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11.11.08 [나의 대학거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은 (1)
  2. 2011.11.08 [나의 대학거부] 난 대학 안가, 못가, 가기 싫어, 상관없어!
  3. 2011.10.21 투명가방끈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에 함께해주세요!!! (2)
  4. 2011.10.20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5)
  5. 2011.10.18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받는 질문들 (2)
  6. 2011.10.17 [투명가방끈] 대학입시거부선언, 포스터와 요구안
  7. 2011.10.13 학생인권조례의 기본 철학
  8. 2011.10.08 광주학생인권조례, 이제 출발이다. 광주학생인권조례 통과를 환영하며, 시교육청은 실질적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바란다. (1)
  9. 2011.09.20 [오늘의교육] 우리 모두, 바동거립시다
  10. 2011.09.14 입 닥치고 내 말 들어, 이러고 싶은 거지? 학생 교내 집회는 안 된다고? 솔직해지시라 (1)
  11. 2011.09.13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흔들림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12. 2011.09.09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학생인권조례 초안에 관한 학생인권조례 서울본부 논평
  13. 2011.08.10 학생인권 종결자 -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14. 2011.08.10 청소년인권, ‘먼저’를 정하는 기준
  15. 2011.06.23 『인권, 교문을 넘다』 (인권오름 서평) 어느새 나도 꼰대랍니다
  16. 2011.06.15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보정기간을 앞두고
  17. 2011.06.09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18. 2011.03.30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두 번째 소식지 (2011/03/30)
  19. 2011.03.25 [출범선언] 시민의 힘으로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향한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1)
  20. 2011.03.05 "학생인권으로 여는 행복교육의 오늘" - 학생인권 시민 연속 특강
걸어가는꿈2011. 11. 8. 13:03

[나의 대학거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은

어쓰


(1) 작년,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했다. (2) 이미 고등학교는 자퇴한 상태였고, 그렇게 나름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스무 살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3)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해가 지나 스무 살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나는 비(非) 대학생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끝.

이렇게 달랑 세 문장으로 정리되는 ‘나의 대학거부’를 글로 풀어 쓰려고 하니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한 번, 조금 더 길게 주절거려 보자면…….

1. 열아홉, 청춘?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그 때, 청소년들의 사회참여가 어쩌고저쩌고 시끄러웠던 그 해 여름, 광화문이나 시청 한 번 안 가고 나름 착실하게(?) 살다가 학교를 자퇴했다. 뭔가 뚜렷한 생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매일매일 맞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마치 재채기가 튀어나오듯이 덜컥 저질러버린 자퇴였다.

그렇게 학교 밖에서 살아가게 된 후, 대안학교에도 가보고 이런저런 공간들에도 갔지만, 대개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살았다. 하루에 20시간쯤 자보기도 하고, 온종일 만화책만 보면서 뒹굴거리기도 했다. 한 2주일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기도 하고,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뭘 할까를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주로 음침하고 우울하게, 그리고 쓸모없게 살아갔다.

‘10대’, ‘밝음’, ‘반짝반짝한 청춘’ 따위는 대부분의 경우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적어도 나의 10대는 전혀 반짝거리지도, 보람차지도 않았던 것 같다. 뭘 해도 즐겁다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그 ‘청춘’은 나를 비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열아홉 살, 작년에 썼던 글들의 대부분이 ‘힘들고 막막하고 서럽다’ 로 요약되는 걸 보면 확실히 드러나더라.

처음에는, 학교를 자퇴한 걸 후회했다. 자퇴를 할 당시 수도 없이 들었던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라는 말을 내가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삼 년만 더 참아볼 걸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지금 나의 이 우울함과 찌질함은 전부 다 ‘고등학교→(수능)→대학교’라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그 루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고민들을 정리하거나 추스를 틈도 없이, 어느 새 어영부영 스무 살이 됐다.

위 사진:지난 10월 31일 홍대 앞 거리에서 진행된 '입시좀비 스펙좀비 할로윈행진'.

2. 스무 살, 인생

사실 스무 살이 됐을 때,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이라는 장소는 오히려 나에겐 그렇게 가깝거나 실감나는 장소가 아니었기에, 학교에 다닐 때의 친구들이 다들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내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열아홉 살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은, 딱 어느 시점이라기보다는 그냥 서서히,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계속 청소년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뭐 먹고 살지?’부터 시작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까지. 5년 후, 10년 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리고 나이에 따른 위계/권력에 반대하는 소위 ‘운동판’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나 자신도 그렇게 나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또 딱히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단지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왔을 뿐인데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며 불안해하다니.

‘모든 건 구조의 탓이다’라는 식의 논법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런 식의 거창한 의미부여와 과장된 불안함 역시 이 사회에서 ‘스무 살’, ‘성년’들에게 요구하는 그 역할과 의무들을, 동시에 스무 살이 되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권리와 권한 - 술/담배부터 시작해서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까지 - 들을 무시하기 힘들었던 탓이 아닐까, 라는 식의 생각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같이 활동을 해오던 93년생/19살 친구들의 대학/입시거부운동이 시작되었다. 19살/고3들의 선언 외에 20대의 대학거부선언도 준비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같이 운동을 꾸려나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또 했다.

사실 어떻게 살지 모르겠고 불안하고 힘든 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학/입시거부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대학을 안 가면 살기 힘들지만, 사실은 대학에 가더라도 살아남기 힘든 사회.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누가 과연 ‘나는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외곽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쳐내는 방식으로 아직까지는 내쳐지지 않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쟤네가 힘든 건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희는 대학에 갔으니까, 너희는 괜찮아.” 하지만, 정말 괜찮은가?

결국 문제는 어떤 한 개인이 대학에 갔거나, 가지 않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불안하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기 힘들다면, 지금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대학을 거부함으로써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보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 다 안다. 알지만.

3. 그래도?

뭐 이렇게 글을 써봤자 그런 불안함이 절대 사라지지는 않더라. 여전히 불안하고, 뭐 먹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리고 당분간, 아마도 높은 확률로 평생 이런 불안함들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위 사진:지난 10월 22일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대학입시 거부 뻥튀기 선전전' 중.

설령 그렇더라도,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 거야’ 따위의 근거 없는 믿음으로 나를 속이면서 사는 것 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불안을 직시하고 사는 게 조금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 불안해하며 끙끙거리는 것 보다는 “나 힘들어, 너도 힘들어? 그러면 어떻게 해 볼까?”같은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그래도 약간은 더 마음 편하더라.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서 활동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 않은 20대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기뻤다. 이 사회에서, 각자의 불안을 그저 혼자서 처리하라고 요구받는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어느 한 새벽, 문득 찾아오곤 하는 참을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상상이 안됐다. 그런 얘기들을, 그런 고민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게 내가 찾은 대학거부운동의 의미였다. 일단 지금은, 그리고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원해보자면, 이런 불안들을 함께 털어버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단순히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 받고 위로받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협동조합일 수도 있고 네트워크일 수도 있는 ‘모임’을 꾸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사실 엄청나게 거창한 꿈을 꾸며, 정작 그다지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나의 대학거부 이야기는 여기까지. 흠.
덧붙이는 글
어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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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3:40:2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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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사이트는 내 일 밤낮의 이전 커플 조금씩 작성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트북이나 컴퓨터의 시스 세션 귀하의 블로그를 보니 아마도 믿고 그 또는 그녀가 유사한 것은 당신을 위해 전처 발생했다. 단지 어떤 개념에 대해?

    2011.11.26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1. 8. 13:02

[나의 대학거부] 난 대학 안가, 못가, 가기 싫어, 상관없어!

쩡열


나는 대학거부를 앞두고 있는, 학교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는 빠른 94년생인 19살이다. 아니 사실 대학거부를 앞두고 있다고 말하기는 무언가 많이 낯부끄럽다. 딱히 비장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대학거부가 아니다. 그냥 갈 생각이 없어서 가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주변사람들이 놀리는 것처럼, 검정고시로 봤던 중졸이 최종학력인 나는 고졸의 학력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대학에 갈 수도 없다.

나에게 대학은…

살면서 대학에 가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꽤나 분명하게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때 좋아하는 주변 어른들 중에 성균관대를 졸업한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저기 가보고 싶어!’라고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교원대와 교대가 같은 곳인 줄 알았던 시기였다. 중학교에 가면서 슬슬 “너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들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그때 나는 소설책 읽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은 당연하게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대학교 어느 과에 가야 하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리고는 문예창작과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시절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알아서 생활해야 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오늘, 내일 뭘 할까?”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전에 대학에 대해 했던 고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대학에 안가겠다는 결심이 거의 굳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별로 생각을 안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대안학교에도 보냈고, 학교를 안 다니게도 했던, 이 사회에선 나름 특이한 사람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에 종종 “니가 정말 가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대학에 가라”, “니가 돈 벌어서 다녀라”, “대충 당연하게 가야 되니까 가서 놀다올 거면 지원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물론 ‘니가 돈 벌어서 다 다니라’는 말은 농담이고 으름장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말들과 내가 살아온 그 분위기가 나에게 꽤 영향을 주기는 했나보다. 게다가 일제고사 반대, 주입식 교육 반대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청소년 인권활동과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단체를 만나게 되면서는 대학이라는 것이 내 미래에 대한 고민과 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어졌다. 나에게는 대학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하고 싶고 궁금한 일들이 사방에 깔려있는데 대학이 뭐 중요하겠는가! 아직 먼 얘기였고, 내 관심사는 대학과 그다지 상관이 없었으니까.

대학생이 되는 건 ‘골드민증’ 같은 사회가 주는 허가증인 거야?!

안타깝게도 대학에 신경 쓸 겨를 같은 건 금방 생겨버렸다. 하하. 어느덧 18살, 학교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대학 가긴 늦었다는 감이 오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찼던 시기였다. 슬슬 내가 알던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온갖 청소년 보호법에서 자유로운 골드민증마냥, 사회가 준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받아서 생기는 혜택들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재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대학도서관이라는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자료가, 마음껏 쓸 수 있는 그 공간이 부러웠다. 20대를 당연히 대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대학생 때는 실컷 놀기도 하는 거지~’라며 놀 수 있게 주어지는 그 시기도 부러웠고, 다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만 찾아다녀도 될 것처럼 보는 게 부러웠다. 공부만 해도 괜찮은 시기인 게 부러웠다.

물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다른 상황들이 떠오르긴 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대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수업이 별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뭐 이런저런 우울한 대학생들의 반론 같은 것. 하지만 저 때의 고민이 품고 있던 것은 물질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말로 풀려니 잘 안되지만 간단하게 말해보면, ‘유예기간’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대학을 가지 않는 이들은 20살이 되는 순간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안정적으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나갈 시기가 없다. 하지만 1년에 1,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한다면 사회는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붙여 안정적인 유예기간을 준다. 10대에게서 수능과 대학, 공부 이상의 것을 생각할 권리도 고민할 권리도 다 앗아가려는 이곳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할 때에는, 제대로 고민해볼 틈도 없이 냅다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위 사진:'저공비행'(저항을 공부하는 비행 청소년들의 줄임말) 중.

비싼 응급실

대학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은 나를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난 뭘 해야 하지? 잘 모른다면 대학에 가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떻게 먹고살지? 알바도 대학생 우대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중졸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지금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그 불안의 강도가 달라질 뿐 늘 내 안에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불안은 대학이 만들어내는 불안만은 아니고, 꼭 대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또 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대학에 묶여서 사고하게 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내가 현재 하고 싶은 것을 잘 모르겠고, 뭘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을 때에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19살은 당연히 대학이라는 예제만을 끊임없이 보고 자라니까 대학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안에 들어가서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찾아보겠어!’라고 대학에 무턱대고 들어간다는 건, 늦은 밤에 응급실에 들어가 훨씬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하는 상황만큼이나 돈도 아깝고, 입안도 쓸 따름이다. 그런 식의 응급처치로 대학에 갈 바에는 조금 막막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18살의 분노와 부러움을 지나 19살이 된 지금은, 전문적인 공부를 하려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갔을 때에는 너무나도 반갑게 함께 공부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청소년 인권활동 등을 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이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고 노력했던 ‘저공비행’도 있었다. 그리고, 알바한다고 열심히 함께하지 못하지만 ‘투명가방끈’도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의 실마리들이다.

그래서 우린 네트워크가 필요할 꺼야

대학입시거부토론회에 패널로 와주었던 지나가던 시민이 대학 진학률 80퍼센트의 이 나라에서는 곧 고졸들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그 말에 얼마 전 우연찮게 들어본 고졸 네트워크가 떠올랐다.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네트워크라니!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고, 불안해 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네트워크가 줄 위안과 현실적 안정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 그 행복한 상상이 정말 현실이 되게 하는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일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나를 종종 흔들어댈 것만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의 누군가가 대학을 쉽게 선택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활동하는 중이며, 공부도 돈벌기도 쉽지 않은 10대 끝자락을 보내고 있습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3:47:3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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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1. 14:35




불안하고 불행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자!


대학입시거부선언!!!!


참여대상
: 대학입시를 거부하고자 하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3학년 학생 / 19살(93년생) 청소년들



참여방법
: 대학입시거부선언에 동참하실 분들은 첨부되어 있는 선언지를 작성하신후, 투명가방끈 공식메일로 보내주세요 (wrongedu@gmail.com)

 


작성시 주의사항

- 성함은 본명으로 적어주세요

- 핸드폰이 없으시면 연락가능한 집/사무실번호를 적어주세요



참고사항
- 별도의 선언비나 참가비는 받지 않습니다, 재정을 지원해주시고 싶으시다면 후원으로 함께해주실수 있습니다 :)

- 11월9일 수능시험 전날 오후7시부터 최종선언문과 추후 활동계획이 논의되는 <거부자총회>가 진행되고, 11월10일 수능시험일 오전10시에 <선언발표기자회견>이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날 참석이 어려운 분들도 선언에는 함께 참여하실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함께 참여해주세요/자세한 내용 추후 공지)




(선언지 작성 샘플)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 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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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2 10:0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20. 01:33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호야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한때는 대학에 안 가는 인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학에 안 가고도 사지 멀쩡, 정신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삶이 끝날 것만 같은 이 땅에서 고졸자로서 목소리를 내고자 글을 써본다.

고졸 인생의 서막

나는 사실 대학 거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모아놓고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공부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목적으로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나의 제도교육에 대한 반감은 고등학교 3년간 서서히 발전을 거듭했지만 난 차마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3 봄,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3월의 어느 날, 고려대 김예슬 씨가 대학을 자퇴했다. 나는 당시 경향신문을 보고 있었던 터라 그날 아침 1면에서 그녀의 소식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내 반응은 ‘드디어 대학생의 입으로 신자유주의가 삐걱대는 소리를 듣는구나!’ 뭐 이런 거였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을 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려워졌다. 고3이라는 멍에가 나를 죄여왔고, 더 이상 깊은 고찰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나도 대학이 별로 맘에 안 들면 박차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한 채 다시 입시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그때까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제도교육의 목에 비수를 꽂자.’ 나의 고3 좌우명이었다. 그 말인즉슨 일단은 제도교육에게 몸이고 마음이고 다 내주고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어 제도교육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계획은 올해 2월 1일, 정시 다군 발표가 있던 날 산산이 깨졌다. 불합격. 가, 나, 다군 정시에서 몽땅 떨어져버린 것이다.(수시는 쓰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틀어져버린 인생에 눈물이 나왔다. 그날 공교롭게도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야했던 나는 진료가 끝나고 나오면서 신촌 대로를 질질 짜며 걸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제 어쩔 것인가. 나는 고뇌에 빠졌다. 나는 내 삶의 1년을 또 유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것은 해선 안 될,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김예슬 씨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도 나눔문화에서 활동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1월 말부터 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면서 내 인생을 대학 없이 그려 나가보자. 나는 그렇게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고졸자’ 인생의 서막이다.

대학 거부, 그 이후_ 고난

그럼 대학을 거부한 이후에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먼저 고난 편. 내가 대학생이 아닌 ‘고졸 스무 살’로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고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자퇴랑 아예 안 다닌 거는 전혀 다른 거야! 그래도 일단 가보고 결정하자.”, “재수는 훨씬 쉬워, 이미 공부한 거 한번 더 하는 거잖니.”, “1년 그걸 못 참냐.”, “사이버대학이라도 원서 넣는 게 어떠니?” “우리 언니가 대학을 안 가다니! 언니, 재수하면 안 돼? 친구들이 너네 언니 어느 대학 갔냐고 물어보면 쪽팔려.” … 고졸자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선포한 후 가족들에게서 들은 수많은 말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초기에는 재수를 끊임없이 종용하던 말들이 시간이 흘러서는 “돈이나 벌어라”, “언니 취직 안 해?”로 변해갔다. 나는 한순간에 집에서 가장 창창했던 사람에서 가장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갑을 여는 어머니가 눈치를 주기 시작하고 동생에게서 멸시의 눈빛을 받는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탄압도 힘들었지만 사회에서의 차별도 피부로 다가왔다. 대학 진학자가 80%에 육박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유별난’ 20대였다.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나 강연의 이름에는 언제나 ‘대학생’이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생이시죠?”하고 운을 뗐다. 이 사회의 ‘대학중심주의’는 도처에서 나를 공격해왔다.

대학 거부를 결심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각오했지만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가끔은 정말 대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취업의 관문까지는 자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너의 미래를 그려내 보여줘!’라며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나는 기껏해야 몇 주 앞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누군가 체계적으로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려낼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의 양이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압박과 차별들이 대학에 안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정과 사회 도처에 깔려있는 대학중심주의와 학벌 차별, 이제 아파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아프다고 소리쳐 보는 건 어떨까.

대학 거부, 그 이후_ 변화

이번에는 변화 편이다.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던 그 압박감은 단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번엔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대학 거부에 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겠다.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운 좋게 그때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4학년처럼, 과제와 시험에 여전히 시달리면서, 거기에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장학금을 노리려고 정말 대학 공부에 몰두하는 인생. 결국 젊음의 증표인 저항을 실현할 기회는 쥐꼬리만큼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쥐고 있던 것을 (반강제적이었지만) 놓음으로써 변화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나의 의식을 깨고 나온 것이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리치는 것에 비해 그 반향은 아주 미약했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소리치고, 움직이면서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대학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취업→결혼(가정)=행복한 인생’이라는 공식에 돌을 던지고 싶어서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대학의 존재 이유와 내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분명 개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 사회인데 왜 정작 본인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를 미루고 다들 정해진 루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대학 진학률 80%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학에 관한 진지한 고찰 없이 그냥 너도 나도 가는 것,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는 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최근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을 보고 놀랐다. 거기의 진로 상담 부분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온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스카이(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뜻하는 은어) 중 한 곳에 들어가서 토익 몇 점을 넘기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성형수술을 하고…. 우리는 그저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부딪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분명 불안하고 어두컴컴한 가시밭길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탈학교 예찬자가 되었다는 것일까. 나는 12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가 나에게 주는 억압에 대해서 불평만 할 줄 알았지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9개월간 학교 밖을 나와 여러 가지 활동과 세미나를 하면서 ‘길 자체가 학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이 9개월간 길에서 배웠다. 유유상종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나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또한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공부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찾아보면 여러 가지 세미나를 하고, 함께 살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대안 공동체들이 꽤 있다. 나도 그중 한 곳과 접속하여 몇 달간 세미나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대학을 안 가면 배우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배움은 도처에 있다.

앞으로의 행보

대학에 가든 안 가든 행복한 삶에는 언제나 질문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 있다면 배우게 되고, 내가 갈 길이 보인다. 그런 질문을 갖지 못한다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게 된다. 나도 한동안 갈팡질팡 했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불의에도 자주 침묵하고,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학교에 다니던 12년간 순응만을 배워서 그런지 머리는 저항하라고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나는 불의를 맞닥뜨려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또 내 마음이 가라는 데로 충실히 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꼭 하고 싶었던, 한번뿐인 기회들을 날려버리는 일이 많다. 좀 더 나에게 떳떳하고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아직 나는 글 외에는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 꿈은 이 정도다. 이 꿈들과 나의 질문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아직 어떤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직업이면 더 좋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 주리라 믿는다. 요즘 나를 장악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립과 주거권이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상반기에 아수나로 친구들과 스쾃 운동을 해 보는걸 제안해보고 싶다.

다시 대학 거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땅의 약 20%, 대학생 아닌 20대들이 조용히 입 닫고 사회의 흐름에 묻혀 살아간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입을 열고, 여기 우리도 있다고 외친다면 어떨까. 무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이번 대학입시거부 20대 선언이 개개인이 조금씩 틀에서 빠져나와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원 없이 외쳐보면 좋겠다. 부디 많은 분이 용기 내어 동참해주시길! 가지 않은 길, 분명 어려운 선택이지만 한번 뿐인 인생이라면 조금 스릴 있게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호야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8일 18:14:5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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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0 02:33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동

    접때 중국집에서 밥 먹으면 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었네요. 한겨레 1면 나온 거 보고 깜놀..
    앞으로 욕 많이 드실텐데 기운내시고 저처럼 맹목적이고 열광적인 팬도 있으니..ㅎㅎ

    2011.10.20 23:25 [ ADDR : EDIT/ DEL : REPLY ]
  3. Very good, thanks for sharing

    2013.01.02 14:3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18. 12:25
어린이책시민연대 회보에 부탁 받고 썼던 글입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받는 질문들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다. 좀 더 부연하자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등등 학생인권 활동도 하고, 교육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활동, 청소년 노동자들에 관한 활동도 하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활동 등등 여러 가지다. 활동을 하다보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술자리에서, 운동을 막 시작한 다른 청소년에게서, 등등…. 그런 질문들 중에서 한 번 대표적인 질문 몇 가지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게 아마 나에 대해서, 내가 하는 청소년운동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분들에게 가장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질문 1 : 어떻게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첫 번째로, 자주 받는 질문은 청소년인권이나 학생인권에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흔한 질문이다. 인터뷰 같은 걸 할 때면 누구나 앞부분에 배치할 만한 질문. 그렇지만 나는 그 흔한 질문에 항상 대답하기가 어렵다. 어떤 계기로 자기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인권을 알려면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건이 필요한 걸까? 굳이 따지자면 청소년으로서의 삶은 매 순간이 그런 '계기'로 가득 차 있는 것 아닐까.

나에게 초면부터 반말을 하는 어른에서부터 나를 오직 성적으로만 측정하는 입시 교육이나 친권자의 말을 들어야 하는 가족의 시스템까지, 미시적인 데서부터 거시적인 데까지, 청소년들의 일상은 모두 '계기'이다. 나 역시 특별히 뭐뭐가 싫었다기보다는, 그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청소년들이 받아야만 하는 온갖 비민주적인 불합리한 억압과 규제들 전반에 대한 짜증이 쌓여 있었다. 교복, 두발규제, 등교시간 등에서부터 진로나 입시의 문제까지, 모두 모두 모두! 아마 다른 청소년활동가들도 비슷한 사정이었을 것 같다.

오히려 문제는 인권에 대한 인식이나 자기 삶에 대한 불만보다는, '행동'일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나 불만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될까? 여러 가지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제가 얽혀 있을 법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운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냥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집단적 지속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하는 '운동'을 하게 될까?

나 같은 경우, 일단 '행동'에 나서게 되는 데까지는 별다른 문턱이 없었다. 그냥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이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단발적이고 개인적인 항의와 행동 등을 학교 안에서 했었다. 그렇게 하면서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았다. 고민이라곤 그저 부모님이 활동하는 것 때문에 불이익이라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과, 대입 등 진로 문제 정도? 애초에 성적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을 하면서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와도 괘념치 않았다. 교사가 불러서 나무라면 "지금 저한테 중요한 게 뭔지는 제가 결정해요."라고 당돌하게 대답하곤 했다. 원체 고민 없이 사는 스타일이라서 그렇다.

그러다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2005년, 고3이 되고난 후였다. 2005년 5월 7일, 혹시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다. 내신등급제에 반대하며 청소년들 1000여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 1주일 뒤인 14일에는 '두발자유'와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집회가 열렸다. 2주일 연속으로 열리는 청소년들의 거리집회에 언론도 인터넷도 술렁거렸다. 나도 신문으로 인터넷으로 그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두발자유 집회에 참가하러 광주에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런 단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비로소 '운동'이라고 할 만한 걸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모아서 소모임을 만들고, 모임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계획을 짜서 활동도 하고, 지역에서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작은 집회를 준비했다. 말하자면 '운동'이라는 걸 남들이 하는 걸 보고서 "오 저런 방법이!" 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준비할 때(결과적으로는 한 20명이 왔고, 소나기까지 내려서 망했다.) 아수나로에서 도와주겠다고 온라인으로 연락을 해왔다. 그 이후에 꾸준히 교류를 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가입도 하게 되었다. 아수나로는 원래 "청소년인권연구포럼"으로 과거에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20대가 되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를 하고 청소년인권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였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이름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 바꾸고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활동하는 활동 단체로 성격을 전환했다. 처음에는 두발자유 운동을 주로 했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여러 활동에 함께하고 학교 밖에서는 거리 집회, 서명운동 등을 꾸준히 벌였다. 그렇게 나는 '어느샌가', '자연스레' 청소년인권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질문2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왜 아직도 청소년운동을 해요?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보다 더 높은 빈도를 자랑할지도 모르는 질문이다. 바로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왜 청소년운동을 해요?"이다. 하도 많이 질문을 받다보니 이제는 그냥 웃으면서 "그러게요."라고 대답하고 넘기고 싶을 정도다. 하기사 내 나이도 이제 20대 초반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스물넷.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궁금할 법도 하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 안에서 최고령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주변에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9로 시작하는 상황에서 앞자리가 8로 시작하는 나는 대단히 노땅 취급을 받곤 한다.

이 질문 역시 대답하기 다소 곤란하다. 대답할 만한 어떤 거창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이런 식으로 대답을 했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라서요." "왜 청소년인권활동가죠?"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니까요." "왜 이제 청소년이 아닌데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냐니깐요?" "청소년인권활동가라서요." … 물론 질문한 사람을 만족시켜주는 대답도 아니고, "그건 그냥 관성이잖아!"라거나 "말장난하지 마세요." 같은 비난을 듣기 딱 좋은 대답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진실에 가까운 대답인 것을. 나는 내가 청소년인권활동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게, 그게 내 삶이고 내 일이니까 한다는 게 그렇게 말장난 같이 들리는 걸까?

그래서 나중엔 이걸 좀 더 그럴 듯하게 포장해보았다. "왜 사는지 이유를 필요로 하진 않잖아요? 청소년운동이 그냥 제 삶이 된 거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대충 끄덕끄덕 하는 것 같긴 하던데, 말하는 내가 닭살이 돋는다는 게 문제다. 가장 솔직한 대답은, "아니 뭐 19살까지 청소년운동하다가 스무살 되어서 싹 손 떼는 게 더 얄밉고… 계속 하고 싶고… 어쩌다 보니…"일 것이다. 관심 가지고 있고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해도 좋다. 애초에 아수나로 자체가 과거에 20대가 되면 청소년운동에 딱 발을 끊는 문화를 비판하면서, 비청소년들도 청소년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열어놓고 시작한 단체였기 때문에 단체 안에서의 어려움도 별로 없었다. 사실, 20대 됐다고 해서 청소년운동에 관심 끊고 발 끊는 것, 그건 그것대로 또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나이주의는 여러 가지 난관이 되고 있다. 비록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나이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 나이가 많다고 해서 권력을 가지거나 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쉽고, 밖에서 보기에도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청소년운동 안에서, 단체 안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할 거리들, 주의할 부분들이 많아져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감수하고라도, 나는 청소년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



질문3 너무 이상적/급진적이지 않아요?


세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청소년운동이 너무 이상적, 급진적이지는 않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질문을 때로는 정말 궁금해서, 때로는 조롱의 형태로, 때로는 걱정의 옷을 입고, 때로는 화를 내며 던진다. 청소년운동은 두발자유 정도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강제로 교복을 입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고, 복지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입시경쟁교육을 없애기 위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주장하기도 하고, 학생들을 점수로 평가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목적을 시험보기로 만들어버리는 시험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학교 교육에 대한 선택권, 더 나아가면 전 사회적인 탈학교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학 안 나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올해 3월에 우리가 열었던 집회의 주요 요구들이었다.

청소년운동의 이야기들이 교육 영역으로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하며 나이가 몇 살이든 정당 가입, 정치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청소년들에게 온갖 것을 금지하는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하고, 청소년들에게 정말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함께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한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성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혹시 임신을 하게 되면 비난 받지 않고 잘 낳아서 양육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모, 보호자 등 친권자가 자녀에 대해 너무 많은 권력과 책임을 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지금과 같은 가정을 폐지하고, 사회적인 양육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예 '미성년자'라는 차별적 말을 없애자는 것, 사람은 누구나 다 미성숙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미성숙하고 누구는 성숙하다고 나누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우리가 함께 사회적으로 서로의 인간다운 삶을 책임지자는 것, 그것이 나처럼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이런 요구들은 물론 지금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급진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한 번 역으로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주장들을 놓고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은, 과연 이런 얘기들이 '급진적'이어서 반대하는 걸까 아니면 이것 자체에 반대하는 걸까? 만일 그 이야기 자체에는 동감하지만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함께 조금씩조금씩 바꾸어가면 될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 청소년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하니, 우리 사회를 이런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자는 제안인 것이다.

2005년에 두발자유 운동을 할 때, 그 당시에는 두발자유를 이야기하더라도 염색/파마의 자유까지 주장하는 것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물론 그런 경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2011년 8월 초, 주민발의에 성공한 서울 학생인권조례안은 원칙적으로 염색/파마 등의 자유까지 완전히 보장하고자 하고 있다. 최소한 염색/파마 등 머리카락의 색깔과 형태를 바꾸는 게 너무 급진적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차별금지, 체벌금지, 두발복장자유, 학생의 학교 운영 참여 등을 대표적인 내용으로 세워두고 거리에서 4개월 동안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을 하면서 두 가지 양면적인 감정을 느꼈다. 어른들은 역시 아직도 학생인권에 대해 무관심하고 거부감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마음, 역시 청소년들이 직접 나서서 해야 겠구나 하는 것이 그 하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6년 전 내가 처음 청소년운동을 하던 때보다 학생인권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인상을 받았고, 우리의 활동이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2010년 9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을 때도, 2011년 7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완전히 성사되었을 때도, 그런 안도감을 느꼈다. 처음에 학생인권운동이 시작되었던 1995년에만 해도 학생인권조례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너무 성급하다. 기다려라."라는 말은 "안 해주겠다."라는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일 때가 많다. 그 말에 그저 기다리다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나마 천천히, 세상이 바뀌어 간다.

무엇이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점진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변화가 급진적일지 점진적일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온힘을 다해 주장하고 부딪쳐야 겨우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곤 한다. 그래서 너무 급진적/이상적이지는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한 발 물러나서 얘기하지 말고 직접 현실 속에 서서 행동하면서 본다면, 급진적인 것은 없다. 그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고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바라는 마음과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운동이다. 그것이, 내가 이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청소년운동을 하는 자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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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일감 있고 좋네요. 잘 쓰겠습니다..... ^^

    2011.10.19 01:37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 사실 이거 청탁 받을 때 주제가 좀 여러 개를 같이 넣어달라고 요구 받아서 고민 끝에 정한 형식이었어요

      2011.10.20 01:24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1. 10. 17. 16:10

(대학입시거부선언운동 포스터)
http://cafe.daum.net/wrongedu1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한다


교 육의 목적은 우리가 좀 더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은 과연 어떤가요? 사람을 점수 매기는 것, 줄 세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경쟁시키는 것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수능과 대입은 우리의 수학능력을 검정해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평가로 우리를 등급으로 나누고 줄 세우는 것일 뿐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숫자로 점수 매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어떤 이는 숨 막히는 압박감을 견뎌내야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경쟁에서 밀려난 낙오자 취급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가치는 점수로 성적으로 등수로 백분위로 매겨지고 있습니다. 이건 인간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상품을 위한 품평이고 경쟁일 뿐입니다. 무한경쟁은 교육이 아닙니다.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합니다.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주입식교육에 반대한다


시 험을 위한, 경쟁을 위한 교육은 우리들에게 정답을 외울 것을 강요합니다. 주어진 정답을 얼마나 잘 외웠는지, 시험을 내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교육은 학생들이 함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사가 강사가 조용히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답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됩니다. 이런 교육이 학생들이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요? 학생들은 교육의 주체입니다. 학생들에게 이미 정해진 정답을 일방적으로 외우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찾아가고 체험하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입니다. 다양한 답을 인정하는 교육, 체험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교육, 참여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교육을 원합니다.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학 생들은 학교에서 인간으로서의 여러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두발복장단속, 숱한 차별들, 폭력들이 당연한 일상처럼 일어납니다. 학생들이 목소리를 냈다가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경쟁의 압박이나 공부 부담 그 자체가 인권침해가 됩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수직적인 권력관계를 내면화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곤 합니다.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학교가 더 효율적으로 값싸게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학생인권침해의 원인입니다. 이는 인간보다 학생보다 성적이, 입시가, 성과가 더 중요시되는 비정상적인 교육의 모습입니다.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 과정에서 우리의 인권은 더욱 잘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 육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소질을 계발하고, 사람답게 더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학교는 입시준비학원, 취업준비학원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내용들은 많은 부분이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교육이 시험을 보기 위한 도구, 생존을 위한 스펙 쌓기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입시, 취업 위주의 교육은 그 내용도 우리들의 삶에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는 ‘시험 봐서 점수 매기기 좋은 것’들로 채워집니다. 그럴수록 지식은 삶에서 동떨어지게 되고, 학생들이 진짜로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고 바람직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 체험과 만날 수 있는 교육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대 학등록금은 1년에 수백만원, 학교에 따라서는 천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은 돈 많은 사람들만이 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 학비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치솟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육열"은 단지 정부가 사회가 교육을 함께 책임지지 않고 개인의 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어느 학교든 전반적인 교육예산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학교 시설은 열악하고, 교사의 종류와 수는 부족하고 학급당 학생수는 너무 많습니다. 교육예산 부족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좋은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누리는 권리입니다. 사회에서 정부에서 교육에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의 완전한 무상교육, 보편적인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한 국에서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대학 진학율이 80%를 넘어서는 현실에서, 일단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학을 가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나 못난 사람 취급을 받게 됩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성공한 삶’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단 대학이라는 공인된 기관을 졸업해야만 좀 먹고 살 만하다는 경제적인 이유부터,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 거부감이 있습니다. 대학은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 더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하나의 선택지여야만 합니다. 대학 밖에서도 다른 많은 공부나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을 모두가 가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에 반대합니다.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벌차별과 학벌사회에 반대한다


이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고졸보다는 대졸이, 대졸 중에서도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더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임금부터 시작해서 많은 상황에서 차별을 받게 되고, 사람들도 학력과 학벌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곤 합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은, 모두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그리고 더 이름값 있는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결코 학력이나 학벌만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고, 평등한 기회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학력과 학벌에 대한 차별들을 금지하고 사람들의 차별적인 생각들을 바꿔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 리 사회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배경과 학력, 학벌을 확보해둬야 좋은 직업을 가지고 소득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조금만 삐끗하면 저소득층, 빈곤층으로 추락할 거라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지금과 같은 경쟁교육과 사회를 유지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 대학을 가지 않고 특출난 능력과 운으로 억만장자가 된다고 해도 그건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 오히려 그런 운과 재능이 없는 많은 이들을 대학에 목을 매야 합니다. 생존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를 바꾸고 경제구조를 바꿔가면서,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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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13. 04:23


학생인권조례의 기본 철학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연구소 창,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는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으로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지침서>를 만들었다. 지침서에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각종 국제인권조약과 조약기구들이 제시한 바 있는 학생인권에 관한 기준, 유엔회의 결의문, 유니세프 '아동친화적 학교' 가이드라인 등을 종합 검토하면서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10가지 열쇠말'을 뽑아냈다. 이 10가지 열쇠말이야말로 학생인권조례의 기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1. 권리의 존엄한 주체로서의 학생
아동기 혹은 학창시절은 성숙을 기다리는 인생의 대기실이 아니다. 학생은 학교생활 전반에서 존엄한 권리의 주체로서 대접받아야 한다. 학교는 학생이 의사를 형성하고 표현하고 결정에 참여하고 변화에 기여하는 과정을 통해 권한과 권리행사 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학생을 조작이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 자체이자 능동적 행위자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2. 참여와 결정을 훈련할 수 있는 학교
학생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고 그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의견을 밝힌다는 것은 의견을 표현할 진정할 기회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위해서는 학교 생활은 물론 사회에 대한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명목적인 참여, 장식적인 참여, 조작된 참여는 진정한 참여일 수 없다. 학교는 학생에게 능동적인 참여, 의사결정,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는 도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3.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에 맞서는 학교
학교는 학생의 다양성을 사랑해야 한다. 학생은 특정한 규범이나 삶의 양식에 종속당하기를 강요당하지 않고 자기 존재 그대로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학교는 다양성을 교육의 주춧돌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고 학생이 부당하게 구별되거나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혹은 잠재하는 차별을 확인하고 이에 맞서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뒤따라야 한다.


4. 감당할 만한 교육
학교 교육은 학생이 감당할 만한 교육이어야 한다. 학생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 교육은 교육의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교육은 학생 친화적이고 학생 중심적으로 짜여야 한다. 교육의 목표는 물론 교육의 내용과 과정, 학교의 규율 등은 학생의 존엄성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5. 자유의 행사를 통한 책임 있는 삶의 영위
학생은 학교 교육을 통해 자유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 책임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되어야 한다. 책임 있는 삶에 대한 준비는 질서 유지나 통제의 강박에서 나오는 강압적 지도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인권에 대한 상호존중, 이해와 평화, 연대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교육이야말로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6. 총체적 삶에 대한 돌봄이 있는 학교
학교는 학생의 삶에서 중요한 인격적, 사회적 환경이다. 학교는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에 학생이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학생에 대한 총체적 돌봄이 불가능하다. 학교는 아동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학교에 들어오기 전과 학교를 떠난 후 학생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필요한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7.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에 대한 존중
학생의 삶에 대한 돌봄과 교육을 제공하는 과정은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에 기초해야 한다. 건강, 안전, 성장에 대한 관심과 돌봄은 학생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하고 행동의 선택을 결정할 기회를 제공받고 인격을 존중받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8. 네트워크와 연대가 꽃피는 학교
학생 인권 보장은 교사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었을 때는 실현될 수 없다. 학생 인권은 인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을 갖춘 학교를 요구한다. 학교는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지원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비롯, 학교 밖 행위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학교 밖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학교가 연대의 공간으로 재구성되기 위해서는 학교 안팎의 행위자들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9. 교사의 권한과 역량 강화
교사의 연대 없이 학생 인권은 보장될 수 없다. 교사의 연대는 그들의 책임에 대한 강조 뿐 아니라 충분한 권한과 역량의 확보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교사는 학교의 변화를 이끌 옹호자이자 변화의 촉매자로서 능동적 참여를 보장받아야 하고, 학생 인권에 목소리를 내는 데 필요한 권한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10. 권리구제에 대한 보장
학생은 인권침해에 노출되기 쉬울 뿐 아니라, 인권침해를 호소하고 그 호소가 경청되는 경험을 갖기 힘들다. 사법 절차를 통한 구제에 접근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없이 인권이 보장되고 인권침해가 예방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대한 실효성 있는 학교 안팎의 구제 절차를 알고 그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학내 권리 구제 제도를 마련하는 경우에는 학생의 의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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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8. 16:40

광주학생인권조례, 이제 출발이다. 광주학생인권조례 통과를 환영하며,

시교육청은 실질적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바란다.

 

 

 

  오늘, 10월 5일, 광주학생인권조례가 광주시의회에서 재석 21명 중, 찬성 17명, 반대 2명(박인화, 임동호), 기권 2명(정희곤, 이은박)으로 통과되었다. 지난 9월 26일, 교육상임위에 이어 오늘 광주학생인권조례가 광주시의회에서 논의되었고, 드디어 통과되었다. 광주학생인권조례의 통과는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되어왔던 학생인권의 열악한 현실을, 지금도 학교 안팎에서 고스란히 그 무거운 짐을 떠안고 있을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학생인권보장을 요구해왔던 지역사회에, 기쁜 소식임에 분명하다. 그 동안 광주학생인권조례가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통과되기를 촉구하고 학생인권보장을 요구해왔던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환영하고, 광주시의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광주학생인권조례가 통과함으로써, 학생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난무했던 학교에서, 인권의 가치가 넘실대는 진짜 교육의 현장으로 바뀔 학교가 기대된다. 광주 학생인권조례는 말로만 떠돌았던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당연한 명제에 힘을 보태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며 또한 학생인권보장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학생인권보장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 유보되거나 미뤄질 수 있다고 의견을 밝힐 수도 없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조례안과 관련한 불필요한 논쟁을 진행하기보다 조례가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정착될 수 있을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조례를 발의하고 통과한 광주교육청과 광주시의회는 물론이고 관심있는 모든 교사,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 시민 모두의 몫일 것이다.

 

  특히 광주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가 현장에서 충분히 적용되고,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현장의 걱정과 우려가 존재하고, 또한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요구하는 이들이 상당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구성원내부의 교육과 인권문화형성을 위한 노력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학생인권조례는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광주시 교육청은 시급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례정착을 위한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아울러 광주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광주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추진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의 문제는 광주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의 학생에게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는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인권조례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밝힌다. 각 지자체 및 중앙정부에서도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역할과 책임을 다하길 진심으로 촉구한다.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 가고 싶어지는 학교, 진정한 소통과 교육이 존재하는 학교, 학생도 교사도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될 광주학생인권조례의 광주시의회의 통과를 다시 한 번 환영한다. 이제 출발이다.

 

 


2011. 10. 05.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원회
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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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티스토리 블로그 트래픽 올리는방법을 공유하러 왔습니다.
    새로운 소셜서치 지폰에서 티스토리 블로거분들을 모집하고있습니다.
    지폰에 사이트 주소를 등록하시면 10만명 유저의 방문객의 효과를 볼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gpon.tistory.com 여기에 와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0.08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9. 20. 16:33





http://blog.naver.com/communebut/20138034384
<오늘의교육> 7,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후일담인데...
7월 중순이었나- 평등교육학부모회 사람을 만났는데 제가 범국민교육연대에 저 메일 보낸 거 가지고 안에서 말이 많다고 하더군요. 대충 뭐 저걸 공개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그래서 웃으며 이미 <오늘의교육> 원고에 넣어버려서 공개했는데, 라고 했었다지요. >_<
내가 저거 공개 안 하거나 부끄러워 할 줄 알았나;;
에휴. 부끄러워 해야 할 게 누구인지.


p.s. 다행히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는 최종 성사되었습니다! ^^ 이 글은 6월 말 쯤에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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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바동거립시다

-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과정에 대한 평가

 

윤종(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gonghyun@gmail.com

 

 

 

왜 곽노현 교육감 놔두고 주민발의를 하려고 했나

2010년 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활동해 온 지 1년, 아니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해 온 지 5년 반 만의 ‘성과’였다. 하지만 특별히 축배를 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청소년활동가들 사이에는 약간의 당혹감도 감돌았다. 이렇게 쉽게 통과될 조례가 아닌데, 하는 당혹감.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갑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올랐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은 우리에게 분명히 성과였지만, 일종의 ‘무력감’을 동시에 안겨 주었던 것 같다. 물론, 우리가 자문위원회에서, 학생참여기획단에서, 공청회장에서, 거리에서 그 ‘개고생’을 하고 주먹구구식 교육청 행정과 형식주의에 휘둘리기도 하고, 집회의 자유와 두발 자유 등을 가지고 그렇게 치고받고 했던 과정이 있었기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노력은 정말 별 의미가 없는 것만 같은 느낌을, 많은 청소년활동가들이 느껴야만 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상곤 교육감이 집회의 자유를 명시한 조항 등을 흐려 놓은 안으로 발의를 했을 때도 그랬고,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도의회에서 삽시간에 통과가 됐을 때도 그랬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도 골치 아픈 일들은 많았다. 가장 대표적으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 학생들에게, 교사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그래서 통과 직후에는 “두발 자유 조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오해도 많았다. 교육청과 학교에서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배포하고 교육과 홍보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들을 우려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전부터 학생들에게 홍보해야 한다고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했지만, 교육청에서는 아직 제정되지 않은 조례를 홍보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교육청의 입장과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알지 못하는 현실도 답답했다. 교육청과 지역의 여러 단체들 사이에 학생인권조례 정착을 위한 공조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하고자 한 것은 이런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의 경험과 현실적 어려움들 때문이었다. 교육청이나 서울시의회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보다 후퇴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또 서울시민들에게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다른 움직임이 필요했다. 두발 완전 자유화 등이 명확하게 들어간 좀 더 나은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조중동문 등을 비롯한 언론들의 학생인권 반대 공세에 대한 고려도 없진 않았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주민발의는 무엇보다도 운동에 대한 강제였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게을러지지 말고 계속해서 거리에서, 조직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학생인권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의무를 부여했다. <경향신문> 3월 특집 <아직도 먼 학생인권> 같은 것들도 어떻게든 학생인권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제안하고 함께 준비한 기획이었다. 또한 주민발의는 학생인권에 대해 소극적으로 찬성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던 여러 단체와 개인들에게 ‘학생인권 쪽박 차는 꼴 보기 싫으면 서명 모으세요’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6개월 안에 8만 2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야만 한다는 조건을 걺으로써, 각계각층의 지역운동, 시민운동, 종교운동, 노동운동 등이 학생인권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한몫을 하도록 압력(?)을 가했던 셈이다.

 

 

절반의 성공

그래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의 목표는 달성했을까? 일단 거리로 나가서, 여러 행사장에서,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일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본격적으로 거리 서명을 시작한 2월부터 5월까지, 못해도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설명을 했을 것이다.

 

주민발의 과정에서, 어디 서명해 줄 곳 없나 하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찾고 연락한 끝에, 이전에는 학생인권운동에 대해 잘 모르고 결합하지 않았던 여러 새로운 단체들, 사람들도 발굴해 낼 수 있었다. 종교의 자유 조항을 보고 종교계 등이 힘을 실어 주었고, 어린이책시민연대 역시 학생인권조례에 열의를 보였다. 온라인에서도 SNS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 많은 누리꾼들이 학생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학생인권을 위해 글을 올리고 서명을 모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온갖 노력의 결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무엇보다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주민발의 과정에서도 제정 이후에도 가장 큰 힘이 되어 줘야 할 교육운동의 움직임이 소극적이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처음에 회의 과정에서 주민발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최대 3만, 최소한 2만 정도를 목표로 세웠으나 서울지부 조합원 숫자만큼의 서명도 모으지 못했다. 또한 서울의 여러 지역에 터를 둔 수많은 ‘풀뿌리’ 교육단체들과 교육시민단체들 중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에 참여한 단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었다(물론 그 단체의 활동가들이나 간부들은 대체로 서명을 했다. 그러나 단체 차원에서 힘을 실어 주진 않았다).

 

 

안이함과 절박함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이 글은 어쩌면 교육운동을 좀 까는 글일 수 있다. 하지만 먼저 좀 착해 보이기 위해서 자기반성부터 해 보겠다. 나 역시 2010년까지만 해도 이 주민발의에 대해 다소 안이했다. 뭐랄까, 그래도 교육운동을 비롯해서 이른바 ‘민주·진보·개혁’ 운동 안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와 관심이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학생인권 문제가 공론화된 지가 10여 년이고, 학생인권법이나 학생인권조례 등의 이야기가 나온 게 6년째인데 설마 또 이걸 하나하나 설득을 해야 할까, 여러 단체들의 회원들과 회원들의 지인들 정도만 받아도 반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러나 되돌아보면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민주노총이나 정당들, 전교조들, 학부모들, 지역단체들을 방문하며 학생인권에 대한 교육과 간담회를 먼저 진행했어야 했다. 학생인권 의제는 설령 그 조직의 간부들이나 활동가들이 동의하고 있더라도 그 조직의 회원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의제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해 달라고 하면 해 주겠지, 라고 생각하며 별로 어렵지 않게 수천수만의 서명을 약속했던 큰 조직의 활동가들은 금세 벽에 부딪혔다. 그게 친환경급식조례나 광장조례와는 다른 부분이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만들려고 한다면, 자기 조직을 그 조직에서만 알아서 챙기는 게 아니라, 학생인권운동 차원에서 회원들, 조합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육하고 간담회, 토론회를 하는 등의 자리를 계속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내가 주민발의에 ‘올인’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데는 만19세 이상만 서명을 할 수 있는 주민발의 방식의 문제도 있었다. 주민발의 서명을 모으는 활동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리 서명 외에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법적으로는 수임인도 될 수 없기 때문에 거리 서명을 받더라도 형식적으로는 직접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초기에 청소년 측의 계획은 홍보 활동을 함께하거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청소년 서포터즈’ 같은 식으로 학생들, 청소년들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좀 모호한 부분이 있다. 나는 지금도 학생인권조례가 청소년들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도 지역에서, 학교 안에서 터를 잡고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런 조직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6개월 안에 만19세 이상 유권자들 1%의 서명을 받아 내야 하는 주민발의는 그런 데까지 힘을 쏟을 여유를 주지 못했다. 주민발의에서 청소년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은 초기 기획 단계부터 있어 왔다. 그런 문제의식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서명은 비청소년 단체들이 모으고 청소년단체들은 청소년들의 행동과 조직을 만드는 사업에 전념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안이한 마음가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11년 1월 말, 3개월이 지났는데도 서명 수가 1만도 채 되지 않았고, 2010년 9월만 해도 빨리 시작하자고 재촉하던 전교조 서울지부에서는 조합원들 사이에 동의가 되지 않아서, 준비가 되지 않아서 서명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결국 주민발의를 계속할 건지 포기할 건지를 안건으로 놓고 논의하는 자리까지 열렸다. 그 자리에 참가한 청소년활동가들이 이런 식으로 갈 바에는 그냥 주민발의를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다른 청소년활동가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여러분들한테는 이게 실패해도 연대 사업 하나가 실패한 것뿐이겠지만 청소년인권운동에게는 5년, 10년을 해 온 운동이 실패하고 크게 후퇴하는 겁니다.”

 

다시 결의를 다져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끌고 가기로 결정하고, 2월부터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매일같이 거리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목표는 하루 200명씩. 1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6시간씩. 거리 서명의 주력은 어쨌건 청소년활동가들이었다. 그때 청소년활동가들이 그렇게 매일 거리 서명을 한 동력은, 마음속에 “역시 어른들을 믿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불신과, 겨우 꽃피우려고 하는 학생인권을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들이, 학생들이 만들어 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 지경이 되어서도 그 ‘절박함’은 몇몇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것 같았다. 무상급식 책 출판기념회에 서명을 받으러 갔을 때 남의 행사에 와서 이런 거 하면 욕먹는다고 하지 말라고 했던 활동가의 말은 지금도 내게 상처로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그 활동가는 1월 말에 주민발의를 끝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었다(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1월 말 회의 때 적극적으로 주민발의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단체들 중에서 자기 말에 그만큼의 책임을 진 건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흥사단교육운동본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어이가 없어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펑펑 울었다.

 

그밖에도 어차피 안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안 한다는 사람들, 주민발의 실패한다고 망하는 거 아닌데 이거에만 목매달 필요 없지 않냐는 사람들, 딱 1번 거리 서명 나온 건데 ‘다른 할 일도 있었는데 나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하도 문자를 보내셔서 나왔다’고 웃으면서 말하던 사람들, 뭐 어차피 안 돼도 교육감 발의나 의원 발의도 있지 않냐던 사람들……. 2월부터 서명 작업이 끝날 때까지 3개월은 그런 수모와 실망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힘이 되어 준 단체들, 사람들도 많긴 많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단체였는데 열과 성을 다해서 수백 장, 수천 장을 해 온 곳들도 있었고 마음을 함께하며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지탱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3개월을 계속 걸어 나간 힘에는, 잘 안 하면서 미안해할 줄도 모르고 초만 치는 사람들이 미워서 보란 듯이 성공시켜 버리겠다는 악과 깡, 그리고 그래도 의외의 곳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서라도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을 것이다.

 

 

운동의 무능함

교육운동은 왜 그렇게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에 적극적이지 못했을까? 물론 학생인권 문제는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서 열심히 하지 않은 탓도 클 것이다. 그에 더해서, 처음에는 ‘이 인간들이 학생인권에 반대하거나 떨떠름해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러나’ 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나는 한편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라. 분회장들 연락처도 다 확인이 안 되고 있고 분회까지 연락이 다 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전교조 서울지부는 얼마나 현장 조직과의 괴리를 보여 주고 있는가. 어차피 안 될 것 같아서 안 한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굉장히 비겁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 뒤에는 얼마나 큰 무력감과 패배의 상처가 있는가. 지역 풀뿌리 교육단체라고 하는 곳에서 전교조 지회 없이는 자체적인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상황은 또 어떤가. 자식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수임인 등록하고 자기 인맥으로 단 하루 동안 60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내는 ‘일반인’에 비해서, ‘40명, 50명도 모으기 어렵다’, ‘학생인권에 대해 말을 꺼내기 두렵다’고 하는 교육운동활동가들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홍세화 씨가 한겨레 칼럼에 쓴 말마따나, 무상급식 주민투표 서명은 80만 명을 모아 내는 상황에서 단 8만 명도 모으지 못하는 그 조직력의 차이는 얼마나 참담한가. 체벌 금지에 찬성한다는 전교조에서는 왜 체벌 금지를 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현장 실천이나 지침을 전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가. (혁신학교에 바빠서?)

 

우리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하면서 부딪힌 것은 사람들의 반발이 아니라 운동의 무능이었고 활동가들의 무기력이었다. 내가 화가 났던 것은, 다수의 교육운동활동가들에게서 청소년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 ― 어차피 우리 운동의 현실은 시궁창 밑바닥이고 더 물러설 곳도 없고 아등바등 발버둥 쳐서 어떻게든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그런 마음 ― 를 별로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교육운동의 현장 조직(학교와 지역)이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고, 활동가들의 피로감 때문이었으며, 일종의 현실 안주 때문이었다.

 

 

밑바닥에서 바동거리지 않으면……

4월 중순 무렵에 범국민교육연대에서 보낸 메일을 보다가, 2012년 교육혁명연구회를 만들자는 제안서를 보고서 열 받아서 답장을 보냈다.

 

“야, 이 개새끼들아, 하고 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네요.

뭐? 2012년 교육혁명을 연구한다구요? -_-

서울시민 1%의 서명도 조직 못해 내는 교육운동이 어지간히 혁명 잘 하시겠습니다, 그려.

범국민교육연대에서 소식이라고 보낸 이메일 중에서

학생인권조례 서명 조직해 달라는 요청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주간교육동향브리핑에서도 아~주 드문드문 본 것 같네요.

이제 2주 남았습니다.

2주 동안도 학생인권조례에 올인할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한다는 겁니까?

더 이상 호소하고 부탁하기도 지칩니다.

이제는 협박 컨셉이거든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실패하면

교육운동을 아주 가루가 되게 밟아 드릴 테니 각오하고 계세요.”

 

메일을 받아 본 담당자분이나 범국민교육연대 활동가분들의 얼굴이 어땠을지 알 길이야 없다. 지금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은 마지막 보정 기간을 앞두고 있다. 1만 장 정도가 부족하긴 하지만, 무효 서명지로 돌아온 것 중에 단순 오타나 이름을 잘못 본 것 등이 많아서 꽤 많은 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고 거리 서명/우편 서명도 하루 1,000명 이상을 받아 내고 있어서, 아마도 성공할 것으로 점쳐진다. 일단 교육운동을 가루가 되게 밟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긴 하다. 그 밖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주민발의 실패할 경우에 대해 온갖 협박을 해 놔서 뒷감당이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다.

 

하지만 앞의 이메일에 적은 것과 같은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사실 이 문제는 옛날부터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단체 안에서도 계속 말이 나왔던 문제였다. 교육운동은 일제고사를 놓고서 “평가를 평가한다”라고 하면서 시험식 평가, 점수 평가 자체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기는 하지만, 정작 그런 주장을 대중화하고 운동과 실천으로 만들어 내는 데는 무관심하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서 대학평준화를 이룰 것이라고 하더니 정작 만들어 놓은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는 2년, 3년 지나니까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연대체 제안은 맨날 메일로 오는데 그 연대체에서 어떤 현장 투쟁과 실천을 조직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교육희망네트워크가 선거용 조직이라고 비판하는 좌파 교육활동가들은 그럼 선거만 바라보고 정책 만들고 토론회하고 세미나 하는 것 외에 무슨 아래에서부터의 운동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공을 보며 교육운동활동가들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부끄러움? 감동? 글쎄. 내 작은 소망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과정이 교육운동활동가들에게 자기 운동을 반성하고 되돌아볼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안 될 거라고 했던 운동을 성공시킨 그 감격이 교육운동활동가들에게도 계속 좀 더 적극적으로 밑바닥에서 바동거릴 힘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4만이 채 넘지 못했던 서명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 속에서 1주일에 1만씩 늘어나면서 결국 8만 5천을 넘겼을 때 그 감동을, 이 과정을 함께하고 지켜봤던 활동가들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4월 초나 3월 말 정도에 그렇게 이슈화시키고 소문을 내면서 했다면 피가 마르는 기분을 좀 덜 느꼈을 텐데!) 입으로 헛약속만 남발하는 몇몇 단체들과 알음알음 정성을 모아서 마음을 담아서 서명지를 수십 장, 수백 장씩 보내 주시는 얼굴도 모르는 시민 여러분들을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비교해 보면서 느꼈던 그 씁쓸함과 따뜻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면 좋겠다.

 

전교조를 비롯해서 10년, 20년 교육운동을 해 온 분들이 충분히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건 이제 갓 6년 정도 운동을 한 내가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내 친척 중에도 전교조 해직 교사로서 도피 생활을 해 왔던 분도 계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히 지금 다시 한 번 주문하고 싶다. 교육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청소년들, 학생들과 같이 밑바닥에서 바동거려 보자고. 바동거리지 않는 한, 더 이상의 변화도 뭣도 없기 때문이다.

 

 

 

윤종(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언론 《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당사자로서 시작해서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코가 꿰어서 계속하고 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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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9. 14. 22:59
입 닥치고 내 말 들어, 이러고 싶은 거지?
학생 교내 집회는 안 된다고? 솔직해지시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24882&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좀 급하게 부탁을 받고 급하게 쓴 글이었는데

원제는 "학생인권조례 논쟁, 발전 좀 합시다!"로 달아서 보냈었다.
뭐 제목 달면서도 이거 아마 재미 없는 제목이라서 바꾸겠구만... 싶긴 했는데
입닥치고 내 말 들어, 이러고 싶은 거지? 라니 -_-; 자극적으로도 뽑으셨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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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갱이니, 종북이니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당연히 드는 생각을 말해도 막바로 저런 부류로 모는... 대체 언제쯤에나 바뀔 수 있을까요.

    2011.09.16 13: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9. 13. 12:40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흔들림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무리한 구속수사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곧 진행될 검찰의 기소로 교육감의 직무가 정지되는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곽노현 교육감의 운명과는 별개로,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시민의 열망을 받아 안아 진행되어 온 교육개혁 정책이 흔들림없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교육감의 직무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좌초시키려는 부당한 외압이 벌써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마련한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던 지난 8,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은 향후 서울시교육감 직무대행을 맡게 될 임승빈 부교육감에게 학생인권조례 추진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시교육감이 선거와 관련해 어려운 상황에서 급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검토할 것학교에서 학생지도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학부모와 교육현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인권조례 추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 동안 학생인권조례의 전국화 물결을 막고자 온갖 꼼수를 써왔던 교과부가 곽노현 교육감의 직무정지 사태를 계기 삼아 이 같은 외압을 다시금 일삼는 것은 지방교육자치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자 학생인권 보장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거스르는 반인권적 행태이다.

 

교과부와 일부 보수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로 대표되는 학생인권 보장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이미 지난해 교육감선거를 통해 서울시민의 다수 지지를 획득한 바 있다. 이미 지난 8월초 서울시민 10만여 명의 서명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주민발의까지 성사되어 시의회 상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안을 마련해 온 것은 서울시민과 교육주체들의 뜻을 받들고 선거공약을 책임있게 이행하려는 정책 추진으로 보아야 한다. 게다가 경기도에서는 이미 1년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돼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광주, 전북 등지에서도 학생인권조례안이 입법예고돼 의회 심의와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시기 상조이고 왜 서울에서만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뒤늦게 꽃핀 학생인권 시대에 발맞추어 서울학생인권조례는 흔들림없이 추진되어야 하고 불필요한 반대와 부당한 외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를 좌초시키려는 시도는 학생도 인격체라는 당연한 진실에 대한 부정이며, 학생인권을 지지해온 시민들의 연대에 대한 부정이며,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대한 부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감의 구속과 직무정지 사태에도 추호의 흔들림없이, 지난 1년간 준비해왔고 서울시민에게 연거푸 약속해 왔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감 개인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이 아니라, 학생인권의 절박한 상황에서 비롯된 서울시민과 교육주체들의 염원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오는 920일 입법예고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수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역시 서울지역학생인권조례의 제정과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서울시민 10만여 명의 지지를 받은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은 늦어도 104일까지 시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행여 정치적 고려나 외압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서 발을 빼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주민발의에 참여하고 지지해 준 시민들의 열망이 물거품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2011913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공동체 나다, 국제앰네스티대학생네트워크, 군인권센터,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교인권위원회,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법률공동체 두런두런,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서울지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서울지역본부,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서울특별시지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즐거운교육상상,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서울시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서울지부,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서울지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흥사단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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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9. 9. 19:01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학생인권조례 초안에 관한 논평



9월 7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교육청 초안'(이하 교육청안)을 발표했다. 먼저 우리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와중에도, 서울시교육청이 초안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열며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지를 보이는 것을 환영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개인의 거취와 무관하게 더 나은 교육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또한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사는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서울시민들의 뜻임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인권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이후에도 차질 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청안은 체벌 금지의 범위를 학교 뿐 아니라 학원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또한 학습권과 관련한 조항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 등과 비교해서 진일보한 면이 엿보인다. 학생들이 다른 학생과 비교되지 않고 정당하게 평가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경쟁적인 상대평가를 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것, 그리고 과도한 선행학습 실시나 요구를 금지한 것 등이 그러하다. 학생회를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기구로 위상을 강화한 점, 학생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한 점, 학생인권옹호관의 직권조사가 가능하도록 명시한 점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더 실효성 있게 시행되도록 하기 위한 성실한 고민이 엿보인다.

그러나 교육청안은 많은 부분 실망스럽기도 하다. 인권의 기준에 비추어볼 때 부족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육의 목적상 필요한 경우"라는 포괄적인 이유로 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3조는 학생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 될 수 있다. 또, 학생이 학교의 생활교육방침과 학교의 규율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한 5조의 2안 역시 무조건적으로 준법을 요구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학생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경우 관련 법령과 학칙에 따른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 조항 역시 걱정스럽다. 왜 교육감, 학교장, 교직원 등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경우 관련 법령과 학칙에 따른 책임을 진다고 하지는 않으며 학생에게만 그러한 책무를 부과하는가? 교육의 장인 학교에서 법령에 따른 책임을 먼저 적용하는 것은 과연 교육적일 것인가?

세부적인 권리 부분에서도 교육청안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차별금지 조항에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차별 사유 예시에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경기도학생인권조례 등에도 명시하고 있는 차별 금지 사유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일부 종교 세력 등의 반인권적․차별적 주장을 의식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차별을 받아도 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인권 보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학교 안에서 많은 차별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를 금지한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도록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차별 사유 예시로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둘째, 두발복장자유화와 관련하여 이를 학칙 또는 학생회 규제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두발복장의 자유는 개인에게 속하는 개성실현권으로, 이를 제한하여야 할 합당한 이유가 없이 학칙 또는 학생회 규제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반인권적이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는 자의적 두발복장규제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크며, 길이 규제만이라도 분명하게 금지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셋째, 휴대전화 및 전자기기 사용을 포괄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안을 거론하고 있다. 교육청안 15조 사생활의 자유 조항에서는 휴대전화 규제와 관련하여 2가지 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1안은 휴대전화 및 전자기기의 사용 및 소지를 교육활동과 수업권 보장이라는 사유로 포괄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소지 자체를 금지할 순 없고 수업시간 중 사용에 관해서만 학칙에 의해 제한할 수 있게 한 주민발의안이나 수업시간 등 정당한 사유에 따라 제한할 수 있게 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보다도 불합리한 안이다. 휴대전화 및 전자기기 사용은 수업시간과 같은 경우 필요최소한으로 규제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넷째, 집회의 자유에 관해서도 부당한 제한을 둘 소지를 가지고 있다. 교육청안에서는 집회의 자유에 관해서도 2가지 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1안에서는 집회의 자유를 "교육상 목적을 위해" "시간, 장소, 방법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집회에 대해 사실상의 허가제를 정당화해주는 반인권적 조항이 될 수 있다. 또한 2안 역시 "정규의 교과과정을 방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집회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할 위험이 있다.

다섯째, 학생자치의회 운영의 실효성을 보완하고 더 다양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교육청안에 따르면 학생자치의회는 초중고에서 각 1인씩, 학생회 중에서 뽑아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결국 1200여명의 학생들이 학생자치의회를 구성하며, 재적의 과반인 6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모여야 학생자치의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간, 재정 등 여러 여건상 이런 조건으로는 학생자치의회가 얼마나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육청안에서 정하고 있는 연 1회 정기회의 외에는 제대로 열지도 못하고, 소수 학생들의 스펙 쌓기에 도움이 되는 들러리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느낀다. 학생자치의회가 실질적인 참여기구로 활성화될 수 있는 보완 방안이 필요하다. 학생회 임원들 중에서 뽑다보면 일부 학생들이 과대대표될 수 있는 현실도 고려하여, 다양한 소수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 역시 필요하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최종적으로 성사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우리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는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이, 시간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주민발의안의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늦어도 올해 10월에는 제정되어야 하반기 중에 학칙 개정 등의 작업을 마치고 내년에 본격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원활하게 시행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서울시교육청이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더 서두를 것을 요구한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학생인권조례안이 성적 지향 및 성정체성 차별 금지 명시, 두발복장규제에 대한 자의적 규제 금지 등등 우리가 지적한 여러 문제들을 보완하여 더 좋은 학생인권조례안으로 발의될 것을 기대한다.

 


 


2011.09.08.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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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8. 10. 18:21


학생인권 종결자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두발규제에 맞서서 두발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이 아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말.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거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해!" 그런 개념 없는 소리에 맞서기 위해 두발자유 시위 때 이런 표어도 나왔더랬다. "잘리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인권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발칙하게, 이렇게 질문으로 답해보면 어떨까? "그게 그렇게 사소한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규제하고 단속하세요?"

  새로 나온 학생인권 책,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한겨레에듀.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공현, 박민진, 배경내, 오혜원, 정주연, 조영선 함께 씀.)는 바로 그런 발칙한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의 결실이다.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학생인권을 규제하고 침해하는 데 열을 올릴까? 학생들이 이런 인권을 보장받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권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나가면서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을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책의 본론 격인 2부, 그 중에서도 첫 장의 소제목,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는 그런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두발규제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아니요, 두발자유는 단순히 머리카락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은 왜 장발단속을 했는지 보수적 억압적 정부가 들어선 이슬람권에서는 왜 사람들에 대한 두발복장규제가 강화되는지, 1987년 노동자 투쟁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왜 임금 인상이 아닌 두발자유였는지, 풍부한 사회적 비유와 대조를 통해 두발자유 쟁점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두발자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두발규제와 두발자유의 의미를 비교하고 탐구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쟁점탐구』 2부는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교복․복장, 휴대전화,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연애, 총 8가지 학생인권의 뜨끈뜨끈한 주제들을 꺼내서 요리한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①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②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③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④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⑤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⑥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⑦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⑧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화장실"에서부터 질문은 시작된다

  서론 격인 1부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에는 좀 만만치 않다. 1부는 화장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교직원 화장실을 몰래 쓰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학생 이야기다. 그냥 시설이 좋아서 몰래 훔쳐 쓰는 게 아니다. 쓰고 나오면서 꼭 이런 것들을 붙여놓는다. "우리 학교 교사 수는 50명인데 화장실은 3개!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데 화장실은 몇 개일까요?" 같은 질문에서부터, "3층 남자 화장실 변기가 고장난 지 2개월째인데 수리도 안 해주고 있다!" 같은 고발까지.

  『인권, 교문을 넘다』는 어떤 화장실을 쓰느냐, "똥 쌀 권리"를 얼마나 어떻게 보장받고 있느냐,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화장실 뿐 아니라 중앙현관 학생 출입금지 같은 사소한 곳, 교무실 청소를 왜 학생들이 하느냐 하는 작은 불합리에서부터 학생들의 자기 처지에 대한 인식은 시작된다.

  이처럼 화장실로 시작한 1부에서는 동방신기 팬클럽 이야기,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개학반대 시위 이야기 등을 거쳐서 학생인권의 봉인을 풀어나갈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을 스스로 자문하다보면 어느새 학생인권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프레임'(생각 틀)들이 변화해가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학생인권이 넘어설 것들



  마지막 3부 "학생인권 논리탐구"에서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에 관한 논리들을 모았다. 부모 문제(친권), 미성숙, 법치주의, 보호주의, 교권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교 안의 소수자와 차별 문제까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넘어서야만 하는 것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을 큰 틀에서 짚어주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직접 읽어 보자.

"미성숙은 말 그대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달걀 프라이가 아니니 어디까지가 반숙인지 완숙인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 미숙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센 척, 성숙한 척하는 일도 많다. …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성숙하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을 철없는 사람으로 여기느냐, 곧 성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일이다."(pp.243-244.)

"보호의 반대말은 방임이 아니라 '자유'가 아닐까? 청소년이 자기 힘을 기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는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 보호주의를 넘어서자는 말은 청소년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을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둬 두는 보호주의에 묶여 있는 한,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p.260)

"교육이 전투가 될 때 교사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듯 보이는 학생인권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학생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통제력이라는 생각이 힘을 얻는 것 아닌가?"(p.264)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학부모가 가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를 학생의 삶에서 밀어내고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학부모의 위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 학부모가 주인공으로 나설 무대는 자신의 삶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은 이렇게 자녀의 삶에만 붙잡힌 채 자기 무대를 잃어버린 학부모도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건네고 있다."(p.293)

"학교에서 인정하는 능력은 공정한 경주와 노력의 결실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패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경주를 공정하다고 말하고, 뒤처지거나 패배한 이들이 자기 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폭력이고 숨겨진 차별이 아닐까?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능력, 돈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무능력하다고 얘기해도 될까?"(p.302)



학생인권 종결자


  현재 시점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는 "학생인권 종결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한 책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해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토록 넓고 깊게 파헤친 책은 이제껏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학생인권이라는 사회의제가 더 많은 내용,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되면 이 책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책이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바이블(Bible)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 역시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으로서 더욱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뽑아내기 위해 워크샵을 하고 집필을 하는 데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6년, 아니 10여년의 세월 동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고 발로 뛰어온 사람들이 궁리해내고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사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수능 문제집을 풀 시간, 취업 준비를 할 시간, 입시전형을 알아볼 시간 중 아주 조금만 할애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학생인권 현실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간중간에 제시하고 있는 더 이야기해봐야 하는 토론거리들을 가지고 같이 토론을 한다면 학생인권에 대한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토론 페이지 역시 뻔하게 "두발규제가 필요할까?" 같은 게 아니라 "연애할 자유를 보장하면 여성 청소년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피해를 겪는 일이 늘지 않을까?" 같은 섬세한 질문이나 "남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양심의 자유 차원에서 어떻게 볼까?" 같은 어려운 질문까지, 학생인권에 대해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구체화해야 할 고민지점들을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다. 책 디자인 자체도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와 만화 등을 풍부하게 실으려고 노력했다. 학부모 분들도 읽으시면 좋다. 그렇지만 집회의 자유 보장이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식의 무개념하고 얕은 소리가 버젓이 한국 1, 2위를 다툰다는 '정론지'에 실리는 현실에서는, 일단 그런 칼럼을 쓰는 기자들이나 교수들 먼저 이 책을 읽혀야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하자면, 학교를 졸업할 때,(재학 중에는 싸움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을 '잡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졸업 선물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그밖에 교육감들이나 장학사들, 교장들에게도 읽히고 싶다.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학생인권이 뭔지, 개념 탑재가 좀 될 수 있도록.

추신 : 책이 오탈자가 좀 많다. 급하게 편집, 디자인을 하다 보니 생긴 문제 같다.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나올 땐 가능한 한 고쳐져 있길!
인권, 교문을 넘다인권, 교문을 넘다 - 10점
공현 외 지음,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한겨레에듀

http://gonghyun.tistory.com2011-08-10T09:21:400.3101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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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8. 10. 18:11



청소년인권, ‘먼저’를 정하는 기준




  학생인권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신문을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품곤 한다. “학교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교사들의 교권 때문에 학생인권을 눌러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국가경쟁력을 위해, 입시를 위해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교육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 뭔가 심각하게 앞뒤가 뒤바뀌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이게 교과서에서 나왔던 바로 그 “가치전도현상”인가 싶으면서.
  학교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이다. 여기에서 교육권은 학생들의 인권 중 하나이며, 교육권을 올바른 실현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교권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더 잘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교권을 위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해야 한다는 것은 수단과 목적의 전도이며, 학교가 학생을 위한 곳이 아니라 교사를 위한 곳이라야 겨우 말이 될 것이다. 입시를 위해, 국가경쟁력을 위해 학생들에게 폭력과 차별을 가해도 된다는 소리는 또 어떠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 그렇다.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일은 곧잘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 원칙론 취급을 받곤 한다. “청소년인권도 중요하다. 하지만…”하면서. 그러나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청소년인권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대하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어서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옵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원래 ‘인권’은 무엇이 ‘먼저’인지 정하기 위한 개념이다. 왕권보다, 종교적 권한보다, 사람들의 보편적․기본적 권리가 먼저라고 말하기 위해 인권이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의 보편적․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것을 사회운영의 목적이자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인권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다. 때문에 무언가를 인권이라고 인정한다는 데서부터 우리는 이미 그것이 ‘먼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인권도 중요하다.”라고 하면서 그것을 한참 나중의 것으로 미뤄두는 사람들은 사실은 청소년인권에 반대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 아닐까?


인권의 기준으로 보기

  청소년인권이 ‘먼저’라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종교계 사립학교에서 예배나 종교의식 참여를 강요하는 것 등에 문제제기를 하면, 종교재단에서는 자신들의 종교활동을 할 권리와 선교할 자유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학교를 설립할 때부터 그 종교를 건학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건학이념에 따라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전주의 한 개신교계 사립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의견을 내면서 “종립학교는 종교의 자유가 예외”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의 건학이념이 무엇이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선 안 된다. 학교설립자의 건학이념도, 인권 보장을 전제하고 난 다음에야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 물론,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종교활동이나 선교를 할 자유 역시 인권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교사 개개인이나 학생 개개인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종교 강요나 부당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학교는 종교계 사립학교가 아닌데도 교사 개개인의 신념이나 성향에 따라서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반강권하거나 종교를 이유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만약 교사들이 자신들의 권한(평가권 등)을 남용하여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믿으면 가산점을 준다거나 하는 식의 행동을 한다면,(실제로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 사례 중 하나이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교사들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제어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이 문제는 결국 학교와 교사가 ‘선’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강요하는 현재 학교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며, 교사와 학생 사이의 그런 비대칭적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 모색도 필요하다.

  또 한 가지 뜨거운 쟁점 중 하나인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청소년들이 섹스할 권리, 성관계를 맺을 권리, 연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보통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경우에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그저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같은 소극적 개념만을 지칭할 때가 많다. 그러나 청소년도 인권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 성관계를 맺을 권리, 섹스할 권리, 연애할 권리 등이 포함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권리를 주장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비슷비슷하다. “아직 어린 것들이”, “공부에 방해된다” 같은 것에서부터 “그러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되면 책임질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짐짓 염려스러운 눈빛까지. 그러나 이를 인권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덜컥 임신이라도 되면 책임질 수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기 전에, 그럼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제안할 수는 없는가?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슨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옵션’ 정도로 여기지 말고 보장해야만 하는 ‘목적’이자 ‘원칙’의 자리에 놓고 현실적으로 그걸 어떻게 보장할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들이 아동수당과 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고 또 비혼모나 10대 20대의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 독립하는 일 등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다.
  인권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처럼 많은 것들이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인권의 기준에서 볼 때 미시적인 의식에서부터 거시적인 시스템까지, 바꿔야 할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럼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고 묻는다. 너희가 말하는 건 먼 미래에 실현될 법한 것 아니냐고. 맞다. 청소년인권 실현을 위해 주장하는 것들 중에는, 먼 미래일지는 어떨진 몰라도 적어도 바로 당장 내일이나 다음 달에 실현될 일이 아닌 것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시작했는지 아닌지의 차이는 크다. 그러한 인권 보장의 책임을 사회가, 우리 모두가 함께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지금 당장 연애를 하고 있고 성관계를 맺고 있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교사들/학부모들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선 그 청소년들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그 청소년들에게 이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문제라는 식으로 문제의식을 바꿔보자고.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청소년들에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안타깝게도 이렇고 그래서 이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그 청소년들의 편에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너무 오래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이다

  “수 년 동안 ‘기다리라!’는 말만 들어왔소. 이 ‘기다리라’는 말은 항상 ‘결코 안된다!’라는 뜻으로 쓰여 왔습니다. ‘지나치게 오래토록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다’라는 어느 저명한 법관의 말이 생각납니다.” (마틴 루터 킹)

  최근에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 강원도 등에서 체벌이 금지되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제한적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하자, 학교 현장이나 언론 지면상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와중에 내 눈을 끄는 것은 “아직 학교 현장의 준비가 부족하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등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체벌금지를 정부에서 추진하기 시작했던 것은 1996년부터였다. 그리고 1998년에는 교육부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역시 “준비가 부족하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등의 이유로 철회하고 제한적으로 체벌을 허용하는 식으로 물러났었다. 또한, 중고등학생복지회라는 단체가 학생인권선언의 형태로 학생인권의 핵심 요구들을 모아서 발표한 것은 1998년, 두발자유를 비롯해서 학생인권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 2000년 전후였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의 시간 동안 학교는, 교육계는,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왔는가? 무엇을 준비해왔기에 여전히 준비가 부족하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체벌금지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시기상조’라거나 ‘준비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거기에 답할 책임이 있다.
  다른 청소년인권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입시경쟁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할 때,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할 때, 청소년들이 가장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아직 시기상조”, “기다려야 한다” 등의 말이다. 그러나 변화는 보통 필요한 모든 준비를 사전에 다 끝마치고 나서 시작되지 않는다. 변화가 시작되면서 필요한 준비들이 갖춰져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나치게 오래토록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이다.” 그런 말은 정말로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참고 침묵하라는 말의 수사적 표현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은 최소한 그런 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 왜, 우리가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흔히 듣는 말이 있지 않은가. “먼저 사람이 돼야지.” 맞는 말이다. 청소년들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사람이 되어라」에서 학생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원숭이이다. 그 속에서는 이미 사람이 된 선생님이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쳐서 대학을 보내서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 학교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이미 사람이다. ‘덜 된 인간’, ‘미성숙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인권을 보장받고, 인격을 존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변화가 항상 ‘먼저’여야만 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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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1. 6. 23. 13:49




[책의 유혹] 어느새 나도 꼰대랍니다

『인권, 교문을 넘다』,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2011

그대들이 지하철 차 바닥에 철퍼덕 앉아 떠드는 모습을 볼 때,
그대들이 북쪽얼굴을 입고 쓰레빠를 질질 끄는 모습을 볼 때,
그대들이 블링블링 빛나는 배달용 오토바이를 탄 모습을 볼 때,

무섭다거나 두려운 감정들이 당연히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참, 그대들을 띠꺼워(?)했어요. 생각해 보면, 나이 먹은 사람들에겐 “띠껍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토하고 노상방뇨하고 소리 지르고 때리는 그분들에게도, “띠껍다”라고 표현해본 적은 없는 것 같군요. 게다가 이 분(?)들은 ‘일부’일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대들에게는 “요새 학생들이…”라는 말로 발동을 걸며 싸잡아 비난하곤 했었죠.

사실입니다. 빵셔틀*이 있고, 밀가루와 계란 범벅이 되어 졸업식장을 누비던 ‘언뉘옵하(언니오빠)’들이 있어요. 오늘은 한 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걸렸는데 법대로 하자며 선생의 가슴을 쳤다고 뉴스에 나왔어요. 그대들과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질 않는 20대 젊은 선생들도 말해요. 그대들은 통제가 안 된다고. 착하게 대해주면 자기들이 먹혀(!) 버릴 거라고.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이런 얘기들은, 내가 그대들과 비슷한 나이였던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교실 붕괴”에서 “교권 침해”로, 단어가 바뀌었을 뿐이죠. 빵셔틀은 없었지만, 왕따가 있었고, 북쪽얼굴(노스페이스)을 입고 다니진 않았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온 듯한 더플코트의 물결이 기억나요.

분명히 시대가 변했고, 변한 것들이 있어요. 물론이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는데 그대로인 것이 있겠어요? 대학에 입학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이젠 등록금이 올라서 다니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취직하기는 더 어려워져서 졸업장만으로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어요. 이게 바로, ‘성숙한’ 어른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변화의 일부랍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옛말에 “어리다”라는 표현은 “어리석다”와 같은 뜻이었다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어린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사실 난 잘 모르겠어요. 뭐가 현명한 것이고 뭐가 어리석은 것인지. 현명한 사람들 죄다 모아 놓은 곳에선, 과연 얼마나 현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어요. 오늘 뉴스를 보니 번듯한 대학의 교수님이 성추행을 하고 잡히기 싫어서 외국으로 떴다가 결국 해임되었다는데, 난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그대들에게 금지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대들이 “어리기 때문에” 혹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합리화되어 왔다는 것이에요. 담배와 술은 모두의 건강에 나쁘지만 그대들에게만 금지되고, “효과적인 통제장치”라며 체벌은 그대들에게만 허용되죠. 그대들은 판단할 수 없기에 투표권이 없고, 알바를 하려고 해도 부모의 승인이 필요해요. 하지만 부모들의 행동에 그대들의 허락은 필요 없어요. 부모의 이혼과 같은 일들, 그게 아무리 당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말이죠.

그런 말이 있어요

어디에나 붙일 수 있는 말인데, 유독 “학생”이란 말과 연결시키기에는 몹시 어색했던 말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 그렇게 어색하게 들리진 않아요. 뭐든 자꾸 큰소리로 우기면 말이 된다고, 뉴스나 신문에도 종종 나오다 보니 이제는 두꺼운 책의 제목으로 자리를 잡고 무려 ‘출판(!)’되고 있어요. 그렇게 “교권”이란 말만 존재했던 교실에, “인권”이란 말이 조금씩 들어서고 있어요. 분명 일부 교사들을 비롯한 꼰대들이 띠꺼워하겠죠. 아마 그대들은 이미 그런 반응들을 꽤 접해봤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분들이 “어리석고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줘요. 인권이 교권과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왜 이것이 충돌하지 않는 것인지 설명을 하려고 해도, “성숙한 시민의 자세” 따윈 제쳐두고 귀를 막아 버리는 사람들이랍니다. 어쩌면 그대들이 말하는 것 자체를 띠꺼워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왜냐면, 그네들은 사실, 자기 입으로 자기 생각을 말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게다가 그대들이 주장한 것들이 그럴듯하게 활자화되어 이렇게 책으로 나오기까지 했으니, 꽤나 아니꼬울 것 같아요.

뭐 사실, 이 책이 그대들에게 그렇게 재밌을지는 모르겠어요. “학생인권쟁점탐구”를 하겠다고 사례별로 정리를 하나씩 죽 해놨어요. 사례뿐만이 아니라 논리까지도 촘촘히 정리하고 있네요. 게다가 ‘탐구’라니! 사회탐구도 아니고! 답은 안주고 끝날 때마다 질문을 던져대니, 물음표가 많은지 마침표가 많은지 세고 싶어질 정도에요. 심지어는 교과서처럼 뒤에 “토론거리”도 마련해놓고 빈칸에 뭘 채워 넣으라고 시키기까지 하고 있으니! 정말 이걸 해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인권, 교문을 넘다

“그대들”이란 표현을 이젠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나나 그대들이나 다 잘나고 못난 인간들이니까요. 불쌍하고 찌질하기도 하죠. 그대들이 쇠창살에 갇혀 있다면, 나 같은 인간들은 유리창살에 갇혀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은, 내 이야기기도 하고 그대들 이야기기도 해요.

책 쓴 사람들은 아마 인권이 교문을 넘어서 학교로 들어가길 바란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대들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교문 안팎의 누군가들이, “누가 이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라고 씩씩대며 뛰쳐나왔으면 좋겠어요. 갇혀 있던 인간들 죄다 튀어나와서, 제대로 한바탕 찌질거려봤으면 좋겠어요. 혼자서는 사실 좀 민망하니까. 이웃에 딱, 방해가 될 정도로만.


* 빵셔틀은 중·고등학교에서 힘센 학생들의 강요에 의해 빵이나 담배 등을 대신 사다 주는 행위나,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로, 학교 폭력을 배경으로 탄생한 용어이다.

『인권, 교문을 넘다』 차례

추천사
학생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권을 위해_김상곤
학생인권을 넘어 인간으로 살아가기_이계삼

1부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질문들

2부 학생인권 쟁점 탐구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체벌과 폭력 사이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접속 금지, 발신 금지|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교복은 메시지다|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사랑은 아무나 하나|‘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3부 학생인권 논리 탐구

성숙은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가?|‘미성숙의 갑옷’을 벗는다는 것
보호는 안전망인가, 올가미인가?|청소년 보호주의 넘어서기
학생인권, 학생과 교사의 다툼인가?|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 찾기
인권이 살면 규칙이 죽는가?|‘법과 규칙이 살아 있는 학교’가 놓친 질문들
탯줄은 몇 살에 끊기나?|학생인권, 가족과 부모의 벽 넘기
학교는 어떻게 ‘찌질이’를 만드나?|학교 안 차별 들여다보기
덧붙이는 글
팽 님은 학교에서 일할 자신이 없는 2급 정교사 자격증 소지자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56 호 [기사입력] 2011년 06월 21일 11: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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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웹광고용 이미지입니다 ㅎㅎ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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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6. 15. 15:25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을 제출한 지 대략 3주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물론, 서울시교육청의 공식 통보는 오지 않은 상태지만, 여기저기서 서명 검증 진행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대략 1만명 정도 서명이 부족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보정기간은 6월 22일 ~ 26일

이번 보정기간 이후에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효가 나는 걸 모두 고려해서 안전하게 1만5천장을 받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 비율로만 생각해보면 1만 2천장이면 될 거 같긴 하지만- 안전하게 성사시키기 위해선 1만4~5천은 필요할 게다.)


요즘 기분은 아주, 참 그렇다.
아직 공식 보정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서명을 받을 수는 없고, 그러나 서명을 몇부 받아야 하는지는 알고, 피가 마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의 무효율이 예상보다 높은 것은 결국 거리서명으로 받은 비율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리에서 서명을 받을 때는, 조직이나 지인을 통해서 서명을 받을 때보다, 주민번호를 불완전하게 쓰거나 실수로/고의로 잘못 쓰는 경우들이 그만큼 많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 또 마음 속에서는 전교조로 대표되는 '어른 단체'들을 탓하는 마음이 생긴다.



서울에서 조례를 주민발의한 게 3번이 있었다.

친환경급식조례 주민발의 때는 교사/학부모들이 서명을 몇만부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걸 기준으로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3만장을 해오겠다고 큰소리 치다가 그 절반도 못해왔지)
소문으로는, 광장조례 때는 민주당과 노무현 서거 때 시청광장 못 쓴 거에 빡친 노무현 지지자들이 3만부 서명을 모아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때는, 2만부 3만부를 넘게 서명을 모아온 단위가 없다. 서명을 마무리하면서 서명이 어디서 얼만큼 들어왔나 집계해볼 때, '거리서명만 3만', '전OO 7천'이라는 숫자들이 얼마나 기가 차던지...


광장조례는 민주당이랑 노무현 지지자들이 3만장 서명을 모아왔다던데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는 누가 서명을 모아와야 하는 걸까.
청소년들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수임인조차도 될 수 없는데.

결국, 이 글을 읽고 계실, 학생인권을 지지해주시는 많은 시민 분들에게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다.


김슷캇님 말마따나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무산은 학생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서울시민들의 선고가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무산되지 않도록
한 명 한 명...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을 모아주시길-



※ 6월 26일까지 보정기간 서명을 받은 후 또 서명을 구/동별로 정리하는 기간이 있다. 그러니까 6월 28일 정도까지만 서명지를 보내주시기를 바란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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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6. 9. 19:5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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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학생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권을 위해 - 김상곤 4
학생인권을 넘어 인간으로 살아가기 - 이계삼 6

1부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질문들

2부 학생인권 쟁점 탐구
1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36
2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64
3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이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88
4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116
5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138
6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158
7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가? 180
8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202

3부 학생인권 논리 탐구
1 성숙은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가? - '미성숙의 갑옷'을 벗는다는 것 238
2 보호는 안전망인가? 올가미인가? - 청소년 보호주의 넘어서기 250
3 학생인권, 학생과 교사의 다툼인가? -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 찾기 262
4 인권이 살면 규칙이 죽는가? - '법과 규칙이 살아 있는 학교'가 놓친 질문들 273
5 탯줄은 몇 살에 끊기나? - 학생인권, 가족과 부모의 벽 넘기 283
6 학교는 어떻게 '찌질이'를 만드나? - 학교 안 차별 들여다보기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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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간됐네요 ^^;
주문도 가능하고... 아마 좀 큰 서점에는 모두 깔렸을 겁니다
문제집, 학습지 등을 주로 내던 한겨레에듀가 교양도서로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낸 거라서...
문제집, 학습지 등팔던 루트로 학교 앞 서점 같은 데도 많이 들어갔으려나 -ㅁ-;



좀 더 자세한 소개 글 같은 거는 다음에 써서 올릴게요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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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30. 08:04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두번째 소식지
아직도 먼 학생인권 (경향신문특집기사)
운동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초간단 우편용 서명지가 나왔습니다!
시민연속특강이 진행되고 있어요!
활동일정 (3월 30일 ~ 4월 6일) 학생인권시민연속특강 학생인권으로 여는 행복교육의 오늘
일정확인하기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하기 배너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홈페이지
학생인권제정운동서울본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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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25. 09:44



시민의 힘으로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향한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우리는 오늘,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는 민주교육을 향한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기보다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교육, 체벌․폭언․차별 등 온갖 인간적 모멸이 판치는 교육, 거짓 동의와 거짓 자백이 강요되는 교육, 격려와 소통은 온데간데없고 강압과 지시만이 지배하는 교육이 우리가 떠나온 출발지다. 존중의 기쁨과 자유의 공기를 갈망하는 학생들이 뱃머리에 서서 우리의 항해를 재촉한다. 부당한 규정을 둘러싸고 학생들과 숨바꼭질을 벌이느라 교육자로서 자긍심을 찾을 길 없던 교사들이 함께 승선했다. 가혹한 경쟁과 훈육 시스템에 학생들이 볼모잡혀 있는 사이 자신조차 볼모가 돼야 했던 학부모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외려 독재와 차별의 가치를 확산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는 시민사회도 우리 항해의 동반자다.

우리 앞에 놓인 기나긴 항해의 첫 정박지는 서울학생인권조례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자유와 참여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학교, 감당할 만한 배움과 다양성이 꽃피는 학교, 차이가 낙인과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학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 복원된 학교를 그리는 기본 설계도다. 신민 양성과 특권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교육을 본디 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변화의 물꼬다. 이 항해는 ‘다른 교육은 가능하다’고 믿는 시민들의 열망과 행동을 동력 삼아 전진한다. 교육감의 의지나 교육청의 역할만 믿고 기다릴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항해가 순조로울 리 없다. 벌써부터 학생인권조례를 좌초시키려는 보수의 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미성숙한 학생에게 인권은 위험하다는 꼬드김이 시민들을 현혹한다.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부채질하는 손길도 바쁘다. 교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으름장도 만만찮다. 우리는 ‘학생도 인간’이라는 소박한 진실, ‘성숙은 나이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할 기회에 비례한다’는 믿음, ‘학생이기에 더더욱 풍요로운 권리를 맛볼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나침반 삼아, 저 역풍을 단호히 돌파하면서 힘찬 항해를 이어나우리는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그날까지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항해는 서울에서 멈출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전국 곳곳에서 힘찬 날갯짓을 펴는 그날까지, 힘차게 노 저어 나가자. 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저 견고한 학교의 담장을 녹이고 인권이 꽃피는 새로운 교육을 일구어내자.

2010년 7월 7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함께하는분들: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공동체 나다, 국제엠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 군인권센터,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모임,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서울지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특별시지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즐거운교육상상,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서울시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흥사단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개인활동가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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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 7월에 출범했군염...ㅇㅅㅇ

    2011.03.25 11:1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3. 5. 11:07





"학생인권으로 여는 행복교육의 오늘"

학생인권 시민 연속 특강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서울교육의 희망을 찾다”

    : 혁신학교-무상급식-학생인권조례에 담긴 교육철학, 학생의 인권과 자치 역량 강화가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 3/14(월) 오후 7시 / 서대문구청 강당


○ 이범희 용인 흥덕고 교장 “혁신학교와 학생을 존중하는 학교문화”

    : 수업혁신은 물론 학생 생활지도 혁신을 일구어내고 있는 흥덕고의 사례를 통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 3/16(수) 오후 7시 / 숭곡중학교 강당


 ○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폭력 트라우마와 체벌 없는 교육”

    : 학창시절 폭력의 경험이 우리 사회 문화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드는 기초로서 ‘체벌 없는 교육’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 3/22(화) 오전 10시 / 성동교육청 4층 강당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노동의 거울, 학교”

    : 학교는 노동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우리 사회 반(反)노동 문화는 학교의 역할과 상관 없나. 일하는 사람들이 자녀의 성적이 아닌 학교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를 살펴본다.

    : 3/23(수) 오후 7시 / 세종대  광개토관 105호


○ 백창우 시인/작곡가  “아이들 감성을 꽃피우는 노래 이야기”

    : 시와 노래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성을 꽃피게 만드는 부모와 교육의 역할을 짚어본다.

    : 3/31(목) 오전 10시 / 흥사단 3층 강당


 

 


  우리는 꿈꿉니다. 학생들이 모욕당하고 상처 입지 않는 교육을.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를 웃게 만드는 교육을. 저마다의 차이가 환대받고 우애를 익힐 수 있는 교육을. 인권과 민주주의를 익힐 수 있는 교육을.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존중하며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을.

  겨 울바람이 물러나고 꽁꽁 얼어붙었던 들판에서 새순이 움트듯, 이제 학생의 인권과 행복이 활짝 꽃피는 학교를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서울시 체벌금지 정책으로 시작된 학생인권 정책이 시민들과 교육 주체들의 열정과 지혜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배움과 나눔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함께해주세요.




□ 주최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 지역 교육․시민단체 공동 주최

□ 후원 :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 문의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02-582-8884/ 017-214-355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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