제자율학습’과 비슷하게 들리는?)으로 청소년들을 내몬다. 방학이 방학다워야 방학이지, 이건 뭐….
  방학이 방학다워야 하긴 하는데, 또 한편으로, 그것도 과연 바람직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애들이 공부 빡세게 오랫동안 한다면서 미국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는데, 오바 하지 마시라. 미국 청소년들 다 잡을 셈인가. 한국이 OECD 국가 중에 평균노동시간과 공부시간이 가장 긴 편에 속한다. 만약 방학이 방학다워진다고 해도, 학기 중에는 이렇게 빡세게 입시지옥 속을 구르다가 방학 중에는 쉰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지 않나.
  그러니까, 좀 일상적으로 쉴 권리 놀 권리가 보장되면 좋겠다는 거다. 반강제적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하고 강제로든 자발적으로든(?) 입시공부와 취업준비에 매진할 것을 강요당하는 학교. 그 속에선 동아리든 취미 활동이든 정치 활동이든 입시경쟁과 좀 거리가 있는 걸 하려면 적잖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가 홀로 그런 체제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낙오자’나 ‘날라리’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방학을 방학답게 만드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쉬고 싶을 땐 봐가면서 쉬엄쉬엄 할 수 있는 교육. 아침7시부터 밤10시까지 잡혀있지 않아도 되는 학교. 강제로 봉사시간을 채우려고 일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방학에도 쉬고 방학 아닐 때도 여가가 있는 그런 삶….


방학의 ‘교육적’ 의미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방학이 그냥 쉬는 기간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교육과 학교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학교를 쉬는 것 = 교육을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방학’ 때 학교를 안 나간다고 해서 교육을 않는 것은 아니다.
  이반 일리히 같은 삐딱한 학자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게 대부분 교사나 학교로부터 배운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며, 잘 보면 학교 정규교육과정 외에 다양한 경험들이나 다른 경로로 배우는 게 더 많다는 것이다. 교육이 학교(또는 학원 등)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단 것은 일종의 우상 숭배다. 심지어 학교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바보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학교 없는 사회』(이반 일리히), 『바보만들기』(존 테일러 게토) 등을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방학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고 학교를 다니는 학기는 훼이크라고. 학기 수업이 완전 훼이크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학교를 다니지 않는 방학 기간 또한 굉장히 유의미한 교육 과정일 수 있다는 정도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는 사회로부터 청소년들을 격리시킨다. 학교에서도 물론 또래들/교사들과 부대끼면서 사회 생활을 익혀나가긴 하지만, 그래도 협소한 학교 교육과정은 실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과 경험들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학교에서 주는 지식들은 ‘죽은 지식’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방학이라는 기간 동안 학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과 체험들을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건 캠프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다른 활동일 수도 있다. 그냥 친구들이랑 뛰어노는 것일 수도 있다.학교에서 받는 것만 교육이라는 생각을 벗어나보자.

  그러나 이런 방학의 의미가 실현되는 일은 멀게만 보인다. 우리는 방학 중에도 입시교육에 찌들어 살기 십상이고, 청소년들에게 적절하고 저렴한 놀이 문화나 대안적인 교육 컨텐츠들은 부족하기만 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외쳐본다. “방학이 방학다워야 방학이지!!!”





방학이 싫고 개학이 좋을 수도 있다!
  이번 커져버린스토리에서는 대부분 청소년들이 방학을 좋아하고 개학을 싫어한다는 느낌으로 글을 쓰게 됐지만, 방학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렇게 보고 싶었으면 방학 때 연락해서 만날 것이지 방학 때는 잘 안 만나다가 “개학하면 친구들 보니까 좋아요.”라고 하는 성격 파탄자들은 제껴두더라도 말이다.
  우선 대한민국의 허술한 복지제도 때문에 원치 않게 기아체험을 하고 있는 결식 청소년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은 학교 급식 외에는 안정적으로 끼니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방학을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좀 제대로 식사권, 생존권을 보장해라!
  그리고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학교에서 학생들이 원치 않는 방학을 강행하는 경우도 있다. 1989년에 중고등학생들이 한창 학교민주화, 전교조 교사 복직 등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학교 점거하고 했을 때는 학교들이 학생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일찌감치 강제로 방학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이런 방학에 반발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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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4. 5. 12:34

계간 청소년문학 2008년 여름호...인가 실렸다고 했나?;

여하간 어느 정도 면식이 있는 이계삼 선생님의 글. 읽으면서 확실히 '글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다지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논술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 이계삼(밀성고 교사)

 

 

 01.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글의 제목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정리한 러시아 민담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따왔습니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지요. 파홈이라는 욕심 많은 농부가 새 땅으로 이주해갔는데, 그곳 촌장이 1000루블만 내면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걸어 돌아오는 데까지를 모두 주겠다고 합니다. 파홈이 환장을 해서 정신없이 내달리다가 해 떨어질 무렵 목표지점에 기진맥진해서 도착했는데, 결국 거기서 쓰러져 죽고 맙니다. 죽은 파홈의 시신을 일꾼들이 땅을 파서 묻었는데, 파홈에게 정작 필요했던 땅은 제 시신을 묻을 만큼의 자리면 됐다는 겁니다.
  이 글을 부탁받고 며칠 이런저런 생각을 굴려가다가 문득 저 러시아 민담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에게는 과연 얼마만큼의 논술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라는 질문이 간절해 집니다. 논술 교육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습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처럼,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고발하지 않고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는 허위의 행렬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까지 논술교육이 내려가 있지만, 사실 초등학생들, 특히 저학년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를 논술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은 범죄적인 행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등교육에서 이루어지는 논술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후퇴한 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좋은 삶’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굳이 긴요하지 않은 능력을, 그것도 중등 교육 과정에서, 그 문제를 출제한 교수들도 엉터리 답안을 제출하기 일쑤인 이 고난도의 시험을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논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급격히 커졌습니다. 아시다시피 2008년부터 시행된 대입제도와의 관련 때문이지요. 지금은 오락가락하는 중이지만, 입시에서는 어떻게든 2008년 이전보다는 앞선 자리를 차지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하루 동안의 학력고사로 '한 방'에 입시를 끝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는 3년동안의 내신과 수능시험과, 논술․면접과 같은 대학별 고사까지 치러야합니다. 내신과 수능은 그나마 학교 교육과 연관이라도 있지만, 입시 논술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따로 반을 만들고, 별도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를 두고 ‘옥상옥(屋上屋)’이라고 하지요. 집 위에 집을 올리고, 거기에 또 집을 올리는 형국입니다. 교사는 지치고, 학생들은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의 집’은 위태로워집니다.
  그래도 논술은 그 자체로는 '좋은 거'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교육 현장에 잘 뿌리내리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무어든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것이 실제로 활용되는 사회적 맥락이고, 그것의 영역과 범위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적정선’을 지켜주는 것은 그래서 몹시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감미로운 것들도 가장 시어빠진 것이 될 수 있다네. 백합꽃이 썩을 때 잡초보다 훨씬 나쁜 냄새를 풍긴다네." 이런 시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한계치를 넘어서면 그 순간부터는 파괴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이 논술이란 놈이 저 구석진 자리가 아니라 입시를 향한 꼭짓점에 자리 잡고 있다보니, 이 놈이 중요한 것들을 빼앗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의 문학적 상상력, 감수성과 관련해서 논술은 상당 부분 이들을 잠식하고 퇴화시킬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 글은 그것들의 관계도를 조금이나마 밝혀보려는 시도입니다.


02.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저는 며칠 동안 틈틈이 교무실 캐비닛에 보관해 두었던 아이들의 글을 꺼내 읽었습니다. 저 또한 다른 여러 국어 선생님들처럼 글을 써서 같이 읽고 나누는 수업을 비교적 오랫동안 해 왔는데요, 우연한 계기로 아직 제 손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글쓰기 공책들입니다. 졸업하고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이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잘 살고는 있는지 그리워지기도 했고, 새삼스럽게도 국어 선생이라는 자리가 참 복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한 학생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논술반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여러 권의 책을 돌려읽으며 서로 짤막한 독후감들도 나누었는데, 포리스터 카터라는 미국 작가가 쓴 체로키 인디언의 후예인 ‘작은 나무’라는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의 독후감의 일부입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통나무. 밤톨만한 영혼. 머릿속이 숫자로 가득 찬 내 모습과 닮은 것 같다. 남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심. 애써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마치 우연히 그런 것처럼 눈이 닿는 자리에 욕심이 묻어있는 듯하다. 충분히 안 쓰고도 살 수 있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이 말은 가시가 되어 때맞춰 고개를 들곤 한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어린아이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친구가 뒤떨어져 있으면 어딘가에 서서 기다려주는 마음이 있었던 그때. 앞서든 말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쓸쓸히 뒤에 혼자 남지만 않는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 이 생각은 해볼 겨를조차 없었다. 친구들도 나처럼, 따라잡을 수 있도록 기다려줬으니까. 내 것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손에 넣으려고도 해보았지만, 그 일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욕심 탓에,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내 영혼은 얼마만할까? 욕심을 가질수록 마음을 다친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다친 그 마음도 '영혼의 마음'이 분명하다. 마음을 다치지 않고 얼마든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 영혼이 아닐까 싶다. 영혼을 이해한다면….

  이 글은 책에 대한 짧은 독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시적인 여백과 울림을 가진 아름다운 에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니 그 학생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 학생은 시골 교회 목회를 하시는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독일로 유학을 가시는 바람에 7년간 독일에서 살았습니다. 약사였던 어머니가 생계를 잇기 위해 자식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그 학생은 말수가 적지만, 진중하고 사려깊은 여학생이었습니다. 문제는, ‘스피드’를 강조하는 한국식 교육에 좀처럼 적응을 못했다는 거지요. 언어영역 시험 100분 동안 좀처럼 60문제를 다 풀지 못해서 항상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책도 아주 느리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처절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아 늘 보기 안쓰러웠습니다.
  다행히 논술 수업은 재미있게 따라왔습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날카로운 통찰도 보여줬고, 위와 같은 빼어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이 써내는 논술글은 보기가 안타까웠습니다. 논술은 뼈대가 단순한 글입니다. 제시문이 말하는 바에 대해 설명하고, 제시문간의 연관관계를 밝히고, 그에 바탕해서 자신의 주장을 예증하면 되는데, 이처럼 생각이 많고, 생각과 생각간의 매듭은 느슨하되 그 속에 풍부한 서정을 감추고 있는 학생들, 그것들의 졸가리를 세울 지성은 아직 배양하지 못한 학생은 논술을 끔찍하게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아예 논술문에 대한 답을 써 내지 못하거나, 질문이 원하는 서너 가지 요소 중에서 자신에게 와 닿은 한 두 문제에 대해 깊숙한 이야기를 하다가 분량을 다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의 에세이를 읽는 일은 경탄의 연속이었지만, 논술문 첨삭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재수를 하면서까지 한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심리학 공부를 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이를 포기하고 아버지가 계시는 독일로 곧장 유학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가끔 연락이 오는데 그곳 대학생활에 다행히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03.

  대개 백일장에서 상을 타오는 학생은 모범생들이고, 그래서 학업 성적과 글솜씨의 상관성이 높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면 실상은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백일장 입상용(用) 글’이 따로 있고, 거기에서 상을 타오는 학생들은 백일장 입상에 필요한 문법을 잘 체득하고 있습니다. 읽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잘 짜맞추어진 감동 없는 글들이 많습니다.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제가 보기엔 학교 교육에서 학업 성적과의 상관성이 제일 낮은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찍부터 바른 글쓰기 교육을 위해 애써온 한국글쓰기연구회 선생님들이 펴낸 책들이 있습니다. 중학생들의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보리), 고등학생들의 글은 <날고 싶지만>(보리)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깜짝 놀라는 것은 뜻밖에도 실업계 학생들이 정말 생생하고 진솔한, 감동적인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은 제게도 비슷한 체험들이 있습니다. 제가 교사 생활하면서 읽었던 가장 감동적이고 우수한 글들은 논술이나 백일장과 같은 강력한 보상 체제가 작동하는 틀 속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들은 가정 형편이나 성적이 좋지 않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이 많음에도 나름의 감수성을 다치지 않고 지켜온 학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스스럼없이 써 내는 그런 글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지금도 떠오르는 글들이 몇 편 있습니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거의 싸움 분야의 ‘통’(아마 한자어 統(통)에서 유래된 듯한데, 도시에서는 ‘짱’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기선 ‘통’이라고 합니다)으로 통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끔 술이 덜 깬 채로 등교해서 종일 엎드려 있기도 했는데, 그 친구가 3학년 독서 시간에 쓴 글이 생각납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나는 원치 않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서열을 재기 위한 싸움에 종종 불려나갔다. 그 때의 고요한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싸움이 끝나면 내 주먹은 피에 젖어 있었고, 나를 따르는 친구들도 늘어났지만, 이상하게 싸움이 싫어졌다. 지금 나는 일생토록 함께 하고픈 존경하는 선배가 있는데, 그분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 글을 읽어주던 시간, 여학생들이 껌뻑 넘어가고, 녀석은 붉어진 얼굴로 연신 손사래를 칩니다. 아마도 녀석은 그 글을 통해 제 맘속에 똬리 틀고 있던 소망, 이를테면 남자들의 약육강식의 힘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픈 꿈을 꾼 겁니다. 실제로 그 학생은 소망처럼 기능대학에 진학했는데, 군제대후에 취업해서 착실하게 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른 한 여학생의 글입니다. 역시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그 글은 밀양장에 내다 팔기 위해 콩이야 팥이야, 산나물을 뜯어 보자기에 싸서 시내로 나오는 할머니들로 가득 찬 아침 등교 버스의 모습을 묘사한 글이었습니다. 지금도 제게 잊혀지지 않는 부분은 “팔걸이에 나란히 매달린 자기의 희디 흰 팔목과 시커멓게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팔이 너무나 대조되어서, 문득 처연한 슬픔이 몰려와서 할머니의 그 검고 거칠한 손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여학생의 글이 떠오릅니다. ‘열등감’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했는데, 손에 땀이 많이 채이고, 유독 까칠까칠해서 친구들과 손을 잡지 못하고, 좋아하는 이와 악수할 일이 생기면 자신이 싫어지기까지 했다는 학생의 글입니다. 이 글은 제가 월간 <작은책>에 투고하느라 워드로 직접 입력해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데, 아래는 그 글의 끝부분입니다.

  ……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동안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다음과 같은 사실 말이다. '남과 악수하는 일은 끔찍해요' ― 사실은 악수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 누구와든 손잡기 싫어요' 사실은 ― 그 누구든 손을 잡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이 미워요' ― 사실 나는 누구보다 내 손을 사랑한다. 단지 남이 내민 손을 잡을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소재거리를 갖고 쓸 내용을 생각하는 동안 내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남에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일이 그동안 나에게는 엄청난 심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한 글자 두 글자 나의 '손'에 대해 적어가면서 하루 종일 내 '손'을 쳐다보고 끔찍한 기억들을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무덤덤해져 있었다. …… 조그만 희망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내 '손'을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 그 용기 말이다. 내가 만일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이라면, 온통 일그러지고 뒤틀린 피부를 가진 사람의 얼굴을 맨 먼저 쓰다듬을 것이며, 내가 만일 가장 부드러운 손을 가진 사람이라면 살가죽이 뼈에 붙은 메마르고 앙상한 아이의 몸을 맨 먼저 어루만지리라. 나는 소망한다. 남을 위해 내가 먼저 손 내밀 수 있기를.

  제가 생각하기에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유롭고 너그러운 분위기입니다. 이 글을 잘 써서, 이 글로써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을수록 훌륭한 글이 태어납니다. 점수나 서열의 척도로 사용되지 않고, 그 어떤 보상과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어떤 것이든 다 받아들여지는 너그러운 분위기와 자유로움. 이것은 글쓰기에서 나머지 모든 요소를 다 합쳐도 좋을 만큼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글쓰기는 언어를 매제로 하여 체험을 이미지와 형상으로 그려내는 작업입니다. 이미지와 형상이 작용하는 영역이 넓을수록 예술적이고, 글쓴이 자신의 지평을 넘어서는 초월성을 획득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 학생들이 목을 매야 하는 논술문은 실은 최하급의 글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쓰는 가장 가치로운 글로 일기를 꼽습니다. 일기는 자신이 자신에게 바치는 글이기에 그 어떤 글로도 담을 수 없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일기는 자신을 표현하고, 치유하고, 성장케 하고, 자신을 초월하는 삶의 비전으로 이끌어줍니다. 일기를 통해서라면, 그 누구든 자신에게는 일급의 문필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육 현장에서는 논술의 압박으로 인해 저런 류의 글쓰기는 숨쉴 공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직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입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글쓰기만이 강조됩니다. 바탕과 끄트머리가 뒤바뀐 것입니다.


04.

  논술문 쓰기는 물론 미덕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논술 수업에서 요약하기와 메모하기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텔레비전 토론을 보면 참 엉터리가 많습니다. 그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 기록해 놓지 않고, 대충 제 방식대로 알아들은 뒤에 제 하고픈 이야기를 할 차례만 노리다 보니 맥락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가 횡행하는 것입니다. 제시문을 잘 뜯어읽고 요약하고, 그것들의 맥락을 갈무리하면서 찬찬히 메모하는 과정에서 민주시민의 중요한 자질이 일깨워집니다. 그것은 또한 고등 학문 탐구에도 매우 긴요한 지적인 자질을 훈련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 정도의 훈련이란 굳이 논술고사라는 거창한 '틀'이 아니더라도, 중등 교육 과정 속에 얼마든지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상처받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 상처는 크고 깊습니다.
  논술은 상상력을 빼앗습니다. 상상력이란 이를테면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공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상력은 간단히 말하면, 주어진 인식의 지평을 넘어 존재하는 세계의 형상을 그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꼭 미래나 비현실을 향해가는 것만은 아니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술문 쓰기는 아이들을 일단 주어진 ‘틀’에 굴복하게 만들면서부터 출발합니다. 아이들은 ‘틀’에 굴복하고, 논제가 요구하는 금 바깥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구속감을 경험함으로써 모르는 새 상상력을 억압하게 됩니다.
  논술은 교양의 의미를 왜곡시킵니다. 논술에 찬동하는 분들은 어쨌건 책읽기와 사색, 토론이 바탕이 되는 논술 교육은 교양을 배양하는 효과적인 틀이 될 것이라 주장합니다만, 그것은 교양에 대한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교양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지식을 얻고, 고전을 두루 섭렵해서 배양하는 것이 교양이라면 논술 교육은 어쨌건 교양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교양은 좀 다른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 사회의 자칭 지도층들, 강부자, 고소영들은 왜 이렇게 ‘교양’이 없을까요?” 요컨대, 제가 생각하는 교양의 맥락에서는 우리 사회 자체가 실은 무교양의 극치입니다.
  자신을 헌법이 정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통치권자가 아니라, 회사 사장(CEO)으로 규정하고, 국민을 직원으로 여기는 우리 대통령의 언행을 한번 봅시다. “못생긴 마사지걸이 써비스가 더 좋다”, “오케스트라 노조는 금속노조소속이다. 왜냐하면 바이올린 줄이 쇠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대통령 후보 시절이지만, 이런 천박한 농담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수없이 주억거렸습니다. 지난 총선 때 14석을 얻은 ‘친박연대’라는 정당을 보셨겠지요. 아무리 총선용으로 급조한 정당이고, 의석이 급해도 그렇지, 정당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가 있는지, 지금도 그 이름을 들으면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수치심이 느껴집니다.
  논술문을 잘 하는 것과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가장 좋은 교양인은 타인을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덕성일 뿐, 남들이 잘 못 읽어내는 어려운 책을 줄줄 읽고, 따박따박 제 주장을 글로써 펼치는 훈련을 하는 것으로 연마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가르친 졸업생인데,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의 미니홈피를 우연히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학생은 미니홈피에 자신의 모의고사 점수와 등급을 계속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좀 실망을 했지요. 논술문도 아주 잘 써 냈고, 나중에 명문대학에 진학했는데, 사실 그런 행동은 제가 볼 때는 교양 없는 행동입니다. 아마, 미니홈피나 카페 등에서 자신의 성적을 공개하고, 서로 상의하는 풍토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것은 논술 교육이 그나마 추구하는 교양정신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일입니다.
  교양은 삶의 덕성이고, 그것을 잴 수 있는 척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상력을 억압하고, 교양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우리 사회의 논술 열풍은 그래서 반교육의 극치입니다. 한마디로, 논술은 상위 30%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방편이고, 학생들의 지적 능력의 극히 협소한 부분을 감별해 내는 기제에 불과합니다.


05.

  교양을 쌓고, 문학적 상상력,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는데 제일 좋은 길은 책을 많이 읽는 것에 있지는 않는 듯합니다. 책을 빨리, 많이 읽는 것이 남다른 재능인 것처럼 떠받드는 풍조가 있지만, 그건 허깨비같은 소립니다.
텍스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만큼만 반응합니다.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위장(胃腸)과 소화능력과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고,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음식물은 건강에 치명적이듯, 독서량도 그러합니다.
  저는 필사(베껴쓰기)와 낭독을 권합니다. 실제로 저는 고등학생 시절, 일기장에 그날 문제집을 풀다가 발견한 좋은 시나, 소설의 구절이 있으면 종종 옮겨 적곤 했습니다. 이런 체험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눈으로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텍스트의 ‘육체성’을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옮겨 적은 시들은 20년이 된 지금도 기억이 나고, 그 시를 보노라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윤동주, 신동엽, 김수영, 김소월, 박재삼, 김광균 님의 시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김승옥의 '무진기행', 조세희의 ‘난․쏘․공’, 최인훈의 ‘광장’의 구절들. 다들 문제집에서 만났지만, 이들은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입니다.
  베껴쓰는 것과 함께 낭독은 또한 텍스트의 육체성을 느끼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시나 소설 텍스트를 통으로 끝까지 함께 읽는 일을 즐겨합니다. 낭독은 읽는 이와 듣는 이에게 눈으로 묵독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기쁨과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길어 올립니다.
  중요한 사상가로 이반 일리치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만년에는 중세 사회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그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중세 때의 ‘읽기’와 지금의 ‘읽기’는 매우 달랐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일리치는 12세기의 수도사 성(聖) 빅토르 휴라는 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휴와 같은 중세 수도사들은 마치 수도원의 포도밭에서 딴 포도의 맛을 음미하듯이 온 몸으로 글을 낭독하면서 한 줄 한 줄 ‘맛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면서 또한 텍스트가 담고 있는 진리를 ‘육화’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이에 반해 오늘날의 독서는 '하이퍼스페이스 속의 수음행위' 같은 것으로 변해버렸다고 일리치는 말합니다. 


06.

  이제 이야기를 좀 정리해야겠습니다. 논술은 중등 교육과정이건, 고등학문 탐구를 위한 준비를 위한 지적 훈련이건 협소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지만, 글을 쓰고 읽는 것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너그러운 분위기입니다. 낭독과 필사는 논술의 요약하기와 메모하기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교양을 쌓고,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우는데 훨씬 가치롭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에서 되살려져야할 것들입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논술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요. 파홈에게는 제 육신이 묻힐 만큼의 땅만이 필요했듯, 사람에게는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표현할 정도의 논리적 직관만 있으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촛불시위 때 인상적으로 보았던 구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먹고, 민간의료보험으로 치료 못 받고 죽으면, 화장해서 대운하에 뿌려주오.” 이 시국에 담긴 문제들의 기본 구조를 인식할 수 있는 논리적 직관, 이를 저런 위트 있는 문구로 드러내는 표현능력, 그리고 이를 들고 직접 광장으로 나와 외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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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장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학생들은 행복하겠습니다.
    자유롭고 너그러운 시공간을 함께 하므로.

    2009.04.06 12:16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 저도 이계삼 선생님한테 배웠으면 좋았을 텐뎅 킁

      2009.04.06 12:18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10.03.16 16:3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 2. 02:05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소식지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와서 쓴 글입니다-
주제가 "수능"이었어요 -_=;;





세 종류의 “수능대박”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외면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내가 수능을 본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닌 2005년의 일이었다. 비행기도 못 뜨게 하고 출근시간도 늦추게 하는 수능 시험의 당사자가 되는 게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뭐 사실 별 것 없었다. 전교조 교사 한 명 없는 사립학교에서 고3 내내 한 달에 1~2번씩 모의고사를 지겹도록 봤던 덕인지, 그냥 좀 특이한 모의고사 하나 보는 것만 같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이미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반년 이상이 지난 뒤에 보는 수능이었기에, 수능거부라든지 안티수능페스티벌이라든지 해서 수능을 볼지 말지 남모르게 고민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런 수능 라이프(?) 와중에도, 가장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면서 가장 역겨웠던 것은 “수능대박”을 기원한다는 응원들이었다. (2학년 때 반강제적으로 돈을 걷어가는 것에 그렇게 분개했기에 ‘고3’이 된 후에도 학생회에서 나눠준다는 엿이니 초콜렛이니 뭐니는 죄다 거부하긴 했지만.) 인터넷이건 방송이건 수능시험장 앞이건 “수능대박” “수능대박” 주문이 떠돌았다.
  수능은 상대평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며 공부할 능력이 있나 없나 검증하겠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의 능력을 절대평가로 측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잘하냐 못하냐를 평가하는 상대평가 방식의 시험이다. 수능이 상대평가라는 것은 수능에서 내가 대박이 나면 남은 못 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운이 좋아서 찍은 게 몇 개 운좋게 맞아서 원래 4등급이었을 법한 성적이 3등급이 되었다고 해보자. 나는 대박이 났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대박’의 이면에 있는 현실은, 다른 누군가가 3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수험생들에게 수능대박 나라고 응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수능대박 나라는 응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는 결코 사람들의 입시경쟁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소박하게 “수능대박”을 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3이나 재수생의 현실도, 입시경쟁의 현실도 잘 알고 있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 구조에 대해서도 모르지 않는다. 예전에, 2006년 7월에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민족문화상징 100개에 “고3”이 한국의 교육 현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으로 추천받았지만 여론조사 결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탈락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만큼 수능, 고3 등으로 대표되는 입시경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남을 밟고 올라설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은 경쟁의 구조에서 눈을 돌리고, 모두가 아무도 밟지 않고 날아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듯이 외치는 “수능대박”의 주문 소리…. 그러나 그런 주문 소리에 별로 신통력이 없는지,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올해에도 누군가는 수능 성적 때문에 자살하고, 등급과 표준점수에 일희일비하며, 꿈도 성적 때문에 바꿔가며, 자존감조차도 성적에 휘둘리며, ‘수험생’들은 이제 재수/반수/지방대/인서울/명문대 기타 등등의 서열 구조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깃발 대신 학교들과 학원들에 걸려 있는 “○○대 ○○○과 12명 합격”하는 식의 현수막들만 머리 위에 펄럭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순응 대박”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소리였다. 입시경쟁에 대해, 강제야자를 비롯해서 학교 생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니 말이 맞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괜히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여라.”라는 류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교사들도 그랬지만, 학생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3시기에 온갖 분란을 일으키며 학교를 다녔던 나를 싫어하던 학생들도 1/3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입시경쟁의 성격을 적절히 꼬집어서, 수능을 “순응” 시험이라고 비꼬곤 한다. 이 순응 시험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수능 시험이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와 입시경쟁 체제에 잘 순응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수능 시험이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들 등 교육주체들을 말 잘 듣게 순응시킨다는 뜻이다.  수능대박[순응대박]은 “순응하면 대박”난다는 말씀되시겠고.
  학생들이 두발규제 폐지 등에 대해서는 곧잘 시위를 하면서도, 입시경쟁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주 적극적·급진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순응’에 있다. 입시경쟁체제나 교육시스템은 너무 거대해보이고 잘 바뀔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너무나 당연한 것인 양 눈 앞에 존재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깔짝거리는 많은 정책들이 아무 효과가 없거나 입시경쟁을 더 심하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꼴을 보면 그런 무력감은 더 커진다. 수능만 끝나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학생들도 학교의 생활 규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은 수능이 얼마나 학생들의 삶을 ‘순응’하도록 규율하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아주 나이가 적을 때부터 성적과 등수에 따라 가치를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설령 그런 가치 평가에 대해 의문이나 불만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상상할 능력이 없다. 나 또한 성적이 높다는 이유로 나를 ‘이뻐하는’ 교사들과 성적으로 인간이 평가당하는 학교 시스템에 초등학교 때부터 스트레스와 괴리와 혐오감을 느껴왔음에도,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막막함밖엔 느끼질 못했다. 성적에 의해 우월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삶은, 나이가 적을 때부터 계급적으로 나뉘어지고, 그들이 삶/세상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다르게 만든다. 예컨대, 내 친구가 서울대 다니는 학생들이 비교적 자신감도 있고 자존감도 강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나이가 적을 때부터 서울대에 입학할 때까지 입시경쟁 속에서 학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학교를 적극적으로 박차고 나온 청소년들은 그래도 좀 더 폭이 넓은 편인데,)은, 강제야자 같은 일(강제적으로 시키는 공부의 비효율성. 정부에서도 강제로 하는 것은 금지한…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학원에 못 간다는 이유로 강제야자를 반대한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더라도, 입시경쟁 그 자체를 없애자고 제안하기는 주저한다. 돈 많은 집 학생과 돈 없는 집 학생이 겪게 되는 교육격차와 사교육 불평등/차별의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입시학원 자체를 안 다녀도 되고 입시공부에 목 매지 않아도 되는 교육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한다. “너도 노력하면 대박날 수 있다.”라거나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후회 안 하고 잘 산다.”라는 식으로 학생들의 욕망을 유예시키고 학생들 사이에 차별을 만드는 정책도 이런 ‘순응’에 한 몫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리하여,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비겁한 논리가 교육현장에 횡행하게 된다. “재능이 있는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격언이 여기에 더해지면, 피할 수 없으니 즐긴다는 소극적 태도에서 입시경쟁의 승리를 위해 입시공부를 즐기는 적극적인 태도가 되기도 한다. 입시경쟁 과정에서 겪는 피로, 혐오, 고통, 자괴감, 허무, 복종, 등등의 것들에 순응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한다. “다 너희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며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에게 ‘매타작’을 하는 일부 사티스트 교사들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 성적 취향으로서의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분히 에리히 프롬적인 의미도 포함해서)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 사회 구조에 의해 강요되고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하는 세상은 불행하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의 대우 명제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이다.(아, 물론 명령형 문장은 명제가 아니다. 그래도 그냥 너그러이 넘겨주시길.) 그러나 대체 어디로 피해야 하나? 도저히 즐길 수가 없어서 피할 곳을 찾던 학생들이 끝내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대안학교라거나 유학이라거나 다른 방식으로 입시경쟁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가계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주는 소수만이 가능한 선택지이기 십상이며, 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3의 명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랄까. 하지만 입시경쟁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십년 전부터 나왔음에도, 입시경쟁 자체를 문제시하며 “입시폐지”를 외치고 “수능반대”를 요구해온 운동은 그 역사가 길지 않다. 기껏해야 2003년부터 시작된 안티수능페스티벌이나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공약으로 나온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도일까? 2005년 5월에 내신등급제 도입을 계기로 “내신도 본고사도 입시경쟁은 싫다!”라고 외친 학생들의 집회, 2007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수능을 거부한 고3 학생들의 1인시위,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에서 하고 있는 자전거 행진 등의 활동 등등도, 입시경쟁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번져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듯이 수능도 거부하면서 입시경쟁을 무력화시키는 투쟁방식도 꿈꾸어보긴 하지만, 아직까지 수능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절대적인 위치와 인식을 생각해보면 그건 좀 요원할 것 같다. 하지만 일제고사나 학교자율화나 교원평가를 빙자한 교원관리제나 국제중이나 ‘자살고’(자율형 살입고?)를 비롯해서 2MB 정부의 입시경쟁 심화 정책들이 쓰나미처럼 몰아치고, 그에 대항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저항이 점점 자라난다면, 입시경쟁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따라서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만들고 싶다. 진짜 제대로 된 “수능대박”을 만들어보자. 수능을 크게 박살낸다는 의미에서의 수능대박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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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1. 13. 21:11

  수능 시험을 보지 않고 교육부 앞에 선 고등학교 3학년에 속해 있는 여성 청소년은 말했다. 여기 서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무섭다고 하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서도 말했다.

  친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수업 잘 듣고 쉬는 시간에 잘 떠들고 점심시간에 매점 가고, 이러면서 살지만,
  가끔씩 다이어리를 보다보면 블로그를 보다보면 지나가면서 문득문득 보다보면,
  죽고 싶다고 하고 힘들다고 말한다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면들이 너무 많다고.
  친구들이 사는 걸 보면 태엽을 감으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 같다고.

  목이 메인 그가 잠시 발언을 멈췄을 때, 눈치 없게도 한 기자가 "왜 수능을 거부하게 되었지만 말해주고 들어가세요. 왜 거부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요."라고 물었다.
  그 말에 "이유요?"라고 반문한 그는 또 잠시 뜸을 들였다.
  몇 초 후,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말했다.

  수능에, 입시경쟁에 반대해서라고. 이런 입시경쟁을 없애자고 말하기 위해서라고. 지금 같은 입시경쟁, 지금 같은 교육이 계속된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그 말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들어왔을 법한 평범한 말이었지만, 거기에 묻어나는 감정은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그래서 다들 울었다. 비록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울었을 것이다. 연민이 아닌, 슬픔과 분노로.


  어쨌건, 작년에 홀로 1인시위를 하며 서있던 그루에 비해,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며 서 있는 엠*의 모습은,
  좀 덜 쓸쓸해 보였다.





  수능 시험 때문에 자살한 청소년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기원하기 이전에,
  당당해지라고, 수능은 중요하긴 하지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기 이전에,

  무책임하게 살라고 "명령"하고 "요구"하기 이전에
  입시경쟁을, 입시경쟁교육을 어떻게 없앨지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닐까.
  청소년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든 후에, 인간답게 살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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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입시가 폐지되어도 대학이 평준화 될지라도
    그렇게 되면 취직전에 또 다른 선별과정이 생길것입니다
    서열화되기 싫다면 취직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됩니다

    솔직히 입시경쟁 비인격적인것 다 알고 있습니다만
    뚜렸한 대안도 없이 반대만 하는건 호소력이 약할듯합니다

    2008.11.13 22:35 [ ADDR : EDIT/ DEL : REPLY ]
    • 대안이 없다구요?
      입시 경쟁이 가열된 이후
      대안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백, 수천개씩 이야기되곤 했습니다.
      단지 입시 교육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와, 입시교육 틀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대안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 뿐입니다.

      당장 큰 서점에 들러보세요.
      입시교육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들은 넘쳐납니다.
      그 책들 중 한권이라도 읽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읽기 싫으시다구요?
      제가 대표적인 이론 몇가지 알려드릴까요?
      본인이 관심이 없다고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교육에 관심을 갖는 건 모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대 교육의 부당성을 이야기 했다가 쫒겨난 서울대 총장도 있고,
      대학이 아닌 대학원 위주의 분과형 교육체제를 말한 교육부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안이 없다는 건 좀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교육에 대한 관심이 이정도 라는 게 한심할 뿐입니다.
      참여하지 않을 거면, 최소한의 관심이라고 가지려는 노력을 보여주세요.

      지금의 문제점은 대안이 없다는 것과 상관없습니다.
      넘쳐나는 대안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성숙된 사회분위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교육을 이렇게 바꾸자라고 말한다면,
      정부와 보수단체들도 토을 달며 반대할 것이고
      뉴라이트같은 또라이 집단들도 또 뭐라 쭝얼거릴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교육은 곧 학력이다라는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인재는 곧 지식을 많이 갖춘 자입니다.
      인식의 문제부터 시작해야 할 터인데 대안을 내 놓아라 하는 것은 무책임입니다.

      대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받아들일 자세가 안되어 있는 것이 문제인데...

      2008.11.14 09:24 [ ADDR : EDIT/ DEL ]
    • http://edu4all.kr 뭐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 사이트만 잘 보셔도 ^^; 책으로도 나온 게 많지만요-
      흠..
      제가 구상하는 "완전한" 대안은 거의 혁명 수준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정도이기는 한데요.
      불완전하지만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라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정책 정도~?

      노동시장에서의 경쟁 문제도 분명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변화가 필요합니다.

      2008.11.17 20:56 신고 [ ADDR : EDIT/ DEL ]
  2. “뚜렷한 대안도 없이”라고요? 대안을 주장하는지 안 하는지 찾아보기나 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취직 전에 또 다른 선별 과정이 생길 것”이라는 말은, 경쟁이 미뤄지든 앞당겨지든 상관 없다는 말씀이신지 궁금하네요. 저는 입시도, 취업경쟁도 완전히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경쟁이 그래도 뒤로 미뤄져서 숨쉴 햇수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게 나아보이는데요.
    조금이라도 함께 고민해야지, 너무 냉소적으로 말씀하신 듯합니다.

    2008.11.14 02: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10. 20. 00:27





이건 10월 14일 일제고사 거부 등교거부 청소년 기자회견 장면입니다.
사실 사진 더 많이 찍었는데
참가자 분들 신변 보호상... 얼굴 나온 거 빼다보니 이 사진이랑 뒤통수 샷 하나밖에 없네요 쿨럭

이날 38명인가 37명인가 청소년들이 참여했습니다.




불쌍한 학사모 분들. 앰프 출력에 눌려서 제대로 말도 못하시던.
뭐 행동은 좀 비매너 투성이이긴 했지만.





정부중앙청사 앞










이건 15일 퍼포먼스 때 하려고 만든 거예요.
이거 말고 모자이크로 멋진 거 하나 더 만들었는데
그거 찍으려는 순가 ㄴ카메라 배터리가 나가서 -_-








이 아래로는 15일에 기자회견 사진.
등교거부 행동 매듭지으면서 한 퍼포먼스에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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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 여러분!! 학생을 사랑하면 안될까요?????

    2008.10.20 00: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너무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꿈꾸는 아이들인듯.

    안타깝다.

    경쟁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라..

    공산주의가 경재없는 사회에 하나겠네요.

    2008.10.20 01:07 [ ADDR : EDIT/ DEL : REPLY ]
    • 말하고는

      말을 이해해도 어쩜 이상하게 이해하심?
      학교에서만 경쟁없는 사회랬지 누가 기업에서도 그렇게 하라던가요?
      학교에서만 경쟁안하면 공산주의인가요?

      2008.10.20 17:55 [ ADDR : EDIT/ DEL ]
    • 모든 경쟁이 없는 사회, 라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요-

      제대로 된 사회주의/공산주의라면 긍정해볼 수도 있겠군요 ㅎㅎ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현실의 움직임이 또한 사회를 그나마 좀 더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2008.10.22 01:04 신고 [ ADDR : EDIT/ DEL ]
  3. 학생들이 불쌍하네요..

    2008.10.20 0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번에 거부하고 싶었는데....
    그냥 시험지에 '일제고사 반대'만 도배하는 어린애 같은 짓 밖에 못했네요 ㅜ.ㅜ

    2008.10.23 00: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 행동도 집단적으로, 공개적/공식적으로 하면 정치적 행위가 된답니다.

      2008.10.28 15:35 신고 [ ADDR : EDIT/ DEL ]
  5. 안타까운 현실이네요..어디선가 다른분이 글을 올리셨듯이 20~30문제만으로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의 수준을 과연 객관적으로 판단할수 있는지 의문이 드네요...흠...저때만해도 저당시에는 공부 성적은 거의 상관없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기 바빴는데 말이죠....

    2008.10.24 01: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문제 수를 늘리거나 해도 '객관적으로' 평가하긴 어렵죠-

      사실 수치화, 계량화하는 평가란 것 자체가 과연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지 자체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2008.10.28 15:35 신고 [ ADDR : EDIT/ DEL ]
  6. 안타까비

    가령, 참교육의 진정한 주체(?)인 전교조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범대 가지 않고서도 전교조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일제고사 반대를 선도한 그들도 경쟁을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 기막힌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기 기득권은 불끈 걸머진 채 경쟁을 반대하는 이들이 전교조 교사라는 건 아는지?

    2008.10.26 10:43 [ ADDR : EDIT/ DEL : REPLY ]
    • 전교조가 참교육의 주체인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그래서 교사 임용의 경쟁이 심한 것에 대해서도 저는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그다지 전교조 교사들의 기득권에 관심 없어요. 그 기득권이 청소년인권을 침해한다면 싸우겠지만. 기득권이나 권력이란 건 상대적이죠.

      2008.10.28 15:34 신고 [ ADDR : EDIT/ DEL ]
  7. 비밀댓글입니다

    2008.12.14 23:57 [ ADDR : EDIT/ DEL : REPLY ]
  8. 판단할수 있는지 의문이 드네요...흠...저때만해도 저당시에는 공부 성적은 거의 상관없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기 바빴는데 말이죠....

    2009.01.14 07:55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